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3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3권
  • 오륜행실 열녀도
  • 오륜행실열녀도(五倫行實烈女圖)
  • 식처곡부(殖妻哭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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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처곡부(殖妻哭夫)


오륜행실도 3:4ㄴ

殖妻哭夫 주001)
식처곡부(殖妻哭夫):
식의 아내가 남편 주검 앞에서 통곡하다. 『열녀전』의 제목은 ‘제기양처(齊杞梁妻)’라 하였다.
【列國 주002)
제(齊):
제(기원전1123~기원전386)는 춘추시기의 제후국의 하나. 중국 산동성에 위치한 나라로 주나라 무왕(武王)이 태공망(太公望, 呂尙)을 영구(營丘)에 봉하였다. 제는 29대 739년만에 가신인 전(田)씨에게 빼앗겼다. 뒤에 수도 영구는 임치(臨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제나라 역사지도〉

오륜행실도 3:5ㄱ

齊莊公 주003)
제 장공(齊莊公):
제나라의 22대군주로 본명은 광(光). 아버지 영공(靈公)이 애첩인 중자(仲子) 소생의 이복동생 아(牙)를 세자로 책립함으로 폐세자가 되었으나 영공이 와병중에 최저가 그를 옹립하여 즉위시킴으로 군주가 되었음. 그러나 성격이 황음무도하여 환락만을 일 삼았음. 그런데 최저의 후처이자 절세미인인 당강(棠姜)을 농락함으로써 최저의 원한을 사 시해되었음.
주004)
거(莒):
거는 지금의 산동성 거현(莒縣)에 위치한 주(周)대의 나라 이름.
杞梁殖 주005)
기양식(杞梁殖):
기양(杞梁)의 이름이 식(殖)임. 제(齊)나라 장군. 『춘추(春秋)』 「양공(襄公)」 23년에 나오는 사람으로, 거(莒)나라 군주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 뒤 거나라 사람이 제나라 측에 대하여 화평을 맺음에, 제나라 군주가 귀환하였는데, 이때 도읍의 교외에서 기양의 아내를 만나, 사람을 시켜 기양이 죽음에 대한 조문을 하게 한 이야기다.
戰而死 莊公歸 遇其妻 使使者弔之於路 杞梁妻曰 今殖有罪 君何辱命焉 若令殖免於罪 則賤妾有先人之敝廬 주006)
폐려(敝廬):
자기 집을 나 추어 부르는 말. ‘려(廬)’는 오두막이라는 뜻.
在 下妾不得與郊弔 주007)
교조(郊弔):
집이 아닌 교외의 길에서 조문을 받는 것.
於是莊公乃弔諸其室 而去 杞梁之妻無子 주008)
무자(無子):
아들이 없음을 말하며, 고대의 ‘칠거지악’의 하나.
內外皆無五屬 주009)
오속(五屬):
다섯 가지의 상례복식을 오복(五服)이라고 함. 즉 참최(斬衰), 재최(齋衰),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緦麻)로, ‘오속’은 ‘오복’에 해당 되는 친척을 말함.
之親 旣無所歸 乃枕其夫之屍於城下而哭 內誠動人 道路過者莫不爲之揮涕 十日而城爲之崩 주010)
성위지붕(城爲之崩):
‘성이 무너지다’는 뜻이며, 중국 설화 중에는 이와 같은 설화들이 많이 있는데 부부의 비극의 사연들임. ‘맹강녀고사(孟姜女故事)’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旣葬曰 吾何歸矣 夫歸人必有所依者 주011)
필유소의자(必有所依者):
반드시 의지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 특히 여인은 셋 의지 할 곳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곧 ‘아버지에게 의지하고(依父)’, ‘남편에게 의지하고(依夫)’, ‘아들에게 의지(依子)’라고 하였다. 바로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말하고 있다. 〈의례(儀禮)〉에 의하면 “ 부인은 세 가지 따라야 할 도가 있으며,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도는 없다. 그러므로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을 간 후에는 지아비를 따르고,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한다[婦人有三從之義, 無專用之道, 故未嫁從父, 旣嫁從夫, 夫死從子]”라고 하였다. ‘삼종지도’를 ‘삼종지덕(三從之德)’, ‘삼종지례(三從之禮)’라고도 함.
父在則依父 夫在則依夫 子在則依子 今吾上則無父 中則無夫 下則無子 內無所依以見吾誠 外無所依以見吾節 吾豈能更二哉 주012)
오기능경이재(吾豈能更二哉):
내 어찌 개가 할 수 있으랴? ‘재(哉)’는 어조사임.
亦死而己遂赴淄水 주013)
치수(淄水):
강물 이름. ‘치하(淄河)’로 산동성 내무현(萊蕪縣)에서 발원하여 황하로 흘러들어가는 강.
而死

