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륜행실도 4:10ㄱ
趙孝
沛國人 주001) 패국인(沛國人): 『오륜』의 ‘패국인(沛國人)’은 『이륜』에는 없음.
遭天下亂 人相食 孝弟禮 爲賊所得 將烹之 孝聞卽自縛詣賊 曰禮
久餓 주002) 구아(久餓): 내 아우는 오래 굶주려. 『오륜』의 ‘아(餓)’는 『이륜』의 ‘와(臥)’임.
羸瘦 주003) 이수(羸瘦): 여위다. 『오륜』의 ‘수(瘦)’는 『이륜』의 ‘질(疾)’임.
不如孝肥飽 賊大驚 並釋之且謂 曰可歸 更持米糒來 孝求
不能得 주004) 불능득(不能得): 얻지 못하다. 『오륜』의 ‘불능득(不能得)’은 『이륜』의 ‘부득(不得)’임.
復往報賊願就烹 衆異之 遂不害
明帝 주005) 명제(明帝): 후한(後漢) 제2대 임금. 효명제(孝明帝).
聞基行 召拜諫議大夫
遭時不幸暗傷神 人化爲豺又食人 自縛肥身甘代弟 野心猶感有天倫
野淸何處更求糒 垂橐歸來願就烹 異行能回羣盜腹 高名宜徹九天明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됴효 한나라 패국 사이니 텬해 크게 어즈러
오륜행실도 4:10ㄴ
워 사이
서로 주006) 서로: 서로. 『이륜』류에는 ‘서르’로 등장하여 ‘서르〉서로’의 변화를 보여 준다. 중세어의 ‘서르’는 근대 문헌에서 ‘서’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으나 『오륜』에서는 ‘서로’의 꼴로만 일관되게 나타난다.
잡아먹을 효의 아이 도적의게 잡히여 마 먹으려 거 스로 결박여 도적을 보고 오 내 아 오 주려
날만티 주007) 날만티: 나만치. 나만큼. ‘나+-만치’로 분석될 어형이나 ‘나’가 ‘날’로, “정도”를 표시하는 ‘-만치’가 ‘-만티’로 나타났다. 『이륜』류에서는 ‘날만’으로 등장하여 “정도”를 표시하는 ‘-만’ 앞에 역시 ‘날’이 쓰였다. 중세어 이래 ‘나’는 일부 곡용형에서 ‘날’로 교체되어 나타나는 현상이 존재하였다. ‘날로’(구격형), ‘날란’(주제형), ‘날려’(여격형) 등에서는 ‘나~날’의 교체가 필수적이었고 ‘날와’(공동격형) 같은 곡용형에서는 ‘나~날’의 교체가 수의적이어서 ‘나와’가 공존하였다. 이곳의 ‘날’은 수의적 성격을 띤 ‘나~날’ 교체에 가까운 것인데, 『오륜』과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헌에는 ‘날만’을 대신하여 ‘나만’이 나타난 예가 보인다. ¶나도 져만 져도 나만 누구여든 제 죵일가〈전설인과곡(1796) 2ㄴ〉. 한편 ‘-만치’가 ‘-만티’로 나타난 것은 ‘-만치’를 구개음화된 어형으로 인식한 나머지 부정 회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오륜』과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헌에는 ‘-만치’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치’는 중세어에서 의존 명사로 쓰였던 ‘만’과 ‘치’의 통합체에 기원을 둔 것으로, 중세어에서 “정도”를 표시하는 ‘만’ 뒤에 “것”의 의미를 지닌 의존 명사 ‘치’가 통합하여 ‘만#치’의 구성을 이루고(‘ 곳부리와 설 가지 半 만 치 우믈 이긔디 몯얏다’〈두시언해 8:42ㄱ〉) 이것이 문법화한 결과 현대어에서 “정도”를 표시하는 보조사 ‘-만치’로 이어진 것이다.
