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상)

  •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상)
  • 술회 하(述懷下)
  • 가을날 형남에서 술회하며. 30운[秋日荊南述懷三十韻]
메뉴닫기 메뉴열기

가을날 형남에서 술회하며. 30운[秋日荊南述懷三十韻]


秋日荊南述懷三十韻 주001)
추일형남술회삼십운(秋日荊南述懷三十韻)
이 시는 768년(대력 3) 가을 공안(公安)으로 이주하기 전의 작품이다. 시는 기주(蘷州)와 강릉(江陵)을 떠돌면서 겪은 어려운 상황을 기술하였고, 용병과 화친 등 나라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혁신 정치를 희망적으로 노래하기도 하였다. 몸은 강호를 떠돌고 있으나 마음은 항상 임금 계신 곳에 있음을 표현하였다.

추일형남술회삼십운
(가을날 형남(荊南)에서 술회하며. 30운)

昔承推獎分 愧匪挺生材【言昔日에 承朝廷ㅅ 推薦獎勸而擢用야 媿非特出之材也ㅣ라 此下로 至楚祠雷 주002)
초사뢰(楚祠雷)
아래의 “楚ㅅ 祭祠  울에(초의 제사하는 곳의 우레는)”의 구절.
ㅣ 自敍다】

미러 내야 주003)
미러 내야
밀어 내어. 즉 방관(房琯)의 추천을 받아. 밀-+어#내-+아.
獎勸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7ㄴ

시논 分 닙와 주004)
닙와
입어. 닙-++아. ‘승(承)’에 대한 번역이다. ¶오라건 劫으로셔 부텨 接引샤 닙(我從久遠劫來 蒙佛接引)〈석상 11:8ㄴ〉. 虢國ㅅ 夫人이 님 恩惠 닙와(虢國夫人承主恩)〈두시 24:10ㄴ〉.
혀 난 주005)
혀 난
빼어난. ¶天帝釋이 그 사  忉利天에 가아 塔 일어 供養더라(時天帝釋取其箭歸忉利天上建塔盛貯供養)〈석상 3:14ㄱ〉. 혀 더뎌 니고져 너기디 아니노라(撥棄不擬道)〈두시 22:4ㄱ〉.
材質이 아니론 고 주006)
고
것을. 곳을. 바를. 곧+. 15세기 국어의 ‘곧’은 ‘것’가 ‘곳’의 용법이 있다. ¶것 : 다 如來ㅅ 威力이론 고 아라라(當知皆是如來威力)〈석상 9:28ㄱ〉. 곳 : 이 곧 뎌 고대(於此於被)〈용가26〉. 至極 精誠이 읏드민 고 甚히 아기 모놋다(甚昧至精主)〈두시 25:13ㄱ〉. 不用處는 디 아니 고디니 긔 無所有處ㅣ라〈석상 3:35ㄴ〉. 해셔 우 즈믄 지브란 사호매 주근 고 듣노니(野哭幾家聞戰伐)〈두시 14:19ㄴ〉.
붓그리오라 주007)
붓그리오라
부끄러워한다. 붓그리-++오+라. ¶그러나 든 잇고 죄 업서 몯 미추믈 기피 붓그리노라(然이나 有其志고 無其才야 心媿其不逮也노라)〈법화 1:9ㄴ〉. 어미 뷘 뫼해 니 기륨 어두믈 붓그리고(苗滿空山慚取譽)〈두시 25:20ㄴ〉.

【한자음】 석승추장분 괴비정생재【옛날 조정(朝廷)의 추천과 장려로 뽑혀 쓰임을 받들었는데, 스스로는 특출한 재목이 아님을 부끄러워함을 말한다. 이 아래로 초사뢰(楚祠雷)까지는 두보가 스스로를 서술한 것이다.】
【언해역】 옛날 추천을 받아 벼슬을 주시는 분수를 입고, 빼어난 재질이 아닌 것을 부끄러워하네!

遲暮宮臣忝 艱危袞職陪宮臣忝 주008)
궁신첨(宮臣忝)
직역하면 궁신(宮臣)에 자기를 더하였다는 것으로 좌습유(左拾遺)의 벼슬을 받아 황제를 보필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 謂拜拾遺掌供奉이라 袞職 주009)
곤직(袞職)
곤룡포(袞龍袍)를 입는 직위. 즉 천자(天子).
 指言天子ㅣ라】

늘구매 주010)
늘구매
늙음에. 늙-+오+ㅁ+애. 15세기 당시에도 ‘-오매’는 연결어미의 기능이 있었다. ¶비록 남지늬 어딜며 사오나오매 關係나(雖關夫主之明闇나)〈내훈 서6ㄱ〉. 봄 오매 됴타 쇽졀업시 니놋다(謾道春來好)〈두시 25:21ㄱ〉.
宮臣 더레여 주011)
더레여
더럽혀. 더럽-+이+어. 15세기 초기 문헌에는 ‘더러ᄫᅵ-’로 표기되었지만 『두시언해』에는 ‘더러이-’ 또는 ‘더레-’로 표기되었다. 『두시언해』에서는 ‘더러이 너기다’로 자주 쓰이는데 이때는 ‘누(陋)’나 ‘추(醜)’의 번역으로 쓰인다. ¶淨德은 한 德이 眞實로 조야 더러디 몯 씨라〈석상 20:35ㄱ〉. 부으리와 바톱괘 도로 돗글 더레이리라(觜距還汙席)〈두시 17:13ㄴ〉. 더러이 너기- : 큰 들 일워 아  제 더러이 너기  알오(成就大志야 自鄙先心코)〈법화 2:222ㄴ〉. 病 골이 기 니 俗人의 누네 더러이 너기니 밤마다   늘근 버드레셔 자놋다(病鶻孤飛俗眼醜 每夜江邊宿衰柳)〈두시 17:35ㄱ〉.
어려운 제 袞職 뫼오라 주012)
뫼오라
뫼셨다. 뫼-++오+라. ‘오’는 말하는 이인 주어와 호응한다. ¶阿難은 녜 뫼오니 외와 法藏 護持고(阿難 常爲侍者와 護持法藏고)〈법화 4:48ㄴ〉. 靑瑣門에 둘콤 드로 뫼시고(靑瑣陪雙入)〈두시 24:51ㄱ〉.

【한자음】 지모궁신첨 간위곤직배【궁신첨(宮臣忝)은 말하자면 습유(拾遺) 벼슬을 내리어, 임금의 말을 받아서 명령서를 짓는 일을 관장하게 함이다. 곤직(袞職)은 천자를 말함을 가리킨다.】
【언해역】 늙음에 궁신(宮臣)을 더럽혀, 어려운 때 곤직(袞職)을 뫼셨네!

揚鑣隨日馭 折檻出雲臺日馭 주013)
일어(日馭)
해가 탄 수레. 즉 임금(황제)이 탄 수레.
  톤 술위니 謂侍肅宗 주014)
숙종(肅宗)
당나라 제7대 황제 이형(李亨). 711-762년. 아버지는 당 현종 이융기이다. 756년 6월, 안·사의 난으로 당 현종이 양귀비(楊貴妃) 등과 함께 도피하자 이를 호송하였다. 현종은 태자에게 분조를 명해 자신은 서촉의 성도로 들어갔다. 태자는 영무(靈武)로 가는 길에 그해 7월 금군의 추대로 황제에 올랐고, 이 소식이 촉의 현종에게 전해지자 마침내 현종은 태자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으로 물러앉았다.
靈武 주015)
영무(靈武)
영하회족자치구의 중앙이며 황하의 동쪽에 위치한 시. 당 나라 때에는 삭방절도사의 영역이었다.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서 장안이 함락되자 숙종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ㅣ라 折檻 주016)
절함(折檻)
주운(朱雲)의 고사에서 난간이 부러진 것을 가리킴.
 用朱雲事 주017)
주운사(朱雲事)
한나라 성제(成帝) 때 장우(張禹)의 머리를 벨 것을 청한 신하. 성제는 크게 화를 내고 주운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사가 주운을 하옥시키려고 하자 주운은 난간으로 기어 올라갔다. 난간이 부러지자 어사가 결국 주운을 끌어내렸는데 이때 신경기(辛慶忌)가 죽기를 각오하고 머리를 찧으면서 주운을 살려줄 것을 간청하였다. 성제의 노여움이 조금씩 풀려 결국 주운은 풀려날 수 있었다. 훗날 난간을 교체하려고 하자 성제는 난간을 바꾸지 말고 원래 것을 수리하여 곧은 신하를 기릴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니 謂諫房琯 주018)
방관(房琯)
당나라의 관리. 696년-763년. 고향이 하남(河南)의 언사현(偃師縣) 구씨전(緱氏鎮)인데, 이곳은 두보의 고향인 공현(鞏縣)과 가깝다. 안사의 난 때 현종(玄宗)을 모시고 피난길에 올랐으며 영무(靈武)에 있던 숙종(肅宗)에게 옥새(玉璽)를 가지고 갔다. 763년(광덕 원년)에 부임 도중에 낭주(朗州)에서 병사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보의 시 중 “방 상공의 영구가 낭주에서 낙양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承聞河北諸節度入朝歡喜口號絕句十二首)『두시언해』 권5”를 참고할 수 있다.
也ㅣ라 出雲臺 주019)
운대(雲臺)
남궁(南宮)의 누대(樓臺)의 하나. 한 광무제가 신하들과 정사를 의논하던 자리이다. ‘운대(雲臺)’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雲臺예 자 지즈로 阻隔나(遂阻雲臺宿)〈두시 3:1ㄴ〉’와 ‘南宮에셔 勳業 載錄니(南宮載勳業)〈두시 3:7ㄱ〉’ 구절 참조.
 出自雲臺而歸華州 주020)
화주(華州)
현재 섬서성 동부에 있는 위난(渭南)시의 한 구(區). 최근에 현(縣)에서 승격되었다. 위하(渭河)의 북쪽에 있다. 두보는 방관(房琯)을 두둔하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 이곳 화주에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좌천되어 부임하였다.
也ㅣ라】

 타 日馭 좃고 檻 것고 주021)
것고
꺾고. -+고. 15세기 국어의 ‘-’은 자타동 양용동사이다. 15세기의 자타동 양용동사의 경우 자동사 용법이 이미 약해져서 자동사는 ‘타동사 용법+어 디다’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도 자동사로는 ‘것거디-’가 많이 쓰였다. ¶것-(자동사) : 天魔ㅣ 것거 아디며(天魔ㅣ 摧碎며)〈능엄 10:74ㄴ〉. 도라 갈  큰 길히 것도다(歸心折大刀)〈두시 12:5ㄴ〉. 것-(타동사) : 고 곳 것고(取好妙華)〈석상 11:41ㄴ〉. 보리 갓고로 자게 며 나모 가질 것거 리놋다(麥倒桑枝折)〈두시 4:13ㄴ〉. 것거디- : 太子ㅣ 화 시니 화리 것거디거늘(菩薩引弓 弓即折破)〈석상 3:13ㄴ〉. 것거뎻던 筋力이 놋다(筋力蘇摧折)〈두시 10:25ㄱ〉.
雲臺로셔 나오라 주022)
나오라
나왔네. 나-+오+라. ‘-오라’는 부정시제 즉 과거로 해석하여야 한다.

【한자음】 양표수일어 절함출운대【일어(日馭)는 해가 탄 수레니, 영무(靈武)에서 숙종(肅宗)을 모신 일을 말한다. 절함(折檻)은 주운(朱雲)의 일을 쓴 것이니, 방관(房琯)을 간한 것을 말한다. 출운대(出雲臺)는 운대로부터 나가 화주(華州)로 좌천되어 간 것을 말한다.】
【언해역】 말 타 황제의 수레를 쫓고, 난간을 꺾고 운대(雲臺)에서 나왔네!

罪戾寬猶活 干戈塞未開

이슈메 주023)
이슈메
있음에. 이시-+우+ㅁ+에. ¶天下ㅅ 內예 뉘 智慧 이시며 죄 자 太子ㅅ 스스 외려뇨(化內 誰最有智 誰具技能 堪為太子作於師匠)〈석상 3:7ㄱ〉. 明滅 먼  旗ㅅ 비치 이시락 업스락  시라〈두시 1:2ㄴ〉.
寬恩 주024)
관은(寬恩)
관대한 은혜. 즉 숙종이 방관(房琯)을 간하던 두보를 벌하지 않고 화주(華州)의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보낸 것을 말함.
로 오히려 사시니 주025)
사시니
살았으니. 살-+시+니.
干戈ㅣ 마가 여디 아니얏더라 주026)
간과(干戈)ㅣ 마가 여디 아니얏더라
간과(干戈)가 막아 열리지 아니하고 있더라. 즉 반란으로 인하여 병사들이 모든 곳을 막아 길이 열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한자음】 죄려관유활 간과색미개
【언해역】 죄 있음에 관대한 은혜로 오히려 살았으니, 간과(干戈)가 막아 열리지 아니하고 있네!

星霜玄鳥變 身世白駒催玄鳥 주027)
현조(玄鳥)
제비.
 䴏이라 莊子애 人生天地ㅣ 若白駒之過隙이니라 주028)
인생천지(人生天地)ㅣ 약백구지과극(若白駒之過隙)이니라
『장자(莊子)』 「지북유편(知北遊篇)」에 나오는 말로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은, 마치 날랜 말이 틈 앞을 지나는 것처럼 순간적인 일에 불과할 뿐이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감을 비유적을 표현한 말이다.
此 時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8ㄱ

序ㅣ 수이 가 니니라 주029)
니니라
이르니라. 말한다. 15세기의 ‘니-’는 ‘말하다’와 ‘~에 이르다’의 뜻이 있다. ¶말하다 : 王이 大愛道려 니샤 太子 뫼셔 天神 祭  절리라(時白淨王將禮天神 前抱太子)〈석상 3:3ㄴ〉.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故로 愚民이 有所欲言야도)〈훈언 :2ㄱ〉. ~에 이르다(니르-) : 이리 혼 因緣으로 成佛호매 니르로니(以此因緣 自致成佛)〈석상 11:22ㄴ〉. 龐公이 주구메 니르록 수머시니라(龐公至死藏)〈두시 20:37ㄴ〉. ~에 이르다(니-) : 어엿비 너기시 엄의 랑이 세 적 올몸애 니신 줄 각야(念子母之愛ㅣ 至於三遷야)〈소학 5:9ㄴ〉.

벼리 돌며 서리 오매 가 새 주030)
가 새
제비.
改變니 주031)
개변(改變)니
제비가 겨울이 되면 강남으로 갔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오는 것.
몸과 世間ㅅ 이 주032)
흰. -+ㄴ. 15세기에 ‘희다’를 표현하는 단어는 ‘-’와 ‘희-’가 있다. ¶- : 가마괴 本來 거므며 鵠이 本來 며(烏ㅣ 從來예 黑며 鵠이 從來예 白며)〈능엄 10:9ㄱ〉. 돐 門읜 서리와 이슬왜 오 玉殿엔 이시 퍼러도다(石門霜露白 玉殿莓苔靑)〈두시 6:17ㄴ〉. 희- : 제 므레 미론 흰 깁과  깁과 잇다(水光絹 白絲絹)〈번노하:26ㄱ〉. 흰  서르 비취엿도다(素節相照燭)〈두시 25:2ㄴ〉.
야지 리 주033)
ᆯ리
빨리. -+이(부사파생접미사). ¶入聲은 리 긋 소리라 促急은  씨라〈훈언 :14ㄱ〉. 하 울워러 보니 白日이 리 가놋다(仰視皇天白日速)〈두시 25:29ㄴ〉.
가 도다
주034)
 야지 리 가 도다
흰 망아지가 빨리 가는 듯 하도다. 장자에, “인생 천지간이 흰 망아지가 홀연히 지나감과 같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却 忽然而已)”〈莊子·知北游〉’의 구절을 인용하여 몸이 늙어가고 세월이 빨리 흘러감을 말하였다.

【한자음】 성상현조변 신세백구최【현조(玄鳥)는 제비다. 장자에,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은, 마치 날랜 말이 틈 앞을 지나는 것처럼 순간적인 일에 불과할 뿐이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郤 忽然而已]”라 하였다. 이것은 시간이 빨리 지나감을 말한다.】
【언해역】 별이 돌며 서리가 옴에 검은 새가 개변(改變)하니, 몸과 세상의 일은 흰 망아지가 빨리 가는 듯하도다!

伏枕因超忽 扁舟任往來超忽 주035)
초홀(超忽)
빨리 흘러감.
 猶輕速 주036)
경속(輕速)
빠른 속도.
이라】

벼개 주037)
벼개
베개. ¶빗난 돗 겨펴 오 블근 벼개 노코  쇼 메우니(重敷婉筵고 安置丹枕고 駕以白牛니)〈법화 2:73ㄱ〉. 벼개 노피 벼여시니 먼  믌 소로다(高枕遠江聲)〈두시 2:28ㄱ〉.
굽스러셔 주038)
굽스러셔
굽혀 쓰러져서. 굽-+슬-+어+셔. ‘중간본’의 ‘굽스려셔’는 잘못이다. ‘굽슬-’은 『삼강행실도』의 예를 제외하면 모두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또한 이 책의 「병이 난 뒤 왕의의 집을 지나다가 술을 마시고(病後過王倚飲贈歌)」에 나오는 ‘對答야 닐오 벼개예 굽스러 어려우미 얘라(答雲伏枕艱難遍)’를 참조할 것. ¶仲義의 이 라가아 아미 劉氏려 닐어늘 劉氏 믄득 가아 울며 굽스러 닐오(仲義弟馬兒 走報劉氏 劉遽徃救之 涕泣伏地告於兵曰)〈삼강런던烈:28ㄱ〉. 雲安縣에 벼개예 굽스러셔(伏枕雲安縣)〈두시 7:10ㄴ〉.
지즈로 주039)
지즈로
인하여. ‘인(因), 잉(仍), 수(遂)’에 대한 번역어로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이제 니르록 메 스츄니 지즈로 左右에 잇 도다(至今夢想仍猶佐)〈두시 9:6ㄱ〉. 햇 興의 疎放호 지즈로 브르노라(因歌野興䟽)〈두시 15:16ㄴ〉.
리 오니 죠고맛 주040)
죠고맛
조그마한. ‘죠고맛’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綠林寧小患)〈두시 3:5ㄱ〉’ 구절 참조.
로 가며 오며 호  조초 노라 주041)
 조초 노라
마음 따라 한다. 즉 마음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한자음】 복침인초홀 편주임왕래【초홀(超忽)은 빨리 가는 것과 같다.】
【언해역】 베개를 베고 누우니 세월은 빨리 가니, 조그마한 배로 가며오며 함을 마음대로 하네!

