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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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의 절도사들이 입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12수[承聞河北諸節度入朝歡喜口號絕句十二首]


承聞河北諸節度入朝歡喜口號絕句 十二首 주001)
승문하북제절도입조환희구호절구십이수(承聞河北諸節度入朝歡喜口號絕句十二首)
이 시는 두보가 대력(大曆) 2년(767) 3월 기주(夔州)에서 지은 것이다. 대력 원년(766) 10월 대종(代宗)의 생일에 각 도의 절도사(節度使)들이 금백(金帛)을 올려 축하했다. 대력 2년 봄 회남(淮南), 변송(汴宋), 봉상(鳳翔)의 절도사들이 하나둘 입조했는데, 하북(河北) 절도사에 이르러서는 시종 입조하지 않았다. 두보는 멀리 기주(夔州)에 있으면서, 일시적인 소식에 근거해서 하북의 제도 절도사들도 일찍이 입조했다고 오인하였다. 하북의 제도 절도사들이 입조한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두보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감정을 참을 수 없어 환희에 넘쳐 시를 지었는데, 그의 애국적인 열정과 국가와 백성에 대한 염려를 숭고한 정신으로 표현하였다.

승문하북제절도입조환희구호절구 십이수
(하북의 절도사들이 입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12수)

〈첫째 수〉

祿山 주002)
녹산(祿山)
안녹산(安祿山).
作逆降天誅 주003)
강천주(降天誅)
하늘이 내린 죽임. 안녹산(安祿山)이 757년 1월에 아들 안경서(安慶緖)에 의해 살해된 일을 말한다.
更有 주004)
갱유(更有)
안녹산(安祿山)의 부장 사사명(史思明)이 761년 3월에 아들 사조의(史朝義)에 의해 살해된 일을 말한다.
思明亦已無
주005)
녹산작역강천주 경유사명역이무(祿山作逆降天誅 更有思明亦已無)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각자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간단하게 하나의 시구(詩句)에 담은 것이다.

祿山이 亂逆거 주006)
난역(亂逆)거
난역하거늘. 반역하거늘. 난역(亂逆)#+거++ㄹ.
하히 주규믈 리우시니 주007)
하히 주규믈 리우시니
하늘이 죽임을 내리시니. ‘하ㅎ’는 ‘ㅎ’말음체언이다. 죽[死]-+이+우+ㅁ+을 리[下]-+우+시+니. 원시는 ‘降天誅’로 [降[天誅]의 구조 즉 ‘하늘의 죽임을 내리다’인데, 『두시언해』의 언해는 ‘天’을 주어로 설정하여 번역되었다. ¶리우다 :  울 예 머그면 이틋나래 얼읜 피 리우면 즉재 됻니〈구급방 하:30ㄴ〉 / 食後에 머구   복애 셜흔 환식 야  달힌 므레 리우라 머그면 뷔 야 두 번 면 곧 밥 먹고져 야 리라〈번노 하:40ㄱ-41ㄱ〉.
다시 思明이 잇더니  마 주008)
마
이미. 벌써. ¶마 : 세 關 마 차  삸미티 虛空애 머니(三關을 已透야 一鏃이 遼空니)〈금삼 5:43ㄴ〉 / 나 延引야 마 어둡거늘 블혀 여러 門 열오(延客已曛黑 張燈啟重門)〈두시 1:13ㄱ〉.
업도다

【한자음】 녹산작역강천주 경유사명역이무
【언해역】 안녹산이 난역(亂逆)하거늘 하늘이 죽음을 내리시니, 다시 사사명(史思明) 주009)
사사명(史思明)
?-761. 당나라 영이주(寧夷州) 돌궐족(突厥族) 사람. 처음 이름은 솔간(窣干)인데, 현종(玄宗)이 ‘사명’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안녹산(安祿山)과 동향으로, 6가지 언어를 이해했다. 안녹산과 함께 착생장(捉生將)이 되었다가, 나중에 대장군(大將軍)으로 옮겼다. 천보(天寶) 연간 중에 전공을 세워, 평로병마사(平虜兵馬使)가 되었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행동을 같이 해 하북(河北) 지방을 평정하고, 요양(饒陽)을 공략했다. 지덕(至德) 2년(757) 안경서(安慶緖)가 안녹산을 죽이고 칭제(稱帝)하자 당나라로 귀순해서 범양장사(范陽長史)와 하북절도사(河北節度使)를 지냈다. 조정에서 변심을 할까 두려워, 오승은(烏承恩)을 시켜 건원(乾元) 원년(758) 숙종(肅宗)이 살해하려 했는데, 일이 누설되어 다시 반기를 들었다. 다음 해 위주(魏州)에서 대성연왕(大聖燕王)이라 일컫고 연호는 순천(順天)이라 했다. 군사를 몰아 안경서를 구원해 업성(鄴城)의 포위를 풀었다. 얼마 뒤 안경서 등을 죽이고 그 무리를 병합했다. 범양으로 돌아와 대연황제(大燕皇帝)라 칭했다. 이어 낙양(洛陽)을 함락시켰다. 이때 자신의 준마 1천여 마리를 강에서 목욕시키며, 세력을 과시하곤 했는데, 당나라 장수 이광필(李光弼)이 암말 5백 마리를 모아 울게 했더니, 말들이 모두 암말을 향해 달려가, 1천여 마리의 말을 고스란히 당나라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이 있더니 또 이미 없더라.

洶洶 주010)
흉흉(洶洶)
원래는 흐르는 물소리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세상이 어수선함을 가리킨다.
人寰 주011)
인환(人寰)
인간(人間). 인간 세상.
猶不定 時時戰闘欲何須
주012)
흉흉인환유불정 시시전투욕하수(洶洶人寰猶不定 時時戰闘欲何須)
반란이 아직 평정되지 않아서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잔당들을 소탕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들이 무슨 목적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반문하는 구절이다.
【洶洶 水聲이니 喩亂也ㅣ라 此 言時예 尙有叛者也ㅣ니라 주013)
상유반자야(尙有叛者也)ㅣ니라
아직도 오히려 반란을 일으킨 자가 완전히 소탕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어즈러이 주014)
어즈러이
어지러이. 어지럽게. 원시의 ‘흉흉(洶洶)’을 번역한 말로 세상이 아직도 어수선함을 말한다. 원문 주석에는 ‘물 흐르는 소리’라고 하였다.
人寰이 오히려 安定티 주015)
안정(安定)티
안정하지. 안정되지. 안정(安定)#+디.
아니니 時時예 주016)
시시(時時)예
때때로. 그 당시에.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2ㄱ

사호 므슷 주017)
므슷
무슨. 후행하는 ‘뇨’의 의문어미 ‘-뇨’와 호응한다. ¶므슷 : 六師 무리 閻浮提예 야도 내 바랫  터리 몯 무으리니 므슷 이 겻고오려 고〈석상 6:27ㄱ〉 / 구위실 마로미  사로브테어 므슷 일로 얼구릐 브류메 걸위옛가니오(罷官亦由人 何事拘形役)〈두시 10:29ㄱ〉.
이 엇고져 뇨 주018)
엇고져 뇨
얻고자 하는가? 얻[得]-+고#지-+어 -++니+오. 『두시언해』에서는 의문어미로 ‘-뇨’와 ‘-니오’가 모두 쓰였으나 15세기의 다른 문헌에서는 의문어미 ‘-뇨’만 쓰였고, ‘-니오’는 연결어미로만 쓰였다. ¶太子ㅣ 무르샤 엇뎨 沙門이라 뇨 對答 三界 어즈럽고 六趣ㅣ 어즐거늘(問何名沙門 答曰 三界兮擾擾 六趣兮昏昏)〈석상 3:20ㄱ〉.

【한자음】 흉흉인환유불정 시시전투욕하수【‘흉흉(洶洶)’은 물 흐르는 소리니, 어지러운 것을 비유한다. 이것은 그때 아직도 반란자가 있다는 말이다.】
【언해역】 어지럽게 인간의 세상이 오히려 안정되지 않으니, 때때로 싸움은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둘째 수〉

社稷 주019)
사직(社稷)
나라에서 백성의 복을 위해 제사하는 국토지주(國土之主)의 사(社)와 오곡지장(五穀之長)의 직(稷). 임금이 나라를 세우면, 먼저 사직과 종묘를 세웠는데, 사직은 궁성의 동쪽에 종묘는 궁성의 서쪽에 세움. 임금을 사직의 주인이라고 하여, 나라가 존재하면, 사직의 제사가 행하여지고 망하면, 사직의 제사는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시되어, 국가(國家)의 이칭(異稱)으로서 종사(宗社)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주020)
창생(蒼生)
①초목(草木)의 떨기가 나는 곳 ②세간(世間)의 모든 사람. 생민(生民).
生計必安 蠻夷 주021)
만이(蠻夷)
만이(蠻彛). 옛날 사방 변방의 먼 지구에 사는 소수민족(少數民族)을 총칭하는 말. 또한 주로 남방(南方)의 소수민족을 가리킨다.
雜種
주022)
만이잡종(蠻夷雜種)
서융(西戎)인 토번, 회흘, 당강(黨羌)과, 안녹산(安祿山), 사사명(史思明)들을 가리키는 말.
錯相干
주023)
사직창생계필안 만이잡종착상간(社稷蒼生計必安 蠻夷雜種錯相干)
“종묘사직과 백성들의 마음은 편안함을 좇는데, 변방의 이민족들이 뒤섞여 침입한다.”는 말이다.
【錯相干 祿山及吐蕃이 相繼爲亂也ㅣ라】

社稷과 蒼生 혜아료 주024)
사직(社稷)과 창생(蒼生) 혜아료
사직과 백성들의 헤아림은. 사직과 백성들의 바람은.
반기 주025)
반기
반드시. 원시의 ‘必’의 번역이다. ¶반기 : 善根이 기프면 彈指ㅅ 예 반기 가리니〈월석 8:1ㄴ〉 / 오며  體 반기 알며 나가며 믈러오 들 아  도다(必驗升沉體 如知進退情)〈두시 12:2ㄴ〉.
便安코져 니 주026)
편안(便安)코져 니
편안하고자 하니. 편안(便安)#+고#지-+어 -++니.
蠻夷ㅣ 여러 주027)
여러
여러. 다양한. 원시의 ‘잡(雜)’에 대한 번역어이다.
種類ㅣ 섯거 주028)
섯거
섞어. 섞여. [雜]-+어. 15세기 국어의 ‘다’는 자타동 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의 용법으로 쓰였다. ¶(자동사) : 고롬과 피왜 섯거  조며 微妙히  紫金光聚 能히 내디 몯리라(膿血이 雜亂야 不能發生勝淨妙明紫金光聚ㅣ라야)〈능엄 1:42ㄴ〉 / 奇異 죄  섯거 나니(異才複間出)〈두시 22:27ㄱ〉 / (타동사)十地菩薩이 世俗 섯거 衆生 利케 샤 如來와 거시니와〈월석 2:61ㄴ〉 / 세 히록 고 病 알호 뉘 可히 리오 치위와 더위왜 온 나 서르 섯거 사호다(瘧癘三秋孰可忍 寒熱百日相交戰)〈두시 3:50ㄱ〉.
서르 주029)
서르
서로.
干犯니라 주030)
간범(干犯)니라
간범하니라. 간범한다. 간범(干犯)은 상관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불손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죄질이 아주 나쁠 때는 참형(斬刑)에 처하고 재산을 관에 몰수했다. ‘간범(干犯)하다’는 사전에 ‘남의 일에 간섭하여 권리를 침범하다’로 뜻풀이 되어 있다.

【한자음】 사직창생계필안 만이잡종착상간【‘착상간(錯相干)’은 안녹산과 토번이 서로 이어서 전란을 일으킨 것이다.】
【언해역】 사직(社稷)과 창생(蒼生)의 헤아림은 반드시 편안코자 하니, 만이(蠻夷)의 여러 종류가 섞여 서로 간범(干犯)하니라.

周宣 주031)
주선(周宣)
주나라의 선왕(宣王, ?-기원전 782). 서주(西周)의 국군(國君)으로 재위 기간은 기원전 827-기원전 782이다. 성은 희(姬)씨고, 이름은 정(靜, 靖)이며, 여왕(厲王)의 아들이다. 여왕이 나라 사람들에 의해 쫓겨났을 때 소공(召公)의 호가(虎家)에 숨어 있었다. 여왕이 죽자 귀국하여 즉위했다. 군려(軍旅)를 정비하고, 윤길보(尹吉甫)를 기용하여 험윤(玁狁)을 격퇴했다. 방숙(方叔)과 소호(召虎) 등에게 명령해 형초(荊楚)와 회이(淮夷) 일대에서 군사 작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서융(西戎)에서 작전을 벌였지만 얻은 것도 없이 대량의 인력과 물자만 소모했다. 46년 동안 재위했다. 소목공(召穆公), 방숙(方叔), 윤길보, 중산보(仲山甫) 등에게 안팎의 정치를 맡기자 왕의 교화(敎化)가 크게 일어나, 주나라 초기의 성대한 모습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아들 유왕(幽王) 때 주나라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漢武 주032)
한무(漢武)
한나라의 무제(武帝)를 가리키는 말.
今王 주033)
금왕(今王)
지금의 왕. 즉 대종(代宗)을 가리킨다.
是 孝子忠臣後代看
주034)
주선한무금왕시 효자충신후대간(周宣漢武今王是 孝子忠臣後代看)
“훌륭한 군주였던 주선왕이나 한무제와 같은 군주가 지금 임금이니, 예전의 충신 효자가 지금 시대에도 나오고 있다.”는 말이다.
周宣은 中興고 주035)
주선(周宣)은 중흥(中興)고
서주의 왕인 선왕 때 주나라 초기의 성대한 모습을 회복한 것을 표현한 구절이다.
漢武 除暴亂니 주036)
한무(漢武) 제폭란(除暴亂)니
한나라의 무제는 여러 반란 세력을 진압하고 한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표현한 구절이다.
喩代宗다 주037)
유대종(喩代宗)다
주나라의 선왕과 한나라의 무제가 모두 대종과 비교된다는 표현이다.
下句 以忠孝로 期望諸節度니라 주038)
하구(下句) 이충효(以忠孝)로 기망제절도(期望諸節度)니라
하구(下句) 즉 ‘효자충신후대간(孝子忠臣後代看)’은 뭇 제후들이 충효(忠孝)의 덕목을 지킬 것을 말한 것이다.

周宣王과 漢武帝 이젯 님그미 주039)
이젯 님그미
지금 임금이. 즉 대종(代宗)이. ¶이젯 : 波羅㮈大王 이젯 내 아바님 閱頭檀이시고〈석상 11:22ㄱ〉 / 君王 녯 자최 이젯 사미 賞玩니 千秋萬古앳 들  보리로다(君王舊跡今人賞 轉見千秋萬古情)〈두시 14:1ㄴ〉.
이 긔시니 주040)
이 긔시니
이 사람이 그이시니. 이가 그와 같으시니. 즉 대종(代宗)이 바로 주나라의 선왕와 한나라의 무제에 비교된다는 뜻이다. 원시의 ‘시(是)’에 대응하는데, 이때의 ‘시(是)’는 계사가 아니라 대명사로 쓰인 것이다.
孝子와 忠臣 後代예셔 보리라 주041)
효자(孝子)와 충신(忠臣) 후대(後代)예셔 보리라
여기서 후대란 현재 이후가 아니라 주선왕과 한무제 이후란 뜻으로, 당나라 현재 시점을 가리킨다.

【한자음】 주선한무금왕시 효자충신후대간【주나라의 선왕(宣王)은 중흥을 했고, 한나라의 무제(武帝)는 난폭한 난리를 없앴으니, 대종(代宗)을 비유한다. 아래 시구는 충효를 여러 절도사에게 기약해 바라는 것이다.】
【언해역】 주 선왕과 한 무제는 지금 임금이 그와 같으시니, 효자와 충신은 후대에서 보리라.

〈셋째 수〉

喧喧 주042)
훤훤(喧喧)
①소리가 시끄럽고 떠들썩한 것을 형용하는 말. ②어지럽고 뒤섞인 것을 형용하는 말.
道路多謌謠 河北 주043)
하북(河北)
황하(黃河) 이북(以北) 지역(地域)을 일컫는 말.
將軍
주044)
하북장군(河北將軍)
하북제도절도사(河北諸道節度使)를 가리키는 말. 대력(大曆) 2년(767) 봄 하북제도절도사들이 입조하지 않았는데, 당시 두보는 멀리 기주(夔州)에 있으면서 소문을 듣기에 하북제도절도사들도 이미 입조했다고 오인했다.
入朝 주045)
입조(入朝)
①속국(屬國)이나 외국의 사신(使臣) 또는 지방관원(地方官員)이 천자(天子)를 알현(謁見)하는 일. ②중앙조정(中央朝廷)으로 들어가 관리가 됨.
주046)
훤훤도로다가요 하북장군진입조(喧喧道路多謌謠 河北將軍盡入朝)
“도로에는 즐겁게 노래 부르는 이들로 넘쳐나니, 하북을 지키던 절도사가 입조(入朝)하기 때문이다.”는 말로, 백성들이 조정의 위의와 힘찬 기세를 찬탄한다는 뜻이다.

