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신전자취염소방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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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전자취염소방언해(新傳煮取焰焇方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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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련(初煉)


初초煉련이라

처엄 煉련 법이라

처음 달이는 방법이다.

將쟝澄딩淸쳥之지水슈야 於어四更경初초에 分분載煉련釜부야 再煮쟈고 又우以이鍮유勺쟉으로 取而이垂슈之지則즉下하如여蝶뎝翅시狀상니 乃내以이本본水슈六뉵桶통으로 添텸載二이釜부고 再用용火화煮쟈면 浮부沫말이 沸비起긔니 掠냑而이去거之지고 以이鍮유勺쟉取少쇼許허야 傾경倒도放방熱열則즉自邊변而이裏리卽즉凝응而이堅견니 無무水

신전자취염소방언해 14ㄱ

슈氣긔然연後후에 止지火화而이日일色이 淸쳥明명則즉暫잠留뉴水슈氣긔고 日일色沈팀陰음야 若약有유雨우徵딩則즉水슈氣긔를 不블可가留뉴也야ㅣ라 須슈於어止지火화之지際졔예 十십分분商샹量량라 且用용鬃종勺쟉야【形如鍮勺而以馬尾隨便造用】盡진去거釜부底뎌沈팀塩염과 水슈面명浮부凘고 稍쵸待放방熱열야 分분盛셩各각五오升승於어小쇼瓮옹器긔야 經경宿슉待朝됴야 傾경倒도剩잉水슈라 此水슈ㅣ 卽즉曰왈 本본水슈ㅣ라 更경以이新신水슈로 用용勺쟉沃

신전자취염소방언해 14ㄴ

옥洗셰小쇼瓮옹中듕焇쇼야 刮괄聚一일器긔라 每日일初초煉련所소得득焰염焇쇼ㅣ 或혹六뉵十십餘여斤근이며 或혹 五오十십八팔九구斤근이니 三삼日일初초煉련之지數슈ㅣ 摠총一일百八팔十십餘여斤근이라
Ⓒ 구결 | 이서 / 1635년(인조 13)

도쳥 믈을 가져다가 四更경ㅅ初초에 졍煉련ㅅ가마의 화 시러 다시 달히고  놋쟈로  드리오면 려디기 나 개 니 이예 밋믈 여 桶통으로 두 가마의 添텸여 싯고  블여 달히면 거품이 혀 니니 글여 업시

신전자취염소방언해 15ㄱ

고 놋쟈로 죠곰  다 시기면 브터 어릐여 속이 곳 굿니 믈 업슨 後후에 블을 그치되 날비치 淸쳥明명거든 믈 잠 잇게 고 날비치 沈팀陰음야 만일 비 올가 시브거든 믈 잇게 말니 모로미 블 그칠 제 十십分분 혜아려 라  총쟈【얼굴을 놋쟈티 호 바당을 총으로 라】로  가마 밋틔 라안 소곰과 믈 우희  성에 다 업시고 잠 식기 기돌러 각각 닷 되식 쟈근 딜그릇세 화 담아 밤 디내여 아을 기돌러 남은 믈란 거호로라 이 믈이 곧 닐온 밋믈이라 다시 새 믈로

