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6(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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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을 거리[食物]
  • 한가로운 날 작은 정원에서 병이 그만해서, 장차 가을 채소를 심으려고 밭갈이 소를 챙기고, 겸해서 보이는 대로 풍경을 적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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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날 작은 정원에서 병이 그만해서, 장차 가을 채소를 심으려고 밭갈이 소를 챙기고, 겸해서 보이는 대로 풍경을 적어보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6:69ㄴ

暇日 주001)
가일(暇日)
한가로운 날. 이 시는 대력(大曆; 代宗) 2년(767)에 양서(瀼西)에서 지은 것이다. 이 작품은 작자 두보가 가을 채소를 파종하고나서 보고 겪는 과정에 상처 입은 흰 학의 생태를 보면서, 무언으로 자신이 투영된 바른 선비로서의 동병상련(同病相憐)하는 감정을 애틋하게 담아 읊은 시다.
小園에 散病 주002)
산병(散病)
이 한자어는 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아, 그 뜻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산(散)’ 자의 뜻이 ‘놓다’임을 감안하여, 아마도 ‘병이 좀 놓이다’라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만하다’로 풀어 읽었다.
야 將種秋菜야 督勤 주003)
독근(督勤)
부지런히 살펴보다. 여기서는 ‘챙기다’라는 말임이 분명하다.
耕牛고 兼書觸目 주004)
촉목(觸目)
눈길에 닿는 대로. 이것은 눈길에 닿는 모든 것들이며, 여기서는 눈으로 보는 모든 풍경을 말한다.
노라

가일소원에 산병하야 장종추채하야 독근경우하고 겸서촉목하노라
(한가로운 날 작은 정원에서 병이 그만해서, 장차 가을 채소를 심으려고 밭갈이 소를 챙기고, 겸해서 보이는 대로 풍경을 적어보다)

不愛入州府 주005)
주부(州府)
행정구역으로서의 주(州)와 부(府), 또는 주(州)의 원님이 있는 관청. 여기서는 전자인 ‘주’와 ‘부’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畏人嫌我眞 주006)
혐아진(嫌我眞)
나의 참됨을 싫어하다. 여기서는 언해에서 풀이한 바대로 ‘나의 진실로 있는 대로, 순박하게 그대로 사는 삶을 싫어하다’라는 말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州府에 드러가 랑티 아니호 사미 내 眞淳호 아쳐라 가 주007)
아쳐라가
싫어할까. 이 고어 동사의 원형은 ‘아쳐라다(싫어하다)’이다. 이것은 같은 뜻의 ‘아쳗다, 아쳐다, 아쳘다’ 등과 함께 쓰였다.
저헤니라 주008)
저헤니라
두려워해서이다. 동사 ‘젛다(두려워하다)’에 보조적 연결어미 ‘어(어서)’가 연결되면서, ‘ㅎ’이 연음되고, 여기에 다시 지정사 ‘이니라(이다)’가 첨가되면서, ‘허’와 ‘이’가 통합하여 ‘헤’가 된 것이다.

【한자음】 불애입주부 외인혐아진
【직역】 주(州)나 부(府)에 들어가지 않으려 함은, 사람들이 나의 순박하고 진솔함을 싫어할까 봐 두려워해서였다.
【의역】 주나 부 같은 지역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던 것은, 바로 사람들이 나의 진실로 있는 대로 순박하게 그대로 사는 삶을 싫어할까 봐 두려워해서였더니,

及乎歸茅宇 주009)
모우(茅宇)
띠풀로 덮어 지은 초가. 여기서는 작자 두보 자신이 객지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겨우 꾸려서 지은 초가집으로, 이 시어는 물론 실제의 삶을 표현한 것이 사실이나, 이 시어에는 작자 자신의 자련 의식을 투영시킨 것도 사실이다.
旁舍未曾嗔

새 지븨 도라오매 미천 주010)
미천
미쳐서는.
이웃 지비 일즉 믜여디 주011)
믜여디
미워하지. 이 고어의 원형은 ‘미여다(미워하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뜻의 ‘믜워다’와 함께 쓰였다.
아니다

【한자음】 급호귀모우 방사미증진
【직역】 띠풀 초가에 돌아옴에 미쳐서는, 이웃집들이 일찍이 미워하지 않는다.
【의역】 막상 띠풀 초가집으로 돌아왔을 적엔, 이웃집들이 일찍이 한 번도 미워하진 않았으나,

老病忌拘束 應接喪精神【拘束 爲禮法의 所拘也ㅣ라】

늘거 病야 얽여슈믈 주012)
얽여슈믈
얽매였음을. 동사 ‘얼이다(얽매이다)’에 시제 접미사 ‘엇’이 연결되면서 ‘이’와 ‘엇’이 통합 복모음화하여 ‘엿’이 되고, 여기에 명사형 접미사 ‘움’이 연결되면서 ‘여’의 ‘ㅣ’음 영향으로 반모음 ‘ㅣ’음이 개입되어 ‘윰’이 되었으며, 여기에 다시 목적격 조사 ‘을’이 첨가되면서, ‘ㅁ’이 연음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같은 뜻의 ‘얽이다’와 함께 쓰였다.
아쳐러노니 사 應接호매 精神이 喪失놋다

