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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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종무에게 보인다[又示宗武]


又示宗武 주001)
우시종무(又示宗武)
또 종무에게 보인다. 대력(大曆) 3년(768) 원단에 두보는 ‘원일시종무(元日示宗武)’라는 시를 지었는데, 이 시는 그 이후 거의 같은 시기에 지은 것으로 본다. 작품 전체를 통하여 오로지 아들을 훈육하는 뜻을 기술하고 있다. 아들 종무(宗武)에게 뜻을 세우고, 선현들의 효(孝)와 문학을 본받을 것을 독려하고 있다. 그 가운데 두보의 교육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우시종무
(또 종무에게 보인다)

覓句新知律 攤書解滿床【攤 手布也ㅣ라】

긄句 주002)
긄구(句)
글[文, 詩]+ㅅ(관형격 조사)#구(句)+(대격 조사). 글귀를. 싯구를. ‘글귀’를 ‘싯구’로도 해석하는 것은 뒤에 오는 ‘음율(音律)’ 때문이다. ‘음율’을 가진 것은 적어도 운문이고, 나아가 싯구이기 때문이다. ¶글 지메 氣象 화 주니 됴 긄 句 디 아니니아(글 지음에 기상을 나누어 주니 좋은 글귀는 잦지 않는 것인가?)〈두시(초) 15:25ㄴ〉.
어더 주003)
어더
얻[得, 覓]-+-어(연결 어미). 얻어. 찾아.
音律을 주004)
음률(音律)을
음률(音律)+을(대격 조사). 음률을.
새려 주005)
새려
새로. ¶몰애 웃 플 니윤 지븨 버드리 새려 어드웻고 城ㅅ  햇 모새 蓮ㅅ 고지 븕고져 놋다(모래 위의 풀 이은 집에 버들이 새로 어두워 있고, 성의 주변 들의 못에는 연꽃이 붉으려 하는구나.)〈두시(초) 10:18ㄴ〉.
알오 주006)
알오
알[知]-+-고(연결 어미). 알고. 어미 ‘-고’의 ‘ㄱ’이 탈락한 것이다.
書冊 헤텨 주007)
헤텨
헤티[攤(탄, 펴다)]-+-어(연결 어미). 헤치어. 펼치어. ¶거믄고와 글월왜  燭ㅅ브레 헤텻니 긴 바 비르서 참 직도다(거문고와 책이 밝은 촛불에 헤쳐 있나니 긴 밤을 비로소 마침 직하도다)〈두시(초) 11:43ㄴ〉.
床애 기 주008)
기
[滿]+-(형용사 파생 접미사)-+-이(부사 파생 접미사). 가득히.
호 주009)
호
[爲]-+-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대격 조사). 함을. 하는 것을.
아다 주010)
아다
알[知]-+-(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다(어말 어미). 안다.

【한자음】 멱구신지률 탄서해만상【탄(攤)은 손으로 〈책 같은 것을〉 펴는 것이다.】
【언해역】 글귀를 얻어 음률을 새로 알고, 책을 펼치어 상에 가득히 하는 것을 안다.

試吟靑玉案 莫帶紫羅囊【古詩에 美人이 贈我錦繡段니 何以報之오 靑玉案 주011)
청옥안(靑玉案)
옛시[古詩]를 가리킴. 청옥안(青玉案)은 동한(東漢) 장형(張衡)의 『사수시(四愁詩)』에 나오는 말로, ‘보고싶은 미인은 안문땅에 사는데 가보고 싶어도 눈이 내려 못 가고 북쪽만 바라보며 눈물 흘리네. 미인은 내게 비단신발을 보내줬는데, 나는 가진 청옥상을 보내어 보답할 길이 없네. 길 멀어 못 가고 탄식만 하면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괴로워하네.[我所思兮在雁门 欲往从之雪雰雰 侧身北望涕沾巾 美人赠我锦绣段 何以报之青玉案 路远莫致倚增叹 何为怀忧心烦惋]’와 같은 싯구가 있는데, 이것이 전고가 되어, ‘청옥안’이 ‘회답하는 시’, ‘옛 시’를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문맥상 고시(古詩)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이로다 謝玄이 好佩紫羅香囊이어 叔父安 주012)
숙부안(叔父安)
작은아버지 사안(謝安). 중국 동진(東晉)의 유명한 재상. 자 안석(安石). 조카 사현(謝玄)이 호사함을 좋아하여 붉은 비단으로 된 향주머니를 차고 있음을 보고, 현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내기를 하여 그것을 손에 넣은 뒤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이 賭取焚之니 此 言宗武ㅣ 當好詩文이오 勿尙華侈也ㅣ라】

