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효경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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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經) 1장
  • (고문 제1장) 개종명의(開宗明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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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제1장) 개종명의(開宗明義)


1ㄱ

孝효經경諺언解 주001)
효경언해(孝經諺解):
이 책의 제목을 풀이한 것인데, ‘언해’라는 말을 제목으로 붙인 것은 『정속언해(正俗諺解)』(1518)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언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니, ‘언문으로 풀이한 책’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긴 것이다. 언해문에서는 ‘효(孝)’란 어버이를 잘 섬김, ‘경(經)’은 성인이 지은 글월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문 원문에서도 한자 독음을 당시에 맞게 성실히 표기하였고, 입겿도 우리말처럼 표기한 것은 이 책이 초기 학습자를 위한 교과서 구실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언해문도 사전적 풀이를 성실히 해 줌으로써 초기 학습자의 지식을 넓히고자 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버이 잘 셤김을 孝효ㅣ라 고 셩인이 신 주002)
셩인이 신:
성인이 지으신. ‘신’의 기본형은 ‘갈다’이고, 여기에 매개모음 ‘--’와 주체존대 선어말어미 ‘-시-’가 통합된 형태다. ‘성인’으로 굳어져 쓰인다. 일종의 발음 용이화에 따른 음운의 변동이다.
글월을 經경이라 니라
Ⓒ 역자 | 홍문관 / 1589년(선조 22)

효경언해
어버이를 잘 섬기는 것을 효(孝)라 하고, 성인이 지으신 글을 경(經)이라 한다.
Ⓒ 역자 | 정호완 / 2014년 3월 15일

仲듕尼니ㅣ 閒한居거ㅣ어시 曾증子ㅣ 侍시坐좌ㅣ러시니 子ㅣ 曰왈 參아 先션王왕이 有유至지德덕要요道도샤 以이順슌天텬下하시니 民민用용和화睦목야 上샹下하ㅣ 無무怨원더니 汝여ㅣ 知디之지乎호아

仲듕尼니【孔공子ㅅ 字ㅣ시니라】 주003)
중니(仲尼)ㅣ:
중니가. 중니는 공자의 자(字)임. ‘-ㅣ’는 주격조사로서 모음으로 끝이 나는 윗 음절 아래에 오는 주격조사다. 주격조사 ‘-이’가 모음으로 끝난 말 뒤에 쓰이던 딴이(ㅣ)의 모습이다. 중세 국어 시기의 주격 조사에는 ‘-이/-ㅣ/-∅’가 있었다. 이들은 선행 체언의 음운 환경에 따라 상보적으로 쓰였다. 대왕이, 아들이, 원리 에서처럼 자음 뒤에서는 ‘-이’가 쓰였고, 선조ㅣ 같이 모음 뒤에서는 -ㅣ가 쓰였다. -ㅣ모음 뒤에서는 새 에서처럼 ‘∅’가 실현되었다. 근대 국어 시기에는 16세기 중엽에 등장한 새로운 주격 조사 ‘-가’가 쓰이기 시작했다. ‘-가’는 ‘배가’ 에서와 같이 모음 뒤에서 쓰였다. ‘긔력이’와 같이 자음 뒤에서 ‘-이’가 쓰이는 것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배-’에서는 여전히 주격 조사 ‘∅’가 쓰임을 통해 ‘-가’의 쓰임이 완전히 자리 잡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격조사 ‘-가’는 근대 국어 시기를 거치면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현대 국어에서는 선행 체언이 자음일 때 ‘-이’가, 모음일 때는 ‘-가’가 주격 조사로 쓰이고 있다. ‘-은’은 주격 조사가 아니라 화제를 표시하는 주제격 보조사다. 귤은 노랗다에서 주격 조사 ‘-이’가 생략되었고 그 자리에 보조사 ‘-은’이 쓰여서 주격 조사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귤은 ‘-은’ 이 쓰이기 전부터 주어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보조사는 격을 표시하지 않으며 단지 놓이는 자리의 격을 가지는 것이다. 만약 ‘귤은 노랗다’에 쓰인 ‘-은’을 주격 조사로 인정한다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에 쓰인 보조사 ‘-은’과 기능이 달라진다. 이는 한 문법 형태소가 두 가지의 기능을 갖게 되어 문제가 된다. ‘-는’ 은 구정보에 쓰이고 주격 조사 ‘-이/가’는 신정보에 쓰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누가 먹었니?’는 화자가 모르는 새 정보를 요구하는 질문으로 청자는 ‘-이/가’를 사용하여 행위의 대상을 알려 주어야 한다.
한가히 겨시거 曾증子【孔공子ㅅ 弟뎨子ㅣ라】ㅣ 뫼와 안자시

