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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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적이 모두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5수[喜聞盜賊蕃寇揔退口號五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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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이 모두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5수[喜聞盜賊蕃寇揔退口號五首]


喜聞盜賊蕃寇揔退口號 五首 주001)
희문도적번구양퇴구호오수(喜聞盜賊蕃寇揔退口號五首)
이 시는 대력(大曆) 3년(768) 봄에 지어졌다. 이때 두보는 여전히 기주(夔州)에 있었다. 대력 2년(767) 10월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 노사공(露嗣恭)이 영주성(靈州城)에서 토번(吐蕃)을 격파하고 2천여 명을 사살했다. 대력 3년 이른 봄에 두보는 토번군이 모두 퇴각했다는 소식을 듣는데, 이에 이 시를 지어 당시의 기쁨을 표현하였다.

희문도적번구양퇴구호 오수
(도적이 모두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5수)

〈첫째 수〉

蕭關 주002)
소관(蕭關)
옛날의 관명(關名). 옛터는 영주(靈州, 지금의 寧夏 固原 동남쪽) 부근에 있었다. 관(關)을 나가면 새북(塞北)과 바로 통하는 요충지다.
隴水 주003)
농수(隴水)
하류(河流) 이름. 근원이 농산(隴山)에서 나와 이렇게 불린다. 대력(大曆) 2년(767) 10월 노사공(路嗣恭)이 소롱(蕭隴) 일대에서 토번을 격파했다.
入官軍 靑海 주004)
청해(靑海)
호수(湖水) 이름. 중국 최대의 담수호다. 옛날에는 선수(鮮水) 또는 서해(西海)로 불렸고, 비화강해(卑禾羌海)라고도 했다. 북위(北魏) 때 비로소 청해로 불렸다. 그리하여 멀고 황막(荒漠)한 변방 지역을 비유한다.
黃河 주005)
황하(黃河)
중국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중국 제2의 강. 길이는 5,464km, 유역면적 75만 2443㎢이다. 청해성(靑海省) 바옌카라산맥[巴顔喀拉山脈]의 야허라다쩌산[雅合拉達澤山, 5,442m]에서 발원하는 웨구쭝례거[約古宗列渠]가 원류로서, 성숙해(星宿海) 및 악릉호(鄂陵湖)와 찰릉호(札陵湖)를 거친 하류를 가리킨다. 황하강 중·하류는 중국문명의 요람지(搖籃地)로서 이름 높다. 유역에는 산서성 남전현(藍田縣)에서 발견된 남전원인(藍田原人)의 유적을 비롯한 채도(彩陶)·흑도기(黑陶期)와 은(殷)나라의 유물이 수없이 발견되었고, 그 밖에 역대 왕조의 사적도 무수히 남아 있다. 청해성 내륙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청해와 함께 멀고 황량한 새외(塞外) 지역을 비유하기도 한다. 여기서 청해(靑海)와 황하(黃河)는 모두 새외(塞外)를 가리키는 말이다.
卷塞雲
주006)
소관농수입관군 청해황하권새운(蕭關隴水入官軍 靑海黃河卷塞雲)
“변방 지역으로 관군이 들어가 도적떼를 격파하니 청해와 황하 변새 지역에 드리운 불길함이 걷어버렸다”란 말이다.
【蕭關隴水 皆秦地니 주007)
진지(秦地)니
옛 진나라의 땅이니.
言官軍이 入居而吐蕃이 退散也ㅣ라 靑海 即吐蕃之地라】

蕭關과 隴水에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0ㄱ

官軍이 드니 주008)
관군(官軍)이 드니
관군이 그 지역을 탈환하니. ‘드니’는 ‘들[入]-+니’로 분석된다.
靑海와 黃河애  주009)

가의. [邊]+애+ㅅ. ‘’은 변방을 가리킨다. 〈중간본〉은 ‘앳’이다.
구루믈 거더리도다 주010)
구루믈 거더리도다
구름을 걷어버리도다. 구룸+을 걷[捲]-+어#리-+도+다. ‘구름’은 변방에 끼인 근심 즉 오랑캐가 변방을 점령하여 수도 장안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과 변방 자체를 점령하여 당나라의 국경을 긴장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걷[捲]-+어+리-+도+다’로 분석된다. ¶걷다 : 帳이며 니불  빗난 거슬 거더 아 디니라〈내훈1:55ㄱ〉 / 금 빈혀로 눈애 리 거슬 거더 리면 비디 온 硨磲ㅣ라와 重리라(金篦刮眼膜 價重百車渠)〈두시 9:19ㄱ〉.

【한자음】 소관농수입관군 청해황하권새운【‘소관(蕭關)’과 ‘농수(隴水)’는 모두 진(秦)나라 땅이니, 관군이 들어와 있으니 토번(吐蕃)이 물러나 흩어진 것을 말한다. ‘청해(靑海)’는 즉 토번의 땅이다.】
【언해역】 소관(蕭關)과 농수(隴水)에 관군이 들어가니, 청해(靑海)와 황하에 변방의 구름을 걷어버리도다!

北極 주011)
북극(北極)
조정(朝廷)을 비유하는 말. 『두시언해』의 주석에 ‘북궐(北闕)’이라 하였다.
轉愁龍虎氣 주012)
용호기(龍虎氣)
용호(龍虎)는 용호군(龍虎軍) 즉 금군(禁軍)을 가리키는 말. 당시 환관 어조은(魚朝恩)이 금군을 관장하고 있어, 안으로 근심이 아주 컸다.
西戎 주013)
서융(西戎)
토번(吐蕃)을 가리키는 말.
休縱犬羊 주014)
견양(犬羊)
①개와 양처럼 ‘하찮은 것’을 비유하는 말. ②개와 양 같은 성품. 또는 그런 성품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③변방에 사는 이민족들에 대한 경멸의 뜻을 담아 쓰는 말. 여기서는 ③의 뜻이다.
주015)
북극전수룡호기 서융휴종견양군(北極轉愁龍虎氣 西戎休縱犬羊群)
“조정을 지키는 군대의 기상이 넘치는 것을 두려워해 서융은 함부로 견양과 같은 병사를 풀어놓지 말라.”는 말이다.
范增 주016)
범증(范增)
기원전 277-기원전 204. 진(秦)나라 말기 거소(居鄛) 사람. 항우(項羽)를 위해 일한 모사(謀士)다. 진(秦)나라 말 농민군이 일어났을 때 항량(項梁)에게 초(楚)나라 귀족의 후예를 세워 널리 호소하라고 권했다. 항량이 죽자 항우의 휘하에 들어가 훌륭한 계책을 많이 제안해, 항우로부터 아부(亞父)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존중되었다. 여러 번 유비(劉備)를 죽이라고 충고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유비의 반간계(反間計)로 항우의 의심을 사 직책을 잃고 권한을 빼앗기자, 울분을 못 이겨 떠나다가 등창이 도져 도중에 병사했다.
이 曰吾ㅣ 使人望漢王 주017)
한왕(漢王)
진(秦)나라 말기 항우(項羽)가 입관(入關)한 뒤 유방(劉邦)에게 준 봉호(封號).
氣호니 皆爲龍虎야 成五色이라다 北極은 猶言北闕이니 言中國이 氣盛니 胡人이 愁恐也ㅣ라】

北極에 龍虎ㅅ 氣運을  시름니 주018)
 시름니
매우 근심하니. 당시 조정의 금군(禁軍)을 장악한 어조은(魚朝恩)의 기운이 성함을 걱정한다는 말이다. 15세기 국어의 ‘’은 ‘매우’의 뜻으로 최상급을 나타내는 말은 아니다. ¶ : 내 너희  恭敬야 업시오 아니노니〈석상 19:29ㄴ〉 / 새지비  갑고 져고 니기 아라  우흿 져븨 삿기 짐즛(故) 오 조 다(熟知茅齋絕低小 江上燕子故來頻)〈두시 10:7ㄴ〉.
西戎은 犬羊 무리 주019)
견양(犬羊) 무리
가축이라기보다는 하찮은 이민족 군대를 얕잡아 부르는 말로 쓰였다.
放縱디 마롤디어다 주020)
방종(放縱)디 마롤디어다
풀어놓지 말라는 말. 즉 세력을 믿고 병사를 풀어 침입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자음】 북극전수룡호기 서융휴종견양군【범증(范增)이 말하기를, “사람을 시켜 한왕(漢王)의 기상을 살피니 모두 용호(龍虎)와 같아 오색 빛을 이루었다.”고 했다. ‘북극(北極)’은 북궐(北闕)을 말하니, 중국의 기운이 풍성하니 오랑캐들이 근심스러워하고 두려워함을 말한다.】
【언해역】 북극(北極)에 용호(龍虎)의 기운을 가장 시름하니, 서융(西戎)은 견양(犬羊)의 무리를 방종하지 말지니라.

〈둘째 수〉

賛普 주021)
찬보(賛普)
토번(吐蕃)을 다스리는 군장(君長)을 가리키는 말.
多教使入 주022)
진(秦)
원래는 전국시대를 통일한 나라이지만 여기서는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왕조로서 중국 전체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數通和好 주023)
화호(和好)
①화목(和睦)하고 우호(友好)를 유지함. ②서로 친목(親睦)을 도모하고 우호(友好)를 높임.
煙塵 주024)
연진(煙塵)
연기와 먼지. 그리하여 변방에 전운(戰雲)이 감돌아 흙먼지 등이 일어나는 것으로 곧 전쟁이 벌어짐을 일컫는 말.
주025)
찬보다교사입진 수통화호지연진(賛普多教使入秦 數通和好止煙塵)
“티베트 통치자 찬보가 자주 사신을 중국에 보내자, 우호 관계로 인해 불화나 전쟁이 그쳤다.”는 말이다.
【賛普 吐蕃君長이니라 此 說當時事니라】

賛普ㅣ 주026)
많이. 매우. ‘하[多]+ㅣ’. 『두시언해』에서 ‘해’는 한시의 ‘다(多)’에 대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수효가 많거나, 행위의 횟수가 잦거나 할 경우에도 광범위하게 쓰였다. ¶해 : 비록 해 드러도 增上慢며(有雖多聞, 而增上慢)〈석상 9:13ㄴ〉 / 내 늘구메 해 슬허 노라(窮老多慘戚)〈두시 1:26ㄱ-ㄴ〉.
使者 여 주027)
사자(使者) 여
사신으로 하여금. 사신을 시켜. 15세기 문헌에서 ‘다’는 주로 ‘-로’를 지배하지만, ‘’을 지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두시언해』에서는 많은 용례가 보인다. 〈중간본〉은 ‘使者를 여’이다. ¶- 여 : 입과 과 智慧와 온가짓 禮 여 다 順며〈내훈1:11ㄱ〉 / 天子ㅣ 너를 샤 三道節度使 샤 恩惠와 榮寵이 가  업스니〈삼강런던忠13〉 / 쇼 머길 한아비와 나모지 이  依賴 줄 업스니 靑雲엣 리 여 버히게 디 말라(牧豎樵童亦無賴 莫令斬斷靑雲梯)〈두시 8:34ㄱ〉 / 雲物이 다디 아니호 鄕國 다니 아 여  가온 잔 업텨 먹노라(雲物不殊鄉國異 教兒且覆掌中杯)〈두시 11:34ㄴ〉.
秦에 드려 보내니 주028)
진(秦)에 드려 보내니
장안에 들여보내니. 문성공주와 금성공주가 당나라 황실의 딸로 티베트에 시집을 간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티베트 정권도 중국과 화친을 맺기 위해 사신을 보내는 등 노력을 기울였던 때가 있었다.
조 주029)
조
자주. [數]-+오. ‘오’는 부사파생접미사이다.
和好호 주030)
화호(和好)호
우호(友好)를 맺음을.
通야 煙塵 그치놋다 주031)
그치놋다
그치는구나. 그치게 하는구나. 긏[切, 斷]-+이++오+ㅅ+다. ¶긏다 : 栴陁羅 東土ㅅ 마래 嚴幟니 를 그처 骨髓 내오 두  우의여 내니라〈석상 11:21ㄱ〉 / 天地 어윈  標 셰니 나가리 그처 녜와 이제 뎌 뫼 迷失니라(建標天地闊 詣絕古今迷)〈두시 19:13ㄴ〉 / 그치다 : 沙彌 새 出家 사미니 世間앳 들 그치고 慈悲ㅅ 뎌글 다 논 디니〈석상 6:2ㄴ〉 / 두 돗  만  무저글 리니 호 머요매 功夫 수이 그치리로다(破塊數席間 荷鋤功易止)〈두시 16:66ㄴ〉.