신전자취염소방언해 15ㄴ

 쟈로(쟈근) 딜그릇세 염쇼 텨 시서 글거  그릇세 모호라 每日일에 初초煉련 어든 밧 염쇼주001)
염소(焰焇):
김지남의 『신전자초방』에서의 물달이기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앞물 한 가마를 다북쑥·곡식 혹은 여러 땔감으로써 불을 붙여 한번 매우 끓인 뒤에 천천히 만화 즉 문화·무화(불이 세도 안 되고, 너무 뜨겁지 않게 따사함이다)로 고아 반 가마가 되거든 다른 그릇에 옮겨 안치면 더러운 재는 모두 처지고 물이 맑아지니, 그 뒤에 본 가마를 긁어 씻고 그 맑게 한 물을 깨끗이 다루어 다시 두어 번 달인 뒤에 시험하여, 한 그릇에 조금 떠 찬물에 채워 염초밭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보아, 만일 끝내 좋지 않으면, 반드시 잘 된 뒤에 불을 그치고, 잠깐 더운 김이 식거든 잔 옹기에 나누어 떠서 안정한 곳에 놓아 밤을 지낸 뒤에 윗물을 다루면 그 모양이 고슴도치 털 같으니, 이것을 이른바 모초(毛硝)라고 한다. 물맛이 몹시 매운 뒤에야 반만 달여야 되거니와 물맛이 만약 싱거우면 비록 반이 지나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을 그칠 즈음에 반드시 힘을 다하여 살펴야 하며, 만일 지나치게 달여 물이 늙어도 염초(焰硝)가 되지 않으니, 모름지기 잉수 한 사발을 부어 눅이고 잠깐 달여라. 이것은 다만 한 가마만 고는 역사를 말한 것이다. 대저, 흙과 재를 아울러서 스무 말에 물 네 통을 받고, 풋나무 두 동을 들여 모초 예닐곱 근을 얻으니, 만일 흙과 재를 합하여 이백 말과 물 마흔 통에 풋나무 스무 동을 쓰면 염초 육칠십 근을 얻는다. 앞의 방식으로 하면, 흙 이백 말은 말로 물 여든여덟 통을 받아 토목은 거의 한 자루를 써서 염초 스무 남은 근을 얻으니, 한 자루로 토목이 스무 동 나무에 견주어 보면, 값이 이미 갑절이나 되고, 얻는 염초가 또한 삼분의 일이 되지 못하고, 품질도 좋고 나쁨이 한 해가 되어도 이르지 못한다. 무릇 염초란 것이 흙에서 나되, 재 또한 그 정기를 베풀고, 그 더러운 것을 제어하여서 그 맹렬하기를 떨치는 것이다. 온갖 맛있는 것을 다 쓰되, 홀로 짠 것을 구하지 않는 것은 그 소금에는 할 수 있어도 염초에는 이롭지 않게 하는 것이니, 앞의 방식대로 하면, 오직 짠흙만을 귀하게 여기게 되니, 염초를 적게 얻음이 이 때문이다. 재로써 반씩 섞음은 그 서로 도와 빨아내게 함이거늘 앞의 방식대로 하면, 홀로 흙만 쓰니 염초의 품질이 나빠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풋나무 불로써 만호로 달이거늘 앞에 난 토목으로써 절차가 없이 펄펄 끓이고, 또 열 말의 물이 두 통에 지나지 않으니, 앞에 난 네 통은 많이 받은 것이니, 물이 이미 많으므로 맛이 더욱 얇아진다. 비유컨대, 밥을 지을 때 되면 익기 쉽고, 묽으면 나무를 허비하게 되니, 이 세가 곧 그렇거니, 마땅히 앞의 방식은 헛심만 많이 들고, 염초는 적게 얻게 된다.”라고 하였다.
주002)
초련(初煉) 어든 밧 염쇼ㅣ:
애벌 달이기(조리기)를 하여 얻은 염소가. 『신전자초방』에서는 처음 달여서 얻은 염소를 ‘모초(毛硝)’라고 하였다. ‘염쇼ㅣ’의 딴이 ‘ㅣ’는 앞에 오는 체언의 끝 음절이 ‘ㅣ’ 이외의 다른 모음으로 끝날 때 오는 주격조사다. 주격조사 ‘-이’가 모음으로 끝난 말 뒤에 쓰이던 딴이(ㅣ)의 모습이다. 중세 국어 시기의 주격 조사에는 ‘-이/-ㅣ/-∅’가 있었다. 이들은 선행 체언의 음운 환경에 따라 상보적으로 쓰였다. 대왕이, 아들이, 친흠이에서처럼 자음 뒤에서는 ‘-이’가 쓰였고, ‘선조ㅣ’ 같이 모음 뒤에서는 ‘-ㅣ’가 쓰였다. ‘-ㅣ’ 모음 뒤에서는 ‘새’에서처럼 /∅/가 실현되었다. 