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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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재소에 이른 것을 기뻐하면서 3수[喜達行在所三首]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5ㄱ

喜達行在所三首 주001)
희달행재소삼수(喜達行在所三首)
이 작품은 지덕(至德) 2년(757) 4월 지어졌다. 그때 두보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장안(長安)을 빠져나와, 숙종(肅宗)의 행재소(行在所)가 있는 봉상(鳳翔, 지금의 합서 봉상)에 이르렀다. 시에서는 도피할 때의 사정과 행재소에 닿았을 때의 기쁜 마음을 표현하였다.
ㅣ 自賊中으로 至鳳翔而作也ㅣ라】

희달행재소 삼수
(행재소에 이른 것을 기뻐하면서 3수)
두보가 적진(敵陣)에 있다가 빠져나와, 봉상(鳳翔)에 이르러 지은 것이다.】

〈첫째 수〉

西 주002)
서(西)
서녘. 서쪽. 당시 숙종이 있던 기양(岐陽), 즉 봉상(鳳翔)은 두보가 있던 장안(長安)의 서쪽이다.
岐陽 주003)
기양(岐陽)
기산(岐山)의 남쪽. 봉상(鳳翔)을 가리키는데, 장안(長安) 서부에 있다. 기산은 현재 섬서성(陝西省) 내에 위치한 산으로 주(周)왕조의 발상지이다. 주태왕(周太王)이 빈(邠)에 살 때 훈육(獯鬻)이 괴롭히므로, 태왕은 빈 땅을 버리고 이곳에 도읍지를 정했다고 한다. 이 해(757년) 2월 숙종 정부는 팽원(彭原)에서 봉상으로 옮겼다.
信 無人遂却廻
주004)
서억기양신 무인수각회(西憶岐陽信 無人遂却廻)
“서쪽으로 기양에 소식을 전할까 생각하니, 끝내 아무도 다녀올 이가 없더라!”는 말이다.
【岐陽이 在鳳翔 주005)
봉상(鳳翔)
중국 섬서성(陝西省) 봉상현(鳳翔縣). 진(秦)나라 때 옹현(雍縣)이라고 불렀고, 당(唐)나라 때 봉상현(鳳翔縣)으로 개칭했다가, 762년 천흥현(天興縣)과 합쳤다.
니 時예 肅宗이 駐蹕於此시니라 주006)
시(時)예 숙종(肅宗)이 주필어차(駐驆於此)시니라
그때 숙종이 이곳에 머물러 계시니라. ‘驆’은 〈중간본〉에 ‘蹕’로 되어 있다.
此 言ㅣ 在賊中야 思行在之信而無人이 從帝所來也ㅣ라 주007)
차(此) 언보(言甫)ㅣ 재적중(在賊中)야 사행재지신이무인(思行在之信而無人)이 종제소래야(從帝所來也)ㅣ라
이것은 두보가 안경서가 점령하고 있는 장안에 억류되어 있어, 숙종이 계신 봉상 행재소의 서신을 생각하고 있지만, 황제로부터 서신을 가져올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西ㅅ 녀그로 주008)
西ㅅ 녀그로
서쪽으로. 西+ㅅ 녁+으로. 숙종이 계신 봉상 행재소가 두보가 있던 장안의 서쪽이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岐陽앳 音信 주009)
음신(音信)
먼 곳에서 전하는 소식이나 편지.
주010)
기양(岐陽)앳 음신(音信)
기양(岐陽)의 편지를. 기양은 숙종이 계시는 봉상(鳳翔)의 한 지명이므로 봉상 행재소의 편지를 말한다.
호니 주011)
호니
생각하니. 여기서는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중간본〉에는 ‘니’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중간본〉의 표기가 아니다. 〈중간본〉의 일반적인 표기라면, ‘랑니’이어야 한다.
사미 그러셔 주012)
그러셔
그리하여. 그러#-+어#시-+어. 원시의 ‘遂’를 번역한 말이나 정확한 분석이 어려운 말이다. 『두시언해』에서 ‘遂’는 동사와 부사로 쓰이는데, 동사로 쓰일 때는 주로 ‘일우다’로 번역되고, 부사로 쓰일 때는 주로 ‘지즈로’로 번역된다. 그런데 여기의 ‘遂’와 권5의 또 다른 부분 즉 ‘遂使貔虎士 奮身勇所聞〈두시 5:31ㄴ〉’에서는 각각 ‘그러셔’와 ‘그럴’로 번역되었다. 또한 『두시언해』에서 ‘遂’는 번역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에 ‘-’에 반영된 예들도 있다. ‘遂’에 대해서는 해제를 참고할 것. ¶遂(동사) : 性 일우므란 고기 잡 사티 고 일훔 일우므란 魯連과 다로리라(遂性同漁父 成名異魯連)〈두시 2:14ㄱ〉 / 生理 일웟논 이 내 깃거 곳 픤 時節에 핫옷 니부믈 히 너기노라(自喜遂生理 花時甘縕袍)〈두시 2:62ㄱ〉 / 世ㅣ 乱 저긔 飄蕩호 맛나니 사라 도라오 偶然히 이루롸(世亂遭飄蕩 生還偶然遂)〈두시 2:66ㄱ〉 / 鹿門에 더브러 가 일우디 몯호니 그려긔 바래 욘 거슬 難히 期約리로다(鹿門攜不遂 鴈足系難期)〈두시 8:47ㄴ〉 / 干戈ㅣ 긋디 아니니 出仕며 隱處호매 므슷  일우리오(干戈未偃息 出處遂何心)〈두시 10:43ㄱ〉 / 東柯애 가 늙고 게을오 일워셔 구믿 터리의 어르누구믈 디 아니호리라(東柯遂衰懶 休鑷鬢毛斑)〈두시 13:41ㄱ〉 / 이 노로 일우디 몯가 저후니 수를 자바셔 디 茫然얘라(斯遊恐不遂 把酒意茫然)〈두시 15:13ㄴ〉 / 엇뎨라 옷과 밥과애 窮困야  비치 매 맛게 인 이리 져그니오(胡爲困衣食 顏色少稱遂)〈두시 16:19ㄱ〉 / 男兒 功名 일우미  늘근 도 잇니라(男兒功名遂 亦在老大時)〈두시 22:30ㄱ〉 /  便安케 면 敵人이 어느 이시리오 正에 도라갈 혜유미 비릇 이놋다(安邊敵何有 反正計始遂)〈두시 22:36ㄱ-ㄴ〉 / 遂(부사) : 雲臺예 자 지즈로 阻隔나 녜 湛露詩 노라(遂阻雲臺宿 常懷湛露詩)〈두시 3:1ㄴ〉 /  알 모딘 버디 누엣거 지즈로 文公 지블 어두라(庭前猛虎臥 遂得文公廬)〈두시 9:18ㄱ〉 / 지즈로 馮夷ㅣ 와 붑 튜미 잇니 비르수 嬴女ㅣ 피리 잘 부로 알와라(遂有馮夷來繫鼓 始知嬴女善吹簫)〈두시 9:40ㄱ〉 / 防戍 부픈 오히려 기리 티니 수프렛 곳고리 지즈로 놀애 브르디 아니 놋다(戍鼓猶長擊 林鶯遂不歌)〈두시 10:3ㄴ-4ㄱ〉 / 白鵠이 지즈로 오디 아니코 大雞 爲야 시름놋다(白鵠遂不來 天雞爲愁思)〈두시 18:19ㄱ〉 / 두루 마곰 젹젹요 期約간마 키 簡略야 지즈로 뵈왓비 니노라(周防期稍稍 太簡遂匆匆)〈두시 19:10ㄱ〉 / 되 벼리  번 비치 솨시니 거믄 머릿 百姓이 지즈로 얽이니라(胡星一彗孛 黔首遂拘攣)〈두시 20:5ㄱ〉 / 지즈로 山陽애셔 글 지미 잇니 해 鮑叔이 아던 이 붓그리노라(遂有山陽作 多慚鮑叔知)〈두시 24:61ㄴ〉 / 그럴 貔虎  士로 여 모 니르와다 듣논 바애 勇猛히 호려 다(遂使貔虎士 奮身勇所聞)〈두시 5:31ㄴ〉.
도라오리 업더라 주013)
업더라
없더라. 없[無]-+더+라.

【한자음】 서억기양신 무인수각회【기양(岐陽)이 봉상(鳳翔)에 있으니, 그때 숙종이 이곳에 머물러 계시니라. 이것은 두보가 도적떼 안에 있어 행재소에 갈 서신을 황제에게 가져다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장안〉 서쪽으로 기양에 음신(音信)을 〈보내고자〉 생각하니, 사람이 그리하여 돌아올 이가 없더라!

眼穿當落日 心死 주014)
착(著)
놓다. 뒤집어쓰다. 『두시언해』에서 ‘著’은 ‘나타나다, 짓다, 입다, 붙다’의 의미로 쓰이는데, 전자는 ‘나타나다’로 후자는 ‘븥다, 두다’로 번역된다. ‘著’가 ‘놓다’로 번역된 것이 이 곳이 유일하다. ¶나타나다 : 일후믄 어느 文章기로 나타나리오 벼슬기 다 늘근 病으로 말리로다(名豈文章著 官應老病休)〈두시 3:34ㄴ-35ㄱ〉 / 짓다 : 제 지 詩集을 보니 모  이우로 슬허도다(觀其著詩集 頗亦恨枯槁)〈두시 3:58ㄴ〉 / 입다 : 혼 녜 范增이 玉마를 려 리니 吳國ㅅ 兵馬로 여  오 닙디 몯게 홀 디니라(憶昔范增碎玉斗 未使吳兵著白袍)〈두시 5:37ㄱ〉 / 븥다 : 늘근 리 바 길흘 알오 프른 매 주으려 사게 븓니라(老馬夜知道 蒼鷹飢著人)〈두시 5:53ㄱ〉 / 두다 : 새려 므렛 軒檻 더 라 낛 드리우메 供進고 부러  들구를 두어 라 예 드노라(新添水檻供垂釣 故著浮槎替入舟)〈두시 3:31ㄴ〉.
寒灰
주015)
안천당낙일 심사착한회(眼穿當落日 心死著寒灰)
“눈이 뚫어지게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죽어 찬 재를 뒤집어쓴 듯하도다!”란 말이다.
【言西向而望니 眼如穿이오 心折야 無生意니 如著寒灰ㅣ니라】

