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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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에서 회포를 쓰며. 40운[夔府書懷四十韻]


夔府書懷四十韻 주001)
기부서회 사십운(夔府書懷四十韻)
이 시는 대력(大曆) 원년(766) 가을 기주(蘷州, 사천 奉節)에서 지은 시이다. 안녹산의 군대가 처음 계북(薊北)에서 난을 일으킨 때부터 시작하여, 현종이 촉에 피난을 간 것, 숙종이 영무(靈武, 감숙 영무)에서 즉위하였던 사실, 두보가 부주(鄜州, 섬서 부현)를 지날 때 반군이 이미 그 곳까지 참호를 건설하였음을 말하고, 숙종이 장안과 낙양을 수복한 다음 제일 먼저 사당을 수리했으며 임종 전에 곽자의(郭子儀)를 침전 안으로 불러 유언을 남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당서(唐書)』에는 “보응 원년(762) 4월에 황상께서 상태가 좋지 않자 곽자의를 침실로 불러들여 ‘하동의 일은 경에게 맡기노라’라고 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에는 숙종과 대종 때의 병화의 시말, 당시 조정의 폐단, 기주 주민의 궁핍한 삶이 기록되었고 당시의 상황에 대한 두보 자신의 견해가 피력되기도 하였다.

기부서회사십운
(기부에서 회포를 쓰며. 40운)

昔罷河西尉 初興薊北師

주002)
옛날. ‘녜’는 ‘녜로, 녜로브터, 녜록브터, 녜 브터, 녜로셔, 녜롯, 녜록, 녜브터’ 등의 형태로 쓰이며, 형용사 파생접미사 ‘--’이 결합된 ‘녜다’도 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昔曾少壯 血氣衰變)〈석상 3:17ㄱ〉. 녜 서르 디나가던  이제 몯노라(昔者相過今不得)〈두시 25:40ㄴ〉.
河西ㅅ 尉 마로니
주003)
녜 하서(河西)ㅅ 위(尉) 마로니
두보는 44세 때인 755년(천보 14년)에 처음으로 하서 현위(河西懸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우위솔부병조참군(右衛率府兵曹參軍)으로 전임되어 취임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 책의 ‘관직이 정해진 후 재미 삼아[官定後戱贈]’ 참조.
처 주004)
처
처음. ¶始 처미라〈월석 1:석상서2ㄴ〉. 冬至 니른 後에  처 기니(冬至至後日初長)〈두시 10:43ㄴ〉.
薊北 주005)
계북(薊北)
계주(薊州). 즉 현재 톈진시(天津市) 계현(蓟縣)을 중심으로 한 지역. 안녹산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지역이다. 안녹산은 755년(천보 14) 11월에 범양(范陽, 현재 북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하북(河北)의 여러 주를 함락하고 12월에는 낙양을 함락시켰다.
師旅 주006)
사려(師旅)
군대. 여기서는 계주(薊州)의 북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안녹산의 군대.
니러나더라 주007)
니러나더라
일어나더라. 닐-+어#나-+더+라. ‘니러나-’는 ‘닐-’과 ‘나-’가 결합된 복합동사다. ‘-더-’는 증거성 선어말어미이다. ‘-더-’와 결합하는 종결어미 ‘-다’는 ‘-라’로 바뀐다.

【한자음】 석파하서위 초흥계북사
【언해역】 옛날 하서(河西)의 벼슬를 거절하니, 처음 계북(薊北)에 군사가 일어나더라!

不才名位晚 敢恨省郞遲

죄 업서 名位 주008)
명위(名位)
이름과 지위. 관직. 관명(官名)과 관위(官位).
늣거 주009)
늣거
늦게야. 늣-+거+. ‘’는 강세 첨사이다. 두보는 44세이던 755년(천보 14)에야 비로소 하서 현위(河西縣尉)에 제수되었고, 취임하지 않고 있자 우위솔부병조참군(右衛率府兵曹參軍)으로 전임되었다.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凡字ㅣ 必合而成音니)〈훈언 13ㄱ〉. 오 비릇 구루미 업도다(今日始無雲)〈두시 23:7ㄴ〉.
호니 省郞 주010)
성랑(省郞)
벼슬. 성과 낭은 각각 문하성(門下省)의 성(省)과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랑(郞). 즉 벼슬을 뜻함. 두보는 처음 현종 대에 우위솔부병조참군(右衛率府兵曹參軍)으로 벼슬길을 시작하여 숙종 대 봉상(鳳翔)에서 좌습유(左拾遺)가 되어 문하성(門下省)에서 근무하였고, 성도에서 엄무(嚴武)의 추천으로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이 되어 벼슬을 하였다.
더듸호 주011)
더듸호
더디게 함을. 더듸(부사)#+오+ㅁ+. ‘더듸’는 『남명집언해』, 『내훈』, 『백련초해』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부사로 기능했으며, 현대국어의 ‘더디다’의 뜻인 형용사 ‘더듸다’도 있었다. 즉 형용사 ‘더듸다’와 부사 ‘더듸’는 용언어간이 바로 부사가 되는 예의 하나이다. 이러한 예로는 ‘바다~바, 하다~하, 가초다~가초, 마초다~마초’ 등이 있다. 중세국어에서도 현대국어와 마찬가지로 ‘부사+다’ 구성이 쓰였는데, 형용사 ‘더듸다’의 예는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으나, 부사 ‘더듸’와 ‘다’의 결합한 구성인 ‘더디다’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더듸; 兩校尉 큰 病이 잇니 다가 주그면 날로 예 刻혼 애와툐 기리 머거시리니 吉時 미처 홀디라 더듸 머므로미 몯리다(兩校尉 有大病니 如今不諱면 使臣으로 長抱刻骨之恨이니 宜及吉時라 不可稽留ㅣ니다)〈내훈 2:52ㄴ〉. 늘거 가매 보미 더듸 가과뎌 願노라(老去願春遲)〈두시 10:16ㄱ〉. 더듸다; 이런로 더듸며  功이 날와 劫괘 서르 倍리라(故로 遲速之功이 日劫相倍라시니)〈능엄 4:100ㄴ〉. 면  뉘 닐오 더듸다 뇨(豐年孰雲遲)〈두시 5:34ㄴ〉. 더듸다; 몸 받 가다가 니러나 더듸 아니도다(躬耕也未遲)〈두시 6:34ㄴ〉. 고지 衰殘 격지 신고 거로 더듸호라(花殘步屐遲)〈두시 25:22ㄱ〉.
敢히 츠기 주012)
츠기
한스럽게. 언짢게. ‘츠기’는 원문의 ‘한(恨)’에 대응된다. ¶뒤도라 날 라다가 보디 몯면 시름야 츠기 너기리라(不應餘轉 若我女反顧後 望不見我者 令女憂苦)〈석상 11:29ㄴ〉. 구틔여 어려운 길흘 츠기 너기디 아니노라(不敢恨危塗)〈두시 2:23ㄱ-ㄴ〉.
너겨리아 주013)
너겨리아
여기겠는가? 여길 것인가? 너기-+어+리+아. 『두시언해』에서는 ‘부사(어)+너기다’의 형식이 많다. ‘-리아’는 의문어미로, 15세기 문헌 중에서는 『두시언해』에만 출현하며 16세기 문헌 중에서는 『번역소학』과 『이륜행실도』에 출현한다. 15세기의 다른 중세국어 문헌에서는 ‘리’와 ‘아’가 축약된 형태인 ‘-려’로 출현한다. ¶俱夷 너기샤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裘夷心疑其欲去 坐起不解其側)〈석상 3:22ㄱ〉. 當貴호 픐 그텟 이슬와 엇더니오 너기놋다(富貴何如草頭露)〈두시 22:52ㄴ〉. -져 너기다; 苦 보아 녜 아쳐러 여희오져 너기며(見苦야 常懷厭離며)〈영가하:40ㄴ〉. 보미 오나 懷抱 펴 오래 고져 너기간마(春來准擬開懷久)〈두시 10:46ㄴ〉. -려; 老僧이 檀越에 나오 坐具만  求코져 노니 得득려 몯려〈육조상8ㄱ-4〉. -리아; 모미라 혼 거슨 어버게 가지  거시니 잠닌  아니야리아(身也者 親之枝也ㅣ니 敢不敬與아)〈번소 4:1ㄴ〉. 구틔여 죠고맛 목수믜 주구므로 말리아(敢辭微命休)〈두시 17:2ㄱ〉.

【한자음】 부재명위만 감한성랑지
【언해역】 재주가 없어 관직을 늦게야 하니, 벼슬을 더디게 함을 감히 한스럽게 여길 것인가?

扈聖崆峒日 端居灔澦時 주014)
호(扈)
임금(황제)을 따라다니면서 시종하는 것. 호위(扈衛).
大駕 주015)
대가(大駕)
임금의 수레.
미조차 주016)
미조차
따라. 뒤따라. 미+좇+아. ¶阿難이도 果證 得야 미조차 般涅槃애 들 쩌긔(我亦當得果證 次第隨後入般涅槃)〈석상 23:32ㄱ〉. 追 미조 씨니〈월석 1:월석서16ㄴ〉.
侍從시라】

崆峒 주017)
공동(崆峒)
감숙성(甘肅省) 양서(凉西)에 있는 산이름. 두보는 46세 때이던 757년(지덕 2) 4월에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이 머물던 봉상(鳳翔, 섬서성 鳳翔)의 행재소(行在所)에 도착하여, 5월에 좌습유(左拾遺)에 임명되어 숙종을 따라다니면서 모시게 되었다.
애 님금믈 뫼와 니던 주018)
뫼와 니던
뫼시고 다니던. 뫼-++아 -#니-+더+ㄴ. 15세기 국어의 ‘V+어 니-’가 동사에 따라서는 현대국어에서 ‘V+고 다니-’로 해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니-’는 ‘’의 말음 ‘ㄷ’이 뒤따르는 ‘니’의 ‘ㄴ’에 영향을 받아 ‘ㄴ’으로 역행동화된 것이다. ¶뫼-; 種種로 뫼 놀라 시고(種種供奉)〈석상 3:4ㄴ〉. 아마다 부데 먹 무텨 님그믈 뫼노라(朝朝染翰侍君王)〈두시 6:3ㄴ〉. 니-; 多論 마초아 보건댄 三衣 겨펴 호앳다가 緣故ㅣ 잇거든 더 호아 가져 니니라(若準多論 重縫三衣 有緣摘分持行)〈월석 25:24ㄱ〉. 긴 솘 해 도랏 디퍼 니고(杖藜長松陰)〈두시 7:24ㄱ〉.
나리여 주019)
나리여
날이여. 날+이+어. ‘-어’는 감탄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여’는 『두시언해』에서는 문헌의 성격상 자주 쓰인 표현이다. ¶슬프다 너희 먼 와 戍 사이여(嗟爾遠戍人)〈두시 1:22ㄴ〉. 受苦로이 사호다가 모미 주근 馬將軍이여(苦戰身死馬將軍)〈두시 4:32ㄱ〉.
灩澦예 正히 사 로다

【한자음】 호성공동일 단거염여시【호(扈)는 황제의 수레[大駕]를 따라서 시종(侍從)하는 것이다.】
【언해역】 공동(崆峒)으로 임금을 뫼시고 다니던 옛날이여! 염여(灩澦)에 바로 사는 때이도다!

萍流仍汲引 樗散尙恩慈汲引 주020)
급인(汲引)
급수인편(汲水引緶). 즉 물을 긷고 옷단을 끌어당기는 것을 말하는데, 사람을 천거하는 것을 말한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1ㄴ(중간본)

 汲水引緶이니 以喩薦進 주021)
천진(薦進)
추천되어 벼슬을 얻고 정계에 진출함.
니 此 言嚴武ㅣ 引薦야 蒙恩爲工部郞也ㅣ라 주022)
차(此) 언(言) 엄무(嚴武)ㅣ 인천(引薦)야 몽은위공부랑야(蒙恩爲工部郞也)ㅣ라
두보는 44세 때인 755년에 처음으로 벼슬을 얻어 하서(河西) 현위(縣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있다가 우위솔부병조참군(右衛率府兵曹參軍)으로 전임되어 취임하였다. 그러나 안녹산의 난으로 벼슬살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족을 데리고 난을 피해 다니다가 성도(成都)에 와서야 비로소 방관(房琯)의 추천으로 공부랑(工部郞) 벼슬을 얻게 되었다. 여기는 두보가 엄무의 추천으로 공부랑 벼슬을 하게 된 것을 말한 부분이다. 『두시언해』의 갖은 이름인 『두공부시언해』의 ‘공부’는 이때 두보가 얻은 벼슬인 ‘공부랑(工部郞)’을 말한다.
樗散 주023)
저산(樗散)
가죽나무는 재질이 잘 쪼개져서 재목으로 쓰이지 못하는데, ‘저산(樗散)’은 가죽나무가 쪼개짐을 말한다.
 樗木이 披散不材니 ㅣ 自喩다】

말왐 주024)
말왐
마름. ‘말왐’의 앞선 시기의 형태는 ‘말ᄫᅡᆷ’이다. 마름은 연못 등에서 자라는데, 물 속 원줄기의 마디에서 깃 같은 뿌리를 진흙 속에 내리고 줄기는 길게 자라는데 잎자루에 공기 주머니가 있어 물 위에 잎이 뜰 수 있도록 해 준다. 잎몸은 마름모꼴 비슷한 삼각형이며 잔 톱니가 있다. 현대국어에서 쓰이는 ‘마름모’는 ‘마름’의 잎 모양이라는 말이다「두산백과」. ¶ 말와미 머리 셴 한아비 시름케 다(白蘋愁殺白頭翁)〈두시 11:15ㄱ〉. 芰 말왐 기 菱 말왐 〈훈몽 상:6ㄴ〉.
흘러니 주025)
흘러니
흘러 다니듯. 흐르-+어#니-+. 15세기 국어의 ‘’은 의존명사와 어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후자로 분석된다. ¶(의존명사); 中士 道 드르면 잇  업슨 고(中士 聞道면 若存若亡고)〈법화 3:147ㄴ〉. 洞庭이 믌겨리 부치고 江漢이 횟도로 혀 니 虎牙와 銅柱ㅣ 다 기우리혓도다(洞庭揚波江漢回 虎牙銅柱皆傾側)〈두시 25:44ㄴ〉. (어미); 뎌 藥師瑠璃光如來ㅅ 功德을 내 일 야(如我稱揚彼藥師琉璃光如來所有功德)〈석상 9:26ㄱ〉. 말왐  니 호매 믈 흘류믈 노니(萍漂忍流涕)〈두시 8:44ㄱ〉.
호매 汲引야 시니 주026)
시니
쓰시니. -+시+니. ‘다’는 능동사로 앞 구절인 ‘말왐 흘러니 호매’의 주체는 ‘두보 자신’이고, ‘汲引야 시니’의 주체는 두보에게 벼슬을 준 숙종 황제이다.
樗 散材로 주027)
저(樗) 산재(散材)로
가죽나무 같이 쓰이지 못하는 재목으로. 즉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오히려 주028)
오히려
오히려[尙]. ¶ 貪 無量有情이 쳔랴 모도아 두고 제 도 오히려 아니거니 며 어버 내야 주며 가시며 子息이며 죠 주며 와 비 사 주리여(復有無量慳貪有情 積集資財 於其自身尙不受用 何況能與父母 妻子奴婢作使 及來乞者)〈석상 9:12ㄱ〉. 幽薊예 얌과 돋괘 나맷고 乾坤애 범과 일히왜 오히려 잇도다(幽薊餘蛇豕 乾坤尙虎狼)〈두시 5:13ㄴ〉.
님금 恩慈 닙오라 주029)
닙오라
입었네. 닙-[被, 蒙]++오+라. ‘-오라’는 『두시언해』에만 나오며 『두시언해』에 다음의 예가 있다. ¶端午애 恩榮을 닙오라(端午被恩榮)〈두시 11:22ㄴ-23ㄱ〉.  예 님 恩惠 닙오니라(同年蒙主恩)〈두시 16:3ㄴ〉.

【한자음】 평류잉급인 저산상은자【급인(汲引)은 물을 길어 끌어올리는 것인데, 천거하여 관직에 나가게 하는 것을 비유한다. 이것은 엄무(嚴武)두보를 천거하여 임금
(황제)
의 은혜를 입어 공부랑(工部郞)이 된 것을 말한다. 저산(樗散)은 가죽나무가 쪼개지고 흩어져서 재목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인데, 두보가 자신을 스스로 비유하였다.】
【언해역】 마름 흘러 다니듯 함에 추천되어 쓰이니, 가죽나무 같은 산재(散材)로 오히려 임금
(황제)
의 자은(慈恩)을 입었네!

遂阻雲臺宿 常懷<용어 realname="">湛露詩 주030)
담로시(湛露詩)
천자가 제후들에게 연회를 베풀면서 읊는 시.
雲臺 주031)
운대(雲臺)
한(漢)나라 남궁(南宮)의 누대의 이름이다. 한나라 명제(明帝)는 전대(前代)의 공신들을 추모해서 등우(鄧禹) 등 28명의 장수의 화상을 그리고 이것을 보관하기 위해 운대(雲臺)를 쌓았다 한다. 또한 한나라 광무제(光武帝) 때 신하들을 운대(雲臺)에 소집하여 일을 의논케 하던 곳이기 때문에 후대에 조정의 뜻으로도 쓰인다. 또한 ‘운대(雲臺)’에 대해서는 ‘南宮에셔 勳業 載錄니(南宮載勳業)’〈두시 3:7ㄱ〉의 주석문 참조.
 南宮臺名이오 宿 直宿이오 湛露 天子의 宴諸侯詩라 此 在嚴武幕야 遂阻侍朝나 常思欲朝而得賜宴也ㅣ라】

雲臺예 자 주032)
운대(雲臺)예 자
‘운대’에 잔다는 것은 숙직한다는 말인데, 원문의 ‘숙(宿)’을 ‘자다’로 번역하였다.
지즈로 주033)
지즈로
말미암아. 때문에. 인(因)하여. 부사. 원문의 ‘수(遂)’를 번역한 말로 ‘(어떤 것을)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인(因),잉(仍),수(遂)’에 대한 번역어로 이 단어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짖+으로’로 분석될 것으로 보이지만 ‘짖’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제 니르록 메 스츄니 지즈로 左右에 잇 도다(至今夢想仍猶佐)〈두시 9:6ㄱ〉. 햇 興의 疎放호 지즈로 브르노라(因歌野興䟽)〈두시 15:16ㄴ〉.
阻隔나 주034)
조격(阻隔)나
조격하나. 즉 막혀서 서로 통하지 못하나. ‘조(阻)’의 번역은 주로 ‘阻隔다’가 쓰이지만 ‘격(隔)’의 번역으로 ‘주츠-’가 쓰인 경우도 있다. ¶阻隔-; 어득어드기 구룸  므레 阻隔야 가니(昏昏阻雲水)〈두시 8:62ㄱ〉. 劒門엔 北 녁 사 오미 오히려 阻隔도다(劍門猶阻北人來)〈두시 10:39ㄴ〉. 禮數ㅣ 阻隔다 비록 니나(雖雲隔禮數)〈두시 20:6ㄴ〉. 주츠-; 길흘 마가 여곰 주츠게 다(塞蹊使之隔)〈두시 17:13ㄱ〉.
녜 湛露詩 노라 주035)
노라
생각하노라. 생각한다. #-++오+다. 중세국어의 ‘다’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뜻으로 쓰이나 후자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뜻으로 쓰인 용례는 ‘거문고 누각[琴臺]’의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 구절 참조. ¶뫼 사 믈리시고 오 기픈 道理 더시니(除去侍衛端坐思惟)〈석상 3:19ㄴ〉. 몰앳 프레 게을이 오라  부 므를 놋다(懒眠沙草爱風湍)〈두시 22:12ㄴ〉.

【한자음】 수조운대숙 상회담로시【운대(雲臺)는 남궁(南宮)의 누대 이름이고, 숙(宿)은 숙직(宿直)이며, 담로(湛露)는 천자(天子)가 제후들과 연회를 베풀면서 읊는 시이다. 이것은 엄무(嚴武)의 막부(幕府)에 있으면서 엄무 막부의 조회(朝會)에는 참석하게 되었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임금
(황제)
의 조회와 연회에 참석하고자 함을 생각하는 것이다.】
【언해역】 운대(雲臺)에 숙직하는 일에는 멀어졌으나, 항상 <용어 realname="">담로시(湛露詩)를 생각하네!

翠華森遠矣 白首颯凄其【此 思天仗之隔遠 주036)
천장지격원(天仗之隔遠)
임금의 의장이 멀리 떨어져 있음. 즉 두보가 임금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而歎白髮之凄凉 주037)
백발지처량(白髮之凄凉)
두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백발이 되어 신세가 처량함을 가리킨다.
니라】

翠華 주038)
취화(翠華)
천자의 의장(儀仗).
森然히 주039)
삼연(森然)히
엄숙히.
머니 셴 머리 루매 주040)
루매
바람에. ‘중간본’에도 ‘루매’로 표기하였으나, ‘매’의 잘못일 가능성이 크다.
부쳐 주041)
부쳐
날려. 붗-+어. 동사 ‘붗-’은 ‘부치다’의 뜻인데, 현대국어의 ‘부체’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두시언해』에서는 ‘붗-’은 주로 ‘표(飄)’의 번역어로 쓰였으며 ‘표(飄)’는 ‘불이-’로도 번역되었다. ¶거믄 미 부러 羅刹鬼國에 부쳐 드러도(假使黑風이 吹其船舫야 漂墮羅刹鬼國야도)〈석상 21:2ㄱ-ㄴ〉. 가오닌 불여 올마가 못 우묵  기놋다(下者飄轉沉塘坳)〈두시 6:42ㄱ〉.
서도다 주042)
서도다
서늘하도다. 서#-+도+다. 『두시언해』에는 ‘서늘-’도 사용되었다. ¶光이 려  우히 서늘며 므즤여 드려 펴디여 어루 바다 자거든(日光이 揜蔽야 地上이 淸凉며 靉靆垂布야 如可承攬이어든)〈법화 3:34ㄴ〉. 노 묏부리옌 도다오  서늘고(高峰寒上日)〈두시 11:51ㄱ〉.

【한자음】 취화삼원의 백수삽처기【이는 임금의 의장이 멀리 떨어져 있음을 생각하고, 백발(白髮)의 처량(凄凉)함을 탄식하는 것이다.】
【언해역】 취화(翠華)가 엄숙하게 머니, 센 머리가 바람에 날려 서늘하도다!

拙被林泉滯 生逢酒賦欺【此 言性拙야 爲林泉所滯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2ㄱ

而一生애 但逢詩酒之侵欺也ㅣ라】

䟽拙야 주043)
소졸(䟽拙)야
소졸하여. 즉 성품이 꼼꼼하지 못하고 서툴러.
林泉 주044)
임천(林泉)
숲과 샘. 즉 자연.
머므러쇼 닙고 주045)
머므러쇼 닙고
머물고 있게 되었고. 원문은 ‘피(被)’ 구문인 ‘被林泉滯’로 일종의 피동적인 표현이나 중세국어 언해문의 경우 ‘피(被)’ 구문은 항상 ‘-오 닙-’으로 언해된다. 『두시언해』의 주석문에는 피동문인 ‘爲~所~’ 구문으로 해석되어, ‘被林泉滯’는 ‘爲林泉所滯’로 풀이되어 있다.
一生애 술와 그릐 欺弄호 주046)
술와 그릐 기롱(欺弄)호
술과 글의 기롱(欺弄)함을. 평생을 술과 시를 벗하여 살아왔다는 뜻이다. ‘중간본’의 ‘그뢰’는 오자이다.
맛니럿노라 주047)
맛니럿노라
만나 일어나 있노라. 맛-#닐-+어#잇-++오+라. ‘맛닐-’은 다음의 『능엄경언해』의 한 예를 제외하면 모두 『두시언해』에서 사용되었다. ¶舍利弗이 違害鬼 맛니롬 야(如舍利弗이 遭違害鬼ᄐᆞᆺ야)〈능엄 5:72ㄱ-ㄴ〉. 害 맛니러 陳公이 주그니(遇害陳公殞)〈두시 23:11ㄱ-ㄴ〉.

【한자음】 졸피림천체 생봉주부기【이는 성품이 소졸(䟽拙)하여 자연에 머물게 되었으며 일생(一生)에 시와 술의 기롱(欺弄)을 만났음을 말한다.】
【언해역】 소졸하여 숲과 샘에 머물러 있게 되었고, 일생에 술과 글의 기롱함을 만났네!

