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효경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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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傳) 14장
  • 제5장(고문 제10장) 성치(聖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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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고문 제10장) 성치(聖治)


曾증子ㅣ 曰왈 敢감問문聖셩人인之지德덕이 其기無무以이加가於어孝효乎호ㅣ잇가

曾증子ㅣ 샤 敢감히 묻노니 聖셩人인의 德덕이 그 孝효애셔 더으니 업니잇가 주001)
효(孝)애셔 더으니 업니잇가:
효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까. ‘더으니’는 기본형 ‘더으다’에 관형형 어미 ‘-ㄴ’이 통합되고 다시 의존명사 ‘이’가 통합되었는바, 연철에 따라서 표기된 것이다. 연철은 이어적기라고도 한다. 본디 소리글자라고 함은 소리가 나는 대로 적고 씀을 이른다. 그런데 음절단위로 모아쓰기에 여러 가지 표기상의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훈민정음 초기에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적 표기를 기본으로 하였다. 그러다 형태소를 살려 적는 표의적인 표기인 분철을 섞어 쓰다가 한글맞춤법에 모두 다 반영하였다.

〈전(傳) 제5장 성치(聖治)〉
증자가 이르기를, “감히 여쭙겠습니다. 성인의 덕이 그로써 효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까?”라고 하였다.

子ㅣ 曰왈 天텬地디之지性셩애 人인이 爲위貴귀니 人인之지行은 莫막大대於어孝효고

子ㅣ 샤 天텬地디의 性셩【萬만物물이 天텬地

13ㄴ

디 
주002)
천지(天地) :
세상에 끼친. 세상에 내놓은. 하늘과 땅에 남긴. ‘’의 기본형은 ‘깃다’인데 이형으로 ‘긷다, 다’가 쓰인 듯하다. 기본형에 관형형 어미 ‘-ㄴ’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형임. 경음화에 따라서 ‘기티다〉티다〉끼치다’로 소리가 변천하였다. 여기 ‘기-’의 관계는 시옷 첨가로 이루어진 형으로 보인다. ‘텬디〉쳔지〉천지’는 단모음화 구개음화를 겪으면서 소리가 변동한 것이다. 구개음화란 구개음이 아닌 것이 이 모음의 영향을 받아 조음점이, 소리가 나기 쉬운 조음 자리로 변함으로써 발음을 쉽게 내려는 발음 용이화의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거시 性셩이라】
애 사이 貴귀니 사의 실은 孝효에셔 큰 이 업고

공자께서 이르기를, 천지의 성(性)【만물이 온 세상에 펼쳐 있는 것이 성이다.】에 사람이 〈가장〉 귀하니, 사람의 행실에 있어서는 효도보다 더 큰 것이 없고,

孝효 莫막大대於어嚴엄父부고 嚴엄父부 莫막大대於어配天텬니 則즉周쥬公공이其기人인也야ㅣ시니라

孝효 아비를 존엄홈에셔 주003)
존엄홈에셔:
존엄(尊嚴)함보다. 존경하는 것보다. 현대 우리말에서는 ‘존엄하다’가 형용사로만 쓰이지만, 여기서는 동사로 쓰였다. 아버지를 지엄하게 여기거나 존경하는 행동을 뜻한다.
큰 이 업고 아비를 존엄홈은 하 配홈에셔 주004)
하 배(配)홈에셔:
하늘에게 제사지냄보다. 원문의 ‘배천(配天)’이란 본디 ‘임금이 그 조상을 하늘과 함께 제사지내던 일. 배향함’인데, 임금은 천명에 의하여 하늘이 내린 것이라는 사상에서 비롯하였다. 즉 ‘하’처럼 하늘을 사람처럼 존대한 것은 천명을 내리는 하늘을 조상과 함께 어버이로서 삼가 제사지내며 모셨기 때문이다.
큰 이 업니 곧 周쥬公공 주005)
주공(周公):
서주 시대의 성인. 본 이름은 단(旦). 주공(周公)은 주나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었다. 조카인 성왕을 잘 도운 인물로 공자가 꿈에 그릴 만큼 존경한 사람이다. 그 주공이 아들 백금(伯禽)에게 자신의 인재 고름에 대하여 깨우쳐준 일이 있었다. “나는 한 번 머리를 감는 중에 무려 세 번이나 머리를 감아쥐고 나가 선비를 맞이하였고, 한 번 밥을 먹는 사이에 세 번이나 씹던 밥을 토해내고 일어나서 천하의 선비를 예우하였다.” 주공의 성공적인 정치는 바로 이런 인재 등용에 있었다. 그러면 그런 인재를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공자의 말을 따르면 자기가 아는 주변 사람부터 시작하라는 것인데 여기서 자기가 안다고 하여 그저 아무나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아는바, 쓸 만한 인재를 말하는 것이니 내가 먼저 바르지 않고는 바른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바 옛 사람들이 수신(修身)을 그리 강조한 것도 다 까닭이 있어서다. 수신은 다른 말로 수기(修己)라고도 할 수 있는데, 거기에 사람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을 붙여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같이 거론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녯 셩인이시니라】이 그 사이시니라