누니 게 주016)
게
뚫리게. 뚫리도록. 뚫어지게. [穿]-+게. ‘다’는 자타동 양용동사로 쓰이는 ‘다’는 유일례로서 그 용례가 『두시언해』의 여기서만 보이며, 다른 문헌에서는 ‘듧다’가 쓰였다. ‘듧다’는 ‘경망스럽다’는 뜻이다. 참조 : 들우다. 들우디다. 듧다. ¶듧다 : 해 구무 듧고  지여 온 모 무두매 當얀 어루 모미 외녀(方其穴地負土야 全體而坑之얀 爲可忍耶아)〈법화 6:154ㄴ〉 / 祖師ㅅ 眞機 聖解 通호미 어려우며 凡情이 듧디 몯논 젼로 일후믈 關이라 니라〈금삼 서2:2ㄱ〉 / 眞機ㅣ 銀山鐵壁이 야 구더 듧디 어려우며 놉고 머러 더위잡디 몯고〈금삼 서2:5ㄱ〉 / 시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 楢溪옛 도토바 주니라(履穿四明雪 飢拾楢溪橡)〈두시 24:38ㄴ〉
들우다 : 다가 이 量애 너믄 사미면 石火電光  번 자보매 곧 자며 銀山鐵壁을 번 들우메들우리니(若是過量漢이면 石火電光 一捉애 便捉며 銀山鐵壁을 一透에 便透리니)〈금삼 서2:5ㄴ〉 / 精微호 溟涬을 들우리오(精微穿溟涬)〈두시 16:2ㄱ〉
들워디다 :  우희 무롭 다핫던 히 다 들워디옛더라(其榻上當膝處ㅣ 皆穿니라)〈번소 10:22ㄴ〉 / 그 평상 우희 무롭 단 고디 다 들워디니라(管寧이 嘗坐一木榻더니 積五十餘年이로 未嘗箕股니 其榻上當膝處ㅣ 皆穿니라)〈소학 6:121ㄱ〉
듧ᄭᅥᆸ다 : 麤率 듧 쳔쳔티 몯 씨라〈월석 2:11ㄴ〉 / 婬亂 맛들어나 수으를 즐기거나 듧 조심 아니다가〈석상 9:37ㄱ〉.
라오 주017)
라오
바라봄을. [望]-+오+ㅁ+. 15세기의 ‘라다’는 ‘바라보다’와 ‘원하다’의 뜻으로 쓰였는데 여기서는 ‘바라보다’의 뜻으로 쓰였다. ¶바라보다 :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蜜多 遙見 不能自禁 遂使其身 怱起 屈身頂禮於太子足 禮拜起已 四面顧視生大羞慚)〈석상 3:8ㄱ〉 / 渭水ㅅ 셔 머리 횟돌아 라노라(回首清渭濱)〈두시 19:3ㄱ〉
원하다 : 庶幾 그러긧고 라노라 논 디라〈월석 1:석상서6ㄱ〉 / 밤나 官軍의 오 다시 라다(日夜更望官軍至)〈두시 4:4ㄱ〉.
디 주018)
디
지는. 디[落]-+. 15세기 국어에서 ‘·디-’는 ‘떨어지다, 거꾸러지다’의 뜻으로 쓰였고, ‘:디-’는 ‘떨어뜨리다’의 뜻으로 쓰였다. ¶디다(타동사) : 阿難이 듣고 다시 슬허 믈 디여(阿難이 聞已고 重復悲淚야)〈능엄 1:92ㄴ〉 / 彈子 쇠로기  새 디놋다(彈落似鴞禽)〈두시 3:14ㄴ〉
디다(자동사) : 내 님금 그리샤 後宮에 드르 제 하 벼리 눈  디니다〈용가 50〉 / 수프렛 고 비 다니 臙脂ㅣ 디 고(林花著雨燕脂落)〈두시 11:21ㄱ〉.
 當호니 미 주그니   노햇 주019)
노햇
놓여 있는. 뒤집어쓴. 놓[著/置]-+아#잇-+. ¶노햇다 : 큰 그르세  만히 봇가 덥게야 주머니에 녀허 가매 노햇다가 거든 즉재 라〈구급방 상:8ㄴ〉 / 봄 니를어늘 기픈 새 나리 록 올오  돋거늘 고기 잡  바 니 노햇도다〈남명 상:63ㄴ〉 / 고미 낫  어르 萬壑애 가 내야 迎風寒露館ㅅ 玉壺애 노햇 도다(炯如一段清冰出萬壑 置在迎風寒露之玉壺)〈두시 8:22ㄱ〉 / 드트른 萊蕪縣ㅅ 실의 고 堂앤 單父의 거믄괴 빗노햇도다(塵滿萊蕪甑 堂橫單父琴)〈두시 21:35ㄱ〉.
도다 주020)
도다
듯하도다. 듯하구나. #-+도+다.

【한자음】 안천당락일 심사착한회【서쪽을 향해 바라보니 눈이 뚫어질 듯하고, 마음이 꺾여 살 의지가 없으니, 차가운 재를 뒤집어쓴 것 같다는 말이다.】
【언해역】 눈이 뚫어지게 바라봄을 지는 해를 맞으니, 마음이 죽으니 찬 재를 놓은
(뒤집어쓴)
듯하도다!

霧樹行相引 蓮峯望或開 주021)
무수행상인 연봉망혹개(霧樹行相引 蓮峰望或開)
“안개 낀 나무가 자신을 끌고 가고, 연화봉이 보였다 가렸다. 한다.”는 말로, 자신이 길을 가면서 나타나는 주변 상황의 변화를 뜻한다.
行路之間애 주022)
행로지간(行路之間)애
적에게 점령되어 있던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이 있는 봉상 행재소로 가는 길에.
望樹則如引我之行이오 주023)
망수즉여인아지행(望樹則如引我之行)이오
나무들을 바라보니, 마치 내가 가는 길을 이끄는 듯하고.
望山則或見其背며 或見其面也ㅣ라 주024)
망산즉혹견기배(望山則或見其背)며 혹견기면야(或見其面也)ㅣ라
지나가면서 산을 바라보면 구름이 가렸다가 잠시 잠시 구름이 열려, 산의 모습이 보인다는 말이다.

雲霧 주025)
낀. [冠]-+ㄴ. ¶다 : 아래 前生브터 根이 니근 天龍八部ㅣ 一時예 圍繞 님 구룸  얫더니〈월석 4:46ㄱ〉 / 셔울히 구름  뫼 밧기로소니 音問ㅅ 글워리 괴외야 오디 아니놋다(京洛雲山外 音書靜不來)〈두시 3:27ㄴ〉.
남근 주026)
남근
나무는. 남ㄱ+은. 15세기 국어의 ‘나모’는 ‘ㄱ’곡용명사로 ‘주제조사, 주격, 대격, 처격’은 각각 ‘남ᄀᆞᆫ, 남기, 남, 남ᄀᆡ’로 ‘공동격’은 ‘나모와’로 실현된다. ‘남근’은 ‘남ᄀᆞᆫ’의 이표기이다. 참조 : 구무. ¶나모 : 곳과 果實와 플와 나모와 머그리도 이시며(或食花果草木)〈석상 3:33ㄴ〉 / 매 隄防호 藉賴야 모 히믈 내야 나모 돌로 노피 마고   當야 다(終藉隄防出衆力 高擁木石當清秋)〈두시 3:71ㄴ〉 / 남기 : 젼혀 이 東山 남기 됴 노니논 히라(此園茂盛 當用遊戲逍遙散志)〈석상 6:24ㄱ〉 / 믌 뉘누리예 하야로비 沐浴니 엇던 고 외로왼 남기 고지 프니 제 分明도다(盤渦鷺浴底心性 獨樹花發自分明)〈두시 3:34ㄱ〉 / 남 : 믈와 블와 와 가 남 누리도 잇더니(或事水火日月 翹脚臥灰棘水火上者)〈석상 3:33ㄴ〉 / 랑호니 녜 서늘  追尋호 즐겨 부러 못 남 횟도라 니다니(랑호니 녜 서늘  追尋호 즐겨 부러 못 남 횟도라 니다니)〈두시 2:66ㄴ〉.
녀가매 주027)
녀가매
감에. 다녀감에. 걸어감에. 니/녀[行]-+어#가-[行]+ㅁ+애.
서르 주028)
서르
서로.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5ㄴ

혀고 蓮花峯 주029)
연화봉(蓮花峯)
연화봉은 중국 여러 곳에 있지만, 여기서는 섬서(陝西) 화산(華山)에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화악지(華嶽志)』에 보면 “산 정상에 봉우리가 있는데, 이름이 연화봉이다. 상궁이 있는데, 궁 앞에 옥정이라 불리는 연못이 있어 잎이 천 개나 되는 연꽃이 피고, 이것을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한다. 또 옥녀가 얼굴을 씻는 동이를 말한다. 당나라 두보의 시에 보면 ‘어떻게 신선의 구절장을 얻어, 집고 옥녀의 얼굴 씻는 동이에 이를까.’란 구절이 있는데, 대개 봉우리의 가장 높은 곳이다.(嶽頂中峯曰蓮華峯 有上宮 宮前有池爲玉井 生千葉白蓮華 服之令人羽化 亦謂之玉女洗頭盆 唐杜甫詩 安得仙人九節杖 拄到玉女洗頭盆 蓋峯之最高處也)”라고 하였다.
라니 주030)
라니
바라보니. 15세기 ‘라다’는 ‘바라보다’와 ‘원하다’의 뜻이 있다. 자세한 것은 앞의 주석을 참조할 것.
시혹 여러 뵈놋다 주031)
뵈놋다
보이는구나. 보[見]-+이++오+ㅅ+다.

【한자음】 무수행상인 연봉망혹개【길을 가는 도중에 나무를 바라보면, 나의 갈 길을 이끄는 듯하고, 산을 바라보면 그 등이 보이기도 하고, 혹은 그 얼굴이 보이기도 한다.】
【언해역】 운무 낀 나무는 걸어가면 서로 끌고, 연화봉은 바라보니 혹은 열려 보이는구나!

所親驚老瘦 辛苦賊中來 주032)
소친경노수 신고적중래(所親驚老瘦 辛苦賊中來)
앞 구는 ‘친하던 벗들이 두보의 늙고 야윈 모습을 보고 놀랐다.’라는 말이며, 뒤 구는 ‘온갓 고생을 하면서, 도적떼로부터 빠져나왔노라.’라는 말이다.

親 밧 주033)
親 밧
친한. 원시의 ‘所親’을 번역한 말이다. 『두시언해』 권3에서 주석을 뺀 두시 본문에 나오는 ‘所’의 번역 양상은 예문과 같다. ¶곧 : 어러이 라 매 어드러 가리오 죠고맛 조 欽敬논 고 愧謝노라(狂走終奚適 微才謝所欽)〈두시 3:15ㄱ〉 / 바 :  번 업더뎌 매 損傷홀 고 혜아리디 아니호니 人生애 들 훤히 호리라 면 辱외욜 배 한 거시로다(不虞一蹶終損傷 人生快意多所辱)〈두시 3:53ㄱ〉 / 명사형 :  묏 미틧 솔 니 거나 리거나 호미 사 조매 잇니라(又如隴底松 用捨在所尋)〈두시 3:57ㄴ〉 / 所以 : 飄飄히 뇨미 므스 거시 뇨 하  예  몰애옛 며기로다(飄飄何所似 天地一沙鷗)〈두시 3:35ㄱ〉.
사미 늙고 여위요 놀라니 辛苦히 주034)
신고(辛苦)히
『표준국어대사전』에 ‘신고(辛苦)하다’는 ‘어려운 일을 당하여 몹시 애쓰다’로 풀이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괴로움을 당해 가면서 간신히’의 뜻이다. 15세기에 ‘신고(辛苦)’를 매개로 하는 단어로 많이 쓰였지만 ‘辛苦히’는 여기의 이 용례가 유일하다.
盜賊의 서리로셔 주035)
도적(盜賊)의 서리로셔
도적의 사이로부터. ‘서리’는 ‘사이’로 번역되지만 정확한 의미는 어떤 공간을 이루는 사이에 개체들이 많음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도적들이 우굴거리는 공간을 말한다. ¶서리 : 狄人ㅅ 서리예 가샤 狄人이 외어늘 岐山 올샴도 하 디시니〈용가 4〉 / 差池히 組冕 화 니 다봇 서리예셔 니러나니(差池分組冕 合沓起蒿萊)〈두시 3:10ㄱ〉.
오라 주036)
오라
왔다. 오[來]-+∅+라. 부정과거시제형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오라(평서형) : 權門엔 噂畓호미 할  孫子 자 오라(權門多噂遝 且復尋諸孫)〈두시 8:32ㄱ〉 / 말왐 니 호매 믈 흘류믈 노니 늘구메 中堂애 갓가이 오라(萍漂忍流涕 衰颯近中堂)〈두시 8:45ㄱ〉 / 서르 마초매 길 즈로 붓그리노니  타 階除예 니르러 오라(相邀愧泥濘 騎馬到階除)〈두시 12:32ㄴ〉 / 오라(명령) : 健陟이 기르마 지허 오라 시니〈석상 3:29ㄴ〉 / 靑衣 브려 긔별 아라 오라 시니〈석상 6:2ㄱ〉 / 오라(부사) : 閻浮提예 려와 닐오 如來 아니 오라 涅槃애 드르시리라〈월석 21:200ㄴ〉 / 聖賢ㅅ 일후미 오라 아라니 나그내로 뇨매 病이 마다 보차놋다(聖賢名古邈 羈旅病年侵)〈두시 3:13ㄴ〉.