【한자음】 찬보다교사입진 수통화호지연진【‘찬보(賛普)’는 토번의 우두머리이다. 이것은 당시의 일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찬보(賛普)가 많이 사자(使者)로 하여금 장안(長安)에 들여보내니, 자주 화호(和好)함을 통하여 연진(煙塵)을 그치는구나!

朝廷 주032)
조정(朝廷)
당나라의 조정. 여기서는 현종(玄宗)을 가리키는 말.
忽用哥舒 주033)
가서(哥舒)
가서한(哥舒翰)의 부족 이름. 터키 계열의 민족들은 부족 이름으로 성을 대신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가서한의 성이 되므로, ‘가서’는 곧 가서한을 가리킨다.
將 殺伐虛悲公主 주034)
공주(公主)
금성공주(金城公主). 『당서(唐書)』에 개원 말에 금성공주가 죽고 나서, 토번(吐蕃)에서 사신을 보내 부고를 알리면서 화친을 청했지만, 현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천보(天寶) 7년(748) 가서한(哥舒翰)으로 농우절도(隴右節度)로 삼아, 석보성(石堡城)을 공격해 함락하여, 구곡(九曲) 고지(故地)를 수복했다. 이로부터 변방의 환란이 그치지 않았다.
주035)
조정홀용가서장 살벌허비공주친(朝廷忽用哥舒將 殺伐虛悲公主親)
“조정에서 맹장 가서한을 변방의 장수로 갑자기 임명하자, 그곳으로 시집간 금성공주의 생사를 친척들이 걱정했다.”는 말이다.
開元末애 주036)
개원말(開元末)애
정확히는 금성공주가 사망한 740년을 가리킨다. 이때는 개원 28년이었다. 개원(開元)은 당나라 현종(玄宗) 때에 쓰였던 연호로 연대는 713-741년까지였다.
吐蕃이 來告金城公主之薨고 因請和야 玄宗 주037)
현종(玄宗)
685-762. 당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 712-756). 본명은 이융기(李隆基)고, 예종(睿宗)의 셋째 아들이다. 명황(明皇)이라고도 부른다. 조모 측천무후(則天武后) 시대에 낙양(洛陽)에서 태어났고, 9살 때 임치왕(臨淄王)으로 봉해졌다. 26살 때 위후(韋后)가 딸 안락공주(安樂公主)와 짜고, 중종(中宗, 현종의 백부)을 암살, 중종의 아들 온왕(溫王)을 제위(帝位)에 앉히고, 정권을 농단(壟斷)하기 위해, 현종의 아버지 상왕(相王)까지도 해치려 하였다. 심복 장병을 인솔, 위후와 안락공주 일당을 공격한 뒤 아버지를 제위에 옹립하고, 자신은 황태자가 되어 실권을 잡았고, 28살 때 마침내 아버지의 양위로 즉위했다. 당시 권세를 누린 태평공주(太平公主) 일파를 타도하여, 측천무후 이래 반세기에 걸친 부인의 정권 개입을 근절시킨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초기에는 정치를 잘해 개원(開元)과 천보(天寶) 시대 수십 년의 태평천하를 구가했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들자, 정치를 등한시하고, 도교(道敎)에 빠져 막대한 국비를 소비했으며, 35살이나 연하인 양귀비(楊貴妃)를 궁내(宮內)로 끌어들인 뒤 정사를 포기하다시피 하여, 권신 이임보(李林甫)가 국정을 대신 맡아보았다. 천보 14년(755)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사천(四川)으로 난을 피해 가던 도중에 양귀비는 병사에게 살해되었다. 이듬해 아들 숙종(肅宗)에게 양위하고 상황(上皇)으로 은거했는데,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뒤 죽었다. 특히 음악에 뛰어나 스스로 작곡까지 하면서, 이원(梨園)의 자제 남녀를 양성했다. 서예에도 능해 명필이라는 칭호를 들었다. 시호는 지도대성대명효황제(至道大聖大明孝皇帝)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0ㄴ

不許而使翰伐之니 주038)
사한벌지(使翰伐之)니
가서한(哥舒翰)을 시켜 공격하니. 곧 천보(天寶) 7년(748)에 가서한(哥舒翰)을 시켜, 당시 토번(吐蕃)이 점령하고 있던 석보성(石堡城)을 공격하여, 구곡(九曲) 고지(故地)를 수복한 일을 가리킨다.
此 說舊事니라】

朝廷 주039)
조정(朝廷)이
‘조정’은 당시 양국충에 휘둘리는 현종을 가리킨다.
忽然히 주040)
홀연(忽然)히
갑자기. 당시에 토번(吐蕃)이 화친을 청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갑자기 토번의 점령지를 탈환하였다.
哥舒翰 주041)
가서한(哥舒翰)
?-756. 당나라 때 투르크족 투르기시(突騎施) 가서(哥舒) 부족 사람. 안서(安西)에 세거(世居)했다. 안서부도호(安西副都護)의 아들이다. 나이 마흔 살쯤에 하서(河西) 절도사 왕충사(王忠嗣)의 막하 무장으로 들어가 아장(衙將)이 되어, 토번의 침입을 격파했다. 좌위낭장(左衛郞將)으로 옮겼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6년(747) 농우절도부사(隴右節度副使)가 되고, 나중에 군공으로 특진(特進)에 올랐다. 12년(753) 양국공(凉國公)에 봉해지고, 하서절도사가 더해졌으며, 얼마 뒤 서평군왕(西平郡王)에 봉해졌다. 술 마시기를 좋아했고, 성색(聲色)을 밝히다가 풍질에 걸려 귀경했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황태자의 선봉병마원수(先鋒兵馬元帥)로 군사 20만 명을 이끌고 동관(潼關)을 지키며 반년 동안 분전했다. 나중에 양국충(楊國忠)의 참언으로 전투를 종용받아 할 수 없이 결전을 벌이다가, 대패하고 포로로 잡혔다. 낙양(洛陽)에 갇혔다가, 살해되었다.
將軍을 시니 주042)
시니
쓰시니. [用]-+시+니. 당시 현종은 가서한(哥舒翰)으로 하여금 토번(吐蕃)이 점령하고 있던 석보성(石堡城)을 탈환하게 하였는데, 이를 두고 원시에서는 ‘用哥舒將’이라 표현하고 이를 ‘가서한(哥舒翰) 장군(將軍)을 시니(가서한 장군을 쓰시니)’로 언해하였다.
殺伐야 주043)
살벌(殺伐)야
살벌하여. 이때까지 평화롭던 당과 토번의 관계가 가서한이 석보상을 점령한 이후부터 험악해지기 시작하였다.
公主ㅅ 아 주044)
공주(公主)ㅅ 아
금성공주의 친척을. 〈중간본〉은 ‘公主ㅅ 아’이다. 가서한을 변방 사령관으로 임명해, 전운이 무르익자 티베트로 시집간 금성공주의 안위가 염려되어, 친척들이 근심한다는 말이다.
쇽졀업시 주045)
쇽졀업시
속절없이. 헛되이. 공허히. 당이 석보성을 공격하여 획득한 것이 변방의 혼란만 야기시켰을뿐 실익이 없다는 말이다.
슬케 니라 주046)
슬케 니라
슬프게 하니라. 슬프게 한다. 슳[悲]-+게 -+니+라.

【한자음】 조정홀용가서장 살벌허비공주친【개원 말에 토번이 금성공주의 죽음을 와서 알리고, 화친(和親)을 청하거늘 현종이 허락하지 않고, 가서한(哥舒翰)을 시켜 정벌하니, 이것은 옛 일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조정(朝廷)이 홀연히 가서한(哥舒翰) 장군을 쓰시니, 살벌하여 공주의 친척을 속절없이 슬프게 하네!

〈셋째 수〉

崆峒 주047)
공동(崆峒)
산(山) 이름. 감숙(甘肅) 평원시(平涼市) 서쪽에 있다. 도교(道敎) 발상지의 하나. 황제(黃帝)가 선인(仙人) 광성자(廣成子)에게 도(道)를 물은 곳이라고 한다. 공동(空同)·공동(空桐)으로도 쓴다.
西極 주048)
서극(西極)
①서쪽 변방의 끝 지점. 서방(西方)의 아주 먼 곳을 가리킨다. ②장안(長安)의 서쪽 지역 강역(疆域).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崐崙 주049)
곤륜(崐崙)
곤륜산(崑崙山).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산. 처음에는 하늘에 이르는 온 산. 옥이 나는 산으로 알려졌지만, 전국시대 말기부터는 서왕모(西王母)가 갈고, 불사(不死)의 물이 흐르는 신선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駞馬由來擁國門
주050)
공동서극과곤륜 타마유래옹국문(崆峒西極過崑崙 駝馬由來擁國門)
“변방 지역의 민족들이 곤륜산을 지나 중국으로 들어오니, 그들이 끌고 온 낙타와 말들로 도성의 문 앞을 채웠다.”는 말이다.
【此 大言舊時從化 주051)
구시종화(舊時從化)
예전 시대에 이민족이 중국의 교화를 따랐다는 말. 중국 문명의 혜택을 받아 이민족의 문화도 발전했다는 뜻이다.
之遠也ㅣ라】

