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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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명령[王命]


王命 주001)
왕명(王命)
이 시는 광덕(廣德) 원년(763) 늦가을 두보 52세 때 낭주(閬州)에서 지어진 것이다. 이때 송주(松州)는 토번(吐蕃)에게 포위당해 군사 상황이 위급했는데, 두보는 이 시를 지어 조정에서 뛰어난 장수를 보내줄 것을 간절하게 바란 내용이다. 왕명은 왕조의 명령을 말한다. 이 시에 대해 서지도의 반란을 이야기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命郭子儀야 禦吐蕃也ㅣ라】

왕명
(임금의 명령)
곽자의(郭子儀)에게 명령해 토번을 진압하라 하다.】

漢北 주002)
한북(漢北)
한수(漢水)의 상류. 이 해 7월 토번이 하농(河隴), 진주(秦州), 성주(成州), 위주(渭州) 등지를 함락시켰다. ‘한(漢)’이 ‘막(漠)’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豺狼 주003)
시랑(豺狼)
승냥이(늑대)와 이리.여기서는 토번을 가리킨다. 『용비어천가』에서는 야인(野人) 곧 여진(女眞)을 시랑(豺狼)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滿 巴西 주004)
파서(巴西)
파주의 서쪽이자 군(郡) 이름. 낭주(閬州)는 파서군(巴西郡)에 속했다.
道路難
주005)
한북시랑만 파서도로난(漢北豺狼滿 巴西道路難)
토번이 점령한 한북 지역은 이미 토번군이 득실거리고, 이에 따라 두보가 있는 낭주를 포함한 파서, 지역도 다니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다.
【漢北巴西 吐蕃의 入寇之地라】

北 녀긘 주006)
북(北) 녀긘
북녘에는. 북+녁+의+ㄴ.
豺狼이 주007)
시랑(豺狼)이
승냥이와 이리가. 『두시언해』에서는 안녹산의 반군이나 북방의 오랑캐를 시랑(豺狼)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다. ¶시랑(豺狼) : 翠華ㅣ 吳嶽애 렷고 螭虎ㅣ 豺狼 므놋다(翠華擁吳嶽 螭虎噉豺狼)〈두시 2:43ㄱ〉 / 豺狼ㅣ 길흘 마니 닐 사미 그첫고 烽火ㅣ 바 비취여시니 주거미 하도다(豺狼塞路人斷絕 烽火照夜屍縱橫)〈두시 2:62ㄴ〉 / 豺狼 都邑에 잇거 龍 해 잇니 王孫 貴 모 이대 安保라(豺狼在邑龍在野 王孫善保千金軀)〈두시 8:2ㄱ〉 / 豺狼 사호미 긋디 아니노소니 犬馬 나 쇽졀업시 뵈아놋다(數杯巫峽酒 百丈內江船)〈두시 8:46ㄴ〉 / 鸛鶴이 조차 로 다나 豺狼 바 어더셔 수다(鸛鶴追飛靜 豺狼得食喧)〈두시 14:23ㄱ〉 / 미 져거 고기와 새 바라 니고 히 여위니 豺狼 젼노라(心微傍魚鳥 肉瘦怯豺狼)〈두시 20:37ㄴ〉 / 올 드러 豺狼이 사호니 화래 허러 새 주으리놋다(入邑豺狼鬥 傷弓鳥雀饑)〈두시 20:54ㄱ〉 / 내콰 묏고 피 빗기 흐르고 豺狼이 붑괴여 서르 너흐놋다(川穀血橫流 豺狼沸相噬)〈두시 22:32ㄱ〉.
얫고 주008)
얫고
가득하여 있고. [滿]#-+아#잇-+고.
巴州ㅅ 西 녀긘 길히 어렵도다 주009)
길히 어렵도다
길이 어렵도다. 토번군이 점령하고 있어서, 다니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한자음】 한북시랑만 파서도로난【한북(漢北)과 파서(巴西)는 토번이 침략한 지점이다.】
【언해역】 한수 북쪽에는 시랑이 가득했고, 파주 서쪽에는 길이 어렵도다.

血埋 주010)
혈매(血埋)
피가 묻히다. 즉 당시에 토번과의 전투에서 많은 군사들이 희생되었음을 말한다.
諸將甲 骨斷 주011)
골단(骨斷)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뼈가 끊어질 것 같다. 즉 어지러운 전쟁 상황에서 사신들이 힘들게 수고하고 있음을 말한다. ‘신(臣)’은 ‘군(君)’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使臣鞍
주012)
혈매제장갑 골단사신안(血埋諸將甲 骨斷使臣鞍)
앞 구는 토번의 침략으로 장수들의 피가 부질없이 갑옷에 묻혔다는 것을 말하며, 뒤 구는 사신의 뼈가 안장에서 부러졌다. 즉 화친을 위해서 사신을 보내는 것이 무익하다는 말이다.
