勤근儉검篇편
勤근者쟈 女녀之지職직이오 儉검者쟈
여사서 4:62ㄴ
富부之지基긔ㅣ니 勤근而이不블儉검면 枉왕勞로其기身신고 儉검而이不블勤근면 甘감受슈其기苦고 儉검以이益익勤근之지有유餘여고 勤근以이補보儉검之지不블足죡이니 若약夫부貴귀而이能능勤근則즉身신勞로而이敎교以이成셩고 富부而이能능儉검則즉守슈約약而이家가日일興흥니라 是시以이로 明명德덕은 以이太태后후之지尊존으로 猶유披피大대練년고 穆목姜강은 以이上샹卿경之지母모로
여사서 4:63ㄱ
尙샹事紉인麻마며
【◯ 漢한 明명德덕馬마皇황后후ㅣ 性셩이 恭공儉검야 양 白練년 옷슬 닙고 華화采 崇슝尙샹티 아니더라 〇 穆목姜강은 魯노上샹卿경 公공父보文문伯의 母모ㅣ오 穆목伯의 妻쳐 敬경姜강이라 文문伯이 退퇴朝됴야 그 母모의 績젹麻마을 보고 歜쵹의 집으로 母모ㅣ 오히려 績젹시니잇가 母모ㅣ 歎탄야 魯노ㅣ 그 亡망딘뎌 童동子로 여곰 卿경을 삼아 큰 道도 듯디 못엿도다 사이 슈고로오면 善션을 각고 평안면 惡악을 각니 이제 네 卿경이 되야 슈고 아디 못고 도로혀 나의 女녀職직에 부런을 괴이히 넉이니 내 두리건대 魯노ㅣ 將쟝 亡망고 穆목伯의 祭졔祀ㅣ 廢폐가 노라 일이 春츈秋츄傳뎐의 실련니라】 葛갈覃담卷권耳이 咏영后후妃비之지
여사서 4:63ㄴ
賢현勞로고 采蘩빈采(치)蘋빈은 述슐夫부人인之지恭공儉검며
【◯ 周쥬南남 葛갈覃담詩시애 后후妃비ㅣ 葛갈을 야 衣의服복을 다 니고 卷권耳이의 后후妃비卷권耳이 야 宗종廟묘졔 供공다 니니다 后후妃비의 勤근苦고을 述슐니라 〇 召쇼南남 采蘩번詩시 夫부人인이 貴귀호 능히 부언홈을 아다이 너기고 采蘋빈은 大대夫부의 妻쳐ㅣ 恭공敬경節졀儉겁(검)야 宗종祀의 부언홈을 아다이 너겻니라】 七칠月월之지章쟝은 半반言언女녀職직고 五오噫희之지咏영은 實실賴뇌妻쳐賢현며
【◯ 豳빈風풍七칠月월篇편의 大대家가貴귀女녀ㅣ다 勞로苦고 양티 아니고 친히 農농桑상의 일을 다 엿니라 〇 漢한梁냥여사서 4:64ㄱ
鴻홍이 妻쳐 孟光광으로 더브러 吳오에 들여가 世셰 避피 五오噫희 노래 지으니라】 仲듕子ㅣ 辭사三삼公공之지貴귀야 己긔織직屨구而이妻쳐辟벽纑노고 少쇼君군이却각萬만貫관之지粧장야 共공挽만車거而이自出츌汲급니
【◯ 纑노 플을 辟벽야 노 고 삼을 紉인야 실을 단 말이라 齊졔王왕이 陣딘仲듕子로 相샹을 삼고져거 밧디 아니고 於어(오)陵능의 避피야 妻쳐 纑노 辟벽고 몸은 屨구織직야 食식을 더라 〇 桓환少쇼君군은 漢한 鮑포宣션의 妻쳐ㅣ라 비로소 嫁가매 資裝장이 甚심히 盛셩거 宣션이 깃거 아니야 주001) 깃거 아니야: 기뻐 아니하여. 기뻐하지 않고.