【한자음】 소친경노수 신고적중래
【언해역】 친한 사람이 늙고 여윔을 놀라니, 신고(辛苦)하게 도적의 소굴로부터 왔노라!

〈둘째 수〉

愁思 주037)
수사(愁思)
근심에 빠져 생각하는 것.
胡笳 주038)
호가(胡笳)
중국 고대 북방민족이 쓴 관악기. 전설에 따르면 한(漢)나라의 장건(張騫) 서역(西域)엣 가져왔는데, 한위(漢魏) 때의 고취악(鼓吹樂)에서 항상 사용했다.
夕 凄凉漢苑 주039)
한원(漢苑)
경도(京都)의 곡강(曲江)과 남원(南苑) 등지를 가리키는데, 당나라 사람들은 ‘한(漢)’으로 ‘당(唐)’을 통칭했으며, 『두시언해』에서도 ‘한(漢)’으로 ‘당(唐)’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주040)
수사호가석 처량한원춘(愁思胡笳夕 凄凉漢苑春)
“근심에 젖어 오랑캐 풀피리 부는 저녁을 생각함이여, 서늘하고 슬픈 기운에 잠긴 한나라 동산의 봄이로다!”란 말이다.
【愁思 言陷賊之久에 厭聽胡笳也ㅣ라 凄凉 言苑囿 주041)
원유(苑囿)
새와 짐승을 기르는 나라의 동산. 곧 궁궐 안에 있는 동산. 원유(園囿).
ㅣ 雖春이나 喪亂殘弊故로 凄凉也ㅣ라】

시름왼 주042)
시름왼
걱정되는. 걱정스런. 시름[愁]#외-+ㄴ. 15세기 문헌에서 ‘시름외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보이며, 일반적으로는 ‘시름다’가 쓰였다. ¶시름외다 :  부 수풄 소리 것고 시름왼 돌 양 改變놋다(颼颼林響交 慘慘石狀變)〈두시 1:23ㄱ〉 / 셔울히 다시 블 븓디 아니야 涇渭옛 사미 시름왼 양 훤야(京都不再火 涇渭開愁容)〈두시 4:24ㄱ〉 / 시름다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 머므디 몯놋다 시고 도라 드르샤 시름야 더시다〈석상 3:18ㄱ〉 / 주려셔 집마다  빌오 시름얀 곧마다 숤盞 求노라(飢籍家家米 愁徵處處盃)〈두시 3:9ㄴ〉.
데 되 픗뎌 주043)
되 픗뎌
되의 풀피리. 플+ㅅ+뎌. 15세기 국어에서 속격조사 ‘ㅅ’이 선행하는 명사의 말음을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조 : 짓리. ¶짓리 : 그 짓리  가져 나오〈석상 6:14ㄱ〉 / 우리 짓碑 眛滅티 아니고 王氏의 우므른 依然야 인니라(吾家碑不昧 王氏井依然)〈두시 2:14ㄱ〉.
부 나조히여 주044)
나조히여
저녁이여. 나조ㅎ+이+여. ¶나조ㅎ : 阿脩羅ㅣ 바 가온 나아 바 믈  굼긔 드러 이셔 아 虛空애 나아 노다가 나조 므레 가 자니〈석상 13:10ㄴ〉 /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 오 나조 亂애 여여셔 우노라(暮年漂泊恨 今夕亂離啼)〈두시 3:19ㄴ〉.
서코 주045)
서코
서늘하고. 서#-+고.
슬픈 漢苑ㅅ 보미로다 주046)
보미로다
봄이도다. 봄[春]+이+로+다.

【한자음】 수사호가석 처량한원춘【‘수사(愁思)’는 도적 떼에 빠진 지 오래되어, 호가(胡笳)를 듣기에 질렸다는 말이다. ‘처량(凄凉)’은 원유(苑囿)가 비록 봄이지만, 전란으로 해지고 무너진 까닭으로 처량하다는 말이다.】
【언해역】 걱정스런 뜻에 오랑캐 풀피리 부는 저녁이여, 서늘하고 슬픈 한나라 동산의 봄이도다!

生還今日事 間道暫時人 주047)
생환금일사 간도잠시인(生還今日事 閒道暫時人)
“오늘 무사히 목숨을 건져 돌아왔지만, 사람 사는 것은 사잇길을 잠시 걷는 것과 같다.”는 말로, 사람이 살아갈 때 늘 위험은 따른다는 뜻이다.
【暫時人 間隙之道애 주048)
간극지도(間隙之道)애
장안에서 봉상으로 가는 사이의 길에.
遇賊則不保性命이니 是乃暫時爲人也ㅣ라】

사라 도라오미 오날 이리니 즈길흐로 주049)
즈길흐로
지름길로. 즈름+ㅅ+길ㅎ+으로. ‘즈름’은 분포상 자립명사이었으나, 15세기에는 이미 ‘즈길ㅎ’로만 쓰였다.
아니 한  주050)
아니 한 
많지 않은 사이의. 아니 하-[多]+ㄴ [時]+의+ㅅ. 〈중간본〉은 ‘아니 한 ’이다. ¶아니 한 : 人生애 世閒애 이셔 모락 흐르락 호미  아니 한 로다(人生在世間 聚散亦暫時)〈두시 22:22ㄴ〉 / 아니 한 더데 尊과 親과 야 指揮야 도라보아 브튜믈 잇게 니라(俄頃辨尊親 指揮存顧托)〈두시 3:66ㄱ〉.
사미러라 주051)
사미러라
사람이더라. 사+이+더+라. ‘러’는 계사 ‘이-’ 뒤에서 ‘더’의 형태가 바뀐 것이다.

【한자음】 생환금일사 간도잠시인【‘잠시인(暫時人)’은 잠깐 사이 가는 길에 도적떼를 만나면 생명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니, 그래서 이것이 ‘잠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언해역】 살아 돌아옴이 오늘날 일이니, 지름길로 잠깐 동안의 사람이더라.

司隷章初覩 南陽 주052)
남양(南陽)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를 일컫는 말. 남양가기(南陽佳氣)는 남양(南陽)의 아름다운 기운. 광무제 유수(劉秀)는 남양 사람인데, 춘릉(舂陵)에서 병사를 일으켰다. 망기술사(望氣術士) 소백아(蘇伯阿)가 왕망(王莽)의 명으로 파견되어 남양에 이르렀는데, 멀리 춘릉을 바라보면서 “기운이 아름답구나. 가득 찬 데다 푸르스름하구나.”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제왕(帝王)의 기운을 일컫게 되었다.
氣已新
주053)
사례장초도 남양기이신(司隸章初覩 南陽氣已新)
안녹산의 난이 계속되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았다가 숙종이 봉상 행재소에서 있으니 비로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고 중흥되고 있음을 말한다.
光武 주054)
광무(光武)
한나라 광무제(光武帝, 기원전 6-57) 유수(劉秀)를 가리키는 말. 후한의 초대 황제(재위, 25-57). 남양(南陽) 채양(蔡陽) 사람. 자는 문숙(文叔)이고,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9세손이다.
司隷校尉 주055)
사례교위(司隷校尉)
도둑을 잡고 비상을 경계하는 벼슬. 교위(校尉)는 한나라 때 설치된 관직 이름으로, 군대의 부장(副將)에 해당한다. 직무에 따라 무기교위(戊己校尉), 중루교위(中壘校尉) 등의 명칭이 붙여졌다. 한나라 이후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장관을 일컫는 칭호로 쓰이기도 했다. 당나라 이후 지위가 점점 약해졌다.
샤 置僚屬 一如舊章대 老吏曰復見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6ㄱ

漢官威儀라고 又光武紀 주056)
광무기(光武紀)
『후한서』의 편명(篇名). 광무제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望氣者ㅣ 遙望南陽春陵曰氣佳哉라니 皆比肅宗ㅅ 中興也ㅣ라 주057)
망기자(望氣者)ㅣ 요망남양춘릉왈기가재(遙望南陽春陵曰氣佳哉)라
『후한서』 「광무기」에 기운을 바라본다[望氣]. 것은 아득히 광무의 고향인 남양(南陽)에 있는 춘릉(春陵)을 보고 “기운이 아름답다.”고 말한다는 것이라는 말이다.

司隷ㅅ 버블 주058)
사례(司隷)ㅅ 버블
한나라 때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던 사례교위(司隷校尉)의 법을.
처 보니 南陽ㅅ 氣運이 주059)
남양(南陽)ㅅ 기운(氣運)이
광무제의 기운이.
마 주060)
마
이미. 벌써. ¶마 : 太子 羅睺羅ㅣ 나히 마 아호빌(太子羅睺 年已九歲)〈석상 6:3ㄱ〉 / 너희 비들 마가 줄 靑錢 마 일워 뒷노니 반기 됴 마로 여 내 이베 들에 라(已辦靑錢防雇直 當令美味入吾脣)〈두시 3:32ㄴ〉.
새롭도다

【한자음】 사례장초도 남양기이신【광무(光武)가 사례교위(司隷校尉)가 되어서 부하를 두어, 한결같음이 옛 법과 같은데, 늙은 관리가 “한나라 궁궐의 위의를 다시 본 듯하다.”고 말하고, 또 『광무기(光武紀)』에 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아득히 남양(南陽)의 춘릉(春陵)을 보고 말하기를 “기운이 아름답다.”고 했으니, 모두 숙종이 중흥한 것을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사례교위(司隷校尉)의 법을 처음 보니, 남양(南陽)의 기운은 이미 새로워라.

喜心翻到極 嗚咽淚沾巾 주061)
희심번도극 오인루첨건(喜心飜到極 嗚咽淚沾巾)
“기쁜 마음이 흘러넘쳐 극에 이르니, 목 놓아 울어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란 말이다.
【此 樂極而哀也ㅣ라 주062)
낙극이애야(樂極而哀也)ㅣ라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슬픔이 복받치는 것을 말한다.

