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4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4권
  • 오륜행실 형제도
  • 오륜행실형제도(五倫行實兄弟圖)
  • 언소석적(彦霄析籍)

언소석적(彦霄析籍)


오륜행실도 4:37ㄱ

彦霄析籍【宋 주001)
언소석적(彦霄析籍) 송(宋):
『오륜』의 ‘송(宋)’은 『이륜』에서는 ‘당(唐)’임.

오륜행실도 4:37ㄴ

趙彦霄 兄弟二人 同爨十二年 兄彦雲 惟聲色博 주002)
유성색박(惟聲色博):
성색과 잡기를 즐겨. 『오륜』의 ‘박(博)’은 『이륜』에서는 ‘박(愽)’임.
奕是娛 生業壤已逾半 彦霄 諫不入 遂求析籍 及五年 而兄之生計蕩然矣 公私逋負 尙千餘緡彦霄 因除夕置酒 邀兄嫂而告之曰 向者初無分爨意 以兄用度不節 恐皆蕩盡 俱有飢寒之憂 주003)
구유기한지우(俱有飢寒之憂):
기한(飢寒)을 면치 못할까 하여. 『오륜』의 ‘기(飢)’는 『이륜』에서는 ‘기(饑)’임.
今幸畱一半 亦足以給伏臘 주004)
복납(伏臘):
삼복(三伏)과 납일(臘日; 민간이나 조정에서 조상이나 종묘 또는 사직에 제사 지내던 날)을 아울러 이르는 말.(『표준』)
兄 自今復歸中堂以主家務 卽取分書付之火 管鑰之屬 悉以付焉 又以已儲錢 償其所逋負 주005)
우이이저전 상기소포부(又以已儲錢償其所逋負):
『오륜』의 ‘又以已儲錢 償其所逋負’는 『이륜』에서는 ‘因言所少連負 以已儲錢償之’로 되어 있음.
兄初有慚色不從 不得已而受之 次年彦霄 一擧登第 鄕人大敬服之
同爨會經一紀 주006)
일기(一紀):
주성(周星). 목성(木星)이 하늘을 한 바퀴 도는 기간인 열두 해 동안을 이르는 말.(『표준』)
可憐家業漸蕭疎 주007)
가련가업점소소(可憐家業漸蕭疎):
『오륜』의 ‘소(疎)’는 『이륜』에서는 ‘소(踈)’임.
無端析籍

오륜행실도 4:38ㄱ

兄應恠 丹懇他年見火書 주008)
단간타년견화서(丹懇他年見火書):
『오륜』의 ‘간(懇)’은 『이륜』에서는 ‘간 (忄貇 )’임.
兄蕩家資弟析居 五年贏得有遺儲 주009)
오년영득유유저(五年贏得有遺儲):
『오륜』의 ‘영(贏)’은 『이륜』에서는 ‘영(嬴)’임.
慇懃更酌元宵酒 주010)
은근갱작원소주(慇懃更酌元宵酒):
『오륜』의 ‘소(宵)’는 『이륜』에서는 ‘소(霄)’임.
從此阿兄復主廬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됴언쇼 송나라 사이니 형뎨 열두  듸 밥 지어 먹고 사더니 그 형 언운이 셩과 잡기 즐겨 가산이 졈졈 패니 언 간호 듯디 아니커 드여 가산 문셔 화 가지고 각각 먹고 잇더니 다  만의 형의 계 이믜 탕진고 공의 빗이 주011)
빗이:
빚이. 이 예 및 다음의 예 ‘빗을’에 포함된 ‘빗’은 원문의 ‘포부(逋負)’에 대응되는 것으로 미루어 중세어의 ‘빋’에 소급할 어형임이 분명하다. 중세어에서 ‘빋’은 어간 말 /ㄷ/을 지닌 만큼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통합할 때, 그 곡용형은, ‘ㅅ’이나 ‘ㅈ’이 아닌 ‘ㄷ’ 연철 표기로 나타났다. ‘비디’(주격형), ‘비들’(대격형). 『오륜』에서는 ‘ㄷ’ 연철 표기 대신 ‘빗이’, ‘빗을’과 같이 ‘ㅅ’ 분철 표기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때의 ‘ㅅ’ 분철 표기는 중세어 시기와 같이 어간 말음 /ㄷ/을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오륜』에서 어간 말 /ㅅ/이나 /ㅈ/을 ‘ㅅ’ 분철로 표기한 예가 있거니와, 비슷한 시기의 문헌에 ‘빗에’, ‘빗세’, ‘빗즐’과 같은 표기가 동시에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이곳의 ‘ㅅ’ 분철 표기는 어간 말 /ㅅ/ 내지 /ㅈ/을 반영할 가능성이 보다 높다 할 것이다. ¶빗세 변리 얍게 감며〈경신록언석(1796) 78ㄱ〉. 빗에 남의 남녀 쳐 잡으미니라〈경신록언색 82ㄱ〉. 빗즐 샤며〈경신록언석 80ㄱ〉. 빗즐 져〈경신록언석 84ㄱ〉.
쳔여 금이라 언 졔셕【섯 그믐날이라】을 주012)
졔셕을:
제석(除夕)을. 섣달 그믐날을. 원문의 ‘인제석(因除夕)’을 번역한 것으로, 『이륜』류에서는 “작은 설날에”를 뜻하는 ‘아 섯나래’〈이륜(초) : 21ㄱ〉. ‘아츤 선날의’〈이륜(중·영) : 21ㄱ〉로 각각 번역되었다.
인여 술을 초고 형수 쳥여 닐오 내 본 분