文園終寂寞 漢閣自磷緇司馬相如 주048)
사마상여(司馬相如)
중국 전한의 문학자. 기원전179~기원전117년. 자는 장경(長卿)이다. 『두시언해』의 주석에는 ‘장경’으로도 자주 인용된다. 경제(景帝)를 섬겼지만 경제는 사마상여의 특기인 사부(辭賦)를 싫어했기 때문에 양(梁)의 효왕(孝王)에게 의탁하여 원령(園令)이 되었다. ‘자허부(子虛賦)’를 지어 무제(武帝)의 부름을 받고 만이(蠻夷)를 공격하여 공적을 올렸다.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서는 ‘거문고 누대[琴臺]’의 ‘역주자 주석’ 참조.
ㅣ 爲孝文園令 주049)
효문원령(孝文園令)
효문원의 감독인.
니라 揚(楊)雄 주050)
양웅(揚雄)
양웅(楊雄)이라고도 한다. 기원전53~기원후18년. 전한 말기의 사상가, 문장가이며, 자는 자운(子雲)이다. 박식하였으나 말을 더듬었다. 30여 세에 왕음(王音)에게 문재를 인정받아 성제(成帝)의 급사황문랑(給事黃門郞, 궁중의 제사를 관장하는 관원)이 되었다. 왕망(王莽)이 신(新)을 일으키자 대부(大夫)로 취임하였다.
이 校書天祿閣 주051)
천록각(天祿閣)
원래 이름은 ‘천록기린각(天祿麒麟閣)’. 한(漢) 고조(高祖) 7년(B.C. 195)에 한나라의 초대 승상인 소하(蕭何)가 미앙궁(未央宮)을 건축할 때 만든 집이다. 진(秦)나라가 빼앗은 문사들과 전적들을 이곳에 보관했으며 유향 부자(劉向父子)가 여기서 『별록(別錄)』, 『칠략(七略)』을 저술하였고, 양웅(揚雄)이 여기서 책을 읽었다.
다가 獄吏ㅣ 來欲收雄이어 從閣上投下니라 白玉之質이 磨不磷薄며 染不緇黑니 此言磷緇 본 罪ㅣ 업다가 이제 罪ㅣ 니부믈 니니 ㅣ 救房琯得罪故로 주052)
보(甫)ㅣ 구방관득죄고(救房琯得罪故)로
두보가 숙종 황제의 조정에서 좌습유(左拾遺)를 하고 있을 때인 758년(건원 원년)에 방관(房琯)을 변호하다가 좌습유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두보도 이 여파로 화주(華州, 섬서 華縣)의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좌천되어 지방의 문교 업무를 맡게 되었다.
二人로 自比니라】

文園 주053)
문원(文園)
효문원(孝文園).
내죵애 주054)
내애
나중에. 내+애. ¶버거 楞嚴 브트샤 닷가 證케 시고 내애 法華애 니르르샤 印可신 後에 諸佛ㅅ 能事 다시니(次由楞嚴샤 修證시고 終至法華샤 印可신 然後에 盡諸佛能事시니)〈능엄 1:20ㄱ〉. 子雲이 奇字 아라도 내애 閣애셔 려디니라(子雲識字終投閣)〈두시 15:38ㄱ〉.
괴외고 주055)
괴외고
고요하고. 괴외-+고. ¶寥 괴외 씨라 湛  씨오 寂은 괴외 씨라〈월석 1:석상서1ㄱ〉. 하  와 正히 괴외히 잇노라(天涯正寂寥)〈두시 5:7ㄴ〉.
漢閣 주056)
한각(漢閣)
천록각(天祿閣)을 가리킴. 천록각에 대해서는 앞의 주 참조.
애 제 열우며 주057)
열우며
엷으며. 엷-+으며. 앞선 시기의 표기는 ‘열며’이다.
므드니라 주058)
므드니라
물드니라. 물든다. 믈+들-+니+다. ¶染 므드릴 〈훈몽 중:1ㄴ〉.

【한자음】 문원종적막 한각자린치【사마상여(司馬相如)가 효문원령(孝文園令)이 되었다. 양웅(揚雄)이 천록각(天祿閣)에서 책을 읽다가 옥리(獄吏)가 와서 양웅을 가두고자 하니 누각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백옥(白玉)의 질(質)이 갈아도 엷어지지 않으며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 이는 엷음은 본래 죄가 없다가 지금 죄를 입음을 말하니, 두보가 방관(房琯)을 구하려다가 죄를 입었기 때문에 두 사람을 자신에게 비유한 것을 말한다.】
【언해역】 문원(文園)이 나중에 고요하고, 한각(漢閣)에 스스로 엷으며 물드네!

病隔君臣議 慚紆德澤私【此 주059)
탄(嘆)
주석의 ‘탄(嘆)’은 ‘중간본’에 ‘탄(歎)’으로 되어 있다. 두 글자는 서로 번갈아 쓰일 수 있는 통용자이다. 이하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未得預國論而愧前日之蒙君恩니라】

病야 주060)
병(病)야
병들어. 병#-+야. 현대국어는 ‘병+들다’로 쓰이지만 15세기 국어에서는 ‘병+다’가 쓰였다. ¶金輪王이 외샤 四天下 아시련마 늘그니 病니 주근 사 보시고 世間 슬히 너기샤 出家샤(應王金輪典四天下 見老病死苦不樂在家 出家修道)〈석상 6:17ㄴ〉. 消渴ㅅ 病 늘그닐 기리 야(永念病渴老)〈두시 22:25ㄱ〉.
님금과 臣下왓 議論애 주061)
님금과 신하(臣下)왓 의논(議論)애
임금과 신하의 의론에. 즉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국론(國論)을 의논하는 자리에.
隔絶호니 주062)
격절(隔絶)호니
참여하지 못하니. ‘격절하다’는 국어사전에 “서로 사이가 떨어져서 연락이 끊어지다.”라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국론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다’의 의미이다.
德澤 私恩에 주063)
덕택(德澤) 사은(私恩)에
임금의 덕택과 사사로이 입은 은혜에.
범그러슈믈 주064)
범그러슈믈
둘러싸여 있음을. 범글-+어#이시-+움+을. ¶여슷 가짓 드트른 누네 빗 봄과 귀예 소리 드룸과 고해 내 마톰과 이베 맛머굼과 모매 雜거시 범그룸과 데 法 이숌괘라〈석상 13:38ㄴ〉. 네 손 자보매 범그러 이셔 오히려 더운 相이 업거니 엇뎨 노리오(紆汝手執야셔 尙無熱相커니 云何融泮이리오)〈능엄 3:75ㄴ〉.
붓그려노라 주065)
붓그려노라
부끄러워하노라. 정확하게 직역하면 ‘부끄러워해 하노라’이다. ‘붓그리-’는 ‘부끄러워하-’의 뜻이어서 표제어는 ‘동사+어 -’의 구성이다.

【한자음】 병격군신의 참우덕택사【이는 국론(國論)을 논의함에 참여하지 못함을 탄식하고, 전일에 임금의 은혜를 입었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언해역】 병이 들어 임금과 신하가 의론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니, 덕택(德澤)과 사은(私恩)에 둘러싸여 있음을 부끄러워하네!

揚鑣驚主辱 拔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2ㄴ

劒撥年衰【鑣 馬銜 주066)
마함(馬銜)
재갈. 즉 말을 부리기 위하여 아가리에 가로 물리는 가느다란 막대로 보통 쇠로 만드는데 굴레가 달려 있어 여기에 고삐를 맨다. ‘함륵(銜勒)’이라고도 한다.
이니 揚鑣 言騎馬也ㅣ라 이 님금 辱도외이 겨샤 주067)
님금 욕(辱)도외이 겨샤
임금이 욕되게 계심을. 즉 당 대종이 765년(광덕 원년)에 토번이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섬주(陝州)로 피난 간 일을 말한다. ‘중간본’에는 ‘계사’로 되어 있다.
놀라 주068)
놀라
놀라. 놀라-+아. ‘중간본’에는 ‘롤라’로 되어 있다. ‘이’는 사동접미사이다. ¶ 惡으로 天下 놀래요(以爲惡駭天下니)〈법화 2:28ㄴ〉. 모로매 白鷺 놀래디(莫須驚白鷺)〈두시 15:26ㄴ〉.
 타 가 盜賊 주069)
도적(盜賊)
765년(광덕 원년)에 장안으로 쳐들어온 토번(吐蕃, 티베트).
을 티고져 며 나 늘구믈 러 리고 갈 혀 나 주070)
갈 혀 나
칼을 빼어 나가. 주석의 언해이기는 하나 ‘ 타 가’와 ‘갈 혀 나’는 대구가 된다. ‘중간본’에는 ‘갈 혀셔’로 되어 있어 초간본의 ‘나’는 없애고 ‘혀’에는 후치사 ‘서’를 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天帝釋이 그 사  忉利天에 가아 塔 일어 供養더라(時天帝釋取其箭歸忉利天上建塔盛貯供養)〈석상 3:14ㄱ〉. 혀 더뎌 니고져 너기디 아니노라(撥棄不擬道)〈두시 22:4ㄱ〉.
盜賊을 버히고져 니라】

 타 님금 受辱샤 주071)
님금 수욕(受辱)샤
임금이 수욕하심을. 주석의 ‘님금 辱도외이 겨샤’과 이 구절은 같은 내용으로 765년(광덕 원년)에 토번이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당 대종이 섬주(陝州, 섬서 三門峡)로 피난 간 일을 말한다.
놀라고 갈 혀 나 늘구믈 러리노라

【한자음】 양표경주욕 발검발년쇠【표(鑣)는 마함(馬銜)이니, 양표(揚鑣)는 말을 타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임금이 욕되게 계심(도적에게 쫒기어 피난하심)을 놀라 말을 타고 가 도적(盜賊)을 치고자 하며, 나이 늙음을 떨쳐 버리고 칼을 빼어 나아가서 도적을 베고자 하는 것이다.】
【언해역】 말 타고 임금이 수욕(受辱)하심을 놀라고, 칼을 빼 나이 늙음을 떨어버리네!

社稷經綸地 風雲際會期 血流紛在眼 涕泗亂交頤【此 ㅣ 於經綸社稷風雲際會之事 주072)
사직경륜풍운제회지사(社稷經綸風雲際會之事)
숙종이 756년(천보 15)에 영무(寧武, 寧夏 寧武)에 있었던 일을 말한다.
애 皆未得預故로 嘆恨而至於流涕니라】

社稷 다리 콰 과 구룸 주073)
콰 과 구룸
(사직(社稷)을 다스리는) 땅과 바람과 구름(을 모으는 기회(期會)에). ‘콰’의 ‘ㅎ’는 ‘社稷 다리’의 수식을 받는 명사구이며, ‘’과 ‘구룸’은 ‘몬’과 함께 기회(期會)를 수식하는 관형어의 구성 성분이기 때문에 이들을 나열문으로 볼 수 없다.
몬 주074)
몬
모이는. 몯+. ‘몯-’는 자타동 양용동사인데, ‘구룸’에 격조사가 없으므로 자동사로 쓰였는지 타동사로 쓰였는지 쉽게 구분할 수 없으나 이런 경우 중세국어에서는 주로 자동사 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해석도 ‘모이는’으로 하였다. ¶地獄과 餓鬼와 畜生과 눈 머니와 귀 머그니와 입 버우니와 寃讎 믜우니 몯 苦와(所謂地獄과 餓鬼와 畜生과 盲과 聾과 瘖瘂와 寃讎會苦와 愛別離苦와)〈능엄 7:43ㄱ〉. 공경홈은 德의 몯 거시니 能히 공경면 반시 德이 이실디라〈소학 4:34ㄴ〉.
期會예 주075)
기회(期會)예
때에. 앞의 ‘콰’는 공간적인 배경이며, 여기의 ‘기회’는 시간적인 배경으로 서로 대구를 이룬다.
피 흘로미 주076)
피 흘로미
피 흘림이. 즉 두보 자신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어즈러이 주077)
어즈러이
어지럽게. 어즐-+럽+이. 참조. 아다. 아히. ¶어즐다; 모딘 길헤 러디면 恩愛 머리 여희여 어즐코 아야(墮三惡道 恩愛離別 窈窈冥冥)〈석상 6:3ㄴ〉. 恍惚 매 시름야 어즐 시라〈두시 1:2ㄱ〉. 어즈럽다; 太子ㅣ 무르샤 엇뎨 沙門이라 뇨 對答 三界 어즈럽고 六趣ㅣ 어즐거늘(問何名沙門 答曰 三界兮擾擾 六趣兮昏昏)〈석상 3:20ㄱ〉. 官聯을 어즈러우믈 말리로소니(官聯辭冗長)〈두시 20:48ㄱ〉. 어즈러; 鹿母夫人이 샤 나라해 어즈러 졋어미 블리디 마쇼셔(鹿母夫人白大王言 王莫耗擾國土 召諸乳母)〈석상 11:33ㄱ〉. 어즈러이; 그 中에 거츠리 제 어즈러이 뮈유 처 아니(方覺於中에 妄自擾動니)〈능엄 1:107ㄴ〉. 모딘 龍과  즘이 어즈러이 라 숨놋다(猛蛟突獸紛騰逃)〈두시 16:54ㄴ〉.
누네 잇니 므리 어즈러이 개 섯흘리노라 주078)
므리 어즈러이 개 섯흘리노라
눈물이 어지럽게 턱에 가로질러 흘리노라. 주어 ‘누ᇇ므리’와 서술어 ‘섯흘리노라’가 문법적으로 서로 호응되지 않는 비문이다. ‘섯흘리노라’는 ‘섯-+흐르-+리++오+라’로 분석되며 ‘섯-’과 ‘흐르-’로 이루어진 복합동사에 사동접미사가 연결된 구성으로 보거나 ‘섯-’과 ‘흘리-’로 이루어진 복합동사로 볼 수 있어 타동사이기 때문에 ‘누ᇇ므리’가 아니라 ‘누ᇇ므를’이 되어야 한다.

【한자음】 사직경륜지 풍운제회기 혈류분재안 체사난교이【이는 두보가 사직(社稷)을 경륜(經綸)하고, 바람과 구름이 만나는 일에 다 참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를 한탄하면서 눈물을 흘림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언해역】 사직(社稷)을 다스리는 땅과 바람과 구름이 모이는 기회(期會)에, 피 흘림이 어지럽게 눈에 있으니, 눈물을 어지럽게 턱에 가로질러 흘리네!

四瀆樓船泛 中原鼓角悲四瀆 江河淮濟라 주079)
사독(四瀆) 강하회제(江河淮濟)라
사독(四瀆)은 장강(長江), 황하(黃河), 회하(淮河), 제수(濟水)이다.
此 言運漕兵食다】

四瀆앤 樓船 주080)
누선(樓船)
누선. 즉 다락이 있는 배로 안에 이 층으로 지은 집이 있다. 여기서는 조운선(漕運船)을 말한다.
고 주081)
고
떠 있고. -+어#잇-+고. 15세기 국어의 ‘-’는 ‘물에 뜨다’ 이외에도 ‘눈을 뜨다, 사이가 뜨다’의 뜻이 있다. ¶큰 므레 가다가도 일후믈 일면 즉자히 녀튼  어드리어며(若爲大水의 所漂야 稱其名號면 即得淺處리며)〈석상 21:2ㄴ〉. 믌겨레 菰米 시니 거믄 구루미 맷 고 이스리 蓮ㅅ 고 서늘니 粉紅이 듣놋다(波漂菰米沈雲黑 露冷蓮房墜粉紅)〈두시 6:10ㄱ〉.
中原 주082)
중원(中原)
황하 강 중류의 남부 지역. 천자가 있는 중국의 중심부를 말한다.
鼓角소리 주083)
고각(鼓角)소리
북과 피리 소리.
슬프도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3ㄱ


【한자음】 사독누선범 중원고각비【사독(四瀆) 강(江), 하(河), 회(淮), 제(濟)이다. 이것은 병사들의 식량을 운반하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사독(四瀆)엔 누선(樓船)이 떠 있고, 중원(中原)엔 고각(鼓角)소리 슬프도다!

賊壕連白翟 戰瓦落丹墀白翟 卽白狄이라 주084)
백적(白翟) 즉백적(卽白狄)이라
‘중간본’에는 ‘백적(白翟) 즉백적야(卽白狄也)이라’로 되어 있다.

盜賊의 城池 주085)
도적(盜賊)의 성지(城池)
토번(吐蕃) 군사들이 파 놓은 성의 해자는.
白翟에 니고 주086)
백적(白翟)에 니고
부주(鄜州, 섬서 富縣), 연주(延州, 섬서 延安) 일대에 이어졌고. 백적(白翟)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당나라 시대의 부주(鄜州, 섬서 富縣), 연주(延州, 섬서 延安) 일대에 살았다.
사호맷 디새 주087)
사호맷 디새
싸움에 이용한 조약돌과 기왓 조각은.
丹墀예 디놋다 주088)
단지(丹墀)예 디놋다
깨어진 벽돌과 조약돌이 성 안의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한자음】 적호련백적 전와낙단지【백적(白翟)은 즉 백적(白狄)이다.】
【언해역】 도적(盜賊)의 성지(城池)는 백적(白翟)에 이어져 있고, 싸움의 기와는 단지(丹墀)에 떨어지는구나!

先帝嚴靈寢 宗臣切受遺【宗臣 爲時之所宗尙者ㅣ라 此 言肅宗이 收京都而修寢廟시며 大臣이 受遺詔而立代宗也ㅣ라】

先帝 주089)
선제(先帝)
당(唐)나라 숙종(肅宗).
靈寢 주090)
영침(靈寢)
상(喪)을 치를 때, 대렴(大殮)한 뒤 송장을 두는 곳.
嚴敬시고 주091)
엄경(嚴敬)시고
엄숙하게 공경하시고.
宗臣 주092)
종신(宗臣)
주석에는 “당시에 가장 숭상받던 사람들이다(爲時之所宗尙者ㅣ라)”라고 하였는데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킨다.
기틴 주093)
기틴
끼친. 남긴. 깉-+이+ㄴ. ¶이  後ㅅ 부텻 기티논 긔걸이니 모로매 모다 삼가라(是爲最後佛之遺令)〈석상 23:13ㄱ〉. 一時랏 말도 부텻 기티샨 마리시니(一時之語도 乃佛ㅅ 遺言이시니)〈법화 1:20ㄴ〉. 宗臣의 기틴 얼구리 싁싀기 고 놉도다(宗臣遺像肅清高)〈두시 6:32ㄴ〉.
詔命 주094)
조명(詔命)
당(唐)나라 숙종의 조서(詔書).
맛도 주095)
맛도
맡음을.
切當히 주096)
절당(切當)히
사리에 들어맞게. 적당히.
니라
주097)
기틴 조명(詔命) 맛도 절당(切當)히 니라
당(唐)나라 숙종이 762년(보응 원년)에 곽자의를 불러 “하동(河東)의 일은 그대에게 맡기노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은 이 일을 말한다.

【한자음】 선제엄영침 종신절수유【종신(宗臣)은 당시에 가장 숭상받던 사람들이다. 이것은 숙종(肅宗)경도(京都)를 수복하고 침묘(寢廟)를 수리하였으며, 대신(大臣)이 숙종의 유조를 받들어 대종(代宗)을 세운 것을 말한다.】
【언해역】 선제(先帝)가 영침(靈寢)을 엄숙하게 공경하시고, 종신(宗臣)은 남기신 조서(詔書) 맡음을 절당(切當)히 하네!

恒山猶突騎 遼海競張旗恒山 주098)
항산(恒山)
중국 오악(五岳) 중의 하나로 당나라 때에는 하북(河北)에 속하였다.
遼海 주099)
요해(遼海)
요하(遼河) 유역의 동쪽으로부터 동쪽 바다에 이르는 지역으로, 당나라 때에는 하북(河北)에 속하였다.
 皆思明 주100)
사명(思明)
사사명(史思明). 703~761년. 중국 당나라 때의 돌궐인. 안녹산(安祿山)과는 같은 고향, 같은 나이로 안녹산과 함께 안사(安史)의 난을 일으켜 안녹산의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757년 1월 안녹산이 장남 안경서에게 사형당하자 안경서를 처형하고 안사의 난을 이끌었으나 자신도 결국 장남 사조의에게 처형되었다.
窟穴 주101)
굴혈(窟穴)
소굴(巢窟).
이라 此 言亂猶未止也ㅣ라】

恒山앤 오히려  이니고 주102)
이니고
달리어 가고. -+이#니-+고. ‘-’와 ‘니-’의 합성동사이다. ¶ 타 이니던 디 모 기도다(躍馬意何長)〈두시 14:7ㄴ〉. 이니 戎馬ㅅ 셔 므리므리예 長吏 주기니라(崩騰戎馬際 往往殺長吏)〈두시 16:19ㄱ〉.
遼海옌 토아 주103)
토아
다투어. 토-+아. ¶내 지븨 이 저긔 여듧 나랏 王이 난겻기로 토거늘(我在家時 八國諸王 競來見求)〈석상 6:7ㄱ〉. 토아 고온 비츨 가져셔(競將明媚色)〈두시 15:29ㄴ〉.
旌旗 폣도다

【한자음】 항산유돌기 뇨해경장기【항산(恒山)과 요해(遼海)는 다 사사명(史思明)의 굴혈(窟穴)이다. 이는 난이 아직 그치지 않았음을 말한다.】
【언해역】 항산엔 오히려 말을 달려가고, 요해엔 다투어 정기(旌旗)를 펴고 있도다!

田父嗟膠漆 行人避蒺藜膠漆 주104)
교칠(膠漆)
활과 화살을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
 所以爲弓者ㅣ니 斂及田家故로 爲之嘆也ㅣ라 蒺藜 주105)
질려(蒺藜)
적군의 말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쇠로 만든 쐐기.
 以鐵爲之니 布於戰地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3ㄴ

以禦敵馬者ㅣ니 言盜賊縱橫야 處處布在故로 行人이 避去也ㅣ라】

녀름 주106)
녀름
농사. 여름. 참고로 15세기의 ‘여름’은 ‘열매’의 뜻이다. ¶戌陁羅 녀름 짓 사미라(협주)〈월석 10:21ㄴ〉. 녀름과  忽然히 디니(秋夏忽泛溢)〈두시 13:19ㄴ〉.
지 주107)
지
지을. ‘녀름’과 합한 ‘녀름 짓-’은 ‘농사 짓-’의 의미로 쓰인다. ‘짓-’은 ‘(글을) 짓다, 만들다’의 뜻이다. ‘중간본’에는 ‘디을’로 되어 있다. ¶製 글 지 씨니 御製 님금 지샨 그리라〈훈언 1ㄱ〉. 作 지 씨니 所作 지즈다   마리라(협주)〈월석 4:18ㄴ〉.
아비 주108)
아비
아버지. 아비.
 膠漆 바툐 주109)
바툐
뱉음을. 밭-+오+ㅁ+. ¶乞食 法은 제 노  바툐 굿블이고  仁善을 發니라(乞食之法은 自伏貢高고 發他의 仁善이니라)〈법화 5:28ㄱ〉.
슬허 코 주110)
슬허 코
슬프해 하고. 슳-+어#-+고. 15세기 국어의 ‘슳다’는 ‘슬퍼하다’의 뜻이며, ‘슳다’에 형용사 파생 접미사 ‘-/브-’가 결합하여 형성된 형용사가 ‘슬프다’이다. 그런데 ‘슬프다’에서 ‘-어다’가 결합하여 ‘슬퍼다’로 발전하여 현대국어의 ‘슬퍼하다’가 된 반면에 파생의 주체이었던 ‘슳다’는 소실되었다. ‘슳다’와 같은 운명을 보인 단어들로는 ‘믜다, 다’ 등이 있다. ‘코’는 ‘고’의 ‘ㆍ’가 생략되면서 ‘ㅎ’과 ‘ㄱ’이 ‘ㅋ’으로 바뀐 현상을 표기한 것이다. 참고. 슬프다. 슳다(슬퍼하다). 슳다(싫다). 슲다. 슬다. 슬여다. 슬하야다. 슬여다. 슬허다. 슬흐여다. 슬희다. 슬희여다. 슬히. 슬히다. ¶슳다(슬퍼하다) : 王이 더욱 슬허 니샤 이 네 가짓 願은 녜록브터 일우니 업스니라(王聞重悲 此四願者古今無獲)〈석상 3:21ㄴ〉. / 便安히 몯 자셔 仲宣이 슬흐니라(展轉仲宣哀)〈두시 3:9ㄴ〉. 그 소리 슬허 셟고 이베 피 흘리니(其聲哀痛口流血)〈두시 17:5ㄱ〉. 님금 히 조보 슬허 라더니라(悵望王土窄)〈두시 24:14ㄴ〉. 슳다(싫어하다) : 이러틋 布施ㅣ 種種 微妙로 깃거 슬호미 업서 無上道 求며(如是等施ㅣ 種種微妙로 歡喜無厭야 求無上道며)〈법화 1:83ㄱ〉. 슳다(싫어하다) :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暮年漂泊恨)〈두시 3:19ㄴ〉. 슬다(슬퍼하다) : 摩耶ㅣ 더 슬샤  무르샤 네 아래브터 부텨를 뫼 니며 듣 잇니(時摩訶摩耶聞此語已 又憎感絶卽問阿難 汝於往昔侍佛已來 聞世尊說)〈석상 23:31ㄴ〉. 슬다(싫어하다) : 사미 受苦 맛나아 老病死 슬야 거든 위야 涅槃 니샤 受苦 업게 시며(若人遭苦 厭老病死 爲說涅槃 盡諸苦際.)〈석상 13:18ㄱ〉. 슬허다 : 須達이도 그 말 듣고 슬허더라(是時須達悲心憐傷)〈석상 6:38ㄱ〉. 늙고 큰 藤蘿를 슬허고 굽고 서린 남그란 기피 입노라(惆悵老大藤 沈吟屈蟠樹)〈두시 9:14ㄱ〉. 슬프다 : 이 그른 잇 고대 流通커 기튼 자최 괴외호미 슬프도다  슬프다 셜우믈 매 얼규니 슬푸믄 一方 누니 滅시니(斯文은 在庱에 流通이어 遺跡은 堪悲牢落이로다 嗚呼哀哉라 痛纏心腑호니 所嗟 一方眼이 滅시니)〈영가서:15ㄱ〉. 내 머리 도라 라 로 여 셜워 우러 슬픈 미 닐에 디 마롤디어다(莫令回首地 慟哭起悲風)〈두시 5:9ㄱ〉. 슬퍼다 : 내 항거시 여러이 멀니 귀향가거늘 뉘 며이고 고 장 슬허거 본 사이 다 슬퍼더라〈속삼강중 충:5ㄴ〉.
길 녈 사 蒺藜 避놋다

【한자음】 전부차교칠 행인피질려【교칠(膠漆)은 활을 만드는 것이니, 세금이 농가에 미쳤기 때문에 탄식하였다. 질려(蒺藜)는 쇠로 만드니, 전쟁터에 뿌려 적군의 말을 방어하는 것이다. 도적이 종횡하여 곳곳에 질려가 뿌려져 있었기 때문에, 행인이 피해 다녔음을 말한다.】
【언해역】 농사짓는 사람은 교칠(膠漆) 뱉음을 슬퍼해 하고, 길 다니는 사람은 질려(蒺藜)를 피하는구나!

惣戎存大體 降將飾卑詞惣戎 주111)
총융(惣戎)
복고회은(僕固懷恩)을 말한다. 생몰년은 691-765년으로 당(唐)나라에 복속한 철륵족(鐵勒族)의 후예이다. 특히 안사의 난 때 곽자의(郭子儀)를 따라 혁혁한 전과를 세웠으나 나중에는 토번(吐蕃), 회흘(回紇) 등 삼십만 군을 데리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병사하였다.
元帥 주112)
원수(元帥)
군대의 총사령관.
ㅣ라】

惣戎 큰 體 두워 고 주113)
큰 체(體) 두워 고
큰 체(體)를 두고 있고. 전쟁의 큰 틀을 가지고 있고. ¶歲拜 히 곳 두워 면 寒食 나리라도 늣디 아니니라(有心拜節 寒食不遲)〈번박67ㄱ〉. 오히려 그 위 두워 딕히우며(尙置官居守)〈두시 6:3ㄱ〉.
降服 將軍  마 미놋다

【한자음】 총융존대체 항장식비사【총융(惣戎)은 원수(元帥)이다.】
【언해역】 총융(惣戎)은 큰 체(體)를 두고 있고, 항복(降服)하는 장군은 나직한 말을 꾸미는구나!

