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3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3권
  • 오륜행실 열녀도
  • 오륜행실열녀도(五倫行實烈女圖)
  • 영녀절이(令女截耳)

영녀절이(令女截耳)


오륜행실도 3:20ㄱ

令女截耳三國 주001)
삼국(三國):
위(魏), 촉(蜀), 오(吳)의 세 나라를 말함. 삼국시대는 후한이 몰락하기 시작했던 2세기 말부터 위,촉,오가 세워져 서로 다투다가 서진이 중국을 통일하는 3세기 후반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엄격하게는 위가 세워진 220년부터 오가 진에게 멸망한 280년까지를 삼국시대로 본다.
주002)
위(魏):
220년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인 조비(曹丕)가 동한의 헌제를 밀어내고 세운 왕조. 그러나 265년에 사마염(司馬炎)이 위나라 원제(元帝)를 몰아내고 진(晉)나라를 세움으로써 그 역사를 마감했다.

〈중국 삼국 시기의 역사지도〉

오륜행실도 3:20ㄴ

曹爽 주003)
조상(曹爽):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으로, 자는 소백(昭伯)이라고 하였다. 삼국시대 조위(曹魏) 왕실의 종친이자 권신이다. 대사마인 조진(曹眞)의 아들로 조예(曹叡)가 즉위 한 뒤에 산기시랑이 된 뒤부터 주요 직책을 맡았다. 제왕(齊王)조방(曹芳)이 즉위 한 후에 시중(侍中)이 되었고 무안후(武安侯)로 봉해졌다. 249년에 사마의(司馬懿)의 정변을 일으킨 후에 멸족 당하였다.
從弟文叔妻 夏侯文寧 주004)
하후문녕(夏侯文寧):
삼국시대의 인물로서 위(魏)나라에서 벼슬하였으나 생몰(生沒)은 알 수 없다.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위나라 황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하후씨 출신이지만 다른 하후씨와의 관계는 잘 알 수 없다. 하후영녀의 아버지다. 『삼국지(三國志)』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之女 名令女 주005)
영녀(令女):
하후영녀(夏侯令女). 황보밀(皇甫謐)의 『열녀전(列女傳)』에 “삼국시대 위나라 문녕의 딸로 조문숙에게 시집가 남편이 일찍 죽자 온갖 강압을 물리쳐 재가하지 않고 정절을 지켰다.”고 소개하고 있음.
文叔蚤死 服闋自以年少無子 恐家必嫁已 乃斷髮爲信 後家果欲嫁之令女復以刀截兩耳 居止常依爽 及爽被誅 曹氏盡死 丈寧憐其少執義 又曹氏無遺類 冀其意阻 주006)
의저(意沮):
뜻을 막다. ‘저(沮)’는 ‘막다’의 뜻.
乃微使人風之令女泣曰 吾亦惟之 許之是也 家以爲信 防之少懈 令女竊入寢室 以刀斷鼻 蒙被而臥 母呼不應發被視之 血流滿床席 擧家驚惶 往視之莫不酸鼻 주007)
막불산비(莫不酸鼻):
‘코를 훌쩍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 ‘산(酸)’은 ‘시다’의 뜻으로 고어는 ‘싀여’로 표기 하였다.
或謂曰 人生世間 如輕塵棲弱草耳 何辛苦乃爾 且夫家夷滅已盡 欲誰爲哉 令女曰 聞仁者不以盛衰改節 義者不以存亡易心 曹氏盛時