靑玉案 비르서 주013)
비르서
비로소. 시 원문의 ‘시(試)’를 언해한 말로는 잘못된 풀이다. ‘시험삼아, 자주’의 뜻으로 풀이하여야 할 듯하다.
입곡 주014)
입곡
입[吟]-+-고(연결 어미)+ㄱ(보조사). 읊고. ¶나조 빗기 자바 부 뎟소리 됴니 믈 아래셔  龍도 입놋다(녁에 비스듬히(가로로) 잡아 부는 피리소리 좋으니 물 아래서 또 용이 읊는도다.)〈두시(초) 15:54ㄱ〉.
블근 노 주015)
블근 노
븕[赤, 紫]-+-으(조음소)-+-ㄴ(관형사형 어미)#노[羅]. 붉은 비단.
란 주016)
란
[囊]+란(보조사). 주머니일랑. ¶ 덥단 업게 호 굽슬   두 을 블근  녀허 남지 왼녀긔 고 겨지븐 올녀긔 라(또 전염성 열병(염병)을 없게 하되(하려면), 말굽을 가지고 만든 가루 두 냥을 붉은 주머니에 넣어, 남자는 왼쪽에 차고, 여자는 오른쪽에 차라.)〈온역 5ㄴ〉.
디 주017)
디
[帶]-+-디(연결 어미). 차지. ¶구룸  뫼히 마 興을 베프거늘 玉  사미 지즈로 놀애 블로 當얏도다(구름 낀 산이 이미 흥(興)을 베풀거늘 옥(玉) 찬 사람(술 권하며 노래하는 기생)이 드디어 노래 부르는 것을 당하여 있도다.)〈두시(초) 14:32ㄴ〉.
말라

【한자음】 시음청옥안 막대자라낭【고시(古詩)에, ‘미인이 나에게 수놓은 비단신발을 보내 주었는데 나는 어떻게 청옥안을 보내 보답하리오?’ 하였고, 사현(謝玄)이 붉은 비단 주머니를 차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숙부 사안(謝安)이 그것을 재미난 내기를 하여 손에 넣어 불태웠다 하니, 이는 종무가 당연히 시문을 좋아하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것을 숭상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청옥안을(옛시를) 비로소 읊고, 붉은 비단 주머니일랑은 차지 말아라.

