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3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3권
  • 오륜행실 열녀도
  • 오륜행실열녀도(五倫行實烈女圖)
  • 정의문사(貞義刎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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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문사(貞義刎死)


오륜행실도 3:14ㄱ

貞義刎死【漢】

오륜행실도 3:14ㄴ

樂羊子 주001)
악양자(樂羊子):
유향(劉向)의 『열녀전(烈女傳)』에, 후한(後漢) 악양자의 아내도 남편이 멀리 공부하러 갔다가 1년만에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악양자는 과거공부를 떠난 지 1년 만에 그만두고 돌아온 적이 있다. 그때 부인은 짜고 있던 베틀을 끊어내었다. 깜작 놀란 남편이 애써 짠 베를 왜 잘라 버리시오 하고 묻자 학업을 중도에 포기 하는 것이나 베를 짜다 잘라버리는 것은 다름이 없다고 대답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맹자(孟子)의 ‘단기지계(斷機之戒)’를 말한다.
妻 不知何氏女 羊子嘗行路 得遺金一餠 주002)
득유금일병(得遺金一餠):
잃어버린 황금 한 덩어리를 줍다. ‘득(得)’은 ‘습(拾)’의 의미로 쓰였으며, ‘일병(一餠)’은 한 덩어리라는 뜻이다.
還以與妻 妻曰 妾聞志士不飮盜泉 주003)
도천(盜泉):
고유명사로 샘물의 이름. 뜻이 있는 선비는 ‘도적 도(盜)’자로 지어진 샘물의 물을 먹지 않는다는 의미임.
之水 廉者不受嗟來之食 주004)
차래지식(嗟來之食):
한숨지며 내오는 음식. 얼마나 배가 고프냐고, 불쌍한 듯이 한숨지으며 차려오는 음식을 말함.
况捨遺求利 以汗其行乎 羊子大慙乃捐金於野 而遠尋師學七年不返 妻常躬勤養姑 又遠饋羊子 嘗有他舍雞謬入園中 姑盜殺而食之 妻對雞不餐而泣 姑恠問其故 妻曰 自傷居貧 使食有他肉 姑竟棄之 後盜有欲犯妻者 乃先劫其姑 妻聞 操刀而出 盜曰 釋汝刀 從我可全 不從我則殺汝姑 妻仰天而歎 擧刀刎頭而死 盜亦不殺其姑 太守聞之 捕殺盜 而賜妻縑帛 以禮葬之 號曰貞義

오륜행실도 3:15ㄱ

路拾黃金恥古人 竊烹隣畜泣家貧 姑能遷善郞勤學 幾諫從容婦德新
有盜來侵首劫姑 謂言從已可全軀 擧刀刎頸 주005)
문경(刎頸):
목을 베다. 목을 찌르다.
摧肝膽 義烈貞姿照畵圖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한 적 악양 주006)
한 적 악양:
한나라 적(때) 사람 악양자(樂羊子)가.
길셔 주007)
길셔:
길에서. ‘길ㅎ’은 ㅎ종성체언이다.
드른 주008)
드른:
들[落]은. 떨어진. 현대말에서는 ‘눈물이나 빗물의 물방울이 떨어지다’라는 말로 그 뜻이 축소되었다.
금  덩이 어더 도라와 그 쳐 준대 쳬 오 쳡은 드니 주009)
드니:
들으니. 듣자하니.
잇 션 도쳔【도적도 로 일홈 지은 믈이라】읫 믈을 먹디 아니고 쳥념 사은 주010)
쳥념 사은:
청렴(淸廉)한 사람은.
차 주011)
차:
차래(嗟來). 협주에서, ‘혀며 오라  말이라(혀를 차며 오라고 하는 말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불쌍히 여기며 오라고 하는 몸짓이다.
【혀며 오라  말이라】 음식을 먹디 아니다 니 엇디 길 드른 거 주어 그 실을 더러이리오 주012)
더러이리오:
더럽히리오. 더럽히겠는가.
니 양 크게 븟그려 금을 내여 

