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4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4권
  • 오륜행실 형제도
  • 오륜행실형제도(五倫行實兄弟圖)
  • 왕람쟁짐(王覽爭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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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람쟁짐(王覽爭酖)


오륜행실도 4:16ㄴ

王覽爭酖【晉】

오륜행실도 4:17ㄱ

王覽 祥之弟與祥 주001)
상지제여상(祥之弟與祥):
『오륜』의 “상지제여상(祥之弟與祥)”이 『이륜』에는 “자현통여형상(字玄通與兄祥)”으로 되어 있음.
友愛甚篤 母朱氏 遇祥無道 覽 주002)
년(秊):
『오륜』의 “년(秊)”은 『이륜』에는 “년(年)”으로 되어 있음.
數歲 見祥被楚撻 輒涕泣抱持 至於成童 每諫其母 其母少止凶虐朱 屢以非理使祥 覽輒與祥俱 又虐使祥妻 覽妻亦趨而共之 주003)
역추이공지(亦趨而共之):
『오륜』의 “추(趨)”는 『이륜』에는 “추(趍)”로 되어 있음.
朱患之乃止 朱密使酖祥 覽知之 徑起取酒 주004)
경기취주(徑起取酒):
『오륜』의 “기(起)”는 『이륜』에는 “추(趍)”로 되어 있음.
祥疑其有毒 爭而不與 朱遽奪覆之 自後朱賜祥饌 覽輒先嘗 朱懼覽致斃 遂止
嚚母時時虐視兄 看兄被撻痛兒情 身同室婦代兄嫂 共服勤勞庶感誠
酖非好酒何宜飮 兄弟爭持母取翻 從此母飧兒輒試 周旋母子竟全恩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오륜행실도 4:17ㄴ

딘나라 왕남은 왕샹의 어미 다른 아이라 샹으로 더브러 우 지극여 그 어미 쥬시 샹을 무도히 졉니 남의 나히 두어 에 주005)
두어 에:
두세 살에. 둘이나 세 살 되었을 때에. 원문의 ‘수세(數歲)’를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너덧 설 머근 제’, 『이륜(중)』에는 ‘두어 설 머근 제’로 번역되었다. 이곳의 ‘두어’는 중세어의 ‘두’에 소급할 어형으로, 중세어 이래 ‘두’는 그 어원적 구성(‘두[二]+[三]’)과는 달리 단순히 “둘셋[二三]”을 의미하기보다 “수(數)”를 의미하는 용법으로도 쓰였다. 『오륜』의 ‘두어’ 역시 (중세어의 ‘두’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원문의 ‘수(數)’에 대응하는 문맥에 쓰인 것이 확인되기도 한다.
샹의 매 마즈믈 보면 믄득 울며 붓잡더니 남이 댱셩매 양 그 어미 간여 말리니 져기 주006)
져기:
조금. 약간. 원문의 ‘소(少)’를 옮긴 것으로, ‘젹[少, 微]-+-이[부사화]’로 분석될 어형이다. 중세어 이래 ‘져기’는 어간 ‘젹-’의 의미를 반영하여 “조금, 약간”을 뜻하는 부사로 쓰였다. ¶중하 해 듣고 져기 알[中下 多聞少悟故로]〈법화경언해 3:142ㄴ〉. 현대어에는 ‘적이’로 이어졌으나 (‘적이 놀라다, 적이 당황하다’의 예에서 보듯이) “조금”의 의미보다는 “꽤 어지간한 정도로”(『표준』)의 의미로 쓰여 다소 의미에 차이가 있다.
사오나오믈 주007)
사오나오믈:
모진 행실을. 못된 행실을. 원문의 ‘흉학(凶虐)’을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모디로’로 번역되어 이곳의 ‘사오납-’이 ‘모딜[惡]-’과 비슷한 의미로 쓰였음을 보여 준다. 중세어에서 ‘사오납-’은 “악(惡: 모질다)”의 이미와 함께 “열(劣), 약(弱: 모자라다)”의 의미로도 많이 쓰였다. ¶부톄 布施 나라샤 사오납다 니시니[佛訶布施샤 言爲劣시니]〈금강경삼가해 3:44ㄴ〉. 그러나 『오륜』에서 ‘사오납-’은 (현대어의 후대형 ‘사납-’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예를 포함하여 전자의 의미로 쓰인 예만 발견된다. ¶블여 사오나온 병을 어더신들[不幸遇惡疾]〈오륜 3:7ㄴ〉. 연의 나히 열다엿인 제 두 형이 사오나이 졉여 칼로 마리 티니[… 二兄遇之無狀]〈오륜 4:34ㄴ〉.
그치더라 쥬시 여러 번 못 일로 샹을 부리니 남이 반시  가지로 고  샹의 안 부리면 남의 안 조차 티 니 쥬시 민망히 너겨 부리디 못더라 쥬시  만이 술에 독을 너허 샹을 먹이려 니 남이 알고 라드러 주008)
라드러:
달려들어. ‘라들-+-어’로 분석될 어형이다. ‘라들-’은 ‘[走]-’의 부동사형 ‘라’에 어간 ‘들[入]-’이 결합한 통사적 복합어인데, 현대어에서는 ‘라들-’ 대신에 어형을 다소 달리한 ‘달려들-’이 쓰인다. 이 ‘달려들-’은 ‘-’이 생산성을 잃으면서 ‘-’ 자리에 ‘이-’(‘-’에 품사와 의미를 바꾸지 않는 접사 ‘-이-’가 결합한 어형)가 통합된 결과로 『동신삼』에 ‘달려들-’의 직접적 소급형에 해당하는 ‘려들-’의 예가 보인다. ¶도적딘의 텨 려드러 쉰나믄 도적을 아 주기고[衝突賊陣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충신 1:58ㄴ〉.
그 술을 마시려 대 샹이