假日從時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50ㄱ

飮 明年共我長

쉬 나래 주018)
쉬 나래
쉬[休]-+-(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날[日]+애(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 쉬는 날에.
時節 조차 주019)
시절(時節) 조차
시절(時節)+(대격 조사)#좇[從]-+-아(연결 어미). 시절을 좇아. 시의(時宜)에 맞추어. 적합한 때를 좇아. 적합한 때를 따라.
먹노소니 주020)
먹노소니
먹[食, 飮]-+-(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소니(연결 어미). 먹으니. ‘-노소니’를 하나의 연결 어미로 취급하기도 한다. ‘-소-’를 확인성의 인식 양태 선어말 어미로 분석할 수도 있다.
오 옌 주021)
오 옌
오[來]-+-(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年]+예(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ㄴ(보조사). 오는 해에는. 명년에는. 내년에는.
내 킈와 야 주022)
내 킈와 야
나[我[+(관형격 조사)#킈[長]+와(공동격 조사)#[爲]-+-y(조음소)-+-아(연결 어미). 나의 키와 하여. 나의 키와 더불어. 내 키와 함께. ¶草堂이 玄圃와 야 相亂니 崐崙ㅅ 뫼콰 限隔디 아니니라(초당(草堂)이 곤륜산 위의 신선이 산다는 현단(玄圃)과 더불어 서로 어지러우니 곤륜산과 경계가 막히지 않은 것이다.)〈두시(초) 15:3ㄱ〉.
다 주023)
다
같이. 더불어. ¶새 것 머구메 戰士 몬져 고 져근 것 다호 시내해 늘그게 밋게 도다(새 것 먹음에 전사(戰士)를 먼저 하고, 적은 것 함께하는 것을 시내해 늘그게 밋게 도다.)〈두시(초) 15:18ㄴ〉.
길리로다 주024)
길리로다
길[長]-+-ㄹ(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로다(감탄 어미). 길 것이로다. 클 것이로다. ‘-ㄹ(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를 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 ‘-리-’로 분석하는 것은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다가 福 바다 난 사미면 더욱 安樂며 목숨 길리라(만약 복을 받아 난 사람이면 더욱 안락하며 목숨 길 것이다.)〈월석 21:97ㄴ〉.

【한자음】 가일종시음 명년공아장
【언해역】 쉬는 날에 적합한 때를 따라 술을 먹으니, 내년에는 내 키와 함께 더불어 클 것이로다.

應須飽經術 已似愛文章

이 주025)
이
[堂堂]+-(형용사 파생 접미사)-+-이(부사 파생 접미사). 마땅히. 응당. ‘히'에서 ‘ᄒ'이 탈락하여 전체적으로 ‘--'가 탈락한 모습을 하고 있다.
모로매 주026)
모로매
모름지기.
經術 주027)
경술(經術)
경서(經書)에 관한 학문.
브르 주028)
브르
배불리. 배부르게. ¶病 모매 됴 마 虛히 호니 엇던 幸로 아히 브르 머글고(병든 몸에 좋은 맛을 헛되이 하니 어떤 행운으로 아이들이 배불리 먹을 것을 것인가?)〈두시(초) 15:56ㄱ〉.
호리니 주029)
호리니
[爲]-+-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ㄹ(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니(연결 어미). 하리니. 할 것이니. 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 ‘-리-’는 ‘-ㄹ(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를 재구조화한 것이다.
마 주030)
마
이미.
文章 주031)
문장(文章)
문장(文章)+(대격 조사). 문장을. 글을.
 주032)

[愛]+-(동사 파생 접미사)-+-(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사랑하는. 중세어의 ‘다’가 ‘생각하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어의 ‘사랑하다’와 같은 뜻을 가지기도 하였다. ¶온  恩惠왼 비츨 빌요믈 니부니  서리 肅殺ㅅ 氣運을 시름리아(사랑스러운 해의 은혜로운 빛을 빌리는 것을 입으니 맑은 서리의 엄혹한 추위의 기운을 시름할 것이겠느냐?)〈두시(초) 15:15ㄱ~ㄴ〉.
도다 주033)
도다
[如]+-(형용동사 파생 접미사)-+-도다(감탄 어미). 듯하도다.

【한자음】 응수포경술 이사애문장
【언해역】 마땅히 모름지기 경서에 관한 학문을 배불리 할 것이니, 이미 문장을 사랑하는 듯하도다.

