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1집

  • 역주 오륜행실도
  • 오륜행실 효자도
  • 오륜행실효자도(五倫行實孝子圖)
  • 서적독행(徐積篤行)

서적독행(徐積篤行)


오륜행실도 1:50ㄴ

徐積篤行 【宋】

오륜행실도 1:51ㄱ

徐積 楚州人 三歲父死 朝朝求之甚哀 母使讀孝經 輒淚落不能止 事母至孝 朝夕冠帶定省應擧 入都 不忍捨其親 徒載而西 登第 擧首許安國率同年入拜 且致百金爲壽 謝而却之 以父名石 終身不用石器 行遇石 則避而不踐 母亡 悲慟嘔血 廬墓三年 雪夜伏墓側 哭不絶音 翰林學士呂溱 過其墓 聞之 爲泣下曰 使鬼神有知 亦垂涕也 甘露歲降兆域 杏兩枝合爲榦 旣終喪 不徹筵几 起居饋獻 如平生 州以行聞 詔賜粟帛 元祐初 爲楚州敎授 又轉和州防禦推官 徽宗賜諡節孝處士

오륜행실도 1:51ㄴ

嬰孩亡父日哀求 感切中情涕泗流 事母更能躬孝養 當時名士復誰儔
致養居喪總盡情 神明黙贊顯祥禎 重膺朝命榮褒寵 今古人傳節孝名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셔젹 주001)
셔젹:
서적(徐積). 초주(楚州) 산음(山陽) 사람으로 자는 중거(仲車)이고, 호는 남곽옹(南郭翁)임. 북송(北宋)의 청각장애인 출신 관리로 호원(胡瑗)의 제자로서, 치평(治平) 4년(1067)에 진사(進士)로 급제하였으나, 청각 장애인이라서 임관을 사양했음. 비록 청각에 장애가 있었지만,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효성이 지극했다 함. 뒤에 추천을받아, 양주사호참군(揚州司戶參軍), 초주교수(楚州教授), 화주방어추관(和州防禦推官), 선덕랑(宣德郞), 감서경숭산중악묘(監西京嵩山中嶽廟)를 지냈다. 시호는 절효처사(節孝處士)임.
송나라 주002)
송(宋):
당(唐), 오대십국(五代十国)에 이어지는 중국의 통일 왕조. 카이펑[开封]을 도읍으로 정한 북송(北宋; 960~1127)과 임안(临安; 지금의 항주(杭州))을 도읍으로 정한 남송(南宋; 1127~1279)을 가리키며, 남조(南朝)의 유송(刘宋)과 구별하여 조송(趙宋)이라고도 함. 오대(五代) 말기 후주(后周) 세종(世宗)이 죽은 뒤 절도사 조광윤(趙匡胤)이 근위병(近衛兵)의 추대를 받고 천자의 자리에 올라 960년 카이펑에 도읍을 정하고 송을 건국하였음.
초쥬 주003)
초쥬:
초주(楚州). 중국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에 있는 구(區).
사이니 삼셰에 아비 죽으니 아마다 주004)
아마다:
‘아+마다(부사격 조사)’. 아침마다.
즈며 주005)
즈며:
‘-+-으며’. 찾으며.
심히 셜워고 주006)
셜워고:
‘셟-+-어(보조적 연결어미)#-+-고(연결어미)’. 서러워 하고. ‘셟’은 ‘섧-, 괴롭-’의 뜻이며 ‘ㅂ불규칙 용언’이다. ¶셜온 님 보내노니〈악장 가시리〉.
어미 여곰 효경을 닑히면 주007)
닑히면:
‘닑-+-히(사동 파생접미사)-+-면(연결어미)’. 읽히면. 읽게 하면.
믄득 눈믈을 긋치디 주008)
긋치디:
‘긋치-+-디(보조적 연결어미)’. 그치지.
아니고 어미 지효로 셤겨 관과 주009)
관과:
‘관(冠)+과(부사격 조사)’. 관과.
 주010)
:
‘+’. 띠를.
초아 주011)
초아:
‘초-+-아(연결어미)’. 갖추어.
됴셕으로 문안며 주012)
문안며:
‘문안(問安)#-+-며(연결어미)’. 문안하며. 문안드리며.
과거 보라 주013)
보라:
‘보-+-라(연결어미)’. 보러.
셔울 주014)
셔울:
서울.
올 마 어미 나디 주015)
나디:
‘나-+-디(보조적 연결어미)’. 떠나지.
못여  가지로 실어 주016)
실어:
‘싣-+-어’. 실어. ‘싣-’은 ‘ㄷ 불규칠 용언’임. ¶시를 재(載)〈훈몽 하:24〉. 술위 위희 쳔 시러보내시니〈곡용 61〉.
갓더니 주017)
갓더니:
‘가-+-앗(완료 시제 접미사)-+-더(회상 시상 접미사)-+-니(연결어미)’. 갔더니.
급졔매 주018)
급졔매:
‘급졔#-+-매(연결어미)’. 급제(及第)하므로. 급제하여서.
장원