楚貢何年絕 堯封舊俗疑左傳 주114)
좌전(左傳)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공자(孔子)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역사서인 『춘추』의 대표적인 주석서 중 하나로, 기원전 700년경부터 약 250년간의 역사가 다루어져 있다. 다른 명칭으로는 좌전(左傳), 좌씨전(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라고도 한다. 『춘추』에 대한 현존하는 다른 주석서인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함께 삼전(三傳)으로도 불린다. 삼전 중에서 『춘추좌씨전』은 기본적으로 최고로 삼고 있다.
楚貢苞茅 不入이라 주115)
초공포모(楚貢苞茅) 불입(不入)이라
초나라가 공물로 포모(苞茅)를 들이지 않는다. 포모(苞茅)는 제사용 술을 거를 때 쓰는 청모(菁茅)인데, 춘추시대 제 환공(齊桓公)이 “초나라가 포모(苞茅)를 공물로 바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초(楚)나라를 정벌하였다. 이에 유래하여 ‘공부(貢賦)’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니 此 言四方貢試ㅣ 不上供也ㅣ라 주116)
언사방공시(言四方貢試)ㅣ 불상공야(不上供也)ㅣ라
이는 사방의 공물이 공급되지 않음을 말한다. ‘중간본’에는 ‘시(試)’가 ‘부(賦)’로 되어 있다. ‘중간본’이 옳다.
唐堯 주117)
당요(唐堯)
요 임금. 성이 도당(陶唐) 씨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부른다.
之時예 比屋可封 주118)
비옥가봉(比屋可封)
요 임금 때 충신, 효자, 열녀가 많아 벼슬을 봉할 집들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세상이 평안하였음을 비유한 말.
이러니 今에 民俗이 叛亂故로 可疑라】

楚ㅅ 貢은 주119)
초(楚)ㅅ 공(貢)은
초나라의 공물은. 즉 제 환공이 초나라의 공물이 들어오지 않음을 이유로 초나라를 정벌하였기 때문에 초나라의 공물은 정벌의 빌미가 된다.
어느 예 그츠니오 주120)
그츠니오
그쳤는가? 긏-+으니+오. 15세기 국어의 ‘긏-’은 자타동 양용동사로 ‘끊다’와 ‘끊어지다’의 뜻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치-’와 같이 타동사에는 원동사의 사동사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그 사동사에 ‘-어 디다’가 결합된 ‘그처디-’도 사용되었다. ¶긏-(자동사) : 癡愛病이 업스면 生死ㅅ 緣이 그처 眞常 頓證리니(癡愛病이 除면 則生死緣이 斷야 頓證眞常리어니)〈석상 20:31ㄱ〉. 祿 해 타 먹 넷 버든 書信이 그처 업고(厚祿故人書斷絕)〈두시 7:2ㄴ〉/ 긏-(타동사) : 를 그처 骨髓 내오 두  우의여 내니라(斷骨出髓 剜其兩目)〈석상 11:21ㄱ〉. 父母ㅅ 恩惠 그처 리고(棄絕父母恩)〈두시 5:26ㄱ〉 /그치- : 沙彌 새 出家 사미니 世間앳 들 그치고 慈悲ㅅ 뎌글 다 논 디니〈석상 6:2ㄴ〉. 마 盃中엣 物을 그치고(忍斷杯中物)〈두시 8:13ㄱ〉. 그처디- : 이 觀世音菩薩 듣고 一心로 觀世音菩薩ㅅ 일후믈 일면 다 그처디여 즉자히 버서나리어며(設復有人이 若有罪커나 若無罪커나 杻械枷鏁ㅣ 檢繫其身야셔 稱觀世音菩薩名者ㅣ면 皆悉斷壞야 即得觧脫며)〈석상 21:5ㄴ〉. 불휘 믌 미틔 싯기여 그처디니 엇뎨 하 디시리오(根斷泉源豈天意)〈두시 6:41ㄱ〉.
堯ㅅ 封던 녯 民俗이 주121)
요(堯)ㅅ 봉(封)던 녯 민속(民俗)이
요 임금이 벼슬을 봉하던 때의 민속이. 요 임금 때는 열녀, 효자, 충신이 줄지어 있어서 벼슬을 봉할 만한 집이 줄지어 있었다는 고사에 빗대어 쓴 표현이다.
이제 주122)
이제
지금. 지금은. ¶相師ㅣ 王  이제 出家 아니샤 닐웨 디나면 轉輪 王位 自然히 오시리다(相師白王 今不出家過七日已 轉輪王位自然來應)〈석상 3:24ㄱ〉. 이제 내 아 려가려 시니(今復遣使 欲求我子)〈석상 6:5ㄴ〉. 東 녁 믌 비 이제 周足니(東渚雨今足)〈두시 7:34ㄴ〉.
疑心외도다 주123)
의심(疑心)외도다
의심되도다. 의심스럽도다. ¶내 내 모 소교미 외도다 다다(我爲自欺誑이로다다다)〈법화 2:20ㄴ〉. 내 들 펴고 훤히 노래 브로니 모 시름외도다(放歌頗愁絕)〈두시 2:34ㄱ〉.

【한자음】 초공하년절 요봉구속의【좌전(左傳)에 초나라가 공물로 포모(苞茅)를 들이지 않았다고 하니, 이는 사방의 공물이 공급되지 않음을 말한다. 요 임금의 시절에 충신, 효자, 열녀가 많아 벼슬을 봉할 집들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세상이 평안하였는데, 지금은 민속이 반란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렇게 될까 의심스럽다.】
【언해역】 초(楚)의 공물은 어느 해에 그쳤는가? 요(堯) 임금이 봉(封)하던 옛 민속이 지금은 의심스럽도다!

長吁飜北寇 一望卷西夷北寇 주124)
북구(北寇)
북쪽 오랑캐. 즉 회흘(回紇)을 말한다. 안녹산과 사사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安史ㅣ오 西夷 주125)
서이(西夷)
서쪽 오랑캐. 즉 토번(吐藩)을 말한다.
 吐藩이라】

기리 주126)
기리
길이. 길-+이. ¶涅槃 닷가 苦樂 기리 여희리다(當修涅槃 永離苦樂)〈석상 11:3ㄱ〉. 기리 萬里옛 나그내 외요니(長爲萬里客)〈두시 11:46ㄴ〉.
嗟吁야셔 주127)
차우(嗟吁)야셔
탄식하여서. 차우(嗟吁)-+야+셔.
北寇 두위텨 주128)
두위텨
뒤집어. 두위-+티+어. ‘두위-’는 ‘뒤집다’의 뜻이며, ‘-티-’는 강세접미사이다. ‘두위티-’는 『두시언해』에만 쓰인 어휘이다. ¶두위티- : 곳고리 므를 디나 두위텨 도라가거(黃鶯過水翻回去)〈두시 10:18ㄱ〉. 고기 낛  두위티놋다(翻却釣魚船)〈두시 25:21ㄴ〉. 두위잇- :   두위잇 며기 노니(江渚翻鷗戲)〈두시 3:48ㄱ〉. 두위구우리면 즉재 살리라(展轉即起也)〈구간 1:83ㄱ-ㄴ〉.
리고져 주129)
리고져
버리고자. 리-+고#지-+어. ¶죽사리 免 道理 아니로다 샤 리고 가시니라(今此苦行非正解脫 知非亦捨)〈석상 3:36ㄱ〉. 다 나래 해 리과라(他日委泥沙)〈두시 7:15ㄱ〉.
고  디위 라셔 주130)
라셔
바라서. 라-+아+셔.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毘奢蜜多 遙見 不能自禁 遂使其身怱起)〈석상 3:8ㄱ〉. 라오 막노라 事勢ㅣ  뵈왓더라(塞望勢敦迫)〈두시 24:13ㄱ〉.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4ㄱ

西夷 거더 리고져 노라

【한자음】 장우번북구 일망권서이북구(北寇)안사(安史)이고 서이(西夷)토번(吐藩)이다.】
【언해역】 길이 탄식하여서 북구(北寇)를 뒤집어 버리고자 하고, 한 번 희망하여서 서이(西夷)를 걷어 버리고자 하네!

不必陪玄圃 超然待具茨玄圃 주131)
현포(玄圃)
신선이 사는 산의 이름. 주석에서는 조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 神仙所居ㅣ니 比朝廷다 具茨 주132)
구자(具茨)
신선이 사는 산의 이름.
 山名이니 至道之人大隗居焉니라 此 ㅣ 言我不必陪侍朝列이어니와 王君이 須超然待賢者而用之也ㅣ니라】

구틔여 주133)
구틔여
구태여. 억지로. 주로 ‘필(必)’의 번역어로 쓰인다. ¶世옛 사미 티 倍히 더 보아 구틔여 分別을 내니 足히 그 妄 보리로다(而世人이 一齊히 倍加瞻視야 强生分別니 足見其妄也ㅣ로다)〈능엄 2:14ㄱ〉. 어즈러운 가얍고 열운 사 엇뎨 구틔여 혜리오(紛紛輕薄何須數)〈두시 25:55ㄴ〉.
玄圃애 뫼디 주134)
뫼디
모시지. 뫼-++디. ¶阿難은 녜 뫼오니 외와 法藏 護持고(阿難 常爲侍者와 護持法藏고)〈법화 4:48ㄴ〉. 아마다 부데 먹 무텨 님그믈 뫼노라(朝朝染翰侍君王)〈두시 6:3ㄴ〉.
몯나 超然히 具茨앳 어딘 사 주135)
어딘 사
현인(賢人)을.
待接시고라 주136)
대접(待接)시고라
대접하시구려. 대접-+시+고+라. ‘-고라’는 원망(願望)을 나타내는 명령형 종결어미로 쓰인다. ¶付囑 말 브텨 아례 고라 請 씨라(협주)〈석상 6:46ㄱ〉. 願 햇 므를 부러 金잔애 더으고라(願吹野水添金杯)〈두시 15:39ㄴ〉.

【한자음】 불필배현포 초연대구자현포(玄圃)는 신선이 사는 곳이니, 조정(朝廷)을 비유하였다. 구자(具茨)는 산 이름이니, 도에 지극한 사람은 매우 험한 곳에 산다. 이것은 두보가 자신이 조정의 대열에 천자를 모실 필요가 없으며 황제가 모름지기 초연히 현자를 기다려 써야 함을 말한다.】
【언해역】 구태여 현포(玄圃)에 모시지 못하나, 초연히 구자(具茨)의 어진 사람을 대접하시구려.

凶兵鑄農器 講殿闢書帷【兵者ㅣ 凶器故로 云凶兵이라 鑄劒戟爲農器 欲偃武也ㅣ라 漢文이 集上書囊야 爲殿帷니 此 欲崇經術也ㅣ라】

凶 兵잠개 주137)
병(兵)잠개
병장기. 兵+잠+개. ‘兵잠개’는 15·16세기에 ‘병잠개’ 또는 ‘병잠기’로도 표기되었다. ¶우희 이셔 교만면 패망고 아래 되야셔 거슯면 죄 닙고 동뉴에 이셔 토면 병잠개예 해 이니〈소학 2:33ㄴ〉. 公子 州吁 랑 쳡의 아이라 고임이 잇고 병잠기를 됴히 너기거늘〈소학 4:48ㄱ〉.
로 農器 디오 주138)
디오
주조하고. 디-+고. ‘디-’는 ‘주조(鑄造)하다’의 뜻이다. ¶옰 內예 金銀銅鐵을 모도아 砲 디여(集州中金銀銅鐵 雜鑄爲砲)〈삼강런던충28ㄱ〉. 兵戈 노겨 農器를 디면(銷兵鑄農器)〈두시 19:37ㄱ〉.
講論시논 殿에 글월로 론 주139)
ᆼ론
만든. -+온. ¶寶花幡은 보옛 고로 론 幡이라〈석상 20:7ㄱ〉. 講論시논 殿에 글월로 론 帳 펴고라(講殿闢書帷)〈두시 3:4ㄱ〉.
帳 펴고라 주140)
펴고라
펴구려. 펴-+고+라. ‘-고라’는 원망(願望)을 나타내는 명령형 종결어미로 쓰인다. ¶付囑 말 브텨 아례 고라 請 씨라(협주)〈석상 6:46ㄱ〉. 願 햇 므를 부러 金잔애 더으고라(願吹野水添金杯)〈두시 15:39ㄴ〉 /펴- :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而終不得伸其情者ㅣ 多矣라)〈훈언 :2ㄴ〉. 賦比興으란 田園에 갈 들 펴 짓노라(比興展歸田)〈두시 20:19ㄴ〉 /펴디-:부톄 說法샤 世間애 法이 펴디여 갈 그우리다 니〈석상 6:18ㄱ〉. 犬戎이 키 펴디니라(犬戎大充斥)〈두시 24:11ㄴ〉.

【한자음】 흉병주농기 강전벽서유【병자(兵者)가 흉기(凶器)이기 때문에 흉병(凶兵)이라 말했다. 칼과 창을 녹여 농기(農器)를 만드는 것은 무(武)를 쓰러뜨리고자 하는 것이다. 한 문제(漢文帝)가 웃어른에게 올리는 글을 모아 전각의 장막을 만드니 이것은 경술(經術)을 숭상하고자 하는 것이다.】
【언해역】 흉한 병장기로 농기를 주조하고, 강론(講論)하시는 전각(殿閣)에 문장으로 만든 장막을 펼치구려!

廟筭高難測 天憂實在茲【高難測은 譏廟堂之上애 無良策也ㅣ라 實在玆 言天子之憂ㅣ 在偃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4ㄴ

武修文也ㅣ라】

廟堂 주141)
묘당(廟堂)
당의 조정.
혜아료 주142)
혜아료
헤아림은. 혜-+아리-+오+ㅁ+. ‘혜아리-’는 ‘혜-’가 있으므로 다시 ‘혜’와 ‘아리’로 분석되지만 ‘아리’의 정체는 알 수 없다. 불경언해에서는 ‘혜아리-’가 주로 ‘양(量)’에 대응된다. 『두시언해』에서는 ‘보라온 곳부리 혜아려 리 프놋다’와 같이 ‘상량(商量)’의 번역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慮, 策, 筭, 虞, 計, 照, 算, 憂, 念, 商量, 意, 度’ 등 다양하게 대응된다. 단 『두시언해』 권8의 예인 ‘籌策을 혜아려 神功을 자뱃도다’의 ‘헤아리-’에 대응하는 ‘운(運)’은 다소 의역된 경우라 할 수 있다. ¶戱論 노야 議論 씨니 야 혜아리 正티 몯 미라〈석상 19:25ㄱ〉. 몃 디위 靑瑣門에 朝班을 혜아리가니오(幾回靑瑣照朝班)〈두시 6:9ㄱ〉.
노파 測量호미 어렵거니와 주143)
어렵거니와
어렵거니와. 어렵지만. 어렵-+거+니+오+아. ‘-거니와’는 가벼운 역접의 기능을 가진 연결어미이다. ‘이-’ 뒤에서는 ‘ㄱ’이 약화되어 ‘-어니와’로 표기된다. ¶太子ㅣ 聰明야 그른 잘거니와 히미 어듸 우리 이긔료 고(調達曰 太子聰慧善明書論 至於筋力詎勝我等)〈석상 3:12ㄴ〉. 네 모매 마 바 추미 구슬 외요 보앳거니와 네 아자비는 어느 말로 머리터리 옷 리오(汝身已見唾成珠 汝伯何由發如漆)〈두시 8:30ㄴ-31ㄱ〉.
하 시르믄 주144)
시르믄
시름은. 시름+은. ¶無憂는 시름 업슬 씨니〈석상 23:32ㄴ〉. 시름 허러듀미 이 오 아미로다(愁破是今朝)〈두시 22:11ㄴ〉.
眞實로 이긔 겨시니라

【한자음】 묘산고난측 천우실재자【고난측(高難測)은 묘당(廟堂)의 위에 양책(良策)이 없음을 나무라는 것이다. 실재자(實在玆)는 천자(天子)의 근심이 무(武)를 무너뜨리고 문(文)을 닦는 것에 있음을 말한다.】
【언해역】 묘당(廟堂)의 헤아림은 높아 측량(測量)함이 어렵거니와, 하늘의 시름은 진실로 여기 계시네!

形容眞潦倒 答效莫支持潦倒 주145)
요도(潦倒)
쇠로(衰老). 주석에는 늙은 것[老]이라 되어 있다.
 老也ㅣ라 答效 주146)
답효(答效)
황제의 은덕(恩德)에 보답함.
 猶圖報也ㅣ라】

얼구 주147)
얼구
형색은. 몰골은. 얼굴+. 15세기 국어의 ‘얼굴’은 ‘형상’의 뜻으로 많이 쓰였다. ¶믈읫 얼굴 보 여희실 한 소리 다 通達야 眞說 아니니 업스니(由離諸相見故로 圓通衆音이 無非眞說也ㅣ시니라)〈석상 20:14ㄱ〉. 宗臣의 기틴 얼구리 싁싀기 고 놉도다(宗臣遺像肅清高)〈두시 6:32ㄴ〉.
眞實로 늘구니
주148)
얼구 ~ 늘구니
내 형색은 ~ 늙으니. 현대국어의 관점에서는 비문으로 보이지만 주제-평언 구조의 문장이라는 점과 『두시언해』가 시를 직역한 문헌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恩德 갑오 支當티 주149)
지당(支當)티
담당하지.
몯노라

【한자음】 형용진료도 답효막지지【요도(潦倒)는 늙은 것이다. 답효(答效)는 은혜에 보답하는 것과 같다.】
【언해역】 내 형색은 진실로 늙으니, 은덕(恩德) 갚음을 감당하지 못하네!

使者分王命 群公各典司 恐乖均賦斂 不似問瘡痍【此 言喪亂애 公私ㅣ 窘乏 주150)
군핍(窘乏)
필요한 것이 없거나 모자라 군색하고 아쉬움.
야 使者群公이 皆務於微斂賦稅 주151)
미렴부세(微斂賦稅)
세금을 적게 부과하는 일.
나니 但恐乖於均平而不問民之瘡痍 주152)
창이(瘡痍)
병기(兵器)에 다친 상처. 즉 전쟁으로 인한 파괴를 이르는 말.
也ㅣ라】

使者ㅣ 王命 호며 주153)
왕명(王命) 호며
왕명을 나누며. 즉 각 분야별로 왕명을 나누어서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群公이 各各 마 주154)
마
관청을. 15세기의 ‘’은 ‘관청’과 ‘마을’의 뜻이 있는데 『두시언해』에 쓰인 ‘’은 주로 ‘관청’의 뜻으로 쓰였다. ¶마을 : 히 멀면 乞食디 어렵고(若遠作之乞食則難)〈석상 6:23ㄴ〉. 관청 : 후에 다  마리  그 도즈글 자바 보내니(後頭別處官司 却捉住那賊)〈번노상27b-28ㄴ〉. 마래 사랴션 들 行호매 잇니라(居官志在行)〈두시 8:63ㄴ〉.
아랏도다 주155)
아랏도다
주관하도다. #알-+아#잇-도+다. 『두시언해』에서 ‘알-’은 주로 ‘관(官), 전(典), 사(司), 령(領), 장(將), 장(掌), 독(督), 령(領)’ 등의 번역어로 쓰였다. ¶大千世界 다 아라 四生 濟渡야(統禦大千 攝化衆生)〈석상 3:23ㄴ〉. 世世로 絲綸 아로 아다오 알오져 홀뎬(欲知世掌絲綸美)〈두시 6:4ㄴ〉.
賦稅 골오 호매 어긔르츤가 주156)
어긔르츤가
어긋나게 하는가. 어긔릋-+으+ㄴ+가. ‘어긔릋-’은 『두시언해』에만 나오는 단어로 주로 ‘위(違), 착(錯)’에 대한 번역어로 쓰였으나 『두시언해』 권15의 ‘추일기제정감호상정삼수(秋日寄題鄭監湖上亭三首)’의 ‘프른 프리  디 어긔르츠니’의 경우 ‘봉(逢)’에 대한 번역어로 쓰여 특이한 경우에 속하는데 아마도 이 부분이 의역된 것으로 보인다. 참조. 어긔릋-, 어그릋-, 어긔맃-, 어그맃-, 어긔으릋-, 어긔-. ‘어긔릋-’에 대해서는 해제를 참조할 것. ¶어긔릋- : 오히려 수우 대로 어긔르츠며(尙錯雄鳴管)〈두시 3:13ㄴ〉. 녀뇨매 매 어긔르추미 하니(行邁心多違)〈두시 7:27ㄴ〉.
전노니 주157)
전노니
두려워하니. 젛-++오+니. ‘젛-’의 어간 말음 ‘ㅎ’이 뒤따르는 유성자음 ‘ㄴ’의 영향으로 역행동화를 일으켜 ‘ㄴ’으로 발음된다. ¶네 모 리 가라 사미 너 害가 전노라〈육조상:31ㄴ〉. 늘근 나해 幽獨호 전노라(衰年怯幽獨)〈두시 25:3ㄴ〉.
人民의 헐므믈 주158)
헐므믈
고통을. (상처가) 헐어 무너짐을. 헐-#믓-+우+ㅁ+ㄹ. ‘헐믓-’은 원래 종기 등으로 상처가 헐어 문드러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다음의 『훈몽자회』의 예가 중요하다. 『두시언해』에서는 ‘창이(瘡痍)’에 대한 번역어로 쓰였다. ¶입시우리 드리디 아니며 디 아니며 디드디 아니며 헐믓디 아니며(脣不下垂亦不褰縮 不麁澁 不瘡胗)〈석상 19,7ㄱ〉. 헐므 피 흐르린 업도다(瘡痍無血流)〈두시 23:14ㄴ-15ㄱ〉. 萬姓의 헐므미 암라 가니(萬姓瘡痍合)〈두시 24:49ㄴ〉.
문 디 아니도다 주159)
문 디 아니도다
묻는 듯하지 아니하도다. 즉 제공(諸公)들이 백성들의 곤궁함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는 뜻이다.

【한자음】 사자분왕명 군공각전사 공괴균부렴 불사문창이【이것은 상란(喪亂)에 공사(公私)가 군핍(窘乏)하여 사자(使者)와 군공(群公)이 모두 미렴부세(微斂賦稅)에 힘씀을 말하는 것이니, 단지 균평(均平)함이 어그러질까 고심하고, 백성들의 고통을 묻지 않을까 걱정함을 말한다.】
【언해역】 사자(使者)가 왕명(王命)을 나누며, 군공(群公)이 각각 관아를 주관하도다! 부세(賦稅)를 고루함에 어긋나는지 걱정하니, 인민(人民)의 고통을 묻는 듯 하지 아니하도다!

萬里煩供給 孤城最怨思孤城 주160)
고성(孤城)
외로운 성. 즉 작자 자신이 머물고 있는 기주(夔州)를 가리킨다.
 指夔州다】

萬里예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5ㄱ

주161)
만리(萬里)예셔
만리(萬里)에서. 먼 지방에서.
供給호 어즈러이 니 주162)
공급(供給)호 어즈러이 니
공급(供給)함을 어지럽게 하니. 즉 군수물자를 공급함을 질서정연하게 하지 못하니.
외로온 城이 안직 주163)
안직
가장. ‘안직’은 ‘최(最)’에 해당하는 고유어로 고려시대의 석독구결의 독법으로도 ‘最’를 ‘[안직]’으로 읽고 있다. 그러나 15세기 언해 문헌에서는 『두시언해』에만 보인다. 『번역노걸대』 등에서 보이는 ‘안직’은 ‘아직’의 뜻이다. ‘안직’에 대해서는 해제 참조. ¶안직(가장) : 驥子아 안직 너를 憐愛노라(驥子最憐渠)〈두시 8:48ㄱ〉. 나그내 예 머리 안직 셰니(客間頭最白)〈두시 23:17ㄴ〉. 안직(아직) : 우리 잡말 안직 니디 마져(咱們閑話且休說)〈번노상:17ㄱ〉. 오나라 오나라 안직 가디 말라 내 너려 말솜 무러지라(來來 且休去 我問伱些話)〈번노상:26ㄱ〉.
怨望야 랑놋다
주164)
안직 원망(怨望)야 랑놋다
가장 원망하여 생각하는구나! 즉 원망하는 마음이 가장 크구나!

【한자음】 만리번공급 고성최원사【고성(孤城)은 기주(夔州)를 가리킨다.】
【언해역】 만리(萬里)에서 공급(供給)함을 어지럽게 하니, 외로운 성(城)이 가장 원망(怨望)하여 생각하는구나!

