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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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을 수복하고, 3수[収京三首]


収京三首 주001)
수경삼수(収京三首)
이 작품은 지덕(至德) 2년(757) 10월에 지어진 것인데, 그때 두보는 부주(涪州)에 있었다. 이 해 9월 관군이 장안(長安)을 수복했고, 10월에는 낙양(洛陽)을 수복했으며, 10월 28일 숙종(肅宗)이 장안에 들어왔으나 두보는 그 다음 달인 11월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장안과 낙양이 수복되자 두보는 기뻐할 수만은 없어, 이 시를 지어 지난 일들에 대해 깊이 애통해 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음을 노래했다. 이 시는 앞으로의 국사가 험난할 것을 전망하면서, 냉정하게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수경 삼수
(장안을 수복하고, 3수)

〈첫째 수〉 주002)
## 선장(仙仗)~방초(方初)
제1수는 장안을 수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안녹산의 반군에 의해 장안의 함락된 것부터 다시 장안을 수복하는 것까지를 노래한 것이다.

仙仗 주003)
선장(仙仗)
①신선(神仙)이 쓰는 의장(儀仗). ②황제(皇帝)의 의장(儀仗).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현종의 의장을 가리킨다.
丹極 주004)
단극(丹極)
궁전(宮殿) 안에 있는 붉은색 추녀.
妖星 주005)
요성(妖星)
요상한 별. 여기서는 안녹산(安祿山)을 가리킨다. 『안녹산사적(安祿山事迹)』에 “안녹산이 태어난 밤에 빛나는 요성 하나가 어머니 방에 떨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주006)
조(照)
비추다. ‘조(照)’는 ‘대(帶)’로 된 판본도 있다.
玉除 주007)
옥제(玉除)
①옥계(玉階). 옥석(玉石)을 써서 섬돌을 만들거나 장식한 계단. 또한 석계(石階)의 미칭(美稱). ②조정(朝廷)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궁궐의 계단을 가리킨다.
주008)
선장이단극 요성조옥제(仙仗離丹極 妖星照玉除)
현종이 장안을 떠나고 반군이 장안으로 들어왔음을 말하는 것으로 다시 장안과 낙양을 수복한 시점에서 옛일을 회상한 것이다.
【妖星 即彗孛 주009)
혜패(彗孛)
혜성(彗星). 곧 요성(妖星)을 말하며 불길한 징조를 상징했다. 혜성이 빛이 나고 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혜패는 고대 기록에 따르면, 꼬리가 없는 혜성을 일컬었는데, 긴 꼬리가 있는 것보다 더 큰 재난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혜패는 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전란(戰亂), 역병(疫病), 천재지변, 임금의 죽음, 나라의 흥망 등을 예고하는 별로 여겼다. 이것이 나타날 때에는 직언(直言)을 구하고, 대신(大臣)과 여러 재신(宰臣)들에게 명하여, 빈청(賓廳)에 모여 재앙을 그치게 하는 대책을 적어 올리게 했다. 또 성신(星辰)에게 초제(醮祭)를 지내기도 하고, 낮에는 민가에 연기가 솟지 못하도록 했고, 밤에는 불빛이 새 나가지 않도록 단속했다. 미성(尾星). 장성(長星). 추성(箒星).
이라 此 言賊이 陷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7ㄱ

京也ㅣ라】

仙仗이 丹極을 여희시니 주010)
여희시니
여희시니. 이별하시니. 떠났으니. 여희-[別]+시+니.
妖恠왼 주011)
요괴(妖恠)왼
요괴로운. 妖怪++은. ¶요괴(妖怪)다 : 妖怪 새 오거나〈석상 9:24ㄱ〉 / 北闕에 妖怪왼 氣運이 얫니 西郊앤  이슬 오 처미로다(北闕妖氛滿 西郊白露初)〈두시 8:48ㄴ〉.
벼리 玉除예 비취도다

【한자음】 선장이단극 요성조옥제【‘요성(妖星)’은 혜패(彗孛)라. 이것은 도적 떼가 장안을 함락한 것을 말한다.】
【언해역】 선장(仙仗)이 단극(丹極)을 떠났으니, 요괴로운 별이 옥제(玉除)를 비추도다.

須爲下殿走 주012)
하전주(下殿走)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양무제 대통(大通) 6년(532) 무제가 유언비어인 ‘화성이 남두에 들어가니, 천자가 궁전 아래로 달아났다.(滎惑入南斗 天子下殿走)’는 말을 들었다. 이때 발을 궁전 아래 내리고, 재앙이 없어지기를 기도했다.”는 말이 나온다. 즉 천자가 궁궐을 나와, 피난을 갔음을 말한다.
不可好樓居 주013)
호루거(好樓居)
누대에 거처를 두는 것을 좋아하다. 원래 선인이 누대에 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천자가 궁궐에 거처를 두는 것을 말한다.
주014)
수위하전주 불가호루거(須爲下殿走 不可好樓居)
이 구절은 ‘득비군도기(得非群盜起) 난작구중거(難作九重居)’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下殿走 避亂也ㅣ라 封禪書 주015)
봉선서(封禪書)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봉선(封禪)의 일을 기록한 유서(遺書). 봉선이란, 고대 중국에서, 흙을 쌓아 단(壇)을 만들어 하늘과 산천에 제사 지내던 일이다.
에 仙人이 好樓居ㅣ라니 此 比天子也ㅣ라】

모로매 주016)
모로매
모름지기.
殿에 려 주017)
전(殿)에 려
궁전에서 내려와. 리[下, 降]-+어.
롤 디라 주018)
롤 디라
달리는 것이다. [走]-+오+ㄹ +이+라. ¶다 : 舍利弗도 자내 毗沙門王이 외니 夜叉ㅣ 두리여 믈러 로려 다가〈석상 6:33ㄱ〉 / 門 여로니 햇 쥐 고 冊 흐로니 조미 랫도다(開門野鼠走 散帙壁魚乾)〈두시 3:30ㄴ〉.
됴 주019)
됴
좋은. 둏-[好]+. 〈중간본〉은 ‘好’이다.
樓에 사샤미 주020)
사샤미
사심이. 살[居]-+ᄋᆞ+시+오+ㅁ+이.
可티 아니니라 주021)
가(可)티 아니니라
가당하지 않다. 옳지 않다.

【한자음】 수위하전주 불가호루거【‘하전주(下殿走)’는 난리를 피하는 것이다. 『봉선서(封禪書)』에 “신선이 좋은 누대에 산다.”고 하니, 이것은 천자를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모름지기 궁전에서 내려와 달아난 것이라, 좋은 누대에 삶이 가당치 아니하니라.

주022)
잠(暫)
언해에는 ‘간’이라고 되어 있다. 장안을 빼앗긴 일이 잠깐 동안의 일임을 뜻한다.
汾陽 주023)
분양(汾陽)
분수(汾水)의 북쪽 지역. 춘추시대(春秋時代) 때는 진(晉)나라에 속했다.
주024)
굴분양가(屈汾陽駕)
『장자⋅소요유(逍遙游)』에, 요임금이 분수(汾水)의 북쪽, 막고야산(藐姑射山)에 있으면서 신인(神人)을 만난 뒤 그 마음이 세상 밖에서 멀리 노닐고, 자신의 천하를 잊고자 했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현종이 서쪽으로 촉(蜀) 땅에서 노닐면서, 나랏일을 포기한 것을 가리킨다.
주025)
잠굴분양가(暫屈汾陽駕)
일반적으로 요임금의 고사를 인용하여, 현종이 촉으로 행차하였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현종이 장차 다시 돌아올 것을 말한 것으로 보는 설도 있고, 숙종이 친히 정벌에 나선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聊飛燕將書 주026)
요비연장군(聊飛燕將軍)
『사기⋅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에 전국시대 때 연나라 장군이 제(齊)나라의 요성(聊城)을 공격해 점령하자, 요성 사람 중의 어떤 사람이 연나라에 참소하였다. 연나라 장수는 주살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요성을 굳게 지키고 돌아가지 못하고, 제나라에 투항하자니, 제나라 군사를 많이 죽이고, 포로로 삼은 것 때문에 항복하고 난 뒤의 일이 걱정이 되어서, 제 나라에 항복하지도 못하였다. 이런 중에 제나라가 역공을 펼쳤지만, 오랫동안 요성을 함락하지 못했다. 노중련(魯仲連)이 글을 써서 화살에 묶어 요성으로 날려 보냈는데, 요나라 장군이 글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죽는 것이 명예롭다고 판단하고, 결국 자살했다. 당나라 군대가 향적사(香積寺) 북쪽에서 대승을 거둔 뒤 위세를 크게 떨쳤는데, 반란군이 놀라 적장 엄장(嚴莊)이 항복하고, 사사명(史思明)도 귀순하였다. 이에 반란을 철저하게 종식시키려면, 노중련이 성안으로 글을 써서 날린 것처럼 간단히 반란군을 소탕하여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가서한이 낙양에 이르자, 안녹산이 명하여 편지로써 이광필 등을 부른 것이라는 설도 있다.
莊子 주027)
장자(莊子)
전국시대 말기의 철학자 장주(莊周)가 쓴 도가의 사상서. 장주에게 가탁(假託)하여, 『장자』라 명명한 것인 듯하다. 이 『장자』는 공자ㆍ맹자보다 노자와 함께 장자가 존중되기에 이르렀던 한대 초기에, 전국 말 이래의 도가의 논저(論著)를 부가하여 성립한 것으로서, 통일된 체계는 없지만, 도가 사상의 역사적 전개를 볼 수 있다.
주028)
요(堯)
?-?. 전설상의 원고(遠古) 시대 제왕. 이름은 방훈(放勳)이고, 부계(父系)는 씨족사회 후기 부족의 수령이었다. 처음에 도(陶)에서 살다가, 나중에 당(唐)으로 옮겨 살아, 도당씨(陶唐氏)로 불리며, 역사에서는 당요(唐堯)라 부른다. 관청을 설치해 시령(時令)을 관장하게 하고, 역법(曆法)을 정했다고 한다. 곤(鯀)에게 명령해 홍수를 다스리게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사악(四嶽)에 물어보아, 순(舜)을 선발하고 후계자로 정했다. 순의 행실을 3년 동안 지켜보다가, 순에게 섭정(攝政)하게 했다. 죽은 뒤 순이 자리를 이었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선양(禪讓)이라 부른다. 일설에는 요가 만년에 덕이 쇠하여, 순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지위를 빼앗겼다고도 한다.
ㅣ 徃見四子於汾水之陽이라니 此 比幸蜀다 燕將書 見四卷漁陽詩註니 주029)
연장서(燕將書) 견사권어양시주(見四卷漁陽詩註)니
『두시언해 권4』의 ‘어양(漁陽)’시의 ‘祿山이 北녁 雄武城을  녜 막던 히 敗야 치거든 그 營에 가리라 더니라 그를 야 燕엣 늘근 사 더브러 請問노니 오 나래 엇뎨 十萬 兵馬를 기들우리오(祿山北築雄武城 舊防敗走歸其營 繫書請問燕耆舊 今日何須十萬兵)’구에 달린 ‘안녹산이 범양에 웅무성을 쌓아 패주하면, 돌아와 안위를 보전하고자 하니 그 계획이 지극히 비밀스러웠으나,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 이는 안녹산의 일을 들어, 반란하는 이를 경계한 것이다. 『사기』에 연나라 장수가 성을 굳건히 지키면서, 항복하지 않으니 노중연이 화살에 글을 써서 묶어 성 안으로 쏘니, 이해를 입을 줄 알고 즉시 항복하니, 이는 반란자는 십만의 군사를 기다려 와서 평정하여 항복할 것을 기다리겠는가?’라는 주석을 말한다.
此 比賊之不勞平也ㅣ라】

