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오륜행실도 4집

  • 역주 오륜행실도 제4권
  • 오륜행실 형제도
  • 오륜행실형제도(五倫行實兄弟圖)
  • 허무자예(許武自穢)

허무자예(許武自穢)


오륜행실도 4:6ㄱ

許武自穢【漢】

오륜행실도 4:6ㄴ

許武 陽羡人 주001)
양연인(陽羨人):
『오륜』의 ‘양이인(陽羡人)’은 『이륜』에는 없음.
建武中 會稽太守 第五倫 擧爲孝廉 武以二弟晏普 未顯欲令成名 乃謂之曰 禮有分異之義 家有別居之道 於是共割財産 以爲三分 武自取肥田廣宅 奴婢强者 二弟所得 並皆劣少 鄕人皆鄙武貪而 稱弟能讓 由是晏等 俱得選擧 武乃會宗族泣曰 吾爲兄不肖 盜竊聲位 二弟年長 未霑榮祿 所以求得分財 自取大譏 今理産 所增三倍於前 悉推與二弟 一無所畱 於是郡中 翕然稱之
廉孝從前擧豈誣 臨財甘作一貪夫 心期二弟名成後 三倍貲財盡付渠
弟顯自從兄穢日 兄

오륜행실도 4:7ㄱ

貪還釋弟榮時 尋常友愛還誇俗 隱德無嫌世所譏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허무 한나라 양연 사이니 회계 태슈 뎨오륜이 천거여 벼이니 뮈 그 두 아이 현달티 못므로 일홈을 내려 여 이에 주002)
이에:
이에. 『오륜』에는 표기상 ‘-ㅣ’를 말음으로 하는 체언이 처격 ‘-예’와 통합하는 경우도 있지만(불의예〈2:22ㄴ〉, 녯예〈3:23ㄴ〉, 의예〈3:72ㄴ〉) 지시대명사 ‘이’만큼은 처격 ‘-에’와 통합하여 반드시 ‘이에’의 형태로만 등장한다. 『오륜』에는 ‘-ㅣ’ 말음 체언이 처격 ‘-에’와 통합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므로( 달 에〈1:19ㄴ〉, 술위에〈1:5ㄱ〉, 셰시에〈1:9ㄱ〉, 자리에〈1:15ㄱ〉), ‘이에’를 이들 예와 동일시하여 종래의 처격형 ‘-예~-에~-애’ 등이 ‘-에’로 통일되는 경향의 일환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오륜』 이전에 처격 ‘-예’, ‘-에’의 분화가 뚜렷한 시기에도 지시대명사 ‘이’의 경우는 ‘이예’보다 ‘이에’의 표기가 압도적이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가 ‘ㆁ’이 사용된 중세 문헌에서 ‘이’로 소급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는 중세어 이래의 표기 전통을 따른 보수적 표기로 보아야 온당할 것이다. 곧 중세어에서는 /ㆁ/의 존재 때문에 처격은 ‘-예’가 아닌 ‘-에’가 통합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러나 /ㆁ/의 음가 소실 뒤에도 이전 시기 ‘이’의 표기 방식이 준수된 결과 ‘이에’의 표기가 나타났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이예’와 ‘이에’가 공존하는 문헌에서 표기상 개신형은 ‘이예’가 되고, 현대어의 ‘이에’는 처격의 이형태가 ‘-에’로 통일되면서 ‘이예’가 소멸한 결과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려 닐오 분여 각각 살기 응당 도리라 고 가산을 삼분에 주003)
삼분에:
삼분(三分)에. 세 몫에. 세 몫으로. 『이륜(초)』에는 ‘세 기제’, 『이륜(중・영)』에는 ‘세 기세’로 등장하여 (『오륜』과 달리) 원문의 ‘분(分)’이 ‘깆’ 또는 ‘깃(〈깆)’의 고유어로 번역된 양상을 보여 준다. 이 처격 조사의 기능은 현대어의 ‘일에 하나’와 같다.
