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하)

  •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하)
인쇄 의견 제시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하)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하)

중국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시를 모아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찬주분류두시(纂註分類杜詩)』를 저본으로, 조선 성종의 명을 받은 유윤겸(柳允謙), 유휴복(柳休復), 조위(曺偉), 의침(義砧) 등이 언해하여 성종 12년(1481)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언해 시집이다. 모두 25권 17책으로 을해자본이며 이 책은 보통 줄여서 『두시언해(杜詩諺解)』라고 한다.

임홍빈

1944년 경기도 개성출생, 아호 학여(學如).

송도국민학교, 용강국민학교, 숭문중학교, 숭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석사과정). 문학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박사과정). 문학박사(1987)

해군사관학교 국어교관, 서울대학교 교양과정부 조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농과대학 시간강사,

국민대학교 문과대학 전임강사, 조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명예교수(현),

한국언어학회 회장 역임.

대한민국 학술원상 수상.

〈저서와 논문〉

〈국어문법론(공저)〉(1983),

〈국어의 재귀사 연구〉(1987),

〈뉘앙스풀이를 겸한 우리말 사전〉(1993),

〈국어 문법론I(공저)〉(1995),

〈북한의 문법론 연구〉(19997),

〈국어 문법의 심층〉(1998),

〈우리말에 대한 성찰〉(2005),

〈한국어의 주제와 통사 분석〉(2007)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0〉(2011)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1〉(2012)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 14〉(2013)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 15〉(2014)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 8(상)〉(2015) 외 10여 권

"국어의 주제화 연구", "On the Real Nature of Scrambling in Korean" 외 100여 편

역주위원

  •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 : 임홍빈(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교열·윤문·색인위원

  •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 : 박종국 홍현보
  • 고전국역 편집위원회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원 : 강병식 김구진 김무봉 김석득
  • 김승곤 김영배 나일성 남문현
  • 리의도 박충순 성낙수 심우섭
  • 이해철 임홍빈 전상운 최홍식
  • 한무희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을 내면서

우리 회는 1956년 10월 9일 창립 후 세종대왕기념사업의 중심 전당인 세종대왕기념관을 건립 세종문화진열실과 연구실을 마련 운영 관리하며, 세종성왕의 정신과 위업의 연구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 한글 전용과 국학 진흥을 위하여 「한문고전국역사업」과 「한글고전역주사업」을 1967년에 기획하여 1968년부터 계속 수행하고 있다.

「한문고전국역사업」은 1968년 1월부터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을 국역 간행하기 시작하여 실록의 한문 원문 901권을 완역 발간하였고, 일반 한문고전으로 『증보문헌비고』, 『매월당집』, 『국조인물고』, 『동국통감』, 『승정원일기』(순종), 『육일재총서』 등 수많은 국학자료를 국역 발간하였으며, 계속하여 『치평요람』, 『각사등록』, 『연행록』 등 문헌의 국역 사업을 벌여 오고 있다.

「한글고전역주사업」은 1990년 6월에 첫발을 내디디어, 『석보상절』 권6, 9, 11의 역주에 착수,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계속하고 있는바, 2015년 12월까지 역주 발행한 문헌은 『석보상절』 4책, 『월인석보』(훈민정음언해본 포함) 17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10책, 『금강경삼가해』 5책, 『구급방언해』 2책, 『삼강행실도』 1책, 『두시언해』 8책, 『소학언해』 4책, 『사서언해』(논어, 대학, 중용, 맹자) 6책, 『이륜행실도』 1책, 『동국신속삼강행실도』 5책, 『시경언해』 3책, 『서경언해』 1책, 『가례언해』 4책, 『여소학연해』 2책 등 124책을 발간하였고, 2016년 금년에도 『오륜행실도』, 『두시언해』(초간본) 등 15책을 역주 간행할 예정이다.

우리 회 창립 60돌이자 한글 반포 570돌이 되는 올해는 우리 회가 「한문고전국역사업」을 착수한 지 49돌이 되었고, 「한글고전역주사업」을 추진한 지 26돌이 되었다. 그 동안 우리 회가 낸 700여 책의 국역 학술 간행물이 말해 주듯이,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이래 최고의 한글 국역, 역주 간행 기관임을 자부하는 바이다. 우리 고전의 현대화는 전문 학자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매우 유용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우리 회가 이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그 결과 고전의 대중화를 통한 지식 개발 사회의 문화 자본 구축과 역사 의식 및 한국학 연구 활성화에 기여는 물론, 새 겨레문화 창조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사업이 끊임없이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는, 중국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시를 모아 세종 때 처음 만들어진 『찬주분류두시(纂註分類杜詩)』를 저본으로, 조선 성종의 명을 받은 유윤겸(柳允謙), 유휴복(柳休復), 조위(曺偉), 의침(義砧) 등이 언해하여 성종 12년(1481)에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언해 시집으로 알려져 있다. 모두 25권 17책으로 을해자본이다(후대에는 19책, 20책도 있음). 이 책은 보통 줄여서 『두시언해(杜詩諺解)』라고 한다.

『두시언해』는 다른 언해서와는 달리 원문에 입겿(토)이 없고, 한글과 한문 혼용인 언해문의 한자에도 한글 독음이 달리지 않았다. 두시에 대한 주석은 세종 때부터 행하여졌다고 하나, 번역은 성종의 명으로 처음 이루어진 것이다. 이 책의 책이름에 보이는 공부(工部)는 두보의 관명(官名)이고, 분류(分類)는 시를 기행, 술회, 질병, 회고, 시사(時事) 등과 같이 내용에 따라 분류하였다는 뜻이다. 두보 시는 71문(門)에 총 1,467수와 다른 사람 작품 16수로서, 그 소재는 세상사에 미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라를 사랑하는 충정과 같은 인간애가 담겨 있으며, 당시의 현실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고, 면밀하게 비판한 사실적인 서사(敍事)인 데서 시사(詩史)라 일컬어지는 위대한 작품이다.