오륜행실도 3:21ㄱ

尙欲保終 况今衰亡 何忍棄之 禽獸之行 吾何爲乎
斷髮無他 주008)
무타(無他):
그것이 없다. 즉 머리를 잘라 머리가 없다는 의미의 사물의 대명사로 쓴 것으로 여겨짐.
露至誠 爺孃 주009)
야양(爺孃):
아버지와 어머니.
何欲奪其情 伺間劓刵仍蒙被 血滿床頭孰不驚
夫家夷滅復依誰 此是常情所忽時 令女不將衰與盛 始終如一行無虧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위나라 조상의 촌 아 주010)
촌 아:
사촌 아우. 사촌 동생. 15세기 『삼강행실도』(1490)에서는 ‘아’라고 표기하였다. 이 ‘아’의 반치음(반잇소리) ‘ㅿ’이 18세기 『오륜행실도』(1797)에는 탈락한 모습이다. 『훈민정음』(해례본) 세종이 직접 쓴 ‘예의(例義)’편에서는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이라 하여, 끝소리글자를 첫소리글자로 쓸 수 있다고 했음에도,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정리한 「해례(解例)」의 ‘종성해’에서는 “然ㄱㆁㄷㄴㅂㅁㅅㄹ八字可足用也 如뱃곶爲梨花 의갗爲狐皮 而ㅅ字可以通用”이라고 하여, 초성 중 여덟 글자만 받침으로 사용해도 족하다. 뱃곶[배꽃], 의갗[여우가죽]과 같이 ‘ㅅ, ㅈ, ㅿ, ㅊ’은 ㅅ자로 넘나들며 쓸[通用]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서로 배치(背馳)되는 규정이 아니고, 현대 맞춤법에서도 볼 수 있는 ‘기본’과 ‘허용’ 범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규정이다. 즉 엄밀히 따진다면 ‘뱃곶, 의갗’이 올바른 표기지만 ‘뱃곳, 엿의갓’이라고 써도 무방하다라는 말이다. 이런 규정 때문인지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에서는 한발 나아가 ‘ㅋ, ㅌ, ㅍ, ㅈ, ㅊ, ㅿ, ㅇ, ㅎ’은 초성에만 쓴다’고 하였으니 종성에는 더이상 쓰이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1445년 편찬) 제5장 “漆沮움흘, 赤島안움흘”과, 『월인석보(月印釋譜)』(1459)의 “他化 미 지씨오”처럼 본디음과 사잇소리를 밝히는 데 써 왔다가 『훈몽자회』 이후 초성에서도 ‘ㅿ’(반치음)이 사라졌다.
문슉의 쳐 하후 문녕의 이니 일홈은 녕녜라 문슉이 일즉 죽으니 녕녜 스로 각호 나히 졈고 식이 업니 본집에셔 가일가 두려야 주011)
가일가 두려야:
개가(改嫁)시킬까 두려워하여.
마리털을 버혀 을 표엿더니 주012)
마리털을 버혀 을 표엿더니:
머리털을 베어(깎아) 뜻을 표(表)하였더니(보였더니).
후에 어버이 과연 다시 셔방 맛치

오륜행실도 3:21ㄴ

고져 거
주013)
다시 셔방 맛치고져 거:
또다시 서방 맞이하고자 하거늘. 또다시 재혼시키려고 하자.
녕녜 두 귀 버히고 주014)
귀 버히고:
귀를 〈스스로〉 베고.
조상의게 의지엿더니 상의 집이 멸매 어버이 주015)
어버이:
어버이. 부모. 여기서는 친정집을 가리키고 있다.
녕녀 블샹이 너겨 싀집이 주016)
싀집이:
시집이. 시댁(媤宅)이. 시가(媤家)가.
망여시니 그 이 혹 다가 여 넌시 주017)
넌시:
넌지시. ‘넌즈기, 넌즈시, 넌시, 넌지시’로 바뀌었다.
사으로 여곰 녕녀 다래니 주018)
다래니:
달래니.
녕녜 거즛 허락고 주019)
거즛 허락고:
거짓 허락하고. 거짓말로 허락하고.
만이 자 방에 드러가 칼로 코 버히고 니블을 무롭고 누어셔 주020)
니블을 무롭고 누어셔:
이불을 덮어쓰고 누어서. ‘무롭다’는 ‘덮어쓰다’의 뜻이다.
어미 브 주021)
어미 브:
어미가 부르되. 어머니가 불러도.
답디 아니거 니블을 들고 보니 피흘러 자리에 엿디라 온 집이 경황 가 보고 코히 싀여 아니리 업니 주022)
코히 싀여 아니리 업니:
코가 시근시근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슬퍼서 코를 훌쩍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싀여’는 ‘시근시근하여, 시어[酸]’의 뜻이 있지만, 『삼강행실도』에서는 ‘슬흐리(슬퍼하는 이)’로 풀이하였다. 원문 ‘막불산비(莫不酸鼻)’의 언해이다.
혹이 오 사이 셰샹에 이시매 가야온 틧글이 약 플에 부치임

