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云 心乎愛矣 遐不謂矣 忠心臧之 何日
27ㄱ
忘之
Ⓒ 역자 | 정호완 / 2014년 3월 15일
『시경』 〈소아
습상(隰桑) 주002) 습상(隰桑): 『시경』 「소아」편에 진펄에 자라는 뽕나무의 아름다움을 들어 성현의 삶을 예찬한 시. 여기서는 덕 있는 군자를 사모하는 것으로 해석한 것인데, 한편에서는 남녀의 깊은 사랑을 노래한 시라고 보기도 한다. 뽕나무는 습한 곳에서 잘 자란다. 뽕나무 하면 중국 항주 소주를 떠올린다. 나무를 심고 누에를 길러 명주 비단을 얻는 잠업 기술을, 중국은 수천 년 동안 거의 이를 독점해 부를 키워 왔다. 중국을 ‘차이나’라 하는바, 흔히 이는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인 진(秦) 나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연유는 명말 청초 예수교 선교사들의 주장이 그렇게 상식으로 먹혀 버린 것이다. 진이 등장하기 전부터 페르시아나 인도에서는 중국을 비단 생산과 관련 있는 진(Cin)이나 지나(Cina)로 불렀다. 중국의 누에치기는 이미 신석기 시대에 시작되었다. 청동기 시대에 이르러서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자리를 잡는다. 중국 시문학의 얼굴이요, 최초 최고의 시가집인 『시경』에는 305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135편에 나무와 풀이 올라있다. 특히 뽕나무는 모두 20편에 31번이나 실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식물의 왕좌를 차지한다. 『맹자』에는 이런 기록도 있다. “5무의 집 가장자리에 뽕나무를 심으면 50살 먹은 사람이 비단옷을 입을 수 있다”라는 말이 글자 하나 바뀌지 않고 두 번이나 등장한다. 뽕나무가 당시 집안 살림의 버팀목이자 대들보였다. 동시에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다리의 구실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니 잠식(蠶食)처럼 뽕나무나 누에와 관련된 말뭉치 역시 잠상이 옛사람들의 삶에서 차지하는 그 무게감을 실감하게 한다. 1972년 발굴을 시작하여 중국 고고학계를 흥분시킨 호남성 창사시의 마왕퇴(馬王堆)의 무덤은 중국 고대 비단 기술의 알맹이를 가늠케 한다. 옷만이 아니라 허리띠와 향주머니, 거울싸개, 베개, 신발 등에도 고도의 명주실 짜기로 알려진 비단이 쓰였다. 비단은 신분별·계급별 차이를 드러내는 의관 제도를 정립시켰다. 중국과 이웃한 유목 민족 사회에서도 지배층은 일반 백성의 가죽옷과 차별성을 더하기 위하여 비단옷으로 자신들의 지위를 드러냈다.
〉에 이르기를, “마음으로 사랑하는데 어찌 고백하지 않으리오. 마음 가운데에 품고 있는데 어느 날에 잊으리오?” 하였다.
Ⓒ 역자 | 정호완 / 2014년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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