오륜행실도 4:38ㄴ

 의 업되 형이 믈 기 존졀티 아니니 두리건대 인여 탕진여 긔한을 면티 못가 미러니 이제 내 가신이 오히려 반이 이시니 죡히 명일에 쥬식은 촐디라 오부터 형이 다시 뎡당의 이셔 가 쥬쟝게 라 고 즉시 분던 문셔 가져 불에 오고 여러 열쇠 다 형수의게 맛디고  져츅엿던 돈을 내여 형의 빗을 다 갑흐니 그 형이 븟그려다가 마디 못여 주013)
마디 못여:
마지못해. 어쩔 수 없어. 원문의 ‘부득이(不得已)’를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원문을 살려) ‘브듸이 여’〈21ㄱ〉로 번역되었다. 여기서 어간 ‘말-’은 “이(已; 그만두다)”를 뜻하는 본동사로 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륜(중·영)』에서는, ‘마다 다가 마디 못야 ’〈21ㄴ〉로 번역되어 “已”의 의미를 보다 충실히 살렸다.
바드니라 그 이듬에 주014)
이듬에:
이듬해에. 다음해에. 원문의 ‘차년(次年)’을 옮긴 것으로 『이륜』류에는 ‘바근 예’로 번역되었다. 『이륜』류에서는 (“년(年)”을 뜻하는 어사) ‘’에 처격 ‘-예’가 결합한 반면, 이 예에서는 ‘-에’가 결합하여 처격 형태가 ‘-에’로 통일되어 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언 급뎨니 일향 사이 다 탄복더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21. 언소석적(彦霄析籍)【송나라】 - 조언소가 재산 문서를 나누다
조언소(趙彦霄)는 송(宋)나라 사람이다. 형제가 열두 해를 한 곳에서
(함께)
밥 지어 먹고 살았다. 그 형 조언운(趙彦雲)이 성색
(聲色; 음악과 여색)
과 잡기(雜技)를 즐겨 가산(家産)이 점점 패(敗)하였다. 조언소가 간(諫)하되 듣지 않거늘, 드디어 가산 문서를 나누어 가지고, 각각 먹고
(지내고, 살고)
있었다. 〈그런 지〉 다섯 해 만에 형의 생계가 이미 탕진되고 공사(公私)의 빚이 천여 금이었다(천여 금에 이르렀다). 조언소가 제석(除夕)【섣달 그믐날이다.】을 인(因)하여
(기회로 삼아)
술을 갖추고 형수(兄嫂)를 청하여 말하기를, “내가 본디 분재(分財)할 의사가 없었으나 형이 재물 쓰기를 존절
(存節; 준절(撙節), 알맞게 절제함)
치 아니하니, 두려워하건대 인(因)하여 〈가산을〉 탕진하여 기한(飢寒)을 면(勉)치 못할까 하여 〈그리〉 한 것이었다. 이제 내가 가산이 아직 반이 〈남아〉 있으니, 족히 명일
(名日; 제삿날)
에 주식(酒食)은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형이 다시 정당
(正堂; 가장 주된 집채, 곧 집안의 중심)
에 있어 〈형으로 하여금〉 가사(家事)를 주장하게 하라.” 하고, 즉시 분재했던 문서를 불에 사르고, 여러 열쇠를 모두 형수에게 맡겼다. 또 저축하였던 돈을 꺼내어 형의 빚을 다 갚으니, 그 형이 부끄러워하다가 마지못하여 받았다. 그 이듬해에 조언소가 급제하니 일향(一鄕) 사람이 모두 탄복하였다.
한솥밥을 먹어 온 지 십이 년이 넘었거늘
가련하다 가업이 점점 쓸쓸히 기울어 가노라.
난데없이 가산 나누자니 형은 이상히 여겼거니
그의 간절한 단심 어느 해 문서를 태워 보여줘.
형이 가산을 탕진하자 아우 헤어져 살아
오년에 얻은 재산 저축하고 남으니.
은근히 정월 보름의 술을 차려 잔을 나누며
아우 이제 형님께서 다시 집안일 주관하라고.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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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언소석적(彦霄析籍) 송(宋):『오륜』의 ‘송(宋)’은 『이륜』에서는 ‘당(唐)’임.