崆峒 西極으로 崐崙山애 디내히 주052)
공동(崆峒) 서극(西極)으로 곤륜산(崐崙山)애 디내히
공동과 서극을 통하여 곤륜산을 지나. 디나[過]-+아+히. 공동(崆峒)은 감숙성(甘肅省) 양서(凉西)에 있는 산명인데, 두보는 46세 때이던 757년(지덕 2) 4월에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이 머물던 봉상(鳳翔, 섬서성 鳳翔)의 행재소(行在所)에 도착하여, 5월에 좌습유(左拾遺)에 임명되어, 숙종을 따라다니면서 모시게 되었다. ‘히’는 부사화접미사로서 ‘아라히, 므던히’처럼 ‘아라다, 므던다’에서 부사화접미사 ‘-이’가 결합된 형태나 ‘能히, 敢히’처럼 ‘한자어#다’에 ‘-이’가 결합된 형태가 아니라 동사의 부동사 어미에 결합된 것이다. 초기 음독구결에 보이는 ‘’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주 귀중한 예이다. ¶-히 : 큰 므레 가다가도 일후믈 일면 즉자히 녀튼  어드리어며(若爲大水의 所漂야 稱其名號면 即得淺處리며)〈석상 21:2ㄴ〉 / 世옛 사미 티 倍히 더 보아 구틔여 分別을 내니 足히 그 妄 보리로다(而世人이 一齊히 倍加瞻視야 强生分別니 足見其妄也ㅣ로다)〈능엄 2:14ㄱ〉 / 죄 업서 名位 늣거 호니 省郞 더듸호 敢히 츠기 너겨리아(不才名位晚 敢恨省郞遲) / 百年 內예 萬事 므던히 너기간마 녜 사던  매 耿耿야 니조미 어렵도다(百年從萬事 故國耿難忘)〈두시 3:13ㄱ〉 / 飄颻히 라셔 리튜믈 수이 커 수이 가락 오락 야 노니놋다(飄颻搏擊便 容易往來遊)〈두시 3:26ㄴ〉.
駱駞와 왜 주053)
낙타(駱駞)와 왜
낙타와 말이.
本來로 주054)
본래(本來)로
본래로. 본래+로. ¶본래로 : 衣食은 本來로 치며 시니〈영가 상:22ㄴ〉 / 세 부톄 本來로 허룸 이쇼 免티 몯니〈금삼 2:29ㄱ〉 / 슬프다 뎌 高節 士ㅣ 本來로 두려운 굼긔 너모 난  니라(嗟彼苦節士 素於圓鑿方)〈두시 1:52ㄴ〉 / 내 本來로 良家앳 아리라니 軍師 내요미  여러 가지로다(我本良家子 出師亦多門)〈두시 5:32ㄴ〉 / 참조 : 本座 本來ㅅ 座ㅣ라〈석상 6:34ㄴ〉.
나랏 門에 주055)
나랏 문(門)에
나라의 문에. 도성(都城)의 문에. 이민족과 교류가 빈번해 낙타와 말들이 도성 문 앞까지 채워졌다는 뜻이다.
려 주056)
려
끌려. [牽]-+어.
오더니라 주057)
오더니라
왔다. 오[來]-+더+니+라. ¶-더니라 : 銀 부플 티면 什四億 사미 몯고 金 부플 티면 十八億 사미 다 몯더니라〈석상 6:28ㄱ〉 / 叔夜 嵆康 字ㅣ니 放曠懶散더니라〈두시 1:57ㄱ〉 / 오 아 구루미 오 열우니 어젯 바 리 고 두렵더니라(今朝雲細薄 昨夜月清圎)〈두시 2:26ㄱ〉.

【한자음】 공동서극과곤륜 타마유래옹국문【이것은 옛날의 교화(敎化)를 따르는 것과 멂을 크게 말한 것이다.】
【언해역】 공동(崆峒)과 서극(西極)으로 곤륜산(崐崙山)을 지나고, 낙타와 말이 본래 나랏문에 끌려 왔네!

逆氣 주058)
역기(逆氣)
당 조정의 의지에 거스르는 기운.
數年 주059)
수년(數年)
몇 년. 현종이 가서한(哥舒翰)을 시켜, 석보성(石堡城)을 장악한 이후 몇 년을 가리킨다.
吹路斷 蕃人 주060)
번인(蕃人)
중국 고대에 외족(外族)이나 이국인(異國人)에 대한 범칭(泛稱). 번(蕃)은 번(番)과 통한다. 여기서는 토번(吐蕃)을 가리킨다.
聞道漸星奔
주061)
역기수년취로단 번인문도점성분(逆氣數年吹路斷 蕃人聞道漸星奔)
“지난 몇 년 동안 이민족이 침략하려는 기운이 있어 교류가 끊겼지만, 지금은 화해 기운이 있어 별들이 반짝이듯 그들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거슯즌 주062)
거슯즌
거스르는. 거슯즈[逆]-+ㄴ. 15세기 초기의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에서는 주로 ‘거슯지 다’의 형태로 쓰이다가 『내훈』에서 ‘거슯즈다’가 쓰였으며 『두시언해』에서도 모두 ‘거슯즈다’만 사용되었다. ¶거슯지다 : 實로 미혹야 어딘 사 몰라보아 夫人 거슯지호다 시고 도로 녯 벼슬 시고〈석상 11:33ㄱ〉 / 兄을 새와 녜 할오져 야 일마다 兄을 거슯지더라〈월석 22:25ㄱ〉 / 거슯즈다 : 사 지븻 兄弟ㅣ 義디 아니니 업건마 다 며느리 어더 門에 드로 因야 다 姓이 서르 모다 기로 토며 뎔오 토아 만 하리 날로 들여 아 生計 기우로 야  背叛야 거슯주메 니르러 門 호며 이플 배혀 믜요 盜賊 寃讐티 니〈내훈3:40ㄴ〉 / 考功의 等第에 거슯저디여 올로 京尹의 堂애 가 下直호롸(忤下考功第 獨辭京尹堂)〈두시 2:40ㄴ〉 / 蛟龍 기피셔 거슯주믈 짓고 豺虎 어즈러이 모디로 雄壯히 놋다(蛟螭深作橫 豺虎亂雄猜)〈두시 3:8ㄴ〉 / 주린 버미 뫼로 려오며 龍 거슯주미  므레 나니(虎之饑下巉岩 蛟之橫出清泚)〈두시 8:18ㄴ〉 / 슬프다 功名을 거슯지 니 오직 글스기와 그리믜 傳야 오 보리로다(惜哉功名忤 但見書畫傳)〈두시 16:28ㄱ〉.
氣運이 두 주063)
두
두어. 둘+서. 원시의 ‘數’의 번역이다. 〈중간본〉은 ‘두어’이다. ¶두 : 그 夫人이 니 사 브려 나랏 內예 王ㅅ 病  사 어더 려다가   보니 그 소배 거믄 벌에 기리 두 츤 니 잇고〈석상 24:50ㄱ〉 / 두  술로 됴 이 資賴고 됴 마란 옰 員을 어즈러이 노라(數杯資好事 異味煩縣尹)〈두시 19:42ㄱ〉.
 길흘 부러 주064)
부러
불어. 불[風]-+어. ¶불다 : 그 後에 미 므를 부러 地輪이 외니〈월석 1:41ㄱ〉 / 미 부러 큰 븘 비치 니르와니 매 가   기디 놋다(風吹巨焰作 河棹騰煙柱)〈두시 25:12ㄴ〉.
그쳇더니 주065)
그쳇더니
그쳐 있더니. 긏[絶]-+이+어#잇-+더+니. ¶긏다 : 大衆이 야  솨줄 그처  우희 고 날마다 이 야로 出令야 닐웨예 닐굽 솨줄 그처  우희 고  보아 돗 드니〈월석 22:38ㄱ〉 / 뉘 能히 〈두시 25:40ㄱ〉 사 목수믈 그처 時世옛 어디로 외리오(誰能絶人命 以作时世賢)〈두시 25:39ㄴ-40ㄱ〉.
니거 드로니 주066)
니거 드로니
이르거늘 들으니. 말하는 것을 들으니. 원시는 ‘聞道’로 ‘두시’에서 ‘聞道’는 항상 구(句)의 처음에 쓰이는데 여기에서만 구(句)의 가운데에 쓰였다. 그러나 『두시언해』는 구(句)의 처음에 쓰인 것처럼 번역하였다.
蕃人이 주067)
번인(蕃人)이
토번 사람들이.
漸漸 별  주068)
별 
별이 달리는 듯. [走]-+. 15세기 국어의 ‘’은 동명사 어미에 후행하는 경우와 동사 어간에 후행하는 경우가 있다. ¶-(동사어간에 후행하는 경우) : 그제 춋브리  가 잇더니〈석상 3:26ㄱ〉 / 金盤과 玉져왜 消息이 업스니 이 나래 새 맛보고 다봇 올마 니 호 므더니 너기노라(金盤玉箸無消息 此日嘗新任轉蓬)〈두시 15:23ㄴ〉 / -(동명사 어미에 후행하는 경우) : 긴 바 衆生이 미혹야 時常 바 잇  긴 바미라 니라〈석상 3:23ㄴ〉 / 棘樹  구 빗 고 茵蔯은  蓮ㅅ 불휘 곳다온 도다(棘樹寒雲色 茵蔯春藕香)〈두시 15:9ㄴ〉.
놋다

【한자음】 역기수년취로단 번인문도점성분
【언해역】 거스르는 기운이 두어 해 동안 길에 불어 끊어져 있더니, 이르거늘 들으니 번인(蕃人)이 점점(漸漸) 별 달리는 듯하는구나!