효에 있어서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아버지를 존경하는 데 있어서는 하늘에게 제사지냄보다 더 큰 것이 없으니, 곧 주공(周公)【옛날 성인이시다.】이 그런 사람이시다.

昔셕者쟈애 周쥬公공이 郊교祀后후稷직샤 以이配天텬시고 宗종祀文문王왕於어明

14ㄱ

명堂당샤 以이配上샹帝뎨시니 是시以이로 四海之지內ㅣ 各각以이其기職직으로 來助조祭졔니 夫부聖셩人인之지德덕이 又우何하以이加가於어孝효乎호ㅣ리오

녜 周쥬公공이 郊교 주006)
교(郊):
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의 이름. 교사(郊祀). 종사(宗祀)는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하 졔 일홈이라】에 后후稷직【周쥬ㅅ나라 첫 조샹이라】을 졔샤 하 配시고 文문王왕 주007)
문왕(文王):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 서백(西伯)이라고도 함. 유교 사가들이 기리는 성군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중국 서부 국경에 자리한 한 주의 영주였다. 이 나라는 오랜 동안 문명화된 중국과 유목민 침략자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어왔다. 기원전 1144년 그는 서백이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으며, 은나라(殷, 기원전 18-12세기)를 위협했다. 이 때 문왕은 은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에게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갇혔다. 3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유교의 고전인 주역의 괘사(卦辭)를 지었다. 『역경』의 점(占)에 기반이 되는 8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왕은 주나라 사람들이 미녀 1명, 좋은 말 1필, 4대의 전차를 몸값으로 바치고 풀려났다. 주나라에 돌아와 그 시대의 잔인함과 타락상에 대해 비판하며 남은 생을 보냈다. 그가 죽은 뒤 아들이며 후계자인 무왕(武王)이 은을 토벌하고 주(周)를 세웠다.
【武무王왕 아바님이라】明명堂당【諸져侯후 됴희 주008)
됴희:
조회(를). 단모음화와 구개음화를 거치면서 ‘됴회〉죠회〉조회’로 소리가 단순화되었다.
받 집이라】
주009)
명당(明堂)에:
〈제후가 조회를 받는 집인〉 명당(明堂)에. 명당이란 본디 임금이 정사를 맡아보던 집을 말한다. 『예기』에서는 주나라 성왕이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넷째 삼촌 주공이 7년간 섭정하며 제후들을 서열대로 입조시켜 정사를 살피고 신분을 밝힌 당실(堂室)을 명당이라 했다. 『맹자』에서는 임금이 법령을 내리는 장소를 일컫는 말로 쓰였다. 『회남자』에서는 천자가 음력 4~6월 3개월 동안 조회하는 곳을 명당이라 하며, 그 뜻을 ‘여름철의 밝고 깨끗한 햇살이 비추는 것처럼 왕이 정치를 밝고 깨끗하게 처리하는 집’으로 풀었다. 이렇듯 고대의 명당 개념은 ‘왕이 정사를 보는 밝은 집’이었는데, 이를 풍수에서 인용해 ‘후손에게 좋은 일을 가져다줄 집터나 묏자리’로 쓰게 된 것이다.
존야 졔샤 上샹帝뎨【하히라】 配시니 이러모로 四海ㅅ 안히 각각 그 벼로 와 졔 도니 聖셩人인의 德덕

14ㄴ

 엇디 孝효애셔 더리오 주010)
 엇디 효(孝)애셔 더리오:
또 어찌 효보다 더하리오. 또 어찌 효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애셔’는 비교를 드러내는 비교격 조사로서 현대로 오면서 ‘애셔〉에서’로 소리가 달라졌다. 합용병서 ‘, ’는 근대국어로 오면서 ㅅ계로 통합이 되었다. 그 소리는 경음화룰 거치면서 현대국어에서는 각자병서인 ‘또, 써’로 통합된다.