【한자음】 노병기구속 응접상정신【‘구속’이란 ‘예법에 의하여 구속된다’는 것이다.】
【직역】 늙어 병들어서는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노니, 사람을 응대함에 정신을 잃는구나!
【의역】 늙어 병이 들어서 무엇에 얽매이는 것이 싫고, 사람을 맞아 대하면서는 정신을 잃기 십상이더니,

江村意自放 주013)
강촌의자방(江村意自放)
강마을에서 뜻을 제냥으로 내놓다. 여기서는 ‘이 강마을이 너무도 시원한 공간이라 지니고 있는 의지를 아무 것에도 거리낌이 없이 제냥으로 한껏 펴서 내어 놓고 살게 됐다’라는 말로, 이 강마을에서의 작자 두보의 무한한 자유의지를 위한 해방 선언과 그 기쁨을 읽을 수 있는 시구다.
林木心所欣 주014)
임목심소흔(林木心所欣)
나무 숲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무한히 짙푸르고 싱그러운 나무 숲은 마음을 끝없이 기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역시 나무 숲을 향한 작자 두보의 무한한 감사와 환희를 읽을 수 있는 시구다.

  주015)

마을. 이것이 중간본에서는 ‘’로 바뀌어 ‘ㅿ’음이 탈락하여 있다.
해 들 내펴노니 林木 매 주016)
매
마음에. 이것이 중간본에서는 ‘매’로 기록되어 ‘ㅿ’음이 탈락하여 있다.
깃논 주017)
깃논
기뻐하는. 이 동사의 원형은 ‘깃다(기뻐하다)’이다.
배니라

【한자음】 강촌의자방 임목심소흔
【직역】 강가 마을에 뜻을 내놓아 펴노니, 나무 숲은 마음에 기뻐하는 바니라.
【의역】 이 강마을이 너무도 시원한 공간이라 지니고 있는 뜻을 한껏 열어 펴서 내어 놓고 살게 되었고, 무한히 짙푸르고 싱그러운 나무 숲은 마음을 무한히 기쁘게 하는 것이라서,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6:70ㄱ

耕屬地濕
주018)
추경속지습(秋耕屬地濕)
이 시구는 작자 두보의 마음으로 풀어서 읽어보면, ‘초가을(음력 7월)을 맞으며, 가을 채소를 파종하려는 차에 어쩌면 사람의 마음에 딱 맞추기나 한 듯이 심을 땅이 일하기 좋게 습기를 넉넉히 머금고 있구나!’일 것으로, 여기에는 ‘아 참 고맙고 좋구나!’라고 하는 작자의 마음의 목소리가 문면 밖에 숨겨져 있는 채 이렇게 겨우 다섯 글자의 시구로 압축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山雨近甚均 주019)
산우근심균(山雨近甚均)
이 시구도 작자 두보의 마음으로 읽는다면, ‘땅이 습기를 넉넉히 머금어 있는 때에 맞추어 씨를 뿌려 놓았는데, 여기에다 근간에 아주 고르게 내리고 있는 이 산속 비가 이 뿌린 씨들이 싹이 터나온 다음에도 사뭇 그렇게 고르게 내릴 테니!’라고 하는 믿음과 기대로의 고마움을 언외로 묻어 읊고 있다.

 받가로미 주020)
받가로미
가을밭 갈이가. 가을 밭갈이가. 여기의 ‘’이 중간본에서는 ‘’로 바뀌어 기록되어, ‘ㅿ’음이 탈락하여 있다.
저주메 주021)
저주메
젖음에.
다니 묏비 近間에 甚히 골오 주022)
골오
고루.
놋도다

【한자음】 추경속지습 산우근심균
【직역】 가을 밭갈이가 땅이 젖은 때에 맞추어졌으니, 산에 내리는 비가 근간에 아주 고르기도 하구나!
【의역】 가을을 맞으며 밭갈이(씨 뿌리기)를 하려는데, 땅이 젖은 때에 딱 맞추어져 있고, 여기에 또 산속에 내리는 비가 근간에는 아주 고르기도 하니,

冬菁飯之半 牛力晩來新

겨 무는 주023)
겨 무는
겨울에 식용하기 위해서 저장해 놓은 무는. 겨울에 먹는 무는. 이것이 중간본에서는 ‘겨읏 무우는’으로 기록되어, ‘ㅿ’음들이 탈락하여 있다.
밥과 半이니  히미 주024)
히미
소의 힘이. 여기의 ‘’라는 표기는 현대어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표기의 문자로서 매우 특이하나, 이것은 고어 ‘쇼(소)’에 소유격 조사 ‘의’가 첨가되면서, 통합 복모음화한 것이다.
나조 주025)
나조
저녁에. 이 고어 명사 ‘나조’는 ‘ㅎ’말음 명사라서, 처격조사 ‘(에)’가 첨가되면서, ㅎ이 개입된 것이다.
새롭도다

