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3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3권
  • 오륜행실 열녀도
  • 오륜행실열녀도(五倫行實烈女圖)
  • 동씨피면(童氏皮面)

동씨피면(童氏皮面)


오륜행실도 3:51ㄱ

童氏皮面【元】

오륜행실도 3:51ㄴ

兪士淵 주001)
유사연(兪士淵):
인명. 본문의 동씨의 남편. 행적을 잘 알 수가 없음. 이 이야기는 『원사(元史)』. 「열전(列傳)」 88편에 나오는 기록으로,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俞士淵妻童氏, 嚴州人. 姑性嚴, 待之寡恩, 童氏柔順以事之, 無少拂其意者. 至正十三年, 賊陷威平, 官軍复之, 已乃縱兵剽掠. 至士淵家, 童氏以身蔽姑. 眾欲污之, 童氏大罵不屈. 一卒以刀擊其左臂, 愈不屈. 又一卒斷其右臂, 罵猶不絕. 眾乃皮其面而去, 明日乃死’.
妻童氏 嚴州 주002)
엄주(嚴州):
지명. 수나라 때 목주(睦州)를 두었는데, 송나라 때 엄주(嚴州)로 개명. 금나라 때 폐지. 지금의 요녕성 흥성현(興城縣)의 남쪽.
人 姑性嚴 待之寡恩 童柔順以事之 無少拂其意者 至正 주003)
지정(至正):
원(元)나라 순제(順帝)의 연호.
十三年 賊陷威平 官軍復之 已乃縱兵剽掠 주004)
표략(剽掠):
남을 협박하고 빼앗음.
至士淵家 童以身蔽姑 衆欲汗之 주005)
오지(汙之):
더럽히다. ‘지(之)’는 어조사. 兪士淵妻童氏 嚴州人 姑性嚴 待之寡恩 童柔順以事之
童大罵不屈 一卒以刀擊其左臂 愈不屈 又一卒斷其右臂 罵猶不絶 衆乃皮其面而去 明日乃死
天性堅貞婦道成 事姑承順發深情 官軍剽掠無人遏 能捍艱危不愛生
衆兵交刃入門欄 罵賊危言出肺肝 斷臂猶能終不屈 每令聞者髮衝冠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원나라 유연의 쳐 동시 엄쥬 사이라 주006)
원나라 유연의 쳐 동시 엄쥬 사이라:
원(元)나라 유사연(兪士淵)의 아내 동씨(童氏)는 엄주(嚴州) 사람이다. 『삼강행실도』에서는 ‘兪士淵의 겨집 童氏’이라고 언해하여 ‘엄주인(嚴州人)’을 생략한 것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삼강행실도』의 언해문이 한문의 원문을 그대로 풀이하지 않고 되도록 줄여 언해한 것은 처음 세종 때 간행한 한문본의 목판본을 그대로 사용하여 그 판곽 윗쪽 공간에 언해문을 새겨 넣음으로써 글자도 아주 작고 촘촘히 새겨야 했으며, 그 문장도 줄여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싀어