옛날에 주공이 교(郊)【하느님께 제사하는 이름이다.】에 후직(后稷)【주나라 첫 조상이다.】을 제사함으로써 하늘에 배향하셨다. 〈또한〉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아버님이시다.】을 명당(明堂)【제후가 조회를 받는 집이다.】에 높이 받들어 제사지냄으로써 상제(上帝)【하늘이다.】께 배향하셨다. 이런 까닭으로 사해 안의 〈모든 사람들은〉 각기 그 직책대로 와서 제사를 도왔으니 〈무릇〉 성인의 덕이 또 어찌 효도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故고로 親친生之지膝슬下하야 以이養양父부母모호 日일嚴엄니 聖셩人인이 因인嚴엄以이敎교敬경시며 因인親친以이敎교愛시니 聖셩人인之지敎교ㅣ 不블肅슉而이成셩며 其기政졍이 不블嚴엄而이治티 其기所소因인者쟈ㅣ 本본也야ㅣ라

故고로 親친요미 무룹 아래셔 주011)
무룹 아래셔:
무릎의 아래에서. 원문의 슬하(膝下)의 풀이임. 어버이나 조부모의 보살핌 아래. 부모의 효도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음을 이른다.
나셔 父부母모를 치되 날로 嚴엄니 聖셩人인이 嚴엄홈을 인야 공경홈을 치시며 親친

15ㄱ

홈을 인야 랑홈을 치시니 聖셩人인의 치시미 肅슉디 아니야도 일며 그 졍 嚴엄티 아니야도 다로 그 인 배 本본【孝효 닐옴이라】일라 주012)
본(本)일라:
근본이다. 여기서는 효(孝)를 가리킴. 지엄하고 엄격하게 하지 않아도 부모와 하늘을 받드는 효도로 가르치고 다스리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일라’는 서술격 조사 ‘-이다’에 ‘-ㄹ라’가 통합되어 유착된 형태임. 서술격 조사 ‘이다’는 활용이라는 형태적 특성보다 동사나 형용사가 서술어의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 서술격 조사는 조사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기능적 특성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보기로서, ‘선생이다, 선생이므로, 선생이니까, 선생이라, 선생이니, 선생이로소이다’에서처럼 ‘이다’는 용언처럼 활용을 한다. 이는 다른 조사와는 다른 형태적 특성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 ‘이다’를 다른 문법범주로 재해석하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것은 결론부분에 가서 언급할 것이지만 미리 말하자면 ‘이다’를 ‘지정사’로 지정해 별개의 문법범주로 보자는 것이다. 조사의 특수한 형태로 보는 현행 ‘서술격조사’이론도 타당한 면이 있지만 여기서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지정사론을 제시하는바,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논의되어 온 ‘이다’ 논쟁에 대한 합리적인 체계 설정이 절실하다. 『속삼강행실도』 효자편에 보면 효자들의 효행이 실려 전한다. 어버이의 산소를 지키기 위하여 무덤을 지키던 김극일의 효행을 보기로 들어보도록 한다. 6년 동안 아버지의 무덤을 지켰다. 그때 호랑이가 무덤가에 와서 극일을 지켜 주었는데 극일은 집짐승처럼 호랑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좋은 이웃처럼 지냈다. 아버지가 돌아간 뒤로도 아버지의 첩실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 두 분을 친 어머니처럼 잘 모셨다고 실려 전해 온다.

그런 까닭으로 친애하는 정은 양친의 무릎 아래서[膝下] 싹트고 자라서 어버이를 봉양하되 날로 지엄하게 되니, 성인은 〈부모의〉 지엄함으로써 공경하는 것을 가르치고, 친애하는 정으로써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시니, 성인의 가르침은 엄숙하지 않아도 이루어지며, 그 정사는 엄중하지 않아도 다스려지니, 그것이 바탕 삼는 것은 그 근본【효를 이르는 것이다.】이기 때문이다.