화 무 됴흔 밧과 너른 집과 건장 죵을 여 가지고 두 아 못 주004)
못:
좋지 않은. 원문의 ‘열소(劣少)’를 옮긴 것으로 『이륜』류에서는 ‘사오나온’으로 번역되었다(이곳의 ‘사오나온’은 ‘됴’과 대조되는 “열(劣)”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오륜』의 다른 곳에는 원문의 ‘비(非)’에 대응되는 ‘못’의 예도 보인다. ¶왕이 못 놈의게 졍 맛져 나라히 망하게 되어시매[見上委政非人 將危社稷]〈오륜 2:77ㄴ〉. 의미상 『오륜』의 ‘못’은 이미 ‘몯#[用]-+-ㄹ(관형사형)’의 통사 구성에서 어휘화하였다고 판단되는데, 이것은 현대어에는 “악독하고 고약한”(『표준』)을 뜻하는 관형사 ‘몹쓸’로 이어졌다. 그런데 ‘몯’로부터 ‘몹쓸’에 이르기까지 어형 변화는 다음 두 가지의 변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 ‘몯-〉몹-〉몹쓰-’의 변화. ‘몯-〉몹-’의 변화는 변자음화로 ‘몹-〉몹쓰-’의 변화는 어두 자음군의 경음화와 함께 중복 자음 생략이 일어난 변화로 설명된다. 둘째, ‘몯-〉모-〉몹스/몹쓰-’의 변화. ‘몯-〉모-’의 변화는 ‘몯’의 어간 말 /ㄷ/ 탈락으로, ‘모-〉몹스/몹쓰-’의 변화는 어두 자음군 /ㅄ/에서 /ㅂ/이 종성화된 것으로 설명된다. 문헌상 증거로는 후자가 보다 설득력 있는 변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중세어의 ‘모’(현대어 ‘몹시’의 소급형)에서 보듯이 ‘몯’의 말음 /ㄷ/이 실제로 탈락한 예가 있기 때문이다. ¶社稷을 마 모 시릴[將危社稷]〈삼강(초) 충:32ㄱ〉. 중세어에서 ‘몯라-’와 ‘모라-’가 공존한 점도 ‘몯’의 /ㄷ/ 탈락을 방증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도 만히 달라 니 내 지블 라도 몯라로다[賣吾廬而不可售]〈이륜(초) 43ㄴ〉. 잠도 모라며 나모미 업스리라[初無欠剩]〈금강경삼가해(1482) 2:34ㄴ〉.
거 주니 향듕 사이 다 무의 탐믈 더러이 너기고 두 아의 주005)
아의:
아우의. 원문의 ‘제(弟)’를 옮긴 것으로, 다른 곳에 보이는 ‘아려’, ‘아’과 같은 어형과 비교할 때 ‘아[弟]+-의(속격)’로 분석될 어형이다. 이곳의 ‘-의’는 (단순한 속격이 아니라) 선행 체언이 주어임을 표시하는 이른바 주어적 속격으로 쓰인 것이다. ‘아’의 속격형이 (‘*아의’가 아니라) ‘아의’로 나타난 것은 ‘아〉아’의 변화가 일어난 뒤에도 ‘아’가 이전 시기 ‘아’의 곡용 방식을 유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중세어에서 기저형(원형) ‘아’는 모음(매개 모음 포함)으로 시작하는 조사(공동격 제외)와 결합할 때, 곧 곡용할 때 ‘아~ㅇ’의 특수 어간 교체를 보여 ‘이’(주격형), ‘’(주제형), ‘’(대격형), ‘’(속격형) 등으로 나타났었다. 『오륜』에는 ‘아~ㅇ’의 특수 어간 교체가 ‘아~아ㅇ’의 교체로 이어지고 있지만 ‘아’, ‘아’과 같이 새로운 곡용 방식에 따른 어형이 등장하기도 한다.