【한자음】 동청반지반 우력만래신
【직역】 겨울 무는 밥의 반쯤이니, 소의 힘이 저녁 무렵에 새롭구나!
【의역】 겨울에 저장한 무는 식량으로서 밥의 반 가치를 하니, 무를 심어 잘 길러야 할 판인데, 마침 밭갈이(씨 뿌리기)를 해야 할 지금이라, 살펴보자니 소의 힘도 저녁 무렵이 되면서, 새롭게 나는 것 같은 터라,

深耕種數畝 未甚後四隣 주026)
미심후사린(未甚後四隣)
이 시구는 작자 두보가 ‘자신은 농사의 일이 아직 능숙하지 못해서 비록 자신은 못 하지만, 그래도 밭을 깊이 갈아서 씨를 뿌려 잘 눈이 터나오게 해놓았으니, 주위 사방 농사를 잘 짓는 이웃집들에 비해서, 아주 뒤지게 해놓은 것은 아니다.’라는 미숙하나 지극히 순박한 농부 모습의 자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피 가라 두 이럼 주027)
두 이럼
두어 이랑. 두세 이랑. 이랑은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거나, 그것을 세는 말이다. 이것이 중간본에서는 ‘두어 이럼’으로 기록되어, ‘ㅿ’음이 탈락하여 있다.
심구믈 주028)
심구믈
심음을. 심은 것을. 이 동사의 원형은 ‘심구다(심다)’이며, 이것은 같은 뜻의 ‘심다’와 함께 쓰였다.
甚히 네 이우제 디디 주029)
디디
떨어지지. 뒤지지. 이 고어 동사의 원형은 ‘디다’이며, 같은 뜻의 ‘러디다’와 함께 쓰였다.
아니노라

【한자음】 심경종수무 미심후사린
【직역】 깊게 갈아서 두어 이랑 심는 것을, 아주 네 이웃에 뒤지지는 아니했노라.
【의역】 밭을 깊게 갈아서 두어 이랑 가을 채소씨를 심은 것이, 네 이웃집들에 비해 아주 뒤지게 한 것은 아니니,

嘉蔬旣不一 名數頗具陳 주030)
명수파구진(名數頗具陳)
이름과 수를 자못 갖추어 베풀다. 이 풀이의 그 문면만으로는 이야기하려는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다. 따라서 쉽게 풀어보면, ‘맛이 있고 아름다운 가을채소가 여러 가지라, 그 이름들과 그 수효를 구체적으로 챙겨서, 그 씨들을 가능한 한 다 준비하여 심어 놓는다.’는 말이다.

됴 菜蔬ㅣ 이믜셔 주031)
이믜셔
이미. 이것은 같은 뜻의 ‘이믜’라는 말과 함께 쓰였다.
가지 아니니 일훔과 數와 모 주032)
모
자못. 이것은 같은 뜻의 ‘, 못’ 등과 함께 쓰였다.
다 베프노라

【한자음】 가소기불일 명수파구진
【직역】 좋은 채소가 이미 한 가지가 아니니, 이름과 그 수를 자못 다 진술하노라.
【의역】 맛이 있고 아름다운 채소가 애초부터 한 가지가 아니니, 이 채소들의 이름과 그 수를 갖추어 심어 놓았는데,

荊巫 주033)
형무(荊巫)
언해에서 ‘형주 무협(荊州巫峽)’이라고 풀이한 바대로, 옛날 중국의 형주(荊州)였었고, 지금은 사천성(四川省)인 무산현(巫山縣) 일대를 말한다.
非苦寒 採擷接靑春

荊州 巫峽은 甚히 칩디 아니 주034)
칩디 아니
춥지 아니하기 때문에.
야 머구믈 보 니 니라 주035)
보 니서 니라
봄까지 이어 하느니라.

【한자음】 형무비고한 채힐접청춘
【직역】 형주의 무협은 심히 춥지는 않기 때문에, 채취해서 먹는 것을 한봄에까지 이어 할 수 있느니라.
【의역】 이 형주의 무협지역은 심히 추운 곳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 씨를 뿌려 기를 가을 채소는 내년 한봄에까지 채취해서 먹을 수 있겠다만,

飛來兩白鶴 暮啄泥中芹【此下 書觸目也ㅣ라】

라왯 주036)
라왯
날아와 있는. 날아온. 동사 ‘다(날다)’에 보조적 영결어미 ‘아’가 연결되면서 ‘ㄹ’이 연음되고, 여기에 다시 동사 ‘오다’가 연결되어 합성동사 ‘라오다’로 바뀌었으며, 여기에 또 다시 보조적 연결어미 ‘아’가 연결되면서, 통합 복모음화하였고, 또 다시 존재사 ‘잇’이 연결되면서, ‘와’와 ‘잇’이 통합 복모음화하여 ‘왯’이 된 것이다.
두  鶴이  가온 미나리 나조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6:70ㄴ

딕먹다 주037)
딕먹다
찍어 먹는구나.