九鑽巴噀火 三蟄楚祠雷論語 주042)
논어(論語)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 사서(四書)의 하나이다. 현재 논어는 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서술 방식과 호칭의 차이 등을 기준으로 앞의 열 편을 상론(上論), 뒤의 열 편을 하론(下論)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앞의 열 편이 더 이전 시대에 서술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두시언해』에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한 주석이 많이 나온다.
鑽燧改火 주043)
찬수개화(鑽燧改火)
계절에 따라 그 계절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비벼서 새로이 불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논어』 「선진(先進)편」에 나오는 구절로 재아(宰我)가 부모의 상을 1년으로 해도 되는지 묻자, 공자가 3년 상이 좋다고 대답하는 대목에 나오는 재아의 말이다.
ㅣ라다 漢ㅅ 欒巴 주044)
난파(欒巴)
동한(東漢) 촉군(蜀郡) 사람. 경서(經書)를 두루 보고 도술(道術)도 좋아하였다고 한다. 한번은 어떤 자리에서 술을 뿜어 성도(成都)의 불을 껐다는 고사가 있다. 『후한서』 권87, 『몽구(蒙求)』 중 ‘난파손주(欒巴噀酒)’ 참조.
噀酒야 以救蜀火니라 주045)
손주(噀酒)야 이구촉화(以救蜀火)니라
술을 뿜어 촛불을 구하니라. 즉 불을 껐다는 말이다.
楚祠 주046)
초사(楚祠)
일반적으로 한신(韓信)의 사묘(祠庙)를 말하나 여기서는 초(楚) 지역에서 제사를 올리던 사당(祠堂)을 말한다.
楚ㅅ 襄王 주047)
초(楚)ㅅ 양왕(襄王)
전한의 황족이자 제후왕. ?-기원전117년.
의 所遊之地라 此 言在蜀九年이오 在楚三年이라 주048)
재촉구년(在蜀九年)이오 재초삼년(在楚三年)이라
두보는 48세 때인 759년(건원 2) 12월 1일에 성도로 향해서, 54세 때인 765년(영태 원년) 5월에 성도를 떠났다. 민강(岷江)을 통해 유주(楡州, 사천 重慶), 충주(忠州, 사천 忠縣), 운안(雲雁, 사천 雲陽)을 통하여 55세 때인 766년(대력 원년) 늦은 봄에 기주(夔州, 사천 奉節)에 도착하였고, 이후 적갑(赤甲), 양서초당(瀼西草堂), 동둔(東屯) 등으로 옮겨 지내다가, 57세 때인 768년(대력 3) 동생 두관에게서 편지를 받고 1월에 기주(夔州, 사천 奉節)를 출발하여 협주(峽州, 호북 宜昌) 하뢰(下牢)에 도착함으로써 삼협(三峽)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 해 3월에는 강릉(江陵, 湖北 江陵)에 도착하게 된다. 강릉 도착부터 초(楚) 지역이라 계산하면, 강릉 도착 후 가을 공안(公安, 湖北 公安)으로 거처를 옮겼고, 늦겨울 공안을 출발하여 악주(岳州, 호남 岳陽)에 도착하여 설을 악주, 즉 악양(岳陽)에서 보냈다. 58세 때인 769년(대력 4) 정월에 악양을 출발하여 형산(衡山), 상담(湘潭, 호남 湘潭), 담주(潭州, 호남 長沙)에 도착하여 59세 때인 770년(대력 5) 늦봄에 담주(潭州)에서 이구년(李龜年)과 재회를 하고, 4월에 군벌의 반란을 피해 형주(衡州)로 피난하였다가 침주(郴州, 호남 郴州)로 가다가 도중에 뇌양(耒陽, 호남 耒陽) 방전역(方田驛)에서 섭 현령이 보내준 음식을 받은 일이 있고, 이후 양양(襄陽, 호북 襄陽)으로 가다가 담주(潭州, 호남 長沙)에서 머문 것을 보이며 겨울에 고향으로 향하는 상강 기슭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시는 앞선 주석에서 한성무(1997)을 따라 두보가 57세 때인 768년(대력 3)에 쓴 작품으로 파악하였는데, 이렇게 보면 주석의 ‘재촉구년(在蜀九年)이오 재초삼년(在楚三年)이라’는 정확하게 해석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또한 ‘중풍이 들어 배에서 베개를 베고 누어 회포를 쓰면서 호남의 친구들에게 드리는 36운(風疾이어 舟中伏枕書懷야 呈湖南親友논 三十六韻이라)’의 ‘十暑岷山葛 三霜楚戶砧’ 구절의 주석은 ‘此 言十年 在岷已着葛고 三年 在楚而聞砧也ㅣ라’라 했으므로, 촉 지역에서 10년을 있었다고 말한 것이 되어 미세하지만 일치하지 않는 부분으로 간주할 수 있다.

欒巴 술 던 주049)
던
뿜던. -+더+ㄴ. ¶골 베 아  조막 구루믈 놋다(洞口朝噴一片雲)〈백련4ㄴ〉. 鳳凰 개예셔 비 노라(噀雨鳳凰翎)〈두시 19:36ㄱ〉.
브를 아홉 번 비븨여 주050)
비븨여
비비어. 비븨-+어. ¶둘찻 리 實로  體어늘 눈 비븨유믈 因야 달이 외니(蓋第二之月이 實則一體어늘 因揑야 成異니)〈능엄 2:27ㄴ〉. 지븻 사 브를 비븨여 내요 프른 싣남글 놋다(家人鑽火用靑楓)〈두시 11:15ㄱ〉.
내오 楚ㅅ 祭祠  울에 주051)
울에
우레는. 울에+. ¶여슷  히즷도 아니샤 한비도 오며 울에도 며 녀르미여 겨리여  말도 아니코(以續精氣端坐六年 大雨雷電冬夏默坐)〈석상 3:38ㄴ〉. 올 제 울에 震怒호 가 고(來如雷霆收震怒)〈두시 16:47ㄴ〉.
세 번 蟄藏도다 주052)
칩장(蟄藏)도다
칩장하도다. 칩장(蟄藏)#-+도+다. ‘칩장(蟄藏)하다’는 국어사전에 ‘벌레 따위가 겨울 동안 땅속이나 굴속에 죽치고 있다’로 풀이되어 있다.

【한자음】 구찬파손화 삼칩초사뢰【논어에 찬수개화(鑽燧改火)라 하였다. 한(漢)의 난파(欒巴)가 술을 뿜어 촛불을 살렸다. 초사(楚祠)는 초(楚)의 양왕(襄王)이 놀던 곳이다. 이것은 두보가 촉에서 9년, 초에서 3년을 있었음을 말한다.】
【언해역】 난파(欒巴)가 술을 뿜던 불을 아홉 번 비비어 내고, 초(楚)의 제사(祭祠)하는 데의 우레는 세 번 칩장(蟄藏)하도다!

望帝傳應實 昭王問不回蜀ㅅ 望帝 주053)
촉(蜀)ㅅ 망제(望帝)
촉(蜀)나라의 망제(望帝). 생몰년 미상. 상(商)나라와 주(周)나라의 교체 시기인 춘추시대 소위 지금의 성도(成都) 지역인 고촉(古蜀)을 다스렸던 임금.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死爲杜鵑 주054)
사위두견(死爲杜鵑)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 즉 전설에 의하면 촉의 망제는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니라 周昭王 주055)
주(周) 소왕(昭王)
서주(西周)의 제4대 임금. 기원전 1027~기원전 977년. 즉위 후 회이(准夷)의 반란이 발생했지만 이를 평정했는데 적극적인 남방 원정으로 동이 26방을 따르게 했고, 이어서 초나라로 원정을 실시했으나 원정 도중에 행방불명되었고, 초나라군의 공격에 의해 전사했다고 여겨진다.
南征不復 주056)
남정불복(南征不復)
주나라 소왕(昭王)이 촉을 정벌하러 길을 떠났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였다.
야 齊桓公 주057)
제(齊) 환공(桓公)
제나라의 제16대 후작. ?-기원전 643년. 제나라 공의 자리에 오른 환공은 관중을 재상으로 임명하였고, 관중은 개혁을 추진해, 국력, 군사력, 문화 향상에 성공했다. 이때 주나라는 쇠퇴하고 있어, 제후 사이의 대립을 억제하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관중의 개혁을 받아들인 제 환공은 주변 국가에 그 명성이 전해져, 주변 제후는 주나라를 대신해 제후 사이의 문제를 환공에게 묻게 되었다. 현재의 호북성을 중심으로 장강 유역을 기반으로 해 남방에서 세력을 늘려, 주왕실이나 제후를 위협하기 시작하고 있던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기원전 651년 환공은 회맹을 거행해 춘추의 패자가 되었다.
伐楚而問之 주058)
벌초이문지(伐楚而問之)
제 환공(齊桓公)이 초를 정벌하고 주 소왕(昭王)의 일을 물었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8ㄴ

니라 此 言蜀楚ㅅ 古事다】

望帝 相傅호미 다 주059)
다
당연히. 당+이. ¶太子ㅣ 三十二相八十種好ㅣ 시니 다 出家샤 부톄 외시리로소다〈석상 3:2ㄱ〉. 王餐의 지비 峴山 알 우므를 머믈워슘과 다 리로다(應同王粲宅 留井峴山前)〈두시 7:4ㄴ〉.
올니 주060)
올니
옳으니. 올#-+니. ¶나옷 외면 아기와 나와  죽고 올면 하히 본즈 시리라(我此兒者 實不從他而有斯子 若實不虛 猶六年在我胎中者 火當消滅終不燒害我之母子)〈석상 3:37ㄱ〉. 榮華히 니닌 올며 외니 잇니라(榮華有是非)〈두시 10:31ㄴ〉.
昭王의 도라오디 몯샤 무르니라

【한자음】 망제전응실 소왕문불회【촉(蜀)의 망제(望帝)가 죽어 두견(杜鵑)이 되었다. 주(周) 소왕(昭王)이 남쪽으로 정벌을 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였는데, 제(齊) 환공(桓公)이 초(楚)를 정벌하고 이에 대해 물었다. 이것은 촉 지역과 초 지역의 고사를 말한 것이다.】
【언해역】 망제(望帝)를 서로 전함이 당연히 옳으니, 소왕(昭王)이 돌아오지 못하심을 물었네!

蛟螭深作橫 豺虎亂雄猜【此 言水陸行路之難니 亦以喩盜賊다】

蛟龍 주061)
교룡(蛟龍)
교룡들은. 교료ᇰ+ㅎ+. 『두시언해』의 ‘교리(蛟螭)’는 언해문에서 그대로 ‘교리(蛟螭)’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와 같이 ‘교룡(交龍)’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용(龍)’으로 번역된 경우도 있다. ¶교리출무흔(蛟螭出無痕 蛟螭 나 그제 업스니라)〈두시 8:7ㄴ〉. 화옥각교리(華屋刻蛟螭 빗난 지븨 蛟龍 사곗도다)〈두시 22:42ㄴ-43ㄱ〉.
기피셔 주062)
기피셔
깊이. 깊-+이+셔. ‘기피’는 부사로서 여기에 첨사 ‘셔’가 연결된 구성이다. 의역하면 ‘깊은 곳에서’이다. 『두시언해』에는 ‘기피셔’의 예가 한 예가 더 있다. ¶조  기피셔 우 납 인 로 올마가고(窄轉深啼狖)〈두시 2:6ㄴ〉.
거슯주믈 주063)
거슯주믈
거스름을. 거슯즈-+오+ㅁ+. ‘거슯즈-’의 ‘즈’는 16세기 문헌에서는 ‘ᄧᅳ’로도 표기되었다. ¶거슯즈- : 어딘 사 몰라보아 夫人 거슯지 호다(不識賢良 違逆夫人)〈석상 11:33ㄱ〉. 主將이 거슯즈며 順호믈 마라(主將曉逆順)〈두시 4:22ㄴ〉. 거슯저디- : 考功의 等第에 거슯저디여(忤下考功第)〈두시 2:40ㄱ-ㄴ〉.
짓고 豺虎 어즈러이 모디로 雄壯히 놋다

【한자음】 교리심작횡 시호란웅시【이것은 땅과 물을 다니기 어려움을 말하는 것이니, 또한 도적을 비유한다.】
【언해역】 교룡(蛟龍)들은 깊이 거스름을 짓고, 시호(豺虎)는 어지럽게 모질기를 웅장(雄壯)히 하는구나!

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此 言功業 주064)
공업(功業)
큰 공로가 있는 일.
利名 주065)
이명(利名)
‘중간본’에는 ‘명리(名利)’로 되어 있다.
이 皆不成也ㅣ라】

녯 功業을  주066)

장차. 원문에는 이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다. 『두시언해』의 번역자가 문맥에 의거해서 번역어로 사용한 경우에 해당된다. 『두시언해』에서 ‘차’는 주로 ‘장(將)’의 번역어로 사용된다. 다음에 제시된 예는 ‘장(將)’이 없이 문맥에 의해 ‘차’를 번역문에 사용한 경우이다. ¶薰風이  律管애 應리니(熏風行應律)〈두시 23:9ㄱ〉.
말리로소니 주067)
말리로소니
말 것이니. 말-+리+도+ㅅ+오+니. ‘-리로소니’를 가진 예문은 15세기에 많지만 ‘말리로소니’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王子ㅅ 命이 닐웻 부니로소니 아례나   노라 리다(當就於死努力恣情五欲自娛)〈석상 24:28ㄱ〉. 官聯을 어즈러우믈 말리로소니(官聯辭冗長)〈두시 20:48ㄱ〉.
 일후믄 주068)
 일후믄
뜬 이름은. 즉 헛된 이름은.
어듸 잇뇨 주069)
잇뇨
있는가. 잇-++니+오. ‘-뇨’의 ‘오’는 설명의문문 종결어미로서 앞의 ‘어디’와 호응한다.

【한자음】 소업행이의 부명안재재【이것은 공업(功業)과 이명(利名)이 다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옛 공업(功業)을 장차 말 것이니, 뜬 이름은 어디 있는가?

琴烏曲怨憤 庭鶴舞摧頹琴烏曲 주070)
금오곡(琴烏曲)
거문고의 노래인 「오야제(烏夜啼)」. 즉 까마귀가 밤에 우는 것을 거문고로 탄 곡.
 卽烏夜啼라 此 言心之怨憤 寄之琴曲而彈니 庭中之鶴이 聞之고 爲之舞也ㅣ니라】

거믄고앳 烏曲소리 주071)
거믄고앳 오곡(烏曲)소리
거문고의 노래인 「오야제(烏夜啼)」의 소리. 거믄고+애+ㅅ.
애와텨 주072)
애와텨
애달아. 애달파. 애-+왇+티+어. ‘애왇브다’ 등도 존재하므로 ‘애-’가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나 15세기 문헌에는 ‘*애다’ 또는 ‘*애브다’는 없다. ¶손 죽디 몯야 셟고 애왇븐 들 머거(不能自刑 懷毒抱恨)〈석상 6:5ㄱ〉. 녜 엇뎨 摧殘야셔 비루수 애왇븐  베푸미 아니리오(爾豈摧殘始發憤)〈두시 17:5ㄱ〉.
니 헷 주073)
헷
뜰의. ㅎ+에+ㅅ.
鶴이 춤 처 므르든놋다 주074)
므르든놋다
무너져 떨어지는구나. 므르-#듣-++옷+다. ¶남기 다 것드르며 다미며 지비며 다 므르듣더니〈월석 22:71ㄴ〉. 져믄 나히 마 므르듣도다(靑歲已摧頹)〈두시 21:37ㄱ〉.

【한자음】 금오곡원분 정학무최퇴【금오곡(琴烏曲)은 즉 까마귀가 밤에 우는 것이다. 이것은 마음의 원분(怨憤)을 거문고 곡에 부쳐 연주함을 말한 것이니, 뜰에 있는 학이 거문고 소리를 듣고 춤을 추는 것이다.】
【언해역】 거문고의 오곡(烏曲)소리 애달파 하니, 뜰에 있는 학이 춤을 추어 무너져 떨어지는구나!

秋水漫湘竹 陰風過嶺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9ㄱ

大庾嶺 주075)
대유령(大庾嶺)
주석에 의하면 매화가 많은 고개라 한다.
에 多梅花니라 此 言時景다】

 므른 주076)
 므른
가을의 물은. 이 시를 지을 때가 가을임을 말해 준다.
瀟湘 주077)
소상(瀟湘)
소상은 호남성의 별칭으로 쓰인다. ‘소(瀟)’는 호남성 경내의 소수(瀟水)를 가리키며, ‘상(湘)’은 호남성의 상수(湘江)을 가리킨다.
앳 대예 얏고 주078)
얏고
가득하였고. -+아#잇-+고. ¶六師 무리 閻浮提예 야도 내 바랫  터리 몯 무으리니(正使此輩六師之衆 滿閻浮提數如竹林 不能動吾足上一毛)〈석상 6:27ㄱ〉. 中에 므리 臥牀애 도다(中宵淚滿床)〈두시 7:15ㄴ〉.
陰風 주079)
음풍(陰風)
음산한 바람. 즉 시절이 가을이 됨에 따라 바람도 서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嶺엣 주080)
영(嶺)엣
고개의. 대유령(大庾嶺)을 말한다.
梅花로 디나놋다 주081)
매화(梅花)로 디나놋다
매화로 지나는구나. ¶-로 디- : 淨居天이 沙門이 외야 錫杖 잡고 바리 받고 알로 디나가거늘(天化一沙門 持錫掌鉢徐行駕前)〈석상 3:19ㄴ〉. 비치 棕나모 亭子로 디나 草亭에 드럿도다(色過棕亭入草亭)〈두시 25:20ㄴ〉. -을 디- : 慈母ㅣ 나 려 耆婆天을 뵈 제 이 므를 디나니(慈母ㅣ 携我야 謁耆婆天제)〈능엄 2:8ㄴ〉. 곳고리 므를 디나 두위텨 도라가거(黃鶯過水翻回去)〈두시 10:18ㄱ〉.

【한자음】 추수만상죽 음풍과령매대유령(大庾嶺)에 매화가 많다. 이것은 시절의 경치를 말한 것이다.】
【언해역】 가을 물은 소상(瀟湘)의 대나무에 가득하였고, 음산한 바람은 고개의 매화를 지나는구나!

苦搖求食尾 常曝報恩腮【求食尾 司馬子長 주082)
사마자장(司馬子長)
사마천(司馬遷). 『사기』의 작가. 기원 전 145년 또는 135년-기원전90년.
이 曰猛虎ㅣ 在檻穽之中야 搖尾而求食니라 주083)
맹호(猛虎)ㅣ 재함정지중(在檻穽之中)야 요미이구식(搖尾而求食)니라
사나운 호랑이가 함정 가운데서 꼬리를 흔들어 먹이를 구한다.
報恩 見上二卷報恩珠註다 주084)
보은(報恩) 견상이권보은주(見上二卷報恩珠註)다
보은(報恩)에 대해서는 『두시언해』 제2권의 ‘보은주(報恩珠)’에 관한 주석을 보라는 말이다. 제2권의 보은주(報恩珠)에 관한 주석은 ‘보주(報珠) 수후(隋候)ㅣ 견사상(見蛇傷)고 이약봉지(以藥封之)야 후(後)에 사(蛇)ㅣ 함주이보(銜珠以報)니’인데, 해석하면 ‘보주(寶珠)는 수나라 임금이 뱀에게 물려 약으로 치료하고 나니 후에 뱀이 구슬로 물고 와 은혜를 갚았으니’이다.
曝腮 주085)
폭시(曝腮)
주석에 의하면 폭시는 물고기가 용문(龍門)을 통과한 것은 승천하여 용이 되고, 통과하지 못한 것들은 이마에 점이 찍히고 뺨에 햇볕을 쬐며 피를 흘린다는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군국지」 5 교지군(交趾郡) 참조.
 魚ㅣ 登龍門者 化爲龍고 不登者 點額曝腮니라 此下로 至劃易該 주086)
지화역해(至劃易該)ᄂᆞᆫ
주석에서 ‘초간본’의 ‘至劃易該’은 ‘중간본’에 ‘至劃易諺’으로 되어 있다.
ㅣ 自敍다】

밥 求 리 苦로이 주087)
고(苦)로이
괴롭게. 苦+롭+이.
이어고 주088)
이어고
흔들고. 이어-+고. ‘이어-’는 자동사와 타동사로 모두 쓰이는 소위 자타동 양용동사이다. 예문의 ‘미, 지치’는 주어이어서 이들과 함께 쓰인 ‘이어-’는 자동사이며, ‘覺을, ’과 함께 쓰인 ‘이어-’는 타동사이다. ¶미 이어면 뮈오(風搖면 則動고)〈능엄 4:40ㄱ〉. 남기 여희  이어니 고지 아아도다(樹攪離思花冥冥)〈두시 8:31ㄴ〉.
恩 가  주089)

뺨을. +. ¶두 미 븕고(兩臉赤)〈구급 하:50ㄱ〉. 노   티디 말며(高馬勿唾面)〈두시 25:14ㄱ〉.
녜 노라 주090)
노라
쬐노라. -++오+라. ¶녜 甘蔗王이 야 나디 아니야  甘蔗 야 야디여 날 日種이라 니라〈능엄 3:76ㄱ〉. 旌旗예  덥게 니 龍과 얌괘 뮈오(旌旗日暖龍蛇動)〈두시 6:4ㄱ〉.