능히 양믈 일르니 일로 말암아 두 아이

오륜행실도 4:7ㄴ

다 벼을 어드니 뮈 종족을 모호고 주006)
모호고:
모으고. 모아 놓고. 원문의 ‘회(會)’를 옮긴 것으로 『이륜』류에서는 ‘모도고’로 번역되었다. 중세어에서는 자동사 어간 ‘몯[集, 會]-’에 짝하는 타동사 어간으로 ‘모도-’(간혹 ‘모토-’)와 ‘뫼호-’가 거의 의미차 없이 공존하였다. 이곳의 ‘모호-’는 바로 ‘뫼호-’의 후대형에 해당하는데, 순음성 모음의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모호-〉모흐-’의 변화를 거쳐(¶두 션 잇셔 그 글을 모흐더니〈채상감응편(1882) 2:24ㄱ〉. 궤의 구을 모흐시 며〈경석자지문(1882) 3ㄱ〉) 현대어에서는 ‘모으-’로 이어졌다.
울며 오 내 형이 되여 블쵸디라 주007)
블쵸디라:
불초(不肖)한지라. 불초함에도. 못났음에도. ‘블쵸-’에 후행절(혹은 후행문)과 관련하여 그 이유나 원인의 제시에 쓰이는 연결형 ‘-ㄴ디라’가 결합한 어형이다(‘-ㄴ디라’에 대해서는 ‘죽은디라’ 참조). 『오륜』의 이 부분이 『이륜』류에서는 (“열(劣)”을 뜻하는 ‘사오납-’을 이용하여) ‘사오나오’로 번역되었는데 『이륜』류의 번역을 감안하여 이곳의 현대어역에서는 “불초함에도, 못났음에도” 정도로 옮겨 둔다.
일홈과 벼을 외람히 어더시되 두 아 자라매 주008)
자라매:
성인(成人)이 되매. 성인(成人)이 되도록. 원문의 ‘연장(年長)’을 옮긴 것으로 『이륜』류에서는 ‘나히 라도록’으로 번역되었다. 『이륜』류의 번역을 감안할 때 이곳의 ‘자라-’는 ‘나히 라-’ 구성에서 ‘나히’(‘낳[年-]’의 주격형, 곧 “나이가”의 뜻)가 생략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라-’가 ‘자라-’로 나타난 것은 『오륜』에서 근대국어에서 소실된 ‘ㆍ’와 ‘ㅏ’의 혼동이 어두 음절에까지 미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중세어 이래 ‘라-’는 “자라다[成長]”와 함께 “(기대하는 정도에_ 미치다, 이르다”를 의미하는 자동사로도 쓰였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용법의 어간 ‘라-’는 현대어에서는 ‘모자라-’와 의미상 대립되어 쓰이는 ‘자라-’에 상통하는 것이나 현대어에서 ‘나이가 자라-’와 같은 구성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홀로 영화 보디 못니 내 그러므로 분믈 구여 스로 디을 주009)
디람을:
꾸지람을. 원문의 ‘기(譏)’를 옮긴 것으로, 이곳의 ‘지’은 중세어의 ‘구지람’에 소급할 어형이다. 중세어의 ‘구지람’은 ‘구지럼’〈석보상절 19:30ㄱ〉으로도 나타나다가, 이후 어두 자음의 경음화에 따라 ‘지람/지럼’을 거쳐 현대어의 ‘꾸지람’으로 이어졌다. ‘지람’이 이곳에서 ‘디’으로 나타난 것은 구개음화와 ‘ㆍ〉ㅏ’의 변화를 의식한 나머지 부정 회귀가 이루어진 결과이다. 