【時예 李之芳 주013)
이지방(李之芳)
?-768?. 당나라 종실의 후예. 어릴 때부터 영민했고, 5언시를 잘 지었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중에 시어사(侍御史)와 고부원외랑(庫部員外郞)을 지냈다. 천보(天寶) 초에 외직으로 나가 제주사마(齊州司馬)를 지냈다. 13년(754) 안녹산(安祿山)이 주청해 범양사마(范陽司馬)가 되었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스스로 사직하고 돌아왔는데, 우사낭중(右司郞中)이 되었다. 공부시랑(工夫侍郞)과 태자우서자(太子右庶子)를 지냈다. 숙종(肅宗) 건원(乾元) 원년(758) 황문시랑(黃門侍郞)으로 검남절도채방사(劍南節度采訪使)에 충원되었다. 대종(代宗) 고아덕(廣德) 원년(763) 토번(吐蕃)에 사신을 갔다가, 2년 동안 억류된 뒤 돌아올 수 있었다.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오르고, 얼마 뒤 태자빈객(太子賓客)으로 옮겼다. 대력(大曆) 초에 강릉(江陵)에 거주했고, 두보(杜甫)와도 시를 주고받았다.
等이 徃聘吐蕃야 被留不還니라】

피 諸將 甲애 주014)
제장(諸將) 갑(甲)애
여러 장수의 갑옷에. 피가 묻은 처소를 가리킨다.
무뎃고 주015)
무뎃고
묻혀 있고. 묻-[埋]+어#잇-+고.
 使臣 기르마애 주016)
사신(使臣) 기르마애
사신의 길마에. 뼈가 꺾여져 있는 장소를 가리킨다.
것겟도다 주017)
것겟도다
꺾여 있도다. -[折]+어#잇-+도+다.

【한자음】 혈매제장갑 골단사신안【그때 이지방(李之芳) 등이 토번에 사신으로 갔지만,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했다.】
【언해역】 피는 여러 장수의 갑옷에 묻혀 있고, 뼈는 사신의 안장에 꺾여 있도다!

牢落 주018)
뇌락(牢落)
①도량이 넓어서 작은 일에 구애(拘碍)하지 아니하는 모양. ②쓸쓸함. 또는 보잘것없이 황폐함. ③사이가 성김. 드문드문한 모양. ④고적(孤寂)함. 의지할 곳이 없음. 여기에서는 ②의 뜻으로 불에 탄 잔도의 처량하고, 황량한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③의 뜻으로 해석한 두시언해의 주석도 가능하다.
新燒棧 주019)
신소잔(新燒棧)
깊이 들어온 토번 군대를 저지하기 위해, 당나라 군대가 잔도(棧道)를 불태웠다.
주020)
뇌락신소잔(牢落新燒棧)
토번의 침략으로 대산관을 불태웠는데, 불탄 대산관이 황량하다는 말이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12ㄴ

주021)
창망(滄茫)
아득한 모양. 또는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언해에는 ‘아라도다’로 되어 있다. ¶아라다 : 蒼茫은 荒寂皃ㅣ니 아라 시라〈두시 1:1ㄱ-ㄴ〉 / 과 예 吳蜀ㅅ  아라니 로 소곰과 사 시러 相通놋다(風煙渺吳蜀 舟楫通鹽麻)〈두시 6:47ㄴ〉.
舊築壇 주022)
구축단(舊築壇)
곽자의(郭子儀)를 말한다. 곽자의는 오랫동안 칩거 중이었고, 고을도 이산되었는데, 이 해 10월 대종이 그를 부원수(副元帥)로 삼아 함양(咸陽)에 출진해 토번을 제어하게 했다. 그래서 병사를 모집해, 갑자기 진군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단을 쌓아 장수에 임명했는데, 곽자의를 주장(主將)에 임명했기 때문에 ‘구축단’이라 한 것이다.
주023)
창망축축단(蒼茫舊築壇)
토번의 침략이 급박한 상황에서 예전의 장수인 곽자의를 기용한 사실을 말한다.
【牢落 稀疎也ㅣ라 주024)
희소야(稀疎也)ㅣ라
‘희소(稀疎)’는 드물고 성긂. 영락(零落)함. 소원(疎遠)함을 말한다.
時예 吐蕃이 燒大散關 주025)
대산관(大散關)
관(關) 이름. 섬서(陝西) 보계(寶鷄) 서남쪽에 있는 대산령(大散嶺) 위에 있었다. 산관(散關)이라 불리기도 한다.
다 漢高 주026)
한고(漢高)
한 고조(漢高祖)를 줄인 말. 유방(劉邦)을 가리킨다.