오륜행실도 1:52ㄱ

안국
주019)
허안국(許安國):
중국 송나라 때 사람.
동년 주020)
동년(同年):
여기서는 같은 때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을 말함. 동방과 같은 말.
동방 주021)
동방(同榜):
예전에 같은 시기에 과거에 급제하여 방목(榜目)에 함께 적히는 일이나 그런 사람을 이르던 말.
과거 사이라】
거리고 주022)
거리고:
‘거리-+-고(연결어미)’. 거느리고.
드러와 주023)
드러와:
‘들-+-(보조적 연결어미)#오-+-이(연결어미)’. 들어와.
뵈고 주024)
뵈고:
‘뵈-+-고(연결어미)’. 뵙고. 뵈-;여기서는 ‘웃사람을 찾아 보다’의 뜻임. ¶皇帝 뵈오니〈두해(초) 22:28〉. 王 뵈미리라〈삼강 충신:23〉.
금을 주025)
금을:
‘금(百金)+을’. 백금을.
주어 헌슈라 주026)
헌슈라:
‘헌슈(獻壽)#-+-러(연결어미)’. 헌수하려고. ‘헌수(獻壽)’란 환갑잔치에서 오래 살기를 비는 뜻으로 주인공에게 술잔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대 샤례여 주027)
샤례여:
‘샤례(謝禮)#-+-여(연결어미)’. 사례하여. ‘사례(謝禮)’는 말이나 행동, 물품 따위로 상대에게 고마움을 나타냄내는 것을 말한다.
밧디 아니니라 아븨 일홈이 돌셕라 주028)
돌셕라:
‘돌#셕#자#이-+-라(연결어미)’. ‘돌 석(石)’ 자(字)라. 돌 석 자여서.
여 죵신토록 주029)
죵신토록:
‘죵신#-+-도록(부사형 어미)’. 종신(終身)토록.
돌그르 주030)
돌그르:
‘돌그릇+을’. 돌그릇을.
아니 고 주031)
고:
‘-+-고(연결어미)’. 쓰고.
길셔 주032)
길셔:
‘긿+셔’. 길에서.
돌을 만나면 피고 주033)
피고:
‘피(避)#-+-고(연결어미)’. 피하고.
디 주034)
디:
‘-+-디(보조적 연결어미)’. 밟지. ‘디’에서 ‘’은 닿소리 앞에서 ‘ㅂ’이 묵음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쓴 것은 기본형태를 밝히고, 어근과 어미를 구분해 적으려는 생각에서 이다. ¶ 주길까 논 디라〈석보 11:1〉. 새뱃 예 나셔 놋다〈두해(초) 8:27〉.
아니며 어미 죽으매 비통여 주035)
비통여:
‘비통(悲痛)#-+-여(연결어미)’. 비통하여.
피 주036)
피:
‘피+’. 피를.
토고 주037)
토고:
‘토(吐)#-+-고(연결어미). 토하고.
삼년을 녀묘여 눈오 주038)
눈오:
‘눈#오-+-(관형사형 어미)’. 눈오는.
밤이면 묘측에 주039)
묘측에:
‘묘측(墓側)+에(부사격 조사)’. 모측에. 묘옆에.
업여 주040)
업여:
‘업-+-여(연결어미)’. 엎드려. ‘업-’는 ‘엎드리-’의 뜻이다. ¶업다[伏者]〈역 상:40〉. 업여 겨오셔〈계축 72〉.
울기 긋치디 아니니 한림 주041)
한림:
한림학사(翰林學士). 중국 송나라에서 한림학사는 천자(天子)의 사인(私人)으로서 고문구실을 담당하여, 중대한 조칙(詔勅)을 기초하거나 기밀문서를 작성했다. 천자의 행행(行幸) 때는 시종으로서, 호종하는 등 중요직이었고, 중서성(中書省)과 중추원(中樞院)의 집정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녀진 주042)
녀진:
여진(吕溱). 양주사람으로 자는 제숙(濟叔)이고, 생년과 죽은 해는 모름. 송나라 인종 보원(宝元) 원년(元年; 1038) 경에 한림학사를 하였음.
이 그 무덤을 디나다가 주043)
디나가다가:
‘디나-+-아(보조적 연결어미)#가-+-다가(연결어미)’. 지나가다가.
듯고 주044)
듯고:
‘듯-+-고(연결어미)’. 듣고.
눈믈을 리와 주045)
리와:
‘리-#오-+-아(연결어미)’. 내리어서. ‘리오-’는 ‘내리게 하-’의 뜻이다. ¶비를 깃비 리와〈석보 13:7〉.
오 귀신이 주046)
귀신이:
‘귀신(鬼神)+이’. 귀신이.
아름이 주047)
아름이:
‘알-+-음(명사형 어미)+이’. 알음이.
이실딘대 주048)
이실딘대:
‘이시-+-ㄹ(관형사형 어미)#디#이-+ㄴ(관형사형 어미)+대’. 있을 것인데.
 눈믈을 지우리라 주049)
지우리라:
‘지우-+-리(추정 시상 접미사)+-라(종결어미)’. 지우리라.
더라 주050)
:
‘-+-ㄴ(관형사형 어미)’. 단.
이이 주051)
이이:
‘이+이’. 이슬이.
마다 주052)
마다:
‘[年]+마다(부사격 조사)’. 해마다.
무덤알 리고 주053)
리고:
‘리-+-고(연결어미)’. 내리고.
고나모 주054)
고나모:
살구나무.

