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4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4권
  • 오륜행실 형제도
  • 오륜행실형제도(五倫行實兄弟圖)
  • 공예서인(公藝書忍)
메뉴닫기 메뉴열기

공예서인(公藝書忍)


오륜행실도 4:46ㄱ

公藝書忍【唐】

오륜행실도 4:46ㄴ

張公藝 壽張人 九世同居 北齊 隨 唐 皆旌表其門 高宗 封泰山 幸其宅 召見公藝 問其所以能睦族之道 公藝請紙筆以對乃 書忍字百餘以進 其意以爲宗族所以不協 由尊長 衣食或有不均 卑幼 禮節或有不備 更相責望 遂爲乖爭 苟能相與忍之 則家道雍睦矣
世人分割不同廬 獨有張公九世居 帝問由來能睦道 但將忍字百來書
禮嚴卑幼缺應頻 尊長衣飧或未均 忍不出言相責望 怡怡家道自相親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댱굥예 당나라 슈쟝 사이니 조샹브터 구  가지로

오륜행실도 4:47ㄱ

사니 그 후 여러 나라흘 디내되 다 그 집을 졍표엿더니 당나라 고종황뎨 태산에 봉션【님군의 공덕을 사겨 명산에 감초 주001)
감초:
보관하는. 갈무리하는. 저장하는. 『오륜』의 다른 곳에도 ‘감초-’가 쓰인 예가 보이는데, 이것이 대응되는 원문을 참조할 때 “장(藏)”의 뜻으로 쓰였다고 판단된다. ¶ 고에 너허 로이 감초미 업고[貯一庫室無私藏]〈4:57ㄱ〉. 『오륜』과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헌에는 ‘초-’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나, 여기서 ‘감초-’로 나타난 것은 어두 음절에서 ‘ㆍ’와 ‘ㅏ’가 구분되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船倉이나【에 곡식 초 곳이라】〈중수무원록언해(1792) 2:15ㄴ주〉. ‘감초-’ 내지 ‘초-’는 중세어의 ‘초-’에 소급할 어형으로, ‘초-’는 어간 ‘-’에 사동 접사 ‘-호-’가 결합한 어형이다. 중세어에서 ‘초-’는 “구(具), 비(備)”와 함께 “장(藏), 은(隱)”의 뜻으로 두루 쓰였으나 이미 15세기부터 후자의 뜻으로는 종래의 어형에 /ㄴ/이 첨가된 ‘초-’가 쓰이기 시작하고, 16세기에는 ‘초-〉초-’의 변화까지 일어나 현대어에서는 ‘감추-’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 모딘 이 숨겨 촐 일후미 覆ㅣ오〈법화경언해(1463) 6:175ㄱ〉 ; 다 結實 와 겨스레 다 초와〈칠대만법(1569) 17ㄴ〉. 그러나 전자의 뜻으로 쓰인 ‘초-’에는 이러한 어형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현대어의 ‘갖추-’로 이어졌는데, 결과적으로 현대어에서는 어휘 의미에 따라 어휘 분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다만 현대어의 ‘감추-’는(근대어의 ‘초-’와 달리) “장(藏)”의 뜻을 잃고 “은(隱)”의 뜻으로만 쓰여 더욱 의미가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이라】시고 오시다가 그 집에 님샤 공예 불러 무르시되 무 도리로 능히 이러시 종족을 화목게 다 공예 됴희와 부 주002)
부:
붓을. 『이륜(초)』에는 ‘븓들’, 『이륜(중·영)』에는 ‘브들’로 등장하여 ‘븓〉붓’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 준다. 중세어의 /ㄷ/ 말음 명사가 근대어에 와서 /ㅅ/ 말음 명사로 변한 예는 ‘[意], 곧[處], 빋[債], 벋[友]’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들은 어간 말음에서 한결같이 ‘ㄷ〉ㅈ〉ㅅ’의 변화를 거친 것이다. 곧 어간 말 /ㄷ/이 (‘지, 고지, 비지, 버지’와 같은) 구개음화 어형을 매개로 어간 말 /ㅈ/으로 변화한 뒤, 이것이 다시 마찰음화를 겪어 어간 말 /ㅅ/으로 정착한 것이다. 이들 예를 고려하면, 문헌상에는 입증되지는 않지만 ‘붇’ 역시 ‘붇〉*붖〉붓’의 변화를 거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쳥여 믈 인 주003)
:
자(字). 글자. 원문의 ‘자(字)’에 대한 한자음은 『오륜』에 ‘’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나(‘부 드러 죽을   니’〈2:50ㄴ〉) 여기서는 ‘’로 나타났다. 경음화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겠으나 어두 경음 표시에 ‘ㅂ’계 합용병서는 더 이상 어두 자음군 표기에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
일을 주004)
:
써. 『이륜(초)』에는 ‘서’, 『이륜(중·영)』에는 ‘써’로 나타난다. 『이륜』류와의 비교를 통하여 ‘스-〉쓰-’의 어형 변화(어두 경음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어간은 ‘쓰[書]-+-어’로 분석될 어형이 이곳에서 ‘’로 나타난 것은 『오륜』에서 (각자병서를 일체 쓰지 않고) 종래의 ‘ㅆ’마저도 ‘ㅄ’으로 대체하여 표기한 결과이다.
드리니 대개 그 은 종족이 불화미 양 어룬이 의식을 혹 고로디 아니케 고 즈니와 어린 이 녜졀을 부죡히 면 인여 서로 망여 토며 틈이 나니 진

