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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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위급하네[警急]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11ㄴ

警急 주001)
경급(警急)
이 시는 광덕(廣德) 원년(763) 10월 두보 52세 때 낭주(閬州)에서 지어졌다. 제목 아래 원주(原註)에 보면, “고적(高適)이 서천절도에 올랐다(高公適領西川節度)”고 되어 있다. 역사서에 보면 이 해 10월 화친을 청하던 토번(吐蕃)이 봉천(奉天)과 무공(武功)을 공격하면서, 점점 경도(京都)로 접근 중이었다. 최광원을 대신한 서천절도사 고적(高適)이 촉에서 병사를 훈련시키고, 토번과의 남쪽 경계에서 토번을 견제하고 있었다. 작품에는 변경 우환에 대한 근심과 함께 고적에게 보내는 희망이 표현되어 있다. 시의 제목인 ‘경급(警急)’은 경계(警戒)가 위급(危急)하다는 말이다.
【漢書에 邊防備警急이라다】

경급
(경계가 위급하네)
【『한서』에, “변방에서 경급(警急)을 갖추었다.”고 말했다.】

才名 주002)
재명(才名)
재능과 명성.
舊楚將 주003)
구초장(舊楚將)
옛 초나라의 장수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고적(高適)을 가리킨다. 지덕(至德) 2년(757) 영왕(永王) 이인(李璘)이 반란을 일으키자, 고적이 양주대도독부장사(揚州大都督府長史)와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로서 이린을 토벌해 공을 세웠다. 양주와 회남이 옛날 초(楚) 땅이라 이렇게 불렀다.
妙略 주004)
묘략(妙略)
기묘한 전략.
주005)
옹(擁)
손에 쥐다. 지니다.
兵機 주006)
병기(兵機)
①전쟁 따위의 군사 행동이 일어나는 단서(端緖) 또는 그러한 기회(機會). ②군사(軍事)와 관련하여 중요하고도 비밀스러운 기밀(機密)의 내용. ③무기류(武器類)를 두루 일컫는 말. 병갑(兵甲). ④병법(兵法)의 기략(機略).
주007)
재명구초장 묘략옹병기(才名舊楚將 妙略擁兵機)
이 구는 서천절도사인 고적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時예 高適 주008)
고적(高適)
700?-765. 당나라 발해(渤海) 수현(蓨縣) 사람. 자는 달부(達夫) 또는 중부(仲父)다. 젊었을 때 빈한하여 장안(長安)에 왔다가 실망하고 돌아갔는데,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산동(山東)과 하북 지방을 방랑하며, 이백(李白), 두보(杜甫) 등과 사귀었다. 나중에 하서(河西)로 들어가, 가서한(哥舒翰)의 막부에서 서기(書記)가 되었다. 회남(淮南)과 서천(西川)의 절도사를 지내고, 산기상시(散騎常侍)까지 올랐으며, 발해현후(渤海懸侯)에 봉해졌다. 보통 고상시(高常侍)라 불린다. 일찍이 세 번 변방으로 나가, 잠삼(岑參)과 이름을 나란히 해 ‘고잠(高岑)’으로 불렸다. 시호는 충(忠)이다. 시는 호쾌하면서도 침통한데, 특히 변경에서의 외로움과 전쟁, 이별의 비참함을 읊은 변새시(邊塞詩)가 뛰어나다. 저서에 『고상시집(高常侍集)』이 그가 지은 『중간흥기집(中間興氣集)』과 함께 전한다.
이 領西川節度使 주009)
절도사(節度使)
관직 이름. 당나라 예종(睿宗) 경운(景雲) 2년(711) 처음 설치했다. 천보(天寶) 초 안서(安西), 북정(北庭), 하서(河西) 등 9개의 변방 지역에 절도사를 설치하면서, 관직을 제수받은 사람에게 쌍정쌍절(雙旌雙節)을 하사하고, 그 지방의 군․민․재정을 총괄토록 했다. 안사(安史)의 난 뒤 중원에도 절도사를 설치했다. 안사의 난을 계기로 이들은 중앙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병력을 증강하고, 조정의 통제를 이탈하여, 번진(藩鎭)세력을 형성했다. 또 번진 세력끼리 전쟁을 벌이거나, 내부 권력다툼을 일으켰다. 오대(五代)에도 설치되었으며, 송나라 초 조정에서 중앙집권의 강화를 위해 이들의 실권을 빼앗았다. 원나라 때 폐지했다.