右 傳뎐之지五오章쟝이니 釋셕孝효 德덕之지本본다
Ⓒ 필자 | 공안국 /

右우 傳뎐의 다잿 章쟝이니 孝효 德덕의 本본이라 홈을 사기다
Ⓒ 역자 | 홍문관 / 1589년(선조 22)

윗(오른쪽) 글은 〈성현이 지으신〉 전의 다섯째 장이다. 효란 덕의 근본임을 풀이한 것이다.
Ⓒ 역자 | 정호완 / 2014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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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효(孝)애셔 더으니 업니잇가:효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까. ‘더으니’는 기본형 ‘더으다’에 관형형 어미 ‘-ㄴ’이 통합되고 다시 의존명사 ‘이’가 통합되었는바, 연철에 따라서 표기된 것이다. 연철은 이어적기라고도 한다. 본디 소리글자라고 함은 소리가 나는 대로 적고 씀을 이른다. 그런데 음절단위로 모아쓰기에 여러 가지 표기상의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훈민정음 초기에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표음적 표기를 기본으로 하였다. 그러다 형태소를 살려 적는 표의적인 표기인 분철을 섞어 쓰다가 한글맞춤법에 모두 다 반영하였다.
주002)
천지(天地) :세상에 끼친. 세상에 내놓은. 하늘과 땅에 남긴. ‘’의 기본형은 ‘깃다’인데 이형으로 ‘긷다, 다’가 쓰인 듯하다. 기본형에 관형형 어미 ‘-ㄴ’이 통합되어 이루어진 형임. 경음화에 따라서 ‘기티다〉티다〉끼치다’로 소리가 변천하였다. 여기 ‘기-’의 관계는 시옷 첨가로 이루어진 형으로 보인다. ‘텬디〉쳔지〉천지’는 단모음화 구개음화를 겪으면서 소리가 변동한 것이다. 구개음화란 구개음이 아닌 것이 이 모음의 영향을 받아 조음점이, 소리가 나기 쉬운 조음 자리로 변함으로써 발음을 쉽게 내려는 발음 용이화의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주003)
존엄홈에셔:존엄(尊嚴)함보다. 존경하는 것보다. 현대 우리말에서는 ‘존엄하다’가 형용사로만 쓰이지만, 여기서는 동사로 쓰였다. 아버지를 지엄하게 여기거나 존경하는 행동을 뜻한다.
주004)
하 배(配)홈에셔:하늘에게 제사지냄보다. 원문의 ‘배천(配天)’이란 본디 ‘임금이 그 조상을 하늘과 함께 제사지내던 일. 배향함’인데, 임금은 천명에 의하여 하늘이 내린 것이라는 사상에서 비롯하였다. 즉 ‘하’처럼 하늘을 사람처럼 존대한 것은 천명을 내리는 하늘을 조상과 함께 어버이로서 삼가 제사지내며 모셨기 때문이다.
주005)
주공(周公):서주 시대의 성인. 본 이름은 단(旦). 주공(周公)은 주나라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이었다. 조카인 성왕을 잘 도운 인물로 공자가 꿈에 그릴 만큼 존경한 사람이다. 그 주공이 아들 백금(伯禽)에게 자신의 인재 고름에 대하여 깨우쳐준 일이 있었다. “나는 한 번 머리를 감는 중에 무려 세 번이나 머리를 감아쥐고 나가 선비를 맞이하였고, 한 번 밥을 먹는 사이에 세 번이나 씹던 밥을 토해내고 일어나서 천하의 선비를 예우하였다.” 주공의 성공적인 정치는 바로 이런 인재 등용에 있었다. 그러면 그런 인재를 어떻게 알아볼 것인가? 공자의 말을 따르면 자기가 아는 주변 사람부터 시작하라는 것인데 여기서 자기가 안다고 하여 그저 아무나 하라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아는바, 쓸 만한 인재를 말하는 것이니 내가 먼저 바르지 않고는 바른 사람을 구하기 어려운바 옛 사람들이 수신(修身)을 그리 강조한 것도 다 까닭이 있어서다. 수신은 다른 말로 수기(修己)라고도 할 수 있는데, 거기에 사람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을 붙여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같이 거론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주006)
교(郊):하느님께 올리는 제사의 이름. 교사(郊祀). 종사(宗祀)는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이다.
주007)