오륜행실도 4:47ㄴ

실로 능히 서로 마 디내면 집안히 스로 화목다 말이러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26. 공예서인(公藝書忍)【당나라】 - 장공예가 참을 인(忍) 자를 쓰다
장공예(張公藝)는 당(唐)나라 수장(壽張) 사람이다. 조상부터 구 대(九代)를 함께 사니, 그 후 여러 나라를 거치되 모두 그 집을 정표(旌表)하였다. 당나라 고종황제가 태산(泰山)에 봉선(封禪)【임금의 공덕을 새겨 명산(名山)에 보관하는 일이다.】하시고, 오시다가 그 집에 이르시어 장공예를 불러 물으시되, “무슨 도리
(道理; 방법)
로 능히 이와 같이 종족
(宗族; 친척)
을 화목하게 하느냐?” 하였다. 〈그러자〉 장공예가 종이와 붓을 청하여 ‘참을 인(忍)’ 자(字) 일백 자를 써 드렸다. 대개
(大槪; 대략)
그 뜻은 ‘종족이 불화(不和)하는 것이, 항상 어른이 의식(衣食)을 혹 고르지 않게 하거나 〈신분이〉 낮은 사람과 〈나이가〉 어린 사람이 예절을 부족하게 하면 그로 인하여, 서로 책망하여 다투며 틈이 나는
(생기는)
것이니, 〈그러므로〉 진실로 능히 서로 참고 지내면 집안이 저절로 화목해진다.’ 〈하는 그런〉 말이었다.
세상 사람들 나누어 한 집에 살지 않는데
홀로 장공만이 구세를 동거하고 있으니.
황제가 화목하게 사는 까닭과 길을 물으니
다만 참을 인(忍) 자 일백 자를 써 올려라.
예가 엄하여 아희들은 그래 자주 결례하며
어른들의 입고 먹는 것 혹은 고르지 않아도.
참고 말하거나 서로 책망하지 않는다고 하면
화목하고 즐거운 집의 길 서로 친하게 지내다.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이륜행실언해문〉
예 아홉   사더니 여러 님굼 제 다 졍표시니 후에 님굼미 봉 나 겨시다가 그 집븨 샤 예 블려보셔 그 아들와 화 일 무르신대 예 죠 붇들 주쇼셔 여 답호 죠예   일 나마 서 진샹니라 그 덴 너교 아믜 화동티 아니호 얼운니 옷밥블 골오 아니 주거나 아랫 져믄 사름미 례졀리 그르츠거나 커든 서르 외다마다 호로 거슬 도니 각각 서르 면 지븻 이리 연히 화동리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5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감초:보관하는. 갈무리하는. 저장하는. 『오륜』의 다른 곳에도 ‘감초-’가 쓰인 예가 보이는데, 이것이 대응되는 원문을 참조할 때 “장(藏)”의 뜻으로 쓰였다고 판단된다. ¶ 고에 너허 로이 감초미 업고[貯一庫室無私藏]〈4:57ㄱ〉. 『오륜』과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헌에는 ‘초-’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나, 여기서 ‘감초-’로 나타난 것은 어두 음절에서 ‘ㆍ’와 ‘ㅏ’가 구분되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船倉이나【에 곡식 초 곳이라】〈중수무원록언해(1792) 2:15ㄴ주〉. ‘감초-’ 내지 ‘초-’는 중세어의 ‘초-’에 소급할 어형으로, ‘초-’는 어간 ‘-’에 사동 접사 ‘-호-’가 결합한 어형이다. 