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3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3권
  • 오륜행실 열녀도
  • 오륜행실열녀도(五倫行實烈女圖)
  • 백희체화(伯姬逮火)

백희체화(伯姬逮火)


오륜행실도 3:1ㄱ

伯姬逮火 주001)
체화(逮火):
불에 휩싸이다. ‘逮’는 ‘미치다’, ‘이르다’, ‘따르다’의 뜻.
列國 주002)
열국(列國):
각국, 여러 나라의 뜻으로 춘추 시기 여러 제후국을 말하며, ‘송(宋)’은 그 가운데의 한나라임.
宋】

오륜행실도 3:1ㄴ

伯姬 魯宣公之女 嫁於宋共公 公卒 嘗遇夜失火 左右曰 夫人少避火 伯姬曰 婦人之義 保傅不俱 夜不下堂 주003)
야불하당(夜不下堂):
밤에는 집의 마루를 내려가지 않는다. 부인의 의(義)로 밤에 부모(傅母)가없으면 집마루를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뜻.
待保傅來也 保母至矣 傅母未至也 左右又曰 夫人少避火 伯姬曰 婦人至義 傅母不至 夜不可下堂 越義 주004)
월의(越義):
의를 어기다.
而生 不如守義而死 遂逮於火而死
宮中失火正熺熺 煙燄連天半夜時 左右縱言宜少避 夫人豈肯婦儀虧
共姬守禮任捐軀 婦道堅貞孰與儔 聖筆特書賢節義 聲名煥赫至今留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희 노션공의 이오 송 공공의 안라 주005)
희 노션공의 이오 송 공공의 안라:
백희는 노나라 선공의 딸이요, 송나라 공공의 아내다. 이 문장이 한글 전용체로 쓰여진 반면, 『삼강행실도』에서는 ‘宋恭公 夫人 伯姬’라고 표기하였다. 즉 한자말은 한자만으로 표기하며 본문을 생략하기까지 하였다. 이것이 15세기 『삼강행실도』의 언해문과 18세기 『오륜행실도』의 언해문 차이라 할 수 있다.
주006)
안라:
아내다. 부인(夫人)이다.
공공

오륜행실도 3:2ㄱ

이 죽으매 일즉 밤에 집이 블븟트니 주007)
블븟트니:
불이 붙으니. 화재가 나니. 『삼강행실도』(언해본)(1490)의 표기는 ‘블븓거늘’로서, ‘븓-’가 ‘-’으로 변화하였다.
좌위 주008)
좌위:
좌우가. ‘좌우(左右)+ㅣ(주격조사)’. 집안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
피믈 권대 희 오 주009)
오:
가로되[曰]. 말하기를. 이르기를. 『삼강』에서는 ‘닐오’로 표기하였다.
부인의 도리 보뷔【부인 치고 기르 사이라】 업면 주010)
업면:
없으면. 『삼강』에서는 ‘디 몯면’(갖추지 못하면)이라 하였다. 원문 ‘不俱’를 번역한 말인데, 『오륜』에서는 더 의역(意譯) 성향으로 해석한 것이다.
밤의 집에 리디 아니니 주011)
리디 아니니:
아래로 내려가지 아니하는 것이니.
보뷔 주012)
보뷔:
보부가. ‘보부(保傅)+ㅣ(주격조사)’. 보부는 보모(保母)와 부모(傅母)의 준말로 쓰였다.
오기 기리라 이윽여 주013)
이윽하여:
이슥하여. ‘밤이 꽤 깊어’의 뜻이다.
보뫼 니니 좌위  피믈 권대 주014)
권대:
권(勸)하였더니. 독촉(督促)하니. 재촉하니. 『삼강』에서는 ‘오’(사뢰였으나)로 표기하였다.
희 오 부뫼 오디 아니여시니 가히 집에 리디 못디라 의 어그릇고 주015)
어그릇고:
어기고. 어그러지게 하고.
사 거 의 딕희여 주016)
딕희여:
지키어. 지켜서.
죽니만 못다 고 드여 블에 밋처 주017)
블에 밋처:
불에 미치어. 불 가까이 다가가(뛰어들어). ‘체어화(逮於火)’의 해석이다.
죽으니라 주018)
죽으니라:
죽었다. 죽었느니라. 『삼강』에서는 ‘주그니라’라고 표기하였다. 즉 연철표기가 분철표기로 나아가면서 형태소 중심으로 표기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어휘형태소 ‘죽’과 문법형태소 ‘으니라’의 뚜렷한 구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1. 백희체화(伯姬逮火)【열국(列國) 송(宋)나라】 - 백희가 불에 뛰어들다
백희 주019)
백희(伯姬):
노나라 선공의 딸로, 동주(東周) 사람.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에는 ‘송공백희(宋恭伯姬)’라는 제목으로 나온다. 『춘추(春秋)』의 「좌씨전」 기원전 543년 기록에, “五月甲午 宋災 宋伯姬卒”라고 되어 있고, 「곡량전」 ‘양공(襄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取卒之日加之災上者 見以災卒也 其見以災卒奈何 伯姬之舍失火 左右曰 夫人少辟火乎 伯姬曰 婦人之義 傅母不在 宵不下堂 左右又曰 少辟火乎 伯姬曰 婦人之義 保母不在 宵不下堂 遂逮于火而死 婦人以貞為行者也 伯姬之婦道盡矣 詳其事 賢伯姬也”
노(魯)나라 주020)
노(魯):
노(기원전1042년~기원전256년)는 지금의 산동성 곡부현(曲阜縣)에 위치하며, 주(周)나라 문왕의 넷째 아들인 주공(周公) 단(旦)을 이곳에 봉하였다. 그 뒤에 주공의 장자 백금(伯禽)을 노(魯)의 제후로 삼아 다스리게 하였다. 공자(孔子, 기원전551년~기원전479년)가 이 노나라에서 태어나 활동하던 춘추시기에는 동방의 강국이었으나 정치적인 부패로 점차 세력이 약화되어 결국은 초(楚)나라에게 패망하였다.