근대 국어 시기에는 16세기 중엽에 등장한 새로운 주격 조사 ‘-가’가 쓰이기 시작했다. ‘-가’는 배가 에서와 같이 모음 뒤에서 쓰였다. ‘긔력이’와 같이 자음 뒤에서 ‘-이’가 쓰이는 것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일본 배에서는 여전히 주격 조사 ‘∅’가 쓰임을 통해 ‘-가’의 쓰임이 완전히 자리 잡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격조사 ‘-가’는 근대 국어 시기를 거치면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현대 국어에서는 선행 체언의 종성이 자음일 때 ‘-이’가, 모음일 때는 ‘-가’가 주격 조사로 쓰이고 있다. ‘-은’은 주격 조사가 아니라 화제를 표시하는 주제격 보조사다.
或혹 여슌나믄 斤근도 며 或혹 쉰엿아홉 斤근도 니주003)
쉰엿아홉 근(斤)도 니:
쉰여덟아홉 근도 되니. 원문 ‘五十八九斤이니’의 풀이말이다. 우리말에는 ‘한두 개, 두세 개, 서너 개, 너덧 개, 대여섯 개, 예닐곱 개’ 따위가 있고, 사전에는 ‘엳아홉’으로 올려져 있다.
사 初초煉련ㅅ數슈ㅣ 오로 一일百 여든나믄 斤근이라주004)
오로 일(一百) 여든나믄 근(斤)이라:
모두 1백 80여 근이다. ‘나믄’은 ‘남짓’임. 『분문온역이해방』에서는 ‘녀나 도 이대로 라[餘倣此]’〈분문온역이해방 14〉처럼 ‘나’과, ‘믈  사발 브 달히니 반 남 되어든[水一沙鉢煎至七分]’〈분문온역이해방 26〉처럼 ‘남’이 함께 쓰였다. 물 한 사발의 7푼을 ‘반 남’이라 하였으니 반보다 조금 더한 양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 ‘-이라’는 서술격 조사의 종결어미가 앞의 체언과 통합된 형이다. 『신전자취염소방언해』의 한글 구결문에서 ‘다’류와 함께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형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서술격 조사 ‘이다’는 용언과 마찬가지로 활용을 한다. 하지만 학교문법에서는 용언이 아니라 서술격 조사로 갈래를 나눈다. 이는 활용이라는 형태적 특성보다 동사나 형용사가 서술어의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 서술격 조사는 조사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기능적 특성을 더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보기로서, ‘학생이다, 학생이므로, 학생이니까, 학생이라, 학생이니, 학생이로소이다’에서처럼 ‘이다’는 용언처럼 활용을 한다. 이는 다른 조사와는 다른 형태적 특성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 ‘이다’를 다른 문법범주로 재해석하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이다’를 ‘지정사’로 지정해 별개의 문법범주로 보자는 것이다. 조사의 특수한 형태로 보는 현행 ‘서술격조사’ 이론도 타당한 면이 있지만 여기서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지정사론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논의되어 온 ‘이다’ 논쟁에 대한 체계가 절실하다. 서술격조사 ‘이다’의 조어법으로 본 형태론적인 구성은 의존명사 ‘이’에 명사화접미사 ‘-다’가 유착하여 이루어져 서술 기능을 수행하는 우리 국어의 특이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 언해 | 이서 / 1635년(인조 13)