〈넷째 수〉

勃律 주069)
발률(勃律)
서역 지방에 있던 세력의 이름. 당나라 때는 대소 발률이 있었다.
天西采玉河 주070)
옥하(玉河)
우전(于闐, 지금의 신강화전현(新疆 和田縣)성 밖에 있는데, 근원은 곤륜산에서 시작한다. 큰물이 거침없이 흐르는데, 옥이 물길을 따라 흘러오면서 강바닥이나 기슭에 묻혀 있다가, 가을이 되어 물이 빠지면, 그때 옥을 채집한다. 이것을 노옥(撈玉)이라 불러는데 지금도 최고 품질의 옥으로 취급된다.
堅昆碧盌最來多
주071)
발률천서채옥하 견곤벽완최래다(勃律天西采玉河 堅昆碧盌最來多)
“이민족들과 화해가 이뤄지고 교류가 많아져,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기이한 물자들이 아주 많이 중국으로 들어온다.”는 말이다.
【勃律은 西羌國 주072)
서강국(西羌國)
전한(前漢) 때 강인(羌人)에 대한 범칭(泛稱). 또한 후한(後漢) 때 강인(羌人)이 중국 안으로 들어와, 금성(金城)이나 농서(隴西), 한양(漢陽) 등지에 살던 지파를 말한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1ㄱ

名이오 采玉河 在于闐國 주073)
우전국(于闐國)
범명(梵名)은 Ku-stana. 서역(西域)에 있던 옛 왕국(王國)이다. 우전(于塡), 우전(于殿), 우둔(于遁), 계단(溪丹)으로도 불린다. 신강(新疆) 서부, 지금의 화전(和田, Khotan) 땅이다.
니 多産玉니라 堅昆國 주074)
견곤국(堅昆國)
옛날 부족(部族) 이름. 격곤(鬲昆), 격곤(隔昆), 결골(結骨), 흘골(紇骨), 거물(居勿)로도 불린다. 시베리아 섭니새하(葉尼塞河) 상류 일대에 있었다. 여기서는 멀리 있는 오랑캐를 가리킨다. 이 지역에서는 유리 주발이 많이 생산되었다. 당(唐)나라 때는 힐알사(黠戛斯)로 불렸는데, 지금의 섭니새하(葉尼塞河) 위에 있다. 한(漢)나라 초에는 흉노(匈奴)에 속했다. 선제(宣帝) 때 흉노 질지단오(郅支單於)가 병사를 일으켜, 서쪽으로 견곤(堅昆)을 격파하고, 그곳에 도읍을 정했다.
은 在葱嶺 주075)
총령(葱嶺)
돈황(敦惶) 서쪽 8천리 지점에 있는 산. 천산(天山)과 곤륜(崑崙) 등 여러 산이 모두 여기에서 뻗어나오는데, 산이 높지만 그 위에서 파가 나와 총령이라 부른다. 지금의 파미르 고원 일대를 가리킨다.
北니 出碧盌니라】

勃律天ㅅ 西ㅅ녁 采玉河와 堅昆國엣 碧盌이 안직 주076)
안직
가장 많이. ‘안직’은 ‘최(最)’에 해당하는 고유어로 고려시대의 석독구결의 독법으로도 ‘最’를 ‘[안직]’으로 읽고 있다. 그러나 15세기 언해 문헌에서는 『두시언해』에만 보인다. 『번역노걸대』 등에서 보이는 ‘안직’은 ‘아직’의 뜻이다. ¶안직(가장) : 驥子아 안직 너를 憐愛노라(驥子最憐渠)〈두시 8:48ㄱ〉 / 나그내 예 머리 안직 셰니(客間頭最白)〈두시 23:17ㄴ〉 / 안직(아직) : 우리 잡말 안직 니디 마져(咱們閑話且休說)〈번노 상:17ㄱ〉 / 오나라 오나라 안직 가디 말라 내 너려 말솜 무러지라(來來 且休去 我問伱些話)〈번노 상:26ㄱ〉.
오미 하더니라 주077)
하더니라
많더니라. 많았다. 하[多]-+더+니+라. ¶하다 : 華色 比丘尼게 出家야  우리히 지븨 이 저긔 受苦ㅣ 하더다〈월석 10:23ㄱ〉 / 禹ㅅ 功애 그츤 돌히 하더니  히 져기 平  나오라(禹功饒斷石 且就土微平)〈두시 7:10ㄴ〉.

【한자음】 발률천서채옥하 견곤벽완최래다【‘발률(勃律)’은 서강국(西羌國) 이름이고, ‘채옥하(采玉河)’는 우전국에 있으니 옥이 많이 생산된다. ‘견곤국(堅昆國)’은 총령 북쪽에 있으니 벽완(푸른 주발)이 나온다.】
【언해역】 발률(勃律) 하늘의 서쪽 채옥하(采玉河)와 견곤국(堅昆國)의 벽완(碧盌)이 가장 많이 왔네!

舊隨漢使千堆寶 주078)
천퇴보(千堆寶)
천 무더기의 보배.
少答胡王萬匹羅
주079)
구수한사천퇴보 소답호왕만필라(舊隨漢使千堆寶 少答胡王萬匹羅)
“이민족들이 한나라 사신을 따라 많은 보물을 가져오자, 중국에서도 많은 비단을 오랑캐 임금에게 내주어 보답했다.”는 말이다.
【此 言舊日에 千堆寶로 隨漢使入貢이어든 주080)
수한사입공(隨漢使入貢)이어든
한(漢)나라 사신을 따라 입조하여 조공을 마치면. 오랑캐에게 사신을 보내면, 오랑캐는 사신을 따라 입조하여 조공을 바쳤음을 말한다. ¶-이어든 : 일허 니조미 滅이어든 住와 異와 예 잇니라(失忘이 爲滅이어든 而住와 異와 處中니라)〈능엄 3:14ㄴ〉 / 日光이 揜蔽야 地上이 淸凉며 靉靆垂布야 如可承攬이어든(光이 려  우히 서늘며 므즤여 드려 펴디여 어루 바다 자거든)〈법화 3:34ㄴ〉 / 此 甫ㅣ 言思昔日에 與妻子로 歡會고 今恐妻子ㅣ 死亡이어든 窮獨無歸也ㅣ라〈두시 2:32ㄱ〉 / 書예 若作和羹이어든 爾惟塩梅라다 主將 謂嚴武l라 言武l 歸朝야 作相이어든 甫l 還郷村也l라〈두시 10:30ㄱ〉 / 참조 : 主將이 소 마 調和라 도라니거시든 나 도라 녜 사던  무러 가리라(主將歸調鼎 吾還訪舊丘)〈두시 10:30ㄱ〉.
中國이 萬匹羅로 少答之也ㅣ라 주081)
만필라(萬匹羅)로 소답지야(少答之也)ㅣ라
한(漢) 나라 조정에서는 만 필의 비단으로 받은 것보다 많이 사신에게 답례를 하였다는 것을 ‘소(少)’로, 적게 답례를 하였다고 표현한 것이다.

녜 漢ㅅ 使者 조차 즈믄 무딧 주082)
무딧
무더기의. 무지의. 무디+ㅅ. ¶무디 : 이  重 業이 온 미 몰앳 무디 부러 흐룸 야〈능엄 7:54ㄱ〉 / 苦聚 受苦ㅅ 무디라〈법화 2:55ㄴ〉.
珍寶 가져오나 주083)
가져오나
가져오면. 갖[持]-+이+어#오-++아+. ¶가져오다 : 이긔여 쏘리 업스니 가져오라 야시〈석상 3:13ㄴ〉 / 서늘호믈 卑濕 해 가져오고 소 洞庭엣 므를 혀 도다(爽携卑濕地 聲拔洞庭湖)〈두시 2:23ㄱ〉.
萬 匹 羅로 되 님그믈 져기 주084)
져기
적게. 조금. 원시의 ‘소(少)’에 대한 번역이다. ¶져기 : 바  잇 羯隨라  새 우루미 부텻 목소리 져기 즛니다〈석상 24:20ㄱ〉 / 願 너 干謁호 져기 라 蜀都애 사호맷 술위 하니라(願子少幹謁 蜀都足戎軒)〈두시 8:7ㄱ〉.
酬答더시니라 주085)
수답(酬答)더시니라
보답하셨다. 酬答#-+더+시+니+라.

【한자음】 구수한사천퇴보 소답호왕만필라【이것은 옛날에 천 무더기 보배로 한나라 사신을 따라 들어와 조공(朝貢)하였는데 중국이 만 필의 비단으로 간단히 답했음을 말한다.】
【언해역】 옛날 한나라 사신을 따라 천(千) 무더기 진귀한 보배를 가져왔는데, 만(萬) 필 비단으로 오랑캐 임금에게 적게 수답(酬答)하였네!

〈다섯째 수〉

今春 주086)
금춘(今春)
올해 봄. 올봄. 이 봄.
喜氣滿乾坤 주087)
건곤(乾坤)
①『주역(周易)』 팔괘(八卦) 가운데 건괘(乾卦)와 곤괘(坤卦). ②하늘과 땅. 천지(天地). ③음(陰)과 양(陽).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南北東西 주088)
남북동서(南北東西)
동서남북(東西南北). 사방(四方)을 가리키는 말로 곧 온 천하를 가리킨다.
拱至尊
주089)
금춘희기만건곤 남북동서공지존(今春喜氣滿乾坤 南北東西拱至尊)
“올해 봄에 전쟁이 끝나 희색이 천지에 가득해, 사방 사람들이 모두 임금을 높이 받들어 섬긴다.”는 말이다.

옰보 주090)
옰보
올해 봄에. 올봄에. 오[來]-+ㄹ+ㅅ#봄+. ‘ㅅ’은 동명사어미 ‘-ㄹ’을 ‘-ㄹㆆ’으로 표기하던 방법의 잔영이다.
깃븐 주091)
깃븐
기쁜. [喜]-+브+ㄴ. ‘깃브다’는 ‘다’의 파생형용사이다. ¶깃브다 : 難陁 깃브다 논 마리오〈석상 13:7ㄴ〉 / 燈花ㅣ 모  깃브니 프른 수를 正히 서르 親히 호라(燈花何太喜 酒綠正相親)〈두시 15:56ㄴ〉.
氣運이 乾坤애 니 주092)
니
가득하니. #+니. ¶다 : 六師 무리 閻浮提예 야도 내 바랫  터리 몯 무으리니〈석상 6:27ㄱ〉 / 한 士ㅣ 朝廷에 얏니 仁者 저허 호미 맛당니라(多士盈朝廷 仁者宜戰慄)〈두시 2:35ㄴ〉.
南北東西ㅣ 님그믈 拱戴 주093)
공대(拱戴)
두 손을 맞잡고 받들어 섬김. 〈중간본〉은 ‘拱載’이다.
놋다
주094)
공대(拱戴)놋다
공대하는구나. 공대(拱戴)#++오+ㅅ+다.

【한자음】 금춘희기만건곤 남북동서공지존
【언해역】 올해 봄에 기쁜 기운이 건곤(乾坤)에 가득하니, 동서남북이 임금을 공대(拱戴)하는구나!