오륜행실도 3:22ㄱ

거
주023)
가야온 틧글이 약 플에 부치임 거:
가벼운 티끌이 약한 풀에 의지함 같거늘. 『삼강행실도』에서는, ‘人生 픐니펫 듣글 니’(사람 사는 것은 풀잎에 티끌 같으니)라고 하였다. ‘듣글/틧글’의 본디말은 ‘드틀’이다.
엇디 괴로오믈 뎌러시 뇨 주024)
엇디 괴로오믈 뎌러시 뇨:
어찌 괴로움을 저렇듯 하는가. 어찌 저렇게 괴로워하는가.
 싀집이 다 망여시니 눌을 위려 다 주025)
눌을 위려 다:
누구를 위하려고 그렇게 하는가. 누가 위로해 준다고 그러는가.
녕녜 오 어딘 쟈 셩쇠로 졀을 곳치디 아니코 주026)
어딘 쟈 셩쇠로 졀을 곳치디 아니코:
어진 사람은 성쇠(盛衰)로 절개(節槪)를 고치지 않고.
의 쟈 존망으로 을 밧고디 아니니 주027)
의 쟈 존망으로 을 밧고디 아니니:
의로운 사람은 존망(存亡)으로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나니.
싀집이 젼셩 에도 오히려 보젼여 죵신코져 거든 믈며 망여시니 엇디 마 리리오 금슈의 실을 주028)
금슈의 실을:
금수(禽獸)의 행실(行實)을. 짐승이 하는 짓을.
나 아니리라 더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11. 영녀절이(令女截耳)【삼국 시대 위(魏)나라】 - 영녀가 귀를 자르다
위나라 조상(曹爽)의 사촌 아우 조문숙 주029)
조문숙(曹文淑):
조문숙의 생애가 불명함. 조상(曹爽)의 사촌 동생으로, 하후영녀의 남편이라 기록되고 있음.
의 아내는 하후문녕의 딸로, 이름은 영녀(令女)였다. 조문숙이 일찍이 죽었다. 하후영녀가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이가 젊고 자식이 없으니 본집(친정집)에서 개가시킬까 두려워하여 머리털을 잘라 〈개가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하였다. 후에 어버이(친정 부모)는 과연 다시 서방을 맞이하게 하고자 하였다. 하후영녀는 두 귀를 자르고 조상에게 의지하였다. 〈그런데〉 조상의 집이 멸망함으로, 어버이는 하후영녀를 불쌍히 여겨 시집이 망하였으니 그 뜻이 혹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여 넌지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영녀를 달래었다. 하후영녀는 거짓으로 허락하고 가만히 자는 방에 들어가 칼로 코를 베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있었다. 어머니가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하거늘 이불을 들고 보니 피를 흘려 자리에 가득하였다. 온 집이 놀라고 당황하여 가서보고 코를 훌쩍 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데)은 가벼운 티끌이 약한 풀에 의지함과 같거니와, 어찌하여 괴로움을 저와 같이 하는가? 또 시집이 다 망하였으니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하는가?”라고 하였다. 하후영녀가 말하기를, “어진 사람은 성(盛)하고 쇠(衰)함으로 절개를 고치지 않고, 의로운 사람은 존망(存亡)으로 마음을 바꾸지 않습니다. 시집이 일찍이 성했을 때에도 오히려 보존하여 몸을 다하고자 하였거든 하물며 망하였는데 어찌 차마 버릴 수 있겠습니까? 금수(禽獸)의 행실을 나는 아니하리라.”라고 하였다.
머리 잘라 머리 없음은 지성을 표현함일러니
아버지 어머니 어찌하여 그 뜻을 꺾으려 하나.