〈춘추전국 시기〉의 노, 송 역사지도

선공(宣公) 주021)
선공(宣公):
이름은 퇴(俀) 또는 왜(倭)라고 하였는데, 문공의 서자이다. 문공이 죽자 양중(襄仲, 公子遂)이 문공의 적자인 악급시(惡及視)를 죽이고 즉위하였다. 18년동안 재위하였다.
의 딸이요, 송(宋)나라 주022)
송(宋):
송(?~기원전286)은 하남성 상구현(河南省 商丘縣)에 자리잡았다. ‘송(宋)’이란 국명은 중국역사무대에 3차례 등장한다. 춘추전국시기의 ‘송’, 남조(南朝)때의 ‘송’, 북주(北周)를 멸하고 조광윤(趙匡胤)이 건국한 ‘송’등 3개 국가이다. 여기에서는 바로 춘추전국시기의 송(宋)을 말한다. 즉 상(商)나라 임금 제을(帝乙)의 장서자(長庶子) 계(啓)에서 비롯한다. 그는 미(微)에서 나물을 먹고 살았음으로 ‘미자(微子)’라고 일컬었다. 무왕이 죽은 뒤에 아들 송(誦)이 즉위하였는데 그가 성왕(成王)이다. 그러나 성왕이 나이가 어려 무왕의 동생인 주공 단(旦)이 섭정하였다. 그러나 그의 동생인 관숙, 채숙 등은 주공 단이 나라를 찬탈하려 한다고 불만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여러 부족들과 연합하여 무경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은 3년에 걸쳐 이들을 진압하였다. 그리고 더욱 통치를 강화하고 대규모의 토지를 제후들에게 분봉 하였다. 무려71의 제후를 두었다. 주요 제후국으로는 노, 제, 진, 연, 송 등이었는데, 주공 단은 미자 계를 상은의 후계자로 송에 봉하였다. 도읍은 상구(商丘, 하남성 상구현)였다. 주 초기에는 세력이 막강하여 여러 제후국들과 세력을 다투었으나 역시 폭정으로 제, 초, 위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공공(共公) 주023)
공공(共公):
‘공공(恭公)’과 같은 송나라의 공자(公子).
의 아내다. 공공이 죽으매, 일찍이 밤에 집이 불붙으니, 좌우 사람이 〈불을〉 피하라고 권하였는데, 백희가 말하기를, “부인의 도리는 보부(保傅) 주024)
보부(保傅):
부인(夫人)을 교육하고 양육하는 나이 든 여자. 여기서는 보모(保姆)와 부모(傅母) 두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보모가 왔음에도 부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불구덩이인 집에서 나가지 않은 백희는 결국 불에 휩싸여 죽고 말았다.
【보부는 부인을 가르치고 기르는 사람이다.】 없으면 밤에 집에서 밖을 나가지 않는 법이니, 보부가 오기를 기다려라.”라고 하였다. 이슥하여 보모(保姆) 주025)
보모(保母):
보모(保姆). 어린 아이를 돌모며 양육하는 나이 든 여인과 같은 뜻.
가 이르니, 좌우 사람이 또 피하라고 권하였지만, 백희가 말하기를, “부모(傅母) 주026)
부모(傅母):
‘보모(保母)’와 같은 뜻이지만, 보모가 양육을 담당한 사람이라면, 부모는 교육을 주로 담당한 사람을 가리킨다.
가 오지 아니하였으니 가히 집에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의(義)를 어기고 사는 것은 의를 지켜서 죽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고, 드디어 불에 뛰어들어 죽었다.
궁중의 실화로 곧 불길이 훨훨 타올라
연기 화염이 하늘을 치솟는 밤중인데.
좌우에서 서둘러 피하라고 재촉하여도