綠林寧小患 雲夢欲難追王莽 주165)
왕망(王莽)
전한(前漢)의 신하. 신(新)나라의 황제. 기원전 45년-기원후 25년. 중국 전한의 관료이었다가 정권을 잡은 후에 신(新)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된 후 주나라 시대의 치세를 이상으로 삼고 정책을 폈지만 현실성이 결여된 정책들로 정치가 문란해지고 경제 상황도 나빠졌으며, 특히 고구려왕의 칭호를 하구려후(下句麗侯)로 부르게 해 고구려 등 이민족과 충돌하였으며, 민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 결국 멸망하였다.
末에 群盜ㅣ 聚荊州綠林 주166)
형주(荊州) 녹림(綠林)
형주(荊州) 당양(當陽) 동북에 있는 지명. 도적들의 집결지로 문학작품에 많이 쓰인다.
中니 此 喩荊楚 주167)
형초(荊楚)
형(荊)은 초(楚)나라의 옛 이름인데, 대략 옛날 형주(荊州) 지역에 해당한다. 지금의 호북성(湖北省)과 호남성(湖南省) 일대를 가리킨다.
ㅣ 擾亂也ㅣ라 楚王韓信 주168)
한신(韓信)
한 고조 휘하의 장수. ?-기원전 196년. 한 고조 유방의 부하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해 유방의 패권을 결정지었다. 한의 성립 과정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웠으나 결국 모함을 받아 유방의 배척을 받았다.
이 叛커 高祖ㅣ 僞遊雲夢澤 주169)
운몽택(雲夢澤)
고대의 2대 연못. 즉 운몽(雲夢)과 몽택(夢澤).
야 擒信니 此 喩藩鎭跂扈 주170)
유번진기호(喩藩鎭跂扈)ᄅᆞᆯ
‘기(跂)’는 ‘발(跋)’의 오자이다. 〈중간본〉에서 글자의 판독이 어려우나 교정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恐難擒也ㅣ라】

綠林 엇뎨 주171)
엇뎨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後에 오  니 엇뎨 머믈리오(後來鞍馬何逡巡)〈두시 11:18ㄴ〉.
죠고맛 주172)
죠고맛
조그만. 조그마한. 죡-+오+ㅁ+아+ㅅ. ‘죡다’는 ‘쟉다, 젹다, 횩다, 휵다’와 궤를 같이 하는 ‘작다, 적다’ 뜻의 형용사이다. ‘아’는 처격조사일 가능성이 있으며, ‘ㅅ’은 기원적으로는 관형격 조사일 것으로 추측된다. 참조. 죠고맷. 죠고매. 죠고만. 죠고마다. 죠고마치. ¶나 죠고맛 거슬 주어시든 녜 供養지이다(願與我少物 得常供養)〈석상 6:44ㄴ〉. 날호야 녀 죠고맛 매 어긔으르체라(退食遲回違寸心)〈두시 6:14ㄱ〉. 죠고맷 : 뎌 西南 모해 바문 남녁 죠고맷 널문이 긔라(那西南角上 芭籬門南邊 小板門兒便是)〈번노하:1ㄴ〉. 녜 죠고맷  로라(宿昔具扁舟)〈두시 6:44ㄱ〉. 죠고매 :  죠고매 머리 수기거나 일로 像 供養닌 漸漸 無量佛을 보아(惑復小低頭커나 以此로 供養像닌 漸見無量佛야)〈법화 1:221ㄴ〉. 近年 숤 病에 죠고매 머구믈 여렛노니(比年病酒開涓滴)〈두시 8:42ㄴ〉. 죠고만 : 覺 眚과 見의 病이 죠고만 린 것도 훤히 업서(覺眚見病이 廓無纖翳야)〈능엄 1:4ㄴ〉. 죠고마다 : 몯호니 艮岑앳  비치 슬피 죠고마더라〈두시 9:5ㄱ〉 /죠고매다 :  죠고매야 버들 셤기니라(小心事友生)〈두시 24:18ㄴ〉. 죠고마치 : 佛法이 내 이긔도 죠고마치 잇다 야시〈남명 상:14ㄱ〉.
患難이리오 雲夢애 追執코져 호미 어렵도다

【한자음】 녹림영소환 운몽욕난추【왕망(王莽) 말(末)에 도적의 무리가 형주(荊州)의 녹림(綠林)에 모여들었으니, 이는 형초(荊楚)가 요란(擾亂)함을 비유한 것이다. 초왕(楚王) 한신(韓信)이 배반을 하여 한 고조(高祖)가 거짓으로 운몽택(雲夢澤)에 놀러 가서 한신을 사로잡았으니, 이는 번진(藩鎭)이 연이어 발호(跋扈)하면 사로잡음이 어려운 것을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녹림(綠林)은 어찌 조그마한 환난(患難)이겠는가? 운몽(雲夢)에서 붙잡고자 함이 어렵도다!

即事須嘗膽 蒼生可察眉 주173)
담(膽)
웅담(熊膽).
 熊膽이니 味苦니 嘗膽  苦로이  시라 越王句踐 주174)
구천(句踐)
월(越)나라의 임금. ?-기원전 464년. 춘추·전국시대 후기 월나라의 임금으로 책사 범려의 뒷받침으로 당시 화남에서 강세를 자랑하고 있던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이다.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사이에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가 유명하다.
이 與吳戰敗야 出入嘗膽야 遂報吳니라 東方朔 주175)
동방삭(東方朔)
전한 무제 시기의 태중대부(太中大夫). 기원전154-기원전92년. 걸출한 외모, 익살스러운 언변, 거침없는 행동으로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동방삭은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는데,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게 되었다고도 하고, 저승사자를 잘 대접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 言蒼生憂樂을 見其眉면 可察이니라 주176)
창생우락(蒼生憂樂)을 견기미(見其眉)면 가찰(可察)이니라
백성들의 근심과 즐거움은 백성들의 표정을 잘 살피면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두보의 이 시구를 전거로 많은 시인들이 시를 지었다. 예를 들어 기대승(奇大升)은 “劇地煩遊刃 疲民任察眉(일 많은 곳에 칼날 놀림 번거롭고, 파리한 백성의 그 눈썹을 살펴야 하네)”라는 시구를 남겼고, 차천로(車天輅)도 “察眉爲政最良籌(미간 살펴 하는 정사 최고의 양책일 걸)”라는 시를 남겼다.
此 言君主이 須苦心啚難而又宜恤民也ㅣ라 주177)
차(此) 언군주(言君主)이 수고심비난이우의휼민야(須苦心啚難而又宜恤民也)ㅣ라
‘중간본’에는 ‘啚’가 ‘圖’로 되어 있다.

이젯 이 주178)
이젯 이
지금의 일은. 즉 전란이 계속되어 백성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모로매 주179)
모로매
모름지기. 반드시.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凡字ㅣ 必合而成音니)〈훈언 :13ㄱ〉. 이 모로매  고텨(應須理舟楫)〈두시 14:18ㄱ〉.
애 맛볼 디니 주180)
애 맛볼 디니
쓸개를 맛볼 것이니. ‘애’는 창자를 비롯하여 내장 기관을 일반적으로 이르는 단어이다. ¶구리 긷과 쇠 牀애 이 누르며 애 믈어(銅柱鐵牀애 燋背爛腸야)〈영가상:34ㄴ〉. 녜브터 호매 애 그첨직 니(舊好腸堪斷)〈두시 20:18ㄴ〉.
蒼生 可히 눈서블 푤 디니라 주181)
창생(蒼生) 가(可)히 눈서블 푤 디니라
창생(蒼生)은 가히 눈썹을 살필 것이다. 즉 어렵게 사는 백성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그 표정을 잘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자음】 즉사수상담 창생가찰미【담(膽)은 웅담(熊膽)으로 맛이 쓰니 상담(嘗膽)은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여 웅담을 맛보면서 드나들다가 드디어 오나라에 복수를 하였다. 동방삭(東方朔)이 창생(蒼生)이 근심하고 즐거워하는 기미는 눈썹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하였다. 이는 군주(君主)는 모름지기 마음으로 걱정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일을 어렵게 여겨 마땅히 휼민(恤民)에 마음을 써야 함을 말한다.】
【언해역】 곧 지금의 일은 모름지기 쓸개를 맛볼 것이니, 창생(蒼生)은 가히 눈썹을 살필 것이니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5ㄴ

堂猶集鳳 貞觀是元龜【此 言坐議政之堂者 주182)
좌의정지당자(坐議政之堂者)
정치를 논하는 곳에 앉은 사람들. 즉 정치를 하는 관리들.
當以貞觀之治로 爲龜鑑이니라 주183)
당이정관지치(當以貞觀之治)로 위귀감(爲龜鑑)이니라
정치하는 사람들은 당 태종의 태평한 시기를 일컫는 말인 정관의 정치[貞觀之治]로 마땅히 귀감을 삼아야 한다.

議論 堂 주184)
의론(議論) 당(堂)
정사를 집행하는 건물.
애 오히려 鳳  사미 주185)
봉(鳳)  사미
봉황과 같은 사람. 즉 정사를 하는 벼슬아치들.
모닷니 주186)
모닷니
모여 있으니. 몯+아#잇-++니. ‘모닷’이 보이는 문헌은 『두시언해』가 월등히 많은데 ‘-아 잇도다, -아 잇고, -아 잇 고, -아 잇니, -아 잇, -아 잇거늘, -아 잇다가, -아 잇더니’ 등의 표현이 사용된다. ¶축축  金碧ㅅ 氣運ㅣ 모닷고(潤聚金碧氣)〈두시 1:28ㄱ〉. 旗ㅅ 그테 蛟龍이 모닷고(旗尾蛟龍會)〈두시 14:27ㄴ〉.
貞觀이 이 큰 거부비니라 주187)
정관(貞觀)이 이 큰 거부비니라
정관(貞觀)이 큰 거북이니라. 정관(貞觀)의 정치가 큰 귀감이니라. ‘이’는 원문의 ‘시(是)’의 번역으로 중세국어 언해에서는 계사로 쓰인 ‘시(是)’로 관형사 또는 대명사 ‘이’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

【한자음】 의당유집봉 정관시원귀【이것은 의정(議政)하는 당(堂)에 앉은 사람들은 당연히 정관의 치[貞觀之治]로 귀감(龜鑑)을 삼아야 할 것임을 말한다.】
【언해역】 의론(議論)하는 당(堂)에 오히려 봉(鳳)같은 사람이 모였으니, 정관(貞觀)이 큰 거북이네!

處處喧飛檄 家家急競錐 주188)
격(檄)
징병서(徵兵書).
 徵兵書也ㅣ라 急競錐 賦斂이 急小利也ㅣ라】

곧마다 글월 주189)
글월
여기서는 징병서를 말함.
요미 주190)
요미
날림이. -+이+오+ㅁ+이. ‘이’는 사동접미사이다.
숫두워리고 주191)
숫두워리고
재잘거리고. 시끄럽고. 숫두워리-+고. ‘숫두워리-’는 주로 ‘훤(喧)’의 번역어로 쓰였다. 참고. 수-, 수-, 숫워리-, 숫어리-, 수어리-, 수어리-, 수워리-. ¶숫두워리- : 王ㅅ 알 드라 말이 재야 숫두리더니〈월천58ㄱ〉. 員의  안핸 숫두워려 블로미 업도다(太守庭內不喧呼)〈두시 9:31ㄱ〉. 숫워리- : 숫워려셔  가온  수를 업텨 머구라(喧呼且覆杯中淥)〈두시 3:53ㄴ〉. 수- : 近閒애 드로니 詔書ㅣ 려 都邑에셔 수니(近聞下詔喧都邑)〈두시 17:29ㄴ〉. 수- : 수 소리 萬方애 니도다(喧聲連萬方)〈두시 10:20ㄱ〉. 수워리- : 수워리  避야 모딘 범 잇  히 너기니(避喧甘猛虎)〈두시 9:9ㄴ〉. 숫어리- : 토아 沐浴야 짐즛 서르 슷어리다(爭浴故相喧)〈두시 10:6ㄴ〉 /수어리- : 黃牛ㅅ 峽엣 므리 수어리다(黃牛峽水喧)〈두시 11:49ㄴ〉. 수어리- : 엇뎨 져비 새 수어리미 업스리오(空聞燕雀喧)〈두시 21:10ㄱ〉. 수워리- : 수워려 토 해 채 텨 가 게을오라(喧爭懶著鞭)〈두시 20:8ㄴ〉.
집마다 솔옷 주192)
솔옷
송곳. ¶우흰 片 맛디새도 업고 아랜 솔옷 셰욜  업스니(上無片瓦고 下無卓錐니)〈금삼 4:6ㄴ〉. 錐 솔옷 쵸〈훈몽 중:7ㄴ〉. 그티 버서낫 솔옷 든  지노라(穎脫撫錐囊)〈두시 3:12ㄴ〉.
귿 니르리 토미 주193)
토미
다투미. 토-+오+ㅁ+이. ¶내 지븨 이 저긔 여듧 나랏 王이 난겻기로 토거늘(我在家時 八國諸王 競來見求)〈석상 6:7ㄱ〉.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中原有鬪爭)〈두시 5:29ㄴ〉.
도다
주194)
솔옷 귿 니르리 토미 도다
송곳 끝까지 다투미 빠르도다. 집집마다 송곳 끝 같은 작은 이익도 앞다투어 챙긴다는 뜻이다.

【한자음】 처처훤비격 가가급경추【격(檄)은 징병서(徵兵書)이다. 급경추(急競錐)는 부렴(賦斂)이 작은 이익에까지 미친다는 말이다.】
【언해역】 곳곳마다 징병서(徵兵書) 날림이 시끄럽고, 집집마다 송곳 끝에 이르기까지 다툼이 빠르도다!

蕭車安不定 蜀使下何之漢哀帝 주195)
한 애제(漢哀帝)
전한의 13대 황제. 기원전 27-기원전 1년. 후궁인 소의 동씨(昭儀董氏)의 남동생 동현(董賢)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고대의 성소수자로 유명하다.
時예 南郡 주196)
남군(南郡)
중국 고대의 군의 이름으로 진나라 소양왕(昭襄王) 시대에 설치하였다. 지금의 호북성 형주(荆州) 일대를 가리킨다.
에 盜起어 蕭育 주197)
소육(蕭育)
서한의 대신. 한 애제(哀帝) 때에 남군 태수(南郡太守)를 하였다.
이 爲太守대 盜賊이 息니라 武帝 주198)
무제(武帝)
한 세종 효무황제 유철(漢世宗孝武皇帝劉徹). 기원전 156년-기원전 87년. 전한의 제7대 황제로 재위 기간은 기원전 141-기원전 87년이다. 유학을 바탕으로 하여 국가를 다스렸으며 해외 원정을 펼쳐 흉노를 크게 무찌르고, 남월, 위만조선 등을 멸망시켜 당시 한족 역사상 두 번째로 넓은 영토를 만들어 전한의 전성기를 열었다.
時예 蜀人이 亂커 주199)
촉인(蜀人)이 난(亂)커
촉 지방 사람들이 난을 일으키거늘.
使司馬相如 주200)
사마상여(司馬相如)
이 시의 “문원(文園)이 마침내 괴외고 한각(漢閣)애 제 열우며 므드니라(文園終寂寞 漢閣自磷緇)” 구절의 해설과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
야 諭父老以安之니 時예 盜賊이 不服故로 以蕭車ㅣ 奔走不定과 喩蜀之使도 示知所之로 比之니라 주201)
이소거(以蕭車)ㅣ 분주부정(奔走不定)과 유촉지사(喩蜀之使)도 시지소지(示知所之)로 비지(比之)니라
소육(蕭育)이 탄 수레가 달려가나 안정되지 못하고, 촉으로 가는 사자(使者)도 가는 곳을 보아 아는 것을 비유하였다. 한나라 애제(哀帝) 때 남군(南郡) 지역에 도적이 일어났는데, 소육(蕭育)이 태수를 하면서 도적이 그쳤고, 한 무제(武帝) 때에 촉 지방에서 난이 일어났는데,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사자로 보내어 부로(父老)들을 달래어 안정시킨 것을 당시의 상황과 비교한 것이다.

蕭育의  술위 便安히 定止 몯얏도소니 주202)
몯얏도소니
못하고 있으니. 몯-+아#잇+돗+오+니. ‘-도소니’는 『두시언해』에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 구성 성분에는 감동법 선어말어미 ‘돗’과 화자 호흥의 ‘오’, 그리고 연결어미 ‘니’가 있다. 현대국어의 연결어미 ‘-니’에 약간의 감탄, 감동의 의미가 더 있는 것이다. 현대국어로는 선어말어미 ‘돗’을 번역할 수 없어 단순히 ‘-니’로 번역하였다. ¶바 가다가 귓것과 모딘 이 므엽도소니 므스므라 바 나오나뇨(今夜故闇 若我往者 為惡鬼猛狩見害)〈석상 6:19ㄴ〉. 尙書의 功業이 千古ㅅ 사게 건내도소니(尙書勳業超千古)〈두시 25:48ㄱ〉.
蜀로 가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ㄱ

使者
주203)
촉(蜀)로 가 사자(使者)
촉(蜀)으로 가는 사자는. 즉 사마상여(司馬相如)는.
려 어드러 주204)
어드러
어디로. ‘어드러’가 쓰인 문장은 대부분 방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아래의 『월인석보』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방향성이 있다기보다는 ‘어찌’의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듸 어드러셔 오시니(仁者何來)〈석상 23:40ㄴ〉. 울히 여리니 門을 어드러 向리오(籬弱門何向)〈두시 15:17ㄴ〉.
가니오 주205)
가니오
가겠는가? 가-+니+고. 설명의문 어미 ‘-니오’는 일반적으로 ‘-뇨’로 나타나지만 『두시언해』에서는 ‘-니오’로만 나타난다. 특히 ‘가니오’의 예는 『두시언해』에서만 찾을 수 있다. ¶아와 누의왜 蕭條히 제여곰 어드러 가니오(弟妹蕭條各何往)〈두시 11:28ㄴ-29ㄱ〉. 돌 모라 어느  海東애 가니오(驅石何時到海東)〈두시 15:35ㄱ-ㄴ〉.

【한자음】 소거안부정 촉사하하지【한나라 애제(哀帝) 때에 남군(南郡)에 도적이 일어나거늘, 소육(蕭育)이 태수를 하니 도적이 그쳤다. 무제(武帝) 때에 촉지방 사람들이 난을 일으키거늘,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사자로 보내어 부로(父老)들을 달래어 안정시켰다. 지금 도적이 복종하지 않으므로, 소육(蕭育)이 수레를 타고 달려간 곳이 일정하지 않았던 것처럼, 촉으로 가는 사자(使者)도 가는 곳을 보아 아는 것을 비유하였다.】
【언해역】 소육(蕭育)이 탄 수레가 편안히 정지하지 못하였으니, 촉(蜀)으로 가는 사자는 내려서 어디로 가겠는가?

釣瀨踈墳籍 耕巖進奕碁【此 ㅣ 以嚴光의 釣瀨 주206)
엄광(嚴光)의 조뢰(釣瀨)
‘조뢰’는 물가의 낚시를 던질 만한 여울이 있는 곳으로 한나라 엄광이 낚시를 세 번 던지고 나서 부춘산(富春山)으로 밭을 갈러 갔는데 후인이 엄광이 낚시하던 곳을 ‘엄릉뢰(嚴陵瀨)’, 그 자리를 ‘엄자릉조대(嚴子陵釣臺)’라 불렀다. 엄광이 낚시를 드리운 곳을, 은자를 대신하여 사용하였다.
鄭子眞의 耕巖 주207)
정자진(鄭子眞)의 경암(耕巖)
‘경암’은 밭 갈던 곳의 바위라는 뜻으로 한나라 정자진은 벼슬을 하지 않고 바위 아래에서 밭을 갈았는데, 이것으로 은자를 가리킨다.
으로 自比니 自此以下 皆自敍之詞ㅣ라】

여흐레 주208)
여흐레
여울에. 여흘+에.
고기 낫글 주209)
낫글
낚을. -+을.
저긘 글워를 踈히 고 바회예 받 갈 저긘 바독 주210)
바독
바둑.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의하면 두보는 바둑을 잘 두었다고 한다.
긔 주211)
긔
장기.
나노라 주212)
나노라
나아가노라. 낫-+오++오+라.
주213)
바독 긔 나노라
기주(蘷州)에서의 어려운 삶 속에서도 여가를 즐기는 두보의 상황을 서술한 부분이다.

【한자음】 조뢰소분적 경암진혁기【이것은 두보가 엄광(嚴光)의 조뢰(釣瀨)와 정자진(鄭子眞)의 경암(耕巖)으로써 스스로를 비유하니, 이 이하는 다 자기를 서술한 글이다.】
【언해역】 여울에 고기 낚을 적에는 글을 소홀히 하고, 바위에 밭 갈 적에는 바둑 장기에 나아가네!

地蒸餘破扇 冬暖更纖絺

히  니 주214)
히  니
땅이 찌는 듯하니. 기주(蘷州)의 여름은 습기가 많고 덥다. ‘’은 ‘같음’을 뜻하는 명사다. 15세기 국어에서는 현대국어와 같이 ‘관형사형 어미+-’, ‘동사어간+-’ 등의 구성이 있다. ¶(의존명사) : 中士 道 드르면 잇  업슨 고(中士 聞道면 若存若亡고)〈법화 3:147ㄴ〉. 洞庭이 믌겨리 부치고 江漢이 횟도로 혀 니 虎牙와 銅柱ㅣ 다 기우리혓도다(洞庭揚波江漢回 虎牙銅柱皆傾側)〈두시 25:44ㄴ〉. (어미) : 뎌 藥師瑠璃光如來ㅅ 功德을 내 일 야(如我稱揚彼藥師琉璃光如來所有功德)〈석상 9:26ㄱ〉. 말왐  니 호매 믈 흘류믈 노니(萍漂忍流涕)〈두시 8:44ㄱ〉. 관형사형 어미+- : 耶輸ㅣ 이 말 드르시고 미 훤샤 前生앳 이리 어제 본 야 즐굽 미 다 스러디거늘(耶輸陀羅聞是語已 霍然還識宿業因緣 事事明了如昨所見 愛子之情自然消歇)〈석상 6:9ㄱ〉. 韋賢이 처 漢을 돕 고 范叔이 마 秦의 갓 도다(韋賢初相漢 範叔巳歸秦)〈두시 19:4ㄴ〉. 동사어간+- : 卉木 叢林과  여러 藥草ㅣ 諸種性티 초 저쥬믈 니버 各各 生長 得니라 (卉木叢林과 及諸藥草ㅣ 如其種性야 具足蒙潤야 各得生長ᄐᆞᆺ니라)〈법화 3:21ㄱ〉. 奇異 즘이   거시 별 러디니(異獸如飛星宿落)〈두시 5:36ㄴ〉.
헌 부체 주215)
헌 부체
헐은 부체. 즉 부서진 낡은 부체.
나맷고 주216)
나맷고
남아 있고. 남-+아#잇-+고.
겨리 주217)
겨리
겨울이. 겨+이.
더우니 주218)
더우니
따뜻하니. 덥-+으니. 15세기의 ‘덥-’은 현대국어의 ‘덥다’의 뜻 이외에 ‘따뜻하다, 뜨겁다’의 뜻도 있다.
  츩오 주219)
츩오
칡옷을. 츩#옷+.
닙노라 주220)
닙노라
입노라. 닙-++오+라. ¶모매 됴 옷 닙고져  씨라〈석상 3:22ㄴ〉.  서리예 누비옷 닙고 니노니(江湖漂短褐)〈두시 21:1ㄴ〉.
주221)
히  니 헌 부체 나맷고 겨리 더우니   츩오 닙노라
이 구는 기주(蘷州)의 날씨를 묘사한 부분이다.

【한자음】 지증여파선 동난경섬치【땅이 찌는 듯하니 낡은 부채 남아 있고, 겨울이 따뜻하니 또 가는 칡옷을 입노라!】

豺遘哀登楚 주222)
시구애등초(豺遘哀登楚)
‘시구애등초(豺遘哀登楚)’의 ‘초(楚)’는 ‘찬(粲)’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麟傷泣象尼王粲 주223)
왕찬(王粲)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 177~217년. 저작으로는 시(詩), 부(賦), 논(論), 의(議)를 모두 합쳐 60편 정도가 있는데, 대표적인 시로는 「종군시(從軍詩)」와 「칠애시(七哀詩)」가 있다.
詩예 豺虎方遘患 주224)
시호방구환(豺虎方遘患)
이리와 호랑이 같은 자들이 환란을 일으킨다네. 왕찬(王粲)의 칠애시(七哀詩)의 한 구절.
이라며 又作登樓賦 주225)
등루부(登樓賦)
왕찬(王粲)이 지은 부(賦)의 하나.
니 豺虎 주226)
시호(豺虎)
승냥이와 호랑이. 즉 난(亂)을 일으키는 자들.
 喩亂다 象尼 주227)
상니(象尼)
이구산(尼丘山)을 닮은 공자의 머리.
 孔子之首ㅣ 象尼丘山니 此 ㅣ 以傷時로 自比니라】

亂 맛나 楚ㅅ 樓 우희 주228)
우희
위에. 우ㅎ+의. ¶上 우히니 無上正眞道理 우 업슨 正 진딧 道理라〈석상 3:10ㄱ〉.  란 漢水ㅅ 우흘 고(清思漢水上)〈두시 2:13ㄴ〉.
오 사미
주229)
난(亂) 맛나 초(楚)ㅅ 누(樓) 우희 오 사미
난(亂)을 만나 초(楚)의 누각(樓閣) 위에 오른 사람이. 즉 왕찬(王粲)과 같은 신세의 두보 자신.
슬코 주230)
슬코
슬퍼하고. 슳-+고. ‘슳-’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녀름 지 아비 膠漆 바툐 슬허 코(田父嗟膠漆)〈두시 3:3ㄴ〉’ 구절 참조.
麟 슬허 주231)
슬허
슬퍼하여. 슳-+어. ‘슳-’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녀름 지 아비 膠漆 바툐 슬허 코(田父嗟膠漆)〈두시 3:3ㄴ〉’ 구절 참조.
尼丘山 주232)
이구산(尼丘山)
산동성 곡부에 있는 산. 공자의 출생지이다. 『사기』에 의하면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纥)과 어머니(颜徵)이 이구산의 산신에게 기도를 드린 후 공자를 낳았다 한다.
시니 주233)
시니
같으시니. -+시+니.
우르시니라 주234)
우르시니라
우시니라. 울-+으시+니+라. 15세기 국어의 ‘울-’은 활용할 때 ‘ㄹ’이 탈락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참고. 우르다. 우르적시다. ¶王이 보시고 해 업더디여 우르시며 俱夷 고개 안고 우르시더라(王······ 自投墮地 具夷悲哀抱白馬頸)〈석상 3:34ㄴ〉. 十月에 荊州ㅅ 南녀긔셔 울에 怒야 우르다(十月荊南雷怒號)〈두시 5:37ㄱ-ㄴ〉.

【한자음】 시구애등초 인상읍상니【왕찬(王粲)의 시에, “승냥이와 호랑이가 바야흐로 환난을 만났구나(豺虎方遘患)”라고 하며 또 등루부(登樓賦)를 지으니, 승냥이와 호랑이는 난(亂)을 비유한다. 상니(象尼)는 공자의 머리가 이구산(尼丘山)을 닮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두보가 애처로운 시기로 스스로 비교한 것이다.】
【언해역】 난(亂)을 만나 초(楚)의 누각(樓閣) 위에 오른 사람이 슬퍼하고, 기린을 슬퍼하여 이구산(尼丘山) 같으신 것이 우시니라!

