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4:31ㄴ
德珪死獄
【宋 주001) 송(宋): 『오륜』의 ‘송(宋)’나라가 『이륜』에서는 ‘당(唐)’나라고 되어 있음.
】오륜행실도 4:32ㄱ
鄭德珪
浦江人 주002) 포강인(浦江人): 『오륜』의 ‘포강인(浦江人)’은 『이륜』에는 없음.
與弟德璋 주003) 여제덕장(與弟德璋): 아우 덕장과 더불어. 『오륜』의 ‘여(與)’는 『이륜』에는 없음.
孝友天至 晝則聯几案 夜則同衾被 德璋 素剛直
爲仇家陷以死罪 주004) 위구가함이사죄(爲仇家陷以死罪): 남에게 무함당한 바가 되어 죽을죄로 갇히게 되었다. 『오륜』의 ‘위(爲)’는 『이륜』에서는 ‘일일위(一日爲)’임. 또 『오륜』의 ‘이(以)’는 『이륜』에서는 ‘어(於)’임.
當會逮揚州 德珪 哀弟之見誣 乃陽謂曰彼欲害吾也 何預爾事 我往則奸狀白 爾去得不死乎 卽治行 德璋追至道中 兄弟相持
頓足 주005) 哭爭欲就死 주006) 곡쟁욕취사(哭爭欲就死): 울며 서로 죽기를 다투다. 『오륜』의 ‘곡(哭)’은 『이륜』에는 없음.
德珪黙計 沮其行 夜將半 從間道逸去 德璋 復追至廣陵 德珪已死於獄 德璋聞之
慟絶者數四 주007) 통절자수사(慟絶者數四): 통곡하며 여러 번 기절하다. 『오륜』의 ‘수사(數四)’는 『이륜』에서는 ‘사(四)’임.
負骨歸葬 廬墓再朞 每一悲號
烏鵲翔集不去 주008) 오작상집부거(烏鵲翔集不去): 까막까치가 날아와 가지 않다. 『오륜』의 ‘오작(烏鵲)’은 『이륜』에서는 ‘오작개(烏鵲皆)’임.
同衾聯几每相須 不意
剛剛 주009) 강강(剛剛): 마음이나 기력이 아주 단단함.(『표준』)
陷罪誣 視死如歸爭就獄 牽留道上泣相扶
夜半潛歸死獄中 廣
오륜행실도 4:32ㄴ
陵追至慟何窮 再朞廬墓哀號處 烏鵲飛翔慰怨衷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뎡덕규 송나라 포강 사이니 아 덕쟝으로 더브러 효위 지극여
낫이면 주010) 낫이면: 낮이면. 『이륜』류에는 ‘나지면’으로 표기되어 이 예의 ‘낫’이 기저형 ‘낮[晝]’을 표기한 것이다. ‘낮’이 분철 표기되면서 ‘낫’으로 나타난 예는 『오륜』의 다른 곳에도 보인다(따라서 단순한 오기로 볼 수 없다). ‘밤낫으로[晝夜]’〈1:11ㄴ, 1:13ㄴ〉. 중세 문헌에서도 (곡용형에서) ‘낮’이 ‘낫’으로 표기된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휴지나 자음(으로 시작되는 조사) 앞에 국한된 것이었다(‘晝 낫 듀’, ‘낫과 바’ 등). 이곳과 같이 ‘낮’이 분철 표기되면서 ‘낫’으로 나타난 예는 『오륜전비언해』(1721)을 위시하여 18세기 문헌에 와서나 등장한다. ¶세 弟兄이 장 和氣여 낫이면 가지로 놀고 밤이면 가지로 자〈1:2ㄱ〉. 문제는 분철 표기된 종성 ‘ㅅ’이 어떤 음가를 반영하느냐 하는 것이다. 『오륜』의 일반적 표기 방식으로는 분철 표기된 종성 ‘ㅅ’이 /ㄷ/을 반영하지만 ‘낮’이 현대의 어느 방언에서도 ‘잗’으로 실현되는 예가 없음을 감안하면 이곳의 ‘ㅅ’이 /ㄷ/을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예의 ‘ㅅ’이 (현대어의 맞춤법과 마찬가지로) /ㅅ/을 반영할 가능성은 더욱 없다. 『오륜』에서 어간 말 /ㅅ/은 (곡용과 활용 모두에서) 분철 표기되는 법 없이 언제나 ‘ㅅ’으로 연철 표기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衣], 모[池], 므어[何], 거[者] ; 버서[脫], 소사[湧]. 『명의록언해』(1777)에, ‘낫은’〈권수 상:59ㄱ〉과 함께 ‘나’〈권수 상:23ㄴ〉이 공존하는 것을 보면, 결국 이곳의 ‘ㅅ’은 /ㅈ/을 반영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곧 『오륜』에서는 분철 표기를 종래보다 확장하여 어간 말 /ㅈ/에까지 적용하되 종성의 표기는 종래의 칠종성법에 따라 (‘낮’이 아닌) ‘낫’으로 적었다고 할 것이다.