오륜행실도 3:5ㄴ

良人 주014)
양인(良人):
고대에 남편을 일컫는 말.
不返最堪哀 郊弔焉能偶愛廻 城下枕屍終善哭 國人揮涕豈徒哉
依歸何所見吾誠 更二無心愛此生 遂赴淄流輕一死 至今鳴咽帶愁聲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졔나라 장공이 게흘 틸 주015)
게흘 틸:
거(莒)의 땅을 칠 때. ‘거+ㅣ(소유격)+[地]+을(목적격)#티[襲]+ㄹ(관형격)#(때)’. 『삼강행실도』에서는 ‘莒  저긔’로 표기하였다.
긔량 식이 화 죽으니 주016)
화 죽으니:
싸워 죽으니. 싸우다가 전사(戰死)하니. 중세어의 본디말은 ‘호다/사호다’가 함께 쓰였다. ¶고경이 듀야로 화 냥식과 살이 진여 셩이 함몰니[杲卿晝夜拒戰 糧盡矢竭 城遂陷]〈오륜행실도 충신:30〉. 기시 하니 뭀 새 사호고 니피 츽츽니 우 븨야미 하도다[巢多衆鳥鬪 葉密鳴蟬稠]〈두시언해 22:4〉.
장공이 도라오다가 길셔 식의 쳐 만나 쟈로 여곰 주017)
쟈로 여곰:
사자(使者)로 하여금. 사신에게.
됴상니 주018)
됴상니:
조상(弔喪)하니. 문상(問喪)하니. 조문(弔問)하니.
식의 쳬 오 내 지아비 죄에 죽디 아니여실딘대 주019)
아니여실딘대:
아니하였을진대.
내 집이 이시니 주020)
이시니:
있으니. 있는데.
엇디 들에셔 주021)
들에셔:
들에서. 집이 아닌 바깥에서. 『삼강행실도』에서는 ‘햇’이라고 했던 것이 ‘들에셔’로 바뀌었다. 즉 ‘ㅎ[野]’가 ‘뫼ㅎ[山]’와 표기상 충돌함을 피하기 위해, ‘들’로 바뀐 것이다. ‘묗’는 ‘뫼’로도 자주 쓰였으니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뫼爲山’〈해례:25〉처럼 적고 있다. 그러나 ‘들[野]’도 ‘드르ㅎ’이 본디말이니, 이미 15세기부터 ㅎ종성 낱말의 ㅎ이 소멸의 과정을 밟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묏고리어나 븬 드르히어나 이긔 다 塔 일어 供養야 리니〈석보상절 19:43〉. 東녁  어느 저긔 열려뇨[東郊何時開]〈두시언해 7:25〉. 므슷 일로 西風이 수플  뮈워  소릿  그려기 긴 하해 우니오[何事로 西風이 動林野야 一聲寒鴈이 唳長天고]〈금강경삼가해 2:65〉.
됴상을 바드리오 장공이 이에 그 집의 가 됴상고 가니라 식의 쳬 식과 친쳑이 업디