十五男兒志 三千弟子行 曾參與游夏 達者得升堂【論語에 十有五而志于學이니라 史記에 孔子ㅅ 弟子ㅣ 三千이라 論語에 由也 升堂 주034)
승당(升堂)
집에 오르다. 학문이나 기예(技藝)가 이미 입문하였음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논어 선진편에는 공자가 이르기를, 유(由, 자로)가 집에는 올랐으나, 방에는 들지 못하였다고 하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집에 올랐다는 것에만 주의를 모으고 있다. #자로(子路) :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의 유학자(BC543~BC480).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로는 그의 자이다. 산동성(山東省) 출신으로, 공자(孔子)의 문하생이었다. 공자보다 9세 아래였고, 제자 중에서는 최연장자로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하나. 성미는 거칠었으나 꾸밈없고 소박한 인품으로 가르침을 받으면 실천에 옮기는 인물이었다. 정사(政事)에 뛰어났으며 공자를 제일 잘 섬겼다고 한다. 공자도 그를 매우 사랑한 듯하며, 〈논어〉에 그 친분이 잘 표현되어 있다. 뒤에 위(衛)나라에서 벼슬했는데, 내란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도의적 입장에서 전사(戰死)를 택하였다. 내란 소식을 들었을 때 공자는 그의 죽음을 예언하였다고 한다.〈두산백과 참조〉.
矣 라 니 喩入道다 此 望宗武 志學而如游夏之得升堂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열다새 주035)
열다새
열[十]#다[五]+애(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 열다섯에. 논어에 나오는 말로, 공자는 논어에서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 三十而立(삼시이립)’이라고 하고 있다. 15세에 배음에 뜻을 두고, 30에 섰다(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배우게 되는 경지)고 한다.
男兒 주036)
남아(男兒)
남아(男兒)+(관형격 조사). 남아의. 남자의.
과 주037)
과
[志]+과(접속 조사). 뜻과. ¶그를 이프며 안자셔 머리 도혀 라고 들 조차 葛巾을 기 노라(글을 읊으며 앉아서 머리를 돌려 바라보고 뜻을 좇아 갈건(葛巾)을 나직이 하노라.)〈두시(초) 15:17ㄴ〉.
三千 弟子ㅅ 行列에 주038)
삼천(三千) 제자(弟子)ㅅ 행렬(行列)에
3천 제자의 행렬에. 공자의 제자가 3천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한다. 〈사기〉에는 공자가 시(詩), 서(書), 예(禮), 악(樂)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 수가 대략 3천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曾參 주039)
증삼(曾參)
증자(曾子, BC 506~BC 436)의 이름.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유학자. 자는 자여 (子輿). 이름은 삼(參). 산둥성[山東省] 출생. 증점(曾點)의 아들이다. 공자의 고제(高弟)로 효심이 두텁고 내성궁행(內省躬行)에 힘썼으며, 노(魯)나라 지방에서 제자들의 교육에 주력하였다. 공자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나의 도는 하나로써 일관한다(吾道一以貫之)’고 말했을 때 다른 제자들은 그 말의 참뜻을 몰라 생각에 잠겼으나, 증자는 선뜻 ‘부자(夫子)의 도는 충서(忠恕)뿐’이라고 해설하여 다른 제자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증자의 사상은 효(孝)와 신(信)을 도덕행위의 근본으로 한다. 그는 공자의 도(道)를 계승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은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를 거쳐 맹자(孟子)에게 전해져 유교사상사(儒敎思想史)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子游 주040)
자유(子游)