깃븐 주063)
깃븐
기쁜. -[喜]+브+ㄴ. ‘-브-’는 형용사파생접미사이다. 참고. 다. 슳다. 슬프다. ¶깃브다 : 내 閻浮提 거느려 王 외야도 깃브디 아니고〈월석 25:96ㄱ〉 / 燈花ㅣ 모  깃브니 프른 수를 正히 서르 親히 호라(燈花何太喜 酒綠正相親)〈두시 15:56ㄴ〉 / 다 : 그 짓 리  가져 나오 婆羅門이 보고 깃거 이 각시 내 얻니논 매 맛도다〈석상 6:14ㄱ〉 / 여윈 겨지비 깃거 치 도로 빗나며 어린 리 머리 제 빗다(瘦妻面復光 癡女頭自櫛)〈두시 1:6ㄴ〉 / 슬프다 : 그  目連比丘와 大菩薩衆이 다  歡喜야 目連의 슬픈 우룸쏘리 훤히 업스니라〈월석 23:96ㄱ〉 / 旌旗ㅅ 비치 나조 슬프니 風水ㅅ 氣運에  히 보엿도다(旌竿暮慘澹 風水白刃澀)〈두시 1:22ㄱ〉 / 슳다 : 어마니미 太子ㅅ 우희 업더디여 슬흐시더라〈석상 11:21ㄴ〉 / 아라히 步兵이 울오 便安히 몯 자셔 仲宣이 슬흐니라(蒼茫步兵哭 展轉仲宣哀)〈두시 3:9ㄴ〉.
미 도혀 주064)
도혀
도로. 돌[回]-++히+어. ‘’와 ‘히’는 사동접미사이다.
 요매 주065)
 요매
가장 기쁨에. 극도로 기뻐. ‘요매’는 ‘-+오+ㅁ+애’로 분석되는데, 이때의 ‘-’는 앞의 ‘깃브-’를 받는 대용언이다.
우러 므를 手巾에 저지노라 주066)
저지노라
젖게 하노라. 적시는구나. 젖[潤]-+이++오+라. ‘저지다’는 ‘젖다’의 사동사이다. ¶저지다 : 六合애 저지시며 十方애 저지샤(潤之六合시며 沾之十方샤)〈월석 1:석상서7ㄴ〉 / 프렛 이스리  해 저지고 거믜주리 지즈로 갇디 아니얏도다(草露亦多濕 蛛絲仍未收)〈두시 3:27ㄱ〉 / 젖다 : 義 디니 비  마로 골오 젓고〈석상 13:26ㄴ〉 / 더운 비예  저즌 긔운이 머므렛고 맷  나죗 서늘호 빌이놋다(暑雨留蒸濕 江風借夕涼)〈두시 3:12ㄱ〉.

【한자음】 희심번도극 오인루첨건【이것은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러 슬픈 것이다.】
【언해역】 기쁜 마음이 도리어 가장 기쁨에, 울어 눈물을 수건에 젖게 하노라.

〈셋째 수〉

死去憑誰報 歸來始自憐 주067)
사거빙수보 귀래시자련(死去憑誰報 歸來始自憐)
“죽으면 누구를 의지해 알리겠는가, 돌아오니 비로소 스스로 슬퍼하노라.”란 말이다.
ㅣ 言死於賊中이면 人誰知之리오 今日歸來야 反思之而自惜也ㅣ라 주068)
반사지이자석야(反思之而自惜也)ㅣ라
적진에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스스로 애석하다는 말이다.

주거 가더든 주069)
가더든
가면. 가[去]-+더+든. 가정의 의미는 ‘든’에 있으며, ‘더’는 ‘거’와 계열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과거 사실을 회상하는 기능이 있다. ¶-더든 :  次第로 비녀 됴 차반 어더든 어미 이받고 사오나 차반 어더든 제 먹거〈월석 20:12ㄴ〉 / 프른 묏부리옛 리 萬一 업더든 머리옌 사 시름에 리랏다(若無靑嶂月 愁殺白頭人)〈두시 12:2ㄱ〉 / -거든 : 粉과 燕脂와 瓔珞과 옷과 花鬘과 곳과 쇠로 몟거든 사오나 사미 몰라 소가 貪  내니〈석상 3:26ㄱ〉 / 내 비록 諫諍 資質ㅣ 업스나 내 나니거든 님그미 그르실 이리 겨실가 젓노라(雖乏諫諍姿 恐君有遺失)〈두시 1:1ㄴ-2ㄱ〉.
누를 브터 주070)
누를 브터
누구를 의지해서. 누[誰]+를 븥-[依]+어. 원시의 ‘빙수(憑誰)’를 번역한 말이다.
알외리오 주071)
알외리오
알리겠는가? 알[知]-+오+이+리+오. ‘오’와 ‘이’는 모두 사동접미사이다.
도라와 비루수 주072)
비루수
비로소. 『두시언해』에서는 ‘비로소’가 ‘비루수, 비르수’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참조 : ‘비록’과 ‘비룩’ ¶비루수 : 녜 엇뎨 摧殘야셔 비루수 애왇븐  베푸미 아니리오 지츨 帶야슈믈 붓그리며 얼구릐 어류 슬놋다(爾豈摧殘始發憤 羞帶羽翮傷形愚)〈두시 17:5ㄱ〉 / 비르수 : 비르수 이 乾坤애 王室이 正도소니 도혀 江漢앳 客 넉스로 여 에 다(始是乾坤王室正 却敎江漢客魂銷)〈두시 5:22ㄴ〉 / 비로소 : 丈人 비로소 니서 드르라 賤子ㅣ 請 다 베퍼 닐오리라(丈人試靜聽 賤子請具陳)〈두시 19:1ㄱ〉.
슬허노라 주073)
슬허노라
슬퍼하노라. 슳[悲]-+어#-++오+라. ‘-어다’는 동사나 형용사를 동사로 파생시키는 문법적 장치다. 참조 : 깃거다. ¶슬허다 : 須達이도 그 말 듣고 슬허더라〈석상 6:38ㄱ〉 / 桃源ㅅ 안 아라히 랑고 내 身世의 䟽拙혼 고 더옥 슬허노라(緬思桃源內 益歎身世拙)〈두시 1:4ㄱ〉 / 깃거다 : 그  모댓 사미 다 降服야 깃거더니〈석상 6:34ㄴ〉 / 빈 곬 아래로 날호여 도라오니 僕從히 슬허 깃거디 아니놋다(威運哀壑底 徒旅慘不悅)〈두시 1:17ㄴ〉.

【한자음】 사거빙수보 귀래시자련두보가 도적 떼 속에서 죽으면, 누가 이것을 알겠냐고 여겼는데, 오늘 돌아와서 돌이켜 생각하니, 스스로 애석해 한 것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죽어 가면 누구에 의지해 알리겠는가, 돌아와 비로소 내가 슬퍼하노라.

猶瞻太白雪 喜遇武功 주074)
무공(武功)
섬서성 함양시 무공현으로 장안 근처에 있다.
주075)
유첨태백설 희우무공천(猶瞻太白雪 喜遇武功天)
“오히려 태백산에 쌓인 눈을 보노니, 기쁘게 무공현의 하늘을 만나네.”란 말이다.
太白山 주076)
태백산(太白山)
산(山) 이름. 섬서성(陝西省) 미현(眉縣) 동남쪽, 봉상(鳳翔) 근처에 있다.
 在鳳翔고 武功縣 屬京兆 주077)
경조(京兆)
중국의 수도를 지칭하는 용어. 일반적으로 한대(漢代) 이후에는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에서 동쪽으로 화현(華縣)에 이르는 지역을 말하며, 장안을 비롯한 12개의 현이 속해 있었다. 그리고 명청시대(明淸時代) 이후에는 순천부(順天府), 즉 지금의 북경(北京)을 경조라고 했다.
니 此 喜近天子之所也ㅣ라】

오히려 주078)
오히려
오히려. 오히+려. ‘오힐’은 ‘같다’의 뜻이며 ‘-려’는 부사파생접미사이다. 참조 : 새려.
太白山ㅅ 누늘 보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6ㄴ

노니 武功縣ㅅ 하 맛보 주079)
맛보
마주 봄을. 맞[對]-+보-[示]+오+ㅁ+. ‘보다’의 어간의 일부인 ‘오’와 명사형에 출현하는 ‘오’가 중복되어 생략된 표기이다. ‘맛을 보다’의 뜻인 ‘맛보다’와는 다른 동사이다. ¶맛보다(마주보다) : 우리 오 이 龍王 맛보리니 威力이 眞實로 우릴 이가 몯 이가〈월석 25:106ㄴ〉 / 아 가면 짓 送葬 맛보니 앏뒤히 다 빗나더라(朝逢富家葬 前後皆輝光)〈두시 2:70ㄱ〉 / 맛보다(맛을 보다) : 혀에 맛보미 味塵이오〈월석 11:47ㄴ〉 / 나그내 모미 녯 버들 맛보니 興心 베푸믄 林泉으로브테로다(客身逢故舊 發興自林泉)〈두시 10:13ㄴ〉.
깃노라 주080)
깃노라
기뻐하노라. [喜]-++오+라.

【한자음】 유첨태백설 희우무공천【태백산(太白山)은 봉상에 있고, 무공현(武功縣)은 경조(京兆)에 속하니, 이것은 천자가 있는 장소가 가까워진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언해역】 오히려 태백산의 눈을 보노니, 무공현의 하늘을 만나 기쁘구나.

影靜千官 주081)
천관(千官)
①주(周)나라 때 육관(六官)의 하나. 그 장관은 총재(冢宰)라 하여, 총리대신에 해당했다. ②임금을 모신다는 뜻으로, 관리를 일컫는 말. ③천문(天文). ④시청후미촉(視聽嗅味觸)의 오관. ⑤이부(吏部)의 다른 이름.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裏 心蘇七校前
주082)
영정천관리 심소칠교전(影靜千官裏 心蘇七校前)
“천자가 계신 곳에 오니 그림자마저 편해지고, 여러 관리들을 보니 마음이 안정된다.”는 말로, 임금과 신하들을 직접 보게 되니, 세상이 안정되어감을 알겠다는 뜻이다.
七校 주083)
칠교(七校)
한무제가 일곱 교위(校尉)를 설치했는데, 여기서는 숙종(肅宗) 어전의 무위(武衛)를 가리킨다.
中壘 주084)
중루(中壘)
전한(前漢) 때의 교위(校尉) 가운데 하나. 북군(北軍) 영루(營壘)의 일을 맡았다. 후한(後漢) 때는 없어졌다. 유향(劉向)이 이 직책을 가져, 후세에 그를 ‘중루’라 불렀다.
屯騎 주085)
둔기(屯騎)
①무리가 많은 수종(隨從) 기병(騎兵). ②관직(官職) 이름. ‘둔기교위(屯騎校尉)의 약칭이다.
步兵 주086)
보병(步兵)
관직 이름. ‘보병교위(步兵校尉)’의 약칭이다.
越騎 주087)
월기(越騎)
관직 이름. ‘월기교위(越騎校尉)’의 약칭이다.
長水 주088)
장수(長水)
관직 이름. ‘장수교위(長水校尉)’의 약칭이다.
射聲 주089)
사성(射聲)
한(漢)나라 때의 무관(武官). ‘사성교위(射聲校尉)의 약칭인데, 한무제(漢武帝) 초에 설치한 팔교위(八校尉) 가운데 하나다.
虎賁 주090)
호분(虎賁)
관직(官職) 이름. 국군(國君)을 시위(侍衛)하고, 왕궁과 왕문을 보위(保衛)하는 관직이다.
괘라 言閒道之來예 危不自保야 心若死灰러니 今到天子之所則影始靜而心得蘇也ㅣ라】

그르메 주091)
그르메
그림자는.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참조 : 그르메. 그리메. ¶그르메 : 므렛 그르메 야(如水中形)〈석상 11:36ㄴ〉 / 므리 조니 樓ㅅ 그르메 바 뎻고 뫼히 어드우니   기우도다(水淨樓陰直 山昏塞日斜)〈두시 3:25ㄱ-ㄴ〉 / 그리메 : 그 새 그리메 보고 횟돌며 래 티고 슬피 우니 고 和雅더니(鳥見影顧眄迴惶悲鳴 振迅淸暢和雅)〈월석 25:81ㄴ〉 / 그리메 春風   보아 알리로소니 챗 玉  바 넉시 갓 도라오놋다(畫圖省識春風面 環佩空歸月夜魂)〈두시 3:68ㄴ〉.
千官ㅅ 소개와 주092)
천관(千官)ㅅ 소개 와
천관(千官)의 속에 와서.
安靜고 주093)
안정(安靜)고
안정하고. 안정되고.
 닐굽 校尉ㅅ 알 요라 주094)
요라
깨어라. [蘇]-+오+라. ¶다 : 어마니미 드르시고 안 답샤 낫라 아샤 것죽거시  믈 리여 시니라〈석상 11:20ㄴ〉 / 煩促호매 더운 病이 엇뎨 侵逼디 아니리오 믈어뎌 지여셔 조오라 디 몯호라(煩促瘴豈侵 頹倚睡未醒)〈두시 1:50ㄱ〉.