【한자음】 고요구식미 상폭보은시【구식미(求食尾)는 사마자장(司馬子長)이 말하기를, “사나운 호랑이가 함정 가운데서 꼬리를 흔들어 먹이를 구한다.”라고 하였다. 보은(報恩)은 위의 제2권 보은주(報恩珠)에 관한 주(註)를 보라. 폭시(曝腮)는 고기가 용문(龍門)으로 오르는 것은 용이 되고, 올라가지 못한 자는 이마에 점이 찍히고 뺨에 햇볕을 쬔다는 것이다. 이 이하로 화역해(劃易該)까지는 두보가 자기를 서술한 것이다.】
【언해역】 밥 구(求)하는 꼬리를 괴롭게 흔들고, 은혜 갚을 뺨을 항상 쬐네!

結舌防讒柄 探腸有禍胎【此 言惟口興戎고 禍根이 藏於中腸故로 結舌不言야 以防纔人之羅織也ㅣ라】

혀 여 주091)
여
매어. -+어. ¶ 婇女ㅣ 末利花鬘 가져 드러 太子ㅅ 모  太子ㅣ 도 아니야 보신대(有一婇女 自手將一末利華鬘 前出繫於太子頸下 而太子(眼熟視不瞬) 觀彼女人)〈석상 3:24ㄴ〉.  야 오 바 머리 왯노니(系舟今夜遠)〈두시 6:11ㄴ〉.
하 주092)
하
헐뜯는. 할-+. 15세기의 ‘:할다(상성)’는 ‘①헐뜯다, ②참소하다’의 뜻이 있다. 참고. 할다. 할이다. 할리다. 할아다. 할아티다. 하숫그리다. ¶헐뜯다; 兄을 새와 녜 할오져 야 일마다 兄을 거슯지 더라(妒嫉於兄 常欲毀害觸事)〈월석 22:25ㄱ〉. 하료 매 스스로 어드니라(讒毀竟自取)〈두시 2:49ㄴ〉 참소하다; 眞宰ㅣ 하해 올아가 할오 이 울리로다(眞宰上訴天應泣)〈두시 16:29ㄴ〉. 할아-; 如來ㅅ 마곰 업수 여르샤 疑心과 할아니 濟度샤 恭敬야 울워와 뎌 城隍애 디나(欽仰如來ㅅ 開闡無遮샤 度諸疑謗와 經彼城隍야 徐步郭門야)〈능엄 1:34ㄱ〉. 하숫그리-; 님 겨틔 하숫그릴 사미 잇니라(君側有讒人)〈두시 17:18ㄴ〉.
 주093)

자루를. +. ‘’는 모음어미가 오면 ‘’의 형태로 쓰이면서 연철되지 않는 속성이 있는데 이와 유사한 명사로는 ‘, ’ 등이 있다. ¶비 텨 이 것거디여 보 瓔珞이 해 다 러디거늘〈월석 25:58ㄱ〉. 긴 鑱 긴 鑱이여  나모 이니(長鑱長鑱白木柄)〈두시 25:26ㄴ〉.
막노니 내 胸腸 더드므니 禍難의 根本이 잇도다

【한자음】 결설방참병 탐장유화태【이것은 오직 입이 오랑캐를 흥하게 하고 화근(禍根)이 뱃속에 있기 때문에 혀를 매어 말하지 않아 그것으로 매끄러운 비단같이 사람을 비방함을 막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혀를 매어 헐뜯는 자루를 막으니, 내 흉장(胸腸)을 더듬으니 화난(禍難)의 근본(根本)이 있도다!

蒼茫步兵哭 展轉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9ㄴ

仲宣哀阮藉 주094)
완적(阮藉)
위나라 때의 시인. 210~263년. 혜강(嵇康)과 함께 죽림칠현의 중심 인물. 완적은 혜강의 형인 혜희에 대해서는 아첨하는 선비로 여겨 백안(白眼)으로 대했으나, 아우인 혜강에게는 청안(靑眼)으로 대하여, 여기서 죽림 교유의 중핵이 이루어졌다 한다. 「도덕론(道德論)」, 「통로론(通老論)」, 「달장론(達莊論)」, 「대인선생전(大人先生傳)」 등 노장적 세계를 그린 작품이 있다. 또한 감음을 일삼고, 수레가 막다른 길에 이르자 통곡했다고 하는 완적의 심정은 「영회시(詠懷詩)」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시풍은 당나라 초의 진자앙(陳子昻)의 「감우시(感遇詩)」 38편이나, 이백의 「고풍(古風)」 59편 등에 계승되었는데, 중국 사인(士人)들에게 자기표현의 형태를 제시했다. 죽림칠현 가운데서도 은자적 성격을 진하게 갖는 대표적 인물이다.
이 爲步兵校尉 주095)
보병교위(步兵校尉)
보병의 교위. 교위(校尉)는 당나라 때 6품 이하의 벼슬의 품계에 붙이던 칭호이다.
니 遇途窮則哭 주096)
우도궁즉곡(遇途窮則哭)
완적(阮藉)은 「영회시(詠懷詩)」에서 수레가 막다른 길에 닿자 통곡했다고 노래하였다.
더니라 展轉 주097)
전전(展轉)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것.
 臥不安也ㅣ라 仲宣 주098)
중선(仲宣)
왕찬(王粲)의 자(字). 왕찬은 동한(東漢) 말의 문학가로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사람이며 문학적 업적을 쌓았는데, 『두시언해』에서는 두보가 존경하는 시인으로 자주 언급되며 특히 그의 작품 「칠애시(七哀詩)」에 대한 언급이 많다.
 王粲 字ㅣ니 作七哀詩니 此 ㅣ 自比二人다】

아라히 주099)
아라히
아스라이. 아득히. 기원적으로 ‘아라-’는 ‘아+아#-’로 분석될 것으로 보이나 ‘*아’은 15세기 문헌에서 문증되지 않는다. 참고. 아라이. 아랗다. 아라다. ¶아라- : 범 말인 막대 소리 虛空애 아라니 사홈 말이라(解虎錫 響遙空니 分鬬야)〈남명 상:69ㄴ〉. 百年에 히 幽僻니 柴門이 아라고(百年地辟柴門迥)〈두시 22:7ㄴ〉. 아라히 : 즈추므로브터 아라히 열  남거니 어느 날 니즈리오(自隔으로 杳逾十載어니 何日忘之리오)〈영가 하:108ㄱ〉. 淮湖앳 賦稅ㅣ 아라히 차 오놋다(緬通淮湖稅)〈두시 22:32ㄴ〉.
步兵이 울오 便安히 몯 자셔 仲宣이 슬흐니라

【한자음】 창망보병곡 전전중선애완적(阮藉)보병 교위(步兵校尉)를 하였는데 막다른 길을 만나 울었다. 전전(展轉)은 누워서 뒤척이는 것이다. 중선(仲宣)왕찬(王粲)의 자(字)이니 칠애시(七哀詩)를 지었다. 이것은 두보가 이 두 사람에게 자기를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아스라이 보병(步兵)이 울고, 편안(便安)히 못 자셔 중선(仲宣)이 슬퍼하네!

주100)
자(籍)
자(藉)와 통용함.
家家米 愁徵處處盃

주려셔 주101)
주려셔
굶주려서. 주리-+어+셔.
집마다  빌오 주102)
빌오
빌리고. 빌-+오. 15세기의 ‘빌-’은 ‘빌리다[藉]’의 뜻과 ‘기원하다’의 뜻의 동사가 있는데 전자는 ‘걸(乞)’, 후자는 ‘기(祈), 축(祝), 도(禱)’ 등의 한자와 대응한다. ‘빌리다’의 뜻으로는 ‘빌이-’를 쓰기도 하였다. ¶빌-(빌리다) : 乞 빌 걸〈신유하45ㄴ〉. 맷  나죗 서늘호 빌이놋다(江風借夕涼)〈두시 3:12ㄱ〉. 알흔 넉슬 너희 무를 빌어 두니시니라(遊魂貸爾曹)〈두시 5:2ㄴ〉. 빌-(기원하다) : 祈 빌 긔 祝 빌 츅〈신유하14ㄱ〉. 禱 빌 도〈훈몽下14ㄱ〉. 빌이- : 北堀애 가 블 빌이쇼셔 야시(北窟有火 汝可往取)〈석상 11:26ㄴ〉. 東 녁 집 전 나귀 날 빌이건마(東家蹇驢許借我)〈두시 25:41ㄱ〉.
시름얀 주103)
시름얀
걱정하여서는. 시름-+야+ㄴ. ¶도라 드르샤 시름야 더시다(便迴還入宮愍念十方)〈석상 3:18ㄱ〉. 션 주려 주구믈 시름노니(有儒愁餓死)〈두시 19:13ㄱ〉.
곧마다 숤盞 求노라

【한자음】 기자가가미 수징처처배
【언해역】 굶주려서 집마다 쌀을 빌리고, 걱정하여서는 곳곳마다 술잔을 구하네!

休爲貧士嘆 任受衆人咍

가난 士 嗟嘆요 아니고 모 사 우 受호 므던히 너기노라 주104)
므던히 너기노라
가볍게 여긴다. 15세기 문헌에 쓰인 ‘므던히’는 ‘너기-’와 자주 함께 쓰였다. ‘므던히 너기-’는 『두시언해』에서 ‘경(輕), 임(任), 종(從)’ 등의 번역어로 쓰인다. 참조. 므더니 너기-. ¶從 : 너무 게을어 옷 자쇼 므던히 너기고(過懶從衣結)〈두시 10:13ㄴ〉. 任 : 서리 이 靑女 므던히 너기노니(飛霜任靑女)〈두시 10:32ㄴ〉. 忽 : 갈  아로니 世俗 어루 므던히 너겨리로다(知歸俗可忽)〈두시 13:14ㄴ〉. 輕 : 紱와 冕을 므던히 너규메 關係호미 아니라(不關輕紱冕)〈두시 20:26ㄱ〉. 므너니 너기- : 慢  므더니 너길 씨니〈석상 9:13ㄴ〉. 애 긋븐 소리를 므더니 너기고져 간마(欲輕腸斷聲)〈두시 5:26ㄱ-ㄴ〉.

【한자음】 휴위빈사탄 임수중인해
【언해역】 가난한 선비의 차탄(嗟嘆)함을 아니하고, 모든 사람의 웃음 받음을 무던히 여기네!

得喪初難識 榮枯劃易該【此 言得與喪을 初難預識이어니와 今則榮枯 劃然易知也ㅣ라】

어드며 일후믄 처믜 아로미 어렵거니와 주105)
어렵거니와
어렵거니와. 어렵지만. 어렵-거+니+오+아. ‘-거니와’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廟堂앳 혜아료 노파 測量호미 어렵거니와 하 시르믄 眞實로 이긔 겨시니라(廟筭高難測 天憂實在茲)〈두시 3:4ㄴ〉’ 구절 참조.
프며 이우로 주106)
이우로
시듦은. 시드는 것은. 이울-+오+ㅁ+. ‘이울다’는 국어사전에 ‘①꽃이나 잎이 시들다. ②점점 쇠약하여지다. ③해나 달의 빛이 약해지거나 스러지다.’ 등의 뜻풀이가 등재되어 있다. 참조. 이울다. 이울우다. ¶뎌 남 이울에 면 내 그 오시리라 고(我今當作方便殺菩提樹 可得與我常相娛樂)〈석상 24:41ㄴ〉. 오히려 이우러 이슈믈 슬티 말라(忽悲尙枯槁)〈두시 5:35ㄱ〉.
훤히 수이 알리로다

【한자음】 득상초난식 영고획이해【이것은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처음에 미리 알기가 어렵지만, 지금은 영화롭거나 시드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언해역】 얻으며 잃음은 처음에 아는 것이 어렵거니와, 피며 시드는 것은 훤하게 쉽게 알겠도다!

差池分組冕 合沓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10ㄱ

起蒿萊 不必伊周地 皆登屈宋才差池 주107)
차지(差池)
들쭉날쭉한 모습.
 不齊皃ㅣ오 合沓 주108)
합답(合沓)
서로 이어진 모습.
 相繼皃ㅣ라 此ᄂᆞᆫ 譏當時濫進者ㅣ多也ㅣ라 주109)
차(此) 기당시람진자(譏當時濫進者)ㅣ 다야(多也)ㅣ라
이것은 당시의 넘쳐 나아가는 사람이 많음을 나무라는 것이다. ‘중간본’에는 ‘差池 不齊皃ㅣ오 合沓 相繼也ㅣ라’와 ‘此下로 至不假媒 論當世事다’ 사이에 ‘此 譏當時濫進者ㅣ 多也ㅣ라’가 더 있다. 해석하면 ‘이것은 당시의 넘쳐 나아가는 사람이 많음을 나무란 것이다’이다.
此下로 至不假媒 論當世事다】

差池히 組冕 주110)
조면(組冕)
조관(朝冠). 즉 벼슬아치가 조복을 입을 때에 쓰던 관.
 화 니 다봇 주111)
다봇
다북쑥. ‘다봇’은 『두시언해』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이다. ¶무적티 올로 다봇 서리예 리여슈라(塊獨委蓬蒿)〈두시 8:56ㄴ〉. 다봇  구믿터리 드믈언 디 오라니(蓬鬢稀疏久)〈두시 11:8ㄱ〉.
서리 주112)
서리
사이. 무더기. ¶人間 사 서리라〈월석 1:19ㄴ〉. 싣나모 수픐 서리로다(雲帆楓樹林)〈두시 2:26ㄱ〉.
예셔 니러나니 구틔여 주113)
구틔여
구태여. 참조. 구테여. ¶世옛 사미 티 倍히 더 보아 구틔여 分別을 내니 足히 그 妄 보리로다(而世人이 一齊히 倍加瞻視야 强生分別니 足見其妄也ㅣ로다)〈능엄 2:14ㄱ〉. 어즈러운 가얍고 열운 사 엇뎨 구틔여 혜리오(紛紛輕薄何須數)〈두시 25:55ㄴ〉.
伊尹 주114)
이윤(伊尹)
상나라 때의 전설상의 인물. 성인이 된 후에는 주인의 딸이 탕왕에게 시집갈 때에 심부름꾼으로서 자리의 시중을 들었다. 이 때 자리가 재능을 인정하여 상의 국정에 참여해 중책을 맡았다. 상이 하를 멸할 때에도 활약했고 상 왕조 성립에도 큰 구실을 하였으며, 아형(阿衡)으로서 탕왕을 보좌해 수백 년 동안 이어지는 상 왕조의 기초를 굳혔다. 탕왕의 사후에 그 아들인 외병과 중임 등 두 명의 임금을 보좌한 후 탕왕의 손자 태갑이 즉위한 후에도 계속해서 보좌하였다. 태갑이 방탕한 생활을 해 국정이 어지러워졌을 때에는 이윤이 태갑을 동(桐)으로 추방했고 섭정으로서 태갑을 대신했다가 3년 후 태갑이 회개한 것을 확인한 후에 다시 그를 임금으로 맞이해 스스로는 신하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周公 주115)
주공(周公)
주공 단(周公旦). 주나라의 정치가. 생몰년 미상.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 아들이 노나라의 제후로 봉해진 이래로 노의 시조로서 받들어졌다. 형인 무왕을 보좌하였고, 무왕 사후엔 그의 어린 아들인 성왕을 보좌하고 주나라 건국 이후의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켰다. 강태공, 소공 석과 함께 주(周)의 창업 공신의 한 사람이다.
ㅅ 地位예 다 屈原 주116)
굴원(屈原)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 기원전 340-기원전 278년.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 초나라의 회왕 때에 보좌관에 임명되었다. 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 정치가였으며, 회왕의 상담역으로 국사를 도모하고,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으나, 다른 이의 모함을 받아 신임을 잃고 끝내 자살하였다. 그는 이러한 아픔을 시 이소(離騷)에 담아내었다.
宋玉 주117)
송옥(宋玉)
중국 고대의 시인. 기원전 3세기 무렵. 굴원의 초사의 후계자.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는 16편의 작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4편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 「구변(九辯)」만이 확실하게 그의 작품이다. 세상의 쇠망과 자신의 불우함을 탄식하고, 가을의 쓸쓸함을 슬퍼하는 구절이 있다. 『두시언해』에서는 훌륭한 시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죄 오 줄 아니로다 주118)
죄 오 줄 아니로다
재주가 오르는 것이 아니도다.

【한자음】 차지분조면 합답기호래 불필이주지 개등굴송재【차지(差池)는 가지런하지 않은 모양이고, 합답(合沓)은 서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은 당시의 넘쳐 나아가는 사람이 많음을 나무란 것이다. 이 이하로 불하모(不假媒)까지는 당시의 세사(世事)를 논하였다.】
【언해역】 들쭉날쭉하게 조관(朝冠)을 나누어, 이어져 다북쑥 사이에서 일어나니, 구태여 이윤(伊尹), 주공(周公)의 지위에 다 굴원(屈原), 송옥(宋玉)의 재주에 오르는 것이 아니도다!

漢庭和異域 晉史坼中台【和異域 言與回紇 주119)
회흘(回紇)
위구르. 한문으로는 ‘회흘(回纥)’ 또는 ‘회골(回鶻)’이라 한다. 회흘은 실질적으로 중앙아시아의 중심 지역에서 동서의 교역을 통제하는 제국을 세웠으며 840년 키르기즈족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거의 1세기 동안 중앙아시아 중남부의 스텝지대를 지배하였다. 유목 민족의 배경을 가진 국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위구르 제국과 중국은 대체로 평등한 관계에 있었으며, 757년 당나라가 안녹산의 난으로 인하여 위기를 맞게 되었을 때 위구르군이 수도 장안까지 진군하여 당조를 구원하였다. 이런 우호적인 관계는 티베트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다른 유목민족과는 달리 실크로드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 이들에게 중국은 유일한 경제원조처였고 이는 티베트에 맞서 당과 위구르가 친선관계를 맺는 힘이 되었다. 반면에 당은 티베트[吐藩]와는 전쟁을 벌이는 등 대립하였다. 두시에서 자주 언급되는 회흘(回紇)은 바로 이 시기에 위구르가 티베트와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고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안녹산의 난을 계기로 구원병을 보내는 등의 관계를 맺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시를 통해서 당시 위구르를 보는 중국 지식인들의 관점을 알 수 있다. ‘중간본’에는 ‘회흘(回訖)’로 되어 있다.
로 和親也ㅣ라 坼中台 晉時예 中台坼而張華誅니 比房琯 주120)
방관(房琯)
앞의 주 참조.
이 得罪也ㅣ라】

漢庭 주121)
한정(漢庭)
한나라의 조정.
異域 주122)
이역(異域)
오랑캐의 땅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회흘(回紇) 즉 위구르를 가리킨다.
과 和親니 晋ㅅ 史記옌 주123)
진(晋)ㅅ 사기(史記)옌
진나라의 역사책에는.
中台ㅅ 벼리 디도다 주124)
중대(中台)ㅅ 벼리 디도다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에는 서진의 정치가이었던 장화가 피살되기 전에 중대성(中台星)이 떨어지는 징조가 있었는데, 이 일로 인하여 재상이 죽는 징조로 사용된 표현이다. 여기서는 방관(房琯)이 죄를 얻은 것을 말한다.

