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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고 여계(曹大家女誡)


여계1ㄱ

曹조大태家고 女녀誡계
【曹조大태家고의 姓셩은 班반氏시오 일홈은 昭쇼ㅣ니 後후漢한 주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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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적(的)’의 번역어.
平평陽양 曹조世셰叔슉의 妻쳐ㅣ오 扶부風풍 班반彪표 주002)
부풍(扶風) 반표(班彪):
반표는 후한 부풍(扶風) 안릉(安陵) 사람으로, 조태고 반소(班昭)의 아버지다. 성격이 옛 것을 좋아했다. 처음에 외효(隗囂)에 의지하여 『왕명론(王命論)』을 지어 한실(漢室)의 부흥을 비유했지만, 외효는 끝내 깨닫지 못했다. 결국 하서(河西)로 피해 가 두융(竇融)을 섬기다가 함께 유수(劉秀, 光武帝)에게 귀순했다. 후한 초에 무재(茂才)로 천거되어 서령(徐令)에 임명되었지만 병 때문에 사직했다. 나중에 망도장(望都長)이 되었다. 이후 역사 연구에 몰두하여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여러 사실을 종합 정리하여 『사기후전(史記後傳)』 60여 편을 편찬했다. 『한서』를 편찬하려다가 마무리하지 못하고 죽자 아들 반고(班固)와 딸 반소(班昭)가 뜻을 이어 완성했다. 사부에는 『남해부(覽海賦)』와 『도이소(悼離騷)』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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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죽어:
일찍 죽거늘. 일찍 죽으므로. ‘죽[死]-+-거늘(연결어미)’의 구성. ㄱ-탈락현상. ‘일찍’의 15세기 형태는 ‘일’이다. ‘조[早]’의 의미를 갖는 용언은 ‘이르다’였다. ‘일’은 ‘이르다’에서 파생된 부사일 가능성이 있다. ‘일’과 함께 나타나는 ‘일즉’은 ‘일+즉’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즉’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16세기에는 ‘일즉’이 된소리화 되어 ‘일쯕’으로도 나타난다. ‘일즉’과 ‘일쯕’의 음성형태는 동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쯕’’에 다시 부사 파생접미사 ‘-이’가 결합이 된 ‘일쯔기’도 16세기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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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班固):
부풍(扶風) 안릉(安陵) 함양현(咸陽縣) 사람으로 후한의 문학가이다. 주요한 저서로 『한서(漢書)』가 있다. 반고의 아버지인 반표(班彪) 또한 유명한 학자로서 『사기후전(史記後傳)』 65편을 썼는데, 『사기(史記)』 이후의 서한 역사를 쓴 것이다. 반고는 20여 세 때에 아버지가 쓴 『사기후전』을 기초로 하여 『한서(漢書)』를 지었는데, 모두 20여 년이 걸렸다. 반고는 서한의 사마상여, 양웅, 동한의 장형 등과 함께 한부 사걸(漢賦四傑)로 꼽히는데, 사학가로서 뿐만 아니라 사부의 작가로도 그만큼 유명하다. 그의 작품으로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양도부(兩都賦)』로, 내용은 서한의 사냥의 성대함이나 궁전의 장엄함 등을 서술하고 있고, 형식은 사마상여와 굴원의 부체를 모방하고 있다. 그 밖에 『이소(離騷)』를 모방한 『유통부(幽通賦)』와, 동방삭(東方朔)의 『답객난(答客難)』을 모방한 『답빈희(答賓戱)』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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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서(前漢書):
전한의 역사서로 모두 120권이다. 중국 24사의 하나로 후한의 반고가 짓다가 마치지 못하자 그의 누이동생인 조태고 반소가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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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희등(和熹鄧) 태후(太后):
후한 화제(和帝)의 황후로 본명은 등수(鄧綏)이며, 남양(南陽) 신야(新野) 사람이다. 화제가 죽은 뒤 상제(殤帝)와 안제(安帝)를 형식적인 천자로 세우고 권력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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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올곧음을. 지조와 절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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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내에 여성들을 교육시키는 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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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貴귀人인이 다 스승으로 셤기더라 女녀誡계 七칠篇편을 지으니라】
Ⓒ 편찬 | 이덕수 / 1737년(영조 13)