오륜행실도 1:52ㄴ

두 가지 합여  등걸이 되엿더라 주055)
되엿더라:
‘되-+엿(완료 시제 접미사)-+-더(회상 시상 접미사)-+-라(종결어미)’. 되었더라. 되었다.
거상을 되 주056)
되:
‘-+-되(연결어미)’. 마치되.
궤연을 것디 주057)
것디:
‘것-+-디(보조적 연결어미)’. 걷지.
아니고 문안과 음식 드리기 샹시티 니 원이 효으로 주058)
효으로:
‘효(孝行)+으로(부사격 조사)’. 효행으로.
주문대 곡식과 비단을 주시고 후에 초쥬교슈 주059)
초쥬교슈:
‘쵸쥬교슈+’. 초주교수(楚州敎授)를. 초주의 교수를. ‘교수(敎授)’는 사학(四學)의 유생(儒生)을 가르치던 벼슬아치이다.
고  화쥬 주060)
화쥬:
화주(和州). 본래 고구려의 땅으로 장령진(長嶺鎭), 혹은 당문(唐文) 혹은 박평군(博平郡)이라고도 불렀으며, 고려 초에 화주(和州)로 하였음.
방어츄관 주061)
방어츄관:
방어추관(防禦推官). 국토를 방어하는 목적으로 추국(推鞫)할 때에 신문(訊問)을 담당하던 관원(官員).
벼로 올므니라 주062)
올므니라:
‘옮-+-으니(진행 시제 접미사)--라(종결어미)’. 옮기니라. ‘옮-’은 ‘옮기-’의 뜻이다. ¶올모려님금 오시며〈용가 16〉.
휘종황뎨 주063)
휘죵황뎨:
휘종황제(徽宗皇帝). 중국 북송(北宋) 제8대 황제(재위 서기 1100년~1125년)로, 성명은 조길(趙佶)이다. 신종(神宗)의 제 11째 아들로서 형인 철종이 사망하자 신종왕후의 지지로 즉위하였다. 처음에는 신·구양법의 균형을 취한 정치를 했었으나 섭정인 상태후(尙太后)가 사망(1101)한 후에는 신법을 부활하고 채경(菜京), 동관(童貫) 등에게 정치를 맡겨 실정이 많았다. 선화 7년(1125) 금나라 군이 남쪽으로 침공하자 황태자(흠종)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금군의 재침입으로 흠종과 함께 포로가 되어 북만주 오국성에 억류생활 중 사망했다.
시호 주064)
시호:
‘시호(諡號)+’. 시호를. ‘시호(諡號)’는 제왕이나 재상, 유현(儒賢)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이는 이름이다.
주셔 주065)
주셔:
‘주-+-시(주체 높임 접미사)-+-어(연결어미)’. 주시어.
졀효쳐라 주066)
졀효쳐라:
‘졀효쳐#이-+-라(종결어미)’. 절효처사(節孝處士)라고. 절개와 효성이 지극한 선비를 가리킴.
니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26. 서적독행(徐積篤行)【송(宋)나라】 - 서적이 돈독한 행실을 하다
서적은 송나라 초주 사람이다. 삼세에 아버지가 죽으니, 아침마다 찾으며 심히 서러워하고, 어머니가 〈서적에게〉 효경을 읽히면, 문득 눈물을 그치지 아니하고,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겨, 관과 띠를 갖추어 조석으로 문안하였다. 〈서적이〉 과거를 보러 서울에 올 때 차마 어머니를 〈두고〉 떠나지 못하여, 한 가지로
(같이)
실어서 갔다. 급제하므로, 장원 허안국(許安國)이 동년(同年)【동방
(同榜 : 같이 과거를 본 사람)
과거한 사람이다.】
을 거느리고 들어와 뵙고, 백금을 주어 헌수
(獻壽; 장수를 빎)
하려 하였으나, 사례
(謝禮; 사양함)