길헤셔 주047)
길헤셔
길에서. 길ㅎ+에#시-+어.
숫어 주048)
숫어
소란스러워. 떠들썩하여. 숫[喧]-+어. ‘숫다’는 원시에서 ‘喧喧’의 번역으로 쓰였다. 참고. 수다, 수다, 숫워리다, 숫어리다, 수어리다, 수어리다, 수워리다. 숫두워리다. ¶숫다 : 녜 光明 펴니 여슷 窓이 뷔여 괴외야 숫어 어즈러오미 긋도다〈금삼 5:11ㄱ〉 / 숫어리다 : 토아 沐浴야 짐즛 서르 슷어리다(爭浴故相喧)〈두시 10:6ㄴ〉 / 숫워리다 : 숫워려셔  가온  수를 업텨 머구라(喧呼且覆杯中淥)〈두시 3:53ㄴ〉 / 수다 : 近閒애 드로니 詔書ㅣ 려 都邑에셔 수니(近聞下詔喧都邑)〈두시 17:29ㄴ〉 / 수어리다 : 黃牛ㅅ 峽엣 므리 수어리다(黃牛峽水喧)〈두시 11:49ㄴ〉 / 수어리다 : 엇뎨 져비 새 수어리미 업스리오(空聞燕雀喧)〈두시 21:10ㄱ〉 / 수워리다 : 수워려 토 해 채 텨 가 게을오라(喧爭懶著鞭)〈두시 20:8ㄴ〉 / 수다 : 수 소리 萬方애 니도다(喧聲連萬方)〈두시 10:20ㄱ〉 / 수워리다 : 수워리  避야 모딘 범 잇  히 너기니(避喧甘猛虎)〈두시 9:9ㄴ〉 / 숫두워리다 : 王ㅅ 알 드라 말이 재야 숫두리더니〈월천 58ㄱ〉 / 員의  안핸 숫두워려 블로미 업도다(太守庭內不喧呼)〈두시 9:31ㄱ〉.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2ㄴ

주049)
놀애
노래.
브르리 주050)
브르리
부르는 이. 부르는 사람. 브르[歌]-+ㄹ#이.
하니 주051)
하니
많으니. 하[多]-+니.
河北엣 將軍이 다 入朝놋다 주052)
입조(入朝)놋다
입조(入朝)하는구나. 入朝#-++오+ㅅ+다.

【한자음】 훤훤도로다가요 하북장군진입조
【언해역】 길에서 떠들썩하여 노래 부르는 이 많으니, 하북(河北)의 장군이 다 입조하는구나!

始是乾坤王室正 却敎江漢 주053)
강한(江漢)
장강(長江)과 한수(漢水) 일대를 가리키는 말.
客魂銷
주054)
시시건곤왕실정 각교강한객혼소(始是乾坤王室正 却敎江漢客魂銷)
“전란이 평정되고 왕실이 안정을 되찾았는데, 두보 자신은 나그네로 가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로, 절도사의 입조를 기뻐하는 한편 자신은 멀리 있어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此 ㅣ 因喜節度 入朝而自傷流落未還朝也ㅣ라】

비르수 주055)
비르수
비로소. ‘비르수’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고, 다른 문헌에서는 ‘비르소’가 쓰였다. ¶비르수 : 乾元 元年ㅅ 보 萬姓이 비르수 便安히 살어(乾元元年春 萬姓始安宅)〈두시 8:19ㄴ〉 / 울워러 龍과 야 굼글 워 비르수 괴왯 幽暗  디나나라(仰穿龍蛇窟 始出枝撐幽 [塔之磴道ㅣ 屈曲이 如龍蛇之穴也ㅣ라 塔級之下애 多枝撑斜柱니 至塔頂則爲出幽ㅣ니라])〈두시 9:32ㄴ〉 / 비르소 : 바 모로매 本分 브터 法다 야 비르소올리라〈몽산 33ㄴ〉 / 子ㅣ 샤 나 起 者 商이로다 비르소 可히 더브러 詩를 닐엄즉도다〈논어 1:22ㄱ〉 / 時節이 바라온 제 世예 업슨 조 비르소 알리로소니 뉘 엿귀 다 니뇨 로미 나 도다(時危始識不世才 誰謂荼苦甘如薺)〈두시 8:18ㄱ〉.
이 乾坤애 주056)
이 건곤(乾坤)애
이 세상에.
王室이 正도소니 주057)
정(正)도소니
바로 되었으니. 바르게 되었으니.
도혀 주058)
도혀
도로.
江漢앳 客 넉스로 여 주059)
강한(江漢)앳 객(客) 넉스로 여
강한(江漢)의 객(客)의 넋으로 하여금. 넋+으로 -+이+어. 〈중간본〉은 ‘江漢앳 客의 넉스로 여’이다.
에 다 주060)
에 다
사르게 하네. 사르게 한다.

【한자음】 시시건곤왕실정 각교강한객혼소【이것은 두보가 절도사가 입조한 사실에 기뻐하면서 자신은 떠돌며 돌아가 입조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언해역】 비로소 이 건곤에 왕실이 바르게 되었으니, 도로 강한(江漢)의 나그네가 넋이 녹아버리도다.

〈넷째 수〉

不道諸公無表來 茫然 주061)
망연(茫然)
멍하니 정신을 잃고 있는 모양.
庶事 주062)
서사(庶事)
대단히 많은 일. 이것은 마음의 흔적을 가리킨다.
遣人猜
주063)
불도제공무표래 망연서사견인시(不道諸公無表來 茫然庶事遣人猜)
“장수들의 보고서가 오지 않는다 하여, 그들이 임금과 조정을 소홀히 한다고 의심하지 말라.”는 말로, 전란의 위기 속에서도 분열되지 말고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함을 뜻한다.
【言凡朝廷措置之事ㅣ 使諸鎭로 爲之猜疑也ㅣ라】

諸公 表ㅣ 주064)
제공(諸公) 표(表)ㅣ
변방 장수들의 표(表)가.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표(表)라 한다.
오디 아니호 주065)
오디 아니호
오지 아니함을. 오[來]-+디 아니#-+호+ㅁ+ㄹ.
니디 주066)
니디
이르지. 말하지. 니[道]-+디.
마롤디니 주067)
마롤디니
말지니. 말 것이니. 말-+오+ㄹ#+이+니.
茫然 여러 가짓 이리 사로 여 주068)
사로 여
사람으로 하여금. 사+로 -+이+어. 〈중간본〉은 ‘사로 여’이다.
몯 믿게 다 주069)
몯 믿게 다
못 믿게 한다.

【한자음】 불도제공무표래 망연서사견인시【무릇 조정이 조치한 일이 여러 군진으로 하여금 시기하고 의심하게 만들었다는 말이다.】
【언해역】 제공(諸公)의 표(表)가 오지 않음을 말하지 말지니, 망연한 여러 가지 일이 사람으로 하여금 의미하게 하노라.

擁兵相學干戈銳 使者徒勞萬里廻 주070)
옹병상학간과예 사자도로만리회(擁兵相學干戈銳 使者徒勞萬里廻)
“군사를 독려하면서 적군의 위세가 날카로우니, 조정에서 보낸 사신들도 성과 없이 돌아온다.”는 말로, 적군의 예봉을 막느라 여념이 없어 조정의 명령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과 함께 조정과 장수들의 마음이 일치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吐蕃之亂애 諸道節度ㅣ 無一人이 救援京師ㅣ어 朝廷이 遣使敦諭호 竟不至니라】

兵馬 려 주071)
려
꾸려. 끌어안아. [擁]-+이+어. ‘다’는 자타동 양용동사일 가능성이 있으며, ‘리다’는 자동사 용법의 ‘ᆯ다’에 사동접미사 ‘이’가 결합되어 형성된 사동사로 보인다. ¶리다 : 河南이 安定호 깃고 鄴城의 리여 이슈믄 묻디 아니노라(且喜河南定 不問鄴城圍)〈두시 8:34ㄴ〉 /  리 도혀 서르 사호며 星辰이 조 모다 리놋다(日月還相鬥 星辰屢合圍)〈두시 10:10ㄴ〉.
가져셔 주072)
가져셔
가져서. 가지[持]-+어#시-+어.
干戈ㅣ 카오 주073)
카오
날카로움을. ㅎ-+갑+오+ㅁ+. ¶캅다 : 이 다로 이제와  각야 고 로 歸依면 부텻 神力으로 한 受苦ㅣ 다 업고 諸根이 聰明코 카 智慧며 해 드러 長常 됴 法을 求야 어딘 버들 맛나아 魔 그므를 그츠며〈석상 9:16ㄴ〉 / 머리 우흿 카온 귀  대 버힌 고 허튓 아랫 노 바  玉 갓곤 도다(頭上銳耳批秋竹 脚下高蹄削寒玉)〈두시 17:31ㄴ〉.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3ㄱ

서르 주074)
서르
서로.
호니 주075)
호니
배우니. 호[學]-++니.
使者ㅣ 갓 주076)
갓
한갓. 원시의 ‘도(徒)’의 번역이다.
비 주077)
비
가쁘게. 피곤하게. 원시의 ‘로(勞)’의 번역이다. ¶비 : 너희 머리셔 비 오니 이 안자 밥 머그라〈석상 23:41ㄱ〉 / 어느 잇 文章이 海內옛 사 놀래리오 쇽졀업시 車馬 비 야   와 머므놋다(豈有文章驚海內 漫勞車馬駐江幹)〈두시 22:5ㄴ〉.
萬里예셔 도라오다 주078)
도라오다
돌아온다. 돌[歸]-+아#오[來]-++다.

【한자음】 옹병상학간과예 사자도로만리회【토번의 난리에 여러 절도사가 한 사람도 경사를 구원하는 이가 없었으니, 조정이 사신을 보내 말했어도 마침내 오지 않았다.】
【언해역】 병마를 끌어가서 간과가 날카로움을 서로 배우나니, 사자가 한갓 헛되이 만리에서 돌아오네.

〈다섯째 수〉

鳴玉鏘金 주079)
명옥장금(鳴玉鏘金)
‘명옥’은 옛 사람들이 허리에 차는 옥 장식인데, 걸어가거나 움직일 때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난다. ‘장금’은 금속으로 만든 기물(器物)에 부딪혀서 나는 소리. 그리하여 시구(詩句)가 아름다운 것을 비유한다.
正臣 주080)
정신(正臣)
하북제도절도사들을 가리키는 말. 그들이 역심(逆心)을 버리고 귀순했기에 이렇게 부른다.
修文偃武 주081)
수문언무(修文偃武)
문교(文敎)를 일으키고 무비(武備)를 중지함.
不無人
주082)
명옥장금진정신 수문언무불무인(鳴玉鏘金盡正臣 修文偃武不無人)
“바른 신하라면 옥이 울리고 금이 울리는 듯하니, 문덕(文德)을 닦고 무사(武事)를 쉬게 할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로,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말이다.
【鳴玉鏘金 言節度之貴고 又以修文偃武로 望於諸節度니라】

王 울이며 주083)
울이며
울리며. 울[泣]-+이+며. ¶울이다 : 法雷 뮈우시며 法敲 울이샤〈권공17ㄱ〉 / 고기 자블 사미 하히 치워 그므리 어니 莫徭ㅣ 그려기 노라 나모 화 울이다(漁父天寒網罟凍 莫徭射鴈鳴桑弓 [長沙郡에 有夷蜑니 名曰莫徭ㅣ니라])〈두시 4:28ㄱ〉.
金을 울이닌 주084)
울이닌
울리는 이는. 울[泣]-+이+#이+ㄴ.
다 正 臣下ㅣ니 文德 닷고 武事 偃息게  사미 주085)
언식(偃息)게  사미
언식(偃息)하게 할 사람이. ‘언식(偃息)하다’는 ‘걱정이 없어 편안하게 누워서 쉬다’이다.
업디 아니니라 주086)
업디 아니니라
없지 않으니라. 없지 않다.

【한자음】 명옥장금진정신 수문언무불무인【‘명옥장금(鳴玉鏘金)’은 절도사(節度使)가 귀한 것이고, 또 ‘수문언무(修文偃武)’로 여러 절도사들에게 바라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옥을 울리며 금을 울림은 다 바른 신하니, 문덕(文德)을 닦고 무사(武事)를 쉬게 할 사람이 없지 않네.

興王會靜妖氛 주087)
요분(妖氛)
상서(祥瑞)롭지 못한 기운. 대개 흉재(凶災)나 화란(禍亂)을 비유한다.
聖壽 주088)
성수(聖壽)
대종(代宗)의 생일. 여기서는 대종을 가리킨다.
宜過一萬春
주089)
흥왕회정요분기 성수의과일만춘(興王會靜妖氛氣 聖壽宜過一萬春)
“훌륭한 임금이 어지러운 전란 상황을 없앨 것이니, 길이길이 장수하여야 마땅하다.”는 말로, 나라를 흥기시킬 임금의 무궁한 영광과 장수를 기원했다.

興起시 님그믄 모로매 주090)
모로매
모름지기. 원시의 ‘회(會)’의 번역이다.
妖氛ㅅ 氣運을 업게 시리니 주091)
업게 시리니
없게 하시리니. 없게 할 것이니. 없[無]-+게 -+시+리+니.
님금 목수믄 一萬 보 주092)
보
봄을. 봄[春]+. 성조는 ‘·보(거성)(평성)’이다. ‘보다’ 동사의 활용형인 ‘보’과 성조가 동일하다. ¶보(보다) : 날로 블근 조히 서구믈 든니 치워셔 翠華ㅅ 보 기들우니라(日聞紅粟腐 寒待翠華春)〈두시 5:14ㄴ〉.
디내샤미 주093)
디내샤미
지내심이. 디내[過]-+시+오+ㅁ+이.
맛시니라 주094)
맛시니라
맛당하시니라. 맛당하다. 맛#-+시+니+라. 원시의 ‘의(宜)’의 번역이다. ¶맛다 : 되의 목수믄 그 能히 오라리아 님 紀綱 그추미 맛티 아니커니녀(胡命其能久 皇綱未宜絕)〈두시 1:8ㄴ〉 / 鍾鼎에 사교 조 보노니 眞實로 北斗ㅅ 벼 法 바도미 맛니라(數見銘鍾鼎 眞宜法斗魁)〈두시 3:10ㄴ〉.

【한자음】 흥왕회정요분기 성수의과일만춘
【언해역】 흥기하시는 임금은 모름지기 요분(妖氛)한 기운을 없게 하시리니, 임금 목숨은 일만 봄을 보내셔야 마땅하리라.

〈여섯째 수〉

英雄 주095)
영웅(英雄)
여기서는 상곤(常袞)을 가리킨다. 대력(大曆) 원년(766) 10월 대종의 생일에 제도절도사들이 금백(金帛)과 기복(器服), 진완(珍玩), 준마(駿馬) 등을 바쳤는데, 상곤이 일찍이 강력하게 황제에게 받지 말라고 권해 방일(放逸)을 막았다.
見事若通神 聖哲 주096)
성철(聖哲)
뛰어난 도덕과 재능. 혹은 그것을 가진 사람. 제왕을 칭하기도 한다. 성현을 의미하기도 한다.
爲心小一身
주097)
영웅견사약통신 성철위심소일신(英雄見事若通神 聖哲爲心小一身)
“영웅이 상황을 보는 모습이 정확하며, 군주도 마음으로 천하를 다독여 지켜야 한다.”는 말로, 신하와 군주가 일심동체가 되어 나라와 백성을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若通神 言見天下之事勢而入朝也ㅣ라 小一身 不役天下야 以自奉也ㅣ라】

英雄 이 주098)
영웅(英雄) 이
영웅의 일을.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3ㄱ

通神 니 주099)
통신(通神) 니
통신(通神)한 듯하니. 通神#-+ㄴ #-+니.
聖哲ㅅ  주100)

마음. 〈중간본〉은 ‘’이다.
샤  모 죠고매 시니라 주101)
죠고매 시니라
조그맣게 하시니라. 조그맣게 하신다. 죡[小]-+오+ㅁ+애 -+시++니+라. ¶죠고매 : 近年 숤 病에 죠고매 머구믈 여렛노니 아 勸야 兄이 가파 서르 머그면 어느 怨嗟 호미 이시리오(比年病酒開涓滴 弟勸兄酬何怨嗟)〈두시 8:42ㄴ〉 / 이블 여러 니 말미 將相 어드러로소니  죠고매야 버들 셤기니라(開口取將相 小心事友生)〈두시 24:18ㄴ〉.

【한자음】 영웅견사약통신 성철위심소일신【‘약통신(若通神)’은 천하의 사세(事勢)를 보고 입조(入朝)하는 것을 말한다. ‘소일신(小一身)’은 천하를 힘들게 하지 않고 스스로 받드는 것이다.】
【언해역】 영웅이 일을 봄이 통신(通神)한 듯하니, 성철(聖哲)의 마음 가지심은 한 몸을 작게 하시니라.

燕趙休矜出佳麗 宮闈 주102)
궁위(宮闈)
제왕(帝王)의 후궁(後宮). 후비(后妃)가 살았다.
不擬選才人 주103)
재인(才人)
궁중(宮中)의 여관(女官) 이름. 주로 비빈(妃嬪)에 대한 칭호로 쓰였다. 한(漢)나라 때 두었고, 진(晉)나라 때는 천석(石) 이하의 작위였으며, 당(唐)나라 때는 궁관(宮官) 정5품이었다가, 나중에 정4품으로 올랐는데, 이후 대대로 꾸준히 설치되었다.
주104)
연조휴긍출가려 궁위불의선재인(燕趙休矜出佳麗 宮闈不擬選才人)
“연조 당에 미인이 많다고 해도, 그들을 궁궝에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는 말로, 두보가 절도사가 입조한 것은 기뻐하지만 여색(女色)을 바칠 것이라 생각해 미리 경계한 것이다.
【燕趙之地예 多佳人니라 才人 宮中女官號ㅣ라 此 ㅣ 喜節度 入朝호 却恐其來獻女色故로 預以爲戒니라】

燕趙 주105)
연초(燕趙)
연과 초 나라의 땅.
고온 사 주106)
고온 사
고운 사람. 곱[佳]-+오+ㄴ. ¶곱다 : 俗 欲樂 사마 갓챗 한 더러운 거세 고온 들 내야 惑着야 리디 아니니〈법화 2:111ㄴ〉 / 사호매 드트리 아니 江漢앤  비치 곱도다(兵戈塵漠漠 江漢月娟娟)〈두시 20:8ㄴ〉.
나다 주107)
나다
난다. 나[生]-++다.
쟈 말라 주108)
쟈 말라
자랑 말라. 자랑하지 말라. ¶쟈 : 미친 魔ㅣ 心腑에 드러 사곳 보면 쟈야 我慢이 니〈능엄 9:70ㄴ〉 / 글 彫刻야 지 처믜 뉘 혜아리리오 터럭귿 만 도 스싀로 쟈고져 놋다(雕刻初誰料 纖毫欲自矜 [言作詩雕刻之妙 誰能可料ㅣ며 其詩ㅣ 纖毫도 皆妙而可矜誇也ㅣ니라])〈두시 20:23ㄱ〉.
宮闈예 才人 야 주109)
재인(才人) 야
재인(才人)을 가려. [選]-+야. ¶다 : 中國 소리옛 니쏘리 齒頭와 正齒왜 요미 잇니〈훈언14ㄴ〉 / 조심야 호니 가지로 自出이니 微妙히 요 노  다도다(恭惟同自出 妙選異高標)〈두시 20:45ㄴ〉.
드류리라 주110)
드류리라
들이리라. 들일 것이라. 들[入]-+이+리+라.
너기디 아니시니라 주111)
너기디 아니시니라
여기지 않으시니라. 여기지 않으신다. 너기[謂]-+디 아니#-+시+니+라.