간 汾陽애 車駕 구펴 가시고 주030)
구펴 가시고
굽혀 가시고. 원문은 ‘굴(屈)’이다. ‘정사를 펼치지 않고 천하를 잊는다’는 요임금의 고사를 인용하여 표현한 것이나 현종이 양귀비에 빠져, 결국 천하를 잃고, 촉으로 피난가게 된 것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주031)
구펴 가시고
굽혀 가시고. 굽[曲]-+히+어 가[去]-+시+고.
간 燕ㅅ 將軍의게 글워 주032)
글워
편지를. 글월+. ‘글월’은 일반적으로는 ‘글’을 말하나, 여기서는 ‘편지’를 뜻한다. ¶(편지) :  소리 어딋 글월 보내 그려기오 百丈은 뉘 집 여흘로 오 오(一聲何處送書鴈 百丈誰家上水船)〈두시 10:45ㄱ〉 / 다 리 녜 일즉 져근 길흘 아니 몃 디위 글월 보내야 潛隱 노 기들오거시니오(五馬舊曾諳小徑 幾回書劄待潛夫)〈두시 21:3ㄴ〉 / (글) : 凶 兵잠개로 農器 디오 講論시논 殿에 글월로 론 帳 펴고라(凶兵鑄農器 講殿闢書帷)〈두시 3:4ㄱ〉 / 親 버디  字ㅅ 글월도 업스니 늘거가매 외왼 옷 잇도다(親朋無一字 老去有孤舟)〈두시 14:13ㄴ〉.
여 주033)
여
날리어. [飛]-+이+어. ¶이다 : 東山 딕 노미 善友려 닐오 날 爲야 새 이면 내 됴히 이바도리라〈월석 22:54ㄱ〉 / 顚 〈두시 1:55ㄴ〉 沛 扶持요매 柱石외요 모다 기들우니 오아 안자셔 風霜 威嚴 이놋다(扶顚待柱石 獨坐飛風霜)〈두시 1:55ㄱ-ㄴ〉.
보내시니라

【한자음】 잠굴분양가 요비연장서【『장자(莊子)』에 요(堯)임금이 분수(汾水)의 북쪽에서 사자(四子)를 가 만났다고 하니, 이것은 촉 땅으로 떠난 것을 비유한다. ‘연장서(燕將書)’는 4권 「어양(漁陽)」 시주(詩註)에 보이니, 이것은 도적떼가 힘들이지 않고, 평정되리라는 비유다.】
【언해역】 잠깐 분양(汾陽)에서 어가를 굽혀 가시고, 잠깐 연나라 장군에게 편지를 날려 보내시니라.

依然 주034)
의연(依然)
강하고 과단성 있는 모습.
七廟略 주035)
칠묘략(七廟略)
묘략(廟略). 나라와 조정을 안정시키려는 중대한 계책. 칠묘는 주(周)나라 때의 천자의 종묘인데 곧 태조의 종묘와 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 오대조부, 육대조부를 말한다. 이 중 부, 증조부, 오대조부를 삼소(三昭)라 하고, 조부, 고조부, 육대조부를 삼목(三穆)이라 한다.
주036)
갱(更)
언해에는 ‘다시’로 되어 있으나, ‘경(更)’으로 보고 ‘바꾸다’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與萬方 주037)
초(初)
‘시작하다’라는 의미이다. 언해에는 ‘처 사리로다’로 되어 있다.
주038)
의연칠묘략 갱여만방초(依然七廟略 更與萬方初)
“칠묘(七廟)의 모략(謀略)이 변함없으니, 다시 만방(萬方)의 제후들과 함께 하는 처음이로다.”란 말이다.
【兵謀 謂之廟略 盖謀於七廟之中也ㅣ니라 此 言用廟略야 興復而與民更始也ㅣ라】

七廟앳 謀略이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7ㄴ

依然니 다시 萬方로 다야 주039)
다야
함께하여. 다[竝]#-+아. ‘다’은 일반적으로 ‘더불어, 함께’의 뜻으로 쓰이나 ‘그리고’의 뜻도 있다. ‘여(與)’의 번역어로 잘 쓰인다. 고려 석독구결에서는 ‘與’으로 쓰였다. ¶다 : 與 다 여 並 다 병〈광주천자문 40ㄱ〉 /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 며 狄과 다 戎의게 이슈미녀(中原有鬪爭 況在狄與戎)〈두시 5:29ㄴ〉 / (그리고) : 잇 아 어딜며 다 어료 엇뎨 그 매 거니오(有子賢與愚 何其掛懷抱)〈두시 3:58ㄴ〉.
처 사리로다 주040)
처 사리로다
처음 삼을 것이로다. 원시의 ‘初’에 대한 번역이다.

【한자음】 의연칠묘략 갱여만방초【군사적인 계략을 묘략이라 한 것은 대개 칠묘(七廟)의 가운데 전략을 논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묘략을 써서 부흥하여, 백성과 더불어 다시 시작할 것을 말한다.】
【언해역】 칠묘(七廟)의 모략(謀略)이 의연하니, 다시 만방(萬方)으로 함께하여 처음 삼으리로다.

〈둘째 수〉 주041)
## 생의(生意)~청소(靑霄)
제2수는 두보가 부주에서 장안이 수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 것이다.

生意 주042)
생의(生意)
살아가는 가운데. 언해에는 ‘사랫 데’로 되어 있다.
衰白 주043)
쇠백(衰白)
노쇠하여 머리가 희어지다. 언해에는 ‘늘거 셰요’로 되어 있다.
天涯正寂寥
주044)
생의감쇠백 천애정적료(生意甘衰白 天涯正寂寥)
“살아가는 뜻으로 늙고 머리 셈도 달게 여기노니, 하늘 끝에 와서도 고요하게 있노라.”란 말이다.

사랫 주045)
사랫
살아 있는. 살[居]-+아#잇-+.
데 늘거 셰요 주046)
늘거 셰요
늙어 셈을. 늙어 쇠약하여 머리가 셈을. 늙-[老]+어 셰-[白]+오+ㅁ+.
히 주047)
히
달게. -[甘]+히. ¶히 : 孔聖도 나조 주구믈 히 너기샤미 다 根源을 아샤 업디 아니 거시 잇논 고 미더 드틀와 왓 시르믈 벗고져 시논 젼라〈석상 20:12ㄱ〉 / 도게 뎌실 젯 시름을 도로혀 랑고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翻思在賊愁 甘受雜亂聒)〈두시 1:7ㄱ〉.
너기노니 하  와 正히 괴외히 주048)
괴외히
고요하게. 괴외[寂]#-+이.
잇노라

【한자음】 생의감쇠백 천애정적료
【언해역】 살아 있는 뜻에 늙어 머리 셈을 달게 여기노니, 하늘 가에 와 고요하게 있노라.

忽聞 주049)
홀문(忽聞)
숙종(肅宗)이 환도한 뒤 11월 임신일(壬申日)에 단봉루(丹鳳樓)에 가서 조서(詔書)를 내려 “일찍이 성훈(聖訓)을 이어받고 예경(禮經)을 읽어 의로움이 봉선(奉先)에 간절해 이겨내지 못할까 두려웠다.(早承聖訓 嘗讀禮經 義切奉先 恐不克荷)”는 제서를 내렸다.
哀痛 주050)
조(詔)
조서(詔書). 임금의 선포문이나 명령을 관료나 일반 백성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
주051)
애통조(哀痛詔)
슬퍼하는 조서. 숙종이 자신을 탓하면서, 지덕 2년(757)에 내린 조서.
又下 주052)
우하(又下)
다시 조서를 내리다. 이번에 내린 조서가 처음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전후 두 차례의 조서가 어떤 시기에 내려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주석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두시언해』에서는 이번에 내린 조서를 지덕 2년(757)에 내린 조서로 보았다.
聖明 주053)
성명(聖明)
①영명(英明)하고 성철(聖哲)해서 모르는 것이 없음. 봉건시대에 황제를 칭송하는 언사. ②황제의 대칭. 고명(高明)한 군주(君主). 또는 임금의 높고 밝은 덕(德).
주054)
홀문애통조 우하성명조(忽聞哀痛詔 又下聖明朝)
“문득 슬프고 아파하는 조서(詔書)가, 다시 성스럽고 밝은 조정에 내림을 듣도다!”란 말이다.
至德二載十二月에 주055)
지덕이재십이월(至德二載十二月)에
숙종이 장안을 수복하고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서를 내렸는데 그 시기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두시언해』의 주석가들은 이번에 내린 조서를 757년 12월에 내린 것으로 보았다.
下制大赦니 주056)
하제대사(下制大赦)니
조서를 내려 크게 사면을 하니.
此ㅣ 即下哀痛之詔ㅣ라】

忽然히 드로니 주057)
드로니
들으니. 듣[問]-+오+니. 화자를 가리키는 ‘오’가 있으므로, 두보 자신이 들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슬허 주058)
슬허
슬퍼하여. 슳[悲]-+어. 15세기 국어의 ‘슳다’는 동사이므로, ‘슬퍼’로 번역하기 보다는 ‘슬퍼하여’ 번역하는 것이 옳다. 참조. 슳다. 슳허다. 슬프다.
셜워시 주059)
셜워시
서러워하시는. 괴로워하시는. 15세기 국어의 ‘셜워다’는 현대국어의 ‘서러워하다’보다는 강도가 높아 ‘괴로워하다’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도 후자의 뜻으로 쓰였다.
詔書ㅣ 聖明朝애  리도다 주060)
 리도다
또 내리도다.  리[下]-+도+다. 이번의 조서가 두번째의 조서임을 말한다.