衣冠迷適越 藻繪憶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6ㄴ

遊睢迷適越 주235)
미적월(迷適越)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송(宋) 나라 사람 중에 장보관(章甫冠)을 사 가지고 월(越)나라로 팔러 간 사람이 있었는데, 월나라 사람들은 모두 단발(斷髮)을 하고 문신(文身)을 새겼으므로 소용이 없었다.”라는 구절에 나오는 말로, 일이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 借用莊子之語니 言欲離夔州以下荊楚 주236)
형초(荊楚)
형주(衡州)와 초(楚) 지역을 아울러 이르는 말. 현재의 호북성(湖北省) 지역이다.
 未能也ㅣ라 睢水 주237)
휴수(睢水)
하남성(河南省) 상구시(商丘市)에 흐르는 강.
ㅣ 在宋州 주238)
송주(宋州)
현재의 하남성(河南省) 상구시(商丘市).
니 其處人이 能織藻繪 주239)
조회(藻繪)
화려한 무늬.
니 ㅣ 少日所遊故로 思之也ㅣ라】

衣冠로 越에 가 迷亂호니 주240)
미란(迷亂)호니
미란하니. 즉 정신이 혼미하여 어지러우니.
빗난 주241)
빗난
빛난. 빛#나-+ㄴ. 사동사는 ‘빗내-’이다. ¶太子ㅣ 苦行 오래 샤 히 여위실  金色光 더옥 빗나더시다(坐道樹下形體羸瘠 唯有金色光明益顯)〈석상 3:39ㄴ〉. 지블 度量야 지미 빗내 됴히 아니노니(度堂匪華麗)〈두시 6:45ㄴ-46ㄱ〉.
繪綵 주242)
회채(繪綵)
화려한 무늬를 놓은 비단.
 睢水에 노던 저글 노라 주243)
노라
생각하노라. 중세국어의 ‘다’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뜻으로 쓰이나 후자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뜻으로 쓰인 용례는 ‘거문고 누각(琴臺)’의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 구절 참조. ¶뫼 사 믈리시고 오 기픈 道理 더시니(除去侍衛端坐思惟)〈석상 3:19ㄴ〉. 몰앳 프레 게을이 오라  부 므를 놋다(懒眠沙草爱風湍)〈두시 22:12ㄴ〉.

【한자음】 의관미적월 조회억유휴【미적월(迷適越)은 장자(莊子)의 말을 빌려 쓴 것이니, 말하자면 기주(夔州)를 떠나 형초(荊楚)로 내려가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휴수(睢水)가 송주(宋州)에 있는데, 그곳 사람들이 무늬 그림을 잘 짜니, 두보가 며칠 놀러간 적이 있으므로 이를 생각한 것이다.】
【언해역】 의관(衣冠)으로 월(越)에 감을 미란(迷亂)하니, 빛난 회채(繪綵)를 휴수(睢水)에 놀던 적을 생각하네!

賞月迎秋桂 傾陽逐露葵賞月 주244)
상월(賞月)
달을 감상하는 것.
 言時景 주245)
시경(時景)
때를 알리는 경치.
고 傾陽 주246)
경양(傾陽)
해가 기우는 것.
寓意戀君 주247)
우의연군(寓意戀君)
임금을 생각하는 것을 빗대어 풍자함.
니라】

 賞翫야 주248)
상완(賞翫)야
상완하여. 즉 좋아하여 보고 즐겨.
 桂樹 주249)
계수(桂樹)
계수나무. 즉 달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계수나무.
맛고 주250)
맛고
맞고. 맞이하고. 맞-+고. ¶  아기아리 며 죄  그티니 그딋  맛고져 더다(有兒端正殊妙 卓略多奇)〈석상 6:15ㄱ〉. 말 펴호 반기 法律에 맛고(遣辭必中律)〈두시 6:19ㄱ〉.
예 기우료 이스렛 葵花 주251)
이스렛 규화(葵花)
이슬의 해바라기를. 즉 이슬을 머금은 해바라기를.
좃노라

【한자음】 상월영추계 경양축로규【달을 감상하는 것은 시경(時景)을 말한 것이고, 해가 기욺은 임금을 생각하는 것을 비유하였다.】
【언해역】 달을 상완(賞翫)하여 가을의 계수나무를 맞고, 해를 기울여 이슬의 해바라기를 쫓네!

太庭終返朴 京觀且僵尸【太庭氏 淳朴之世也ㅣ라 京 高丘ㅣ오 觀 如闕形니 古者애 戮罪人야 積尸고 封土其上야 以爲京觀더니 此 言當誅討叛亂而時世ㅣ 返於淳朴也ㅣ라】

太庭 주252)
태정(太庭)
중국의 전설상의 치세 기간. 대정(大庭)이라고도 한다. 복희씨와 그의 여동생 여와씨 이후에 공공씨(共工氏), 태정씨(太庭氏), 백황씨(柏皇氏), 중앙씨(中央氏), 역륙씨(歷陸氏), 여련씨(驪連氏), 혁서씨(赫胥氏), 존로씨(尊盧氏), 혼돈씨(混沌氏), 호영씨(昊英氏), 주양씨(朱襄氏), 갈천씨(葛天氏), 음강씨(陰康氏), 무회씨(無懷氏)가 차례로 대를 이어, 15대를 계승하였는데 모두 태평한 시대를 대표한다.
時節티 매 주253)
매
마침내. ‘종(終)’의 번역어이다. ¶다가 有에 자며 無에 걸면 매 邊見에 가리니(如其執有며 滯無면 則終歸邊見리니)〈영가하:84ㄴ〉. 매 蛟螭와 다 섯고니 엇뎨 져비 새 수어리미 업스리오(竟與蛟螭雜 空聞燕雀喧)〈두시 21:10ㄱ〉.
淳朴호매 도라가리니 京觀 주254)
경관(京觀)
대궐 모양의 높은 언덕.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7ㄱ

 주거믈 업티리로다 주255)
업티리로다
엎칠 것이도다. 엎-+티+리+도+다. 참고. 업더디다. 엎다. 업더눕다. 업더리왇다. 업더리티다. 업더리혀다. 업더이다. 업더지다. 업데다. 업데우다. 업듣다. 업듸다. 업디다. 업다. ¶업티다 : 몸 업시 며 性을 망멸고 크면 종족을 업티며 嗣 絶니〈소학 5:29ㄱ〉. 白帝城ㅅ 아랜 비 그르스로 업티 놋다(白帝城下雨飜盆)〈두시 12:29ㄴ〉. 업더디다 : 王이 보시고 해 업더디여 우르시며(王覩寶衣車匿白馬來還 不見太子 自投墮地)〈석상 3:34ㄴ〉. 그저긔 무적 디나 던 거시 외오 번 업더디니(當時曆塊誤一蹶)〈두시 17:27ㄴ〉. 업더리다 :  사은 러 반만 답례고 져기 애 사은 그 업더리믈 기들워 답례라〈여씨화산38ㄱ〉. 머므러 벼개예 업더렷 로다(稽留伏枕辰)〈두시 20:41ㄱ〉. 업더러디다 : 金ㅅ 사 가히라 구짓거늘 金ㅅ 사미 어 내야 치 헐에 티니 셜워 업더러디니라(金人爲狗 金人曵若水出 擊之敗面 氣結仆地)〈삼강런던충:18ㄱ〉. 업더리왇다 : 여러 가짓 고툐 다 호  됴티 아니커든 病닐 업더리와다 뉘이고(以諸治皆至而 猶不差捧病覆臥之)〈구급상:36ㄱ〉. 업더리티다 : 어딘 사 믜오 원슈 티 고 죄 지 음식 티 야 져그면 모 배아 목수 멸고 크면 宗族 업더리텨 조 니 긋게 니(疾良善如讎隙며 犯形憲如飮食이니 小則隕身滅性고 大則覆宗絶嗣ㅣ니)〈번소 6:31ㄱ〉. 업더리혀다 : 소 두위혀 구루믈 짓고 소 업더리혀 비 니(翻手作雲覆手雨)〈두시 25:55ㄴ〉. 업더이다 : 그 남지니 뉘으처 해 업더옛거늘(男子見他呵責 卽自悔過自身投地)〈월석 1:44ㄱ〉. 업데다 : 摩耶ㅣ 해 업데샤  고기 너기시니 結使ㅣ 스러디거늘(摩耶五體投地 專精正念 結使消伏)〈석상 11:3ㄱ〉. 업데이다 : 悠悠히 벼개예 업데여셔 왼소로 虛空애 그를 스노라(悠悠伏枕左書空)〈두시 11:14ㄴ〉. 업데우다 : 므레 딘 사로    우희  업데우고(却令溺水之人將肚橫覆相抵在牛背上)〈구급상:71ㄱ〉.

【한자음】 태정종반박 경관차강시【태정씨(太庭氏)는 순박한 세상을 말한다. 경(京)은 높은 언덕이고, 관(觀)은 대궐 모양이니, 옛날에 죄인을 살육하여 시체를 쌓고 그 위에 흙을 덮어 경관(京觀)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응당 반란군을 주토(誅討)하여 난시(亂時)의 세상이 순박한 때로 돌아가야 함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태정(太庭) 시절같이 마침내 순박함에 돌아갈 것이니, 경관(京觀)에 또 시체를 엎칠 것이도다!

高枕虛眠晝 哀歌欲和誰

노피 주256)
노피
높이. 높-+이. ‘기리’ 등의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 구절 참조.
벼개 주257)
벼개
베개. ¶빗난 돗 겨펴 오 블근 벼개 노코  쇼 메우니(重敷婉筵고 安置丹枕고 駕以白牛니)〈법화 2:73ㄱ〉. 벼개 노피 벼여시니 먼  믌 소로다(高枕遠江聲)〈두시 2:28ㄱ〉.
볘여 주258)
볘여
베어. 볘-+어. ¶그저긔 世尊이 七寶床애 北녁 볘샤 올녀브로 누샤(爾時世尊 (三反入諸禪定 三反示誨衆已) 於七寶床右脅而臥)〈석상 23:17ㄴ〉. 벼개 노피 볘여 누우니 몸과 괘 도다(高枕表神清)〈두시 22:19ㄱ〉.
나죄 주259)
나죄
낮에. 『두시언해』에는 ‘나조ㅎ’와 ‘나죄ㅎ’가 쓰였는데 후자는 ‘낮’과 ‘저녁’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낮’의 의미로 쓰였다. ¶낮 : 西王母ㅣ 나죄 려오니 구 旗ㅣ 두위잇놋다(王母晝下雲旗翻)〈두시 9:9ㄱ〉. 저녁 : 나죄 먹논 거시 나못 거프리로다(暮食仍木皮)〈두시 25:36ㄴ-37ㄱ〉.
虛히 주260)
허(虛)히
허하게. ¶雜想 덜오  虛히 야 치샤 받오니라(刳除雜想고 虛心受敎也ㅣ라)〈능엄 7:69ㄱ〉. 시울 울여 虛히 쏘디 아니다라(鳴弦不虛發)〈두시 10:26ㄱ〉.
조오노니 주261)
조오노니
조니. 졸-+오++오+니. ¶眠 조오롬 면〈훈몽상15ㄴ〉. 나리 늣록 오히려 시러곰 조오더니라(日晏犹得眠)〈두시 25:39ㄱ〉.
슬픈 놀애 주262)
슬픈 놀애
슬픈 노래. 즉 두보의 시.
 뉘 對答고져 리오

【한자음】 고침허면주 애가욕화수
【언해역】 높이 베개 베고 낮에 헛되이 조니, 슬픈 노래를 누가 대답하고자 하겠는가?