앙금을 가라앉힌 물을 떠다가 밤 한 시에 정련한 가마에 나누어 담아 다시 달인다. 또 놋그릇에 드리우면 내려지는 것이 나비날개처럼 된다. 이에 밑물 여섯 통을 두 가마에 보태어 붓고, 또 불로써 달이면 거품이 끓어오르게 되니 걷어 없앤다. 이 때 놋자로 조금 떠서 기울여 쏟아 식혀 보면, 가장자리로부터 어리어 속이 곧 굳어지니, 물끼를 없앤 뒤에 불 때는 것을 멈추되, 날씨가 청명할 것 같으면, 물끼를 조금 있게 하고, 날씨가 안개구름이 끼어 만일 비올 것 같으면, 물끼가 남아 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모름지기 불 때는 것을 멈출 때에는 잘 헤아려서 하라. 또 통자【모양을 놋자같이 하되 바탕을 말꼬리로 하라.】로써 가마 밑바닥에 가라앉은 소금과 물 위에 뜬 성에를 다 없애고, 잠깐 식도록 기다렸다가 각각 닷 되씩을 작은 질그릇에 나누어 담는다. 밤을 지내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남은 물을 기울여 쏟아라. 이 물이 곧 밑물이다. 다시 새 물을 떠다 작은 질그릇 안에다 염소를 깨끗이 씻어 한 그릇에 모아라. 날마다 애벌로 졸여서 얻은 염소가 혹 예순 근 남짓이 되기도 하고, 혹 쉰여덟아홉 근이 되기도 하니, 사흘 동안 애벌로 졸인 양은 모두 일백여든 근 남짓이 된다.
Ⓒ 역자 | 정호완 / 2013년 7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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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염소(焰焇):김지남의 『신전자초방』에서의 물달이기와 관련하여 살펴보면, “앞물 한 가마를 다북쑥·곡식 혹은 여러 땔감으로써 불을 붙여 한번 매우 끓인 뒤에 천천히 만화 즉 문화·무화(불이 세도 안 되고, 너무 뜨겁지 않게 따사함이다)로 고아 반 가마가 되거든 다른 그릇에 옮겨 안치면 더러운 재는 모두 처지고 물이 맑아지니, 그 뒤에 본 가마를 긁어 씻고 그 맑게 한 물을 깨끗이 다루어 다시 두어 번 달인 뒤에 시험하여, 한 그릇에 조금 떠 찬물에 채워 염초밭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보아, 만일 끝내 좋지 않으면, 반드시 잘 된 뒤에 불을 그치고, 잠깐 더운 김이 식거든 잔 옹기에 나누어 떠서 안정한 곳에 놓아 밤을 지낸 뒤에 윗물을 다루면 그 모양이 고슴도치 털 같으니, 이것을 이른바 모초(毛硝)라고 한다. 물맛이 몹시 매운 뒤에야 반만 달여야 되거니와 물맛이 만약 싱거우면 비록 반이 지나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불을 그칠 즈음에 반드시 힘을 다하여 살펴야 하며, 만일 지나치게 달여 물이 늙어도 염초(焰硝)가 되지 않으니, 모름지기 잉수 한 사발을 부어 눅이고 잠깐 달여라. 이것은 다만 한 가마만 고는 역사를 말한 것이다. 대저, 흙과 재를 아울러서 스무 말에 물 네 통을 받고, 풋나무 두 동을 들여 모초 예닐곱 근을 얻으니, 만일 흙과 재를 합하여 이백 말과 물 마흔 통에 풋나무 스무 동을 쓰면 염초 육칠십 근을 얻는다. 앞의 방식으로 하면, 흙 이백 말은 말로 물 여든여덟 통을 받아 토목은 거의 한 자루를 써서 염초 스무 남은 근을 얻으니, 한 자루로 토목이 스무 동 나무에 견주어 보면, 값이 이미 갑절이나 되고, 얻는 염초가 또한 삼분의 일이 되지 못하고, 품질도 좋고 나쁨이 한 해가 되어도 이르지 못한다. 무릇 염초란 것이 흙에서 나되, 재 또한 그 정기를 베풀고, 그 더러운 것을 제어하여서 그 맹렬하기를 떨치는 것이다. 온갖 맛있는 것을 다 쓰되, 홀로 짠 것을 구하지 않는 것은 그 소금에는 할 수 있어도 염초에는 이롭지 않게 하는 것이니, 앞의 방식대로 하면, 오직 짠흙만을 귀하게 여기게 되니, 염초를 적게 얻음이 이 때문이다. 재로써 반씩 섞음은 그 서로 도와 빨아내게 함이거늘 앞의 방식대로 하면, 홀로 흙만 쓰니 염초의 품질이 나빠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풋나무 불로써 만호로 달이거늘 앞에 난 토목으로써 절차가 없이 펄펄 끓이고, 또 열 말의 물이 두 통에 지나지 않으니, 앞에 난 네 통은 많이 받은 것이니, 물이 이미 많으므로 맛이 더욱 얇아진다. 비유컨대, 밥을 지을 때 되면 익기 쉽고, 묽으면 나무를 허비하게 되니, 이 세가 곧 그렇거니, 마땅히 앞의 방식은 헛심만 많이 들고, 염초는 적게 얻게 된다.”라고 하였다.
