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3:57ㄱ
翠哥就烹 주001) 취가취팽(翠哥就烹): 취가가 적에게 삶겨 죽임을 당하다. 이 이야기는 원사(元史) ‘열전(列傳) 제88 열녀(列女) 2’에 기록된 여러 여인 이야기 중 ‘이중의처류씨(李仲義妻劉氏)’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元】오륜행실도 3:57ㄴ
李仲義 주002) 이중의(李仲義): 원(元)나라 사람. 행적을 잘 알 수가 없음.
妻劉氏
名翠哥 房山 주003) 방산(房山): 옛 기록에 의하면, 1)직예(直隷)의 평산현(平山縣)서북쪽에 위치하며, 한 무제가 이 산위에 사당을 지었는데 지금의 ‘왕모관(王母觀)’이다. 2)경조(京兆) 방산현의 대방산(大房山)을 방산(房山)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두 번째의 방산을 말하는데 원나라 때 개명하였다.
人 至正二十年
縣大饑 平章 주004) 평장(平章): 관직명. 하남행성평장정사(河南行省平章政事).
劉哈剌不花 주005) 유하랄불화(劉哈剌不花): 몽고어로 ‘유하라부카’라고 한다. 원나라 사람으로, 하급관리인 연리(掾吏)였다가 하남행성평장정사(河南行省平章政事)가 되었음. 원나라 순제(順帝) 때, 요나라와 금나라, 송나라 삼대의 역사를 편찬하고, 승상이 된 태평(太平)에게 발탁되어 지정 18년(1358)에 홍건적을 크게 물리쳐 공을 세웠다.
兵乏食 執仲義欲烹之 仲義弟馬兒 走報劉氏 劉遽往救之 涕泣伏地告於兵曰 所執者 是吾夫也 乞矜憐之貸其生 吾家有醬一甕米一斗五升窖于地中 可掘取之 以代吾夫 兵不從 劉曰 吾夫瘐小不可食 吾聞婦人肥黑者味美 吾肥且黑 願就烹以代夫死 兵遂釋其夫而烹劉氏
元
季年 주006) 饑人起兵 人將相食競紛爭 釋夫心切生堪捨 慷慨持身自就烹
代夫身命卽
捐軀 주007) 연구(捐軀): 몸을 버리다. 몸을 던지다. 즉, ‘죽는다’는 의미.
遂使奸兇噬我膚 高義感人人自服 聞風百世盡嗟
오륜행실도 3:58ㄱ
吁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원나라 니듕의 쳐 뉴시의 일홈은 개니 방산 사이라
지뎡 이십년의 크게 흉년 드러 주008) 지뎡 이십년의 크게 흉년 드러: 지정(至正) 20년(1360)에 크게 흉년이 들어. ‘지정’은 원나라 순제(順帝) 때 연호(1341~1367)이다.
도적이 군냥이 업니 적댱이 주009) 도적이 군냥이 업니 적댱이: 도적(盜賊)이 군량(軍糧)이 없으니 적장(賊將)이. 원문 ‘平章劉哈剌不花兵乏食’을 의역한 것으로, ‘평장 유하랄불화가, 병사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니’라고 풀이해야 할 부분을 ‘도적 적장’으로 풀이한 것이다. 평장은 유하랄불화의 직함인데, ‘하남행성평장정사’의 줄인 말이다. 유하랄불화의 몽고식 발음은 ‘유하라부카’라고 한다.
듕의 잡아 마 먹으려 거
뉴시 업여 울며 비러 오 주010) 뉴시 업여 울며 비러 오: 유씨(劉氏)가 땅에 엎드려 울며 빌어 말하기를. ‘’는 ‘[地]+(처소격 조사)’로서 ㅎ종성체언이다. ‘비러’(빌어)를 『삼강행실도』에서는 ‘굽스러’라는 말로 언해하였다. ‘굽스러(굽슬다)’는 ‘엎드려(엎드리다)’의 옛말이니, 원문 ‘복(伏)’의 풀이로서 ‘빌어’보다는 더 알맞은 풀이다. 바로 앞의 원문 ‘仲義弟馬兒 走報劉氏 劉遽往救之’ 부분이 생략되었는데, 『삼강행실도』에서는, ‘仲義의 이 라가아 아미 劉氏려 닐어늘(이중의의 동생이 달려가서 아주머니 유씨(劉氏)에게 말하니)’이라고 언해하였다. 좀더 정확히 풀이하자면, ‘이중의의 동생 마아(馬兒)가 〈집으로〉 달려가서 아주머니(형수) 유씨(劉氏)에게 〈이 사실을〉 말하니’라고 하여야 옳다.
내 지아비 살오면 주011) 내 지아비 살오면: 내 지아비를 살려주면. ‘살오다’는 ‘살리다’로서, ‘살-[生]+-오-+면’의 ‘-오-’는 동사 뒤에 붙어서, 사동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현대말 ‘날리다, 울리다, 꿇리다, 알리다’ 등의 ‘-리-’와 같은 형태이다.
내 집의 댱 독과 말 닷 되 속에 무더시니 다 가지라 호 도적이 듯디 아니거 뉴시 오
지아비 여위고 져그니 먹엄즉디 아니디라 주012) 지아비 여위고 져그니 먹엄즉디 아니디라: 지아비는 여위고 적으니 먹음직하지 아니하므로. 남편은 살이 마르고 몸집이 적으니 먹을 만하지 않다.
내 드니 겨집이 고 검으면 마시 죠타 니 내 고 검은디라 지아
오륜행실도 3:58ㄴ
비 신에 겨디라 대 도적이 그 지아비 노코 뉴시 므니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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