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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 원서(女誡原序)


여계원서1ㄱ

女녀誡계原원序셔
鄙비人인이 愚우暗암야 受슈性셩이 不블敏민나 蒙몽先션君군之지餘여寵툥며 頼뇌母모師之지典뎐訓훈야 年년이 十십有유四애 執집箕긔帚于우曹조氏시야 今금四十십餘여載矣의라 戰젼戰젼兢긍兢긍야 常샹懼구黜튤辱욕야 以이增증父부母모之지羞슈며 以이益익中듕外외之지累누 是시以이로 夙슉夜야애 劬구心심야 勤근不

여계원서1ㄴ

블告고勞노ㅣ러니 而이今금而이後후에아 乃내知디免면耳이로라 吾오性셩이 疏소愚우야 敎교導도ㅣ 無무素소 恒恐공子穀곡이 負부辱욕淸쳥朝됴러니 聖셩恩은이 橫횡加가샤 猥외賜金금紫시니 實실非비鄙비人인의 庶셔幾긔所소望망也야ㅣ라 男남能능自謨모矣의ㄹ 吾오不블復부以이爲위憂우ㅣ어니와 但단傷샹諸졔女녀ㅣ 方방當당適뎍人인호 而이不블漸졈加가訓훈誨회야 不

여계원서2ㄱ

블聞문婦부禮례니 懼구失실容용他타門문야 取恥티宗종族족노라 吾오今금疾질在沈팀滯톄니 性셩命명이 無무常샹일 念념汝여曹조의 如여此야 每用용惆툐悵턍야 因인作작女녀誡계七칠篇편노니 願원諸졔女녀 各각寫샤一일通통야 庶셔有유補보益익야 俾비助조汝여身신이니라 去거矣의어다 其기勗욱勉면之지라 【◯ 惆툐悵턍은 근심단 말이라】
Ⓒ 필자 | 반소(중국-후한) / 1737년(영조 13)

鄙비人인 주001)
비인(鄙人):
시골사람. 여기서는 이 『여계』를 지은 반소(班昭)가 자신을 낮추어 이른 말이다. 반소는 조세숙(曹世叔)의 아내였는데, 후한의 화희등(和熹鄧) 태후가 그 지조와 절개를 아름답게 여겨서 궁에 불러 들여서 여성들의 스승으로 삼고, 존칭으로 태고(大家)라 부르고, 황후와 및 모든 귀인이 모두 스승으로 섬겼다고 한다. 그래서 ‘조태고’라 하는 것이다.
愚우暗암야 주002)
우암(愚暗)야:
사리에 밝지 못하고 우둔하여.
텬셩 주003)
텬셩:
천성(天性). ‘텬성〉천성’ ㄷ-구개음화. 한자음은 보수적이어서 ㄷ-구개음화에 적용되지 않았다.
바듬

여계원서2ㄴ

이 敏민티 몯나 先션君군 주004)
선군(先君):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곧 반소의 아버지 반표(班彪, 3~54)를 가리킴.
의 나믄 寵툥을 닙으며 母모師 주005)
모사(母師):
어머니와 스승.
법다온 주006)
법다온:
법다운. ‘법(法)-+-답(형용사접사)-은(관형어미)’의 구성.
訓훈을 힘 니버 나히 열히오  네 주007)
나히 열히오  네:
나이 열넷에. 열네 살에.
箕긔帚 주008)
기추(箕帚):
쓰레받기와 빗자루. 곧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한 가정의 집안일을 담당하는 여자를 비유한 말이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에 ‘부(婦)’자는 변(偏) ‘여(女)’와 방(旁) ‘추(帚)’의 결합으로 “집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이” 곧 가정의 부녀자를 상징한다고 하였다. 중국 고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말이다.
曹조氏시 주009)
조씨(曺氏):
후한 때 평양 사람 조세숙(曺世叔). 『여계』를 지은 반소(班昭)의 남편.
에 잡아 이 四十십餘여載라 주010)
여재(餘載)라:
여년(餘年)이라.
戰젼戰젼며 兢긍兢긍야 주011)
전전(戰戰)며 긍긍(兢兢)야:
전전긍긍(戰戰兢兢)하여. 매우 두려워하여서 벌벌 떨며 조심하여. 『시경』의 소아 「소민편」에서 나온 말이다.
양 黜튤辱욕야 주012)
출욕(黜辱)야:
욕이 됨을 떨쳐서. ‘-어(연결어미)서’를 ‘-야’로 표기함.
父부母모의 붇러오믈 더으며 中듕外외의 흔 누 주013)
흔 누:
헌 누를. ‘흘[毁]-+-으(삽입모음)-+-ㄴ(관형사형)#누(累)-+-’의 구성.
더을가 두릴 주014)
두릴:
두리[懼]-+-ㄹ(관형사형)+(이유, 원인의 구속형어미)의 구성. 두려워함으로써.
일노 주015)
일노:
이로써. 18~19세기 표기의 특징으로 ‘ ㅇ+ㄹ〉ㄹ+ㄴ’로 표기됨.
夙슉夜야애 주016)
숙야(夙夜)애:
새벽이나 늦은 밤에.
을 구로야 주017)
구로야:
구로(劬勞)하여. 수고롭게 노력하여.
부즈런야도 슈고로옴을 告고티 아니 더니 이 주018)
이:
이제는. ‘이[今]-+-ㄴ(관형사형)(보조사)’의 구성. “而今而後에아 乃知免耳이로라”의 대목으로 “이제야 그런 근심과 노력에서 벗어났음을 알게 되었다.”라는 뜻이다. 증자가 임종 전에 제자들에게 한 말로 『논어』 「태백」에 “이제야 〈삶의 굴레에서〉 벗어남을 알겠구나. 제군들아[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라는 말과 같다. 증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매 순간순간 깊은 연못가에 다다른 듯, 엷은 얼음을 밟는 듯한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이제 그 긴장에서 벗어났음을 말한 것이다. 반소가 증자의 말을 빌어쓴 대목이다.