【한자음】 홀문애통조 우하성명조【지덕 2년(757년) 12월에 왕명을 내려 크게 사면하니, 이것이 곧 애통한 마음의 조서(詔書)를 내린 것이다.】
【언해역】 홀연히 들으니, 슬퍼 괴로워하시는 조서(詔書)가 성명(聖明)한 조정에 또 내리도다!

羽翼 주061)
우익(羽翼)
보필하는 사람.
주062)
회(懷)
생각하다. 언해에는 ‘고’로 되어 있다.
商老 주063)
상로(商老)
상산사호(商山四皓). 상산(商山)은 중국 산동성 환대현(桓臺縣) 동남 50리에 있는 산명(山名). 진(秦)나라 은사(隱士)인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기리계(綺里季), 각리선생(角里先生) 등 네 사람이 은둔하여 바둑을 두었는데, 모두 수염과 눈썹이 백색이기 때문에 호(皓)라 하였다. 진이 망한 다음 한 고조가 이들을 불렀는데, 출사하지 않았다.
文思 주064)
문사(文思)
아름다운 문채와 깊은 생각. 제왕(帝王)을 칭송하는데 쓰이는 말이다. 『서경⋅요전(堯典)』에, 요임금을 두고, ‘흠명문사(欽明文思)’라 했는데, 몸을 삼가는 것이 欽(흠), 이치에 환한 것이 ‘明(명)’, 문장이 빛나는 것이 ‘文(문)’, 생각이 깊은 것이 思(사)이다. 요임금은 이 네 가지를 갖추었다는 뜻이다. 요임금이 순(舜) 임금에게 선양(禪讓)한 것처럼 현종도 숙종에게 양위하였다.
帝堯 주065)
제요(帝堯)
중국의 요임금.
주066)
우익회상로 문사억제요(羽翼懷商老 文思憶帝堯)
“도울 만한 사람으로는 상산(商山)의 늙은이를 생각하고, 흠명문사하셨던 요임금을 생각하노라.”란 말이다.
裴冕 주067)
배면(裵冕)
?~770. 당나라 하중(河中) 하동(河東) 사람. 자는 장보(章甫)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초에 문음(門蔭)으로 위남현위(渭南縣尉)가 되었다. 어사중승(御史中丞) 왕홍(王鉷)이 재능을 알아보아, 거듭 승진하여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에 올랐다. 왕홍이 이림보(李林甫)에게 모함을 당하자, 홀로 글을 올려 왕홍을 위해 변호했다. 왕홍이 죽자 염장(斂葬)까지 치러 이로 인해 이름이 알려졌다.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 가서한(哥舒翰)이 발탁해 행군사마(行軍司馬)가 되고, 거듭 승진하여 원외낭중(員外郞中)이 되었다. 천보 15년(756) 안사(安史)의 난이 치열해지자 현종은 촉(蜀)으로 들어갔고, 그는 어사중승에 올랐다. 태자(太子) 이형(李亨)을 따라 영무(靈武)에 이르러, 두홍점(杜鴻漸) 등과 함께 태자에게 즉위를 권했고, 중서시랑(中書侍郞)으로 옮긴 뒤 재상으로 승진했다. 관작(官爵)을 팔고 승도(僧道)를 환속시켜, 군비를 충당할 것을 제안했다. 얼마 뒤 파면되어,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가 되었다. 대종(代宗) 대력(大曆) 중에 원재(元載)가 재상이 되자, 그를 천거해 동렬(同列)에 올랐다. 성격이 사치스럽고 외골수였는데, 스스로 두건을 만드는 일에 공을 들여,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모방하여, ‘복야건(僕射巾)’으로 불렸다.
等의 輔肅宗 주068)
숙종(肅宗)
711~762. 이형(李亨). 당나라의 황제(재위, 756-762). 현종(玄宗)의 세 번째 아들이다. 자세한 것은 앞의 주를 참조할 것.
이 猶四皓 주069)
사호(四皓)
상산사호(商山四皓). 상산(商山)은 중국 산동성 환대현(桓臺縣) 동남 50리에 있는 산명(山名). 진(秦)나라 은사(隱士)인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기리계(綺里季), 각리선생(角里先生) 등 네 사람이 은둔하여 바둑을 두었는데, 모두 수염과 눈썹이 백색이기 때문에 호(皓)라 하였다. 진이 망한 다음 한 고조가 이들을 불렀는데 출사하지 않았다.
 輔太子 주070)
태자(太子)
일반적으로 다음 왕권을 잇는 사람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특히 전한 고조의 아들을 가리킨다. 고종 유방이 태자를 폐하려고 했는데, 여후(呂后)가 유후(留侯)의 계책을 써서 사호(四皓)를 불러 태자를 돕게 하니, 마침내 고조가 태자를 폐하겠다는 논의를 거둬들였다고 한다.
ㅣ오 玄宗 주071)
현종(玄宗)
685~762. 당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 712-756). 본명은 이융기(李隆基)고, 예종(睿宗)의 셋째 아들이다. 명황(明皇)이라고도 부른다. 조모 측천무후(則天武后) 시대에 낙양(洛陽)에서 태어났고, 9살 때 임치왕(臨淄王)으로 봉해졌다. 26살 때 위후(韋后)가 딸 안락공주(安樂公主)와 짜고, 중종(中宗, 현종의 백부)을 암살, 중종의 아들 온왕(溫王)을 제위(帝位)에 앉히고 정권을 농단(壟斷)하기 위해, 현종의 아버지 상왕(相王)까지도 해치려 하였다. 심복 장병을 인솔, 위후와 안락공주 일당을 공격한 뒤 아버지를 제위에 옹립하고, 자신은 황태자가 되어 실권을 잡았고, 28살 때 마침내 아버지의 양위로 즉위했다. 당시 권세를 누린 태평공주(太平公主) 일파를 타도하여, 측천무후 이래 반세기에 걸친 부인의 정권 개입을 근절시킨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초기에는 정치를 잘해 개원(開元)과 천보(天寶) 시대 수십 년의 태평천하를 구가했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들자 정치를 등한시하고, 도교(道敎)에 빠져 막대한 국비를 소비했으며, 35살이나 연하인 양귀비(楊貴妃)를 궁내(宮內)로 끌어들인 뒤 정사를 포기하다시피 하여, 권신 이임보(李林甫)가 국정을 대신 맡아보았다. 천보 14년(755)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사천(四川)으로 난을 피해 가던 도중에 양귀비는 병사에게 살해되었다. 이듬해 아들 숙종(肅宗)에게 양위하고, 상황(上皇)으로 은거했는데,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뒤 죽었다. 특히 음악에 뛰어나 스스로 작곡까지 하면서, 이원(梨園)의 자제 남녀를 양성했다. 서예에도 능해 명필이라는 칭호를 들었다.
傳授 주072)
전수(傳授)
보통 학문이나 능력을 제자에게 가르쳐 물려주는 것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임금이 죽기 전에 덕이 있는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거나, 태자(太子)에게 미리 양위하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현종은 안녹산의 난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자책하는 뜻으로 숙종(肅宗)에게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었다.
ㅣ 猶堯 授 주073)
순(舜)
전설상 제왕(帝王)으로 5제(帝)의 한 사람. 성은 우(虞) 또는 유우씨(有虞氏)고, 이름은 중화(重華)다. 유덕(有德)한 성인으로서 선양(禪讓) 설화의 대표적 인물이며, 요(堯), 우(禹)와 병칭되고 있다.
이라 書堯典 주074)
서요전(書堯典)
『서경』의 「요전」. ‘요전’은 『서경』의 편 이름으로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선양(禪讓)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欽明文思 주075)
흠명문사(欽明文思)
요(堯)임금의 덕을 칭송하는 말인데, 흠(欽)은 심신을 삼가는 것이고, 명(明)은 이치에 밝은 것이며, 문(文)은 문장이 밖에서 빛나는 것이고, 사(思)는 생각이 깊은 것이다. 준철문명(濬哲文明)이라고도 한다.
ㅣ라다】

羽翼란 주076)
우익(羽翼)란
우익은. 우익+란. ‘-란’은 주로 선행어가 대조적 주제를 표현하는 기능이 있다. 『두시언해』에서는 단독으로 주제를 표시하는 기능과 대조적 주제를 표시하는 기능이 있다. 후자의 경우 다시 선행구와 후행구에 모두 ‘-란’이 나오는 경우와 그렇지 선행구에만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후자의 경우가 훨씬 우세하다. ¶(단독 주제) : 알 듣던 란 陶牧 오 도라보아 宜都 텨 가노라(前聞辨陶牧 轉眄拂宜都)〈두시 2:9ㄱ〉 / (대조적 기능) :  란 漢水ㅅ 우흘 고 서 란 峴山ㅅ 그 그려 노라(清思漢水上 凉憶峴山巔)〈두시 2:13ㄴ〉 / 棧道ㅣ 연 란 비스기 돌 避고 리 그츤  도혀 므 자 건너노라(棧懸斜避石 橋斷𨚫尋溪)〈두시 2:4ㄱ〉.
商山ㅅ 늘그닐 주077)
상산(商山)ㅅ 늘그닐
원시의 ‘상로(商老)’를 번역한 말로서 ‘상산사호(商山四皓)’를 가리킨다. ‘상산사호(商山四皓)’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을 참조할 것.
고 文思란 帝堯 思憶노라

【한자음】 우익회상로 문사억제요【배면(裴冕) 등이 숙종을 도운 것이 사호(四皓)가 태자를 도운 것과 같고, 현종의 전수(傳授)가 요임금의 순 임금에게 전수한 것과 같다. 『서경』 요전(堯典)에 흠명문사(欽明文思)라 했다.】
【언해역】 우익(羽翼)은 상산(商山)의 늙은이를 생각하고, 문사(文思)란 요임금을 생각하노라.

