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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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군이 하남과 하북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듣고[聞官軍收河南河北]


聞官軍收河南河北 주001)
문관군수하남하북(聞官軍收河南河北)
이 시는 763년(광덕 원년) 봄에 지은 것이다. 이때 두보는 재주(梓州, 사천 三台)에 있었다. 이 해 정월에 관군이 안녹산과 사사명의 반군을 쳐부수고 하남과 하북을 수복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두보는 기쁨에 차 이 시를 짓게 되었다.
【廣德元年에 史朝義ㅣ 死커 其將李懷仙 以魏오 薛嵩 以相衛洛邢이오 張志忠 以趙定深恒易로 來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24ㄱ

降니라】

문관군수하남하북
(관군이 하남과 하북을 수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광덕(廣德) 원년에 사조의(史朝義)가 죽었는데, 그의 장군 이회선(李懷仙)은 위(魏)로, 설숭(薛嵩)은 상위낙형(相衛洛邢)으로, 장지충(張志忠)은 조정심항역(趙定深恒易)으로 와서 항복하였다.】

劍外忽傳收薊北 初聞涕淚滿衣裳【喜心之極애 不覺洒涕也ㅣ라】

劒閣 주002)
검각(劒閣)
재주(梓州)성의 누각.
밧긔 믄득 주003)
믄득
문득. 갑자기.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諸臣答言 近受王勅嚴命外司 勿使有諸臭穢老病 在於前側互相檢覆 無敢懈怠 不知何緣忽有病人 非是我等之罪咎也)〈석상 3:18ㄱ〉. 榮華로왼 일후미 믄득 사게 다치면(榮名忽中人)〈두시 2:60ㄱ〉.
薊北 주004)
계북(薊北)
계주(薊州). 안녹산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지역. 안녹산은 천보 14년(755) 11월에 범양(范陽, 현재 북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하북(河北)의 여러 주를 함락하고 12월에는 낙양을 함락시켰다.
아 주005)
아
빼앗음을. 앗-+오+ㅁ+. 15세기 국어의 ‘앗다’는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갖다’ 정도의 의미이나 현대국어의 ‘앗다’는 ‘빼앗다’의 의미만 남아 있다. ¶그저긔 그 수프레 婆羅門히 祭기 위야 져즐 앗더니(是時彼林諸婆羅門 為祭祀故 [(殼-一)/牛]諸牸牛 取於乳汁)〈석상 3:33ㄱ〉. 西ㅅ 녀그로 邛南앳 兵馬 앗고(西取邛南兵)〈두시 6:38ㄱ〉.
傳니 처 듣고 므를 衣裳애 기 주006)
기
가득이. ᄃᆞᆨᆨ+이. ‘ᄃᆞᆨᆨ다’ 참조. ¶쳔랴 有餘고 倉庫ㅣ 기 넘고(多饒財寶 倉庫盈溢)〈석상 9:20ㄱ〉. 소니 堂上애 기 잇니(賓客滿堂上)〈두시 5:37ㄴ〉.
흘료라 주007)
흘료라
흘린다. 흘리-+오+라.

【한자음】 검외홀전수계북 초문체루만의상【극도로 기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것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언해역】 검각(劒閣) 밖에 문득 계북(薊北) 빼앗음을 전(傳)하니, 처음 듣고 눈물을 의상(衣裳)에 가득이 흘리네!

却看妻子愁何在 漫卷詩書喜欲狂【言薊北 주008)
계북(薊北)
오늘날 톈진시 일대. 안녹산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곳이다. 더 자세한 것은 앞의 주 참조.
已收則可歸而得見妻子 주009)
이수즉가귀이득견처자(已收則可歸而得見妻子)
이미 수복하면 가히 돌아가서 처자(妻子)를 볼 수 있으므로.
 是以로 漫爾收其所讀詩書야 喜而至於狂也ㅣ라】