【한자음】 한정화이역 진사탁중대【화이역(和異域)은 회흘(回紇)과 화친함을 말한다. 탁중대(坼中台)는 진나라 때에 중대(中台)가 갈라지고 장화(張華)가 죽임을 당하였는데, 이것은 방관(房琯)이 죄를 얻은 것을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한나라 조정이 이역(異域)과 화친하니, 진(晋)의 역사책에는 중대(中台)의 별이 떨어지도다!

霸業尋常體 宗臣忌諱災【此 言夷夏和親이 乃覇道 주125)
패도(覇道)
인의(仁義)를 가볍게 여기고 무력이나 권모술수로써 공리(功利)만을 꾀하는 일.
尋常 주126)
심상(尋常)
대수롭지 않고 예사로움.
之體오 宗臣 주127)
종신(宗臣)
왕족으로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
이 不敢直言時事호미 國之災也ㅣ라】

覇業엣 샹녯 體니 宗臣의 아쳐러 주128)
아쳐러
싫어하여. 아쳗-+어. 참조. 아쳗브다. 아쳐로이. 아쳐다. 아쳐러다. 아쳗비. ¶아쳗-; 여슷 行 欲界 이 苦ㅣ며 이 麤ㅣ며 이 료 아쳗고 色界 이 淨이며 이 妙ㅣ며 이 여희요 즐길 씨니(六行者 厭欲界의 是苦是麤是障고 欣色界의 是淨是妙是離니)〈능엄 9:1ㄴ〉. 어느 로  아쳐로 記錄료(何心記榛梗)〈두시 24:41ㄱ〉. 아쳗브- : 믈읫 아쳗븐 相 다 업고져 願샷다(凡可惡相을 願皆無之샷다)〈영가하:136ㄱ〉. 아쳐- : 모미 아쳐커든 져기 官桂湯과 粥 므를 머겨 모기 젓게 고(却身苦勞動 少與官桂湯及粥清令喉潤)〈구급상:77ㄴ〉. 아쳐러- : 生死 아쳐러며 涅槃 愛호매 니르러도  그러니라〈원각 하1-1:18ㄴ〉. 塞外예 와 甚히 뫼 아쳐러더니(塞外苦厭山)〈두시 1:20ㄴ〉. 아쳐로이 : 鄭伯이 듣고 아쳐로이 너겨 도으로 여곰 죽인대(鄭伯이 聞而惡之使盜殺之대)〈소학 4:43ㄴ〉.
기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10ㄴ

주129)
기미
깃-+우+ㅁ+이. ‘깃-’은 일반적으로 ‘무성하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꺼리다’의 뜻으로 쓰였다. 이러한 용법의 ‘깃-’은 고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으며 『두시언해』에서도 여기서만 쓰인 유일례이다. 『두시언해』에는 ‘꺼리다’의 뜻으로 쓰인 ‘긋-’도 있다. ‘꺼리다’의 뜻으로 쓰인 ‘긋-’은 ‘賈誼ㅣ 在長沙야 鵩ㅣ 飛入舍이어늘 自傷壽不長니 比之晉之亡다’란 주석이 있는데 이것은 ‘가의(賈誼)가 장사에 있을 때 복조(鵩鳥)가 집으로 날아 들어왔는데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하니 이것은 진(晉)의 멸망을 비유한다’라는 말이므로 ‘복조(鵩鳥)’를 장사(長沙) 사람들이 꺼린다는 뜻이다. ¶긋-(꺼리다) : 鵩鳥 長沙애셔 그니(鵩鳥長沙諱)〈두시 24:52ㄱ-ㄴ〉. 깃-(무성하다) : 뒷 東山이 淸淨고 남기 盛히 기니(可於後園 其中清淨 林木茂盛)〈석상 11:37ㄱ〉. 수프리 기면 새 가미 잇고(林茂鳥有歸)〈두시 3:58ㄱ〉.
災害니라

【한자음】 패업심상체 종신기휘재【이것은 오랑캐와 한족이 화친함이 곧 패도(覇道)의 심상(尋常)한 체(體)이고, 종신(宗臣)이 시사(時事)에 대해 감히 직언하지 못하는 것이 나라의 재난이라는 말이다.】
【언해역】 패업(覇業)을 늘 행하는 것이니, 종신(宗臣)이 싫어해서 꺼리는 것이 재해(災害)이네!

群公紛戮力 聖慮窅徘佪 주130)
배회(徘佪)
배회(徘徊). ‘중간본’에는 ‘배회(裴佪)’의 ‘회(佪)’가 ‘회(徊)’로 되어 있다.

群公이 모다 힘 니 님 혜아리샤 주131)
님 혜아리샤
임금의 헤아리심은. 즉 임금이 헤아리시는 것은.
기피 주132)
기피
깊이. ‘기피’ 등의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두시 3:40ㄴ〉’ 구절 참조.
머믈워 시놋다 주133)
머믈워 시놋다
머무르게 하시는구나. 즉 임금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나랏일이 발전이 없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머믈우-’는 ‘머믈-’의 사동사이다. ¶머믈- : 虛空애 노 七多羅樹만 소사 올아 種種앳 神奇 變化 내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踊在虛空高七多羅樹야 現種種神變야 於虛空中에 行住坐臥며)〈석상 21:37ㄱ〉. 머므러셔 얽여 뇨 慰勞노라(躊躇慰羈束)〈두시 13:16ㄴ〉. 머믈우- : 이  거슬 보 識을 브트니  머믈우미라(此애 觀白 依識이니 所以駐心也ㅣ라)〈능엄 5:57ㄴ〉.  머믈워 고기 잡  무러(駐馬問漁舟)〈두시 13:16ㄴ〉.

【한자음】 군공분륙력 성려요배회
【언해역】 군공(群公)이 모두 힘쓰니, 임금의 헤아리심은 깊이 머무르게 하시는구나!

數見銘鍾鼎 眞宜法斗魁【銘鍾鼎 言褒賞功臣也ㅣ라 此ᄂᆞᆫ 言群臣이 蒙褒賞ᄒᆞ야 主恩이 厚矣니 宜法三台ᄒᆞ야 補佐王室也ㅣ라】

鍾鼎 주134)
종정(鍾鼎)
종이나 솥 따위의 쇠붙이.
에 사교 조 보니 眞實로 北斗ㅅ 벼 주135)
북두(北斗)ㅅ 벼
북두의 별을. ‘북두’는 북두칠성이다.
法 바도미 주136)
법(法) 바도미
본받음이. 법과 같이 여겨 따라감이.
맛니라

【한자음】 수견명종정 진의법두괴【명종정(銘鍾鼎)은 공신(功臣)들을 포상(褒賞)함을 말한다. 이것은 군신(群臣)이 포상을 받아 임금의 은혜가 두터우니 마땅히 삼대(三台)를 본받아 왕실을 보좌해야 한다는 말이다.】
【언해역】 종(鍾)과 정(鼎)에 새김을 자주 보니, 진실로 북두칠성을 본받음이 마땅하네!

願聞鋒鏑鑄 莫使棟梁摧鋒鏑鑄 주137)
봉적주(鋒鏑鑄)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드는 것. 『두시언해』에서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드는 표현은 여러 군데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凶 兵잠개로 農器 디오(凶兵鑄農器)〈두시 3:4ㄱ〉’, ‘엇뎨 시러곰 甲을 지여 農器 라(焉得鑄甲作農器)〈두시 4:29ㄴ〉’, ‘兵戈 노겨 農器를 디면(銷兵鑄農器)〈두시 19:37ㄱ〉’ 등이 있다. 『두시언해』 권4는 중간본이기 때문에 ‘지-’로 표기되었지만 초간본에는 ‘디-’로 표기되었다.
 謂鑄爲農器니 此 欲務農也ㅣ라 棟梁摧 주138)
동양최(棟梁摧)
나라의 동량(棟梁)을 부러뜨리는 일. 즉 나라를 망치는 일. 위의 주석의 내용을 참조.
 晉陸玩 주139)
육완(陸玩)
동진(東晉)의 관리. 278-342년. 관직이 사공(司空)에 이르렀다.
이 拜司空曰當今에 乏才야 爲柱石之臣호니 莫傾人의 棟梁이라니 此 言當任賢相也ㅣ라】

갌 콰 주140)
갌 콰
칼날과. 갈ㅎ+ㅅ#ㅎ+과. ¶갌히 毗盧ㅅ 바기예 오 나니(鋒芒이 獨露毗盧頂니)〈금삼 3:54ㄱ〉. 갌 해 디여 氷霜 니 십고(落刃嚼冰霜)〈두시 15:18ㄴ-19ㄱ〉.
삸 미트로 주141)
삸 미트로
화살촉으로. 살+ㅅ#밑+으로. ¶세 關 마 차  삸미티 虛空애 머니(三關을 已透야 一鏃이 遼空니)〈금삼 5:43ㄴ〉. 블근 화래 金톱 삸 미티로소니(騂弓金爪鏑)〈두시 2:69ㄱ〉.
農器 디유믈 주142)
디유믈
주조함을. 디-+오+ㅁ+을. ¶옰 內예 金銀銅鐵을 모도아 砲 디여(集州中金銀銅鐵 雜鑄爲砲)〈삼강런던충28ㄱ〉. 兵戈 노겨 農器를 디면(銷兵鑄農器)〈두시 19:37ㄱ〉.
듣고져 願노니 집 와 주143)
집 와
집의 종마루와. +와. ‘’는 ‘~리~, ~리~’와 같이 주격조사가 오면 ‘리’, 처격조사가 오면 ‘’의 형태로 된다. ¶() : 中道實相이 極果  사모 가비시니(喻中道實相極果所宗)〈법화 1:6ㄴ〉. 노 집 와 層層인 軒檻이 마 절로 서늘니(高棟曾軒已自涼)〈두시 14:15ㄴ-16ㄱ〉. 라(리) : 正宗 正 리니 法華經을 니르니라〈석상 19:8ㄴ〉. 노 리 훤 길헤 비취엿도다(高棟照通衢)〈두시 2:45ㄴ〉. 라() : 기슬게 잇닐 닐오 椽이오  잇닐 닐오 梠ㅣ니〈법화 2:106ㄱ〉. 뷘 집  그륜 戈戟이 모댓고(空梁簇畫戟)〈두시 6:17ㄴ〉.  : 末香과[ 香이라]〈월석 10:44ㄴ〉. 리 : 큰 블 묏 가온 녀코 두 山이 어우러 라 리 외니라〈월석 1:29ㄱ〉.  : 柄  〈훈몽중6ㄴ〉. 리 : 正졍 히 빗긴 가지로 더브러 아오라  리 될디니〈무예39ㄱ〉.
보콰로 주144)
보콰로
보로. 보ㅎ+과+로. ‘보ㅎ’은 ㅎ말음체언이다. ¶四面이 一時예 그 브리 다 盛야 와 보콰 셔와 긷괘 기 소리 나 震動야 야디여 믈어 것거 러디며(四面이 一時예 其燄이 俱熾야 棟梁椽柱ㅣ 爆聲震裂야)〈법화 2:124ㄴ〉. 뎘 와 보히 믈어뎨쇼 니다(告訴棟梁摧)〈두시 9:28ㄴ〉.
여곰 주145)
여곰
하여금. 일반적으로 ‘령(令)’에 대한 번역으로 쓰이나 여기서는 ‘사(使)’에 대한 번역으로 쓰였다. 현대국어에서는 ‘하여금’이 단독으로 부사어로 쓰이지 않는다. 15세기 국어의 ‘곰’은 ‘씩’과 ‘금’의 기능이 있었다. 후자로 쓰일 때는 ‘시러곰, 제여곰, 여곰(여곰), 곰’의 형태로 많이 쓰인다. ¶곰(씩) : 그 東山애 金붑 銀붑 돌붑 쇠부피 各各 닐굽곰 잇거늘 調達이와 難陁왜 몬져 쏘니 各各 세콤 여디거늘(園中有七重金鼓銀鼓鍮石銅鐵等鼓 各有七牧 提婆達多最先射之 徹三金鼓 次及難陀亦徹三鼓)〈석상 3:13ㄴ〉. 곰(금) : 各各 蒼生로 여곰 環堵 두게 고(各使蒼生有環堵)〈두시 7:29ㄱ〉.
것게 주146)
것게
꺾어지게. -+게. 15세기 국어의 ‘-’은 자타동 양용동사이다. 15세기의 자타동 양용동사의 경우 자동사 용법이 이미 약해져서 자동사는 ‘타동사 용법+어 디다’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도 자동사로는 ‘것거디-’가 많이 쓰였다. ¶것-(자동사) : 天魔ㅣ 것거 아디며(天魔ㅣ 催碎며)〈능엄 10:74ㄴ〉. 도라 갈  큰 길히 것도다(歸心折大刀)〈두시 12:5ㄴ〉. 것-(타동사) : 고 곳 것고 걋 밥 더러내야 比丘 주시니(取好妙華 減其食分 奉施比丘)〈석상 11:41ㄴ〉. 天柱 다 딜어 것근가 젇노라(恐觸天柱折)〈두시 2:36ㄴ〉. 것거디- : 太子ㅣ 화 시니 화리 것거디거늘(菩薩引弓 弓即折破)〈석상 3:13ㄴ〉. 것거뎻던 筋力이 놋다(筋力蘇摧折)〈두시 10:25ㄱ〉.
디 말오라

【한자음】 원문봉적주 막사동량최【봉적주(鋒鏑鑄)는 농기구를 주조하는 것을 말하니, 이것은 농사에 힘쓰고자 하는 것이다. 동량최(棟梁摧)는 진(晉)의 육완(陸玩)이 사공(司空)에 임명되었을 때 말하기를, “지금 인재가 없어 너를 나라의 기둥이 되는 신하로 삼으니 남의 동량을 기울게 하지 말라.”고 하니, 이것은 당연히 현명한 재상을 임명해야 함을 말한다.】
【언해역】 칼날과 화살촉으로 농기구를 주조함을 듣고자 원(願)하니, 집의 종마루와 들보가 꺾이게 하지 말라.

盤石圭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11ㄱ

多剪 凶門轂少推【漢이 封子弟야 爲盤石 주147)
반석(盤石)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사상이나 기틀이 아주 견고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之宗니 此 欲廣封同姓야 衛宗社 주148)
종사(宗社)
종묘와 사직. 즉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과 천자나 제후가 제사를 지내던 토지신과 곡식신.
也ㅣ라 王者ㅣ 遣將호 跪而推轂곡 鑿凶門而出니 주149)
궤이퇴곡(跪而推轂)곡 착흉문이출(鑿凶門而出)니
임금이 된 자는 장수를 싸움터로 내 보낼 때 무릎을 꿇어 수레를 밀고, 장수는 흉문을 뚫고 문을 나간다는 말이다.
此 望偃武也ㅣ라】

盤石에 命圭 주150)
명규(命圭)
천자가 왕공(王公)과 신하에게 주는 옥으로 만든 팔찌 모양의 규(玉圭).
오란 주151)
오란
마름질하는 것은. -+오+ㅁ+란. ¶-; 翠駮을 뉘  리오(翠駁誰剪剔)〈두시 16:2ㄱ-ㄴ〉.  화 바 실 자최 업게 놋다(裁縫滅盡針線跡)〈두시 25:50ㄴ〉.
주152)
많이. 매우. 『두시언해』에서 ‘해’는 한시의 ‘다(多)’에 대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수효가 많거나, 행위의 횟수가 잦거나 할 경우에도 광범위하게 쓰였다. ¶비록 해 드러도 增上慢며(有雖多聞, 而增上慢)〈석상 9:13ㄴ〉. 내 늘구메 해 슬허 노라(窮老多慘戚)〈두시 1:26ㄱ-ㄴ〉.
고 凶門에 술윗 주153)
술윗
수레바퀴. 술위+ㅅ+통. ¶술윗앳 기름을 밧바애 면 됴리라(車殼中脂塗足心下瘥)〈구간 2:50ㄴ〉. 술윗앳 구뭇 부리 돌이로 바가 잇 쇠 술윗 구무 안히 달티 아니케 기조치로 바가 잇 쇠 술윗 앏 괴오 나모 술위 뒤 괴오 나모 술윗〈번노하36aㄴ〉.
미로란 져기 주154)
져기
작게. 젹-+이. 15세기 국어의 ‘젹다’는 [소(少)]와 [소(小)]의 뜻이 모두 있다. ‘져기’는 일반적으로 ‘략(略)’의 번역으로 쓰인다. 참고. 쟉다, 젹다, 죡다, 횩다, 휵다. ¶이 사미 欲心이 젹고 足 고 아라(是人이 少欲知足야)〈석상 21:62ㄱ〉. 朝와 野왜 겨르왼 나리 젹도다(朝野少暇日)〈두시 1:1ㄴ〉. 젹다(작다) : 모미 크긔 외야 虛空애 야 잇다가  젹긔 외며(或現大身滿虛空中 而復現小)〈석상 6:34ㄱ〉. 올히 젹고  壯丁이 업스니(縣小更無丁)〈두시 4:5ㄱ〉.
홀 디니라
주155)
흉문(凶門)에 술윗 미로란 져기 홀 디니라
군주는 장수를 내 보낼 때 장수는 흉문을 뚫고 나가고 임금은 무릎을 꿇고 수레를 민다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으로 여기서는 ‘무(武)’를 억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자음】 반석규다전 흉문곡소추【한(漢)나라가 자제들을 봉하여 반석(盤石)의 종(宗)을 삼으니, 이것은 동성(同姓)을 널리 봉하고자 하는 것이다. 임금이 된 이가 장수를 파견하되 무릎을 꿇어 수레를 밀고 흉문(凶門)을 뚫어 나가니 이것은 무(武)를 쓰러뜨리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언해역】 반석(盤石)에 명규(命圭)를 마름질하는 것은 많이 하고, 흉문(凶門)에 수레를 미는 것은 작게 할 것이네!