디디 주008) 디디: 살지지. 살이 많지. 원문의 ‘비포(肥飽)’를 옮긴 것으로, 『이륜』류에는 ‘지디’로 등장한다. 어간 ‘지-’가 이곳에서 ‘디-’로 나타난 것은 구개음화를 의식한 부정 회귀의 결과이다. 중세어의 ‘지-’는 ‘히#지-’ 구성(‘히 지도 여위도 아니니라’〈월인석보(1459) 1:26ㄴ〉)이 존재하는 것으로 미루어 “기(肌), 부(膚)”를 뜻하는 명사 ‘ㅎ’에 (‘여위-’와 반의 관계에 있는) ‘지-’가 결합한 복합어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이미 중세어부터 ‘지-’, ‘찌-’ 등의 어형과 공존하였다. ¶내 남지 여위오 젹거니와 지고 거믄 겨지비 마시 됴타 하니〈삼강행실도 열:28ㄱ〉. 도티며 羊이며 거유 올히며 가히 만히 사 오라 야 됴히 쳐 찌거 야 두고〈월인석보 23:73ㄱ〉. 이러한 공존은 근대어에도 이어져 『오륜』과 비슷한 시기의 문헌에는 ‘지-’와 함께 어중 경음화가 일어난 ‘-’, ‘-’의 어형이 공존한다. ¶ 斤 고기 사되 장 거슬 말고〈몽어노걸대(1741) 2:2ㄱ〉. 斤 고기 사므로 장 거슬 말고〈청어노걸대(1765) 2:4ㄴ〉. 근 고기 사되 장 진 이란 말라〈중간노걸대언해(1795) 상:19ㄱ〉. 『오륜』에는 후자의 경음화된 어형에 대하여 부정 회귀가 적용된 ‘-’의 예가 보이기도 한다. 중세어 이래의 ‘지-’는 현대어에 ‘살지-’로, 어중 경음화를 겪은 어형은 ‘살찌-’로 이어졌는데, 현대어에서 ‘살지-’는 “살이 많고 튼실하다”(『표준』)를 뜻하는 형용사로, ‘살찌-’는 “몸에 살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다”(『표준』)를 뜻하는 동사로 쓰여 종래와 달리 어휘가 분화된 양상을 보인다.
못니 쳥컨대 날을 므라 대 도적이 크게 놀나 형뎨 다 노흐며 닐오 네 도라 가
미시 주009) 미시: 미숫가루를. 원문의 ‘미비(米糒)’에서 ‘비(糒)’를 옮긴 것이다. 『훈몽자회』(1527)에서 ‘糗 미시 구 乾飯屑’〈중:10ㄴ〉이라 하여 ‘미시’를 “건반설(乾飯屑: 말린 밥의 가루)”로 부연 설명한 것을 볼 때, 이곳의 ‘미시’는 현대어의 ‘미숫가루’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어에서 ‘미숫가루’는 “찹쌀이나 멥쌀 또는 보리쌀 따위를 찌거나 볶아서 가루로 만든 식품”(『표준』)을 뜻한다.
가지고 오라 거 구호 엇디 못디라 다시 가셔 도적의게 고고
겨디라 주010) 겨디라: 삶키어지기를 바란다. 동사 어간 ‘-’의 피동사 어간 ‘기-’에 “소망”을 나타내는 종결형 ‘-어지라’가 결합한 어형이다. 『이륜』류에는 ‘겨지라’로 등장하여 이곳의 어형이 자음군 단순화와 함께 구개음화의 부정 회귀가 관여한 결과임을 말해 준다. 어간말 자음군 ‘ㄻ’은 ‘ㄹ’로 단순화되기도 하지만(‘일로부터 후에 내 모 뎨히 올겸올겸 면’〈야윤자경서 45ㄱ〉), 대부분 ‘ㅁ’으로 단순화되는데, ‘ㄹ’이 선행하는 다른 자음군과 비교할 때 ‘ㄻ’은 특히 그 단순화 시기가 빨라 『번역노걸대』(1510?)를 위시하여 이미 16세기부터 그 예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짐 다 옴겨 드려오고〈번역노걸대 상:68ㄴ〉.
니 다 긔이히 너겨 노하 보내니 텬 드시고
간의태우 주011) 간의태우: 간의대부(諫議大夫). 이곳의 ‘태우’는 원문의 ‘대부(大夫)’를 옮긴 것이다. ‘대(大)’나 ‘부(夫)’의 당시 한자음이 각각 ‘대’, ‘부’임에도 불구하고 『오륜』에서 ‘대부’는 일관되게 ‘태우’로 표기되었다. ¶大 큰 대〈천자문(송광사판, 1730) 5ㄴ〉. 夫 짓아비 부〈천자문(송광사판, 1730) 11ㄱ〉. 이는 ‘대부’ 자체가 차용어로 들어와 차용 당시의 중국 발음이 반영되거나 계승된 결과로서 이미 중세어부터 ‘태우’의 예가 발견된다. ¶士ㅣ 태우 되옴 양고〈소학언해 4:39ㄴ〉.
벼을 이시다
Ⓒ 편찬 | 이병모·윤시동 외 / 1797년(정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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