도혀 주010)
도혀
도로. 돌이켜. ‘각(却)’의 번역어로 쓰였다. 도로. ¶오직 모며 갓로로 거츠리 我人 혜여 業 구데 디여 도혀 표 아디 몯(但以迷倒로 妄計我人야 淪沒業坑야)〈금삼 1:1ㄱ〉. 날로 여 기리 머리 도혀 라디 말라(無使長回首)〈두시 1:41ㄱ〉.
妻子 보리어니 주011)
보리어니
볼 것이니. 보-+리+어+니.
시르미 어 이시리오 주012)
이시리오
있을 것인가. 이시-+리+오. 15세기 국어의 존재 동사는 일반적으로 ‘잇-’이나 여기에서와 같이 ‘이시-’를 쓰는 경우도 있다. ¶天下ㅅ 內예 뉘 智慧 이시며 죄 자 太子ㅅ 스스 외려뇨(化內 誰最有智 誰具技能 堪為太子作於師匠)〈석상 3:7ㄱ〉. 조 能히 고기 낫  同리 이시나(數能同釣船)〈두시 6:36ㄴ〉.
쇽졀업시 주013)
쇽졀업시
속절없이. 쇽졀+없-+이. ¶末法은 쇽졀업시 似量이라 實 업스니라〈월석 9:7ㄴ〉. 時節을 쇽졀업시  디내노라(時節空復度)〈두시 2:56ㄴ〉.
詩書 卷帙야셔 깃거 미칠 호라 주014)
미칠 호라
미칠 듯하였다. 미치-+ㄹ +-+오+라. ‘광(狂)’에 대한 번역이다. 일반적으로 『두시언해』에서는 ‘광(狂)’에 대해서 ‘어럽-’과 ‘미치-’의 번역이 있다. ¶어럽-; 胡馬何猖狂(되 리 모 어러워 나니라)〈두시 1:51ㄴ-52ㄱ〉. 어러이 라 매 어드러 가리오(狂走終奚適)〈두시 3:15ㄱ〉. 미치-; 去年江南討狂賊(니건 예 江南애 미친 盜賊 틸 저긔)〈두시 4:32ㄴ〉. 自笑狂夫老更狂(미친 노미 늘거도  미츄믈 내 웃노라)〈두시 7:3ㄱ〉.

【한자음】 각간처자수하재 만권시서희욕광【계북(薊北)을 이미 수복하면 가히 돌아가서 처자(妻子)를 볼 수 있으므로 이로써 시서(詩書)를 읽던 곳을 수복하여 미칠 듯이 기쁘다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도로 처자(妻子)를 볼 것이니 시름이 어찌 있겠는가? 속절없이 시서(詩書)를 쌓아 두고서 기뻐 미칠 듯하네!

白首放歌須縱酒 靑春作伴好還鄉

셴 머리예 놀애 블러 모로매 수를  머구리니 주015)
수를  머구리니
술을 많이 먹을 것이니. ‘종주(縱酒)’에 대한 번역인데 ‘종(縱)’은 원래 ‘마음대로 실컷 ~하다’의 뜻이다. 15세기 국어의 ‘가’은 절대적인 의미보다는 상대적인 의미로 많이 쓰여 주로 ‘태(太)’의 번역으로 쓰였으며, ‘최(最)’에 대한 번역으로는 ‘안직’이 쓰였다. ¶  쇼 지 내니 모미  크고 다리 굵고 리 캅더니(復作一牛 身體高大 肥壯多力麁脚利角)〈석상 6:32ㄴ〉. 이 내 애와토  논 고디라(臣甫憤所切)〈두시 1:2ㄱ〉.
靑春 벋 사마 됴히 주016)
됴히
좋게. 둏-+이. ‘이’는 부사화 파생접미사이다.
本鄕애 도라가리

분류두공부시언해 권3:24ㄴ


【한자음】 백수방가수종주 청춘작반호환향
【언해역】 센머리에 노래 불러 모름지기 술을 많이 먹을 것이니, 청춘(靑春)을 벗 삼아 좋게 본향(本鄕)에 돌아가리라!