춘추 시대 오(吳)나라 사람(BC506~?). 공자(孔子)의 제자로, 성은 언(言)이고, 이름은 언(偃). 자가 자유(子游)이다. 공자보다 45살 연하로, 20여세부터 관직 생활을 하였다. 무성(武城)의 재상이 되어 예악(禮樂)으로 정치를 펼쳤다.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하나. 안연(顔淵), 자하(子夏)와 함께 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였으며, 학문에 밝았다고 한다. 공자가 무성을 지나갈 때 현가(弦歌)를 듣고 기뻐하였다고 한다. 〈논어〉와 〈예기〉에 그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송나라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2년(1009) 단양공(丹陽公)에 추봉되었다.〈중국역대인명사전 참고〉.
子夏 주041)
자하(子夏)
중국 전국시대의 학자(BC507~BC420?). 성명은 복상(卜商). 산서성(山西省) 출생. 이에 대해서는 이설도 있다. 공자의 제자로 공문 10철(孔門十哲)의 하나. 공자가 죽은 뒤에 서하(西河)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으며, 위나라 문후(文侯)에게 초빙되어 스승이 되었다. 자하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여읜 아들의 죽음을 비통해하다가 실명(失明)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학문은 시와 예에 통하였으며, 주관적 내면성을 존중하는 증자(曾子) 등과 달리, 예(禮)의 객관적 형식을 존중하는 것이 특색이다.〈두산백과 참조〉.
시러곰 주042)
시러곰
싣[得]-+-어(연결 어미)+곰(보조사). 능히.
지븨 오니라 주043)
지븨 오니라
집[堂]+의(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오[升]-+-ㄴ(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라(어말 어미). 집에 오른 것이다. 도(道)에 들어선 것이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십오남아지 삼천제자행 증참여유하 달자득승당【논어에 15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고 한 것이다. 〈사기〉에 공자의 제자가 삼천이라 하였다. 논어에 자로(子路)는 집에 오르다 하니 도에 들어선 것을 비유한다. 이는 종무가 배움에 뜻을 두고 자유(子游), 자하(子夏)와 같이 집에 오르기를 바란 것이다.】
【언해역】 열다섯에 남아의 뜻과 3천 제자의 행렬에, 증삼(曾參)과 자유(子游), 자하(子夏)가 능히 집에 오른 것이다.
Ⓒ 역자 | 임홍빈 / 2016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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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우시종무(又示宗武) : 또 종무에게 보인다. 대력(大曆) 3년(768) 원단에 두보는 ‘원일시종무(元日示宗武)’라는 시를 지었는데, 이 시는 그 이후 거의 같은 시기에 지은 것으로 본다. 작품 전체를 통하여 오로지 아들을 훈육하는 뜻을 기술하고 있다. 아들 종무(宗武)에게 뜻을 세우고, 선현들의 효(孝)와 문학을 본받을 것을 독려하고 있다. 그 가운데 두보의 교육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주002)
긄구(句) : 글[文, 詩]+ㅅ(관형격 조사)#구(句)+(대격 조사). 글귀를. 싯구를. ‘글귀’를 ‘싯구’로도 해석하는 것은 뒤에 오는 ‘음율(音律)’ 때문이다. ‘음율’을 가진 것은 적어도 운문이고, 나아가 싯구이기 때문이다. ¶글 지메 氣象 화 주니 됴 긄 句 디 아니니아(글 지음에 기상을 나누어 주니 좋은 글귀는 잦지 않는 것인가?)〈두시(초) 15:25ㄴ〉.
주003)
어더 : 얻[得, 覓]-+-어(연결 어미). 얻어. 찾아.
주004)
음률(音律)을 : 음률(音律)+을(대격 조사). 음률을.
주005)
새려 : 새로. ¶몰애 웃 플 니윤 지븨 버드리 새려 어드웻고 城ㅅ  햇 모새 蓮ㅅ 고지 븕고져 놋다(모래 위의 풀 이은 집에 버들이 새로 어두워 있고, 성의 주변 들의 못에는 연꽃이 붉으려 하는구나.)〈두시(초) 10:18ㄴ〉.