이번에 이 『두시언해』 권8을 역주함에 있어서, 그 저본으로는 통문관에서 1956년에 초간본을 축쇄 영인한 양장본을 저본으로 하였다.

우리 회에서 15세기 문헌인 『두시언해』 권8을 역주 간행함에 있어, 역주를 위해 애써 주신 서울대학교 임홍빈 명예교수님과,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 모로 수고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6년 11월 25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최홍식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 등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옛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 이외의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이 이를 읽어 해독하기란 여간 어려운 실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리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의 저본으로는, 통문관에서 1956년에 초간본을 축쇄 영인한 양장본을 사용하였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한문 원문 ․ 언해 원문 ․ 현대어 풀이 ․ 옛말과 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는데, 특별히 한시를 언해하였으므로 그 운율을 알기 쉽도록 시 제목과 한시 원문은 그대로 음을 달고 풀이를 이어붙였다. 원전과 비교하여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 ․ 앞(ㄱ) ․ 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1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1ㄱ分類杜工部詩 卷之十五 …

제3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諸侯3ㄴ舊上計 厥貢傾千林 …

(3) 현대어로 옮기는 데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하는 데 기준을 두었다.

(4) 원문 내용(한문 원문과 언해문)은 네모틀에 넣어서 현대 풀이문․주석과 구별하였으며, 원문 가운데 훼손되어 읽을 수 없는 글자는 □로 표시하였다.

(5) 현대어 풀이에서, 옛글의 구문(構文)과 다른 곳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다.

(6)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순 : ㄱ ㄲ ㄴ ㅥ ㄷ ㄸ ㄹ ㅁ ㅱ ㅂ ㅲ ㅳ ㅃ ㅄ ㅴ ㅵ ㅷ ㅸ ㅅ ㅺ ㅻ ㅼ ㅽ ㅆ ㅾ ㅿ ㅇ ㆀ ㆁ ㆆ ㅈ ㅉ ㅊ ㅋ ㅌ ㅍ ㅎ ㆅ

② 중성순 : ㅏ ㅐ ㅑ ㅒ ㅓ ㅔ ㅕ ㅖ ㅗ ㅘ ㅙ ㅚ ㅛ ㆉ ㅜ ㅝ ㅞ ㅟ ㅠ ㆌ ㅡ ㅢ ㅣ ㆍ ㆎ

③ 종성순 : ㄱ ㄴ ㄴㅅ ㄴㅈ ㄴㅎ ㄷ ㄹ ㄹㄱ ㄹㄷ ㄹㅁ ㄹㅂ ㄹㅅ ㅀ ㅁ ㅁㄱ ㅯ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3. 역주자 일러두기

(1) 역주는 가능한 한, 자세하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처음에 나온 것도 뒤에 나오면 다시 역주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지나치게 앞의 부분을 참조하게 하면, 역주의 효용이 반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2) ‘이다’ 즉 ‘이-’를 학교 문법에서는 ‘서술격 조사’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정 형용사’란 이름으로 ‘이-’를 가리키기로 한다. ‘이-’는 형용사임이 분명한데, 종래에는 이를 형용사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 활용의 양상이 형용사와 동일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3) 어미 ‘-으니, -으려, -으면, -은, -을’ 등과 같이 흔히 ‘으’를 앞에 가지는 어미를 일반적으로 하나의 어미로 취급하나, 여기서는 ‘으’와 후행하는 ‘-니, -려, -면, -ㄴ, -ㄹ’ 등을 구별하여 ‘으’를 조음소로 분석하는 방식을 취한다. 어미와 달리 조사에 대해서는 조음소를 설정하지 않는다.

(4) 미래 관형사형 어미나 동명사 어미 ‘-ㄹ’이나 ‘-ㅭ’은 이전의 14권 및 15권 역주에서는 모두 ‘-ㅭ’으로 분석하였으나, 지나치게 번거롭고 실제 표기형과 이질적인 것이 되는 흠이 있다. 미래 관형사형 어미나 동명사 어미가 ‘-ㅭ’으로 나타나는 예도 있고, 단순히 ‘-ㄹ’로 나타나는 예도 있는데, 옛 문헌에 실제로 ‘-ㅭ’으로 나타나는 것은 ‘-ㅭ’로 분석하고, ‘-ㄹ’로 나타나는 것은 그대로 ‘-ㄹ’로 분석해 보이기로 한다.

(5) 중세어의 ‘-오, -우, -옴, -움’에 대해서 필자는 이들을 ‘-오-+-, -우-+-, -오-+-ㅁ, -우-+ㅁ’과 같이 분석하고, 때로 ‘-오, -우, -옴, -움’과 같이 분석되는 것을 재구조화된 형식으로 제시하기로 한다. ‘-샤-’를 ‘-시-’의 이형태로 분석하는 것을 지양하여, ‘-시(주체 높임 선어말 어미)-+-아(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로 분석한다. 이는 중세어의 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 ‘-오/우-’가 ‘-아-’ 또는 ‘-어-’라는 또 다른 이형태를 가지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6) 중세어의 선어말 어미 ‘-오/우-’는 위에서 암시한 바와 같이 ‘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와 같이 주를 달기로 한다. ‘-오/우’에 대해서는 허웅(1963)의 인칭 ․ 대상 활용설이 있고, 이숭녕(1964)의 의도법설이 있는 것이지만, 어느 것이나 현상의 설명력에는 한계를 가진다. 임홍빈(1981)에 따라 ‘-오/우/아/어-’를 확실성의 양태를 나타내는 선어말 어미로 보기로 한다.