【한자음】 비래양백학 모탁니중근【이 아래는 보이는 대로의 풍경을 적어본 것이다.】
【직역】 날아와 있는 두 마리 흰 학이 흙 속에 자란 미나리를 해 저물녘에 찍어 먹고 있구나!
【의역】 어디선가 날아온 두 마리 흰 학이 해가 질 무렵 진흙 속에 자라나 있는 미나리를 찍어 먹고 있는데,

雄者 주038)
웅자(雄者)
숫놈.
左翮垂 損傷已露筋

수히 주039)
수히
숫놈이. 이 고어 명사의 원형은 ‘수(수컷. 수놈)’이며, 이것은 ‘ㅎ’말음 명사라서 주격조사 ‘이’가 첨가되면서, ㅎ이 개입된 것이다.
왼 개 드리옛니 주040)
드리옛니
축 늘어져 있으니. 이 고어 동사의 원형은 ‘드리다(축 늘어지다. 축 드리우다)’이며, 이 어근에 보조적 연결어미 ‘어’가 붙고, 여기에 존재를 나타내는 ‘잇니(있으니)’가 연결되면서 이들이 ‘엣’이 되고, 모음충돌 회피로 반모음 ‘ㅣ’가 붙어 통합 복모음화하여 ‘옛’이 된 것이다.
허러 주041)
허러
헐어. 상처가 나서.
마 히미 낫도다 주042)
히미 낫도다
힘줄이 들어나 있구나. 이 고어 명사 ‘힘(힘줄. 심줄)’은 같은 뜻의 ‘힘ㅅ줄, 힘줄’ 등과 함께 쓰였으며, 이 고어 동사 ‘낫다(나타나다. 드러나다)’는 같은 뜻의 ‘낟다, 낱다’ 등과 함께 쓰였다.

【한자음】 웅자좌핵수 손상이노근
【직역】 숫놈이 왼쪽 날개를 드리워 있으니, 헐어(상처가 나서) 벌써 힘줄이 드러나 있도다.
【의역】 그런데 숫놈은 왼쪽 날갯죽지가 축 늘어져 있으니, 정녕 어디선가 다쳐 상처가 났는지 벌써 힘줄이 다 드러나 있는 채,

一步再流血 주043)
일보재유혈(一步再流血)
학이 상처를 입은 채 피를 흘리며 걷고 있는 안타까운 상태를 표현한 것. 이 시구에서 ‘한 번 걸을 적마다’라는 경우의 설정에 ‘두 번씩 피를 흘린다’는 상황의 제시로 되어 있는 수사적 구성은, 지극히 단순해 보이면서도 매우 사실적인 채 오히려 주체인 수컷 학의 상황을 비극화하는 기능을 기막히게 잘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직접적인 감정적 언표가 없으면서도, 작자 두보의, 아니 독자들까지의 기막히게 안타까운 감정을 언외로 유도하여,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尙經矰繳勤 주044)
상경증격근(尙經矰繳勤)
‘오히려 자신을 잡으려고 쏘는 주살의 화살 속을 잘 지나오며 겪어냈다’라는 이 시구 역시 시적 주체인 학의 상황을 실재적인 것으로 삼아, 그 불운의 경험과 극복을 간결한 문맥으로 그려 놓고 있지만, 이 문맥에는 아무래도 인격적 비유의 대상으로 설정되었을 한 쌍의 흰 학에게 너와 나, 아니 우리 모두의 삶의 안타까운 단면이 말없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矰繳 以絲로 繫矢而射也ㅣ라】

 번 거루메 두 번 피 흘리니 오히려 矰繳의 브즈런호 디내도다

【한자음】 일보재유혈 상경증격근【‘증격(矰繳; 주살)’은 실로 화살을 메겨 쏘는 것이다.】
【직역】 한 번 걸을 적마다 두 번 피를 흘리니, 오히려 증격(주살)이 부지런히 쏘는 것을 지나왔구나!
【의역】 한 번 걸을 적마다 두 번 피를 흘리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히려 자신을 잡으려고 쏘는 주살의 화살 속을 잘 지나오며 겪어냈으련만,

三步六號叫 주045)
삼보육호규(三步六號呌)
세 번 걸을 적마다 여섯 번을 울부짖는다. 이 시구에서 읽혀지는 상처 입은 흰 학의 행태를 따져 보면 ‘한 번 걸을 적마다 두 번씩 울부짖는다’는 것으로서, 아무리 동물이지만, 참으로 가긍한 정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도 작자 두보 자신은 물론 이 시를 읽을 우리 모두에게 무언의 무한한 애상의 정을 유도하고 있다.
志屈悲哀頻 주046)
지굴비애빈(志屈悲哀頻)
뜻을 펴지 못한 채 그냥 굽혀져서 슬픔만이 잦을 뿐. 이 시구는 바로 앞 시구의 원인이며 이유가 되는 것으로서, 앞 시구에서 한 번 걸을 적마다 두 번씩 울부짖게 되는 것은, 앞에서 본 바 날갯죽지가 상처를 입은 때문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인식과 이해로의 시적 표현은 바로 학을 자주 의지의 좌절을 맛보며 사는 선비로서의 인격화를 위한 것이다.