여계원서3ㄱ

후에야 주019)
후에야:
지나가서야. ‘후(後)-+-에(처격조사)-+-야(강세첨사)’의 구성.
이예 免면홈을 알괘라 주020)
알괘라:
알겠도다. ‘알[知]-+-괘라’의 구성. ‘-과라’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뒤에 붙어서 주로 일인칭 주어와 함께 쓰였다. ¶圍繞 도 보고 다 장 깃거 녜 업던 이 얻과라 더니〈석상 19:40〉.  房 딕 비 야 오  얻과라 깃거 더니〈월석 7:9〉. 얼구리 이제 이 니 나 가거나 믈러오거나 호 길 녀 뇨매 리과라〈두시-초 6:53〉. 赤甲애 사롤  占卜야 올마 사로미 새로외니 巫山과 楚水ㅅ 보 두 번 보과라〈두시-초 7:13〉.
내 텬셩이 䟽소愚우야 주021)
소우(䟽愚)야:
성기고 우매하여.
敎교導도홈이 본 업 샹 주022)
샹:
늘.
아 穀곡 주023)
곡(穀):
자곡(子穀). 반소(班昭)의 아들인 조성(曺成)의 자이다. 그는 태산군(太山郡)의 제(齊)나라에 봉해진 유수(劉壽)의 제상으로 임명되었다.
淸쳥朝됴에 주024)
청조(淸朝)에:
깨끗한 정사를 펼치는 조정에.
辱욕을 질가 주025)
질가:
지게 할까. 끼칠까. ‘지[負]-+-ㄹ(관형사형)가(의문형어미)’의 구성.
저허더니 주026)
저허더니:
두려워하더니. ‘저허[懼]-+#-+-더(과거회상)-+-니(연결형어미)’의 구성.
聖셩恩은이 그 주027)
그:
그릇. 잘못.
더으샤 외람히 金금紫 주028)
금자(金紫):
금으로 만든 도장과 자주빛으로 만든 인끈. 곧 높은 벼슬아치를 이르는 말.
을 주시니 실노 鄙비人인의 거의 주029)
거의:
어느 한도에 매우 가까운 정도로. 현대국어에서는 부정 서술어와 호응되지 않는다.
라던 배 아니라 아은 능히 스로  일 주030)
일:
이므로. ‘이[是]-+-ㄹ(관형사형)+’의 구성.
다시 주031)
다시:
다시곰. 다시금.
근심디 아니거니와 다만 슬허노니 주032)
슬허노니:
슬퍼하노니.
모 이 야흐로 사의게 가기 當당야시되 졈졈 訓훈

여계원서3ㄴ

誨회 더으디 몯야 계집의 禮례 듣디 몯니 다 가문애 용의 주033)
용의:
용의(用意)를. 어떤 일을 하려고 뜻을 세우거나 마음을 먹음을. 몸을 가지는 태도를.
일허 宗종族족의게 붇러옴을 가 두려노라 내 이 병이 沈팀滯톄홈애 주034)
침체(沈滯)홈애:
점점 더 깊어짐에.
이시니 性셩命명이 덛덛홈이 업릴 주035)
업릴:
없을 것이므로. ‘없[無]-+-(삽입모음)-+-ㄹ(관형사형)-+#ㅣ(의존명사)-+-ㄹ(관형형어미)’의 구성.
너희 무리의 이  줄을 념녀야 양  惆툐悵턍야 주036)
추창(惆悵)야:
매우 실망하거나 낙담하여. 근심하여. ‘툐탕〉추창’.
因인야 女녀誡계 七칠篇편을 짓노니 원컨대 諸뎨女녀 각각 一일通통을 주037)
일통(一通)을:
한 통으로서.
 거의 補보益익홈이 주038)
보익(補益)홈이:
보태어 도움됨이.
이셔 여곰 네 몸을 돕게 