少쇼君군이 富부驕교 나셔 貧빈賤쳔 適뎍니 내 敢감히 당티 못여사서 4:64ㄴ
노라 妻쳐ㅣ 아비 先션生의 德덕을 닷고 검약을 딕므로 妾쳡으로 여곰 君군子 셤기게 엿디라 오직 命명을 이 조리이다 주002) 이에 그 婢비僕복과 衣의飾식을 도라보내고 荊형𨥁차와 布포裙군을 닙어 夫부로 더브러 가지로 鹿녹車거 挽만고 鄕향里니의 도라가 舅구姑고의게 절기 매 甕옹을 들고 나가 물 기니라】 是시皆身신執집勤근勞로고 躬궁行節졀儉검야 揚양芳방譽예於어詩시書셔고 播파令녕名명於어史冊者쟈也야ㅣ니 旃젼其기勖욱諸졔뎌
Ⓒ 편찬 | 이덕수 / 1737년(영조 13)
勤근은 女녀의 職직이오 儉검은 富부의
터히니 주003) 터히니: 터이니. 당이니. ‘터ㅎ-+-이(서술격조사)-+-니(연결어미)’의 구성.
勤근고 儉검티 아니면
헛도여사서 4:65ㄱ
이 주004) 헛도이: 헛되이. 되다는 ‘다’〈석보상절 9:41ㄱ〉에서 ‘다〉외다’〉도외다〉되다’라는 단계적 변화 과정을 거친 것이라 할 수 있다. ‘헛-+도외-+-이(부사화접사)’의 구성에서 ‘오’의 축약으로 ‘헛도이’가 실현되었다.
그 몸을
슈고롭게 주005) 슈고롭게: 수고스럽게. ‘수고(愁苦)-+-롭(형용사파생접사)-+-게(부사형어미)’의 구성.
고 儉검고 勤근티 아니면 그 苦고 게
바드릴 주006) 바드릴: 받으므로. ‘받[受]-+-으(삽입모음)-+-ㄹ(연결어미)’의 구성.
儉검으로 勤근의 有유餘여 더게 고 勤근으로 儉검의 不블足죡을 補보디니 만일 貴귀호 能능히 勤근면 몸이 슈고로오나 敎교ㅣ 일고 富부호 能능히 儉검면
딕미 주007) 딕미: 지킴이. ‘딕히[守]-+-ㅁ(명사형)-+이(주격조사)’의 구성. 15세기에는 ‘딕다’ 외에 ‘딕킈다, 딕희다, 디킈다’ 등이 나타난다. 18세기에는 ‘딕히다, 딕킈다, 딕희다, 디키다, 디킈다, 지킈다, 직희다, 직히다’ 등의 다양한 예들이 확인된다. 이 시기는 구개음화가 국어에 본격적으로 적용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요약고 집이 날로 興흥니라 일로
明명德덕은 太태后후 주008) 명덕태후(明德太后): 명덕(明德) 마황후(馬皇后). 한(漢)나라 명제(明帝)의 황후이며 장제(章帝)의 어머니.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여 항상 흰 베옷을 입었고 화려한 무늬 옷을 좋아하지 않았다. 『내훈』 「절검」에 기록이 있다.
의 尊존으로 오히려
大대練년 주009) 을 닙고
穆목姜강 주010) 목강(穆姜): 노나라 상경(上卿) 공보 문백(公父文伯)의 어머니이며 목백(穆伯)의 처 경강(敬姜)을 이르는 말. 왕상이 『춘추전』 「병례」, 「지혜」편에 이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다.
은
上샹卿경 주011) 의 母
여사서 4:65ㄴ
모로 오히려 紉인麻마 일삼며
葛갈覃담 주012) 갈담(葛覃): 『시경』 「갈담·권이」편의 이름. 이 시는 제후의 후비가 훌륭하게 자신의 직분에 힘쓰고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시경』 「주남·갈담」의 시에서는 후비가 칡덩굴을 채집하여 몸소 갈포를 만들어 의복을 지어 입었다고 하였다. 「주남·권이」에서는 후비가 산에 올라가 도꼬마리를 채집하여 종묘의 제사에 쓰면서 군자가 하는 일을 도운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모두 후비의 부지런한 노력을 서술한 것이다.
과
卷권耳이 주013) 권이(卷耳): 『시경』의 「갈담·권이」 편의 이름.