即從巴峽穿巫峽 便下襄陽向洛陽【此 遂言還鄕道路所經니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巴峽 주017)
파협(巴峽)
사천성(泗川省)의 가릉강(嘉陵江) 유역. 두보는 민강(岷江)을 따라 장강(長江)으로 내려 왔으나 유주(渝州, 重慶)를 가기 위해서 가릉강을 타고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 조차셔 巫峽 주018)
무협(巫峽)
중칭시와 호북성의 경계에 위치한 장강[揚子江]의 협곡. 구당협(瞿塘峡), 서릉협(西陵峡)과 함께 장강 삼협(長江三峡)으로 유명하다. 무협의 서쪽은 충칭시 무산(巫山)현 대저하구(大宁河口)이며, 동쪽은 호북성 파동(巴東)현 관도구(官渡口)이다. 전체 길이 45Km이며, 빼어난 경치와 무협 12봉이 유명하다. 두보가 고향인 낙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 무협을 빠져나가야 한다.
들워 주019)
들워
뚫어. 들추어. 들우-+어. 『두시언해』에서 ‘들우-’는 ‘뚫다’와 ‘들추다’의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쓰였다. ¶다가 이 量애 너믄 사미면 石火電光  번 자보매 곧 자며 銀山鐵壁을  번 들우메 곧 들우리니(若是過量漢이면 石火電光 一捉애 便捉며 銀山鐵壁을 一透에 便透리니)〈금삼 종서:5ㄴ〉. 조 노녀셔 신 들우믈 므던히 너기노라(頻遊任履穿)〈두시 10:13ㄴ〉. 듧-; 해 구무 듧고  지여 온 모 무두매 當얀 어루 모미 외녀(方其穴地負土야 全體而坑之얀 爲可忍耶아)〈법화 6:154ㄴ〉. 시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覆穿四明雪)〈두시 24:39ㄱ〉. 다; 누니 게 라오믈 디  當호니(眼穿當落日)〈두시 5:5ㄱ〉.
믄득 주020)
믄득
문득. 갑자기.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諸臣答言 近受王勅嚴命外司 勿使有諸臭穢老病 在於前側互相檢覆 無敢懈怠 不知何緣忽有病人 非是我等之罪咎也)〈석상 3:18ㄱ〉. 榮華로왼 일후미 믄득 사게 다치면(榮名忽中人)〈두시 2:60ㄱ〉.
襄陽 주021)
양양(襄陽)
장강(長江)의 지류인 한강(漢江)에 위치한 호북(湖北)성 제2의 도시. 손견과 유표의 전투, 몽골과 남송의 전투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며 이에 걸맞게 아주 오래된 보존상태가 양호한 성벽과 해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남성과 맞닿아 있으므로 두보가 장강에서 고향인 하남의 낙양(洛陽)으로 가기 위한 길목에 위치해 있다.
로 려 洛陽 주022)
낙양(洛陽)
동주, 후한, 육조 시대, 삼국시대의 위의 옛 수도이다. 낙양(洛陽)이라는 이름은 도시가 낙수(洛水)의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에는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의 동도(東都)라 불렸다. 두보의 고향은 낙양 근처의 공현(鞏縣)이므로 낙양으로 고향을 대신한 것이며, 실제 낙양에도 두보가 거주하기도 하였고 많은 친척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向호리라 주023)
향(向)호리라
향하리라. 향-+오+리+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즉종파협천무협 편하양양향락양【이것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데 지나치는 길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곧 파협(巴峽)을 따라서 무협(巫峽)을 뚫고, 문득 양양(襄陽)으로 내려가 낙양(洛陽)을 향(向)하리라!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6년 12월 30일