주006)
알오 : 알[知]-+-고(연결 어미). 알고. 어미 ‘-고’의 ‘ㄱ’이 탈락한 것이다.
주007)
헤텨 : 헤티[攤(탄, 펴다)]-+-어(연결 어미). 헤치어. 펼치어. ¶거믄고와 글월왜  燭ㅅ브레 헤텻니 긴 바 비르서 참 직도다(거문고와 책이 밝은 촛불에 헤쳐 있나니 긴 밤을 비로소 마침 직하도다)〈두시(초) 11:43ㄴ〉.
주008)
기 : [滿]+-(형용사 파생 접미사)-+-이(부사 파생 접미사). 가득히.
주009)
호 : [爲]-+-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대격 조사). 함을. 하는 것을.
주010)
아다 : 알[知]-+-(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다(어말 어미). 안다.
주011)
청옥안(靑玉案) : 옛시[古詩]를 가리킴. 청옥안(青玉案)은 동한(東漢) 장형(張衡)의 『사수시(四愁詩)』에 나오는 말로, ‘보고싶은 미인은 안문땅에 사는데 가보고 싶어도 눈이 내려 못 가고 북쪽만 바라보며 눈물 흘리네. 미인은 내게 비단신발을 보내줬는데, 나는 가진 청옥상을 보내어 보답할 길이 없네. 길 멀어 못 가고 탄식만 하면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괴로워하네.[我所思兮在雁门 欲往从之雪雰雰 侧身北望涕沾巾 美人赠我锦绣段 何以报之青玉案 路远莫致倚增叹 何为怀忧心烦惋]’와 같은 싯구가 있는데, 이것이 전고가 되어, ‘청옥안’이 ‘회답하는 시’, ‘옛 시’를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문맥상 고시(古詩)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주012)
숙부안(叔父安) : 작은아버지 사안(謝安). 중국 동진(東晉)의 유명한 재상. 자 안석(安石). 조카 사현(謝玄)이 호사함을 좋아하여 붉은 비단으로 된 향주머니를 차고 있음을 보고, 현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내기를 하여 그것을 손에 넣은 뒤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주013)
비르서 : 비로소. 시 원문의 ‘시(試)’를 언해한 말로는 잘못된 풀이다. ‘시험삼아, 자주’의 뜻으로 풀이하여야 할 듯하다.
주014)
입곡 : 입[吟]-+-고(연결 어미)+ㄱ(보조사). 읊고. ¶나조 빗기 자바 부 뎟소리 됴니 믈 아래셔  龍도 입놋다(녁에 비스듬히(가로로) 잡아 부는 피리소리 좋으니 물 아래서 또 용이 읊는도다.)〈두시(초) 15:54ㄱ〉.
주015)
블근 노 : 븕[赤, 紫]-+-으(조음소)-+-ㄴ(관형사형 어미)#노[羅]. 붉은 비단.
주016)
란 : [囊]+란(보조사). 주머니일랑. ¶ 덥단 업게 호 굽슬   두 을 블근  녀허 남지 왼녀긔 고 겨지븐 올녀긔 라(또 전염성 열병(염병)을 없게 하되(하려면), 말굽을 가지고 만든 가루 두 냥을 붉은 주머니에 넣어, 남자는 왼쪽에 차고, 여자는 오른쪽에 차라.)〈온역 5ㄴ〉.
주017)
디 : [帶]-+-디(연결 어미). 차지. ¶구룸  뫼히 마 興을 베프거늘 玉  사미 지즈로 놀애 블로 當얏도다(구름 낀 산이 이미 흥(興)을 베풀거늘 옥(玉) 찬 사람(술 권하며 노래하는 기생)이 드디어 노래 부르는 것을 당하여 있도다.)〈두시(초) 14:32ㄴ〉.
주018)
쉬 나래 : 쉬[休]-+-(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날[日]+애(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 쉬는 날에.
주019)
시절(時節) 조차 : 시절(時節)+(대격 조사)#좇[從]-+-아(연결 어미). 시절을 좇아. 시의(時宜)에 맞추어. 적합한 때를 좇아. 적합한 때를 따라.
주020)
먹노소니 : 먹[食, 飮]-+-(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소니(연결 어미). 먹으니. ‘-노소니’를 하나의 연결 어미로 취급하기도 한다. ‘-소-’를 확인성의 인식 양태 선어말 어미로 분석할 수도 있다.
주021)
오 옌 : 오[來]-+-(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年]+예(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ㄴ(보조사). 오는 해에는. 명년에는. 내년에는.