后후妃비의 賢현勞로 읇고 采蘩번과
采蘋빈 주014) 채빈(采蘋): 『시경』의 「채번·채빈」 편의 이름. 이 시는 대부의 부인이 공손하고 검약한 태도로 행동함을 서술한 것이다. 『시경』의 「소남·채번」의 시는 부인이 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부지런한 자세로 일관한 것을 칭송한 내용이다.
은 夫부人인의
恭공儉검 주015) 을 述슐며 七칠月월의 章쟝은 半반이나
女녀職직 주016) 을 니고 五오噫희의 咏영은 實실로 妻쳐ㅣ 賢현기 힘닙으며
仲듕子 주017) 중자(仲子): 제나라 시대 진중자(陳仲子). 삼공의 귀한 자리를 사양하였고 자신은 짚신을 만들고 처는 무명실을 잣는 일을 한 은자(隱者)이며, 자가 자종(子終)이고 제나라의 오릉읍(於陵邑)에 은거하였기 때문에 ‘오릉자종(於陵子終)’이라고도 했다. 그는 청렴함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맹자』 「등문공하」, 『열녀전』 「현명·초오릉자」, 『규범』 등에도 나온다.
三삼公공의 貴귀 양야 몸은 신을 며 妻쳐
纑노 주018) 노(纑): 무명실인데 풀을 매겨 끈으로 묶고 마를 엮어서 만든 것.
辟벽고 주019) 少쇼君군 주020) 소군(少君): 한나라 포선(鮑宣)의 처 환소군(桓少君). 『후한서』 권84, 『규범』 권2, 『고금규범』 권2에 소개되어 있다.
은 萬만貫관의 粧장을
물리텨 주021) 물리텨: ‘물리티-+-어(연결어미)’의 구성. 물리쳐.
가지로 수
여사서 4:66ㄱ
挽만고 주022) 스로
나가 주023) 나가: 나가서. ‘나[出]-#가[行]-+아’의 구성.
물
기니이다 주024) 기니이다: 〈물을〉 길렀다. ‘기[汲]-+-니이다(종결어미)’의 구성.
몸소 勤근勞로 잡으며 몸소 節졀儉검을 行야 곳다온 길임을 詩시書셔의
揚양고 주025) 어딘 일홈을 史冊의
播파 주026) 者쟈ㅣ니 그 힘
띤뎌 주027)
Ⓒ 언해 | 이덕수 / 1737년(영조 13)
제10. 근면과 검소[勤儉篇]
부지런함은 여자의 직분이고, 검소함은 부유함의 근본이다. 부지런하고 검소하지 않으면 헛되이 그 몸을 수고롭게 하고, 검소하고 부지런하지 않으면 그 괴로움을 달게 받아야 한다. 검소함은 부지런함의 여유가 있음을 더하게 하고, 부지런함은 검소함의 부족함을 보충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귀한 사람이 능히 부지런하면 몸은 수고로우나 가르침이 이루어지고, 부유한 사람이 능히 검소하게 생활하면 절약을 지켜 가정이 날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명덕황후는 태후의 높은 몸으로써 오히려 굵은 베옷을 입었고, 목강(穆姜)은 상경(최고의 벼슬)의 어머니로서 오히려 바느질하고 삼을 삼기를 일삼았다.
【◯ 한나라 명덕 마황후가 성품이 공손하고 검소하여 항상 흰 베옷을 입고 화려한 무늬 옷을 좋아하지 않았다. 〇 목강은 노나라 상경 공보 문백(文伯)의 어머니이며 목백(穆伯)의 처 경강(敬姜)이다. 문백이 궁정 조회를 마치고 돌아오니 그 어머니가 길쌈을 하는 것을 보고 말하되, “촉(歜, 높은 벼슬) 집안의 어머님이 어찌 삼을 쌓는 일을 하십니까?” 하니, 어머니가 탄식하여 말하되, “노나라가 망하려는가? 어린 아이를 경으로 삼으니 대도를 듣지 못했구나 사람이 일을 하면 생각이 선해지고 놀면 생각이 나쁜 쪽으로 흐르니, 이제 네가 경이 되어 수고로움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나의 여자의 직분에 충실함을 이상하게 여기니, 나는 노나라가 장차 망하고 목백의 제사가 폐할까 두려워 하노라.” 하였다. 이 일은 『춘추전』에 실려있다.】 『시경』 「갈담(葛覃)」과 「권이(卷耳)」에는 제후의 후비가 어질고 수고로웠음을 시로 읊었고, 「채번」과 「채빈」은 부인의 공경과 검소함을 시로 지었다.