1ㄴ

니 子【뎨 스승을 존칭 말이니 孔공子 일롬이라】ㅣ 샤 參【曾증子 일홈이라】아 先션王왕【녜 어딘 님금이시니라】이 지극 德덕과 종요로온 道도 두샤 天텬下하를 順슌시니【텬하읫 사의 어딘 을 조차셔 침이라】셩이 화며 친야 우히며 아래 怨원리 업더니 네 아다

〈제1장 개종명의(開宗明義) 주004)
제1장 개종명의(開宗明義):
처음 여는 뜻을 밝힘. 『효경언해』는 『효경대의(孝經大義)』를 언해한 것인데, 『효경대의』는 주희의 『효경간오(孝經刊誤)』의 체재를 따랐다. 그런데 『효경간오』는 공안국(孔安國)이 전(傳)을 붙인 『고문효경』을 재구성한 것으로써 이 장(章) 나눔은 『효경언해』에는 없는 것이지만, 독자의 편의를 위해 『고문효경』에서 붙인 장 이름을 그대로 붙여 보인다.
중니【공자의 자(字)이시다.】가 한가롭게 계시거늘 그때 증자【공자의 제자이다.】가 〈공자를〉 모시고 앉아 있었는데, 자(子)【제자가 스승을 높이는 말이니 공자를 일컫는 말이다.】께서 말씀하시기를, “삼【증자의 이름이다.】아, 선왕【옛날의 어진 임금이시다.】이 지극한 덕과 종요로운 도리를 지니시어 이로써 세상을 순조롭게 하셨으니,【세상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좇아서 가르침이라.】백성들이 이로써 화목하여 위와 아래가 서로 원망함이 없었으니, 네가 이를 아느냐?” 하셨다.

曾증子ㅣ 辟피席셕 曰왈 參이 不블敏민이어니 何하足죡以이知디之지리잇고

曾증子ㅣ 돗글 피야 주005)
돗글 피야:
돗자리를 피하여.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돗글’의 단독형은 ‘돗’인데 여기에 목적격 조사 ‘-을’과 통합됨에 있어 기역이 곡용 어미로 끼어든 형이다. 말하자면 기역종성체언의 곡용형이다. 이른바 ㄱ종성체언이다. ‘돗’처럼 시옷으로 끝이 나는 대부분의 명사는 기역 곡용으로 조사와의 결합과정에서 자동적으로 끼어드는 특수곡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삿, 낫, 갓 등). 곡용이란 체언에 조사가 통합될 때, 일어나는 형태소의 변화를 이른다. 활용에 대응되는 문법용어다. 15세기에 쓰이던 중세국어 가운데 체언(명사, 수사, 대명사)과 조사가 통합될 때, 언어적인 조건 없이 ㅎ이나 ㄱ이 덧붙는 낱말들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ㅎ의 경우, ‘하늘, 바다, 나라, 안’ 따위가 있다. 예를 들어 ‘바다’란 명사에 조사 ‘-이’가 붙는 경우 ‘바다이’가 되어야 마땅하다. ‘바다’는 ㅎ종성체언이므로 ‘바다+ㅎ+이’가 되어 ‘바다히’라고 썼다. 이런 영향이 현재 쓰이는 말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안, 암/수, 머리, 살’이 바로 그런 낱말들이다. 예를 들어 안팎(안ㅎ+밖), 암탉(암ㅎ+닭), 수평아리(수ㅎ+병아리), 머리카락(머리ㅎ+가락), 살코기(살ㅎ+고기), 집우(ㅎ)〉집웅〉지붕 등이 있다. 마찬가지로 ㄱ의 경우, ‘나모, 구무, 녀느’ 등이 그렇다. 주격조사 ‘-이’가 통합될 때, ‘나모 +-이’가 되어야 하나 ‘남기’로 실현된다. 그러면 모든 격조사와의 통합에 그러한가. ‘나모와’는 그렇지 않다. 이런 경우를 비자동 교체라 한다. 형태소의 자동 교체에 대응되는 용어다.
샤 參이 敏민티 못거니 엇디 足죡히 알 리 잇고 주006)
리잇고:
~(할) 리 있겠습니까. 정음 구결로도 많이 쓰는 말이지만, 언해문에서도 그대로 표기하였다. ‘리(理)’는 까닭이나 이치의 뜻을 가진 의존명사로서 ‘리#있+-고’로 분석된다.

증자가 자리를 피하며 말하기를, “제[參]가 민첩하지 못하오니 어찌 족히 그것을 알 리 있겠습니까?” 하였다.