垂旒資穆穆 祝網但恢恢 赤雀翻然至 黃龍不假媒穆穆 주156)
목목(穆穆)
훌륭한. 온화한. 훌륭한 천자의 얼굴을 형용하는 말이다. 『시경』 「문왕편(文王篇)」 참조.
 天子之和顔이라 祝網 주157)
탕(湯)
상(商)나라의 건국자.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을 추방해 하 왕조를 멸망시켰다.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은 포학한 정치를 해 인심은 하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하나라의 신하인 탕은 명신 이윤의 보좌를 받아 걸을 공격해 멸망시켰다. 탕(湯)은 하(夏)의 우(禑), 주(周)의 문왕(文王), 무왕(武王)과 함께 성군으로서 후세에 숭상되었다.
이 出郊야 去網三面而祝曰吾ㅣ 取其犯命者ㅣ라니 此 望行仁政也ㅣ라 赤雀黃龍 皆祥瑞之物이니 言行仁政則瑞物이 自至니라 주158)
적작황룡(赤雀黃龍) 개상서지물(皆祥瑞之物)이니 언행인정즉서물(言行仁政則瑞物)이 자지(自至)니라
적작(赤雀)과 황룡(黃龍)은 다 상서로운 것들이니 인정(仁政)을 행하여 곧 상서로운 것들이 스스로 이르는 것을 말한다. 〈중간본-삭제〉에는, “적작황룡(赤雀黃龍) 개상서물(皆祥瑞物)이 자지(自至)니라.”로 되어 있다. ‘중간본’대로 해석하면, “적작과 황룡은 다 상서로운 것들이니 스스로 이른다.”라 할 수 있다.

冕旒 주159)
면류(冕旒)
면류관의 앞뒤에 늘어뜨린 구슬꿰미이나, 여기서는 면류관 자체를 가리킨다.
드리우샤매 주160)
드리우샤매
드리우심에. 들-+이+우+시+오+ㅁ+애.
穆穆샤 資賴시고 주161)
자뢰(資賴)시고
자뢰하시고. 즉 무엇을 빙자하여 의지하시고.
그믈 비루 오직 주162)
오직
오직. 『두시언해』에서 ‘오직’은 ‘유(唯), 유(惟), 단(但), 지(只)’ 등의 번역어로 쓰였다. ¶오직 大愛道ㅣ 기리다(唯大愛道能使長大耳)〈석상 3:3ㄱ〉. 오직 옛 새 사믈 맛 ㅣ오(但逢新人民)〈두시 1:38ㄱ〉.
어위에 주163)
어위에
넓게. 어위-+게. ‘어위-’는 ‘어위크-’와 같은 복합형용사와 ‘어위키’와 같은 파생부사를 형성하는데, 후자는 『두시언해』에만 보인다. ¶어위- : 이 行 行실 즐거워 벋 어드시며 어위여 衆 어드시리라 듣고(行是行故로 樂而得朋시며 寬而得衆시리라)〈법화 5:47ㄴ〉. 답사하 그륜 눈서비 어위도다(狼藉畫眉闊)〈두시 1:6ㄴ〉. 어위크- : 恢恢 어위크며 먼 이오〈원각 서40ㄱ〉.  望仙臺예 어위크도다(地濶望仙臺)〈두시 5:1ㄴ〉. 어위키 : 어위키 后土ㅣ 저젓도다(泱莽後土濕)〈두시 22:51ㄱ〉. 어위키 - : 어디러 人士 待接호 어위키 놋다(惟良待士寬)〈두시 23:29ㄴ〉.
시면 블근 새 두위텨 주164)
두위텨
뒤집어. 두위-+티+어. ‘두위티-’는 15세기 『능엄경언해』와 『법화경언해』에는 ‘두위-’로 나오는데, 이 어형이 좀 더 고형이다. 『두시언해』에는 ‘두위티-, 두위잊-, 두위힐후-’로 주로 나오는데, ‘두위혀-’는 『두시언해』 권23의 ‘두위혀’는 『두시언해』에서 오직 한번만 나오는 예로 이전 시기의 ‘두위-’의 표기로 보인다. ‘두위’로 시작하는 단어에 대해서는 해제를 참조. ¶기리 嗟吁야셔 北寇 두위텨 리고져 고(長吁飜北寇)〈두시 3:3ㄴ-4ㄱ〉.
라오고 누른 龍 媒合호 비디 아니야 오리라

【한자음】 수류자목목 축망단회회 적작번연지 황룡불가매【목목(穆穆)은 천자의 온화한 얼굴이다. 축망(祝網)은 탕(湯)왕이 교외에 나가 삼면에 그물을 거두고, 빌면서 말하기를, “내가 명(命)을 범한 자를 잡겠다.”라고 하니, 이것은 인정(仁政)을 행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적작(赤雀)과 황룡(黃龍)은 다 상서로운 것들이니, 인정(仁政)을 행하여 곧 상서로운 것들이 스스로 이르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면류(冕旒)를 드리우심에 훌륭하심을 자뢰(資賴)하시고, 그물 비는 것을 오직 넓게 하시면, 붉은 새 뒤집으면서 날아오고, 누른 용(龍)은 서로 만남을 빌지 않고 오리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11ㄴ

賢非夢傅野 隱類鑿顏坯高宗 주165)
고종(高宗)
상나라의 제23대 임금. 기원전 1250년-기원전 1192년. 태자 시절부터 현인 감반(甘盤)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사기』에는 소을의 아들로써 뒤를 이어 즉위하여 쇠약한 나라를 일으키고자 했지만, 자신을 보좌해 줄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그는 3년 동안 부왕의 빈소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로 정치에 관해서는 모두 총재에게 맡긴 채로 지냈다. 그러다 꿈에 열(說)이라는 성인(聖人)을 만났는데, 꿈에서 깬 뒤 고종(高宗)은 찾아서 등용하려 했지만, 신하와 백관들 사이에 아무도 그러한 인물은 없었고, 사람을 시켜 각지에서 열과 같은 인물을 찾게 한 끝에 부암(傅巖)에서 죄를 짓고 길을 닦는 노역에 종사 중이던 열(說)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고종(高宗)은 그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가 자신이 찾던 성인임을 확신하고, 그에게 부(傅)라는 성을 주고 부열(傅說)이라 불렀다. 이후 부열의 보좌로 상나라는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夢傳說니라 魯君 주166)
노군(魯君)
노나라의 군주.
이 聘隱士顔闔야 鑿後垣而逃니 ㅣ 自言非如傳說之賢이오 類顔闔之隱淪也ㅣ라 此以下 ㅣ 自敍다】

어디로 주167)
어디로
어짐은. 어딜-+오+ㅁ+. ¶사오나 사미 어딜에 욀 씨라〈석상 3:2ㄱ〉. 슬픈 들 머거셔 네 어디로 아노라(含悽覺汝賢)〈두시 2:6ㄱ〉.
傅巖ㅅ 해셔  이더니 주168)
이더니
꾸이었으니. -+이+더+니. ‘이’는 피동접미사이다. ‘꿈이 꾸여지다’의 뜻으로는 『두시언해』의 이 예가 유일례이다.
아니오 隱居호 顔闔 담 포미 주169)
포미
팜이. -+오+ㅁ+이.
호라 주170)
호라
같았다. -+오+라.

【한자음】 현비몽부야 은류착안배【상(尙)나라 고종(高宗)이 전설(傳說)을 꿈으로 꾸었다. 노나라의 군주가 은사(隱士) 안합(顔闔)을 초빙했는데 뒷담을 뚫고 도망갔다 하니, 두보가 스스로 전설(傳說)의 현명함만 같지 못함과 안합(顔闔)이 은사(隱士)의 유(類)임을 말하였다. 이 이하는 두보가 스스로를 서술하였다.】
【언해역】 어짊은 부암(傅巖)의 들에서 꿈꾼 것이 아니고, 은거(隱居)함은 안합(顔闔)의 담 파는 것과 같네!