오륜행실도 3:6ㄱ

라 그 지아비 죽엄을 셩 아래 누이고 주022)
누이고:
눕히고.
슬피 우니 디나 사이 다 눈믈을 리고 열흘을 우니 셩이 절로 문허디더라 주023)
문허디더라:
무너지더라.
이믜 영장매 주024)
영장매:
영장(永葬)함에. 안장(安葬)함에.
오 겨집이 반시 의지 곳이 잇니 내 우흐로 부뫼 업고 가온대로 지아비 업고 아래로 식이 업디라 내 졍셩 주025)
내 졍셩:
내함(內諴). 내 마음의 정성. ‘함(諴)’은 정성이라는 뜻.
과 졀의 뵐  업니  죽을 이라 고 츼슈 주026)
츼슈:
치수(淄水).
【믈 일홈이라】의 져 죽으니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3. 식처곡부(殖妻哭夫)【열국 제(齊)나라】 - 식의 아내가 남편 주검에 통곡하다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거(莒)나라 땅을 칠 적에 기량 (杞梁) 식(殖)이 싸우다가 죽었다. 장공이 돌아오다가 길에서 식의 아내를 만나 사자(使者)로 하여금 길에서 문상하게 하니, 식의 아내가 이르기를, “내 남편(기량)의 죄가 있어 죽지 아니하였을 진데, 내 집이 있는데 어찌 들에서 조문(弔問)을 받으리까?”라고 하였다. 장공이 이 말에 그의 집에 가서 〈예를 갖추어〉 조상(弔喪)하고 갔다. 식의 아내가 자식과 친척이 없는지라 그 남편 주검을 성(城) 아래 눕히고 슬프게 우니, 지나가는 사람이 다 눈물을 뿌리고, 열흘 동안을 우니 성이 저절로 무너지더라. 이미 장례를 치르고 말하기를, “계집이 반드시 의지할 곳이 있는 법이거늘, 내 위로 부모가 없고, 가운데로 남편이 없고, 아래로 자식이 없으므로, 내 정성과 절의를 보일 데가 없구나. 그러니 또한 죽을 수밖에 없도다.”라고 하고, 치수(淄水)【강물 이름이다.】에 빠져 죽었다.
남편이 돌아오지 못한다니 슬픔을 못 견디어
그러나 교외에서 어찌 조문을 받을 수 있으리오.
성 아래 시신을 뉘어 놓고 종일도록 슬피 우니
눈물 흘리는 나라사람들 어찌 이렇게 많다 말인가.
누구에게 의지하여 나의 정성을 다하랴
개가(改嫁)할 마음이 없으니 이 삶을 살리라.
그러나 마침내는 치수에 가벼이 몸을 던져
오늘에도 오열하는 슬픈 소리 강물은 흘러.
Ⓒ 역자 | 이수웅 / 2016년 11월 일