叨逢罪己 주078)
죄기(罪己)
자기를 탓하다. 여기서는 숙종이 자기 자신을 탓하는 조서를 내렸음을 말한다.
주079)
도봉죄기일(叨逢罪己日)
숙종이 자기 자신을 탓하는 조서를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두보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 것을 말한다.
霑洒 주080)
점쇄(霑洒)
눈물을 뿌리다. ‘쇄체(灑涕)’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望靑霄
주081)
점쇄망청소(霑洒望靑霄)
숙종이 자기를 탓하는 조서를 내렸으나,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눈물을 뿌린 것을 말한다.
【今見肅宗ㅅ 下詔責己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8ㄱ

샤 能自奮厲 주082)
분려(奮厲)
분발하여 최선을 다함.
고 ㅣ 仰望盛治也ㅣ라】

모 주083)
모
몸을. 자신을. 15세기 국어에서 ‘몸’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경우가 흔한데, 이것은 한문의 ‘신(身)’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과도 유사하다. 일종의 환유라고 볼 수 있다.
허믈시 나 叨濫히 주084)
도람(叨濫)히
외람되이. 도람(叨濫)은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남충(濫充)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남우충수(濫竽充數)의 준말로 거짓으로 쓸데없이 충원한 사람을 가리킨다.
맛나셔 주085)
맛나셔
만나서. 맞[逢]-+나[出]-+아#시-+어.
믈 려 주086)
려
뿌려. 리[灑]-+어. ¶리다 : 니러 西ㅅ녁 向야 合掌야 믈 리고 하 브르며 偈 지 블로〈월석 8:102ㄱ〉 / 아라 阮籍 길헤 다시 揚朱의 눈믈 리노라(衰顏偶一破 勝事難屢挹)〈두시 1:42ㄱ〉.
하 라노라 주087)
라노라
바라보노라. 라[望]-++오+라. 15세기 국어의 ‘라다’는 ‘바라보다’와 ‘원하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여기서는 전자로 쓰였다. 자세한 것은 앞의 주석을 참조할 것.

【한자음】 도봉죄기일 점쇄망청소【지금 숙종이 조서를 내려 자신을 책망하고, 능히 스스로 분려하는 것을 보고, 두보가 풍성한 다스림을 앙망한 것이다.】
【언해역】 자신을 허물하시는 날을 외람되이 만나서, 눈물 뿌려 하늘을 바라보노라.

〈셋째 수〉

汗馬 주088)
한마(汗馬)
땀 흘리는 말. 즉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말. 언해에는 ‘한(汗)’을 동사로 보아 ‘  내야’로 되어 있다.
収宮闕 春城 주089)
산(鏟)
깎아서 평평하게 하다. 언해에는 ‘갓가 리도다’로 되어 있다.
賊壕 주090)
적호(賊壕)
반군들이 만든 참호. 언해에는 ‘盜賊 城壕’로 되어 있다.
주091)
한마수궁궐 춘성산적호(汗馬收宮闕 春城鏟賊壕)
“말을 땀나도록 몰아쳐 궁궐을 수복하고, 봄이 온 성에서 도적의 성채를 무너뜨렸도다!”란 말이다.
【言諸將이 平賊而收復京師也ㅣ라】

  내야 宮闕을 收復고  城에 盜賊 城壕 갓가 리도다 주092)
갓가 리도다
깎어 버리도다. [刪]-+아 리-+도+다. 『두시언해』에서 ‘갓가 리다’는 모두 3번 쓰였는데, ‘鏟’의 번역으로 2번, ‘刮’의 번역으로 1번 쓰였다. ¶-어 리다 : 내  眞宰 罪 주고져 노니 덴 疊嶂 갓가 리고져 노라(吾將罪眞宰 意欲鏟疊嶂)〈두시 1:36ㄱ〉 / 大常 樓 지  소리 수워리니 兵事 므러 盜賊을 갓가 료리라 下牢로 건나놋다(太常樓船聲嗷嘈 問兵刮寇趨下牢)〈두시 16:55ㄱ〉 / 剋은 갓가 릴 씨라〈법화 2:6ㄱ〉 / 주글 거든 되야마  나 두 녁 그틀 갓가 료 곳구무 마 만야〈구간 2:69ㄴ〉 / 갓가 린 굽을 라  리 라 수유에 라 블근 헌 거싀 라 져제 브툐  두 번곰 라〈구간 7:73ㄴ〉.

【한자음】 한마수궁궐 춘성산적호【여러 장수들이 도적떼들을 평정하고, 경사(京師)를 수복한 것을 말한다.】
【언해역】 말을 땀 내어 궁궐을 수복하고, 봄의 성에 도적의 성채를 깎아 버리도다!

賞應歌枤杜 주093)
체두(枤杜)
『시경』 소아(小雅)의 작품 이름. 병역에서 돌아온 사람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개선(凱旋)을 축하하거나,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환영하는 뜻으로 쓰인다. 원시의 ‘枤杜(견두)’는 ‘杕杜(체두)’의 잘못인데 ‘枤’은 ‘杕’의 이체자일 가능성이 있다. 〈중간본〉에는 시 본문, 주석, 언해에 모두 ‘杕’로 되어 있는데, 통용자로 보인다.
歸及薦櫻桃 주094)
천앵도(薦櫻桃)
『월령(月令)』에 의하면, 중하(仲夏, 음력 5월)의 달에 천자가 조상의 침묘(寢廟)에 앵두를 바쳤다.
주095)
상응가체두 귀급천앵도(賞應歌杕杜 歸及薦櫻桃)
“공로를 치하함을 받자 위로하는 노래가 들리고, 귀환하자 과일을 묘당에 올린다.”는 말로, 군대의 노고에 대해 치하하고 종묘에 고하는 일이 여름철에 있었음을 뜻한다.
【詩枤杜 勞還役也ㅣ라 仲夏 주096)
중하(仲夏)
음력 5월의 다른 이름으로 한여름을 말한다.
애 櫻桃 薦𥨊廟 주097)
침묘(𥨊廟)
침(寢)과 묘(廟). 종묘의 앞 건물을 묘(廟)라 하고, 뒤의 건물을 침(寢)이라 한다. 묘에는 조상의 위패와 존상, 목주 등을 안치해 제사 지냈고, 침에는 의관과 궤장을 비치했다.
니 此 言賞勞將士而還京都 當及仲夏時也ㅣ라】

賞功샤매 다 주098)
다
응당. 원시의 ‘응(應)’에 대한 번역어이다.
枤杜 브르리로소니 주099)
브르리로소니
부를 것이니. 브르-[歌]+리+도+소+니. ¶브르다 : 여러 가짓 류 며 벽 티며 놀애 블러 讚嘆  殷重히 너기며〈월석 10:45ㄱ〉.
도라오샤 이랏 주100)
이랏
앵두. 『두시언해』의 여기에서만 나오는 유일례이다.
薦 저글 주101)
천(薦) 저글
올릴 적을. 올릴 때를.
미츠시리로다 주102)
미츠시리로다
미칠 것이도다. 및[及]-+리+도+다. ¶및다 : 迦陵頻伽  소배셔브터 됴 소리  새니 녀느 새소리 미츠리 업스며〈석상 3:32ㄴ〉 / 햇 門ㅅ 부체예 내 아 바 미츠니 내 菜圃ㅣ 나날 프르놋다(郊扉及我私 我圃日蒼翠)〈두시 12:19ㄱ〉.

【한자음】 상응가체두 귀급천앵도【『시경』 「체두(杕杜)」는 부역에서 돌아온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다. 한여름에 앵두를 침묘(寢廟)에 올리니, 이것은 장군과 병사들의 공로를 포상하고 경도(京都)에 돌아온 것이 한여름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언해역】 공로를 포상함에 응당 「체두(枤杜)」를 부를 것이니, 돌아오니 앵두를 올리는 때에 이르렀도다
(여름철이 되었구나)
!

雜虜橫戈 주103)
횡과(橫戈)
창을 가로로 잡다. 즉 전쟁하는 것을 가리킨다. 언해에는 ‘干戈ㅣ 빗구미’로 되어 있다.
數 功臣甲第 주104)
갑제(甲第)
가장 좋은 1급의 저택을 말한다.
주105)
잡로횡과삭 공신갑제고(雜虜橫戈數 功臣甲第高)
“오랑캐들이 거듭 공격해오지만, 이때 크게 공을 세워 크고 좋은 집에서 산다.”는 말로, 적의 침략에 공을 세운 신하들이 부위영화를 누린다는 뜻이다.
【雜虜 回紇 주106)
회흘(回紇)
수당(隋唐) 시대부터 몽고 및 감숙성 등지에서 약 1세기 동안 세력을 떨친 터키 계통의 부족인 위구르를 가리키는 말로, 회골(回鶻)이라고도 한다.
吐蕃 주107)
토번(吐蕃)
부족명. 또는 정권 이름. 7-9세기 티벳, 즉 청장(靑藏) 고원 일대에서 각 부족이 회맹하여, 노예 정권을 세웠다. 왕에 해당하는 사람을 찬보(贊普)라 하고, 찬보가 죽으면 순장했다. 유목과 정착생활을 겸했다. 629년 양동(羊同), 손파(孫波) 부족을 멸하고, 서장(西藏)을 통일했다. 이후 개력정책을 펴 관제와 법률을 정비하고, 문자를 창제했다. 안사(安史)의 난 뒤 당을 공격하여 서역 일대를 장악했으며, 당의 수도 장안(長安)을 함락시키기도 했다. 9세기 들어 통치집단이 분열하면서 세력이 와해되기 시작했고, 이후 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等이라 甲은 猶言甲乙次第오 주108)
유언갑을차제(猶言甲乙次第)오
갑, 을의 차례를 말하는 것과 같다.
第 宅也ㅣ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8ㄴ

니 謂第一之宅이라 此 言胡虜ㅣ 數亂니 功臣이 立功而取富貴也ㅣ라】

雜虜 干戈ㅣ 빗구미 주109)
간과(干戈)ㅣ 빗구미
창과 방패가 빗김이. 서로 부딪힘이. 즉 전쟁하는 것을 말한다.
니 주110)
니
잦으니. [數]-+니. ¶다 : 모미 凶며 障礙 하며 寃讎ㅣ 하며 病이 며 苦惱ㅣ자 범그러 機緘이 잇 야〈능엄 7:4ㄱ〉 / 隋氏ㅣ 宮室 머믈워 잇더니 블 브튜믄 엇뎨  뇨(隋氏留宮室 焚燒何太頻)〈두시 3:47ㄴ〉.
有功 臣下 甲第 놉도다

【한자음】 잡로횡과삭 공신갑제고【‘잡로(雜虜)’는 회흘과 토번 등이다. ‘갑’은 갑을(甲乙)의 순서를 말하는 것과 같고, ‘제(第)’는 저택이니 첫 번째 즉 제일 좋은 저택이다. 이것은 오랑캐들이 여러 차례 어지럽히니, 공신(功臣)이 공을 세워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말이다.】
【언해역】 오랑캐들의 창과 방패가 부딪힘이 잦으니, 공이 있는 신하의 저택이 높도다!