조태고의 여계
조태고의 성은 반씨(班氏)이고 이름은 소(昭)이니, 후한 때 평양조세숙(曹世叔)의 아내이고, 부풍 사람 반표(班彪)의 딸이다. 조세숙이 일찍 죽으므로 반소가 그 뜻
(절개)
을 지켜 아들 조곡(曹穀)을 가르쳐 키우고, 맏형(=큰오빠) 반고(班固)가 『전한서』를 짓다가 끝내지 못하고 죽으므로 반소가 이어 이루고, 작은오빠 반초(班超)서역(西域)으로 진압하러 들어가 소임 조서를 못 받아 돌아오지 못하자, 반소가 대궐에 엎드려 글을 올려 오빠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화희등(和熹鄧) 태후가 그 지조와 절개를 아름답게 여겨서 조서를 보내게 하여 〈돌아오게 했으며, 반소를〉 궁에 불러 들여서 여성들의 스승으로 삼고, 이름을 태고(大家)라 부르고, 황후와 및 모든 귀인이 모두 스승으로 섬기더라. 『여계』 일곱 편을 지었다.】
Ⓒ 역자 | 이상규 / 2014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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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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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적(的)’의 번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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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扶風) 반표(班彪):반표는 후한 부풍(扶風) 안릉(安陵) 사람으로, 조태고 반소(班昭)의 아버지다. 성격이 옛 것을 좋아했다. 처음에 외효(隗囂)에 의지하여 『왕명론(王命論)』을 지어 한실(漢室)의 부흥을 비유했지만, 외효는 끝내 깨닫지 못했다. 결국 하서(河西)로 피해 가 두융(竇融)을 섬기다가 함께 유수(劉秀, 光武帝)에게 귀순했다. 후한 초에 무재(茂才)로 천거되어 서령(徐令)에 임명되었지만 병 때문에 사직했다. 나중에 망도장(望都長)이 되었다. 이후 역사 연구에 몰두하여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여러 사실을 종합 정리하여 『사기후전(史記後傳)』 60여 편을 편찬했다. 『한서』를 편찬하려다가 마무리하지 못하고 죽자 아들 반고(班固)와 딸 반소(班昭)가 뜻을 이어 완성했다. 사부에는 『남해부(覽海賦)』와 『도이소(悼離騷)』 등이 있다.
주003)
일 죽어:일찍 죽거늘. 일찍 죽으므로. ‘죽[死]-+-거늘(연결어미)’의 구성. ㄱ-탈락현상. ‘일찍’의 15세기 형태는 ‘일’이다. ‘조[早]’의 의미를 갖는 용언은 ‘이르다’였다. ‘일’은 ‘이르다’에서 파생된 부사일 가능성이 있다. ‘일’과 함께 나타나는 ‘일즉’은 ‘일+즉’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즉’의 기원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16세기에는 ‘일즉’이 된소리화 되어 ‘일쯕’으로도 나타난다. ‘일즉’과 ‘일쯕’의 음성형태는 동일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쯕’’에 다시 부사 파생접미사 ‘-이’가 결합이 된 ‘일쯔기’도 16세기에 보인다.
주004)
딕여:지켜.
주005)
반고(班固):부풍(扶風) 안릉(安陵) 함양현(咸陽縣) 사람으로 후한의 문학가이다. 주요한 저서로 『한서(漢書)』가 있다. 반고의 아버지인 반표(班彪) 또한 유명한 학자로서 『사기후전(史記後傳)』 65편을 썼는데, 『사기(史記)』 이후의 서한 역사를 쓴 것이다. 반고는 20여 세 때에 아버지가 쓴 『사기후전』을 기초로 하여 『한서(漢書)』를 지었는데, 모두 20여 년이 걸렸다. 반고는 서한의 사마상여, 양웅, 동한의 장형 등과 함께 한부 사걸(漢賦四傑)로 꼽히는데, 사학가로서 뿐만 아니라 사부의 작가로도 그만큼 유명하다. 그의 작품으로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은 『양도부(兩都賦)』로, 내용은 서한의 사냥의 성대함이나 궁전의 장엄함 등을 서술하고 있고, 형식은 사마상여와 굴원의 부체를 모방하고 있다. 그 밖에 『이소(離騷)』를 모방한 『유통부(幽通賦)』와, 동방삭(東方朔)의 『답객난(答客難)』을 모방한 『답빈희(答賓戱)』가 있다.
주006)
전한서(前漢書):전한의 역사서로 모두 120권이다. 중국 24사의 하나로 후한의 반고가 짓다가 마치지 못하자 그의 누이동생인 조태고 반소가 마무리하였다.
주007)
디:마치지. 완성하지. ‘[終]-+-디’의 구성.
주008)
서역(西域):중국 서쪽 지역에 있는 변방.
주009)
딘슈야:진수(陳宿)하여. 곧 변방을 지키려 파병되어.
주010)
죠셔야:‘조서(詔書)#-+-야’〉조서를 내려. 조서는 “임금의 명령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적은 문서”이다.
주011)
업여:엎디러.
주012)
올녀:‘올리[上啓]-+-어’〉올려. 18세기에는 ‘ㄹ+ㄹ〉ㄹ+ㄴ’의 표기가 일반적이다.
주013)
귀로(歸老)홈:고향으로 되돌아 와서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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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빌었는데. ‘빌[願]-+-으(삽입모음)-+-ㄴ(관형사형)-+-대’의 구성.
주015)
화희등(和熹鄧) 태후(太后):후한 화제(和帝)의 황후로 본명은 등수(鄧綏)이며, 남양(南陽) 신야(新野) 사람이다. 화제가 죽은 뒤 상제(殤帝)와 안제(安帝)를 형식적인 천자로 세우고 권력을 장악했다.
주016)
지절(志節)을:뜻이 올곧음을. 지조와 절개를.
주017)
드려:‘들[入]-+-이(사동접사)-+-어(부사형어미)-+-(보조사)’〉들여서.
주018)
여사(女師):궁궐 내에 여성들을 교육시키는 직임.
주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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