【한자음】 연조휴긍출가려 궁위불의선재인【연조(燕趙)의 땅에 미인이 많았다. ‘재인’은 궁중의 여관(女官) 이름이다. 이것은 두보가 절도사가 입조한 것을 기뻐하면서도 그가 와서 여색(女色)을 바칠 것이기 때문에 미리 경계하는 것이다.】
【언해역】 연조는 고운사람 나옴을 자랑 말라. 궁위(宮闈)에 재인(才人)을 가리어 들이리라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일곱째 수〉

抱病江天白首郞 주112)
백수랑(白首郞)
작자인 두보 자신을 가리키는 말.
空山樓閣暮春光
주113)
포병강천백수랑 공산루각모춘광(抱病江天白首郞 空山樓閣暮春光)
“병들어 슬픈 마음으로 시인 자신(두보)가 강가에 섰는데, 빈산에 세워진 누각에는 늦봄의 햇살이 드리웠다.”는 말로, 근심과 병을 안고 큰 뜻을 펼치지 못하는 쓸쓸한 처지를 자연의 정황을 빌려 비유했다.

病 아냇 주114)
아냇
안아 있는. 안[抱]-+아#잇-+.
江天엣 머리 셴 주115)
머리 셴
머리 센. 셰[白]-+ㄴ. ¶셰다(白) : 그러나 이 衆生이 다 마 衰老야 나히 八十이 디나 머리 셰오 치 디드러 아니오라 마 주그리니〈월석 17:47ㄴ〉 / 서르 보매 제여곰 머리 셰니 그 여희요매 엇뎨료(相見各頭白 其如離別何)〈두시 23:17ㄴ〉.
주116)
랑(郞)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두보는 짧게나마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이라는 관직을 얻은 바 있다.
이여 주117)
빈. 뷔[空]-+ㄴ. ¶뷔다 : 야딘 後에 뷔여이  空劫이라〈월석 1:49ㄱ〉 / 뷘  지븨 興이 衰殘니 敎廉의 옌 자최 긋도다(興殘虛白室 跡斷孝廉船)〈두시 24:53ㄱ-ㄴ〉.
주118)
산의. 뫼+ㅅ.
樓閣애 暮春ㅅ 비치로다 주119)
비치로다
빛이도다. 빛+이+도+다.

【한자음】 포병강천백수랑 공산루각모춘광
【언해역】 병을 안은 강천(江天)에 머리 센 낭(郞)이여, 빈 산 누각에 모춘이 비치도다.

衣冠 주120)
의관(衣冠)
조신(朝臣)을 가리키는 말.
是日 주121)
시일(是日)
대종의 생일을 가리키는 날.
朝天子 草奏 주122)
초주(草奏)
초벌로 쓴 주장(奏章). 〈중간본〉은 ‘秦事로’로 되어 있다.
何人入帝鄉 주123)
제향(帝鄉)
임금이 있는 서울. 황성(皇城). 경성(京城). 또는 제왕(帝王)이 태어난 고향(故鄕). 장안(長安)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124)
의관시일조천자 초주하인입제향(衣冠是日朝天子 草奏何人入帝鄉)
“절도사가 이관을 갖추고 임금을 만나러 가는데, 서주를 쓸 사람으로는 누가 도성에 들어가느냐?”는 말로, 절도사를 따라 상서랑을 지낸 두보 자신도 입궁하겠다는 이지를 밝혔다.
【衣冠 指節度니라 ㅣ 嘗爲尙書郞故로 以草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4ㄱ

奏事로 言之니라】

衣冠 사미 주125)
의관(衣冠) 사미
의관을 갖춘 사람이. 즉 절도사(節度使)가.
이 나래 주126)
이 나래
이 날에.
天子 入朝니 書奏 주127)
서주(書奏)
서간(書簡)이나 주장(奏章) 등을 가리키는 말.
를 起草 어느 사미
주128)
서진(書奏)를 기초(起草) 어느 사미
서진(書奏)을 기초(起草)하는 어떤 사람이.
帝鄕애 드러가고 주129)
드러가고
들어가는가? 들[入]-+어#가[去]-++고.

【한자음】 의관시일조천자 초주하인입제향【‘의관(衣冠)’은 절도사를 가리킨다. 두보가 일찍이 상서랑(尙書郞)을 지냈기 때문에 초주(草奏)의 일로 말한 것이다.】
【언해역】 의관을 갖춘 사람이 이 날에 천자께 입조하나니, 서주(書奏)를 기초하는 어느 사람이 제향(帝鄕)에 들어가는가?

〈여덟째 수〉

澶漫 주130)
단만(澶漫)
넓고 먼 모양.
山東 주131)
산동(山東)
태행산(太行山) 동쪽, 즉 하북도(河北道)를 가리키는 말.
一百州 削成如桉抱靑丘 주132)
청구(靑丘)
①전설(傳說)에 나오는 해외(海外)에 있는 나라 이름. 여기서는 청주(靑州)를 말한다. ②지명. 청주(靑州) 천승현(千乘縣)에 있다. 제경공(齊景公)이 일찍이 여기서 사냥을 했다.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133)
단만산동일백주 삭성여안포청구(澶漫山東一百州 削成如桉抱靑丘)
“산동 지역 많은 고을을 평평하게 펼쳐져, 마치 푸른 언덕을 깎아 책상처럼 만든 듯하다.”는 말로, 산동 지역의 넓은 평야와 고을들을 비유한 것이다.
【澶 市連反니 澶漫 廣漠皃ㅣ라 如桉 几案이니 言平也ㅣ라 靑丘 在靑州 주134)
청주(靑州)
주(州)·부(府)의 이름. 한(漢)나라 때 청주(靑州)를 설치했다. 위진(魏晉) 초에도 그대로 따랐다. 남북조(南北朝) 때도 설치했는데, 치소(治所)는 여러 차례 바뀌어 관할 지역이 일정하지 않았다 수(隋)나라 때 없어졌다. 당(唐)나라 초 때 다시 설치되었고, 나중에 평로군절도사(平盧軍節度使)로 바뀌었다. 오대(五代)와 송(宋)나라 때도 이어졌다. 원(元)나라 때는 익도로(益都路)로 바뀌었다. 명(明)나라 때는 청주부(靑州府)가 되었고, 청(淸)나라 때도 동일했다. 옛 치소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청주시(靑州市)에 있다.
ㅣ라】

훤 주135)
훤
훤한. 훤#+ㄴ. ¶훤다 : 耶輸ㅣ 이 말 드르시고 미 훤샤 前生앳 이리 어제 본 야〈석상 6:9ㄱ〉 / 드르히 훤고 하히 고 사홀 소리 업스니 四萬 義軍이  날 주그니라(野曠天清無戰聲 四萬義軍同日死)〈두시 4:3ㄴ〉.
山東ㅅ 一百 올히 주136)
올히
고을이. 올ㅎ+이. ‘올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올ㅎ : 나라해 올히 잇고 올해 히 잇니〈월석 12:20ㄴ〉 / 新安ㅅ 吏 더브러 무로니 올히 젹고  壯丁이 업스니(借問新安吏 縣小更無丁)〈두시 4:5ㄱ〉.
갓가 주137)
갓가
깎아. [刪]-+아.
일워 주138)
일워
이루어. 일[成]-+우+어. ¶일우다 : 成佛은 부텻 道理 일우실 씨라〈석상 3:1ㄱ〉 / 됴 時節에 내 늘구믈 일우니 다  네  보리라(令節成吾老 他時見汝心)〈두시 11:10ㄴ〉.
桉 야 주139)
안(桉) 야
안(桉) 같아. 즉 편평하여. 〈중간본〉은 시 본문, 주석, 언해에 모두 ‘안(按)’으로 되어 있다.
靑丘 아냇도다 주140)
청구(靑丘) 아냇도다
청구(靑丘)를 안아 있도다. 안[抱]-+아#잇-+도+다.

【한자음】 단만산동일백주 삭성여안포청구【‘단(澶)’은 시련반(市連反)이니, ‘단만(澶漫)’은 넓고 아득한 모양을 말한다. ‘여안(如桉)’은 궤안(几案)이니, 평평한 것을 말한다. ‘청구(靑丘)’는 청주(靑州)다.】
【언해역】 훤한 산동의 일백 고을이 깎아 이루어, 책상 같아 청구(靑丘)를 안았도다.

苞茅 주141)
포모(苞茅)
꾸린 띠. 헌상(獻上)한 공물(貢物)을 가리키는 말.
重入歸關內 주142)
관내(關內)
지역 이름. 섬서성(陝西省)에 도읍한 왕조가, 함곡관(函谷關)이나 동관(潼關) 서쪽의 왕기(王畿) 일대를 부르는 이름. 여기서는 장안(長安)을 가리킨다.
王祭 주143)
왕제(王祭)
군왕이 산천이나 우주의 신령에게 올리는 제사(祭祀).
還供盡海頭 주144)
해두(海頭)
발해(渤海) 해변에 있는 치주(淄州)와 청주(靑州)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2주의 절도사를 가리킨다.
주145)
포모중입귀관내 왕제환공진해두(苞茅重入歸關內 王祭還供盡海頭)
“세상이 평화로워져 이민족 임금들이 다양한 물품들을 바치고, 왕의 제사에도 변방의 절도사까지 참여한다.”는 말이다.
齊桓公 주146)
제환공(齊桓公)
?-기원전 643. 춘추시대 제나라의 국군(國君). 성은 강(姜)씨고, 이름은 소백(小白)이다. 양공(襄公)의 동생이다. 처음에 거(莒)로 달아났다가, 양공이 피살되자 거에서 귀국해 즉위했다. 관중(管仲)을 재상에 등용하여 개혁을 통해 부국강병을 시도했다.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명분으로 삼아 북쪽으로 융적(戎狄)을 정벌하고, 그들이 중원을 넘보는 것을 막았다. 남쪽으로는 강대국 초(楚)나라를 억제하여, 소릉(召陵)에서 회맹하도록 했다. 주왕실(周王室)을 안정시켜 주혜왕(周惠王)이 죽자 태자 정(鄭)을 받들어 즉위시키니, 바로 주양왕(周襄王)이다. 여러 차례 제후들을 회합하여, 맹약을 세우는 등 위망(威望)을 떨쳤다. 춘추시대 최초의 패주(覇主)다. 재위 기간은 43년이고, 시호는 환(桓)이다.
伐楚 주147)
벌초(伐楚)
초나라를 정벌함. ‘초나라’는 기원전 1042년부터 기원전 223년까지 존립했는데, 현재의 호북성이 있는 장강 중류 지역에서 일어난 춘추전국 시대의 나라다. 춘추오패와 전국칠웅 중 하나였다. 군사력은 갑병 수십 만, 전차 천 승(乘)과 기병 1만 기를 낼 수 있었다. 국성이 웅씨(熊氏)인 주나라의 제후국이다. 황하 문명을 대표하는 주나라에 비해 장강 문명을 대표하는 나라로 분류되며, 형(荆) 또는 형초(荆楚)로도 불린다. 중국 남방계 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나라이다. 주나라의 제후국으로 그 군주의 처음 작위는 자작이었으나, 기원전 704년에 무왕이 왕을 자칭했고 전국시대 말기 기원전 223년에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그 뒤 기원전 208년에 회왕의 후손인 의제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으나, 기원전 202년에 초한전쟁에서 전한에게 패배함으로써 완전히 멸망했다. ‘벌’은 정벌(征伐)로, 황제가 반란을 일으킨 제후국을 토벌하거나, 침입한 이민족을 격퇴시키는 것을 말한다.
曰爾貢苞茅 不入야 王祭 不供이라 니 此 言山東之州ㅣ 皆入貢 주148)
입공(入貢)
조정(朝廷)에 바치는 토산물이나 재물(財物).
也ㅣ라】

린 주149)
린
꾸린. 싼. 리[包]-+ㄴ. ¶리다 : 婇女ㅣ 하 기로 太子 려 안 夫人 뫼셔오니〈월석 2:43ㄴ〉 / 묻노라 夔州 어느 히 뎌를 누르리오 峽門과 江腹괘 城ㅅ 모 렛 로다(借問夔州壓何處 峽門江腹擁城隅)〈두시 13:47ㄱ〉.
 주150)

띠를. +.
다시 드려 주151)
드려
들여. 들[入]-+이+어.
關內예 보내니 님 祭예 주152)
님 제(祭)예
왕제(王祭)에.
도혀 주153)
도혀
도로. 돌[回]-++히+어. ‘’와 ‘히’는 사동접미사이다. ¶도혀 : 오직 모며 갓로로 거츠리 我人 혜여 業 구데 디여 도혀 표 아디 몯(但以迷倒로 妄計我人야 淪沒業坑야)〈금삼 1:1ㄱ〉 / 날로 여 기리 머리 도혀 라디 말라(無使長回首)〈두시 1:41ㄱ〉.
供進 주154)
공진(供進)
신(神)이나 임금에게 음식물을 바침.
호미
주155)
공진(供進)호미
공진함이. 공진(供進)#+오+ㅁ+이. ‘공진(供進)하다’는 사전에 ‘신이나 임금께 음식을 바치다’로 뜻풀이 되어 있다.
海頭애 다놋다 주156)
다놋다
다하는구나. 다[盡]-++오+ㅅ+다.

【한자음】 포모중입귀관내 왕제환공진해두【제환공이 초(楚)나라를 정벌하면서, “너는 포아(苞茅)를 바치라 했는데 들어오지 않으니, 왕제(王祭)를 이바지하지 못한다.”고 말했으니, 이것은 산동의 고을이 모두 입공(入貢)한 것을 말한다.】
【언해역】 꾸린 띠를 다시 들여 관내(關內)에 보내니, 임금 제사에 도로 공진(供進)함이 해두(海頭)에 다하는구나!

〈아홉째 수〉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4ㄴ

東逾遼水 주157)
요수(遼水)
요산(遼山)에서 발원하는 강. 요(遼) 지역을 동서로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
滹沱 주158)
호타(滹沱)
물[水] 이름. 호타하(滹沱河). 하북성(河北省) 서부(西部)에 있다. 산서성(山西省) 번치현(繁峙縣) 동쪽의 태희산(泰戲山)에서 나와 태행산(太行山)을 가르고 동쪽으로 흘러, 하북평원(河北平原)으로 들어간다. 헌현(獻縣)에서 부양하(滏陽河)와 합쳐져 자아하(子牙河)가 된다. 천진시(天津市)에 이르러, 북운하(北運河)와 만나 바다로 들어간다. 요수(遼水)와 호타(滹沱)는 모두 당시 하북(河北)에 있는 땅을 가리킨다.
星象 주159)
성상(星象)
별의 밝기와 어둡기, 그리고 위치 등의 현상을 가리키는 말.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근거로 인사(人事)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쳤다.
風雲喜色和
주160)
동유요수북호타 성상풍운희색화(東逾遼水北滹沱 星象風雲喜色和)
“동쪽과 북쪽의 아득한 변방에까지 덕화가 미쳐, 별의 모양이나 기후까지도 기쁜 빛을 띠며, 조화롭다.”는 말이다.
【星象 景星 주161)
경성(景星)
경운(慶雲), 감로(甘露), 기린(麒麟) 등과 함께 경사스러운 일이나 태평성대를 표시하는 징조의 하나. 상서(祥瑞)로운 시대라는 것을 알려주는 별로, 이 별이 나타나면, 임금의 덕망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옛날 순임금이 정사를 잘 다스려, 태평 시대가 되자, 이 별과 경운(慶雲)이 나타났다고 한다.
之類ㅣ라 雲은 亦慶雲 주162)
경운(慶雲)
오색구름. 옛 사람들은 경사나 길상(吉祥)의 조짐으로 보았다.
이라】

東로 遼水에 나며 주163)
나며
넘으며. 남[逾]-+며. ¶남다 : 여듧 道士ㅣ 막다히 딥고 뫼토 나며 내토 걷나 葉波國에 가 太子ㅅ 宮門애 다라 막다히 딥곰  발 들옴 솃더니〈월석 20:64ㄱ〉 / 故人을 보디 몯호미 열  나니 故人의  書信이 업세라 니디 아니노라(不見故人十年餘 不道故人無素書)〈두시 21:17ㄴ〉.
北 녀그로 滹沱애 니르리 주164)
니르리
이르는 것이. 니르[致]-+ㄹ#이+∅.
星象과 風雲괘 주165)
성상(星象)과 풍운(風雲)괘
성상(星象)과 풍운(風雲)이. 15세기 국어의 명사구 접속 표지 ‘과’는 후행하는 명사구에도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깃븐 주166)
깃븐
기쁜. [喜]-+브+ㄴ.
비치 和調 주167)
화조(和調)
조화(調和)롭고 화목(和睦)함.
도다
주168)
화조(和調)도다
조화(調和)하도다. 서로 잘 어울리도다.