ㅣ 築壇야 拜韓信 주027)
한신(韓信)
?-기원전 196. 전한 초기 회음(淮陰) 사람. 진이세(秦二世) 2년(기원전 208) 항량(項梁)과 항우(項羽)를 따라 낭중(郞中)이 되었지만, 중용되지 못했다. 한왕(漢王) 유방(劉邦)에게 망명하여, 연오(連敖)와 치속도위(治粟都尉)에 임명되었다. 소하(蕭何)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추천으로 대장군(大將軍)에 올랐다. 유방에게 동쪽으로 향해 천하를 도모할 것을 건의하고, 군대를 이끌고, 위(魏)와 대(代)를 격파한 뒤 연(燕)을 함락시키고, 제(齊)를 취했다. 한나라 4년(기원전 203) 상국(相國)에 임명되고, 다음 해 제왕(齊王)이 되었다. 이어 유방과 함께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포위해 죽였다. 전한이 성립되자 초왕(楚王)이 되고, 하비(下邳)에 도읍을 정했다. 그러나 한제국(漢帝國)의 권력이 확립되자 차차 밀려나, 누군가 그가 모반을 꾀한다고 고발하니 한고조(漢高祖, 劉邦)가 운몽(雲夢)으로 외유(外遊)를 나온 것처럼 꾸며 체포하고, 6년(기원전 201) 회음후(淮陰侯)로 강등되었다. 고조 10년(기원전 197) 진희(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몰래 내통하여 호응하려고 했는데 사인(舍人)이 그가 병사를 일으켜 여후(呂后)와 태자(太子)를 습격하려 한다고 고발해 버렸다. 여후와 상국 소하의 계략에 걸려 장락궁(長樂宮)으로 유인당한 뒤 살해당했다.
爲大將니 此 諷閑廢子儀 주028)
# 자의(郭儀)
곽자의.
也ㅣ라】

새려 주029)
새려
새로. 새-[新]+려. 참조 : 오히려.
블 브튼 주030)
블 브튼
불 붙은. ¶블 븥다 : 宗廟 블 브튼 서리예 가 우르시고 고 싀혀 샤 未央宮의셔 朝會 바시니라(哭廟灰燼中 鼻酸朝未央)〈두시 2:44ㄱ〉 / 隋氏ㅣ 宮室 머믈워 잇더니 블 브튜믄 엇뎨  뇨(隋氏留宮室 焚燒何太頻)〈두시 3:47ㄴ〉.
棧道 주031)
잔도(棧道)
절벽과 절벽 사이에 사다리처럼 높이 걸쳐놓은 다리. 또는 산골짜기나 절벽 같은 데에 널빤지를 사다리처럼 걸쳐서 만든 길로 아주 험한 길을 뜻한다. 대개 잔도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서의얫고 주032)
서의얫고
서늘하여 있고. ‘서의다’는 ‘서늘하다’는 뜻인데, 같은 뜻으로 ‘서의여다’도 있다. 단지 후자의 경우에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보인다. 또한 『두시언해』에는 ‘서의여다’가 다시 부사로 파생한 ‘서의여히’의 용례도 있다. ¶서의다 : 家業을 서의케 호  누 브트뇨〈남명 상:80ㄴ〉 / 工夫ㅣ 다가 흐워기  디위 고 서의히  디위 야 滋味 업슨  니르거든〈몽산 38ㄴ〉 / 花門을 마 모로미 머믈우시니 드르흔 장 서의리로다(花門既須留 原野轉蕭瑟)〈두시 4:14ㄱ〉 / 서의여다 : 山陰엣  새지비 江海예 이셔 나날 서의여 도다(山陰一茅宇 江海日凄凉)〈두시 3:59ㄱ〉 / 蕫先生 굽스러셔 셤기다소니 이제 와 내 오 서의여호라(東蒙赴舊隱 尙憶同志樂)〈두시 9:2ㄴ〉 / 녜로 오매 喪亂 맛나 賢聖이 다 서의여니라(古來遭喪亂 賢聖盡蕭索)〈두시 14:2ㄴ〉 / 치위옛 이리 이제 서의여니 人生앳 일도  처미 잇니라(寒事今牢落 人生亦有初)〈두시 16:73ㄴ〉 / 生涯ㅣ 마 서의여니 國步ㅣ 오히려 迍邅도다(生涯已寥落 國步乃迍邅)〈두시 20:7ㄴ〉 / 河西ㅅ 尉 외디 마로 서의여히 허리 것거 뇰 이 爲얘니라(不作河西尉 凄凉爲折腰)〈두시 3:22ㄱ〉 / 서의여히 뇨매 하과 히 크고 두루 흘러 뇨매 道術이 뷔도다(牢落乾坤大 周流道術空)〈두시 21:2ㄱ〉.
던 주033)
던
사르던. [燒]-+더+ㄴ. ¶다 : 아뫼나 이 觀世音菩薩ㅅ 일후믈 디니 사 큰 브레 드러도 브리  몯니 이 菩薩ㅅ 威神力 젼라(若有持是觀世音菩薩名者 設入大火야도 火ㅣ 不能燒리니 由是菩薩의 威神力故ㅣ라)〈석상 21:2ㄴ〉 / 巾拂에 옷곳 내 藥 디던 드트리 가텻고 階砌엔 예 丹砂 던 브리 주겟도다(巾拂香餘搗藥塵 階除灰死燒丹火)〈두시 9:5ㄴ〉.
壇場 주034)
단장(壇場)
단장(壇場)은. ‘단장(壇場)’은 옛날에 제사나 황위 계승, 회맹(會盟), 장군의 임명 등의 대전(大典)을 거행하던 장소를 말한다.