오륜행실도 3:15ㄴ

리고 스승을 조차 글 화 주013)
글 화:
글을 배워. 본디말은 ‘호다’(배우다)이다. ¶호 모로매 안야 리오 조 모로매 화 리니[夫學은 須靜也ㅣ오 才는 須學也ㅣ니〈번역소학 6:16〉.
칠년을 도라오디 아니니 쳬 싀어미 지셩으로 봉양며 주014)
지셩으로 봉양며:
지성(至誠)으로 봉양(奉養)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를 섬기며. 『삼강행실도』에서는 ‘이바며’라고 풀이하였다. ‘이받다’는 ‘이바지하다. 봉양하다, 대접하다’의 옛말이다. 지금도 ‘이바지하다. 이바지 음식’ 등으로 쓰인다.
먼리 주015)
먼리:
멀리[遠].
지아비 공궤더니 주016)
지아비 공궤더니:
남편을 공궤(供饋)하더니. 남편에게 음식을 보내더니.
싀어미 니옷집 주017)
니옷집:
이웃집.
을 잡아 주018)
을 잡아:
닭을 잡아. 이처럼 15세기 『삼강행실도』와 18세기 『오륜행실도』가 확연히 다른 표기는 연철과 분철 표기이다. 이 말을 『삼강행실도』에서는 ‘기 자바’로 표기하고 있다.
쟝 먹으려  양의 쳬 을 보고 우러 오 주019)
우러 오:
울며 말하기를.
집이 가난여 밥상에 의 집 고기 이시니 이 나의 블효호미로다 대 싀어미 븟그려 그 고기 리니라 후의 도적이 그 쳐 범고져 여 몬져 그 싀어미 겁박니 쳬 칼을 들고 주020)
칼을 들고:
칼을 지니고. ‘칼’의 15세기 표기가 『삼강행실도』에서처럼 ‘갈’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본디는 ‘갈ㅎ[刀/劍]’이었으니 이미 15세기에도 ㅎ이 탈락된 형태로 썼음을 알 수 있다.
나오거 도적이 오 네 날을 좃디 아니면 주021)
날을 좃디 아니면: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날을’은 목적격 조사의 중복 표기다. 그런데 체언이 양성모음 ‘나’이므로 조사가 ‘/’이어야 함에도 ‘을’로 표기한 것은, ‘ㆍ’의 쓰임새가 매우 약화되어 혼란을 일으키거나 모음조화 규칙이 완화된 현상이다. 『삼강행실도』에서는 ‘나’이었다.
네 싀어미 죽이리라 쳬 하을 우러러 기리 탄식고