2ㄱ

子ㅣ 曰왈 夫부孝효 德덕之지本본也야ㅣ라 敎교之지所소由유生이니

子ㅣ 샤 孝효 德덕의 근본이라 침의 말암아 나 배니 주007)
말암아 나 배니:
원인이 생겨나는 것이니. ‘말암아’의 기본형은 ‘말암다’이고 활용형이 제한적으로 쓰이는 불구동사다. 불완전동사라고도 이른다. 정상적으로 활용되는 완전 동사가 갖는 활용형을 다 갖지 못하므로 불완전한 계열을 갖게 됨을 이른다. 말하자면, ‘데리다’의 ‘데리-’라는 불완전동사는 ‘데리고·데려·데리러’ 정도의 활용형이 있어서 매우 불완전한 계열을 이룬다. ‘말암아’의 기본형 ‘말암다’의 전차형은 ‘말다’인데 음운탈락에 따라서 ‘말암다’가 된 것이다. 단어 형성은 ‘말’에 ‘삼다’가 합성되어 이루어진 낱말로 보인다. ‘말’란 ‘마르마’에서 온 말로서 명치 같이 치명적인 몸의 조직을 이른다. 인도의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는 몸의 압박점을 마르마라고 하고, 민감하고 치명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압박점은 107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 활용된다. 마르마는 매우 작은 것부터 매우 큰 것까지 신체에 모든 부분에 걸쳐 있으며 마르마가 잘 다루어졌을 때, 심신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마의 상태는 아유르베다에서 진단처이자 치유점이다. 마르마 자리에 독소, 부정적 정서의 힘이 머문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서 이런 힘이 여러 해 동안 머무는 경우도 있다. 요가 아사나는 중요한 마르마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사지, 관절, 척추에서 보유하는 힘에 영향을 준다. 마르마는 명상, 만트라, 프라나야마, 다양한 요가 방법에 의해 조절될 수 있다. 정신과 영적인 힘을 기르기 위하여 원용되기도 한다. 그러면 ‘*삼다〉다〉암다’와 같이 소리가 약화되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음운탈락이라 하겠다. 음운탈락이란 발음을 쉽게 내기 위하여 일어나는 소리의 달라짐이다.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해서 말을 할 때, 어떤 소리가 줄어드는 현상을 음운탈락이라 한다. 이러한 음운에는 자음(ㄱ, ㄴ, ㄷ)과 모음(ㅏ, ㅑ, ㅓ)이 있다. 자음을 생략하면 자음탈락이고, 모음을 생략하면 모음탈락이 된다. 아드님(아들님), 하느님(하느님), 나날이(날날이) 같은 것이 자음탈락이다. 가라(가아라), 서라(서어라) 와 같은 현상이 모음탈락이다. 동음 생략은 넓은 의미에서 음운탈락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자음이 연속될 때 그 중에 하나를 생략하거나 같은 모음이 연속될 때 그 중에 하나를 생략하는 현상을 말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효는 덕의 근본이어서 가르침의 말미암아 생겨나는 바니,

復복坐좌라 吾오ㅣ 語어汝여호리라 身신體톄髮반(발)膚부 受슈之지父부母모ㅣ라 不블敢감毁훼傷샹이 孝효之지始시也야ㅣ오 立립身신行道도야 揚양名명於어後후世셰야 以이顯현父부母모ㅣ 孝효之지終죵也야ㅣ니 夫부孝효 始시於어事親친이오 中듕於어事君군이오 終죵於