南宮載勳業 凡百慎交綏漢明帝 주263)
한 명제(漢明帝)
후한의 제2대 황제. 28-75년. 광무제의 네 번째 아들.
畵二十八將於南宮雲臺 주264)
화이십팔장어남궁운대(畵二十八將於南宮雲臺)
『후한서』에는 한 명제(明帝) 때에 남궁(南宮)의 운대(雲臺)에서 전대(前代)에 공이 많은 등우(鄧禹) 등 28명의 장군의 화상을 그렸다. ‘운대(雲臺)’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雲臺예 자 지즈로 阻隔나(遂阻雲臺宿)’ 구절 참조.
니라 交綏 주265)
교수(交綏)
양쪽 군대가 서로 물러남.
 兩軍이 不戰而退爲交綏ㅣ라 此 戒諸將이 欲成功圖像인댄 當以交綏로 爲愼야 必决戰而後可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南宮 주266)
남궁(南宮)
남궁. 한 명제 때에 여기에 28명의 장수를 그려 놓았다고 한다.
에셔 勳業 주267)
훈업(勳業)
큰 공로가 있는 업적.
載錄니 주268)
재록(載錄)니
재록하니. 즉 책이나 문서에 기록하여 실으니.
믈읫 주269)
믈읫
무릇.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凡字ㅣ 必合而成音니)〈훈언 13ㄱ〉.  興에 아디 몯게라 믈읫 몃 마릿 그를 지니오(春興不知凡幾首)〈두시 22:16ㄱ-ㄴ〉.
사 交綏호 삼가라 주270)
교수(交綏)호 삼가라
교수함을 삼가라. 즉 싸워서 반란군을 격퇴시키지 않고 합의 하에 적당히 물러나는 것을 삼가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남궁재훈업 범백신교수【한나라 명제(明帝)가 28명의 장수를 남궁(南宮)의 운대(雲臺)에 그렸다. 교수(交綏)는 양군(兩軍)이 싸우지 않고 물러나 서로 편안한 것이다. 이것은 여러 장수가 성공하고자 하면 응당 교수(交綏)를 삼가여 반드시 결전(决戰)한 이후에 가능함을 훈계한 것이다.】
【언해역】 남궁(南宮)에서 훈업(勳業)을 재록(載錄)하니, 무릇 사람은 교수(交綏)함을 삼가라!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6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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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기부서회 사십운(夔府書懷四十韻) : 이 시는 대력(大曆) 원년(766) 가을 기주(蘷州, 사천 奉節)에서 지은 시이다. 안녹산의 군대가 처음 계북(薊北)에서 난을 일으킨 때부터 시작하여, 현종이 촉에 피난을 간 것, 숙종이 영무(靈武, 감숙 영무)에서 즉위하였던 사실, 두보가 부주(鄜州, 섬서 부현)를 지날 때 반군이 이미 그 곳까지 참호를 건설하였음을 말하고, 숙종이 장안과 낙양을 수복한 다음 제일 먼저 사당을 수리했으며 임종 전에 곽자의(郭子儀)를 침전 안으로 불러 유언을 남긴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당서(唐書)』에는 “보응 원년(762) 4월에 황상께서 상태가 좋지 않자 곽자의를 침실로 불러들여 ‘하동의 일은 경에게 맡기노라’라고 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에는 숙종과 대종 때의 병화의 시말, 당시 조정의 폐단, 기주 주민의 궁핍한 삶이 기록되었고 당시의 상황에 대한 두보 자신의 견해가 피력되기도 하였다.
주002)
녜 : 옛날. ‘녜’는 ‘녜로, 녜로브터, 녜록브터, 녜 브터, 녜로셔, 녜롯, 녜록, 녜브터’ 등의 형태로 쓰이며, 형용사 파생접미사 ‘--’이 결합된 ‘녜다’도 있다. ¶녜 졈던 사도 오라면 늙니(昔曾少壯 血氣衰變)〈석상 3:17ㄱ〉. 녜 서르 디나가던  이제 몯노라(昔者相過今不得)〈두시 25:40ㄴ〉.
주003)
녜 하서(河西)ㅅ 위(尉) 마로니 : 두보는 44세 때인 755년(천보 14년)에 처음으로 하서 현위(河西懸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우위솔부병조참군(右衛率府兵曹參軍)으로 전임되어 취임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 책의 ‘관직이 정해진 후 재미 삼아[官定後戱贈]’ 참조.
주004)
처 : 처음. ¶始 처미라〈월석 1:석상서2ㄴ〉. 冬至 니른 後에  처 기니(冬至至後日初長)〈두시 10:43ㄴ〉.
주005)
계북(薊北) : 계주(薊州). 즉 현재 톈진시(天津市) 계현(蓟縣)을 중심으로 한 지역. 안녹산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지역이다. 안녹산은 755년(천보 14) 11월에 범양(范陽, 현재 북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하북(河北)의 여러 주를 함락하고 12월에는 낙양을 함락시켰다.
주006)
사려(師旅) : 군대. 여기서는 계주(薊州)의 북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안녹산의 군대.
주007)
니러나더라 : 일어나더라. 닐-+어#나-+더+라. ‘니러나-’는 ‘닐-’과 ‘나-’가 결합된 복합동사다. ‘-더-’는 증거성 선어말어미이다. ‘-더-’와 결합하는 종결어미 ‘-다’는 ‘-라’로 바뀐다.
주008)
명위(名位) : 이름과 지위. 관직. 관명(官名)과 관위(官位).
주009)
늣거 : 늦게야. 늣-+거+. ‘’는 강세 첨사이다. 두보는 44세이던 755년(천보 14)에야 비로소 하서 현위(河西縣尉)에 제수되었고, 취임하지 않고 있자 우위솔부병조참군(右衛率府兵曹參軍)으로 전임되었다.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凡字ㅣ 必合而成音니)〈훈언 13ㄱ〉. 오 비릇 구루미 업도다(今日始無雲)〈두시 23:7ㄴ〉.
주010)
성랑(省郞) : 벼슬. 성과 낭은 각각 문하성(門下省)의 성(省)과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의 랑(郞). 즉 벼슬을 뜻함. 두보는 처음 현종 대에 우위솔부병조참군(右衛率府兵曹參軍)으로 벼슬길을 시작하여 숙종 대 봉상(鳳翔)에서 좌습유(左拾遺)가 되어 문하성(門下省)에서 근무하였고, 성도에서 엄무(嚴武)의 추천으로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이 되어 벼슬을 하였다.
주011)
더듸호 : 더디게 함을. 더듸(부사)#+오+ㅁ+. ‘더듸’는 『남명집언해』, 『내훈』, 『백련초해』 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부사로 기능했으며, 현대국어의 ‘더디다’의 뜻인 형용사 ‘더듸다’도 있었다. 즉 형용사 ‘더듸다’와 부사 ‘더듸’는 용언어간이 바로 부사가 되는 예의 하나이다. 이러한 예로는 ‘바다~바, 하다~하, 가초다~가초, 마초다~마초’ 등이 있다. 중세국어에서도 현대국어와 마찬가지로 ‘부사+다’ 구성이 쓰였는데, 형용사 ‘더듸다’의 예는 여러 문헌에서 볼 수 있으나, 부사 ‘더듸’와 ‘다’의 결합한 구성인 ‘더디다’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더듸; 兩校尉 큰 病이 잇니 다가 주그면 날로 예 刻혼 애와툐 기리 머거시리니 吉時 미처 홀디라 더듸 머므로미 몯리다(兩校尉 有大病니 如今不諱면 使臣으로 長抱刻骨之恨이니 宜及吉時라 不可稽留ㅣ니다)〈내훈 2:52ㄴ〉. 늘거 가매 보미 더듸 가과뎌 願노라(老去願春遲)〈두시 10:16ㄱ〉. 더듸다; 이런로 더듸며  功이 날와 劫괘 서르 倍리라(故로 遲速之功이 日劫相倍라시니)〈능엄 4:100ㄴ〉. 면  뉘 닐오 더듸다 뇨(豐年孰雲遲)〈두시 5:34ㄴ〉. 더듸다; 몸 받 가다가 니러나 더듸 아니도다(躬耕也未遲)〈두시 6:34ㄴ〉. 고지 衰殘 격지 신고 거로 더듸호라(花殘步屐遲)〈두시 25:22ㄱ〉.
주012)
츠기 : 한스럽게. 언짢게. ‘츠기’는 원문의 ‘한(恨)’에 대응된다. ¶뒤도라 날 라다가 보디 몯면 시름야 츠기 너기리라(不應餘轉 若我女反顧後 望不見我者 令女憂苦)〈석상 11:29ㄴ〉. 구틔여 어려운 길흘 츠기 너기디 아니노라(不敢恨危塗)〈두시 2:23ㄱ-ㄴ〉.
주013)
너겨리아 : 여기겠는가? 여길 것인가? 너기-+어+리+아. 『두시언해』에서는 ‘부사(어)+너기다’의 형식이 많다. ‘-리아’는 의문어미로, 15세기 문헌 중에서는 『두시언해』에만 출현하며 16세기 문헌 중에서는 『번역소학』과 『이륜행실도』에 출현한다. 15세기의 다른 중세국어 문헌에서는 ‘리’와 ‘아’가 축약된 형태인 ‘-려’로 출현한다. ¶俱夷 너기샤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裘夷心疑其欲去 坐起不解其側)〈석상 3:22ㄱ〉. 當貴호 픐 그텟 이슬와 엇더니오 너기놋다(富貴何如草頭露)〈두시 22:52ㄴ〉. -져 너기다; 苦 보아 녜 아쳐러 여희오져 너기며(見苦야 常懷厭離며)〈영가하:40ㄴ〉. 보미 오나 懷抱 펴 오래 고져 너기간마(春來准擬開懷久)〈두시 10:46ㄴ〉. -려; 老僧이 檀越에 나오 坐具만  求코져 노니 得득려 몯려〈육조상8ㄱ-4〉. -리아; 모미라 혼 거슨 어버게 가지  거시니 잠닌  아니야리아(身也者 親之枝也ㅣ니 敢不敬與아)〈번소 4:1ㄴ〉. 구틔여 죠고맛 목수믜 주구므로 말리아(敢辭微命休)〈두시 17:2ㄱ〉.
주014)
호(扈) : 임금(황제)을 따라다니면서 시종하는 것. 호위(扈衛).
주015)
대가(大駕) : 임금의 수레.
주016)
미조차 : 따라. 뒤따라. 미+좇+아. ¶阿難이도 果證 得야 미조차 般涅槃애 들 쩌긔(我亦當得果證 次第隨後入般涅槃)〈석상 23:32ㄱ〉. 追 미조 씨니〈월석 1:월석서16ㄴ〉.
주017)
공동(崆峒) : 감숙성(甘肅省) 양서(凉西)에 있는 산이름. 두보는 46세 때이던 757년(지덕 2) 4월에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이 머물던 봉상(鳳翔, 섬서성 鳳翔)의 행재소(行在所)에 도착하여, 5월에 좌습유(左拾遺)에 임명되어 숙종을 따라다니면서 모시게 되었다.
주018)
뫼와 니던 : 뫼시고 다니던. 뫼-++아 -#니-+더+ㄴ. 15세기 국어의 ‘V+어 니-’가 동사에 따라서는 현대국어에서 ‘V+고 다니-’로 해석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도 여기에 해당한다. ‘니-’는 ‘’의 말음 ‘ㄷ’이 뒤따르는 ‘니’의 ‘ㄴ’에 영향을 받아 ‘ㄴ’으로 역행동화된 것이다. ¶뫼-; 種種로 뫼 놀라 시고(種種供奉)〈석상 3:4ㄴ〉. 아마다 부데 먹 무텨 님그믈 뫼노라(朝朝染翰侍君王)〈두시 6:3ㄴ〉. 니-; 多論 마초아 보건댄 三衣 겨펴 호앳다가 緣故ㅣ 잇거든 더 호아 가져 니니라(若準多論 重縫三衣 有緣摘分持行)〈월석 25:24ㄱ〉. 긴 솘 해 도랏 디퍼 니고(杖藜長松陰)〈두시 7:24ㄱ〉.
주019)
나리여 : 날이여. 날+이+어. ‘-어’는 감탄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여’는 『두시언해』에서는 문헌의 성격상 자주 쓰인 표현이다. ¶슬프다 너희 먼 와 戍 사이여(嗟爾遠戍人)〈두시 1:22ㄴ〉. 受苦로이 사호다가 모미 주근 馬將軍이여(苦戰身死馬將軍)〈두시 4:32ㄱ〉.
주020)
급인(汲引) : 급수인편(汲水引緶). 즉 물을 긷고 옷단을 끌어당기는 것을 말하는데, 사람을 천거하는 것을 말한다.
주021)
천진(薦進) : 추천되어 벼슬을 얻고 정계에 진출함.
주022)
차(此) 언(言) 엄무(嚴武)ㅣ 인천(引薦)야 몽은위공부랑야(蒙恩爲工部郞也)ㅣ라 : 두보는 44세 때인 755년에 처음으로 벼슬을 얻어 하서(河西) 현위(縣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있다가 우위솔부병조참군(右衛率府兵曹參軍)으로 전임되어 취임하였다. 그러나 안녹산의 난으로 벼슬살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족을 데리고 난을 피해 다니다가 성도(成都)에 와서야 비로소 방관(房琯)의 추천으로 공부랑(工部郞) 벼슬을 얻게 되었다. 여기는 두보가 엄무의 추천으로 공부랑 벼슬을 하게 된 것을 말한 부분이다. 『두시언해』의 갖은 이름인 『두공부시언해』의 ‘공부’는 이때 두보가 얻은 벼슬인 ‘공부랑(工部郞)’을 말한다.
주023)
저산(樗散) : 가죽나무는 재질이 잘 쪼개져서 재목으로 쓰이지 못하는데, ‘저산(樗散)’은 가죽나무가 쪼개짐을 말한다.
주024)
말왐 : 마름. ‘말왐’의 앞선 시기의 형태는 ‘말ᄫᅡᆷ’이다. 마름은 연못 등에서 자라는데, 물 속 원줄기의 마디에서 깃 같은 뿌리를 진흙 속에 내리고 줄기는 길게 자라는데 잎자루에 공기 주머니가 있어 물 위에 잎이 뜰 수 있도록 해 준다. 잎몸은 마름모꼴 비슷한 삼각형이며 잔 톱니가 있다. 현대국어에서 쓰이는 ‘마름모’는 ‘마름’의 잎 모양이라는 말이다「두산백과」. ¶ 말와미 머리 셴 한아비 시름케 다(白蘋愁殺白頭翁)〈두시 11:15ㄱ〉. 芰 말왐 기 菱 말왐 〈훈몽 상:6ㄴ〉.
주025)
흘러니 : 흘러 다니듯. 흐르-+어#니-+. 15세기 국어의 ‘’은 의존명사와 어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후자로 분석된다. ¶(의존명사); 中士 道 드르면 잇  업슨 고(中士 聞道면 若存若亡고)〈법화 3:147ㄴ〉. 洞庭이 믌겨리 부치고 江漢이 횟도로 혀 니 虎牙와 銅柱ㅣ 다 기우리혓도다(洞庭揚波江漢回 虎牙銅柱皆傾側)〈두시 25:44ㄴ〉. (어미); 뎌 藥師瑠璃光如來ㅅ 功德을 내 일 야(如我稱揚彼藥師琉璃光如來所有功德)〈석상 9:26ㄱ〉. 말왐  니 호매 믈 흘류믈 노니(萍漂忍流涕)〈두시 8:44ㄱ〉.
주026)
시니 : 쓰시니. -+시+니. ‘다’는 능동사로 앞 구절인 ‘말왐 흘러니 호매’의 주체는 ‘두보 자신’이고, ‘汲引야 시니’의 주체는 두보에게 벼슬을 준 숙종 황제이다.
주027)
저(樗) 산재(散材)로 : 가죽나무 같이 쓰이지 못하는 재목으로. 즉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주028)
오히려 : 오히려[尙]. ¶ 貪 無量有情이 쳔랴 모도아 두고 제 도 오히려 아니거니 며 어버 내야 주며 가시며 子息이며 죠 주며 와 비 사 주리여(復有無量慳貪有情 積集資財 於其自身尙不受用 何況能與父母 妻子奴婢作使 及來乞者)〈석상 9:12ㄱ〉. 幽薊예 얌과 돋괘 나맷고 乾坤애 범과 일히왜 오히려 잇도다(幽薊餘蛇豕 乾坤尙虎狼)〈두시 5:13ㄴ〉.
주029)
닙오라 : 입었네. 닙-[被, 蒙]++오+라. ‘-오라’는 『두시언해』에만 나오며 『두시언해』에 다음의 예가 있다. ¶端午애 恩榮을 닙오라(端午被恩榮)〈두시 11:22ㄴ-23ㄱ〉.  예 님 恩惠 닙오니라(同年蒙主恩)〈두시 16:3ㄴ〉.
주030)
담로시(湛露詩) : 천자가 제후들에게 연회를 베풀면서 읊는 시.
주031)
운대(雲臺) : 한(漢)나라 남궁(南宮)의 누대의 이름이다. 한나라 명제(明帝)는 전대(前代)의 공신들을 추모해서 등우(鄧禹) 등 28명의 장수의 화상을 그리고 이것을 보관하기 위해 운대(雲臺)를 쌓았다 한다. 또한 한나라 광무제(光武帝) 때 신하들을 운대(雲臺)에 소집하여 일을 의논케 하던 곳이기 때문에 후대에 조정의 뜻으로도 쓰인다. 또한 ‘운대(雲臺)’에 대해서는 ‘南宮에셔 勳業 載錄니(南宮載勳業)’〈두시 3:7ㄱ〉의 주석문 참조.
주032)
운대(雲臺)예 자 : ‘운대’에 잔다는 것은 숙직한다는 말인데, 원문의 ‘숙(宿)’을 ‘자다’로 번역하였다.
주033)
지즈로 : 말미암아. 때문에. 인(因)하여. 부사. 원문의 ‘수(遂)’를 번역한 말로 ‘(어떤 것을)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인(因),잉(仍),수(遂)’에 대한 번역어로 이 단어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짖+으로’로 분석될 것으로 보이지만 ‘짖’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제 니르록 메 스츄니 지즈로 左右에 잇 도다(至今夢想仍猶佐)〈두시 9:6ㄱ〉. 햇 興의 疎放호 지즈로 브르노라(因歌野興䟽)〈두시 15:16ㄴ〉.
주034)
조격(阻隔)나 : 조격하나. 즉 막혀서 서로 통하지 못하나. ‘조(阻)’의 번역은 주로 ‘阻隔다’가 쓰이지만 ‘격(隔)’의 번역으로 ‘주츠-’가 쓰인 경우도 있다. ¶阻隔-; 어득어드기 구룸  므레 阻隔야 가니(昏昏阻雲水)〈두시 8:62ㄱ〉. 劒門엔 北 녁 사 오미 오히려 阻隔도다(劍門猶阻北人來)〈두시 10:39ㄴ〉. 禮數ㅣ 阻隔다 비록 니나(雖雲隔禮數)〈두시 20:6ㄴ〉. 주츠-; 길흘 마가 여곰 주츠게 다(塞蹊使之隔)〈두시 17:13ㄱ〉.
주035)
노라 : 생각하노라. 생각한다. #-++오+다. 중세국어의 ‘다’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뜻으로 쓰이나 후자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뜻으로 쓰인 용례는 ‘거문고 누각[琴臺]’의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 구절 참조. ¶뫼 사 믈리시고 오 기픈 道理 더시니(除去侍衛端坐思惟)〈석상 3:19ㄴ〉. 몰앳 프레 게을이 오라  부 므를 놋다(懒眠沙草爱風湍)〈두시 22:12ㄴ〉.
주036)
천장지격원(天仗之隔遠) : 임금의 의장이 멀리 떨어져 있음. 즉 두보가 임금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말이다.
주037)
백발지처량(白髮之凄凉) : 두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백발이 되어 신세가 처량함을 가리킨다.
주038)
취화(翠華) : 천자의 의장(儀仗).
주039)
삼연(森然)히 : 엄숙히.
주040)
루매 : 바람에. ‘중간본’에도 ‘루매’로 표기하였으나, ‘매’의 잘못일 가능성이 크다.
주041)
부쳐 : 날려. 붗-+어. 동사 ‘붗-’은 ‘부치다’의 뜻인데, 현대국어의 ‘부체’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두시언해』에서는 ‘붗-’은 주로 ‘표(飄)’의 번역어로 쓰였으며 ‘표(飄)’는 ‘불이-’로도 번역되었다. ¶거믄 미 부러 羅刹鬼國에 부쳐 드러도(假使黑風이 吹其船舫야 漂墮羅刹鬼國야도)〈석상 21:2ㄱ-ㄴ〉. 가오닌 불여 올마가 못 우묵  기놋다(下者飄轉沉塘坳)〈두시 6:42ㄱ〉.
주042)
서도다 : 서늘하도다. 서#-+도+다. 『두시언해』에는 ‘서늘-’도 사용되었다. ¶光이 려  우히 서늘며 므즤여 드려 펴디여 어루 바다 자거든(日光이 揜蔽야 地上이 淸凉며 靉靆垂布야 如可承攬이어든)〈법화 3:34ㄴ〉. 노 묏부리옌 도다오  서늘고(高峰寒上日)〈두시 11:51ㄱ〉.
주043)
소졸(䟽拙)야 : 소졸하여. 즉 성품이 꼼꼼하지 못하고 서툴러.
주044)
임천(林泉) : 숲과 샘. 즉 자연.
주045)
머므러쇼 닙고 : 머물고 있게 되었고. 원문은 ‘피(被)’ 구문인 ‘被林泉滯’로 일종의 피동적인 표현이나 중세국어 언해문의 경우 ‘피(被)’ 구문은 항상 ‘-오 닙-’으로 언해된다. 『두시언해』의 주석문에는 피동문인 ‘爲~所~’ 구문으로 해석되어, ‘被林泉滯’는 ‘爲林泉所滯’로 풀이되어 있다.
주046)
술와 그릐 기롱(欺弄)호 : 술과 글의 기롱(欺弄)함을. 평생을 술과 시를 벗하여 살아왔다는 뜻이다. ‘중간본’의 ‘그뢰’는 오자이다.
주047)
맛니럿노라 : 만나 일어나 있노라. 맛-#닐-+어#잇-++오+라. ‘맛닐-’은 다음의 『능엄경언해』의 한 예를 제외하면 모두 『두시언해』에서 사용되었다. ¶舍利弗이 違害鬼 맛니롬 야(如舍利弗이 遭違害鬼ᄐᆞᆺ야)〈능엄 5:72ㄱ-ㄴ〉. 害 맛니러 陳公이 주그니(遇害陳公殞)〈두시 23:11ㄱ-ㄴ〉.
주048)
사마상여(司馬相如) : 중국 전한의 문학자. 기원전179~기원전117년. 자는 장경(長卿)이다. 『두시언해』의 주석에는 ‘장경’으로도 자주 인용된다. 경제(景帝)를 섬겼지만 경제는 사마상여의 특기인 사부(辭賦)를 싫어했기 때문에 양(梁)의 효왕(孝王)에게 의탁하여 원령(園令)이 되었다. ‘자허부(子虛賦)’를 지어 무제(武帝)의 부름을 받고 만이(蠻夷)를 공격하여 공적을 올렸다. 사마상여와 탁문군의 사랑 이야기에 대해서는 ‘거문고 누대[琴臺]’의 ‘역주자 주석’ 참조.
주049)
효문원령(孝文園令) : 효문원의 감독인.
주050)
양웅(揚雄) : 양웅(楊雄)이라고도 한다. 기원전53~기원후18년. 전한 말기의 사상가, 문장가이며, 자는 자운(子雲)이다. 박식하였으나 말을 더듬었다. 30여 세에 왕음(王音)에게 문재를 인정받아 성제(成帝)의 급사황문랑(給事黃門郞, 궁중의 제사를 관장하는 관원)이 되었다. 왕망(王莽)이 신(新)을 일으키자 대부(大夫)로 취임하였다.
주051)
천록각(天祿閣) : 원래 이름은 ‘천록기린각(天祿麒麟閣)’. 한(漢) 고조(高祖) 7년(B.C. 195)에 한나라의 초대 승상인 소하(蕭何)가 미앙궁(未央宮)을 건축할 때 만든 집이다. 진(秦)나라가 빼앗은 문사들과 전적들을 이곳에 보관했으며 유향 부자(劉向父子)가 여기서 『별록(別錄)』, 『칠략(七略)』을 저술하였고, 양웅(揚雄)이 여기서 책을 읽었다.
주052)
보(甫)ㅣ 구방관득죄고(救房琯得罪故)로 : 두보가 숙종 황제의 조정에서 좌습유(左拾遺)를 하고 있을 때인 758년(건원 원년)에 방관(房琯)을 변호하다가 좌습유의 직위를 박탈당하고 두보도 이 여파로 화주(華州, 섬서 華縣)의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좌천되어 지방의 문교 업무를 맡게 되었다.
주053)
문원(文園) : 효문원(孝文園).
주054)
내애 : 나중에. 내+애. ¶버거 楞嚴 브트샤 닷가 證케 시고 내애 法華애 니르르샤 印可신 後에 諸佛ㅅ 能事 다시니(次由楞嚴샤 修證시고 終至法華샤 印可신 然後에 盡諸佛能事시니)〈능엄 1:20ㄱ〉. 子雲이 奇字 아라도 내애 閣애셔 려디니라(子雲識字終投閣)〈두시 15:38ㄱ〉.
주055)
괴외고 : 고요하고. 괴외-+고. ¶寥 괴외 씨라 湛  씨오 寂은 괴외 씨라〈월석 1:석상서1ㄱ〉. 하  와 正히 괴외히 잇노라(天涯正寂寥)〈두시 5:7ㄴ〉.
주056)
한각(漢閣) : 천록각(天祿閣)을 가리킴. 천록각에 대해서는 앞의 주 참조.
주057)
열우며 : 엷으며. 엷-+으며. 앞선 시기의 표기는 ‘열며’이다.
주058)
므드니라 : 물드니라. 물든다. 믈+들-+니+다. ¶染 므드릴 〈훈몽 중:1ㄴ〉.
주059)
탄(嘆) : 주석의 ‘탄(嘆)’은 ‘중간본’에 ‘탄(歎)’으로 되어 있다. 두 글자는 서로 번갈아 쓰일 수 있는 통용자이다. 이하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주060)
병(病)야 : 병들어. 병#-+야. 현대국어는 ‘병+들다’로 쓰이지만 15세기 국어에서는 ‘병+다’가 쓰였다. ¶金輪王이 외샤 四天下 아시련마 늘그니 病니 주근 사 보시고 世間 슬히 너기샤 出家샤(應王金輪典四天下 見老病死苦不樂在家 出家修道)〈석상 6:17ㄴ〉. 消渴ㅅ 病 늘그닐 기리 야(永念病渴老)〈두시 22:25ㄱ〉.
주061)
님금과 신하(臣下)왓 의논(議論)애 : 임금과 신하의 의론에. 즉 임금과 신하들이 모여 국론(國論)을 의논하는 자리에.
주062)
격절(隔絶)호니 : 참여하지 못하니. ‘격절하다’는 국어사전에 “서로 사이가 떨어져서 연락이 끊어지다.”라 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국론을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하지 못하다’의 의미이다.
주063)
덕택(德澤) 사은(私恩)에 : 임금의 덕택과 사사로이 입은 은혜에.
주064)
범그러슈믈 : 둘러싸여 있음을. 범글-+어#이시-+움+을. ¶여슷 가짓 드트른 누네 빗 봄과 귀예 소리 드룸과 고해 내 마톰과 이베 맛머굼과 모매 雜거시 범그룸과 데 法 이숌괘라〈석상 13:38ㄴ〉. 네 손 자보매 범그러 이셔 오히려 더운 相이 업거니 엇뎨 노리오(紆汝手執야셔 尙無熱相커니 云何融泮이리오)〈능엄 3:75ㄴ〉.
주065)
붓그려노라 : 부끄러워하노라. 정확하게 직역하면 ‘부끄러워해 하노라’이다. ‘붓그리-’는 ‘부끄러워하-’의 뜻이어서 표제어는 ‘동사+어 -’의 구성이다.
주066)
마함(馬銜) : 재갈. 즉 말을 부리기 위하여 아가리에 가로 물리는 가느다란 막대로 보통 쇠로 만드는데 굴레가 달려 있어 여기에 고삐를 맨다. ‘함륵(銜勒)’이라고도 한다.
주067)
님금 욕(辱)도외이 겨샤 : 임금이 욕되게 계심을. 즉 당 대종이 765년(광덕 원년)에 토번이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섬주(陝州)로 피난 간 일을 말한다. ‘중간본’에는 ‘계사’로 되어 있다.
주068)
놀라 : 놀라. 놀라-+아. ‘중간본’에는 ‘롤라’로 되어 있다. ‘이’는 사동접미사이다. ¶ 惡으로 天下 놀래요(以爲惡駭天下니)〈법화 2:28ㄴ〉. 모로매 白鷺 놀래디(莫須驚白鷺)〈두시 15:26ㄴ〉.
주069)
도적(盜賊) : 765년(광덕 원년)에 장안으로 쳐들어온 토번(吐蕃, 티베트).
주070)
갈 혀 나 : 칼을 빼어 나가. 주석의 언해이기는 하나 ‘ 타 가’와 ‘갈 혀 나’는 대구가 된다. ‘중간본’에는 ‘갈 혀셔’로 되어 있어 초간본의 ‘나’는 없애고 ‘혀’에는 후치사 ‘서’를 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天帝釋이 그 사  忉利天에 가아 塔 일어 供養더라(時天帝釋取其箭歸忉利天上建塔盛貯供養)〈석상 3:14ㄱ〉. 혀 더뎌 니고져 너기디 아니노라(撥棄不擬道)〈두시 22:4ㄱ〉.
주071)
님금 수욕(受辱)샤 : 임금이 수욕하심을. 주석의 ‘님금 辱도외이 겨샤’과 이 구절은 같은 내용으로 765년(광덕 원년)에 토번이 장안으로 쳐들어오자 당 대종이 섬주(陝州, 섬서 三門峡)로 피난 간 일을 말한다.
주072)
사직경륜풍운제회지사(社稷經綸風雲際會之事) : 숙종이 756년(천보 15)에 영무(寧武, 寧夏 寧武)에 있었던 일을 말한다.