주002)
유성색박(惟聲色博):성색과 잡기를 즐겨. 『오륜』의 ‘박(博)’은 『이륜』에서는 ‘박(愽)’임.
주003)
구유기한지우(俱有飢寒之憂):기한(飢寒)을 면치 못할까 하여. 『오륜』의 ‘기(飢)’는 『이륜』에서는 ‘기(饑)’임.
주004)
복납(伏臘):삼복(三伏)과 납일(臘日; 민간이나 조정에서 조상이나 종묘 또는 사직에 제사 지내던 날)을 아울러 이르는 말.(『표준』)
주005)
우이이저전 상기소포부(又以已儲錢償其所逋負):『오륜』의 ‘又以已儲錢 償其所逋負’는 『이륜』에서는 ‘因言所少連負 以已儲錢償之’로 되어 있음.
주006)
일기(一紀):주성(周星). 목성(木星)이 하늘을 한 바퀴 도는 기간인 열두 해 동안을 이르는 말.(『표준』)
주007)
가련가업점소소(可憐家業漸蕭疎):『오륜』의 ‘소(疎)’는 『이륜』에서는 ‘소(踈)’임.
주008)
단간타년견화서(丹懇他年見火書):『오륜』의 ‘간(懇)’은 『이륜』에서는 ‘간 (忄貇 )’임.
주009)
오년영득유유저(五年贏得有遺儲):『오륜』의 ‘영(贏)’은 『이륜』에서는 ‘영(嬴)’임.
주010)
은근갱작원소주(慇懃更酌元宵酒):『오륜』의 ‘소(宵)’는 『이륜』에서는 ‘소(霄)’임.
주011)
빗이:빚이. 이 예 및 다음의 예 ‘빗을’에 포함된 ‘빗’은 원문의 ‘포부(逋負)’에 대응되는 것으로 미루어 중세어의 ‘빋’에 소급할 어형임이 분명하다. 중세어에서 ‘빋’은 어간 말 /ㄷ/을 지닌 만큼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통합할 때, 그 곡용형은, ‘ㅅ’이나 ‘ㅈ’이 아닌 ‘ㄷ’ 연철 표기로 나타났다. ‘비디’(주격형), ‘비들’(대격형). 『오륜』에서는 ‘ㄷ’ 연철 표기 대신 ‘빗이’, ‘빗을’과 같이 ‘ㅅ’ 분철 표기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때의 ‘ㅅ’ 분철 표기는 중세어 시기와 같이 어간 말음 /ㄷ/을 반영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오륜』에서 어간 말 /ㅅ/이나 /ㅈ/을 ‘ㅅ’ 분철로 표기한 예가 있거니와, 비슷한 시기의 문헌에 ‘빗에’, ‘빗세’, ‘빗즐’과 같은 표기가 동시에 나타나는 점을 감안하면, 이곳의 ‘ㅅ’ 분철 표기는 어간 말 /ㅅ/ 내지 /ㅈ/을 반영할 가능성이 보다 높다 할 것이다. ¶빗세 변리 얍게 감며〈경신록언석(1796) 78ㄱ〉. 빗에 남의 남녀 쳐 잡으미니라〈경신록언색 82ㄱ〉. 빗즐 샤며〈경신록언석 80ㄱ〉. 빗즐 져〈경신록언석 84ㄱ〉.
주012)
졔셕을:제석(除夕)을. 섣달 그믐날을. 원문의 ‘인제석(因除夕)’을 번역한 것으로, 『이륜』류에서는 “작은 설날에”를 뜻하는 ‘아 섯나래’〈이륜(초) : 21ㄱ〉. ‘아츤 선날의’〈이륜(중·영) : 21ㄱ〉로 각각 번역되었다.
주013)
마디 못여:마지못해. 어쩔 수 없어. 원문의 ‘부득이(不得已)’를 옮긴 것으로, 『이륜(초)』에는 (원문을 살려) ‘브듸이 여’〈21ㄱ〉로 번역되었다. 여기서 어간 ‘말-’은 “이(已; 그만두다)”를 뜻하는 본동사로 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륜(중·영)』에서는, ‘마다 다가 마디 못야 ’〈21ㄴ〉로 번역되어 “已”의 의미를 보다 충실히 살렸다.
주014)
이듬에:이듬해에. 다음해에. 원문의 ‘차년(次年)’을 옮긴 것으로 『이륜』류에는 ‘바근 예’로 번역되었다. 『이륜』류에서는 (“년(年)”을 뜻하는 어사) ‘’에 처격 ‘-예’가 결합한 반면, 이 예에서는 ‘-에’가 결합하여 처격 형태가 ‘-에’로 통일되어 가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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