2ㄴ

어立립身신이니라
Ⓒ 필자 | 공안국 /

復복야 안라 내 너려 닐오리라 몸과 體톄【四體톄니 손발을 닐음이라】 주008)
체(體)과:
몸과. 사체(四體)와. 사지(四肢)와. 손발과.
주009)
사체(四體)니 손발을 닐음이라:
사체를 가리키니 손발을 이르는 말이다. ‘-이라’는 서술격조사로서 체언을 용언으로 만드는 접사로 볼 수 있다. 서술격 조사 ‘이다’는 활용이라는 형태적 특성보다 동사나 형용사가 서술어의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 서술격 조사는 조사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기능적 특성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보기로써, ‘선생이다, 선생이므로, 선생이니까, 선생이라, 선생이니, 선생이로소이다’에서처럼 ‘이다’는 용언처럼 활용을 한다. 이는 다른 조사와는 다른 형태적 특성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 ‘이다’를 다른 문법범주로 재해석하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것은 결론부분에 가서 언급할 것이지만 미리 말하자면 ‘이다’를 ‘지정사’로 지정해 별개의 문법범주로 보자는 것이다. 조사의 특수한 형태로 보는 현행 ‘서술격조사’이론도 타당한 면이 있지만 여기서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지정사론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논의되어 온 ‘이다’ 논쟁에 대한 합리적인 체계 설정이 절실하다.
머리터럭과 은 父부母모 밧온 거시라 敢감히 헐우며 여리디 아님이 주010)
감(敢)히 헐우며 여리디 아님이:
감히 헐며 상하지 않게 함이. ‘여리디’의 기본형은 ‘야리다’인데 여기에 부사형 어말어미 ‘-디’가 통합된 형임. 구개음화를 거쳐서 ‘-디〉-지’로 소리가 변동하였다. 구개음화 현상은 국어사로 볼 때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어에서부터 먼저 시작하여 북부지역어로 번져 나아간 발음경제에 따른 소리의 달라짐이다. 유희(柳僖)의 『언문지(諺文志)』에서는 ‘ㄷ(ㅌ)’음의 보기를 들고 있다. 댜(탸)가 쟈(챠)보다 훨씬 소리 내기가 어려워 입천장소리되기가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그의 스승이었던 정동유(鄭東愈)의 고조 형제의 이름 가운데 디화(知和)가 있고 지화(至和)가 있었다고 함을 예로 든 것을 보면 적어도 유희 이전의 시기에는 구개음화가 널리 쓰이지 않고 있음을 미루어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평안도 같은 관서지방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북한 지역어에서는 전기불을 ‘뎐기불’로 발음하여 흔히 ‘뎡거쟝에 뎐기불이 번뎍번뎍 하더라’는 다소 희화적인 예를 들기도 한다. 국어에서 본디 구개음이 아닌 ‘ㄷ, ㅌ’이 ‘ㅣ’앞에서 구개음인 ‘ㅈ, ㅊ’으로 바뀌는 음운현상을 구개음화라 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되나, 사실은 복잡한 음운론적 층위로 구성되어 그 위상을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음운과정이다. 구개음화라는 음운현상에 대하여 통시론적 접근을 통하여 국어사에서의 구개음화의 시기와 공간의 자리매김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어사에서 구개음화의 등장 시기는 크게 두 가설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인 견해로 구개음화 하면 근대국어의 음운현상이라는 것이다(이기문). 그는 근대국어에서 가장 두드러진 음운변화의 하나가 구개음화라는 주장을 앞서 밝힌 유희의 『언문지』와 문헌자료를 토대로 밝히고 있다. 현재 전하는 자료에서 구개음화의 예는 18세기 초의 『왜어유해』에 처음 보이며, 『동문유해』의 예들은 그 완성을 가늠하게 것으로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구개음화의 시기를 17세기와 18세기의 교체시기로 상정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구개음화의 시기를 훨씬 앞당겨 잡은 주장이 있다(박병채). 고대 삼국어의 지명 자료에서 일본어나 몽고어와의 음운대응으로 미루어 고구려어의 일부가 어중에서 ㄷ구개음화를 경험하였고, 신라어는 어두에서도 구개음화를 겪었는데, 그에 비해 백제어는 표기 체계의 뒤섞임으로 미루어 볼 때 병존적인 성격을 띠었다고 본다. 앞의 두 가설은 구개음화의 시기 설정에서 고대국어와 근대국어라는 커다란 거리를 보인다. 이는 방언적인 차이로 보아 이미 고대국어시기에서도 일부 지역어에서는 구개음화를 겪은 소리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쉬문을 다가 다 다딜어 여리고[把水門都衝壞了]〈박통사번 상:9〉.
孝효의 비로솜이오 몸을 셰워 道도를 行야 일홈을 後후世셰예 베퍼 父부母모를 나타나게 홈이 孝효의 이니 孝효 어버이 셤김애 비릇고 주011)
효(孝) 어버이 셤김애 비릇고:
효란 어버이를 섬김에서부터 비롯되고. 『삼국유사』 효선편에 보면. 손순(孫順)이 노모를 지성으로 모시어 마침내 임금으로부터 상을 받고 마을 이름도 효양리라 하여 어버이의 이름을 드높이는 효행의 보기를 들고 있다. 그 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손순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아버지는 학산(鶴山)이라 했다. 그의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아내와 함께 남의 집에 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다가 어렵지만 정성껏 늙은 어머니를 이바지했다. 어머니는 이름을 운오(運烏)라 했다. 손순에게는 어린 아이가 있었으니 매양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므로 손순은 이를 민망히 여겨 그 아내에게 의논하였다.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얻기 어렵소. 이제 아이가 저렇게 어머니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굶주림이 얼마나 심하겠소? 차라리 이 아이를 땅에 묻어 버려서 어머니를 배부르게 해 드리는 것이 좋겠소.” 손순은 마침내 아이를 들쳐 업고 취산(醉山) 북쪽들로 가서 땅을 팠다. 그곳에서 문득 기이한 돌종이 나왔다. 손순 내외는 놀라고 이상히 여겨 잠시 나무 위에 걸고 그 종을 쳐보았더니 그 소리가 은은하고 아름다웠다. 아내가 말하기를, “이 이상한 돌종을 얻은 것은 아이의 복이니 도로 데리고 갑시다.” 하니, 남편도 역시 그렇게 하자고 동의를 했다. 부부는 아이를 업고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종을 들보에 달고 두드리니 그 소리가 대궐에까지 들렸다. 마침 궐에서 흥덕왕이 그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고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서쪽 교외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더없이 맑고 멀리 들리니 속히 조사해보라.” 했다. 임금의 궁리가 그 집에 가서 조사해 보고 사실을 자세히 아뢰니, 왕은, “옛날 중국의 곽거(郭巨)는 효행으로 아들을 파묻을 때 하늘이 감동하여 금 솥을 내렸다는데, 지금 손순이 아이를 묻으려 하자 땅에서 석종이 솟아났으니, 이 두 효도는 천지에 똑같은 본보기로다.” 하면서, 집과 해마다 곡식 50석을 주어 그 지극한 효성을 표창했다(삼국유사 권5, 손순매아(孫順埋兒) 참조)
님금 셤김애 가온대오 몸 셰옴애 니라
Ⓒ 역자 | 홍문관 / 1589년(선조 22)