남모르게 코를 잘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피가 흘러 침상에 가득하니 누군들 놀라지 않을까.
지아비의 집 모두 망하니 다시 누구에게 의지 하리
이것은 인지상정이라 더욱 이렇게 갑작스런 때임에.
영녀는 곧 성하거나 쇠하는 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시종여일하게 그의 행동은 이지러짐이 없어라.
Ⓒ 역자 | 이수웅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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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삼국(三國):위(魏), 촉(蜀), 오(吳)의 세 나라를 말함. 삼국시대는 후한이 몰락하기 시작했던 2세기 말부터 위,촉,오가 세워져 서로 다투다가 서진이 중국을 통일하는 3세기 후반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엄격하게는 위가 세워진 220년부터 오가 진에게 멸망한 280년까지를 삼국시대로 본다.
주002)
위(魏):220년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인 조비(曹丕)가 동한의 헌제를 밀어내고 세운 왕조. 그러나 265년에 사마염(司馬炎)이 위나라 원제(元帝)를 몰아내고 진(晉)나라를 세움으로써 그 역사를 마감했다.
〈중국 삼국 시기의 역사지도〉
주003)
조상(曹爽):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으로, 자는 소백(昭伯)이라고 하였다. 삼국시대 조위(曹魏) 왕실의 종친이자 권신이다. 대사마인 조진(曹眞)의 아들로 조예(曹叡)가 즉위 한 뒤에 산기시랑이 된 뒤부터 주요 직책을 맡았다. 제왕(齊王)조방(曹芳)이 즉위 한 후에 시중(侍中)이 되었고 무안후(武安侯)로 봉해졌다. 249년에 사마의(司馬懿)의 정변을 일으킨 후에 멸족 당하였다.
주004)
하후문녕(夏侯文寧):삼국시대의 인물로서 위(魏)나라에서 벼슬하였으나 생몰(生沒)은 알 수 없다.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위나라 황실과 깊은 관련이 있는 하후씨 출신이지만 다른 하후씨와의 관계는 잘 알 수 없다. 하후영녀의 아버지다. 『삼국지(三國志)』 「제하후조전(諸夏侯曹傳」에 나오는 이야기다.
주005)
영녀(令女):하후영녀(夏侯令女). 황보밀(皇甫謐)의 『열녀전(列女傳)』에 “삼국시대 위나라 문녕의 딸로 조문숙에게 시집가 남편이 일찍 죽자 온갖 강압을 물리쳐 재가하지 않고 정절을 지켰다.”고 소개하고 있음.
주006)
의저(意沮):뜻을 막다. ‘저(沮)’는 ‘막다’의 뜻.
주007)
막불산비(莫不酸鼻):‘코를 훌쩍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 ‘산(酸)’은 ‘시다’의 뜻으로 고어는 ‘싀여’로 표기 하였다.
주008)
무타(無他):그것이 없다. 즉 머리를 잘라 머리가 없다는 의미의 사물의 대명사로 쓴 것으로 여겨짐.
주009)
야양(爺孃):아버지와 어머니.
주010)