【◯ 「주남·갈담」의 시에 후비가 칡넝쿨을 채집하여 몸소 갈포를 만들어 의복을 만들었다고 하고, 「주남·권이」의 시에 후비 권이를 캐어서 종묘 제를 제공했다고 하니, 다 후비의 공손하고 검약한 태도를 서술한 것이다. 〇 「소남·채번」의 시는 부인이 귀한 자리에 있으면서도 부지러한 자세로 일관한 것을 아름답게 여겼고, 「채빈」의 시는 대부(大夫)의 처로써 공경하고 절검(節儉)하여 종가의 제사일에 부지런함을 아름답게 여겼다.】 『시경』 「칠월」의 시에는 그 절반이 여자의 직분을 말하였다. 「오희(五噫)」의 노래는 실로 그 아내의 현명함에 힘을 입었다고 하였으며,
【◯ 「빈풍·칠월」의 시는 대갓집의 귀한 여자가 수고로운 노동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농사와 양잠일을 하였다고 한다. 〇 한나라 양홍(梁鴻) 주028) 양홍(梁鴻): 한나라 사람으로, 자는 백란(伯鸞)이며 후한(後漢) 초기 장제(章帝) 시대의 은사(隱士)임. 「오희(五噫)」의 노래를 부르며 세상을 피하여 처 맹광(孟光)과 함께 오나라로 들어가 부부의 예를 갖추며 살았다고 한다.
은 처 맹광 주029) 맹광(孟光): 양홍(梁鴻)의 처. 부부는 사람들의 쌀을 빻아주는 일로 밥벌이를 하였다. 처 맹광은 때마다 밥상을 눈썹의 높이에 맞추어 무릎을 꿇고서 양홍에게 바쳤다. 마을의 부호 맹씨의 딸인 소문난 추녀였는데 양홍이 아내로 맞이하였다고 한다. 남편을 예로서 섬겼으며, 남편에게 밥상을 줄 때 눈길을 아래로 내리고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올려 건넸다고 한다. 『후한서』 권83, 「속열녀전」, 『고금열녀전』 등에 보이며 우리나라에도 널리 전해진 이야기이다.
과 함께 오(吳)나라에 들어가서 세상을 피할 때 「오희」의 노래를 지었다.】 진중자(陣仲子)는 삼공의 귀한 벼슬을 사양하고 몸소 신을 짰고, 아내는 베를 짰다고 하며, 환소군(桓少君)은 만 관이나 되는 재물을 물리치고 자기가 작은 수레를 당기고 끌어 와서는 스스로 나가서 물을 길렀다.
【◯ 노(纑)는 무명실에 풀을 매겨 끈으로 묶고 삼을 엮어서 실을 만든다는 말이다. 제나라 임금이 진중자를 재상으로 삼고 싶어했으나 받아들이지 않고 능에 피하여, 그 처는 노를 꼬고 몸은 짚신을 만들어 밥벌이를 하였다. 〇 환소군은 한나라 포선(鮑宣)의 처다. 처음 시집갈 때 재물이 아주 많았지만 포선이 기뻐하지 아니하고 말하되, “소군은 부유한데서 태어나서 가난하고 천한 집으로 시집을 와야 하니 내 감히 감당하지 못하겠다.”라고 하니, 처가 말하되, “제 아버지께서는 선생이 덕을 닦으며 검소함을 지키므로 첩으로 하여금 군자를 섬기게 하였는지라 오직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하였다. 이에 그 노복과 화려한 옷과 장식을 돌려보내고, 거친 베옷을 입고 남편과 함께 작은(사슴이 끄는) 수레로 시집으로 돌아와 시부모에게 절하기를 마친 후에 곧 물동이를 들고 나가 물을 길었다.】 이 모두가 몸소 근면하게 근로하고 몸소 절약과 근검함을 실행하여 그 꽃다운 기림을 시서(詩書)에 드날린 어진 이름으로 역사책에 전파시킨 이들이니, 그 또한 힘쓸 것이다.
Ⓒ 역자 | 이상규 / 2014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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