부인으로 어찌 예절을 어길 수 있느냐고.
백희 예의를 지켜 스스로 몸을 던지니
부도(婦道)의 굳고 곧음 누가 따르랴?
거룩한 필치로 절의를 특별히 쓰나니
그 명성이 지금까지 전하여 오노라네.
Ⓒ 역자 | 이수웅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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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체화(逮火):불에 휩싸이다. ‘逮’는 ‘미치다’, ‘이르다’, ‘따르다’의 뜻.
주002)
열국(列國):각국, 여러 나라의 뜻으로 춘추 시기 여러 제후국을 말하며, ‘송(宋)’은 그 가운데의 한나라임.
주003)
야불하당(夜不下堂):밤에는 집의 마루를 내려가지 않는다. 부인의 의(義)로 밤에 부모(傅母)가없으면 집마루를 내려가서는 안 된다는 뜻.
주004)
월의(越義):의를 어기다.
주005)
희 노션공의 이오 송 공공의 안라:백희는 노나라 선공의 딸이요, 송나라 공공의 아내다. 이 문장이 한글 전용체로 쓰여진 반면, 『삼강행실도』에서는 ‘宋恭公 夫人 伯姬’라고 표기하였다. 즉 한자말은 한자만으로 표기하며 본문을 생략하기까지 하였다. 이것이 15세기 『삼강행실도』의 언해문과 18세기 『오륜행실도』의 언해문 차이라 할 수 있다.
주006)
안라:아내다. 부인(夫人)이다.
주007)
블븟트니:불이 붙으니. 화재가 나니. 『삼강행실도』(언해본)(1490)의 표기는 ‘블븓거늘’로서, ‘븓-’가 ‘-’으로 변화하였다.
주008)
좌위:좌우가. ‘좌우(左右)+ㅣ(주격조사)’. 집안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다.
주009)
오:가로되[曰]. 말하기를. 이르기를. 『삼강』에서는 ‘닐오’로 표기하였다.
주010)
업면:없으면. 『삼강』에서는 ‘디 몯면’(갖추지 못하면)이라 하였다. 원문 ‘不俱’를 번역한 말인데, 『오륜』에서는 더 의역(意譯) 성향으로 해석한 것이다.
주011)
리디 아니니:아래로 내려가지 아니하는 것이니.
주012)
보뷔:보부가. ‘보부(保傅)+ㅣ(주격조사)’. 보부는 보모(保母)와 부모(傅母)의 준말로 쓰였다.
주013)
이윽하여:이슥하여. ‘밤이 꽤 깊어’의 뜻이다.
주014)
권대:권(勸)하였더니. 독촉(督促)하니. 재촉하니. 『삼강』에서는 ‘오’(사뢰였으나)로 표기하였다.
주015)
어그릇고:어기고. 어그러지게 하고.
주016)
딕희여:지키어. 지켜서.
주017)
블에 밋처:불에 미치어. 불 가까이 다가가(뛰어들어). ‘체어화(逮於火)’의 해석이다.
주018)
죽으니라:죽었다. 죽었느니라. 『삼강』에서는 ‘주그니라’라고 표기하였다. 즉 연철표기가 분철표기로 나아가면서 형태소 중심으로 표기해 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어휘형태소 ‘죽’과 문법형태소 ‘으니라’의 뚜렷한 구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주019)
백희(伯姬):노나라 선공의 딸로, 동주(東周) 사람.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에는 ‘송공백희(宋恭伯姬)’라는 제목으로 나온다. 『춘추(春秋)』의 「좌씨전」 기원전 543년 기록에, “五月甲午 宋災 宋伯姬卒”라고 되어 있고, 「곡량전」 ‘양공(襄公)’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取卒之日加之災上者 見以災卒也 其見以災卒奈何 伯姬之舍失火 左右曰 夫人少辟火乎 伯姬曰 婦人之義 傅母不在 宵不下堂 左右又曰 少辟火乎 伯姬曰 婦人之義 保母不在 宵不下堂 遂逮于火而死 婦人以貞為行者也 伯姬之婦道盡矣 詳其事 賢伯姬也”