여계원서4ㄱ

디니라 갈디어다 주039)
갈디어다:
가겠다. 원문 ‘거의(去矣)’를 언해한 말이다.
힘써 라 주040)
힘써 라:
힘을 써 열심히 하라.
Ⓒ 언해 | 이덕수 / 1737년(영조 13)

『여계』의 본디 서문
나는 어리석고 어둔하고 타고난 성품이 민첩하지 못하나, 돌아가신 아버님의 남은 사랑을 받고 어머니와 스승의 가르침에 힘입어, 나이 열네 살 때 조씨에게 시집을 가서 지금 40여 년이 되었다. 전전긍긍하며 쫓겨나는 욕을 볼까 걱정하며, 부모에게 부끄러움을 더하고 중외
(시가와 친정)
에 누를 끼칠까 항상 두려워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아침저녁에 마음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일하며, 수고로움을 말하지 않았는데, 지금에야 그런 근심에서 모면하게 되었다. 나는 성품이 막혀 있고 어리석어 가르치고 인도함에 성실치 못하여 항상 아들 자곡
(子穀, 조성(曹成)의 자. 태산국 제국에 봉해져 유수의 재상을 지냄)
이 신성한 조정에 욕을 끼칠까 염려하였더니, 임금의 은덕이 크게 더해서 외람되게 금자의 높은 벼슬을 내리시니 실로 내가 바랄 바가 아니었다. 이제 아들은 능히 스스로 일을 도모할 수 있으므로 내 또한 근심할 일이 아니지만, 다만 가슴이 아픈 것은 모든 여자
(딸들)
가 바야흐로 〈다른 가문에〉 시집을 가게 되어도 훈계의 가르침을 더 가하지 않아서 부녀자의 예를 듣지 못하니 다른 가문에 용의
(체면)
를 잃어 종족에게 부끄러움을 갖게 할까 두려운 것이다. 나는 지금 병이 깊이 들었으니 사람의 목숨이란 덧없는 것이라서 너희들이 이와 같이 늘 근심하고 걱정할 것을 생각하여 『여계』 7편을 지었으니, 원컨대 여러 여자들은 각각 한 편씩 베껴서 가지면 거의 보탬이 있어 너희 몸가짐을 도울 것이다. 가겠노라. 그것을 더욱 부지런히 힘쓰도록 하라. 【◯ 추창(惆悵)은 근심한다는 말이다.】
Ⓒ 역자 | 이상규 / 2014년 1월 15일

