※ 이 발문은 본래 초서(草書)로 된 것을 송일기(2001:91)에 해서(楷書)로 고쳐 실은바 있다. 이종찬 교수는 이 초서를 검토하여 몇 자 수정하여 번역하였음을 밝혀 둔다.
내가 항상 ‘〈부모님의〉 덕을 갚으려면 하늘에 부르짖어도 끝이 없다’는 구절을 읊을 적마다, 무릎 아래에서 길러낸 은혜를 갚으려 해도 그 길이 없음으로 해서, 항시 비통한 생각을 간직한 것이 여러 해였다. 을사년에 어머니의 상을 서방산 기슭에서 치르면서 비구 스님과 서로 왕래하는 사이에 한 권의 책을 기증받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증조부가 작성한 은중경이었다. 세 번을 되풀이 읽으니 즐거이 마음 속으로 감동이 일었다.
나를 낳아주신 은혜를 내가 보답할 줄을 알겠고, 나를 길러주신 공덕을 내가 갚을 줄을 알겠으니 어찌 은혜와 공덕으로 한낱 갚음뿐이겠는가? 장차 우리 부모로 하여금 길이 무간지옥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모든 천당의 즐거움을 누리시게 하고자 하였는데, 당시에 마침 상중의 근심 중이었으니, 돌아가신 어버이를 위하여 믿음으로 받들어 간직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대체로 부모를 위한 착한 마음이야 아들딸에 다름이 있는 것이 아니니, 아주 어리석어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하는 이는 말할 것이 없지만, 보면 깨닫고 깨달으면 착한 일에 용감한 자에게도 역시 보아서 느낄 수 있는 길이 없다면, 이것이 어찌 여래께서 가르침을 베푼 본뜻이겠는가?
내가 이러한 이유로 손수 이 경전을 전하되 사이사이 언문으로 풀고, 뜻을 같이하는 비구 스님에게 상의하여, 인쇄하여 널리 관람하도록 청하였다. 저 은혜를 잊고 공덕을 저버린 이들의 무리는 부끄러움이 없을 수 있으며 두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 우리 고조부 보성군 몽을께서 중국의 야광주(夜光珠, 照夜璧) 10여 개를 구득하셨는데, 대대로 전할 가보로 삼을 것을 잊으시고 원등암의 부처님께 바치셨고, 또 증조부 종사랑(從仕郞) 효면께서 이 경을 조성하는 시주의 맨 앞에 서셨으니, 믿음의 공경스런 착한 마음은 근원이 있도다. 지금껏 자손들이 번성하게 이어옴이 어찌 이 음덕에 힘입음이 아니겠는가?
지금 내가 중간함에 있어 비록 감히 외람되이 잘한 일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두 할아버지의 뜻을 이은 것에는 소득이 있다 하겠구나.
가정(嘉靖) 기원한 뒤 을사(乙巳)년(인종 1년, 1545년) 월 일.
보성 후학 오응성(吳應星)은 삼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