주020)
노(魯):노(기원전1042년~기원전256년)는 지금의 산동성 곡부현(曲阜縣)에 위치하며, 주(周)나라 문왕의 넷째 아들인 주공(周公) 단(旦)을 이곳에 봉하였다. 그 뒤에 주공의 장자 백금(伯禽)을 노(魯)의 제후로 삼아 다스리게 하였다. 공자(孔子, 기원전551년~기원전479년)가 이 노나라에서 태어나 활동하던 춘추시기에는 동방의 강국이었으나 정치적인 부패로 점차 세력이 약화되어 결국은 초(楚)나라에게 패망하였다.
〈춘추전국 시기〉의 노, 송 역사지도
주021)
선공(宣公):이름은 퇴(俀) 또는 왜(倭)라고 하였는데, 문공의 서자이다. 문공이 죽자 양중(襄仲, 公子遂)이 문공의 적자인 악급시(惡及視)를 죽이고 즉위하였다. 18년동안 재위하였다.
주022)
송(宋):송(?~기원전286)은 하남성 상구현(河南省 商丘縣)에 자리잡았다. ‘송(宋)’이란 국명은 중국역사무대에 3차례 등장한다. 춘추전국시기의 ‘송’, 남조(南朝)때의 ‘송’, 북주(北周)를 멸하고 조광윤(趙匡胤)이 건국한 ‘송’등 3개 국가이다. 여기에서는 바로 춘추전국시기의 송(宋)을 말한다. 즉 상(商)나라 임금 제을(帝乙)의 장서자(長庶子) 계(啓)에서 비롯한다. 그는 미(微)에서 나물을 먹고 살았음으로 ‘미자(微子)’라고 일컬었다. 무왕이 죽은 뒤에 아들 송(誦)이 즉위하였는데 그가 성왕(成王)이다. 그러나 성왕이 나이가 어려 무왕의 동생인 주공 단(旦)이 섭정하였다. 그러나 그의 동생인 관숙, 채숙 등은 주공 단이 나라를 찬탈하려 한다고 불만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여러 부족들과 연합하여 무경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은 3년에 걸쳐 이들을 진압하였다. 그리고 더욱 통치를 강화하고 대규모의 토지를 제후들에게 분봉 하였다. 무려71의 제후를 두었다. 주요 제후국으로는 노, 제, 진, 연, 송 등이었는데, 주공 단은 미자 계를 상은의 후계자로 송에 봉하였다. 도읍은 상구(商丘, 하남성 상구현)였다. 주 초기에는 세력이 막강하여 여러 제후국들과 세력을 다투었으나 역시 폭정으로 제, 초, 위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주023)
공공(共公):‘공공(恭公)’과 같은 송나라의 공자(公子).
주024)
보부(保傅):부인(夫人)을 교육하고 양육하는 나이 든 여자. 여기서는 보모(保姆)와 부모(傅母) 두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 보모가 왔음에도 부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불구덩이인 집에서 나가지 않은 백희는 결국 불에 휩싸여 죽고 말았다.
주025)
보모(保母):보모(保姆). 어린 아이를 돌모며 양육하는 나이 든 여인과 같은 뜻.
주026)
부모(傅母):‘보모(保母)’와 같은 뜻이지만, 보모가 양육을 담당한 사람이라면, 부모는 교육을 주로 담당한 사람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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