自古江湖客 冥心若死灰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녜로브터 주171)
녜로브터
옛날로부터. 녜+로#븥+어. ‘브터’는 기원적으로 ‘븥다’와 ‘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조사이다.
江湖애 니 客 뷘 미 주172)
뷘 미
빈 마음이. 뷔-+은. ¶뷔- : 五蘊 뷔유믈 得샨 젼라(得蘊空故로)〈석상 20:12ㄴ〉. 玉殿은 햇 뎘 가온 뷔옛도다(玉殿虛無野寺中)〈두시 6:32ㄱ〉. 뷔우다 : 그저긔 比丘히  爲頭 座 뷔워 아니 거늘(及凡夫比丘 上座之座無人坐 時王問諸比丘)〈석상 24:43ㄱ〉. 서리옛 매 주머귀 뷔우디 아니니라(霜鶻不空拳)〈두시 20:19ㄱ〉.
블 주근 주173)
재. ¶브리  외 야(如火ㅣ 成灰야)〈능엄 2:4ㄴ〉.   一寸이  도다(丹心一寸灰)〈두시 15:48ㄴ〉.
니라 주174)
니라
같으니라. -+니+라. ‘다’는 15세기 당시에 ‘다’로도 표기되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였다. 『두시언해』에서 두 가지 표기가 다 나오는데 역시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다. ‘다’와 ‘다’는 현대국어와 같이 ‘-와/과’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를 지배한다. ¶다 : 太子ㅣ 金으로 겨지븨  시고 겨지븨 德을 쓰샤 이 야 妃子 사모리라(使上工立妙金像 女人德義如吾所疏 能應娉耳)〈석상 3:11ㄱ〉. 나라 社稷이 이제 이 니(國之社稷今若是)〈두시 1:10ㄴ〉. 다 : ㄱ 엄쏘리니 君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ㄱ 牙音이니 如君ㄷ字初發聲니)〈훈언 :4ㄱ〉.  顔延年과 鮑明遠 니 잇디 아니니(不復見顏鮑)〈두시 2:47ㄴ〉.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자고강호객 명심약사회
【언해역】 예로부터 강호에 다니는 나그네는, 빈 마음이 불 죽은 재 같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6년 12월 30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10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추일형남술회삼십운(秋日荊南述懷三十韻) : 이 시는 768년(대력 3) 가을 공안(公安)으로 이주하기 전의 작품이다. 시는 기주(蘷州)와 강릉(江陵)을 떠돌면서 겪은 어려운 상황을 기술하였고, 용병과 화친 등 나라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묘사하면서도 혁신 정치를 희망적으로 노래하기도 하였다. 몸은 강호를 떠돌고 있으나 마음은 항상 임금 계신 곳에 있음을 표현하였다.
주002)
초사뢰(楚祠雷) : 아래의 “楚ㅅ 祭祠  울에(초의 제사하는 곳의 우레는)”의 구절.
주003)
미러 내야 : 밀어 내어. 즉 방관(房琯)의 추천을 받아. 밀-+어#내-+아.
주004)
닙와 : 입어. 닙-++아. ‘승(承)’에 대한 번역이다. ¶오라건 劫으로셔 부텨 接引샤 닙(我從久遠劫來 蒙佛接引)〈석상 11:8ㄴ〉. 虢國ㅅ 夫人이 님 恩惠 닙와(虢國夫人承主恩)〈두시 24:10ㄴ〉.
주005)
혀 난 : 빼어난. ¶天帝釋이 그 사  忉利天에 가아 塔 일어 供養더라(時天帝釋取其箭歸忉利天上建塔盛貯供養)〈석상 3:14ㄱ〉. 혀 더뎌 니고져 너기디 아니노라(撥棄不擬道)〈두시 22:4ㄱ〉.
주006)
고 : 것을. 곳을. 바를. 곧+. 15세기 국어의 ‘곧’은 ‘것’가 ‘곳’의 용법이 있다. ¶것 : 다 如來ㅅ 威力이론 고 아라라(當知皆是如來威力)〈석상 9:28ㄱ〉. 곳 : 이 곧 뎌 고대(於此於被)〈용가26〉. 至極 精誠이 읏드민 고 甚히 아기 모놋다(甚昧至精主)〈두시 25:13ㄱ〉. 不用處는 디 아니 고디니 긔 無所有處ㅣ라〈석상 3:35ㄴ〉. 해셔 우 즈믄 지브란 사호매 주근 고 듣노니(野哭幾家聞戰伐)〈두시 14:19ㄴ〉.
주007)
붓그리오라 : 부끄러워한다. 붓그리-++오+라. ¶그러나 든 잇고 죄 업서 몯 미추믈 기피 붓그리노라(然이나 有其志고 無其才야 心媿其不逮也노라)〈법화 1:9ㄴ〉. 어미 뷘 뫼해 니 기륨 어두믈 붓그리고(苗滿空山慚取譽)〈두시 25:20ㄴ〉.
주008)
궁신첨(宮臣忝) : 직역하면 궁신(宮臣)에 자기를 더하였다는 것으로 좌습유(左拾遺)의 벼슬을 받아 황제를 보필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주009)
곤직(袞職) : 곤룡포(袞龍袍)를 입는 직위. 즉 천자(天子).
주010)
늘구매 : 늙음에. 늙-+오+ㅁ+애. 15세기 당시에도 ‘-오매’는 연결어미의 기능이 있었다. ¶비록 남지늬 어딜며 사오나오매 關係나(雖關夫主之明闇나)〈내훈 서6ㄱ〉. 봄 오매 됴타 쇽졀업시 니놋다(謾道春來好)〈두시 25:21ㄱ〉.
주011)
더레여 : 더럽혀. 더럽-+이+어. 15세기 초기 문헌에는 ‘더러ᄫᅵ-’로 표기되었지만 『두시언해』에는 ‘더러이-’ 또는 ‘더레-’로 표기되었다. 『두시언해』에서는 ‘더러이 너기다’로 자주 쓰이는데 이때는 ‘누(陋)’나 ‘추(醜)’의 번역으로 쓰인다. ¶淨德은 한 德이 眞實로 조야 더러디 몯 씨라〈석상 20:35ㄱ〉. 부으리와 바톱괘 도로 돗글 더레이리라(觜距還汙席)〈두시 17:13ㄴ〉. 더러이 너기- : 큰 들 일워 아  제 더러이 너기  알오(成就大志야 自鄙先心코)〈법화 2:222ㄴ〉. 病 골이 기 니 俗人의 누네 더러이 너기니 밤마다   늘근 버드레셔 자놋다(病鶻孤飛俗眼醜 每夜江邊宿衰柳)〈두시 17:35ㄱ〉.
주012)
뫼오라 : 뫼셨다. 뫼-++오+라. ‘오’는 말하는 이인 주어와 호응한다. ¶阿難은 녜 뫼오니 외와 法藏 護持고(阿難 常爲侍者와 護持法藏고)〈법화 4:48ㄴ〉. 靑瑣門에 둘콤 드로 뫼시고(靑瑣陪雙入)〈두시 24:51ㄱ〉.
주013)
일어(日馭) : 해가 탄 수레. 즉 임금(황제)이 탄 수레.
주014)
숙종(肅宗) : 당나라 제7대 황제 이형(李亨). 711-762년. 아버지는 당 현종 이융기이다. 756년 6월, 안·사의 난으로 당 현종이 양귀비(楊貴妃) 등과 함께 도피하자 이를 호송하였다. 현종은 태자에게 분조를 명해 자신은 서촉의 성도로 들어갔다. 태자는 영무(靈武)로 가는 길에 그해 7월 금군의 추대로 황제에 올랐고, 이 소식이 촉의 현종에게 전해지자 마침내 현종은 태자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으로 물러앉았다.
주015)
영무(靈武) : 영하회족자치구의 중앙이며 황하의 동쪽에 위치한 시. 당 나라 때에는 삭방절도사의 영역이었다.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서 장안이 함락되자 숙종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주016)
절함(折檻) : 주운(朱雲)의 고사에서 난간이 부러진 것을 가리킴.
주017)
주운사(朱雲事) : 한나라 성제(成帝) 때 장우(張禹)의 머리를 벨 것을 청한 신하. 성제는 크게 화를 내고 주운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사가 주운을 하옥시키려고 하자 주운은 난간으로 기어 올라갔다. 난간이 부러지자 어사가 결국 주운을 끌어내렸는데 이때 신경기(辛慶忌)가 죽기를 각오하고 머리를 찧으면서 주운을 살려줄 것을 간청하였다. 성제의 노여움이 조금씩 풀려 결국 주운은 풀려날 수 있었다. 훗날 난간을 교체하려고 하자 성제는 난간을 바꾸지 말고 원래 것을 수리하여 곧은 신하를 기릴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하였다.
주018)
방관(房琯) : 당나라의 관리. 696년-763년. 고향이 하남(河南)의 언사현(偃師縣) 구씨전(緱氏鎮)인데, 이곳은 두보의 고향인 공현(鞏縣)과 가깝다. 안사의 난 때 현종(玄宗)을 모시고 피난길에 올랐으며 영무(靈武)에 있던 숙종(肅宗)에게 옥새(玉璽)를 가지고 갔다. 763년(광덕 원년)에 부임 도중에 낭주(朗州)에서 병사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두보의 시 중 “방 상공의 영구가 낭주에서 낙양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承聞河北諸節度入朝歡喜口號絕句十二首)『두시언해』 권5”를 참고할 수 있다.
주019)
운대(雲臺) : 남궁(南宮)의 누대(樓臺)의 하나. 한 광무제가 신하들과 정사를 의논하던 자리이다. ‘운대(雲臺)’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雲臺예 자 지즈로 阻隔나(遂阻雲臺宿)〈두시 3:1ㄴ〉’와 ‘南宮에셔 勳業 載錄니(南宮載勳業)〈두시 3:7ㄱ〉’ 구절 참조.
주020)
화주(華州) : 현재 섬서성 동부에 있는 위난(渭南)시의 한 구(區). 최근에 현(縣)에서 승격되었다. 위하(渭河)의 북쪽에 있다. 두보는 방관(房琯)을 두둔하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 이곳 화주에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좌천되어 부임하였다.
주021)
것고 : 꺾고. -+고. 15세기 국어의 ‘-’은 자타동 양용동사이다. 15세기의 자타동 양용동사의 경우 자동사 용법이 이미 약해져서 자동사는 ‘타동사 용법+어 디다’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도 자동사로는 ‘것거디-’가 많이 쓰였다. ¶것-(자동사) : 天魔ㅣ 것거 아디며(天魔ㅣ 摧碎며)〈능엄 10:74ㄴ〉. 도라 갈  큰 길히 것도다(歸心折大刀)〈두시 12:5ㄴ〉. 것-(타동사) : 고 곳 것고(取好妙華)〈석상 11:41ㄴ〉. 보리 갓고로 자게 며 나모 가질 것거 리놋다(麥倒桑枝折)〈두시 4:13ㄴ〉. 것거디- : 太子ㅣ 화 시니 화리 것거디거늘(菩薩引弓 弓即折破)〈석상 3:13ㄴ〉. 것거뎻던 筋力이 놋다(筋力蘇摧折)〈두시 10:25ㄱ〉.
주022)
나오라 : 나왔네. 나-+오+라. ‘-오라’는 부정시제 즉 과거로 해석하여야 한다.
주023)
이슈메 : 있음에. 이시-+우+ㅁ+에. ¶天下ㅅ 內예 뉘 智慧 이시며 죄 자 太子ㅅ 스스 외려뇨(化內 誰最有智 誰具技能 堪為太子作於師匠)〈석상 3:7ㄱ〉. 明滅 먼  旗ㅅ 비치 이시락 업스락  시라〈두시 1:2ㄴ〉.
주024)
관은(寬恩) : 관대한 은혜. 즉 숙종이 방관(房琯)을 간하던 두보를 벌하지 않고 화주(華州)의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보낸 것을 말함.
주025)
사시니 : 살았으니. 살-+시+니.
주026)
간과(干戈)ㅣ 마가 여디 아니얏더라 : 간과(干戈)가 막아 열리지 아니하고 있더라. 즉 반란으로 인하여 병사들이 모든 곳을 막아 길이 열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주027)
현조(玄鳥) : 제비.
주028)
인생천지(人生天地)ㅣ 약백구지과극(若白駒之過隙)이니라 : 『장자(莊子)』 「지북유편(知北遊篇)」에 나오는 말로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살고 있는 것은, 마치 날랜 말이 틈 앞을 지나는 것처럼 순간적인 일에 불과할 뿐이어서 시간이 빨리 지나감을 비유적을 표현한 말이다.
주029)
니니라 : 이르니라. 말한다. 15세기의 ‘니-’는 ‘말하다’와 ‘~에 이르다’의 뜻이 있다. ¶말하다 : 王이 大愛道려 니샤 太子 뫼셔 天神 祭  절리라(時白淨王將禮天神 前抱太子)〈석상 3:3ㄴ〉.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故로 愚民이 有所欲言야도)〈훈언 :2ㄱ〉. ~에 이르다(니르-) : 이리 혼 因緣으로 成佛호매 니르로니(以此因緣 自致成佛)〈석상 11:22ㄴ〉. 龐公이 주구메 니르록 수머시니라(龐公至死藏)〈두시 20:37ㄴ〉. ~에 이르다(니-) : 어엿비 너기시 엄의 랑이 세 적 올몸애 니신 줄 각야(念子母之愛ㅣ 至於三遷야)〈소학 5:9ㄴ〉.
주030)
가 새 : 제비.
주031)
개변(改變)니 : 제비가 겨울이 되면 강남으로 갔다가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오는 것.
주032)
 : 흰. -+ㄴ. 15세기에 ‘희다’를 표현하는 단어는 ‘-’와 ‘희-’가 있다. ¶- : 가마괴 本來 거므며 鵠이 本來 며(烏ㅣ 從來예 黑며 鵠이 從來예 白며)〈능엄 10:9ㄱ〉. 돐 門읜 서리와 이슬왜 오 玉殿엔 이시 퍼러도다(石門霜露白 玉殿莓苔靑)〈두시 6:17ㄴ〉. 희- : 제 므레 미론 흰 깁과  깁과 잇다(水光絹 白絲絹)〈번노하:26ㄱ〉. 흰  서르 비취엿도다(素節相照燭)〈두시 25:2ㄴ〉.
주033)
ᆯ리 : 빨리. -+이(부사파생접미사). ¶入聲은 리 긋 소리라 促急은  씨라〈훈언 :14ㄱ〉. 하 울워러 보니 白日이 리 가놋다(仰視皇天白日速)〈두시 25:29ㄴ〉.
주034)
 야지 리 가 도다 : 흰 망아지가 빨리 가는 듯 하도다. 장자에, “인생 천지간이 흰 망아지가 홀연히 지나감과 같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却 忽然而已)”〈莊子·知北游〉’의 구절을 인용하여 몸이 늙어가고 세월이 빨리 흘러감을 말하였다.
주035)
초홀(超忽) : 빨리 흘러감.
주036)
경속(輕速) : 빠른 속도.
주037)
벼개 : 베개. ¶빗난 돗 겨펴 오 블근 벼개 노코  쇼 메우니(重敷婉筵고 安置丹枕고 駕以白牛니)〈법화 2:73ㄱ〉. 벼개 노피 벼여시니 먼  믌 소로다(高枕遠江聲)〈두시 2:28ㄱ〉.
주038)
굽스러셔 : 굽혀 쓰러져서. 굽-+슬-+어+셔. ‘중간본’의 ‘굽스려셔’는 잘못이다. ‘굽슬-’은 『삼강행실도』의 예를 제외하면 모두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또한 이 책의 「병이 난 뒤 왕의의 집을 지나다가 술을 마시고(病後過王倚飲贈歌)」에 나오는 ‘對答야 닐오 벼개예 굽스러 어려우미 얘라(答雲伏枕艱難遍)’를 참조할 것. ¶仲義의 이 라가아 아미 劉氏려 닐어늘 劉氏 믄득 가아 울며 굽스러 닐오(仲義弟馬兒 走報劉氏 劉遽徃救之 涕泣伏地告於兵曰)〈삼강런던烈:28ㄱ〉. 雲安縣에 벼개예 굽스러셔(伏枕雲安縣)〈두시 7:10ㄴ〉.
주039)
지즈로 : 인하여. ‘인(因), 잉(仍), 수(遂)’에 대한 번역어로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이제 니르록 메 스츄니 지즈로 左右에 잇 도다(至今夢想仍猶佐)〈두시 9:6ㄱ〉. 햇 興의 疎放호 지즈로 브르노라(因歌野興䟽)〈두시 15:16ㄴ〉.
주040)
죠고맛 : 조그마한. ‘죠고맛’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綠林寧小患)〈두시 3:5ㄱ〉’ 구절 참조.
주041)
 조초 노라 : 마음 따라 한다. 즉 마음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주042)
논어(論語) : 공자와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 사서(四書)의 하나이다. 현재 논어는 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서술 방식과 호칭의 차이 등을 기준으로 앞의 열 편을 상론(上論), 뒤의 열 편을 하론(下論)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앞의 열 편이 더 이전 시대에 서술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두시언해』에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한 주석이 많이 나온다.
주043)
찬수개화(鑽燧改火) : 계절에 따라 그 계절의 나무에 구멍을 뚫고 비벼서 새로이 불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논어』 「선진(先進)편」에 나오는 구절로 재아(宰我)가 부모의 상을 1년으로 해도 되는지 묻자, 공자가 3년 상이 좋다고 대답하는 대목에 나오는 재아의 말이다.
주044)
난파(欒巴) : 동한(東漢) 촉군(蜀郡) 사람. 경서(經書)를 두루 보고 도술(道術)도 좋아하였다고 한다. 한번은 어떤 자리에서 술을 뿜어 성도(成都)의 불을 껐다는 고사가 있다. 『후한서』 권87, 『몽구(蒙求)』 중 ‘난파손주(欒巴噀酒)’ 참조.
주045)
손주(噀酒)야 이구촉화(以救蜀火)니라 : 술을 뿜어 촛불을 구하니라. 즉 불을 껐다는 말이다.
주046)
초사(楚祠) : 일반적으로 한신(韓信)의 사묘(祠庙)를 말하나 여기서는 초(楚) 지역에서 제사를 올리던 사당(祠堂)을 말한다.
주047)
초(楚)ㅅ 양왕(襄王) : 전한의 황족이자 제후왕. ?-기원전117년.
주048)
재촉구년(在蜀九年)이오 재초삼년(在楚三年)이라 : 두보는 48세 때인 759년(건원 2) 12월 1일에 성도로 향해서, 54세 때인 765년(영태 원년) 5월에 성도를 떠났다. 민강(岷江)을 통해 유주(楡州, 사천 重慶), 충주(忠州, 사천 忠縣), 운안(雲雁, 사천 雲陽)을 통하여 55세 때인 766년(대력 원년) 늦은 봄에 기주(夔州, 사천 奉節)에 도착하였고, 이후 적갑(赤甲), 양서초당(瀼西草堂), 동둔(東屯) 등으로 옮겨 지내다가, 57세 때인 768년(대력 3) 동생 두관에게서 편지를 받고 1월에 기주(夔州, 사천 奉節)를 출발하여 협주(峽州, 호북 宜昌) 하뢰(下牢)에 도착함으로써 삼협(三峽)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 해 3월에는 강릉(江陵, 湖北 江陵)에 도착하게 된다. 강릉 도착부터 초(楚) 지역이라 계산하면, 강릉 도착 후 가을 공안(公安, 湖北 公安)으로 거처를 옮겼고, 늦겨울 공안을 출발하여 악주(岳州, 호남 岳陽)에 도착하여 설을 악주, 즉 악양(岳陽)에서 보냈다. 58세 때인 769년(대력 4) 정월에 악양을 출발하여 형산(衡山), 상담(湘潭, 호남 湘潭), 담주(潭州, 호남 長沙)에 도착하여 59세 때인 770년(대력 5) 늦봄에 담주(潭州)에서 이구년(李龜年)과 재회를 하고, 4월에 군벌의 반란을 피해 형주(衡州)로 피난하였다가 침주(郴州, 호남 郴州)로 가다가 도중에 뇌양(耒陽, 호남 耒陽) 방전역(方田驛)에서 섭 현령이 보내준 음식을 받은 일이 있고, 이후 양양(襄陽, 호북 襄陽)으로 가다가 담주(潭州, 호남 長沙)에서 머문 것을 보이며 겨울에 고향으로 향하는 상강 기슭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시는 앞선 주석에서 한성무(1997)을 따라 두보가 57세 때인 768년(대력 3)에 쓴 작품으로 파악하였는데, 이렇게 보면 주석의 ‘재촉구년(在蜀九年)이오 재초삼년(在楚三年)이라’는 정확하게 해석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또한 ‘중풍이 들어 배에서 베개를 베고 누어 회포를 쓰면서 호남의 친구들에게 드리는 36운(風疾이어 舟中伏枕書懷야 呈湖南親友논 三十六韻이라)’의 ‘十暑岷山葛 三霜楚戶砧’ 구절의 주석은 ‘此 言十年 在岷已着葛고 三年 在楚而聞砧也ㅣ라’라 했으므로, 촉 지역에서 10년을 있었다고 말한 것이 되어 미세하지만 일치하지 않는 부분으로 간주할 수 있다.
주049)
던 : 뿜던. -+더+ㄴ. ¶골 베 아  조막 구루믈 놋다(洞口朝噴一片雲)〈백련4ㄴ〉. 鳳凰 개예셔 비 노라(噀雨鳳凰翎)〈두시 19:36ㄱ〉.
주050)
비븨여 : 비비어. 비븨-+어. ¶둘찻 리 實로  體어늘 눈 비븨유믈 因야 달이 외니(蓋第二之月이 實則一體어늘 因揑야 成異니)〈능엄 2:27ㄴ〉. 지븻 사 브를 비븨여 내요 프른 싣남글 놋다(家人鑽火用靑楓)〈두시 11:15ㄱ〉.