【한자음】 영정천관리 심소칠교전【‘칠교(七校)’는 중루(中壘)와 둔기(屯騎)와 보병(步兵)과 월기(越騎)와 장수(長水)와 사성(射聲)과 호분(虎賁)이다. 좁은 길을 올 때 위험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어, 마음이 죽은 재와 같더니, 지금 천자가 있는 곳에 오니, 그림자가 비로소 안정되고, 마음도 소생(蘇生)했다는 말이다.】
【언해역】 그림자는 천관(千官) 속에 와 안정되고, 마음은 칠교(七校) 앞에 깨어라.

今朝 주095)
금조(今朝)
오늘 아침. 지금의 조정. 지금의 임금.
社稷 주096)
사직(社稷)
나라에서 백성의 복을 위해 제사하는 국토지주(國土之主)의 사(社)와 오곡지장(五穀之長)의 직(稷). 임금이 나라를 세우면, 먼저 사직과 종묘를 세웠는데, 사직은 궁성의 동쪽에 종묘는 궁성의 서쪽에 세움. 임금을 사직의 주인이라고 하여, 나라가 존재하면, 사직의 제사가 행하여지고 망하면, 사직의 제사는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시되어, 국가(國家)의 이칭(異稱)으로서 종사(宗社)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新數中興年
주097)
금조한사직 신수중흥년(今朝漢社稷 新數中興年)
“오늘 아침에야 한나라의 종묘사직이, 새로 다시 흥기(興起)하신 해를 헤아리게 되었네.”란 말이다.
【此 借漢中興야 以美肅宗니 言今自中興之年而始計歷數之長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今朝 漢ㅅ 社稷을 다시 興起신 브터 주098)
다시 흥기(興起)신 브터
다시 흥기하신 해로부터. 즉 지금까지의 해는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 못하였지만, 올해부터는 나라가 다시 중흥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새려 주099)
새려
새로. 새[新]+려. ‘려’는 부사파생접미사이다. ‘새려’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이는 단어이다. ¶새려 : 새려 므렛 軒檻 더 라 낛 드리우메 供進고 부러  들구를 두어 라 예 드노라(新添水檻供垂釣 故著浮槎替入舟)〈두시 3:30ㄴ〉 / 洛陽ㅅ 宮殿이 블 브터 다 업더니 宗廟 여 톳 굼긔 새려 짓놋다(洛陽宮殿燒焚盡 宗廟新除狐兔穴)〈두시 3:62ㄴ〉.
혜요리라 주100)
혜요리라
헤아리리라. 헤아릴 것이다. 혜-[數]+오+리+라. 참조 : 혜아리다. ¶혜다 :  일훔 아니 지면 後ㅅ 사미 혜요 섯그릴 일훔 짇니라〈월석 2:49ㄴ〉 / 온 가짓 혜아료로 便安며 어려우믈 보니 녜 어딘 사 혜요미 分明도다(百慮視安危 分明曩賢計)〈두시 2:64ㄱ〉 / 헤아리다 : 戱論 노야 議論씨니 야 혜아리 正티 몯 미라〈석상 19:25ㄱ〉 / 온 가짓 혜아료로 便安며 어려우믈 보니 녜 어딘 사 혜요미 分明도다(百慮視安危 分明曩賢計)〈두시 2:64ㄱ〉.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금조한사직 신수중흥년【이것은 한나라의 중흥을 빌려 숙종을 미화한 것이니, 지금부터 중흥의 해가 시작되어 비로소 역수(歷數)가 길게 헤아려질 것임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오늘 아침 한나라의 사직을 다시 흥기(興起)하신 해부터 새로 헤아리리라.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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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희달행재소삼수(喜達行在所三首) : 이 작품은 지덕(至德) 2년(757) 4월 지어졌다. 그때 두보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장안(長安)을 빠져나와, 숙종(肅宗)의 행재소(行在所)가 있는 봉상(鳳翔, 지금의 합서 봉상)에 이르렀다. 시에서는 도피할 때의 사정과 행재소에 닿았을 때의 기쁜 마음을 표현하였다.
주002)
서(西) : 서녘. 서쪽. 당시 숙종이 있던 기양(岐陽), 즉 봉상(鳳翔)은 두보가 있던 장안(長安)의 서쪽이다.
주003)
기양(岐陽) : 기산(岐山)의 남쪽. 봉상(鳳翔)을 가리키는데, 장안(長安) 서부에 있다. 기산은 현재 섬서성(陝西省) 내에 위치한 산으로 주(周)왕조의 발상지이다. 주태왕(周太王)이 빈(邠)에 살 때 훈육(獯鬻)이 괴롭히므로, 태왕은 빈 땅을 버리고 이곳에 도읍지를 정했다고 한다. 이 해(757년) 2월 숙종 정부는 팽원(彭原)에서 봉상으로 옮겼다.
주004)
서억기양신 무인수각회(西憶岐陽信 無人遂却廻) : “서쪽으로 기양에 소식을 전할까 생각하니, 끝내 아무도 다녀올 이가 없더라!”는 말이다.
주005)
봉상(鳳翔) : 중국 섬서성(陝西省) 봉상현(鳳翔縣). 진(秦)나라 때 옹현(雍縣)이라고 불렀고, 당(唐)나라 때 봉상현(鳳翔縣)으로 개칭했다가, 762년 천흥현(天興縣)과 합쳤다.
주006)
시(時)예 숙종(肅宗)이 주필어차(駐驆於此)시니라 : 그때 숙종이 이곳에 머물러 계시니라. ‘驆’은 〈중간본〉에 ‘蹕’로 되어 있다.
주007)
차(此) 언보(言甫)ㅣ 재적중(在賊中)야 사행재지신이무인(思行在之信而無人)이 종제소래야(從帝所來也)ㅣ라 : 이것은 두보가 안경서가 점령하고 있는 장안에 억류되어 있어, 숙종이 계신 봉상 행재소의 서신을 생각하고 있지만, 황제로부터 서신을 가져올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
주008)
西ㅅ 녀그로 : 서쪽으로. 西+ㅅ 녁+으로. 숙종이 계신 봉상 행재소가 두보가 있던 장안의 서쪽이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009)
음신(音信) : 먼 곳에서 전하는 소식이나 편지.
주010)
기양(岐陽)앳 음신(音信) : 기양(岐陽)의 편지를. 기양은 숙종이 계시는 봉상(鳳翔)의 한 지명이므로 봉상 행재소의 편지를 말한다.
주011)
호니 : 생각하니. 여기서는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중간본〉에는 ‘니’로 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중간본〉의 표기가 아니다. 〈중간본〉의 일반적인 표기라면, ‘랑니’이어야 한다.
주012)
그러셔 : 그리하여. 그러#-+어#시-+어. 원시의 ‘遂’를 번역한 말이나 정확한 분석이 어려운 말이다. 『두시언해』에서 ‘遂’는 동사와 부사로 쓰이는데, 동사로 쓰일 때는 주로 ‘일우다’로 번역되고, 부사로 쓰일 때는 주로 ‘지즈로’로 번역된다. 그런데 여기의 ‘遂’와 권5의 또 다른 부분 즉 ‘遂使貔虎士 奮身勇所聞〈두시 5:31ㄴ〉’에서는 각각 ‘그러셔’와 ‘그럴’로 번역되었다. 또한 『두시언해』에서 ‘遂’는 번역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에 ‘-’에 반영된 예들도 있다. ‘遂’에 대해서는 해제를 참고할 것. ¶遂(동사) : 性 일우므란 고기 잡 사티 고 일훔 일우므란 魯連과 다로리라(遂性同漁父 成名異魯連)〈두시 2:14ㄱ〉 / 生理 일웟논 이 내 깃거 곳 픤 時節에 핫옷 니부믈 히 너기노라(自喜遂生理 花時甘縕袍)〈두시 2:62ㄱ〉 / 世ㅣ 乱 저긔 飄蕩호 맛나니 사라 도라오 偶然히 이루롸(世亂遭飄蕩 生還偶然遂)〈두시 2:66ㄱ〉 / 鹿門에 더브러 가 일우디 몯호니 그려긔 바래 욘 거슬 難히 期約리로다(鹿門攜不遂 鴈足系難期)〈두시 8:47ㄴ〉 / 干戈ㅣ 긋디 아니니 出仕며 隱處호매 므슷  일우리오(干戈未偃息 出處遂何心)〈두시 10:43ㄱ〉 / 東柯애 가 늙고 게을오 일워셔 구믿 터리의 어르누구믈 디 아니호리라(東柯遂衰懶 休鑷鬢毛斑)〈두시 13:41ㄱ〉 / 이 노로 일우디 몯가 저후니 수를 자바셔 디 茫然얘라(斯遊恐不遂 把酒意茫然)〈두시 15:13ㄴ〉 / 엇뎨라 옷과 밥과애 窮困야  비치 매 맛게 인 이리 져그니오(胡爲困衣食 顏色少稱遂)〈두시 16:19ㄱ〉 / 男兒 功名 일우미  늘근 도 잇니라(男兒功名遂 亦在老大時)〈두시 22:30ㄱ〉 /  便安케 면 敵人이 어느 이시리오 正에 도라갈 혜유미 비릇 이놋다(安邊敵何有 反正計始遂)〈두시 22:36ㄱ-ㄴ〉 / 遂(부사) : 雲臺예 자 지즈로 阻隔나 녜 湛露詩 노라(遂阻雲臺宿 常懷湛露詩)〈두시 3:1ㄴ〉 /  알 모딘 버디 누엣거 지즈로 文公 지블 어두라(庭前猛虎臥 遂得文公廬)〈두시 9:18ㄱ〉 / 지즈로 馮夷ㅣ 와 붑 튜미 잇니 비르수 嬴女ㅣ 피리 잘 부로 알와라(遂有馮夷來繫鼓 始知嬴女善吹簫)〈두시 9:40ㄱ〉 / 防戍 부픈 오히려 기리 티니 수프렛 곳고리 지즈로 놀애 브르디 아니 놋다(戍鼓猶長擊 林鶯遂不歌)〈두시 10:3ㄴ-4ㄱ〉 / 白鵠이 지즈로 오디 아니코 大雞 爲야 시름놋다(白鵠遂不來 天雞爲愁思)〈두시 18:19ㄱ〉 / 두루 마곰 젹젹요 期約간마 키 簡略야 지즈로 뵈왓비 니노라(周防期稍稍 太簡遂匆匆)〈두시 19:10ㄱ〉 / 되 벼리  번 비치 솨시니 거믄 머릿 百姓이 지즈로 얽이니라(胡星一彗孛 黔首遂拘攣)〈두시 20:5ㄱ〉 / 지즈로 山陽애셔 글 지미 잇니 해 鮑叔이 아던 이 붓그리노라(遂有山陽作 多慚鮑叔知)〈두시 24:61ㄴ〉 / 그럴 貔虎  士로 여 모 니르와다 듣논 바애 勇猛히 호려 다(遂使貔虎士 奮身勇所聞)〈두시 5:31ㄴ〉.