촌 아:사촌 아우. 사촌 동생. 15세기 『삼강행실도』(1490)에서는 ‘아’라고 표기하였다. 이 ‘아’의 반치음(반잇소리) ‘ㅿ’이 18세기 『오륜행실도』(1797)에는 탈락한 모습이다. 『훈민정음』(해례본) 세종이 직접 쓴 ‘예의(例義)’편에서는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이라 하여, 끝소리글자를 첫소리글자로 쓸 수 있다고 했음에도,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정리한 「해례(解例)」의 ‘종성해’에서는 “然ㄱㆁㄷㄴㅂㅁㅅㄹ八字可足用也 如뱃곶爲梨花 의갗爲狐皮 而ㅅ字可以通用”이라고 하여, 초성 중 여덟 글자만 받침으로 사용해도 족하다. 뱃곶[배꽃], 의갗[여우가죽]과 같이 ‘ㅅ, ㅈ, ㅿ, ㅊ’은 ㅅ자로 넘나들며 쓸[通用]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서로 배치(背馳)되는 규정이 아니고, 현대 맞춤법에서도 볼 수 있는 ‘기본’과 ‘허용’ 범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규정이다. 즉 엄밀히 따진다면 ‘뱃곶, 의갗’이 올바른 표기지만 ‘뱃곳, 엿의갓’이라고 써도 무방하다라는 말이다. 이런 규정 때문인지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에서는 한발 나아가 ‘ㅋ, ㅌ, ㅍ, ㅈ, ㅊ, ㅿ, ㅇ, ㅎ’은 초성에만 쓴다’고 하였으니 종성에는 더이상 쓰이지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1445년 편찬) 제5장 “漆沮움흘, 赤島안움흘”과, 『월인석보(月印釋譜)』(1459)의 “他化 미 지씨오”처럼 본디음과 사잇소리를 밝히는 데 써 왔다가 『훈몽자회』 이후 초성에서도 ‘ㅿ’(반치음)이 사라졌다.
주011)
가일가 두려야:개가(改嫁)시킬까 두려워하여.
주012)
마리털을 버혀 을 표엿더니:머리털을 베어(깎아) 뜻을 표(表)하였더니(보였더니).
주013)
다시 셔방 맛치고져 거:또다시 서방 맞이하고자 하거늘. 또다시 재혼시키려고 하자.
주014)
귀 버히고:귀를 〈스스로〉 베고.
주015)
어버이:어버이. 부모. 여기서는 친정집을 가리키고 있다.
주016)
싀집이:시집이. 시댁(媤宅)이. 시가(媤家)가.
주017)
넌시:넌지시. ‘넌즈기, 넌즈시, 넌시, 넌지시’로 바뀌었다.
주018)
다래니:달래니.
주019)
거즛 허락고:거짓 허락하고. 거짓말로 허락하고.
주020)
니블을 무롭고 누어셔:이불을 덮어쓰고 누어서. ‘무롭다’는 ‘덮어쓰다’의 뜻이다.
주021)
어미 브:어미가 부르되. 어머니가 불러도.
주022)
코히 싀여 아니리 업니:코가 시근시근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슬퍼서 코를 훌쩍거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싀여’는 ‘시근시근하여, 시어[酸]’의 뜻이 있지만, 『삼강행실도』에서는 ‘슬흐리(슬퍼하는 이)’로 풀이하였다. 원문 ‘막불산비(莫不酸鼻)’의 언해이다.
주023)
가야온 틧글이 약 플에 부치임 거:가벼운 티끌이 약한 풀에 의지함 같거늘. 『삼강행실도』에서는, ‘人生 픐니펫 듣글 니’(사람 사는 것은 풀잎에 티끌 같으니)라고 하였다. ‘듣글/틧글’의 본디말은 ‘드틀’이다.
주024)
엇디 괴로오믈 뎌러시 뇨:어찌 괴로움을 저렇듯 하는가. 어찌 저렇게 괴로워하는가.
주025)
눌을 위려 다:누구를 위하려고 그렇게 하는가. 누가 위로해 준다고 그러는가.
주026)
어딘 쟈 셩쇠로 졀을 곳치디 아니코:어진 사람은 성쇠(盛衰)로 절개(節槪)를 고치지 않고.
주027)
의 쟈 존망으로 을 밧고디 아니니:의로운 사람은 존망(存亡)으로 마음을 바꾸지 아니하나니.
주028)
금슈의 실을:금수(禽獸)의 행실(行實)을. 짐승이 하는 짓을.
주029)
조문숙(曹文淑):조문숙의 생애가 불명함. 조상(曹爽)의 사촌 동생으로, 하후영녀의 남편이라 기록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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