오륜행실도 3:52ㄱ

미 셩졍이 엄여
주007)
싀어미 셩졍이 엄여:
시어머니 성정(性情)이 엄(嚴)하여.
동시 박호 주008)
박호:
박대(薄待)하되. 『삼강행실도』에서는 ‘야히 待接거든’(매정하게 대하였으나)라고 표기하였다. ‘야히’는 ‘매정하게, 야속하게’의 뜻이다.
더옥 공슌여 그 을 거리디 아니더니 주009)
그 을 거리디 아니더니:
그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더니. ‘거리디’의 원형은 ‘거다’인데, 15세기 처음 모습은 ‘거스다(월인천강지곡 167)/거슬다(법화경언해 2:210)’였다. 그러나 이후 문헌에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거슬다(월인석보 13:55. 능엄경언해 8:137)/거슯다(소학언해 2:33)/거슯즈다(두시언해 3:8. 번역소학 8:11)/거다(월인석보 9:24)’와 같은 표기를 찾아볼 수 있다. 한편 ‘거우다(월인천강지곡 62. 이윤탁한글영비)/거오다(삼역총해 2:8)’라는 표기도 보인다. 『삼강행실도』에서는 ‘거슬’으로 적고 있다.
원말에 도적이 드러오매 관군이 회복고 인야 노략여 연의 집에 니니 동시 몸으로 싀어미 리온대 여러 군 동시 핍박려 거 동시 크게 짓고 굴티 아니니 주010)
크게 짓고 굴티 아니니:
크게 꾸짖고 굴복하지 아니하니. ‘짓-’은 15세기 ‘구짇-/구짖-’으로 표기하다가 된소리로 바뀌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 군 칼을 드러 좌편 을 버히되 주011)
칼을 드러 좌편 을 버히되:
칼을 들어 왼쪽 팔을 베니. ‘’은 본디 ㅎ종성체언 ‘ㅎ’이었다. 그러나 일찌감치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 爲臂’(해례 24)라고 표기하면서 ㅎ을 생략하고 있다. 물론 ‘ㅎ’의 표기가 ‘월인천강지곡(192장), 법화경언해(2:12), 두시언해(9:22), 능엄경언해(2:114) 등 여러 문헌에서 나타나고, ‘(팔짱)(번역소학 10:13. 금강경삼가해 3:4), 쇠(팔찌)(두시언해 20:9), 톡(팔뚝)(두시언해 15:43. 구급방언해 상:36)’ 등의 합성어가 쓰이고 있으나 『구급간이방』(1489)과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에서부터는 ‘’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발[足]’(월인천강지곡 119)과 표기와 발음이 비슷하여 혼란을 막기 위한 표기 변화로 볼 수 있다. 『훈몽자회』에서는 이밖에도, ‘구브(팔굽), 독(팔뚝), 쇠(팔찌), 지(팔찌)’ 따위로 바뀐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본디 ‘’의 표기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볼 수 있듯이 ‘ 爲蠅’라고 하여 ‘파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기 때문에 ‘’을 유지하였으나 ‘’과 ‘발’, ‘’의 변별을 위해 ‘(팔), 발, 리(파리)’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遍, 層, 倍, 部]’은 ‘벌’로 정착되어 각자 변별력을 갖추게 되었다.
더옥 굴티 아니고   군 우편 을 버히되 짓기 마디 아니대 모든 군 그 가족을 벗기고 주012)
가족을 벗기고:
낯가죽[面皮]을 벗기고. 얼굴가죽을 벗기고.
가니 이튼날 주013)
이튼날:
이튿날. 『삼강행실도』에서는 ‘이틄날’로 표기하여 합성어임을 밝히고 있다. ‘이틀+ㅅ+날’.
죽으니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25. 동씨피면(童氏皮面)【원(元)나라】 - 동씨의 얼굴 가죽이 벗겨지다
원나라 유사연(兪士淵)의 아내 동(童)씨는 엄주(嚴州) 사람이다. 시어머니의 성정(性情)이 엄하여 동씨를 박대하는데도 더욱 공손하여 그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였다. 원나라 말에 적병(도적)이 침입하였다. 그러자 관군이 〈이 곳을〉 회복하고 노략질을 하였다. 〈관군이〉 유사연의 집에 이르렀다. 동씨는 몸으로 시어머니를 가리었다. 여러 군사들이 동씨를 협박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동씨가 크게 꾸짖고 굽히지 아니하니, 한 군사가 칼을 들어 왼쪽 팔을 베었으되, 더욱이 굽히지 아니하였다. 또 한 군사가 오른쪽 팔을 베었으되, 꾸짖기를 그만두지 아니하여 모든 군사가 그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가므로, 이튿날 죽었다.
천성이 굳고 곧아서 부도(婦道)를 이루고
시어머니 섬기고 순종함 진정에서 비롯해.
관군의 잔인한 약탈을 막는 사람일랑 없는데
간난과 위험을 막으려니 목숨을 아끼지 않아.
많은 군사들 칼을 겨누고 대문간을 난입하거늘
적병을 꾸짖는 위엄의 말은 폐부(肺腑)에서 나와.
두 팔을 잘리고도 끝내 굽히지 않을 수 있다니
이야기 듣는 모든 사람들의 모발이 쭈삣 갓을 뚫어.