주010)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
당나라 때 사천성(四川省) 서쪽에 설치하였던 절도사로 치소는 성도부에 있었다. 지덕 2년(757)검남(劍南)절도사 서쪽에 설치하였다. 성도부(成都府), 팽주(彭州), 한주(漢州), 미주(眉州), 가주(嘉州), 공주(邛州), 간주(簡州), 자주(资州), 무주(茂州), 여주(黎州), 아주(雅州)를 관할하였다. 이 지역에 오대십국 시대 전촉(前蜀)이 건립되었다.
다】

才名 주011)
옛. 녜[古, 舊]+ㅅ. ¶녯 : 如是라 혼 말 녯 사미 여러 길로 닐어 잇니(如是之言을 古人이 說有多途니)〈금삼 1:16ㄴ〉 / 楚ㅅ 貢은 어느 예 그츠니오 堯ㅅ 封던 녯 民俗이 이제 疑心외도다(楚貢何年絕 堯封舊俗疑)〈두시 3:3ㄴ〉.
楚앳 將軍이로소니 주012)
장군(將軍)이로소니
장군이니. 將軍+이+도+소+니. ‘로’는 ‘도’가 ‘ㅣ’모음 뒤에서 변화한 형태이다. ¶-이로소니 : 王子ㅅ 命이 닐웻 부니로소니 아례나   노라 리다(當就於死努力恣情五欲自娛)〈석상 24:28ㄱ〉 / 녯 功業을  말리로소니  일후믄 어듸 잇뇨(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두시 3:8ㄴ〉.
微妙 謀略로 兵機 려 주013)
려
끌어. 끌어안아. 리-[擁]+어. ¶리다 : 擁 릴 씨라〈석상 21:24ㄴ〉 / 대옛  햇 비체 니고 맷 더푸믄 봄 몰애예 롓도다(竹風連野色 江沫擁春沙)〈두시 3:27ㄱ〉.
가졧도다 주014)
가졧도다
가지고 있도다. 가지-[持]+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다’는 현대국어로는 ‘-고 하다’의 의미도 있었다. ¶-어 잇다(-어 있-) : 즉자히 入定야 펴엣던  구필 예(即入禪定 屈伸臂頃)〈석상 6:2ㄱ〉 / 모미 라가고져 나 病야 床애 누어 잇노라(身欲奮飛病在床)〈두시 19:17ㄴ-18ㄱ〉 / -어 잇다(-고 있-) : 예 니르러셔 머믈어 잇더니〈소학 6:45ㄱ〉 / 疎拙호  내 道 뒷노니(朗鑒存愚直)〈두시 3:29ㄴ〉.

【한자음】 재명구초장 묘략옹병기【그때 고적(高適)이 서천(西川)을 관할하는 절도사(節度使)로 있었다.】
【언해역】 재능과 명성은 옛 초나라 장수이니, 오묘한 계략으로 병기(兵機)를 끌어 가지고 있도다!

玉壘 주015)
옥루(玉壘)
사천성(四川省) 이현(理縣) 동남쪽에 있는 산 이름. 보통 성도(成都)의 대칭(代稱)으로 쓰인다. 당나라 때는 토번으로 통행하는 요충 도로였다.
傳檄 주016)
전격(傳檄)
격서를 전달하다. 토번의 침입으로 다른 고을에 격서를 전달한 것이다.
松州 주017)
송주(松州)
지금의 사천 송반현(松潘縣)인데, 당나라 조정이 토번을 방비하기 위해 세운 세 성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토번의 병사가 송주를 포위하고 있었다.
주018)
회(會)
반드시. 틀림없이. 언해에는 ‘모로매’로 되어 있다.
解圍 주019)
회위(解圍)
포위를 풀다.
주020)
옥루수전격 송주회해위(玉壘雖傳檄 松州會解圍)
앞 구는 토번이 송주를 포위하고 있어서, 비록 성도에 격서나 전해지고 있을지라도’의 뜻이며, 뒤 구는 토번이 송주를 포위하고 있으나, 곧 풀릴 것이라는 뜻이다.
【玉壘山이 在彭州 주021)
팽주(彭州)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서북부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도시. 오랜 역사를 지닌 곳으로 일찍이 천부금분(天府金盆), 촉한명구(蜀漢名區)라는 칭송을 들었다. 자연지리와 인문풍물이 특색을 갖추고 있다.
다 檄 徵兵書也ㅣ라 此 言吐蕃이 雖入寇야 相傳檄書나 松州 會有解圍之日리라】

玉壘에 주022)
옥루(玉壘)에
옥루산에.