萬方 주111)
빈(頻)
자주. ‘동(同)’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送喜 주112)
송희(送喜)
기쁜 소식 즉 승전의 소식을 전하다. 언해에는 ‘깃보 보내니’로 되어 있다.
無乃聖躬 주113)
성궁(聖躬)
성스러운 몸. 즉 천자.
주114)
만방빈송희 무내성궁로(萬方頻送喜 無乃聖躬勞)
이 구절의 의미를 언해에서는 천자를 피로하게 만들지 말라는 의미로 보았으나, 이 모든 것이 임금의 공적임을 강조하는 의미로 보는 설도 있다. 제3수는 장안을 수복하고 나서의 뒷일 즉 회흘이 전공을 믿고 지나치게 보상을 요구할 것과 여러 장수들이 지나치게 사치를 즐겨 정도를 넘길까 봐 걱정한 것이다.
주115)
만방빈송희 무내성궁로(萬方頻送喜 無乃聖躬勞)
“사방에서 승리를 기뻐하는 반가움을 전해오는데, 다시는 천자를 수고롭게 함이 없어야겠다.”는 말로, 천자의 노고를 기억하고, 신하들도 방종해서는 안 됨을 암시적으로 노래했다.
【送喜 言獻捷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萬方이 조 주116)
조
자주. [數]-+오. ‘오’는 부사파생접미사이다. ¶조 : 太子ㅣ 조 王 出家야지다 거시(太子屢以出家心白父王)〈석상 3:23ㄱ〉 / 鍾鼎에 사교 조 보노니 眞實로 北斗ㅅ 벼 法 바도미 맛니라(數見銘鍾鼎 眞宜法斗魁)〈두시 3:10ㄴ〉.
깃보 주117)
깃보
기쁨을. 깃[喜]-+브+오+ㅁ+. ‘깃브다’는 ‘다’에 형용사파생접미사 ‘-브-’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파생형용사 ‘깃브다’의 명사형인데, 사용례는 여기서만 확인된다.
보내니 아니 님금 모미 신가 주118)
신가
수고로운신가? -[疲]+시+ㄴ+가. ¶다 : 耶輸는 前生애 어마님과  가시다가 길 머러 실 보기 야 자내 지믈 어마님 맛디시고 부러 디여 여슷 里 가시니〈석상 3:37ㄴ〉 / 가락 오락 호매 안며 누우믈 섯거 호니 사과 와 가지로 며 잇브도다(往來雜坐臥 人馬同疲勞)〈두시 1:30ㄴ〉.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만방빈송희 무내성궁로【‘송희(送喜)’는 승리를 바친다는 말이다.】
【언해역】 만방(萬方)이 자주 기쁨을 보내니, 임금의 몸이 수고롭지 아니한가?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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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수경삼수(収京三首) : 이 작품은 지덕(至德) 2년(757) 10월에 지어진 것인데, 그때 두보는 부주(涪州)에 있었다. 이 해 9월 관군이 장안(長安)을 수복했고, 10월에는 낙양(洛陽)을 수복했으며, 10월 28일 숙종(肅宗)이 장안에 들어왔으나 두보는 그 다음 달인 11월에 장안으로 돌아왔다. 장안과 낙양이 수복되자 두보는 기뻐할 수만은 없어, 이 시를 지어 지난 일들에 대해 깊이 애통해 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었음을 노래했다. 이 시는 앞으로의 국사가 험난할 것을 전망하면서, 냉정하게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주002)
## 선장(仙仗)~방초(方初) : 제1수는 장안을 수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면서, 안녹산의 반군에 의해 장안의 함락된 것부터 다시 장안을 수복하는 것까지를 노래한 것이다.
주003)
선장(仙仗) : ①신선(神仙)이 쓰는 의장(儀仗). ②황제(皇帝)의 의장(儀仗).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현종의 의장을 가리킨다.
주004)
단극(丹極) : 궁전(宮殿) 안에 있는 붉은색 추녀.
주005)
요성(妖星) : 요상한 별. 여기서는 안녹산(安祿山)을 가리킨다. 『안녹산사적(安祿山事迹)』에 “안녹산이 태어난 밤에 빛나는 요성 하나가 어머니 방에 떨어졌다.”는 말이 나온다.
주006)
조(照) : 비추다. ‘조(照)’는 ‘대(帶)’로 된 판본도 있다.
주007)
옥제(玉除) : ①옥계(玉階). 옥석(玉石)을 써서 섬돌을 만들거나 장식한 계단. 또한 석계(石階)의 미칭(美稱). ②조정(朝廷)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궁궐의 계단을 가리킨다.
주008)
선장이단극 요성조옥제(仙仗離丹極 妖星照玉除) : 현종이 장안을 떠나고 반군이 장안으로 들어왔음을 말하는 것으로 다시 장안과 낙양을 수복한 시점에서 옛일을 회상한 것이다.
주009)
혜패(彗孛) : 혜성(彗星). 곧 요성(妖星)을 말하며 불길한 징조를 상징했다. 혜성이 빛이 나고 긴 꼬리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혜패는 고대 기록에 따르면, 꼬리가 없는 혜성을 일컬었는데, 긴 꼬리가 있는 것보다 더 큰 재난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 혜패는 고대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전란(戰亂), 역병(疫病), 천재지변, 임금의 죽음, 나라의 흥망 등을 예고하는 별로 여겼다. 이것이 나타날 때에는 직언(直言)을 구하고, 대신(大臣)과 여러 재신(宰臣)들에게 명하여, 빈청(賓廳)에 모여 재앙을 그치게 하는 대책을 적어 올리게 했다. 또 성신(星辰)에게 초제(醮祭)를 지내기도 하고, 낮에는 민가에 연기가 솟지 못하도록 했고, 밤에는 불빛이 새 나가지 않도록 단속했다. 미성(尾星). 장성(長星). 추성(箒星).
주010)
여희시니 : 여희시니. 이별하시니. 떠났으니. 여희-[別]+시+니.
주011)
요괴(妖恠)왼 : 요괴로운. 妖怪++은. ¶요괴(妖怪)다 : 妖怪 새 오거나〈석상 9:24ㄱ〉 / 北闕에 妖怪왼 氣運이 얫니 西郊앤  이슬 오 처미로다(北闕妖氛滿 西郊白露初)〈두시 8:48ㄴ〉.
주012)
하전주(下殿走) :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양무제 대통(大通) 6년(532) 무제가 유언비어인 ‘화성이 남두에 들어가니, 천자가 궁전 아래로 달아났다.(滎惑入南斗 天子下殿走)’는 말을 들었다. 이때 발을 궁전 아래 내리고, 재앙이 없어지기를 기도했다.”는 말이 나온다. 즉 천자가 궁궐을 나와, 피난을 갔음을 말한다.
주013)
호루거(好樓居) : 누대에 거처를 두는 것을 좋아하다. 원래 선인이 누대에 거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여기서는 천자가 궁궐에 거처를 두는 것을 말한다.
주014)
수위하전주 불가호루거(須爲下殿走 不可好樓居) : 이 구절은 ‘득비군도기(得非群盜起) 난작구중거(難作九重居)’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15)
봉선서(封禪書) :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봉선(封禪)의 일을 기록한 유서(遺書). 봉선이란, 고대 중국에서, 흙을 쌓아 단(壇)을 만들어 하늘과 산천에 제사 지내던 일이다.
주016)
모로매 : 모름지기.
주017)
전(殿)에 려 : 궁전에서 내려와. 리[下, 降]-+어.
주018)
롤 디라 : 달리는 것이다. [走]-+오+ㄹ +이+라. ¶다 : 舍利弗도 자내 毗沙門王이 외니 夜叉ㅣ 두리여 믈러 로려 다가〈석상 6:33ㄱ〉 / 門 여로니 햇 쥐 고 冊 흐로니 조미 랫도다(開門野鼠走 散帙壁魚乾)〈두시 3:30ㄴ〉.
주019)
됴 : 좋은. 둏-[好]+. 〈중간본〉은 ‘好’이다.
주020)
사샤미 : 사심이. 살[居]-+ᄋᆞ+시+오+ㅁ+이.
주021)
가(可)티 아니니라 : 가당하지 않다. 옳지 않다.
주022)
잠(暫) : 언해에는 ‘간’이라고 되어 있다. 장안을 빼앗긴 일이 잠깐 동안의 일임을 뜻한다.
주023)
분양(汾陽) : 분수(汾水)의 북쪽 지역. 춘추시대(春秋時代) 때는 진(晉)나라에 속했다.
주024)
굴분양가(屈汾陽駕) : 『장자⋅소요유(逍遙游)』에, 요임금이 분수(汾水)의 북쪽, 막고야산(藐姑射山)에 있으면서 신인(神人)을 만난 뒤 그 마음이 세상 밖에서 멀리 노닐고, 자신의 천하를 잊고자 했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현종이 서쪽으로 촉(蜀) 땅에서 노닐면서, 나랏일을 포기한 것을 가리킨다.
주025)
잠굴분양가(暫屈汾陽駕) : 일반적으로 요임금의 고사를 인용하여, 현종이 촉으로 행차하였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현종이 장차 다시 돌아올 것을 말한 것으로 보는 설도 있고, 숙종이 친히 정벌에 나선 것으로 보는 설도 있다.
주026)