중세어의 ‘구지람’은 의미상 (“매(罵)”를 뜻하는) 동사 어간 ‘구짇-’의 파생 명사로 추정되지만 형태상으로는 파생 관계를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구짇-’에서 ‘구지람’이 파생되어 나왔다면 ‘구지람’은 어간 ‘구짇-’에 파생 접미사 ‘-암’이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의 접미사 ‘-암’은 평성의 성조를 갖는 특이한 문법 형태소로서 현대어 ‘달음’의 소급형인 ‘람’(←[走]-+-암)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간 말음 /ㄷ/의 유음화와 관련된 것이다. ‘-’의 어간 말음 /ㄷ/은 ‘라, 락, ’ 등에서와 같이 모음(매개모음 포함) 어미와 통합할 때 유음화하므로 ‘-+-암’이 ‘람’으로 실현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구짇-’의 경우에는 (규칙적인 활용을 하고) /ㄷ/이 유음화하는 일이 없어 ‘구짇-+-암’이 ‘구지람’으로 실현되는 일을 설명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무렛 衆을 구지드며〈능엄경언해 9:10ㄴ〉. 惡友를 구지시니〈월인석보 22:11ㄱ〉. 더욱 특이한 것은 중세어의 ‘구짇-’의 쌍형 어간으로 ‘구짖-’도 존재했지만 이와 관련된 명사로는 ‘구지람/구지럼’만이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구짇-’, ‘구짖-’과 형태상 관련이 있는 ‘구지돔’이나 ‘구지좀’은 명사형(“꾸짖는 것”)으로서 단순히 활용에 참여한 형태일 뿐이다. ¶ 거츨언마 慈悲心으로 구지돔 모시니〈월인천강지곡(1447) 상:기77〉; 舍利佛이 林中에 마니 안잿다가 도혀 維摩詰의 구지좀 니봄 니〈육조법보단경언해(1496) 중:5ㄴ〉. ‘구짇-’과 ‘구짖-’의 쌍형 어간은 나중에 ‘구짖-’ 쪽으로 통일되지만 이전의 ‘구지람’은 여전히 이어져 현대어에서 동사 ‘꾸짖-’과 이와 관련된 명사 ‘꾸지람’ 사이에는 형태상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엿더니 이제 내 가산이 느러 젼의셔 삼 나 더엿노라 주010)
더엿노라:
더하게 되었다. 이곳의 ‘더-’는 비교 구문에 쓰인 것으로 현대어에서 ‘추위는 작년보다 올해가 두 배나 더하다.’ 할 때의 ‘더하-’에 해당한다. 중세어에서는 이 같은 비교 구문에 ‘더으-’(간혹 ‘더-’)가 주로 쓰이고 ‘더-’는 “加, 添(더 보태다)”을 뜻하는 타동사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비치 서리와 누니라와 더으니〈두시언해(1481) 16:60ㄱ〉. 쟝이 되여 마시 콩쟝두곤 더으니라〈구황촬요(1554) 11ㄱ〉.  文章이 나가 깃노니 내 여희 興이 여 나미 더다〈두시언해 8:46ㄱ〉, 『이륜(초)』에서도 이 부분이 ‘더으니라’로 번역된 것을 볼 수 있는데(¶셰간 불운 거시 녜루셔 세 리나 더으니라〈4ㄱㄴ〉), 타동사로만 쓰이던 ‘더-’가 이곳과 같이 자동사로도 쓰이고 나아가 ‘더-’에 짝하여 ‘덜-’가 등장하는 것은 근대 문헌에 와서의 일이다. ¶녜 덜던 거시 이제 더며〈경민음(1762) 2ㄴ〉; 仵作 某人의게 더며 덜야 실답디 아니며 輕며 重홈을 옴기며 밧고미 다 업노라  甘結文狀을 밧고[取仵作某人의 並無增減不實移易輕重이라  甘結文狀고]〈중수무원록언해 1:70ㄴ〉.
