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군이 하남과 하북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듣고[聞官軍收河南河北]
即從巴峽穿巫峽 便下襄陽向洛陽【此 遂言還鄕道路所經니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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巴峽 주017) 파협(巴峽) 사천성(泗川省)의 가릉강(嘉陵江) 유역. 두보는 민강(岷江)을 따라 장강(長江)으로 내려 왔으나 유주(渝州, 重慶)를 가기 위해서 가릉강을 타고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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巫峽 주018) 무협(巫峽) 중칭시와 호북성의 경계에 위치한 장강[揚子江]의 협곡. 구당협(瞿塘峡), 서릉협(西陵峡)과 함께 장강 삼협(長江三峡)으로 유명하다. 무협의 서쪽은 충칭시 무산(巫山)현 대저하구(大宁河口)이며, 동쪽은 호북성 파동(巴東)현 관도구(官渡口)이다. 전체 길이 45Km이며, 빼어난 경치와 무협 12봉이 유명하다. 두보가 고향인 낙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 무협을 빠져나가야 한다.
들워 주019) 들워 뚫어. 들추어. 들우-+어. 『두시언해』에서 ‘들우-’는 ‘뚫다’와 ‘들추다’의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쓰였다. ¶다가 이 量애 너믄 사미면 石火電光 번 자보매 곧 자며 銀山鐵壁을 번 들우메 곧 들우리니(若是過量漢이면 石火電光 一捉애 便捉며 銀山鐵壁을 一透에 便透리니)〈금삼 종서:5ㄴ〉. 조 노녀셔 신 들우믈 므던히 너기노라(頻遊任履穿)〈두시 10:13ㄴ〉. 듧-; 해 구무 듧고 지여 온 모 무두매 當얀 어루 모미 외녀(方其穴地負土야 全體而坑之얀 爲可忍耶아)〈법화 6:154ㄴ〉. 시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覆穿四明雪)〈두시 24:39ㄱ〉. 다; 누니 게 라오믈 디 當호니(眼穿當落日)〈두시 5:5ㄱ〉.
믄득 주020) 믄득 문득. 갑자기.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諸臣答言 近受王勅嚴命外司 勿使有諸臭穢老病 在於前側互相檢覆 無敢懈怠 不知何緣忽有病人 非是我等之罪咎也)〈석상 3:18ㄱ〉. 榮華로왼 일후미 믄득 사게 다치면(榮名忽中人)〈두시 2:60ㄱ〉.
襄陽 주021) 양양(襄陽) 장강(長江)의 지류인 한강(漢江)에 위치한 호북(湖北)성 제2의 도시. 손견과 유표의 전투, 몽골과 남송의 전투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며 이에 걸맞게 아주 오래된 보존상태가 양호한 성벽과 해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남성과 맞닿아 있으므로 두보가 장강에서 고향인 하남의 낙양(洛陽)으로 가기 위한 길목에 위치해 있다.
로 려
洛陽 주022) 낙양(洛陽) 동주, 후한, 육조 시대, 삼국시대의 위의 옛 수도이다. 낙양(洛陽)이라는 이름은 도시가 낙수(洛水)의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에는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의 동도(東都)라 불렸다. 두보의 고향은 낙양 근처의 공현(鞏縣)이므로 낙양으로 고향을 대신한 것이며, 실제 낙양에도 두보가 거주하기도 하였고 많은 친척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向호리라 주023)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즉종파협천무협 편하양양향락양【이것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지나치는 길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곧 파협(巴峽)을 따라서 무협(巫峽)을 뚫고, 문득 양양(襄陽)으로 내려가 낙양(洛陽)을 향(向)하리라!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6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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