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4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4권
  • 오륜행실 형제도
  • 오륜행실형제도(五倫行實兄弟圖)
  • 문사십세(文嗣十世)

문사십세(文嗣十世)


오륜행실도 4:53ㄴ

文嗣十世【元】

오륜행실도 4:54ㄱ

鄭文嗣 婺州人 주001)
무주인(婺州人):
『오륜』의 ‘무주인(婺州人)’은 『이륜』에는 없음.
其家十世同居 凡二百四十餘年 一錢尺帛不敢私 文嗣沒 從弟大和 繼主家事 益嚴而有恩 家中凜如公府 子弟稍有過頒白者猶鞭之 每歲時 大和坐堂上 羣從子 주002)
군종자(羣從子):
『오륜』의 ‘군(羣)’은 『이륜』에는 ‘군(群)’임.
皆盛衣冠鴈行立左序下 以次進拜跪奉觴上壽畢 皆肅容拱手 自右趨出 見者嗟慕 余闕 주003)
여궐(余闕):
원(元)나라 노주(盧洲) 사람으로, 성은 당올(唐兀)씨. 뜻을 경술(經術)에 두고, 오경(五經) 모두에 전주(傳注)를 달았음.
爲書東浙第一家以褒之 大和方正 不奉浮屠老子敎 冠婚喪葬 주004)
관혼상장(冠婚喪葬):
『오륜』의 ‘관혼상장(冠婚喪葬)’은 『이륜』에는 없음.
必稽朱子家禮而行 子孫從化皆孝謹 諸婦惟事女工 주005)
제부유사여공(諸婦惟事女工):
여러 부인들은 다만 여공(女工; 길쌈)만을 일삼고. 『오륜』의 ‘유(惟)’는 『이륜』에는 ‘유(唯)’임.
不使預家政 家畜兩馬 一出則一爲之不食 人以爲孝義所感
怡怡肅肅政連緜 주006)
이이숙숙정연면(怡怡肅肅政連緜):
화목하고 엄숙히 다스림이 이어져 오다. 『오륜』의 ‘면(緜)’은 『이륜』에는 ‘면(綿)’임.
十世同居二百年 伏臘 주007)
복납(伏臘):
여름 제사와 겨울 제사. 명절날.
壽觴

오륜행실도 4:54ㄴ

遵禮敎 傍觀嘖嘖 주008)
책책(嘖嘖):
크게 외치거나 떠드는 소리.
嗟羣賢 주009)
방관책책차군현(傍觀嘖嘖嗟羣賢):
『오륜』의 ‘군(羣)’은 『이륜』에는 ‘군(群)’임.
家法嚴恩冠浙東 不遵釋老尙儒風 諸孫孝謹皆從化 畜物雖微亦感通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뎡문 원나라 무쥬 사이니 십  가지로 사라 이십여 년이 된디라 됴고만 믈도 로이 아니더니 문 죽으매 촌아 대홰 니어 가 맛다 더옥 엄호 은혜 이시니 집안히 엄슉기 관가 여 뎨 젹이 죄괘 이시면 반 사이라도 오히려 매로 티고 셰시면 대홰 당우희 안 모든 뎨 주010)
뎨:
조카는. 원문의 ‘종자(從子)’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종(從)’의 의미를 살린) ‘앗보치들히’로 번역되었다. 현대어에서 ‘자제(子弟)’는 남의 아들을 높여 이를 때 한하여 쓰이므로, 현대어역에서는 원문의 ‘종자(從子)’가 지닌 뜻을 살려 ‘뎨’를 “조카”로 옮겼다.
다 의관을 셩히

