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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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양현과 화원현 두 현의 여러분들께 서간을 보내며[投簡成華兩縣諸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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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현과 화원현 두 현의 여러분들께 서간을 보내며[投簡成華兩縣諸子]


投簡成華兩縣諸子 주001)
투간성화양현제자(投簡成華兩縣諸子)
이 작품은 천보(天寶) 13년(754) 늦은 가을, 두보 43세 때에 지어졌다. 당시 두보는 장안(長安)의 하두성(下杜城)에서 지내고 있었다. 하두성은 지명 상으로는 장안의 한 성이었지만 보잘것없는 장안의 변두리인데, 두보가 여기서 머물 때는 궁핍하기가 이를 데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 화 두 현은 함양(咸陽)과 화원(華原) 두 현을 가리킨다. ‘투간(投簡)’은 여기서는 시로서 편지를 대신해 보낸다는 뜻이다. 두보 당시에는 이미 시가 편지를 대신할 만큼 보편화되어 있음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시에서는 두보의 곤궁한 처지와 불편한 심경을 묘사하였다.

투간성화양현제자
(함양현과 화원현 두 현의 여러분들께 서간을 보내며)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40ㄱ

赤縣 주002)
적현(赤縣)
①적현신주(赤縣神州)를 줄인 말. ②당(唐)·송(宋)·원(元)나라 때 경도(京都)의 치소(所治)가 있던 현(縣). 경현(京縣).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官曹 주003)
관조(官曹)
관리(官吏)가 일을 보던 기관(機關). 관리가 사무를 보던 처소(處所). 즉 관아(官衙).
擁材傑 軟裘 주004)
연구(軟裘)
부드럽고 가벼운 가죽옷.
快馬 주005)
쾌마(快馬)
①아주 잘 달리는 건장(健壯)한 말. ②빠른 말을 타고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當冰雪京邑 주006)
경읍(京邑)
경도(京都). 도읍(都邑)이 있는 곳.
屬縣 주007)
속현(屬縣)
상위 행정 기관에 딸린 현(縣)을 일컫는 말.
이 有赤니라】

赤縣엣 官曹ㅣ 주008)
적현(赤縣)엣 관조(官曹)ㅣ
적현의 관조가. 赤縣+에+ㅅ 官曹+이.
材傑 사미 주009)
재걸(材傑) 사미
재주 걸출한 사람이. 才傑#-+ㄴ 사+이. 〈중간본〉에는 ‘시미’로 되어 있다.
렷도소니 주010)
렷도소니
꾸리어 있으니. 안겨 있으니. 리-[擁]+어#잇-+도+ㅅ+오+니. ‘리다’는 ‘NP가 (NP를) NP로 NP에 리-’의 격틀을 갖는데 대부분 목적어 논항은 문맥에 의해서 생략된다. ‘다’는 ‘불을 끄다’ 등의 동사로 그 활용형에 나오는 ‘리다’와는 다른 동사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리- : 兜羅綿에 리〈석상 23:37ㄴ〉. 大瞿曇이 슬허 리여 棺애 녀고〈월석 1:7ㄴ〉. 菩薩 ··· 싯기고 帝釋梵王이 天衣로 리니라〈월석 2:39ㄴ〉. 새배 휫도로 리니 步驟호미 가지로다(清晨合圍步驟同)「冬狩行」〈두시 5:49ㄱ-ㄴ〉.
보라온 주011)
보라온
부드러운. 보#+압+은. ¶보랍- : 보라 차바 머거 모미 아래 거 成佛호리라〈석상 3:40ㄱ〉. 群公이 보고 顔色 붓그리고 王室 갓겨 보랍디 아니니라(群公見慚色 王室無削弱)「過郭代公故宅」〈두시 3:66ㄱ〉.
갓옷과 주012)
갓옷과
가죽옷과. 갓#옷+과.
 로 주013)
 로
빠른 말로. -[速]+ [馬]+로. ¶- : 入聲은 點 더우믄 가지로 니라〈훈언 14ㄴ〉. 블근 桂樹엔 과 서리왜 고 프른 머귀 낫과 바 러디놋다(丹桂風霜急 靑梧日夜彫)「有感五首」〈두시 5:15ㄱ〉.
어름과 주014)
어름과
얼음과. 어름[氷]+과.
눈과 주015)
눈과
눈을. 눈[雪]+과+.
當야 주016)
당(當)야
당하여. 맞이하여. 맞아. 當#-+야. 〈중간본〉에는 ‘當아’로 되어 있다.
니놋다 주017)
니놋다
다니는구나. -+니-++오+ㅅ+다.

【한자음】 적현관조옹재걸 연구쾌마당빙설【경읍(京邑)의 속현에 적현(赤縣)이 있다.】
【언해역】 적현(赤縣)의 관아가 재주 걸출한 사람을 꾸리고 있으니, 부드러운 가죽옷과 빠른 말로 어름과 눈을 맞서 다니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적현의 관아가 재주 걸출한 사람을 안았더니, 부드러운 갓옷과 빠른 말로 얼음과 눈 위를 다닌다.”라는 뜻으로, 적현 관아에 인재가 많은데다 위의(威儀)도 제대로 갖추고 있음을 말한다.

長安 주018)
장안(長安)
중국의 고대 도시. 서주(西周)와 진(秦), 전한(前漢), 신(新), 전조(前趙), 전진(前秦), 후진(後秦), 서위(西魏), 북주(北周), 수(隋), 당나라 등 11개 왕조가 도읍했던 중국 제1의 고도(古都)다. 지금의 섬서성 서안(西安)에 해당한다. 한(漢)나라와 당나라 때에 가장 번성했는데, 당나라 때에는 동도(東都)인 낙양(洛陽)에 대비시켜 서도(西都) 또는 상도(上都)라 불렀다.
苦寒誰獨悲 杜陵 주019)
두릉(杜陵)
①지명(地名).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 동남쪽에 있었다. 옛날에는 두백국(杜伯國)이었다. 진(秦)나라 때 두현(杜縣)이 설치되었고, 한선제(漢宣帝)가 동원(東原) 위에 능을 쌓아 두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이름을 바꿔 두릉현(杜陵縣)으로 고쳤다. 진(晉)나라 때는 두성현(杜城縣)으로 불렸고, 북위(北魏)에서는 두현(杜縣)이라 했는데, 북주(北周) 때 폐지되었다. ②한선제(漢宣帝)의 능묘(陵墓). ③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野老 주020)
야로(野老)
촌야(村野)에서 사는 늙은이.
骨欲折【野老 ㅣ 自謂라】

