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하)

  • 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하)
  • 기간 상(寄簡上)
  • 정 전설이 시주로부터 귀가하며[鄭典設自施州歸]
메뉴닫기 메뉴열기

정 전설이 시주로부터 귀가하며[鄭典設自施州歸]


典設 주001)
전설(典設)
중국 궁관(宮官)의 하나로, 내명부(內命婦) 정6품. 처음 이름은 사설(司設). 위장(幃帳), 인석(茵席), 쇄소(灑掃), 장설(張設)에 관한 일을 맡았다. 나중에 전설(典設)로 개칭하고, 종7품이 되었다.
自施州歸
주002)
정전설자시주귀(鄭典設自施州歸)
이 작품은 대력(大曆) 2년(767) 기주(夔州)에 있을 때 지어졌다. 시에는 정 전설(鄭典設)이 시주(施州)에 부임해 갔다가 시주에서 떠날 때까지의 사정이 잘 그려져 있고, 아울러 대면하기를 생각했다는 말로 시주에 가고 싶은 속내를 드러냈다. 정 전설의 이름은 미상이다.

정전설자시주귀
(정 전설이 시주로부터 귀가하며)

吾憐滎陽 주003)
형양(滎陽)
지명. 정 전설이 살던 고을로, 지금의 하남(河南) 정주(鄭州)다. 여기서는 정 전설을 대신해 쓴 말이다.
秀 冒暑初有適【滎陽은 鄭氏之郡也ㅣ라】

나 주004)
나
나는. 시의 첫 부분인데 주격조사가 아닌 보조사 ‘’을 썼다. 『두시언해』에서 언해가 ‘나’으로 시작하는 시가 예문과 같이 하나 더 있다. ¶나 諸侯의 늘근 賓客이로니(甫也諸侯老賓客)「醉爲···相看」〈두시 3:51ㄴ〉.
榮陽애 주005)
형양(榮陽)애
형양에. 榮陽+애. 형양(榮陽)은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이다.
秀美호 주006)
수미(秀美)호
수미함을. 수미-+오+ㅁ+.
노니 주007)
노니
사랑하니. 가엽게 여기니. -++오+니. 15세기의 ‘-’은 ‘사랑하다’의 뜻으로 여기서는 원문의 ‘憐’에 대응한다. 『두시언해』에서 ‘憐’은 고유어와 한자어로 언해되었는데, 고유어는 동사로 ‘어엿비 너기다, 너기다, 슳다, 슬허다, 다, 오다, 다, 맛다’ 등으로, 형용사로 ‘어엿브다, 슬프다’ 등으로 언해되었고, 한자어로는 ‘愛憐다, 憐愛다, 怜愛다’ 등으로 언해되었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어엿비 너기- : 거우룻 가온 늘근 顔色 萬一에 故人이 어엿비 너기라(鏡中衰謝色 萬一故人憐)「覽鏡呈柏中丞」〈두시 3:43ㄱ〉. 너기- : 제 슬피 너교 니베니라(蓋蒙其傷憐而已)⟪退賊示官吏幷序⟫元結次山〈두시 25:39ㄱ〉. 슳- : 人日에 그를 서 草堂애 보내노니 故人 故鄕 호 아라히 슬노라(人日題詩寄草堂 遙憐故人思故鄕)「人日寄杜拾遺」蜀州刺史高適〈두시 11:4ㄱ〉. 슬허- : 주거 가더든 누를 브터 알외리오 도라와 비루소 내 슬허노라(死去憑誰報 歸來始自憐)「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 : 世옛 사미 호 도로 야리니 므슴 지츼 奇異호 리오(世人憐復損 何用羽毛奇)「鸚鵡」〈두시 17:17ㄴ〉.  : 여듧 잣 모미 長常 모 누늬  어두믈 듣디 몯리로다(不聞八尺軀 常受衆目憐)「贈李十五丈別」〈두시 22:53ㄴ〉. - : 平陰엣 音信이 갓가이 이시니  사라슈믈 아라히 노라(近有平陰信 遙憐舍弟存)「得舍弟消息二首」〈두시 8:35ㄴ〉. 도 혜요매 俊邁호 고 總角 저긔 聰明호 다라(數金憐俊邁 總角愛聰明)「不歸」〈두시 24:61ㄴ〉. 오- : 되 아 무슈믄 도로혀 뎌러니 이슈미 어려우니 楚ㅅ 겨지븨 허리와 四支  可히 오도다(胡童結束還難有 楚女腰支亦可憐)「淸明二首」〈두시 11:13ㄴ〉. 허리 아랫 寶玦 프른 珊瑚로 론 거시로소니 可히 온 王孫이 긼 모해셔 우놋다(腰下寶玦靑珊瑚 可憐王孫泣路隅)「哀王孫」〈두시 8:1ㄴ〉. - : 나도  東蒙山 人客이로니 그듸 호 第兄 티 노라(余亦東蒙客 憐君如弟兄)「與李···隱居」〈두시 9:11ㄱ〉. 맛- : 다 그 맛야셔 醉야 업드로니 죠고맷 미 降호  알와라(盡憐君醉倒 更覺片心降)「季秋···三首」〈두시 15:53ㄱ〉. 어엿브- : 城郭이 져고 도기 屠殺 아니니 사미 가난야 슬퍼 可히 어엿블니라(城小賊不屠 人貧傷可憐)⟪退賊示官吏幷序⟫元結次山〈두시 25:39ㄴ〉. 슬프- : 可히 슬프다 곧마다 사 지븨 와 깃니 飄飄히 이 모 브텨슘과 어느 다료(可憐處處巢君室 何異飄飄託此身)「燕子來어 舟中作이라」〈두시 17:16ㄴ〉. 愛憐- : 長年 篙師ㅣ오 三老 柁工이라 捩 搖柁也ㅣ라 開頭 初行船也ㅣ라 이  잘 녀 여 가 깃거니니라(長年三老遙憐汝 捩柁開頭捷有神)「撥悶」〈두시 3:32ㄱ〉. 憐愛- : 驥子 各別히 養飼야 神俊호 憐愛니라(別養驥子憐神俊)「天育驃騎歌」〈두시 16:40ㄴ〉. 怜愛- : 世亂 저긔 네의 져고 怜愛노니 지비 가난니 어믜 恩慈 울워렛니라(世亂憐渠小 家貧仰母慈)「遣興」〈두시 8:47ㄱ〉.
더위 주008)
껴. -[冒]+어. ‘다’는 자타동 양용동사이며 타동사 용법의 ‘다’의 피동사로는 ‘이다’와 ‘디다’가 쓰이기도 하였다. ‘다’는 ‘구름이 끼다, 물이 끼다, 팔찌를 끼다, 창을 팔에 끼다’의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무릅쓰다[冒]’의 의미이다. ¶다[冒] : 九日에 이 시름니 時節을 디나록 어려운 길헤  가놋다(九日應愁思 經時冒險艱)「九日奉寄嚴大夫」〈두시 11:31ㄱ〉. 아래 前生브터 根이 니근 天龍八部ㅣ 一時예 圍繞 님 구룸  얫더니〈월석 4:46ㄱ〉.  안개 가지며  여 잇 프른 대와 여러 가짓 일훔 난 곳과〈번박 70ㄱ〉. 侍臣이 님 믈 스니 賦ㅣ 녯 사게 엿 죄 잇도다(侍臣書王夢 賦有冠古才)「雨三首」〈두시 12:13ㄱ〉. 다(자동사) : 아래 前生브터 根이 니근 天龍八部ㅣ 一時예 圍繞 님 구룸  얫더니〈월석 4:46ㄱ〉. 錦幪은 기르마 우희  거시라 此 皆言賊騎ㅣ 充滿京中也ㅣ라(合昏排鐵騎 清旭散錦幪)「徃在」〈중간두시 4:20ㄱ〉. 이 더운 구루미 고 비  오 니니라(火雲無時出 飛電常在目)「三川觀水漲二十韻」〈두시 13:6ㄴ〉. 百姓이 디 몯앳니 되 리 乾坤애 半만 도다(蒼生未蘇息 胡馬半乾坤)「建都十二韻」〈두시 13:32ㄴ〉. 다(타동사) : 圓頓敎 金龍이 바래 나니 籠 디 마롤 디어다〈남명 하:38ㄱ〉. 니건  涪江애 나못 닙 딜 제 槍을 희 고 이 더닌 뉘 짓아오(去秋涪江木落時 臂槍走馬誰家兒)〈중간두시 4:33ㄱ〉. 셔울히 구름  뫼 밧기로소니 音問ㅅ 글워리 괴외야 오디 아니놋다(京洛雲山外 音書靜不來)「雲山」〈두시 3:27ㄴ〉. 智慧와 예 님금 스치샤미 드롓니 나며 드로매 諸公의게 옛도다(智謀垂睿想 出入冠諸公)〈두시 5:41ㄴ〉. 온 가짓 보로 허리옛  미고 眞珠로   거싀 얼겟도다(百寶裝腰帶 眞珠絡臂鞲)「卽事」〈두시 16:51ㄴ〉. 이- :  안개 가지며  여 잇 프른 대와 여러 가짓 일훔 난 곳과〈번박 70ㄱ〉. 侍臣이 님 믈 스니 賦ㅣ 녯 사게 엿 죄 잇도다(侍臣書王夢 賦有冠古才)「雨三首」〈두시 12:13ㄱ〉. 디- : 衆生과 부텨왜 本來 이시며 디여 變호매 다디 아니호  實相이오〈월석 11:12ㄱ〉.
처 주009)
처
처음. 〈중간본〉에는 ‘처엄’으로 되어 있다.
가미 주010)
가미
감이. 가-[去]+오+ㅁ+이. ‘가’는 상성이다.
잇도다

【한자음】 오련형양수 모서초유적【형양(滎陽)은 정씨가 태어난 곳이다.】
【언해역】 나는 형양에 수미(秀美)함을 가엽게 여기니, 더위를 무릅써 처음 감이 있도다!
*시 구절 해석 : “내가 형양(滎陽)이 빼어남을 사랑하노니, 더위를 무릅쓰고 처음 갔다.”라는 뜻으로, 형양의 명성과 자신의 방문 소식을 전하는 말이다.

名賢慎出處 不肯妄行役 주011)
행역(行役)
옛날에 병역(兵役)이나 노역(勞役) 또는 공무(公務)에 복무하기 위해 밖으로 나아가는 일.

일홈난 주012)
일홈난
이름난. 일홈#나-+ㄴ. 15세기 국어에서 ‘명(名)’의 뜻으로는 ‘일홈’보다 ‘일훔’이 더 많이 쓰였다.
어딘 주013)
어딘
어진. 어딜-[賢]+ㄴ.
사 나며 드러슈믈 주014)
나며 드러슈믈
나며 들어 있음을. 나-+며 들-+어#잇-+우+ㅁ+을. 원문의 출처(出處)에 대한 번역이다. 출처(出處)는 ‘관직에 나아감과 물러나 집에 있음’을 말한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삼가 간대로 주015)
간대로
망녕되이. 허망하게.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함부로. ‘간대[妄]+로’로 구성된 파생부사. 원문의 ‘妄’에 대한 번역이다. ¶간대로 : 艱難 사미 간대로 帝王이로라 일훔다가〈능엄 6:112ㄴ〉. 有志 士 간대로 뮈요 앗기건마(志士惜妄動)「別崔潩因寄薛據孟雲卿」〈두시 23:32ㄴ-33ㄱ〉.
녀뇨 주016)
녀뇨
다님을. 녀-#니-+오+ㅁ+.
즐기디 아니니라

【한자음】 명현신출처 불긍망행역
【언해역】 이름난 어진 사람은 나며 들어 있음을 삼가 헛되이 다님을 즐기지 아니하네!
*시 구절 해석 : “이름난 어진 사람이 나고 머묾을 삼가, 망령되이 나다니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로 해석되며, 명성이 있는 현자(賢者)는 상황에 따라 출처를 함부로 하지 않아 신중하게 행동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旅茲殊俗遠 竟以屢空迫 南謁裴施州 氣合無險僻【言典設이 客逺方야 乏食而謁施州니 意氣相合야 無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7ㄴ

險陂偏僻也ㅣ라】

이 다 風俗이 먼  주017)
풍속(風俗)이 먼 
풍속이 먼 데. 즉 정 전설(鄭典設)이 풍속이 많이 다른 곳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나그내 외야 매 조 주018)
조
자주. ‘조’는 ‘-’에 부사화접미사 ‘오’가 결합되어 파생된 낱말이다.
뷔유믜 주019)
뷔유믜
빔의. 뷔-[空]+우+ㅁ+의.
逼迫호로  南 녀그로 裴施州를 뵈라 주020)
뵈라
뵈러. 배알하러. 뵈-[謁]+라. 원문의 ‘알(謁)’을 번역한 낱말이다. ¶뵈-(배알하다) : 須達이 라고 몯내 과 호 부텨 뵈 禮數를 몰라〈석상 6:20ㄴ〉. 南 녀그로 裴施州를 :뵈라 가니(南謁裴施州)「鄭典設自施州歸」〈두시 19:27ㄱ〉.
가니 氣運이 마자 주021)
마자
맞아. 맞-+아.
險僻호미 업도다 주022)
험피(險僻)호미 업도다
험난함을 피함이 없도다.

【한자음】 여자수속원 경이루공박 남알배시주 기합무험벽【전설(典設)이 먼 지역에서 나그네가 되어 식량이 부족해 시주(施州)를 만나니 서로 의기가 투합하여 험난하고 편벽된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언해역】 이 다른 풍속(風俗)이 먼 데 나그네 되어 마침내 자주 빔의 핍박(逼迫)함으로써 남녘으로 배 시주(裴施州)를 뵈러 가니 기운이 맞아 험난함을 피함이 없도다!
*시 구절 해석 : “이 다른 풍속이 먼 곳에 나그네가 되어, 마침내 자주 궁핍함에 몰렸지. 남쪽으로 배 시주(施州)를 뵈오니, 의기가 맞아 험난하고 편벽됨도 꺼리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정 전설(鄭典設)이 지방을 떠돌 때 생활이 힘들어지자 배 시주(施州)를 만났는데, 서로 마음이 맞아 험한 지형도 꺼리지 않고 교유했다는 말이다. 4구로 된 연면구로 되어 있다.

攀援懸根木 登頓 주023)
등돈(登頓)
위아래로 오르내리면서 걸어가는 것.
入失石 주024)
입시석(入失石)
몰시석(沒矢石). 화살이 돌덩이를 꿰뚫고 지나가 박혀 보이지 않는다는 말. 화살의 힘이 아주 강력한 것을 비유한다.
李廣 주025)
이광(李廣)
?~기원전 119. 한(漢)나라 때의 농서(隴西) 성기(成紀) 사람. 문제(文帝) 때 양가(良家)의 자제로 종군하여 흉노를 격퇴하여 낭(郞)이 되고, 무기상시(武騎常侍)를 지냈다. 경제(景帝) 때 효기도위(驍騎徒尉)에 올랐다. 나중에 농서, 북지(北地), 안문(雁門) 등 군(郡)의 태수를 역임했다. 무제(武帝) 때 입조하여 미앙위위(未央衛尉)가 되고, 우북평태수(右北平太守)를 지냈다. 활을 잘 쏘았으며, 병졸을 아끼고 잘 이끌어 모두 날래고 용맹해 전투하기를 좋아했다. 흉노가 두려워하여 몇 년 동안 감히 국경을 침범하지 못하고 비장군(飛將軍)이라 칭송했다. 일곱 군데 변방 군의 태수를 지냈고, 전후 40여 년 동안 군대를 이끌고 흉노와 대치하면서 7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다. 병사들의 마음을 깊이 얻었지만 끝내 봉후(封侯)되지는 못했다. 원수(元狩) 4년(기원전 119) 대장군 위청(衛靑)을 따라 흉노를 공격했다가 길을 잃고 문책을 받자 자살했다.
이 見石如虎고 射之没矢니 入矢石은 渭石之如虎ㅣ니 此 言典設의 所經道途險阻다】

불휘 주026)
불휘
뿌리가. 불휘+∅.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엿 주027)
엿
달려 있는. 즉 뿌리가 땅에서 솟아나와 공중에 달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는 뜻이다.
남글 주028)
남글
나무를. 나모/남ㄱ+을.
더위잡곡 주029)
더위잡곡
더위잡고. 붙잡고. 더위#잡-+고+ㄱ(강세첨사).
주030)
화살.
드 주031)
드
드는. 들-[入]++ㄴ. 현대역으로는 ‘든’이 맞지만 여기서는 ‘드’으로 번역되어 있다.
돌해 주032)
돌해
돌에. 돌ㅎ+애. ‘돌ㅎ’은 ‘ㅎ’ 말음체언이다. 〈중간본〉에는 ‘놀해’로 되어 있다.
오려 주033)
오려
오르내려. 오-#리-+어.
가도다

【한자음】 반원현근목 등돈입실석【이광(李廣)이 바위를 보고 호랑이로 여겨 활을 쏘니 화살이 바위를 꿰뚫었다. ‘입시석(入矢石)’은 바위를 호랑이로 여긴 것을 말하니, 이것은 정 전설이 지나온 길이 험하고 가파른 것을 말한다.】
【언해역】 뿌리가 달려 있는 나무를 붙잡고, 화살 드는 돌에 오르내려 가도다!
*〈중간본〉에는 ‘渭石之如虎이니’로 되어 있다.
*시 구절 해석 : “뿌리가 드리운 나무를 더위잡고, 화살 꽂힌 바위를 오르내렸다.”라는 뜻으로, 정 전설이 배 시주를 만나기 위해 악전고투한 사실을 말한다.

