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4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4권
  • 오륜행실 형제도
  • 오륜행실형제도(五倫行實兄弟圖)
  • 중엄의장(仲淹義莊)

중엄의장(仲淹義莊)


오륜행실도 4:49ㄴ

仲淹義莊【宋】

오륜행실도 4:50ㄱ

范仲淹 吳縣人 주001)
오현인(吳縣人):
『오륜』의 ‘오현인(吳縣人)’은 『이륜』에는 없음.
輕財好施 尤厚於族人 旣貴 於姑蘇近郭 買良田數千畝 爲義莊 以養羣從之貧者 주002)
이양군종지빈자(以養羣從之貧者):
여러 가난한 친척을 부양하고. 『오륜』의 ‘군(羣)’은 『이륜』에는 ‘군(群)’임.
擇族人長而賢者一人主出納 人日食米一升 歲衣縑一匹 嫁娶喪葬 皆有贍給 自政府出歸姑蘇焚黃 주003)
분황(焚黃):
부모의 묘 앞에서 행하는 예. 높은 벼슬에 오르면 누런 종이로 만든 제서(制書)를 가묘(家廟)에 제사 지내고 이것을 묘 앞에 가서 태워 버림.
搜外庫 惟有絹三千匹 令掌吏錄親戚及閭里知舊 自大及小 散之皆盡 曰宗族鄕黨見我生長 幼學壯仕 爲我助喜 我何以報之哉 주004)
아하이보지재(我何以報之哉):
내가 어찌 갚으리오.『오륜』의 ‘아(我)’는 『이륜』에는 없음.
千畝良田豈自圖 盡施宗族遍親疎 주005)
진시종족편친소(盡施宗族遍親疎):
종족은 친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나누어주다. 『오륜』의 ‘소(疎)’는 『이륜』에는 ‘소(踈)’임.
匹衣升食無他費 婚葬相扶亦有餘
庫中搜得三千絹 一日親知盡散之 聊報鄕閭助吾喜 相公曾不念家

오륜행실도 4:50ㄴ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범듕엄은 송나라 오현 사이니 믈을 가야이 주006)
가야이:
가벼이. 가볍게. ‘가얍-+-이(부사화 접미사)’로 분석될 어형으로, ‘가얍-’은 y(음절 부음)의 표기 위치에 따라 근대 문헌에서 ‘가얍-’, ‘가압-’ 등으로 나타난다. 『오륜』의 다른 곳에는 ‘가엽-’의 어형도 보이는데(‘터럭의셔 가여 올 적도 잇니’〈2:60ㄴ〉), 이와 같이 음성모음화 된 어형은 이미 『번역소학』(1517)을 위시하여 16세기 문헌부터 등장한다. ¶모 가여이 몯실 거시다〈번역소학 10:4ㄱ〉. 현대어에는 (이중모음의 단모음화에 따른) ‘가비얍/*가비엽-’의 어형을 거쳐 음절이 축약된 ‘가볍-’으로 남았다. ¶됴운의 죄 일만 번 쥭어도 가비야와이다〈삼국지통속연의(18세기) 14:25〉.
너기고 주기 됴화 며 더옥 종족의게 후히 여 벼이 이믜 놉흐매 집 가온 곳에 됴흔 주007)
밧:
밖의. 바깥의. 이곳의 ‘밧’은 ‘[外]’의 속격형에 해당하나 자음군 단순화에 따라 ‘밧’으로 나타난 것이다.
수쳔 묘 사 두어 의장【의 잇 젼장이라】을 삼아 여러 가난 겨레 치고 주008)
치고:
부양(扶養)하고. 『이륜(초)』에는 ‘이받더니’, 『이륜(중・영)』에는 ‘이밧더니’로 번역되었는데, 『삼강(초)』에 등장하는 어간 ‘이받-’과 마찬가지로 “양(養)”의 뜻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어미 업고 수머 녀 녜  야 이받더니[負母逃難 常采拾以爲養]〈삼강행실도 효:6ㄱ〉. 중세어 이래 “양(養)”을 뜻하는 동사 어간 ‘치-’는 (이곳과 같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쓰일 수 있었으나, 현대어의 ‘치-’는 가축 내지 동물을 대상으로 하여 쓰일 뿐이다.
겨레 듕에 나 만코 어딘 사 나흘 희여 믈을 맛디고 인의게 날마다   되와 마다 깁  필식 주고 혼인과 상 다 초와 주고 졍승 벼로 소분려 고향에 도라 와 밧고에 남은 깁 삼쳔 필을 다 내여 맛 사으