(7) ‘처격 조사, 조격 조사’ 등은 학교 문법에서 ‘부사격 조사’이므로, 대부분의 예에 대하여 ‘에(처격 조사, 부사격 조사)’와 같이 두 가지 술어를 병기하기로 한다. 그 기능에 따라 가령 ‘창문을 나무로 만들었다’와 같은 예의 ‘나무로’의 ‘로’와 같으면 ‘로(조격 조사, 부사격 조사)’와 같이 주석하기로 한다.

(8) 형태소 분석에서 ‘+’ 기호는 대체로 용언의 어간과 어미 사이, 체언과 조사 사이 및 어미와 어미, 조사와 조사 사이에 쓰고, ‘#’ 기호는 어기와 어기 사이, 단어와 단어 사이에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그 결합이 긴밀한 합성어의 두 어기 사이에는 ‘+’ 기호를 쓰기로 한다. 때로 어원적인 분석을 보인 일이 있는데, 이때에는 어원적인 단어 사이에 ‘#’ 기호를 쓰기로 한다. 용언의 어간, 어미, 선어말 어미, 접미사 등에는 관례에 따라 그 앞이나 뒤에 하이픈 ‘-’을 표시하기로 한다.

(9) ‘ㅎ’ 종성 체언은 가령 ‘[地]’와 같으면, ‘’와 같이 표시하는 방법도 있으나, 여기서는 ‘ㅎ’과 같이 ‘ㅎ’을 선행 음절에서 따로 분리하여 표시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과거의 어형이 현대어형과 이질적으로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조치이다.

(10) 언해본에서 두시의 원문은 대체로 대구(對句)의 두 구가 한 행으로 중간에 띄어짐이 없이 인쇄되어 있다. 5언 시와 같으면 10자가 한 행이 되고 7언 시와 같으면 14자가 한 행이 된다. 여기서는 이를 의미의 단위에 따라 한 행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한다.

(11) 한시 원문에 대해서는 행 단위로 우리의 전통 한자음을 한글로 표시하여 원문과 나란히 제시하기로 한다. 이는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이 부분의 한자음에 대해서는 우리말의 구개음화 규칙이나 두음법칙을 적용하지 않는다.

(12) 주해의 표제어는 언해 원문에 나타난 단어나 구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한자어에 대해서는 그 한자음을 표제어로 하고 해당 한자를 괄호 속에 넣어 표시하는 방법을 취하기로 한다. 한자음은 현대 우리말의 한자음을 취한다.

(13) 두시 가운데는 같은 제목이나 형식을 가진 시가 연작시와 같이 나열된 시가 있다. 언해에서는 그들 각각의 시를 단지 별행으로 시작하고 있다. 본 주해는 행 단위로 된 것이기 때문에, 시들이 어디서 나누어지는지 알기 어렵다. 이를 고려하여 본 역주에서는 단위 시가 끝나는 위치에 그 순서를 ‘여기까지가 첫째 수이다’와 같이 괄호 속에 나타내 보이기로 한다.

(14) 주해에서는 형태소 분석과 함께 각 형태소의 기능을 괄호 속에 표시하기로 한다. 그러나 제시형이 형태소를 엄격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제시형은 이형태를 그대로 반영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한다. 가령 연결 어미 ‘아/어’와 같으면, ‘-아(연결 어미)’나 ‘-어(연결 어미)’와 같이 표시하였다. 그러나 ‘-야’는 ‘j(조음소)+아’와 같이 분석해 보이기로 한다. 문법 형태소의 개념을 적용한 것은 의문형 어미 ‘-가, -고’ 및 대상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 ‘-거-’ 등과 같은 몇 가지 예의 표시에 국한된다. 이들에 대해서는 가령 나타난 형태가 ‘-아’ 또는 ‘-오’라고 하여도 그 형대소를 ‘-가’ 또는 ‘-고’와 같이 밝혀 나타내기로 한다.

(15) 역주와 용례에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이미 세상에 펴낸 역주본을 많이 참고하였다. 이미 많은 중세어 자료들이 역주된 상태이므로, 거기서 풍부한 자료와 해석을 접할 수 있었다. 여기서 이전 역주본의 역주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뜻을 표하고자 한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 및 한자 성어 고사를 다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혹 일일이 그 출처를 밝히지 못한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 일일이 그 출처를 밝히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넓은 혜량 있으시기 바란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하) 보충 해제

임홍빈(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에 대한 전반적인 해제는 이미 권8(상)에서 상세히 행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보충 해제’라는 이름으로, 권8(하) 부분의 본문과 협주 및 언해에 대하여 필요한 사항을 지적하기로 한다.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상)에서는 ‘5. 『두시언해』 권8(상)의 오자, 탈자, 희귀어 등’이란 제목 아래 ‘1) 언해, 할주 및 원문의 탈자, 오자 등’과 ‘2) 언해 번역의 문제’의 두 하위 부류를 두었으나, 여기서는 이를 조금 바꿔, 하위 부류를 셋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1. 『두시언해』 권8(하)의 오자, 탈자 등

(1) (39ㄱ) 원문의 ‘의답아동문(意答兒童問)’이 ‘드로 아희 무로 對答노니’와 같이 번역되었다. ‘무로’의 ‘’은 ‘’의 ‘ㅁ’의 오른쪽 획이 떨어졌거나 먹이 묻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무로’은 ‘무로’이 되어야 한다.