주073)
콰 과 구룸 : (사직(社稷)을 다스리는) 땅과 바람과 구름(을 모으는 기회(期會)에). ‘콰’의 ‘ㅎ’는 ‘社稷 다리’의 수식을 받는 명사구이며, ‘’과 ‘구룸’은 ‘몬’과 함께 기회(期會)를 수식하는 관형어의 구성 성분이기 때문에 이들을 나열문으로 볼 수 없다.
주074)
몬 : 모이는. 몯+. ‘몯-’는 자타동 양용동사인데, ‘구룸’에 격조사가 없으므로 자동사로 쓰였는지 타동사로 쓰였는지 쉽게 구분할 수 없으나 이런 경우 중세국어에서는 주로 자동사 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해석도 ‘모이는’으로 하였다. ¶地獄과 餓鬼와 畜生과 눈 머니와 귀 머그니와 입 버우니와 寃讎 믜우니 몯 苦와(所謂地獄과 餓鬼와 畜生과 盲과 聾과 瘖瘂와 寃讎會苦와 愛別離苦와)〈능엄 7:43ㄱ〉. 공경홈은 德의 몯 거시니 能히 공경면 반시 德이 이실디라〈소학 4:34ㄴ〉.
주075)
기회(期會)예 : 때에. 앞의 ‘콰’는 공간적인 배경이며, 여기의 ‘기회’는 시간적인 배경으로 서로 대구를 이룬다.
주076)
피 흘로미 : 피 흘림이. 즉 두보 자신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주077)
어즈러이 : 어지럽게. 어즐-+럽+이. 참조. 아다. 아히. ¶어즐다; 모딘 길헤 러디면 恩愛 머리 여희여 어즐코 아야(墮三惡道 恩愛離別 窈窈冥冥)〈석상 6:3ㄴ〉. 恍惚 매 시름야 어즐 시라〈두시 1:2ㄱ〉. 어즈럽다; 太子ㅣ 무르샤 엇뎨 沙門이라 뇨 對答 三界 어즈럽고 六趣ㅣ 어즐거늘(問何名沙門 答曰 三界兮擾擾 六趣兮昏昏)〈석상 3:20ㄱ〉. 官聯을 어즈러우믈 말리로소니(官聯辭冗長)〈두시 20:48ㄱ〉. 어즈러; 鹿母夫人이 샤 나라해 어즈러 졋어미 블리디 마쇼셔(鹿母夫人白大王言 王莫耗擾國土 召諸乳母)〈석상 11:33ㄱ〉. 어즈러이; 그 中에 거츠리 제 어즈러이 뮈유 처 아니(方覺於中에 妄自擾動니)〈능엄 1:107ㄴ〉. 모딘 龍과  즘이 어즈러이 라 숨놋다(猛蛟突獸紛騰逃)〈두시 16:54ㄴ〉.
주078)
므리 어즈러이 개 섯흘리노라 : 눈물이 어지럽게 턱에 가로질러 흘리노라. 주어 ‘누ᇇ므리’와 서술어 ‘섯흘리노라’가 문법적으로 서로 호응되지 않는 비문이다. ‘섯흘리노라’는 ‘섯-+흐르-+리++오+라’로 분석되며 ‘섯-’과 ‘흐르-’로 이루어진 복합동사에 사동접미사가 연결된 구성으로 보거나 ‘섯-’과 ‘흘리-’로 이루어진 복합동사로 볼 수 있어 타동사이기 때문에 ‘누ᇇ므리’가 아니라 ‘누ᇇ므를’이 되어야 한다.
주079)
사독(四瀆) 강하회제(江河淮濟)라 : 사독(四瀆)은 장강(長江), 황하(黃河), 회하(淮河), 제수(濟水)이다.
주080)
누선(樓船) : 누선. 즉 다락이 있는 배로 안에 이 층으로 지은 집이 있다. 여기서는 조운선(漕運船)을 말한다.
주081)
고 : 떠 있고. -+어#잇-+고. 15세기 국어의 ‘-’는 ‘물에 뜨다’ 이외에도 ‘눈을 뜨다, 사이가 뜨다’의 뜻이 있다. ¶큰 므레 가다가도 일후믈 일면 즉자히 녀튼  어드리어며(若爲大水의 所漂야 稱其名號면 即得淺處리며)〈석상 21:2ㄴ〉. 믌겨레 菰米 시니 거믄 구루미 맷 고 이스리 蓮ㅅ 고 서늘니 粉紅이 듣놋다(波漂菰米沈雲黑 露冷蓮房墜粉紅)〈두시 6:10ㄱ〉.
주082)
중원(中原) : 황하 강 중류의 남부 지역. 천자가 있는 중국의 중심부를 말한다.
주083)
고각(鼓角)소리 : 북과 피리 소리.
주084)
백적(白翟) 즉백적(卽白狄)이라 : ‘중간본’에는 ‘백적(白翟) 즉백적야(卽白狄也)이라’로 되어 있다.
주085)
도적(盜賊)의 성지(城池) : 토번(吐蕃) 군사들이 파 놓은 성의 해자는.
주086)
백적(白翟)에 니고 : 부주(鄜州, 섬서 富縣), 연주(延州, 섬서 延安) 일대에 이어졌고. 백적(白翟)은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당나라 시대의 부주(鄜州, 섬서 富縣), 연주(延州, 섬서 延安) 일대에 살았다.
주087)
사호맷 디새 : 싸움에 이용한 조약돌과 기왓 조각은.
주088)
단지(丹墀)예 디놋다 : 깨어진 벽돌과 조약돌이 성 안의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주089)
선제(先帝) : 당(唐)나라 숙종(肅宗).
주090)
영침(靈寢) : 상(喪)을 치를 때, 대렴(大殮)한 뒤 송장을 두는 곳.
주091)
엄경(嚴敬)시고 : 엄숙하게 공경하시고.
주092)
종신(宗臣) : 주석에는 “당시에 가장 숭상받던 사람들이다(爲時之所宗尙者ㅣ라)”라고 하였는데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킨다.
주093)
기틴 : 끼친. 남긴. 깉-+이+ㄴ. ¶이  後ㅅ 부텻 기티논 긔걸이니 모로매 모다 삼가라(是爲最後佛之遺令)〈석상 23:13ㄱ〉. 一時랏 말도 부텻 기티샨 마리시니(一時之語도 乃佛ㅅ 遺言이시니)〈법화 1:20ㄴ〉. 宗臣의 기틴 얼구리 싁싀기 고 놉도다(宗臣遺像肅清高)〈두시 6:32ㄴ〉.
주094)
조명(詔命) : 당(唐)나라 숙종의 조서(詔書).
주095)
맛도 : 맡음을.
주096)
절당(切當)히 : 사리에 들어맞게. 적당히.
주097)
기틴 조명(詔命) 맛도 절당(切當)히 니라 : 당(唐)나라 숙종이 762년(보응 원년)에 곽자의를 불러 “하동(河東)의 일은 그대에게 맡기노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은 이 일을 말한다.
주098)
항산(恒山) : 중국 오악(五岳) 중의 하나로 당나라 때에는 하북(河北)에 속하였다.
주099)
요해(遼海) : 요하(遼河) 유역의 동쪽으로부터 동쪽 바다에 이르는 지역으로, 당나라 때에는 하북(河北)에 속하였다.
주100)
사명(思明) : 사사명(史思明). 703~761년. 중국 당나라 때의 돌궐인. 안녹산(安祿山)과는 같은 고향, 같은 나이로 안녹산과 함께 안사(安史)의 난을 일으켜 안녹산의 부장으로 활약하였다. 757년 1월 안녹산이 장남 안경서에게 사형당하자 안경서를 처형하고 안사의 난을 이끌었으나 자신도 결국 장남 사조의에게 처형되었다.
주101)
굴혈(窟穴) : 소굴(巢窟).
주102)
이니고 : 달리어 가고. -+이#니-+고. ‘-’와 ‘니-’의 합성동사이다. ¶ 타 이니던 디 모 기도다(躍馬意何長)〈두시 14:7ㄴ〉. 이니 戎馬ㅅ 셔 므리므리예 長吏 주기니라(崩騰戎馬際 往往殺長吏)〈두시 16:19ㄱ〉.
주103)
토아 : 다투어. 토-+아. ¶내 지븨 이 저긔 여듧 나랏 王이 난겻기로 토거늘(我在家時 八國諸王 競來見求)〈석상 6:7ㄱ〉. 토아 고온 비츨 가져셔(競將明媚色)〈두시 15:29ㄴ〉.
주104)
교칠(膠漆) : 활과 화살을 만드는 데 쓰이는 재료.
주105)
질려(蒺藜) : 적군의 말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쇠로 만든 쐐기.
주106)
녀름 : 농사. 여름. 참고로 15세기의 ‘여름’은 ‘열매’의 뜻이다. ¶戌陁羅 녀름 짓 사미라(협주)〈월석 10:21ㄴ〉. 녀름과  忽然히 디니(秋夏忽泛溢)〈두시 13:19ㄴ〉.
주107)
지 : 지을. ‘녀름’과 합한 ‘녀름 짓-’은 ‘농사 짓-’의 의미로 쓰인다. ‘짓-’은 ‘(글을) 짓다, 만들다’의 뜻이다. ‘중간본’에는 ‘디을’로 되어 있다. ¶製 글 지 씨니 御製 님금 지샨 그리라〈훈언 1ㄱ〉. 作 지 씨니 所作 지즈다   마리라(협주)〈월석 4:18ㄴ〉.
주108)
아비 : 아버지. 아비.
주109)
바툐 : 뱉음을. 밭-+오+ㅁ+. ¶乞食 法은 제 노  바툐 굿블이고  仁善을 發니라(乞食之法은 自伏貢高고 發他의 仁善이니라)〈법화 5:28ㄱ〉.
주110)
슬허 코 : 슬프해 하고. 슳-+어#-+고. 15세기 국어의 ‘슳다’는 ‘슬퍼하다’의 뜻이며, ‘슳다’에 형용사 파생 접미사 ‘-/브-’가 결합하여 형성된 형용사가 ‘슬프다’이다. 그런데 ‘슬프다’에서 ‘-어다’가 결합하여 ‘슬퍼다’로 발전하여 현대국어의 ‘슬퍼하다’가 된 반면에 파생의 주체이었던 ‘슳다’는 소실되었다. ‘슳다’와 같은 운명을 보인 단어들로는 ‘믜다, 다’ 등이 있다. ‘코’는 ‘고’의 ‘ㆍ’가 생략되면서 ‘ㅎ’과 ‘ㄱ’이 ‘ㅋ’으로 바뀐 현상을 표기한 것이다. 참고. 슬프다. 슳다(슬퍼하다). 슳다(싫다). 슲다. 슬다. 슬여다. 슬하야다. 슬여다. 슬허다. 슬흐여다. 슬희다. 슬희여다. 슬히. 슬히다. ¶슳다(슬퍼하다) : 王이 더욱 슬허 니샤 이 네 가짓 願은 녜록브터 일우니 업스니라(王聞重悲 此四願者古今無獲)〈석상 3:21ㄴ〉. / 便安히 몯 자셔 仲宣이 슬흐니라(展轉仲宣哀)〈두시 3:9ㄴ〉. 그 소리 슬허 셟고 이베 피 흘리니(其聲哀痛口流血)〈두시 17:5ㄱ〉. 님금 히 조보 슬허 라더니라(悵望王土窄)〈두시 24:14ㄴ〉. 슳다(싫어하다) : 이러틋 布施ㅣ 種種 微妙로 깃거 슬호미 업서 無上道 求며(如是等施ㅣ 種種微妙로 歡喜無厭야 求無上道며)〈법화 1:83ㄱ〉. 슳다(싫어하다) :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暮年漂泊恨)〈두시 3:19ㄴ〉. 슬다(슬퍼하다) : 摩耶ㅣ 더 슬샤  무르샤 네 아래브터 부텨를 뫼 니며 듣 잇니(時摩訶摩耶聞此語已 又憎感絶卽問阿難 汝於往昔侍佛已來 聞世尊說)〈석상 23:31ㄴ〉. 슬다(싫어하다) : 사미 受苦 맛나아 老病死 슬야 거든 위야 涅槃 니샤 受苦 업게 시며(若人遭苦 厭老病死 爲說涅槃 盡諸苦際.)〈석상 13:18ㄱ〉. 슬허다 : 須達이도 그 말 듣고 슬허더라(是時須達悲心憐傷)〈석상 6:38ㄱ〉. 늙고 큰 藤蘿를 슬허고 굽고 서린 남그란 기피 입노라(惆悵老大藤 沈吟屈蟠樹)〈두시 9:14ㄱ〉. 슬프다 : 이 그른 잇 고대 流通커 기튼 자최 괴외호미 슬프도다  슬프다 셜우믈 매 얼규니 슬푸믄 一方 누니 滅시니(斯文은 在庱에 流通이어 遺跡은 堪悲牢落이로다 嗚呼哀哉라 痛纏心腑호니 所嗟 一方眼이 滅시니)〈영가서:15ㄱ〉. 내 머리 도라 라 로 여 셜워 우러 슬픈 미 닐에 디 마롤디어다(莫令回首地 慟哭起悲風)〈두시 5:9ㄱ〉. 슬퍼다 : 내 항거시 여러이 멀니 귀향가거늘 뉘 며이고 고 장 슬허거 본 사이 다 슬퍼더라〈속삼강중 충:5ㄴ〉.
주111)
총융(惣戎) : 복고회은(僕固懷恩)을 말한다. 생몰년은 691-765년으로 당(唐)나라에 복속한 철륵족(鐵勒族)의 후예이다. 특히 안사의 난 때 곽자의(郭子儀)를 따라 혁혁한 전과를 세웠으나 나중에는 토번(吐蕃), 회흘(回紇) 등 삼십만 군을 데리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병사하였다.
주112)
원수(元帥) : 군대의 총사령관.
주113)
큰 체(體) 두워 고 : 큰 체(體)를 두고 있고. 전쟁의 큰 틀을 가지고 있고. ¶歲拜 히 곳 두워 면 寒食 나리라도 늣디 아니니라(有心拜節 寒食不遲)〈번박67ㄱ〉. 오히려 그 위 두워 딕히우며(尙置官居守)〈두시 6:3ㄱ〉.
주114)
좌전(左傳) :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 공자(孔子)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역사서인 『춘추』의 대표적인 주석서 중 하나로, 기원전 700년경부터 약 250년간의 역사가 다루어져 있다. 다른 명칭으로는 좌전(左傳), 좌씨전(左氏傳), 좌씨춘추(左氏春秋)라고도 한다. 『춘추』에 대한 현존하는 다른 주석서인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과 함께 삼전(三傳)으로도 불린다. 삼전 중에서 『춘추좌씨전』은 기본적으로 최고로 삼고 있다.
주115)
초공포모(楚貢苞茅) 불입(不入)이라 : 초나라가 공물로 포모(苞茅)를 들이지 않는다. 포모(苞茅)는 제사용 술을 거를 때 쓰는 청모(菁茅)인데, 춘추시대 제 환공(齊桓公)이 “초나라가 포모(苞茅)를 공물로 바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초(楚)나라를 정벌하였다. 이에 유래하여 ‘공부(貢賦)’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주116)
언사방공시(言四方貢試)ㅣ 불상공야(不上供也)ㅣ라 : 이는 사방의 공물이 공급되지 않음을 말한다. ‘중간본’에는 ‘시(試)’가 ‘부(賦)’로 되어 있다. ‘중간본’이 옳다.
주117)
당요(唐堯) : 요 임금. 성이 도당(陶唐) 씨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이 부른다.
주118)
비옥가봉(比屋可封) : 요 임금 때 충신, 효자, 열녀가 많아 벼슬을 봉할 집들이 줄지어 있을 정도로 세상이 평안하였음을 비유한 말.
주119)
초(楚)ㅅ 공(貢)은 : 초나라의 공물은. 즉 제 환공이 초나라의 공물이 들어오지 않음을 이유로 초나라를 정벌하였기 때문에 초나라의 공물은 정벌의 빌미가 된다.
주120)
그츠니오 : 그쳤는가? 긏-+으니+오. 15세기 국어의 ‘긏-’은 자타동 양용동사로 ‘끊다’와 ‘끊어지다’의 뜻이 있다. 한편으로는 ‘그치-’와 같이 타동사에는 원동사의 사동사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그 사동사에 ‘-어 디다’가 결합된 ‘그처디-’도 사용되었다. ¶긏-(자동사) : 癡愛病이 업스면 生死ㅅ 緣이 그처 眞常 頓證리니(癡愛病이 除면 則生死緣이 斷야 頓證眞常리어니)〈석상 20:31ㄱ〉. 祿 해 타 먹 넷 버든 書信이 그처 업고(厚祿故人書斷絕)〈두시 7:2ㄴ〉/ 긏-(타동사) : 를 그처 骨髓 내오 두  우의여 내니라(斷骨出髓 剜其兩目)〈석상 11:21ㄱ〉. 父母ㅅ 恩惠 그처 리고(棄絕父母恩)〈두시 5:26ㄱ〉 /그치- : 沙彌 새 出家 사미니 世間앳 들 그치고 慈悲ㅅ 뎌글 다 논 디니〈석상 6:2ㄴ〉. 마 盃中엣 物을 그치고(忍斷杯中物)〈두시 8:13ㄱ〉. 그처디- : 이 觀世音菩薩 듣고 一心로 觀世音菩薩ㅅ 일후믈 일면 다 그처디여 즉자히 버서나리어며(設復有人이 若有罪커나 若無罪커나 杻械枷鏁ㅣ 檢繫其身야셔 稱觀世音菩薩名者ㅣ면 皆悉斷壞야 即得觧脫며)〈석상 21:5ㄴ〉. 불휘 믌 미틔 싯기여 그처디니 엇뎨 하 디시리오(根斷泉源豈天意)〈두시 6:41ㄱ〉.
주121)
요(堯)ㅅ 봉(封)던 녯 민속(民俗)이 : 요 임금이 벼슬을 봉하던 때의 민속이. 요 임금 때는 열녀, 효자, 충신이 줄지어 있어서 벼슬을 봉할 만한 집이 줄지어 있었다는 고사에 빗대어 쓴 표현이다.
주122)
이제 : 지금. 지금은. ¶相師ㅣ 王  이제 出家 아니샤 닐웨 디나면 轉輪 王位 自然히 오시리다(相師白王 今不出家過七日已 轉輪王位自然來應)〈석상 3:24ㄱ〉. 이제 내 아 려가려 시니(今復遣使 欲求我子)〈석상 6:5ㄴ〉. 東 녁 믌 비 이제 周足니(東渚雨今足)〈두시 7:34ㄴ〉.
주123)
의심(疑心)외도다 : 의심되도다. 의심스럽도다. ¶내 내 모 소교미 외도다 다다(我爲自欺誑이로다다다)〈법화 2:20ㄴ〉. 내 들 펴고 훤히 노래 브로니 모 시름외도다(放歌頗愁絕)〈두시 2:34ㄱ〉.
주124)
북구(北寇) : 북쪽 오랑캐. 즉 회흘(回紇)을 말한다. 안녹산과 사사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주125)
서이(西夷) : 서쪽 오랑캐. 즉 토번(吐藩)을 말한다.
주126)
기리 : 길이. 길-+이. ¶涅槃 닷가 苦樂 기리 여희리다(當修涅槃 永離苦樂)〈석상 11:3ㄱ〉. 기리 萬里옛 나그내 외요니(長爲萬里客)〈두시 11:46ㄴ〉.
주127)
차우(嗟吁)야셔 : 탄식하여서. 차우(嗟吁)-+야+셔.
주128)
두위텨 : 뒤집어. 두위-+티+어. ‘두위-’는 ‘뒤집다’의 뜻이며, ‘-티-’는 강세접미사이다. ‘두위티-’는 『두시언해』에만 쓰인 어휘이다. ¶두위티- : 곳고리 므를 디나 두위텨 도라가거(黃鶯過水翻回去)〈두시 10:18ㄱ〉. 고기 낛  두위티놋다(翻却釣魚船)〈두시 25:21ㄴ〉. 두위잇- :   두위잇 며기 노니(江渚翻鷗戲)〈두시 3:48ㄱ〉. 두위구우리면 즉재 살리라(展轉即起也)〈구간 1:83ㄱ-ㄴ〉.
주129)
리고져 : 버리고자. 리-+고#지-+어. ¶죽사리 免 道理 아니로다 샤 리고 가시니라(今此苦行非正解脫 知非亦捨)〈석상 3:36ㄱ〉. 다 나래 해 리과라(他日委泥沙)〈두시 7:15ㄱ〉.
주130)
라셔 : 바라서. 라-+아+셔.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毘奢蜜多 遙見 不能自禁 遂使其身怱起)〈석상 3:8ㄱ〉. 라오 막노라 事勢ㅣ  뵈왓더라(塞望勢敦迫)〈두시 24:13ㄱ〉.
주131)
현포(玄圃) : 신선이 사는 산의 이름. 주석에서는 조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았다.
주132)
구자(具茨) : 신선이 사는 산의 이름.
주133)
구틔여 : 구태여. 억지로. 주로 ‘필(必)’의 번역어로 쓰인다. ¶世옛 사미 티 倍히 더 보아 구틔여 分別을 내니 足히 그 妄 보리로다(而世人이 一齊히 倍加瞻視야 强生分別니 足見其妄也ㅣ로다)〈능엄 2:14ㄱ〉. 어즈러운 가얍고 열운 사 엇뎨 구틔여 혜리오(紛紛輕薄何須數)〈두시 25:55ㄴ〉.
주134)
뫼디 : 모시지. 뫼-++디. ¶阿難은 녜 뫼오니 외와 法藏 護持고(阿難 常爲侍者와 護持法藏고)〈법화 4:48ㄴ〉. 아마다 부데 먹 무텨 님그믈 뫼노라(朝朝染翰侍君王)〈두시 6:3ㄴ〉.
주135)
어딘 사 : 현인(賢人)을.
주136)
대접(待接)시고라 : 대접하시구려. 대접-+시+고+라. ‘-고라’는 원망(願望)을 나타내는 명령형 종결어미로 쓰인다. ¶付囑 말 브텨 아례 고라 請 씨라(협주)〈석상 6:46ㄱ〉. 願 햇 므를 부러 金잔애 더으고라(願吹野水添金杯)〈두시 15:39ㄴ〉.
주137)
병(兵)잠개 : 병장기. 兵+잠+개. ‘兵잠개’는 15·16세기에 ‘병잠개’ 또는 ‘병잠기’로도 표기되었다. ¶우희 이셔 교만면 패망고 아래 되야셔 거슯면 죄 닙고 동뉴에 이셔 토면 병잠개예 해 이니〈소학 2:33ㄴ〉. 公子 州吁 랑 쳡의 아이라 고임이 잇고 병잠기를 됴히 너기거늘〈소학 4:48ㄱ〉.
주138)
디오 : 주조하고. 디-+고. ‘디-’는 ‘주조(鑄造)하다’의 뜻이다. ¶옰 內예 金銀銅鐵을 모도아 砲 디여(集州中金銀銅鐵 雜鑄爲砲)〈삼강런던충28ㄱ〉. 兵戈 노겨 農器를 디면(銷兵鑄農器)〈두시 19:37ㄱ〉.
주139)
ᆼ론 : 만든. -+온. ¶寶花幡은 보옛 고로 론 幡이라〈석상 20:7ㄱ〉. 講論시논 殿에 글월로 론 帳 펴고라(講殿闢書帷)〈두시 3:4ㄱ〉.
주140)
펴고라 : 펴구려. 펴-+고+라. ‘-고라’는 원망(願望)을 나타내는 명령형 종결어미로 쓰인다. ¶付囑 말 브텨 아례 고라 請 씨라(협주)〈석상 6:46ㄱ〉. 願 햇 므를 부러 金잔애 더으고라(願吹野水添金杯)〈두시 15:39ㄴ〉 /펴- :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而終不得伸其情者ㅣ 多矣라)〈훈언 :2ㄴ〉. 賦比興으란 田園에 갈 들 펴 짓노라(比興展歸田)〈두시 20:19ㄴ〉 /펴디-:부톄 說法샤 世間애 法이 펴디여 갈 그우리다 니〈석상 6:18ㄱ〉. 犬戎이 키 펴디니라(犬戎大充斥)〈두시 24:11ㄴ〉.
주141)
묘당(廟堂) : 당의 조정.
주142)
혜아료 : 헤아림은. 혜-+아리-+오+ㅁ+. ‘혜아리-’는 ‘혜-’가 있으므로 다시 ‘혜’와 ‘아리’로 분석되지만 ‘아리’의 정체는 알 수 없다. 불경언해에서는 ‘혜아리-’가 주로 ‘양(量)’에 대응된다. 『두시언해』에서는 ‘보라온 곳부리 혜아려 리 프놋다’와 같이 ‘상량(商量)’의 번역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慮, 策, 筭, 虞, 計, 照, 算, 憂, 念, 商量, 意, 度’ 등 다양하게 대응된다. 단 『두시언해』 권8의 예인 ‘籌策을 혜아려 神功을 자뱃도다’의 ‘헤아리-’에 대응하는 ‘운(運)’은 다소 의역된 경우라 할 수 있다. ¶戱論 노야 議論 씨니 야 혜아리 正티 몯 미라〈석상 19:25ㄱ〉. 몃 디위 靑瑣門에 朝班을 혜아리가니오(幾回靑瑣照朝班)〈두시 6:9ㄱ〉.
주143)
어렵거니와 : 어렵거니와. 어렵지만. 어렵-+거+니+오+아. ‘-거니와’는 가벼운 역접의 기능을 가진 연결어미이다. ‘이-’ 뒤에서는 ‘ㄱ’이 약화되어 ‘-어니와’로 표기된다. ¶太子ㅣ 聰明야 그른 잘거니와 히미 어듸 우리 이긔료 고(調達曰 太子聰慧善明書論 至於筋力詎勝我等)〈석상 3:12ㄴ〉. 네 모매 마 바 추미 구슬 외요 보앳거니와 네 아자비는 어느 말로 머리터리 옷 리오(汝身已見唾成珠 汝伯何由發如漆)〈두시 8:30ㄴ-31ㄱ〉.
주144)
시르믄 : 시름은. 시름+은. ¶無憂는 시름 업슬 씨니〈석상 23:32ㄴ〉. 시름 허러듀미 이 오 아미로다(愁破是今朝)〈두시 22:11ㄴ〉.
주145)
요도(潦倒) : 쇠로(衰老). 주석에는 늙은 것[老]이라 되어 있다.
주146)
답효(答效) : 황제의 은덕(恩德)에 보답함.
주147)
얼구 : 형색은. 몰골은. 얼굴+. 15세기 국어의 ‘얼굴’은 ‘형상’의 뜻으로 많이 쓰였다. ¶믈읫 얼굴 보 여희실 한 소리 다 通達야 眞說 아니니 업스니(由離諸相見故로 圓通衆音이 無非眞說也ㅣ시니라)〈석상 20:14ㄱ〉. 宗臣의 기틴 얼구리 싁싀기 고 놉도다(宗臣遺像肅清高)〈두시 6:32ㄴ〉.
주148)
얼구 ~ 늘구니 : 내 형색은 ~ 늙으니. 현대국어의 관점에서는 비문으로 보이지만 주제-평언 구조의 문장이라는 점과 『두시언해』가 시를 직역한 문헌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주149)
지당(支當)티 : 담당하지.
주150)
군핍(窘乏) : 필요한 것이 없거나 모자라 군색하고 아쉬움.
주151)
미렴부세(微斂賦稅) : 세금을 적게 부과하는 일.
주152)
창이(瘡痍) : 병기(兵器)에 다친 상처. 즉 전쟁으로 인한 파괴를 이르는 말.
주153)
왕명(王命) 호며 : 왕명을 나누며. 즉 각 분야별로 왕명을 나누어서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주154)
마 : 관청을. 15세기의 ‘’은 ‘관청’과 ‘마을’의 뜻이 있는데 『두시언해』에 쓰인 ‘’은 주로 ‘관청’의 뜻으로 쓰였다. ¶마을 : 히 멀면 乞食디 어렵고(若遠作之乞食則難)〈석상 6:23ㄴ〉. 관청 : 후에 다  마리  그 도즈글 자바 보내니(後頭別處官司 却捉住那賊)〈번노상27b-28ㄴ〉. 마래 사랴션 들 行호매 잇니라(居官志在行)〈두시 8:63ㄴ〉.
주155)
아랏도다 : 주관하도다. #알-+아#잇-도+다. 『두시언해』에서 ‘알-’은 주로 ‘관(官), 전(典), 사(司), 령(領), 장(將), 장(掌), 독(督), 령(領)’ 등의 번역어로 쓰였다. ¶大千世界 다 아라 四生 濟渡야(統禦大千 攝化衆生)〈석상 3:23ㄴ〉. 世世로 絲綸 아로 아다오 알오져 홀뎬(欲知世掌絲綸美)〈두시 6:4ㄴ〉.
주156)
어긔르츤가 : 어긋나게 하는가. 어긔릋-+으+ㄴ+가. ‘어긔릋-’은 『두시언해』에만 나오는 단어로 주로 ‘위(違), 착(錯)’에 대한 번역어로 쓰였으나 『두시언해』 권15의 ‘추일기제정감호상정삼수(秋日寄題鄭監湖上亭三首)’의 ‘프른 프리  디 어긔르츠니’의 경우 ‘봉(逢)’에 대한 번역어로 쓰여 특이한 경우에 속하는데 아마도 이 부분이 의역된 것으로 보인다. 참조. 어긔릋-, 어그릋-, 어긔맃-, 어그맃-, 어긔으릋-, 어긔-. ‘어긔릋-’에 대해서는 해제를 참조할 것. ¶어긔릋- : 오히려 수우 대로 어긔르츠며(尙錯雄鳴管)〈두시 3:13ㄴ〉. 녀뇨매 매 어긔르추미 하니(行邁心多違)〈두시 7:27ㄴ〉.
주157)
전노니 : 두려워하니. 젛-++오+니. ‘젛-’의 어간 말음 ‘ㅎ’이 뒤따르는 유성자음 ‘ㄴ’의 영향으로 역행동화를 일으켜 ‘ㄴ’으로 발음된다. ¶네 모 리 가라 사미 너 害가 전노라〈육조상:31ㄴ〉. 늘근 나해 幽獨호 전노라(衰年怯幽獨)〈두시 25:3ㄴ〉.
주158)
헐므믈 : 고통을. (상처가) 헐어 무너짐을. 헐-#믓-+우+ㅁ+ㄹ. ‘헐믓-’은 원래 종기 등으로 상처가 헐어 문드러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다음의 『훈몽자회』의 예가 중요하다. 『두시언해』에서는 ‘창이(瘡痍)’에 대한 번역어로 쓰였다. ¶입시우리 드리디 아니며 디 아니며 디드디 아니며 헐믓디 아니며(脣不下垂亦不褰縮 不麁澁 不瘡胗)〈석상 19,7ㄱ〉. 헐므 피 흐르린 업도다(瘡痍無血流)〈두시 23:14ㄴ-15ㄱ〉. 萬姓의 헐므미 암라 가니(萬姓瘡痍合)〈두시 24:49ㄴ〉.
주159)
문 디 아니도다 : 묻는 듯하지 아니하도다. 즉 제공(諸公)들이 백성들의 곤궁함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는 뜻이다.
주160)
고성(孤城) : 외로운 성. 즉 작자 자신이 머물고 있는 기주(夔州)를 가리킨다.
주161)
만리(萬里)예셔 : 만리(萬里)에서. 먼 지방에서.
주162)
공급(供給)호 어즈러이 니 : 공급(供給)함을 어지럽게 하니. 즉 군수물자를 공급함을 질서정연하게 하지 못하니.
주163)
안직 : 가장. ‘안직’은 ‘최(最)’에 해당하는 고유어로 고려시대의 석독구결의 독법으로도 ‘最’를 ‘[안직]’으로 읽고 있다. 그러나 15세기 언해 문헌에서는 『두시언해』에만 보인다. 『번역노걸대』 등에서 보이는 ‘안직’은 ‘아직’의 뜻이다. ‘안직’에 대해서는 해제 참조. ¶안직(가장) : 驥子아 안직 너를 憐愛노라(驥子最憐渠)〈두시 8:48ㄱ〉. 나그내 예 머리 안직 셰니(客間頭最白)〈두시 23:17ㄴ〉. 안직(아직) : 우리 잡말 안직 니디 마져(咱們閑話且休說)〈번노상:17ㄱ〉. 오나라 오나라 안직 가디 말라 내 너려 말솜 무러지라(來來 且休去 我問伱些話)〈번노상:26ㄱ〉.
주164)
안직 원망(怨望)야 랑놋다 : 가장 원망하여 생각하는구나! 즉 원망하는 마음이 가장 크구나!
주165)
왕망(王莽) : 전한(前漢)의 신하. 신(新)나라의 황제. 기원전 45년-기원후 25년. 중국 전한의 관료이었다가 정권을 잡은 후에 신(新)나라의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된 후 주나라 시대의 치세를 이상으로 삼고 정책을 폈지만 현실성이 결여된 정책들로 정치가 문란해지고 경제 상황도 나빠졌으며, 특히 고구려왕의 칭호를 하구려후(下句麗侯)로 부르게 해 고구려 등 이민족과 충돌하였으며, 민란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 결국 멸망하였다.