長安ㅅ 甚 치위예 주021)
치위예
추위에. 칩-+이+옛+ㅅ. ‘치위’는 ‘칩-’에 명사파생접미사 ‘-이’가 결한된 어형으로 초기 정음문헌에는 ‘치’로 표기되었다. ‘더위’도 ‘치위’와 유사한 파생과정을 거친 단어이다. 참조; 치. 치. 치위. 치. 치움. ¶칩- : 칩거든 곧 칩다 니고 덥거든 곧 덥다 니니라(寒即言寒고 熱即言熱니라)〈금삼 2:39ㄴ〉.  열흘에 半 비 오니 즌 해 서르 븓드러 오라 이믜 뎌 비 리올 거시 업스니 길히 믯그럽고 오시  칩도다(一旬半雷雨 泥濘相攀牽 既無禦雨備 徑滑衣又寒)「彭衙行」〈중간두시 1:12ㄱ〉. 치 : 모 벌에며 더 치로 셜다가〈석상 9:9ㄴ〉. 치위 : 甚 치위와 더위와 비예 뫼와 셔쇼 나 록 호(祁寒暑雨에 侍立終日호)〈내훈 3:15ㄱ〉. 프른 디새 첫 치위 밧기오(碧瓦初寒外)「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두시 6:26ㄴ〉. 참조; 덥- : 더 煩惱 煩惱ㅣ 블티 다라나 거실 덥다 니라〈월석 1:18ㄱ〉. 주으리며 목 며 더위 셜워 두려 답 로 欲業의 다와다 보차미 외며〈법화 2:131ㄱ〉. 늘근 몸 덥긔 호란 燕ㅅ 玉  겨지블 求고 주으륨 充實케 호란 楚ㅅ 말와 랑노라(煖老須燕玉 充饑憶楚萍)「獨坐二首」〈두시 3:41ㄴ-42ㄱ〉.
주022)
누가. 미지칭 ‘누’에 주격조사가 통합한 것으로 ‘누’의 주격형은 ‘·뉘(거성)’, 속격형은 ‘:뉘(상성)’, 목적격형은 ‘:눌(상성)’이다.
올로 주023)
올로
홀로. ¶이 길헤 올로 녀시니〈월석 22:7ㄱ〉. 生涯ㅣ 올로 다봇 올마 니 호라(生涯獨轉蓬)「投贈···府翰二十韻」〈두시 5:43ㄱ-ㄴ〉.
슬허 니오 주024)
슬허니오
슬퍼하는가? 슳-[悲]+어#-++니+오. ‘슳어다’는 ‘슳다’에 동사파생의 ‘-어-’가 결합되어 생성된 단어이다. ‘슳다’에 형용사파생접미사 ‘-브-’가 결합되면 파생동사 ‘슬퍼다’가 형성되는데 이 낱말로부터 현대국어의 ‘슬퍼하다’가 형성되었다. ¶슳- : 太子ㅣ 門 밧긔 가 보신 後로 世間 슬흔 미 나날 더으거시〈석상 3:22ㄱ〉. 도라와 비루소 내 슬허노라(歸來始自憐)「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杜陵엣 햇 늘그니 주025)
두릉(杜陵)엣 햇 늘그니
두릉 들판의 늙은이. 杜陵+에+ㅅ ㅎ[野]+애+ㅅ 늙-[老]+은#이. 즉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26)
뼈가. [骨]+이.
것글 주027)
것글
꺾여질. -[折]+을. ‘다’는 자타동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피동의 의미를 가진 ‘것거디다’도 있다. ¶-(자동사) : 王ㄱ 메 집 보히 것거늘 라 너교〈석상 24:6ㄱ〉. 金채 것고 아홉 리 주그니(金鞭斷絶九馬死)「哀王孫」〈두시 8:1ㄴ〉. 다(타동사) : 녀나 怨讐ㅅ 도 다 것거 滅도다〈월석 18:56ㄴ〉.  使臣 기르마애 것겟도다(骨斷使臣鞍)「王命」〈두시 5:12ㄱ〉.
주028)
것거디-
太子ㅣ 화 시니 화리 것거디거늘〈석상 3:13ㄴ〉. 치운 매 노 남기 것거듀믈 時로 듣노라(時聽嚴風折喬木)「久雨···不至」〈두시 5:35ㄴ〉.
도다 주029)
도다
듯하도다. #-+도+다.

【한자음】 장안고한수독비 두릉야로골욕절【‘야로(野老)’는 두보가 자신을 일컬은 것이다.】
【언해역】 장안의 심한 추위에 누가 홀로 슬퍼하겠는가? 두릉(杜陵)의 들의 늙은이 뼈 꺾어질 듯하도다!
*시 구절 해석 : “장안의 심한 추위를 누가 홀로 슬퍼하리오, 두릉의 들판 늙은이는 뼈가 부러질 듯하다.”라는 뜻으로, 혹독한 날씨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두보의 처지를 탄식하고 있다.

南山豆苗早荒穢 주030)
황예(荒穢)
황무(荒蕪). 거칠고 황폐해짐.
靑門 주031)
청문(靑門)
한(漢)나라 때 장안성(長安城)의 동남문(東南門). 본래 이름은 패성문(霸城門)인데, 문의 빛깔이 푸른색이라 청문 또는 청성문(靑城門)으로 불렀다.
瓜地新凍裂陶潛 주032)
도잠(陶潛)
365~427. 동진(東晉) 여강(廬江) 심양(潯陽) 사람. 자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고,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자호했다. 일설에는 이름이 연명(淵明)이고, 자가 원량이라고도 한다. 도간(陶侃)의 증손이다. 고을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관리의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직한 뒤 돌아왔다. 다시 생활을 위해 진군참군(鎭軍參軍)과 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지냈다. 팽택현령(彭澤縣令) 때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히는 일을 견뎌내지 못하면서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하다가 안제(安帝) 의희(義熙) 2년(406) 41살 때 누이의 죽음을 구실 삼아 팽택현령을 사임한 뒤 다시는 관계(官界)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 쓴 글이 「귀거래사(歸去來辭)」다. 의희 말에 저작좌랑(著作佐郞)으로 불렸지만 나가지 않았다. 스스로 증조가 진(晉)나라 때의 재보(宰輔)였으면서 후대에 몸을 굽힌 것을 부끄럽게 여겨 남조 송나라에 들어서자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지은 문장에는 모두 연월(年月)을 달았는데, 의희 이전에는 진나라 연호를 썼다가 남조 송나라 이후에는 갑자(甲子)만 달았다. 직접 농사를 지어 자급했고, 술을 좋아했으며, 시문을 잘 지었다. 시풍(詩風)은 후대의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문학사상 큰 업적을 남겼다. 시 외에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과 「도화원기(桃花源記)」 등 산문에도 뛰어났고, 지괴소설집(志怪小說集) 『수신후기(搜神後記)』의 작자로도 알려져 있다. 사시(私諡)는 정절(靖節)이다. 저서에 『도연명집(陶淵明集)』이 있다.
詩예 種豆南山下ㅣ라 다 故秦東陵侯 주033)
동릉후(東陵侯)
한(漢)나라 소평(邵平)을 일컫는 말. 동릉(東陵)에 오이를 심은 일로 유명하다.
邵平 주034)
소평(邵平)
?~?. 소평(召平)으로도 쓴다. 진(秦)나라 광릉(廣陵) 사람. 동릉후(東陵侯)다. 진나라가 망한 뒤 포의(布衣)로 장안성(長安城) 동쪽에 살면서 참외를 심어 생업으로 삼았는데, 그 맛이 좋아 소평과(召平瓜) 또는 동릉과(東陵瓜)라 하였다. 여후(呂后)가 한신(韓信)을 죽인 뒤 고조(高祖)가 소하(蕭何)를 상국(相國)에 임명하면서 오천호(五千戶)에 봉했다. 그때 그가 소하에게 봉상(封賞)을 사양하고 사재를 털어 군대를 도우라고 충고해 고조의 혐의에서 벗어나게 했다.
이 種瓜青門니라 此 ㅣ 言其貧也ㅣ라】