비록 주023)
비록
비록. 원시의 ‘數’에 대한 번역어로 ‘傳나’의 ‘~나’와 호응한다.
檄書ㅣ 傳나 주024)
격서(檄書)ㅣ 전(傳)나
격서가 전하나. ‘전(傳)다’가 자동사로 쓰였다.
松州 모로매 주025)
모로매
모름지기. 일반적으로 ‘須’에 대한 번역어로 쓰이나 여기서는 ‘會’에 대한 번역어로 쓰였다.
둘어슈믈 주026)
둘어슈믈
둘어싸져 있음을. 두르-[圍]+어#잇-+우+ㅁ+을.
헤티리라 주027)
헤티리라
헤쳐 나가리라. 헤티-[解]+리+라. ¶헤티다 : 여러 블  거 헤티고 거의 디게 얏 을 올게 야〈삼강(동경) 충:35ㄱ〉 / 翰林이 華蓋예 갓가오니 고래 히미 바 므를 헤티 도다(翰林逼華蓋 鯨力破滄溟)〈두시 21:8ㄱ〉.

【한자음】 옥루수전격 송주회해위옥루산(玉壘山)팽주(彭州)에 있다. ‘격(檄)’은 병사를 부르는 글이다. 이것은 토번이 비록 쳐들어 와서 격서가 서로 전해지고 있지만, 송주(松州)는 모름지기 포위를 푸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옥루산(玉壘山)에 비록 격서(檄書)가 전했지만, 송주(宋州)는 모름지기 둘러있음을 헤쳐 나가리라.

和親 주028)
화친(和親)
토번이 혼인을 청해 와 당나라가 문성(文成)공주와 금성(金城)공주를 토번왕에게 시집을 보내 화호(和好)를 구한 일을 가리킨다.
知計拙 주029)
지계졸(知計拙)
계책이 졸렬함을 알다.
公主 주030)
공주(公主)
문성공주와 금성공주를 말한다.
문성공주(文成公主) : 625 ?-680. 티베트왕 송찬간포(松贊干布, 617-650)에게 시집간 당나라 황실의 딸. 당나라 황실 누구의 딸인지 분명하지 않다. 당시 중국 서쪽의 티베트를 토번(吐藩)이라고 불렀으며, 변방에는 이들의 침략으로 피해와 혼란이 많았다. 라싸는 토번의 중심지였으며, 티베트 일대를 통일한 송찬간포가 당 태종에게 공주와의 혼인을 요청하자, 몇 차례 거절하였다. 하지만 토번의 세력이 더욱 강성해져 주변의 군소 국가를 패퇴시키고, 당나라의 변방을 침략해왔다. 토번은 당나라와 전투를 벌였다가, 양측의 화의(和議)가 성립하여, 641년 송찬간포와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문성공주가 토번으로 시집을 가면서 상당한 혼수품과 시녀들이 함께 이주하였는데 이것이 티베트에 중국문화를 유입시킨 계기가 되었다. 혼수품은 일상에 사용하는 용품뿐만 아니라 농업기술과 건축, 공예 등이 함께 전수되어 티베트 지역에 문화적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특히 티베트에 불교가 전파된 것이 문성공주에 의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많은 사찰(곰파)가 지어졌고 포탈라궁[布達拉宮]도 이때 지어진 것이며, 당시의 장면들이 벽화로 남아있다. 그 때문에 문성공주는 티베트 불교의 공로자로서, 라마교(敎)의 존상(尊像)이 되었다.
주031)
만(漫)
공연히. 그저. 언해에는 ‘쇽졀업시’로 되어 있다.
無歸 주032)
무귀(無歸)
돌아오지 못하다.
