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4:56ㄱ
張閏同爨 주001) 장윤동찬(張閏同爨): 『오륜』의 ‘장윤(張閏)’은 『이륜』에는 ‘원백(元伯)’임. 이하 모두 같다.
【元】오륜행실도 4:56ㄴ
張閏 延長人 주002) 장윤 연장인(張閏 延長人): 『오륜』의 ‘장윤(張閏)’은 『이륜』에는 ‘왕원백(王元伯)’이고, 『오륜』의 ‘연장인(延長人)’은 『이륜』에는 없음.
八世不異爨 주003) 팔세불이찬(八世不異爨): 여덟 대를 따로 밥하지 않다(한집에서 살다). 『오륜』의 ‘팔세(八世)’는 『이륜』에는 ‘사세(四世)’임. 이하 모두 ‘팔세(八世)’를 ‘사세(四世)’라고 하였다.
家人百餘口 無間言 日使諸女諸婦各聚一室爲
女紅工 주004) 여홍공(女紅工): 『오륜』의 ‘여홍공(女紅工)’은 『이륜』에는 ‘여공(女工)’임. ‘여홍공’은 ‘여공(女工)’과 같은 말이니, 부녀자들이 하는 길쌈질을 가리킨다.
畢歛貯一庫 室無私藏 幼兒啼泣 諸母見者卽抱哺 一婦歸寧 畱其子 衆婦共乳 不問孰爲已兒 兒亦不知孰爲已母也
兄顯卒 주005) 형현졸(兄顯卒): 형 장현(張顯)이 죽으니. 『오륜』의 ‘형현졸(兄顯卒)’은 『이륜』에는 ‘형선백졸(兄宣伯卒)’(형 왕선백이 죽으니)임.
卽以家事付姪聚 聚辭 주006) 즉이가사부질취 취사(卽以家事付姪聚 聚辭): 즉시 집안일을 조카인 취에게 맡기니, 취가 사양했다. 『오륜』의 ‘취(聚)’는 『이륜』에는 ‘궤(軌)’임. 이하 모두 같다.
曰叔父行也 叔宜主之 閏曰姪 宗子也 姪宜主之 相讓旣久 卒以付聚 至元間旌表其門
八世同炊不析居
女工勤聚不私儲 주007) 여공근취불사저(女工勤聚不私儲): 『오륜』의 ‘공(工)’은 『이륜』에는 ‘홍(紅)’임.
兒啼見者爭相乳 不問何孃大小姐
已矣兄亡可得追 盡將家事付宗兒 一門叔姪相推讓 高義堪爲後世
오륜행실도 4:57ㄱ
師
五倫行實圖 卷第四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댱윤은 원라라 연쟝 사이니 여 듸 이시며 집 사이 여 귀로
이말이 주008) 이말이: 남을 이간(離間)하는 말이. 원문의 ‘간언(間言)’을 언해한 것으로 ‘간언(間言)’은 “남을 이간하는 말”(『표준』)을 뜻한다. 『이륜(초)』에는 ‘싯마리’(『이륜(초)』의 일반적인 표기는 ‘’이므로 이곳의 ‘싯’은 ‘’의 오기로 보인다.)로 나와 이 예의 어형이 (‘〉이’의 변화와 함께) 속격 ‘-ㅅ’이 생략된 결과임을 보여 준다.
업고 날마다
여러 부녀로 여곰 집에 모히여 질삼다가 주009) 여러 부녀로 여곰 집에 모히여 질삼다가: 여러 부녀로 하여금 한 집에 모여 길쌈하게 하였다가. 원문의 ‘使諸女諸婦名聚一室爲女紅’를 언해한 것으로, (‘사(使)’가 포함된) 원문의 사동문의 성격을 충실히 반영한다면 언해문 역시 사동문으로 옮겨야 할 것이나, 이곳의 언해에서는 피사동주(‘여러 부녀’)를 ‘-로 여곰’으로 표시하는 데 그쳤다. 이곳의 ‘질삼’은 중세어 이래의 어형으로, 19세기 문헌부터는 (‘질삼’을 ㄱ구개음화된 어형으로 오인하여) 구개음화에 대한 부정회귀가 일어난 ‘길삼’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현대어에는 ‘길쌈’으로 이어졌다. ¶후원의 모시 심거 몸소 길삼니〈태상감응편언해(1852) 5:10ㄱ〉.
일이 면 고에 너허 로이
감초미 주010) 감초미: 간수하는 바가. 보관하는 바가. 원문의 ‘무사장(無私藏)’에서 “장(藏)”을 옮긴 것으로, 이곳의 ‘감초-’는 (현대어의 후대형 ‘감추-’가 “숨기다”를 의미하는 것과 달리) “간수하다, 보관하다, 저장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원문의 ‘무사장’에 대하여 『이륜(초)』에는 ‘간 아니터라’, 『이륜(중・영)』에는 ‘간슈 아니더라’로 번역된 것이 참조된다.
업고 어린 아 울면 여러 지어미 보 대로 안아 졋 먹이고 지어미 친뎡에 니라 갈 제 그 식을 두고 가면 모든 지어미 가지로 졋 먹여 뉘 아믈 뭇디 아니니 그 아 뉘가 제 어민 줄 모로더라 윤의 형이 죽으매 윤이 즉시 가로 족
오륜행실도 4:57ㄴ
하 의게 맛디니 양여 오 아자비 아븨 항녈이라 아자비
맛당이 맛드리이다 주011) 맛당이 맛드리이다: 맡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곳의 언해는 원문의 ‘숙의주지(叔宜主之)’에서 ‘의(宜)’를 서술어가 아닌 부사어로 보아 언해한 결과이다. ‘의(宜)’를 서술어로 보면 (‘맛당이 V’ 구문 대신) ‘V-(/으)미 맛당-’ 구문으로 나타날 수 있으나 『오륜』에서는 축자역 태도를 취한 결과 ‘의(宜)’가 포함된 원문이 전자의 구문으로만 언해되었다.
윤이 오 너 종라 네 맛당이 맛드리라 고 서로 양다가 내
족하의게 주012) 족하의게: 조카에게. 『이륜』류에는 (“미(微), 소(少)”를 뜻하는 ‘앛-’의 관형 구성이 굳어진) ‘아아’로 나타난다. “질(姪)”을 뜻하는 어형으로 ‘족하’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계축일기』(1600?)를 위시하여 17세기에 들어서의 일인데, 『청구영언』(1728)에는 이를 ‘족하(族下)’로 적은 예가 보인다. ¶후궁의 족하 의인황후 빙뎐 적의 려다가 쳡 사마 가려 거〈계축일기 상:3ㄴ〉. 형뎨 랑며 족하 어엿 너기며[友兄弟撫諸姪]〈동신속(1617) 3:58ㄴ〉.
맛디니 후에 그 집을 졍문니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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