다시 자리로 앉아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마. 몸과 체(體)【사체(四體)이니 손발을 이르는 것이다.】와 머리터럭과 살은 어버이로부터 받은 것이매 감히 이를 헐어 상하지 않게 함이 효도의 비롯됨이요, 출세를 하고 도리를 행하여 그 이름을 후세에 날림으로써 어버이의 이름을 드러냄이 효도의 마침이다. 효란 어버이 섬김에서부터 비롯하고, 임금을 섬김이 가운데요, 몸 세움[立身]에서 마무리된다.
Ⓒ 역자 | 정호완 / 2014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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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효경언해(孝經諺解):이 책의 제목을 풀이한 것인데, ‘언해’라는 말을 제목으로 붙인 것은 『정속언해(正俗諺解)』(1518)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 이전까지는 언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니, ‘언문으로 풀이한 책’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긴 것이다. 언해문에서는 ‘효(孝)’란 어버이를 잘 섬김, ‘경(經)’은 성인이 지은 글월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문 원문에서도 한자 독음을 당시에 맞게 성실히 표기하였고, 입겿도 우리말처럼 표기한 것은 이 책이 초기 학습자를 위한 교과서 구실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언해문도 사전적 풀이를 성실히 해 줌으로써 초기 학습자의 지식을 넓히고자 한 것을 볼 수 있다.
주002)
셩인이 신:성인이 지으신. ‘신’의 기본형은 ‘갈다’이고, 여기에 매개모음 ‘--’와 주체존대 선어말어미 ‘-시-’가 통합된 형태다. ‘성인’으로 굳어져 쓰인다. 일종의 발음 용이화에 따른 음운의 변동이다.
주003)
중니(仲尼)ㅣ:중니가. 중니는 공자의 자(字)임. ‘-ㅣ’는 주격조사로서 모음으로 끝이 나는 윗 음절 아래에 오는 주격조사다. 주격조사 ‘-이’가 모음으로 끝난 말 뒤에 쓰이던 딴이(ㅣ)의 모습이다. 중세 국어 시기의 주격 조사에는 ‘-이/-ㅣ/-∅’가 있었다. 이들은 선행 체언의 음운 환경에 따라 상보적으로 쓰였다. 대왕이, 아들이, 원리 에서처럼 자음 뒤에서는 ‘-이’가 쓰였고, 선조ㅣ 같이 모음 뒤에서는 -ㅣ가 쓰였다. -ㅣ모음 뒤에서는 새 에서처럼 ‘∅’가 실현되었다. 근대 국어 시기에는 16세기 중엽에 등장한 새로운 주격 조사 ‘-가’가 쓰이기 시작했다. ‘-가’는 ‘배가’ 에서와 같이 모음 뒤에서 쓰였다. ‘긔력이’와 같이 자음 뒤에서 ‘-이’가 쓰이는 것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배-’에서는 여전히 주격 조사 ‘∅’가 쓰임을 통해 ‘-가’의 쓰임이 완전히 자리 잡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격조사 ‘-가’는 근대 국어 시기를 거치면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현대 국어에서는 선행 체언이 자음일 때 ‘-이’가, 모음일 때는 ‘-가’가 주격 조사로 쓰이고 있다. ‘-은’은 주격 조사가 아니라 화제를 표시하는 주제격 보조사다. 귤은 노랗다에서 주격 조사 ‘-이’가 생략되었고 그 자리에 보조사 ‘-은’이 쓰여서 주격 조사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귤은 ‘-은’ 이 쓰이기 전부터 주어의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보조사는 격을 표시하지 않으며 단지 놓이는 자리의 격을 가지는 것이다. 만약 ‘귤은 노랗다’에 쓰인 ‘-은’을 주격 조사로 인정한다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에 쓰인 보조사 ‘-은’과 기능이 달라진다. 이는 한 문법 형태소가 두 가지의 기능을 갖게 되어 문제가 된다. ‘-는’ 은 구정보에 쓰이고 주격 조사 ‘-이/가’는 신정보에 쓰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누가 먹었니?’는 화자가 모르는 새 정보를 요구하는 질문으로 청자는 ‘-이/가’를 사용하여 행위의 대상을 알려 주어야 한다.