하여 받지 아니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이 돌석자라 하여, 종신토록 돌그릇을 아니 쓰고, 길에서 돌을 만나면 피하고, 밟지 아니하며, 어머니가 죽으므로, 비통하여 피를 토하고, 삼년을 여묘하여, 눈오는 밤이면 묘 옆에 엎드려 울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한림학사 여진이 그 무덤을 지나가다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귀신이 알음이 있을 것이면, 또한 눈물을 지우리라.” 하였다. 〈맛이〉 단 이슬이 해마다 무덤 앞에 내리고, 살구나무 두 가지가 합하여 한 등걸이 되었다. 거상을 마쳤지만 궤연을 걷지 아니하고, 문안과 음식을 드리기를 상시(常時)같이 하였다. 원이 〈들으시고〉 효행으로 주문하여, 곡식과 비단을 주시고, 후에 초주 교수를 하고, 또 화주 방어추관 벼슬로 옮겼다. 휘종(徽宗) 황제가 시호를 주셔서 절효처사(節孝處士)라 하였다.
어린 자식 아비가 돌아가자 날마다 슬피 울며 찾아
간절하게도 속마음으로부터 느껴 그저 눈물을 흘려.
어머니 섬기려니 더욱더 몸소 효도를 다해 봉양하니
당시의 이름난 사람들 중에 다시 누가 견줄 수 있으려나.
봉양하고 거상하기를 극진하게 효성을 다하니
신명께서도 말없이 찬미하여 상서로운 복 주어.
거듭하여 조정에 벼슬하니 포상의 은혜 영화롭다
예부터 이제까지 사람들에게 절효(節孝)로 전해 와.
Ⓒ 역자 | 성낙수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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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셔젹:서적(徐積). 초주(楚州) 산음(山陽) 사람으로 자는 중거(仲車)이고, 호는 남곽옹(南郭翁)임. 북송(北宋)의 청각장애인 출신 관리로 호원(胡瑗)의 제자로서, 치평(治平) 4년(1067)에 진사(進士)로 급제하였으나, 청각 장애인이라서 임관을 사양했음. 비록 청각에 장애가 있었지만,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효성이 지극했다 함. 뒤에 추천을받아, 양주사호참군(揚州司戶參軍), 초주교수(楚州教授), 화주방어추관(和州防禦推官), 선덕랑(宣德郞), 감서경숭산중악묘(監西京嵩山中嶽廟)를 지냈다. 시호는 절효처사(節孝處士)임.
주002)
송(宋):당(唐), 오대십국(五代十国)에 이어지는 중국의 통일 왕조. 카이펑[开封]을 도읍으로 정한 북송(北宋; 960~1127)과 임안(临安; 지금의 항주(杭州))을 도읍으로 정한 남송(南宋; 1127~1279)을 가리키며, 남조(南朝)의 유송(刘宋)과 구별하여 조송(趙宋)이라고도 함. 오대(五代) 말기 후주(后周) 세종(世宗)이 죽은 뒤 절도사 조광윤(趙匡胤)이 근위병(近衛兵)의 추대를 받고 천자의 자리에 올라 960년 카이펑에 도읍을 정하고 송을 건국하였음.
주003)
초쥬:초주(楚州). 중국 장쑤성[江蘇省] 화이안[淮安]에 있는 구(區).
주004)
아마다:‘아+마다(부사격 조사)’. 아침마다.
주005)
즈며:‘-+-으며’. 찾으며.
주006)
셜워고:‘셟-+-어(보조적 연결어미)#-+-고(연결어미)’. 서러워 하고. ‘셟’은 ‘섧-, 괴롭-’의 뜻이며 ‘ㅂ불규칙 용언’이다. ¶셜온 님 보내노니〈악장 가시리〉.
주007)
닑히면:‘닑-+-히(사동 파생접미사)-+-면(연결어미)’. 읽히면. 읽게 하면.
주008)
긋치디:‘긋치-+-디(보조적 연결어미)’. 그치지.
주009)