오륜행실도 4:51ㄱ

로 여곰 친쳑과 고구 다 긔록여 크니와 젹으니 일시에 흣터 주009)
흣터:
흩어. 나누어. ‘흩[散]-+-어’로 분석될 어형이나 ‘흣터’로 나타난 것은 어중 유기음 /ㅌ/이 중철 표기된 결과이다.
주며 오 종족과 향니 사이 내 어려셔브터 자라나 벼믈 보고 날을 위여 깃부믈 도와 주니 내 엇디  갑흐리오 더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28. 중엄의장(仲淹義莊)【송나라】- 범중엄이 의리가 있는 전장(田莊)을 만들다
범중엄(范仲淹)은 송(宋)나라 오현(吳縣) 사람이다.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남
(남에게)
주기를 좋아하며 종족
(宗族; 친척)
에게는 더욱 후하게 대접하였다. 벼슬이 이미 높아지고 나서는 집 가까운 곳에 좋은 밭 수천 묘(畝)를 사 두고 의장(義莊)【의리(義理)가 있는 전장
(田莊; 개인이 소유하는 논밭)
이다.】
을 만들어 여러 가난한 친척을 부양하였다. 친척 중에 나이가 많고 어진 사람 하나를 가려
(뽑아)
재물을 맡기고, 매인
(每人; 각자)
에게 날마다 쌀 한 되와 해마다 비단 한 필씩을 주었으며, 혼인과 상사(喪事)를 모두 갖추어
(돌보아)
주었다. 〈그 후 범중엄은〉 정승 벼슬로
(벼슬에 올라)
소분
(掃墳; 오랫동안 외지에서 벼슬하던 사람이 친부모의 산소에 가 성묘를 함)
을 하러
(하기 위해)
고향에 돌아왔다. 〈그때〉 바깥 창고에 남은
(남아 있던)
비단 삼천 필을 모두 꺼내어 맡은
(담당한)
사람으로 하여금 친척과
고구(故舊; 오랜 친구)
를 모두 기록하게 한 뒤, 큰 사람과 작은 사람에게 일시에 흩어
(나누어)
주며 말하기를, “종족과 향리 사람이 내가 어려서부터 〈그 후〉 자라나
(성장하여)
벼슬하는 것을 보고 나를 위해여 기쁨을 도와
(함께하여)
주었으니, 내가 어찌 〈하여야〉 갚으리오.” 하였다.
천 두락의 좋은 밭 어찌 스스로를 도모하랴
친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종족들에게 나누어.
한 필의 옷 한 되의 밥 달리 허비함이 없고
혼례와 장례를 서로 도와 치루니 또 여유로워라.
창고 가운데에서 삼천 필 비단을 찾아내어
하루 동안에 친지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어.
마을에서는 내 기쁨을 도와준 은혜 보답하려
상공 범중엄은 집의 사사로운 것 생각 아니해.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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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오현인(吳縣人):『오륜』의 ‘오현인(吳縣人)’은 『이륜』에는 없음.
주002)
이양군종지빈자(以養羣從之貧者):여러 가난한 친척을 부양하고. 『오륜』의 ‘군(羣)’은 『이륜』에는 ‘군(群)’임.
주003)
분황(焚黃):부모의 묘 앞에서 행하는 예. 높은 벼슬에 오르면 누런 종이로 만든 제서(制書)를 가묘(家廟)에 제사 지내고 이것을 묘 앞에 가서 태워 버림.
주004)
아하이보지재(我何以報之哉):내가 어찌 갚으리오.『오륜』의 ‘아(我)’는 『이륜』에는 없음.
주005)
진시종족편친소(盡施宗族遍親疎):종족은 친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나누어주다. 『오륜』의 ‘소(疎)’는 『이륜』에는 ‘소(踈)’임.
주006)
가야이:가벼이. 가볍게. ‘가얍-+-이(부사화 접미사)’로 분석될 어형으로, ‘가얍-’은 y(음절 부음)의 표기 위치에 따라 근대 문헌에서 ‘가얍-’, ‘가압-’ 등으로 나타난다. 『오륜』의 다른 곳에는 ‘가엽-’의 어형도 보이는데(‘터럭의셔 가여 올 적도 잇니’〈2:60ㄴ〉), 이와 같이 음성모음화 된 어형은 이미 『번역소학』(1517)을 위시하여 16세기 문헌부터 등장한다. ¶모 가여이 몯실 거시다〈번역소학 10:4ㄱ〉. 현대어에는 (이중모음의 단모음화에 따른) ‘가비얍/*가비엽-’의 어형을 거쳐 음절이 축약된 ‘가볍-’으로 남았다. ¶됴운의 죄 일만 번 쥭어도 가비야와이다〈삼국지통속연의(18세기) 14:25〉.
주007)
밧:밖의. 바깥의. 이곳의 ‘밧’은 ‘[外]’의 속격형에 해당하나 자음군 단순화에 따라 ‘밧’으로 나타난 것이다.
주008)
치고:부양(扶養)하고. 『이륜(초)』에는 ‘이받더니’, 『이륜(중・영)』에는 ‘이밧더니’로 번역되었는데, 『삼강(초)』에 등장하는 어간 ‘이받-’과 마찬가지로 “양(養)”의 뜻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어미 업고 수머 녀 녜  야 이받더니[負母逃難 常采拾以爲養]〈삼강행실도 효:6ㄱ〉. 중세어 이래 “양(養)”을 뜻하는 동사 어간 ‘치-’는 (이곳과 같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쓰일 수 있었으나, 현대어의 ‘치-’는 가축 내지 동물을 대상으로 하여 쓰일 뿐이다.
주009)
흣터:흩어. 나누어. ‘흩[散]-+-어’로 분석될 어형이나 ‘흣터’로 나타난 것은 어중 유기음 /ㅌ/이 중철 표기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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