아라도다 주035)
아라도다
아스라하도다. 아라-[渺]+도+다. 중간본은 ‘아라도다’이다. ¶아라다 : 범 말인 막대 소리 虛空애 아라니 사홈 말이라(解虎錫 響遙空니 分鬬야)〈남명 상:69ㄴ〉 / 百年에 히 幽僻니 柴門이 아라고(百年地辟柴門迥)〈두시 22:7ㄴ〉 / 아라히 : 즈추므로브터 아라히 열  남거니 어느 날 니즈리오(自隔으로 杳逾十載어니 何日忘之리오)〈영가 하:108ㄱ〉 / 淮湖앳 賦稅ㅣ 아라히 차 오놋다(緬通淮湖稅)〈두시 22:32ㄴ〉.

【한자음】 뇌락신소잔 창망구축단【‘뇌락(牢落)’은 보잘것없이 황량한 것이다. 그때 토번이 대산관(大散關)을 불태웠다. 한나라 고조(高祖) 주036)
고조(高祖)
유방(劉邦, 기원전 256(247)-기원전 195). 전한의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02-기원전 195). 자는 계(季)이고, 묘호는 고조(高祖)며, 패(沛) 사람이다.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가업을 돌보지 않고 유협(遊俠)의 무리와 어울렸다. 한왕조는 진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여 중앙집권제를 채택했다. 왕조 건설에 공이 큰 장수와 부하를 제후왕(諸侯王)과 열후(列侯)로 봉했지만, 얼마 뒤 이들을 하나 둘 도태시키고 왕실 일족 출신으로 대체했다. 이후 제후왕은 한실 일족(漢室一族) 출신자에 한정된다는 불문율이 성립했다. 진나라 법률에 의거 한율구장(漢律九章)을 제정했다. 8년 동안 재위했다.
가 단을 쌓아 한신(韓信)을 대장으로 삼았으니, 이것은 곽자의를 파직한 것을 풍자한 것이다.】
【언해역】 새로 불 붙은 잔도(棧道)는 황량하여 있고, 옛날 쌓았던 단장(壇場)은 아스라하도다.

深懷喻蜀意 주037)
유촉의(喩蜀意)
한무제(漢武帝) 때 당몽(唐蒙)이 황명을 받아, 야랑(夜郞)과 소통하게 되어, 파촉(巴蜀)의 이졸(吏卒)을 징발해, 당지의 관민(官民)을 살육하니, 주민들이 많이 달아났다. 무제가 소식을 듣고, 사마상여를 보내 당몽을 견책하는 한편 파촉의 주민들에게도 당몽이 주민들을 괴롭힌 것은 조정의 뜻이 아닌 것을 밝혔다. 또한 이 구를 단자장(段子璋)의 반란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당시 단자장이 동천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서주절도사 최광원의 아장 화경정(花敬定)이 맞서 싸워, 단자장을 참수하였다. 그러나 그 후 화경정은 사람들의 손목을 잘라 금붙이를 취할 정도로 오만방자해져서, 파촉 지역의 인심이 흉흉해졌다. 화경정(花敬定)에 대해서는 『두시언해』 권5의 「희작화경가」를 참조할 것. 『두시언해』에서는 이 설을 취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한 무제 때의 일을 사용하여 지금의 조정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조처를 취해 줄 것을 바란 것이다.
주038)
심회유촉의(深懷喻蜀意)
촉지방의 백성에게 천자의 뜻을 고유(告諭)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慟哭 주039)
통곡(慟哭)
크게 슬퍼하며 울다.
王官 주040)
왕관(王官)
왕이 임명하여 파견한 관리. 여기서는 엄무(嚴武)를 가리킨다. ‘경만(京巒)’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41)
통곡망왕관(慟哭望王官)
왕의 명령이 베풀어져 촉지방의 위급한 상황을 구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司馬相如 주042)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기원전 117. 전한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 자는 장경(長卿)이고, 사부(辭賦)를 잘 지었다. 어렸을 때 독서와 검술을 좋아했으며, 전국시대의 인상여(藺相如)를 사모하여 자기의 이름을 상여로 바꾸었다. 임공(臨邛) 땅에서 탁왕손(卓王孫)의 딸인 탁문군(卓文君)과 만나, 성도(成都)로 달아나 혼인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처음에 경제(景帝)를 섬겨 무기상시(武騎常侍)가 되었는데, 병으로 사직했다. 양(梁)으로 와서 매승(枚乘)과 교유했다. 무제(武帝)에게 〈상림부(上林賦)〉를 지어 바쳤다. 이것을 읽고 재능이 있다고 여겨, 불러 낭(郞)으로 삼았다. 나중에 중랑장(中郞將)이 되고, 사신으로 서남이(西南夷)와 교섭하여 공을 세웠다. 효문원령(孝文園令)에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사임했다. 작품의 풍격이 다양하고 사조(詞藻)가 아름다웠으며, 한부(漢賦)의 제재와 묘사 방법을 보다 풍부하게 하여, 부체(賦體)를 한나라의 대표적 문학 형태로 자리하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 밖에 〈대인부(大人賦)〉가 있다.
ㅣ 作喩巴蜀 주043)
파촉(巴蜀)
중국 사천성(四川省)의 다른 이름. 두견새가 중국 촉(蜀)나라의 망제(望帝)의 죽은 넋이 붙어 되었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진한(秦漢)시대 때 설치된 파촉(巴蜀) 2군(郡)을 말하는데, 모두 사천성(四川省)에 있었다. 나중에 사천(四川)의 별칭(別稱)으로 쓰인다.