주013)
업더라 : 없더라. 없[無]-+더+라.
주014)
착(著) : 놓다. 뒤집어쓰다. 『두시언해』에서 ‘著’은 ‘나타나다, 짓다, 입다, 붙다’의 의미로 쓰이는데, 전자는 ‘나타나다’로 후자는 ‘븥다, 두다’로 번역된다. ‘著’가 ‘놓다’로 번역된 것이 이 곳이 유일하다. ¶나타나다 : 일후믄 어느 文章기로 나타나리오 벼슬기 다 늘근 病으로 말리로다(名豈文章著 官應老病休)〈두시 3:34ㄴ-35ㄱ〉 / 짓다 : 제 지 詩集을 보니 모  이우로 슬허도다(觀其著詩集 頗亦恨枯槁)〈두시 3:58ㄴ〉 / 입다 : 혼 녜 范增이 玉마를 려 리니 吳國ㅅ 兵馬로 여  오 닙디 몯게 홀 디니라(憶昔范增碎玉斗 未使吳兵著白袍)〈두시 5:37ㄱ〉 / 븥다 : 늘근 리 바 길흘 알오 프른 매 주으려 사게 븓니라(老馬夜知道 蒼鷹飢著人)〈두시 5:53ㄱ〉 / 두다 : 새려 므렛 軒檻 더 라 낛 드리우메 供進고 부러  들구를 두어 라 예 드노라(新添水檻供垂釣 故著浮槎替入舟)〈두시 3:31ㄴ〉.
주015)
안천당낙일 심사착한회(眼穿當落日 心死著寒灰) : “눈이 뚫어지게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노라니, 마음이 죽어 찬 재를 뒤집어쓴 듯하도다!”란 말이다.
주016)
게 : 뚫리게. 뚫리도록. 뚫어지게. [穿]-+게. ‘다’는 자타동 양용동사로 쓰이는 ‘다’는 유일례로서 그 용례가 『두시언해』의 여기서만 보이며, 다른 문헌에서는 ‘듧다’가 쓰였다. ‘듧다’는 ‘경망스럽다’는 뜻이다. 참조 : 들우다. 들우디다. 듧다. ¶듧다 : 해 구무 듧고  지여 온 모 무두매 當얀 어루 모미 외녀(方其穴地負土야 全體而坑之얀 爲可忍耶아)〈법화 6:154ㄴ〉 / 祖師ㅅ 眞機 聖解 通호미 어려우며 凡情이 듧디 몯논 젼로 일후믈 關이라 니라〈금삼 서2:2ㄱ〉 / 眞機ㅣ 銀山鐵壁이 야 구더 듧디 어려우며 놉고 머러 더위잡디 몯고〈금삼 서2:5ㄱ〉 / 시 四明ㅅ 누네 듧고 주으려 楢溪옛 도토바 주니라(履穿四明雪 飢拾楢溪橡)〈두시 24:38ㄴ〉
들우다 : 다가 이 量애 너믄 사미면 石火電光  번 자보매 곧 자며 銀山鐵壁을 번 들우메들우리니(若是過量漢이면 石火電光 一捉애 便捉며 銀山鐵壁을 一透에 便透리니)〈금삼 서2:5ㄴ〉 / 精微호 溟涬을 들우리오(精微穿溟涬)〈두시 16:2ㄱ〉
들워디다 :  우희 무롭 다핫던 히 다 들워디옛더라(其榻上當膝處ㅣ 皆穿니라)〈번소 10:22ㄴ〉 / 그 평상 우희 무롭 단 고디 다 들워디니라(管寧이 嘗坐一木榻더니 積五十餘年이로 未嘗箕股니 其榻上當膝處ㅣ 皆穿니라)〈소학 6:121ㄱ〉
듧ᄭᅥᆸ다 : 麤率 듧 쳔쳔티 몯 씨라〈월석 2:11ㄴ〉 / 婬亂 맛들어나 수으를 즐기거나 듧 조심 아니다가〈석상 9:37ㄱ〉.
주017)
라오 : 바라봄을. [望]-+오+ㅁ+. 15세기의 ‘라다’는 ‘바라보다’와 ‘원하다’의 뜻으로 쓰였는데 여기서는 ‘바라보다’의 뜻으로 쓰였다. ¶바라보다 : 蜜多羅ㅣ 라고 마니 몯 안자 가라 업시 니러나 太子 절고 두루 돌며 붓그려더라(蜜多 遙見 不能自禁 遂使其身 怱起 屈身頂禮於太子足 禮拜起已 四面顧視生大羞慚)〈석상 3:8ㄱ〉 / 渭水ㅅ 셔 머리 횟돌아 라노라(回首清渭濱)〈두시 19:3ㄱ〉
원하다 : 庶幾 그러긧고 라노라 논 디라〈월석 1:석상서6ㄱ〉 / 밤나 官軍의 오 다시 라다(日夜更望官軍至)〈두시 4:4ㄱ〉.
주018)
디 : 지는. 디[落]-+. 15세기 국어에서 ‘·디-’는 ‘떨어지다, 거꾸러지다’의 뜻으로 쓰였고, ‘:디-’는 ‘떨어뜨리다’의 뜻으로 쓰였다. ¶디다(타동사) : 阿難이 듣고 다시 슬허 믈 디여(阿難이 聞已고 重復悲淚야)〈능엄 1:92ㄴ〉 / 彈子 쇠로기  새 디놋다(彈落似鴞禽)〈두시 3:14ㄴ〉
디다(자동사) : 내 님금 그리샤 後宮에 드르 제 하 벼리 눈  디니다〈용가 50〉 / 수프렛 고 비 다니 臙脂ㅣ 디 고(林花著雨燕脂落)〈두시 11:21ㄱ〉.
주019)
노햇 : 놓여 있는. 뒤집어쓴. 놓[著/置]-+아#잇-+. ¶노햇다 : 큰 그르세  만히 봇가 덥게야 주머니에 녀허 가매 노햇다가 거든 즉재 라〈구급방 상:8ㄴ〉 / 봄 니를어늘 기픈 새 나리 록 올오  돋거늘 고기 잡  바 니 노햇도다〈남명 상:63ㄴ〉 / 고미 낫  어르 萬壑애 가 내야 迎風寒露館ㅅ 玉壺애 노햇 도다(炯如一段清冰出萬壑 置在迎風寒露之玉壺)〈두시 8:22ㄱ〉 / 드트른 萊蕪縣ㅅ 실의 고 堂앤 單父의 거믄괴 빗노햇도다(塵滿萊蕪甑 堂橫單父琴)〈두시 21:35ㄱ〉.
주020)
도다 : 듯하도다. 듯하구나. #-+도+다.
주021)
무수행상인 연봉망혹개(霧樹行相引 蓮峰望或開) : “안개 낀 나무가 자신을 끌고 가고, 연화봉이 보였다 가렸다. 한다.”는 말로, 자신이 길을 가면서 나타나는 주변 상황의 변화를 뜻한다.
주022)
행로지간(行路之間)애 : 적에게 점령되어 있던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이 있는 봉상 행재소로 가는 길에.
주023)
망수즉여인아지행(望樹則如引我之行)이오 : 나무들을 바라보니, 마치 내가 가는 길을 이끄는 듯하고.
주024)
망산즉혹견기배(望山則或見其背)며 혹견기면야(或見其面也)ㅣ라 : 지나가면서 산을 바라보면 구름이 가렸다가 잠시 잠시 구름이 열려, 산의 모습이 보인다는 말이다.
주025)
 : 낀. [冠]-+ㄴ. ¶다 : 아래 前生브터 根이 니근 天龍八部ㅣ 一時예 圍繞 님 구룸  얫더니〈월석 4:46ㄱ〉 / 셔울히 구름  뫼 밧기로소니 音問ㅅ 글워리 괴외야 오디 아니놋다(京洛雲山外 音書靜不來)〈두시 3:27ㄴ〉.
주026)
남근 : 나무는. 남ㄱ+은. 15세기 국어의 ‘나모’는 ‘ㄱ’곡용명사로 ‘주제조사, 주격, 대격, 처격’은 각각 ‘남ᄀᆞᆫ, 남기, 남, 남ᄀᆡ’로 ‘공동격’은 ‘나모와’로 실현된다. ‘남근’은 ‘남ᄀᆞᆫ’의 이표기이다. 참조 : 구무. ¶나모 : 곳과 果實와 플와 나모와 머그리도 이시며(或食花果草木)〈석상 3:33ㄴ〉 / 매 隄防호 藉賴야 모 히믈 내야 나모 돌로 노피 마고   當야 다(終藉隄防出衆力 高擁木石當清秋)〈두시 3:71ㄴ〉 / 남기 : 젼혀 이 東山 남기 됴 노니논 히라(此園茂盛 當用遊戲逍遙散志)〈석상 6:24ㄱ〉 / 믌 뉘누리예 하야로비 沐浴니 엇던 고 외로왼 남기 고지 프니 제 分明도다(盤渦鷺浴底心性 獨樹花發自分明)〈두시 3:34ㄱ〉 / 남 : 믈와 블와 와 가 남 누리도 잇더니(或事水火日月 翹脚臥灰棘水火上者)〈석상 3:33ㄴ〉 / 랑호니 녜 서늘  追尋호 즐겨 부러 못 남 횟도라 니다니(랑호니 녜 서늘  追尋호 즐겨 부러 못 남 횟도라 니다니)〈두시 2:66ㄴ〉.
주027)
녀가매 : 감에. 다녀감에. 걸어감에. 니/녀[行]-+어#가-[行]+ㅁ+애.
주028)
서르 : 서로.
주029)
연화봉(蓮花峯) : 연화봉은 중국 여러 곳에 있지만, 여기서는 섬서(陝西) 화산(華山)에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화악지(華嶽志)』에 보면 “산 정상에 봉우리가 있는데, 이름이 연화봉이다. 상궁이 있는데, 궁 앞에 옥정이라 불리는 연못이 있어 잎이 천 개나 되는 연꽃이 피고, 이것을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한다. 또 옥녀가 얼굴을 씻는 동이를 말한다. 당나라 두보의 시에 보면 ‘어떻게 신선의 구절장을 얻어, 집고 옥녀의 얼굴 씻는 동이에 이를까.’란 구절이 있는데, 대개 봉우리의 가장 높은 곳이다.(嶽頂中峯曰蓮華峯 有上宮 宮前有池爲玉井 生千葉白蓮華 服之令人羽化 亦謂之玉女洗頭盆 唐杜甫詩 安得仙人九節杖 拄到玉女洗頭盆 蓋峯之最高處也)”라고 하였다.
주030)
라니 : 바라보니. 15세기 ‘라다’는 ‘바라보다’와 ‘원하다’의 뜻이 있다. 자세한 것은 앞의 주석을 참조할 것.
주031)
뵈놋다 : 보이는구나. 보[見]-+이++오+ㅅ+다.
주032)
소친경노수 신고적중래(所親驚老瘦 辛苦賊中來) : 앞 구는 ‘친하던 벗들이 두보의 늙고 야윈 모습을 보고 놀랐다.’라는 말이며, 뒤 구는 ‘온갓 고생을 하면서, 도적떼로부터 빠져나왔노라.’라는 말이다.
주033)
親 밧 : 친한. 원시의 ‘所親’을 번역한 말이다. 『두시언해』 권3에서 주석을 뺀 두시 본문에 나오는 ‘所’의 번역 양상은 예문과 같다. ¶곧 : 어러이 라 매 어드러 가리오 죠고맛 조 欽敬논 고 愧謝노라(狂走終奚適 微才謝所欽)〈두시 3:15ㄱ〉 / 바 :  번 업더뎌 매 損傷홀 고 혜아리디 아니호니 人生애 들 훤히 호리라 면 辱외욜 배 한 거시로다(不虞一蹶終損傷 人生快意多所辱)〈두시 3:53ㄱ〉 / 명사형 :  묏 미틧 솔 니 거나 리거나 호미 사 조매 잇니라(又如隴底松 用捨在所尋)〈두시 3:57ㄴ〉 / 所以 : 飄飄히 뇨미 므스 거시 뇨 하  예  몰애옛 며기로다(飄飄何所似 天地一沙鷗)〈두시 3:35ㄱ〉.
주034)
신고(辛苦)히 : 『표준국어대사전』에 ‘신고(辛苦)하다’는 ‘어려운 일을 당하여 몹시 애쓰다’로 풀이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괴로움을 당해 가면서 간신히’의 뜻이다. 15세기에 ‘신고(辛苦)’를 매개로 하는 단어로 많이 쓰였지만 ‘辛苦히’는 여기의 이 용례가 유일하다.
주035)
도적(盜賊)의 서리로셔 : 도적의 사이로부터. ‘서리’는 ‘사이’로 번역되지만 정확한 의미는 어떤 공간을 이루는 사이에 개체들이 많음을 가리키는 말로, 여기서는 도적들이 우굴거리는 공간을 말한다. ¶서리 : 狄人ㅅ 서리예 가샤 狄人이 외어늘 岐山 올샴도 하 디시니〈용가 4〉 / 差池히 組冕 화 니 다봇 서리예셔 니러나니(差池分組冕 合沓起蒿萊)〈두시 3:10ㄱ〉.