주002)
초련(初煉) 어든 밧 염쇼ㅣ:애벌 달이기(조리기)를 하여 얻은 염소가. 『신전자초방』에서는 처음 달여서 얻은 염소를 ‘모초(毛硝)’라고 하였다. ‘염쇼ㅣ’의 딴이 ‘ㅣ’는 앞에 오는 체언의 끝 음절이 ‘ㅣ’ 이외의 다른 모음으로 끝날 때 오는 주격조사다. 주격조사 ‘-이’가 모음으로 끝난 말 뒤에 쓰이던 딴이(ㅣ)의 모습이다. 중세 국어 시기의 주격 조사에는 ‘-이/-ㅣ/-∅’가 있었다. 이들은 선행 체언의 음운 환경에 따라 상보적으로 쓰였다. 대왕이, 아들이, 친흠이에서처럼 자음 뒤에서는 ‘-이’가 쓰였고, ‘선조ㅣ’ 같이 모음 뒤에서는 ‘-ㅣ’가 쓰였다. ‘-ㅣ’ 모음 뒤에서는 ‘새’에서처럼 /∅/가 실현되었다. 근대 국어 시기에는 16세기 중엽에 등장한 새로운 주격 조사 ‘-가’가 쓰이기 시작했다. ‘-가’는 배가 에서와 같이 모음 뒤에서 쓰였다. ‘긔력이’와 같이 자음 뒤에서 ‘-이’가 쓰이는 것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일본 배에서는 여전히 주격 조사 ‘∅’가 쓰임을 통해 ‘-가’의 쓰임이 완전히 자리 잡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주격조사 ‘-가’는 근대 국어 시기를 거치면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현대 국어에서는 선행 체언의 종성이 자음일 때 ‘-이’가, 모음일 때는 ‘-가’가 주격 조사로 쓰이고 있다. ‘-은’은 주격 조사가 아니라 화제를 표시하는 주제격 보조사다.
주003)
쉰엿아홉 근(斤)도 니:쉰여덟아홉 근도 되니. 원문 ‘五十八九斤이니’의 풀이말이다. 우리말에는 ‘한두 개, 두세 개, 서너 개, 너덧 개, 대여섯 개, 예닐곱 개’ 따위가 있고, 사전에는 ‘엳아홉’으로 올려져 있다.
주004)
오로 일(一百) 여든나믄 근(斤)이라:모두 1백 80여 근이다. ‘나믄’은 ‘남짓’임. 『분문온역이해방』에서는 ‘녀나 도 이대로 라[餘倣此]’〈분문온역이해방 14〉처럼 ‘나’과, ‘믈  사발 브 달히니 반 남 되어든[水一沙鉢煎至七分]’〈분문온역이해방 26〉처럼 ‘남’이 함께 쓰였다. 물 한 사발의 7푼을 ‘반 남’이라 하였으니 반보다 조금 더한 양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 ‘-이라’는 서술격 조사의 종결어미가 앞의 체언과 통합된 형이다. 『신전자취염소방언해』의 한글 구결문에서 ‘다’류와 함께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형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서술격 조사 ‘이다’는 용언과 마찬가지로 활용을 한다. 하지만 학교문법에서는 용언이 아니라 서술격 조사로 갈래를 나눈다. 이는 활용이라는 형태적 특성보다 동사나 형용사가 서술어의 기능을 담당하는 반면 서술격 조사는 조사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기능적 특성을 더 중요시 하기 때문이다. 보기로서, ‘학생이다, 학생이므로, 학생이니까, 학생이라, 학생이니, 학생이로소이다’에서처럼 ‘이다’는 용언처럼 활용을 한다. 이는 다른 조사와는 다른 형태적 특성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 ‘이다’를 다른 문법범주로 재해석하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이다’를 ‘지정사’로 지정해 별개의 문법범주로 보자는 것이다. 조사의 특수한 형태로 보는 현행 ‘서술격조사’ 이론도 타당한 면이 있지만 여기서는 새로운 대안으로서 지정사론을 제시하고 그 과정에서 이제까지 논의되어 온 ‘이다’ 논쟁에 대한 체계가 절실하다. 서술격조사 ‘이다’의 조어법으로 본 형태론적인 구성은 의존명사 ‘이’에 명사화접미사 ‘-다’가 유착하여 이루어져 서술 기능을 수행하는 우리 국어의 특이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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