靑山自一川 城郭洗憂慼【言施州之地ㅣ 險阻ㅣ 旣盡니 别是一平川也ㅣ라】

프른 뫼헤 주034)
뫼헤
산에. ‘뫼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스싀로 주035)
스싀로
스스로.
내힌 주036)
내힌
내인. 내ㅎ+이+ㄴ. ‘내ㅎ’은 ‘ㅎ말음체언’이다.
히로소니 주037)
히로소니
땅이니. ㅎ+이+도+ㅅ+오+니.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城郭이 시르믈 시서 리도다 주038)
시르믈 시서 리도다
시름을 씻어 버렸도다. 시름+을 싯-[洗]+어 리-+도+다. 험난한 지형에서 편평한 지형으로 바뀌어 성곽이 위치해 있으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한자음】 청산자일천 성곽세우척【시주(施州)라는 땅의 험난함이 거의 다하자 따로 하나의 냇물이 흐르는 평지가 전개되었다는 말이다.】
【언해역】 푸른 산에 스스로 한 내인 땅이니, 성곽(城郭)이 시름을 씻어 버렸도다!
*〈중간본〉에는 ‘城郭洗憂戚’로 되어 있다.
*시 구절 해석 : “푸른 산에 절로 한 냇물이 흐르는 땅이 나오니, 성곽이 시름을 씻어 버렸다.”라는 뜻으로, 험난한 지형을 지나자 냇물 흐르는 평탄한 땅이 나와 근심이 말끔히 씻겼다는 말이다.

聽子話此邦 令我心悅懌 주039)
열역(悅懌)
즐거움. 유쾌(愉快)함.

그의 주040)
그의
그대의. 그+의(속격). ‘그’는 15세기에 ‘그듸, 그디, 그’가 쓰였는데 점차 ‘그’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인다. 『두시언해』에서는 ‘그듸’와 ‘그’가 같이 쓰인다. ¶그 : 다가 나 알면 萬事ㅣ 차 낟 봄 업스며 나 몸 업서 大虛ㅣ 니 그 爲야 波羅蜜 서 지시니라〈금삼 3:57ㄴ〉. 그듸 : 그듸 能히  돌로 거를 니 나도   믈로 모 노라(子能渠細石 吾亦沼淸泉)「自瀼···四首」〈두시 7:17ㄱ〉~그 能히  돌로 거를 니 나도   믈로 모 노라〈중간두시 7:17ㄱ〉.
이 올 주041)
이 올
이 고을을. 이 올ㅎ+. ‘올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올ㅎ : 아란 히어나 자시어나 올히어나 나라히어나 뷘 수프리어나 이 經을 너비 펴며〈석상 9:40ㄱ〉. 올흘 거느려든 곧 비치 업고 올 갈 저〈두시 5:16ㄱ〉기어든 다 말미 잇도다(領郡輒無色 之官皆有詞)「有感五首」〈두시 5:15ㄴ-16ㄱ〉.
니거늘 드로니 주042)
니거늘 드로니
말하거늘 들으니. 니-[說]+거늘 듣-[聞]+오+니.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예. 닐오리라). 불규칙활용 중 이른바 ‘ㄹ·ㅇ’형이다. ‘-오-’는 화자를 가리키는 선어말어미로 종결형이나 연결형에서 주어가 1인칭대명사 ‘나’ 등 화자일 때 결합하는 선어말어미이다. 이전에는 종결형이나 연결형에 쓰인 ‘-오/우-’는 주체의 주관적 의도가 개재된 동작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의도법’ 선어말어미라 부르고, 관형형에 쓰이는 ‘-오/우-’는 ‘대상활용’의 선어말어미라 불렀다.
주043)
나의. 내(평성). 1인칭 대명사 ‘내’는 주격으로 쓰일 때 주격조사 ‘ㅣ’와 결합하여 ‘‧내:’, 관형격으로 쓰일 때 관형격조사 ‘ㅣ’와 결합하여 ‘내(평성)’으로 쓰인다. 인칭대명사의 주격 형태와 관형격 형태는 다음과 같이 성조에 의해 구별된다. ①‧내(주격), 내(관형격) ②:네(주격), 네(관형격) ③‧뉘(주격), :뉘(관형격), ④:제(주격), 제(관형격). 15세기 국어에서는 1인칭 겸칭 대명사 ‘저’가 쓰이지 않았다.
로 여 주044)
로 여
마음으로 하여금. +로 -+ㅣ(사동접미사)+어. ‘-로 여’는 현대국어의 ‘-로 하여금’에 해당하는 피사동 주격표지이다. 『두시언해』에서는 ‘-로 여, -로 여, -로 여곰’ 등이 쓰이고 〈중간본〉에서는 ‘-로 여’가 보편적으로 쓰인다. 〈중간본〉에는 ‘로’로 되어 있다. ¶-로 여 : 님굼이 高允으로 여太子를 글 치라 더니〈飜小9:44ㄱ〉. 내 머리 도라 라 로 여 셜워 우러 슬픈 미 닐에 디 마롤 디어다(莫令回首地 慟哭起悲風)「收京」〈두시 5:9ㄱ〉. -로 여 : 스골 가셔 나날 집 사으로 여 음식 차반을 초와 권과 녯 벋과 손 야 서르 즐기며〈번소 9:87ㄴ〉. 龍과 象 우루믈 든논 니 足히 信向 사로 여 슬케 리로다(如聞龍象泣 足令信者哀)「山寺」〈두시 9:28ㄱ〉. -로 여곰 : 夫人이 寬으로 여곰 怒호 試驗코져 야〈내훈 1:16ㄱ〉. 다가 히 어딘 일 아 사으로 여곰 이 을 싀워 야 뎐독호〈장수 72ㄴ〉. 머리 롣 將軍 오미 엇뎨 더듸뇨 내 心中로 여곰 심히 快足디 아니케 다(銳頭將軍來何遲 令我心中苦不足)「久雨···不至」〈두시 5:35ㄴ〉.
즐겁게 다 주045)
즐겁게 다
즐겁게 한다. 즐겁게 하네. 즐겁-[樂]+게 -++다.

【한자음】 청자화차방 영아심열역
【언해역】 그대의 이 고을을 말하거늘 들으니, 내 마음으로 하여금 즐겁게 하네!
*시 구절 해석 : “그대가 이 나라를 말하는 소릴 듣나니, 내 마음이 즐거워진다.”라는 뜻으로, 자기가 사는 마을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니 절로 기분이 유쾌해진다는 말이다.

其俗則純朴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8ㄱ

不知有主客

주046)
거기의. 그+에+ㅅ.
風俗이 純厚 주047)
순후(純厚)
순박(純朴)하고 순후(淳厚)함.
儉朴 주048)
검박(儉朴)
검박(儉樸). 절약근검하고 행실이 소박하면서 신실(信實)함.
야 主人과 나그내 이슈믈 주049)
이슈믈
있음을. 잇-[有]+우+ㅁ+을.
아디 몯니라 주050)
아디 몯니라
알지 못한다. 알-[知]+디 몯-++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어간의 말음이 ‘ㄹ’인 형태소 뒤에 ‘ㄴ’이나 ‘ㄷ’으로 시작되는 형태소(니, 디 등)가 오면 ‘ㄹ’은 자동으로 탈락한다.

【한자음】 기속즉순박 불지유주객
【언해역】 거기의 풍속이 순후(純厚) 검박(儉朴)하여, 주인과 나그네가 있음을 알지 못하네.
*시 구절 해석 : “그 풍속이 순후하고 검박해서, 주인과 나그네가 따로 있음을 알지 못하겠다.”라는 뜻으로, 풍속이 순수하고 검소해서 주인과 나그네 사이의 차별이 있는 줄도 모르겠다는 말이다.

溫溫 주051)
온온(溫溫)
①부드러운 모양. ②따뜻한 모양. ③윤이 나는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諸侯 주052)
제후(諸侯)
천자(天子) 다음으로 고귀한 신분의 사람에 대한 총칭. 고대 중국에서 천자에 딸려 있었고, 천자에게서 일정한 영토를 받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의무를 지녔으며, 영내의 백성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졌다.
門 禮亦如古昔【言裴施州ㅣ 爲人이 温恭야 待客之禮ㅣ 有古人之風也ㅣ라】

溫溫 諸侯의 門下ㅣ니 주053)
문하(門下)ㅣ니
문하이니. 계사가 연결되는 선행어가 모음으로 끝났기 때문에 ‘ㅣ’의 형태로 표기되었다.
禮도  녯사 니라 주054)
니라
같으니라. -[如]+니+라.

【한자음】 온온제후문 예역여고석【배 시주(裴施州)의 사람됨이 온화하고 공손해서 손님을 대하는 예의에 옛 선현의 기풍이 있다는 말이다.】
【언해역】 온온(溫溫)한 제후(諸侯)의 문하(門下)이니, 예(禮)도 또 옛사람 같네!
*시 구절 해석 : “온온한 제후의 문하이니, 예법에 있어서도 옛사람과 같다.”라는 뜻으로, 기풍이 있는 제후의 후손이라 옛사람들의 예법이 전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勅廚倍常羞 盃盤 주055)
배반(盃盤)
배반(杯柈). 술잔과 소반(小盤). 즉 술과 안주를 가리킨다.
狼籍 주056)
낭자(狼藉)
①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러운 모습. 이리가 자고 난 자리는 몹시 난잡한 데서 나왔다. ②자신의 행동이나 평판에 대해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 ③곤궁함.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브븻 주057)
브븻
부엌의. 브[廚]+의+ㅅ. 〈중간본〉에는 ‘브어븻’으로 되어 있다. ¶브 爲竈〈훈해 57〉. 蔗漿이 브븨셔 가니 金盌이 언 니(蔗漿歸廚金盌凍)「入奏行···侍御」〈두시 8:22ㄱ〉.
飮食 라 홈도 주058)
라 홈도
만들라 함도. -[作]+라 -+오+ㅁ+도. 〈중간본〉에는 ‘라’로 되어 있다.
常녯 주059)
상(常)녯
보통. 상녜+ㅅ. ‘상녜’의 ‘상’이 한자어 ‘상(常)’이라는 좋은 근거를 보여주는 표기법이다. ‘ㅅ’은 부사어에 잘 연결되는 부가적인 용법의 부사화접미사이다.
차반애 주060)
차반애
음식에. 차반+애.
두 리오 주061)
두 리오
두 배이고. 두 [重]+이+고.
盃盤도 주062)
배반(盃盤)도
잔과 접시도. 배반+도.
모 주063)
모
자못. 매우. 원문의 ‘何’를 번역한 것이다. 〉/믇//믓〉몯. ‘모’는 현대국어의 ‘자못’의 15세기 어형이나 수사의문문의 번역에서 의문사의 번역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이런 현상은 특히 『두시언해』에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제로 녜 보건댄 모 해 어긔나 專門 녯 學 矛盾 免티 몯려니와(然이나 以今視昔건댄 稍多違戾니 專門舊學 不免矛盾려니와)〈능엄1:22ㄴ〉. 秦山ㅅ 나조 안자셔 相對야쇼 江湖앳 興心이 모 좃다(坐對秦山晩 江湖興頗隨)「陪鄭···十首」〈두시 15:10ㄴ〉. (의문사의 번역어) : 너비 내 아로로 여러  깃기시니 모 盛시다(普以吾覺로 悅可衆心시니 何其盛哉라)〈남명서:3ㄱ〉. 稻梁 어두믈 足히 몯야셔 薏苡로 하로미 모 도다(稻粱求未足 薏苡謗何頻)「寄李十二白二十韻」〈두시 16:6ㄴ〉.
사핫도다 주064)
사핫도다
쌓여 있도다. 샇-[築]+아#잇-+도+다. ‘샇-’는 경음 표기를 하지 않는 『두시언해』의 표기로 인해 생긴 표기로 15세기의 ‘쌓다’와 같다. ‘샇다’는 자타동 양용동사로 여기서는 자동사의 용법으로 쓰였다.

【한자음】 칙주배상수 배반파랑자
【언해역】 부엌의 음식 만들라 함도 보통 음식에 두 배이고, 술과 안주도 자못 쌓였도다!
*시 구절 해석 : “음식을 만들라 지시함에 평소 반찬보다 배가 되어, 술잔과 소반이 자못 낭자하다.”라는 뜻으로, 풍성하게 손님 접대를 하여 흡족한 대접을 받았다는 말이다.

時雖屬喪亂 事貴賞匹敵【言裴鄭이 氣類相求也ㅣ라】

時節이 비록 브왜요매 주065)
브왜요매
상란(喪亂)함에. 조상(凋喪)함에. 브왜-[喪亂]+오+ㅁ+애. 원문 ‘상란’의 번역이다. ‘브왜-’는 『두시언해』에만 나오는 낱말로 ‘브와이-(브와요매)’로도 쓰였으며, 주로 ‘상란, 조상, 상패, 저상, 패망’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중간본〉에는 ‘브으왜요매’로 되어 있다. ¶녯 時節ㅅ 브왜요 다 可히 알리로소니 人世예 슬프며 즐거운  간 서르 펴노라(古時喪亂皆可知 人世悲歡暫相遣)「清明」〈두시 11:13ㄱ〉. 幹은 오직 고기 그리고  그리디 몯니 마 驊騮로 여 氣運을 브왜에 리아(幹惟畵肉不畵肉 忍使驊騮氣凋喪)「丹靑引贈曹將軍霸」〈두시 16:27ㄴ〉. 볼 사미 뫼티 이셔 비치 브왜니 하콰 쾌 爲야 오래 갑거니 놉거니 니라(觀者如山色沮喪 天地爲之久低昻)「觀公孫···並序」〈두시 16:47ㄱ-ㄴ〉. 時節이 비록 브왜요매 브터 이시나 이  마 사미 賞玩호미 貴니라(時雖屬喪亂 事貴賞匹敵)「鄭典設自施州歸」〈두시 19:28ㄱ〉. 히미 서르 브왜니 부쳐 뇨매 두려 조심호 免호라(筋力交凋喪 飄零免戰兢)「寄劉···四十韻」〈두시 20:24ㄴ〉. 브왜요미 赤壁 디 아니코 쳐 뇨 黃巾을 爲얘니라(敗亡非赤壁 奔走爲黃巾)「贈王···四十韻」〈두시 20:26ㄴ〉. 長安애셔   셔메 萬錢을 받거 브왜야 나 숨 쉬요 니라(長安米萬錢 凋喪盡餘喘)「故秘···源明」〈두시 24:35ㄴ〉.
브터 이시나 주066)
브터 이시나
속해 있으나. 븥-[屬]+어 이시-+나.
이 주067)
이
일은. 일+.
마 주068)
마
맞은. 맞-[適當]+. 원문의 ‘필적(匹敵)’에 대한 번역으로 쓰였다. ‘필적(匹敵)’은 ‘서로 대비됨. 서로 마땅함. 대등(對等)함’의 뜻이다.
사미 賞玩호미 주069)
상완(賞玩)호미
상완함이. ‘상완(賞玩)’은 ‘상완(賞翫)’과 같으며, ‘흔쾌하게 감상하면서 완미(玩味)함’을 뜻한다.
貴니라 주070)
귀(貴)니라
귀하다. 귀중하다. 귀-+니+라. ‘-니라’는 원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로 오늘날에도 다소 예스러운 표현으로 쓰기도 한다.

【한자음】 시수속상란 사귀상필적【배 시주와 정 전설이 기운이 닮아 있어 서로 구한다는 말이다.】
【언해역】 시절이 비록 상란(喪亂)함에 붙어 있으나, 일은 뜻 맞은 사람이 상완(賞玩)함이 귀(貴)하네!
*시 구절 해석 : “시절이 비록 잃고 어지러울 때에 속하지만, 일은 뜻 맞는 사람이 완상(琓賞)함이 귀중하다.”라는 뜻으로, 세상이 비록 어지럽지만 이렇게 뜻 맞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귀중하다는 말이다.

中宵 주071)
중소(中宵)
중야(中夜). 반야(半夜). 야반(夜半). 한밤중.
愜良會 裴鄭非遠戚

바 주072)
바
밤에. 밤+.
됴 주073)
됴
좋은. 둏-[好]+.
會集을 주074)
회집(會集)을
집회를.
매 주075)
매
마음에. +에. 〈중간본〉에는 ‘매’로 되어 있다.
마초니 주076)
마초니
맞추어 하니. 마초#-+니. ‘마초’는 ‘맞다’의 사동사인 ‘마초다’의 어간부사로 용언어간이 바로 부사가 되는 예의 하나이다. 이러한 예로는 ‘바다~바, 하다~하, 가초다~가초, 마초다~마초’ 등이 있다. 〈중간본〉에는 ‘마초호니’로 되어 있다.
裴鄭이 주077)
배정(裴鄭)이
배 시주(裵施州)와 정 전설(鄭典設)이.
아미 주078)
아미
친척이. 아[親戚]+이.
아니니라 주079)
아니니라
아니다. 아니+니+라. ‘니라’는 ‘다’보다 약간 보수성이 있는 어미이다.

【한자음】 중소협량회 배정비원척
【언해역】 밤에 좋은 집회(集會)를 마음에 맞추어 하니, 배 시주(施州)와 정 전설(典設)이 먼 친척이 아니네.
*시 구절 해석 : “한밤중에 좋은 모임이 마음에 흡족하니, 배 시주(裵施州)와 정 전설(鄭典設)은 먼 친척이 아니로다.”라는 뜻으로, 늦은 밤까지 좋은 만남을 가지니, 두 사람이 서로 인연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群書一萬卷 博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8ㄴ

涉供務隙【言施州ㅣ 公務ㅣ 閑暇ㅣ어든 乃讀書也ㅣ라】

주080)
많은. 무리의. 물[群]+ㅅ. ‘물’은 ‘무리’의 뜻으로 15세기에서는 ‘물, 믈, 무리, 므리’의 형태로 쓰였다. ¶靈 芝草ㅣ 뭀 곳다온 거긔 위두 니(靈芝冠衆芳)〈두시 19:41ㄱ〉.
글월 주081)
글월
글. 편지. 여기서는 글이 담겨 있는 책을 뜻한다.
一萬 卷을 事務 주082)
사무(事務)
사무하는. 공무를 보는.
예 주083)
예
사이에. [間]+에. 〈중간본〉에는 ‘이예’로 되어 있다.
너비 주084)
너비
널리. ‘너비’는 ‘넙-[廣]’에 부사화접미사 ‘-이’가 붙어 파생된 부사이다.
涉獵 주085)
섭렵(涉獵)
책을 읽어 배움에 힘쓰거나 어떤 기술을 익히는데, 단지 겉모습이나 간단한 기능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깊이 탐구하고 실습해 근본까지 장악한다는 말.
놋다
주086)
섭렵(涉獵)놋다
섭렵하는구나. 涉獵#-++오+ㅅ+다.