大曆三年 주095)
대력삼년(大曆三年)
768년. 대력(大曆)은 당(唐)나라 대종(代宗) 시대에 쓰였던 연호. 연대는 766-779이다.
調玉燭 주096)
옥촉(玉燭)
옥(玉)과 촛불. 네 계절의 운행이 화창하여 기후가 조화를 이룬 것. 보통 ‘태평성세(太平聖歲)’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玄元皇帝聖雲孫
주097)
대력삼년조옥촉 현원황제성운손(大曆三年調玉燭 玄元皇帝聖雲孫)
언해에는 ‘대력 삼년에 옥촉이 조화로우니 현원황제의 성덕하신 운손이시로다’라고 하였다. 원시의 앞 구와 뒤 구는 동일한 통사구조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어, 앞 구의 ‘조(調)’와 뒤 구의 ‘성(聖)’은 모두 동사로 해석할 수 있는데, 『두시언해』에서는 전자는 동사로 후자는 관형어로 해석하였다.
【大曆은 代宗 주098)
대종(代宗)
생몰년은 727-779. 이예(李豫). 당나라의 황제(재위 762-779). 숙종(肅宗)의 맏아들이다. 처음 이름은 숙(俶)인데, 나중에 예(豫)로 고쳤다. 『주역(周易)』과 『예기(禮記)』에 정통했다. 15살 때 광평왕(廣平王)에 봉해졌다. 숙종 지덕(至德) 2년(757) 천하병마원수(天下兵馬元帥)가 되어, 곽자의(郭子儀) 등과 함께 병사를 이끌고, 안경서(安慶緖)를 격파하고, 양경(兩京)을 수복했다. 건원(乾元) 원년(758) 태자가 되었다. 보응(寶應) 원년(762) 환관(宦官) 정원진의 옹립으로 황제에 올랐다. 17년 동안 재위했는데, 환관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번진(藩鎭)들이 발호했지만, 제어하지 못했다. 시호는 예문효무황제(睿文孝武皇帝)다.
年號ㅣ라 四時和ㅣ 爲玉燭이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1ㄴ