요비연장군(聊飛燕將軍) : 『사기⋅노중련추양열전(魯仲連鄒陽列傳)』에 전국시대 때 연나라 장군이 제(齊)나라의 요성(聊城)을 공격해 점령하자, 요성 사람 중의 어떤 사람이 연나라에 참소하였다. 연나라 장수는 주살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요성을 굳게 지키고 돌아가지 못하고, 제나라에 투항하자니, 제나라 군사를 많이 죽이고, 포로로 삼은 것 때문에 항복하고 난 뒤의 일이 걱정이 되어서, 제 나라에 항복하지도 못하였다. 이런 중에 제나라가 역공을 펼쳤지만, 오랫동안 요성을 함락하지 못했다. 노중련(魯仲連)이 글을 써서 화살에 묶어 요성으로 날려 보냈는데, 요나라 장군이 글을 읽고,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죽는 것이 명예롭다고 판단하고, 결국 자살했다. 당나라 군대가 향적사(香積寺) 북쪽에서 대승을 거둔 뒤 위세를 크게 떨쳤는데, 반란군이 놀라 적장 엄장(嚴莊)이 항복하고, 사사명(史思明)도 귀순하였다. 이에 반란을 철저하게 종식시키려면, 노중련이 성안으로 글을 써서 날린 것처럼 간단히 반란군을 소탕하여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가서한이 낙양에 이르자, 안녹산이 명하여 편지로써 이광필 등을 부른 것이라는 설도 있다.
주027)
장자(莊子) : 전국시대 말기의 철학자 장주(莊周)가 쓴 도가의 사상서. 장주에게 가탁(假託)하여, 『장자』라 명명한 것인 듯하다. 이 『장자』는 공자ㆍ맹자보다 노자와 함께 장자가 존중되기에 이르렀던 한대 초기에, 전국 말 이래의 도가의 논저(論著)를 부가하여 성립한 것으로서, 통일된 체계는 없지만, 도가 사상의 역사적 전개를 볼 수 있다.
주028)
요(堯) : ?-?. 전설상의 원고(遠古) 시대 제왕. 이름은 방훈(放勳)이고, 부계(父系)는 씨족사회 후기 부족의 수령이었다. 처음에 도(陶)에서 살다가, 나중에 당(唐)으로 옮겨 살아, 도당씨(陶唐氏)로 불리며, 역사에서는 당요(唐堯)라 부른다. 관청을 설치해 시령(時令)을 관장하게 하고, 역법(曆法)을 정했다고 한다. 곤(鯀)에게 명령해 홍수를 다스리게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사악(四嶽)에 물어보아, 순(舜)을 선발하고 후계자로 정했다. 순의 행실을 3년 동안 지켜보다가, 순에게 섭정(攝政)하게 했다. 죽은 뒤 순이 자리를 이었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선양(禪讓)이라 부른다. 일설에는 요가 만년에 덕이 쇠하여, 순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지위를 빼앗겼다고도 한다.
주029)
연장서(燕將書) 견사권어양시주(見四卷漁陽詩註)니 : 『두시언해 권4』의 ‘어양(漁陽)’시의 ‘祿山이 北녁 雄武城을  녜 막던 히 敗야 치거든 그 營에 가리라 더니라 그를 야 燕엣 늘근 사 더브러 請問노니 오 나래 엇뎨 十萬 兵馬를 기들우리오(祿山北築雄武城 舊防敗走歸其營 繫書請問燕耆舊 今日何須十萬兵)’구에 달린 ‘안녹산이 범양에 웅무성을 쌓아 패주하면, 돌아와 안위를 보전하고자 하니 그 계획이 지극히 비밀스러웠으나,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다. 이는 안녹산의 일을 들어, 반란하는 이를 경계한 것이다. 『사기』에 연나라 장수가 성을 굳건히 지키면서, 항복하지 않으니 노중연이 화살에 글을 써서 묶어 성 안으로 쏘니, 이해를 입을 줄 알고 즉시 항복하니, 이는 반란자는 십만의 군사를 기다려 와서 평정하여 항복할 것을 기다리겠는가?’라는 주석을 말한다.
주030)
구펴 가시고 : 굽혀 가시고. 원문은 ‘굴(屈)’이다. ‘정사를 펼치지 않고 천하를 잊는다’는 요임금의 고사를 인용하여 표현한 것이나 현종이 양귀비에 빠져, 결국 천하를 잃고, 촉으로 피난가게 된 것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주031)
구펴 가시고 : 굽혀 가시고. 굽[曲]-+히+어 가[去]-+시+고.
주032)
글워 : 편지를. 글월+. ‘글월’은 일반적으로는 ‘글’을 말하나, 여기서는 ‘편지’를 뜻한다. ¶(편지) :  소리 어딋 글월 보내 그려기오 百丈은 뉘 집 여흘로 오 오(一聲何處送書鴈 百丈誰家上水船)〈두시 10:45ㄱ〉 / 다 리 녜 일즉 져근 길흘 아니 몃 디위 글월 보내야 潛隱 노 기들오거시니오(五馬舊曾諳小徑 幾回書劄待潛夫)〈두시 21:3ㄴ〉 / (글) : 凶 兵잠개로 農器 디오 講論시논 殿에 글월로 론 帳 펴고라(凶兵鑄農器 講殿闢書帷)〈두시 3:4ㄱ〉 / 親 버디  字ㅅ 글월도 업스니 늘거가매 외왼 옷 잇도다(親朋無一字 老去有孤舟)〈두시 14:13ㄴ〉.
주033)
여 : 날리어. [飛]-+이+어. ¶이다 : 東山 딕 노미 善友려 닐오 날 爲야 새 이면 내 됴히 이바도리라〈월석 22:54ㄱ〉 / 顚 〈두시 1:55ㄴ〉 沛 扶持요매 柱石외요 모다 기들우니 오아 안자셔 風霜 威嚴 이놋다(扶顚待柱石 獨坐飛風霜)〈두시 1:55ㄱ-ㄴ〉.
주034)
의연(依然) : 강하고 과단성 있는 모습.
주035)
칠묘략(七廟略) : 묘략(廟略). 나라와 조정을 안정시키려는 중대한 계책. 칠묘는 주(周)나라 때의 천자의 종묘인데 곧 태조의 종묘와 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 오대조부, 육대조부를 말한다. 이 중 부, 증조부, 오대조부를 삼소(三昭)라 하고, 조부, 고조부, 육대조부를 삼목(三穆)이라 한다.
주036)
갱(更) : 언해에는 ‘다시’로 되어 있으나, ‘경(更)’으로 보고 ‘바꾸다’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주037)
초(初) : ‘시작하다’라는 의미이다. 언해에는 ‘처 사리로다’로 되어 있다.
주038)
의연칠묘략 갱여만방초(依然七廟略 更與萬方初) : “칠묘(七廟)의 모략(謀略)이 변함없으니, 다시 만방(萬方)의 제후들과 함께 하는 처음이로다.”란 말이다.
주039)
다야 : 함께하여. 다[竝]#-+아. ‘다’은 일반적으로 ‘더불어, 함께’의 뜻으로 쓰이나 ‘그리고’의 뜻도 있다. ‘여(與)’의 번역어로 잘 쓰인다. 고려 석독구결에서는 ‘與’으로 쓰였다. ¶다 : 與 다 여 並 다 병〈광주천자문 40ㄱ〉 /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 며 狄과 다 戎의게 이슈미녀(中原有鬪爭 況在狄與戎)〈두시 5:29ㄴ〉 / (그리고) : 잇 아 어딜며 다 어료 엇뎨 그 매 거니오(有子賢與愚 何其掛懷抱)〈두시 3:58ㄴ〉.
주040)
처 사리로다 : 처음 삼을 것이로다. 원시의 ‘初’에 대한 번역이다.
주041)
## 생의(生意)~청소(靑霄) : 제2수는 두보가 부주에서 장안이 수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 것이다.
주042)
생의(生意) : 살아가는 가운데. 언해에는 ‘사랫 데’로 되어 있다.
주043)
쇠백(衰白) : 노쇠하여 머리가 희어지다. 언해에는 ‘늘거 셰요’로 되어 있다.
주044)
생의감쇠백 천애정적료(生意甘衰白 天涯正寂寥) : “살아가는 뜻으로 늙고 머리 셈도 달게 여기노니, 하늘 끝에 와서도 고요하게 있노라.”란 말이다.
주045)
사랫 : 살아 있는. 살[居]-+아#잇-+.
주046)
늘거 셰요 : 늙어 셈을. 늙어 쇠약하여 머리가 셈을. 늙-[老]+어 셰-[白]+오+ㅁ+.
주047)
히 : 달게. -[甘]+히. ¶히 : 孔聖도 나조 주구믈 히 너기샤미 다 根源을 아샤 업디 아니 거시 잇논 고 미더 드틀와 왓 시르믈 벗고져 시논 젼라〈석상 20:12ㄱ〉 / 도게 뎌실 젯 시름을 도로혀 랑고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翻思在賊愁 甘受雜亂聒)〈두시 1:7ㄱ〉.
주048)
괴외히 : 고요하게. 괴외[寂]#-+이.
주049)
홀문(忽聞) : 숙종(肅宗)이 환도한 뒤 11월 임신일(壬申日)에 단봉루(丹鳳樓)에 가서 조서(詔書)를 내려 “일찍이 성훈(聖訓)을 이어받고 예경(禮經)을 읽어 의로움이 봉선(奉先)에 간절해 이겨내지 못할까 두려웠다.(早承聖訓 嘗讀禮經 義切奉先 恐不克荷)”는 제서를 내렸다.
주050)
조(詔) : 조서(詔書). 임금의 선포문이나 명령을 관료나 일반 백성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
주051)
애통조(哀痛詔) : 슬퍼하는 조서. 숙종이 자신을 탓하면서, 지덕 2년(757)에 내린 조서.
주052)
우하(又下) : 다시 조서를 내리다. 이번에 내린 조서가 처음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전후 두 차례의 조서가 어떤 시기에 내려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주석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두시언해』에서는 이번에 내린 조서를 지덕 2년(757)에 내린 조서로 보았다.
주053)
성명(聖明) : ①영명(英明)하고 성철(聖哲)해서 모르는 것이 없음. 봉건시대에 황제를 칭송하는 언사. ②황제의 대칭. 고명(高明)한 군주(君主). 또는 임금의 높고 밝은 덕(德).
주054)
홀문애통조 우하성명조(忽聞哀痛詔 又下聖明朝) : “문득 슬프고 아파하는 조서(詔書)가, 다시 성스럽고 밝은 조정에 내림을 듣도다!”란 말이다.
주055)
지덕이재십이월(至德二載十二月)에 : 숙종이 장안을 수복하고 두 차례에 걸쳐서 조서를 내렸는데 그 시기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 『두시언해』의 주석가들은 이번에 내린 조서를 757년 12월에 내린 것으로 보았다.