【한자음】 동유요수북호타 성상풍운희색화【‘성상(星象)’은 경성(景星)의 종류다. ‘운(雲)’은 역시 경운(慶雲)이다.】
【언해역】 동쪽으로 요수(遼水)를 넘으며 북녘으로 호타(滹沱)에 이르러, 성상(星象)과 풍운에 기쁜 빛이 조화(和調)하도다!

紫氣關 주169)
자기관(紫氣關)
함곡관(函谷關)을 가리키는 말. 전하는 말로 함곡관령(函谷關令) 윤희(尹喜)가 동쪽 끝에 자줏빛 기운이 서쪽으로 뻗어나는 것을 보았는데, 과연 그날 노자(老子)가 푸른 소가 모는 수레를 타고 왔다.
臨天地闊 黃金臺 주170)
황금대(黃金臺)
옛날 누대 이름. 옛터가 하북성 역수(易水) 동남쪽에 있다. 연(燕)나라 소왕(燕昭王)이 일찍이 누대 위에 천금을 놓아두고, 천하의 현사(賢士)를 초빙했다. 두보가 이 일을 빌려 입조한 하북의 제절도(諸節度)를 비유하였다.
俊賢 주171)
준현(俊賢)
재덕(才德)이 걸출(傑出)한 사람.
주172)
자기관림천지활 황금대저준현다(紫氣關臨天地闊 黃金臺貯俊賢多)
“자기관에서 서보니 세상이 드넓은 것을 보고, 황금대를 세워 천하의 인재를 부른다.”는 말로, 조정에서 어진 인재를 널리 불러 쓸 것을 비유했다.
【紫氣關 函谷關 주173)
함곡관(函谷關)
관(關) 이름. 전국시대 때 진(秦)나라가 둔 것은 하남성 영보현(靈寶縣)의 경내에 있었는데, 한무제(漢武帝) 원정(元鼎) 3년에 하남성 신안현(新安縣)의 경내로 옮겼다. 도로가 골짜기 사이로 나 있는데, 깊고 험하기가 상자[函]와 같아, 이렇게 불린다. 길이는 약 300리였다.
이니 周時예 尹喜 주174)
윤희(尹喜)
?-?. 주(周)나라 때 사람. 함곡관의 관령(關令)으로 있을 때 그곳을 지나던 노자(老子)에게서 『도덕경(道德經)』을 받았다고 한다. 저서에 『관윤자(關尹子)』 1권이 있다.
爲關吏라 望其有紫氣니라 燕昭王 주175)
연소왕(燕昭王)
?-기원전 279. 전국시대 연나라의 임금. 쾌(噲)의 아들로, 이름은 평(平)이다. 곽외(郭隗), 추연(鄒衍), 낙의(樂毅) 등 어진 선비를 초빙하여, 부왕(父王) 때 잃었던 땅을 제(齊)나라로부터 되찾았다. 33년 동안 재위했다.
이 置千金䑓 주176)
천금대(千金臺)
간절하게 인재를 구하려고 세운 누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현자를 구하려 할 때 곽외(郭隗)가 “옛날 어느 임금이 천리마를 구하려 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3년 만에 죽은 천리마의 뼈를 천 금의 돈을 주고 샀는데, 1년이 못 되어 3필의 천리마를 얻게 되었다.”면서 자기를 등용하면 많은 인재들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는 데서 나왔다. 천금시골(千金市骨). 매사마골(買死馬骨).
야 以延天下之士니 言長安이 控臨天下而徵用賢才也ㅣ라】

紫氣關 天地 어윈 주177)
어윈
넓은. 어위[廣]-+ㄴ. ¶어위다 : 그 東山애 열 가짓 祥瑞 나니 좁던 東山이 어위며〈월석 2:28ㄴ〉 / 時ㅣ 옮록 블근 것과 粉과 니 답사하 그륜 눈서비 어위도다(移時施朱鉛 狼藉畫眉闊)〈두시 1:6ㄴ〉.
주178)
데. 원래는 형식명사 ‘’와 처소격조사 ‘’가 결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臨야 잇고 주179)
임(臨)야 잇고
임하여 있고. 15세기 국어의 ‘-어 잇다’는 보통 ‘臨얫고’로 축약되어 표기되나 여기서는 축약되지 않았다.
黃金臺옌 賢俊 뎌 주180)
뎌
쌓아. 저장하여. 디[貯]-+이+어. 〈중간본〉에는 ‘두어’로 되어 있다. 참고. 다. ¶디다 : 儲 여툴 뎌 又 딜 뎌 貯㣥也 又副也〈훈몽 中1ㄱ〉 / 다 : 길헤  거시 그믄뎌믄 려녀 밧긔 나면 히 사 근심 니라〈飜朴54ㄱ〉 /  머긼 와 샛 돈을 흐러주라 그리면 힘 리라〈飜朴66ㄱ〉.
주181)
많이. 하[多]-+이.
뒷도다 주182)
뒷도다
두고 있도다. 두[置]-+어#잇-+도+다.

【한자음】 자기관림천지활 황금대저준현다【‘자기관(紫氣關)’은 함곡관(函谷關)이니, 주(周)나라 때에 윤희(尹喜)가 관을 담당한 관리였는데, 보랏빛 기운이 있는 것을 보았다. 연(燕)나라의 소왕(昭王)이 천금대(千金臺)를 두어 천하의 선비를 부르니, 장안(長安)이 천하에 널리 알려 어진 인재를 불러 쓴 것을 말한다.】
【언해역】 자기관(紫氣關)은 천지 넓은 데 임해 있고, 황금대(黃金臺)에는 현준(賢俊)을 많이 맡아 두고 있도다!

〈열째 수〉

漁陽 주183)
어양(漁陽)
지금의 북경시 밀운현(密雲縣) 서남쪽. 전국(戰國)시대 연(燕)나라에서 어양군(漁陽郡)을 설치했고, 진한(秦漢) 때의 치소(治所)는 어양에 있었다. 어양부(漁陽府)는 당(唐)나라 때 안녹산의 난이 일어난 곳이다. 현종 때 계주(薊州)를 고쳐서 어양이라 했다.
突騎邯鄲 주184)
한단(邯鄲)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한단시(邯鄲市). 하북성 남서부 태행산맥(太行山脈)의 동쪽 기슭에 있는 도시다. 열국(列國) 때 조(趙)나라의 수도였고, 춘추시대 때는 위(衛)나라 땅으로, 나중에 진(晉)나라에 속했다. 기원전 386년 조경후(趙敬侯)가 진양(晉陽)에서 옮겨 한단에 도읍을 정했다. 진시황 19년(기원전 228년) 한단군(邯鄲郡)을 설치했다. 삼국시대와 위진(魏晉) 때는 광평군(廣平郡)이었고, 수(隋)나라 개황(開皇) 중에 현(縣)을 고쳐 설치했는데, 당송금원(唐·宋·金·元)나라 때도 이어졌다.
兒 酒酣並轡金鞭垂
주185)
어양돌기감단아 주감병비금편수(漁陽突騎邯鄲兒 酒酣並轡金鞭垂)
“태평한 시대를 맞아 정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흔쾌하게 술에 취하고 금 채찍을 휘두르며 달린다.”는 말이다.
【此 指漁陽之將及邯鄲豪俠之兒다】

漁陽앳 주186)
어양(漁陽)앳
어양의. 어양(漁陽)+에+ㅅ.
이 주187)
이
달리는. [走]-+이+.
주188)
말.
니와 주189)
니와
탄 이와. 탄 사람과. [騎]+ㄴ#이+와.
邯鄲앳 주190)
한단(邯鄲)앳
한단의. 한단(邯鄲)+애+ㅅ.
아히 주191)
아히
아이들이. 아+ㅎ+이.
수를 주192)
수를
술을.
醉고 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5ㄱ

셕 주193)
셕
재갈. 셗+. ¶셗 : 閔損 다어미 損이 믜여 제 아란 소옴 두어 주고 閔損이란 품 두어 주어늘 치  셕슬 노하 린대 아비 알오 다어미를 내툐려커늘 閔損이 러 〈삼강런던孝1〉 /  것 소노라 야 일즉 셕 노며  혀 鶖鶬 디요롸(射飛曾縱鞚 引臂落鶖鶬)〈두시 2:40ㄴ〉.
와 주194)
와
갈아. [竝]-+오+아. ‘오’는 사동접미사이다. ¶오다 : 二智와 一乘의 기푸믈 와 讚嘆시니라〈법화 1:136ㄱ〉 / 藍水 머리 즈믄 시내 조차 디거늘 玉山 노피 두 묏부리 와 서늘얫도다(藍水遠從千澗落 玉山高並雨峰寒)〈두시 11:33ㄴ〉.
고 金채 주195)
금(金)채
금채찍을. 금+채+.
드리웻도다 주196)
드리웻도다
드리우고 있도다. 드리[垂]-+우+어#잇-+도+다. 15세기 국어의 ‘-어 다’는 현대국어로는 ‘-고 하다’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한자음】 어양돌기감단아 주감병비금편수【이것은 어양(漁陽)의 장군과 한단(邯鄲)의 호쾌한 젋은이를 가리킨다.】
【언해역】 어양(漁陽)의 달리는 말 탄 사람과 한단의 아이들이, 술을 취하고 말 재갈을 갈아 타고, 금채찍을 드리웠도다!

意氣即歸雙闕 주197)
쌍궐(雙闕)
장안(長安)을 가리키는 말.
舞 雄豪復遣五陵 주198)
오릉(五陵)
한나라 고제(高帝) 이하의 다섯 황제의 능묘. 장릉(長陵), 안릉(安陵), 양릉(陽陵), 평릉(平陵), 무릉(茂陵)이 그것이다. 모두 장안(長安) 성내에 있는데, 그 부근에는 봄이 되면 호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주199)
의기즉귀쌍궐무 웅호부견오릉지(意氣即歸雙闕舞 雄豪復遣五陵知)
“의기가 넘쳐 궁궐 앞에 나가 춤을 추니, 웅장하고 호걸스러움을 오릉 사람들이 다 알도록 했다.”는 말이다.
【五陵 在長安니라 須溪 주200)
수계(須溪)
유진옹(劉辰翁, 1232-1297)의 호. 송나라 말기 길주(吉州) 여릉(廬陵, 지금의 江西 吉安市) 사람. 자는 회맹(會孟)이고, 호는 수계(須溪)다. 어려서 태학생(太學生)으로 있었다. 이종(理宗) 경정(景定) 3년(1262) 전시(殿試)에서의 대책(對策)에서 권세가였던 가사도(賈似道)를 거슬려 병과(丙科)에 등제했다. 부모님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염계서원(濂溪書院) 산장(山長)이 될 것을 자청했다. 강만리(江萬里)와 진선중(陳宣中) 등이 사관(史館)에 머물 것과 태학박사(太學博士)에 임명할 것을 추천했지만, 모두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송나라가 망하자 벼슬하지 않았고, 은거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사(詞)를 잘 지었는데, 주로 망국의 아픔을 통절하게 노래한 것이다. 작품에 『수계사(須溪詞)』 10권과 『수계사경시(須溪四景詩)』 4권이 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수계사(須溪詞)』로 편집했다. 그 밖의 저서에 『수계집(須溪集)』, 『반마이동편(班馬異同評)』, 『방옹시선후집(放翁詩先後集)』 등이 있다.
此等이 주201)
차등(此等)이
이들이. 평소에 오릉(五陵)에서 호유(豪遊)하던 이들.
恃功而驕야 其歸舞闕下애 平日五陵豪俊 주202)
호준(豪俊)
지재(才智)가 걸출(傑出)한 사람.
復當避之니 주203)
부당피지(復當避之)니
평소에 오릉(五陵)에서 호유(豪遊)하다가 난리를 만나, 다시 피난을 가는 것을 말한다.
其憂愛感恨이 皆見於言外니라 주204)
기우애감한(其憂愛感恨)이 개견어언외(皆見於言外)니라
평소에는 자신의 공을 믿고 교만하게 지내다가, 난리를 만난 뒤의 우애(憂愛)와 감한(感恨)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意氣로 곧 大闕에 가 춤 츠고 주205)
츠고
추고. 츠[舞]-+고. ¶츠다 : 프른 버드른 디 이셔 발 앏픠셔 춤츠고   졍이 만야 바랏 우호로셔 오놋〈백련14ㄴ〉 / 셴 머리 늘거 시드러우메 춤 츠고  놀애 브르노니 도랏막대 딥고 오디 아니호 뉘 能히 엇뎨리오(白頭老罷舞復歌 杖藜不睡誰能那)〈두시 11:41ㄱ〉.
雄豪 주206)
웅호(雄豪)
영웅호걸(英雄豪傑).
호  五陵ㅅ 사로 여 주207)
오릉(五陵)ㅅ 사로 여
오릉(五陵)의 사람으로 하여금. 즉 평상시에 오릉(五陵)에서 호유(豪遊)를 즐기던 사람들이 난리를 만나 우애와 감한을 느끼는 것에 의해서라는 뜻이다. 〈중간본〉에도 ‘五陵ㅅ 사로 여’로 되어 있다. ‘-로 여’의 경우 일반적으로 〈중간본〉에는 ‘-로 여’로 되어 있으나 여기의 ‘-로 여’는 〈중간본〉도 동일하다.
알에 다 주208)
알에 다
알게 한다. 알[知]-+게 -++다.

【한자음】 의기즉귀쌍궐무 웅호부견오릉지【‘오릉(五陵)’은 장안에 있다. 수계(須溪)가 말하기를, “저들이 공을 믿고 교만하여, 돌아와서는 쌍궐(雙闕) 아래서 춤을 추었는데, 평상시에는 오릉(五陵)의 호준(豪俊)들이 다시 피해 주니, 그 우애감한(憂愛感恨, 걱정하고 사랑하며 감격하고 한스러워하는 감정)이 다 말 밖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언해역】 의기(意氣)로 곧 대궐에 가 춤추고, 웅호(雄豪)함을 또 오릉(五陵)의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네!

〈열한째 수〉

李相將軍 주209)
이상장군(李相將軍)
이회선(李懷仙).
薊門 주210)
계문(薊門)
①지금의 하북성 계현(薊縣) 일대. ②계구(薊丘). 북경성(北京城) 서쪽 덕승문(德勝門) 밖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문 이름.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앞의 어양(漁陽)과 같은 지역을 가리킨다.
白頭惟有赤心存
주211)
이상장군옹계문 백두유유적심존(李相將軍擁薊門 白頭惟有赤心存)
“이상장군 이회선이 변방을 지켰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나라를 지킬 충성스런 마음만 가졌다.”는 말이다.
【時예 李懷仙 주212)
이회선(李懷仙)
?-768. 당나라 유성(柳城)의 호인(胡人). 대대로 거란(契丹)을 섬기면서, 영주(營州)를 지켰다.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했고, 지혜와 술수가 있었다.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를 비장(裨將)에 임명했다. 나중에 사조의(史朝義)가 연경유수(燕京留守)와 범양윤(范陽尹)으로 삼았다. 당나라에 항복하고, 복고회은(僕固懷恩)이 추천해 유주(幽州)와 노령(盧龍)의 절도사(節度使)가 되었다. 복고회은이 반란을 일으키자 성읍(城邑)의 병사를 이끌고, 스스로 문무장리(文武將吏)라 일컬으면서, 사사롭게 세금을 거뒀지만, 조정이 제지하지 못했다. 결국 부장(部將) 주희채(朱希彩)에게 죽임을 당했다. 『두시언해』 권3의 「聞官軍收河南河北」 시에 “廣德元年에 史朝義ㅣ 死커 其將李懷仙 以魏오 薛嵩 以相衛洛邢이오 張志忠 以趙定深恒易로 來降니라(광덕(廣德) 원년에 사조의(史朝義)가 죽었는데 그의 장군 이회선(李懷仙)은 위(魏)로, 설숭(薛嵩)은 상위낙형(相衛洛邢)으로, 장지충(張志忠)은 조정신항역(趙定深恒易)으로 와서 항복하였다)〈두시 3:23ㄴ-24ㄱ〉”는 주석이 있다.
이 以檢校侍中 주213)
검교시중(檢校侍中)
‘검교’는 관직(官職) 이름. 진(晉)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는데, 원래 산관(散官)이었다. 원(元)나라 이후 속관(屬官)이 되고, 청(淸)나라 때는 부(府)에 검교관(檢校官)으로 존재했는데, 하급 관원이었다. ‘시중(侍中)’은 관직 이름. 진(秦)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다. 황제를 직접 모시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잡무를 맡다가, 점차 임무가 막중해졌다. 남조(南朝)의 송나라 때는 기밀 사항을 관장했다. 양진(梁陳) 때는 재상의 일을 행했고, 북위(北魏) 때는 소재상(小宰相)으로 불렸다. 수나라 때 납언(納言)으로 개칭되었다가, 당나라 때 환원되었으며, 이후 실권이 떨어졌다. 북송 때 명목만 존재하다 남송 때 폐지되었다.
으로 爲幽州 주214)
유주(幽州)
한무제(漢武帝)가 설치한 13부(部) 자사(刺史)의 하나다. 후한(後漢) 때 치소(治所)는 계현(薊縣, 지금의 북경성[北京城]] 서남쪽)이다. 관할 지역은 지금의 하북(河北) 북부와 요녕(遼寧) 등지였다.
節度使ㅣ니라】

李相將軍이 薊門 려 주215)
려
꾸려. [擁]-+이+어.
가졧니 주216)
가졧니
가지고 있으니. 갖[有]-+이+어#잇-++니.
셴 머리예 주217)
셴 머리예
센 머리에. 원시의 ‘백두(白頭)’의 번역이다.
오직 赤心 주218)
적심(赤心)
적심(赤心)만. ‘적심(赤心)’은 ①조금도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진심(眞心). ②붉은 심. 붉은 속 줄기. 안녹산(安祿山)이 특히 배가 불룩했는데, 당 현종(唐玄宗)이 농담으로 “경의 뱃속에는 무엇이 들었는가?”고 묻자 언제나 붉은 정성(精誠)이 들어 있다고 대답한 데서 나왔다.
잇도다

【한자음】 이상장군옹계문 백두유유적심존【그때 이회선(李懷仙)이 검교시중(檢校侍中)으로 유주절도사(幽州節度使)가 되었다.】
【언해역】 이상장군(李相將軍)이 계문(薊門)을 꾸려 가지고 있더니, 센 머리에 오직 적심(赤心)만 있도다!