(2) (40ㄴ) 원문의 ‘차시동일취(此時同一醉)’가 ‘이  변 醉호  호리니’와 같이 번역되었다. ‘ 번’이 ‘ 변’으로 되었다. ‘ 변’은 원문의 ‘일(一)’에 대한 번역이기 때문에 ‘ 번’이라야 한다.

(3) (43ㄱ) 원문의 ‘대주도의몽(對酒都疑夢)’이 ‘수를 相對야셔 다 민기 疑心고’와 같이 번역되었다. ‘민기’는 ‘민가’의 잘못이다. ‘민기’는 ‘민가’와 같이 되어야 ‘의심(疑心)-’의 보어 조건을 충족시킨다.

(4) (44ㄱ) 원문이 ‘비명환접혈(飛鳴還接趐)’과 같이 제시되어 있다. 이 구절의 끝 한자가 ‘혈(趐)’로 되어 있으나, 이는 ‘날개 시(翅)’자로 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번역도 ‘라 우루메 도로 개 相接고’와 같이 ‘개’로 되어 있고, 한성무(韓成武) 외 (1997:1083)에도 이 글자는 ‘시(翅)’로 되어 있다. 언해 담당자는 ‘혈(趐)’자를 ‘시(翅)’자인 것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5) (47ㄱ) 원문의 ‘전년학어시(前年學語時)’가 ‘前年희 말 홀 제’와 같이 번역되었다. ‘전년(前年)희’의 ‘희’는 ‘전년(前年)’이 ‘ㅎ’ 종성 체언이어야 한다. 그러나 ‘전년(前年)’은 한자어이기 때문에 ‘ㅎ’ 종성 체언일 수 없다. ‘ㅎ’ 종성 체언은 고유어에만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전년(前年)희’의 ‘희’는 ‘의’의 잘못임이 분명하다. 만약 ‘전년(前年)’이 ‘ㅎ’ 종성 체언이었다고 한다면 ‘전년(前年)’ 뒤에 ‘희’가 쓰인 다른 예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헌 자료에는 ‘전년(前年)’ 뒤에 ‘ㅎ’이 쓰인 다른 예를 찾을 수 없다.

(6) (48ㄱ~ㄴ) 원문 ‘이모추장전(二毛趨帳殿)’의 ‘이모(二毛)’가 ‘누 터리로’와 같이 번역되었다. ‘누 터리’는 ‘두 터리’의 오각임이 분명하다.

(7) (53ㄱ) 원문의 ‘물백휘수점(物白諱受玷)’이 ‘物이 하야야 허믈 受호 □避고’와 같이 번역되었다. □ 속의 한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해당 한자가 다 보이지 않으나, 원문에 ‘휘(諱)’가 있기 때문에, ‘휘피(諱避)’를 재구할 수 있다. 문제의 한자 오른쪽 아랫 부분의 획에 ‘수건 건(巾)’과 같은 획이 보이기 때문에, ‘휘(諱)’가 아닌 다른 한자가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번역문 한자의 ‘휘(諱)’에서, 입 구(口) 아래에 두 이(二)자가 오고 그 중간을 아래로 타고 내려 오는 획이 있는데, 두 이(二)자의 아래 획을 ‘수건 건’자와 흡사하게 쓰는 것이 〈두시언해〉 한자의 한 특색이라 할 수 있으므로, 이는 확실히 ‘휘(諱)’로 볼 수 있다. ‘휘피(諱避)’는 ‘꺼려 피하다’의 뜻이 된다.

(8) (53ㄱ) 원문의 ‘념자숙자진(念子熟自珍)’이 ‘ 念 너□ 네 몸 珍寶외이 호 니기 라’와 같이 번역되었다. ‘너’ 뒤에 오는 글자가 보이지 않으나,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극히 희미한 가로 부분 획이 있으므로, ‘는’으로 읽는 것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9) (54ㄱ) 제목 ‘송중표질왕례평사사남해(送重表姪王砅評事使南海)’의 할주 ‘砅 與厲로 同니라’로, ‘례(砅)’를 ‘려(厲)’와 같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려(厲)’는 음도 ‘례(砅)’와 차이가 나고, 그 의미도 ‘갈다, 화(禍), 괴롭다’와 같은 것이어서 문맥에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뜻을 이름에 가지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려(厲)’는 ‘례(濿)’의 잘못으로 보아야 한다.

(10) (54ㄴ) 원문의 ‘이조미현시(爾祖未顯時)’에 대하여 ‘爾祖 指王珪니 未顯時에 娵(추)杜氏다’와 같이 할주를 달고 있다. ‘네 할아버지는 왕규(王珪)를 가리키니, 세상에 이름이 나기 전에 두 씨(杜氏) 처녀한테 장가들었다’는 뜻이다. 할주에 쓰인 ‘娵(추)’는 ‘별이름, 미녀, 물고기’를 뜻하는 한자로, ‘장가들다’는 뜻을 가지지 못한다. ‘娵(추)’는 ‘娶(취)’의 잘못인 것이 분명한데, 언해 담당자는 이 둘 한자를 동일한 것으로 본 듯하다.

(11) (56ㄱ) 원문의 ‘륙궁사유순(六宮師柔順)’을 ‘여슷 宮이 부드더우며 順호 스사니’와 같이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부드더우며’는 ‘부드러우며’의 잘못임이 분명하다. 중세어 문헌에 나타나는 지배적인 형식은 ‘부드러며’나 ‘부드러우며’와 같은 두 가지 형식이다.