관과:‘관(冠)+과(부사격 조사)’. 관과.
주010)
:‘+’. 띠를.
주011)
초아:‘초-+-아(연결어미)’. 갖추어.
주012)
문안며:‘문안(問安)#-+-며(연결어미)’. 문안하며. 문안드리며.
주013)
보라:‘보-+-라(연결어미)’. 보러.
주014)
셔울:서울.
주015)
나디:‘나-+-디(보조적 연결어미)’. 떠나지.
주016)
실어:‘싣-+-어’. 실어. ‘싣-’은 ‘ㄷ 불규칠 용언’임. ¶시를 재(載)〈훈몽 하:24〉. 술위 위희 쳔 시러보내시니〈곡용 61〉.
주017)
갓더니:‘가-+-앗(완료 시제 접미사)-+-더(회상 시상 접미사)-+-니(연결어미)’. 갔더니.
주018)
급졔매:‘급졔#-+-매(연결어미)’. 급제(及第)하므로. 급제하여서.
주019)
허안국(許安國):중국 송나라 때 사람.
주020)
동년(同年):여기서는 같은 때에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을 말함. 동방과 같은 말.
주021)
동방(同榜):예전에 같은 시기에 과거에 급제하여 방목(榜目)에 함께 적히는 일이나 그런 사람을 이르던 말.
주022)
거리고:‘거리-+-고(연결어미)’. 거느리고.
주023)
드러와:‘들-+-(보조적 연결어미)#오-+-이(연결어미)’. 들어와.
주024)
뵈고:‘뵈-+-고(연결어미)’. 뵙고. 뵈-;여기서는 ‘웃사람을 찾아 보다’의 뜻임. ¶皇帝 뵈오니〈두해(초) 22:28〉. 王 뵈미리라〈삼강 충신:23〉.
주025)
금을:‘금(百金)+을’. 백금을.
주026)
헌슈라:‘헌슈(獻壽)#-+-러(연결어미)’. 헌수하려고. ‘헌수(獻壽)’란 환갑잔치에서 오래 살기를 비는 뜻으로 주인공에게 술잔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주027)
샤례여:‘샤례(謝禮)#-+-여(연결어미)’. 사례하여. ‘사례(謝禮)’는 말이나 행동, 물품 따위로 상대에게 고마움을 나타냄내는 것을 말한다.
주028)
돌셕라:‘돌#셕#자#이-+-라(연결어미)’. ‘돌 석(石)’ 자(字)라. 돌 석 자여서.
주029)
죵신토록:‘죵신#-+-도록(부사형 어미)’. 종신(終身)토록.
주030)
돌그르:‘돌그릇+을’. 돌그릇을.
주031)
고:‘-+-고(연결어미)’. 쓰고.
주032)
길셔:‘긿+셔’. 길에서.
주033)
피고:‘피(避)#-+-고(연결어미)’. 피하고.
주034)
디:‘-+-디(보조적 연결어미)’. 밟지. ‘디’에서 ‘’은 닿소리 앞에서 ‘ㅂ’이 묵음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쓴 것은 기본형태를 밝히고, 어근과 어미를 구분해 적으려는 생각에서 이다. ¶ 주길까 논 디라〈석보 11:1〉. 새뱃 예 나셔 놋다〈두해(초) 8:27〉.
주035)
비통여:‘비통(悲痛)#-+-여(연결어미)’. 비통하여.
주036)
피:‘피+’. 피를.
주037)
토고:‘토(吐)#-+-고(연결어미). 토하고.
주038)
눈오:‘눈#오-+-(관형사형 어미)’. 눈오는.
주039)
묘측에:‘묘측(墓側)+에(부사격 조사)’. 모측에. 묘옆에.
주040)
업여:‘업-+-여(연결어미)’. 엎드려. ‘업-’는 ‘엎드리-’의 뜻이다. ¶업다[伏者]〈역 상:40〉. 업여 겨오셔〈계축 72〉.
주041)
한림:한림학사(翰林學士). 중국 송나라에서 한림학사는 천자(天子)의 사인(私人)으로서 고문구실을 담당하여, 중대한 조칙(詔勅)을 기초하거나 기밀문서를 작성했다. 천자의 행행(行幸) 때는 시종으로서, 호종하는 등 중요직이었고, 중서성(中書省)과 중추원(中樞院)의 집정으로 승진할 수 있었다.