竟能盡說諸侯 주219)
제후(諸侯)
하북제도절도사들을 가리키는 말.
入 知有從來天子尊
주220)
경능진세제후입 지유종래천자존(竟能盡說諸侯入 知有從來天子尊)
“제후들을 설득해 입조하여 하여, 대대로 천자가 존귀한 지위인 것을 알게 했다”는 말이다.

매 주221)
매
마침내.
能히 다 諸侯 달애야 주222)
달애야
달래여. 달애[說]-+아. 〈중간본〉은 ‘달애아’로 되어 있으나 오각 또는 탈각으로 보인다. ¶달애다 : 가마괴 와 딕먹더니 太子ㅣ 보시고 慈悲心 내야시 王이 미조차 가샤 달애야 뫼셔 오샤 出家가 저흐샤 류 겨집 더야  자치시긔 시더라〈석상 3:16ㄱ〉 /  耶輸陁羅 달애야 恩愛 그쳐 羅睺羅 노하 보내야 재 외에 라〈석상 6:1ㄴ〉.
入朝니 從來로 天子ㅣ 尊샨 고 주223)
고
것을. 15세기 국어의 ‘곧’은 ‘곳’과 ‘것’의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 ¶곧(것) : 네 이제 能히 受니 다 如來ㅅ 威力이론 고 아라라〈석상 9:28ㄱ〉 / 곧(곳) : 이 니 福德이 자최마다 蓮花ㅣ 나논 고 보고 닐오 블옷 얻고져 거든 네 올 녁그로 내 堀 닐굽 번 돌라〈석상 11:26ㄴ〉 / 賤子 어느 사미 記數리오 갈 方所 어즐호니 왯논 고디 지비로다(賤子何人記 迷方著處家)〈두시 3:27ㄱ〉.
아도다 주224)
아도다
알겠도다. 알[知]-+도+다.

【한자음】 경능진세제후입 지유종래천자존
【언해역】 마침내 능히 다 제후를 달래어 입조하니, 종래(從來)로 천자가 존귀하신 것을 알겠도다!

〈열두째 수〉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25ㄴ

十二年 주225)
십이년(十二年)
천보(天寶) 14년(755)부터 대력(大曆) 2년(767)까지 시간을 가리키는 말. 그 사이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했고, 회흘(回紇)과 토번(吐蕃)을 물리쳤으며, 복고회은(僕固懷恩)과 주지광(周智光) 등을 평정했는데, 모두 곽자의(郭子儀)의 공훈이다.
來多戰場 天威已息陣堂堂
주226)
십이년래다전장 천위이식진당당(十二年來多戰場 天威已息陣堂堂)
“오랜 기간 전란에 시달리며 지냈더니, 하늘의 위엄도 당당하던 군진에서 그쳤다”는 말이다.
【堂堂 盛也ㅣ라】

열두  오매 주227)
오매
옴에. 지나옴에. 이래로. 원시의 ‘來’의 번역이다. 원시의 ‘來’는 ‘이래(以來)’의 의미로 쓰였으나 『두시언해』에서는 ‘오매’로 번역하였다.
戰場이 하더니 주228)
하더니
많더니. 하[多]-+더+니.
하 威嚴으로 마 주229)
마
이미. 벌써. ¶마 : 나 늘거 마 無想天으로 가리니〈석상 3:2ㄱ〉 / 너희 비들 마가 줄 靑錢 마 일워 뒷노니 반기 됴 마로 여 내 이베 들에 라(已辦靑錢防雇直 當令美味入吾脣)〈두시 3:32ㄴ〉.
盛 軍陣 주230)
성(盛) 군진(軍陣)
풍성한 군진을. 많고 많던 군진을. 여기서의 ‘성(盛)’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치시도다 주231)
그치시도다
그치시도다. 긏[絶]-+이+시+도+다. 15세기의 ‘긏다’는 자타동양용동사인데 타동사적 용법의 ‘긏다’와 자동사 ‘긏다’에 사동접미사 ‘이’가 결합된 ‘그치다’는 결국 동일한 기능을 가진다. 이후 타동사적 용법의 ‘긏다’는 세력이 약화되고 파생사동사인 ‘그치다’가 세력을 확장한다.

【한자음】 십이년래다전장 천위이식진당당【‘당당(堂堂)’은 풍성(豊盛)한 것이다.】
【언해역】 열두 해 지나옴에 전쟁터가 많더니, 하늘의 위엄으로 이미 풍성한 군진을 그치시도다!