南山애 심곤 주035)
심곤
심은. -[植]+오+ㄴ. 현대국어의 ‘심다’에 해당하는 15세기 국어는 ‘심므다’와 ‘다’가 있다. ¶- : 아마도 福이 조이 아니 심거 몯 꺼시라〈석상 6:37ㄴ〉. 보 심군 禾苗ㅣ 九月 예(春苗九月交)「遣興三首」〈두시 5:35ㄱ〉.
엄이 주036)
엄이
콩싹이. [豆]+엄[苗]+이. 〈중간본〉에는 ‘콩엄이’로 되어 있다. ¶ :  爲大豆〈훈해 55〉. 서르 자바 바 녀 보니(相携行豆田)「甘林」〈두시 15:5ㄱ〉. 엄 : 神足 엄 나미 고〈법화 7:129ㄴ〉. 錦으로 혼 줄와 엄  대예  며기 니더니라(錦纜牙檣起白鷗)「秋興五首」〈두시 6:9ㄴ〉.
주037)
일찍. 일[早]. 원문의 ‘早’에 대한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는 ‘早’에 대한 번역으로 ‘일’과 ‘일즉’이 모두 쓰이기도 하나 ‘일’은 ‘早’에 대한 번역으로 ‘일즉’은 ‘曾’에 대한 번역으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스로 히 우후로 자 가 쉬운 일브터 화셔 우후로 노 리예 달 거시니라〈번소 8:5ㄴ〉. 天山앤 일 화 거렛도다(天山早掛弓)「投贈···府翰二十韻」〈두시 5:41ㄱ〉. 일즉 金盌이 人間애 냇도다(早時金盌出人間)「諸將五首」〈두시 5:44ㄱ〉. 道術에 일즉 들 머믈오니 先生이 일 昏蒙호 텨리니라(道術曾留意 先生早擊蒙)「寄司馬山人十二韻」〈두시 9:6ㄴ〉.
거츨오 주038)
거츨오
거칠고. 거츨-[荒]+오. ¶거츨- : 魔王이 怒 道理 거츨 無數 軍이 淨甁을 몯 무니〈월천 26ㄱ〉. 뫼히 거츨오 사미 젹고 히 幽僻니 아 나조 아답도다(山荒人民少 地僻日夕佳)「柴門」〈두시 6:47ㄴ〉.
靑門에 주039)
오이. 외[瓜].
시므던 주040)
시므던
심던. 시므-[植]+더+ㄴ. 15세기에는 ‘시므다’는 ‘다’가 공존하였다. 중세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자는 자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후자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쓰이나 ‘시므시-, 시므며’도 쓰였다. ¶시므- : 園은 菓實 시므 히오〈월석 21:39ㄴ〉. 穀食 시므던 바 이제 피 흐르놋다(有田種穀今流血)「憶昔二首」〈두시 3:62ㄱ-ㄴ〉. - : 곧 端正 相 잇  나하 아래브터 德根源을 심거〈석상 21:8ㄱ〉. 𦡳月에 다시 모로매 심굴 디니라(臘月更須裁)「舍弟···此詩」〈두시 7:9ㄱ〉.
히 주041)
히
땅이. ㅎ+히. ‘ㅎ’는 ‘ㅎ말음체언’이다.
새려 주042)
새려
새로. 새[新]+려. ‘려’는 부사화접미사이다.
어러 주043)
어러
얼어. 얼-[凍]+어. ¶얼- : 罪性이 믌겨리 어름 어러 니롬 니라〈남명 하:58ㄱ〉. 미 어러 고기 잡디 몯릴 수이 얻디 몯리니(河凍未漁不易得)〈두시 16:60ㄴ〉.
도다 주044)
도다
터졌도다. -[裂]+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 : 바래  끼르믄 傭人이  바리 디 아니케 니〈법화 2:243ㄱ〉. 中原에 音書ㅣ 업서 도라가 得디 몯호니 손바리 어러 고 갓과 쾌 주게라(中原無書歸不得 手腳凍皴皮肉死)「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두시 25:26ㄴ〉.

【한자음】 남산두묘조황예 청문과지신동렬【도잠의 시에 “남산 아래에서 콩을 심노라.”라는 구절이 있다. 옛날 진(秦)나라의 동릉후(秦東陵侯) 소평(邵平)이 청문(青門)에 오이를 심었다. 이것은 두보가 자신의 빈곤함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남산(南山)에 심은 콩싹이 일찍 거칠고, 청문(靑門)에 외 심던 땅이 새로 얼어 터져 있도다!
*〈중간본〉에는 ‘故秦東陵侯邵平ㅣ’로 되어 있다.
*시 구절 해석 : “남산에 심은 콩이 일찍부터 거칠어졌고, 청문에 오이 심던 땅이 새로 얼어 터졌다.”라는 뜻으로, 날이 춥고 땅이 척박해 심은 곡식이 죽고 땅은 황폐해졌다는 말이다.

鄉里兒童項領 주045)
항령(項領)
굵은 목 줄기.
朝𨑳 주046)
조정(朝廷)
임금이 나라의 정치를 의논하거나 집행하는 곳. 또는 그에 따르는 기구. 조가(朝家). 조단(朝端). 조당(朝堂). 조저(朝著).
故舊 주047)
고구(故舊)
오래 동안 사귄 옛 친구.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40ㄴ

주048)
예수(禮數)
①옛날에 명위(名位)에 맞춰 나눈 예의(禮儀)의 등급제도(等級制度). 또한 관계(官階)의 품급(品級). ②예절(禮節).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項領成은 言其長成也ㅣ라】

 아 주049)
 아
마을의 아이. ㅎ[村]+ㅅ 아[兒].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중간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굴근 모기 주050)
굴근 모기
굵은 목이. 굵-[大]+은 목[頸]+이. 원래의 ‘모기 굵게’에서 교정된 것이다.
이럿고 주051)
이럿고
이루고 있고. 이루어져 있고. 되어 있고. 일-[成]+어#잇-+고. ‘일다’의 사동사는 ‘이루다’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일- : 成은 일 씨라〈훈언 13ㄱ〉. 城郭 졧 지비 일어  로 니유니(背郭堂成蔭白茅)「堂成」〈두시 7:1ㄱ〉. 이루- : 太子ㅣ 니샤 네 가짓 願을 일우고져 노니〈석상 3:21ㄱ〉. 갓가 일워 按 야 靑丘 아냇도다(削成如桉抱靑丘)「承聞···絕句十二首」〈두시 5:23ㄱ〉.
朝廷ㅅ 녯 버디 주052)
조정(朝廷)ㅅ 녯 버디
조정의 옛 벗이. 朝庭+ㅅ 녜+ㅅ 벋[友]+이.
禮數ㅣ 그첫도다 주053)
예수(禮數)ㅣ 그첫도다
예교가 끊어져 있도다. 禮數+이 긏-[斷]+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긏- : 法訓이 긋디 아니니라〈석상 6:36ㄱ〉. 父母ㅅ 恩惠 그처 리고(棄絕父母恩)「前出塞九首」〈두시 5:26ㄱ〉. 그치- : 한비 아니 그치샤 날므를 외오시니〈용가 68〉.  華山 陽애 보내욜 디니라(歸馬華山陽)「有感五首」〈두시 5:14ㄱ〉.

【한자음】 향리아동항령성 조정고구례수절【‘항령성(項領成)’은 장성한 것을 말한다.】
【언해역】 마을의 아이 굵은 목이 되었고 조정의 옛 벗이 예수(禮數)가 끊어졌도다!
*시 구절 해석 : “마을의 아이들은 목이 굵어졌고, 조정의 옛 벗은 예교가 끊겼다.”라는 뜻으로, 아이들은 성장했지만 조정의 친구들은 연락이 끊겼다는 말이다.

自然棄擲與時異 况乃踈頑 주054)
소완(踈頑)
거칠고 미련함. 완고하고 어리석음.
臨事拙

自然히 리여 주055)
리여
버리어. 리-[棄]+이+어. ‘리이다’는 ‘리다’의 피동사이다. ‘리이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보인다. ¶리- : 捨 릴 씨니 내 恩惠 려 衆生 줄 씨라〈석상 9:6ㄴ〉. 시름왼 드로 구룸 髻髮을 리니 허리와 四支예 貴 오시 어위도다(愁思拋雲髻 腰支膡寶衣)「卽事」〈두시 5:17ㄱ〉. 리이- : 이 무른 엇뎨 히 업스리오   이스를 니버 리이리라(此輩豈無秋 亦蒙寒露委)「種萵茞幷序」〈두시 16:66ㄴ〉.
時로 다 주056)
다
함께. 다[與]. ¶다 : 우리도  다 微妙 第一法을 得야〈개법1:84ㄱ〉.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 며 狄과 다 戎의게 이슈미녀(中原有鬪爭 况在狄與戎)「前出塞九首」〈두시 5:29ㄴ〉.
달오니 주057)
달오니
다르니. 다-[異]+오+니.
며 주058)
며
하물며. ¶모맷 고기라도 비 사 주리어니 며 녀나 쳔랴녀〈석상 9:13ㄱ〉/ 며 더운 저글 當호미녀(况當朱炎赫)「白水···高齋三十韻」〈두시 7:23ㄱ〉.
迂踈며 어려 주059)
어려
어리석어. 어리-[愚]+어. ¶어리- : 어리여 미혹야 邪曲 보 信〈석상 9:36ㄴ〉. 이 말미  足히 어리도다(此語亦足爲愚蒙)「杜鵑行」〈두시 17:6ㄱ〉.
이 臨야 踈拙호라

【한자음】 자연기척여시이 황내소완림사졸
【언해역】 자연히 버리어 때로 함께 다르니 하물며 우속(迂踈)하며 어리석어 일을 임하여 소졸(踈拙)하였네.
*시 구절 해석 : “자연이 버리어 시대와 다르니, 하물며 멀고 성글어 일에 임할 때 졸렬함에랴.”라는 뜻으로, 시대 상황과 잘 맞지 않은 데다 일 처리까지 미숙한 현실에 대해 말했다.