檄다 時예 巴蜀人이 陷於夷虜야 慟哭望王官之來救ㅣ니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알외욜 주044)
알외욜
알리. 알[知]-+오+이+오+ㄹ.
들 기피 주045)
기피
깊이. 깊-[深]+이.
노니 주046)
노니
생각하니. 라ᇰ[思]-++오+니.
셜워 주047)
셜워
서러워. 괴로워. 셟[苦]-+어.
우러셔 주048)
우러셔
울어서. 울[泣]-+어#시-+어.
王官 라다 주049)
라다
바란다. 원한다. 라-[願]++다. 15세기의 ‘라다’는 ‘원하다’와 ‘바라보다’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전자의 뜻으로 쓰였다. 예문은 앞의 주석을 참고할 것.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심회유촉의 통곡망왕관사마상여(司馬相如)는 「유파촉격(喩巴蜀檄)」을 지었다. 그때 파촉(巴蜀) 사람들이 오랑캐에게 함락되어, 왕의 관리들이 와서 구해주기를 바라며 통곡했다.】
【언해역】 알릴 뜻을 깊이 생각하니, 괴로워 울어서 왕의 관리를 바라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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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왕명(王命) : 이 시는 광덕(廣德) 원년(763) 늦가을 두보 52세 때 낭주(閬州)에서 지어진 것이다. 이때 송주(松州)는 토번(吐蕃)에게 포위당해 군사 상황이 위급했는데, 두보는 이 시를 지어 조정에서 뛰어난 장수를 보내줄 것을 간절하게 바란 내용이다. 왕명은 왕조의 명령을 말한다. 이 시에 대해 서지도의 반란을 이야기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주002)
한북(漢北) : 한수(漢水)의 상류. 이 해 7월 토번이 하농(河隴), 진주(秦州), 성주(成州), 위주(渭州) 등지를 함락시켰다. ‘한(漢)’이 ‘막(漠)’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03)
시랑(豺狼) : 승냥이(늑대)와 이리.여기서는 토번을 가리킨다. 『용비어천가』에서는 야인(野人) 곧 여진(女眞)을 시랑(豺狼)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주004)
파서(巴西) : 파주의 서쪽이자 군(郡) 이름. 낭주(閬州)는 파서군(巴西郡)에 속했다.
주005)
한북시랑만 파서도로난(漢北豺狼滿 巴西道路難) : 토번이 점령한 한북 지역은 이미 토번군이 득실거리고, 이에 따라 두보가 있는 낭주를 포함한 파서, 지역도 다니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뜻이다.
주006)
북(北) 녀긘 : 북녘에는. 북+녁+의+ㄴ.
주007)
시랑(豺狼)이 : 승냥이와 이리가. 『두시언해』에서는 안녹산의 반군이나 북방의 오랑캐를 시랑(豺狼)으로 표현한 부분이 많다. ¶시랑(豺狼) : 翠華ㅣ 吳嶽애 렷고 螭虎ㅣ 豺狼 므놋다(翠華擁吳嶽 螭虎噉豺狼)〈두시 2:43ㄱ〉 / 豺狼ㅣ 길흘 마니 닐 사미 그첫고 烽火ㅣ 바 비취여시니 주거미 하도다(豺狼塞路人斷絕 烽火照夜屍縱橫)〈두시 2:62ㄴ〉 / 豺狼 都邑에 잇거 龍 해 잇니 王孫 貴 모 이대 安保라(豺狼在邑龍在野 王孫善保千金軀)〈두시 8:2ㄱ〉 / 豺狼 사호미 긋디 아니노소니 犬馬 나 쇽졀업시 뵈아놋다(數杯巫峽酒 百丈內江船)〈두시 8:46ㄴ〉 / 鸛鶴이 조차 로 다나 豺狼 바 어더셔 수다(鸛鶴追飛靜 豺狼得食喧)〈두시 14:23ㄱ〉 / 미 져거 고기와 새 바라 니고 히 여위니 豺狼 젼노라(心微傍魚鳥 肉瘦怯豺狼)〈두시 20:37ㄴ〉 / 올 드러 豺狼이 사호니 화래 허러 새 주으리놋다(入邑豺狼鬥 傷弓鳥雀饑)〈두시 20:54ㄱ〉 / 내콰 묏고 피 빗기 흐르고 豺狼이 붑괴여 서르 너흐놋다(川穀血橫流 豺狼沸相噬)〈두시 22:32ㄱ〉.
주008)
얫고 : 가득하여 있고. [滿]#-+아#잇-+고.
주009)
길히 어렵도다 : 길이 어렵도다. 토번군이 점령하고 있어서, 다니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주010)
혈매(血埋) : 피가 묻히다. 즉 당시에 토번과의 전투에서 많은 군사들이 희생되었음을 말한다.
주011)
골단(骨斷) :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뼈가 끊어질 것 같다. 즉 어지러운 전쟁 상황에서 사신들이 힘들게 수고하고 있음을 말한다. ‘신(臣)’은 ‘군(君)’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12)
혈매제장갑 골단사신안(血埋諸將甲 骨斷使臣鞍) : 앞 구는 토번의 침략으로 장수들의 피가 부질없이 갑옷에 묻혔다는 것을 말하며, 뒤 구는 사신의 뼈가 안장에서 부러졌다. 즉 화친을 위해서 사신을 보내는 것이 무익하다는 말이다.