神靈漢代中興主 주232)
한대중흥주(漢代中興主)
한무제(漢武帝)를 가리키는 말. 대종(代宗)이 한무제에 버금간다는 말이다.
功業汾陽異姓王 주233)
분양이성왕(汾陽異姓王)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키는 말. 보응(寶應) 원년(762) 2월 곽자의가 분양군왕(汾陽郡王)으로 진봉(進封)되었다. 여기서는 곽자의가 여러 절도(節度)의 모범이 된 것을 칭송한 것이다.
주234)
신령한대중흥주 공업분양이성왕(神靈漢代中興主 功業汾陽異姓王)
“한나라를 부흥시킨 한무제처럼 대종은 신령하고, 이를 도운 곽자의의 공도 그에 못지않다.”는 말이다.
上句 美代宗고 下句 美郭子儀니라 주235)
상구(上句) 미대종(美代宗)고 하구(下句) 미곽자의(美郭子儀)니라
위의 시구 즉 ‘神靈漢代中興主(신령하심은 한(漢)나라 때의 다시 흥기하신 임금이시고)’는 대종(代宗)을 미화한 것이고, 아래의 시구 즉 ‘功業汾陽異姓王(공업(功業)은 분양(汾陽)의 성이 다른 왕이로다)’는 곽자의(郭子儀)를 미화한 것이라는 말이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神靈샤 漢代옛 다시 興起신 님금이시고 功業 汾陽 주236)
분양(汾陽)
분수(汾水)의 북쪽 지역. 춘추시대(春秋時代) 때는 진(晉)나라에 속했다.
앳 姓 다 王이로다 주237)
왕(王)이로다
왕이다. 왕+이+도+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신령한대중흥주 공업분양이성왕【위 시구는 대종(代宗)을 찬미하고, 아래 시구는 곽자의를 찬미했다.】
【언해역】 신령하심은 한(漢)나라 때의 다시 흥기하신 임금이시고, 공업(功業)은 분양(汾陽)의 성이 다른 왕이로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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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승문하북제절도입조환희구호절구십이수(承聞河北諸節度入朝歡喜口號絕句十二首) : 이 시는 두보가 대력(大曆) 2년(767) 3월 기주(夔州)에서 지은 것이다. 대력 원년(766) 10월 대종(代宗)의 생일에 각 도의 절도사(節度使)들이 금백(金帛)을 올려 축하했다. 대력 2년 봄 회남(淮南), 변송(汴宋), 봉상(鳳翔)의 절도사들이 하나둘 입조했는데, 하북(河北) 절도사에 이르러서는 시종 입조하지 않았다. 두보는 멀리 기주(夔州)에 있으면서, 일시적인 소식에 근거해서 하북의 제도 절도사들도 일찍이 입조했다고 오인하였다. 하북의 제도 절도사들이 입조한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두보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감정을 참을 수 없어 환희에 넘쳐 시를 지었는데, 그의 애국적인 열정과 국가와 백성에 대한 염려를 숭고한 정신으로 표현하였다.
주002)
녹산(祿山) : 안녹산(安祿山).
주003)
강천주(降天誅) : 하늘이 내린 죽임. 안녹산(安祿山)이 757년 1월에 아들 안경서(安慶緖)에 의해 살해된 일을 말한다.
주004)
갱유(更有) : 안녹산(安祿山)의 부장 사사명(史思明)이 761년 3월에 아들 사조의(史朝義)에 의해 살해된 일을 말한다.
주005)
녹산작역강천주 경유사명역이무(祿山作逆降天誅 更有思明亦已無) :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각자 아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간단하게 하나의 시구(詩句)에 담은 것이다.
주006)
난역(亂逆)거 : 난역하거늘. 반역하거늘. 난역(亂逆)#+거++ㄹ.
주007)
하히 주규믈 리우시니 : 하늘이 죽임을 내리시니. ‘하ㅎ’는 ‘ㅎ’말음체언이다. 죽[死]-+이+우+ㅁ+을 리[下]-+우+시+니. 원시는 ‘降天誅’로 [降[天誅]의 구조 즉 ‘하늘의 죽임을 내리다’인데, 『두시언해』의 언해는 ‘天’을 주어로 설정하여 번역되었다. ¶리우다 :  울 예 머그면 이틋나래 얼읜 피 리우면 즉재 됻니〈구급방 하:30ㄴ〉 / 食後에 머구   복애 셜흔 환식 야  달힌 므레 리우라 머그면 뷔 야 두 번 면 곧 밥 먹고져 야 리라〈번노 하:40ㄱ-41ㄱ〉.
주008)
마 : 이미. 벌써. ¶마 : 세 關 마 차  삸미티 虛空애 머니(三關을 已透야 一鏃이 遼空니)〈금삼 5:43ㄴ〉 / 나 延引야 마 어둡거늘 블혀 여러 門 열오(延客已曛黑 張燈啟重門)〈두시 1:13ㄱ〉.
주009)
사사명(史思明) : ?-761. 당나라 영이주(寧夷州) 돌궐족(突厥族) 사람. 처음 이름은 솔간(窣干)인데, 현종(玄宗)이 ‘사명’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안녹산(安祿山)과 동향으로, 6가지 언어를 이해했다. 안녹산과 함께 착생장(捉生將)이 되었다가, 나중에 대장군(大將軍)으로 옮겼다. 천보(天寶) 연간 중에 전공을 세워, 평로병마사(平虜兵馬使)가 되었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행동을 같이 해 하북(河北) 지방을 평정하고, 요양(饒陽)을 공략했다. 지덕(至德) 2년(757) 안경서(安慶緖)가 안녹산을 죽이고 칭제(稱帝)하자 당나라로 귀순해서 범양장사(范陽長史)와 하북절도사(河北節度使)를 지냈다. 조정에서 변심을 할까 두려워, 오승은(烏承恩)을 시켜 건원(乾元) 원년(758) 숙종(肅宗)이 살해하려 했는데, 일이 누설되어 다시 반기를 들었다. 다음 해 위주(魏州)에서 대성연왕(大聖燕王)이라 일컫고 연호는 순천(順天)이라 했다. 군사를 몰아 안경서를 구원해 업성(鄴城)의 포위를 풀었다. 얼마 뒤 안경서 등을 죽이고 그 무리를 병합했다. 범양으로 돌아와 대연황제(大燕皇帝)라 칭했다. 이어 낙양(洛陽)을 함락시켰다. 이때 자신의 준마 1천여 마리를 강에서 목욕시키며, 세력을 과시하곤 했는데, 당나라 장수 이광필(李光弼)이 암말 5백 마리를 모아 울게 했더니, 말들이 모두 암말을 향해 달려가, 1천여 마리의 말을 고스란히 당나라에 넘겨주었다고 한다.
주010)
흉흉(洶洶) : 원래는 흐르는 물소리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세상이 어수선함을 가리킨다.
주011)
인환(人寰) : 인간(人間). 인간 세상.
주012)
흉흉인환유불정 시시전투욕하수(洶洶人寰猶不定 時時戰闘欲何須) : 반란이 아직 평정되지 않아서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킨 잔당들을 소탕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들이 무슨 목적에서 비롯되었는가를 반문하는 구절이다.
주013)
상유반자야(尙有叛者也)ㅣ니라 : 아직도 오히려 반란을 일으킨 자가 완전히 소탕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주014)
어즈러이 : 어지러이. 어지럽게. 원시의 ‘흉흉(洶洶)’을 번역한 말로 세상이 아직도 어수선함을 말한다. 원문 주석에는 ‘물 흐르는 소리’라고 하였다.
주015)
안정(安定)티 : 안정하지. 안정되지. 안정(安定)#+디.
주016)
시시(時時)예 : 때때로. 그 당시에.
주017)
므슷 : 무슨. 후행하는 ‘뇨’의 의문어미 ‘-뇨’와 호응한다. ¶므슷 : 六師 무리 閻浮提예 야도 내 바랫  터리 몯 무으리니 므슷 이 겻고오려 고〈석상 6:27ㄱ〉 / 구위실 마로미  사로브테어 므슷 일로 얼구릐 브류메 걸위옛가니오(罷官亦由人 何事拘形役)〈두시 10:29ㄱ〉.
주018)
엇고져 뇨 : 얻고자 하는가? 얻[得]-+고#지-+어 -++니+오. 『두시언해』에서는 의문어미로 ‘-뇨’와 ‘-니오’가 모두 쓰였으나 15세기의 다른 문헌에서는 의문어미 ‘-뇨’만 쓰였고, ‘-니오’는 연결어미로만 쓰였다. ¶太子ㅣ 무르샤 엇뎨 沙門이라 뇨 對答 三界 어즈럽고 六趣ㅣ 어즐거늘(問何名沙門 答曰 三界兮擾擾 六趣兮昏昏)〈석상 3:20ㄱ〉.
주019)
사직(社稷) : 나라에서 백성의 복을 위해 제사하는 국토지주(國土之主)의 사(社)와 오곡지장(五穀之長)의 직(稷). 임금이 나라를 세우면, 먼저 사직과 종묘를 세웠는데, 사직은 궁성의 동쪽에 종묘는 궁성의 서쪽에 세움. 임금을 사직의 주인이라고 하여, 나라가 존재하면, 사직의 제사가 행하여지고 망하면, 사직의 제사는 폐지되었다. 그러므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시되어, 국가(國家)의 이칭(異稱)으로서 종사(宗社)라 일컬어지기도 한다.
주020)
창생(蒼生) : ①초목(草木)의 떨기가 나는 곳 ②세간(世間)의 모든 사람. 생민(生民).
주021)
만이(蠻夷) : 만이(蠻彛). 옛날 사방 변방의 먼 지구에 사는 소수민족(少數民族)을 총칭하는 말. 또한 주로 남방(南方)의 소수민족을 가리킨다.
주022)
만이잡종(蠻夷雜種) : 서융(西戎)인 토번, 회흘, 당강(黨羌)과, 안녹산(安祿山), 사사명(史思明)들을 가리키는 말.
주023)
사직창생계필안 만이잡종착상간(社稷蒼生計必安 蠻夷雜種錯相干) : “종묘사직과 백성들의 마음은 편안함을 좇는데, 변방의 이민족들이 뒤섞여 침입한다.”는 말이다.
주024)
사직(社稷)과 창생(蒼生) 혜아료 : 사직과 백성들의 헤아림은. 사직과 백성들의 바람은.
주025)
반기 : 반드시. 원시의 ‘必’의 번역이다. ¶반기 : 善根이 기프면 彈指ㅅ 예 반기 가리니〈월석 8:1ㄴ〉 / 오며  體 반기 알며 나가며 믈러오 들 아  도다(必驗升沉體 如知進退情)〈두시 12:2ㄴ〉.
주026)
편안(便安)코져 니 : 편안하고자 하니. 편안(便安)#+고#지-+어 -++니.
주027)
여러 : 여러. 다양한. 원시의 ‘잡(雜)’에 대한 번역어이다.
주028)
섯거 : 섞어. 섞여. [雜]-+어. 15세기 국어의 ‘다’는 자타동 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의 용법으로 쓰였다. ¶(자동사) : 고롬과 피왜 섯거  조며 微妙히  紫金光聚 能히 내디 몯리라(膿血이 雜亂야 不能發生勝淨妙明紫金光聚ㅣ라야)〈능엄 1:42ㄴ〉 / 奇異 죄  섯거 나니(異才複間出)〈두시 22:27ㄱ〉 / (타동사)十地菩薩이 世俗 섯거 衆生 利케 샤 如來와 거시니와〈월석 2:61ㄴ〉 / 세 히록 고 病 알호 뉘 可히 리오 치위와 더위왜 온 나 서르 섯거 사호다(瘧癘三秋孰可忍 寒熱百日相交戰)〈두시 3:50ㄱ〉.
주029)
서르 : 서로.
주030)
간범(干犯)니라 : 간범하니라. 간범한다. 간범(干犯)은 상관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불손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죄질이 아주 나쁠 때는 참형(斬刑)에 처하고 재산을 관에 몰수했다. ‘간범(干犯)하다’는 사전에 ‘남의 일에 간섭하여 권리를 침범하다’로 뜻풀이 되어 있다.
주031)
주선(周宣) : 주나라의 선왕(宣王, ?-기원전 782). 서주(西周)의 국군(國君)으로 재위 기간은 기원전 827-기원전 782이다. 성은 희(姬)씨고, 이름은 정(靜, 靖)이며, 여왕(厲王)의 아들이다. 여왕이 나라 사람들에 의해 쫓겨났을 때 소공(召公)의 호가(虎家)에 숨어 있었다. 여왕이 죽자 귀국하여 즉위했다. 군려(軍旅)를 정비하고, 윤길보(尹吉甫)를 기용하여 험윤(玁狁)을 격퇴했다. 방숙(方叔)과 소호(召虎) 등에게 명령해 형초(荊楚)와 회이(淮夷) 일대에서 군사 작전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그 후 서융(西戎)에서 작전을 벌였지만 얻은 것도 없이 대량의 인력과 물자만 소모했다. 46년 동안 재위했다. 소목공(召穆公), 방숙(方叔), 윤길보, 중산보(仲山甫) 등에게 안팎의 정치를 맡기자 왕의 교화(敎化)가 크게 일어나, 주나라 초기의 성대한 모습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아들 유왕(幽王) 때 주나라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주032)
한무(漢武) : 한나라의 무제(武帝)를 가리키는 말.
주033)
금왕(今王) : 지금의 왕. 즉 대종(代宗)을 가리킨다.
주034)
주선한무금왕시 효자충신후대간(周宣漢武今王是 孝子忠臣後代看) : “훌륭한 군주였던 주선왕이나 한무제와 같은 군주가 지금 임금이니, 예전의 충신 효자가 지금 시대에도 나오고 있다.”는 말이다.
주035)
주선(周宣)은 중흥(中興)고 : 서주의 왕인 선왕 때 주나라 초기의 성대한 모습을 회복한 것을 표현한 구절이다.
주036)
한무(漢武) 제폭란(除暴亂)니 : 한나라의 무제는 여러 반란 세력을 진압하고 한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표현한 구절이다.
주037)
유대종(喩代宗)다 : 주나라의 선왕과 한나라의 무제가 모두 대종과 비교된다는 표현이다.
주038)
하구(下句) 이충효(以忠孝)로 기망제절도(期望諸節度)니라 : 하구(下句) 즉 ‘효자충신후대간(孝子忠臣後代看)’은 뭇 제후들이 충효(忠孝)의 덕목을 지킬 것을 말한 것이다.
주039)
이젯 님그미 : 지금 임금이. 즉 대종(代宗)이. ¶이젯 : 波羅㮈大王 이젯 내 아바님 閱頭檀이시고〈석상 11:22ㄱ〉 / 君王 녯 자최 이젯 사미 賞玩니 千秋萬古앳 들  보리로다(君王舊跡今人賞 轉見千秋萬古情)〈두시 14:1ㄴ〉.
주040)
이 긔시니 : 이 사람이 그이시니. 이가 그와 같으시니. 즉 대종(代宗)이 바로 주나라의 선왕와 한나라의 무제에 비교된다는 뜻이다. 원시의 ‘시(是)’에 대응하는데, 이때의 ‘시(是)’는 계사가 아니라 대명사로 쓰인 것이다.
주041)
효자(孝子)와 충신(忠臣) 후대(後代)예셔 보리라 : 여기서 후대란 현재 이후가 아니라 주선왕과 한무제 이후란 뜻으로, 당나라 현재 시점을 가리킨다.
주042)
훤훤(喧喧) : ①소리가 시끄럽고 떠들썩한 것을 형용하는 말. ②어지럽고 뒤섞인 것을 형용하는 말.
주043)
하북(河北) : 황하(黃河) 이북(以北) 지역(地域)을 일컫는 말.
주044)
하북장군(河北將軍) : 하북제도절도사(河北諸道節度使)를 가리키는 말. 대력(大曆) 2년(767) 봄 하북제도절도사들이 입조하지 않았는데, 당시 두보는 멀리 기주(夔州)에 있으면서 소문을 듣기에 하북제도절도사들도 이미 입조했다고 오인했다.
주045)
입조(入朝) : ①속국(屬國)이나 외국의 사신(使臣) 또는 지방관원(地方官員)이 천자(天子)를 알현(謁見)하는 일. ②중앙조정(中央朝廷)으로 들어가 관리가 됨.
주046)
훤훤도로다가요 하북장군진입조(喧喧道路多謌謠 河北將軍盡入朝) : “도로에는 즐겁게 노래 부르는 이들로 넘쳐나니, 하북을 지키던 절도사가 입조(入朝)하기 때문이다.”는 말로, 백성들이 조정의 위의와 힘찬 기세를 찬탄한다는 뜻이다.
주047)
길헤셔 : 길에서. 길ㅎ+에#시-+어.
주048)
숫어 : 소란스러워. 떠들썩하여. 숫[喧]-+어. ‘숫다’는 원시에서 ‘喧喧’의 번역으로 쓰였다. 참고. 수다, 수다, 숫워리다, 숫어리다, 수어리다, 수어리다, 수워리다. 숫두워리다. ¶숫다 : 녜 光明 펴니 여슷 窓이 뷔여 괴외야 숫어 어즈러오미 긋도다〈금삼 5:11ㄱ〉 / 숫어리다 : 토아 沐浴야 짐즛 서르 슷어리다(爭浴故相喧)〈두시 10:6ㄴ〉 / 숫워리다 : 숫워려셔  가온  수를 업텨 머구라(喧呼且覆杯中淥)〈두시 3:53ㄴ〉 / 수다 : 近閒애 드로니 詔書ㅣ 려 都邑에셔 수니(近聞下詔喧都邑)〈두시 17:29ㄴ〉 / 수어리다 : 黃牛ㅅ 峽엣 므리 수어리다(黃牛峽水喧)〈두시 11:49ㄴ〉 / 수어리다 : 엇뎨 져비 새 수어리미 업스리오(空聞燕雀喧)〈두시 21:10ㄱ〉 / 수워리다 : 수워려 토 해 채 텨 가 게을오라(喧爭懶著鞭)〈두시 20:8ㄴ〉 / 수다 : 수 소리 萬方애 니도다(喧聲連萬方)〈두시 10:20ㄱ〉 / 수워리다 : 수워리  避야 모딘 범 잇  히 너기니(避喧甘猛虎)〈두시 9:9ㄴ〉 / 숫두워리다 : 王ㅅ 알 드라 말이 재야 숫두리더니〈월천 58ㄱ〉 / 員의  안핸 숫두워려 블로미 업도다(太守庭內不喧呼)〈두시 9:31ㄱ〉.
주049)
놀애 : 노래.
주050)
브르리 : 부르는 이. 부르는 사람. 브르[歌]-+ㄹ#이.
주051)
하니 : 많으니. 하[多]-+니.
주052)
입조(入朝)놋다 : 입조(入朝)하는구나. 入朝#-++오+ㅅ+다.
주053)
강한(江漢) : 장강(長江)과 한수(漢水) 일대를 가리키는 말.
주054)
시시건곤왕실정 각교강한객혼소(始是乾坤王室正 却敎江漢客魂銷) : “전란이 평정되고 왕실이 안정을 되찾았는데, 두보 자신은 나그네로 가지 못해 안타깝다.”는 말로, 절도사의 입조를 기뻐하는 한편 자신은 멀리 있어 참여하지 못하는 현실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주055)
비르수 : 비로소. ‘비르수’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고, 다른 문헌에서는 ‘비르소’가 쓰였다. ¶비르수 : 乾元 元年ㅅ 보 萬姓이 비르수 便安히 살어(乾元元年春 萬姓始安宅)〈두시 8:19ㄴ〉 / 울워러 龍과 야 굼글 워 비르수 괴왯 幽暗  디나나라(仰穿龍蛇窟 始出枝撐幽 [塔之磴道ㅣ 屈曲이 如龍蛇之穴也ㅣ라 塔級之下애 多枝撑斜柱니 至塔頂則爲出幽ㅣ니라])〈두시 9:32ㄴ〉 / 비르소 : 바 모로매 本分 브터 法다 야 비르소올리라〈몽산 33ㄴ〉 / 子ㅣ 샤 나 起 者 商이로다 비르소 可히 더브러 詩를 닐엄즉도다〈논어 1:22ㄱ〉 / 時節이 바라온 제 世예 업슨 조 비르소 알리로소니 뉘 엿귀 다 니뇨 로미 나 도다(時危始識不世才 誰謂荼苦甘如薺)〈두시 8:18ㄱ〉.
주056)
이 건곤(乾坤)애 : 이 세상에.
주057)
정(正)도소니 : 바로 되었으니. 바르게 되었으니.
주058)
도혀 : 도로.
주059)
강한(江漢)앳 객(客) 넉스로 여 : 강한(江漢)의 객(客)의 넋으로 하여금. 넋+으로 -+이+어. 〈중간본〉은 ‘江漢앳 客의 넉스로 여’이다.
주060)
에 다 : 사르게 하네. 사르게 한다.
주061)
망연(茫然) : 멍하니 정신을 잃고 있는 모양.
주062)
서사(庶事) : 대단히 많은 일. 이것은 마음의 흔적을 가리킨다.
주063)
불도제공무표래 망연서사견인시(不道諸公無表來 茫然庶事遣人猜) : “장수들의 보고서가 오지 않는다 하여, 그들이 임금과 조정을 소홀히 한다고 의심하지 말라.”는 말로, 전란의 위기 속에서도 분열되지 말고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함을 뜻한다.