雲孫은 輕遠이 如浮雲이니 唐이 老子 주099)
노자(老子)
?-?. 춘추시대 말기 초(楚)나라 고현(苦縣) 사람. 도가(道家)의 창시자.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이이(李耳)고, 자는 백양(伯陽)이다. 주(周)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를 지냈다. 공자(孔子)가 젊었을 때 낙양(洛陽)으로 찾아가 예(禮)에 대해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위자화 청정자정(無爲自化 淸靜自正)’을 주장했다. 주나라가 쇠퇴해지는 것을 한탄하여, 은퇴할 결심으로 서쪽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나가 은거하려고 했는데, 도중에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상하(上下) 2편으로 된 책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후 소식은 알 수 없다. 이 책을 『노자』라 하고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부르는데, 도가사상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그의 전기는 의문점이 많아, 노자의 생존을 공자보다 100년 뒤로 보는 설도 있고, 아예 실재 자체를 부정하는 설도 있다. 태사담(太師儋) 또는 노래자(老萊子)라고 보기도 한다. 당 고조 이연(李淵)은 당나라 조정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자를 선조로 정하여 모셔왔다.
로 爲聖祖야 封玄元皇帝故로 謂代宗爲聖雲孫 주100)
운손(雲孫)
멀어진 자손이란 뜻으로, 8대 뒤의 후손을 일컫는 말. 『이아(爾雅)』에서 현손(玄孫)의 아들을 내손(來孫)이라 하고, 내손의 아들을 곤손(晜孫)이라 하며, 곤손의 아들을 잉손(仍孫)이라 하고, 잉손의 아들을 운손이라 한다고 되어 있다.
이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大曆 三年에 玉燭이 調和니 玄元皇帝 주101)
현원황제(玄元皇帝)
당(唐)나라 때 노자(老子)에게 바친 존호(尊號). 당나라의 국성(國姓)과 노자의 성이 같은 이씨(李氏)여서, 당 황실은 노자를 시조(始祖)로 받들어 존경했다.
ㅅ 聖德신 雲孫이샷다 주102)
운손(雲孫)이샷다
운손(雲孫)이시구나. 운손(雲孫)+이+시+오+ㅅ+다. ‘샤’는 ‘시’가 후행하는 모음으로 된 어미 ‘오’에 영향을 받아, 형태가 변화한 것이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대력삼년조옥촉 현원황제성운손【대력(大曆)은 대종(代宗) 때의 연호다. 네 계절이 조화로워 옥촉(태평성세)이 되었다. ‘운손(雲孫)’은 가볍고 먼 것이 뜬구름과 같으니, 당나라가 노자(老子)로 성조(聖祖)를 삼아 현원황제(玄元皇帝)에 봉했기 때문에 대종을 성스러운 운손이라 부른 것이다.】
【언해역】 대력(大曆) 3년에 옥촉(玉燭)이 조화로우니, 현원황제(玄元皇帝)의 성덕하신 운손(雲孫)이시구나!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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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희문도적번구양퇴구호오수(喜聞盜賊蕃寇揔退口號五首) : 이 시는 대력(大曆) 3년(768) 봄에 지어졌다. 이때 두보는 여전히 기주(夔州)에 있었다. 대력 2년(767) 10월 삭방절도사(朔方節度使) 노사공(露嗣恭)이 영주성(靈州城)에서 토번(吐蕃)을 격파하고 2천여 명을 사살했다. 대력 3년 이른 봄에 두보는 토번군이 모두 퇴각했다는 소식을 듣는데, 이에 이 시를 지어 당시의 기쁨을 표현하였다.
주002)
소관(蕭關) : 옛날의 관명(關名). 옛터는 영주(靈州, 지금의 寧夏 固原 동남쪽) 부근에 있었다. 관(關)을 나가면 새북(塞北)과 바로 통하는 요충지다.
주003)
농수(隴水) : 하류(河流) 이름. 근원이 농산(隴山)에서 나와 이렇게 불린다. 대력(大曆) 2년(767) 10월 노사공(路嗣恭)이 소롱(蕭隴) 일대에서 토번을 격파했다.
주004)
청해(靑海) : 호수(湖水) 이름. 중국 최대의 담수호다. 옛날에는 선수(鮮水) 또는 서해(西海)로 불렸고, 비화강해(卑禾羌海)라고도 했다. 북위(北魏) 때 비로소 청해로 불렸다. 그리하여 멀고 황막(荒漠)한 변방 지역을 비유한다.
주005)
황하(黃河) : 중국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중국 제2의 강. 길이는 5,464km, 유역면적 75만 2443㎢이다. 청해성(靑海省) 바옌카라산맥[巴顔喀拉山脈]의 야허라다쩌산[雅合拉達澤山, 5,442m]에서 발원하는 웨구쭝례거[約古宗列渠]가 원류로서, 성숙해(星宿海) 및 악릉호(鄂陵湖)와 찰릉호(札陵湖)를 거친 하류를 가리킨다. 황하강 중·하류는 중국문명의 요람지(搖籃地)로서 이름 높다. 유역에는 산서성 남전현(藍田縣)에서 발견된 남전원인(藍田原人)의 유적을 비롯한 채도(彩陶)·흑도기(黑陶期)와 은(殷)나라의 유물이 수없이 발견되었고, 그 밖에 역대 왕조의 사적도 무수히 남아 있다. 청해성 내륙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청해와 함께 멀고 황량한 새외(塞外) 지역을 비유하기도 한다. 여기서 청해(靑海)와 황하(黃河)는 모두 새외(塞外)를 가리키는 말이다.
주006)
소관농수입관군 청해황하권새운(蕭關隴水入官軍 靑海黃河卷塞雲) : “변방 지역으로 관군이 들어가 도적떼를 격파하니 청해와 황하 변새 지역에 드리운 불길함이 걷어버렸다”란 말이다.
주007)
진지(秦地)니 : 옛 진나라의 땅이니.
주008)
관군(官軍)이 드니 : 관군이 그 지역을 탈환하니. ‘드니’는 ‘들[入]-+니’로 분석된다.
주009)
 : 가의. [邊]+애+ㅅ. ‘’은 변방을 가리킨다. 〈중간본〉은 ‘앳’이다.
주010)
구루믈 거더리도다 : 구름을 걷어버리도다. 구룸+을 걷[捲]-+어#리-+도+다. ‘구름’은 변방에 끼인 근심 즉 오랑캐가 변방을 점령하여 수도 장안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과 변방 자체를 점령하여 당나라의 국경을 긴장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걷[捲]-+어+리-+도+다’로 분석된다. ¶걷다 : 帳이며 니불  빗난 거슬 거더 아 디니라〈내훈1:55ㄱ〉 / 금 빈혀로 눈애 리 거슬 거더 리면 비디 온 硨磲ㅣ라와 重리라(金篦刮眼膜 價重百車渠)〈두시 9:19ㄱ〉.
주011)
북극(北極) : 조정(朝廷)을 비유하는 말. 『두시언해』의 주석에 ‘북궐(北闕)’이라 하였다.
주012)
용호기(龍虎氣) : 용호(龍虎)는 용호군(龍虎軍) 즉 금군(禁軍)을 가리키는 말. 당시 환관 어조은(魚朝恩)이 금군을 관장하고 있어, 안으로 근심이 아주 컸다.
주013)
서융(西戎) : 토번(吐蕃)을 가리키는 말.
주014)
견양(犬羊) : ①개와 양처럼 ‘하찮은 것’을 비유하는 말. ②개와 양 같은 성품. 또는 그런 성품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③변방에 사는 이민족들에 대한 경멸의 뜻을 담아 쓰는 말. 여기서는 ③의 뜻이다.
주015)
북극전수룡호기 서융휴종견양군(北極轉愁龍虎氣 西戎休縱犬羊群) : “조정을 지키는 군대의 기상이 넘치는 것을 두려워해 서융은 함부로 견양과 같은 병사를 풀어놓지 말라.”는 말이다.
주016)
범증(范增) : 기원전 277-기원전 204. 진(秦)나라 말기 거소(居鄛) 사람. 항우(項羽)를 위해 일한 모사(謀士)다. 진(秦)나라 말 농민군이 일어났을 때 항량(項梁)에게 초(楚)나라 귀족의 후예를 세워 널리 호소하라고 권했다. 항량이 죽자 항우의 휘하에 들어가 훌륭한 계책을 많이 제안해, 항우로부터 아부(亞父)라는 칭호를 받으면서 존중되었다. 여러 번 유비(劉備)를 죽이라고 충고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유비의 반간계(反間計)로 항우의 의심을 사 직책을 잃고 권한을 빼앗기자, 울분을 못 이겨 떠나다가 등창이 도져 도중에 병사했다.
주017)
한왕(漢王) : 진(秦)나라 말기 항우(項羽)가 입관(入關)한 뒤 유방(劉邦)에게 준 봉호(封號).
주018)
 시름니 : 매우 근심하니. 당시 조정의 금군(禁軍)을 장악한 어조은(魚朝恩)의 기운이 성함을 걱정한다는 말이다. 15세기 국어의 ‘’은 ‘매우’의 뜻으로 최상급을 나타내는 말은 아니다. ¶ : 내 너희  恭敬야 업시오 아니노니〈석상 19:29ㄴ〉 / 새지비  갑고 져고 니기 아라  우흿 져븨 삿기 짐즛(故) 오 조 다(熟知茅齋絕低小 江上燕子故來頻)〈두시 10:7ㄴ〉.
주019)
견양(犬羊) 무리 : 가축이라기보다는 하찮은 이민족 군대를 얕잡아 부르는 말로 쓰였다.
주020)
방종(放縱)디 마롤디어다 : 풀어놓지 말라는 말. 즉 세력을 믿고 병사를 풀어 침입하지 말라는 뜻이다.
주021)
찬보(賛普) : 토번(吐蕃)을 다스리는 군장(君長)을 가리키는 말.
주022)
진(秦) : 원래는 전국시대를 통일한 나라이지만 여기서는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왕조로서 중국 전체를 비유하는 말로 쓰였다.
주023)
화호(和好) : ①화목(和睦)하고 우호(友好)를 유지함. ②서로 친목(親睦)을 도모하고 우호(友好)를 높임.
주024)
연진(煙塵) : 연기와 먼지. 그리하여 변방에 전운(戰雲)이 감돌아 흙먼지 등이 일어나는 것으로 곧 전쟁이 벌어짐을 일컫는 말.
주025)
찬보다교사입진 수통화호지연진(賛普多教使入秦 數通和好止煙塵) : “티베트 통치자 찬보가 자주 사신을 중국에 보내자, 우호 관계로 인해 불화나 전쟁이 그쳤다.”는 말이다.
주026)
해 : 많이. 매우. ‘하[多]+ㅣ’. 『두시언해』에서 ‘해’는 한시의 ‘다(多)’에 대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수효가 많거나, 행위의 횟수가 잦거나 할 경우에도 광범위하게 쓰였다. ¶해 : 비록 해 드러도 增上慢며(有雖多聞, 而增上慢)〈석상 9:13ㄴ〉 / 내 늘구메 해 슬허 노라(窮老多慘戚)〈두시 1:26ㄱ-ㄴ〉.
주027)
사자(使者) 여 : 사신으로 하여금. 사신을 시켜. 15세기 문헌에서 ‘다’는 주로 ‘-로’를 지배하지만, ‘’을 지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두시언해』에서는 많은 용례가 보인다. 〈중간본〉은 ‘使者를 여’이다. ¶- 여 : 입과 과 智慧와 온가짓 禮 여 다 順며〈내훈1:11ㄱ〉 / 天子ㅣ 너를 샤 三道節度使 샤 恩惠와 榮寵이 가  업스니〈삼강런던忠13〉 / 쇼 머길 한아비와 나모지 이  依賴 줄 업스니 靑雲엣 리 여 버히게 디 말라(牧豎樵童亦無賴 莫令斬斷靑雲梯)〈두시 8:34ㄱ〉 / 雲物이 다디 아니호 鄕國 다니 아 여  가온 잔 업텨 먹노라(雲物不殊鄉國異 教兒且覆掌中杯)〈두시 11:34ㄴ〉.
주028)
진(秦)에 드려 보내니 : 장안에 들여보내니. 문성공주와 금성공주가 당나라 황실의 딸로 티베트에 시집을 간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티베트 정권도 중국과 화친을 맺기 위해 사신을 보내는 등 노력을 기울였던 때가 있었다.
주029)
조 : 자주. [數]-+오. ‘오’는 부사파생접미사이다.
주030)
화호(和好)호 : 우호(友好)를 맺음을.
주031)
그치놋다 : 그치는구나. 그치게 하는구나. 긏[切, 斷]-+이++오+ㅅ+다. ¶긏다 : 栴陁羅 東土ㅅ 마래 嚴幟니 를 그처 骨髓 내오 두  우의여 내니라〈석상 11:21ㄱ〉 / 天地 어윈  標 셰니 나가리 그처 녜와 이제 뎌 뫼 迷失니라(建標天地闊 詣絕古今迷)〈두시 19:13ㄴ〉 / 그치다 : 沙彌 새 出家 사미니 世間앳 들 그치고 慈悲ㅅ 뎌글 다 논 디니〈석상 6:2ㄴ〉 / 두 돗  만  무저글 리니 호 머요매 功夫 수이 그치리로다(破塊數席間 荷鋤功易止)〈두시 16:66ㄴ〉.
주032)
조정(朝廷) : 당나라의 조정. 여기서는 현종(玄宗)을 가리키는 말.
