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당書셔列녈傳뎐
【宋송若약昭쇼 주001) 송약소(宋若昭): 중국 패주 사람 송정분(宋廷棻)의 둘째 딸. 아버지가 학문을 좋아하였는데 다섯 딸 즉 약화(若華)와 약소(若昭)와 약윤(若倫)과 약헌(若憲)과 약순(若筍)이 모두 지혜롭고 글을 잘 하였다고 한다.
貝패州쥬 주002) 패주(貝州): 현재 중국 허베이성(何北省) 청하현(清河縣)의 옛이름.
사이라 아비 棻분이 學을 됴하더니 五오女녀 나흐니 若약華화와 若약昭쇼와 若약倫뉸과 若약憲헌과 若약荀슌이니 다 慧혜美미고 주003) 글을 능히 더라 若약昭쇼ㅣ 文문詞ㅣ 高고潔결야 사의게 도라가기 원티 아니고 文문學으로 셰샹의 일홈나고져 더니 若약華화ㅣ 女녀論논語어을 지어 若약昭쇼ㅣ 申신釋셕니라 德덕宗종 貞뎡元원 주004) 덕종(德宗) 정원(貞元): 당나라 덕종의 연호가 정원(785년~804년)임.
中듕에 盧노龍룡節졀度도使 李니抱포眞진 주005) 이 그 조을 表표야 詔죠書셔야 禁금中듕에 드러와 文문章쟝을 시험고 經경史 의논니 다 稱칭旨지더라 주006) 帝뎨 양 주007) 양: ‘(每常)〉’. 중국어 차용어이다. ‘〉양〉매양’.
羣군臣신으로 주008) 더여논어1ㄴ
브러 賡和화실 주009) 五오女녀ㅣ 다 참예야 주010) 로 주011) 로: 자로[頻]. 자주. 중세어에서는 ‘로’와 ‘조’가 있었다. ‘[頻]-+-오(부사화접사)’의 구성. ‘조’는 ‘조〉자조〉자주’의 변화 과정을 거쳐 현대어에 이르고 있다.
賞샹 주시믈 닙고 姊妹 다 恩은幸을 닙으되 홀노 주012) 홀노: 홀로[獨]. ‘-〉홀-+-로(부사화접사)’의 구성. ‘로’는 15세기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올-’’이 되는데, 여기에 ‘-로’가 결합한 것이 ‘올로’이다.
若약昭쇼ㅣ 禁금院원 주013) 금원(禁院): 금지된 곳. 곧 궁궐을 말한다. 궁궐 내에서 여성만 기거하는 곳임.
에 잇기 원고 上샹寵툥을 주014) 라디 아니야 샹 주015) 曹조大태家고 주016) 태고(大家): 조태고(曹大家). 이 책의 1권 『여계』를 지은 저자 반소를 가리킨다.
로 스로 評평니 帝뎨 그 을 알옴다이 주017) 알옴다이: ‘아-+-(형용사화접사)-+-이(부사화접사)’의 구성. 18세기에는 ‘아롬답다’도 보이는데, 이는 ‘아답다’의 제2음절 모음 ‘ㆍ’가 ‘ㅗ’로 변한 어형이다.
너기샤 女녀學士ㅣ라 일라 內職딕을 拜여 六뉵宮궁文문學 주018) 육궁문학(六宮文學): 육궁(六宮)은 옛 중국의 궁중에 있었던 황후의 궁전과 부인 이하의 다섯 궁실을 말하는 것으로서, 궁실의 여성문학을 말한다.
을 음 주019) 알게 고 兼겸야 모 皇황子와 公공主쥬 치게 시니다 師禮례로 주020) 셤기고 일홈야 宮궁師ㅣ라 다 寶보曆녁中듕 주021) 보력중(寶歷中): 당나라 덕종, 순종, 헌종, 목종, 경종 등 5대를 거쳐.
에 卒졸니 梁냥國국夫부人인 주022) 양국부인(梁國夫人): 송약소가 죽은 뒤 추증한 작호.
을 튜증다 주023) 】
Ⓒ 언해 | 이덕수 / 1737년(영조 13)
송약소의 「여논어」 주024) 송약소여논어(宋若昭女論語): 중국 여성들의 교과서로서 송약소가 지은 책.
당서 열전(唐書列傳) 주025) 당서열전(唐書列傳): 『여논어(女論語)』 서전(序傳)과 입신(立身), 학작(學作), 학례(學禮), 조기(早起), 사부모(事父母), 사구고(事舅姑), 사부(事夫), 훈남녀(訓男女), 영가(營家), 대객(待客), 화유(和柔), 수절(守節)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음.
【송약소는 패주 사람이다. 아버지 송정분(宋廷棻)이 학문을 좋아하였는데 다섯 딸을 낳으니 약화(若華)와 약소(若昭)와 약윤(若倫)과 약헌(若憲)과 약순(若筍)이다. 다 지혜롭고 아름답고 글을 잘하였다. 약소는 문사가 고결하여 사람에게 돌아가기(시집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문학으로서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자 하였는데, 약화가 『여논어』를 짓자 약소가 거듭 풀이하여 지었다. 덕종(德宗) 정원(貞元) 연간에 노룡(盧龍) 절도사 이포정(李抱貞)이 그 재주를 표문으로 올리자 〈덕종은〉 조서를 내려 궁중에 들어와서 문장을 시험하고 경서와 사서를 의논하였더니 보고 모두 칭찬하더라. 황제가 늘 조신들과 더불어 시가를 화답하였는데, 다섯 딸이 모두 참여하여 자주 상을 주심에 자매 모두 은총을 입었으되 약소가 홀로 궁원에 있기를 원하고 임금의 총애를 바라지 아니하여, 스스로 한나라 조태고(曹大家)처럼 처신하니 황제가 그 뜻을 아름답게 여겨서 여학사라 일컬어 내직(상궁)을 제수하여 육궁(六宮)의 문학(文學)을 맡게 하고, 겸하여 모든 왕자(황자)와 공주를 가르치게 하셨다. 모두 그를 스승의 예로서 섬기고 이름하여 궁사(宮師)라 하였다. 송약소는 보력 연중에 죽었는데 나라에서는 양국부인(梁國夫人)의 관작으로 추증하였다.】
Ⓒ 역자 | 이상규 / 2014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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