주013)
이지방(李之芳) : ?-768?. 당나라 종실의 후예. 어릴 때부터 영민했고, 5언시를 잘 지었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중에 시어사(侍御史)와 고부원외랑(庫部員外郞)을 지냈다. 천보(天寶) 초에 외직으로 나가 제주사마(齊州司馬)를 지냈다. 13년(754) 안녹산(安祿山)이 주청해 범양사마(范陽司馬)가 되었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스스로 사직하고 돌아왔는데, 우사낭중(右司郞中)이 되었다. 공부시랑(工夫侍郞)과 태자우서자(太子右庶子)를 지냈다. 숙종(肅宗) 건원(乾元) 원년(758) 황문시랑(黃門侍郞)으로 검남절도채방사(劍南節度采訪使)에 충원되었다. 대종(代宗) 고아덕(廣德) 원년(763) 토번(吐蕃)에 사신을 갔다가, 2년 동안 억류된 뒤 돌아올 수 있었다.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오르고, 얼마 뒤 태자빈객(太子賓客)으로 옮겼다. 대력(大曆) 초에 강릉(江陵)에 거주했고, 두보(杜甫)와도 시를 주고받았다.
주014)
제장(諸將) 갑(甲)애 : 여러 장수의 갑옷에. 피가 묻은 처소를 가리킨다.
주015)
무뎃고 : 묻혀 있고. 묻-[埋]+어#잇-+고.
주016)
사신(使臣) 기르마애 : 사신의 길마에. 뼈가 꺾여져 있는 장소를 가리킨다.
주017)
것겟도다 : 꺾여 있도다. -[折]+어#잇-+도+다.
주018)
뇌락(牢落) : ①도량이 넓어서 작은 일에 구애(拘碍)하지 아니하는 모양. ②쓸쓸함. 또는 보잘것없이 황폐함. ③사이가 성김. 드문드문한 모양. ④고적(孤寂)함. 의지할 곳이 없음. 여기에서는 ②의 뜻으로 불에 탄 잔도의 처량하고, 황량한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③의 뜻으로 해석한 두시언해의 주석도 가능하다.
주019)
신소잔(新燒棧) : 깊이 들어온 토번 군대를 저지하기 위해, 당나라 군대가 잔도(棧道)를 불태웠다.
주020)
뇌락신소잔(牢落新燒棧) : 토번의 침략으로 대산관을 불태웠는데, 불탄 대산관이 황량하다는 말이다.
주021)
창망(滄茫) : 아득한 모양. 또는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언해에는 ‘아라도다’로 되어 있다. ¶아라다 : 蒼茫은 荒寂皃ㅣ니 아라 시라〈두시 1:1ㄱ-ㄴ〉 / 과 예 吳蜀ㅅ  아라니 로 소곰과 사 시러 相通놋다(風煙渺吳蜀 舟楫通鹽麻)〈두시 6:47ㄴ〉.
주022)
구축단(舊築壇) : 곽자의(郭子儀)를 말한다. 곽자의는 오랫동안 칩거 중이었고, 고을도 이산되었는데, 이 해 10월 대종이 그를 부원수(副元帥)로 삼아 함양(咸陽)에 출진해 토번을 제어하게 했다. 그래서 병사를 모집해, 갑자기 진군하게 되었다. 옛날에는 단을 쌓아 장수에 임명했는데, 곽자의를 주장(主將)에 임명했기 때문에 ‘구축단’이라 한 것이다.
주023)
창망축축단(蒼茫舊築壇) : 토번의 침략이 급박한 상황에서 예전의 장수인 곽자의를 기용한 사실을 말한다.
주024)
희소야(稀疎也)ㅣ라 : ‘희소(稀疎)’는 드물고 성긂. 영락(零落)함. 소원(疎遠)함을 말한다.
주025)
대산관(大散關) : 관(關) 이름. 섬서(陝西) 보계(寶鷄) 서남쪽에 있는 대산령(大散嶺) 위에 있었다. 산관(散關)이라 불리기도 한다.
주026)
한고(漢高) : 한 고조(漢高祖)를 줄인 말. 유방(劉邦)을 가리킨다.