오륜행실도 3:16ㄱ

을 드러 멱 딜러 죽으니
주022)
칼을 드러 멱 딜러 죽으니:
칼을 들어 멱을 찔러 죽으니. ‘멱’은 목의 앞쪽이니 목을 찔렀다고 해석한 것인데, 원문 ‘거도문두이사(擧刀刎頭而死)’에서는 ‘머리[頭]’라고 하였다. 『삼강행실도』에서는 ‘머리 딜어 죽거’이라고 해석한 것은 정확한 해석은 못 되지만, ‘문(刎)’이 ‘목을 베다’의 뜻이므로 ‘칼로 목을 찔러 머리가 떨어져 나가게 하여 죽이다’라는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도적이  싀어미 노코 갓더니 고을 원이 도적을 잡아 죽이고 녜로 영장고 주023)
녜로 영장고:
예(禮)로서 영장(永葬)하고. 예의를 갖추어 편히 장례를 치러 주고.
일홈여 오 뎡의라 니라 주024)
뎡의라 니라:
정의(貞義)라고 하였다. 시호를 ‘절개 있는 의로운 사람’의 뜻으로 ‘정의’라고 내렸다.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8. 정의문사(貞義刎死)【한나라】 - 정의가 목을 찔러 죽다
한나라 때 악양자(樂洋子)가 길에서 떨어진 금 한 덩이를 주워, 돌아와 그 아내에게 주었다. 아내가 말하기를, “첩은 들으니 뜻있는 선비는 도천(盜泉)【도적 도(盜) 자로 이름을 지은 샘이다.】의 물을 마시지 아니하고, 청렴한 사람은 차래(嗟來)【혀를 차며 어서 오라고 하는 말이다.】하는 음식을 먹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그런데(그러니) 어찌하여 길에서 주운 것을 주워 그 행실을 더럽힐 것이오?” 하였다. 악양자는 크게 부끄러워하여 금을 내어 버리고, 스승을 쫓아 글을 배우며 7년 동안을 돌아오지 아니하였다. 〈그동안〉 아내는 시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하며 또 먼 길의 지아비에게 음식을 날라 주었다. 시어머니가 이웃집의 닭을 잡아 곧 먹으려고 하자, 악양자의 처는 닭을 보고 울며 말하기를, “집이 가난하여 밥상에 남의 집 고기가 있으니 이것은 나의 불효함이다.” 하였는데, 시어머니가 부끄러워하여 그 고기를 버리었다. 후에 도적이 그 처를 범하고자 하여 먼저 그 시어머니를 겁박하니, 처가 칼을 들고 나왔다. 도적이 말하기를, “네가 나를 따르지 않으면 너의 시어머니를 죽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처가 하늘을 우러러 길이 탄식하고 칼을 들어 목을 찔러 죽으니, 도적이 또한 시어머니를 놓고 갔다. 그리하여 태수(太守)가 듣고 도적을 잡아 죽이고, 예로서 영장하고, 정의(貞義)라는 이름을 내렸다.
길에서 황금을 주워오다니 옛 사람이 부끄러워 해
몰래 이웃집의 닭을 잡아 삶다니 집의 가난을 울어.
시어머니 개과천선하고 남편은 부지런히 배우고 배워
마음을 가다듬어 너그럽게 간하니 부덕의 새로움이라.
도둑이 몰래 침범하여 시어머니를 죽이겠다고 협박
정의에게는 내 말을 따르면 몸 온전히 보존하리라고.
이에 칼을 들어 자신 목을 찔러 도둑의 간담을 꺾으니
그 의리와 매운 정절의 모습 그림으로 그려 빛내노라.
Ⓒ 역자 | 이수웅 / 2016년 11월 일