〈삼강행실언해문〉
齊 莊公이 莒  저긔 杞梁 殖이 싸호매 주그니라 莊公이 도라 오다가 杞梁 殖의 겨지블 마조 보아 사 브려 길헤 가아 吊問대 닐오 殖이 罪 잇니 님그미 엇뎨 命 辱시니고 殖이 罪 免딘댄 내 어버  지비 잇니 햇 吊問 몯 듣오리로소다 야 莊公이 술위 두르아 지븨 가아 禮 일운 後에 가니라 杞梁 겨지비 子息 업고 아 업서   업더니 남지늬 주검 볘여 城 미틔셔 우니거든 디나 사미 아니 울리 업더라 묻고 닐오 내 어 가려뇨 겨지븐 모로매 브  잇니 아비 이시면 아게 븓고 남지니 이시면 남지늬게 븓고 아리 이시면 아게 븓니 내 안로 브터 情誠 나토  업고 밧고로 브터 節介ㅣ 나토  업스니 주글 미라 고 므레 드러 주그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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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식처곡부(殖妻哭夫):식의 아내가 남편 주검 앞에서 통곡하다. 『열녀전』의 제목은 ‘제기양처(齊杞梁妻)’라 하였다.
주002)
제(齊):제(기원전1123~기원전386)는 춘추시기의 제후국의 하나. 중국 산동성에 위치한 나라로 주나라 무왕(武王)이 태공망(太公望, 呂尙)을 영구(營丘)에 봉하였다. 제는 29대 739년만에 가신인 전(田)씨에게 빼앗겼다. 뒤에 수도 영구는 임치(臨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제나라 역사지도〉
주003)
제 장공(齊莊公):제나라의 22대군주로 본명은 광(光). 아버지 영공(靈公)이 애첩인 중자(仲子) 소생의 이복동생 아(牙)를 세자로 책립함으로 폐세자가 되었으나 영공이 와병중에 최저가 그를 옹립하여 즉위시킴으로 군주가 되었음. 그러나 성격이 황음무도하여 환락만을 일 삼았음. 그런데 최저의 후처이자 절세미인인 당강(棠姜)을 농락함으로써 최저의 원한을 사 시해되었음.
주004)
거(莒):거는 지금의 산동성 거현(莒縣)에 위치한 주(周)대의 나라 이름.
주005)
기양식(杞梁殖):기양(杞梁)의 이름이 식(殖)임. 제(齊)나라 장군. 『춘추(春秋)』 「양공(襄公)」 23년에 나오는 사람으로, 거(莒)나라 군주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 뒤 거나라 사람이 제나라 측에 대하여 화평을 맺음에, 제나라 군주가 귀환하였는데, 이때 도읍의 교외에서 기양의 아내를 만나, 사람을 시켜 기양이 죽음에 대한 조문을 하게 한 이야기다.
주006)
폐려(敝廬):자기 집을 나 추어 부르는 말. ‘려(廬)’는 오두막이라는 뜻.
주007)
교조(郊弔):집이 아닌 교외의 길에서 조문을 받는 것.
주008)
무자(無子):아들이 없음을 말하며, 고대의 ‘칠거지악’의 하나.
주009)
오속(五屬):다섯 가지의 상례복식을 오복(五服)이라고 함. 즉 참최(斬衰), 재최(齋衰), 대공(大功), 소공(小功), 시마(緦麻)로, ‘오속’은 ‘오복’에 해당 되는 친척을 말함.
주010)
성위지붕(城爲之崩):‘성이 무너지다’는 뜻이며, 중국 설화 중에는 이와 같은 설화들이 많이 있는데 부부의 비극의 사연들임. ‘맹강녀고사(孟姜女故事)’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주011)
필유소의자(必有所依者):반드시 의지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 특히 여인은 셋 의지 할 곳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곧 ‘아버지에게 의지하고(依父)’, ‘남편에게 의지하고(依夫)’, ‘아들에게 의지(依子)’라고 하였다. 바로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말하고 있다. 〈의례(儀禮)〉에 의하면 “ 부인은 세 가지 따라야 할 도가 있으며,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도는 없다. 그러므로 시집가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을 간 후에는 지아비를 따르고, 지아비가 죽으면 아들을 따라야한다[婦人有三從之義, 無專用之道, 故未嫁從父, 旣嫁從夫, 夫死從子]”라고 하였다. ‘삼종지도’를 ‘삼종지덕(三從之德)’, ‘삼종지례(三從之禮)’라고도 함.
주012)
오기능경이재(吾豈能更二哉):내 어찌 개가 할 수 있으랴? ‘재(哉)’는 어조사임.
주013)
치수(淄水):강물 이름. ‘치하(淄河)’로 산동성 내무현(萊蕪縣)에서 발원하여 황하로 흘러들어가는 강.
주014)
양인(良人):고대에 남편을 일컫는 말.
주015)
게흘 틸:거(莒)의 땅을 칠 때. ‘거+ㅣ(소유격)+[地]+을(목적격)#티[襲]+ㄹ(관형격)#(때)’. 『삼강행실도』에서는 ‘莒  저긔’로 표기하였다.
주016)
화 죽으니:싸워 죽으니. 싸우다가 전사(戰死)하니. 중세어의 본디말은 ‘호다/사호다’가 함께 쓰였다. ¶고경이 듀야로 화 냥식과 살이 진여 셩이 함몰니[杲卿晝夜拒戰 糧盡矢竭 城遂陷]〈오륜행실도 충신:30〉. 기시 하니 뭀 새 사호고 니피 츽츽니 우 븨야미 하도다[巢多衆鳥鬪 葉密鳴蟬稠]〈두시언해 22:4〉.
주017)
쟈로 여곰:사자(使者)로 하여금. 사신에게.
주018)
됴상니:조상(弔喪)하니. 문상(問喪)하니. 조문(弔問)하니.
주019)
아니여실딘대:아니하였을진대.
주020)
이시니:있으니. 있는데.
주021)
들에셔:들에서. 집이 아닌 바깥에서. 『삼강행실도』에서는 ‘햇’이라고 했던 것이 ‘들에셔’로 바뀌었다. 즉 ‘ㅎ[野]’가 ‘뫼ㅎ[山]’와 표기상 충돌함을 피하기 위해, ‘들’로 바뀐 것이다. ‘묗’는 ‘뫼’로도 자주 쓰였으니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뫼爲山’〈해례:25〉처럼 적고 있다. 그러나 ‘들[野]’도 ‘드르ㅎ’이 본디말이니, 이미 15세기부터 ㅎ종성 낱말의 ㅎ이 소멸의 과정을 밟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묏고리어나 븬 드르히어나 이긔 다 塔 일어 供養야 리니〈석보상절 19:43〉. 東녁  어느 저긔 열려뇨[東郊何時開]〈두시언해 7:25〉. 므슷 일로 西風이 수플  뮈워  소릿  그려기 긴 하해 우니오[何事로 西風이 動林野야 一聲寒鴈이 唳長天고]〈금강경삼가해 2:65〉.
주022)
누이고:눕히고.
주023)
문허디더라:무너지더라.
주024)
영장매:영장(永葬)함에. 안장(安葬)함에.
주025)
내 졍셩:내함(內諴). 내 마음의 정성. ‘함(諴)’은 정성이라는 뜻.
주026)
츼슈:치수(淄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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