주036)
오라 : 왔다. 오[來]-+∅+라. 부정과거시제형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오라(평서형) : 權門엔 噂畓호미 할  孫子 자 오라(權門多噂遝 且復尋諸孫)〈두시 8:32ㄱ〉 / 말왐 니 호매 믈 흘류믈 노니 늘구메 中堂애 갓가이 오라(萍漂忍流涕 衰颯近中堂)〈두시 8:45ㄱ〉 / 서르 마초매 길 즈로 붓그리노니  타 階除예 니르러 오라(相邀愧泥濘 騎馬到階除)〈두시 12:32ㄴ〉 / 오라(명령) : 健陟이 기르마 지허 오라 시니〈석상 3:29ㄴ〉 / 靑衣 브려 긔별 아라 오라 시니〈석상 6:2ㄱ〉 / 오라(부사) : 閻浮提예 려와 닐오 如來 아니 오라 涅槃애 드르시리라〈월석 21:200ㄴ〉 / 聖賢ㅅ 일후미 오라 아라니 나그내로 뇨매 病이 마다 보차놋다(聖賢名古邈 羈旅病年侵)〈두시 3:13ㄴ〉.
주037)
수사(愁思) : 근심에 빠져 생각하는 것.
주038)
호가(胡笳) : 중국 고대 북방민족이 쓴 관악기. 전설에 따르면 한(漢)나라의 장건(張騫) 서역(西域)엣 가져왔는데, 한위(漢魏) 때의 고취악(鼓吹樂)에서 항상 사용했다.
주039)
한원(漢苑) : 경도(京都)의 곡강(曲江)과 남원(南苑) 등지를 가리키는데, 당나라 사람들은 ‘한(漢)’으로 ‘당(唐)’을 통칭했으며, 『두시언해』에서도 ‘한(漢)’으로 ‘당(唐)’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주040)
수사호가석 처량한원춘(愁思胡笳夕 凄凉漢苑春) : “근심에 젖어 오랑캐 풀피리 부는 저녁을 생각함이여, 서늘하고 슬픈 기운에 잠긴 한나라 동산의 봄이로다!”란 말이다.
주041)
원유(苑囿) : 새와 짐승을 기르는 나라의 동산. 곧 궁궐 안에 있는 동산. 원유(園囿).
주042)
시름왼 : 걱정되는. 걱정스런. 시름[愁]#외-+ㄴ. 15세기 문헌에서 ‘시름외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보이며, 일반적으로는 ‘시름다’가 쓰였다. ¶시름외다 :  부 수풄 소리 것고 시름왼 돌 양 改變놋다(颼颼林響交 慘慘石狀變)〈두시 1:23ㄱ〉 / 셔울히 다시 블 븓디 아니야 涇渭옛 사미 시름왼 양 훤야(京都不再火 涇渭開愁容)〈두시 4:24ㄱ〉 / 시름다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 머므디 몯놋다 시고 도라 드르샤 시름야 더시다〈석상 3:18ㄱ〉 / 주려셔 집마다  빌오 시름얀 곧마다 숤盞 求노라(飢籍家家米 愁徵處處盃)〈두시 3:9ㄴ〉.
주043)
되 픗뎌 : 되의 풀피리. 플+ㅅ+뎌. 15세기 국어에서 속격조사 ‘ㅅ’이 선행하는 명사의 말음을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참조 : 짓리. ¶짓리 : 그 짓리  가져 나오〈석상 6:14ㄱ〉 / 우리 짓碑 眛滅티 아니고 王氏의 우므른 依然야 인니라(吾家碑不昧 王氏井依然)〈두시 2:14ㄱ〉.
주044)
나조히여 : 저녁이여. 나조ㅎ+이+여. ¶나조ㅎ : 阿脩羅ㅣ 바 가온 나아 바 믈  굼긔 드러 이셔 아 虛空애 나아 노다가 나조 므레 가 자니〈석상 13:10ㄴ〉 / 늘근 나해 두루 브터 니 슬호미오 오 나조 亂애 여여셔 우노라(暮年漂泊恨 今夕亂離啼)〈두시 3:19ㄴ〉.
주045)
서코 : 서늘하고. 서#-+고.
주046)
보미로다 : 봄이도다. 봄[春]+이+로+다.
주047)
생환금일사 간도잠시인(生還今日事 閒道暫時人) : “오늘 무사히 목숨을 건져 돌아왔지만, 사람 사는 것은 사잇길을 잠시 걷는 것과 같다.”는 말로, 사람이 살아갈 때 늘 위험은 따른다는 뜻이다.
주048)
간극지도(間隙之道)애 : 장안에서 봉상으로 가는 사이의 길에.
주049)
즈길흐로 : 지름길로. 즈름+ㅅ+길ㅎ+으로. ‘즈름’은 분포상 자립명사이었으나, 15세기에는 이미 ‘즈길ㅎ’로만 쓰였다.
주050)
아니 한  : 많지 않은 사이의. 아니 하-[多]+ㄴ [時]+의+ㅅ. 〈중간본〉은 ‘아니 한 ’이다. ¶아니 한 : 人生애 世閒애 이셔 모락 흐르락 호미  아니 한 로다(人生在世間 聚散亦暫時)〈두시 22:22ㄴ〉 / 아니 한 더데 尊과 親과 야 指揮야 도라보아 브튜믈 잇게 니라(俄頃辨尊親 指揮存顧托)〈두시 3:66ㄱ〉.
주051)
사미러라 : 사람이더라. 사+이+더+라. ‘러’는 계사 ‘이-’ 뒤에서 ‘더’의 형태가 바뀐 것이다.
주052)
남양(南陽) :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를 일컫는 말. 남양가기(南陽佳氣)는 남양(南陽)의 아름다운 기운. 광무제 유수(劉秀)는 남양 사람인데, 춘릉(舂陵)에서 병사를 일으켰다. 망기술사(望氣術士) 소백아(蘇伯阿)가 왕망(王莽)의 명으로 파견되어 남양에 이르렀는데, 멀리 춘릉을 바라보면서 “기운이 아름답구나. 가득 찬 데다 푸르스름하구나.”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제왕(帝王)의 기운을 일컫게 되었다.
주053)
사례장초도 남양기이신(司隸章初覩 南陽氣已新) : 안녹산의 난이 계속되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았다가 숙종이 봉상 행재소에서 있으니 비로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고 중흥되고 있음을 말한다.
주054)
광무(光武) : 한나라 광무제(光武帝, 기원전 6-57) 유수(劉秀)를 가리키는 말. 후한의 초대 황제(재위, 25-57). 남양(南陽) 채양(蔡陽) 사람. 자는 문숙(文叔)이고,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9세손이다.
주055)
사례교위(司隷校尉) : 도둑을 잡고 비상을 경계하는 벼슬. 교위(校尉)는 한나라 때 설치된 관직 이름으로, 군대의 부장(副將)에 해당한다. 직무에 따라 무기교위(戊己校尉), 중루교위(中壘校尉) 등의 명칭이 붙여졌다. 한나라 이후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장관을 일컫는 칭호로 쓰이기도 했다. 당나라 이후 지위가 점점 약해졌다.
주056)
광무기(光武紀) : 『후한서』의 편명(篇名). 광무제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주057)
망기자(望氣者)ㅣ 요망남양춘릉왈기가재(遙望南陽春陵曰氣佳哉)라 : 『후한서』 「광무기」에 기운을 바라본다[望氣]. 것은 아득히 광무의 고향인 남양(南陽)에 있는 춘릉(春陵)을 보고 “기운이 아름답다.”고 말한다는 것이라는 말이다.
주058)
사례(司隷)ㅅ 버블 : 한나라 때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던 사례교위(司隷校尉)의 법을.
주059)
남양(南陽)ㅅ 기운(氣運)이 : 광무제의 기운이.
주060)
마 : 이미. 벌써. ¶마 : 太子 羅睺羅ㅣ 나히 마 아호빌(太子羅睺 年已九歲)〈석상 6:3ㄱ〉 / 너희 비들 마가 줄 靑錢 마 일워 뒷노니 반기 됴 마로 여 내 이베 들에 라(已辦靑錢防雇直 當令美味入吾脣)〈두시 3:32ㄴ〉.
주061)
희심번도극 오인루첨건(喜心飜到極 嗚咽淚沾巾) : “기쁜 마음이 흘러넘쳐 극에 이르니, 목 놓아 울어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란 말이다.
주062)
낙극이애야(樂極而哀也)ㅣ라 :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슬픔이 복받치는 것을 말한다.
주063)
깃븐 : 기쁜. -[喜]+브+ㄴ. ‘-브-’는 형용사파생접미사이다. 참고. 다. 슳다. 슬프다. ¶깃브다 : 내 閻浮提 거느려 王 외야도 깃브디 아니고〈월석 25:96ㄱ〉 / 燈花ㅣ 모  깃브니 프른 수를 正히 서르 親히 호라(燈花何太喜 酒綠正相親)〈두시 15:56ㄴ〉 / 다 : 그 짓 리  가져 나오 婆羅門이 보고 깃거 이 각시 내 얻니논 매 맛도다〈석상 6:14ㄱ〉 / 여윈 겨지비 깃거 치 도로 빗나며 어린 리 머리 제 빗다(瘦妻面復光 癡女頭自櫛)〈두시 1:6ㄴ〉 / 슬프다 : 그  目連比丘와 大菩薩衆이 다  歡喜야 目連의 슬픈 우룸쏘리 훤히 업스니라〈월석 23:96ㄱ〉 / 旌旗ㅅ 비치 나조 슬프니 風水ㅅ 氣運에  히 보엿도다(旌竿暮慘澹 風水白刃澀)〈두시 1:22ㄱ〉 / 슳다 : 어마니미 太子ㅅ 우희 업더디여 슬흐시더라〈석상 11:21ㄴ〉 / 아라히 步兵이 울오 便安히 몯 자셔 仲宣이 슬흐니라(蒼茫步兵哭 展轉仲宣哀)〈두시 3:9ㄴ〉.
주064)
도혀 : 도로. 돌[回]-++히+어. ‘’와 ‘히’는 사동접미사이다.
주065)
 요매 : 가장 기쁨에. 극도로 기뻐. ‘요매’는 ‘-+오+ㅁ+애’로 분석되는데, 이때의 ‘-’는 앞의 ‘깃브-’를 받는 대용언이다.
주066)
저지노라 : 젖게 하노라. 적시는구나. 젖[潤]-+이++오+라. ‘저지다’는 ‘젖다’의 사동사이다. ¶저지다 : 六合애 저지시며 十方애 저지샤(潤之六合시며 沾之十方샤)〈월석 1:석상서7ㄴ〉 / 프렛 이스리  해 저지고 거믜주리 지즈로 갇디 아니얏도다(草露亦多濕 蛛絲仍未收)〈두시 3:27ㄱ〉 / 젖다 : 義 디니 비  마로 골오 젓고〈석상 13:26ㄴ〉 / 더운 비예  저즌 긔운이 머므렛고 맷  나죗 서늘호 빌이놋다(暑雨留蒸濕 江風借夕涼)〈두시 3:12ㄱ〉.