饑卧動即向一旬 弊裘何啻聮百結 주060)
백결(百結)
헝겊을 여러 번 대어 꿰매 만든 의복(衣服).

주려 주061)
주려
굶주려. 주리-[饑]+어. ¶주리- : 갓 주리며 치우믈 저코 죽 苦 보디 아니니〈영가 상23ㄱ〉. 주린 버미 뫼로 려오며 龍 거슯수미  므레 나니(虎之飢下巉嵓 蛟之橫出清泚)「寄狄明府博濟」〈두시 8:18ㄴ〉.
누운 주062)
누운
누운. 눕-[臥]+은.
다마다 주063)
다마다
곳마다. 다[所]+마다. ¶다마다 : 부텨 說法신 다마다 다 能히 놀애로 브르니라〈월석 1:15ㄱ〉. 잣남 採取 다마다 주메 기 놋다(採栢動盈掬)〈두시 8:66ㄴ〉.
곧  열흘옴 주064)
열흘옴
열흘씩. 열흘[十日]+옴. ¶-옴 : 그듸내 各各  아옴 내야 내 孫子 조차가게 라〈석상 6:9ㄴ〉. 맷 城이 改變  머것니 번곰 올오니  디위옴 새롭도다(江城含變態 一上一回新)「上白帝城二首」〈두시 14:6ㄱ〉.
向노니 주065)
헐은. 헐-[弊]+은. ¶ 諸天히 阿修羅와 싸 저긔 갈해 헌  旃檀香 면 즉자히 암니〈월석 1:26ㄴ〉. 곧 巾几 옮겨오 지  돗 내 헌 지브로셔 나가라(直作移巾几 秋帆發弊廬)「寄李十四員外布十二韻」〈두시 20:52ㄱ〉.
갓오 주066)
갓오
가죽옷은. 갓+옷+.
엇뎨 주067)
엇뎨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이와 관련된 낱말로 ‘엇디’로 『두시언해』에서 보인다.
니 주068)
니
이어. 닛-[繼]+어. 〈중간본〉에는 ‘니어’로 되어 있다. ¶닛- : 種子와 根身을 자바 디녀 나미 서르 니 디니〈월석 11:52ㄱ〉. 凱歌 獻호미 날로 자최 니니 두 蕃이 安靜야 혜아룔 이리 업도다(獻凱日繼踵 兩蕃靜無虞)「後出塞五首」〈두시 5:32ㄱ〉.
온 고 주069)
온 고
백 곳을. 여러 군데를. 온[百] 곧[處]+.
 주070)

맺을. 꿰맬. 기울. -[結]+을. ¶- : 다가 業 조미 重면 地獄애 기리 이셔 버서 時節이 업스리라〈월석 21:121ㄱ〉. 댓 고지 여르미 디 아니니 네의 아 주으륨 모 思念노라(竹花不結實 念子忍朝饑)「述古三首」〈두시 3:55ㄴ〉. 그르메 납 우 남긔 브텟노니 넉슨 蜃氣ㅣ 쳿 樓에 나봇기놋다(影著啼猿樹 魂飄結蜃樓)「第五弟豐이~寄此二首노라」〈두시 8:45ㄴ〉. 머리터리 자 남진 겨지비 외요니 돗기 그 卧床애 덥디 아니얫다(結髮爲夫妻 席不暖君床)「新婚別」〈두시 8:67ㄱ〉.
미리오 주071)
미리오
따름이겠는가? +이+리+오. ‘오’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하는 설명의문어미이다.

【한자음】 기와동즉향일순 폐구하시련백결
【언해역】 굶주려 누운 곳마다 곧 한 열흘씩 향하니, 헌 가죽옷은 어찌 이어 백 곳을 꿰맬 따름이겠는가?
*시 구절 해석 : “굶주려 누웠다가 움직이며 곧 열흘이 다가오니, 헤진 갓옷은 어찌 백 번 꿰맨 정도뿐이겠는가?”라는 뜻으로, 굶주려 기운이 없어 열흘이 지나야 일어나고 입은 옷도 여러 번 기워 온전하지 않다는 말이다.