세 번 거루메 여슷 주047)
여슷
여섯.
우르니 주048)
우르니
울다. 이것의 원형은 ‘우르다’이며 같은 뜻의 ‘울다’와 함께 쓰였다.
디 屈야 슬후미 주049)
슬후미
슬픔이. 이 고어 명사의 원형은 ‘슬훔(슬픔)’이다.
도다 주050)
도다
잦구나.

【한자음】 삼보육호규 지굴비애빈
【직역】 세 번 걸으며 여섯 번 울고 있으니, 뜻이 굽혀져서 슬픔이 잦구나!
【의역】 세 번 걸을 적마다 여섯 번을 울부짖고 있으니, 정녕 뜻을 펴지 못한 채 그냥 굽혀져서 슬픔만이 잦을 뿐,

鸞鳳不相待 주051)
난봉불상대(鸞鳳不相待)
난새와 봉황새가 서로 인정하여 대접해 주지 않는다. 이 난새와 봉황새는 실재하지 않는 동물로서,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상서스러운 상상의 동물로 인식되어 흔히 고귀한 인격의 비유어로 쓰였으며, 그래서 여기서는 작자 두보 당시에 있어서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이거나, 임금님 같은 신성한 절대자의 상징어로 쓰였다. 그런데 흰 학을 이 난새와 봉황새가 서로 인정하여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설정한 것은, 현실적으로 바른 선비가 임금님이나 고위 관리들에게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전제로 하여, 다음 시구의 ‘목을 기우려 저 높은 하늘을 향해 하소하고 있다[側頸訴高旻]’라는 흰 학의 처지를 제시함으로써, 매우 풍유적이면서, 또한 작자 자신도 무언으로 대입된 그 선비 계층을 향한 애상의 정도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側頸訴高旻

鸞과 鳳凰괘 서르 기들우믈 주052)
기들우들
기다리들. 기다리지를. 이 고어 동사 ‘기들우다(기다리다)’에 어미 ‘들’이 연결된 것이며, 이 어미는 ‘-질(-지를)’과 같은 것이다.
아니니 모 기우려 노 하해 하놋다 주053)
하놋다
하소하는구나. 이 고어 동사의 원형은 ‘할다(하소하다)’이며, 이 동사가 ㄹ변칙 동사이기 때문에 어미변화 과정에서 ‘ㄹ’이 탈락하여 있는 것이다.

【한자음】 난봉불상대 측경소고민
【직역】 난새와 봉황새가 서로 기다려 주지 않으니, 목을 기우려 높은 하늘에 하소하는구나!
【의역】 난새와 봉황새가 서로 인정하여 대접해 주지 않으니, 목을 기우려 저 높은 하늘을 향해 하소하고 있으니,

杖藜俯沙渚 爲汝鼻酸辛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도랏 주054)
도랏
명아주. 이것은 같은 뜻의 ‘도랓’과 함께 쓰였다.
막대 디퍼 믌 주055)
믌
물가를. 이것이 중간본에서는 ‘믌’로 기록되어, ‘ㅿ’음이 탈락하여 있다.
구버셔 주056)
구버셔
굽혀서. 이 고어 동사의 원형은 ‘굽다(굽히다. 굽어보다)’이다. 「無憂樹人 가지 굽거늘〈曲 19〉, 妄‘ᄋᆞᆯ 브터 굽ᄂᆞ니(因妄而曲ᄒᆞᄂᆞ니)〈능 一, 44〉참조. 굽다’에 부사형 연결어미 ‘어셔’가 연결되면서 ‘ㅂ’이 연음된 것이며, 여기의 ‘셔’는 존재를 나타내는 ‘시어’의 축약형이다.
너 爲야 고 싀히 노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장려부사저 위여비산신
【직역】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물가를 굽어보며, 너를 위해서 코가 시큰하게 슬퍼하노라.
【의역】 나는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흰 학 네가 서 있는 모래 깔린 물가를 굽어보면서, 상처를 입은 채 거닐며 슬피 우는 너를 위해서 코가 시큰하게 슬퍼하노라!
Ⓒ 역자 | 송준호 / 2015년 12월 30일