【한자음】 군서일만권 박섭공무극【배 시주가 공무에서 벗어나 한가해지면 이내 책을 읽는다는 말이다.】
【언해역】 많은 책 일만 권을 사무하는(공무를 보는) 사이에 널리 섭렵하는구나!
*시 구절 해석 : “많은 책 일만 권을, 업무를 보는 사이에 두루 읽었다.”라는 뜻으로, 배 시주(裵 施州)가 공무에도 성실하지만, 한가할 때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책 읽기에 열중한다는 말이다.

他日辱銀鉤 주087)
은구(銀鉤)
①발을 거는 은제(銀製)의 고리. ②은으로 만든 열쇠. ③잘 쓴 글씨를 말함. 구(鉤)는 필획(筆劃). 진(晉)나라 색정(索靖)이 초서를 잘 썼는데 사람들이 그 글씨를 “은 갈고리 말의 꼬리”라 칭찬했다. ④은으로 만든 띠의 마물(魔物) 단추. ⑤은빛이 나거나 은으로 만든 여자들의 장신구. ⑥초승달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森踈 주088)
삼소(森踈)
가지나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라난 모양.
矛戟 주089)
모극(矛戟)
흉기(凶器). 병기(兵器). 모(矛)는 긴 자루 끝에 날을 단 병기고, 극(戟)은 양쪽으로 날이 있는 병기다.
歐陽詢 주090)
구양순(歐陽詢)
557~641. 당나라 초기 담주(潭州) 임상(臨湘) 사람. 자는 신본(信本) 또는 소신(少信)이다. 진(陳)나라의 광주자사(廣州刺史)였던 아버지 구양흘(歐陽紇)이 반역자로 처형된 데다 키가 작고 얼굴이 못생겨서 남의 업신여김을 받는 등 어릴 적부터 불행한 환경을 참고 견디며 자랐다. 경사(經史)에 정통하여 수나라 때 태상박사(太常博士)를 지냈다. 당나라 태종 정관(貞觀) 초에 태자율갱령(太子率更令)과 홍문관학사를 지내고, 발해현남(渤海縣男)에 봉해졌다. 그의 글씨는 멀리 고려에까지 알려졌는데 처음에는 이왕(二王), 즉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 부자의 글씨를 배웠다고 한다. 글씨는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해법(楷法)의 극칙(極則)이라 하여 칭송했다. 필체가 험하고 굳세 세칭(世稱) 구체(歐體) 또는 율경체(率更體)라 불렸다. 우세남(虞世南), 저수량(褚遂良), 설직(薛稷)과 함께 당나라 초기 사대명필(四大名筆)로 손꼽혔다. 배구(裵矩), 진숙달(陳叔達)과 함께 『예문유취(藝文類聚)』를 편찬했다. 비첩(碑帖)이 있다.
行書 주091)
행서(行書)
서체의 일종. 예서(隷書)로부터 발전했다. 후한(後漢)의 유덕승(劉德升)이 창안했다고 전해진다.
森然 주092)
삼연(森然)
①무성하고 빽빽한 모양. ②많은 모양. ③우뚝 솟은 모양. ④무서워서 머리털이 곤두선 모양. ⑤가지런하고 질서가 있는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如武庫矛㦸이러라 ㅣ 甞得施州書니 其字體之妙ㅣ 如銀鉤矛㦸也ㅣ라】

다 주093)
다
다른. 다-[他]+. ‘다-’는 ‘불규칙용언’의 이른바 ‘ᄅᆞㅇ’형 활용 형용사이다.
나래 주094)
나래
날에. 날[日]+애.
銀鉤  주095)

같은. -[同]+. 15세기의 ‘-’은 ‘-’로도 쓰였다.
그를 辱도이 주096)
욕(辱)도이
욕되게. 辱#-+이. ‘辱도이’를 ‘辱도이-’의 활용으로 본 것은 잘못이다. 정음 초기문헌에서 ‘辱’의 용례가 있으므로 ‘辱-’의 활용으로 보아야 한다. ¶辱- : 녀나 그지업슨 어려 일와 辱 일와 슬픈 일와〈석상 9:8ㄴ〉. 忍辱仙은 辱 일  仙人이라〈월석 4:29ㄴ〉. 辱왼 境이 데 當니 이슈믈 보미 곧 아니오〈금강 79ㄱ〉. 辱왼 일 됴 랑야〈내훈 1:52ㄴ〉. -도이 : 鬼神은 어드워 시름왼 苦애 곗고(鬼神은 沈幽愁之苦고) 〈원각 서:13ㄴ〉. 머리 도혀 라 虞舜을 우로니 蒼梧애 구루미 正히 시름외도다 슬프다 瑗池예 宴飮던 저기여 나리 崐崙ㅅ 두들게 느젯도다(回首叫虞舜 蒼梧雲正愁 惜哉瑤池飮 日晏崑崙丘)「同諸公登慈恩寺塔」〈두시 9:33ㄱ〉. 韋侯ㅣ 나 여희오 가논 배 잇니 그딋 그리믜 오리 업순 고 내 憐愛  아라 무듼 부들 노도이 자바 驊騮 그리니 騏驎이 東녁 매 나슈믈 믄득 보라(韋侯別我有所適 知我憐君畵無敵 戱拈禿筆掃驊騮 欻見騏驎出東壁)「題壁上韋偃畫馬歌」〈두시 16:41ㄴ〉.
보내니 森踈 矛戟을 보 호라 주097)
호라
듯한다. +-+오+다.

【한자음】 타일욕은구 삼소견모극【구양순(歐陽詢)의 행서는 빽빽한 것이 무기고에 있는 창의 날과 같았다. 두보가 일찍이 배 시주(裵施州)의 글을 얻어 보니, 그 자체의 오묘함이 은구(銀鉤)나 모극(矛戟)과 같더라는 것이다.】
【언해역】 다른 날에 은구(銀鉤) 같은 글을 욕(辱)되게 보내니, 무성한 창날을 보는 듯하네!
*시 구절 해석 : “다른 날에 은구(銀鉤) 같은 것을 욕되게 보내니, 무수한 창날들을 보는 듯하다.”라는 뜻으로, 배 시주(裵 施州)가 쓴 글의 필치를 보니 잘 쓴 글씨로 알려져 있는 은구(銀鉤) 같은 것도 배 시주의 글씨에는 미치지 못하여, 마치 명필 구양순의 필체를 방불케 한다는 말이다.

倒屣 주098)
도사(倒屣)
신을 거꾸로 신음. 곧 진심으로 사람을 환영하여 황급히 맞이함. 도섭(倒屧). 도리(倒履).
喜旋歸 畫地求所歷【謂ㅣ 喜典設의 自施州로 還來也ㅣ라】

갓고로 주099)
갓고로
거꾸로. 갓골-[飜]+오(부사화접미사).
시너 주100)
시너
신어. 신-[履]+어.
도라오 주101)
도라오
돌아옴을. 돌-+아#오-+오+ㅁ+.
깃거 주102)
깃거
기뻐하여. -[喜]+어. 동사 ‘-’과 형태상 관련이 있는 것으로 ‘-어-’가 연결된 파생동사 ‘깃거-’와 ‘-/브-’가 연결된 파생형용사 ‘깃브-’가 있다. 현대국어의 ‘기뻐하-’는 ‘깃브-’에 ‘-어-’가 연결되어 동사로 파생된 것이다. ¶- : 녀론 깃거 구쳐 니러 절시고 안쇼셔 시고〈석상 6:3ㄱ〉. 녯 가히 내 도라오 깃거 기 도라 옷 기슬게 드다(舊犬喜我歸 低徊入衣裾)「草堂」〈두시 6:39ㄴ〉. 깃거- : 이 매 훤히 즐겁도다 시고 도라 드르샤  깃거시더라〈석상 3:20ㄴ〉. 나 漏刻 노 지븨셔 알외요 드므리 드르리로소니 님  깃거샴 이쇼 近侍 臣下ㅣ 아놋다(晝漏稀聞高閣報 天顔有喜近臣知)「紫宸殿退朝口號」〈두시 6:7ㄱ-ㄴ〉. 깃브- : 難陁 깃브다 논 마리오〈석상 13:7ㄴ〉. 엇뎨 너븐 집 千萬閒을 어더 天下앳 치운 사 키 그늘워 다 깃븐 치에 야  비예 뮈디 아니야 便安호미 뫼 게 려뇨(安得廣廈千萬閒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茅屋···破歌」〈두시 6:43ㄱ〉.
보니 올 제 디나온 주103)
디나온
지나온. 디나-[經]+아+오-+ㄴ.
 주104)

데를. [所]+.
해 주105)
해
땅에. ㅎ+애. ‘ㅎ’는 ‘ㅎ말음체언’이다.
그 주106)
그
그어. 긋-[劃]+어. 〈중간본〉에는 ‘그어’로 되어 있다.
뵈다 주107)
뵈다
보인다. 보-+이[示]++다.

【한자음】 도사희선귀 획지구소력두보가 정 전설(鄭典設)이 시주(施州)에서 돌아온 것을 기뻐한다는 말이다.】
【언해역】 신 거꾸로 신어 나 돌아옴을 기뻐하여 보니, 올 때 지나온 데를 땅에 그어 보이네.
*시 구절 해석 : “신을 거꾸로 신어 나 돌아옴을 기뻐하면서 보니, 올 때 지나온 길을 땅에 그어 보였다.”라는 뜻으로, 정 전설(鄭典設)이 내가 돌아온 것을 환영하면서 어떤 행로로 왔는지 궁금해 땅에 그려볼 것을 요청했다는 말이다.

乃聞風土質 又重田疇 주108)
전주(田疇)
전지(田地), 농토를 가리키는 말.

風土 質朴호 드로니 주109)
드로니
들어니. 듣-[聞]+오+니. ‘오’는 1인칭 화자와 호응하는 선어말어미로서 종결어미와 함께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예외적으로 연결어미 ‘-니’와 함께 쓰인다.
 다시 田疇ㅣ 여러 주110)
여러
열려. 열-[開]+어. ‘열-’은 자타동 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가랏도다 주111)
가랏도다
갈려 있도다. 갈-[墾]+아#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한자음】 내문풍토질 우중전주벽
【언해역】 풍토(風土)의 질박(質朴)함을 들으니, 또다시 전주(田疇)가 열려 갈려 있도다!
*시 구절 해석 : “이에 풍토가 질박하다는 말을 들으니, 또다시 전주(田疇)가 여럿 개간되었다.”라는 뜻으로, 시주(施州)의 풍속과 토질이 순박한데다 농토를 많이 개간했다는 말이다.

刺史 주112)
자사(刺史)
관직 이름. 전한(前漢) 무제(武帝) 원봉(元封) 5년(기원전 106) 전국을 13부(部)로 나누고 부마다 중앙에서 파견한 자사 1인을 두었다. 자사는 관할 부를 순행하면서 호족이나 군(郡)의 태수를 감찰했다. 성제(成帝) 때 자사를 주목(州牧)으로 개칭했고, 후한(後漢) 초 다시 자사로, 후한 영제(靈帝) 때 또다시 주목으로 바꾸었다. 초기에는 지위가 군수(郡守) 아래였지만 이후 군수보다 한 단계 높았으며, 군정(軍政) 대권을 맡기도 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각 주에 자사를 설치하여 도독(都督)을 겸임토록 했다. 이때 장군이란 칭호가 붙여졌으며, 권한도 한층 높았다. 수나라 이후 주의 자사는 군의 태수와 같은 직급이거나 태수의 별칭으로 쓰였으며, 권력도 점차 낮아졌다. 송나라 이후 중앙에서 자사를 파견했지만 실제로 부임하지 않았으며, 습관상 태수를 자사라고 불렀다. 청(淸)나라 때 역시 주로 지사(知事)의 별칭으로 쓰였다.
似寇恂 列郡宜競借冦恂 주113)
구순(寇恂)
?~36. 후한 상곡(上谷) 창평(昌平) 사람. 광무제(光武帝) 때의 무신으로, 자는 자익(子翼)이고, 시호는 위(威)이다. 처음에 군공조(郡工曹)가 되었다. 왕망(王莽)이 패망하자 태수 경황(耿況)을 설득해 유수(劉秀)에게 귀순케 하고, 편장군(偏將軍)에 올랐다. 나중에 하내태수(河內太守)에 임명되어 대장군 일을 맡고, 전운(轉運)을 책임지면서 군량을 충족시켰다. 영천(潁川)과 여남(汝南) 태수를 지내면서 향교(鄕校)를 수리하여 학생을 가르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황제를 따라 남쪽으로 영천의 군도(群盜)를 정벌해 항복시키려고 하자 백성들이 황제의 길을 막고 한 해 더 재임하기를 요청했다 한다. 나중에 농서(隴西)로 정벌을 가 외효(隗囂)의 잔당인 고준(高峻)을 압박해 한나라에 항복하게 하였다. 경명행수(經明行修)로 조정에 명망이 자자했고, 사람들이 장자(長者)라 칭송했다. 옹노후(雍奴侯)에 봉해졌다.
이 從光武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9ㄱ

야 至潁川 주114)
영천(潁川)
하남성 허주(許州) 동북쪽. 즉 후한(後漢) 예주(豫州)의 영천(穎川郡)을 가리키는 말.
이어 百姓이 遮道曰願從陛下야 復借冦君一年이라니 以比施州也ㅣ라】

주115)
거기의. 그+에+ㅅ.
刺史ㅣ 寇恂 니 주116)
니
같으니. -[如]+니.
버럿 주117)
버럿
벌려 있는. 늘려 있는. 벌-[列]+어#잇-+.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올히 주118)
올히
고을이. 올ㅎ+이. ‘올ㅎ’은 ‘ㅎ’ 말음체언이다. 여기서의 ‘올ㅎ’은 ‘고을 사람’들을 뜻한다. 일종의 제유(提喩 metomomy)에 해당한다. 〈중간본〉에는 ‘고울히’로 되어 있다.
톼 주119)
톼
다투어. 토-[競]+아. ¶토- : 나 난 後로  더브러 토 아니노다〈석상 11:34ㄴ〉.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中原有鬪爭)「前出塞九首」〈두시 5:29ㄴ〉.
비로미 주120)
비로미
비는 것이. 빌-[願]+오+ㅁ+이.
맛도다 주121)
맛도다
맛당하도다. 맛#-+도+다. 〈중간본〉에는 ‘맛당도다’로 되어 있다. ¶맛- : 되의 목수믄 그 能히 오라리아 님 紀綱 그추미 맛티 아니커니녀(胡命其能久 皇綱未宜絕)「北征」〈중간두시 1:8ㄴ〉. 鍾鼎에 사교 조 보노니 眞實로 北斗ㅅ 벼 法 바도미 맛니라(數見銘鍾鼎 眞宜法斗魁)「秋日···三十韻」〈두시 3:10ㄴ〉.

【한자음】 자사사구순 열군의경차【구순(冦恂)이 광무제 주122)
## 광무제(光武帝)
기원전 6~57. 유수(劉秀). 후한의 초대 황제(재위, 25~57). 남양(南陽) 채양(蔡陽) 사람. 자는 문숙(文叔)이고, 고조 유방의 9세손이다. 젊었을 때 장안에서 공부하다 왕망 말년 농민들이 대대적으로 봉기하고 군웅들이 할거하자 지황 3년(22) 형 유적(劉適)과 함께 용릉(舂陵)에서 거병하여 녹림군(綠林軍)에 가입했다. 왕망의 군사를 곤양(昆陽)에서 대파하고 농민군들을 병합했다. 다음 해 유현(劉玄)을 추대하여 한제(漢帝)로 삼고, 장안(長安)에 도읍을 정했다. 그 뒤 하북(河北)에 진출하여 제군(諸郡)을 평정하고, 건무(建武) 원년(25) 제위(帝位)에 올라 낙양(洛陽)에 도읍을 정했다. 이후 10년에 걸쳐 적미군(赤眉軍)을 진압하고 공손술(公孫述)과 외효(隗囂)를 차례로 평정하면서 12년(36) 천하를 완전히 통일했다. 여러 차례 노비들을 석방하고 죄수를 사면해 평민으로 복귀시키며 조세와 요역(徭役)을 경감했다. 한편 수리(水利)를 재건하고 4백여 개의 현(縣)을 정비하면서 관리들을 정선하여 파견했다. 조정에서는 상서(尙書)의 직권을 강화하고, 지방에서는 군권(軍權)을 장악한 도위(徒尉)를 폐지하는 등 중앙집권을 강화시켰다. 유학을 장려하고, 명분과 절의(節義)를 존중했고, 선비를 우대하는 등 후한의 예교주의적(禮敎主義的)인 정치 방침을 확립했다. 33년 동안 재위했다.
를 좇아서 영천(潁川)에 이르렀는데, 백성이 길을 막고 말하기를 “폐하를 따르기를 원합니다.” 하고, 또 구순을 일 년 더 유임시켜 달라 했다고 한다. 이 일을 배 시주에 비유한 것이다.】
【언해역】 거기의 자사가 구순 같으니 벌려 있는 고을이 다투어 빎이 마땅하도다!
*시 구절 해석 : “자사가 구순(寇恂) 같으니, 여러 고을에서 다투어 빌려 달라함도 당연하다.”라는 뜻으로, 배 시주가 고을을 잘 다스려 그가 유임하기를 바라는 백성들의 마음이 후한 때 구순의 예와 같다는 말이다.