주004)
제1장 개종명의(開宗明義):처음 여는 뜻을 밝힘. 『효경언해』는 『효경대의(孝經大義)』를 언해한 것인데, 『효경대의』는 주희의 『효경간오(孝經刊誤)』의 체재를 따랐다. 그런데 『효경간오』는 공안국(孔安國)이 전(傳)을 붙인 『고문효경』을 재구성한 것으로써 이 장(章) 나눔은 『효경언해』에는 없는 것이지만, 독자의 편의를 위해 『고문효경』에서 붙인 장 이름을 그대로 붙여 보인다.
주005)
돗글 피야:돗자리를 피하여.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돗글’의 단독형은 ‘돗’인데 여기에 목적격 조사 ‘-을’과 통합됨에 있어 기역이 곡용 어미로 끼어든 형이다. 말하자면 기역종성체언의 곡용형이다. 이른바 ㄱ종성체언이다. ‘돗’처럼 시옷으로 끝이 나는 대부분의 명사는 기역 곡용으로 조사와의 결합과정에서 자동적으로 끼어드는 특수곡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삿, 낫, 갓 등). 곡용이란 체언에 조사가 통합될 때, 일어나는 형태소의 변화를 이른다. 활용에 대응되는 문법용어다. 15세기에 쓰이던 중세국어 가운데 체언(명사, 수사, 대명사)과 조사가 통합될 때, 언어적인 조건 없이 ㅎ이나 ㄱ이 덧붙는 낱말들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ㅎ의 경우, ‘하늘, 바다, 나라, 안’ 따위가 있다. 예를 들어 ‘바다’란 명사에 조사 ‘-이’가 붙는 경우 ‘바다이’가 되어야 마땅하다. ‘바다’는 ㅎ종성체언이므로 ‘바다+ㅎ+이’가 되어 ‘바다히’라고 썼다. 이런 영향이 현재 쓰이는 말에도 나타나고 있는데 ‘안, 암/수, 머리, 살’이 바로 그런 낱말들이다. 예를 들어 안팎(안ㅎ+밖), 암탉(암ㅎ+닭), 수평아리(수ㅎ+병아리), 머리카락(머리ㅎ+가락), 살코기(살ㅎ+고기), 집우(ㅎ)〉집웅〉지붕 등이 있다. 마찬가지로 ㄱ의 경우, ‘나모, 구무, 녀느’ 등이 그렇다. 주격조사 ‘-이’가 통합될 때, ‘나모 +-이’가 되어야 하나 ‘남기’로 실현된다. 그러면 모든 격조사와의 통합에 그러한가. ‘나모와’는 그렇지 않다. 이런 경우를 비자동 교체라 한다. 형태소의 자동 교체에 대응되는 용어다.
주006)
리잇고:~(할) 리 있겠습니까. 정음 구결로도 많이 쓰는 말이지만, 언해문에서도 그대로 표기하였다. ‘리(理)’는 까닭이나 이치의 뜻을 가진 의존명사로서 ‘리#있+-고’로 분석된다.
주007)
말암아 나 배니:원인이 생겨나는 것이니. ‘말암아’의 기본형은 ‘말암다’이고 활용형이 제한적으로 쓰이는 불구동사다. 불완전동사라고도 이른다. 정상적으로 활용되는 완전 동사가 갖는 활용형을 다 갖지 못하므로 불완전한 계열을 갖게 됨을 이른다. 말하자면, ‘데리다’의 ‘데리-’라는 불완전동사는 ‘데리고·데려·데리러’ 정도의 활용형이 있어서 매우 불완전한 계열을 이룬다. ‘말암아’의 기본형 ‘말암다’의 전차형은 ‘말다’인데 음운탈락에 따라서 ‘말암다’가 된 것이다. 단어 형성은 ‘말’에 ‘삼다’가 합성되어 이루어진 낱말로 보인다. ‘말’란 ‘마르마’에서 온 말로서 명치 같이 치명적인 몸의 조직을 이른다. 인도의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에서는 몸의 압박점을 마르마라고 하고, 민감하고 치명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압박점은 107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위해 활용된다. 마르마는 매우 작은 것부터 매우 큰 것까지 신체에 모든 부분에 걸쳐 있으며 마르마가 잘 다루어졌을 때, 심신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마의 상태는 아유르베다에서 진단처이자 치유점이다. 마르마 자리에 독소, 부정적 정서의 힘이 머문다고 본다. 경우에 따라서 이런 힘이 여러 해 동안 머무는 경우도 있다. 요가 아사나는 중요한 마르마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사지, 관절, 척추에서 보유하는 힘에 영향을 준다. 마르마는 명상, 만트라, 프라나야마, 다양한 요가 방법에 의해 조절될 수 있다. 