주033)
화친지계졸 공주만무귀(和親知計拙 公主漫無歸)
앞 구는 토번의 화친 제의에 따라 출가시켰으나, 끝내 토번의 침략을 면하지 못했다는 말이며, 뒤 구는 티베트로 시집을 간 두 공주 역시 끝내 돌아올 기약이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此 言朝廷이 嘗以金城公主 주034)
금성공주(金城公主)
?-740. 당나라 종실(宗室) 옹왕(雍王)의 딸. 중종(中宗)의 양녀였다. 신룡(神龍) 3년(707) 토번(吐蕃)의 찬보(贊普)가 사신을 보내 청혼하자, 중종이 그녀가 토번의 찬보 기예축찬(棄隷縮贊)에게 시집가는 것을 허락했다. 경룡(景龍) 4년(710) 봄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 양구(楊矩)에게 명해 지절(持節)을 가지고 공주를 호송하여 토번에 가 혼사를 성사시킬 것을 명령하고, 아울러 공주에게 탕목읍(湯沐邑)을 하사했다. 또 일찍이 구자악(龜玆樂)과 백공잡기(百工雜技) 및 『모시(毛詩)』, 『좌전(左傳)』, 『예기(禮記)』, 『문선(文選)』 등을 토번에 전파시켰다. 30년 동안 토번에 있으면서, 당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데 힘썼고, 경계비를 세우고 교역 시장을 여는 등 당나라와 토번 사이 경제적, 문화적 교류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로 嫁吐蕃야 和親호 卒不免入寇니 此爲計拙也ㅣ라】

和親호 혜아리미 주035)
혜아리미
헤아림이. 혜아리-[數]+ㅁ+이. ‘혜아리-’는 ‘혜-’가 있으므로 다시 ‘혜’와 ‘아리’로 분석되지만, ‘아리’의 정체는 알 수 없다. 불경언해에서는 ‘혜아리-’가 주로 ‘量’에 대응된다. 『두시언해』에서는 ‘보라온 곳부리 혜아려 리 프놋다’와 같이 ‘商量’의 번역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慮, 策, 筭, 虞, 計, 照, 算, 憂, 念, 商量, 意, 度’ 등 다양하게 대응된다. 단 『두시언해』 권8의 예인 ‘籌策을 혜아려 神功을 자뱃도다’의 ‘헤아리-’에 대응하는 ‘運’은 다소 의역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혜아리다 : 戱論 노야 議論 씨니 야 혜아리 正티 몯 미라〈석상 19:25ㄱ〉 / 몃 디위 靑瑣門에 朝班을 혜아리가니오(幾回靑瑣照朝班)〈두시 6:9ㄱ〉.
疎拙  주036)
소졸(疎拙) 
소졸한 줄.
아노니 公主ㅣ 쇽졀업시 주037)
쇽졀업시
속절없이. 원시의 ‘漫’의 번역이다.
도라오디 주038)
도라오디
돌아오지. 돌-[回]+아#오-+디.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12ㄱ

놋다
주039)
몯놋다
못하는구나. 몯#-++오+ㅅ+다.

【한자음】 화친지계졸 공주만무귀【이것은 조정이 일찍이 금성공주(金城公主)를 토번에 시집보내 화친했지만, 마침내 오랑캐의 공격을 면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계책이 졸렬했음을 말한다.】
【언해역】 화친함을 헤아림이 소졸한 줄 아니, 공주가 속절없이 돌아오지 못하는구나.

靑海 주040)
청해(靑海)
중국 북서부에 있는 지역. 지금의 청해성(靑海省)에 해당한다. 약칭하여 ‘청(青)’이라고도 부르며, 성도(省都)는 서녕(西寧)이다. 티베트고원 북동부에 있다. 한(漢)나라 때는 강족(羌族)의 영토였고, 수(隋)나라 때는 서해(西海)와 하원(河源) 등의 군(郡)을 설치했으며, 당(唐)나라 때는 토번(吐蕃)의 영토였다. 청(清)나라 때는 감숙성(甘肃省) 서녕부(西寧府) 청해몽고부(青海蒙古部)였고, 남쪽은 옥수(玉樹) 등 토사(土司)의 영지였으며, 1928년에 성(省)이 설치되었다.
今誰得 주041)
금수득(今誰得)
지금 누가 차지하고 있는가?
西戎 주042)
서융(西戎)
①옛날 종족(種族) 이름. 동이(東夷)의 하나다. 하(夏)나라부터 주(周)나라 때까지 지금의 회하(淮河) 중상류 지역에 분포했었다. 주나라 초기에 서(徐)나라를 세웠는데, 동이 가운데 가장 강대했다. 일찍이 여러 차례 회이(淮夷) 등과 연합하여, 주나라에 대항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초(楚)나라에 패배했고, 주 경왕(周敬王) 8년(기원전 512) 오(吳)나라에 병합되었다. 여기서는 토번을 가리킨다.
飽飛 주043)
포비(飽飛)
배가 부른 채 날다.
주044)
청해금수득 서융실포비(靑海今誰得 西戎實飽飛)
앞 구는 한때는 중국의 영토였지만, 지금은 전란으로 통치권을 잃었으니 누가 그곳을 차지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며, 뒤 구는 토번이 청해를 차지하여, 제어하기 어렵게 된 것이 마치 배가 부른 매를 제어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는 말이다.