주166)
형주(荊州) 녹림(綠林) : 형주(荊州) 당양(當陽) 동북에 있는 지명. 도적들의 집결지로 문학작품에 많이 쓰인다.
주167)
형초(荊楚) : 형(荊)은 초(楚)나라의 옛 이름인데, 대략 옛날 형주(荊州) 지역에 해당한다. 지금의 호북성(湖北省)과 호남성(湖南省) 일대를 가리킨다.
주168)
한신(韓信) : 한 고조 휘하의 장수. ?-기원전 196년. 한 고조 유방의 부하로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해 유방의 패권을 결정지었다. 한의 성립 과정에서 혁혁한 전과를 세웠으나 결국 모함을 받아 유방의 배척을 받았다.
주169)
운몽택(雲夢澤) : 고대의 2대 연못. 즉 운몽(雲夢)과 몽택(夢澤).
주170)
유번진기호(喩藩鎭跂扈)ᄅᆞᆯ : ‘기(跂)’는 ‘발(跋)’의 오자이다. 〈중간본〉에서 글자의 판독이 어려우나 교정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주171)
엇뎨 : 어찌. 어찌하여. 어째서. ¶엇뎨 우리그 와 절호려 커시뇨(如何今欲禮於我耶)〈석상 3:4ㄱ〉. 後에 오  니 엇뎨 머믈리오(後來鞍馬何逡巡)〈두시 11:18ㄴ〉.
주172)
죠고맛 : 조그만. 조그마한. 죡-+오+ㅁ+아+ㅅ. ‘죡다’는 ‘쟉다, 젹다, 횩다, 휵다’와 궤를 같이 하는 ‘작다, 적다’ 뜻의 형용사이다. ‘아’는 처격조사일 가능성이 있으며, ‘ㅅ’은 기원적으로는 관형격 조사일 것으로 추측된다. 참조. 죠고맷. 죠고매. 죠고만. 죠고마다. 죠고마치. ¶나 죠고맛 거슬 주어시든 녜 供養지이다(願與我少物 得常供養)〈석상 6:44ㄴ〉. 날호야 녀 죠고맛 매 어긔으르체라(退食遲回違寸心)〈두시 6:14ㄱ〉. 죠고맷 : 뎌 西南 모해 바문 남녁 죠고맷 널문이 긔라(那西南角上 芭籬門南邊 小板門兒便是)〈번노하:1ㄴ〉. 녜 죠고맷  로라(宿昔具扁舟)〈두시 6:44ㄱ〉. 죠고매 :  죠고매 머리 수기거나 일로 像 供養닌 漸漸 無量佛을 보아(惑復小低頭커나 以此로 供養像닌 漸見無量佛야)〈법화 1:221ㄴ〉. 近年 숤 病에 죠고매 머구믈 여렛노니(比年病酒開涓滴)〈두시 8:42ㄴ〉. 죠고만 : 覺 眚과 見의 病이 죠고만 린 것도 훤히 업서(覺眚見病이 廓無纖翳야)〈능엄 1:4ㄴ〉. 죠고마다 : 몯호니 艮岑앳  비치 슬피 죠고마더라〈두시 9:5ㄱ〉 /죠고매다 :  죠고매야 버들 셤기니라(小心事友生)〈두시 24:18ㄴ〉. 죠고마치 : 佛法이 내 이긔도 죠고마치 잇다 야시〈남명 상:14ㄱ〉.
주173)
담(膽) : 웅담(熊膽).
주174)
구천(句踐) : 월(越)나라의 임금. ?-기원전 464년. 춘추·전국시대 후기 월나라의 임금으로 책사 범려의 뒷받침으로 당시 화남에서 강세를 자랑하고 있던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이다. 월왕 구천과 오왕 부차 사이에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사자성어가 유명하다.
주175)
동방삭(東方朔) : 전한 무제 시기의 태중대부(太中大夫). 기원전154-기원전92년. 걸출한 외모, 익살스러운 언변, 거침없는 행동으로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동방삭은 삼천갑자(三千甲子)를 살았는데,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게 되었다고도 하고, 저승사자를 잘 대접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주176)
창생우락(蒼生憂樂)을 견기미(見其眉)면 가찰(可察)이니라 : 백성들의 근심과 즐거움은 백성들의 표정을 잘 살피면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두보의 이 시구를 전거로 많은 시인들이 시를 지었다. 예를 들어 기대승(奇大升)은 “劇地煩遊刃 疲民任察眉(일 많은 곳에 칼날 놀림 번거롭고, 파리한 백성의 그 눈썹을 살펴야 하네)”라는 시구를 남겼고, 차천로(車天輅)도 “察眉爲政最良籌(미간 살펴 하는 정사 최고의 양책일 걸)”라는 시를 남겼다.
주177)
차(此) 언군주(言君主)이 수고심비난이우의휼민야(須苦心啚難而又宜恤民也)ㅣ라 : ‘중간본’에는 ‘啚’가 ‘圖’로 되어 있다.
주178)
이젯 이 : 지금의 일은. 즉 전란이 계속되어 백성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주179)
모로매 : 모름지기. 반드시.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凡字ㅣ 必合而成音니)〈훈언 :13ㄱ〉. 이 모로매  고텨(應須理舟楫)〈두시 14:18ㄱ〉.
주180)
애 맛볼 디니 : 쓸개를 맛볼 것이니. ‘애’는 창자를 비롯하여 내장 기관을 일반적으로 이르는 단어이다. ¶구리 긷과 쇠 牀애 이 누르며 애 믈어(銅柱鐵牀애 燋背爛腸야)〈영가상:34ㄴ〉. 녜브터 호매 애 그첨직 니(舊好腸堪斷)〈두시 20:18ㄴ〉.
주181)
창생(蒼生) 가(可)히 눈서블 푤 디니라 : 창생(蒼生)은 가히 눈썹을 살필 것이다. 즉 어렵게 사는 백성들을 잘 돌보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그 표정을 잘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182)
좌의정지당자(坐議政之堂者) : 정치를 논하는 곳에 앉은 사람들. 즉 정치를 하는 관리들.
주183)
당이정관지치(當以貞觀之治)로 위귀감(爲龜鑑)이니라 : 정치하는 사람들은 당 태종의 태평한 시기를 일컫는 말인 정관의 정치[貞觀之治]로 마땅히 귀감을 삼아야 한다.
주184)
의론(議論) 당(堂) : 정사를 집행하는 건물.
주185)
봉(鳳)  사미 : 봉황과 같은 사람. 즉 정사를 하는 벼슬아치들.
주186)
모닷니 : 모여 있으니. 몯+아#잇-++니. ‘모닷’이 보이는 문헌은 『두시언해』가 월등히 많은데 ‘-아 잇도다, -아 잇고, -아 잇 고, -아 잇니, -아 잇, -아 잇거늘, -아 잇다가, -아 잇더니’ 등의 표현이 사용된다. ¶축축  金碧ㅅ 氣運ㅣ 모닷고(潤聚金碧氣)〈두시 1:28ㄱ〉. 旗ㅅ 그테 蛟龍이 모닷고(旗尾蛟龍會)〈두시 14:27ㄴ〉.
주187)
정관(貞觀)이 이 큰 거부비니라 : 정관(貞觀)이 큰 거북이니라. 정관(貞觀)의 정치가 큰 귀감이니라. ‘이’는 원문의 ‘시(是)’의 번역으로 중세국어 언해에서는 계사로 쓰인 ‘시(是)’로 관형사 또는 대명사 ‘이’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
주188)
격(檄) : 징병서(徵兵書).
주189)
글월 : 여기서는 징병서를 말함.
주190)
요미 : 날림이. -+이+오+ㅁ+이. ‘이’는 사동접미사이다.
주191)
숫두워리고 : 재잘거리고. 시끄럽고. 숫두워리-+고. ‘숫두워리-’는 주로 ‘훤(喧)’의 번역어로 쓰였다. 참고. 수-, 수-, 숫워리-, 숫어리-, 수어리-, 수어리-, 수워리-. ¶숫두워리- : 王ㅅ 알 드라 말이 재야 숫두리더니〈월천58ㄱ〉. 員의  안핸 숫두워려 블로미 업도다(太守庭內不喧呼)〈두시 9:31ㄱ〉. 숫워리- : 숫워려셔  가온  수를 업텨 머구라(喧呼且覆杯中淥)〈두시 3:53ㄴ〉. 수- : 近閒애 드로니 詔書ㅣ 려 都邑에셔 수니(近聞下詔喧都邑)〈두시 17:29ㄴ〉. 수- : 수 소리 萬方애 니도다(喧聲連萬方)〈두시 10:20ㄱ〉. 수워리- : 수워리  避야 모딘 범 잇  히 너기니(避喧甘猛虎)〈두시 9:9ㄴ〉. 숫어리- : 토아 沐浴야 짐즛 서르 슷어리다(爭浴故相喧)〈두시 10:6ㄴ〉 /수어리- : 黃牛ㅅ 峽엣 므리 수어리다(黃牛峽水喧)〈두시 11:49ㄴ〉. 수어리- : 엇뎨 져비 새 수어리미 업스리오(空聞燕雀喧)〈두시 21:10ㄱ〉. 수워리- : 수워려 토 해 채 텨 가 게을오라(喧爭懶著鞭)〈두시 20:8ㄴ〉.
주192)
솔옷 : 송곳. ¶우흰 片 맛디새도 업고 아랜 솔옷 셰욜  업스니(上無片瓦고 下無卓錐니)〈금삼 4:6ㄴ〉. 錐 솔옷 쵸〈훈몽 중:7ㄴ〉. 그티 버서낫 솔옷 든  지노라(穎脫撫錐囊)〈두시 3:12ㄴ〉.
주193)
토미 : 다투미. 토-+오+ㅁ+이. ¶내 지븨 이 저긔 여듧 나랏 王이 난겻기로 토거늘(我在家時 八國諸王 競來見求)〈석상 6:7ㄱ〉.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中原有鬪爭)〈두시 5:29ㄴ〉.
주194)
솔옷 귿 니르리 토미 도다 : 송곳 끝까지 다투미 빠르도다. 집집마다 송곳 끝 같은 작은 이익도 앞다투어 챙긴다는 뜻이다.
주195)
한 애제(漢哀帝) : 전한의 13대 황제. 기원전 27-기원전 1년. 후궁인 소의 동씨(昭儀董氏)의 남동생 동현(董賢)을 좋아하였기 때문에 고대의 성소수자로 유명하다.
주196)
남군(南郡) : 중국 고대의 군의 이름으로 진나라 소양왕(昭襄王) 시대에 설치하였다. 지금의 호북성 형주(荆州) 일대를 가리킨다.
주197)
소육(蕭育) : 서한의 대신. 한 애제(哀帝) 때에 남군 태수(南郡太守)를 하였다.
주198)
무제(武帝) : 한 세종 효무황제 유철(漢世宗孝武皇帝劉徹). 기원전 156년-기원전 87년. 전한의 제7대 황제로 재위 기간은 기원전 141-기원전 87년이다. 유학을 바탕으로 하여 국가를 다스렸으며 해외 원정을 펼쳐 흉노를 크게 무찌르고, 남월, 위만조선 등을 멸망시켜 당시 한족 역사상 두 번째로 넓은 영토를 만들어 전한의 전성기를 열었다.
주199)
촉인(蜀人)이 난(亂)커 : 촉 지방 사람들이 난을 일으키거늘.
주200)
사마상여(司馬相如) : 이 시의 “문원(文園)이 마침내 괴외고 한각(漢閣)애 제 열우며 므드니라(文園終寂寞 漢閣自磷緇)” 구절의 해설과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
주201)
이소거(以蕭車)ㅣ 분주부정(奔走不定)과 유촉지사(喩蜀之使)도 시지소지(示知所之)로 비지(比之)니라 : 소육(蕭育)이 탄 수레가 달려가나 안정되지 못하고, 촉으로 가는 사자(使者)도 가는 곳을 보아 아는 것을 비유하였다. 한나라 애제(哀帝) 때 남군(南郡) 지역에 도적이 일어났는데, 소육(蕭育)이 태수를 하면서 도적이 그쳤고, 한 무제(武帝) 때에 촉 지방에서 난이 일어났는데,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사자로 보내어 부로(父老)들을 달래어 안정시킨 것을 당시의 상황과 비교한 것이다.
주202)
몯얏도소니 : 못하고 있으니. 몯-+아#잇+돗+오+니. ‘-도소니’는 『두시언해』에 자주 나오는 표현으로 구성 성분에는 감동법 선어말어미 ‘돗’과 화자 호흥의 ‘오’, 그리고 연결어미 ‘니’가 있다. 현대국어의 연결어미 ‘-니’에 약간의 감탄, 감동의 의미가 더 있는 것이다. 현대국어로는 선어말어미 ‘돗’을 번역할 수 없어 단순히 ‘-니’로 번역하였다. ¶바 가다가 귓것과 모딘 이 므엽도소니 므스므라 바 나오나뇨(今夜故闇 若我往者 為惡鬼猛狩見害)〈석상 6:19ㄴ〉. 尙書의 功業이 千古ㅅ 사게 건내도소니(尙書勳業超千古)〈두시 25:48ㄱ〉.
주203)
촉(蜀)로 가 사자(使者) : 촉(蜀)으로 가는 사자는. 즉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주204)
어드러 : 어디로. ‘어드러’가 쓰인 문장은 대부분 방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아래의 『월인석보』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방향성이 있다기보다는 ‘어찌’의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듸 어드러셔 오시니(仁者何來)〈석상 23:40ㄴ〉. 울히 여리니 門을 어드러 向리오(籬弱門何向)〈두시 15:17ㄴ〉.
주205)
가니오 : 가겠는가? 가-+니+고. 설명의문 어미 ‘-니오’는 일반적으로 ‘-뇨’로 나타나지만 『두시언해』에서는 ‘-니오’로만 나타난다. 특히 ‘가니오’의 예는 『두시언해』에서만 찾을 수 있다. ¶아와 누의왜 蕭條히 제여곰 어드러 가니오(弟妹蕭條各何往)〈두시 11:28ㄴ-29ㄱ〉. 돌 모라 어느  海東애 가니오(驅石何時到海東)〈두시 15:35ㄱ-ㄴ〉.
주206)
엄광(嚴光)의 조뢰(釣瀨) : ‘조뢰’는 물가의 낚시를 던질 만한 여울이 있는 곳으로 한나라 엄광이 낚시를 세 번 던지고 나서 부춘산(富春山)으로 밭을 갈러 갔는데 후인이 엄광이 낚시하던 곳을 ‘엄릉뢰(嚴陵瀨)’, 그 자리를 ‘엄자릉조대(嚴子陵釣臺)’라 불렀다. 엄광이 낚시를 드리운 곳을, 은자를 대신하여 사용하였다.
주207)
정자진(鄭子眞)의 경암(耕巖) : ‘경암’은 밭 갈던 곳의 바위라는 뜻으로 한나라 정자진은 벼슬을 하지 않고 바위 아래에서 밭을 갈았는데, 이것으로 은자를 가리킨다.
주208)
여흐레 : 여울에. 여흘+에.
주209)
낫글 : 낚을. -+을.
주210)
바독 : 바둑.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의하면 두보는 바둑을 잘 두었다고 한다.
주211)
긔 : 장기.
주212)
나노라 : 나아가노라. 낫-+오++오+라.
주213)
바독 긔 나노라 : 기주(蘷州)에서의 어려운 삶 속에서도 여가를 즐기는 두보의 상황을 서술한 부분이다.
주214)
히  니 : 땅이 찌는 듯하니. 기주(蘷州)의 여름은 습기가 많고 덥다. ‘’은 ‘같음’을 뜻하는 명사다. 15세기 국어에서는 현대국어와 같이 ‘관형사형 어미+-’, ‘동사어간+-’ 등의 구성이 있다. ¶(의존명사) : 中士 道 드르면 잇  업슨 고(中士 聞道면 若存若亡고)〈법화 3:147ㄴ〉. 洞庭이 믌겨리 부치고 江漢이 횟도로 혀 니 虎牙와 銅柱ㅣ 다 기우리혓도다(洞庭揚波江漢回 虎牙銅柱皆傾側)〈두시 25:44ㄴ〉. (어미) : 뎌 藥師瑠璃光如來ㅅ 功德을 내 일 야(如我稱揚彼藥師琉璃光如來所有功德)〈석상 9:26ㄱ〉. 말왐  니 호매 믈 흘류믈 노니(萍漂忍流涕)〈두시 8:44ㄱ〉. 관형사형 어미+- : 耶輸ㅣ 이 말 드르시고 미 훤샤 前生앳 이리 어제 본 야 즐굽 미 다 스러디거늘(耶輸陀羅聞是語已 霍然還識宿業因緣 事事明了如昨所見 愛子之情自然消歇)〈석상 6:9ㄱ〉. 韋賢이 처 漢을 돕 고 范叔이 마 秦의 갓 도다(韋賢初相漢 範叔巳歸秦)〈두시 19:4ㄴ〉. 동사어간+- : 卉木 叢林과  여러 藥草ㅣ 諸種性티 초 저쥬믈 니버 各各 生長 得니라 (卉木叢林과 及諸藥草ㅣ 如其種性야 具足蒙潤야 各得生長ᄐᆞᆺ니라)〈법화 3:21ㄱ〉. 奇異 즘이   거시 별 러디니(異獸如飛星宿落)〈두시 5:36ㄴ〉.
주215)
헌 부체 : 헐은 부체. 즉 부서진 낡은 부체.
주216)
나맷고 : 남아 있고. 남-+아#잇-+고.
주217)
겨리 : 겨울이. 겨+이.
주218)
더우니 : 따뜻하니. 덥-+으니. 15세기의 ‘덥-’은 현대국어의 ‘덥다’의 뜻 이외에 ‘따뜻하다, 뜨겁다’의 뜻도 있다.
주219)
츩오 : 칡옷을. 츩#옷+.
주220)
닙노라 : 입노라. 닙-++오+라. ¶모매 됴 옷 닙고져  씨라〈석상 3:22ㄴ〉.  서리예 누비옷 닙고 니노니(江湖漂短褐)〈두시 21:1ㄴ〉.
주221)
히  니 헌 부체 나맷고 겨리 더우니   츩오 닙노라 : 이 구는 기주(蘷州)의 날씨를 묘사한 부분이다.
주222)
시구애등초(豺遘哀登楚) : ‘시구애등초(豺遘哀登楚)’의 ‘초(楚)’는 ‘찬(粲)’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223)
왕찬(王粲) :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 177~217년. 저작으로는 시(詩), 부(賦), 논(論), 의(議)를 모두 합쳐 60편 정도가 있는데, 대표적인 시로는 「종군시(從軍詩)」와 「칠애시(七哀詩)」가 있다.
주224)
시호방구환(豺虎方遘患) : 이리와 호랑이 같은 자들이 환란을 일으킨다네. 왕찬(王粲)의 칠애시(七哀詩)의 한 구절.
주225)
등루부(登樓賦) : 왕찬(王粲)이 지은 부(賦)의 하나.
주226)
시호(豺虎) : 승냥이와 호랑이. 즉 난(亂)을 일으키는 자들.
주227)
상니(象尼) : 이구산(尼丘山)을 닮은 공자의 머리.
주228)
우희 : 위에. 우ㅎ+의. ¶上 우히니 無上正眞道理 우 업슨 正 진딧 道理라〈석상 3:10ㄱ〉.  란 漢水ㅅ 우흘 고(清思漢水上)〈두시 2:13ㄴ〉.
주229)
난(亂) 맛나 초(楚)ㅅ 누(樓) 우희 오 사미 : 난(亂)을 만나 초(楚)의 누각(樓閣) 위에 오른 사람이. 즉 왕찬(王粲)과 같은 신세의 두보 자신.
주230)
슬코 : 슬퍼하고. 슳-+고. ‘슳-’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녀름 지 아비 膠漆 바툐 슬허 코(田父嗟膠漆)〈두시 3:3ㄴ〉’ 구절 참조.
주231)
슬허 : 슬퍼하여. 슳-+어. ‘슳-’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녀름 지 아비 膠漆 바툐 슬허 코(田父嗟膠漆)〈두시 3:3ㄴ〉’ 구절 참조.
주232)
이구산(尼丘山) : 산동성 곡부에 있는 산. 공자의 출생지이다. 『사기』에 의하면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纥)과 어머니(颜徵)이 이구산의 산신에게 기도를 드린 후 공자를 낳았다 한다.
주233)
시니 : 같으시니. -+시+니.
주234)
우르시니라 : 우시니라. 울-+으시+니+라. 15세기 국어의 ‘울-’은 활용할 때 ‘ㄹ’이 탈락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참고. 우르다. 우르적시다. ¶王이 보시고 해 업더디여 우르시며 俱夷 고개 안고 우르시더라(王······ 自投墮地 具夷悲哀抱白馬頸)〈석상 3:34ㄴ〉. 十月에 荊州ㅅ 南녀긔셔 울에 怒야 우르다(十月荊南雷怒號)〈두시 5:37ㄱ-ㄴ〉.
주235)
미적월(迷適越) :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송(宋) 나라 사람 중에 장보관(章甫冠)을 사 가지고 월(越)나라로 팔러 간 사람이 있었는데, 월나라 사람들은 모두 단발(斷髮)을 하고 문신(文身)을 새겼으므로 소용이 없었다.”라는 구절에 나오는 말로, 일이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236)
형초(荊楚) : 형주(衡州)와 초(楚) 지역을 아울러 이르는 말. 현재의 호북성(湖北省) 지역이다.
주237)
휴수(睢水) : 하남성(河南省) 상구시(商丘市)에 흐르는 강.
주238)
송주(宋州) : 현재의 하남성(河南省) 상구시(商丘市).
주239)
조회(藻繪) : 화려한 무늬.
주240)
미란(迷亂)호니 : 미란하니. 즉 정신이 혼미하여 어지러우니.
주241)
빗난 : 빛난. 빛#나-+ㄴ. 사동사는 ‘빗내-’이다. ¶太子ㅣ 苦行 오래 샤 히 여위실  金色光 더옥 빗나더시다(坐道樹下形體羸瘠 唯有金色光明益顯)〈석상 3:39ㄴ〉. 지블 度量야 지미 빗내 됴히 아니노니(度堂匪華麗)〈두시 6:45ㄴ-46ㄱ〉.
주242)
회채(繪綵) : 화려한 무늬를 놓은 비단.
주243)
노라 : 생각하노라. 중세국어의 ‘다’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의 뜻으로 쓰이나 후자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뜻으로 쓰인 용례는 ‘거문고 누각(琴臺)’의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 구절 참조. ¶뫼 사 믈리시고 오 기픈 道理 더시니(除去侍衛端坐思惟)〈석상 3:19ㄴ〉. 몰앳 프레 게을이 오라  부 므를 놋다(懒眠沙草爱風湍)〈두시 22:12ㄴ〉.
주244)
상월(賞月) : 달을 감상하는 것.
주245)
시경(時景) : 때를 알리는 경치.
주246)
경양(傾陽) : 해가 기우는 것.
주247)
우의연군(寓意戀君) : 임금을 생각하는 것을 빗대어 풍자함.
주248)
상완(賞翫)야 : 상완하여. 즉 좋아하여 보고 즐겨.
주249)
계수(桂樹) : 계수나무. 즉 달 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계수나무.
주250)
맛고 : 맞고. 맞이하고. 맞-+고. ¶  아기아리 며 죄  그티니 그딋  맛고져 더다(有兒端正殊妙 卓略多奇)〈석상 6:15ㄱ〉. 말 펴호 반기 法律에 맛고(遣辭必中律)〈두시 6:19ㄱ〉.
주251)
이스렛 규화(葵花) : 이슬의 해바라기를. 즉 이슬을 머금은 해바라기를.
주252)
태정(太庭) : 중국의 전설상의 치세 기간. 대정(大庭)이라고도 한다. 복희씨와 그의 여동생 여와씨 이후에 공공씨(共工氏), 태정씨(太庭氏), 백황씨(柏皇氏), 중앙씨(中央氏), 역륙씨(歷陸氏), 여련씨(驪連氏), 혁서씨(赫胥氏), 존로씨(尊盧氏), 혼돈씨(混沌氏), 호영씨(昊英氏), 주양씨(朱襄氏), 갈천씨(葛天氏), 음강씨(陰康氏), 무회씨(無懷氏)가 차례로 대를 이어, 15대를 계승하였는데 모두 태평한 시대를 대표한다.
주253)
매 : 마침내. ‘종(終)’의 번역어이다. ¶다가 有에 자며 無에 걸면 매 邊見에 가리니(如其執有며 滯無면 則終歸邊見리니)〈영가하:84ㄴ〉. 매 蛟螭와 다 섯고니 엇뎨 져비 새 수어리미 업스리오(竟與蛟螭雜 空聞燕雀喧)〈두시 21:10ㄱ〉.
주254)
경관(京觀) : 대궐 모양의 높은 언덕.
주255)
업티리로다 : 엎칠 것이도다. 엎-+티+리+도+다. 참고. 업더디다. 엎다. 업더눕다. 업더리왇다. 업더리티다. 업더리혀다. 업더이다. 업더지다. 업데다. 업데우다. 업듣다. 업듸다. 업디다. 업다. ¶업티다 : 몸 업시 며 性을 망멸고 크면 종족을 업티며 嗣 絶니〈소학 5:29ㄱ〉. 白帝城ㅅ 아랜 비 그르스로 업티 놋다(白帝城下雨飜盆)〈두시 12:29ㄴ〉. 업더디다 : 王이 보시고 해 업더디여 우르시며(王覩寶衣車匿白馬來還 不見太子 自投墮地)〈석상 3:34ㄴ〉. 그저긔 무적 디나 던 거시 외오 번 업더디니(當時曆塊誤一蹶)〈두시 17:27ㄴ〉. 업더리다 :  사은 러 반만 답례고 져기 애 사은 그 업더리믈 기들워 답례라〈여씨화산38ㄱ〉. 머므러 벼개예 업더렷 로다(稽留伏枕辰)〈두시 20:41ㄱ〉. 업더러디다 : 金ㅅ 사 가히라 구짓거늘 金ㅅ 사미 어 내야 치 헐에 티니 셜워 업더러디니라(金人爲狗 金人曵若水出 擊之敗面 氣結仆地)〈삼강런던충:18ㄱ〉. 업더리왇다 : 여러 가짓 고툐 다 호  됴티 아니커든 病닐 업더리와다 뉘이고(以諸治皆至而 猶不差捧病覆臥之)〈구급상:36ㄱ〉. 업더리티다 : 어딘 사 믜오 원슈 티 고 죄 지 음식 티 야 져그면 모 배아 목수 멸고 크면 宗族 업더리텨 조 니 긋게 니(疾良善如讎隙며 犯形憲如飮食이니 小則隕身滅性고 大則覆宗絶嗣ㅣ니)〈번소 6:31ㄱ〉. 업더리혀다 : 소 두위혀 구루믈 짓고 소 업더리혀 비 니(翻手作雲覆手雨)〈두시 25:55ㄴ〉. 업더이다 : 그 남지니 뉘으처 해 업더옛거늘(男子見他呵責 卽自悔過自身投地)〈월석 1:44ㄱ〉. 업데다 : 摩耶ㅣ 해 업데샤  고기 너기시니 結使ㅣ 스러디거늘(摩耶五體投地 專精正念 結使消伏)〈석상 11:3ㄱ〉. 업데이다 : 悠悠히 벼개예 업데여셔 왼소로 虛空애 그를 스노라(悠悠伏枕左書空)〈두시 11:14ㄴ〉. 업데우다 : 므레 딘 사로    우희  업데우고(却令溺水之人將肚橫覆相抵在牛背上)〈구급상:71ㄱ〉.
주256)
노피 : 높이. 높-+이. ‘기리’ 등의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 구절 참조.
주257)
벼개 : 베개. ¶빗난 돗 겨펴 오 블근 벼개 노코  쇼 메우니(重敷婉筵고 安置丹枕고 駕以白牛니)〈법화 2:73ㄱ〉. 벼개 노피 벼여시니 먼  믌 소로다(高枕遠江聲)〈두시 2:28ㄱ〉.
주258)
볘여 : 베어. 볘-+어. ¶그저긔 世尊이 七寶床애 北녁 볘샤 올녀브로 누샤(爾時世尊 (三反入諸禪定 三反示誨衆已) 於七寶床右脅而臥)〈석상 23:17ㄴ〉. 벼개 노피 볘여 누우니 몸과 괘 도다(高枕表神清)〈두시 22:19ㄱ〉.
주259)
나죄 : 낮에. 『두시언해』에는 ‘나조ㅎ’와 ‘나죄ㅎ’가 쓰였는데 후자는 ‘낮’과 ‘저녁’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낮’의 의미로 쓰였다. ¶낮 : 西王母ㅣ 나죄 려오니 구 旗ㅣ 두위잇놋다(王母晝下雲旗翻)〈두시 9:9ㄱ〉. 저녁 : 나죄 먹논 거시 나못 거프리로다(暮食仍木皮)〈두시 25:36ㄴ-37ㄱ〉.
주260)
허(虛)히 : 허하게. ¶雜想 덜오  虛히 야 치샤 받오니라(刳除雜想고 虛心受敎也ㅣ라)〈능엄 7:69ㄱ〉. 시울 울여 虛히 쏘디 아니다라(鳴弦不虛發)〈두시 10:26ㄱ〉.
주261)
조오노니 : 조니. 졸-+오++오+니. ¶眠 조오롬 면〈훈몽상15ㄴ〉. 나리 늣록 오히려 시러곰 조오더니라(日晏犹得眠)〈두시 25:39ㄱ〉.
주262)
슬픈 놀애 : 슬픈 노래. 즉 두보의 시.
주263)
한 명제(漢明帝) : 후한의 제2대 황제. 28-75년. 광무제의 네 번째 아들.
주264)
화이십팔장어남궁운대(畵二十八將於南宮雲臺) : 『후한서』에는 한 명제(明帝) 때에 남궁(南宮)의 운대(雲臺)에서 전대(前代)에 공이 많은 등우(鄧禹) 등 28명의 장군의 화상을 그렸다. ‘운대(雲臺)’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雲臺예 자 지즈로 阻隔나(遂阻雲臺宿)’ 구절 참조.
주265)
교수(交綏) : 양쪽 군대가 서로 물러남.
주266)
남궁(南宮) : 남궁. 한 명제 때에 여기에 28명의 장수를 그려 놓았다고 한다.
주267)
훈업(勳業) : 큰 공로가 있는 업적.
주268)
재록(載錄)니 : 재록하니. 즉 책이나 문서에 기록하여 실으니.
주269)
믈읫 : 무릇.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凡字ㅣ 必合而成音니)〈훈언 13ㄱ〉.  興에 아디 몯게라 믈읫 몃 마릿 그를 지니오(春興不知凡幾首)〈두시 22:16ㄱ-ㄴ〉.
주270)
교수(交綏)호 삼가라 : 교수함을 삼가라. 즉 싸워서 반란군을 격퇴시키지 않고 합의 하에 적당히 물러나는 것을 삼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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