원본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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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문관군수하남하북(聞官軍收河南河北) : 이 시는 763년(광덕 원년) 봄에 지은 것이다. 이때 두보는 재주(梓州, 사천 三台)에 있었다. 이 해 정월에 관군이 안녹산과 사사명의 반군을 쳐부수고 하남과 하북을 수복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두보는 기쁨에 차 이 시를 짓게 되었다.
주002)
검각(劒閣) : 재주(梓州)성의 누각.
주003)
믄득 : 문득. 갑자기.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諸臣答言 近受王勅嚴命外司 勿使有諸臭穢老病 在於前側互相檢覆 無敢懈怠 不知何緣忽有病人 非是我等之罪咎也)〈석상 3:18ㄱ〉. 榮華로왼 일후미 믄득 사게 다치면(榮名忽中人)〈두시 2:60ㄱ〉.
주004)
계북(薊北) : 계주(薊州). 안녹산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지역. 안녹산은 천보 14년(755) 11월에 범양(范陽, 현재 북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하북(河北)의 여러 주를 함락하고 12월에는 낙양을 함락시켰다.
주005)
아 : 빼앗음을. 앗-+오+ㅁ+. 15세기 국어의 ‘앗다’는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갖다’ 정도의 의미이나 현대국어의 ‘앗다’는 ‘빼앗다’의 의미만 남아 있다. ¶그저긔 그 수프레 婆羅門히 祭기 위야 져즐 앗더니(是時彼林諸婆羅門 為祭祀故 [(殼-一)/牛]諸牸牛 取於乳汁)〈석상 3:33ㄱ〉. 西ㅅ 녀그로 邛南앳 兵馬 앗고(西取邛南兵)〈두시 6:38ㄱ〉.
주006)
기 : 가득이. ᄃᆞᆨᆨ+이. ‘ᄃᆞᆨᆨ다’ 참조. ¶쳔랴 有餘고 倉庫ㅣ 기 넘고(多饒財寶 倉庫盈溢)〈석상 9:20ㄱ〉. 소니 堂上애 기 잇니(賓客滿堂上)〈두시 5:37ㄴ〉.
주007)
흘료라 : 흘린다. 흘리-+오+라.
주008)
계북(薊北) : 오늘날 톈진시 일대. 안녹산이 처음 군사를 일으킨 곳이다. 더 자세한 것은 앞의 주 참조.
주009)
이수즉가귀이득견처자(已收則可歸而得見妻子) : 이미 수복하면 가히 돌아가서 처자(妻子)를 볼 수 있으므로.
주010)
도혀 : 도로. 돌이켜. ‘각(却)’의 번역어로 쓰였다. 도로. ¶오직 모며 갓로로 거츠리 我人 혜여 業 구데 디여 도혀 표 아디 몯(但以迷倒로 妄計我人야 淪沒業坑야)〈금삼 1:1ㄱ〉. 날로 여 기리 머리 도혀 라디 말라(無使長回首)〈두시 1:41ㄱ〉.
주011)
보리어니 : 볼 것이니. 보-+리+어+니.
주012)
이시리오 : 있을 것인가. 이시-+리+오. 15세기 국어의 존재 동사는 일반적으로 ‘잇-’이나 여기에서와 같이 ‘이시-’를 쓰는 경우도 있다. ¶天下ㅅ 內예 뉘 智慧 이시며 죄 자 太子ㅅ 스스 외려뇨(化內 誰最有智 誰具技能 堪為太子作於師匠)〈석상 3:7ㄱ〉. 조 能히 고기 낫  同리 이시나(數能同釣船)〈두시 6:36ㄴ〉.
주013)
쇽졀업시 : 속절없이. 쇽졀+없-+이. ¶末法은 쇽졀업시 似量이라 實 업스니라〈월석 9:7ㄴ〉. 時節을 쇽졀업시  디내노라(時節空復度)〈두시 2:56ㄴ〉.
주014)
미칠 호라 : 미칠 듯하였다. 미치-+ㄹ +-+오+라. ‘광(狂)’에 대한 번역이다. 일반적으로 『두시언해』에서는 ‘광(狂)’에 대해서 ‘어럽-’과 ‘미치-’의 번역이 있다. ¶어럽-; 胡馬何猖狂(되 리 모 어러워 나니라)〈두시 1:51ㄴ-52ㄱ〉. 어러이 라 매 어드러 가리오(狂走終奚適)〈두시 3:15ㄱ〉. 미치-; 去年江南討狂賊(니건 예 江南애 미친 盜賊 틸 저긔)〈두시 4:32ㄴ〉. 自笑狂夫老更狂(미친 노미 늘거도  미츄믈 내 웃노라)〈두시 7:3ㄱ〉.