【此 言吐蕃이 陷靑海니 如鷹이 飽飛而難制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靑海 이제 주045)
누가. ‘·뉘(거성)’ ¶뉘 :  臣下ㅣ 王  太子ㅣ 져머 겨시니 뉘 기려뇨〈석상 3:3ㄱ〉 / 東으로 集壁에 니르며 西ㅅ 녀그로 梁洋히 묻노라 뉘 허리예 나 가졧뇨 胡와 다 羌이로다(東至集壁西梁洋 問誰腰鐮胡與羌)〈두시 4:31ㄴ〉.
가졧니오 주046)
가졧니오
가지고 있는가? 가지-[持]+어#잇-++니+고.
西戎이 眞實로 블어셔 놋다 주047)
놋다
나는구나. -[飛]++오+ㅅ+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청해금수득 서융실포비【이것은 토번청해(靑海)를 함락하니, 마치 매가 배불리 먹고 날아올라, 제어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언해역】 청해(靑海)를 지금 누가 가지고 있는가, 서융(西戎)이 실로 배불러서 나는구나!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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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경급(警急) : 이 시는 광덕(廣德) 원년(763) 10월 두보 52세 때 낭주(閬州)에서 지어졌다. 제목 아래 원주(原註)에 보면, “고적(高適)이 서천절도에 올랐다(高公適領西川節度)”고 되어 있다. 역사서에 보면 이 해 10월 화친을 청하던 토번(吐蕃)이 봉천(奉天)과 무공(武功)을 공격하면서, 점점 경도(京都)로 접근 중이었다. 최광원을 대신한 서천절도사 고적(高適)이 촉에서 병사를 훈련시키고, 토번과의 남쪽 경계에서 토번을 견제하고 있었다. 작품에는 변경 우환에 대한 근심과 함께 고적에게 보내는 희망이 표현되어 있다. 시의 제목인 ‘경급(警急)’은 경계(警戒)가 위급(危急)하다는 말이다.
주002)
재명(才名) : 재능과 명성.
주003)
구초장(舊楚將) : 옛 초나라의 장수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고적(高適)을 가리킨다. 지덕(至德) 2년(757) 영왕(永王) 이인(李璘)이 반란을 일으키자, 고적이 양주대도독부장사(揚州大都督府長史)와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로서 이린을 토벌해 공을 세웠다. 양주와 회남이 옛날 초(楚) 땅이라 이렇게 불렀다.
주004)
묘략(妙略) : 기묘한 전략.
주005)
옹(擁) : 손에 쥐다. 지니다.
주006)
병기(兵機) : ①전쟁 따위의 군사 행동이 일어나는 단서(端緖) 또는 그러한 기회(機會). ②군사(軍事)와 관련하여 중요하고도 비밀스러운 기밀(機密)의 내용. ③무기류(武器類)를 두루 일컫는 말. 병갑(兵甲). ④병법(兵法)의 기략(機略).
주007)
재명구초장 묘략옹병기(才名舊楚將 妙略擁兵機) : 이 구는 서천절도사인 고적을 찬미하는 내용이다.
주008)
고적(高適) : 700?-765. 당나라 발해(渤海) 수현(蓨縣) 사람. 자는 달부(達夫) 또는 중부(仲父)다. 젊었을 때 빈한하여 장안(長安)에 왔다가 실망하고 돌아갔는데, 생업에 종사하지 않고 산동(山東)과 하북 지방을 방랑하며, 이백(李白), 두보(杜甫) 등과 사귀었다. 나중에 하서(河西)로 들어가, 가서한(哥舒翰)의 막부에서 서기(書記)가 되었다. 회남(淮南)과 서천(西川)의 절도사를 지내고, 산기상시(散騎常侍)까지 올랐으며, 발해현후(渤海懸侯)에 봉해졌다. 보통 고상시(高常侍)라 불린다. 일찍이 세 번 변방으로 나가, 잠삼(岑參)과 이름을 나란히 해 ‘고잠(高岑)’으로 불렸다. 시호는 충(忠)이다. 시는 호쾌하면서도 침통한데, 특히 변경에서의 외로움과 전쟁, 이별의 비참함을 읊은 변새시(邊塞詩)가 뛰어나다. 저서에 『고상시집(高常侍集)』이 그가 지은 『중간흥기집(中間興氣集)』과 함께 전한다.