주027)
한신(韓信) : ?-기원전 196. 전한 초기 회음(淮陰) 사람. 진이세(秦二世) 2년(기원전 208) 항량(項梁)과 항우(項羽)를 따라 낭중(郞中)이 되었지만, 중용되지 못했다. 한왕(漢王) 유방(劉邦)에게 망명하여, 연오(連敖)와 치속도위(治粟都尉)에 임명되었다. 소하(蕭何)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추천으로 대장군(大將軍)에 올랐다. 유방에게 동쪽으로 향해 천하를 도모할 것을 건의하고, 군대를 이끌고, 위(魏)와 대(代)를 격파한 뒤 연(燕)을 함락시키고, 제(齊)를 취했다. 한나라 4년(기원전 203) 상국(相國)에 임명되고, 다음 해 제왕(齊王)이 되었다. 이어 유방과 함께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포위해 죽였다. 전한이 성립되자 초왕(楚王)이 되고, 하비(下邳)에 도읍을 정했다. 그러나 한제국(漢帝國)의 권력이 확립되자 차차 밀려나, 누군가 그가 모반을 꾀한다고 고발하니 한고조(漢高祖, 劉邦)가 운몽(雲夢)으로 외유(外遊)를 나온 것처럼 꾸며 체포하고, 6년(기원전 201) 회음후(淮陰侯)로 강등되었다. 고조 10년(기원전 197) 진희(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몰래 내통하여 호응하려고 했는데 사인(舍人)이 그가 병사를 일으켜 여후(呂后)와 태자(太子)를 습격하려 한다고 고발해 버렸다. 여후와 상국 소하의 계략에 걸려 장락궁(長樂宮)으로 유인당한 뒤 살해당했다.
주028)
# 자의(郭儀) : 곽자의.
주029)
새려 : 새로. 새-[新]+려. 참조 : 오히려.
주030)
블 브튼 : 불 붙은. ¶블 븥다 : 宗廟 블 브튼 서리예 가 우르시고 고 싀혀 샤 未央宮의셔 朝會 바시니라(哭廟灰燼中 鼻酸朝未央)〈두시 2:44ㄱ〉 / 隋氏ㅣ 宮室 머믈워 잇더니 블 브튜믄 엇뎨  뇨(隋氏留宮室 焚燒何太頻)〈두시 3:47ㄴ〉.
주031)
잔도(棧道) : 절벽과 절벽 사이에 사다리처럼 높이 걸쳐놓은 다리. 또는 산골짜기나 절벽 같은 데에 널빤지를 사다리처럼 걸쳐서 만든 길로 아주 험한 길을 뜻한다. 대개 잔도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주032)
서의얫고 : 서늘하여 있고. ‘서의다’는 ‘서늘하다’는 뜻인데, 같은 뜻으로 ‘서의여다’도 있다. 단지 후자의 경우에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보인다. 또한 『두시언해』에는 ‘서의여다’가 다시 부사로 파생한 ‘서의여히’의 용례도 있다. ¶서의다 : 家業을 서의케 호  누 브트뇨〈남명 상:80ㄴ〉 / 工夫ㅣ 다가 흐워기  디위 고 서의히  디위 야 滋味 업슨  니르거든〈몽산 38ㄴ〉 / 花門을 마 모로미 머믈우시니 드르흔 장 서의리로다(花門既須留 原野轉蕭瑟)〈두시 4:14ㄱ〉 / 서의여다 : 山陰엣  새지비 江海예 이셔 나날 서의여 도다(山陰一茅宇 江海日凄凉)〈두시 3:59ㄱ〉 / 蕫先生 굽스러셔 셤기다소니 이제 와 내 오 서의여호라(東蒙赴舊隱 尙憶同志樂)〈두시 9:2ㄴ〉 / 녜로 오매 喪亂 맛나 賢聖이 다 서의여니라(古來遭喪亂 賢聖盡蕭索)〈두시 14:2ㄴ〉 / 치위옛 이리 이제 서의여니 人生앳 일도  처미 잇니라(寒事今牢落 人生亦有初)〈두시 16:73ㄴ〉 / 生涯ㅣ 마 서의여니 國步ㅣ 오히려 迍邅도다(生涯已寥落 國步乃迍邅)〈두시 20:7ㄴ〉 / 河西ㅅ 尉 외디 마로 서의여히 허리 것거 뇰 이 爲얘니라(不作河西尉 凄凉爲折腰)〈두시 3:22ㄱ〉 / 서의여히 뇨매 하과 히 크고 두루 흘러 뇨매 道術이 뷔도다(牢落乾坤大 周流道術空)〈두시 21:2ㄱ〉.
주033)
던 : 사르던. [燒]-+더+ㄴ. ¶다 : 아뫼나 이 觀世音菩薩ㅅ 일후믈 디니 사 큰 브레 드러도 브리  몯니 이 菩薩ㅅ 威神力 젼라(若有持是觀世音菩薩名者 設入大火야도 火ㅣ 不能燒리니 由是菩薩의 威神力故ㅣ라)〈석상 21:2ㄴ〉 / 巾拂에 옷곳 내 藥 디던 드트리 가텻고 階砌엔 예 丹砂 던 브리 주겟도다(巾拂香餘搗藥塵 階除灰死燒丹火)〈두시 9:5ㄴ〉.
주034)
단장(壇場) : 단장(壇場)은. ‘단장(壇場)’은 옛날에 제사나 황위 계승, 회맹(會盟), 장군의 임명 등의 대전(大典)을 거행하던 장소를 말한다.
주035)
아라도다 : 아스라하도다. 아라-[渺]+도+다. 중간본은 ‘아라도다’이다. ¶아라다 : 범 말인 막대 소리 虛空애 아라니 사홈 말이라(解虎錫 響遙空니 分鬬야)〈남명 상:69ㄴ〉 / 百年에 히 幽僻니 柴門이 아라고(百年地辟柴門迥)〈두시 22:7ㄴ〉 / 아라히 : 즈추므로브터 아라히 열  남거니 어느 날 니즈리오(自隔으로 杳逾十載어니 何日忘之리오)〈영가 하:108ㄱ〉 / 淮湖앳 賦稅ㅣ 아라히 차 오놋다(緬通淮湖稅)〈두시 22:32ㄴ〉.