君不見空墻日色晚 此老無聲淚垂血ㅣ 望諸子之憫恤 주072)
민휼(憫恤)
형편을 딱하게 여겨 도움을 줌. 구휼(救恤)함.
也ㅣ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그듸 보디 아니다 주073)
그듸 보디 아니다
그대는 보지 아니하는가? 그대는 보지 않는가? 15세기 국어의 ‘아니다’는 ①‘어근+다’의 부정(예, 出世 아니다) ②‘-가 아니가/-가 아니릿가’ 의문문(예, 便安신가 아니신가, 그츠리가 아니리가) ③‘-어 아니다’(예, 깃거 아니야) ④장형사동문의 부정(예, 녇게 아니리니) ⑤‘-다/라 아니-’(예, 절시다 아니리고/阿羅漢이로라 아니노다) ⑥‘-로 아니-’(예, 그로 아니시며) ⑦‘-이(주격) 아니-’(예, 百千天樂이 아니야셔) ⑧‘-이(부사파생접미사) 아니-’(예, 둗거이 아니니라) ⑨‘-고져/고쟈 아니-’(예, 두고쟈 아니리오마/보고져 아니며) ⑩‘-디 아니-’, ⑪‘-/들 아니-’ 등의 문형으로 쓰인다. ‘아니다’의 ‘-다’는 2인칭 의문형으로 설명 의문문과 판정 의문문에 두루 쓰였다. ‘군불견(君不見)’ 두시에서 상투적으로 쓰여 글자수의 계산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언해는 ‘그듸 보디 아니다’로 되는 것과 ‘그듸 ~호 보디 아니다’의 두 가지 형식이 있다. 게다가 ‘君不見’은 반복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何必走馬來爲問 君不見嵇康養生遭殺戮/엇뎨 구틔여  여 와 무르리오 그듸 보디 아니다 嵆康이 生을 保養호 주구믈 니브니라「醉爲···相看」〈두시 3:54ㄱ〉. 君不見益州城西門 陌上石笋雙高蹲/그 보디 아니다 益州城ㅅ 西녁 門ㅅ 길 우희 돌로 론 笋이 둘히 노피 蹲踞얫도다「石笋行」〈두시 3:70ㄱ〉. 君不見昔日蜀天子 化爲杜鵑似老烏/그듸 보디 아니다 昔日에 蜀ㅅ 天子ㅣ 變化야 杜鵑이 외니 늘근 가마괴 도다「杜鵑行」〈두시 17:4ㄴ〉. 君不見東川節度兵馬雄 校獵亦似觀成功/그듸 東川ㅅ 節度使의 兵馬ㅣ 雄盛호 보디 아니다 校獵호미  일운 功을 보 도다「冬狩行」〈두시 5:49ㄱ〉. 君不見瀟湘之山衡山高 山巔朱鳳聲嗷嗷/그듸 瀟湘 뫼해 衡山 노포 보디 아니다 묏 그텟 블근 鳳이 소리 嗷嗷놋다「朱鳳行」〈두시 17:2ㄴ〉. 君不見徐卿二子生絕奇 感應吉夢相追隨/그 徐卿의 두 아리 나  奇異호 보디 아니다 됴 믈 感應야 서르 조차 나도다「徐卿二子歌」〈두시 8:24ㄱ〉. 君不見道邊廢棄池 君不見前者摧折桐/그듸 긼  리옛 모 보디 아니다 그듸 알 것드럿 머귀남글 보디 아니다「君不見簡蘇徯」〈두시 19:45ㄴ〉. 君不見東吳顧文學 君不見西漢杜陵老/그듸 東吳앳 顧文學 보디 아니다 그듸 西漢ㅅ杜陵엣 늘그니 보디 아니다「醉歌···題壁」〈두시 25:49ㄱ〉. 君莫笑劉毅從來布衣願 家無儋石輸百萬/그듸 劉毅의 從來로 뵈옷 닙고셔 願던 이 웃디 말라 지븨 儋石이 업서도 百萬곰 던기더니라「今夕行」〈두시 11:39ㄴ〉.
주074)
빈. 뷔-[空]+ㄴ.
주075)
담의. 담[牆]+ㅅ. ‘닶’은 ‘’의 잘못이다. 〈중간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빗 주076)
빗
햇빛의. [日]+ㅅ#빛[光]+ㅅ. ‘짓, 하, 바’ 등과 같이 속격조사 ‘ㅅ’이 받침 ‘ㅊ’을 대체해서 쓰였다.
나조 주077)
나조
저녁에. 나조ㅎ[夕]+. ‘나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두시언해』에서는 ‘나조ㅎ’와 ‘나죄ㅎ’가 모두 ‘저녁’의 의미로 쓰였다.
늘그니 주078)
늘그니
늙은이가. 늙-[老]+은#이+∅.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소리 업시 주079)
업시
없이. 없-[無]+이.
므를 주080)
므를
눈물을. 눈[眼]+ㅅ#믈+을.
피를 드리웟노라 주081)
드리웟노라
드리우고 있노라. 들-+이+우+어#잇-++오+라.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군불견공장일색만 차로무성루수혈【두보가 여러 사람들이 걱정하여 도와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언해역】 그대는 보지 아니하였는가? 빈 담의 햇빛의 저녁에 이 늙은이 소리 없이 눈물이 피를 드리워 있노라.
*시 구절 해석 : “그대는 보지 않았는가, 빈 담장에 햇빛이 저무는데, 이 늙은이는 말없이 눈물이 피를 드리운 것을.”이라는 뜻으로, 지는 해처럼 어려운 형편을 돌아보아 도움을 주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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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투간성화양현제자(投簡成華兩縣諸子) : 이 작품은 천보(天寶) 13년(754) 늦은 가을, 두보 43세 때에 지어졌다. 당시 두보는 장안(長安)의 하두성(下杜城)에서 지내고 있었다. 하두성은 지명 상으로는 장안의 한 성이었지만 보잘것없는 장안의 변두리인데, 두보가 여기서 머물 때는 궁핍하기가 이를 데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함, 화 두 현은 함양(咸陽)과 화원(華原) 두 현을 가리킨다. ‘투간(投簡)’은 여기서는 시로서 편지를 대신해 보낸다는 뜻이다. 두보 당시에는 이미 시가 편지를 대신할 만큼 보편화되어 있음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시에서는 두보의 곤궁한 처지와 불편한 심경을 묘사하였다.
주002)
적현(赤縣) : ①적현신주(赤縣神州)를 줄인 말. ②당(唐)·송(宋)·원(元)나라 때 경도(京都)의 치소(所治)가 있던 현(縣). 경현(京縣).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03)
관조(官曹) : 관리(官吏)가 일을 보던 기관(機關). 관리가 사무를 보던 처소(處所). 즉 관아(官衙).
주004)
연구(軟裘) : 부드럽고 가벼운 가죽옷.
주005)
쾌마(快馬) : ①아주 잘 달리는 건장(健壯)한 말. ②빠른 말을 타고 편지를 전달하는 사람.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06)
경읍(京邑) : 경도(京都). 도읍(都邑)이 있는 곳.
주007)
속현(屬縣) : 상위 행정 기관에 딸린 현(縣)을 일컫는 말.
주008)
적현(赤縣)엣 관조(官曹)ㅣ : 적현의 관조가. 赤縣+에+ㅅ 官曹+이.
주009)
재걸(材傑) 사미 : 재주 걸출한 사람이. 才傑#-+ㄴ 사+이. 〈중간본〉에는 ‘시미’로 되어 있다.
주010)
렷도소니 : 꾸리어 있으니. 안겨 있으니. 리-[擁]+어#잇-+도+ㅅ+오+니. ‘리다’는 ‘NP가 (NP를) NP로 NP에 리-’의 격틀을 갖는데 대부분 목적어 논항은 문맥에 의해서 생략된다. ‘다’는 ‘불을 끄다’ 등의 동사로 그 활용형에 나오는 ‘리다’와는 다른 동사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리- : 兜羅綿에 리〈석상 23:37ㄴ〉. 大瞿曇이 슬허 리여 棺애 녀고〈월석 1:7ㄴ〉. 菩薩 ··· 싯기고 帝釋梵王이 天衣로 리니라〈월석 2:39ㄴ〉. 새배 휫도로 리니 步驟호미 가지로다(清晨合圍步驟同)「冬狩行」〈두시 5:49ㄱ-ㄴ〉.