정신과 영적인 힘을 기르기 위하여 원용되기도 한다. 그러면 ‘*삼다〉다〉암다’와 같이 소리가 약화되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음운탈락이라 하겠다. 음운탈락이란 발음을 쉽게 내기 위하여 일어나는 소리의 달라짐이다.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해서 말을 할 때, 어떤 소리가 줄어드는 현상을 음운탈락이라 한다. 이러한 음운에는 자음(ㄱ, ㄴ, ㄷ)과 모음(ㅏ, ㅑ, ㅓ)이 있다. 자음을 생략하면 자음탈락이고, 모음을 생략하면 모음탈락이 된다. 아드님(아들님), 하느님(하느님), 나날이(날날이) 같은 것이 자음탈락이다. 가라(가아라), 서라(서어라) 와 같은 현상이 모음탈락이다. 동음 생략은 넓은 의미에서 음운탈락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자음이 연속될 때 그 중에 하나를 생략하거나 같은 모음이 연속될 때 그 중에 하나를 생략하는 현상을 말한다.
주008)
체(體)과:몸과. 사체(四體)와. 사지(四肢)와. 손발과.
주009)
사체(四體)니 손발을 닐음이라:사체를 가리키니 손발을 이르는 말이다. ‘-이라’는 서술격조사로서 체언을 용언으로 만드는 접사로 볼 수 있다. 서술격 조사 ‘이다’는 활용이라는 형태적 특성보다 동사나 형용사가 서술어의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 서술격 조사는 조사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기능적 특성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보기로써, ‘선생이다, 선생이므로, 선생이니까, 선생이라, 선생이니, 선생이로소이다’에서처럼 ‘이다’는 용언처럼 활용을 한다. 이는 다른 조사와는 다른 형태적 특성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 ‘이다’를 다른 문법범주로 재해석하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것은 결론부분에 가서 언급할 것이지만 미리 말하자면 ‘이다’를 ‘지정사’로 지정해 별개의 문법범주로 보자는 것이다. 조사의 특수한 형태로 보는 현행 ‘서술격조사’이론도 타당한 면이 있지만 여기서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지정사론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논의되어 온 ‘이다’ 논쟁에 대한 합리적인 체계 설정이 절실하다.
주010)
감(敢)히 헐우며 여리디 아님이:감히 헐며 상하지 않게 함이. ‘여리디’의 기본형은 ‘야리다’인데 여기에 부사형 어말어미 ‘-디’가 통합된 형임. 구개음화를 거쳐서 ‘-디〉-지’로 소리가 변동하였다. 구개음화 현상은 국어사로 볼 때 경상도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어에서부터 먼저 시작하여 북부지역어로 번져 나아간 발음경제에 따른 소리의 달라짐이다. 유희(柳僖)의 『언문지(諺文志)』에서는 ‘ㄷ(ㅌ)’음의 보기를 들고 있다. 댜(탸)가 쟈(챠)보다 훨씬 소리 내기가 어려워 입천장소리되기가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 그의 스승이었던 정동유(鄭東愈)의 고조 형제의 이름 가운데 디화(知和)가 있고 지화(至和)가 있었다고 함을 예로 든 것을 보면 적어도 유희 이전의 시기에는 구개음화가 널리 쓰이지 않고 있음을 미루어 알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평안도 같은 관서지방에서는 그렇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북한 지역어에서는 전기불을 ‘뎐기불’로 발음하여 흔히 ‘뎡거쟝에 뎐기불이 번뎍번뎍 하더라’는 다소 희화적인 예를 들기도 한다. 국어에서 본디 구개음이 아닌 ‘ㄷ, ㅌ’이 ‘ㅣ’앞에서 구개음인 ‘ㅈ, ㅊ’으로 바뀌는 음운현상을 구개음화라 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인식되나, 사실은 복잡한 음운론적 층위로 구성되어 그 위상을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음운과정이다. 