주056)
하제대사(下制大赦)니 : 조서를 내려 크게 사면을 하니.
주057)
드로니 : 들으니. 듣[問]-+오+니. 화자를 가리키는 ‘오’가 있으므로, 두보 자신이 들은 것을 표현한 것이다.
주058)
슬허 : 슬퍼하여. 슳[悲]-+어. 15세기 국어의 ‘슳다’는 동사이므로, ‘슬퍼’로 번역하기 보다는 ‘슬퍼하여’ 번역하는 것이 옳다. 참조. 슳다. 슳허다. 슬프다.
주059)
셜워시 : 서러워하시는. 괴로워하시는. 15세기 국어의 ‘셜워다’는 현대국어의 ‘서러워하다’보다는 강도가 높아 ‘괴로워하다’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도 후자의 뜻으로 쓰였다.
주060)
 리도다 : 또 내리도다.  리[下]-+도+다. 이번의 조서가 두번째의 조서임을 말한다.
주061)
우익(羽翼) : 보필하는 사람.
주062)
회(懷) : 생각하다. 언해에는 ‘고’로 되어 있다.
주063)
상로(商老) : 상산사호(商山四皓). 상산(商山)은 중국 산동성 환대현(桓臺縣) 동남 50리에 있는 산명(山名). 진(秦)나라 은사(隱士)인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기리계(綺里季), 각리선생(角里先生) 등 네 사람이 은둔하여 바둑을 두었는데, 모두 수염과 눈썹이 백색이기 때문에 호(皓)라 하였다. 진이 망한 다음 한 고조가 이들을 불렀는데, 출사하지 않았다.
주064)
문사(文思) : 아름다운 문채와 깊은 생각. 제왕(帝王)을 칭송하는데 쓰이는 말이다. 『서경⋅요전(堯典)』에, 요임금을 두고, ‘흠명문사(欽明文思)’라 했는데, 몸을 삼가는 것이 欽(흠), 이치에 환한 것이 ‘明(명)’, 문장이 빛나는 것이 ‘文(문)’, 생각이 깊은 것이 思(사)이다. 요임금은 이 네 가지를 갖추었다는 뜻이다. 요임금이 순(舜) 임금에게 선양(禪讓)한 것처럼 현종도 숙종에게 양위하였다.
주065)
제요(帝堯) : 중국의 요임금.
주066)
우익회상로 문사억제요(羽翼懷商老 文思憶帝堯) : “도울 만한 사람으로는 상산(商山)의 늙은이를 생각하고, 흠명문사하셨던 요임금을 생각하노라.”란 말이다.
주067)
배면(裵冕) : ?~770. 당나라 하중(河中) 하동(河東) 사람. 자는 장보(章甫)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초에 문음(門蔭)으로 위남현위(渭南縣尉)가 되었다. 어사중승(御史中丞) 왕홍(王鉷)이 재능을 알아보아, 거듭 승진하여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에 올랐다. 왕홍이 이림보(李林甫)에게 모함을 당하자, 홀로 글을 올려 왕홍을 위해 변호했다. 왕홍이 죽자 염장(斂葬)까지 치러 이로 인해 이름이 알려졌다.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 가서한(哥舒翰)이 발탁해 행군사마(行軍司馬)가 되고, 거듭 승진하여 원외낭중(員外郞中)이 되었다. 천보 15년(756) 안사(安史)의 난이 치열해지자 현종은 촉(蜀)으로 들어갔고, 그는 어사중승에 올랐다. 태자(太子) 이형(李亨)을 따라 영무(靈武)에 이르러, 두홍점(杜鴻漸) 등과 함께 태자에게 즉위를 권했고, 중서시랑(中書侍郞)으로 옮긴 뒤 재상으로 승진했다. 관작(官爵)을 팔고 승도(僧道)를 환속시켜, 군비를 충당할 것을 제안했다. 얼마 뒤 파면되어,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가 되었다. 대종(代宗) 대력(大曆) 중에 원재(元載)가 재상이 되자, 그를 천거해 동렬(同列)에 올랐다. 성격이 사치스럽고 외골수였는데, 스스로 두건을 만드는 일에 공을 들여,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모방하여, ‘복야건(僕射巾)’으로 불렸다.
주068)
숙종(肅宗) : 711~762. 이형(李亨). 당나라의 황제(재위, 756-762). 현종(玄宗)의 세 번째 아들이다. 자세한 것은 앞의 주를 참조할 것.
주069)
사호(四皓) : 상산사호(商山四皓). 상산(商山)은 중국 산동성 환대현(桓臺縣) 동남 50리에 있는 산명(山名). 진(秦)나라 은사(隱士)인 동원공(東園公), 하황공(夏黃公), 기리계(綺里季), 각리선생(角里先生) 등 네 사람이 은둔하여 바둑을 두었는데, 모두 수염과 눈썹이 백색이기 때문에 호(皓)라 하였다. 진이 망한 다음 한 고조가 이들을 불렀는데 출사하지 않았다.
주070)
태자(太子) : 일반적으로 다음 왕권을 잇는 사람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특히 전한 고조의 아들을 가리킨다. 고종 유방이 태자를 폐하려고 했는데, 여후(呂后)가 유후(留侯)의 계책을 써서 사호(四皓)를 불러 태자를 돕게 하니, 마침내 고조가 태자를 폐하겠다는 논의를 거둬들였다고 한다.
주071)
현종(玄宗) : 685~762. 당나라의 제6대 황제(재위, 712-756). 본명은 이융기(李隆基)고, 예종(睿宗)의 셋째 아들이다. 명황(明皇)이라고도 부른다. 조모 측천무후(則天武后) 시대에 낙양(洛陽)에서 태어났고, 9살 때 임치왕(臨淄王)으로 봉해졌다. 26살 때 위후(韋后)가 딸 안락공주(安樂公主)와 짜고, 중종(中宗, 현종의 백부)을 암살, 중종의 아들 온왕(溫王)을 제위(帝位)에 앉히고 정권을 농단(壟斷)하기 위해, 현종의 아버지 상왕(相王)까지도 해치려 하였다. 심복 장병을 인솔, 위후와 안락공주 일당을 공격한 뒤 아버지를 제위에 옹립하고, 자신은 황태자가 되어 실권을 잡았고, 28살 때 마침내 아버지의 양위로 즉위했다. 당시 권세를 누린 태평공주(太平公主) 일파를 타도하여, 측천무후 이래 반세기에 걸친 부인의 정권 개입을 근절시킨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초기에는 정치를 잘해 개원(開元)과 천보(天寶) 시대 수십 년의 태평천하를 구가했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들자 정치를 등한시하고, 도교(道敎)에 빠져 막대한 국비를 소비했으며, 35살이나 연하인 양귀비(楊貴妃)를 궁내(宮內)로 끌어들인 뒤 정사를 포기하다시피 하여, 권신 이임보(李林甫)가 국정을 대신 맡아보았다. 천보 14년(755)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사천(四川)으로 난을 피해 가던 도중에 양귀비는 병사에게 살해되었다. 이듬해 아들 숙종(肅宗)에게 양위하고, 상황(上皇)으로 은거했는데, 장안(長安)으로 돌아온 뒤 죽었다. 특히 음악에 뛰어나 스스로 작곡까지 하면서, 이원(梨園)의 자제 남녀를 양성했다. 서예에도 능해 명필이라는 칭호를 들었다.
주072)
전수(傳授) : 보통 학문이나 능력을 제자에게 가르쳐 물려주는 것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임금이 죽기 전에 덕이 있는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거나, 태자(太子)에게 미리 양위하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현종은 안녹산의 난으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자책하는 뜻으로 숙종(肅宗)에게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었다.
주073)
순(舜) : 전설상 제왕(帝王)으로 5제(帝)의 한 사람. 성은 우(虞) 또는 유우씨(有虞氏)고, 이름은 중화(重華)다. 유덕(有德)한 성인으로서 선양(禪讓) 설화의 대표적 인물이며, 요(堯), 우(禹)와 병칭되고 있다.
주074)
서요전(書堯典) : 『서경』의 「요전」. ‘요전’은 『서경』의 편 이름으로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이 선양(禪讓)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주075)
흠명문사(欽明文思) : 요(堯)임금의 덕을 칭송하는 말인데, 흠(欽)은 심신을 삼가는 것이고, 명(明)은 이치에 밝은 것이며, 문(文)은 문장이 밖에서 빛나는 것이고, 사(思)는 생각이 깊은 것이다. 준철문명(濬哲文明)이라고도 한다.
주076)
우익(羽翼)란 : 우익은. 우익+란. ‘-란’은 주로 선행어가 대조적 주제를 표현하는 기능이 있다. 『두시언해』에서는 단독으로 주제를 표시하는 기능과 대조적 주제를 표시하는 기능이 있다. 후자의 경우 다시 선행구와 후행구에 모두 ‘-란’이 나오는 경우와 그렇지 선행구에만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후자의 경우가 훨씬 우세하다. ¶(단독 주제) : 알 듣던 란 陶牧 오 도라보아 宜都 텨 가노라(前聞辨陶牧 轉眄拂宜都)〈두시 2:9ㄱ〉 / (대조적 기능) :  란 漢水ㅅ 우흘 고 서 란 峴山ㅅ 그 그려 노라(清思漢水上 凉憶峴山巔)〈두시 2:13ㄴ〉 / 棧道ㅣ 연 란 비스기 돌 避고 리 그츤  도혀 므 자 건너노라(棧懸斜避石 橋斷𨚫尋溪)〈두시 2:4ㄱ〉.
주077)
상산(商山)ㅅ 늘그닐 : 원시의 ‘상로(商老)’를 번역한 말로서 ‘상산사호(商山四皓)’를 가리킨다. ‘상산사호(商山四皓)’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을 참조할 것.