문왕(文王):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아버지. 서백(西伯)이라고도 함. 유교 사가들이 기리는 성군 가운데 한 분이다. 그는 중국 서부 국경에 자리한 한 주의 영주였다. 이 나라는 오랜 동안 문명화된 중국과 유목민 침략자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어왔다. 기원전 1144년 그는 서백이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으며, 은나라(殷, 기원전 18-12세기)를 위협했다. 이 때 문왕은 은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에게 포로로 잡혀 감옥에 갇혔다. 3년간 감옥에 있으면서 유교의 고전인 주역의 괘사(卦辭)를 지었다. 『역경』의 점(占)에 기반이 되는 8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왕은 주나라 사람들이 미녀 1명, 좋은 말 1필, 4대의 전차를 몸값으로 바치고 풀려났다. 주나라에 돌아와 그 시대의 잔인함과 타락상에 대해 비판하며 남은 생을 보냈다. 그가 죽은 뒤 아들이며 후계자인 무왕(武王)이 은을 토벌하고 주(周)를 세웠다.
주008)
됴희:조회(를). 단모음화와 구개음화를 거치면서 ‘됴회〉죠회〉조회’로 소리가 단순화되었다.
주009)
명당(明堂)에:〈제후가 조회를 받는 집인〉 명당(明堂)에. 명당이란 본디 임금이 정사를 맡아보던 집을 말한다. 『예기』에서는 주나라 성왕이 13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넷째 삼촌 주공이 7년간 섭정하며 제후들을 서열대로 입조시켜 정사를 살피고 신분을 밝힌 당실(堂室)을 명당이라 했다. 『맹자』에서는 임금이 법령을 내리는 장소를 일컫는 말로 쓰였다. 『회남자』에서는 천자가 음력 4~6월 3개월 동안 조회하는 곳을 명당이라 하며, 그 뜻을 ‘여름철의 밝고 깨끗한 햇살이 비추는 것처럼 왕이 정치를 밝고 깨끗하게 처리하는 집’으로 풀었다. 이렇듯 고대의 명당 개념은 ‘왕이 정사를 보는 밝은 집’이었는데, 이를 풍수에서 인용해 ‘후손에게 좋은 일을 가져다줄 집터나 묏자리’로 쓰게 된 것이다.
주010)
 엇디 효(孝)애셔 더리오:또 어찌 효보다 더하리오. 또 어찌 효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겠는가. ‘-애셔’는 비교를 드러내는 비교격 조사로서 현대로 오면서 ‘애셔〉에서’로 소리가 달라졌다. 합용병서 ‘, ’는 근대국어로 오면서 ㅅ계로 통합이 되었다. 그 소리는 경음화룰 거치면서 현대국어에서는 각자병서인 ‘또, 써’로 통합된다.
주011)
무룹 아래셔:무릎의 아래에서. 원문의 슬하(膝下)의 풀이임. 어버이나 조부모의 보살핌 아래. 부모의 효도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음을 이른다.
주012)
본(本)일라:근본이다. 여기서는 효(孝)를 가리킴. 지엄하고 엄격하게 하지 않아도 부모와 하늘을 받드는 효도로 가르치고 다스리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일라’는 서술격 조사 ‘-이다’에 ‘-ㄹ라’가 통합되어 유착된 형태임. 서술격 조사 ‘이다’는 활용이라는 형태적 특성보다 동사나 형용사가 서술어의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 서술격 조사는 조사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기능적 특성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보기로서, ‘선생이다, 선생이므로, 선생이니까, 선생이라, 선생이니, 선생이로소이다’에서처럼 ‘이다’는 용언처럼 활용을 한다. 이는 다른 조사와는 다른 형태적 특성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 ‘이다’를 다른 문법범주로 재해석하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 것은 결론부분에 가서 언급할 것이지만 미리 말하자면 ‘이다’를 ‘지정사’로 지정해 별개의 문법범주로 보자는 것이다. 조사의 특수한 형태로 보는 현행 ‘서술격조사’이론도 타당한 면이 있지만 여기서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지정사론을 제시하는바,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논의되어 온 ‘이다’ 논쟁에 대한 합리적인 체계 설정이 절실하다. 『속삼강행실도』 효자편에 보면 효자들의 효행이 실려 전한다. 어버이의 산소를 지키기 위하여 무덤을 지키던 김극일의 효행을 보기로 들어보도록 한다. 6년 동안 아버지의 무덤을 지켰다. 그때 호랑이가 무덤가에 와서 극일을 지켜 주었는데 극일은 집짐승처럼 호랑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좋은 이웃처럼 지냈다. 아버지가 돌아간 뒤로도 아버지의 첩실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 두 분을 친 어머니처럼 잘 모셨다고 실려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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