원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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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가일(暇日) : 한가로운 날. 이 시는 대력(大曆; 代宗) 2년(767)에 양서(瀼西)에서 지은 것이다. 이 작품은 작자 두보가 가을 채소를 파종하고나서 보고 겪는 과정에 상처 입은 흰 학의 생태를 보면서, 무언으로 자신이 투영된 바른 선비로서의 동병상련(同病相憐)하는 감정을 애틋하게 담아 읊은 시다.
주002)
산병(散病) : 이 한자어는 사전에도 실려 있지 않아, 그 뜻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산(散)’ 자의 뜻이 ‘놓다’임을 감안하여, 아마도 ‘병이 좀 놓이다’라는 것이 아닌가 하여, ‘그만하다’로 풀어 읽었다.
주003)
독근(督勤) : 부지런히 살펴보다. 여기서는 ‘챙기다’라는 말임이 분명하다.
주004)
촉목(觸目) : 눈길에 닿는 대로. 이것은 눈길에 닿는 모든 것들이며, 여기서는 눈으로 보는 모든 풍경을 말한다.
주005)
주부(州府) : 행정구역으로서의 주(州)와 부(府), 또는 주(州)의 원님이 있는 관청. 여기서는 전자인 ‘주’와 ‘부’를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006)
혐아진(嫌我眞) : 나의 참됨을 싫어하다. 여기서는 언해에서 풀이한 바대로 ‘나의 진실로 있는 대로, 순박하게 그대로 사는 삶을 싫어하다’라는 말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007)
아쳐라가 : 싫어할까. 이 고어 동사의 원형은 ‘아쳐라다(싫어하다)’이다. 이것은 같은 뜻의 ‘아쳗다, 아쳐다, 아쳘다’ 등과 함께 쓰였다.
주008)
저헤니라 : 두려워해서이다. 동사 ‘젛다(두려워하다)’에 보조적 연결어미 ‘어(어서)’가 연결되면서, ‘ㅎ’이 연음되고, 여기에 다시 지정사 ‘이니라(이다)’가 첨가되면서, ‘허’와 ‘이’가 통합하여 ‘헤’가 된 것이다.
주009)
모우(茅宇) : 띠풀로 덮어 지은 초가. 여기서는 작자 두보 자신이 객지에서 가난하게 살면서, 겨우 꾸려서 지은 초가집으로, 이 시어는 물론 실제의 삶을 표현한 것이 사실이나, 이 시어에는 작자 자신의 자련 의식을 투영시킨 것도 사실이다.
주010)
미천 : 미쳐서는.
주011)
믜여디 : 미워하지. 이 고어의 원형은 ‘미여다(미워하다)’이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뜻의 ‘믜워다’와 함께 쓰였다.
주012)
얽여슈믈 : 얽매였음을. 동사 ‘얼이다(얽매이다)’에 시제 접미사 ‘엇’이 연결되면서 ‘이’와 ‘엇’이 통합 복모음화하여 ‘엿’이 되고, 여기에 명사형 접미사 ‘움’이 연결되면서 ‘여’의 ‘ㅣ’음 영향으로 반모음 ‘ㅣ’음이 개입되어 ‘윰’이 되었으며, 여기에 다시 목적격 조사 ‘을’이 첨가되면서, ‘ㅁ’이 연음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같은 뜻의 ‘얽이다’와 함께 쓰였다.
주013)
강촌의자방(江村意自放) : 강마을에서 뜻을 제냥으로 내놓다. 여기서는 ‘이 강마을이 너무도 시원한 공간이라 지니고 있는 의지를 아무 것에도 거리낌이 없이 제냥으로 한껏 펴서 내어 놓고 살게 됐다’라는 말로, 이 강마을에서의 작자 두보의 무한한 자유의지를 위한 해방 선언과 그 기쁨을 읽을 수 있는 시구다.
주014)
임목심소흔(林木心所欣) : 나무 숲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무한히 짙푸르고 싱그러운 나무 숲은 마음을 끝없이 기쁘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역시 나무 숲을 향한 작자 두보의 무한한 감사와 환희를 읽을 수 있는 시구다.
주015)
 : 마을. 이것이 중간본에서는 ‘’로 바뀌어 ‘ㅿ’음이 탈락하여 있다.
주016)
매 : 마음에. 이것이 중간본에서는 ‘매’로 기록되어 ‘ㅿ’음이 탈락하여 있다.
주017)
깃논 : 기뻐하는. 이 동사의 원형은 ‘깃다(기뻐하다)’이다.
주018)
추경속지습(秋耕屬地濕) : 이 시구는 작자 두보의 마음으로 풀어서 읽어보면, ‘초가을(음력 7월)을 맞으며, 가을 채소를 파종하려는 차에 어쩌면 사람의 마음에 딱 맞추기나 한 듯이 심을 땅이 일하기 좋게 습기를 넉넉히 머금고 있구나!’일 것으로, 여기에는 ‘아 참 고맙고 좋구나!’라고 하는 작자의 마음의 목소리가 문면 밖에 숨겨져 있는 채 이렇게 겨우 다섯 글자의 시구로 압축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주019)