원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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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비인(鄙人):시골사람. 여기서는 이 『여계』를 지은 반소(班昭)가 자신을 낮추어 이른 말이다. 반소는 조세숙(曹世叔)의 아내였는데, 후한의 화희등(和熹鄧) 태후가 그 지조와 절개를 아름답게 여겨서 궁에 불러 들여서 여성들의 스승으로 삼고, 존칭으로 태고(大家)라 부르고, 황후와 및 모든 귀인이 모두 스승으로 섬겼다고 한다. 그래서 ‘조태고’라 하는 것이다.
주002)
우암(愚暗)야:사리에 밝지 못하고 우둔하여.
주003)
텬셩:천성(天性). ‘텬성〉천성’ ㄷ-구개음화. 한자음은 보수적이어서 ㄷ-구개음화에 적용되지 않았다.
주004)
선군(先君):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곧 반소의 아버지 반표(班彪, 3~54)를 가리킴.
주005)
모사(母師):어머니와 스승.
주006)
법다온:법다운. ‘법(法)-+-답(형용사접사)-은(관형어미)’의 구성.
주007)
나히 열히오  네:나이 열넷에. 열네 살에.
주008)
기추(箕帚):쓰레받기와 빗자루. 곧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한 가정의 집안일을 담당하는 여자를 비유한 말이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에 ‘부(婦)’자는 변(偏) ‘여(女)’와 방(旁) ‘추(帚)’의 결합으로 “집에서 청소를 담당하는 이” 곧 가정의 부녀자를 상징한다고 하였다. 중국 고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반영된 말이다.
주009)
조씨(曺氏):후한 때 평양 사람 조세숙(曺世叔). 『여계』를 지은 반소(班昭)의 남편.
주010)
여재(餘載)라:여년(餘年)이라.
주011)
전전(戰戰)며 긍긍(兢兢)야:전전긍긍(戰戰兢兢)하여. 매우 두려워하여서 벌벌 떨며 조심하여. 『시경』의 소아 「소민편」에서 나온 말이다.
주012)
출욕(黜辱)야:욕이 됨을 떨쳐서. ‘-어(연결어미)서’를 ‘-야’로 표기함.
주013)
흔 누:헌 누를. ‘흘[毁]-+-으(삽입모음)-+-ㄴ(관형사형)#누(累)-+-’의 구성.
주014)
두릴:두리[懼]-+-ㄹ(관형사형)+(이유, 원인의 구속형어미)의 구성. 두려워함으로써.
주015)
일노:이로써. 18~19세기 표기의 특징으로 ‘ ㅇ+ㄹ〉ㄹ+ㄴ’로 표기됨.
주016)
숙야(夙夜)애:새벽이나 늦은 밤에.
주017)
구로야:구로(劬勞)하여. 수고롭게 노력하여.
주018)
이:이제는. ‘이[今]-+-ㄴ(관형사형)(보조사)’의 구성. “而今而後에아 乃知免耳이로라”의 대목으로 “이제야 그런 근심과 노력에서 벗어났음을 알게 되었다.”라는 뜻이다. 증자가 임종 전에 제자들에게 한 말로 『논어』 「태백」에 “이제야 〈삶의 굴레에서〉 벗어남을 알겠구나. 제군들아[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라는 말과 같다. 증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매 순간순간 깊은 연못가에 다다른 듯, 엷은 얼음을 밟는 듯한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이제 그 긴장에서 벗어났음을 말한 것이다. 반소가 증자의 말을 빌어쓴 대목이다.
주019)
후에야:지나가서야. ‘후(後)-+-에(처격조사)-+-야(강세첨사)’의 구성.
주020)
알괘라:알겠도다. ‘알[知]-+-괘라’의 구성. ‘-과라’는 동사나 형용사 어간 뒤에 붙어서 주로 일인칭 주어와 함께 쓰였다. ¶圍繞 도 보고 다 장 깃거 녜 업던 이 얻과라 더니〈석상 19:40〉.  房 딕 비 야 오  얻과라 깃거 더니〈월석 7:9〉. 얼구리 이제 이 니 나 가거나 믈러오거나 호 길 녀 뇨매 리과라〈두시-초 6:53〉. 赤甲애 사롤  占卜야 올마 사로미 새로외니 巫山과 楚水ㅅ 보 두 번 보과라〈두시-초 7:13〉.
주021)
소우(䟽愚)야:성기고 우매하여.
주022)
샹:늘.
주023)
곡(穀):자곡(子穀). 반소(班昭)의 아들인 조성(曺成)의 자이다. 그는 태산군(太山郡)의 제(齊)나라에 봉해진 유수(劉壽)의 제상으로 임명되었다.
주024)
청조(淸朝)에:깨끗한 정사를 펼치는 조정에.
주025)
질가:지게 할까. 끼칠까. ‘지[負]-+-ㄹ(관형사형)가(의문형어미)’의 구성.
주026)
저허더니:두려워하더니. ‘저허[懼]-+#-+-더(과거회상)-+-니(연결형어미)’의 구성.
주027)
그:그릇. 잘못.
주028)
금자(金紫):금으로 만든 도장과 자주빛으로 만든 인끈. 곧 높은 벼슬아치를 이르는 말.
주029)
거의:어느 한도에 매우 가까운 정도로. 현대국어에서는 부정 서술어와 호응되지 않는다.
주030)
일:이므로. ‘이[是]-+-ㄹ(관형사형)+’의 구성.
주031)
다시:다시곰. 다시금.
주032)
슬허노니:슬퍼하노니.
주033)
용의:용의(用意)를. 어떤 일을 하려고 뜻을 세우거나 마음을 먹음을. 몸을 가지는 태도를.
주034)
침체(沈滯)홈애:점점 더 깊어짐에.
주035)
업릴:없을 것이므로. ‘없[無]-+-(삽입모음)-+-ㄹ(관형사형)-+#ㅣ(의존명사)-+-ㄹ(관형형어미)’의 구성.
주036)
추창(惆悵)야:매우 실망하거나 낙담하여. 근심하여. ‘툐탕〉추창’.
주037)
일통(一通)을:한 통으로서.
주038)
보익(補益)홈이:보태어 도움됨이.
주039)
갈디어다:가겠다. 원문 ‘거의(去矣)’를 언해한 말이다.
주040)
힘써 라:힘을 써 열심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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