주033)
가서(哥舒) : 가서한(哥舒翰)의 부족 이름. 터키 계열의 민족들은 부족 이름으로 성을 대신하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가서한의 성이 되므로, ‘가서’는 곧 가서한을 가리킨다.
주034)
공주(公主) : 금성공주(金城公主). 『당서(唐書)』에 개원 말에 금성공주가 죽고 나서, 토번(吐蕃)에서 사신을 보내 부고를 알리면서 화친을 청했지만, 현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천보(天寶) 7년(748) 가서한(哥舒翰)으로 농우절도(隴右節度)로 삼아, 석보성(石堡城)을 공격해 함락하여, 구곡(九曲) 고지(故地)를 수복했다. 이로부터 변방의 환란이 그치지 않았다.
주035)
조정홀용가서장 살벌허비공주친(朝廷忽用哥舒將 殺伐虛悲公主親) : “조정에서 맹장 가서한을 변방의 장수로 갑자기 임명하자, 그곳으로 시집간 금성공주의 생사를 친척들이 걱정했다.”는 말이다.
주036)
개원말(開元末)애 : 정확히는 금성공주가 사망한 740년을 가리킨다. 이때는 개원 28년이었다. 개원(開元)은 당나라 현종(玄宗) 때에 쓰였던 연호로 연대는 713-741년까지였다.
주037)
현종(玄宗) : 685-762. 당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 712-756). 본명은 이융기(李隆基)고, 예종(睿宗)의 셋째 아들이다. 명황(明皇)이라고도 부른다. 조모 측천무후(則天武后) 시대에 낙양(洛陽)에서 태어났고, 9살 때 임치왕(臨淄王)으로 봉해졌다. 26살 때 위후(韋后)가 딸 안락공주(安樂公主)와 짜고, 중종(中宗, 현종의 백부)을 암살, 중종의 아들 온왕(溫王)을 제위(帝位)에 앉히고, 정권을 농단(壟斷)하기 위해, 현종의 아버지 상왕(相王)까지도 해치려 하였다. 심복 장병을 인솔, 위후와 안락공주 일당을 공격한 뒤 아버지를 제위에 옹립하고, 자신은 황태자가 되어 실권을 잡았고, 28살 때 마침내 아버지의 양위로 즉위했다. 당시 권세를 누린 태평공주(太平公主) 일파를 타도하여, 측천무후 이래 반세기에 걸친 부인의 정권 개입을 근절시킨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초기에는 정치를 잘해 개원(開元)과 천보(天寶) 시대 수십 년의 태평천하를 구가했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들자, 정치를 등한시하고, 도교(道敎)에 빠져 막대한 국비를 소비했으며, 35살이나 연하인 양귀비(楊貴妃)를 궁내(宮內)로 끌어들인 뒤 정사를 포기하다시피 하여, 권신 이임보(李林甫)가 국정을 대신 맡아보았다. 천보 14년(755)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사천(四川)으로 난을 피해 가던 도중에 양귀비는 병사에게 살해되었다. 이듬해 아들 숙종(肅宗)에게 양위하고 상황(上皇)으로 은거했는데,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뒤 죽었다. 특히 음악에 뛰어나 스스로 작곡까지 하면서, 이원(梨園)의 자제 남녀를 양성했다. 서예에도 능해 명필이라는 칭호를 들었다. 시호는 지도대성대명효황제(至道大聖大明孝皇帝)다.
주038)
사한벌지(使翰伐之)니 : 가서한(哥舒翰)을 시켜 공격하니. 곧 천보(天寶) 7년(748)에 가서한(哥舒翰)을 시켜, 당시 토번(吐蕃)이 점령하고 있던 석보성(石堡城)을 공격하여, 구곡(九曲) 고지(故地)를 수복한 일을 가리킨다.
주039)
조정(朝廷)이 : ‘조정’은 당시 양국충에 휘둘리는 현종을 가리킨다.
주040)
홀연(忽然)히 : 갑자기. 당시에 토번(吐蕃)이 화친을 청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갑자기 토번의 점령지를 탈환하였다.
주041)
가서한(哥舒翰) : ?-756. 당나라 때 투르크족 투르기시(突騎施) 가서(哥舒) 부족 사람. 안서(安西)에 세거(世居)했다. 안서부도호(安西副都護)의 아들이다. 나이 마흔 살쯤에 하서(河西) 절도사 왕충사(王忠嗣)의 막하 무장으로 들어가 아장(衙將)이 되어, 토번의 침입을 격파했다. 좌위낭장(左衛郞將)으로 옮겼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6년(747) 농우절도부사(隴右節度副使)가 되고, 나중에 군공으로 특진(特進)에 올랐다. 12년(753) 양국공(凉國公)에 봉해지고, 하서절도사가 더해졌으며, 얼마 뒤 서평군왕(西平郡王)에 봉해졌다. 술 마시기를 좋아했고, 성색(聲色)을 밝히다가 풍질에 걸려 귀경했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자, 황태자의 선봉병마원수(先鋒兵馬元帥)로 군사 20만 명을 이끌고 동관(潼關)을 지키며 반년 동안 분전했다. 나중에 양국충(楊國忠)의 참언으로 전투를 종용받아 할 수 없이 결전을 벌이다가, 대패하고 포로로 잡혔다. 낙양(洛陽)에 갇혔다가, 살해되었다.
주042)
시니 : 쓰시니. [用]-+시+니. 당시 현종은 가서한(哥舒翰)으로 하여금 토번(吐蕃)이 점령하고 있던 석보성(石堡城)을 탈환하게 하였는데, 이를 두고 원시에서는 ‘用哥舒將’이라 표현하고 이를 ‘가서한(哥舒翰) 장군(將軍)을 시니(가서한 장군을 쓰시니)’로 언해하였다.
주043)
살벌(殺伐)야 : 살벌하여. 이때까지 평화롭던 당과 토번의 관계가 가서한이 석보상을 점령한 이후부터 험악해지기 시작하였다.
주044)
공주(公主)ㅅ 아 : 금성공주의 친척을. 〈중간본〉은 ‘公主ㅅ 아’이다. 가서한을 변방 사령관으로 임명해, 전운이 무르익자 티베트로 시집간 금성공주의 안위가 염려되어, 친척들이 근심한다는 말이다.
주045)
쇽졀업시 : 속절없이. 헛되이. 공허히. 당이 석보성을 공격하여 획득한 것이 변방의 혼란만 야기시켰을뿐 실익이 없다는 말이다.
주046)
슬케 니라 : 슬프게 하니라. 슬프게 한다. 슳[悲]-+게 -+니+라.
주047)
공동(崆峒) : 산(山) 이름. 감숙(甘肅) 평원시(平涼市) 서쪽에 있다. 도교(道敎) 발상지의 하나. 황제(黃帝)가 선인(仙人) 광성자(廣成子)에게 도(道)를 물은 곳이라고 한다. 공동(空同)·공동(空桐)으로도 쓴다.
주048)
서극(西極) : ①서쪽 변방의 끝 지점. 서방(西方)의 아주 먼 곳을 가리킨다. ②장안(長安)의 서쪽 지역 강역(疆域).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049)
곤륜(崐崙) : 곤륜산(崑崙山).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산. 처음에는 하늘에 이르는 온 산. 옥이 나는 산으로 알려졌지만, 전국시대 말기부터는 서왕모(西王母)가 갈고, 불사(不死)의 물이 흐르는 신선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주050)
공동서극과곤륜 타마유래옹국문(崆峒西極過崑崙 駝馬由來擁國門) : “변방 지역의 민족들이 곤륜산을 지나 중국으로 들어오니, 그들이 끌고 온 낙타와 말들로 도성의 문 앞을 채웠다.”는 말이다.
주051)
구시종화(舊時從化) : 예전 시대에 이민족이 중국의 교화를 따랐다는 말. 중국 문명의 혜택을 받아 이민족의 문화도 발전했다는 뜻이다.
주052)
공동(崆峒) 서극(西極)으로 곤륜산(崐崙山)애 디내히 : 공동과 서극을 통하여 곤륜산을 지나. 디나[過]-+아+히. 공동(崆峒)은 감숙성(甘肅省) 양서(凉西)에 있는 산명인데, 두보는 46세 때이던 757년(지덕 2) 4월에 장안을 탈출하여, 숙종이 머물던 봉상(鳳翔, 섬서성 鳳翔)의 행재소(行在所)에 도착하여, 5월에 좌습유(左拾遺)에 임명되어, 숙종을 따라다니면서 모시게 되었다. ‘히’는 부사화접미사로서 ‘아라히, 므던히’처럼 ‘아라다, 므던다’에서 부사화접미사 ‘-이’가 결합된 형태나 ‘能히, 敢히’처럼 ‘한자어#다’에 ‘-이’가 결합된 형태가 아니라 동사의 부동사 어미에 결합된 것이다. 초기 음독구결에 보이는 ‘’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주 귀중한 예이다. ¶-히 : 큰 므레 가다가도 일후믈 일면 즉자히 녀튼  어드리어며(若爲大水의 所漂야 稱其名號면 即得淺處리며)〈석상 21:2ㄴ〉 / 世옛 사미 티 倍히 더 보아 구틔여 分別을 내니 足히 그 妄 보리로다(而世人이 一齊히 倍加瞻視야 强生分別니 足見其妄也ㅣ로다)〈능엄 2:14ㄱ〉 / 죄 업서 名位 늣거 호니 省郞 더듸호 敢히 츠기 너겨리아(不才名位晚 敢恨省郞遲) / 百年 內예 萬事 므던히 너기간마 녜 사던  매 耿耿야 니조미 어렵도다(百年從萬事 故國耿難忘)〈두시 3:13ㄱ〉 / 飄颻히 라셔 리튜믈 수이 커 수이 가락 오락 야 노니놋다(飄颻搏擊便 容易往來遊)〈두시 3:26ㄴ〉.
주053)
낙타(駱駞)와 왜 : 낙타와 말이.
주054)
본래(本來)로 : 본래로. 본래+로. ¶본래로 : 衣食은 本來로 치며 시니〈영가 상:22ㄴ〉 / 세 부톄 本來로 허룸 이쇼 免티 몯니〈금삼 2:29ㄱ〉 / 슬프다 뎌 高節 士ㅣ 本來로 두려운 굼긔 너모 난  니라(嗟彼苦節士 素於圓鑿方)〈두시 1:52ㄴ〉 / 내 本來로 良家앳 아리라니 軍師 내요미  여러 가지로다(我本良家子 出師亦多門)〈두시 5:32ㄴ〉 / 참조 : 本座 本來ㅅ 座ㅣ라〈석상 6:34ㄴ〉.
주055)
나랏 문(門)에 : 나라의 문에. 도성(都城)의 문에. 이민족과 교류가 빈번해 낙타와 말들이 도성 문 앞까지 채워졌다는 뜻이다.
주056)
려 : 끌려. [牽]-+어.
주057)
오더니라 : 왔다. 오[來]-+더+니+라. ¶-더니라 : 銀 부플 티면 什四億 사미 몯고 金 부플 티면 十八億 사미 다 몯더니라〈석상 6:28ㄱ〉 / 叔夜 嵆康 字ㅣ니 放曠懶散더니라〈두시 1:57ㄱ〉 / 오 아 구루미 오 열우니 어젯 바 리 고 두렵더니라(今朝雲細薄 昨夜月清圎)〈두시 2:26ㄱ〉.
주058)
역기(逆氣) : 당 조정의 의지에 거스르는 기운.
주059)
수년(數年) : 몇 년. 현종이 가서한(哥舒翰)을 시켜, 석보성(石堡城)을 장악한 이후 몇 년을 가리킨다.
주060)
번인(蕃人) : 중국 고대에 외족(外族)이나 이국인(異國人)에 대한 범칭(泛稱). 번(蕃)은 번(番)과 통한다. 여기서는 토번(吐蕃)을 가리킨다.
주061)
역기수년취로단 번인문도점성분(逆氣數年吹路斷 蕃人聞道漸星奔) : “지난 몇 년 동안 이민족이 침략하려는 기운이 있어 교류가 끊겼지만, 지금은 화해 기운이 있어 별들이 반짝이듯 그들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주062)
거슯즌 : 거스르는. 거슯즈[逆]-+ㄴ. 15세기 초기의 『석보상절』과 『월인석보』에서는 주로 ‘거슯지 다’의 형태로 쓰이다가 『내훈』에서 ‘거슯즈다’가 쓰였으며 『두시언해』에서도 모두 ‘거슯즈다’만 사용되었다. ¶거슯지다 : 實로 미혹야 어딘 사 몰라보아 夫人 거슯지호다 시고 도로 녯 벼슬 시고〈석상 11:33ㄱ〉 / 兄을 새와 녜 할오져 야 일마다 兄을 거슯지더라〈월석 22:25ㄱ〉 / 거슯즈다 : 사 지븻 兄弟ㅣ 義디 아니니 업건마 다 며느리 어더 門에 드로 因야 다 姓이 서르 모다 기로 토며 뎔오 토아 만 하리 날로 들여 아 生計 기우로 야  背叛야 거슯주메 니르러 門 호며 이플 배혀 믜요 盜賊 寃讐티 니〈내훈3:40ㄴ〉 / 考功의 等第에 거슯저디여 올로 京尹의 堂애 가 下直호롸(忤下考功第 獨辭京尹堂)〈두시 2:40ㄴ〉 / 蛟龍 기피셔 거슯주믈 짓고 豺虎 어즈러이 모디로 雄壯히 놋다(蛟螭深作橫 豺虎亂雄猜)〈두시 3:8ㄴ〉 / 주린 버미 뫼로 려오며 龍 거슯주미  므레 나니(虎之饑下巉岩 蛟之橫出清泚)〈두시 8:18ㄴ〉 / 슬프다 功名을 거슯지 니 오직 글스기와 그리믜 傳야 오 보리로다(惜哉功名忤 但見書畫傳)〈두시 16:28ㄱ〉.
주063)
두 : 두어. 둘+서. 원시의 ‘數’의 번역이다. 〈중간본〉은 ‘두어’이다. ¶두 : 그 夫人이 니 사 브려 나랏 內예 王ㅅ 病  사 어더 려다가   보니 그 소배 거믄 벌에 기리 두 츤 니 잇고〈석상 24:50ㄱ〉 / 두  술로 됴 이 資賴고 됴 마란 옰 員을 어즈러이 노라(數杯資好事 異味煩縣尹)〈두시 19:42ㄱ〉.
주064)
부러 : 불어. 불[風]-+어. ¶불다 : 그 後에 미 므를 부러 地輪이 외니〈월석 1:41ㄱ〉 / 미 부러 큰 븘 비치 니르와니 매 가   기디 놋다(風吹巨焰作 河棹騰煙柱)〈두시 25:12ㄴ〉.