北風吹瘴癘 주123)
장려(瘴癘)
장(瘴)은 속병을, 여(癘)는 질병을 말하는 것으로, 열대지방이나 습한 곳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일컫는 말. 장기(瘴氣). 장독(瘴毒).
羸老 주124)
이로(羸老)
병들고 쇠약(衰弱)한 노인.
思散策ㅣ 聞施州之風聲고 欲扵秋風에 杖策徃謁也ㅣ라】

北녃 주125)
북(北)녃
북녘의. 北#녁+ㅅ. ‘동, 서, 남, 북’ 중에서 ‘서’만 ‘西ㅅ녁’과 같이 사이시옷이 쓰인다.
미 주126)
미
바람이. +이.
더운 病을 불어든 주127)
불어든
불거든. 불어 내거든. 두보의 지병이 가을이 되면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
시드러운 주128)
시드러운
시드러운. 시들-[枯]+업+우+ㄴ. ‘시드럽다’는 ‘시들다’에 형용사파생접미사 ‘-업-’이 결합되어 다시 형용사로 파생된 것인데, ‘시드럽다’는 주로 『두시언해』에서만 쓰이고 나머지 15세기 문헌에서는 주로 ‘시들다’가 쓰였다. ¶시들- : 다 나래 窓牖中에셔 아 모미 여위오 시들며  기 듣글 무더 더러워 조티 몯  머리셔 보고〈법화 2:209ㄴ〉.  여위여 시들오  브르도다 사미 도라 보디 아니니〈남명上30ㄱ〉. 시드럽- : 올히 젹고 亂亡을 디내니 기텟 사미 진실로 가놋다 큰 올도 열 지비 업고 큰 族屬도 性命이 외외며 시드럽도다(州小經亂亡 遺人實困疲 大鄉無十家 大族命單贏)「舂陵行并序」元結次山〈두시 25:36ㄴ〉. 山林에 시드러운 모 브툐니 반시 崎嶇히 어려이 뇨 免티 몯리로다(山林託疲薾 未必免崎嶇)「大曆三年春에~凡四十韻이라」〈중간두시 2:11ㄴ〉.
늘구메 주129)
늘구메
늙음에. 늙-[老]+우+ㅁ+에.
막대 주130)
막대
막대를. 지팡이를.
흐러 주131)
흐러
흩어. 흗-[散]+어. 15세기 국어의 ‘흩다’는 자타동 양용동사로서 ‘흗다, 흘다’로도 쓰인다. 『두시언해』에서는 ‘흩다’의 형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흗-, 흘-, 흣-’의 형태만 사용되었다. ¶흩다(자동사) : 담과 괘 믈어듀 四大 허러 흐투믈 가비시고(墻壁崩倒 譬四大塊散시고)〈법화 2:126ㄱ〉. 不散 흗디 아니 씨라〈월석 10:63ㄴ〉. 흩다(타동사) :  아 주그면 財物을 흐터 일허 맛듈  업스리로다(一旦애 終歿면 財物을 散失야 無所委府ㅣ로다야)〈법화 2:189ㄴ〉. 구루믄 灌壇앳 비 흗고 보 彭澤ㅅ 바 프르렛도다(雲散灌壇雨 春靑彭澤田)「題郪原郭三十二明府茆屋壁」〈두시 7:32ㄱ〉. 흘다(자동사) : 心을 면 能히 星火ㅣ 흐러 려 空界예 盛히 부츄 내니라(燒心면 能生星火ㅣ 迸灑야 煽鼓空界니라)〈능엄 8:97ㄱ〉. 百靈이 구틔여 흐러가디 몯니 미 치운  헤부루믈 더듸 놋다(百靈未敢散 風破寒江遲)「蘇大侍御訪江浦賦八韻記異并序」〈두시 19:25ㄴ〉. 흘다(타동사) : 관원히 번 손  머긼 와  샛 돈을 흐러 주라(官人們伴當處 散饋喂馬的草料錢)〈번박 상:66〉.  이스리 甘子애 도라오니  새배  바 흐러 이노라(白露團甘子 淸晨散馬蹄)「白露」〈두시 25:16ㄴ〉. 흣- : 믌 로 녀매 오시 절로 젓니 바로 나야 저즌 氣運ㅣ 비르서 흣놋다(溪行衣自濕 亭午氣始散)「通泉驛南去通泉縣十五里山水作」〈중간두시 1:42ㄴ〉.
가고져 주132)
가고져
가고자. 가-[行]+고#지-+어. ‘-고자’를 하나의 굳어진 어미로 볼 수도 있다. ¶-고져 : 欲 고져  씨라〈훈언 2ㄱ〉.  城에 소남긧 누늘 보고 도라갈  나고져 비르서 너기노라(春城見松雪 始擬進歸舟)「曉望白帝城鹽山」〈두시 14:30ㄱ〉.
노라 주133)
노라
생각하노라. -++오+라. 〈중간본〉에는 ‘랑노라’로 되어 있다.

【한자음】 북풍취장려 이로사산책두보가 배 시주의 풍성(風聲)을 듣고, 가을바람이 불 때 지팡이를 짚고 찾아가 뵙고 싶어 했다.】
【언해역】 북녘 바람이 더운 병(病)을 불어내거든, 시들은 늙음에 막대를 흩어지듯 짚어 가고자 생각하노라.
*시 구절 해석 : “북녘 바람이 더운 병 불러오거든, 시들은 늙은이 막대를 흩어 각자 생각한다.”라는 뜻으로, 건강에 좋지 않은 가을바람이 불어도 늙은 몸을 지팡이에 의지해서라도 찾아가고 싶다는 말이다.

渚拂蒹葭 주134)
겸가(蒹葭)
①갈대. 겸(蒹)과 가(葭)는 모두 가치가 없는 풀로, 신분이 미천(微賤)한 것을 비유한다. ②『시경(詩經)』 진풍(秦風)의 편명. 진(秦)나라의 양공(襄公)이 주(周)나라 땅을 획득했으면서도 주례(周禮)를 익히지 아니하여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할 수 없음을 풍자하고 있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寒 嶠穿蘿蔦羃【蔦 女蘿ㅣ라 ㅣ 言徃施州時事다】

믌란 주135)
믌란
물가에는. 믈+ㅅ#++란. ‘란’은 대조적으로 제시할 때 쓰이는 보조사로 ‘-란 -란’의 형태로 쓰인다. 여기서는 뒤의 ‘뫼해란’과 호응하고 있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중간본〉에는 ‘믌란’으로 되어 있다.
리 주136)
리
갈대가. [蒹葭]+이.
서니 주137)
서니
서늘한 이를. 서늘한 것을. 서-+ㄴ#이+. 앞의 ‘리’와 여기의 ‘서니’는 ‘갈대 중에서도 서늘한 것이’라는 의미로 수량사 주격 중출구문과 유사하다.
披拂 주138)
피불(披拂)
①입으로 불어 털어냄. ②바람 때문에 흔들림.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고
주139)
피불(披拂)고
추켜올리고. 헤치고 지나가고.
뫼해란 주140)
뫼해란
산에는. 뫼ㅎ+애+란. ‘뫼ㅎ’는 ‘ㅎ’ 말음체언. 앞의 ‘믌란’과 호응하고 있다.
蘿蔦 주141)
조나(蘿蔦)
여라. 선태식물에 속하는 이끼의 하나. 암수딴그루이며 나무 위에서 나는데 광택이 있다. 줄기는 실과 같이 가늘고 길며 잎은 피침 모양이고 홀씨주머니는 달걀 모양이다.
주142)
여라(蘿蔦)ㅣ
여라가. 여라(女蘿)는 여라(女羅), 송라(松蘿), 벽라(薛羅)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소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松蘿)같은 것으로 만든 옷. 즉 은자(隱者)가 입는 옷을 가리킨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여라’를 ‘새’이라 했다. ¶새 : 菟 새 토 蕬 새 〈훈몽 상:4ㄴ〉.
 주143)

껴 있는. -[狹]+어#잇-+. 15세기어의 ‘-’는 ‘어떤 틈을 비집고 어떤 물건 사이에 위치하다 또는 위치시키다’라는 뜻으로 ‘골 -, 구룸(또는 안개) -’ 등의 뜻으로 쓰였다. 피동사로 ‘이-’또는 ‘디-’가 있는데, ‘-’도 자·타동 양용동사로 쓰였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국어에서도 유지된다. 또한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자동사) : 膜 누네  이라〈원각 하3-1:17ㄴ〉. 이 더운 구루미 고 비  오 니니라(火雲無時出 飛電常在目)「三川觀水漲二十韻」〈두시 13:6ㄴ-7ㄱ〉. -(타동사) : 圓頓敎 金龍이 바래 나니 籠 디 마롤디어다〈남명 하:38ㄱ〉. 槍을 희 고 이 더닌 뉘 짓아오(去秋涪江木落時 臂槍走馬誰家兒)「去秋行」〈중간두시 4:33ㄱ〉. 이- :  엿 桂樹ㅅ 들구를 스치노라〈두시 19:9ㄱ〉. 디- : 衆生과 부텨왜 本來 이시며 디여 變호매 다디 아니호〈월석 11:12ㄱ〉.
 주144)

데를. +.
들워 가리라 주145)
들워 가리라
뚫어 가리라. 듧-[穿]+어#가-+리+라. ‘듧-’은 자타동 양용동사이며 『두시언해』에는 15세기의 다른 문헌에는 용례가 보이지 않는 ‘-의 용례도 확인된다. ‘듧다’는 ‘경망스럽다’는 뜻이다. 참조; 들우다. 들우디다. 듧다. ¶듧- : 해 구무 듧고  지여 온 모 무두매 當얀 어루 모미 외녀(方其穴地負土야 全體而坑之얀 爲可忍耶아)〈법화 6:154ㄴ〉. 祖師ㅅ 眞機 聖解 通호미 어려우며 凡情이 듧디 몯논 젼로 일후믈 關이라 니라〈금삼 서2:2ㄱ〉. 眞機ㅣ 銀山鐵壁이 야 구더 듧디 어려우며 놉고 머러 더위잡디 몯고〈금삼 서2:5ㄱ〉. 시 四明ㅅ 누네 듧고(履穿四明雪)「故著···公虔」〈두시 24:38ㄴ〉. 들우- : 다가 이 量애 너믄 사미면 石火電光  번 자보매 곧 자며 銀山鐵壁을 번 들우메 곧 들우리니(若是過量漢이면 石火電光 一捉애 便捉며 銀山鐵壁을 一透에 便透리니)〈금삼 서2:5ㄴ〉. 精微호 溟涬을 들우리오(精微穿溟涬)「夜聽···有作」〈두시 16:2ㄱ〉. 들워디- :  우희 무롭 다핫던 히 다 들워디옛더라(其榻上當膝處ㅣ 皆穿니라)〈번소 10:22ㄴ〉. 그 평상 우희 무롭 단 고디 다 들워디니라(管寧이 嘗坐一木榻더니 積五十餘年이로 未嘗箕股니 其榻上當膝處ㅣ 皆穿니라)〈소학 6:121ㄱ〉. 듧- : 麤率 듧 쳔쳔티 몯 씨라〈월석 2:11ㄴ〉. 婬亂 맛들어나 수으를 즐기거나 듧 조심 아니다가〈석상 9:37ㄱ〉.

【한자음】 저불겸가한 교천라조멱【‘조(蔦)’는 여라(女蘿)다. 두보가 시주(施州)에 갈 때의 일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물가에는 갈대 서늘한 것을 헤치고 지나가고, 산에는 여라가 끼어 있는 데를 뚫고 가리라.
*시 구절 해석 : “물가에서는 추운 갈대를 추켜올리고, 뫼에서는 겨우살이덩굴 낀 데를 뚫고 지났다.”라는 뜻으로, 두보가 배 시주를 찾아가는 길에 본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此身仗兒僕 高興潜有激

이 모미 아와 과 주146)
아와 과
아이와 종을. 아+와 +과+. 명사구 연결구성에서 ‘과’가 후행명사에도 쓰인 예이다. 15세기에서 명사구 연결구성에서는 ‘과’가 후행명사에 후행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중간본〉에는 ‘아와 죵과’로 되어 있다.
依仗간마 주147)
의장(依仗)간마
의지하지만. 의장(依仗)-+거+오+ㄴ마.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ㄴ마 : 四天下  아시련마〈석상 6:17ㄴ〉. 머릿 터럭마니나 社稷 돕오련마(毫髮裨社稷)「客堂」〈두시 6:53ㄱ〉.
노 興心은 마니 주148)
마니
가만히. ‘마니’는 부사로 ‘’의 ‘’에 부사파생접미사 ‘이’가 붙은 형태이다.
激發호미 이슈라 주149)
이슈라
있으라. 잇- 또는 이시-+우+라. ¶제 모미 德 이슈라 너길 일후미 邪慢이오〈법화 6:175ㄴ〉. 禁掖애 버든 改變커늘 微 班列에 목수믈 오올와 이슈라(禁掖朋從改 微班性命全)「寄岳···五十韻」〈두시 20:18〉.

【한자음】 차신장아복 고흥잠유격
【언해역】 이 몸이 아이와 종을 의지하지만, 높은 흥심(興心)은 가만히 격발(激發)함이 있네.
*시 구절 해석 : “이 몸이 아이와 종에게 의지하건만, 높은 흥취는 가만히 격발해 오른다.”라는 뜻으로, 몸은 비록 쇠약해 아이와 종에 의지하지만 배 시주(裵施州)를 만날 기대에 흥취는 높아진다는 말이다.

孟冬方首路 強飯 주150)
강반(強飯)
강반(彊飯). 기력을 내고자 억지로 밥을 먹거나 먹임.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9ㄴ

取崖壁【首 向也ㅣ라】

孟冬애 주151)
맹동(孟冬)애
맹동에. ‘맹동(孟冬)’은 겨울 가운데 음력(陰曆) 10월을 가리키는 말.
뵈야로 주152)
뵈야로
바야흐로. 이 낱말은 『두시언해』에서 많은 이형태 및 이표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슬픈 매 뵈야로 번 요라’〈두시 19:34ㄱ〉의 ‘뵈야로’ 항목을 참조할 것.
길 주153)
길
길을. 길ㅎ+. ‘길ㅎ’은 ‘ㅎ’ 말음체언이다.
아 주154)
아
앞서. 향해. 앗-[導]+아. 사동사는 ‘앗외-’이다. 〈중간본〉에는 ‘아아’로 되어 있다. ¶앗외-(인도하다) : 導師 法 앗외 스스니 如來 시니라〈석상 13:16ㄱ〉. 大導師 크신 길 앗외시 스스라 혼 마리라〈월석 9:12ㄴ〉. 天王이 婆羅門 들 앗외야 葉波國애 가게 니〈월석 20:86ㄴ〉.
고파 주155)
고파
억지로. ‘고파’는 원래는 ‘고프-’에 부동사어미 ‘-아’가 연결된 형태, 즉 형용사의 활용형이나, 15세기에는 부사로 쓰였다.
밥 먹고 비레와 주156)
비레와
벼랑과. 절벽과. 비레[崖]+와. ‘비레’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으며, 19세기의 〈신자전〉에 ‘셕비레’라는 형태로 보인다. 참고. 쇠. 졀벽. ¶비레 :  워 瀼西에 올아 머리 도혀 두 비레 라노라(泛舟登瀼西 回首望兩崖)「柴門」〈두시 6:46ㄴ〉. 프른 뫼로 百里 드러오니 비레 그츠니 핫고와 호왁과 도다(蒼山入百里 崖斷如杵臼)蒼山入百里 崖斷如杵臼〈두시 6:2ㄱ〉.
石壁 서리로 주157)
서리로
사이로. 서리+로. ‘서리’는 ‘’가 두 물체의 사이를 가리킬 때도 쓰이는 것에 비해서 복수의 물체들이 서려 있는 사이를 가리킨다.
取야 주158)
취(取)야
취하여. ‘벼랑과 석벽(石壁) 사이를 취하다’는 앞으로 가는 길에 험한 벼랑과 석벽이 많다는 말이다.
가리라 주159)
가리라
가리라. 가-+리+라.

【한자음】 맹동방수로 강반취애벽【‘수(首)’는 향하는 것이다.】
【언해역】 맹동(孟冬)에 바야흐로 길을 향해 억지로 밥 먹고 벼랑과 석벽(石壁) 사이로 취(取)하여 가리라.
*시 구절 해석 : “맹동에 바야흐로 길을 향하니, 억지로 밥을 먹고 벼랑과 석벽 사이로 난 길을 가야 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10월 초겨울에 길을 나섰는데, 기운을 차리고자 산길 바위틈에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歎爾疲駑駘 주160)
노태(駑駘)
①비루먹은 말. ②저열(低劣)한 재능(才能)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汗溝 주161)
한구(汗溝)
말[馬]의 앞쪽 겨드랑이를 가리키는 말. 즉 앞쪽 넓적다리와 다금, 배가 서로 이어져서 요형(凹形)을 이루는 부분. 말이 빠르게 다릴 때 땀이 나와 흐르는 곳이라 이렇게 불린다.
血不赤【相馬法에 汗溝 欲深長이라 니 此 言甫의 所乗이 非良馬也ㅣ라】

 주162)

피곤한. -[疲]+.
駑駘 슬노니 주163)
슬노니
슬퍼하니. 슳-[悲]++오+니.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슳- : 王과 大愛道와도 슬허 우르시며〈석상 3:30ㄴ〉. 슬허 라온 오직 烽火ㅅ 미로소니(悵望但烽火)〈두시 6:53ㄴ〉「遣興」 / 슬허- : 悲 受苦 슬허 씨오〈능엄6:6ㄱ〉. 이 여희 酒樽 當요 슬허노라(恨此當離尊)「別李義」〈두시 8:6ㄴ〉. 슬프- : 뎌 말도 슬프실〈월석 8:81ㄱ〉. 百年이 슬프다 마 半이 외니(百年嗟已半)「贈虞十五司馬」〈두시 8:25ㄴ〉. 슬퍼- : 일쳬 히 아  길어셔 슬퍼호모로 심을 언니〈장수67ㄴ〉.
汗溝에 피 븕디 주164)
븕디
붉지. 븕-[紅]+디.
아니도다

【한자음】 탄이피노태 한구혈불적【말을 가리는 방법 가운데 “한구(汗溝)는 깊고 길고자 한다.”라고 하니, 이것은 두보가 탄 말이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해역】 너 피곤한 노태(駑駘)를 슬퍼하니, 한구(汗溝)에 피 붉지 아니하도다!
*시 구절 해석 : “너 지친 비루먹은 말을 탄식하노니, 한구(汗溝)에 피가 붉지 않구나.”라는 뜻으로, 타고 가는 말이 시원찮아 제대로 달리지 못하는 것을 탄식한 말이다.