고 다 그 아 화 주고 나토 가지디 아니니 일읍 사람이 비로소 그 어딜믈 일더라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4. 허무자예(許武自穢)【한나라】 - 허무가 스스로 꾸지람 받기를 자청하다
허무(許武)는 한나라 양연(陽羡) 사람이다. 회계(會稽) 태수(太守) 제오륜(第五倫)이 〈허무를〉 천거하여 벼슬을 시켰다. 허무가 그 〈자기의〉 두 아우가 현달(顯達)치 못하므로 〈두 아우의〉 이름을 나게 하고자 하였다. 이에 아우에게 말하기를, “분재(分財)하여 각각 사는 것이 응당한 도리이다.”라고 하고, 가산(家産)을 세 몫으로 나누어 허무 자신은 좋은 밭과 넓은 집과 건장한 종을 가려 가지고, 두 아우는 몹쓸 것을 주었다. 향중
(鄕中; 동네)
사람이 모두 허무의 탐욕함을 천하게 여기고, 두 아우가 〈형에게〉 능히 양보함을 칭송하니, 이로 말미암아 두 아우가 모두 벼슬을 얻었다. 〈그 후에〉 허무가 친척을 모아 놓고 울며 말하기를, “내가 형이 되어 불초한지라 〈불초함에도, 못났음에도〉 이름과 벼슬을 외람되게 얻었으되, 두 아우는 성인이 되도록 유독 영화를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분재할 것을 주장하여 스스로 꾸지람받기를 취하였다(자청하였다). 이제는 내 가산이 늘어 전보다 세 배나 더하게 되었다.” 하고 〈가산을〉 모두 그 아우에게 나누어 주고 〈자기는〉 하나도 가지지 아니하였다. 〈이에〉 고을 사람이 비로소 그 어짊을 칭송하였다.
효렴(科擧)을 종전에 어찌 거짓으로 천거해
재산을 나눔에 하나 탐욕스런 사람으로 만들고.
마음속으로 두 아우의 성공한 뒤를 기약하고는
세 배로 재산을 불려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어라.
아우 이름 빛낸 것 형의 욕먹는 날로부터인데
형 탐욕 풀어 돌려주니 아우 영화 누릴 때여라.
심상(尋常)한 우애마저 과장하여 자랑하는 세상
숨은덕일랑 맑고 맑아 세상에 꾸짖는 바 없어라.
Ⓒ 역자 | 이광호 / 2016년 11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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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양연인(陽羨人):『오륜』의 ‘양이인(陽羡人)’은 『이륜』에는 없음.
주002)
이에:이에. 『오륜』에는 표기상 ‘-ㅣ’를 말음으로 하는 체언이 처격 ‘-예’와 통합하는 경우도 있지만(불의예〈2:22ㄴ〉, 녯예〈3:23ㄴ〉, 의예〈3:72ㄴ〉) 지시대명사 ‘이’만큼은 처격 ‘-에’와 통합하여 반드시 ‘이에’의 형태로만 등장한다. 『오륜』에는 ‘-ㅣ’ 말음 체언이 처격 ‘-에’와 통합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므로( 달 에〈1:19ㄴ〉, 술위에〈1:5ㄱ〉, 셰시에〈1:9ㄱ〉, 자리에〈1:15ㄱ〉), ‘이에’를 이들 예와 동일시하여 종래의 처격형 ‘-예~-에~-애’ 등이 ‘-에’로 통일되는 경향의 일환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오륜』 이전에 처격 ‘-예’, ‘-에’의 분화가 뚜렷한 시기에도 지시대명사 ‘이’의 경우는 ‘이예’보다 ‘이에’의 표기가 압도적이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에’가 ‘ㆁ’이 사용된 중세 문헌에서 ‘이’로 소급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에’는 중세어 이래의 표기 전통을 따른 보수적 표기로 보아야 온당할 것이다. 곧 중세어에서는 /ㆁ/의 존재 때문에 처격은 ‘-예’가 아닌 ‘-에’가 통합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그러나 /ㆁ/의 음가 소실 뒤에도 이전 시기 ‘이’의 표기 방식이 준수된 결과 ‘이에’의 표기가 나타났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이예’와 ‘이에’가 공존하는 문헌에서 표기상 개신형은 ‘이예’가 되고, 현대어의 ‘이에’는 처격의 이형태가 ‘-에’로 통일되면서 ‘이예’가 소멸한 결과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주003)
삼분에:삼분(三分)에. 세 몫에. 세 몫으로. 『이륜(초)』에는 ‘세 기제’, 『이륜(중・영)』에는 ‘세 기세’로 등장하여 (『오륜』과 달리) 원문의 ‘분(分)’이 ‘깆’ 또는 ‘깃(〈깆)’의 고유어로 번역된 양상을 보여 준다. 이 처격 조사의 기능은 현대어의 ‘일에 하나’와 같다.