주009)
절도사(節度使) : 관직 이름. 당나라 예종(睿宗) 경운(景雲) 2년(711) 처음 설치했다. 천보(天寶) 초 안서(安西), 북정(北庭), 하서(河西) 등 9개의 변방 지역에 절도사를 설치하면서, 관직을 제수받은 사람에게 쌍정쌍절(雙旌雙節)을 하사하고, 그 지방의 군․민․재정을 총괄토록 했다. 안사(安史)의 난 뒤 중원에도 절도사를 설치했다. 안사의 난을 계기로 이들은 중앙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병력을 증강하고, 조정의 통제를 이탈하여, 번진(藩鎭)세력을 형성했다. 또 번진 세력끼리 전쟁을 벌이거나, 내부 권력다툼을 일으켰다. 오대(五代)에도 설치되었으며, 송나라 초 조정에서 중앙집권의 강화를 위해 이들의 실권을 빼앗았다. 원나라 때 폐지했다.
주010)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 : 당나라 때 사천성(四川省) 서쪽에 설치하였던 절도사로 치소는 성도부에 있었다. 지덕 2년(757)검남(劍南)절도사 서쪽에 설치하였다. 성도부(成都府), 팽주(彭州), 한주(漢州), 미주(眉州), 가주(嘉州), 공주(邛州), 간주(簡州), 자주(资州), 무주(茂州), 여주(黎州), 아주(雅州)를 관할하였다. 이 지역에 오대십국 시대 전촉(前蜀)이 건립되었다.
주011)
녯 : 옛. 녜[古, 舊]+ㅅ. ¶녯 : 如是라 혼 말 녯 사미 여러 길로 닐어 잇니(如是之言을 古人이 說有多途니)〈금삼 1:16ㄴ〉 / 楚ㅅ 貢은 어느 예 그츠니오 堯ㅅ 封던 녯 民俗이 이제 疑心외도다(楚貢何年絕 堯封舊俗疑)〈두시 3:3ㄴ〉.
주012)
장군(將軍)이로소니 : 장군이니. 將軍+이+도+소+니. ‘로’는 ‘도’가 ‘ㅣ’모음 뒤에서 변화한 형태이다. ¶-이로소니 : 王子ㅅ 命이 닐웻 부니로소니 아례나   노라 리다(當就於死努力恣情五欲自娛)〈석상 24:28ㄱ〉 / 녯 功業을  말리로소니  일후믄 어듸 잇뇨(素業行已矣 浮名安在哉)〈두시 3:8ㄴ〉.
주013)
려 : 끌어. 끌어안아. 리-[擁]+어. ¶리다 : 擁 릴 씨라〈석상 21:24ㄴ〉 / 대옛  햇 비체 니고 맷 더푸믄 봄 몰애예 롓도다(竹風連野色 江沫擁春沙)〈두시 3:27ㄱ〉.
주014)
가졧도다 : 가지고 있도다. 가지-[持]+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다’는 현대국어로는 ‘-고 하다’의 의미도 있었다. ¶-어 잇다(-어 있-) : 즉자히 入定야 펴엣던  구필 예(即入禪定 屈伸臂頃)〈석상 6:2ㄱ〉 / 모미 라가고져 나 病야 床애 누어 잇노라(身欲奮飛病在床)〈두시 19:17ㄴ-18ㄱ〉 / -어 잇다(-고 있-) : 예 니르러셔 머믈어 잇더니〈소학 6:45ㄱ〉 / 疎拙호  내 道 뒷노니(朗鑒存愚直)〈두시 3:29ㄴ〉.
주015)
옥루(玉壘) : 사천성(四川省) 이현(理縣) 동남쪽에 있는 산 이름. 보통 성도(成都)의 대칭(代稱)으로 쓰인다. 당나라 때는 토번으로 통행하는 요충 도로였다.
주016)
전격(傳檄) : 격서를 전달하다. 토번의 침입으로 다른 고을에 격서를 전달한 것이다.
주017)
송주(松州) : 지금의 사천 송반현(松潘縣)인데, 당나라 조정이 토번을 방비하기 위해 세운 세 성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토번의 병사가 송주를 포위하고 있었다.
주018)
회(會) : 반드시. 틀림없이. 언해에는 ‘모로매’로 되어 있다.
주019)
회위(解圍) : 포위를 풀다.
주020)
옥루수전격 송주회해위(玉壘雖傳檄 松州會解圍) : 앞 구는 토번이 송주를 포위하고 있어서, 비록 성도에 격서나 전해지고 있을지라도’의 뜻이며, 뒤 구는 토번이 송주를 포위하고 있으나, 곧 풀릴 것이라는 뜻이다.