(12) (60ㄴ) 원문의 ‘소과빙문신(所過憑問訊)’이 ‘디나갈 제 묻저주믈 依憑야’와 같이 번역되었다. 번역문의 ‘묻저주물’은 ‘묻고 신문하고(따지고)’와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저주믈’은 ‘져주물’의 철자가 잘못된 것으로 여겨진다. 가로획이 아랫것만 보이는 것일 수 있다. ‘글월 보고 셰히 묻져주고  노하 보내니(글월 보고 자세히 묻고 따지고야 갓(겨우) 놓아 보내니)〈번노 상:50ㄴ~52ㄱ〉’와 같은 예가 참고된다.

(13) (61ㄱ) 원문의 ‘전어도원객(傳語桃源客) 인금출처동(人今出處同)’이 ‘桃源ㅅ 나그내더브러 말 傳라 사미 이제 出處ㅣ 호□’와 같이 나타나고 있다. ‘호-’가 어말 어미를 가지지 못하였다. □에 적합한 어미는 ‘-라’이다. ‘호-’가 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 ‘-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결 어미 ‘-다’가 ‘-라’가 된다.

(14) (61ㄱ) 두시 제목의 ‘왕랑주연봉(王閬州筵奉)□□일구석별지작(一舅惜別之作)’에서 중간의 두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두보 연보』에 실린 두시 목록이나 한성무(韓成武) 외 (1997)의 『두보시 전역(杜甫詩全譯)』과 같은 책을 참고하여, □□에 필요한 한자는 ‘수십(酬十)’임을 확인할 수 있다.

(15) (61ㄴ) 원문의 ‘부주출군곽(浮舟出郡郭)’이 ‘ 워 옰 城郭애 니와’와 같이 번역되었다. ‘니와’는 ‘나와’가 되어야 한다. 원문의 ‘출(出)’에 대한 번역이다.

(16) (63ㄱ) 원문의 ‘주익배풍영(舟鷁排風影)’이 ‘옛 鷁鳥(익조) 매 버럿 그르메오’와 같이 번역되었다. ‘’는 ‘주(舟)’에 해당하는 번역인데, ‘’에서 세로 획이 빠졌다.

(17) (64ㄱ) 원문의 ‘온자위랑구(蘊藉爲郞久) 괴오병철존(魁梧秉哲尊)’이 ‘蘊藉(온자)야 郞官 외언 디 오라고 魁梧(괴오)야 明哲호 자바 尊도다’와 같이 번역되었다. 할주에서는 ‘괴(魁)는 큰 모양이고, 오(梧)는 그 음이 오(悟)이니, 가히 놀라 깨닫는 것이다’와 같이 풀이하고 있으나, ‘오(梧)’의 음이 ‘오(悟)’와 같다고 하여 그것을 ‘깨닫다’로 해석하는 것은 ‘괴오(魁梧)’의 뜻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괴오(魁梧)’의 ‘괴(魁)’는 큰 것을 나타내고, ‘오(梧)’는 오동나무를 뜻하므로, 또한 큰 것이다. 따라서 ‘괴오(魁梧)’는 체격이 장대하고 훌륭한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깨닫는 것’의 의미는 그 다음에 오는 ‘철(哲)’과 관련된다. ‘철’이 ‘명철하다, 슬기롭다’를 뜻하므로, ‘깨닫는 것’과 관련된다.

(18) (64ㄴ~65ㄱ) 원문의 ‘치군시이만(致君時已晩) 회고의공존(懷古意空存)’이 ‘남그믈 이ㄹ 닐위으져 아도 時節이 다 느즈니 녯 이 논 곳 쇽졀업시 잇도다’와 같이 번역되었다. ‘남그믈’은 ‘군(君)’에 대한 번역이므로, ‘님그믈’이라 보아야 하고, ‘이ㄹ’는 ‘이고대’가 기형으로 새겨진 것이고, ‘닐위으져’는 ‘닐위오져’의 오각이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아도’는 ‘야도’의 오각이고, ‘다’는 ‘마’의 오각이다. 오각이 가장 많은 구절이라 할 것이다.

(19) (67ㄱ) 원문의 ‘모혼신고별(暮婚晨告別)’이 ‘나조 婚娵(혼추)고 새배 여희유믈 니니 ’와 같이 번역되었다. ‘추(娵)’는 ‘별이름, 물고기, 미녀’를 뜻한다. ‘장가들다’를 뜻하는 ‘취(娶)’와는 전혀 다른 글자이고, 문맥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언해 담당자들은 이 ‘추(娵)’자를 ‘취(娶)’와 같은 글자로 생각하고, 그렇게 쓰고 있는 듯하다. ‘나조 婚娵(혼추)고’는 ‘나조 婚娶(혼취)고’로 되어야 한다.

(20) (69ㄴ~70ㄱ) 원문의 ‘량가성관관(兩家誠欵欵) 중도허창창(中道許蒼蒼)’이 ‘두 지븨셔 情誠이 欵欵(관관;간절하고 간절하다) 더니 中間ㅅ 길헤 相許호미 아라도다’와 같이 번역되었다. ‘창창(蒼蒼)’이 ‘아스라하다’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창창(蒼蒼)’은 ‘푸르고 푸르다’의 뜻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하늘이 희망을 뜻한다기보다는 그 거리가 먼 것을 뜻한다. 언해자가 이를 ‘아라도다’와 같이 번역한 것도 그러한 뜻을 함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스라하다’는 ‘보기에 아슬아슬할 만큼 높거나 까마득하게 멀다’와 같은 뜻이므로, 희망적인 뜻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관계가 맺어지기 어려움을 함축한다.