오륜행실도 4:18ㄱ

 독이 잇가 의심여 토와 남을 주디 아니대 쥬시 급히 그 술을 아사 주009)
아사:
앗아. 빼앗아. 원문의 ‘탈(奪)’을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아’, 『이륜(중)』에는 ‘아사’로 등장하여 중세어의 어간 ‘-’이 ‘앗-’으로 대체된 변화를 보여 준다. 중세어에서 ‘-’은 크게 “취(取: 잡다, 취하다)”와 “탈(奪: 빼앗다), 거(去: 없애다)” 두 가지 의미로 쓰였다. “취(取)”의 예로는, ¶그 설 줄딘댄 겨집이 篚로 받고 그 篚 업거든 다 안자셔 노 후에 아슬 디니라(…奠之而後에 取之니라)〈소학언해 2:51ㄴ〉. 후자(“탈”)의 의미는 전자(“취”)의 의미에서 문맥에 따라 분화되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나 근대어 이후의 ‘앗-’에서는 전자의 의미가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탈(奪)”의 의미로 현대어에 쓰이는 ‘빼앗-’은 ‘빼-(〈-)’와 ‘앗-’의 비통사적 복합 동사로 추정된다.
업디르니 주010)
업디르니:
엎지르니. 쏟아 버리니. 원문의 ‘복(覆)’을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텨 리니’, 『이륜(중)』에는 ‘업텨 리니’〈10ㄴ〉로 번역되었다. 『이륜』류에서는 ‘쏟티-’(/ㅆ/이 ‘ㅄ’으로 표기됨.)나 ‘엎티-’를 사용하여 번역한 셈인데 이들은 각각 ‘쏟-’과 ‘엎-’에 강세 접미사 ‘-티-’가 결합한 어형이다. 『이륜』류를 참고할 때 이곳의 ‘업디르-’도 ‘엎-’에 강세 접미사 ‘-디르-’가 결합한 어형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륜』에는 물론 동사 ‘디르-’도 쓰이고 있지만 이곳의 ‘업디르-’에서는 ‘디르-’가 지닌 의미 “자(刺)”를 확인할 수 없다. (‘업디르-’를 ‘엎-’과 ‘디르-’의 비통사적 복합 동사로 보기보다는) 중세어 이래 강한 동작성을 지닌 동사 ‘티[打]-’, ‘[引]-’ 등이 후대에 모두 강세 접미사화한 점을 감안하면 ‘업디르-’에 포함된 ‘-디르-’도 이미 접사화한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이곳의 ‘업디르-’는 구개음화를 거쳐 현대어에는 ‘엎지르-’로 남았다.
이 후 쥬시 음식을 샹을 주면 남이 양 몬져 맛보니 쥬시 남이 혹 죽을가 두려 여 다시 그리 아니니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10. 왕람쟁탐(王覽爭酖)【진(晉)나라】- 왕람이 〈형과〉 독주 마시기를 다투다
진(晉)나라 왕람(王覽)은 왕상(王祥)의 어머니 다른(배다른) 아우이다. 〈형인〉 왕상과 우애가 지극하였다. 그 어머니 주씨(朱氏)가 왕상을 무도(無道)히 대하니, 왕람의 나이가 너댓 살(되었을 때)에 왕상이 매 맞는 것을 보면 즉시 울며 〈어머니를〉 붙잡았다(붙잡아 말렸다). 왕람이 장성하고 나서 매번 그 어머니를 간(諫)하여 말리니 조금 못된 행실을 그쳤다. 주씨가 여러 번 못할(불가능할) 일로 왕상을 부리니 왕람이 〈그 일을〉 반드시 함께 하고, 또 왕상의 아내를 부리면 왕람의 아내가 따라서 같이 하니, 주씨가 민망히 여겨 부리지 못하였다. 주씨가 또 몰래 술에 독을 넣어 왕상을 먹이려 하니 왕람이 알고 달려들어 그 술을 마시려 하였다. 〈그러자〉 왕상이 또한 〈술에〉 독이 있는가 의심하여 〈왕람과〉 다투면서 왕람에게 주지 않으니, 주씨가 급히 그 술을 빼앗아 엎질렀다. 이 이후에는 주씨가 음식을 왕상에게 줄 때면 왕람이 매번 먼저 맛보니, 주씨가 왕람이 죽을까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리하지 않았다.