주022)
내 킈와 야 : 나[我[+(관형격 조사)#킈[長]+와(공동격 조사)#[爲]-+-y(조음소)-+-아(연결 어미). 나의 키와 하여. 나의 키와 더불어. 내 키와 함께. ¶草堂이 玄圃와 야 相亂니 崐崙ㅅ 뫼콰 限隔디 아니니라(초당(草堂)이 곤륜산 위의 신선이 산다는 현단(玄圃)과 더불어 서로 어지러우니 곤륜산과 경계가 막히지 않은 것이다.)〈두시(초) 15:3ㄱ〉.
주023)
다 : 같이. 더불어. ¶새 것 머구메 戰士 몬져 고 져근 것 다호 시내해 늘그게 밋게 도다(새 것 먹음에 전사(戰士)를 먼저 하고, 적은 것 함께하는 것을 시내해 늘그게 밋게 도다.)〈두시(초) 15:18ㄴ〉.
주024)
길리로다 : 길[長]-+-ㄹ(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로다(감탄 어미). 길 것이로다. 클 것이로다. ‘-ㄹ(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를 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 ‘-리-’로 분석하는 것은 재구조화를 적용하는 것이다. ¶다가 福 바다 난 사미면 더욱 安樂며 목숨 길리라(만약 복을 받아 난 사람이면 더욱 안락하며 목숨 길 것이다.)〈월석 21:97ㄴ〉.
주025)
이 : [堂堂]+-(형용사 파생 접미사)-+-이(부사 파생 접미사). 마땅히. 응당. ‘히'에서 ‘ᄒ'이 탈락하여 전체적으로 ‘--'가 탈락한 모습을 하고 있다.
주026)
모로매 : 모름지기.
주027)
경술(經術) : 경서(經書)에 관한 학문.
주028)
브르 : 배불리. 배부르게. ¶病 모매 됴 마 虛히 호니 엇던 幸로 아히 브르 머글고(병든 몸에 좋은 맛을 헛되이 하니 어떤 행운으로 아이들이 배불리 먹을 것을 것인가?)〈두시(초) 15:56ㄱ〉.
주029)
호리니 : [爲]-+-오(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ㄹ(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니(연결 어미). 하리니. 할 것이니. 미래 시제 선어말 어미 ‘-리-’는 ‘-ㄹ(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를 재구조화한 것이다.
주030)
마 : 이미.
주031)
문장(文章) : 문장(文章)+(대격 조사). 문장을. 글을.
주032)
 : [愛]+-(동사 파생 접미사)-+-(현재 시제 선어말 어미)-+-ㄴ(관형사형 어미). 사랑하는. 중세어의 ‘다’가 ‘생각하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현대어의 ‘사랑하다’와 같은 뜻을 가지기도 하였다. ¶온  恩惠왼 비츨 빌요믈 니부니  서리 肅殺ㅅ 氣運을 시름리아(사랑스러운 해의 은혜로운 빛을 빌리는 것을 입으니 맑은 서리의 엄혹한 추위의 기운을 시름할 것이겠느냐?)〈두시(초) 15:15ㄱ~ㄴ〉.
주033)
도다 : [如]+-(형용동사 파생 접미사)-+-도다(감탄 어미). 듯하도다.
주034)
승당(升堂) : 집에 오르다. 학문이나 기예(技藝)가 이미 입문하였음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논어 선진편에는 공자가 이르기를, 유(由, 자로)가 집에는 올랐으나, 방에는 들지 못하였다고 하는 말이 있다. 여기서는 집에 올랐다는 것에만 주의를 모으고 있다. #자로(子路) :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의 유학자(BC543~BC480). 성은 중(仲). 이름은 유(由). 자로는 그의 자이다. 산동성(山東省) 출신으로, 공자(孔子)의 문하생이었다. 공자보다 9세 아래였고, 제자 중에서는 최연장자로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하나. 성미는 거칠었으나 꾸밈없고 소박한 인품으로 가르침을 받으면 실천에 옮기는 인물이었다. 정사(政事)에 뛰어났으며 공자를 제일 잘 섬겼다고 한다. 공자도 그를 매우 사랑한 듯하며, 〈논어〉에 그 친분이 잘 표현되어 있다. 뒤에 위(衛)나라에서 벼슬했는데, 내란이 일어났을 때 스스로 도의적 입장에서 전사(戰死)를 택하였다. 내란 소식을 들었을 때 공자는 그의 죽음을 예언하였다고 한다.〈두산백과 참조〉.
주035)