2. 언해 번역의 특징적 현상과 문제점

(1) (35ㄴ~36ㄱ) 원문의 ‘봉거신감전(烽擧新酣戰)’이 ‘烽火ㅣ 드니 새라 흐드리 사호노소니’와 같이 번역되었다. 여기서 ‘봉화(烽火)ㅣ 드니’는 현대어로 ‘봉화가 드니’와 같은 구성이다. ‘드니’의 ‘들-’은 타동사인데, 그 목적어가 주격 조사와 같은 ‘ㅣ’를 가진 것이 된다. 여기서는 ‘봉화(烽火)ㅣ’를 ‘이’ 주제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 ‘이’ 주제는 선행 대상 ‘봉화’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의미론적인 효과를 가진다. ‘이’를 보조사로 분석한 것은 이 같은 분석을 반영한 것이다.

(2) (36ㄱ) 원문의 ‘불지림로일(不知臨老日)’의 번역 ‘아디 몯리로다 늘구믈 臨야 잇 나래’에서 ‘늘구믈 臨야’에서 ‘늘구믈’의 ‘을’은 ‘을’ 주제를 나타내는 형태로 분석된다. ‘을’ 주제는 선행 성분을 문제로 부각시키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본다.

(3) (36ㄱ) 원문의 ‘여나귀무계(汝懦歸無計)’를 언해에서는 ‘네 게을어 도라올 혜유미 업고’와 같이 번역하였다. 원문의 ‘나(懦)’는 ‘나약하다, 무기력하다’를 뜻하는데, 언해에서는 이를 ‘게을다’로 번역하고 있다. 언해자가 혹시 ‘나(懦)’를 ‘나(懶)’로 잘못 인식한 것은 아닌가 의심된다. ‘내’가 아닌 ‘너’에 대하여 게으르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네가 게을러’가 아니라 ‘네가 몸이 약하여’라고 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4) (36ㄴ) 원문 ‘로종금야백(露從今夜白)’을 ‘이스른 오 바 조차 니’와 같이 번역하였다. ‘오늜 바 조차’는 ‘종금야(從今夜)’에 대한 직역으로 여겨진다. 이 경우, ‘오늘 밤을 조차’의 의미가 분명치 않은 것이 문제이다. ‘오늘 밤따라’로 번역하는 것이 원문의 뜻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된다.

(5) (39ㄱ) 원문의 ‘래경전벌신(來經戰伐新)’이 ‘올 저긔 사호미 새로외요 디나도다’와 같이 번역되었다. ‘전벌신(戰伐新)’을 ‘전쟁의 새로움’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전벌신(戰伐新)’은 대력(大曆) 2년(767) 1월 곽자의(郭子儀)에게 비밀리에 주지광(周智光)을 죽이도록 한 일과, 대장 혼함(渾瑊) 및 이회광(李懷光)에게 명령을 내려 위수(渭水)의 병사들을 진압한 일을 가리킨다.〈백도백과 참조〉 따라서 ‘전벌신(戰伐新)’은 고유명사로 취급하는 것이 온당하다. ‘올 적에 전벌신(戰伐新)을 겪도다’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6) (39ㄴ~40ㄱ) 원문의 ‘수절시성성(愁絶始星星)’을 언해에서는 ‘이 열  이 議論리로소니 시르메 머리 비르서 셰다’와 같이 번역하였다. 협주에서는 ‘성성은 머리가 흰 것이다(星星은 髮白也ㅣ라)’와 같이 풀이하고 있다. ‘성(星)’의 의미에 ‘희뜩희뜩하다’와 같은 것이 있기는 하나, 이것은 별이 반짝이는 것과 관련되는 의미이지, 머리가 희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원문이 ‘성성(惺惺)’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성성(惺惺)’은 ‘맑다, 영리하다’와 같은 뜻으로, 이를 ‘소생하다’와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머리가 세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은 동생을 오랜만에 만나서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하는 문맥인데, 거기서 비로소 머리가 센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시름이 아주 깊었다가 비로소 거기서 벗어남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원문이 ‘수절(愁絶)’로 되어 있으니, 시름이 그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7) (40ㄴ)의 ‘응재중선루(應在仲宣樓)’가 ‘이 仲宣의 樓에 이시리로다’와 같이 번역되었다. ‘중선(仲宣)의 누(樓)’는 아마도 ‘중선루(仲宣樓)’로 번역되었어야 한다. 한(漢)나라 말기의 문학가 왕찬(王粲)은 자(字)가 중선(仲宣)이었는데, 형주(荊州)로 피난을 와서 살면서, 악양루(岳陽樓)에 자주 올라 고향을 그리워하는 ‘등루부(登樓賦)’를 지었다고 한다. 그 누각을 중선루(仲宣樓)라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8) (48ㄱ~ㄴ) 원문의 ‘일명시란여(一命侍鸞輿)’가 ‘번 命호로 鸞輿(란여) 侍衛(시위)호라’와 같이 번역되었다. 원문의 ‘일명(一命)’이 ‘ 번 명(命)홈(한 번 명함)’으로 번역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일명(一命)’을 그냥 썼어야 한다. ‘일명(一命)’은 관직의 계급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명(一命)은 관비(官卑)를 말한다’는 할주도 있으나, ‘한 번 명함’으로는 이 할주조차 만족시키지 못한다. 중국의 주(周)나라 때에는 관계(官階)를 ‘일명(一命)’에서 ‘구명(九命)’까지 나누었는데, ‘일명’이 가장 낮은 계급이었다(한성무 외 (1997) 참조). 후대에는 낮고 미미한 관직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관비(官卑)’란 주석은 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번역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9) (51ㄴ) 원문의 ‘산만부운합(山晩浮雲合) 귀시공로미(歸時恐路迷)’가 ‘묏 나조  구루미 모다시니 도라갈  길흘 迷失가 전노라’와 같이 번역되고 있다. ‘ 迷失가 전노라’에서 ‘-가’는 ‘가’의 잘못으로 생각된다. 15~16세기 자료에서 ‘젛-’과 함께 쓰인 내포문 서술어의 어미는 대부분 ‘-ㄹ가’를 가진다. ‘-ㄴ가’가 쓰인 예가 단 하나 있기는 하나, 형용사에 연결된 것이다. 동사에 ‘-ㄴ가’가 나타나는 예는 ‘迷失가’가 유일한 예이다. 여기서는 이를 ‘-ㄹ가’의 잘못으로 본다. 어미 ‘-ㄹ가’는 ‘-ㄹ(동명사 어미)+가(보조사)’가 재구조화된 것이다.