終然備外飾 駕馭何所益

매 주165)
매
마침내. -[終]++애.
밧글 주166)
밧글
밖을. [外]+을.
뮤믈 주167)
뮤믈
꾸밈을. 미-[飾]+우+ㅁ+을.
초 야시나 주168)
초야시나
갖추어 하였으나. 초#-+야#이시-+나. ‘초’는 ‘-’의 사동사 ‘초-’의 어간전성부사이다. ‘시나’의 ‘시’는 ‘이시-’의 ‘이’가 모음으로 끝나는 부동사어미 ‘-야’ 뒤에서 생략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이시다’의 이형태로 ‘시다’를 인정하는 견해가 있다.
에 주169)
에
멍에. 〈중간본〉에는 ‘멍에’로 되어 있다.
메여 주170)
메여
메어. 메-[荷]+어. 〈중간본〉에는 ‘메어’로 되어 있다. ¶메- : 네 사미 메오 모다 울며 조차가거늘〈석상 3:18ㄴ〉. 枚 머굼고 干戈 메니 잇도다(銜枚有荷戈)「征夫」〈두시 5:13ㄱ〉.
토맨 주171)
토맨
탐엔. -[乘]+오+ㅁ+애+ㄴ. 15세기 국어의 ‘다’는 ‘받다, 오르다, 탈 것을 타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다(받다) :  실가 내 두  월을 와 토리라〈번박 11ㄱ〉. 監河애 이 조 노니(監河受貸粟)「奉贈蕭二十使君」〈두시 20:41ㄴ〉. 다(오르다) : 내 分身 百億釋迦佛을 조쳐 뫼호아 各各 樓觀 고 戒壇所애 오게 라〈월석 25:49ㄴ〉. 다(탈 것에 타다) :  실 잔 나 받오리라〈번박 7ㄱ〉.  부 和  노라(吹面受和風)「上巳···宴集」〈두시 11:22ㄴ〉. 다(불에 타다) :  더운 性이 업서 간도 디 아니며〈능엄 9:108ㄴ〉.
므슴 有益 배 이시리오 주172)
므슴 이익(有益) 배 이시리오
무슨 이익이 될 바가 있으리오. 므슴 이익#-+ㄴ 바+ㅣ 이시-+리+오. 즉, 이익이 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므슴’과 호응한다. ‘므슴’은 부정칭의 대명사로 여기서는 관형사로 쓰였다. ‘므슷’과 기능이 동일하다. ‘므스’계 대명사로 ‘므스, 므슴; 므슥’ 등이 사용되었으며, ‘므슥’만 완전하게 어미활용을 한다. 현대국어에 쓰이는 ‘무슨’은 ‘므슴’, ‘므슷’, ‘므’ 등이 용언의 관형사형 ‘-ㄴ’에 유추되어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므슷 일’(석6:27) 같은 구(句)에서 음절 말음 ‘ㅅ’이 [ㄷ]으로 평폐쇄음화 되고 다시 ‘ㄴ’이 첨가 발음되는 현상까지 가세해 ‘므슨’으로 재구조화한 것이다. 〈권념요록〉(1637)에 ‘므슨’이 보인다. ¶-리오 :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 雲夢애 追執코져 호미 어렵도다(綠林寧小患 雲夢欲難追)「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ㄱ〉. 소 고기 오히려 비러 숨 쉬어니와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鼎魚猶假息 穴蟻欲何逃)「喜聞···二十韻」〈두시 5:2ㄱ〉. 피로 醴泉을 當면 엇뎨 갓  흐르 믈와  니리오(血以當醴泉 豈徒比清流)「鳳凰臺」〈두시 17:1ㄴ〉.

【한자음】 종연비외식 가어하소익
【언해역】 마침내 밖을 꾸밈을 갖추어 하였으나, 멍에를 메어 탐엔 무슨 이익이 될 바가 있으리오?
*시 구절 해석 : “마침내 바깥 꾸밈을 갖추었지만, 멍에 매어본들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라는 뜻으로, 말의 근본이 나빠 겉으로 잘 꾸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我有平肩輿 前途猶凖的【言無良馬故로 欲乗肩輿 주173)
견여(肩輿)
두 사람이 앞뒤에서 메는 가마. 교자(轎子)라고도 한다. 대방상(大方牀)을 쓰는 행상(行喪)에서 좁은 길을 건널 때 잠시 쓰는 간단한 상여(喪輿)를 지칭하기도 한다.
而徃也ㅣ라 凖的 주174)
준적(準的)
활을 쏠 때 목표를 겨냥하는 것.
은 如射者의 見侯的也ㅣ라】

平 주175)
평(平)
평안한. 평-+ㄴ. 여기서는 ‘타기 편안한’의 뜻이다.
肩輿 뒷노니 주176)
뒷노니
두고 있으니. 두-[有]+어#잇-++오+니.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앏길히 주177)
앏길히
앞길이. 앏#길ㅎ+이.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소 주178)
소
쏘는. 소-[射]+. 경음 표기를 하지 않는 『두시언해』의 특성 때문에 ‘소’이라는 표기 형태가 생겼다.
솔봄 주179)
솔봄
과녁[凖的]. 유일례이다.
니라 주180)
니라
같으니라. -[如]+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한자음】 아유평견여 전도유준적【좋은 말이 없기 때문에 견여(肩輿)를 타고 가고 싶다는 말이다. ‘준적(凖的)’은 활을 쏘는 사람이 과녁을 살피는 것이다.】
【언해역】 내 평안(平安)한 견여(肩輿)를 두고 있으니, 앞길이 활 쏘는 과녁 같으니라.
*시 구절 해석 : “내가 평안한 견여(肩輿)를 두었다면, 앞길이 활 쏘는 과녁과 같으리라.”라는 뜻으로, 말이 힘이 없어 차라리 견여가 있다면 과녁 겨누듯 빨리 갈 수 있겠다는 말이다.

翩翩 주181)
편편(翩翩)
①가볍게 나는 모양. ②행동(行動)이 가볍고 빠른 모양.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鳥道 주182)
조도(鳥道)
나는 새도 다니기 어려울 정도의 높고 좁고 험한 산길을 일컫는 말.
庶脫蹉跌 주183)
차질(蹉跌)
실족하여 넘어짐.
【鳥道 言山이 髙險야 人不得行이오 唯鳥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30ㄱ

ㅣ 飛過也ㅣ라 此 言乗肩輿之安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너운너운히 주184)
너운너운히
너울너울. 너운#너운+히. ‘너운너우니, 너운너운’ 등이 있다. ¶너운너우니 : 모로매 너운너우니 뇨리니〈몽산 6ㄱ〉. 너운너운 : 새 니 길로 : 조도(鳥道)와 같은 험한 길로. ‘새 니 길ㅎ’은 ‘조도(鳥道)’를 직역한 것이다.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새 니 길로 드러가 업드롤 주185)
업드롤
엎어질. 엎드리-[伏]+ㄹ. ¶何劉 沈謝 힘도 바지로이 몯리니 네 죄 鮑照 兼니 시르며 업드르리로다(何劉沈謝力未工 才兼鮑昭愁絕倒)「蘇端薛復筵簡薛華醉歌」〈두시 15:39ㄴ〉. 봄 오매 됴타 쇽졀업시 니놋다 어러운 미 키 업듣게 부놋다(謾道春來好 狂風大放顚)「漫成一首」〈두시 25:21ㄴ〉.
厄 거 주186)
거
거의. 〈중간본〉에는 ‘거의’로 되어 있다.
免호리라 주187)
면(免)호리라
면하리라. 면-+오+리+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편편입조도 서탈차질액【‘조도(鳥道)’는 산이 높고 험해 사람이 살 수 없고, 오직 새만이 날아 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견여를 타는 것의 편안함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너울너울 새 다니는 길로 들어가, 엎어질 액(厄)을 거의 면(免)하리라.
*시 구절 해석 : “너울너울 새 다니는 길로 들어가, 엎어질 액운을 거의 벗어났다.”라는 뜻으로, 험한 길을 말 대신 견여(肩輿)를 탈 때의 편안함을 말한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8년 12월 30일