4:55ㄱ

여 기러기 항녈노  좌편의 버러 주011)
버러:
열(列)지어. 줄지어. 『이륜』류에는 ‘줄 혀’로 번역되어 이 예의 어간 ‘벌-’이 “열을 짓다, 줄을 짓다”의 의미로 쓰였음을 말해 준다.
셧다가 례로 나아와 절고 어 잔을 밧드러 슈 올리고 얼골을 다듬고 주012)
얼골을 다듬고:
모습을 가다듬고. 원문의 ‘숙용(肅容)’을 언해한 것으로, 이곳의 ‘얼골’은 (“얼굴”이 아닌) “모습”을 뜻한다. 어간 ‘다듬-’은 중세어의 ‘다-’에 소급하는데, 이는 ‘갈[磨]-’과 ‘다[硏]-’ 두 어간이 직접 통합하여 비통사적 복합어를 이룬 것이다. 중세 문헌에서는 드물기는 하지만 (복합어의 구성 요소 각각의 의미가 살아 있는) “갈고 다듬다”의 의미로 쓰인 예도 발견되는 데 반해(‘磨聾 돌 다 씨라’〈월인석보(1459) 서:21ㄱ주〉), (이곳의 예와 마찬가지로) 현대어의 ‘가다듬-’에는 더 이상 그러한 의미가 발견되지 않는다.
손을 자 주013)
손을 자:
(소매에) 손을 꽂아. 팔짱을 끼고. 원문의 ‘공수(拱手)’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초)』에는 ‘매 디르고’, 『이륜(중・영)』에는 ‘맛댱 곳고’로 되어 있다. 중세어에는 ‘ 곶-’의 예에서 보듯이, 『이륜』류의 표현에서 ‘매’ 자리를 ‘’이 대신한 표현도 “공(拱)”의 의미로 쓰였다. ¶지븨 이셔 일 업슨 제도 다이 안자  곳고[… 拱手]〈번역소학 10:13ㄱ〉. 근대 문헌에서는 이러한 ‘’ 계열의 표현이 보다 일반화되어 현대어에는 ‘팔짱꽂-, 팔짱지르-’로 남았다. ¶단졍이 댱 고〈셩풍뉴(18세기) 5:19〉. ; 拱手 ㅅ댱 디다〈역어유해 상:39ㄱ〉.
우편으로 추창여 나갈 보 사이 다 차탄고 흠모니 여궐이 동졀뎨일가【동졀  뎨일 집이라】 다  크게  주어 포댱더라 대홰 위인이 뎡대니 외도 슝샹티 아니여 혼인과 상 반시 쥬가례 조니 손이 다 화여 효도롭고 공근며 여러 부인들은 다만 녀공을 일삼고 가에 간셥디 못게 더라 집의  둘히 이셔  이 나가면  