주064)
제공(諸公) 표(表)ㅣ : 변방 장수들의 표(表)가.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표(表)라 한다.
주065)
오디 아니호 : 오지 아니함을. 오[來]-+디 아니#-+호+ㅁ+ㄹ.
주066)
니디 : 이르지. 말하지. 니[道]-+디.
주067)
마롤디니 : 말지니. 말 것이니. 말-+오+ㄹ#+이+니.
주068)
사로 여 : 사람으로 하여금. 사+로 -+이+어. 〈중간본〉은 ‘사로 여’이다.
주069)
몯 믿게 다 : 못 믿게 한다.
주070)
옹병상학간과예 사자도로만리회(擁兵相學干戈銳 使者徒勞萬里廻) : “군사를 독려하면서 적군의 위세가 날카로우니, 조정에서 보낸 사신들도 성과 없이 돌아온다.”는 말로, 적군의 예봉을 막느라 여념이 없어 조정의 명령에 부응하지 못하는 현실과 함께 조정과 장수들의 마음이 일치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주071)
려 : 꾸려. 끌어안아. [擁]-+이+어. ‘다’는 자타동 양용동사일 가능성이 있으며, ‘리다’는 자동사 용법의 ‘ᆯ다’에 사동접미사 ‘이’가 결합되어 형성된 사동사로 보인다. ¶리다 : 河南이 安定호 깃고 鄴城의 리여 이슈믄 묻디 아니노라(且喜河南定 不問鄴城圍)〈두시 8:34ㄴ〉 /  리 도혀 서르 사호며 星辰이 조 모다 리놋다(日月還相鬥 星辰屢合圍)〈두시 10:10ㄴ〉.
주072)
가져셔 : 가져서. 가지[持]-+어#시-+어.
주073)
카오 : 날카로움을. ㅎ-+갑+오+ㅁ+. ¶캅다 : 이 다로 이제와  각야 고 로 歸依면 부텻 神力으로 한 受苦ㅣ 다 업고 諸根이 聰明코 카 智慧며 해 드러 長常 됴 法을 求야 어딘 버들 맛나아 魔 그므를 그츠며〈석상 9:16ㄴ〉 / 머리 우흿 카온 귀  대 버힌 고 허튓 아랫 노 바  玉 갓곤 도다(頭上銳耳批秋竹 脚下高蹄削寒玉)〈두시 17:31ㄴ〉.
주074)
서르 : 서로.
주075)
호니 : 배우니. 호[學]-++니.
주076)
갓 : 한갓. 원시의 ‘도(徒)’의 번역이다.
주077)
비 : 가쁘게. 피곤하게. 원시의 ‘로(勞)’의 번역이다. ¶비 : 너희 머리셔 비 오니 이 안자 밥 머그라〈석상 23:41ㄱ〉 / 어느 잇 文章이 海內옛 사 놀래리오 쇽졀업시 車馬 비 야   와 머므놋다(豈有文章驚海內 漫勞車馬駐江幹)〈두시 22:5ㄴ〉.
주078)
도라오다 : 돌아온다. 돌[歸]-+아#오[來]-++다.
주079)
명옥장금(鳴玉鏘金) : ‘명옥’은 옛 사람들이 허리에 차는 옥 장식인데, 걸어가거나 움직일 때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난다. ‘장금’은 금속으로 만든 기물(器物)에 부딪혀서 나는 소리. 그리하여 시구(詩句)가 아름다운 것을 비유한다.
주080)
정신(正臣) : 하북제도절도사들을 가리키는 말. 그들이 역심(逆心)을 버리고 귀순했기에 이렇게 부른다.
주081)
수문언무(修文偃武) : 문교(文敎)를 일으키고 무비(武備)를 중지함.
주082)
명옥장금진정신 수문언무불무인(鳴玉鏘金盡正臣 修文偃武不無人) : “바른 신하라면 옥이 울리고 금이 울리는 듯하니, 문덕(文德)을 닦고 무사(武事)를 쉬게 할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로,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말이다.
주083)
울이며 : 울리며. 울[泣]-+이+며. ¶울이다 : 法雷 뮈우시며 法敲 울이샤〈권공17ㄱ〉 / 고기 자블 사미 하히 치워 그므리 어니 莫徭ㅣ 그려기 노라 나모 화 울이다(漁父天寒網罟凍 莫徭射鴈鳴桑弓 [長沙郡에 有夷蜑니 名曰莫徭ㅣ니라])〈두시 4:28ㄱ〉.
주084)
울이닌 : 울리는 이는. 울[泣]-+이+#이+ㄴ.
주085)
언식(偃息)게  사미 : 언식(偃息)하게 할 사람이. ‘언식(偃息)하다’는 ‘걱정이 없어 편안하게 누워서 쉬다’이다.
주086)
업디 아니니라 : 없지 않으니라. 없지 않다.
주087)
요분(妖氛) : 상서(祥瑞)롭지 못한 기운. 대개 흉재(凶災)나 화란(禍亂)을 비유한다.
주088)
성수(聖壽) : 대종(代宗)의 생일. 여기서는 대종을 가리킨다.
주089)
흥왕회정요분기 성수의과일만춘(興王會靜妖氛氣 聖壽宜過一萬春) : “훌륭한 임금이 어지러운 전란 상황을 없앨 것이니, 길이길이 장수하여야 마땅하다.”는 말로, 나라를 흥기시킬 임금의 무궁한 영광과 장수를 기원했다.
주090)
모로매 : 모름지기. 원시의 ‘회(會)’의 번역이다.
주091)
업게 시리니 : 없게 하시리니. 없게 할 것이니. 없[無]-+게 -+시+리+니.
주092)
보 : 봄을. 봄[春]+. 성조는 ‘·보(거성)(평성)’이다. ‘보다’ 동사의 활용형인 ‘보’과 성조가 동일하다. ¶보(보다) : 날로 블근 조히 서구믈 든니 치워셔 翠華ㅅ 보 기들우니라(日聞紅粟腐 寒待翠華春)〈두시 5:14ㄴ〉.
주093)
디내샤미 : 지내심이. 디내[過]-+시+오+ㅁ+이.
주094)
맛시니라 : 맛당하시니라. 맛당하다. 맛#-+시+니+라. 원시의 ‘의(宜)’의 번역이다. ¶맛다 : 되의 목수믄 그 能히 오라리아 님 紀綱 그추미 맛티 아니커니녀(胡命其能久 皇綱未宜絕)〈두시 1:8ㄴ〉 / 鍾鼎에 사교 조 보노니 眞實로 北斗ㅅ 벼 法 바도미 맛니라(數見銘鍾鼎 眞宜法斗魁)〈두시 3:10ㄴ〉.
주095)
영웅(英雄) : 여기서는 상곤(常袞)을 가리킨다. 대력(大曆) 원년(766) 10월 대종의 생일에 제도절도사들이 금백(金帛)과 기복(器服), 진완(珍玩), 준마(駿馬) 등을 바쳤는데, 상곤이 일찍이 강력하게 황제에게 받지 말라고 권해 방일(放逸)을 막았다.
주096)
성철(聖哲) : 뛰어난 도덕과 재능. 혹은 그것을 가진 사람. 제왕을 칭하기도 한다. 성현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097)
영웅견사약통신 성철위심소일신(英雄見事若通神 聖哲爲心小一身) : “영웅이 상황을 보는 모습이 정확하며, 군주도 마음으로 천하를 다독여 지켜야 한다.”는 말로, 신하와 군주가 일심동체가 되어 나라와 백성을 섬겨야 한다는 뜻이다.
주098)
영웅(英雄) 이 : 영웅의 일을.
주099)
통신(通神) 니 : 통신(通神)한 듯하니. 通神#-+ㄴ #-+니.
주100)
 : 마음. 〈중간본〉은 ‘’이다.
주101)
죠고매 시니라 : 조그맣게 하시니라. 조그맣게 하신다. 죡[小]-+오+ㅁ+애 -+시++니+라. ¶죠고매 : 近年 숤 病에 죠고매 머구믈 여렛노니 아 勸야 兄이 가파 서르 머그면 어느 怨嗟 호미 이시리오(比年病酒開涓滴 弟勸兄酬何怨嗟)〈두시 8:42ㄴ〉 / 이블 여러 니 말미 將相 어드러로소니  죠고매야 버들 셤기니라(開口取將相 小心事友生)〈두시 24:18ㄴ〉.
주102)
궁위(宮闈) : 제왕(帝王)의 후궁(後宮). 후비(后妃)가 살았다.
주103)
재인(才人) : 궁중(宮中)의 여관(女官) 이름. 주로 비빈(妃嬪)에 대한 칭호로 쓰였다. 한(漢)나라 때 두었고, 진(晉)나라 때는 천석(石) 이하의 작위였으며, 당(唐)나라 때는 궁관(宮官) 정5품이었다가, 나중에 정4품으로 올랐는데, 이후 대대로 꾸준히 설치되었다.
주104)
연조휴긍출가려 궁위불의선재인(燕趙休矜出佳麗 宮闈不擬選才人) : “연조 당에 미인이 많다고 해도, 그들을 궁궝에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는 말로, 두보가 절도사가 입조한 것은 기뻐하지만 여색(女色)을 바칠 것이라 생각해 미리 경계한 것이다.
주105)
연초(燕趙) : 연과 초 나라의 땅.
주106)
고온 사 : 고운 사람. 곱[佳]-+오+ㄴ. ¶곱다 : 俗 欲樂 사마 갓챗 한 더러운 거세 고온 들 내야 惑着야 리디 아니니〈법화 2:111ㄴ〉 / 사호매 드트리 아니 江漢앤  비치 곱도다(兵戈塵漠漠 江漢月娟娟)〈두시 20:8ㄴ〉.
주107)
나다 : 난다. 나[生]-++다.
주108)
쟈 말라 : 자랑 말라. 자랑하지 말라. ¶쟈 : 미친 魔ㅣ 心腑에 드러 사곳 보면 쟈야 我慢이 니〈능엄 9:70ㄴ〉 / 글 彫刻야 지 처믜 뉘 혜아리리오 터럭귿 만 도 스싀로 쟈고져 놋다(雕刻初誰料 纖毫欲自矜 [言作詩雕刻之妙 誰能可料ㅣ며 其詩ㅣ 纖毫도 皆妙而可矜誇也ㅣ니라])〈두시 20:23ㄱ〉.
주109)
재인(才人) 야 : 재인(才人)을 가려. [選]-+야. ¶다 : 中國 소리옛 니쏘리 齒頭와 正齒왜 요미 잇니〈훈언14ㄴ〉 / 조심야 호니 가지로 自出이니 微妙히 요 노  다도다(恭惟同自出 妙選異高標)〈두시 20:45ㄴ〉.
주110)
드류리라 : 들이리라. 들일 것이라. 들[入]-+이+리+라.
주111)
너기디 아니시니라 : 여기지 않으시니라. 여기지 않으신다. 너기[謂]-+디 아니#-+시+니+라.
주112)
백수랑(白首郞) : 작자인 두보 자신을 가리키는 말.
주113)
포병강천백수랑 공산루각모춘광(抱病江天白首郞 空山樓閣暮春光) : “병들어 슬픈 마음으로 시인 자신(두보)가 강가에 섰는데, 빈산에 세워진 누각에는 늦봄의 햇살이 드리웠다.”는 말로, 근심과 병을 안고 큰 뜻을 펼치지 못하는 쓸쓸한 처지를 자연의 정황을 빌려 비유했다.
주114)
아냇 : 안아 있는. 안[抱]-+아#잇-+.
주115)
머리 셴 : 머리 센. 셰[白]-+ㄴ. ¶셰다(白) : 그러나 이 衆生이 다 마 衰老야 나히 八十이 디나 머리 셰오 치 디드러 아니오라 마 주그리니〈월석 17:47ㄴ〉 / 서르 보매 제여곰 머리 셰니 그 여희요매 엇뎨료(相見各頭白 其如離別何)〈두시 23:17ㄴ〉.
주116)
랑(郞) :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郞).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두보는 짧게나마 좌습유(左拾遺)와 검교공부원외랑(檢校工部員外郞)이라는 관직을 얻은 바 있다.
주117)
뷘 : 빈. 뷔[空]-+ㄴ. ¶뷔다 : 야딘 後에 뷔여이  空劫이라〈월석 1:49ㄱ〉 / 뷘  지븨 興이 衰殘니 敎廉의 옌 자최 긋도다(興殘虛白室 跡斷孝廉船)〈두시 24:53ㄱ-ㄴ〉.
주118)
묏 : 산의. 뫼+ㅅ.
주119)
비치로다 : 빛이도다. 빛+이+도+다.
주120)
의관(衣冠) : 조신(朝臣)을 가리키는 말.
주121)
시일(是日) : 대종의 생일을 가리키는 날.
주122)
초주(草奏) : 초벌로 쓴 주장(奏章). 〈중간본〉은 ‘秦事로’로 되어 있다.
주123)
제향(帝鄉) : 임금이 있는 서울. 황성(皇城). 경성(京城). 또는 제왕(帝王)이 태어난 고향(故鄕). 장안(長安)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124)
의관시일조천자 초주하인입제향(衣冠是日朝天子 草奏何人入帝鄉) : “절도사가 이관을 갖추고 임금을 만나러 가는데, 서주를 쓸 사람으로는 누가 도성에 들어가느냐?”는 말로, 절도사를 따라 상서랑을 지낸 두보 자신도 입궁하겠다는 이지를 밝혔다.
주125)
의관(衣冠) 사미 : 의관을 갖춘 사람이. 즉 절도사(節度使)가.
주126)
이 나래 : 이 날에.
주127)
서주(書奏) : 서간(書簡)이나 주장(奏章) 등을 가리키는 말.
주128)
서진(書奏)를 기초(起草) 어느 사미 : 서진(書奏)을 기초(起草)하는 어떤 사람이.
주129)
드러가고 : 들어가는가? 들[入]-+어#가[去]-++고.
주130)
단만(澶漫) : 넓고 먼 모양.
주131)
산동(山東) : 태행산(太行山) 동쪽, 즉 하북도(河北道)를 가리키는 말.
주132)
청구(靑丘) : ①전설(傳說)에 나오는 해외(海外)에 있는 나라 이름. 여기서는 청주(靑州)를 말한다. ②지명. 청주(靑州) 천승현(千乘縣)에 있다. 제경공(齊景公)이 일찍이 여기서 사냥을 했다.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133)
단만산동일백주 삭성여안포청구(澶漫山東一百州 削成如桉抱靑丘) : “산동 지역 많은 고을을 평평하게 펼쳐져, 마치 푸른 언덕을 깎아 책상처럼 만든 듯하다.”는 말로, 산동 지역의 넓은 평야와 고을들을 비유한 것이다.
주134)
청주(靑州) : 주(州)·부(府)의 이름. 한(漢)나라 때 청주(靑州)를 설치했다. 위진(魏晉) 초에도 그대로 따랐다. 남북조(南北朝) 때도 설치했는데, 치소(治所)는 여러 차례 바뀌어 관할 지역이 일정하지 않았다 수(隋)나라 때 없어졌다. 당(唐)나라 초 때 다시 설치되었고, 나중에 평로군절도사(平盧軍節度使)로 바뀌었다. 오대(五代)와 송(宋)나라 때도 이어졌다. 원(元)나라 때는 익도로(益都路)로 바뀌었다. 명(明)나라 때는 청주부(靑州府)가 되었고, 청(淸)나라 때도 동일했다. 옛 치소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청주시(靑州市)에 있다.
주135)
훤 : 훤한. 훤#+ㄴ. ¶훤다 : 耶輸ㅣ 이 말 드르시고 미 훤샤 前生앳 이리 어제 본 야〈석상 6:9ㄱ〉 / 드르히 훤고 하히 고 사홀 소리 업스니 四萬 義軍이  날 주그니라(野曠天清無戰聲 四萬義軍同日死)〈두시 4:3ㄴ〉.
주136)
올히 : 고을이. 올ㅎ+이. ‘올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올ㅎ : 나라해 올히 잇고 올해 히 잇니〈월석 12:20ㄴ〉 / 新安ㅅ 吏 더브러 무로니 올히 젹고  壯丁이 업스니(借問新安吏 縣小更無丁)〈두시 4:5ㄱ〉.
주137)
갓가 : 깎아. [刪]-+아.
주138)
일워 : 이루어. 일[成]-+우+어. ¶일우다 : 成佛은 부텻 道理 일우실 씨라〈석상 3:1ㄱ〉 / 됴 時節에 내 늘구믈 일우니 다  네  보리라(令節成吾老 他時見汝心)〈두시 11:10ㄴ〉.
주139)
안(桉) 야 : 안(桉) 같아. 즉 편평하여. 〈중간본〉은 시 본문, 주석, 언해에 모두 ‘안(按)’으로 되어 있다.
주140)
청구(靑丘) 아냇도다 : 청구(靑丘)를 안아 있도다. 안[抱]-+아#잇-+도+다.
주141)
포모(苞茅) : 꾸린 띠. 헌상(獻上)한 공물(貢物)을 가리키는 말.
주142)
관내(關內) : 지역 이름. 섬서성(陝西省)에 도읍한 왕조가, 함곡관(函谷關)이나 동관(潼關) 서쪽의 왕기(王畿) 일대를 부르는 이름. 여기서는 장안(長安)을 가리킨다.
주143)
왕제(王祭) : 군왕이 산천이나 우주의 신령에게 올리는 제사(祭祀).
주144)
해두(海頭) : 발해(渤海) 해변에 있는 치주(淄州)와 청주(靑州)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2주의 절도사를 가리킨다.
주145)
포모중입귀관내 왕제환공진해두(苞茅重入歸關內 王祭還供盡海頭) : “세상이 평화로워져 이민족 임금들이 다양한 물품들을 바치고, 왕의 제사에도 변방의 절도사까지 참여한다.”는 말이다.
주146)
제환공(齊桓公) : ?-기원전 643. 춘추시대 제나라의 국군(國君). 성은 강(姜)씨고, 이름은 소백(小白)이다. 양공(襄公)의 동생이다. 처음에 거(莒)로 달아났다가, 양공이 피살되자 거에서 귀국해 즉위했다. 관중(管仲)을 재상에 등용하여 개혁을 통해 부국강병을 시도했다.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명분으로 삼아 북쪽으로 융적(戎狄)을 정벌하고, 그들이 중원을 넘보는 것을 막았다. 남쪽으로는 강대국 초(楚)나라를 억제하여, 소릉(召陵)에서 회맹하도록 했다. 주왕실(周王室)을 안정시켜 주혜왕(周惠王)이 죽자 태자 정(鄭)을 받들어 즉위시키니, 바로 주양왕(周襄王)이다. 여러 차례 제후들을 회합하여, 맹약을 세우는 등 위망(威望)을 떨쳤다. 춘추시대 최초의 패주(覇主)다. 재위 기간은 43년이고, 시호는 환(桓)이다.
주147)
벌초(伐楚) : 초나라를 정벌함. ‘초나라’는 기원전 1042년부터 기원전 223년까지 존립했는데, 현재의 호북성이 있는 장강 중류 지역에서 일어난 춘추전국 시대의 나라다. 춘추오패와 전국칠웅 중 하나였다. 군사력은 갑병 수십 만, 전차 천 승(乘)과 기병 1만 기를 낼 수 있었다. 국성이 웅씨(熊氏)인 주나라의 제후국이다. 황하 문명을 대표하는 주나라에 비해 장강 문명을 대표하는 나라로 분류되며, 형(荆) 또는 형초(荆楚)로도 불린다. 중국 남방계 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나라이다. 주나라의 제후국으로 그 군주의 처음 작위는 자작이었으나, 기원전 704년에 무왕이 왕을 자칭했고 전국시대 말기 기원전 223년에 진나라에 의해 멸망했다. 그 뒤 기원전 208년에 회왕의 후손인 의제에 의해 다시 재건되었으나, 기원전 202년에 초한전쟁에서 전한에게 패배함으로써 완전히 멸망했다. ‘벌’은 정벌(征伐)로, 황제가 반란을 일으킨 제후국을 토벌하거나, 침입한 이민족을 격퇴시키는 것을 말한다.
주148)
입공(入貢) : 조정(朝廷)에 바치는 토산물이나 재물(財物).
주149)
린 : 꾸린. 싼. 리[包]-+ㄴ. ¶리다 : 婇女ㅣ 하 기로 太子 려 안 夫人 뫼셔오니〈월석 2:43ㄴ〉 / 묻노라 夔州 어느 히 뎌를 누르리오 峽門과 江腹괘 城ㅅ 모 렛 로다(借問夔州壓何處 峽門江腹擁城隅)〈두시 13:47ㄱ〉.
주150)
 : 띠를. +.
주151)
드려 : 들여. 들[入]-+이+어.
주152)
님 제(祭)예 : 왕제(王祭)에.
주153)
도혀 : 도로. 돌[回]-++히+어. ‘’와 ‘히’는 사동접미사이다. ¶도혀 : 오직 모며 갓로로 거츠리 我人 혜여 業 구데 디여 도혀 표 아디 몯(但以迷倒로 妄計我人야 淪沒業坑야)〈금삼 1:1ㄱ〉 / 날로 여 기리 머리 도혀 라디 말라(無使長回首)〈두시 1:41ㄱ〉.
주154)
공진(供進) : 신(神)이나 임금에게 음식물을 바침.
주155)
공진(供進)호미 : 공진함이. 공진(供進)#+오+ㅁ+이. ‘공진(供進)하다’는 사전에 ‘신이나 임금께 음식을 바치다’로 뜻풀이 되어 있다.
주156)
다놋다 : 다하는구나. 다[盡]-++오+ㅅ+다.
주157)
요수(遼水) : 요산(遼山)에서 발원하는 강. 요(遼) 지역을 동서로 나누는 분기점이 된다.
주158)
호타(滹沱) : 물[水] 이름. 호타하(滹沱河). 하북성(河北省) 서부(西部)에 있다. 산서성(山西省) 번치현(繁峙縣) 동쪽의 태희산(泰戲山)에서 나와 태행산(太行山)을 가르고 동쪽으로 흘러, 하북평원(河北平原)으로 들어간다. 헌현(獻縣)에서 부양하(滏陽河)와 합쳐져 자아하(子牙河)가 된다. 천진시(天津市)에 이르러, 북운하(北運河)와 만나 바다로 들어간다. 요수(遼水)와 호타(滹沱)는 모두 당시 하북(河北)에 있는 땅을 가리킨다.
주159)
성상(星象) : 별의 밝기와 어둡기, 그리고 위치 등의 현상을 가리키는 말. 옛날 사람들은 이것을 근거로 인사(人事)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쳤다.
주160)