주036)
고조(高祖) : 유방(劉邦, 기원전 256(247)-기원전 195). 전한의 초대 황제(재위, 기원전 202-기원전 195). 자는 계(季)이고, 묘호는 고조(高祖)며, 패(沛) 사람이다.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가업을 돌보지 않고 유협(遊俠)의 무리와 어울렸다. 한왕조는 진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여 중앙집권제를 채택했다. 왕조 건설에 공이 큰 장수와 부하를 제후왕(諸侯王)과 열후(列侯)로 봉했지만, 얼마 뒤 이들을 하나 둘 도태시키고 왕실 일족 출신으로 대체했다. 이후 제후왕은 한실 일족(漢室一族) 출신자에 한정된다는 불문율이 성립했다. 진나라 법률에 의거 한율구장(漢律九章)을 제정했다. 8년 동안 재위했다.
주037)
유촉의(喩蜀意) : 한무제(漢武帝) 때 당몽(唐蒙)이 황명을 받아, 야랑(夜郞)과 소통하게 되어, 파촉(巴蜀)의 이졸(吏卒)을 징발해, 당지의 관민(官民)을 살육하니, 주민들이 많이 달아났다. 무제가 소식을 듣고, 사마상여를 보내 당몽을 견책하는 한편 파촉의 주민들에게도 당몽이 주민들을 괴롭힌 것은 조정의 뜻이 아닌 것을 밝혔다. 또한 이 구를 단자장(段子璋)의 반란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당시 단자장이 동천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서주절도사 최광원의 아장 화경정(花敬定)이 맞서 싸워, 단자장을 참수하였다. 그러나 그 후 화경정은 사람들의 손목을 잘라 금붙이를 취할 정도로 오만방자해져서, 파촉 지역의 인심이 흉흉해졌다. 화경정(花敬定)에 대해서는 『두시언해』 권5의 「희작화경가」를 참조할 것. 『두시언해』에서는 이 설을 취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한 무제 때의 일을 사용하여 지금의 조정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조처를 취해 줄 것을 바란 것이다.
주038)
심회유촉의(深懷喻蜀意) : 촉지방의 백성에게 천자의 뜻을 고유(告諭)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주039)
통곡(慟哭) : 크게 슬퍼하며 울다.
주040)
왕관(王官) : 왕이 임명하여 파견한 관리. 여기서는 엄무(嚴武)를 가리킨다. ‘경만(京巒)’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41)
통곡망왕관(慟哭望王官) : 왕의 명령이 베풀어져 촉지방의 위급한 상황을 구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주042)
사마상여(司馬相如) : 기원전 179-기원전 117. 전한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 자는 장경(長卿)이고, 사부(辭賦)를 잘 지었다. 어렸을 때 독서와 검술을 좋아했으며, 전국시대의 인상여(藺相如)를 사모하여 자기의 이름을 상여로 바꾸었다. 임공(臨邛) 땅에서 탁왕손(卓王孫)의 딸인 탁문군(卓文君)과 만나, 성도(成都)로 달아나 혼인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처음에 경제(景帝)를 섬겨 무기상시(武騎常侍)가 되었는데, 병으로 사직했다. 양(梁)으로 와서 매승(枚乘)과 교유했다. 무제(武帝)에게 〈상림부(上林賦)〉를 지어 바쳤다. 이것을 읽고 재능이 있다고 여겨, 불러 낭(郞)으로 삼았다. 나중에 중랑장(中郞將)이 되고, 사신으로 서남이(西南夷)와 교섭하여 공을 세웠다. 효문원령(孝文園令)에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사임했다. 작품의 풍격이 다양하고 사조(詞藻)가 아름다웠으며, 한부(漢賦)의 제재와 묘사 방법을 보다 풍부하게 하여, 부체(賦體)를 한나라의 대표적 문학 형태로 자리하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 밖에 〈대인부(大人賦)〉가 있다.
주043)
파촉(巴蜀) : 중국 사천성(四川省)의 다른 이름. 두견새가 중국 촉(蜀)나라의 망제(望帝)의 죽은 넋이 붙어 되었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진한(秦漢)시대 때 설치된 파촉(巴蜀) 2군(郡)을 말하는데, 모두 사천성(四川省)에 있었다. 나중에 사천(四川)의 별칭(別稱)으로 쓰인다.
주044)
알외욜 : 알리. 알[知]-+오+이+오+ㄹ.
주045)
기피 : 깊이. 깊-[深]+이.
주046)
노니 : 생각하니. 라ᇰ[思]-++오+니.
주047)
셜워 : 서러워. 괴로워. 셟[苦]-+어.
주048)
우러셔 : 울어서. 울[泣]-+어#시-+어.
주049)
라다 : 바란다. 원한다. 라-[願]++다. 15세기의 ‘라다’는 ‘원하다’와 ‘바라보다’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전자의 뜻으로 쓰였다. 예문은 앞의 주석을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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