(10) (52ㄱ) 원문의 ‘경착안시론(耕鑿安時論) 의관여세동(衣冠與世同)’이 ‘耕田(경전) 鑿井(착정)이라 호 時節을 便安케  議論이오 衣冠 世옛 사과 다 가지로다’와 같이 번역되었다. 이 중에서 특히 앞 구절 ‘경착안시론(耕鑿安時論)’의 번역이 문제이다. 언해자는 ‘경착(耕鑿)’을 행동의 표현이 아니라, 말의 내용으로 보고 있다. ‘경착안시론(耕鑿安時論)’에서 ‘경착(耕鑿)’을 주어로, ‘안시론(安時論)’을 서술어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밭을 갈고(耕) 우물을 파는 것(鑿)은 그의 삶의 방식을 말한다. ‘안시론(安時論)’도 그의 행동의 하나로 해석해야 한다.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편안한 시절을 이야기하고‘와 같이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야 뒷부분과도 성격이 같아진다.

(11) (59ㄱ) 원문의 ‘수유거마객(雖有車馬客)’이 ‘비록 술위와   소니 오리 이시나’와 같이 번역되었다. ‘비록 술위와   소니’도 주격 조사 ‘이’를 가진 구성이고, ‘오리’도 ‘올 이(올 사람)’와 같이 분석되는 것으로, ‘말 탄 손이’와 ‘올 이’가 모두가 주어로 분석되어 이른바 이중 주어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역주자는 여기서 ‘말 탄 손이’는 ‘이’ 주제의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구성은 주제를 가진 구성으로, 진정한 이중 주어문이 아니다.

(12) (65ㄴ) 원문의 ‘절대유가인(絶代有佳人)’이 ‘一代예 그츤 됴 사미 잇니’와 같이 번역되었다. 이 번역에서는 ‘一代예 그츤 됴 사미’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일대(一代)에 그친’은 ‘여러 대에 걸치지 못하고 일대에 그친 좋은 사람이 있나니’와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는 ‘절대유가인(絶代有佳人)’에 대한 번역으로, ‘절대’는 ’대를 끊는‘ 의미가 아니라, ‘견주거나 맞설 만한 것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이 구절은 ‘견주거나 맞설 만한 사람이 없는 좋은 사람이 있나니’와 같이 번역되고 해석되어야 한다.

(13) (66ㄱ~ㄴ) 원문의 ‘재산천수청(在山泉水淸)’이 ‘뫼해 이서 므리 더니’와 같이 번역되었다. ‘이서는’은 ‘이셔는’이 되어야 한다. ‘재(在, 有)’의 의미로는 ‘이시[有]-+-어(연결 어미)+는(보조사)’와 같은 구조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14) (66ㄴ) 원문의 ‘천한취수박(天寒翠袖薄) 일모의수죽(日暮倚脩竹)’이 ‘하히 칩고 프른 매 열우니  져믈어 긴 대 지여 샛도다’와 같이 번역되었다. 번역 부분의 서술어 ‘샛도다’에서 ‘샛-’에 해당하는 원문의 한자를 찾을 수 없다. ‘지여 샛도다’는 한자 ‘의(倚, 의지하다)’의 번역이므로, ‘지여 샛다’는 ‘지여 셋다’로 ‘지고 서 있다’를 뜻하는 것으로 본다.

3. 희귀어 또는 특이어

(1) (35ㄱ) 원문 ‘란후수귀득(亂後誰歸得)’에 대한 번역이 ‘亂 後에 뉘 도라오 뇨’와 같이 되어 있다. 여기서 ‘난(亂)’은 ‘난(亂)+-(동사 파생 접미사)-+-ㄴ(관형사형 어미)’과 같이 분석된다. 이는 ‘난(亂)다’와 같은 임시어의 성립을 의미한다. 그 의미는 ‘난(亂)이 일어나다’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2) (35ㄱ) 두시 원문 ‘여서유재벽(汝書猶在壁) 여첩이사방(汝妾已辭房)’을 언해 담당자는 ‘네 글워리 오히려 매 고잿니 네 妾이 셔 房 말오 가도다’와 같이 번역하였다. 언해의 ‘매’는 ‘애’로 ‘’은 지금은 없어진 ‘벽’이란 고유어를 보인다. 여기서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房 말오’의 ‘말-’이 ‘사양(辭讓)하-’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현대어로는 ‘마다하-’와 같은 말에 해당한다.