구개음화라는 음운현상에 대하여 통시론적 접근을 통하여 국어사에서의 구개음화의 시기와 공간의 자리매김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어사에서 구개음화의 등장 시기는 크게 두 가설로 나눌 수 있다. 일반적인 견해로 구개음화 하면 근대국어의 음운현상이라는 것이다(이기문). 그는 근대국어에서 가장 두드러진 음운변화의 하나가 구개음화라는 주장을 앞서 밝힌 유희의 『언문지』와 문헌자료를 토대로 밝히고 있다. 현재 전하는 자료에서 구개음화의 예는 18세기 초의 『왜어유해』에 처음 보이며, 『동문유해』의 예들은 그 완성을 가늠하게 것으로 풀이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구개음화의 시기를 17세기와 18세기의 교체시기로 상정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구개음화의 시기를 훨씬 앞당겨 잡은 주장이 있다(박병채). 고대 삼국어의 지명 자료에서 일본어나 몽고어와의 음운대응으로 미루어 고구려어의 일부가 어중에서 ㄷ구개음화를 경험하였고, 신라어는 어두에서도 구개음화를 겪었는데, 그에 비해 백제어는 표기 체계의 뒤섞임으로 미루어 볼 때 병존적인 성격을 띠었다고 본다. 앞의 두 가설은 구개음화의 시기 설정에서 고대국어와 근대국어라는 커다란 거리를 보인다. 이는 방언적인 차이로 보아 이미 고대국어시기에서도 일부 지역어에서는 구개음화를 겪은 소리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가정을 해 볼 수 있다. ¶쉬문을 다가 다 다딜어 여리고[把水門都衝壞了]〈박통사번 상:9〉.
주011)
효(孝) 어버이 셤김애 비릇고:효란 어버이를 섬김에서부터 비롯되고. 『삼국유사』 효선편에 보면. 손순(孫順)이 노모를 지성으로 모시어 마침내 임금으로부터 상을 받고 마을 이름도 효양리라 하여 어버이의 이름을 드높이는 효행의 보기를 들고 있다. 그 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손순은 모량리(牟梁里) 사람으로 아버지는 학산(鶴山)이라 했다. 그의 아버지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아내와 함께 남의 집에 품을 팔아 곡식을 얻어다가 어렵지만 정성껏 늙은 어머니를 이바지했다. 어머니는 이름을 운오(運烏)라 했다. 손순에게는 어린 아이가 있었으니 매양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므로 손순은 이를 민망히 여겨 그 아내에게 의논하였다. “아이는 다시 낳을 수 있지만 어머니는 다시 얻기 어렵소. 이제 아이가 저렇게 어머니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굶주림이 얼마나 심하겠소? 차라리 이 아이를 땅에 묻어 버려서 어머니를 배부르게 해 드리는 것이 좋겠소.” 손순은 마침내 아이를 들쳐 업고 취산(醉山) 북쪽들로 가서 땅을 팠다. 그곳에서 문득 기이한 돌종이 나왔다. 손순 내외는 놀라고 이상히 여겨 잠시 나무 위에 걸고 그 종을 쳐보았더니 그 소리가 은은하고 아름다웠다. 아내가 말하기를, “이 이상한 돌종을 얻은 것은 아이의 복이니 도로 데리고 갑시다.” 하니, 남편도 역시 그렇게 하자고 동의를 했다. 부부는 아이를 업고 종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 종을 들보에 달고 두드리니 그 소리가 대궐에까지 들렸다. 마침 궐에서 흥덕왕이 그 아름다운 종소리를 듣고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서쪽 교외에서 이상한 종소리가 나는데 더없이 맑고 멀리 들리니 속히 조사해보라.” 했다. 임금의 궁리가 그 집에 가서 조사해 보고 사실을 자세히 아뢰니, 왕은, “옛날 중국의 곽거(郭巨)는 효행으로 아들을 파묻을 때 하늘이 감동하여 금 솥을 내렸다는데, 지금 손순이 아이를 묻으려 하자 땅에서 석종이 솟아났으니, 이 두 효도는 천지에 똑같은 본보기로다.” 하면서, 집과 해마다 곡식 50석을 주어 그 지극한 효성을 표창했다(삼국유사 권5, 손순매아(孫順埋兒)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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