주065)
그쳇더니 : 그쳐 있더니. 긏[絶]-+이+어#잇-+더+니. ¶긏다 : 大衆이 야  솨줄 그처  우희 고 날마다 이 야로 出令야 닐웨예 닐굽 솨줄 그처  우희 고  보아 돗 드니〈월석 22:38ㄱ〉 / 뉘 能히 〈두시 25:40ㄱ〉 사 목수믈 그처 時世옛 어디로 외리오(誰能絶人命 以作时世賢)〈두시 25:39ㄴ-40ㄱ〉.
주066)
니거 드로니 : 이르거늘 들으니. 말하는 것을 들으니. 원시는 ‘聞道’로 ‘두시’에서 ‘聞道’는 항상 구(句)의 처음에 쓰이는데 여기에서만 구(句)의 가운데에 쓰였다. 그러나 『두시언해』는 구(句)의 처음에 쓰인 것처럼 번역하였다.
주067)
번인(蕃人)이 : 토번 사람들이.
주068)
별  : 별이 달리는 듯. [走]-+. 15세기 국어의 ‘’은 동명사 어미에 후행하는 경우와 동사 어간에 후행하는 경우가 있다. ¶-(동사어간에 후행하는 경우) : 그제 춋브리  가 잇더니〈석상 3:26ㄱ〉 / 金盤과 玉져왜 消息이 업스니 이 나래 새 맛보고 다봇 올마 니 호 므더니 너기노라(金盤玉箸無消息 此日嘗新任轉蓬)〈두시 15:23ㄴ〉 / -(동명사 어미에 후행하는 경우) : 긴 바 衆生이 미혹야 時常 바 잇  긴 바미라 니라〈석상 3:23ㄴ〉 / 棘樹  구 빗 고 茵蔯은  蓮ㅅ 불휘 곳다온 도다(棘樹寒雲色 茵蔯春藕香)〈두시 15:9ㄴ〉.
주069)
발률(勃律) : 서역 지방에 있던 세력의 이름. 당나라 때는 대소 발률이 있었다.
주070)
옥하(玉河) : 우전(于闐, 지금의 신강화전현(新疆 和田縣)성 밖에 있는데, 근원은 곤륜산에서 시작한다. 큰물이 거침없이 흐르는데, 옥이 물길을 따라 흘러오면서 강바닥이나 기슭에 묻혀 있다가, 가을이 되어 물이 빠지면, 그때 옥을 채집한다. 이것을 노옥(撈玉)이라 불러는데 지금도 최고 품질의 옥으로 취급된다.
주071)
발률천서채옥하 견곤벽완최래다(勃律天西采玉河 堅昆碧盌最來多) : “이민족들과 화해가 이뤄지고 교류가 많아져,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기이한 물자들이 아주 많이 중국으로 들어온다.”는 말이다.
주072)
서강국(西羌國) : 전한(前漢) 때 강인(羌人)에 대한 범칭(泛稱). 또한 후한(後漢) 때 강인(羌人)이 중국 안으로 들어와, 금성(金城)이나 농서(隴西), 한양(漢陽) 등지에 살던 지파를 말한다.
주073)
우전국(于闐國) : 범명(梵名)은 Ku-stana. 서역(西域)에 있던 옛 왕국(王國)이다. 우전(于塡), 우전(于殿), 우둔(于遁), 계단(溪丹)으로도 불린다. 신강(新疆) 서부, 지금의 화전(和田, Khotan) 땅이다.
주074)
견곤국(堅昆國) : 옛날 부족(部族) 이름. 격곤(鬲昆), 격곤(隔昆), 결골(結骨), 흘골(紇骨), 거물(居勿)로도 불린다. 시베리아 섭니새하(葉尼塞河) 상류 일대에 있었다. 여기서는 멀리 있는 오랑캐를 가리킨다. 이 지역에서는 유리 주발이 많이 생산되었다. 당(唐)나라 때는 힐알사(黠戛斯)로 불렸는데, 지금의 섭니새하(葉尼塞河) 위에 있다. 한(漢)나라 초에는 흉노(匈奴)에 속했다. 선제(宣帝) 때 흉노 질지단오(郅支單於)가 병사를 일으켜, 서쪽으로 견곤(堅昆)을 격파하고, 그곳에 도읍을 정했다.
주075)
총령(葱嶺) : 돈황(敦惶) 서쪽 8천리 지점에 있는 산. 천산(天山)과 곤륜(崑崙) 등 여러 산이 모두 여기에서 뻗어나오는데, 산이 높지만 그 위에서 파가 나와 총령이라 부른다. 지금의 파미르 고원 일대를 가리킨다.
주076)
안직 : 가장 많이. ‘안직’은 ‘최(最)’에 해당하는 고유어로 고려시대의 석독구결의 독법으로도 ‘最’를 ‘[안직]’으로 읽고 있다. 그러나 15세기 언해 문헌에서는 『두시언해』에만 보인다. 『번역노걸대』 등에서 보이는 ‘안직’은 ‘아직’의 뜻이다. ¶안직(가장) : 驥子아 안직 너를 憐愛노라(驥子最憐渠)〈두시 8:48ㄱ〉 / 나그내 예 머리 안직 셰니(客間頭最白)〈두시 23:17ㄴ〉 / 안직(아직) : 우리 잡말 안직 니디 마져(咱們閑話且休說)〈번노 상:17ㄱ〉 / 오나라 오나라 안직 가디 말라 내 너려 말솜 무러지라(來來 且休去 我問伱些話)〈번노 상:26ㄱ〉.
주077)
하더니라 : 많더니라. 많았다. 하[多]-+더+니+라. ¶하다 : 華色 比丘尼게 出家야  우리히 지븨 이 저긔 受苦ㅣ 하더다〈월석 10:23ㄱ〉 / 禹ㅅ 功애 그츤 돌히 하더니  히 져기 平  나오라(禹功饒斷石 且就土微平)〈두시 7:10ㄴ〉.
주078)
천퇴보(千堆寶) : 천 무더기의 보배.
주079)
구수한사천퇴보 소답호왕만필라(舊隨漢使千堆寶 少答胡王萬匹羅) : “이민족들이 한나라 사신을 따라 많은 보물을 가져오자, 중국에서도 많은 비단을 오랑캐 임금에게 내주어 보답했다.”는 말이다.
주080)
수한사입공(隨漢使入貢)이어든 : 한(漢)나라 사신을 따라 입조하여 조공을 마치면. 오랑캐에게 사신을 보내면, 오랑캐는 사신을 따라 입조하여 조공을 바쳤음을 말한다. ¶-이어든 : 일허 니조미 滅이어든 住와 異와 예 잇니라(失忘이 爲滅이어든 而住와 異와 處中니라)〈능엄 3:14ㄴ〉 / 日光이 揜蔽야 地上이 淸凉며 靉靆垂布야 如可承攬이어든(光이 려  우히 서늘며 므즤여 드려 펴디여 어루 바다 자거든)〈법화 3:34ㄴ〉 / 此 甫ㅣ 言思昔日에 與妻子로 歡會고 今恐妻子ㅣ 死亡이어든 窮獨無歸也ㅣ라〈두시 2:32ㄱ〉 / 書예 若作和羹이어든 爾惟塩梅라다 主將 謂嚴武l라 言武l 歸朝야 作相이어든 甫l 還郷村也l라〈두시 10:30ㄱ〉 / 참조 : 主將이 소 마 調和라 도라니거시든 나 도라 녜 사던  무러 가리라(主將歸調鼎 吾還訪舊丘)〈두시 10:30ㄱ〉.
주081)
만필라(萬匹羅)로 소답지야(少答之也)ㅣ라 : 한(漢) 나라 조정에서는 만 필의 비단으로 받은 것보다 많이 사신에게 답례를 하였다는 것을 ‘소(少)’로, 적게 답례를 하였다고 표현한 것이다.
주082)
무딧 : 무더기의. 무지의. 무디+ㅅ. ¶무디 : 이  重 業이 온 미 몰앳 무디 부러 흐룸 야〈능엄 7:54ㄱ〉 / 苦聚 受苦ㅅ 무디라〈법화 2:55ㄴ〉.
주083)
가져오나 : 가져오면. 갖[持]-+이+어#오-++아+. ¶가져오다 : 이긔여 쏘리 업스니 가져오라 야시〈석상 3:13ㄴ〉 / 서늘호믈 卑濕 해 가져오고 소 洞庭엣 므를 혀 도다(爽携卑濕地 聲拔洞庭湖)〈두시 2:23ㄱ〉.
주084)
져기 : 적게. 조금. 원시의 ‘소(少)’에 대한 번역이다. ¶져기 : 바  잇 羯隨라  새 우루미 부텻 목소리 져기 즛니다〈석상 24:20ㄱ〉 / 願 너 干謁호 져기 라 蜀都애 사호맷 술위 하니라(願子少幹謁 蜀都足戎軒)〈두시 8:7ㄱ〉.
주085)
수답(酬答)더시니라 : 보답하셨다. 酬答#-+더+시+니+라.
주086)
금춘(今春) : 올해 봄. 올봄. 이 봄.
주087)
건곤(乾坤) : ①『주역(周易)』 팔괘(八卦) 가운데 건괘(乾卦)와 곤괘(坤卦). ②하늘과 땅. 천지(天地). ③음(陰)과 양(陽).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088)
남북동서(南北東西) : 동서남북(東西南北). 사방(四方)을 가리키는 말로 곧 온 천하를 가리킨다.
주089)
금춘희기만건곤 남북동서공지존(今春喜氣滿乾坤 南北東西拱至尊) : “올해 봄에 전쟁이 끝나 희색이 천지에 가득해, 사방 사람들이 모두 임금을 높이 받들어 섬긴다.”는 말이다.
주090)
옰보 : 올해 봄에. 올봄에. 오[來]-+ㄹ+ㅅ#봄+. ‘ㅅ’은 동명사어미 ‘-ㄹ’을 ‘-ㄹㆆ’으로 표기하던 방법의 잔영이다.
주091)
깃븐 : 기쁜. [喜]-+브+ㄴ. ‘깃브다’는 ‘다’의 파생형용사이다. ¶깃브다 : 難陁 깃브다 논 마리오〈석상 13:7ㄴ〉 / 燈花ㅣ 모  깃브니 프른 수를 正히 서르 親히 호라(燈花何太喜 酒綠正相親)〈두시 15:56ㄴ〉.
주092)
니 : 가득하니. #+니. ¶다 : 六師 무리 閻浮提예 야도 내 바랫  터리 몯 무으리니〈석상 6:27ㄱ〉 / 한 士ㅣ 朝廷에 얏니 仁者 저허 호미 맛당니라(多士盈朝廷 仁者宜戰慄)〈두시 2:35ㄴ〉.
주093)
공대(拱戴) : 두 손을 맞잡고 받들어 섬김. 〈중간본〉은 ‘拱載’이다.
주094)
공대(拱戴)놋다 : 공대하는구나. 공대(拱戴)#++오+ㅅ+다.
주095)
대력삼년(大曆三年) : 768년. 대력(大曆)은 당(唐)나라 대종(代宗) 시대에 쓰였던 연호. 연대는 766-779이다.
주096)
옥촉(玉燭) : 옥(玉)과 촛불. 네 계절의 운행이 화창하여 기후가 조화를 이룬 것. 보통 ‘태평성세(太平聖歲)’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주097)
대력삼년조옥촉 현원황제성운손(大曆三年調玉燭 玄元皇帝聖雲孫) : 언해에는 ‘대력 삼년에 옥촉이 조화로우니 현원황제의 성덕하신 운손이시로다’라고 하였다. 원시의 앞 구와 뒤 구는 동일한 통사구조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어, 앞 구의 ‘조(調)’와 뒤 구의 ‘성(聖)’은 모두 동사로 해석할 수 있는데, 『두시언해』에서는 전자는 동사로 후자는 관형어로 해석하였다.
주098)
대종(代宗) : 생몰년은 727-779. 이예(李豫). 당나라의 황제(재위 762-779). 숙종(肅宗)의 맏아들이다. 처음 이름은 숙(俶)인데, 나중에 예(豫)로 고쳤다. 『주역(周易)』과 『예기(禮記)』에 정통했다. 15살 때 광평왕(廣平王)에 봉해졌다. 숙종 지덕(至德) 2년(757) 천하병마원수(天下兵馬元帥)가 되어, 곽자의(郭子儀) 등과 함께 병사를 이끌고, 안경서(安慶緖)를 격파하고, 양경(兩京)을 수복했다. 건원(乾元) 원년(758) 태자가 되었다. 보응(寶應) 원년(762) 환관(宦官) 정원진의 옹립으로 황제에 올랐다. 17년 동안 재위했는데, 환관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번진(藩鎭)들이 발호했지만, 제어하지 못했다. 시호는 예문효무황제(睿文孝武皇帝)다.
주099)
노자(老子) : ?-?. 춘추시대 말기 초(楚)나라 고현(苦縣) 사람. 도가(道家)의 창시자.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이이(李耳)고, 자는 백양(伯陽)이다. 주(周)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를 지냈다. 공자(孔子)가 젊었을 때 낙양(洛陽)으로 찾아가 예(禮)에 대해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위자화 청정자정(無爲自化 淸靜自正)’을 주장했다. 주나라가 쇠퇴해지는 것을 한탄하여, 은퇴할 결심으로 서쪽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나가 은거하려고 했는데, 도중에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상하(上下) 2편으로 된 책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후 소식은 알 수 없다. 이 책을 『노자』라 하고 『도덕경(道德經)』이라고도 부르는데, 도가사상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그의 전기는 의문점이 많아, 노자의 생존을 공자보다 100년 뒤로 보는 설도 있고, 아예 실재 자체를 부정하는 설도 있다. 태사담(太師儋) 또는 노래자(老萊子)라고 보기도 한다. 당 고조 이연(李淵)은 당나라 조정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자를 선조로 정하여 모셔왔다.
주100)
운손(雲孫) : 멀어진 자손이란 뜻으로, 8대 뒤의 후손을 일컫는 말. 『이아(爾雅)』에서 현손(玄孫)의 아들을 내손(來孫)이라 하고, 내손의 아들을 곤손(晜孫)이라 하며, 곤손의 아들을 잉손(仍孫)이라 하고, 잉손의 아들을 운손이라 한다고 되어 있다.
주101)
현원황제(玄元皇帝) : 당(唐)나라 때 노자(老子)에게 바친 존호(尊號). 당나라의 국성(國姓)과 노자의 성이 같은 이씨(李氏)여서, 당 황실은 노자를 시조(始祖)로 받들어 존경했다.
주102)
운손(雲孫)이샷다 : 운손(雲孫)이시구나. 운손(雲孫)+이+시+오+ㅅ+다. ‘샤’는 ‘시’가 후행하는 모음으로 된 어미 ‘오’에 영향을 받아, 형태가 변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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