원본이미지
이 기사는 전체 7개의 원본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석
주001)
전설(典設) : 중국 궁관(宮官)의 하나로, 내명부(內命婦) 정6품. 처음 이름은 사설(司設). 위장(幃帳), 인석(茵席), 쇄소(灑掃), 장설(張設)에 관한 일을 맡았다. 나중에 전설(典設)로 개칭하고, 종7품이 되었다.
주002)
정전설자시주귀(鄭典設自施州歸) : 이 작품은 대력(大曆) 2년(767) 기주(夔州)에 있을 때 지어졌다. 시에는 정 전설(鄭典設)이 시주(施州)에 부임해 갔다가 시주에서 떠날 때까지의 사정이 잘 그려져 있고, 아울러 대면하기를 생각했다는 말로 시주에 가고 싶은 속내를 드러냈다. 정 전설의 이름은 미상이다.
주003)
형양(滎陽) : 지명. 정 전설이 살던 고을로, 지금의 하남(河南) 정주(鄭州)다. 여기서는 정 전설을 대신해 쓴 말이다.
주004)
나 : 나는. 시의 첫 부분인데 주격조사가 아닌 보조사 ‘’을 썼다. 『두시언해』에서 언해가 ‘나’으로 시작하는 시가 예문과 같이 하나 더 있다. ¶나 諸侯의 늘근 賓客이로니(甫也諸侯老賓客)「醉爲···相看」〈두시 3:51ㄴ〉.
주005)
형양(榮陽)애 : 형양에. 榮陽+애. 형양(榮陽)은 지금의 하남성 정주시이다.
주006)
수미(秀美)호 : 수미함을. 수미-+오+ㅁ+.
주007)
노니 : 사랑하니. 가엽게 여기니. -++오+니. 15세기의 ‘-’은 ‘사랑하다’의 뜻으로 여기서는 원문의 ‘憐’에 대응한다. 『두시언해』에서 ‘憐’은 고유어와 한자어로 언해되었는데, 고유어는 동사로 ‘어엿비 너기다, 너기다, 슳다, 슬허다, 다, 오다, 다, 맛다’ 등으로, 형용사로 ‘어엿브다, 슬프다’ 등으로 언해되었고, 한자어로는 ‘愛憐다, 憐愛다, 怜愛다’ 등으로 언해되었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어엿비 너기- : 거우룻 가온 늘근 顔色 萬一에 故人이 어엿비 너기라(鏡中衰謝色 萬一故人憐)「覽鏡呈柏中丞」〈두시 3:43ㄱ〉. 너기- : 제 슬피 너교 니베니라(蓋蒙其傷憐而已)⟪退賊示官吏幷序⟫元結次山〈두시 25:39ㄱ〉. 슳- : 人日에 그를 서 草堂애 보내노니 故人 故鄕 호 아라히 슬노라(人日題詩寄草堂 遙憐故人思故鄕)「人日寄杜拾遺」蜀州刺史高適〈두시 11:4ㄱ〉. 슬허- : 주거 가더든 누를 브터 알외리오 도라와 비루소 내 슬허노라(死去憑誰報 歸來始自憐)「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 : 世옛 사미 호 도로 야리니 므슴 지츼 奇異호 리오(世人憐復損 何用羽毛奇)「鸚鵡」〈두시 17:17ㄴ〉.  : 여듧 잣 모미 長常 모 누늬  어두믈 듣디 몯리로다(不聞八尺軀 常受衆目憐)「贈李十五丈別」〈두시 22:53ㄴ〉. - : 平陰엣 音信이 갓가이 이시니  사라슈믈 아라히 노라(近有平陰信 遙憐舍弟存)「得舍弟消息二首」〈두시 8:35ㄴ〉. 도 혜요매 俊邁호 고 總角 저긔 聰明호 다라(數金憐俊邁 總角愛聰明)「不歸」〈두시 24:61ㄴ〉. 오- : 되 아 무슈믄 도로혀 뎌러니 이슈미 어려우니 楚ㅅ 겨지븨 허리와 四支  可히 오도다(胡童結束還難有 楚女腰支亦可憐)「淸明二首」〈두시 11:13ㄴ〉. 허리 아랫 寶玦 프른 珊瑚로 론 거시로소니 可히 온 王孫이 긼 모해셔 우놋다(腰下寶玦靑珊瑚 可憐王孫泣路隅)「哀王孫」〈두시 8:1ㄴ〉. - : 나도  東蒙山 人客이로니 그듸 호 第兄 티 노라(余亦東蒙客 憐君如弟兄)「與李···隱居」〈두시 9:11ㄱ〉. 맛- : 다 그 맛야셔 醉야 업드로니 죠고맷 미 降호  알와라(盡憐君醉倒 更覺片心降)「季秋···三首」〈두시 15:53ㄱ〉. 어엿브- : 城郭이 져고 도기 屠殺 아니니 사미 가난야 슬퍼 可히 어엿블니라(城小賊不屠 人貧傷可憐)⟪退賊示官吏幷序⟫元結次山〈두시 25:39ㄴ〉. 슬프- : 可히 슬프다 곧마다 사 지븨 와 깃니 飄飄히 이 모 브텨슘과 어느 다료(可憐處處巢君室 何異飄飄託此身)「燕子來어 舟中作이라」〈두시 17:16ㄴ〉. 愛憐- : 長年 篙師ㅣ오 三老 柁工이라 捩 搖柁也ㅣ라 開頭 初行船也ㅣ라 이  잘 녀 여 가 깃거니니라(長年三老遙憐汝 捩柁開頭捷有神)「撥悶」〈두시 3:32ㄱ〉. 憐愛- : 驥子 各別히 養飼야 神俊호 憐愛니라(別養驥子憐神俊)「天育驃騎歌」〈두시 16:40ㄴ〉. 怜愛- : 世亂 저긔 네의 져고 怜愛노니 지비 가난니 어믜 恩慈 울워렛니라(世亂憐渠小 家貧仰母慈)「遣興」〈두시 8:47ㄱ〉.
주008)
 : 껴. -[冒]+어. ‘다’는 자타동 양용동사이며 타동사 용법의 ‘다’의 피동사로는 ‘이다’와 ‘디다’가 쓰이기도 하였다. ‘다’는 ‘구름이 끼다, 물이 끼다, 팔찌를 끼다, 창을 팔에 끼다’의 의미가 있다. 여기서는 ‘무릅쓰다[冒]’의 의미이다. ¶다[冒] : 九日에 이 시름니 時節을 디나록 어려운 길헤  가놋다(九日應愁思 經時冒險艱)「九日奉寄嚴大夫」〈두시 11:31ㄱ〉. 아래 前生브터 根이 니근 天龍八部ㅣ 一時예 圍繞 님 구룸  얫더니〈월석 4:46ㄱ〉.  안개 가지며  여 잇 프른 대와 여러 가짓 일훔 난 곳과〈번박 70ㄱ〉. 侍臣이 님 믈 스니 賦ㅣ 녯 사게 엿 죄 잇도다(侍臣書王夢 賦有冠古才)「雨三首」〈두시 12:13ㄱ〉. 다(자동사) : 아래 前生브터 根이 니근 天龍八部ㅣ 一時예 圍繞 님 구룸  얫더니〈월석 4:46ㄱ〉. 錦幪은 기르마 우희  거시라 此 皆言賊騎ㅣ 充滿京中也ㅣ라(合昏排鐵騎 清旭散錦幪)「徃在」〈중간두시 4:20ㄱ〉. 이 더운 구루미 고 비  오 니니라(火雲無時出 飛電常在目)「三川觀水漲二十韻」〈두시 13:6ㄴ〉. 百姓이 디 몯앳니 되 리 乾坤애 半만 도다(蒼生未蘇息 胡馬半乾坤)「建都十二韻」〈두시 13:32ㄴ〉. 다(타동사) : 圓頓敎 金龍이 바래 나니 籠 디 마롤 디어다〈남명 하:38ㄱ〉. 니건  涪江애 나못 닙 딜 제 槍을 희 고 이 더닌 뉘 짓아오(去秋涪江木落時 臂槍走馬誰家兒)〈중간두시 4:33ㄱ〉. 셔울히 구름  뫼 밧기로소니 音問ㅅ 글워리 괴외야 오디 아니놋다(京洛雲山外 音書靜不來)「雲山」〈두시 3:27ㄴ〉. 智慧와 예 님금 스치샤미 드롓니 나며 드로매 諸公의게 옛도다(智謀垂睿想 出入冠諸公)〈두시 5:41ㄴ〉. 온 가짓 보로 허리옛  미고 眞珠로   거싀 얼겟도다(百寶裝腰帶 眞珠絡臂鞲)「卽事」〈두시 16:51ㄴ〉. 이- :  안개 가지며  여 잇 프른 대와 여러 가짓 일훔 난 곳과〈번박 70ㄱ〉. 侍臣이 님 믈 스니 賦ㅣ 녯 사게 엿 죄 잇도다(侍臣書王夢 賦有冠古才)「雨三首」〈두시 12:13ㄱ〉. 디- : 衆生과 부텨왜 本來 이시며 디여 變호매 다디 아니호  實相이오〈월석 11:12ㄱ〉.
주009)
처 : 처음. 〈중간본〉에는 ‘처엄’으로 되어 있다.
주010)
가미 : 감이. 가-[去]+오+ㅁ+이. ‘가’는 상성이다.
주011)
행역(行役) : 옛날에 병역(兵役)이나 노역(勞役) 또는 공무(公務)에 복무하기 위해 밖으로 나아가는 일.
주012)
일홈난 : 이름난. 일홈#나-+ㄴ. 15세기 국어에서 ‘명(名)’의 뜻으로는 ‘일홈’보다 ‘일훔’이 더 많이 쓰였다.
주013)
어딘 : 어진. 어딜-[賢]+ㄴ.
주014)
나며 드러슈믈 : 나며 들어 있음을. 나-+며 들-+어#잇-+우+ㅁ+을. 원문의 출처(出處)에 대한 번역이다. 출처(出處)는 ‘관직에 나아감과 물러나 집에 있음’을 말한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015)
간대로 : 망녕되이. 허망하게.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함부로. ‘간대[妄]+로’로 구성된 파생부사. 원문의 ‘妄’에 대한 번역이다. ¶간대로 : 艱難 사미 간대로 帝王이로라 일훔다가〈능엄 6:112ㄴ〉. 有志 士 간대로 뮈요 앗기건마(志士惜妄動)「別崔潩因寄薛據孟雲卿」〈두시 23:32ㄴ-33ㄱ〉.
주016)
녀뇨 : 다님을. 녀-#니-+오+ㅁ+.
주017)
풍속(風俗)이 먼  : 풍속이 먼 데. 즉 정 전설(鄭典設)이 풍속이 많이 다른 곳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주018)
조 : 자주. ‘조’는 ‘-’에 부사화접미사 ‘오’가 결합되어 파생된 낱말이다.
주019)
뷔유믜 : 빔의. 뷔-[空]+우+ㅁ+의.
주020)
뵈라 : 뵈러. 배알하러. 뵈-[謁]+라. 원문의 ‘알(謁)’을 번역한 낱말이다. ¶뵈-(배알하다) : 須達이 라고 몯내 과 호 부텨 뵈 禮數를 몰라〈석상 6:20ㄴ〉. 南 녀그로 裴施州를 :뵈라 가니(南謁裴施州)「鄭典設自施州歸」〈두시 19:27ㄱ〉.
주021)
마자 : 맞아. 맞-+아.
주022)
험피(險僻)호미 업도다 : 험난함을 피함이 없도다.
주023)
등돈(登頓) : 위아래로 오르내리면서 걸어가는 것.
주024)
입시석(入失石) : 몰시석(沒矢石). 화살이 돌덩이를 꿰뚫고 지나가 박혀 보이지 않는다는 말. 화살의 힘이 아주 강력한 것을 비유한다.
주025)
이광(李廣) : ?~기원전 119. 한(漢)나라 때의 농서(隴西) 성기(成紀) 사람. 문제(文帝) 때 양가(良家)의 자제로 종군하여 흉노를 격퇴하여 낭(郞)이 되고, 무기상시(武騎常侍)를 지냈다. 경제(景帝) 때 효기도위(驍騎徒尉)에 올랐다. 나중에 농서, 북지(北地), 안문(雁門) 등 군(郡)의 태수를 역임했다. 무제(武帝) 때 입조하여 미앙위위(未央衛尉)가 되고, 우북평태수(右北平太守)를 지냈다. 활을 잘 쏘았으며, 병졸을 아끼고 잘 이끌어 모두 날래고 용맹해 전투하기를 좋아했다. 흉노가 두려워하여 몇 년 동안 감히 국경을 침범하지 못하고 비장군(飛將軍)이라 칭송했다. 일곱 군데 변방 군의 태수를 지냈고, 전후 40여 년 동안 군대를 이끌고 흉노와 대치하면서 70여 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다. 병사들의 마음을 깊이 얻었지만 끝내 봉후(封侯)되지는 못했다. 원수(元狩) 4년(기원전 119) 대장군 위청(衛靑)을 따라 흉노를 공격했다가 길을 잃고 문책을 받자 자살했다.
주026)
불휘 : 뿌리가. 불휘+∅. 하향중모음 뒤에서 주격조사가 생략되었다.
주027)
엿 : 달려 있는. 즉 뿌리가 땅에서 솟아나와 공중에 달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는 뜻이다.
주028)
남글 : 나무를. 나모/남ㄱ+을.
주029)
더위잡곡 : 더위잡고. 붙잡고. 더위#잡-+고+ㄱ(강세첨사).
주030)
살 : 화살.
주031)
드 : 드는. 들-[入]++ㄴ. 현대역으로는 ‘든’이 맞지만 여기서는 ‘드’으로 번역되어 있다.
주032)
돌해 : 돌에. 돌ㅎ+애. ‘돌ㅎ’은 ‘ㅎ’ 말음체언이다. 〈중간본〉에는 ‘놀해’로 되어 있다.
주033)
오려 : 오르내려. 오-#리-+어.
주034)
뫼헤 : 산에. ‘뫼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35)
스싀로 : 스스로.
주036)
내힌 : 내인. 내ㅎ+이+ㄴ. ‘내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37)
히로소니 : 땅이니. ㅎ+이+도+ㅅ+오+니.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38)
시르믈 시서 리도다 : 시름을 씻어 버렸도다. 시름+을 싯-[洗]+어 리-+도+다. 험난한 지형에서 편평한 지형으로 바뀌어 성곽이 위치해 있으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주039)
열역(悅懌) : 즐거움. 유쾌(愉快)함.
주040)
그의 : 그대의. 그+의(속격). ‘그’는 15세기에 ‘그듸, 그디, 그’가 쓰였는데 점차 ‘그’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인다. 『두시언해』에서는 ‘그듸’와 ‘그’가 같이 쓰인다. ¶그 : 다가 나 알면 萬事ㅣ 차 낟 봄 업스며 나 몸 업서 大虛ㅣ 니 그 爲야 波羅蜜 서 지시니라〈금삼 3:57ㄴ〉. 그듸 : 그듸 能히  돌로 거를 니 나도   믈로 모 노라(子能渠細石 吾亦沼淸泉)「自瀼···四首」〈두시 7:17ㄱ〉~그 能히  돌로 거를 니 나도   믈로 모 노라〈중간두시 7:17ㄱ〉.
주041)
이 올 : 이 고을을. 이 올ㅎ+. ‘올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올ㅎ : 아란 히어나 자시어나 올히어나 나라히어나 뷘 수프리어나 이 經을 너비 펴며〈석상 9:40ㄱ〉. 올흘 거느려든 곧 비치 업고 올 갈 저〈두시 5:16ㄱ〉기어든 다 말미 잇도다(領郡輒無色 之官皆有詞)「有感五首」〈두시 5:15ㄴ-16ㄱ〉.
주042)
니거늘 드로니 : 말하거늘 들으니. 니-[說]+거늘 듣-[聞]+오+니.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예. 닐오리라). 불규칙활용 중 이른바 ‘ㄹ·ㅇ’형이다. ‘-오-’는 화자를 가리키는 선어말어미로 종결형이나 연결형에서 주어가 1인칭대명사 ‘나’ 등 화자일 때 결합하는 선어말어미이다. 이전에는 종결형이나 연결형에 쓰인 ‘-오/우-’는 주체의 주관적 의도가 개재된 동작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 ‘의도법’ 선어말어미라 부르고, 관형형에 쓰이는 ‘-오/우-’는 ‘대상활용’의 선어말어미라 불렀다.
주043)
내 : 나의. 내(평성). 1인칭 대명사 ‘내’는 주격으로 쓰일 때 주격조사 ‘ㅣ’와 결합하여 ‘‧내:’, 관형격으로 쓰일 때 관형격조사 ‘ㅣ’와 결합하여 ‘내(평성)’으로 쓰인다. 인칭대명사의 주격 형태와 관형격 형태는 다음과 같이 성조에 의해 구별된다. ①‧내(주격), 내(관형격) ②:네(주격), 네(관형격) ③‧뉘(주격), :뉘(관형격), ④:제(주격), 제(관형격). 15세기 국어에서는 1인칭 겸칭 대명사 ‘저’가 쓰이지 않았다.
주044)
로 여 : 마음으로 하여금. +로 -+ㅣ(사동접미사)+어. ‘-로 여’는 현대국어의 ‘-로 하여금’에 해당하는 피사동 주격표지이다. 『두시언해』에서는 ‘-로 여, -로 여, -로 여곰’ 등이 쓰이고 〈중간본〉에서는 ‘-로 여’가 보편적으로 쓰인다. 〈중간본〉에는 ‘로’로 되어 있다. ¶-로 여 : 님굼이 高允으로 여太子를 글 치라 더니〈飜小9:44ㄱ〉. 내 머리 도라 라 로 여 셜워 우러 슬픈 미 닐에 디 마롤 디어다(莫令回首地 慟哭起悲風)「收京」〈두시 5:9ㄱ〉. -로 여 : 스골 가셔 나날 집 사으로 여 음식 차반을 초와 권과 녯 벋과 손 야 서르 즐기며〈번소 9:87ㄴ〉. 龍과 象 우루믈 든논 니 足히 信向 사로 여 슬케 리로다(如聞龍象泣 足令信者哀)「山寺」〈두시 9:28ㄱ〉. -로 여곰 : 夫人이 寬으로 여곰 怒호 試驗코져 야〈내훈 1:16ㄱ〉. 다가 히 어딘 일 아 사으로 여곰 이 을 싀워 야 뎐독호〈장수 72ㄴ〉. 머리 롣 將軍 오미 엇뎨 더듸뇨 내 心中로 여곰 심히 快足디 아니케 다(銳頭將軍來何遲 令我心中苦不足)「久雨···不至」〈두시 5:35ㄴ〉.
주045)
즐겁게 다 : 즐겁게 한다. 즐겁게 하네. 즐겁-[樂]+게 -++다.
주046)
겟 : 거기의. 그+에+ㅅ.
주047)
순후(純厚) : 순박(純朴)하고 순후(淳厚)함.
주048)
검박(儉朴) : 검박(儉樸). 절약근검하고 행실이 소박하면서 신실(信實)함.
주049)
이슈믈 : 있음을. 잇-[有]+우+ㅁ+을.
주050)
아디 몯니라 : 알지 못한다. 알-[知]+디 몯-++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어간의 말음이 ‘ㄹ’인 형태소 뒤에 ‘ㄴ’이나 ‘ㄷ’으로 시작되는 형태소(니, 디 등)가 오면 ‘ㄹ’은 자동으로 탈락한다.
주051)
온온(溫溫) : ①부드러운 모양. ②따뜻한 모양. ③윤이 나는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52)
제후(諸侯) : 천자(天子) 다음으로 고귀한 신분의 사람에 대한 총칭. 고대 중국에서 천자에 딸려 있었고, 천자에게서 일정한 영토를 받을 뿐만 아니라 일정한 의무를 지녔으며, 영내의 백성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졌다.
주053)
문하(門下)ㅣ니 : 문하이니. 계사가 연결되는 선행어가 모음으로 끝났기 때문에 ‘ㅣ’의 형태로 표기되었다.
주054)
니라 : 같으니라. -[如]+니+라.
주055)
배반(盃盤) : 배반(杯柈). 술잔과 소반(小盤). 즉 술과 안주를 가리킨다.
주056)
낭자(狼藉) : ①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러운 모습. 이리가 자고 난 자리는 몹시 난잡한 데서 나왔다. ②자신의 행동이나 평판에 대해 전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 ③곤궁함.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57)
브븻 : 부엌의. 브[廚]+의+ㅅ. 〈중간본〉에는 ‘브어븻’으로 되어 있다. ¶브 爲竈〈훈해 57〉. 蔗漿이 브븨셔 가니 金盌이 언 니(蔗漿歸廚金盌凍)「入奏行···侍御」〈두시 8:22ㄱ〉.
주058)
라 홈도 : 만들라 함도. -[作]+라 -+오+ㅁ+도. 〈중간본〉에는 ‘라’로 되어 있다.
주059)