〈삼강행실언해문〉
樂羊子ㅣ 길녀 가다가 金  무저글 어더 와 겨지블 주어 닐오 내 드로니 志士ㅣ 盜泉엣 므를 먹디 아니며 淸白 사미 어엿블셔 야 주 바 받디 아니다 니 며 드른 것 주 뎌글 더러리여 樂羊子ㅣ  붓그려 金을 뫼해다가 더디고 머리 가아 스 어더 글 븨호노라 야 닐굽  도라 아니 왯거늘 그 각시 손 브즈러니 싀어미 이바며  남지늬거긔 머 것 보내더라  이우짓 기 東山애 드러오나 싀어미 자바 먹더니 그 각시 먹디 아니고 울어 무른대 닐오 艱難야 바배  고기 잇논 주 셜 노다 야 리니라 後에 도기 얻고져 너겨 몬져 싀어미 저리거 그 각시 갈 들오 나니 도기 닐오 갈 노코 나 從면 거니와 그리 아니면 네 어미 주규리라 야 그 각시 하 울워러 한숨 디코 머리 딜어 죽거 도기 싀어미도 주기디 아니니라 員이 듣고 도 자바 주기고 그 각시게 匹帛 주어 禮로 葬고 號 貞義라 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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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악양자(樂羊子):유향(劉向)의 『열녀전(烈女傳)』에, 후한(後漢) 악양자의 아내도 남편이 멀리 공부하러 갔다가 1년만에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악양자는 과거공부를 떠난 지 1년 만에 그만두고 돌아온 적이 있다. 그때 부인은 짜고 있던 베틀을 끊어내었다. 깜작 놀란 남편이 애써 짠 베를 왜 잘라 버리시오 하고 묻자 학업을 중도에 포기 하는 것이나 베를 짜다 잘라버리는 것은 다름이 없다고 대답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맹자(孟子)의 ‘단기지계(斷機之戒)’를 말한다.
주002)
득유금일병(得遺金一餠):잃어버린 황금 한 덩어리를 줍다. ‘득(得)’은 ‘습(拾)’의 의미로 쓰였으며, ‘일병(一餠)’은 한 덩어리라는 뜻이다.
주003)
도천(盜泉):고유명사로 샘물의 이름. 뜻이 있는 선비는 ‘도적 도(盜)’자로 지어진 샘물의 물을 먹지 않는다는 의미임.
주004)
차래지식(嗟來之食):한숨지며 내오는 음식. 얼마나 배가 고프냐고, 불쌍한 듯이 한숨지으며 차려오는 음식을 말함.
주005)
문경(刎頸):목을 베다. 목을 찌르다.
주006)
한 적 악양:한나라 적(때) 사람 악양자(樂羊子)가.
주007)
길셔:길에서. ‘길ㅎ’은 ㅎ종성체언이다.
주008)
드른:들[落]은. 떨어진. 현대말에서는 ‘눈물이나 빗물의 물방울이 떨어지다’라는 말로 그 뜻이 축소되었다.
주009)
드니:들으니. 듣자하니.
주010)
쳥념 사은:청렴(淸廉)한 사람은.
주011)
차:차래(嗟來). 협주에서, ‘혀며 오라  말이라(혀를 차며 오라고 하는 말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불쌍히 여기며 오라고 하는 몸짓이다.
주012)
더러이리오:더럽히리오. 더럽히겠는가.
주013)
글 화:글을 배워. 본디말은 ‘호다’(배우다)이다. ¶호 모로매 안야 리오 조 모로매 화 리니[夫學은 須靜也ㅣ오 才는 須學也ㅣ니〈번역소학 6:16〉.
주014)
지셩으로 봉양며:지성(至誠)으로 봉양(奉養)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를 섬기며. 『삼강행실도』에서는 ‘이바며’라고 풀이하였다. ‘이받다’는 ‘이바지하다. 봉양하다, 대접하다’의 옛말이다. 지금도 ‘이바지하다. 이바지 음식’ 등으로 쓰인다.
주015)
먼리:멀리[遠].
주016)
지아비 공궤더니:남편을 공궤(供饋)하더니. 남편에게 음식을 보내더니.
주017)
니옷집:이웃집.
주018)
을 잡아:닭을 잡아. 이처럼 15세기 『삼강행실도』와 18세기 『오륜행실도』가 확연히 다른 표기는 연철과 분철 표기이다. 이 말을 『삼강행실도』에서는 ‘기 자바’로 표기하고 있다.
주019)
우러 오:울며 말하기를.
주020)
칼을 들고:칼을 지니고. ‘칼’의 15세기 표기가 『삼강행실도』에서처럼 ‘갈’이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본디는 ‘갈ㅎ[刀/劍]’이었으니 이미 15세기에도 ㅎ이 탈락된 형태로 썼음을 알 수 있다.
주021)
날을 좃디 아니면:나를 따르지 않으면. ‘날을’은 목적격 조사의 중복 표기다. 그런데 체언이 양성모음 ‘나’이므로 조사가 ‘/’이어야 함에도 ‘을’로 표기한 것은, ‘ㆍ’의 쓰임새가 매우 약화되어 혼란을 일으키거나 모음조화 규칙이 완화된 현상이다. 『삼강행실도』에서는 ‘나’이었다.
주022)
칼을 드러 멱 딜러 죽으니:칼을 들어 멱을 찔러 죽으니. ‘멱’은 목의 앞쪽이니 목을 찔렀다고 해석한 것인데, 원문 ‘거도문두이사(擧刀刎頭而死)’에서는 ‘머리[頭]’라고 하였다. 『삼강행실도』에서는 ‘머리 딜어 죽거’이라고 해석한 것은 정확한 해석은 못 되지만, ‘문(刎)’이 ‘목을 베다’의 뜻이므로 ‘칼로 목을 찔러 머리가 떨어져 나가게 하여 죽이다’라는 말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주023)
녜로 영장고:예(禮)로서 영장(永葬)하고. 예의를 갖추어 편히 장례를 치러 주고.
주024)
뎡의라 니라:정의(貞義)라고 하였다. 시호를 ‘절개 있는 의로운 사람’의 뜻으로 ‘정의’라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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