주051)
울에 : 우레는. 울에+. ¶여슷  히즷도 아니샤 한비도 오며 울에도 며 녀르미여 겨리여  말도 아니코(以續精氣端坐六年 大雨雷電冬夏默坐)〈석상 3:38ㄴ〉. 올 제 울에 震怒호 가 고(來如雷霆收震怒)〈두시 16:47ㄴ〉.
주052)
칩장(蟄藏)도다 : 칩장하도다. 칩장(蟄藏)#-+도+다. ‘칩장(蟄藏)하다’는 국어사전에 ‘벌레 따위가 겨울 동안 땅속이나 굴속에 죽치고 있다’로 풀이되어 있다.
주053)
촉(蜀)ㅅ 망제(望帝) : 촉(蜀)나라의 망제(望帝). 생몰년 미상. 상(商)나라와 주(周)나라의 교체 시기인 춘추시대 소위 지금의 성도(成都) 지역인 고촉(古蜀)을 다스렸던 임금.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주054)
사위두견(死爲杜鵑) :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 즉 전설에 의하면 촉의 망제는 죽어서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주055)
주(周) 소왕(昭王) : 서주(西周)의 제4대 임금. 기원전 1027~기원전 977년. 즉위 후 회이(准夷)의 반란이 발생했지만 이를 평정했는데 적극적인 남방 원정으로 동이 26방을 따르게 했고, 이어서 초나라로 원정을 실시했으나 원정 도중에 행방불명되었고, 초나라군의 공격에 의해 전사했다고 여겨진다.
주056)
남정불복(南征不復) : 주나라 소왕(昭王)이 촉을 정벌하러 길을 떠났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였다.
주057)
제(齊) 환공(桓公) : 제나라의 제16대 후작. ?-기원전 643년. 제나라 공의 자리에 오른 환공은 관중을 재상으로 임명하였고, 관중은 개혁을 추진해, 국력, 군사력, 문화 향상에 성공했다. 이때 주나라는 쇠퇴하고 있어, 제후 사이의 대립을 억제하는 일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관중의 개혁을 받아들인 제 환공은 주변 국가에 그 명성이 전해져, 주변 제후는 주나라를 대신해 제후 사이의 문제를 환공에게 묻게 되었다. 현재의 호북성을 중심으로 장강 유역을 기반으로 해 남방에서 세력을 늘려, 주왕실이나 제후를 위협하기 시작하고 있던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기원전 651년 환공은 회맹을 거행해 춘추의 패자가 되었다.
주058)
벌초이문지(伐楚而問之) : 제 환공(齊桓公)이 초를 정벌하고 주 소왕(昭王)의 일을 물었다.
주059)
다 : 당연히. 당+이. ¶太子ㅣ 三十二相八十種好ㅣ 시니 다 出家샤 부톄 외시리로소다〈석상 3:2ㄱ〉. 王餐의 지비 峴山 알 우므를 머믈워슘과 다 리로다(應同王粲宅 留井峴山前)〈두시 7:4ㄴ〉.
주060)
올니 : 옳으니. 올#-+니. ¶나옷 외면 아기와 나와  죽고 올면 하히 본즈 시리라(我此兒者 實不從他而有斯子 若實不虛 猶六年在我胎中者 火當消滅終不燒害我之母子)〈석상 3:37ㄱ〉. 榮華히 니닌 올며 외니 잇니라(榮華有是非)〈두시 10:31ㄴ〉.
주061)
교룡(蛟龍) : 교룡들은. 교료ᇰ+ㅎ+. 『두시언해』의 ‘교리(蛟螭)’는 언해문에서 그대로 ‘교리(蛟螭)’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와 같이 ‘교룡(交龍)’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용(龍)’으로 번역된 경우도 있다. ¶교리출무흔(蛟螭出無痕 蛟螭 나 그제 업스니라)〈두시 8:7ㄴ〉. 화옥각교리(華屋刻蛟螭 빗난 지븨 蛟龍 사곗도다)〈두시 22:42ㄴ-43ㄱ〉.
주062)
기피셔 : 깊이. 깊-+이+셔. ‘기피’는 부사로서 여기에 첨사 ‘셔’가 연결된 구성이다. 의역하면 ‘깊은 곳에서’이다. 『두시언해』에는 ‘기피셔’의 예가 한 예가 더 있다. ¶조  기피셔 우 납 인 로 올마가고(窄轉深啼狖)〈두시 2:6ㄴ〉.
주063)
거슯주믈 : 거스름을. 거슯즈-+오+ㅁ+. ‘거슯즈-’의 ‘즈’는 16세기 문헌에서는 ‘ᄧᅳ’로도 표기되었다. ¶거슯즈- : 어딘 사 몰라보아 夫人 거슯지 호다(不識賢良 違逆夫人)〈석상 11:33ㄱ〉. 主將이 거슯즈며 順호믈 마라(主將曉逆順)〈두시 4:22ㄴ〉. 거슯저디- : 考功의 等第에 거슯저디여(忤下考功第)〈두시 2:40ㄱ-ㄴ〉.
주064)
공업(功業) : 큰 공로가 있는 일.
주065)
이명(利名) : ‘중간본’에는 ‘명리(名利)’로 되어 있다.
주066)
 : 장차. 원문에는 이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다. 『두시언해』의 번역자가 문맥에 의거해서 번역어로 사용한 경우에 해당된다. 『두시언해』에서 ‘차’는 주로 ‘장(將)’의 번역어로 사용된다. 다음에 제시된 예는 ‘장(將)’이 없이 문맥에 의해 ‘차’를 번역문에 사용한 경우이다. ¶薰風이  律管애 應리니(熏風行應律)〈두시 23:9ㄱ〉.
주067)
말리로소니 : 말 것이니. 말-+리+도+ㅅ+오+니. ‘-리로소니’를 가진 예문은 15세기에 많지만 ‘말리로소니’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王子ㅅ 命이 닐웻 부니로소니 아례나   노라 리다(當就於死努力恣情五欲自娛)〈석상 24:28ㄱ〉. 官聯을 어즈러우믈 말리로소니(官聯辭冗長)〈두시 20:48ㄱ〉.
주068)
 일후믄 : 뜬 이름은. 즉 헛된 이름은.
주069)
잇뇨 : 있는가. 잇-++니+오. ‘-뇨’의 ‘오’는 설명의문문 종결어미로서 앞의 ‘어디’와 호응한다.
주070)
금오곡(琴烏曲) : 거문고의 노래인 「오야제(烏夜啼)」. 즉 까마귀가 밤에 우는 것을 거문고로 탄 곡.
주071)
거믄고앳 오곡(烏曲)소리 : 거문고의 노래인 「오야제(烏夜啼)」의 소리. 거믄고+애+ㅅ.
주072)
애와텨 : 애달아. 애달파. 애-+왇+티+어. ‘애왇브다’ 등도 존재하므로 ‘애-’가 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나 15세기 문헌에는 ‘*애다’ 또는 ‘*애브다’는 없다. ¶손 죽디 몯야 셟고 애왇븐 들 머거(不能自刑 懷毒抱恨)〈석상 6:5ㄱ〉. 녜 엇뎨 摧殘야셔 비루수 애왇븐  베푸미 아니리오(爾豈摧殘始發憤)〈두시 17:5ㄱ〉.
주073)
헷 : 뜰의. ㅎ+에+ㅅ.
주074)
므르든놋다 : 무너져 떨어지는구나. 므르-#듣-++옷+다. ¶남기 다 것드르며 다미며 지비며 다 므르듣더니〈월석 22:71ㄴ〉. 져믄 나히 마 므르듣도다(靑歲已摧頹)〈두시 21:37ㄱ〉.
주075)
대유령(大庾嶺) : 주석에 의하면 매화가 많은 고개라 한다.
주076)
 므른 : 가을의 물은. 이 시를 지을 때가 가을임을 말해 준다.
주077)
소상(瀟湘) : 소상은 호남성의 별칭으로 쓰인다. ‘소(瀟)’는 호남성 경내의 소수(瀟水)를 가리키며, ‘상(湘)’은 호남성의 상수(湘江)을 가리킨다.
주078)
얏고 : 가득하였고. -+아#잇-+고. ¶六師 무리 閻浮提예 야도 내 바랫  터리 몯 무으리니(正使此輩六師之衆 滿閻浮提數如竹林 不能動吾足上一毛)〈석상 6:27ㄱ〉. 中에 므리 臥牀애 도다(中宵淚滿床)〈두시 7:15ㄴ〉.
주079)
음풍(陰風) : 음산한 바람. 즉 시절이 가을이 됨에 따라 바람도 서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080)
영(嶺)엣 : 고개의. 대유령(大庾嶺)을 말한다.
주081)
매화(梅花)로 디나놋다 : 매화로 지나는구나. ¶-로 디- : 淨居天이 沙門이 외야 錫杖 잡고 바리 받고 알로 디나가거늘(天化一沙門 持錫掌鉢徐行駕前)〈석상 3:19ㄴ〉. 비치 棕나모 亭子로 디나 草亭에 드럿도다(色過棕亭入草亭)〈두시 25:20ㄴ〉. -을 디- : 慈母ㅣ 나 려 耆婆天을 뵈 제 이 므를 디나니(慈母ㅣ 携我야 謁耆婆天제)〈능엄 2:8ㄴ〉. 곳고리 므를 디나 두위텨 도라가거(黃鶯過水翻回去)〈두시 10:18ㄱ〉.
주082)
사마자장(司馬子長) : 사마천(司馬遷). 『사기』의 작가. 기원 전 145년 또는 135년-기원전90년.
주083)
맹호(猛虎)ㅣ 재함정지중(在檻穽之中)야 요미이구식(搖尾而求食)니라 : 사나운 호랑이가 함정 가운데서 꼬리를 흔들어 먹이를 구한다.
주084)
보은(報恩) 견상이권보은주(見上二卷報恩珠註)다 : 보은(報恩)에 대해서는 『두시언해』 제2권의 ‘보은주(報恩珠)’에 관한 주석을 보라는 말이다. 제2권의 보은주(報恩珠)에 관한 주석은 ‘보주(報珠) 수후(隋候)ㅣ 견사상(見蛇傷)고 이약봉지(以藥封之)야 후(後)에 사(蛇)ㅣ 함주이보(銜珠以報)니’인데, 해석하면 ‘보주(寶珠)는 수나라 임금이 뱀에게 물려 약으로 치료하고 나니 후에 뱀이 구슬로 물고 와 은혜를 갚았으니’이다.
주085)
폭시(曝腮) : 주석에 의하면 폭시는 물고기가 용문(龍門)을 통과한 것은 승천하여 용이 되고, 통과하지 못한 것들은 이마에 점이 찍히고 뺨에 햇볕을 쬐며 피를 흘린다는 것이다. 『후한서(後漢書)』 「군국지」 5 교지군(交趾郡) 참조.
주086)
지화역해(至劃易該)ᄂᆞᆫ : 주석에서 ‘초간본’의 ‘至劃易該’은 ‘중간본’에 ‘至劃易諺’으로 되어 있다.
주087)
고(苦)로이 : 괴롭게. 苦+롭+이.
주088)
이어고 : 흔들고. 이어-+고. ‘이어-’는 자동사와 타동사로 모두 쓰이는 소위 자타동 양용동사이다. 예문의 ‘미, 지치’는 주어이어서 이들과 함께 쓰인 ‘이어-’는 자동사이며, ‘覺을, ’과 함께 쓰인 ‘이어-’는 타동사이다. ¶미 이어면 뮈오(風搖면 則動고)〈능엄 4:40ㄱ〉. 남기 여희  이어니 고지 아아도다(樹攪離思花冥冥)〈두시 8:31ㄴ〉.
주089)
 : 뺨을. +. ¶두 미 븕고(兩臉赤)〈구급 하:50ㄱ〉. 노   티디 말며(高馬勿唾面)〈두시 25:14ㄱ〉.
주090)
노라 : 쬐노라. -++오+라. ¶녜 甘蔗王이 야 나디 아니야  甘蔗 야 야디여 날 日種이라 니라〈능엄 3:76ㄱ〉. 旌旗예  덥게 니 龍과 얌괘 뮈오(旌旗日暖龍蛇動)〈두시 6:4ㄱ〉.
주091)
여 : 매어. -+어. ¶ 婇女ㅣ 末利花鬘 가져 드러 太子ㅅ 모  太子ㅣ 도 아니야 보신대(有一婇女 自手將一末利華鬘 前出繫於太子頸下 而太子(眼熟視不瞬) 觀彼女人)〈석상 3:24ㄴ〉.  야 오 바 머리 왯노니(系舟今夜遠)〈두시 6:11ㄴ〉.
주092)
하 : 헐뜯는. 할-+. 15세기의 ‘:할다(상성)’는 ‘①헐뜯다, ②참소하다’의 뜻이 있다. 참고. 할다. 할이다. 할리다. 할아다. 할아티다. 하숫그리다. ¶헐뜯다; 兄을 새와 녜 할오져 야 일마다 兄을 거슯지 더라(妒嫉於兄 常欲毀害觸事)〈월석 22:25ㄱ〉. 하료 매 스스로 어드니라(讒毀竟自取)〈두시 2:49ㄴ〉 참소하다; 眞宰ㅣ 하해 올아가 할오 이 울리로다(眞宰上訴天應泣)〈두시 16:29ㄴ〉. 할아-; 如來ㅅ 마곰 업수 여르샤 疑心과 할아니 濟度샤 恭敬야 울워와 뎌 城隍애 디나(欽仰如來ㅅ 開闡無遮샤 度諸疑謗와 經彼城隍야 徐步郭門야)〈능엄 1:34ㄱ〉. 하숫그리-; 님 겨틔 하숫그릴 사미 잇니라(君側有讒人)〈두시 17:18ㄴ〉.
주093)
 : 자루를. +. ‘’는 모음어미가 오면 ‘’의 형태로 쓰이면서 연철되지 않는 속성이 있는데 이와 유사한 명사로는 ‘, ’ 등이 있다. ¶비 텨 이 것거디여 보 瓔珞이 해 다 러디거늘〈월석 25:58ㄱ〉. 긴 鑱 긴 鑱이여  나모 이니(長鑱長鑱白木柄)〈두시 25:26ㄴ〉.
주094)
완적(阮藉) : 위나라 때의 시인. 210~263년. 혜강(嵇康)과 함께 죽림칠현의 중심 인물. 완적은 혜강의 형인 혜희에 대해서는 아첨하는 선비로 여겨 백안(白眼)으로 대했으나, 아우인 혜강에게는 청안(靑眼)으로 대하여, 여기서 죽림 교유의 중핵이 이루어졌다 한다. 「도덕론(道德論)」, 「통로론(通老論)」, 「달장론(達莊論)」, 「대인선생전(大人先生傳)」 등 노장적 세계를 그린 작품이 있다. 또한 감음을 일삼고, 수레가 막다른 길에 이르자 통곡했다고 하는 완적의 심정은 「영회시(詠懷詩)」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시풍은 당나라 초의 진자앙(陳子昻)의 「감우시(感遇詩)」 38편이나, 이백의 「고풍(古風)」 59편 등에 계승되었는데, 중국 사인(士人)들에게 자기표현의 형태를 제시했다. 죽림칠현 가운데서도 은자적 성격을 진하게 갖는 대표적 인물이다.
주095)
보병교위(步兵校尉) : 보병의 교위. 교위(校尉)는 당나라 때 6품 이하의 벼슬의 품계에 붙이던 칭호이다.
주096)
우도궁즉곡(遇途窮則哭) : 완적(阮藉)은 「영회시(詠懷詩)」에서 수레가 막다른 길에 닿자 통곡했다고 노래하였다.
주097)
전전(展轉) :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것.
주098)
중선(仲宣) : 왕찬(王粲)의 자(字). 왕찬은 동한(東漢) 말의 문학가로 건안칠자(建安七子) 중 한 사람이며 문학적 업적을 쌓았는데, 『두시언해』에서는 두보가 존경하는 시인으로 자주 언급되며 특히 그의 작품 「칠애시(七哀詩)」에 대한 언급이 많다.
주099)
아라히 : 아스라이. 아득히. 기원적으로 ‘아라-’는 ‘아+아#-’로 분석될 것으로 보이나 ‘*아’은 15세기 문헌에서 문증되지 않는다. 참고. 아라이. 아랗다. 아라다. ¶아라- : 범 말인 막대 소리 虛空애 아라니 사홈 말이라(解虎錫 響遙空니 分鬬야)〈남명 상:69ㄴ〉. 百年에 히 幽僻니 柴門이 아라고(百年地辟柴門迥)〈두시 22:7ㄴ〉. 아라히 : 즈추므로브터 아라히 열  남거니 어느 날 니즈리오(自隔으로 杳逾十載어니 何日忘之리오)〈영가 하:108ㄱ〉. 淮湖앳 賦稅ㅣ 아라히 차 오놋다(緬通淮湖稅)〈두시 22:32ㄴ〉.
주100)
자(籍) : 자(藉)와 통용함.
주101)
주려셔 : 굶주려서. 주리-+어+셔.
주102)
빌오 : 빌리고. 빌-+오. 15세기의 ‘빌-’은 ‘빌리다[藉]’의 뜻과 ‘기원하다’의 뜻의 동사가 있는데 전자는 ‘걸(乞)’, 후자는 ‘기(祈), 축(祝), 도(禱)’ 등의 한자와 대응한다. ‘빌리다’의 뜻으로는 ‘빌이-’를 쓰기도 하였다. ¶빌-(빌리다) : 乞 빌 걸〈신유하45ㄴ〉. 맷  나죗 서늘호 빌이놋다(江風借夕涼)〈두시 3:12ㄱ〉. 알흔 넉슬 너희 무를 빌어 두니시니라(遊魂貸爾曹)〈두시 5:2ㄴ〉. 빌-(기원하다) : 祈 빌 긔 祝 빌 츅〈신유하14ㄱ〉. 禱 빌 도〈훈몽下14ㄱ〉. 빌이- : 北堀애 가 블 빌이쇼셔 야시(北窟有火 汝可往取)〈석상 11:26ㄴ〉. 東 녁 집 전 나귀 날 빌이건마(東家蹇驢許借我)〈두시 25:41ㄱ〉.
주103)
시름얀 : 걱정하여서는. 시름-+야+ㄴ. ¶도라 드르샤 시름야 더시다(便迴還入宮愍念十方)〈석상 3:18ㄱ〉. 션 주려 주구믈 시름노니(有儒愁餓死)〈두시 19:13ㄱ〉.
주104)
므던히 너기노라 : 가볍게 여긴다. 15세기 문헌에 쓰인 ‘므던히’는 ‘너기-’와 자주 함께 쓰였다. ‘므던히 너기-’는 『두시언해』에서 ‘경(輕), 임(任), 종(從)’ 등의 번역어로 쓰인다. 참조. 므더니 너기-. ¶從 : 너무 게을어 옷 자쇼 므던히 너기고(過懶從衣結)〈두시 10:13ㄴ〉. 任 : 서리 이 靑女 므던히 너기노니(飛霜任靑女)〈두시 10:32ㄴ〉. 忽 : 갈  아로니 世俗 어루 므던히 너겨리로다(知歸俗可忽)〈두시 13:14ㄴ〉. 輕 : 紱와 冕을 므던히 너규메 關係호미 아니라(不關輕紱冕)〈두시 20:26ㄱ〉. 므너니 너기- : 慢  므더니 너길 씨니〈석상 9:13ㄴ〉. 애 긋븐 소리를 므더니 너기고져 간마(欲輕腸斷聲)〈두시 5:26ㄱ-ㄴ〉.
주105)
어렵거니와 : 어렵거니와. 어렵지만. 어렵-거+니+오+아. ‘-거니와’에 대해서는 ‘기부에서 회포를 쓴 40운(夔府書懷四十韻)’의 ‘廟堂앳 혜아료 노파 測量호미 어렵거니와 하 시르믄 眞實로 이긔 겨시니라(廟筭高難測 天憂實在茲)〈두시 3:4ㄴ〉’ 구절 참조.
주106)
이우로 : 시듦은. 시드는 것은. 이울-+오+ㅁ+. ‘이울다’는 국어사전에 ‘①꽃이나 잎이 시들다. ②점점 쇠약하여지다. ③해나 달의 빛이 약해지거나 스러지다.’ 등의 뜻풀이가 등재되어 있다. 참조. 이울다. 이울우다. ¶뎌 남 이울에 면 내 그 오시리라 고(我今當作方便殺菩提樹 可得與我常相娛樂)〈석상 24:41ㄴ〉. 오히려 이우러 이슈믈 슬티 말라(忽悲尙枯槁)〈두시 5:35ㄱ〉.
주107)
차지(差池) : 들쭉날쭉한 모습.
주108)
합답(合沓) : 서로 이어진 모습.
주109)
차(此) 기당시람진자(譏當時濫進者)ㅣ 다야(多也)ㅣ라 : 이것은 당시의 넘쳐 나아가는 사람이 많음을 나무라는 것이다. ‘중간본’에는 ‘差池 不齊皃ㅣ오 合沓 相繼也ㅣ라’와 ‘此下로 至不假媒 論當世事다’ 사이에 ‘此 譏當時濫進者ㅣ 多也ㅣ라’가 더 있다. 해석하면 ‘이것은 당시의 넘쳐 나아가는 사람이 많음을 나무란 것이다’이다.
주110)
조면(組冕) : 조관(朝冠). 즉 벼슬아치가 조복을 입을 때에 쓰던 관.
주111)
다봇 : 다북쑥. ‘다봇’은 『두시언해』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이다. ¶무적티 올로 다봇 서리예 리여슈라(塊獨委蓬蒿)〈두시 8:56ㄴ〉. 다봇  구믿터리 드믈언 디 오라니(蓬鬢稀疏久)〈두시 11:8ㄱ〉.
주112)
서리 : 사이. 무더기. ¶人間 사 서리라〈월석 1:19ㄴ〉. 싣나모 수픐 서리로다(雲帆楓樹林)〈두시 2:26ㄱ〉.
주113)
구틔여 : 구태여. 참조. 구테여. ¶世옛 사미 티 倍히 더 보아 구틔여 分別을 내니 足히 그 妄 보리로다(而世人이 一齊히 倍加瞻視야 强生分別니 足見其妄也ㅣ로다)〈능엄 2:14ㄱ〉. 어즈러운 가얍고 열운 사 엇뎨 구틔여 혜리오(紛紛輕薄何須數)〈두시 25:55ㄴ〉.
주114)
이윤(伊尹) : 상나라 때의 전설상의 인물. 성인이 된 후에는 주인의 딸이 탕왕에게 시집갈 때에 심부름꾼으로서 자리의 시중을 들었다. 이 때 자리가 재능을 인정하여 상의 국정에 참여해 중책을 맡았다. 상이 하를 멸할 때에도 활약했고 상 왕조 성립에도 큰 구실을 하였으며, 아형(阿衡)으로서 탕왕을 보좌해 수백 년 동안 이어지는 상 왕조의 기초를 굳혔다. 탕왕의 사후에 그 아들인 외병과 중임 등 두 명의 임금을 보좌한 후 탕왕의 손자 태갑이 즉위한 후에도 계속해서 보좌하였다. 태갑이 방탕한 생활을 해 국정이 어지러워졌을 때에는 이윤이 태갑을 동(桐)으로 추방했고 섭정으로서 태갑을 대신했다가 3년 후 태갑이 회개한 것을 확인한 후에 다시 그를 임금으로 맞이해 스스로는 신하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주115)
주공(周公) : 주공 단(周公旦). 주나라의 정치가. 생몰년 미상. 문왕의 아들이자 무왕의 동생. 아들이 노나라의 제후로 봉해진 이래로 노의 시조로서 받들어졌다. 형인 무왕을 보좌하였고, 무왕 사후엔 그의 어린 아들인 성왕을 보좌하고 주나라 건국 이후의 불안한 정국을 안정시켰다. 강태공, 소공 석과 함께 주(周)의 창업 공신의 한 사람이다.
주116)
굴원(屈原) :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의 시인이자 정치가. 기원전 340-기원전 278년.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 초나라의 회왕 때에 보좌관에 임명되었다. 학식이 높고 정치적 식견도 뛰어난 정치가였으며, 회왕의 상담역으로 국사를 도모하고,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으나, 다른 이의 모함을 받아 신임을 잃고 끝내 자살하였다. 그는 이러한 아픔을 시 이소(離騷)에 담아내었다.
주117)
송옥(宋玉) : 중국 고대의 시인. 기원전 3세기 무렵. 굴원의 초사의 후계자.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는 16편의 작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4편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 「구변(九辯)」만이 확실하게 그의 작품이다. 세상의 쇠망과 자신의 불우함을 탄식하고, 가을의 쓸쓸함을 슬퍼하는 구절이 있다. 『두시언해』에서는 훌륭한 시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주118)