모진 어머니 때때로 형을 학대하며
형이 매 맞는 것 볼 때 마음이 아파라.
왕람은 아내와 함께 형수를 대신하다
근로를 같이하며 두루 정성에 감동해라.
독주는 좋은 술 아니거니 어찌 마실 수 있으랴
형제는 다투어 어머니 가진 것 빼앗아 쏟아버려.
이로부터 어머니의 차린 음식을 왕람 먼저 맛보아
모자 사이 마침내 온전한 은정으로 돌리어 놓았네.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이륜행실언해문〉
람미 어미 다른  이와  더니 람믜 어미 쥬시 일 보차 티거든 람미 너덧 설 머근 제 보고 믄득 울우 가 븓안더라 얼운 도연  어미를 간니 그 어미 져기 모디로 그치니라 그 어미 조 몯 일로 일 브리거든 왕람미 조차 가 며  몯 일로 의 겨집블 브리거든 람믜 겨집도 조차 가 니 그 어미 어려이 너겨 아니더라  그 어미 마니 약 프러 일 머기커 람미 알오 라 가 그 수을를 아대 이 약 픈 줄 알오 가지고 주디 아니대 그 어미 제 가 아 러리니라 그 후애 어미 일 음식 주어든 람미 의식 몬져 맛보니 어미 제 아 주글가 여 아니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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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상지제여상(祥之弟與祥):『오륜』의 “상지제여상(祥之弟與祥)”이 『이륜』에는 “자현통여형상(字玄通與兄祥)”으로 되어 있음.
주002)
년(秊):『오륜』의 “년(秊)”은 『이륜』에는 “년(年)”으로 되어 있음.
주003)
역추이공지(亦趨而共之):『오륜』의 “추(趨)”는 『이륜』에는 “추(趍)”로 되어 있음.
주004)
경기취주(徑起取酒):『오륜』의 “기(起)”는 『이륜』에는 “추(趍)”로 되어 있음.
주005)
두어 에:두세 살에. 둘이나 세 살 되었을 때에. 원문의 ‘수세(數歲)’를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너덧 설 머근 제’, 『이륜(중)』에는 ‘두어 설 머근 제’로 번역되었다. 이곳의 ‘두어’는 중세어의 ‘두’에 소급할 어형으로, 중세어 이래 ‘두’는 그 어원적 구성(‘두[二]+[三]’)과는 달리 단순히 “둘셋[二三]”을 의미하기보다 “수(數)”를 의미하는 용법으로도 쓰였다. 『오륜』의 ‘두어’ 역시 (중세어의 ‘두’와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원문의 ‘수(數)’에 대응하는 문맥에 쓰인 것이 확인되기도 한다.
주006)
져기:조금. 약간. 원문의 ‘소(少)’를 옮긴 것으로, ‘젹[少, 微]-+-이[부사화]’로 분석될 어형이다. 중세어 이래 ‘져기’는 어간 ‘젹-’의 의미를 반영하여 “조금, 약간”을 뜻하는 부사로 쓰였다. ¶중하 해 듣고 져기 알[中下 多聞少悟故로]〈법화경언해 3:142ㄴ〉. 현대어에는 ‘적이’로 이어졌으나 (‘적이 놀라다, 적이 당황하다’의 예에서 보듯이) “조금”의 의미보다는 “꽤 어지간한 정도로”(『표준』)의 의미로 쓰여 다소 의미에 차이가 있다.
주007)