오륜행실도 4:55ㄴ

이 먹디 아니니 사이 다 닐오 어진 실의 감동 배라 더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30. 문사십세(文嗣十世)【원나라】- 정문사는 십 대가 함께 살다
정문사(鄭文嗣)는 원(元)나라 무주(婺州) 사람이다. 십 대를 함께 살아 이백 사십여 년이 된지라 조그만 재물도 사사로이 하지 않았다. 정문사가 죽고 나서 사촌 아우 정대화(鄭大和)가 이어 가사
(家事; 집안일)
를 맡았는데, 〈일 처리가 전보다〉 더욱 엄
(嚴; 엄격)
하되 은혜(恩惠)가 있었다. 집안이 엄숙하기가 관가(官家)와 같아, 조카들이 조금 죄과가 있으면 반백
(頒白; 흰 머리와 검은 머리가 반씩 섞여 있음, 반백(斑白))
한 사람이라도 오히려 매로 쳤다. 세시
(歲時; 명절)
가 되면 정대화가 당(堂) 위에 앉고, 모든 조카들은 모두 의관(衣冠)을 성(盛)히 하여 기러기 항렬로 뜰 좌편에 줄지어 섰다가 차례로 나아와 절하고 〈무릎을〉 꿇어 잔을 받들어서는 수
(壽; 헌수)
를 올렸다. 〈그런 다음〉 몸가짐을 가다듬고 〈소매에〉 손을 꽂아
(팔짱을 끼고)
우편으로 추창
(趨蹌; 예도에 맞게 허리를 굽히고 빨리 걸어감)
하여 나갔다. 이때에 보는 사람이 모두 차탄(嗟歎)하고 흠모하니, 여궐(余闕)이 ‘동절제일가(東浙第一家)’【동절 땅에서 제일가는 집이다.】 다섯 자를 크게 써 주어 포장
(襃獎; 칭찬하여 장려함)
하였다. 정대화가 위인
(爲人; 사람됨)
이 정대(正大)하니 외도(外道)를 숭상치 아니하여, 혼인과 상사를
(상사에 대하여)
반드시 『주자가례(朱子家禮)』를 좇았다. 〈이에〉 자손이 모두 화
(和; 화목)
하여 효도롭고 공근
(恭勤; 공손하고 부지런함)
하였다. 여러 부인들은 다만 여공
(女工; 길쌈)
만을 일삼고 가사에 간섭치 못하게 하였다. 집
(집안)
에 말이 둘이
(두 마리가)
있어 한 말이 나가면 한 말이 먹지 아니하니,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어진 행실에 〈말들도〉 감동한 바다.” 하였다.
화목하고 엄숙히 다스림은 이어져 오고
십 세가 동거해 온지가 이백 년이 되어라.
엎드려 납일 축수 술잔 올림을 예 따라하니
옆에서 보던 사람들 모두 어질다고 찬탄해라.
가법이 엄하고 은혜롭기 절동에서 으뜸이라
석가, 노자를 따르지 않고 유가의 풍속 숭상해.
모든 자손들 효도를 근엄히 모두 가르침을 쫓아
짐승들 비록 보잘 것 없어도 또한 감동하고 통해라.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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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무주인(婺州人):『오륜』의 ‘무주인(婺州人)’은 『이륜』에는 없음.
주002)
군종자(羣從子):『오륜』의 ‘군(羣)’은 『이륜』에는 ‘군(群)’임.
주003)
여궐(余闕):원(元)나라 노주(盧洲) 사람으로, 성은 당올(唐兀)씨. 뜻을 경술(經術)에 두고, 오경(五經) 모두에 전주(傳注)를 달았음.
주004)
관혼상장(冠婚喪葬):『오륜』의 ‘관혼상장(冠婚喪葬)’은 『이륜』에는 없음.
주005)
제부유사여공(諸婦惟事女工):여러 부인들은 다만 여공(女工; 길쌈)만을 일삼고. 『오륜』의 ‘유(惟)’는 『이륜』에는 ‘유(唯)’임.
주006)
이이숙숙정연면(怡怡肅肅政連緜):화목하고 엄숙히 다스림이 이어져 오다. 『오륜』의 ‘면(緜)’은 『이륜』에는 ‘면(綿)’임.
주007)
복납(伏臘):여름 제사와 겨울 제사. 명절날.
주008)
책책(嘖嘖):크게 외치거나 떠드는 소리.
주009)
방관책책차군현(傍觀嘖嘖嗟羣賢):『오륜』의 ‘군(羣)’은 『이륜』에는 ‘군(群)’임.
주010)
뎨:조카는. 원문의 ‘종자(從子)’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류에는 (‘종(從)’의 의미를 살린) ‘앗보치들히’로 번역되었다. 현대어에서 ‘자제(子弟)’는 남의 아들을 높여 이를 때 한하여 쓰이므로, 현대어역에서는 원문의 ‘종자(從子)’가 지닌 뜻을 살려 ‘뎨’를 “조카”로 옮겼다.
주011)
버러:열(列)지어. 줄지어. 『이륜』류에는 ‘줄 혀’로 번역되어 이 예의 어간 ‘벌-’이 “열을 짓다, 줄을 짓다”의 의미로 쓰였음을 말해 준다.
주012)
얼골을 다듬고:모습을 가다듬고. 원문의 ‘숙용(肅容)’을 언해한 것으로, 이곳의 ‘얼골’은 (“얼굴”이 아닌) “모습”을 뜻한다. 어간 ‘다듬-’은 중세어의 ‘다-’에 소급하는데, 이는 ‘갈[磨]-’과 ‘다[硏]-’ 두 어간이 직접 통합하여 비통사적 복합어를 이룬 것이다. 중세 문헌에서는 드물기는 하지만 (복합어의 구성 요소 각각의 의미가 살아 있는) “갈고 다듬다”의 의미로 쓰인 예도 발견되는 데 반해(‘磨聾 돌 다 씨라’〈월인석보(1459) 서:21ㄱ주〉), (이곳의 예와 마찬가지로) 현대어의 ‘가다듬-’에는 더 이상 그러한 의미가 발견되지 않는다.
주013)
손을 자:(소매에) 손을 꽂아. 팔짱을 끼고. 원문의 ‘공수(拱手)’를 언해한 것으로, 『이륜(초)』에는 ‘매 디르고’, 『이륜(중・영)』에는 ‘맛댱 곳고’로 되어 있다. 중세어에는 ‘ 곶-’의 예에서 보듯이, 『이륜』류의 표현에서 ‘매’ 자리를 ‘’이 대신한 표현도 “공(拱)”의 의미로 쓰였다. ¶지븨 이셔 일 업슨 제도 다이 안자  곳고[… 拱手]〈번역소학 10:13ㄱ〉. 근대 문헌에서는 이러한 ‘’ 계열의 표현이 보다 일반화되어 현대어에는 ‘팔짱꽂-, 팔짱지르-’로 남았다. ¶단졍이 댱 고〈셩풍뉴(18세기) 5:19〉. ; 拱手 ㅅ댱 디다〈역어유해 상:39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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