주004)
못:좋지 않은. 원문의 ‘열소(劣少)’를 옮긴 것으로 『이륜』류에서는 ‘사오나온’으로 번역되었다(이곳의 ‘사오나온’은 ‘됴’과 대조되는 “열(劣)”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오륜』의 다른 곳에는 원문의 ‘비(非)’에 대응되는 ‘못’의 예도 보인다. ¶왕이 못 놈의게 졍 맛져 나라히 망하게 되어시매[見上委政非人 將危社稷]〈오륜 2:77ㄴ〉. 의미상 『오륜』의 ‘못’은 이미 ‘몯#[用]-+-ㄹ(관형사형)’의 통사 구성에서 어휘화하였다고 판단되는데, 이것은 현대어에는 “악독하고 고약한”(『표준』)을 뜻하는 관형사 ‘몹쓸’로 이어졌다. 그런데 ‘몯’로부터 ‘몹쓸’에 이르기까지 어형 변화는 다음 두 가지의 변화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 ‘몯-〉몹-〉몹쓰-’의 변화. ‘몯-〉몹-’의 변화는 변자음화로 ‘몹-〉몹쓰-’의 변화는 어두 자음군의 경음화와 함께 중복 자음 생략이 일어난 변화로 설명된다. 둘째, ‘몯-〉모-〉몹스/몹쓰-’의 변화. ‘몯-〉모-’의 변화는 ‘몯’의 어간 말 /ㄷ/ 탈락으로, ‘모-〉몹스/몹쓰-’의 변화는 어두 자음군 /ㅄ/에서 /ㅂ/이 종성화된 것으로 설명된다. 문헌상 증거로는 후자가 보다 설득력 있는 변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중세어의 ‘모’(현대어 ‘몹시’의 소급형)에서 보듯이 ‘몯’의 말음 /ㄷ/이 실제로 탈락한 예가 있기 때문이다. ¶社稷을 마 모 시릴[將危社稷]〈삼강(초) 충:32ㄱ〉. 중세어에서 ‘몯라-’와 ‘모라-’가 공존한 점도 ‘몯’의 /ㄷ/ 탈락을 방증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도 만히 달라 니 내 지블 라도 몯라로다[賣吾廬而不可售]〈이륜(초) 43ㄴ〉. 잠도 모라며 나모미 업스리라[初無欠剩]〈금강경삼가해(1482) 2:34ㄴ〉.
주005)
아의:아우의. 원문의 ‘제(弟)’를 옮긴 것으로, 다른 곳에 보이는 ‘아려’, ‘아’과 같은 어형과 비교할 때 ‘아[弟]+-의(속격)’로 분석될 어형이다. 이곳의 ‘-의’는 (단순한 속격이 아니라) 선행 체언이 주어임을 표시하는 이른바 주어적 속격으로 쓰인 것이다. ‘아’의 속격형이 (‘*아의’가 아니라) ‘아의’로 나타난 것은 ‘아〉아’의 변화가 일어난 뒤에도 ‘아’가 이전 시기 ‘아’의 곡용 방식을 유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중세어에서 기저형(원형) ‘아’는 모음(매개 모음 포함)으로 시작하는 조사(공동격 제외)와 결합할 때, 곧 곡용할 때 ‘아~ㅇ’의 특수 어간 교체를 보여 ‘이’(주격형), ‘’(주제형), ‘’(대격형), ‘’(속격형) 등으로 나타났었다. 『오륜』에는 ‘아~ㅇ’의 특수 어간 교체가 ‘아~아ㅇ’의 교체로 이어지고 있지만 ‘아’, ‘아’과 같이 새로운 곡용 방식에 따른 어형이 등장하기도 한다.