상을 년여 안며 밤이면 니블을 가지로 더니 덕쟝이 본 강직디라 의게 무함 배 되여 죽을 죄로 갓치게 되엿거 덕 아의 무죄믈 불샹이 너겨 덕쟝려 거즛 닐러 오 졔
날을 주011) 날을: 나를. 『이륜』류에는 ‘나’로 등장한다. 『오륜』의 다른 곳( 및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헌)에도 ‘나’〈2:40ㄱ〉이 등장함을 감안할 때, 이곳의 ‘날을’은 어중 /ㄹ/을 과잉 분철한 결과로 해석된다.
해고져 미니 내 가면 져의 간상을
폭리라 주012) 폭리라: 폭백(暴白)하리라. 폭로(暴露)하겠다. 『이륜』류에는 상응하는 부분이 ‘내 가면 발명려니와’〈22ㄱ〉로 나타난다. 『이륜』류와 달리 여기서 ‘발명-’ 대신 ‘폭-’가 사용된 것은 대격어가 ‘져의 간상을’로 나타난 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근대 문헌에서 어간 ‘발명(發明)-’는 대부분 “죄나 잘못이 없음을 말하여 밝힘”(『표준』)을 뜻하였다. ¶抵蹋 발명여 나 몰내라 다〈어록해(중간본·1669) 28ㄱ〉.
고 즉시 길을 여 가니 덕쟝이 듕노의 라와 형뎨 서로
오륜행실도 4:33ㄱ
븟들고 울며 죽기 톨 덕 아 못 오게 여 밤이 깁흔 후에
이길로 주013) 이길로: 샛길로. 『이륜』 류에는 ‘즈름로’로 등장하나, 여기서는 원문의 ‘간도(間道)’에 충실하게 번역되었다. 『오륜』의 다른 곳에 보이는 ‘이길’도 “지름길”보다는 “샛길”의 의미로 쓰였다. ¶신이 쳥컨대 초 소길 거시니 왕은 이길로 라나쇼셔[王可以間出].〈오륜 2:9ㄴ〉.
자 만이 라나니 덕쟝이 라와 광능 니니 덕 이믜 옥에셔 죽은디라 덕쟝이 이 말을 듯고 통곡여 여러 번 긔졀다가 덕규의 죽엄을 지고 도라와 뭇은 후에 두 슈묘니 양 슬피 울면
가막가치 주014) 가막가치: 까막까치가. 원문의 ‘오작(烏鵲)’을 번역한 것으로, 『이륜(중·영)』의 ‘가막가치히’와 비교할 때 ‘가막가치+-이(주격)’로 분석될 어형이다. ‘가막가치’는 이미 중세 문헌부터 나타나는데(‘가막가치 銀漢 시름고’〈두시언해(1481) 19:10ㄱ〉), ‘가마괴’[烏]와 ‘가치’[鵲]의 복합 명사로서 오늘날에는 (경음화를 반영한) ‘까막까치’로 이어졌다.
라와 가디 아니더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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