주015)
수를  머구리니 : 술을 많이 먹을 것이니. ‘종주(縱酒)’에 대한 번역인데 ‘종(縱)’은 원래 ‘마음대로 실컷 ~하다’의 뜻이다. 15세기 국어의 ‘가’은 절대적인 의미보다는 상대적인 의미로 많이 쓰여 주로 ‘태(太)’의 번역으로 쓰였으며, ‘최(最)’에 대한 번역으로는 ‘안직’이 쓰였다. ¶  쇼 지 내니 모미  크고 다리 굵고 리 캅더니(復作一牛 身體高大 肥壯多力麁脚利角)〈석상 6:32ㄴ〉. 이 내 애와토  논 고디라(臣甫憤所切)〈두시 1:2ㄱ〉.
주016)
됴히 : 좋게. 둏-+이. ‘이’는 부사화 파생접미사이다.
주017)
파협(巴峽) : 사천성(泗川省)의 가릉강(嘉陵江) 유역. 두보는 민강(岷江)을 따라 장강(長江)으로 내려 왔으나 유주(渝州, 重慶)를 가기 위해서 가릉강을 타고 내려간 것으로 보인다.
주018)
무협(巫峽) : 중칭시와 호북성의 경계에 위치한 장강[揚子江]의 협곡. 구당협(瞿塘峡), 서릉협(西陵峡)과 함께 장강 삼협(長江三峡)으로 유명하다. 무협의 서쪽은 충칭시 무산(巫山)현 대저하구(大宁河口)이며, 동쪽은 호북성 파동(巴東)현 관도구(官渡口)이다. 전체 길이 45Km이며, 빼어난 경치와 무협 12봉이 유명하다. 두보가 고향인 낙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 무협을 빠져나가야 한다.
주019)
들워 : 뚫어. 들추어. 들우-+어. 『두시언해』에서 ‘들우-’는 ‘뚫다’와 ‘들추다’의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로 쓰였다. ¶다가 이 量애 너믄 사미면 石火電光  번 자보매 곧 자며 銀山鐵壁을  번 들우메 곧 들우리니(若是過量漢이면 石火電光 一捉애 便捉며 銀山鐵壁을 一透에 便透리니)〈금삼 종서:5ㄴ〉. 조 노녀셔 신 들우믈 므던히 너기노라(頻遊任履穿)〈두시 10:13ㄴ〉. 듧-; 해 구무 듧고  지여 온 모 무두매 當얀 어루 모미 외녀(方其穴地負土야 全體而坑之얀 爲可忍耶아)〈법화 6:154ㄴ〉. 시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覆穿四明雪)〈두시 24:39ㄱ〉. 다; 누니 게 라오믈 디  當호니(眼穿當落日)〈두시 5:5ㄱ〉.
주020)
믄득 : 문득. 갑자기. ¶아모셔 온 디 몰로리 믄득 알 내니 우리 罪 아니다(諸臣答言 近受王勅嚴命外司 勿使有諸臭穢老病 在於前側互相檢覆 無敢懈怠 不知何緣忽有病人 非是我等之罪咎也)〈석상 3:18ㄱ〉. 榮華로왼 일후미 믄득 사게 다치면(榮名忽中人)〈두시 2:60ㄱ〉.
주021)
양양(襄陽) : 장강(長江)의 지류인 한강(漢江)에 위치한 호북(湖北)성 제2의 도시. 손견과 유표의 전투, 몽골과 남송의 전투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며 이에 걸맞게 아주 오래된 보존상태가 양호한 성벽과 해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남성과 맞닿아 있으므로 두보가 장강에서 고향인 하남의 낙양(洛陽)으로 가기 위한 길목에 위치해 있다.
주022)
낙양(洛陽) : 동주, 후한, 육조 시대, 삼국시대의 위의 옛 수도이다. 낙양(洛陽)이라는 이름은 도시가 낙수(洛水)의 북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당나라 때에는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의 동도(東都)라 불렸다. 두보의 고향은 낙양 근처의 공현(鞏縣)이므로 낙양으로 고향을 대신한 것이며, 실제 낙양에도 두보가 거주하기도 하였고 많은 친척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주023)
향(向)호리라 : 향하리라. 향-+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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