주011)
보라온 : 부드러운. 보#+압+은. ¶보랍- : 보라 차바 머거 모미 아래 거 成佛호리라〈석상 3:40ㄱ〉. 群公이 보고 顔色 붓그리고 王室 갓겨 보랍디 아니니라(群公見慚色 王室無削弱)「過郭代公故宅」〈두시 3:66ㄱ〉.
주012)
갓옷과 : 가죽옷과. 갓#옷+과.
주013)
 로 : 빠른 말로. -[速]+ [馬]+로. ¶- : 入聲은 點 더우믄 가지로 니라〈훈언 14ㄴ〉. 블근 桂樹엔 과 서리왜 고 프른 머귀 낫과 바 러디놋다(丹桂風霜急 靑梧日夜彫)「有感五首」〈두시 5:15ㄱ〉.
주014)
어름과 : 얼음과. 어름[氷]+과.
주015)
눈과 : 눈을. 눈[雪]+과+.
주016)
당(當)야 : 당하여. 맞이하여. 맞아. 當#-+야. 〈중간본〉에는 ‘當아’로 되어 있다.
주017)
니놋다 : 다니는구나. -+니-++오+ㅅ+다.
주018)
장안(長安) : 중국의 고대 도시. 서주(西周)와 진(秦), 전한(前漢), 신(新), 전조(前趙), 전진(前秦), 후진(後秦), 서위(西魏), 북주(北周), 수(隋), 당나라 등 11개 왕조가 도읍했던 중국 제1의 고도(古都)다. 지금의 섬서성 서안(西安)에 해당한다. 한(漢)나라와 당나라 때에 가장 번성했는데, 당나라 때에는 동도(東都)인 낙양(洛陽)에 대비시켜 서도(西都) 또는 상도(上都)라 불렀다.
주019)
두릉(杜陵) : ①지명(地名). 지금의 섬서성 서안시 동남쪽에 있었다. 옛날에는 두백국(杜伯國)이었다. 진(秦)나라 때 두현(杜縣)이 설치되었고, 한선제(漢宣帝)가 동원(東原) 위에 능을 쌓아 두릉으로 불리게 되었다. 또한 이름을 바꿔 두릉현(杜陵縣)으로 고쳤다. 진(晉)나라 때는 두성현(杜城縣)으로 불렸고, 북위(北魏)에서는 두현(杜縣)이라 했는데, 북주(北周) 때 폐지되었다. ②한선제(漢宣帝)의 능묘(陵墓). ③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20)
야로(野老) : 촌야(村野)에서 사는 늙은이.
주021)
치위예 : 추위에. 칩-+이+옛+ㅅ. ‘치위’는 ‘칩-’에 명사파생접미사 ‘-이’가 결한된 어형으로 초기 정음문헌에는 ‘치’로 표기되었다. ‘더위’도 ‘치위’와 유사한 파생과정을 거친 단어이다. 참조; 치. 치. 치위. 치. 치움. ¶칩- : 칩거든 곧 칩다 니고 덥거든 곧 덥다 니니라(寒即言寒고 熱即言熱니라)〈금삼 2:39ㄴ〉.  열흘에 半 비 오니 즌 해 서르 븓드러 오라 이믜 뎌 비 리올 거시 업스니 길히 믯그럽고 오시  칩도다(一旬半雷雨 泥濘相攀牽 既無禦雨備 徑滑衣又寒)「彭衙行」〈중간두시 1:12ㄱ〉. 치 : 모 벌에며 더 치로 셜다가〈석상 9:9ㄴ〉. 치위 : 甚 치위와 더위와 비예 뫼와 셔쇼 나 록 호(祁寒暑雨에 侍立終日호)〈내훈 3:15ㄱ〉. 프른 디새 첫 치위 밧기오(碧瓦初寒外)「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두시 6:26ㄴ〉. 참조; 덥- : 더 煩惱 煩惱ㅣ 블티 다라나 거실 덥다 니라〈월석 1:18ㄱ〉. 주으리며 목 며 더위 셜워 두려 답 로 欲業의 다와다 보차미 외며〈법화 2:131ㄱ〉. 늘근 몸 덥긔 호란 燕ㅅ 玉  겨지블 求고 주으륨 充實케 호란 楚ㅅ 말와 랑노라(煖老須燕玉 充饑憶楚萍)「獨坐二首」〈두시 3:41ㄴ-42ㄱ〉.
주022)
뉘 : 누가. 미지칭 ‘누’에 주격조사가 통합한 것으로 ‘누’의 주격형은 ‘·뉘(거성)’, 속격형은 ‘:뉘(상성)’, 목적격형은 ‘:눌(상성)’이다.
주023)
올로 : 홀로. ¶이 길헤 올로 녀시니〈월석 22:7ㄱ〉. 生涯ㅣ 올로 다봇 올마 니 호라(生涯獨轉蓬)「投贈···府翰二十韻」〈두시 5:43ㄱ-ㄴ〉.
주024)
슬허니오 : 슬퍼하는가? 슳-[悲]+어#-++니+오. ‘슳어다’는 ‘슳다’에 동사파생의 ‘-어-’가 결합되어 생성된 단어이다. ‘슳다’에 형용사파생접미사 ‘-브-’가 결합되면 파생동사 ‘슬퍼다’가 형성되는데 이 낱말로부터 현대국어의 ‘슬퍼하다’가 형성되었다. ¶슳- : 太子ㅣ 門 밧긔 가 보신 後로 世間 슬흔 미 나날 더으거시〈석상 3:22ㄱ〉. 도라와 비루소 내 슬허노라(歸來始自憐)「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주025)
두릉(杜陵)엣 햇 늘그니 : 두릉 들판의 늙은이. 杜陵+에+ㅅ ㅎ[野]+애+ㅅ 늙-[老]+은#이. 즉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26)
 : 뼈가. [骨]+이.
주027)
것글 : 꺾여질. -[折]+을. ‘다’는 자타동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피동의 의미를 가진 ‘것거디다’도 있다. ¶-(자동사) : 王ㄱ 메 집 보히 것거늘 라 너교〈석상 24:6ㄱ〉. 金채 것고 아홉 리 주그니(金鞭斷絶九馬死)「哀王孫」〈두시 8:1ㄴ〉. 다(타동사) : 녀나 怨讐ㅅ 도 다 것거 滅도다〈월석 18:56ㄴ〉.  使臣 기르마애 것겟도다(骨斷使臣鞍)「王命」〈두시 5:12ㄱ〉.
주028)
것거디- : 太子ㅣ 화 시니 화리 것거디거늘〈석상 3:13ㄴ〉. 치운 매 노 남기 것거듀믈 時로 듣노라(時聽嚴風折喬木)「久雨···不至」〈두시 5:35ㄴ〉.
주029)
도다 : 듯하도다. #-+도+다.
주030)
황예(荒穢) : 황무(荒蕪). 거칠고 황폐해짐.
주031)
청문(靑門) : 한(漢)나라 때 장안성(長安城)의 동남문(東南門). 본래 이름은 패성문(霸城門)인데, 문의 빛깔이 푸른색이라 청문 또는 청성문(靑城門)으로 불렀다.
주032)
도잠(陶潛) : 365~427. 동진(東晉) 여강(廬江) 심양(潯陽) 사람. 자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고, 문 앞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어 놓고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자호했다. 일설에는 이름이 연명(淵明)이고, 자가 원량이라고도 한다. 도간(陶侃)의 증손이다. 고을의 좨주(祭酒)가 되었지만 관리의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직한 뒤 돌아왔다. 다시 생활을 위해 진군참군(鎭軍參軍)과 건위참군(建衛參軍) 등의 관직을 지냈다. 팽택현령(彭澤縣令) 때 오두미(五斗米) 때문에 허리를 굽히는 일을 견뎌내지 못하면서 항상 전원생활에 대한 사모의 정을 달래지 못하다가 안제(安帝) 의희(義熙) 2년(406) 41살 때 누이의 죽음을 구실 삼아 팽택현령을 사임한 뒤 다시는 관계(官界)에 나가지 않았다. 이때 쓴 글이 「귀거래사(歸去來辭)」다. 의희 말에 저작좌랑(著作佐郞)으로 불렸지만 나가지 않았다. 스스로 증조가 진(晉)나라 때의 재보(宰輔)였으면서 후대에 몸을 굽힌 것을 부끄럽게 여겨 남조 송나라에 들어서자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지은 문장에는 모두 연월(年月)을 달았는데, 의희 이전에는 진나라 연호를 썼다가 남조 송나라 이후에는 갑자(甲子)만 달았다. 직접 농사를 지어 자급했고, 술을 좋아했으며, 시문을 잘 지었다. 시풍(詩風)은 후대의 많은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쳐 문학사상 큰 업적을 남겼다. 시 외에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과 「도화원기(桃花源記)」 등 산문에도 뛰어났고, 지괴소설집(志怪小說集) 『수신후기(搜神後記)』의 작자로도 알려져 있다. 사시(私諡)는 정절(靖節)이다. 저서에 『도연명집(陶淵明集)』이 있다.