열다새 : 열[十]#다[五]+애(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 열다섯에. 논어에 나오는 말로, 공자는 논어에서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 三十而立(삼시이립)’이라고 하고 있다. 15세에 배음에 뜻을 두고, 30에 섰다(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배우게 되는 경지)고 한다.
주036)
남아(男兒) : 남아(男兒)+(관형격 조사). 남아의. 남자의.
주037)
과 : [志]+과(접속 조사). 뜻과. ¶그를 이프며 안자셔 머리 도혀 라고 들 조차 葛巾을 기 노라(글을 읊으며 앉아서 머리를 돌려 바라보고 뜻을 좇아 갈건(葛巾)을 나직이 하노라.)〈두시(초) 15:17ㄴ〉.
주038)
삼천(三千) 제자(弟子)ㅅ 행렬(行列)에 : 3천 제자의 행렬에. 공자의 제자가 3천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한다. 〈사기〉에는 공자가 시(詩), 서(書), 예(禮), 악(樂)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 수가 대략 3천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주039)
증삼(曾參) : 증자(曾子, BC 506~BC 436)의 이름.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유학자. 자는 자여 (子輿). 이름은 삼(參). 산둥성[山東省] 출생. 증점(曾點)의 아들이다. 공자의 고제(高弟)로 효심이 두텁고 내성궁행(內省躬行)에 힘썼으며, 노(魯)나라 지방에서 제자들의 교육에 주력하였다. 공자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나의 도는 하나로써 일관한다(吾道一以貫之)’고 말했을 때 다른 제자들은 그 말의 참뜻을 몰라 생각에 잠겼으나, 증자는 선뜻 ‘부자(夫子)의 도는 충서(忠恕)뿐’이라고 해설하여 다른 제자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증자의 사상은 효(孝)와 신(信)을 도덕행위의 근본으로 한다. 그는 공자의 도(道)를 계승하였으며, 그의 가르침은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를 거쳐 맹자(孟子)에게 전해져 유교사상사(儒敎思想史)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주040)
자유(子游) : 춘추 시대 오(吳)나라 사람(BC506~?). 공자(孔子)의 제자로, 성은 언(言)이고, 이름은 언(偃). 자가 자유(子游)이다. 공자보다 45살 연하로, 20여세부터 관직 생활을 하였다. 무성(武城)의 재상이 되어 예악(禮樂)으로 정치를 펼쳤다. 공문십철(孔門十哲)의 하나. 안연(顔淵), 자하(子夏)와 함께 공자가 가장 아낀 제자였으며, 학문에 밝았다고 한다. 공자가 무성을 지나갈 때 현가(弦歌)를 듣고 기뻐하였다고 한다. 〈논어〉와 〈예기〉에 그에 관한 기록이 보인다. 송나라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2년(1009) 단양공(丹陽公)에 추봉되었다.〈중국역대인명사전 참고〉.
주041)
자하(子夏) : 중국 전국시대의 학자(BC507~BC420?). 성명은 복상(卜商). 산서성(山西省) 출생. 이에 대해서는 이설도 있다. 공자의 제자로 공문 10철(孔門十哲)의 하나. 공자가 죽은 뒤에 서하(西河)에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었으며, 위나라 문후(文侯)에게 초빙되어 스승이 되었다. 자하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여읜 아들의 죽음을 비통해하다가 실명(失明)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학문은 시와 예에 통하였으며, 주관적 내면성을 존중하는 증자(曾子) 등과 달리, 예(禮)의 객관적 형식을 존중하는 것이 특색이다.〈두산백과 참조〉.
주042)
시러곰 : 싣[得]-+-어(연결 어미)+곰(보조사). 능히.
주043)
지븨 오니라 : 집[堂]+의(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오[升]-+-ㄴ(동명사 어미)#이(지정 형용사)-+-라(어말 어미). 집에 오른 것이다. 도(道)에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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