상(常)녯 : 보통. 상녜+ㅅ. ‘상녜’의 ‘상’이 한자어 ‘상(常)’이라는 좋은 근거를 보여주는 표기법이다. ‘ㅅ’은 부사어에 잘 연결되는 부가적인 용법의 부사화접미사이다.
주060)
차반애 : 음식에. 차반+애.
주061)
두 리오 : 두 배이고. 두 [重]+이+고.
주062)
배반(盃盤)도 : 잔과 접시도. 배반+도.
주063)
모 : 자못. 매우. 원문의 ‘何’를 번역한 것이다. 〉/믇//믓〉몯. ‘모’는 현대국어의 ‘자못’의 15세기 어형이나 수사의문문의 번역에서 의문사의 번역으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이런 현상은 특히 『두시언해』에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제로 녜 보건댄 모 해 어긔나 專門 녯 學 矛盾 免티 몯려니와(然이나 以今視昔건댄 稍多違戾니 專門舊學 不免矛盾려니와)〈능엄1:22ㄴ〉. 秦山ㅅ 나조 안자셔 相對야쇼 江湖앳 興心이 모 좃다(坐對秦山晩 江湖興頗隨)「陪鄭···十首」〈두시 15:10ㄴ〉. (의문사의 번역어) : 너비 내 아로로 여러  깃기시니 모 盛시다(普以吾覺로 悅可衆心시니 何其盛哉라)〈남명서:3ㄱ〉. 稻梁 어두믈 足히 몯야셔 薏苡로 하로미 모 도다(稻粱求未足 薏苡謗何頻)「寄李十二白二十韻」〈두시 16:6ㄴ〉.
주064)
사핫도다 : 쌓여 있도다. 샇-[築]+아#잇-+도+다. ‘샇-’는 경음 표기를 하지 않는 『두시언해』의 표기로 인해 생긴 표기로 15세기의 ‘쌓다’와 같다. ‘샇다’는 자타동 양용동사로 여기서는 자동사의 용법으로 쓰였다.
주065)
브왜요매 : 상란(喪亂)함에. 조상(凋喪)함에. 브왜-[喪亂]+오+ㅁ+애. 원문 ‘상란’의 번역이다. ‘브왜-’는 『두시언해』에만 나오는 낱말로 ‘브와이-(브와요매)’로도 쓰였으며, 주로 ‘상란, 조상, 상패, 저상, 패망’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중간본〉에는 ‘브으왜요매’로 되어 있다. ¶녯 時節ㅅ 브왜요 다 可히 알리로소니 人世예 슬프며 즐거운  간 서르 펴노라(古時喪亂皆可知 人世悲歡暫相遣)「清明」〈두시 11:13ㄱ〉. 幹은 오직 고기 그리고  그리디 몯니 마 驊騮로 여 氣運을 브왜에 리아(幹惟畵肉不畵肉 忍使驊騮氣凋喪)「丹靑引贈曹將軍霸」〈두시 16:27ㄴ〉. 볼 사미 뫼티 이셔 비치 브왜니 하콰 쾌 爲야 오래 갑거니 놉거니 니라(觀者如山色沮喪 天地爲之久低昻)「觀公孫···並序」〈두시 16:47ㄱ-ㄴ〉. 時節이 비록 브왜요매 브터 이시나 이  마 사미 賞玩호미 貴니라(時雖屬喪亂 事貴賞匹敵)「鄭典設自施州歸」〈두시 19:28ㄱ〉. 히미 서르 브왜니 부쳐 뇨매 두려 조심호 免호라(筋力交凋喪 飄零免戰兢)「寄劉···四十韻」〈두시 20:24ㄴ〉. 브왜요미 赤壁 디 아니코 쳐 뇨 黃巾을 爲얘니라(敗亡非赤壁 奔走爲黃巾)「贈王···四十韻」〈두시 20:26ㄴ〉. 長安애셔   셔메 萬錢을 받거 브왜야 나 숨 쉬요 니라(長安米萬錢 凋喪盡餘喘)「故秘···源明」〈두시 24:35ㄴ〉.
주066)
브터 이시나 : 속해 있으나. 븥-[屬]+어 이시-+나.
주067)
이 : 일은. 일+.
주068)
마 : 맞은. 맞-[適當]+. 원문의 ‘필적(匹敵)’에 대한 번역으로 쓰였다. ‘필적(匹敵)’은 ‘서로 대비됨. 서로 마땅함. 대등(對等)함’의 뜻이다.
주069)
상완(賞玩)호미 : 상완함이. ‘상완(賞玩)’은 ‘상완(賞翫)’과 같으며, ‘흔쾌하게 감상하면서 완미(玩味)함’을 뜻한다.
주070)
귀(貴)니라 : 귀하다. 귀중하다. 귀-+니+라. ‘-니라’는 원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로 오늘날에도 다소 예스러운 표현으로 쓰기도 한다.
주071)
중소(中宵) : 중야(中夜). 반야(半夜). 야반(夜半). 한밤중.
주072)
바 : 밤에. 밤+.
주073)
됴 : 좋은. 둏-[好]+.
주074)
회집(會集)을 : 집회를.
주075)
매 : 마음에. +에. 〈중간본〉에는 ‘매’로 되어 있다.
주076)
마초니 : 맞추어 하니. 마초#-+니. ‘마초’는 ‘맞다’의 사동사인 ‘마초다’의 어간부사로 용언어간이 바로 부사가 되는 예의 하나이다. 이러한 예로는 ‘바다~바, 하다~하, 가초다~가초, 마초다~마초’ 등이 있다. 〈중간본〉에는 ‘마초호니’로 되어 있다.
주077)
배정(裴鄭)이 : 배 시주(裵施州)와 정 전설(鄭典設)이.
주078)
아미 : 친척이. 아[親戚]+이.
주079)
아니니라 : 아니다. 아니+니+라. ‘니라’는 ‘다’보다 약간 보수성이 있는 어미이다.
주080)
뭀 : 많은. 무리의. 물[群]+ㅅ. ‘물’은 ‘무리’의 뜻으로 15세기에서는 ‘물, 믈, 무리, 므리’의 형태로 쓰였다. ¶靈 芝草ㅣ 뭀 곳다온 거긔 위두 니(靈芝冠衆芳)〈두시 19:41ㄱ〉.
주081)
글월 : 글. 편지. 여기서는 글이 담겨 있는 책을 뜻한다.
주082)
사무(事務) : 사무하는. 공무를 보는.
주083)
예 : 사이에. [間]+에. 〈중간본〉에는 ‘이예’로 되어 있다.
주084)
너비 : 널리. ‘너비’는 ‘넙-[廣]’에 부사화접미사 ‘-이’가 붙어 파생된 부사이다.
주085)
섭렵(涉獵) : 책을 읽어 배움에 힘쓰거나 어떤 기술을 익히는데, 단지 겉모습이나 간단한 기능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깊이 탐구하고 실습해 근본까지 장악한다는 말.
주086)
섭렵(涉獵)놋다 : 섭렵하는구나. 涉獵#-++오+ㅅ+다.
주087)
은구(銀鉤) : ①발을 거는 은제(銀製)의 고리. ②은으로 만든 열쇠. ③잘 쓴 글씨를 말함. 구(鉤)는 필획(筆劃). 진(晉)나라 색정(索靖)이 초서를 잘 썼는데 사람들이 그 글씨를 “은 갈고리 말의 꼬리”라 칭찬했다. ④은으로 만든 띠의 마물(魔物) 단추. ⑤은빛이 나거나 은으로 만든 여자들의 장신구. ⑥초승달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주088)
삼소(森踈) : 가지나 나뭇잎이 무성하게 자라난 모양.
주089)
모극(矛戟) : 흉기(凶器). 병기(兵器). 모(矛)는 긴 자루 끝에 날을 단 병기고, 극(戟)은 양쪽으로 날이 있는 병기다.
주090)
구양순(歐陽詢) : 557~641. 당나라 초기 담주(潭州) 임상(臨湘) 사람. 자는 신본(信本) 또는 소신(少信)이다. 진(陳)나라의 광주자사(廣州刺史)였던 아버지 구양흘(歐陽紇)이 반역자로 처형된 데다 키가 작고 얼굴이 못생겨서 남의 업신여김을 받는 등 어릴 적부터 불행한 환경을 참고 견디며 자랐다. 경사(經史)에 정통하여 수나라 때 태상박사(太常博士)를 지냈다. 당나라 태종 정관(貞觀) 초에 태자율갱령(太子率更令)과 홍문관학사를 지내고, 발해현남(渤海縣男)에 봉해졌다. 그의 글씨는 멀리 고려에까지 알려졌는데 처음에는 이왕(二王), 즉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 부자의 글씨를 배웠다고 한다. 글씨는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해법(楷法)의 극칙(極則)이라 하여 칭송했다. 필체가 험하고 굳세 세칭(世稱) 구체(歐體) 또는 율경체(率更體)라 불렸다. 우세남(虞世南), 저수량(褚遂良), 설직(薛稷)과 함께 당나라 초기 사대명필(四大名筆)로 손꼽혔다. 배구(裵矩), 진숙달(陳叔達)과 함께 『예문유취(藝文類聚)』를 편찬했다. 비첩(碑帖)이 있다.
주091)
행서(行書) : 서체의 일종. 예서(隷書)로부터 발전했다. 후한(後漢)의 유덕승(劉德升)이 창안했다고 전해진다.
주092)
삼연(森然) : ①무성하고 빽빽한 모양. ②많은 모양. ③우뚝 솟은 모양. ④무서워서 머리털이 곤두선 모양. ⑤가지런하고 질서가 있는 모양.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93)
다 : 다른. 다-[他]+. ‘다-’는 ‘불규칙용언’의 이른바 ‘ᄅᆞㅇ’형 활용 형용사이다.
주094)
나래 : 날에. 날[日]+애.
주095)
 : 같은. -[同]+. 15세기의 ‘-’은 ‘-’로도 쓰였다.
주096)
욕(辱)도이 : 욕되게. 辱#-+이. ‘辱도이’를 ‘辱도이-’의 활용으로 본 것은 잘못이다. 정음 초기문헌에서 ‘辱’의 용례가 있으므로 ‘辱-’의 활용으로 보아야 한다. ¶辱- : 녀나 그지업슨 어려 일와 辱 일와 슬픈 일와〈석상 9:8ㄴ〉. 忍辱仙은 辱 일  仙人이라〈월석 4:29ㄴ〉. 辱왼 境이 데 當니 이슈믈 보미 곧 아니오〈금강 79ㄱ〉. 辱왼 일 됴 랑야〈내훈 1:52ㄴ〉. -도이 : 鬼神은 어드워 시름왼 苦애 곗고(鬼神은 沈幽愁之苦고) 〈원각 서:13ㄴ〉. 머리 도혀 라 虞舜을 우로니 蒼梧애 구루미 正히 시름외도다 슬프다 瑗池예 宴飮던 저기여 나리 崐崙ㅅ 두들게 느젯도다(回首叫虞舜 蒼梧雲正愁 惜哉瑤池飮 日晏崑崙丘)「同諸公登慈恩寺塔」〈두시 9:33ㄱ〉. 韋侯ㅣ 나 여희오 가논 배 잇니 그딋 그리믜 오리 업순 고 내 憐愛  아라 무듼 부들 노도이 자바 驊騮 그리니 騏驎이 東녁 매 나슈믈 믄득 보라(韋侯別我有所適 知我憐君畵無敵 戱拈禿筆掃驊騮 欻見騏驎出東壁)「題壁上韋偃畫馬歌」〈두시 16:41ㄴ〉.
주097)
호라 : 듯한다. +-+오+다.
주098)
도사(倒屣) : 신을 거꾸로 신음. 곧 진심으로 사람을 환영하여 황급히 맞이함. 도섭(倒屧). 도리(倒履).
주099)
갓고로 : 거꾸로. 갓골-[飜]+오(부사화접미사).
주100)
시너 : 신어. 신-[履]+어.
주101)
도라오 : 돌아옴을. 돌-+아#오-+오+ㅁ+.
주102)
깃거 : 기뻐하여. -[喜]+어. 동사 ‘-’과 형태상 관련이 있는 것으로 ‘-어-’가 연결된 파생동사 ‘깃거-’와 ‘-/브-’가 연결된 파생형용사 ‘깃브-’가 있다. 현대국어의 ‘기뻐하-’는 ‘깃브-’에 ‘-어-’가 연결되어 동사로 파생된 것이다. ¶- : 녀론 깃거 구쳐 니러 절시고 안쇼셔 시고〈석상 6:3ㄱ〉. 녯 가히 내 도라오 깃거 기 도라 옷 기슬게 드다(舊犬喜我歸 低徊入衣裾)「草堂」〈두시 6:39ㄴ〉. 깃거- : 이 매 훤히 즐겁도다 시고 도라 드르샤  깃거시더라〈석상 3:20ㄴ〉. 나 漏刻 노 지븨셔 알외요 드므리 드르리로소니 님  깃거샴 이쇼 近侍 臣下ㅣ 아놋다(晝漏稀聞高閣報 天顔有喜近臣知)「紫宸殿退朝口號」〈두시 6:7ㄱ-ㄴ〉. 깃브- : 難陁 깃브다 논 마리오〈석상 13:7ㄴ〉. 엇뎨 너븐 집 千萬閒을 어더 天下앳 치운 사 키 그늘워 다 깃븐 치에 야  비예 뮈디 아니야 便安호미 뫼 게 려뇨(安得廣廈千萬閒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茅屋···破歌」〈두시 6:43ㄱ〉.
주103)
디나온 : 지나온. 디나-[經]+아+오-+ㄴ.
주104)
 : 데를. [所]+.
주105)
해 : 땅에. ㅎ+애. ‘ㅎ’는 ‘ㅎ말음체언’이다.
주106)
그 : 그어. 긋-[劃]+어. 〈중간본〉에는 ‘그어’로 되어 있다.
주107)
뵈다 : 보인다. 보-+이[示]++다.
주108)
전주(田疇) : 전지(田地), 농토를 가리키는 말.
주109)
드로니 : 들어니. 듣-[聞]+오+니. ‘오’는 1인칭 화자와 호응하는 선어말어미로서 종결어미와 함께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예외적으로 연결어미 ‘-니’와 함께 쓰인다.
주110)
여러 : 열려. 열-[開]+어. ‘열-’은 자타동 양용동사로서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주111)
가랏도다 : 갈려 있도다. 갈-[墾]+아#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112)
자사(刺史) : 관직 이름. 전한(前漢) 무제(武帝) 원봉(元封) 5년(기원전 106) 전국을 13부(部)로 나누고 부마다 중앙에서 파견한 자사 1인을 두었다. 자사는 관할 부를 순행하면서 호족이나 군(郡)의 태수를 감찰했다. 성제(成帝) 때 자사를 주목(州牧)으로 개칭했고, 후한(後漢) 초 다시 자사로, 후한 영제(靈帝) 때 또다시 주목으로 바꾸었다. 초기에는 지위가 군수(郡守) 아래였지만 이후 군수보다 한 단계 높았으며, 군정(軍政) 대권을 맡기도 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각 주에 자사를 설치하여 도독(都督)을 겸임토록 했다. 이때 장군이란 칭호가 붙여졌으며, 권한도 한층 높았다. 수나라 이후 주의 자사는 군의 태수와 같은 직급이거나 태수의 별칭으로 쓰였으며, 권력도 점차 낮아졌다. 송나라 이후 중앙에서 자사를 파견했지만 실제로 부임하지 않았으며, 습관상 태수를 자사라고 불렀다. 청(淸)나라 때 역시 주로 지사(知事)의 별칭으로 쓰였다.
주113)
구순(寇恂) : ?~36. 후한 상곡(上谷) 창평(昌平) 사람. 광무제(光武帝) 때의 무신으로, 자는 자익(子翼)이고, 시호는 위(威)이다. 처음에 군공조(郡工曹)가 되었다. 왕망(王莽)이 패망하자 태수 경황(耿況)을 설득해 유수(劉秀)에게 귀순케 하고, 편장군(偏將軍)에 올랐다. 나중에 하내태수(河內太守)에 임명되어 대장군 일을 맡고, 전운(轉運)을 책임지면서 군량을 충족시켰다. 영천(潁川)과 여남(汝南) 태수를 지내면서 향교(鄕校)를 수리하여 학생을 가르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황제를 따라 남쪽으로 영천의 군도(群盜)를 정벌해 항복시키려고 하자 백성들이 황제의 길을 막고 한 해 더 재임하기를 요청했다 한다. 나중에 농서(隴西)로 정벌을 가 외효(隗囂)의 잔당인 고준(高峻)을 압박해 한나라에 항복하게 하였다. 경명행수(經明行修)로 조정에 명망이 자자했고, 사람들이 장자(長者)라 칭송했다. 옹노후(雍奴侯)에 봉해졌다.
주114)
영천(潁川) : 하남성 허주(許州) 동북쪽. 즉 후한(後漢) 예주(豫州)의 영천(穎川郡)을 가리키는 말.
주115)
겟 : 거기의. 그+에+ㅅ.
주116)
니 : 같으니. -[如]+니.
주117)
버럿 : 벌려 있는. 늘려 있는. 벌-[列]+어#잇-+.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118)
올히 : 고을이. 올ㅎ+이. ‘올ㅎ’은 ‘ㅎ’ 말음체언이다. 여기서의 ‘올ㅎ’은 ‘고을 사람’들을 뜻한다. 일종의 제유(提喩 metomomy)에 해당한다. 〈중간본〉에는 ‘고울히’로 되어 있다.
주119)
톼 : 다투어. 토-[競]+아. ¶토- : 나 난 後로  더브러 토 아니노다〈석상 11:34ㄴ〉. 中原에도 사화 토미 잇니(中原有鬪爭)「前出塞九首」〈두시 5:29ㄴ〉.
주120)
비로미 : 비는 것이. 빌-[願]+오+ㅁ+이.
주121)
맛도다 : 맛당하도다. 맛#-+도+다. 〈중간본〉에는 ‘맛당도다’로 되어 있다. ¶맛- : 되의 목수믄 그 能히 오라리아 님 紀綱 그추미 맛티 아니커니녀(胡命其能久 皇綱未宜絕)「北征」〈중간두시 1:8ㄴ〉. 鍾鼎에 사교 조 보노니 眞實로 北斗ㅅ 벼 法 바도미 맛니라(數見銘鍾鼎 眞宜法斗魁)「秋日···三十韻」〈두시 3:10ㄴ〉.
주122)
## 광무제(光武帝) : 기원전 6~57. 유수(劉秀). 후한의 초대 황제(재위, 25~57). 남양(南陽) 채양(蔡陽) 사람. 자는 문숙(文叔)이고, 고조 유방의 9세손이다. 젊었을 때 장안에서 공부하다 왕망 말년 농민들이 대대적으로 봉기하고 군웅들이 할거하자 지황 3년(22) 형 유적(劉適)과 함께 용릉(舂陵)에서 거병하여 녹림군(綠林軍)에 가입했다. 왕망의 군사를 곤양(昆陽)에서 대파하고 농민군들을 병합했다. 다음 해 유현(劉玄)을 추대하여 한제(漢帝)로 삼고, 장안(長安)에 도읍을 정했다. 그 뒤 하북(河北)에 진출하여 제군(諸郡)을 평정하고, 건무(建武) 원년(25) 제위(帝位)에 올라 낙양(洛陽)에 도읍을 정했다. 이후 10년에 걸쳐 적미군(赤眉軍)을 진압하고 공손술(公孫述)과 외효(隗囂)를 차례로 평정하면서 12년(36) 천하를 완전히 통일했다. 여러 차례 노비들을 석방하고 죄수를 사면해 평민으로 복귀시키며 조세와 요역(徭役)을 경감했다. 한편 수리(水利)를 재건하고 4백여 개의 현(縣)을 정비하면서 관리들을 정선하여 파견했다. 조정에서는 상서(尙書)의 직권을 강화하고, 지방에서는 군권(軍權)을 장악한 도위(徒尉)를 폐지하는 등 중앙집권을 강화시켰다. 유학을 장려하고, 명분과 절의(節義)를 존중했고, 선비를 우대하는 등 후한의 예교주의적(禮敎主義的)인 정치 방침을 확립했다. 33년 동안 재위했다.
주123)
장려(瘴癘) : 장(瘴)은 속병을, 여(癘)는 질병을 말하는 것으로, 열대지방이나 습한 곳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일컫는 말. 장기(瘴氣). 장독(瘴毒).
주124)
이로(羸老) : 병들고 쇠약(衰弱)한 노인.
주125)
북(北)녃 : 북녘의. 北#녁+ㅅ. ‘동, 서, 남, 북’ 중에서 ‘서’만 ‘西ㅅ녁’과 같이 사이시옷이 쓰인다.
주126)
미 : 바람이. +이.
주127)
불어든 : 불거든. 불어 내거든. 두보의 지병이 가을이 되면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
주128)