주033)
동릉후(東陵侯) : 한(漢)나라 소평(邵平)을 일컫는 말. 동릉(東陵)에 오이를 심은 일로 유명하다.
주034)
소평(邵平) : ?~?. 소평(召平)으로도 쓴다. 진(秦)나라 광릉(廣陵) 사람. 동릉후(東陵侯)다. 진나라가 망한 뒤 포의(布衣)로 장안성(長安城) 동쪽에 살면서 참외를 심어 생업으로 삼았는데, 그 맛이 좋아 소평과(召平瓜) 또는 동릉과(東陵瓜)라 하였다. 여후(呂后)가 한신(韓信)을 죽인 뒤 고조(高祖)가 소하(蕭何)를 상국(相國)에 임명하면서 오천호(五千戶)에 봉했다. 그때 그가 소하에게 봉상(封賞)을 사양하고 사재를 털어 군대를 도우라고 충고해 고조의 혐의에서 벗어나게 했다.
주035)
심곤 : 심은. -[植]+오+ㄴ. 현대국어의 ‘심다’에 해당하는 15세기 국어는 ‘심므다’와 ‘다’가 있다. ¶- : 아마도 福이 조이 아니 심거 몯 꺼시라〈석상 6:37ㄴ〉. 보 심군 禾苗ㅣ 九月 예(春苗九月交)「遣興三首」〈두시 5:35ㄱ〉.
주036)
엄이 : 콩싹이. [豆]+엄[苗]+이. 〈중간본〉에는 ‘콩엄이’로 되어 있다. ¶ :  爲大豆〈훈해 55〉. 서르 자바 바 녀 보니(相携行豆田)「甘林」〈두시 15:5ㄱ〉. 엄 : 神足 엄 나미 고〈법화 7:129ㄴ〉. 錦으로 혼 줄와 엄  대예  며기 니더니라(錦纜牙檣起白鷗)「秋興五首」〈두시 6:9ㄴ〉.
주037)
일 : 일찍. 일[早]. 원문의 ‘早’에 대한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는 ‘早’에 대한 번역으로 ‘일’과 ‘일즉’이 모두 쓰이기도 하나 ‘일’은 ‘早’에 대한 번역으로 ‘일즉’은 ‘曾’에 대한 번역으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스로 히 우후로 자 가 쉬운 일브터 화셔 우후로 노 리예 달 거시니라〈번소 8:5ㄴ〉. 天山앤 일 화 거렛도다(天山早掛弓)「投贈···府翰二十韻」〈두시 5:41ㄱ〉. 일즉 金盌이 人間애 냇도다(早時金盌出人間)「諸將五首」〈두시 5:44ㄱ〉. 道術에 일즉 들 머믈오니 先生이 일 昏蒙호 텨리니라(道術曾留意 先生早擊蒙)「寄司馬山人十二韻」〈두시 9:6ㄴ〉.
주038)
거츨오 : 거칠고. 거츨-[荒]+오. ¶거츨- : 魔王이 怒 道理 거츨 無數 軍이 淨甁을 몯 무니〈월천 26ㄱ〉. 뫼히 거츨오 사미 젹고 히 幽僻니 아 나조 아답도다(山荒人民少 地僻日夕佳)「柴門」〈두시 6:47ㄴ〉.
주039)
외 : 오이. 외[瓜].
주040)
시므던 : 심던. 시므-[植]+더+ㄴ. 15세기에는 ‘시므다’는 ‘다’가 공존하였다. 중세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자는 자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후자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쓰이나 ‘시므시-, 시므며’도 쓰였다. ¶시므- : 園은 菓實 시므 히오〈월석 21:39ㄴ〉. 穀食 시므던 바 이제 피 흐르놋다(有田種穀今流血)「憶昔二首」〈두시 3:62ㄱ-ㄴ〉. - : 곧 端正 相 잇  나하 아래브터 德根源을 심거〈석상 21:8ㄱ〉. 𦡳月에 다시 모로매 심굴 디니라(臘月更須裁)「舍弟···此詩」〈두시 7:9ㄱ〉.
주041)
히 : 땅이. ㅎ+히. ‘ㅎ’는 ‘ㅎ말음체언’이다.
주042)
새려 : 새로. 새[新]+려. ‘려’는 부사화접미사이다.
주043)
어러 : 얼어. 얼-[凍]+어. ¶얼- : 罪性이 믌겨리 어름 어러 니롬 니라〈남명 하:58ㄱ〉. 미 어러 고기 잡디 몯릴 수이 얻디 몯리니(河凍未漁不易得)〈두시 16:60ㄴ〉.
주044)
도다 : 터졌도다. -[裂]+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 : 바래  끼르믄 傭人이  바리 디 아니케 니〈법화 2:243ㄱ〉. 中原에 音書ㅣ 업서 도라가 得디 몯호니 손바리 어러 고 갓과 쾌 주게라(中原無書歸不得 手腳凍皴皮肉死)「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두시 25:26ㄴ〉.
주045)
항령(項領) : 굵은 목 줄기.
주046)
조정(朝廷) : 임금이 나라의 정치를 의논하거나 집행하는 곳. 또는 그에 따르는 기구. 조가(朝家). 조단(朝端). 조당(朝堂). 조저(朝著).
주047)
고구(故舊) : 오래 동안 사귄 옛 친구.
주048)
예수(禮數) : ①옛날에 명위(名位)에 맞춰 나눈 예의(禮儀)의 등급제도(等級制度). 또한 관계(官階)의 품급(品級). ②예절(禮節).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49)
 아 : 마을의 아이. ㅎ[村]+ㅅ 아[兒].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중간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주050)
굴근 모기 : 굵은 목이. 굵-[大]+은 목[頸]+이. 원래의 ‘모기 굵게’에서 교정된 것이다.
주051)
이럿고 : 이루고 있고. 이루어져 있고. 되어 있고. 일-[成]+어#잇-+고. ‘일다’의 사동사는 ‘이루다’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일- : 成은 일 씨라〈훈언 13ㄱ〉. 城郭 졧 지비 일어  로 니유니(背郭堂成蔭白茅)「堂成」〈두시 7:1ㄱ〉. 이루- : 太子ㅣ 니샤 네 가짓 願을 일우고져 노니〈석상 3:21ㄱ〉. 갓가 일워 按 야 靑丘 아냇도다(削成如桉抱靑丘)「承聞···絕句十二首」〈두시 5:23ㄱ〉.
주052)
조정(朝廷)ㅅ 녯 버디 : 조정의 옛 벗이. 朝庭+ㅅ 녜+ㅅ 벋[友]+이.
주053)
예수(禮數)ㅣ 그첫도다 : 예교가 끊어져 있도다. 禮數+이 긏-[斷]+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긏- : 法訓이 긋디 아니니라〈석상 6:36ㄱ〉. 父母ㅅ 恩惠 그처 리고(棄絕父母恩)「前出塞九首」〈두시 5:26ㄱ〉. 그치- : 한비 아니 그치샤 날므를 외오시니〈용가 68〉.  華山 陽애 보내욜 디니라(歸馬華山陽)「有感五首」〈두시 5:14ㄱ〉.
주054)
소완(踈頑) : 거칠고 미련함. 완고하고 어리석음.
주055)
리여 : 버리어. 리-[棄]+이+어. ‘리이다’는 ‘리다’의 피동사이다. ‘리이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보인다. ¶리- : 捨 릴 씨니 내 恩惠 려 衆生 줄 씨라〈석상 9:6ㄴ〉. 시름왼 드로 구룸 髻髮을 리니 허리와 四支예 貴 오시 어위도다(愁思拋雲髻 腰支膡寶衣)「卽事」〈두시 5:17ㄱ〉. 리이- : 이 무른 엇뎨 히 업스리오   이스를 니버 리이리라(此輩豈無秋 亦蒙寒露委)「種萵茞幷序」〈두시 16:66ㄴ〉.