주042)
녀진:여진(吕溱). 양주사람으로 자는 제숙(濟叔)이고, 생년과 죽은 해는 모름. 송나라 인종 보원(宝元) 원년(元年; 1038) 경에 한림학사를 하였음.
주043)
디나가다가:‘디나-+-아(보조적 연결어미)#가-+-다가(연결어미)’. 지나가다가.
주044)
듯고:‘듯-+-고(연결어미)’. 듣고.
주045)
리와:‘리-#오-+-아(연결어미)’. 내리어서. ‘리오-’는 ‘내리게 하-’의 뜻이다. ¶비를 깃비 리와〈석보 13:7〉.
주046)
귀신이:‘귀신(鬼神)+이’. 귀신이.
주047)
아름이:‘알-+-음(명사형 어미)+이’. 알음이.
주048)
이실딘대:‘이시-+-ㄹ(관형사형 어미)#디#이-+ㄴ(관형사형 어미)+대’. 있을 것인데.
주049)
지우리라:‘지우-+-리(추정 시상 접미사)+-라(종결어미)’. 지우리라.
주050)
:‘-+-ㄴ(관형사형 어미)’. 단.
주051)
이이:‘이+이’. 이슬이.
주052)
마다:‘[年]+마다(부사격 조사)’. 해마다.
주053)
리고:‘리-+-고(연결어미)’. 내리고.
주054)
고나모:살구나무.
주055)
되엿더라:‘되-+엿(완료 시제 접미사)-+-더(회상 시상 접미사)-+-라(종결어미)’. 되었더라. 되었다.
주056)
되:‘-+-되(연결어미)’. 마치되.
주057)
것디:‘것-+-디(보조적 연결어미)’. 걷지.
주058)
효으로:‘효(孝行)+으로(부사격 조사)’. 효행으로.
주059)
초쥬교슈:‘쵸쥬교슈+’. 초주교수(楚州敎授)를. 초주의 교수를. ‘교수(敎授)’는 사학(四學)의 유생(儒生)을 가르치던 벼슬아치이다.
주060)
화쥬:화주(和州). 본래 고구려의 땅으로 장령진(長嶺鎭), 혹은 당문(唐文) 혹은 박평군(博平郡)이라고도 불렀으며, 고려 초에 화주(和州)로 하였음.
주061)
방어츄관:방어추관(防禦推官). 국토를 방어하는 목적으로 추국(推鞫)할 때에 신문(訊問)을 담당하던 관원(官員).
주062)
올므니라:‘옮-+-으니(진행 시제 접미사)--라(종결어미)’. 옮기니라. ‘옮-’은 ‘옮기-’의 뜻이다. ¶올모려님금 오시며〈용가 16〉.
주063)
휘죵황뎨:휘종황제(徽宗皇帝). 중국 북송(北宋) 제8대 황제(재위 서기 1100년~1125년)로, 성명은 조길(趙佶)이다. 신종(神宗)의 제 11째 아들로서 형인 철종이 사망하자 신종왕후의 지지로 즉위하였다. 처음에는 신·구양법의 균형을 취한 정치를 했었으나 섭정인 상태후(尙太后)가 사망(1101)한 후에는 신법을 부활하고 채경(菜京), 동관(童貫) 등에게 정치를 맡겨 실정이 많았다. 선화 7년(1125) 금나라 군이 남쪽으로 침공하자 황태자(흠종)에게 황제의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금군의 재침입으로 흠종과 함께 포로가 되어 북만주 오국성에 억류생활 중 사망했다.
주064)
시호:‘시호(諡號)+’. 시호를. ‘시호(諡號)’는 제왕이나 재상, 유현(儒賢)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이는 이름이다.
주065)
주셔:‘주-+-시(주체 높임 접미사)-+-어(연결어미)’. 주시어.
주066)
졀효쳐라:‘졀효쳐#이-+-라(종결어미)’. 절효처사(節孝處士)라고. 절개와 효성이 지극한 선비를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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