동유요수북호타 성상풍운희색화(東逾遼水北滹沱 星象風雲喜色和) : “동쪽과 북쪽의 아득한 변방에까지 덕화가 미쳐, 별의 모양이나 기후까지도 기쁜 빛을 띠며, 조화롭다.”는 말이다.
주161)
경성(景星) : 경운(慶雲), 감로(甘露), 기린(麒麟) 등과 함께 경사스러운 일이나 태평성대를 표시하는 징조의 하나. 상서(祥瑞)로운 시대라는 것을 알려주는 별로, 이 별이 나타나면, 임금의 덕망이 훌륭하다는 뜻이다. 옛날 순임금이 정사를 잘 다스려, 태평 시대가 되자, 이 별과 경운(慶雲)이 나타났다고 한다.
주162)
경운(慶雲) : 오색구름. 옛 사람들은 경사나 길상(吉祥)의 조짐으로 보았다.
주163)
나며 : 넘으며. 남[逾]-+며. ¶남다 : 여듧 道士ㅣ 막다히 딥고 뫼토 나며 내토 걷나 葉波國에 가 太子ㅅ 宮門애 다라 막다히 딥곰  발 들옴 솃더니〈월석 20:64ㄱ〉 / 故人을 보디 몯호미 열  나니 故人의  書信이 업세라 니디 아니노라(不見故人十年餘 不道故人無素書)〈두시 21:17ㄴ〉.
주164)
니르리 : 이르는 것이. 니르[致]-+ㄹ#이+∅.
주165)
성상(星象)과 풍운(風雲)괘 : 성상(星象)과 풍운(風雲)이. 15세기 국어의 명사구 접속 표지 ‘과’는 후행하는 명사구에도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166)
깃븐 : 기쁜. [喜]-+브+ㄴ.
주167)
화조(和調) : 조화(調和)롭고 화목(和睦)함.
주168)
화조(和調)도다 : 조화(調和)하도다. 서로 잘 어울리도다.
주169)
자기관(紫氣關) : 함곡관(函谷關)을 가리키는 말. 전하는 말로 함곡관령(函谷關令) 윤희(尹喜)가 동쪽 끝에 자줏빛 기운이 서쪽으로 뻗어나는 것을 보았는데, 과연 그날 노자(老子)가 푸른 소가 모는 수레를 타고 왔다.
주170)
황금대(黃金臺) : 옛날 누대 이름. 옛터가 하북성 역수(易水) 동남쪽에 있다. 연(燕)나라 소왕(燕昭王)이 일찍이 누대 위에 천금을 놓아두고, 천하의 현사(賢士)를 초빙했다. 두보가 이 일을 빌려 입조한 하북의 제절도(諸節度)를 비유하였다.
주171)
준현(俊賢) : 재덕(才德)이 걸출(傑出)한 사람.
주172)
자기관림천지활 황금대저준현다(紫氣關臨天地闊 黃金臺貯俊賢多) : “자기관에서 서보니 세상이 드넓은 것을 보고, 황금대를 세워 천하의 인재를 부른다.”는 말로, 조정에서 어진 인재를 널리 불러 쓸 것을 비유했다.
주173)
함곡관(函谷關) : 관(關) 이름. 전국시대 때 진(秦)나라가 둔 것은 하남성 영보현(靈寶縣)의 경내에 있었는데, 한무제(漢武帝) 원정(元鼎) 3년에 하남성 신안현(新安縣)의 경내로 옮겼다. 도로가 골짜기 사이로 나 있는데, 깊고 험하기가 상자[函]와 같아, 이렇게 불린다. 길이는 약 300리였다.
주174)
윤희(尹喜) : ?-?. 주(周)나라 때 사람. 함곡관의 관령(關令)으로 있을 때 그곳을 지나던 노자(老子)에게서 『도덕경(道德經)』을 받았다고 한다. 저서에 『관윤자(關尹子)』 1권이 있다.
주175)
연소왕(燕昭王) : ?-기원전 279. 전국시대 연나라의 임금. 쾌(噲)의 아들로, 이름은 평(平)이다. 곽외(郭隗), 추연(鄒衍), 낙의(樂毅) 등 어진 선비를 초빙하여, 부왕(父王) 때 잃었던 땅을 제(齊)나라로부터 되찾았다. 33년 동안 재위했다.
주176)
천금대(千金臺) : 간절하게 인재를 구하려고 세운 누대.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현자를 구하려 할 때 곽외(郭隗)가 “옛날 어느 임금이 천리마를 구하려 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3년 만에 죽은 천리마의 뼈를 천 금의 돈을 주고 샀는데, 1년이 못 되어 3필의 천리마를 얻게 되었다.”면서 자기를 등용하면 많은 인재들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는 데서 나왔다. 천금시골(千金市骨). 매사마골(買死馬骨).
주177)
어윈 : 넓은. 어위[廣]-+ㄴ. ¶어위다 : 그 東山애 열 가짓 祥瑞 나니 좁던 東山이 어위며〈월석 2:28ㄴ〉 / 時ㅣ 옮록 블근 것과 粉과 니 답사하 그륜 눈서비 어위도다(移時施朱鉛 狼藉畫眉闊)〈두시 1:6ㄴ〉.
주178)
 : 데. 원래는 형식명사 ‘’와 처소격조사 ‘’가 결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주179)
임(臨)야 잇고 : 임하여 있고. 15세기 국어의 ‘-어 잇다’는 보통 ‘臨얫고’로 축약되어 표기되나 여기서는 축약되지 않았다.
주180)
뎌 : 쌓아. 저장하여. 디[貯]-+이+어. 〈중간본〉에는 ‘두어’로 되어 있다. 참고. 다. ¶디다 : 儲 여툴 뎌 又 딜 뎌 貯㣥也 又副也〈훈몽 中1ㄱ〉 / 다 : 길헤  거시 그믄뎌믄 려녀 밧긔 나면 히 사 근심 니라〈飜朴54ㄱ〉 /  머긼 와 샛 돈을 흐러주라 그리면 힘 리라〈飜朴66ㄱ〉.
주181)
해 : 많이. 하[多]-+이.
주182)
뒷도다 : 두고 있도다. 두[置]-+어#잇-+도+다.
주183)
어양(漁陽) : 지금의 북경시 밀운현(密雲縣) 서남쪽. 전국(戰國)시대 연(燕)나라에서 어양군(漁陽郡)을 설치했고, 진한(秦漢) 때의 치소(治所)는 어양에 있었다. 어양부(漁陽府)는 당(唐)나라 때 안녹산의 난이 일어난 곳이다. 현종 때 계주(薊州)를 고쳐서 어양이라 했다.
주184)
한단(邯鄲) :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한단시(邯鄲市). 하북성 남서부 태행산맥(太行山脈)의 동쪽 기슭에 있는 도시다. 열국(列國) 때 조(趙)나라의 수도였고, 춘추시대 때는 위(衛)나라 땅으로, 나중에 진(晉)나라에 속했다. 기원전 386년 조경후(趙敬侯)가 진양(晉陽)에서 옮겨 한단에 도읍을 정했다. 진시황 19년(기원전 228년) 한단군(邯鄲郡)을 설치했다. 삼국시대와 위진(魏晉) 때는 광평군(廣平郡)이었고, 수(隋)나라 개황(開皇) 중에 현(縣)을 고쳐 설치했는데, 당송금원(唐·宋·金·元)나라 때도 이어졌다.
주185)
어양돌기감단아 주감병비금편수(漁陽突騎邯鄲兒 酒酣並轡金鞭垂) : “태평한 시대를 맞아 정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흔쾌하게 술에 취하고 금 채찍을 휘두르며 달린다.”는 말이다.
주186)
어양(漁陽)앳 : 어양의. 어양(漁陽)+에+ㅅ.
주187)
이 : 달리는. [走]-+이+.
주188)
 : 말.
주189)
니와 : 탄 이와. 탄 사람과. [騎]+ㄴ#이+와.
주190)
한단(邯鄲)앳 : 한단의. 한단(邯鄲)+애+ㅅ.
주191)
아히 : 아이들이. 아+ㅎ+이.
주192)
수를 : 술을.
주193)
셕 : 재갈. 셗+. ¶셗 : 閔損 다어미 損이 믜여 제 아란 소옴 두어 주고 閔損이란 품 두어 주어늘 치  셕슬 노하 린대 아비 알오 다어미를 내툐려커늘 閔損이 러 〈삼강런던孝1〉 /  것 소노라 야 일즉 셕 노며  혀 鶖鶬 디요롸(射飛曾縱鞚 引臂落鶖鶬)〈두시 2:40ㄴ〉.
주194)
와 : 갈아. [竝]-+오+아. ‘오’는 사동접미사이다. ¶오다 : 二智와 一乘의 기푸믈 와 讚嘆시니라〈법화 1:136ㄱ〉 / 藍水 머리 즈믄 시내 조차 디거늘 玉山 노피 두 묏부리 와 서늘얫도다(藍水遠從千澗落 玉山高並雨峰寒)〈두시 11:33ㄴ〉.
주195)
금(金)채 : 금채찍을. 금+채+.
주196)
드리웻도다 : 드리우고 있도다. 드리[垂]-+우+어#잇-+도+다. 15세기 국어의 ‘-어 다’는 현대국어로는 ‘-고 하다’의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있다.
주197)
쌍궐(雙闕) : 장안(長安)을 가리키는 말.
주198)
오릉(五陵) : 한나라 고제(高帝) 이하의 다섯 황제의 능묘. 장릉(長陵), 안릉(安陵), 양릉(陽陵), 평릉(平陵), 무릉(茂陵)이 그것이다. 모두 장안(長安) 성내에 있는데, 그 부근에는 봄이 되면 호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주199)
의기즉귀쌍궐무 웅호부견오릉지(意氣即歸雙闕舞 雄豪復遣五陵知) : “의기가 넘쳐 궁궐 앞에 나가 춤을 추니, 웅장하고 호걸스러움을 오릉 사람들이 다 알도록 했다.”는 말이다.
주200)
수계(須溪) : 유진옹(劉辰翁, 1232-1297)의 호. 송나라 말기 길주(吉州) 여릉(廬陵, 지금의 江西 吉安市) 사람. 자는 회맹(會孟)이고, 호는 수계(須溪)다. 어려서 태학생(太學生)으로 있었다. 이종(理宗) 경정(景定) 3년(1262) 전시(殿試)에서의 대책(對策)에서 권세가였던 가사도(賈似道)를 거슬려 병과(丙科)에 등제했다. 부모님이 연로하다는 이유로 염계서원(濂溪書院) 산장(山長)이 될 것을 자청했다. 강만리(江萬里)와 진선중(陳宣中) 등이 사관(史館)에 머물 것과 태학박사(太學博士)에 임명할 것을 추천했지만, 모두 사양하고 나가지 않았다. 송나라가 망하자 벼슬하지 않았고, 은거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사(詞)를 잘 지었는데, 주로 망국의 아픔을 통절하게 노래한 것이다. 작품에 『수계사(須溪詞)』 10권과 『수계사경시(須溪四景詩)』 4권이 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수계사(須溪詞)』로 편집했다. 그 밖의 저서에 『수계집(須溪集)』, 『반마이동편(班馬異同評)』, 『방옹시선후집(放翁詩先後集)』 등이 있다.
주201)
차등(此等)이 : 이들이. 평소에 오릉(五陵)에서 호유(豪遊)하던 이들.
주202)
호준(豪俊) : 지재(才智)가 걸출(傑出)한 사람.
주203)
부당피지(復當避之)니 : 평소에 오릉(五陵)에서 호유(豪遊)하다가 난리를 만나, 다시 피난을 가는 것을 말한다.
주204)
기우애감한(其憂愛感恨)이 개견어언외(皆見於言外)니라 : 평소에는 자신의 공을 믿고 교만하게 지내다가, 난리를 만난 뒤의 우애(憂愛)와 감한(感恨)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주205)
츠고 : 추고. 츠[舞]-+고. ¶츠다 : 프른 버드른 디 이셔 발 앏픠셔 춤츠고   졍이 만야 바랏 우호로셔 오놋〈백련14ㄴ〉 / 셴 머리 늘거 시드러우메 춤 츠고  놀애 브르노니 도랏막대 딥고 오디 아니호 뉘 能히 엇뎨리오(白頭老罷舞復歌 杖藜不睡誰能那)〈두시 11:41ㄱ〉.
주206)
웅호(雄豪) : 영웅호걸(英雄豪傑).
주207)
오릉(五陵)ㅅ 사로 여 : 오릉(五陵)의 사람으로 하여금. 즉 평상시에 오릉(五陵)에서 호유(豪遊)를 즐기던 사람들이 난리를 만나 우애와 감한을 느끼는 것에 의해서라는 뜻이다. 〈중간본〉에도 ‘五陵ㅅ 사로 여’로 되어 있다. ‘-로 여’의 경우 일반적으로 〈중간본〉에는 ‘-로 여’로 되어 있으나 여기의 ‘-로 여’는 〈중간본〉도 동일하다.
주208)
알에 다 : 알게 한다. 알[知]-+게 -++다.
주209)
이상장군(李相將軍) : 이회선(李懷仙).
주210)
계문(薊門) : ①지금의 하북성 계현(薊縣) 일대. ②계구(薊丘). 북경성(北京城) 서쪽 덕승문(德勝門) 밖 서북쪽 모퉁이에 있는 문 이름.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앞의 어양(漁陽)과 같은 지역을 가리킨다.
주211)
이상장군옹계문 백두유유적심존(李相將軍擁薊門 白頭惟有赤心存) : “이상장군 이회선이 변방을 지켰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나라를 지킬 충성스런 마음만 가졌다.”는 말이다.
주212)
이회선(李懷仙) : ?-768. 당나라 유성(柳城)의 호인(胡人). 대대로 거란(契丹)을 섬기면서, 영주(營州)를 지켰다.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했고, 지혜와 술수가 있었다.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를 비장(裨將)에 임명했다. 나중에 사조의(史朝義)가 연경유수(燕京留守)와 범양윤(范陽尹)으로 삼았다. 당나라에 항복하고, 복고회은(僕固懷恩)이 추천해 유주(幽州)와 노령(盧龍)의 절도사(節度使)가 되었다. 복고회은이 반란을 일으키자 성읍(城邑)의 병사를 이끌고, 스스로 문무장리(文武將吏)라 일컬으면서, 사사롭게 세금을 거뒀지만, 조정이 제지하지 못했다. 결국 부장(部將) 주희채(朱希彩)에게 죽임을 당했다. 『두시언해』 권3의 「聞官軍收河南河北」 시에 “廣德元年에 史朝義ㅣ 死커 其將李懷仙 以魏오 薛嵩 以相衛洛邢이오 張志忠 以趙定深恒易로 來降니라(광덕(廣德) 원년에 사조의(史朝義)가 죽었는데 그의 장군 이회선(李懷仙)은 위(魏)로, 설숭(薛嵩)은 상위낙형(相衛洛邢)으로, 장지충(張志忠)은 조정신항역(趙定深恒易)으로 와서 항복하였다)〈두시 3:23ㄴ-24ㄱ〉”는 주석이 있다.
주213)
검교시중(檢校侍中) : ‘검교’는 관직(官職) 이름. 진(晉)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는데, 원래 산관(散官)이었다. 원(元)나라 이후 속관(屬官)이 되고, 청(淸)나라 때는 부(府)에 검교관(檢校官)으로 존재했는데, 하급 관원이었다. ‘시중(侍中)’은 관직 이름. 진(秦)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다. 황제를 직접 모시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잡무를 맡다가, 점차 임무가 막중해졌다. 남조(南朝)의 송나라 때는 기밀 사항을 관장했다. 양진(梁陳) 때는 재상의 일을 행했고, 북위(北魏) 때는 소재상(小宰相)으로 불렸다. 수나라 때 납언(納言)으로 개칭되었다가, 당나라 때 환원되었으며, 이후 실권이 떨어졌다. 북송 때 명목만 존재하다 남송 때 폐지되었다.
주214)
유주(幽州) : 한무제(漢武帝)가 설치한 13부(部) 자사(刺史)의 하나다. 후한(後漢) 때 치소(治所)는 계현(薊縣, 지금의 북경성[北京城]] 서남쪽)이다. 관할 지역은 지금의 하북(河北) 북부와 요녕(遼寧) 등지였다.
주215)
려 : 꾸려. [擁]-+이+어.
주216)
가졧니 : 가지고 있으니. 갖[有]-+이+어#잇-++니.
주217)
셴 머리예 : 센 머리에. 원시의 ‘백두(白頭)’의 번역이다.
주218)
적심(赤心) : 적심(赤心)만. ‘적심(赤心)’은 ①조금도 거짓이 없는 참된 마음. 진심(眞心). ②붉은 심. 붉은 속 줄기. 안녹산(安祿山)이 특히 배가 불룩했는데, 당 현종(唐玄宗)이 농담으로 “경의 뱃속에는 무엇이 들었는가?”고 묻자 언제나 붉은 정성(精誠)이 들어 있다고 대답한 데서 나왔다.
주219)
제후(諸侯) : 하북제도절도사들을 가리키는 말.
주220)
경능진세제후입 지유종래천자존(竟能盡說諸侯入 知有從來天子尊) : “제후들을 설득해 입조하여 하여, 대대로 천자가 존귀한 지위인 것을 알게 했다”는 말이다.
주221)
매 : 마침내.
주222)
달애야 : 달래여. 달애[說]-+아. 〈중간본〉은 ‘달애아’로 되어 있으나 오각 또는 탈각으로 보인다. ¶달애다 : 가마괴 와 딕먹더니 太子ㅣ 보시고 慈悲心 내야시 王이 미조차 가샤 달애야 뫼셔 오샤 出家가 저흐샤 류 겨집 더야  자치시긔 시더라〈석상 3:16ㄱ〉 /  耶輸陁羅 달애야 恩愛 그쳐 羅睺羅 노하 보내야 재 외에 라〈석상 6:1ㄴ〉.
주223)
고 : 것을. 15세기 국어의 ‘곧’은 ‘곳’과 ‘것’의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 ¶곧(것) : 네 이제 能히 受니 다 如來ㅅ 威力이론 고 아라라〈석상 9:28ㄱ〉 / 곧(곳) : 이 니 福德이 자최마다 蓮花ㅣ 나논 고 보고 닐오 블옷 얻고져 거든 네 올 녁그로 내 堀 닐굽 번 돌라〈석상 11:26ㄴ〉 / 賤子 어느 사미 記數리오 갈 方所 어즐호니 왯논 고디 지비로다(賤子何人記 迷方著處家)〈두시 3:27ㄱ〉.
주224)
아도다 : 알겠도다. 알[知]-+도+다.
주225)
십이년(十二年) : 천보(天寶) 14년(755)부터 대력(大曆) 2년(767)까지 시간을 가리키는 말. 그 사이 안사(安史)의 난을 평정했고, 회흘(回紇)과 토번(吐蕃)을 물리쳤으며, 복고회은(僕固懷恩)과 주지광(周智光) 등을 평정했는데, 모두 곽자의(郭子儀)의 공훈이다.
주226)
십이년래다전장 천위이식진당당(十二年來多戰場 天威已息陣堂堂) : “오랜 기간 전란에 시달리며 지냈더니, 하늘의 위엄도 당당하던 군진에서 그쳤다”는 말이다.
주227)
오매 : 옴에. 지나옴에. 이래로. 원시의 ‘來’의 번역이다. 원시의 ‘來’는 ‘이래(以來)’의 의미로 쓰였으나 『두시언해』에서는 ‘오매’로 번역하였다.
주228)
하더니 : 많더니. 하[多]-+더+니.
주229)
마 : 이미. 벌써. ¶마 : 나 늘거 마 無想天으로 가리니〈석상 3:2ㄱ〉 / 너희 비들 마가 줄 靑錢 마 일워 뒷노니 반기 됴 마로 여 내 이베 들에 라(已辦靑錢防雇直 當令美味入吾脣)〈두시 3:32ㄴ〉.
주230)
성(盛) 군진(軍陣) : 풍성한 군진을. 많고 많던 군진을. 여기서의 ‘성(盛)’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주231)
그치시도다 : 그치시도다. 긏[絶]-+이+시+도+다. 15세기의 ‘긏다’는 자타동양용동사인데 타동사적 용법의 ‘긏다’와 자동사 ‘긏다’에 사동접미사 ‘이’가 결합된 ‘그치다’는 결국 동일한 기능을 가진다. 이후 타동사적 용법의 ‘긏다’는 세력이 약화되고 파생사동사인 ‘그치다’가 세력을 확장한다.
주232)
한대중흥주(漢代中興主) : 한무제(漢武帝)를 가리키는 말. 대종(代宗)이 한무제에 버금간다는 말이다.
주233)
분양이성왕(汾陽異姓王) : 곽자의(郭子儀)를 가리키는 말. 보응(寶應) 원년(762) 2월 곽자의가 분양군왕(汾陽郡王)으로 진봉(進封)되었다. 여기서는 곽자의가 여러 절도(節度)의 모범이 된 것을 칭송한 것이다.
주234)
신령한대중흥주 공업분양이성왕(神靈漢代中興主 功業汾陽異姓王) : “한나라를 부흥시킨 한무제처럼 대종은 신령하고, 이를 도운 곽자의의 공도 그에 못지않다.”는 말이다.
주235)
상구(上句) 미대종(美代宗)고 하구(下句) 미곽자의(美郭子儀)니라 : 위의 시구 즉 ‘神靈漢代中興主(신령하심은 한(漢)나라 때의 다시 흥기하신 임금이시고)’는 대종(代宗)을 미화한 것이고, 아래의 시구 즉 ‘功業汾陽異姓王(공업(功業)은 분양(汾陽)의 성이 다른 왕이로다)’는 곽자의(郭子儀)를 미화한 것이라는 말이다.
주236)
분양(汾陽) : 분수(汾水)의 북쪽 지역. 춘추시대(春秋時代) 때는 진(晉)나라에 속했다.
주237)
왕(王)이로다 : 왕이다. 왕+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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