죄 오 줄 아니로다 : 재주가 오르는 것이 아니도다.
주119)
회흘(回紇) : 위구르. 한문으로는 ‘회흘(回纥)’ 또는 ‘회골(回鶻)’이라 한다. 회흘은 실질적으로 중앙아시아의 중심 지역에서 동서의 교역을 통제하는 제국을 세웠으며 840년 키르기즈족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거의 1세기 동안 중앙아시아 중남부의 스텝지대를 지배하였다. 유목 민족의 배경을 가진 국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였다. 위구르 제국과 중국은 대체로 평등한 관계에 있었으며, 757년 당나라가 안녹산의 난으로 인하여 위기를 맞게 되었을 때 위구르군이 수도 장안까지 진군하여 당조를 구원하였다. 이런 우호적인 관계는 티베트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다른 유목민족과는 달리 실크로드를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 이들에게 중국은 유일한 경제원조처였고 이는 티베트에 맞서 당과 위구르가 친선관계를 맺는 힘이 되었다. 반면에 당은 티베트[吐藩]와는 전쟁을 벌이는 등 대립하였다. 두시에서 자주 언급되는 회흘(回紇)은 바로 이 시기에 위구르가 티베트와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고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으면서 안녹산의 난을 계기로 구원병을 보내는 등의 관계를 맺게 되었기 때문이다. 두시를 통해서 당시 위구르를 보는 중국 지식인들의 관점을 알 수 있다. ‘중간본’에는 ‘회흘(回訖)’로 되어 있다.
주120)
방관(房琯) : 앞의 주 참조.
주121)
한정(漢庭) : 한나라의 조정.
주122)
이역(異域) : 오랑캐의 땅을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회흘(回紇) 즉 위구르를 가리킨다.
주123)
진(晋)ㅅ 사기(史記)옌 : 진나라의 역사책에는.
주124)
<지명 realname="" type="">중대(中台)ㅅ 벼리 디도다 : 『진서(晉書)』 장화전(張華傳)에는 서진의 정치가이었던 장화가 피살되기 전에 중대성(中台星)이 떨어지는 징조가 있었는데, 이 일로 인하여 재상이 죽는 징조로 사용된 표현이다. 여기서는 방관(房琯)이 죄를 얻은 것을 말한다.
주125)
패도(覇道) : 인의(仁義)를 가볍게 여기고 무력이나 권모술수로써 공리(功利)만을 꾀하는 일.
주126)
심상(尋常) : 대수롭지 않고 예사로움.
주127)
종신(宗臣) : 왕족으로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
주128)
아쳐러 : 싫어하여. 아쳗-+어. 참조. 아쳗브다. 아쳐로이. 아쳐다. 아쳐러다. 아쳗비. ¶아쳗-; 여슷 行 欲界 이 苦ㅣ며 이 麤ㅣ며 이 료 아쳗고 色界 이 淨이며 이 妙ㅣ며 이 여희요 즐길 씨니(六行者 厭欲界의 是苦是麤是障고 欣色界의 是淨是妙是離니)〈능엄 9:1ㄴ〉. 어느 로  아쳐로 記錄료(何心記榛梗)〈두시 24:41ㄱ〉. 아쳗브- : 믈읫 아쳗븐 相 다 업고져 願샷다(凡可惡相을 願皆無之샷다)〈영가하:136ㄱ〉. 아쳐- : 모미 아쳐커든 져기 官桂湯과 粥 므를 머겨 모기 젓게 고(却身苦勞動 少與官桂湯及粥清令喉潤)〈구급상:77ㄴ〉. 아쳐러- : 生死 아쳐러며 涅槃 愛호매 니르러도  그러니라〈원각 하1-1:18ㄴ〉. 塞外예 와 甚히 뫼 아쳐러더니(塞外苦厭山)〈두시 1:20ㄴ〉. 아쳐로이 : 鄭伯이 듣고 아쳐로이 너겨 도으로 여곰 죽인대(鄭伯이 聞而惡之使盜殺之대)〈소학 4:43ㄴ〉.
주129)
기미 : 깃-+우+ㅁ+이. ‘깃-’은 일반적으로 ‘무성하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꺼리다’의 뜻으로 쓰였다. 이러한 용법의 ‘깃-’은 고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으며 『두시언해』에서도 여기서만 쓰인 유일례이다. 『두시언해』에는 ‘꺼리다’의 뜻으로 쓰인 ‘긋-’도 있다. ‘꺼리다’의 뜻으로 쓰인 ‘긋-’은 ‘賈誼ㅣ 在長沙야 鵩ㅣ 飛入舍이어늘 自傷壽不長니 比之晉之亡다’란 주석이 있는데 이것은 ‘가의(賈誼)가 장사에 있을 때 복조(鵩鳥)가 집으로 날아 들어왔는데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고 하니 이것은 진(晉)의 멸망을 비유한다’라는 말이므로 ‘복조(鵩鳥)’를 장사(長沙) 사람들이 꺼린다는 뜻이다. ¶긋-(꺼리다) : 鵩鳥 長沙애셔 그니(鵩鳥長沙諱)〈두시 24:52ㄱ-ㄴ〉. 깃-(무성하다) : 뒷 東山이 淸淨고 남기 盛히 기니(可於後園 其中清淨 林木茂盛)〈석상 11:37ㄱ〉. 수프리 기면 새 가미 잇고(林茂鳥有歸)〈두시 3:58ㄱ〉.
주130)
배회(徘佪) : 배회(徘徊). ‘중간본’에는 ‘배회(裴佪)’의 ‘회(佪)’가 ‘회(徊)’로 되어 있다.
주131)
님 혜아리샤 : 임금의 헤아리심은. 즉 임금이 헤아리시는 것은.
주132)
기피 : 깊이. ‘기피’ 등의 파생부사에 대해서는 ‘백발이 드리워(垂白)’의 ‘ 소리 수니 기리 조오로미 젹고(江喧長少睡)〈두시 3:40ㄴ〉’ 구절 참조.
주133)
머믈워 시놋다 : 머무르게 하시는구나. 즉 임금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나랏일이 발전이 없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머믈우-’는 ‘머믈-’의 사동사이다. ¶머믈- : 虛空애 노 七多羅樹만 소사 올아 種種앳 神奇 變化 내야 虛空 中에 니며 머믈며 안며 누며(踊在虛空高七多羅樹야 現種種神變야 於虛空中에 行住坐臥며)〈석상 21:37ㄱ〉. 머므러셔 얽여 뇨 慰勞노라(躊躇慰羈束)〈두시 13:16ㄴ〉. 머믈우- : 이  거슬 보 識을 브트니  머믈우미라(此애 觀白 依識이니 所以駐心也ㅣ라)〈능엄 5:57ㄴ〉.  머믈워 고기 잡  무러(駐馬問漁舟)〈두시 13:16ㄴ〉.
주134)
종정(鍾鼎) : 종이나 솥 따위의 쇠붙이.
주135)
북두(北斗)ㅅ 벼 : 북두의 별을. ‘북두’는 북두칠성이다.
주136)
법(法) 바도미 : 본받음이. 법과 같이 여겨 따라감이.
주137)
봉적주(鋒鏑鑄) :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드는 것. 『두시언해』에서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드는 표현은 여러 군데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凶 兵잠개로 農器 디오(凶兵鑄農器)〈두시 3:4ㄱ〉’, ‘엇뎨 시러곰 甲을 지여 農器 라(焉得鑄甲作農器)〈두시 4:29ㄴ〉’, ‘兵戈 노겨 農器를 디면(銷兵鑄農器)〈두시 19:37ㄱ〉’ 등이 있다. 『두시언해』 권4는 중간본이기 때문에 ‘지-’로 표기되었지만 초간본에는 ‘디-’로 표기되었다.
주138)
동양최(棟梁摧) : 나라의 동량(棟梁)을 부러뜨리는 일. 즉 나라를 망치는 일. 위의 주석의 내용을 참조.
주139)
육완(陸玩) : 동진(東晉)의 관리. 278-342년. 관직이 사공(司空)에 이르렀다.
주140)
갌 콰 : 칼날과. 갈ㅎ+ㅅ#ㅎ+과. ¶갌히 毗盧ㅅ 바기예 오 나니(鋒芒이 獨露毗盧頂니)〈금삼 3:54ㄱ〉. 갌 해 디여 氷霜 니 십고(落刃嚼冰霜)〈두시 15:18ㄴ-19ㄱ〉.
주141)
삸 미트로 : 화살촉으로. 살+ㅅ#밑+으로. ¶세 關 마 차  삸미티 虛空애 머니(三關을 已透야 一鏃이 遼空니)〈금삼 5:43ㄴ〉. 블근 화래 金톱 삸 미티로소니(騂弓金爪鏑)〈두시 2:69ㄱ〉.
주142)
디유믈 : 주조함을. 디-+오+ㅁ+을. ¶옰 內예 金銀銅鐵을 모도아 砲 디여(集州中金銀銅鐵 雜鑄爲砲)〈삼강런던충28ㄱ〉. 兵戈 노겨 農器를 디면(銷兵鑄農器)〈두시 19:37ㄱ〉.
주143)
집 와 : 집의 종마루와. +와. ‘’는 ‘~리~, ~리~’와 같이 주격조사가 오면 ‘리’, 처격조사가 오면 ‘’의 형태로 된다. ¶() : 中道實相이 極果  사모 가비시니(喻中道實相極果所宗)〈법화 1:6ㄴ〉. 노 집 와 層層인 軒檻이 마 절로 서늘니(高棟曾軒已自涼)〈두시 14:15ㄴ-16ㄱ〉. 라(리) : 正宗 正 리니 法華經을 니르니라〈석상 19:8ㄴ〉. 노 리 훤 길헤 비취엿도다(高棟照通衢)〈두시 2:45ㄴ〉. 라() : 기슬게 잇닐 닐오 椽이오  잇닐 닐오 梠ㅣ니〈법화 2:106ㄱ〉. 뷘 집  그륜 戈戟이 모댓고(空梁簇畫戟)〈두시 6:17ㄴ〉.  : 末香과[ 香이라]〈월석 10:44ㄴ〉. 리 : 큰 블 묏 가온 녀코 두 山이 어우러 라 리 외니라〈월석 1:29ㄱ〉.  : 柄  〈훈몽중6ㄴ〉. 리 : 正졍 히 빗긴 가지로 더브러 아오라  리 될디니〈무예39ㄱ〉.
주144)
보콰로 : 보로. 보ㅎ+과+로. ‘보ㅎ’은 ㅎ말음체언이다. ¶四面이 一時예 그 브리 다 盛야 와 보콰 셔와 긷괘 기 소리 나 震動야 야디여 믈어 것거 러디며(四面이 一時예 其燄이 俱熾야 棟梁椽柱ㅣ 爆聲震裂야)〈법화 2:124ㄴ〉. 뎘 와 보히 믈어뎨쇼 니다(告訴棟梁摧)〈두시 9:28ㄴ〉.
주145)
여곰 : 하여금. 일반적으로 ‘령(令)’에 대한 번역으로 쓰이나 여기서는 ‘사(使)’에 대한 번역으로 쓰였다. 현대국어에서는 ‘하여금’이 단독으로 부사어로 쓰이지 않는다. 15세기 국어의 ‘곰’은 ‘씩’과 ‘금’의 기능이 있었다. 후자로 쓰일 때는 ‘시러곰, 제여곰, 여곰(여곰), 곰’의 형태로 많이 쓰인다. ¶곰(씩) : 그 東山애 金붑 銀붑 돌붑 쇠부피 各各 닐굽곰 잇거늘 調達이와 難陁왜 몬져 쏘니 各各 세콤 여디거늘(園中有七重金鼓銀鼓鍮石銅鐵等鼓 各有七牧 提婆達多最先射之 徹三金鼓 次及難陀亦徹三鼓)〈석상 3:13ㄴ〉. 곰(금) : 各各 蒼生로 여곰 環堵 두게 고(各使蒼生有環堵)〈두시 7:29ㄱ〉.
주146)
것게 : 꺾어지게. -+게. 15세기 국어의 ‘-’은 자타동 양용동사이다. 15세기의 자타동 양용동사의 경우 자동사 용법이 이미 약해져서 자동사는 ‘타동사 용법+어 디다’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도 자동사로는 ‘것거디-’가 많이 쓰였다. ¶것-(자동사) : 天魔ㅣ 것거 아디며(天魔ㅣ 催碎며)〈능엄 10:74ㄴ〉. 도라 갈  큰 길히 것도다(歸心折大刀)〈두시 12:5ㄴ〉. 것-(타동사) : 고 곳 것고 걋 밥 더러내야 比丘 주시니(取好妙華 減其食分 奉施比丘)〈석상 11:41ㄴ〉. 天柱 다 딜어 것근가 젇노라(恐觸天柱折)〈두시 2:36ㄴ〉. 것거디- : 太子ㅣ 화 시니 화리 것거디거늘(菩薩引弓 弓即折破)〈석상 3:13ㄴ〉. 것거뎻던 筋力이 놋다(筋力蘇摧折)〈두시 10:25ㄱ〉.
주147)
반석(盤石) :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사상이나 기틀이 아주 견고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148)
종사(宗社) : 종묘와 사직. 즉 역대 임금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던 왕실의 사당과 천자나 제후가 제사를 지내던 토지신과 곡식신.
주149)
궤이퇴곡(跪而推轂)곡 착흉문이출(鑿凶門而出)니 : 임금이 된 자는 장수를 싸움터로 내 보낼 때 무릎을 꿇어 수레를 밀고, 장수는 흉문을 뚫고 문을 나간다는 말이다.
주150)
명규(命圭) : 천자가 왕공(王公)과 신하에게 주는 옥으로 만든 팔찌 모양의 규(玉圭).
주151)
오란 : 마름질하는 것은. -+오+ㅁ+란. ¶-; 翠駮을 뉘  리오(翠駁誰剪剔)〈두시 16:2ㄱ-ㄴ〉.  화 바 실 자최 업게 놋다(裁縫滅盡針線跡)〈두시 25:50ㄴ〉.
주152)
해 : 많이. 매우. 『두시언해』에서 ‘해’는 한시의 ‘다(多)’에 대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수효가 많거나, 행위의 횟수가 잦거나 할 경우에도 광범위하게 쓰였다. ¶비록 해 드러도 增上慢며(有雖多聞, 而增上慢)〈석상 9:13ㄴ〉. 내 늘구메 해 슬허 노라(窮老多慘戚)〈두시 1:26ㄱ-ㄴ〉.
주153)
술윗 : 수레바퀴. 술위+ㅅ+통. ¶술윗앳 기름을 밧바애 면 됴리라(車殼中脂塗足心下瘥)〈구간 2:50ㄴ〉. 술윗앳 구뭇 부리 돌이로 바가 잇 쇠 술윗 구무 안히 달티 아니케 기조치로 바가 잇 쇠 술윗 앏 괴오 나모 술위 뒤 괴오 나모 술윗〈번노하36aㄴ〉.
주154)
져기 : 작게. 젹-+이. 15세기 국어의 ‘젹다’는 [소(少)]와 [소(小)]의 뜻이 모두 있다. ‘져기’는 일반적으로 ‘략(略)’의 번역으로 쓰인다. 참고. 쟉다, 젹다, 죡다, 횩다, 휵다. ¶이 사미 欲心이 젹고 足 고 아라(是人이 少欲知足야)〈석상 21:62ㄱ〉. 朝와 野왜 겨르왼 나리 젹도다(朝野少暇日)〈두시 1:1ㄴ〉. 젹다(작다) : 모미 크긔 외야 虛空애 야 잇다가  젹긔 외며(或現大身滿虛空中 而復現小)〈석상 6:34ㄱ〉. 올히 젹고  壯丁이 업스니(縣小更無丁)〈두시 4:5ㄱ〉.
주155)
흉문(凶門)에 술윗 미로란 져기 홀 디니라 : 군주는 장수를 내 보낼 때 장수는 흉문을 뚫고 나가고 임금은 무릎을 꿇고 수레를 민다는 고사에서 인용한 것으로 여기서는 ‘무(武)’를 억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주156)
목목(穆穆) : 훌륭한. 온화한. 훌륭한 천자의 얼굴을 형용하는 말이다. 『시경』 「문왕편(文王篇)」 참조.
주157)
탕(湯) : 상(商)나라의 건국자.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을 추방해 하 왕조를 멸망시켰다.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 걸은 포학한 정치를 해 인심은 하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하나라의 신하인 탕은 명신 이윤의 보좌를 받아 걸을 공격해 멸망시켰다. 탕(湯)은 하(夏)의 우(禑), 주(周)의 문왕(文王), 무왕(武王)과 함께 성군으로서 후세에 숭상되었다.
주158)
적작황룡(赤雀黃龍) 개상서지물(皆祥瑞之物)이니 언행인정즉서물(言行仁政則瑞物)이 자지(自至)니라 : 적작(赤雀)과 황룡(黃龍)은 다 상서로운 것들이니 인정(仁政)을 행하여 곧 상서로운 것들이 스스로 이르는 것을 말한다. 〈중간본-삭제〉에는, “적작황룡(赤雀黃龍) 개상서물(皆祥瑞物)이 자지(自至)니라.”로 되어 있다. ‘중간본’대로 해석하면, “적작과 황룡은 다 상서로운 것들이니 스스로 이른다.”라 할 수 있다.
주159)
면류(冕旒) : 면류관의 앞뒤에 늘어뜨린 구슬꿰미이나, 여기서는 면류관 자체를 가리킨다.
주160)
드리우샤매 : 드리우심에. 들-+이+우+시+오+ㅁ+애.
주161)
자뢰(資賴)시고 : 자뢰하시고. 즉 무엇을 빙자하여 의지하시고.
주162)
오직 : 오직. 『두시언해』에서 ‘오직’은 ‘유(唯), 유(惟), 단(但), 지(只)’ 등의 번역어로 쓰였다. ¶오직 大愛道ㅣ 기리다(唯大愛道能使長大耳)〈석상 3:3ㄱ〉. 오직 옛 새 사믈 맛 ㅣ오(但逢新人民)〈두시 1:38ㄱ〉.
주163)
어위에 : 넓게. 어위-+게. ‘어위-’는 ‘어위크-’와 같은 복합형용사와 ‘어위키’와 같은 파생부사를 형성하는데, 후자는 『두시언해』에만 보인다. ¶어위- : 이 行 行실 즐거워 벋 어드시며 어위여 衆 어드시리라 듣고(行是行故로 樂而得朋시며 寬而得衆시리라)〈법화 5:47ㄴ〉. 답사하 그륜 눈서비 어위도다(狼藉畫眉闊)〈두시 1:6ㄴ〉. 어위크- : 恢恢 어위크며 먼 이오〈원각 서40ㄱ〉.  望仙臺예 어위크도다(地濶望仙臺)〈두시 5:1ㄴ〉. 어위키 : 어위키 后土ㅣ 저젓도다(泱莽後土濕)〈두시 22:51ㄱ〉. 어위키 - : 어디러 人士 待接호 어위키 놋다(惟良待士寬)〈두시 23:29ㄴ〉.
주164)
두위텨 : 뒤집어. 두위-+티+어. ‘두위티-’는 15세기 『능엄경언해』와 『법화경언해』에는 ‘두위-’로 나오는데, 이 어형이 좀 더 고형이다. 『두시언해』에는 ‘두위티-, 두위잊-, 두위힐후-’로 주로 나오는데, ‘두위혀-’는 『두시언해』 권23의 ‘두위혀’는 『두시언해』에서 오직 한번만 나오는 예로 이전 시기의 ‘두위-’의 표기로 보인다. ‘두위’로 시작하는 단어에 대해서는 해제를 참조. ¶기리 嗟吁야셔 北寇 두위텨 리고져 고(長吁飜北寇)〈두시 3:3ㄴ-4ㄱ〉.
주165)
고종(高宗) : 상나라의 제23대 임금. 기원전 1250년-기원전 1192년. 태자 시절부터 현인 감반(甘盤)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사기』에는 소을의 아들로써 뒤를 이어 즉위하여 쇠약한 나라를 일으키고자 했지만, 자신을 보좌해 줄 적임자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그는 3년 동안 부왕의 빈소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태로 정치에 관해서는 모두 총재에게 맡긴 채로 지냈다. 그러다 꿈에 열(說)이라는 성인(聖人)을 만났는데, 꿈에서 깬 뒤 고종(高宗)은 찾아서 등용하려 했지만, 신하와 백관들 사이에 아무도 그러한 인물은 없었고, 사람을 시켜 각지에서 열과 같은 인물을 찾게 한 끝에 부암(傅巖)에서 죄를 짓고 길을 닦는 노역에 종사 중이던 열(說)을 찾아낼 수 있었다. 고종(高宗)은 그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가 자신이 찾던 성인임을 확신하고, 그에게 부(傅)라는 성을 주고 부열(傅說)이라 불렀다. 이후 부열의 보좌로 상나라는 다시 부흥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166)
노군(魯君) : 노나라의 군주.
주167)
어디로 : 어짐은. 어딜-+오+ㅁ+. ¶사오나 사미 어딜에 욀 씨라〈석상 3:2ㄱ〉. 슬픈 들 머거셔 네 어디로 아노라(含悽覺汝賢)〈두시 2:6ㄱ〉.
주168)
이더니 : 꾸이었으니. -+이+더+니. ‘이’는 피동접미사이다. ‘꿈이 꾸여지다’의 뜻으로는 『두시언해』의 이 예가 유일례이다.
주169)
포미 : 팜이. -+오+ㅁ+이.
주170)
호라 : 같았다. -+오+라.
주171)
녜로브터 : 옛날로부터. 녜+로#븥+어. ‘브터’는 기원적으로 ‘븥다’와 ‘어’가 결합하여 이루어진 조사이다.
주172)
뷘 미 : 빈 마음이. 뷔-+은. ¶뷔- : 五蘊 뷔유믈 得샨 젼라(得蘊空故로)〈석상 20:12ㄴ〉. 玉殿은 햇 뎘 가온 뷔옛도다(玉殿虛無野寺中)〈두시 6:32ㄱ〉. 뷔우다 : 그저긔 比丘히  爲頭 座 뷔워 아니 거늘(及凡夫比丘 上座之座無人坐 時王問諸比丘)〈석상 24:43ㄱ〉. 서리옛 매 주머귀 뷔우디 아니니라(霜鶻不空拳)〈두시 20:19ㄱ〉.
주173)
 : 재. ¶브리  외 야(如火ㅣ 成灰야)〈능엄 2:4ㄴ〉.   一寸이  도다(丹心一寸灰)〈두시 15:48ㄴ〉.
주174)
니라 : 같으니라. -+니+라. ‘다’는 15세기 당시에 ‘다’로도 표기되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였다. 『두시언해』에서 두 가지 표기가 다 나오는데 역시 전자가 후자보다 우세하다. ‘다’와 ‘다’는 현대국어와 같이 ‘-와/과’를 지배하는 경우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를 지배한다. ¶다 : 太子ㅣ 金으로 겨지븨  시고 겨지븨 德을 쓰샤 이 야 妃子 사모리라(使上工立妙金像 女人德義如吾所疏 能應娉耳)〈석상 3:11ㄱ〉. 나라 社稷이 이제 이 니(國之社稷今若是)〈두시 1:10ㄴ〉. 다 : ㄱ 엄쏘리니 君ㄷ 字 처 펴아 나 소리 니(ㄱ 牙音이니 如君ㄷ字初發聲니)〈훈언 :4ㄱ〉.  顔延年과 鮑明遠 니 잇디 아니니(不復見顏鮑)〈두시 2:47ㄴ〉.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