주056)
다 : 함께. 다[與]. ¶다 : 우리도  다 微妙 第一法을 得야〈개법1:84ㄱ〉.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 며 狄과 다 戎의게 이슈미녀(中原有鬪爭 况在狄與戎)「前出塞九首」〈두시 5:29ㄴ〉.
주057)
달오니 : 다르니. 다-[異]+오+니.
주058)
며 : 하물며. ¶모맷 고기라도 비 사 주리어니 며 녀나 쳔랴녀〈석상 9:13ㄱ〉/ 며 더운 저글 當호미녀(况當朱炎赫)「白水···高齋三十韻」〈두시 7:23ㄱ〉.
주059)
어려 : 어리석어. 어리-[愚]+어. ¶어리- : 어리여 미혹야 邪曲 보 信〈석상 9:36ㄴ〉. 이 말미  足히 어리도다(此語亦足爲愚蒙)「杜鵑行」〈두시 17:6ㄱ〉.
주060)
백결(百結) : 헝겊을 여러 번 대어 꿰매 만든 의복(衣服).
주061)
주려 : 굶주려. 주리-[饑]+어. ¶주리- : 갓 주리며 치우믈 저코 죽 苦 보디 아니니〈영가 상23ㄱ〉. 주린 버미 뫼로 려오며 龍 거슯수미  므레 나니(虎之飢下巉嵓 蛟之橫出清泚)「寄狄明府博濟」〈두시 8:18ㄴ〉.
주062)
누운 : 누운. 눕-[臥]+은.
주063)
다마다 : 곳마다. 다[所]+마다. ¶다마다 : 부텨 說法신 다마다 다 能히 놀애로 브르니라〈월석 1:15ㄱ〉. 잣남 採取 다마다 주메 기 놋다(採栢動盈掬)〈두시 8:66ㄴ〉.
주064)
열흘옴 : 열흘씩. 열흘[十日]+옴. ¶-옴 : 그듸내 各各  아옴 내야 내 孫子 조차가게 라〈석상 6:9ㄴ〉. 맷 城이 改變  머것니 번곰 올오니  디위옴 새롭도다(江城含變態 一上一回新)「上白帝城二首」〈두시 14:6ㄱ〉.
주065)
헌 : 헐은. 헐-[弊]+은. ¶ 諸天히 阿修羅와 싸 저긔 갈해 헌  旃檀香 면 즉자히 암니〈월석 1:26ㄴ〉. 곧 巾几 옮겨오 지  돗 내 헌 지브로셔 나가라(直作移巾几 秋帆發弊廬)「寄李十四員外布十二韻」〈두시 20:52ㄱ〉.
주066)
갓오 : 가죽옷은. 갓+옷+.
주067)
엇뎨 :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이와 관련된 낱말로 ‘엇디’로 『두시언해』에서 보인다.
주068)
니 : 이어. 닛-[繼]+어. 〈중간본〉에는 ‘니어’로 되어 있다. ¶닛- : 種子와 根身을 자바 디녀 나미 서르 니 디니〈월석 11:52ㄱ〉. 凱歌 獻호미 날로 자최 니니 두 蕃이 安靜야 혜아룔 이리 업도다(獻凱日繼踵 兩蕃靜無虞)「後出塞五首」〈두시 5:32ㄱ〉.
주069)
온 고 : 백 곳을. 여러 군데를. 온[百] 곧[處]+.
주070)
 : 맺을. 꿰맬. 기울. -[結]+을. ¶- : 다가 業 조미 重면 地獄애 기리 이셔 버서 時節이 업스리라〈월석 21:121ㄱ〉. 댓 고지 여르미 디 아니니 네의 아 주으륨 모 思念노라(竹花不結實 念子忍朝饑)「述古三首」〈두시 3:55ㄴ〉. 그르메 납 우 남긔 브텟노니 넉슨 蜃氣ㅣ 쳿 樓에 나봇기놋다(影著啼猿樹 魂飄結蜃樓)「第五弟豐이~寄此二首노라」〈두시 8:45ㄴ〉. 머리터리 자 남진 겨지비 외요니 돗기 그 卧床애 덥디 아니얫다(結髮爲夫妻 席不暖君床)「新婚別」〈두시 8:67ㄱ〉.
주071)
미리오 : 따름이겠는가? +이+리+오. ‘오’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하는 설명의문어미이다.
주072)
민휼(憫恤) : 형편을 딱하게 여겨 도움을 줌. 구휼(救恤)함.
주073)
그듸 보디 아니다 : 그대는 보지 아니하는가? 그대는 보지 않는가? 15세기 국어의 ‘아니다’는 ①‘어근+다’의 부정(예, 出世 아니다) ②‘-가 아니가/-가 아니릿가’ 의문문(예, 便安신가 아니신가, 그츠리가 아니리가) ③‘-어 아니다’(예, 깃거 아니야) ④장형사동문의 부정(예, 녇게 아니리니) ⑤‘-다/라 아니-’(예, 절시다 아니리고/阿羅漢이로라 아니노다) ⑥‘-로 아니-’(예, 그로 아니시며) ⑦‘-이(주격) 아니-’(예, 百千天樂이 아니야셔) ⑧‘-이(부사파생접미사) 아니-’(예, 둗거이 아니니라) ⑨‘-고져/고쟈 아니-’(예, 두고쟈 아니리오마/보고져 아니며) ⑩‘-디 아니-’, ⑪‘-/들 아니-’ 등의 문형으로 쓰인다. ‘아니다’의 ‘-다’는 2인칭 의문형으로 설명 의문문과 판정 의문문에 두루 쓰였다. ‘군불견(君不見)’ 두시에서 상투적으로 쓰여 글자수의 계산에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언해는 ‘그듸 보디 아니다’로 되는 것과 ‘그듸 ~호 보디 아니다’의 두 가지 형식이 있다. 게다가 ‘君不見’은 반복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何必走馬來爲問 君不見嵇康養生遭殺戮/엇뎨 구틔여  여 와 무르리오 그듸 보디 아니다 嵆康이 生을 保養호 주구믈 니브니라「醉爲···相看」〈두시 3:54ㄱ〉. 君不見益州城西門 陌上石笋雙高蹲/그 보디 아니다 益州城ㅅ 西녁 門ㅅ 길 우희 돌로 론 笋이 둘히 노피 蹲踞얫도다「石笋行」〈두시 3:70ㄱ〉. 君不見昔日蜀天子 化爲杜鵑似老烏/그듸 보디 아니다 昔日에 蜀ㅅ 天子ㅣ 變化야 杜鵑이 외니 늘근 가마괴 도다「杜鵑行」〈두시 17:4ㄴ〉. 君不見東川節度兵馬雄 校獵亦似觀成功/그듸 東川ㅅ 節度使의 兵馬ㅣ 雄盛호 보디 아니다 校獵호미  일운 功을 보 도다「冬狩行」〈두시 5:49ㄱ〉. 君不見瀟湘之山衡山高 山巔朱鳳聲嗷嗷/그듸 瀟湘 뫼해 衡山 노포 보디 아니다 묏 그텟 블근 鳳이 소리 嗷嗷놋다「朱鳳行」〈두시 17:2ㄴ〉. 君不見徐卿二子生絕奇 感應吉夢相追隨/그 徐卿의 두 아리 나  奇異호 보디 아니다 됴 믈 感應야 서르 조차 나도다「徐卿二子歌」〈두시 8:24ㄱ〉. 君不見道邊廢棄池 君不見前者摧折桐/그듸 긼  리옛 모 보디 아니다 그듸 알 것드럿 머귀남글 보디 아니다「君不見簡蘇徯」〈두시 19:45ㄴ〉. 君不見東吳顧文學 君不見西漢杜陵老/그듸 東吳앳 顧文學 보디 아니다 그듸 西漢ㅅ杜陵엣 늘그니 보디 아니다「醉歌···題壁」〈두시 25:49ㄱ〉. 君莫笑劉毅從來布衣願 家無儋石輸百萬/그듸 劉毅의 從來로 뵈옷 닙고셔 願던 이 웃디 말라 지븨 儋石이 업서도 百萬곰 던기더니라「今夕行」〈두시 11:39ㄴ〉.
주074)
뷘 : 빈. 뷔-[空]+ㄴ.
주075)
닶 : 담의. 담[牆]+ㅅ. ‘닶’은 ‘’의 잘못이다. 〈중간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주076)
빗 : 햇빛의. [日]+ㅅ#빛[光]+ㅅ. ‘짓, 하, 바’ 등과 같이 속격조사 ‘ㅅ’이 받침 ‘ㅊ’을 대체해서 쓰였다.
주077)
나조 : 저녁에. 나조ㅎ[夕]+. ‘나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두시언해』에서는 ‘나조ㅎ’와 ‘나죄ㅎ’가 모두 ‘저녁’의 의미로 쓰였다.
주078)
늘그니 : 늙은이가. 늙-[老]+은#이+∅.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주079)
업시 : 없이. 없-[無]+이.
주080)
므를 : 눈물을. 눈[眼]+ㅅ#믈+을.
주081)
드리웟노라 : 드리우고 있노라. 들-+이+우+어#잇-++오+라.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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