중세어에서 ‘초-’는 “구(具), 비(備)”와 함께 “장(藏), 은(隱)”의 뜻으로 두루 쓰였으나 이미 15세기부터 후자의 뜻으로는 종래의 어형에 /ㄴ/이 첨가된 ‘초-’가 쓰이기 시작하고, 16세기에는 ‘초-〉초-’의 변화까지 일어나 현대어에서는 ‘감추-’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 모딘 이 숨겨 촐 일후미 覆ㅣ오〈법화경언해(1463) 6:175ㄱ〉 ; 다 結實 와 겨스레 다 초와〈칠대만법(1569) 17ㄴ〉. 그러나 전자의 뜻으로 쓰인 ‘초-’에는 이러한 어형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 현대어의 ‘갖추-’로 이어졌는데, 결과적으로 현대어에서는 어휘 의미에 따라 어휘 분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다만 현대어의 ‘감추-’는(근대어의 ‘초-’와 달리) “장(藏)”의 뜻을 잃고 “은(隱)”의 뜻으로만 쓰여 더욱 의미가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주002)
부:붓을. 『이륜(초)』에는 ‘븓들’, 『이륜(중·영)』에는 ‘브들’로 등장하여 ‘븓〉붓’의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 준다. 중세어의 /ㄷ/ 말음 명사가 근대어에 와서 /ㅅ/ 말음 명사로 변한 예는 ‘[意], 곧[處], 빋[債], 벋[友]’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들은 어간 말음에서 한결같이 ‘ㄷ〉ㅈ〉ㅅ’의 변화를 거친 것이다. 곧 어간 말 /ㄷ/이 (‘지, 고지, 비지, 버지’와 같은) 구개음화 어형을 매개로 어간 말 /ㅈ/으로 변화한 뒤, 이것이 다시 마찰음화를 겪어 어간 말 /ㅅ/으로 정착한 것이다. 이들 예를 고려하면, 문헌상에는 입증되지는 않지만 ‘붇’ 역시 ‘붇〉*붖〉붓’의 변화를 거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주003)
:자(字). 글자. 원문의 ‘자(字)’에 대한 한자음은 『오륜』에 ‘’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나(‘부 드러 죽을   니’〈2:50ㄴ〉) 여기서는 ‘’로 나타났다. 경음화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겠으나 어두 경음 표시에 ‘ㅂ’계 합용병서는 더 이상 어두 자음군 표기에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
주004)
:써. 『이륜(초)』에는 ‘서’, 『이륜(중·영)』에는 ‘써’로 나타난다. 『이륜』류와의 비교를 통하여 ‘스-〉쓰-’의 어형 변화(어두 경음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 어간은 ‘쓰[書]-+-어’로 분석될 어형이 이곳에서 ‘’로 나타난 것은 『오륜』에서 (각자병서를 일체 쓰지 않고) 종래의 ‘ㅆ’마저도 ‘ㅄ’으로 대체하여 표기한 결과이다.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