시드러운 : 시드러운. 시들-[枯]+업+우+ㄴ. ‘시드럽다’는 ‘시들다’에 형용사파생접미사 ‘-업-’이 결합되어 다시 형용사로 파생된 것인데, ‘시드럽다’는 주로 『두시언해』에서만 쓰이고 나머지 15세기 문헌에서는 주로 ‘시들다’가 쓰였다. ¶시들- : 다 나래 窓牖中에셔 아 모미 여위오 시들며  기 듣글 무더 더러워 조티 몯  머리셔 보고〈법화 2:209ㄴ〉.  여위여 시들오  브르도다 사미 도라 보디 아니니〈남명上30ㄱ〉. 시드럽- : 올히 젹고 亂亡을 디내니 기텟 사미 진실로 가놋다 큰 올도 열 지비 업고 큰 族屬도 性命이 외외며 시드럽도다(州小經亂亡 遺人實困疲 大鄉無十家 大族命單贏)「舂陵行并序」元結次山〈두시 25:36ㄴ〉. 山林에 시드러운 모 브툐니 반시 崎嶇히 어려이 뇨 免티 몯리로다(山林託疲薾 未必免崎嶇)「大曆三年春에~凡四十韻이라」〈중간두시 2:11ㄴ〉.
주129)
늘구메 : 늙음에. 늙-[老]+우+ㅁ+에.
주130)
막대 : 막대를. 지팡이를.
주131)
흐러 : 흩어. 흗-[散]+어. 15세기 국어의 ‘흩다’는 자타동 양용동사로서 ‘흗다, 흘다’로도 쓰인다. 『두시언해』에서는 ‘흩다’의 형태는 전혀 사용되지 않고, ‘흗-, 흘-, 흣-’의 형태만 사용되었다. ¶흩다(자동사) : 담과 괘 믈어듀 四大 허러 흐투믈 가비시고(墻壁崩倒 譬四大塊散시고)〈법화 2:126ㄱ〉. 不散 흗디 아니 씨라〈월석 10:63ㄴ〉. 흩다(타동사) :  아 주그면 財物을 흐터 일허 맛듈  업스리로다(一旦애 終歿면 財物을 散失야 無所委府ㅣ로다야)〈법화 2:189ㄴ〉. 구루믄 灌壇앳 비 흗고 보 彭澤ㅅ 바 프르렛도다(雲散灌壇雨 春靑彭澤田)「題郪原郭三十二明府茆屋壁」〈두시 7:32ㄱ〉. 흘다(자동사) : 心을 면 能히 星火ㅣ 흐러 려 空界예 盛히 부츄 내니라(燒心면 能生星火ㅣ 迸灑야 煽鼓空界니라)〈능엄 8:97ㄱ〉. 百靈이 구틔여 흐러가디 몯니 미 치운  헤부루믈 더듸 놋다(百靈未敢散 風破寒江遲)「蘇大侍御訪江浦賦八韻記異并序」〈두시 19:25ㄴ〉. 흘다(타동사) : 관원히 번 손  머긼 와  샛 돈을 흐러 주라(官人們伴當處 散饋喂馬的草料錢)〈번박 상:66〉.  이스리 甘子애 도라오니  새배  바 흐러 이노라(白露團甘子 淸晨散馬蹄)「白露」〈두시 25:16ㄴ〉. 흣- : 믌 로 녀매 오시 절로 젓니 바로 나야 저즌 氣運ㅣ 비르서 흣놋다(溪行衣自濕 亭午氣始散)「通泉驛南去通泉縣十五里山水作」〈중간두시 1:42ㄴ〉.
주132)
가고져 : 가고자. 가-[行]+고#지-+어. ‘-고자’를 하나의 굳어진 어미로 볼 수도 있다. ¶-고져 : 欲 고져  씨라〈훈언 2ㄱ〉.  城에 소남긧 누늘 보고 도라갈  나고져 비르서 너기노라(春城見松雪 始擬進歸舟)「曉望白帝城鹽山」〈두시 14:30ㄱ〉.
주133)
노라 : 생각하노라. -++오+라. 〈중간본〉에는 ‘랑노라’로 되어 있다.
주134)
겸가(蒹葭) : ①갈대. 겸(蒹)과 가(葭)는 모두 가치가 없는 풀로, 신분이 미천(微賤)한 것을 비유한다. ②『시경(詩經)』 진풍(秦風)의 편명. 진(秦)나라의 양공(襄公)이 주(周)나라 땅을 획득했으면서도 주례(周禮)를 익히지 아니하여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할 수 없음을 풍자하고 있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35)
믌란 : 물가에는. 믈+ㅅ#++란. ‘란’은 대조적으로 제시할 때 쓰이는 보조사로 ‘-란 -란’의 형태로 쓰인다. 여기서는 뒤의 ‘뫼해란’과 호응하고 있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중간본〉에는 ‘믌란’으로 되어 있다.
주136)
리 : 갈대가. [蒹葭]+이.
주137)
서니 : 서늘한 이를. 서늘한 것을. 서-+ㄴ#이+. 앞의 ‘리’와 여기의 ‘서니’는 ‘갈대 중에서도 서늘한 것이’라는 의미로 수량사 주격 중출구문과 유사하다.
주138)
피불(披拂) : ①입으로 불어 털어냄. ②바람 때문에 흔들림.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39)
피불(披拂)고 : 추켜올리고. 헤치고 지나가고.
주140)
뫼해란 : 산에는. 뫼ㅎ+애+란. ‘뫼ㅎ’는 ‘ㅎ’ 말음체언. 앞의 ‘믌란’과 호응하고 있다.
주141)
조나(蘿蔦) : 여라. 선태식물에 속하는 이끼의 하나. 암수딴그루이며 나무 위에서 나는데 광택이 있다. 줄기는 실과 같이 가늘고 길며 잎은 피침 모양이고 홀씨주머니는 달걀 모양이다.
주142)
여라(蘿蔦)ㅣ : 여라가. 여라(女蘿)는 여라(女羅), 송라(松蘿), 벽라(薛羅)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소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松蘿)같은 것으로 만든 옷. 즉 은자(隱者)가 입는 옷을 가리킨다.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여라’를 ‘새’이라 했다. ¶새 : 菟 새 토 蕬 새 〈훈몽 상:4ㄴ〉.
주143)
 : 껴 있는. -[狹]+어#잇-+. 15세기어의 ‘-’는 ‘어떤 틈을 비집고 어떤 물건 사이에 위치하다 또는 위치시키다’라는 뜻으로 ‘골 -, 구룸(또는 안개) -’ 등의 뜻으로 쓰였다. 피동사로 ‘이-’또는 ‘디-’가 있는데, ‘-’도 자·타동 양용동사로 쓰였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국어에서도 유지된다. 또한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자동사) : 膜 누네  이라〈원각 하3-1:17ㄴ〉. 이 더운 구루미 고 비  오 니니라(火雲無時出 飛電常在目)「三川觀水漲二十韻」〈두시 13:6ㄴ-7ㄱ〉. -(타동사) : 圓頓敎 金龍이 바래 나니 籠 디 마롤디어다〈남명 하:38ㄱ〉. 槍을 희 고 이 더닌 뉘 짓아오(去秋涪江木落時 臂槍走馬誰家兒)「去秋行」〈중간두시 4:33ㄱ〉. 이- :  엿 桂樹ㅅ 들구를 스치노라〈두시 19:9ㄱ〉. 디- : 衆生과 부텨왜 本來 이시며 디여 變호매 다디 아니호〈월석 11:12ㄱ〉.
주144)
 : 데를. +.
주145)
들워 가리라 : 뚫어 가리라. 듧-[穿]+어#가-+리+라. ‘듧-’은 자타동 양용동사이며 『두시언해』에는 15세기의 다른 문헌에는 용례가 보이지 않는 ‘-의 용례도 확인된다. ‘듧다’는 ‘경망스럽다’는 뜻이다. 참조; 들우다. 들우디다. 듧다. ¶듧- : 해 구무 듧고  지여 온 모 무두매 當얀 어루 모미 외녀(方其穴地負土야 全體而坑之얀 爲可忍耶아)〈법화 6:154ㄴ〉. 祖師ㅅ 眞機 聖解 通호미 어려우며 凡情이 듧디 몯논 젼로 일후믈 關이라 니라〈금삼 서2:2ㄱ〉. 眞機ㅣ 銀山鐵壁이 야 구더 듧디 어려우며 놉고 머러 더위잡디 몯고〈금삼 서2:5ㄱ〉. 시 四明ㅅ 누네 듧고(履穿四明雪)「故著···公虔」〈두시 24:38ㄴ〉. 들우- : 다가 이 量애 너믄 사미면 石火電光  번 자보매 곧 자며 銀山鐵壁을 번 들우메 곧 들우리니(若是過量漢이면 石火電光 一捉애 便捉며 銀山鐵壁을 一透에 便透리니)〈금삼 서2:5ㄴ〉. 精微호 溟涬을 들우리오(精微穿溟涬)「夜聽···有作」〈두시 16:2ㄱ〉. 들워디- :  우희 무롭 다핫던 히 다 들워디옛더라(其榻上當膝處ㅣ 皆穿니라)〈번소 10:22ㄴ〉. 그 평상 우희 무롭 단 고디 다 들워디니라(管寧이 嘗坐一木榻더니 積五十餘年이로 未嘗箕股니 其榻上當膝處ㅣ 皆穿니라)〈소학 6:121ㄱ〉. 듧- : 麤率 듧 쳔쳔티 몯 씨라〈월석 2:11ㄴ〉. 婬亂 맛들어나 수으를 즐기거나 듧 조심 아니다가〈석상 9:37ㄱ〉.
주146)
아와 과 : 아이와 종을. 아+와 +과+. 명사구 연결구성에서 ‘과’가 후행명사에도 쓰인 예이다. 15세기에서 명사구 연결구성에서는 ‘과’가 후행명사에 후행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중간본〉에는 ‘아와 죵과’로 되어 있다.
주147)
의장(依仗)간마 : 의지하지만. 의장(依仗)-+거+오+ㄴ마. ‘-ㄴ마’은 역접의 연결어미이다. ¶-ㄴ마 : 四天下  아시련마〈석상 6:17ㄴ〉. 머릿 터럭마니나 社稷 돕오련마(毫髮裨社稷)「客堂」〈두시 6:53ㄱ〉.
주148)
마니 : 가만히. ‘마니’는 부사로 ‘’의 ‘’에 부사파생접미사 ‘이’가 붙은 형태이다.
주149)
이슈라 : 있으라. 잇- 또는 이시-+우+라. ¶제 모미 德 이슈라 너길 일후미 邪慢이오〈법화 6:175ㄴ〉. 禁掖애 버든 改變커늘 微 班列에 목수믈 오올와 이슈라(禁掖朋從改 微班性命全)「寄岳···五十韻」〈두시 20:18〉.
주150)
강반(強飯) : 강반(彊飯). 기력을 내고자 억지로 밥을 먹거나 먹임.
주151)
맹동(孟冬)애 : 맹동에. ‘맹동(孟冬)’은 겨울 가운데 음력(陰曆) 10월을 가리키는 말.
주152)
뵈야로 : 바야흐로. 이 낱말은 『두시언해』에서 많은 이형태 및 이표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슬픈 매 뵈야로 번 요라’〈두시 19:34ㄱ〉의 ‘뵈야로’ 항목을 참조할 것.
주153)
길 : 길을. 길ㅎ+. ‘길ㅎ’은 ‘ㅎ’ 말음체언이다.
주154)
아 : 앞서. 향해. 앗-[導]+아. 사동사는 ‘앗외-’이다. 〈중간본〉에는 ‘아아’로 되어 있다. ¶앗외-(인도하다) : 導師 法 앗외 스스니 如來 시니라〈석상 13:16ㄱ〉. 大導師 크신 길 앗외시 스스라 혼 마리라〈월석 9:12ㄴ〉. 天王이 婆羅門 들 앗외야 葉波國애 가게 니〈월석 20:86ㄴ〉.
주155)
고파 : 억지로. ‘고파’는 원래는 ‘고프-’에 부동사어미 ‘-아’가 연결된 형태, 즉 형용사의 활용형이나, 15세기에는 부사로 쓰였다.
주156)
비레와 : 벼랑과. 절벽과. 비레[崖]+와. ‘비레’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으며, 19세기의 〈신자전〉에 ‘셕비레’라는 형태로 보인다. 참고. 쇠. 졀벽. ¶비레 :  워 瀼西에 올아 머리 도혀 두 비레 라노라(泛舟登瀼西 回首望兩崖)「柴門」〈두시 6:46ㄴ〉. 프른 뫼로 百里 드러오니 비레 그츠니 핫고와 호왁과 도다(蒼山入百里 崖斷如杵臼)蒼山入百里 崖斷如杵臼〈두시 6:2ㄱ〉.
주157)
서리로 : 사이로. 서리+로. ‘서리’는 ‘’가 두 물체의 사이를 가리킬 때도 쓰이는 것에 비해서 복수의 물체들이 서려 있는 사이를 가리킨다.
주158)
취(取)야 : 취하여. ‘벼랑과 석벽(石壁) 사이를 취하다’는 앞으로 가는 길에 험한 벼랑과 석벽이 많다는 말이다.
주159)
가리라 : 가리라. 가-+리+라.
주160)
노태(駑駘) : ①비루먹은 말. ②저열(低劣)한 재능(才能)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61)
한구(汗溝) : 말[馬]의 앞쪽 겨드랑이를 가리키는 말. 즉 앞쪽 넓적다리와 다금, 배가 서로 이어져서 요형(凹形)을 이루는 부분. 말이 빠르게 다릴 때 땀이 나와 흐르는 곳이라 이렇게 불린다.
주162)
 : 피곤한. -[疲]+.
주163)
슬노니 : 슬퍼하니. 슳-[悲]++오+니.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슳- : 王과 大愛道와도 슬허 우르시며〈석상 3:30ㄴ〉. 슬허 라온 오직 烽火ㅅ 미로소니(悵望但烽火)〈두시 6:53ㄴ〉「遣興」 / 슬허- : 悲 受苦 슬허 씨오〈능엄6:6ㄱ〉. 이 여희 酒樽 當요 슬허노라(恨此當離尊)「別李義」〈두시 8:6ㄴ〉. 슬프- : 뎌 말도 슬프실〈월석 8:81ㄱ〉. 百年이 슬프다 마 半이 외니(百年嗟已半)「贈虞十五司馬」〈두시 8:25ㄴ〉. 슬퍼- : 일쳬 히 아  길어셔 슬퍼호모로 심을 언니〈장수67ㄴ〉.
주164)
븕디 : 붉지. 븕-[紅]+디.
주165)
매 : 마침내. -[終]++애.
주166)
밧글 : 밖을. [外]+을.
주167)
뮤믈 : 꾸밈을. 미-[飾]+우+ㅁ+을.
주168)
초야시나 : 갖추어 하였으나. 초#-+야#이시-+나. ‘초’는 ‘-’의 사동사 ‘초-’의 어간전성부사이다. ‘시나’의 ‘시’는 ‘이시-’의 ‘이’가 모음으로 끝나는 부동사어미 ‘-야’ 뒤에서 생략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이시다’의 이형태로 ‘시다’를 인정하는 견해가 있다.
주169)
에 : 멍에. 〈중간본〉에는 ‘멍에’로 되어 있다.
주170)
메여 : 메어. 메-[荷]+어. 〈중간본〉에는 ‘메어’로 되어 있다. ¶메- : 네 사미 메오 모다 울며 조차가거늘〈석상 3:18ㄴ〉. 枚 머굼고 干戈 메니 잇도다(銜枚有荷戈)「征夫」〈두시 5:13ㄱ〉.
주171)
토맨 : 탐엔. -[乘]+오+ㅁ+애+ㄴ. 15세기 국어의 ‘다’는 ‘받다, 오르다, 탈 것을 타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다(받다) :  실가 내 두  월을 와 토리라〈번박 11ㄱ〉. 監河애 이 조 노니(監河受貸粟)「奉贈蕭二十使君」〈두시 20:41ㄴ〉. 다(오르다) : 내 分身 百億釋迦佛을 조쳐 뫼호아 各各 樓觀 고 戒壇所애 오게 라〈월석 25:49ㄴ〉. 다(탈 것에 타다) :  실 잔 나 받오리라〈번박 7ㄱ〉.  부 和  노라(吹面受和風)「上巳···宴集」〈두시 11:22ㄴ〉. 다(불에 타다) :  더운 性이 업서 간도 디 아니며〈능엄 9:108ㄴ〉.
주172)
므슴 이익(有益) 배 이시리오 : 무슨 이익이 될 바가 있으리오. 므슴 이익#-+ㄴ 바+ㅣ 이시-+리+오. 즉, 이익이 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여기서는 선행하는 ‘므슴’과 호응한다. ‘므슴’은 부정칭의 대명사로 여기서는 관형사로 쓰였다. ‘므슷’과 기능이 동일하다. ‘므스’계 대명사로 ‘므스, 므슴; 므슥’ 등이 사용되었으며, ‘므슥’만 완전하게 어미활용을 한다. 현대국어에 쓰이는 ‘무슨’은 ‘므슴’, ‘므슷’, ‘므’ 등이 용언의 관형사형 ‘-ㄴ’에 유추되어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므슷 일’(석6:27) 같은 구(句)에서 음절 말음 ‘ㅅ’이 [ㄷ]으로 평폐쇄음화 되고 다시 ‘ㄴ’이 첨가 발음되는 현상까지 가세해 ‘므슨’으로 재구조화한 것이다. 〈권념요록〉(1637)에 ‘므슨’이 보인다. ¶-리오 :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 雲夢애 追執코져 호미 어렵도다(綠林寧小患 雲夢欲難追)「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ㄱ〉. 소 고기 오히려 비러 숨 쉬어니와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鼎魚猶假息 穴蟻欲何逃)「喜聞···二十韻」〈두시 5:2ㄱ〉. 피로 醴泉을 當면 엇뎨 갓  흐르 믈와  니리오(血以當醴泉 豈徒比清流)「鳳凰臺」〈두시 17:1ㄴ〉.
주173)
견여(肩輿) : 두 사람이 앞뒤에서 메는 가마. 교자(轎子)라고도 한다. 대방상(大方牀)을 쓰는 행상(行喪)에서 좁은 길을 건널 때 잠시 쓰는 간단한 상여(喪輿)를 지칭하기도 한다.
주174)
준적(準的) : 활을 쏠 때 목표를 겨냥하는 것.
주175)
평(平) : 평안한. 평-+ㄴ. 여기서는 ‘타기 편안한’의 뜻이다.
주176)
뒷노니 : 두고 있으니. 두-[有]+어#잇-++오+니.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177)
앏길히 : 앞길이. 앏#길ㅎ+이.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78)
소 : 쏘는. 소-[射]+. 경음 표기를 하지 않는 『두시언해』의 특성 때문에 ‘소’이라는 표기 형태가 생겼다.
주179)
솔봄 : 과녁[凖的]. 유일례이다.
주180)
니라 : 같으니라. -[如]+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주181)
편편(翩翩) : ①가볍게 나는 모양. ②행동(行動)이 가볍고 빠른 모양.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182)
조도(鳥道) : 나는 새도 다니기 어려울 정도의 높고 좁고 험한 산길을 일컫는 말.
주183)
차질(蹉跌) : 실족하여 넘어짐.
주184)
너운너운히 : 너울너울. 너운#너운+히. ‘너운너우니, 너운너운’ 등이 있다. ¶너운너우니 : 모로매 너운너우니 뇨리니〈몽산 6ㄱ〉. 너운너운 : 새 니 길로 : 조도(鳥道)와 같은 험한 길로. ‘새 니 길ㅎ’은 ‘조도(鳥道)’를 직역한 것이다.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85)
업드롤 : 엎어질. 엎드리-[伏]+ㄹ. ¶何劉 沈謝 힘도 바지로이 몯리니 네 죄 鮑照 兼니 시르며 업드르리로다(何劉沈謝力未工 才兼鮑昭愁絕倒)「蘇端薛復筵簡薛華醉歌」〈두시 15:39ㄴ〉. 봄 오매 됴타 쇽졀업시 니놋다 어러운 미 키 업듣게 부놋다(謾道春來好 狂風大放顚)「漫成一首」〈두시 25:21ㄴ〉.
주186)
거 : 거의. 〈중간본〉에는 ‘거의’로 되어 있다.
주187)
면(免)호리라 : 면하리라. 면-+오+리+라.
책목차이전페이지다음페이지페이지상단이동글자확대글자축소다운로드의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