산우근심균(山雨近甚均) : 이 시구도 작자 두보의 마음으로 읽는다면, ‘땅이 습기를 넉넉히 머금어 있는 때에 맞추어 씨를 뿌려 놓았는데, 여기에다 근간에 아주 고르게 내리고 있는 이 산속 비가 이 뿌린 씨들이 싹이 터나온 다음에도 사뭇 그렇게 고르게 내릴 테니!’라고 하는 믿음과 기대로의 고마움을 언외로 묻어 읊고 있다.
주020)
받가로미 : 가을밭 갈이가. 가을 밭갈이가. 여기의 ‘’이 중간본에서는 ‘’로 바뀌어 기록되어, ‘ㅿ’음이 탈락하여 있다.
주021)
저주메 : 젖음에.
주022)
골오 : 고루.
주023)
겨 무는 : 겨울에 식용하기 위해서 저장해 놓은 무는. 겨울에 먹는 무는. 이것이 중간본에서는 ‘겨읏 무우는’으로 기록되어, ‘ㅿ’음들이 탈락하여 있다.
주024)
히미 : 소의 힘이. 여기의 ‘’라는 표기는 현대어에서 전혀 쓰이지 않는 표기의 문자로서 매우 특이하나, 이것은 고어 ‘쇼(소)’에 소유격 조사 ‘의’가 첨가되면서, 통합 복모음화한 것이다.
주025)
나조 : 저녁에. 이 고어 명사 ‘나조’는 ‘ㅎ’말음 명사라서, 처격조사 ‘(에)’가 첨가되면서, ㅎ이 개입된 것이다.
주026)
미심후사린(未甚後四隣) : 이 시구는 작자 두보가 ‘자신은 농사의 일이 아직 능숙하지 못해서 비록 자신은 못 하지만, 그래도 밭을 깊이 갈아서 씨를 뿌려 잘 눈이 터나오게 해놓았으니, 주위 사방 농사를 잘 짓는 이웃집들에 비해서, 아주 뒤지게 해놓은 것은 아니다.’라는 미숙하나 지극히 순박한 농부 모습의 자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주027)
두 이럼 : 두어 이랑. 두세 이랑. 이랑은 갈아 놓은 밭의 한 두둑과 한 고랑을 아울러 이르거나, 그것을 세는 말이다. 이것이 중간본에서는 ‘두어 이럼’으로 기록되어, ‘ㅿ’음이 탈락하여 있다.
주028)
심구믈 : 심음을. 심은 것을. 이 동사의 원형은 ‘심구다(심다)’이며, 이것은 같은 뜻의 ‘심다’와 함께 쓰였다.
주029)
디디 : 떨어지지. 뒤지지. 이 고어 동사의 원형은 ‘디다’이며, 같은 뜻의 ‘러디다’와 함께 쓰였다.
주030)
명수파구진(名數頗具陳) : 이름과 수를 자못 갖추어 베풀다. 이 풀이의 그 문면만으로는 이야기하려는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다. 따라서 쉽게 풀어보면, ‘맛이 있고 아름다운 가을채소가 여러 가지라, 그 이름들과 그 수효를 구체적으로 챙겨서, 그 씨들을 가능한 한 다 준비하여 심어 놓는다.’는 말이다.
주031)
이믜셔 : 이미. 이것은 같은 뜻의 ‘이믜’라는 말과 함께 쓰였다.
주032)
모 : 자못. 이것은 같은 뜻의 ‘, 못’ 등과 함께 쓰였다.
주033)
형무(荊巫) : 언해에서 ‘형주 무협(荊州巫峽)’이라고 풀이한 바대로, 옛날 중국의 형주(荊州)였었고, 지금은 사천성(四川省)인 무산현(巫山縣) 일대를 말한다.
주034)
칩디 아니 : 춥지 아니하기 때문에.
주035)
보 니서 니라 : 봄까지 이어 하느니라.
주036)
라왯 : 날아와 있는. 날아온. 동사 ‘다(날다)’에 보조적 영결어미 ‘아’가 연결되면서 ‘ㄹ’이 연음되고, 여기에 다시 동사 ‘오다’가 연결되어 합성동사 ‘라오다’로 바뀌었으며, 여기에 또 다시 보조적 연결어미 ‘아’가 연결되면서, 통합 복모음화하였고, 또 다시 존재사 ‘잇’이 연결되면서, ‘와’와 ‘잇’이 통합 복모음화하여 ‘왯’이 된 것이다.
주037)
딕먹다 : 찍어 먹는구나.
주038)
웅자(雄者) : 숫놈.
주039)
수히 : 숫놈이. 이 고어 명사의 원형은 ‘수(수컷. 수놈)’이며, 이것은 ‘ㅎ’말음 명사라서 주격조사 ‘이’가 첨가되면서, ㅎ이 개입된 것이다.
주040)
드리옛니 : 축 늘어져 있으니. 이 고어 동사의 원형은 ‘드리다(축 늘어지다. 축 드리우다)’이며, 이 어근에 보조적 연결어미 ‘어’가 붙고, 여기에 존재를 나타내는 ‘잇니(있으니)’가 연결되면서 이들이 ‘엣’이 되고, 모음충돌 회피로 반모음 ‘ㅣ’가 붙어 통합 복모음화하여 ‘옛’이 된 것이다.
주041)
허러 : 헐어. 상처가 나서.
주042)
히미 낫도다 : 힘줄이 들어나 있구나. 이 고어 명사 ‘힘(힘줄. 심줄)’은 같은 뜻의 ‘힘ㅅ줄, 힘줄’ 등과 함께 쓰였으며, 이 고어 동사 ‘낫다(나타나다. 드러나다)’는 같은 뜻의 ‘낟다, 낱다’ 등과 함께 쓰였다.
주043)