주078)
죄기(罪己) : 자기를 탓하다. 여기서는 숙종이 자기 자신을 탓하는 조서를 내렸음을 말한다.
주079)
도봉죄기일(叨逢罪己日) : 숙종이 자기 자신을 탓하는 조서를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두보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린 것을 말한다.
주080)
점쇄(霑洒) : 눈물을 뿌리다. ‘쇄체(灑涕)’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81)
점쇄망청소(霑洒望靑霄) : 숙종이 자기를 탓하는 조서를 내렸으나,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눈물을 뿌린 것을 말한다.
주082)
분려(奮厲) : 분발하여 최선을 다함.
주083)
모 : 몸을. 자신을. 15세기 국어에서 ‘몸’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경우가 흔한데, 이것은 한문의 ‘신(身)’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것과도 유사하다. 일종의 환유라고 볼 수 있다.
주084)
도람(叨濫)히 : 외람되이. 도람(叨濫)은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남충(濫充)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남우충수(濫竽充數)의 준말로 거짓으로 쓸데없이 충원한 사람을 가리킨다.
주085)
맛나셔 : 만나서. 맞[逢]-+나[出]-+아#시-+어.
주086)
려 : 뿌려. 리[灑]-+어. ¶리다 : 니러 西ㅅ녁 向야 合掌야 믈 리고 하 브르며 偈 지 블로〈월석 8:102ㄱ〉 / 아라 阮籍 길헤 다시 揚朱의 눈믈 리노라(衰顏偶一破 勝事難屢挹)〈두시 1:42ㄱ〉.
주087)
라노라 : 바라보노라. 라[望]-++오+라. 15세기 국어의 ‘라다’는 ‘바라보다’와 ‘원하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여기서는 전자로 쓰였다. 자세한 것은 앞의 주석을 참조할 것.
주088)
한마(汗馬) : 땀 흘리는 말. 즉 전쟁에서 공훈을 세운 말. 언해에는 ‘한(汗)’을 동사로 보아 ‘  내야’로 되어 있다.
주089)
산(鏟) : 깎아서 평평하게 하다. 언해에는 ‘갓가 리도다’로 되어 있다.
주090)
적호(賊壕) : 반군들이 만든 참호. 언해에는 ‘盜賊 城壕’로 되어 있다.
주091)
한마수궁궐 춘성산적호(汗馬收宮闕 春城鏟賊壕) : “말을 땀나도록 몰아쳐 궁궐을 수복하고, 봄이 온 성에서 도적의 성채를 무너뜨렸도다!”란 말이다.
주092)
갓가 리도다 : 깎어 버리도다. [刪]-+아 리-+도+다. 『두시언해』에서 ‘갓가 리다’는 모두 3번 쓰였는데, ‘鏟’의 번역으로 2번, ‘刮’의 번역으로 1번 쓰였다. ¶-어 리다 : 내  眞宰 罪 주고져 노니 덴 疊嶂 갓가 리고져 노라(吾將罪眞宰 意欲鏟疊嶂)〈두시 1:36ㄱ〉 / 大常 樓 지  소리 수워리니 兵事 므러 盜賊을 갓가 료리라 下牢로 건나놋다(太常樓船聲嗷嘈 問兵刮寇趨下牢)〈두시 16:55ㄱ〉 / 剋은 갓가 릴 씨라〈법화 2:6ㄱ〉 / 주글 거든 되야마  나 두 녁 그틀 갓가 료 곳구무 마 만야〈구간 2:69ㄴ〉 / 갓가 린 굽을 라  리 라 수유에 라 블근 헌 거싀 라 져제 브툐  두 번곰 라〈구간 7:73ㄴ〉.
주093)
체두(枤杜) : 『시경』 소아(小雅)의 작품 이름. 병역에서 돌아온 사람을 위로하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개선(凱旋)을 축하하거나,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환영하는 뜻으로 쓰인다. 원시의 ‘枤杜(견두)’는 ‘杕杜(체두)’의 잘못인데 ‘枤’은 ‘杕’의 이체자일 가능성이 있다. 〈중간본〉에는 시 본문, 주석, 언해에 모두 ‘杕’로 되어 있는데, 통용자로 보인다.
주094)
천앵도(薦櫻桃) : 『월령(月令)』에 의하면, 중하(仲夏, 음력 5월)의 달에 천자가 조상의 침묘(寢廟)에 앵두를 바쳤다.
주095)
상응가체두 귀급천앵도(賞應歌杕杜 歸及薦櫻桃) : “공로를 치하함을 받자 위로하는 노래가 들리고, 귀환하자 과일을 묘당에 올린다.”는 말로, 군대의 노고에 대해 치하하고 종묘에 고하는 일이 여름철에 있었음을 뜻한다.
주096)
중하(仲夏) : 음력 5월의 다른 이름으로 한여름을 말한다.
주097)
침묘(𥨊廟) : 침(寢)과 묘(廟). 종묘의 앞 건물을 묘(廟)라 하고, 뒤의 건물을 침(寢)이라 한다. 묘에는 조상의 위패와 존상, 목주 등을 안치해 제사 지냈고, 침에는 의관과 궤장을 비치했다.
주098)
다 : 응당. 원시의 ‘응(應)’에 대한 번역어이다.
주099)
브르리로소니 : 부를 것이니. 브르-[歌]+리+도+소+니. ¶브르다 : 여러 가짓 류 며 벽 티며 놀애 블러 讚嘆  殷重히 너기며〈월석 10:45ㄱ〉.
주100)
이랏 : 앵두. 『두시언해』의 여기에서만 나오는 유일례이다.
주101)
천(薦) 저글 : 올릴 적을. 올릴 때를.
주102)
미츠시리로다 : 미칠 것이도다. 및[及]-+리+도+다. ¶및다 : 迦陵頻伽  소배셔브터 됴 소리  새니 녀느 새소리 미츠리 업스며〈석상 3:32ㄴ〉 / 햇 門ㅅ 부체예 내 아 바 미츠니 내 菜圃ㅣ 나날 프르놋다(郊扉及我私 我圃日蒼翠)〈두시 12:19ㄱ〉.
주103)
횡과(橫戈) : 창을 가로로 잡다. 즉 전쟁하는 것을 가리킨다. 언해에는 ‘干戈ㅣ 빗구미’로 되어 있다.
주104)
갑제(甲第) : 가장 좋은 1급의 저택을 말한다.
주105)
잡로횡과삭 공신갑제고(雜虜橫戈數 功臣甲第高) : “오랑캐들이 거듭 공격해오지만, 이때 크게 공을 세워 크고 좋은 집에서 산다.”는 말로, 적의 침략에 공을 세운 신하들이 부위영화를 누린다는 뜻이다.
주106)
회흘(回紇) : 수당(隋唐) 시대부터 몽고 및 감숙성 등지에서 약 1세기 동안 세력을 떨친 터키 계통의 부족인 위구르를 가리키는 말로, 회골(回鶻)이라고도 한다.
주107)
토번(吐蕃) : 부족명. 또는 정권 이름. 7-9세기 티벳, 즉 청장(靑藏) 고원 일대에서 각 부족이 회맹하여, 노예 정권을 세웠다. 왕에 해당하는 사람을 찬보(贊普)라 하고, 찬보가 죽으면 순장했다. 유목과 정착생활을 겸했다. 629년 양동(羊同), 손파(孫波) 부족을 멸하고, 서장(西藏)을 통일했다. 이후 개력정책을 펴 관제와 법률을 정비하고, 문자를 창제했다. 안사(安史)의 난 뒤 당을 공격하여 서역 일대를 장악했으며, 당의 수도 장안(長安)을 함락시키기도 했다. 9세기 들어 통치집단이 분열하면서 세력이 와해되기 시작했고, 이후 당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주108)
유언갑을차제(猶言甲乙次第)오 : 갑, 을의 차례를 말하는 것과 같다.
주109)
간과(干戈)ㅣ 빗구미 : 창과 방패가 빗김이. 서로 부딪힘이. 즉 전쟁하는 것을 말한다.
주110)
니 : 잦으니. [數]-+니. ¶다 : 모미 凶며 障礙 하며 寃讎ㅣ 하며 病이 며 苦惱ㅣ자 범그러 機緘이 잇 야〈능엄 7:4ㄱ〉 / 隋氏ㅣ 宮室 머믈워 잇더니 블 브튜믄 엇뎨  뇨(隋氏留宮室 焚燒何太頻)〈두시 3:47ㄴ〉.
주111)
빈(頻) : 자주. ‘동(同)’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112)
송희(送喜) : 기쁜 소식 즉 승전의 소식을 전하다. 언해에는 ‘깃보 보내니’로 되어 있다.
주113)
성궁(聖躬) : 성스러운 몸. 즉 천자.
주114)
만방빈송희 무내성궁로(萬方頻送喜 無乃聖躬勞) : 이 구절의 의미를 언해에서는 천자를 피로하게 만들지 말라는 의미로 보았으나, 이 모든 것이 임금의 공적임을 강조하는 의미로 보는 설도 있다. 제3수는 장안을 수복하고 나서의 뒷일 즉 회흘이 전공을 믿고 지나치게 보상을 요구할 것과 여러 장수들이 지나치게 사치를 즐겨 정도를 넘길까 봐 걱정한 것이다.
주115)
만방빈송희 무내성궁로(萬方頻送喜 無乃聖躬勞) : “사방에서 승리를 기뻐하는 반가움을 전해오는데, 다시는 천자를 수고롭게 함이 없어야겠다.”는 말로, 천자의 노고를 기억하고, 신하들도 방종해서는 안 됨을 암시적으로 노래했다.
주116)
조 : 자주. [數]-+오. ‘오’는 부사파생접미사이다. ¶조 : 太子ㅣ 조 王 出家야지다 거시(太子屢以出家心白父王)〈석상 3:23ㄱ〉 / 鍾鼎에 사교 조 보노니 眞實로 北斗ㅅ 벼 法 바도미 맛니라(數見銘鍾鼎 眞宜法斗魁)〈두시 3:10ㄴ〉.
주117)
깃보 : 기쁨을. 깃[喜]-+브+오+ㅁ+. ‘깃브다’는 ‘다’에 형용사파생접미사 ‘-브-’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파생형용사 ‘깃브다’의 명사형인데, 사용례는 여기서만 확인된다.
주118)
신가 : 수고로운신가? -[疲]+시+ㄴ+가. ¶다 : 耶輸는 前生애 어마님과  가시다가 길 머러 실 보기 야 자내 지믈 어마님 맛디시고 부러 디여 여슷 里 가시니〈석상 3:37ㄴ〉 / 가락 오락 호매 안며 누우믈 섯거 호니 사과 와 가지로 며 잇브도다(往來雜坐臥 人馬同疲勞)〈두시 1:30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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