주006)
모호고:모으고. 모아 놓고. 원문의 ‘회(會)’를 옮긴 것으로 『이륜』류에서는 ‘모도고’로 번역되었다. 중세어에서는 자동사 어간 ‘몯[集, 會]-’에 짝하는 타동사 어간으로 ‘모도-’(간혹 ‘모토-’)와 ‘뫼호-’가 거의 의미차 없이 공존하였다. 이곳의 ‘모호-’는 바로 ‘뫼호-’의 후대형에 해당하는데, 순음성 모음의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모호-〉모흐-’의 변화를 거쳐(¶두 션 잇셔 그 글을 모흐더니〈채상감응편(1882) 2:24ㄱ〉. 궤의 구을 모흐시 며〈경석자지문(1882) 3ㄱ〉) 현대어에서는 ‘모으-’로 이어졌다.
주007)
블쵸디라:불초(不肖)한지라. 불초함에도. 못났음에도. ‘블쵸-’에 후행절(혹은 후행문)과 관련하여 그 이유나 원인의 제시에 쓰이는 연결형 ‘-ㄴ디라’가 결합한 어형이다(‘-ㄴ디라’에 대해서는 ‘죽은디라’ 참조). 『오륜』의 이 부분이 『이륜』류에서는 (“열(劣)”을 뜻하는 ‘사오납-’을 이용하여) ‘사오나오’로 번역되었는데 『이륜』류의 번역을 감안하여 이곳의 현대어역에서는 “불초함에도, 못났음에도” 정도로 옮겨 둔다.
주008)
자라매:성인(成人)이 되매. 성인(成人)이 되도록. 원문의 ‘연장(年長)’을 옮긴 것으로 『이륜』류에서는 ‘나히 라도록’으로 번역되었다. 『이륜』류의 번역을 감안할 때 이곳의 ‘자라-’는 ‘나히 라-’ 구성에서 ‘나히’(‘낳[年-]’의 주격형, 곧 “나이가”의 뜻)가 생략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라-’가 ‘자라-’로 나타난 것은 『오륜』에서 근대국어에서 소실된 ‘ㆍ’와 ‘ㅏ’의 혼동이 어두 음절에까지 미친 현실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중세어 이래 ‘라-’는 “자라다[成長]”와 함께 “(기대하는 정도에_ 미치다, 이르다”를 의미하는 자동사로도 쓰였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같은 용법의 어간 ‘라-’는 현대어에서는 ‘모자라-’와 의미상 대립되어 쓰이는 ‘자라-’에 상통하는 것이나 현대어에서 ‘나이가 자라-’와 같은 구성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
주009)
디람을:꾸지람을. 원문의 ‘기(譏)’를 옮긴 것으로, 이곳의 ‘지’은 중세어의 ‘구지람’에 소급할 어형이다. 중세어의 ‘구지람’은 ‘구지럼’〈석보상절 19:30ㄱ〉으로도 나타나다가, 이후 어두 자음의 경음화에 따라 ‘지람/지럼’을 거쳐 현대어의 ‘꾸지람’으로 이어졌다. ‘지람’이 이곳에서 ‘디’으로 나타난 것은 구개음화와 ‘ㆍ〉ㅏ’의 변화를 의식한 나머지 부정 회귀가 이루어진 결과이다. 