일보재유혈(一步再流血) : 학이 상처를 입은 채 피를 흘리며 걷고 있는 안타까운 상태를 표현한 것. 이 시구에서 ‘한 번 걸을 적마다’라는 경우의 설정에 ‘두 번씩 피를 흘린다’는 상황의 제시로 되어 있는 수사적 구성은, 지극히 단순해 보이면서도 매우 사실적인 채 오히려 주체인 수컷 학의 상황을 비극화하는 기능을 기막히게 잘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직접적인 감정적 언표가 없으면서도, 작자 두보의, 아니 독자들까지의 기막히게 안타까운 감정을 언외로 유도하여,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주044)
상경증격근(尙經矰繳勤) : ‘오히려 자신을 잡으려고 쏘는 주살의 화살 속을 잘 지나오며 겪어냈다’라는 이 시구 역시 시적 주체인 학의 상황을 실재적인 것으로 삼아, 그 불운의 경험과 극복을 간결한 문맥으로 그려 놓고 있지만, 이 문맥에는 아무래도 인격적 비유의 대상으로 설정되었을 한 쌍의 흰 학에게 너와 나, 아니 우리 모두의 삶의 안타까운 단면이 말없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주045)
삼보육호규(三步六號呌) : 세 번 걸을 적마다 여섯 번을 울부짖는다. 이 시구에서 읽혀지는 상처 입은 흰 학의 행태를 따져 보면 ‘한 번 걸을 적마다 두 번씩 울부짖는다’는 것으로서, 아무리 동물이지만, 참으로 가긍한 정상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도 작자 두보 자신은 물론 이 시를 읽을 우리 모두에게 무언의 무한한 애상의 정을 유도하고 있다.
주046)
지굴비애빈(志屈悲哀頻) : 뜻을 펴지 못한 채 그냥 굽혀져서 슬픔만이 잦을 뿐. 이 시구는 바로 앞 시구의 원인이며 이유가 되는 것으로서, 앞 시구에서 한 번 걸을 적마다 두 번씩 울부짖게 되는 것은, 앞에서 본 바 날갯죽지가 상처를 입은 때문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인식과 이해로의 시적 표현은 바로 학을 자주 의지의 좌절을 맛보며 사는 선비로서의 인격화를 위한 것이다.
주047)
여슷 : 여섯.
주048)
우르니 : 울다. 이것의 원형은 ‘우르다’이며 같은 뜻의 ‘울다’와 함께 쓰였다.
주049)
슬후미 : 슬픔이. 이 고어 명사의 원형은 ‘슬훔(슬픔)’이다.
주050)
도다 : 잦구나.
주051)
난봉불상대(鸞鳳不相待) : 난새와 봉황새가 서로 인정하여 대접해 주지 않는다. 이 난새와 봉황새는 실재하지 않는 동물로서,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상서스러운 상상의 동물로 인식되어 흔히 고귀한 인격의 비유어로 쓰였으며, 그래서 여기서는 작자 두보 당시에 있어서 고위 관직에 있는 사람이거나, 임금님 같은 신성한 절대자의 상징어로 쓰였다. 그런데 흰 학을 이 난새와 봉황새가 서로 인정하여 대접해 주지 않는다고 설정한 것은, 현실적으로 바른 선비가 임금님이나 고위 관리들에게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전제로 하여, 다음 시구의 ‘목을 기우려 저 높은 하늘을 향해 하소하고 있다[側頸訴高旻]’라는 흰 학의 처지를 제시함으로써, 매우 풍유적이면서, 또한 작자 자신도 무언으로 대입된 그 선비 계층을 향한 애상의 정도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주052)
기들우들 : 기다리들. 기다리지를. 이 고어 동사 ‘기들우다(기다리다)’에 어미 ‘들’이 연결된 것이며, 이 어미는 ‘-질(-지를)’과 같은 것이다.
주053)
하놋다 : 하소하는구나. 이 고어 동사의 원형은 ‘할다(하소하다)’이며, 이 동사가 ㄹ변칙 동사이기 때문에 어미변화 과정에서 ‘ㄹ’이 탈락하여 있는 것이다.
주054)
도랏 : 명아주. 이것은 같은 뜻의 ‘도랓’과 함께 쓰였다.
주055)
믌 : 물가를. 이것이 중간본에서는 ‘믌’로 기록되어, ‘ㅿ’음이 탈락하여 있다.
주056)
구버셔 : 굽혀서. 이 고어 동사의 원형은 ‘굽다(굽히다. 굽어보다)’이다. 「無憂樹人 가지 굽거늘〈曲 19〉, 妄‘ᄋᆞᆯ 브터 굽ᄂᆞ니(因妄而曲ᄒᆞᄂᆞ니)〈능 一, 44〉참조. 굽다’에 부사형 연결어미 ‘어셔’가 연결되면서 ‘ㅂ’이 연음된 것이며, 여기의 ‘셔’는 존재를 나타내는 ‘시어’의 축약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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