Ⓒ 역자 | 이수웅 / 2016년 11월 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3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관련자료
이 기사는 전체 1개의 자료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유사연(兪士淵):인명. 본문의 동씨의 남편. 행적을 잘 알 수가 없음. 이 이야기는 『원사(元史)』. 「열전(列傳)」 88편에 나오는 기록으로,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俞士淵妻童氏, 嚴州人. 姑性嚴, 待之寡恩, 童氏柔順以事之, 無少拂其意者. 至正十三年, 賊陷威平, 官軍复之, 已乃縱兵剽掠. 至士淵家, 童氏以身蔽姑. 眾欲污之, 童氏大罵不屈. 一卒以刀擊其左臂, 愈不屈. 又一卒斷其右臂, 罵猶不絕. 眾乃皮其面而去, 明日乃死’.
주002)
엄주(嚴州):지명. 수나라 때 목주(睦州)를 두었는데, 송나라 때 엄주(嚴州)로 개명. 금나라 때 폐지. 지금의 요녕성 흥성현(興城縣)의 남쪽.
주003)
지정(至正):원(元)나라 순제(順帝)의 연호.
주004)
표략(剽掠):남을 협박하고 빼앗음.
주005)
오지(汙之):더럽히다. ‘지(之)’는 어조사. 兪士淵妻童氏 嚴州人 姑性嚴 待之寡恩 童柔順以事之
주006)
원나라 유연의 쳐 동시 엄쥬 사이라:원(元)나라 유사연(兪士淵)의 아내 동씨(童氏)는 엄주(嚴州) 사람이다. 『삼강행실도』에서는 ‘兪士淵의 겨집 童氏’이라고 언해하여 ‘엄주인(嚴州人)’을 생략한 것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삼강행실도』의 언해문이 한문의 원문을 그대로 풀이하지 않고 되도록 줄여 언해한 것은 처음 세종 때 간행한 한문본의 목판본을 그대로 사용하여 그 판곽 윗쪽 공간에 언해문을 새겨 넣음으로써 글자도 아주 작고 촘촘히 새겨야 했으며, 그 문장도 줄여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007)
싀어미 셩졍이 엄여:시어머니 성정(性情)이 엄(嚴)하여.
주008)
박호:박대(薄待)하되. 『삼강행실도』에서는 ‘야히 待接거든’(매정하게 대하였으나)라고 표기하였다. ‘야히’는 ‘매정하게, 야속하게’의 뜻이다.
주009)
그 을 거리디 아니더니:그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더니. ‘거리디’의 원형은 ‘거다’인데, 15세기 처음 모습은 ‘거스다(월인천강지곡 167)/거슬다(법화경언해 2:210)’였다. 그러나 이후 문헌에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거슬다(월인석보 13:55. 능엄경언해 8:137)/거슯다(소학언해 2:33)/거슯즈다(두시언해 3:8. 번역소학 8:11)/거다(월인석보 9:24)’와 같은 표기를 찾아볼 수 있다. 한편 ‘거우다(월인천강지곡 62. 이윤탁한글영비)/거오다(삼역총해 2:8)’라는 표기도 보인다. 『삼강행실도』에서는 ‘거슬’으로 적고 있다.
주010)
크게 짓고 굴티 아니니:크게 꾸짖고 굴복하지 아니하니. ‘짓-’은 15세기 ‘구짇-/구짖-’으로 표기하다가 된소리로 바뀌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주011)
칼을 드러 좌편 을 버히되:칼을 들어 왼쪽 팔을 베니. ‘’은 본디 ㅎ종성체언 ‘ㅎ’이었다. 그러나 일찌감치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 爲臂’(해례 24)라고 표기하면서 ㅎ을 생략하고 있다. 물론 ‘ㅎ’의 표기가 ‘월인천강지곡(192장), 법화경언해(2:12), 두시언해(9:22), 능엄경언해(2:114) 등 여러 문헌에서 나타나고, ‘(팔짱)(번역소학 10:13. 금강경삼가해 3:4), 쇠(팔찌)(두시언해 20:9), 톡(팔뚝)(두시언해 15:43. 구급방언해 상:36)’ 등의 합성어가 쓰이고 있으나 『구급간이방』(1489)과 『훈몽자회(訓蒙字會)』(1527)에서부터는 ‘’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발[足]’(월인천강지곡 119)과 표기와 발음이 비슷하여 혼란을 막기 위한 표기 변화로 볼 수 있다. 『훈몽자회』에서는 이밖에도, ‘구브(팔굽), 독(팔뚝), 쇠(팔찌), 지(팔찌)’ 따위로 바뀐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본디 ‘’의 표기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볼 수 있듯이 ‘ 爲蠅’라고 하여 ‘파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기 때문에 ‘’을 유지하였으나 ‘’과 ‘발’, ‘’의 변별을 위해 ‘(팔), 발, 리(파리)’로 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遍, 層, 倍, 部]’은 ‘벌’로 정착되어 각자 변별력을 갖추게 되었다.
주012)
가족을 벗기고:낯가죽[面皮]을 벗기고. 얼굴가죽을 벗기고.
주013)
이튼날:이튿날. 『삼강행실도』에서는 ‘이틄날’로 표기하여 합성어임을 밝히고 있다. ‘이틀+ㅅ+날’.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