(3) (35ㄴ) 두시 원문의 ‘수두방아상(垂頭傍我床)’이 ‘내 平床 바라 니다’와 같이 번역되었다. 언해문의 ‘바라’는 ‘방(傍)’의 번역으로, 〈금성국어대사전〉에서는 ‘바라’를 부사로 ‘의지하여. 곁따라’와 같이 풀이하고 있다. ‘바라’가 이 예에서는 ‘평상(平床)을’과 같이 대격을 지배하는 것이 특이하고, 때로는 ‘ 관산(關山)애 바라’와 같이 처격(부사격) 조사 ‘애’를 지배하기도 한다. 혹시 ‘바라’가 그 활용이 극히 제한된 ‘*바라다’란 동사가 아닐까 의심해 본다.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엇뎨  시내 우희셔 나날 샬깃 門 바라셔 놀 니리오’〈杜詩(초) 6:44ㄴ〉와 같이 ‘바라셔’와 같은 형태도 나타난다.

(4) (35ㄴ~36ㄱ) 원문의 ‘봉거신감전(烽擧新酣戰)’이 ‘烽火ㅣ 드니 새라 흐드리 사호노소니’와 같이 번역되었다. 여기서 ‘새라’는 ‘새로’의 뜻으로 해석된다. 흔히 ‘새라’는 ‘새로’와 그 뜻이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 나타나는 ‘새라’가 거의 유일한 예라는 것이다. 중세어 문헌에서 ‘새라’의 다른 쓰임을 확인하기 어렵다. 한편, ‘흐드리’는 ‘흐드러지게’를 뜻하는 말인데. ‘*흐들-’이 가상적 어근의 성격을 띤다. 그런데 이것이 유일한 예이고, 다른 문헌에서 같은 예를 확인하기 어렵다.

(5) (37ㄱ) 원문의 ‘송여만행제(送汝萬行啼)’를 언해에서는 ‘너를 보내노라 므를 여러 가로로 흐르게 우노라’와 같이 번역하였다. 여기서 ‘가로로’는 ‘갈래로’와 같이 풀이된다(이조어사전 참조). 그러나 고어 자료에서 ‘가로’가 ‘갈래’의 의미로 쓰인 다른 예를 찾기 어렵다. 같은 원문에 대한 『중간본 두시언해』의 번역에 나타날 뿐이다.

(6) (37ㄴ~38ㄱ) 원문의 ‘제고금해반(‘諸姑今海畔)’이 ‘여러 아미 이제 바  갯고’와 같이 번역되었다. 여기서 ‘바(바다의)’은 ‘바[海]’에 관형격 조사 ‘ㅅ’이 연결될 때 ‘바’의 받침 ‘ㄹ’이 탈락하고 ‘ㅅ’이 받침으로 적힌 것으로도 볼 수 있고, 역사적으로 ‘바’에서 이미 ‘ㄹ’ 탈락하여, ‘바’가 된 뒤에 관형격 조사 ‘ㅅ’이 연결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어느 해석이 정확한 것인지 알기 어려운 문제가 있으나, 『두시언해』 중간본에도 ‘바’형이 지배적으로 나타나므로, 여기서는 ‘바’에서 ‘ㄹ’이 떨어진 뒤에 ‘ㅅ’이 붙은 것으로 본다.

(7) (53ㄱ) 원문의 ‘란봉유쇄핵(鸞鳳有鎩翮)’이 ‘鸞鳳(란봉)이 개 야듀미 잇고’와 같이 번역되었다. 언해의 ‘야듀미’는 ‘ *[傷, 鎩(쇄)]-+-y(조음소)-+-아(연결 어미)#디[化]-+-우(확실성의 양태 선어말 어미)-+-ㅁ(명사형 어미)+이(주격 조사)’와 같이 분석된다. 여기서 ‘*[傷, 鎩(쇄)].’는 ‘상하다, 잘리다, 부서지다’와 같은 뜻을 가지는 가상적 어근이다. 현대어에 쓰이는 ‘(옷이) 해지다’와 같은 말의 어원으로 여겨진다.

〈해제 참고문헌〉

국어국문학 편찬위원회 편(1994),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두산동아 편(1996), 『두산세계대백과사전』, 두산동아.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 편(1976/1986:중판), 『국어국문학사전』, 신국문화사.

안병희(1997), “두시언해의 서지적 고찰”, 『한국문화』 19,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21. [참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1998), 109-131.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오구라[小倉進平] 저, 고노[河野六郞] 보주(1964), 『增訂補注 朝鮮語學史』, 刀江書店.

오구라[小倉進平](1940), 『朝鮮語學史』, 刀江書店.

윤석민 ․ 권연주 ․ 유승섭(2006), 『쉽게 읽는 중간 두시언해』, 도서출판 박이정.

윤용선(1993), “두시언해”, 『국어사자료와 국어학의 연구』, 문학과 지성사, 173-186.

이기문(1972a), 『국어사 개설; 개정판』, 민중서관/태학사.

이병주(1958), 『두시언해 비주』, 통문관.

이의강(2006), 『두시언해 연구』, 도서출판 다운샘.

이종묵(1998), “두시의 언해 양상”,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1998), 144-175.

이현희 ․ 이호권 ․ 이종묵 ․ 강석중(1997a), 『두시와 두시언해 6』, 신구문화사.

이현희 ․ 이호권 ․ 이종묵 ․ 강석중(1997a), 『두시와 두시언해 7』, 신구문화사.

이호권(2002), “두시언해 중간본의 판본과 언어에 대한 연구”, 『진단학보』 96, 진단학회, 135-164.

이호권(n.d.), “두시언해 해제”, 디지털한글박물관.

임홍빈(2014),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임홍빈(2015),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8(상),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재호(1975), 『두시언해의 국어학적 연구』, 이우사,

차주환(1981), “두보의 시세계”, 『동아문화』 19, 서울대 동아문화연구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1998), 『두시와 두시언해 연구』, 태학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성무(韓成武) ․ 장지민(張志民) (1997), 『杜甫詩全譯』, 河北人民出版社.

이전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