深懷喻蜀意 주037) 유촉의(喩蜀意) 한무제(漢武帝) 때 당몽(唐蒙)이 황명을 받아, 야랑(夜郞)과 소통하게 되어, 파촉(巴蜀)의 이졸(吏卒)을 징발해, 당지의 관민(官民)을 살육하니, 주민들이 많이 달아났다. 무제가 소식을 듣고, 사마상여를 보내 당몽을 견책하는 한편 파촉의 주민들에게도 당몽이 주민들을 괴롭힌 것은 조정의 뜻이 아닌 것을 밝혔다. 또한 이 구를 단자장(段子璋)의 반란과 관련시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당시 단자장이 동천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서주절도사 최광원의 아장 화경정(花敬定)이 맞서 싸워, 단자장을 참수하였다. 그러나 그 후 화경정은 사람들의 손목을 잘라 금붙이를 취할 정도로 오만방자해져서, 파촉 지역의 인심이 흉흉해졌다. 화경정(花敬定)에 대해서는 『두시언해』 권5의 「희작화경가」를 참조할 것. 『두시언해』에서는 이 설을 취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한 무제 때의 일을 사용하여 지금의 조정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조처를 취해 줄 것을 바란 것이다.
주038) 심회유촉의(深懷喻蜀意) 촉지방의 백성에게 천자의 뜻을 고유(告諭)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慟哭 주039) 望王官 주040) 왕관(王官) 왕이 임명하여 파견한 관리. 여기서는 엄무(嚴武)를 가리킨다. ‘경만(京巒)’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41) 통곡망왕관(慟哭望王官) 왕의 명령이 베풀어져 촉지방의 위급한 상황을 구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司馬相如 주042) 사마상여(司馬相如) 기원전 179-기원전 117. 전한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 자는 장경(長卿)이고, 사부(辭賦)를 잘 지었다. 어렸을 때 독서와 검술을 좋아했으며, 전국시대의 인상여(藺相如)를 사모하여 자기의 이름을 상여로 바꾸었다. 임공(臨邛) 땅에서 탁왕손(卓王孫)의 딸인 탁문군(卓文君)과 만나, 성도(成都)로 달아나 혼인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처음에 경제(景帝)를 섬겨 무기상시(武騎常侍)가 되었는데, 병으로 사직했다. 양(梁)으로 와서 매승(枚乘)과 교유했다. 무제(武帝)에게 〈상림부(上林賦)〉를 지어 바쳤다. 이것을 읽고 재능이 있다고 여겨, 불러 낭(郞)으로 삼았다. 나중에 중랑장(中郞將)이 되고, 사신으로 서남이(西南夷)와 교섭하여 공을 세웠다. 효문원령(孝文園令)에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사임했다. 작품의 풍격이 다양하고 사조(詞藻)가 아름다웠으며, 한부(漢賦)의 제재와 묘사 방법을 보다 풍부하게 하여, 부체(賦體)를 한나라의 대표적 문학 형태로 자리하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 밖에 〈대인부(大人賦)〉가 있다.
ㅣ 作喩巴蜀 주043) 파촉(巴蜀) 중국 사천성(四川省)의 다른 이름. 두견새가 중국 촉(蜀)나라의 망제(望帝)의 죽은 넋이 붙어 되었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진한(秦漢)시대 때 설치된 파촉(巴蜀) 2군(郡)을 말하는데, 모두 사천성(四川省)에 있었다. 나중에 사천(四川)의 별칭(別稱)으로 쓰인다.
檄다 時예 巴蜀人이 陷於夷虜야 慟哭望王官之來救ㅣ니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蜀
알외욜 주044) 들
기피 주045) 노니 주046) 노니 생각하니. 라ᇰ[思]-++오+니.
셜워 주047) 우러셔 주048) 王官
라다 주049) 라다 바란다. 원한다. 라-[願]++다. 15세기의 ‘라다’는 ‘원하다’와 ‘바라보다’의 뜻이 있다. 여기서는 전자의 뜻으로 쓰였다. 예문은 앞의 주석을 참고할 것.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심회유촉의 통곡망왕관【사마상여(司馬相如)는 「유파촉격(喩巴蜀檄)」을 지었다. 그때 파촉(巴蜀) 사람들이 오랑캐에게 함락되어, 왕의 관리들이 와서 구해주기를 바라며 통곡했다.】
【언해역】 촉 알릴 뜻을 깊이 생각하니, 괴로워 울어서 왕의 관리를 바라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2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