주067)
사거빙수보 귀래시자련(死去憑誰報 歸來始自憐) : “죽으면 누구를 의지해 알리겠는가, 돌아오니 비로소 스스로 슬퍼하노라.”란 말이다.
주068)
반사지이자석야(反思之而自惜也)ㅣ라 : 적진에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스스로 애석하다는 말이다.
주069)
가더든 : 가면. 가[去]-+더+든. 가정의 의미는 ‘든’에 있으며, ‘더’는 ‘거’와 계열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과거 사실을 회상하는 기능이 있다. ¶-더든 :  次第로 비녀 됴 차반 어더든 어미 이받고 사오나 차반 어더든 제 먹거〈월석 20:12ㄴ〉 / 프른 묏부리옛 리 萬一 업더든 머리옌 사 시름에 리랏다(若無靑嶂月 愁殺白頭人)〈두시 12:2ㄱ〉 / -거든 : 粉과 燕脂와 瓔珞과 옷과 花鬘과 곳과 쇠로 몟거든 사오나 사미 몰라 소가 貪  내니〈석상 3:26ㄱ〉 / 내 비록 諫諍 資質ㅣ 업스나 내 나니거든 님그미 그르실 이리 겨실가 젓노라(雖乏諫諍姿 恐君有遺失)〈두시 1:1ㄴ-2ㄱ〉.
주070)
누를 브터 : 누구를 의지해서. 누[誰]+를 븥-[依]+어. 원시의 ‘빙수(憑誰)’를 번역한 말이다.
주071)
알외리오 : 알리겠는가? 알[知]-+오+이+리+오. ‘오’와 ‘이’는 모두 사동접미사이다.
주072)
비루수 : 비로소. 『두시언해』에서는 ‘비로소’가 ‘비루수, 비르수’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참조 : ‘비록’과 ‘비룩’ ¶비루수 : 녜 엇뎨 摧殘야셔 비루수 애왇븐  베푸미 아니리오 지츨 帶야슈믈 붓그리며 얼구릐 어류 슬놋다(爾豈摧殘始發憤 羞帶羽翮傷形愚)〈두시 17:5ㄱ〉 / 비르수 : 비르수 이 乾坤애 王室이 正도소니 도혀 江漢앳 客 넉스로 여 에 다(始是乾坤王室正 却敎江漢客魂銷)〈두시 5:22ㄴ〉 / 비로소 : 丈人 비로소 니서 드르라 賤子ㅣ 請 다 베퍼 닐오리라(丈人試靜聽 賤子請具陳)〈두시 19:1ㄱ〉.
주073)
슬허노라 : 슬퍼하노라. 슳[悲]-+어#-++오+라. ‘-어다’는 동사나 형용사를 동사로 파생시키는 문법적 장치다. 참조 : 깃거다. ¶슬허다 : 須達이도 그 말 듣고 슬허더라〈석상 6:38ㄱ〉 / 桃源ㅅ 안 아라히 랑고 내 身世의 䟽拙혼 고 더옥 슬허노라(緬思桃源內 益歎身世拙)〈두시 1:4ㄱ〉 / 깃거다 : 그  모댓 사미 다 降服야 깃거더니〈석상 6:34ㄴ〉 / 빈 곬 아래로 날호여 도라오니 僕從히 슬허 깃거디 아니놋다(威運哀壑底 徒旅慘不悅)〈두시 1:17ㄴ〉.
주074)
무공(武功) : 섬서성 함양시 무공현으로 장안 근처에 있다.
주075)
유첨태백설 희우무공천(猶瞻太白雪 喜遇武功天) : “오히려 태백산에 쌓인 눈을 보노니, 기쁘게 무공현의 하늘을 만나네.”란 말이다.
주076)
태백산(太白山) : 산(山) 이름. 섬서성(陝西省) 미현(眉縣) 동남쪽, 봉상(鳳翔) 근처에 있다.
주077)
경조(京兆) : 중국의 수도를 지칭하는 용어. 일반적으로 한대(漢代) 이후에는 섬서성(陝西省) 장안(長安)에서 동쪽으로 화현(華縣)에 이르는 지역을 말하며, 장안을 비롯한 12개의 현이 속해 있었다. 그리고 명청시대(明淸時代) 이후에는 순천부(順天府), 즉 지금의 북경(北京)을 경조라고 했다.
주078)
오히려 : 오히려. 오히+려. ‘오힐’은 ‘같다’의 뜻이며 ‘-려’는 부사파생접미사이다. 참조 : 새려.
주079)
맛보 : 마주 봄을. 맞[對]-+보-[示]+오+ㅁ+. ‘보다’의 어간의 일부인 ‘오’와 명사형에 출현하는 ‘오’가 중복되어 생략된 표기이다. ‘맛을 보다’의 뜻인 ‘맛보다’와는 다른 동사이다. ¶맛보다(마주보다) : 우리 오 이 龍王 맛보리니 威力이 眞實로 우릴 이가 몯 이가〈월석 25:106ㄴ〉 / 아 가면 짓 送葬 맛보니 앏뒤히 다 빗나더라(朝逢富家葬 前後皆輝光)〈두시 2:70ㄱ〉 / 맛보다(맛을 보다) : 혀에 맛보미 味塵이오〈월석 11:47ㄴ〉 / 나그내 모미 녯 버들 맛보니 興心 베푸믄 林泉으로브테로다(客身逢故舊 發興自林泉)〈두시 10:13ㄴ〉.
주080)
깃노라 : 기뻐하노라. [喜]-++오+라.
주081)
천관(千官) : ①주(周)나라 때 육관(六官)의 하나. 그 장관은 총재(冢宰)라 하여, 총리대신에 해당했다. ②임금을 모신다는 뜻으로, 관리를 일컫는 말. ③천문(天文). ④시청후미촉(視聽嗅味觸)의 오관. ⑤이부(吏部)의 다른 이름.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082)
영정천관리 심소칠교전(影靜千官裏 心蘇七校前) : “천자가 계신 곳에 오니 그림자마저 편해지고, 여러 관리들을 보니 마음이 안정된다.”는 말로, 임금과 신하들을 직접 보게 되니, 세상이 안정되어감을 알겠다는 뜻이다.
주083)
칠교(七校) : 한무제가 일곱 교위(校尉)를 설치했는데, 여기서는 숙종(肅宗) 어전의 무위(武衛)를 가리킨다.
주084)
중루(中壘) : 전한(前漢) 때의 교위(校尉) 가운데 하나. 북군(北軍) 영루(營壘)의 일을 맡았다. 후한(後漢) 때는 없어졌다. 유향(劉向)이 이 직책을 가져, 후세에 그를 ‘중루’라 불렀다.
주085)
둔기(屯騎) : ①무리가 많은 수종(隨從) 기병(騎兵). ②관직(官職) 이름. ‘둔기교위(屯騎校尉)의 약칭이다.
주086)
보병(步兵) : 관직 이름. ‘보병교위(步兵校尉)’의 약칭이다.
주087)
월기(越騎) : 관직 이름. ‘월기교위(越騎校尉)’의 약칭이다.
주088)
장수(長水) : 관직 이름. ‘장수교위(長水校尉)’의 약칭이다.
주089)
사성(射聲) : 한(漢)나라 때의 무관(武官). ‘사성교위(射聲校尉)의 약칭인데, 한무제(漢武帝) 초에 설치한 팔교위(八校尉) 가운데 하나다.
주090)
호분(虎賁) : 관직(官職) 이름. 국군(國君)을 시위(侍衛)하고, 왕궁과 왕문을 보위(保衛)하는 관직이다.
주091)
그르메 : 그림자는.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참조 : 그르메. 그리메. ¶그르메 : 므렛 그르메 야(如水中形)〈석상 11:36ㄴ〉 / 므리 조니 樓ㅅ 그르메 바 뎻고 뫼히 어드우니   기우도다(水淨樓陰直 山昏塞日斜)〈두시 3:25ㄱ-ㄴ〉 / 그리메 : 그 새 그리메 보고 횟돌며 래 티고 슬피 우니 고 和雅더니(鳥見影顧眄迴惶悲鳴 振迅淸暢和雅)〈월석 25:81ㄴ〉 / 그리메 春風   보아 알리로소니 챗 玉  바 넉시 갓 도라오놋다(畫圖省識春風面 環佩空歸月夜魂)〈두시 3:68ㄴ〉.
주092)
천관(千官)ㅅ 소개 와 : 천관(千官)의 속에 와서.
주093)
안정(安靜)고 : 안정하고. 안정되고.
주094)
요라 : 깨어라. [蘇]-+오+라. ¶다 : 어마니미 드르시고 안 답샤 낫라 아샤 것죽거시  믈 리여 시니라〈석상 11:20ㄴ〉 / 煩促호매 더운 病이 엇뎨 侵逼디 아니리오 믈어뎌 지여셔 조오라 디 몯호라(煩促瘴豈侵 頹倚睡未醒)〈두시 1:50ㄱ〉.
주095)
금조(今朝) : 오늘 아침. 지금의 조정. 지금의 임금.
주096)
사직(社稷) : 나라에서 백성의 복을 위해 제사하는 국토지주(國土之主)의 사(社)와 오곡지장(五穀之長)의 직(稷). 임금이 나라를 세우면, 먼저 사직과 종묘를 세웠는데, 사직은 궁성의 동쪽에 종묘는 궁성의 서쪽에 세움. 임금을 사직의 주인이라고 하여, 나라가 존재하면, 사직의 제사가 행하여지고 망하면, 사직의 제사는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시되어, 국가(國家)의 이칭(異稱)으로서 종사(宗社)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주097)
금조한사직 신수중흥년(今朝漢社稷 新數中興年) : “오늘 아침에야 한나라의 종묘사직이, 새로 다시 흥기(興起)하신 해를 헤아리게 되었네.”란 말이다.
주098)
다시 흥기(興起)신 브터 : 다시 흥기하신 해로부터. 즉 지금까지의 해는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지 못하였지만, 올해부터는 나라가 다시 중흥하는 해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주099)
새려 : 새로. 새[新]+려. ‘려’는 부사파생접미사이다. ‘새려’는 『두시언해』에서만 보이는 단어이다. ¶새려 : 새려 므렛 軒檻 더 라 낛 드리우메 供進고 부러  들구를 두어 라 예 드노라(新添水檻供垂釣 故著浮槎替入舟)〈두시 3:30ㄴ〉 / 洛陽ㅅ 宮殿이 블 브터 다 업더니 宗廟 여 톳 굼긔 새려 짓놋다(洛陽宮殿燒焚盡 宗廟新除狐兔穴)〈두시 3:62ㄴ〉.
주100)
혜요리라 : 헤아리리라. 헤아릴 것이다. 혜-[數]+오+리+라. 참조 : 혜아리다. ¶혜다 :  일훔 아니 지면 後ㅅ 사미 혜요 섯그릴 일훔 짇니라〈월석 2:49ㄴ〉 / 온 가짓 혜아료로 便安며 어려우믈 보니 녜 어딘 사 혜요미 分明도다(百慮視安危 分明曩賢計)〈두시 2:64ㄱ〉 / 헤아리다 : 戱論 노야 議論씨니 야 혜아리 正티 몯 미라〈석상 19:25ㄱ〉 / 온 가짓 혜아료로 便安며 어려우믈 보니 녜 어딘 사 혜요미 分明도다(百慮視安危 分明曩賢計)〈두시 2:64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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