주021)
팽주(彭州) :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서북부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도시. 오랜 역사를 지닌 곳으로 일찍이 천부금분(天府金盆), 촉한명구(蜀漢名區)라는 칭송을 들었다. 자연지리와 인문풍물이 특색을 갖추고 있다.
주022)
옥루(玉壘)에 : 옥루산에.
주023)
비록 : 비록. 원시의 ‘數’에 대한 번역어로 ‘傳나’의 ‘~나’와 호응한다.
주024)
격서(檄書)ㅣ 전(傳)나 : 격서가 전하나. ‘전(傳)다’가 자동사로 쓰였다.
주025)
모로매 : 모름지기. 일반적으로 ‘須’에 대한 번역어로 쓰이나 여기서는 ‘會’에 대한 번역어로 쓰였다.
주026)
둘어슈믈 : 둘어싸져 있음을. 두르-[圍]+어#잇-+우+ㅁ+을.
주027)
헤티리라 : 헤쳐 나가리라. 헤티-[解]+리+라. ¶헤티다 : 여러 블  거 헤티고 거의 디게 얏 을 올게 야〈삼강(동경) 충:35ㄱ〉 / 翰林이 華蓋예 갓가오니 고래 히미 바 므를 헤티 도다(翰林逼華蓋 鯨力破滄溟)〈두시 21:8ㄱ〉.
주028)
화친(和親) : 토번이 혼인을 청해 와 당나라가 문성(文成)공주와 금성(金城)공주를 토번왕에게 시집을 보내 화호(和好)를 구한 일을 가리킨다.
주029)
지계졸(知計拙) : 계책이 졸렬함을 알다.
주030)
공주(公主) : 문성공주와 금성공주를 말한다.
문성공주(文成公主) : 625 ?-680. 티베트왕 송찬간포(松贊干布, 617-650)에게 시집간 당나라 황실의 딸. 당나라 황실 누구의 딸인지 분명하지 않다. 당시 중국 서쪽의 티베트를 토번(吐藩)이라고 불렀으며, 변방에는 이들의 침략으로 피해와 혼란이 많았다. 라싸는 토번의 중심지였으며, 티베트 일대를 통일한 송찬간포가 당 태종에게 공주와의 혼인을 요청하자, 몇 차례 거절하였다. 하지만 토번의 세력이 더욱 강성해져 주변의 군소 국가를 패퇴시키고, 당나라의 변방을 침략해왔다. 토번은 당나라와 전투를 벌였다가, 양측의 화의(和議)가 성립하여, 641년 송찬간포와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문성공주가 토번으로 시집을 가면서 상당한 혼수품과 시녀들이 함께 이주하였는데 이것이 티베트에 중국문화를 유입시킨 계기가 되었다. 혼수품은 일상에 사용하는 용품뿐만 아니라 농업기술과 건축, 공예 등이 함께 전수되어 티베트 지역에 문화적 성장의 계기가 되었다. 특히 티베트에 불교가 전파된 것이 문성공주에 의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많은 사찰(곰파)가 지어졌고 포탈라궁[布達拉宮]도 이때 지어진 것이며, 당시의 장면들이 벽화로 남아있다. 그 때문에 문성공주는 티베트 불교의 공로자로서, 라마교(敎)의 존상(尊像)이 되었다.
주031)
만(漫) : 공연히. 그저. 언해에는 ‘쇽졀업시’로 되어 있다.
주032)
무귀(無歸) : 돌아오지 못하다.