중세어의 ‘구지람’은 의미상 (“매(罵)”를 뜻하는) 동사 어간 ‘구짇-’의 파생 명사로 추정되지만 형태상으로는 파생 관계를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구짇-’에서 ‘구지람’이 파생되어 나왔다면 ‘구지람’은 어간 ‘구짇-’에 파생 접미사 ‘-암’이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의 접미사 ‘-암’은 평성의 성조를 갖는 특이한 문법 형태소로서 현대어 ‘달음’의 소급형인 ‘람’(←[走]-+-암)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간 말음 /ㄷ/의 유음화와 관련된 것이다. ‘-’의 어간 말음 /ㄷ/은 ‘라, 락, ’ 등에서와 같이 모음(매개모음 포함) 어미와 통합할 때 유음화하므로 ‘-+-암’이 ‘람’으로 실현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구짇-’의 경우에는 (규칙적인 활용을 하고) /ㄷ/이 유음화하는 일이 없어 ‘구짇-+-암’이 ‘구지람’으로 실현되는 일을 설명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무렛 衆을 구지드며〈능엄경언해 9:10ㄴ〉. 惡友를 구지시니〈월인석보 22:11ㄱ〉. 더욱 특이한 것은 중세어의 ‘구짇-’의 쌍형 어간으로 ‘구짖-’도 존재했지만 이와 관련된 명사로는 ‘구지람/구지럼’만이 보일 뿐이라는 점이다. ‘구짇-’, ‘구짖-’과 형태상 관련이 있는 ‘구지돔’이나 ‘구지좀’은 명사형(“꾸짖는 것”)으로서 단순히 활용에 참여한 형태일 뿐이다. ¶ 거츨언마 慈悲心으로 구지돔 모시니〈월인천강지곡(1447) 상:기77〉; 舍利佛이 林中에 마니 안잿다가 도혀 維摩詰의 구지좀 니봄 니〈육조법보단경언해(1496) 중:5ㄴ〉. ‘구짇-’과 ‘구짖-’의 쌍형 어간은 나중에 ‘구짖-’ 쪽으로 통일되지만 이전의 ‘구지람’은 여전히 이어져 현대어에서 동사 ‘꾸짖-’과 이와 관련된 명사 ‘꾸지람’ 사이에는 형태상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주010)
더엿노라:더하게 되었다. 이곳의 ‘더-’는 비교 구문에 쓰인 것으로 현대어에서 ‘추위는 작년보다 올해가 두 배나 더하다.’ 할 때의 ‘더하-’에 해당한다. 중세어에서는 이 같은 비교 구문에 ‘더으-’(간혹 ‘더-’)가 주로 쓰이고 ‘더-’는 “加, 添(더 보태다)”을 뜻하는 타동사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비치 서리와 누니라와 더으니〈두시언해(1481) 16:60ㄱ〉. 쟝이 되여 마시 콩쟝두곤 더으니라〈구황촬요(1554) 11ㄱ〉.  文章이 나가 깃노니 내 여희 興이 여 나미 더다〈두시언해 8:46ㄱ〉, 『이륜(초)』에서도 이 부분이 ‘더으니라’로 번역된 것을 볼 수 있는데(¶셰간 불운 거시 녜루셔 세 리나 더으니라〈4ㄱㄴ〉), 타동사로만 쓰이던 ‘더-’가 이곳과 같이 자동사로도 쓰이고 나아가 ‘더-’에 짝하여 ‘덜-’가 등장하는 것은 근대 문헌에 와서의 일이다. ¶녜 덜던 거시 이제 더며〈경민음(1762) 2ㄴ〉; 仵作 某人의게 더며 덜야 실답디 아니며 輕며 重홈을 옴기며 밧고미 다 업노라  甘結文狀을 밧고[取仵作某人의 並無增減不實移易輕重이라  甘結文狀고]〈중수무원록언해 1:70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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