사오나오믈:모진 행실을. 못된 행실을. 원문의 ‘흉학(凶虐)’을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모디로’로 번역되어 이곳의 ‘사오납-’이 ‘모딜[惡]-’과 비슷한 의미로 쓰였음을 보여 준다. 중세어에서 ‘사오납-’은 “악(惡: 모질다)”의 이미와 함께 “열(劣), 약(弱: 모자라다)”의 의미로도 많이 쓰였다. ¶부톄 布施 나라샤 사오납다 니시니[佛訶布施샤 言爲劣시니]〈금강경삼가해 3:44ㄴ〉. 그러나 『오륜』에서 ‘사오납-’은 (현대어의 후대형 ‘사납-’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예를 포함하여 전자의 의미로 쓰인 예만 발견된다. ¶블여 사오나온 병을 어더신들[不幸遇惡疾]〈오륜 3:7ㄴ〉. 연의 나히 열다엿인 제 두 형이 사오나이 졉여 칼로 마리 티니[… 二兄遇之無狀]〈오륜 4:34ㄴ〉.
주008)
라드러:달려들어. ‘라들-+-어’로 분석될 어형이다. ‘라들-’은 ‘[走]-’의 부동사형 ‘라’에 어간 ‘들[入]-’이 결합한 통사적 복합어인데, 현대어에서는 ‘라들-’ 대신에 어형을 다소 달리한 ‘달려들-’이 쓰인다. 이 ‘달려들-’은 ‘-’이 생산성을 잃으면서 ‘-’ 자리에 ‘이-’(‘-’에 품사와 의미를 바꾸지 않는 접사 ‘-이-’가 결합한 어형)가 통합된 결과로 『동신삼』에 ‘달려들-’의 직접적 소급형에 해당하는 ‘려들-’의 예가 보인다. ¶도적딘의 텨 려드러 쉰나믄 도적을 아 주기고[衝突賊陣 …]〈동국신속삼강행실도 충신 1:58ㄴ〉.
주009)
아사:앗아. 빼앗아. 원문의 ‘탈(奪)’을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아’, 『이륜(중)』에는 ‘아사’로 등장하여 중세어의 어간 ‘-’이 ‘앗-’으로 대체된 변화를 보여 준다. 중세어에서 ‘-’은 크게 “취(取: 잡다, 취하다)”와 “탈(奪: 빼앗다), 거(去: 없애다)” 두 가지 의미로 쓰였다. “취(取)”의 예로는, ¶그 설 줄딘댄 겨집이 篚로 받고 그 篚 업거든 다 안자셔 노 후에 아슬 디니라(…奠之而後에 取之니라)〈소학언해 2:51ㄴ〉. 후자(“탈”)의 의미는 전자(“취”)의 의미에서 문맥에 따라 분화되어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나 근대어 이후의 ‘앗-’에서는 전자의 의미가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탈(奪)”의 의미로 현대어에 쓰이는 ‘빼앗-’은 ‘빼-(〈-)’와 ‘앗-’의 비통사적 복합 동사로 추정된다.
주010)
업디르니:엎지르니. 쏟아 버리니. 원문의 ‘복(覆)’을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텨 리니’, 『이륜(중)』에는 ‘업텨 리니’〈10ㄴ〉로 번역되었다. 『이륜』류에서는 ‘쏟티-’(/ㅆ/이 ‘ㅄ’으로 표기됨.)나 ‘엎티-’를 사용하여 번역한 셈인데 이들은 각각 ‘쏟-’과 ‘엎-’에 강세 접미사 ‘-티-’가 결합한 어형이다. 『이륜』류를 참고할 때 이곳의 ‘업디르-’도 ‘엎-’에 강세 접미사 ‘-디르-’가 결합한 어형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륜』에는 물론 동사 ‘디르-’도 쓰이고 있지만 이곳의 ‘업디르-’에서는 ‘디르-’가 지닌 의미 “자(刺)”를 확인할 수 없다. (‘업디르-’를 ‘엎-’과 ‘디르-’의 비통사적 복합 동사로 보기보다는) 중세어 이래 강한 동작성을 지닌 동사 ‘티[打]-’, ‘[引]-’ 등이 후대에 모두 강세 접미사화한 점을 감안하면 ‘업디르-’에 포함된 ‘-디르-’도 이미 접사화한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이곳의 ‘업디르-’는 구개음화를 거쳐 현대어에는 ‘엎지르-’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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