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력 2년 10월 19일에
기주(夔州) 관청의 별가(別駕)인
원특(元特)의 집에서
임영의
이십이랑이 추는 칼춤을 보고, 그 치밀하면서도 뛰어난 춤사위를 장하게 여겨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 배웠는가?’ 하고 물었더니, 그는 말하기를 ‘저는
공손대랑의 제자입니다’라고 하였다. 개원(현종) 3년(715)에 나는 아직 어렸지만, 기억하기로는
언성(郾城)에서
공손씨가 칼을 들고 혼탈 쓰고 춤을 추자, 춤사위가 흐르듯하다가 갑자기 꺾이면서, 홀로 우뚝 솟아 당대의 우두머리가 되니, 고급 짚신을 신은 ‘
의춘원’과 ‘
이원’ 두 기방의 나인들에서부터
외공봉(外供奉)에 이르기까지 이 춤을 환하게 아는 사람은
성문신무황제(현종) 초기에
공손대랑 한 사람 뿐이었으니, 그는 잘 생긴 용모에다 수 놓은 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흰 머리가 됐고, 지금 이 제자 또한 젊은 얼굴은 아니니, 일단 그 춤의 유래에서 물결
(전통)
이 다르지 않은 것을 알았고, 사연을 어루만지며 애오라지 칼춤 노래를 짓노라. 옛날에
오(吳) 지역 사람
장욱이 초서를 잘 써서 서첩을 자주 만들었더니, 일찍이
업현에서
공손대랑이 서하의 칼을 가지고 춤 추는 것을 보고서, 이 때부터 초서 쓰기가 장족의 발전을 해서 호방하고 광탕하여 사람들을 감격하게 하니, 이
공손대랑의 춤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 만하구나! ◯
현종이 궁녀 수백 명에게 명령을 내려
이원의 제자로 삼아 음악을 가르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