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오른쪽)의 『효경』 한 책은, 곧 공자와 증자가 주고받은 요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거친 뒤 자못 잘못된 판본들이 나타났으므로 송(宋)나라의 대석학인 주문공 선생에 와서 비로소 고문(古文)을 취하여 저본을 삼아 『효경』의 잘못을 바로 잡았다. 차례도 간편하게 엮었다. 그런 뒤에 경전으로서의 기틀을 잡았다. 동계형(董季亨)이 주문공을 따라서 주석을 붙였으니, 그 뜻은 더욱 명백해졌고 독자는 진실로 잘 읽을 수 있었다. 그 말을 인하여 하나 됨을 구하였고 같은 마음으로 인하여 그럴 개연성을 미루어 짐작하였다. 집과 나라와 천하의 도리는 다 여기에 있다. 안타깝다. 효경의 간행이 적었기에 궁벽진 고을이나 마을에서는 이 책을 얻어 보기가 어렵다. 나는 최근에 안천(按泉)에 갔다가 우연하게 진사 채개보(蔡介甫)의 집에서 『효경』의 구본을 얻게 되었다. 드디어 일하는 공인에게 명하여 새겨 전하여 사방으로 널리 펴도록 하였다. 집집으로 전하고 사람마다 이를 외우게 하여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두터이 하였다. 무릇 인효의 도리를 널리 혹은 아주 적게라도 풍속 교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성화 22년(1486) 병오년 가을 9월 갑자일에 진사 통봉대부 복건 등에게 하사하였다. 이어 포정사사에 널리 펴도록 하였다. 우포정사 순안 서관 삼가 적다.
Ⓒ 역자 | 정호완 / 2014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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