주033)
화친지계졸 공주만무귀(和親知計拙 公主漫無歸) : 앞 구는 토번의 화친 제의에 따라 출가시켰으나, 끝내 토번의 침략을 면하지 못했다는 말이며, 뒤 구는 티베트로 시집을 간 두 공주 역시 끝내 돌아올 기약이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주034)
금성공주(金城公主) : ?-740. 당나라 종실(宗室) 옹왕(雍王)의 딸. 중종(中宗)의 양녀였다. 신룡(神龍) 3년(707) 토번(吐蕃)의 찬보(贊普)가 사신을 보내 청혼하자, 중종이 그녀가 토번의 찬보 기예축찬(棄隷縮贊)에게 시집가는 것을 허락했다. 경룡(景龍) 4년(710) 봄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 양구(楊矩)에게 명해 지절(持節)을 가지고 공주를 호송하여 토번에 가 혼사를 성사시킬 것을 명령하고, 아울러 공주에게 탕목읍(湯沐邑)을 하사했다. 또 일찍이 구자악(龜玆樂)과 백공잡기(百工雜技) 및 『모시(毛詩)』, 『좌전(左傳)』, 『예기(禮記)』, 『문선(文選)』 등을 토번에 전파시켰다. 30년 동안 토번에 있으면서, 당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데 힘썼고, 경계비를 세우고 교역 시장을 여는 등 당나라와 토번 사이 경제적, 문화적 교류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주035)
혜아리미 : 헤아림이. 혜아리-[數]+ㅁ+이. ‘혜아리-’는 ‘혜-’가 있으므로 다시 ‘혜’와 ‘아리’로 분석되지만, ‘아리’의 정체는 알 수 없다. 불경언해에서는 ‘혜아리-’가 주로 ‘量’에 대응된다. 『두시언해』에서는 ‘보라온 곳부리 혜아려 리 프놋다’와 같이 ‘商量’의 번역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慮, 策, 筭, 虞, 計, 照, 算, 憂, 念, 商量, 意, 度’ 등 다양하게 대응된다. 단 『두시언해』 권8의 예인 ‘籌策을 혜아려 神功을 자뱃도다’의 ‘헤아리-’에 대응하는 ‘運’은 다소 의역된 경우라 할 수 있다. ¶혜아리다 : 戱論 노야 議論 씨니 야 혜아리 正티 몯 미라〈석상 19:25ㄱ〉 / 몃 디위 靑瑣門에 朝班을 혜아리가니오(幾回靑瑣照朝班)〈두시 6:9ㄱ〉.
주036)
소졸(疎拙)  : 소졸한 줄.
주037)
쇽졀업시 : 속절없이. 원시의 ‘漫’의 번역이다.
주038)
도라오디 : 돌아오지. 돌-[回]+아#오-+디.
주039)
몯놋다 : 못하는구나. 몯#-++오+ㅅ+다.
주040)
청해(靑海) : 중국 북서부에 있는 지역. 지금의 청해성(靑海省)에 해당한다. 약칭하여 ‘청(青)’이라고도 부르며, 성도(省都)는 서녕(西寧)이다. 티베트고원 북동부에 있다. 한(漢)나라 때는 강족(羌族)의 영토였고, 수(隋)나라 때는 서해(西海)와 하원(河源) 등의 군(郡)을 설치했으며, 당(唐)나라 때는 토번(吐蕃)의 영토였다. 청(清)나라 때는 감숙성(甘肃省) 서녕부(西寧府) 청해몽고부(青海蒙古部)였고, 남쪽은 옥수(玉樹) 등 토사(土司)의 영지였으며, 1928년에 성(省)이 설치되었다.
주041)
금수득(今誰得) : 지금 누가 차지하고 있는가?
주042)
서융(西戎) : ①옛날 종족(種族) 이름. 동이(東夷)의 하나다. 하(夏)나라부터 주(周)나라 때까지 지금의 회하(淮河) 중상류 지역에 분포했었다. 주나라 초기에 서(徐)나라를 세웠는데, 동이 가운데 가장 강대했다. 일찍이 여러 차례 회이(淮夷) 등과 연합하여, 주나라에 대항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초(楚)나라에 패배했고, 주 경왕(周敬王) 8년(기원전 512) 오(吳)나라에 병합되었다. 여기서는 토번을 가리킨다.
주043)
포비(飽飛) : 배가 부른 채 날다.
주044)
청해금수득 서융실포비(靑海今誰得 西戎實飽飛) : 앞 구는 한때는 중국의 영토였지만, 지금은 전란으로 통치권을 잃었으니 누가 그곳을 차지할지 알 수 없다는 말이며, 뒤 구는 토번이 청해를 차지하여, 제어하기 어렵게 된 것이 마치 배가 부른 매를 제어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는 말이다.
주045)
뉘 : 누가. ‘·뉘(거성)’ ¶뉘 :  臣下ㅣ 王  太子ㅣ 져머 겨시니 뉘 기려뇨〈석상 3:3ㄱ〉 / 東으로 集壁에 니르며 西ㅅ 녀그로 梁洋히 묻노라 뉘 허리예 나 가졧뇨 胡와 다 羌이로다(東至集壁西梁洋 問誰腰鐮胡與羌)〈두시 4:31ㄴ〉.
주046)
가졧니오 : 가지고 있는가? 가지-[持]+어#잇-++니+고.
주047)
놋다 : 나는구나. -[飛]++오+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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