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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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랑 설중거께[寄薛三郞中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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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 설중거께[寄薛三郞中璩]


寄薛三郞中 주001)
낭중(郞中)
벼슬 이름. 전국(戰國)시대 근시(近侍)의 통칭. 진(秦)나라 때에는 낭중령(郞中令)에 속했다. 한(漢)나라 때에는 상서랑(尙書郞)을 이르고 수당(隋唐)시대 이후 육부(六部) 각사(各司)의 장(長)을 이르다가 청말(淸末)에 폐지되었다.
주002)
기설삼랑중거(寄薛三郞中璩)
이 작품은 두보 56세 때인 대력(大曆) 2년(767) 봄, 두보가 기주(夔州)에 있을 때 지어졌다. 당시 두보의 오랜 친구 설거(薛璩)는 형주(荊州)에서 지내다가 막 북쪽으로 경사(京師)에 갈 참이었는데, 두보가 이 소식을 듣고 이 시를 지었다. 시에는 서로가 영락(零落)해 떠도는 상황과 늙고 지친 처지를 서술하면서 설거의 재능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진실한 마음으로 노래했고, 시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형주를 생각하면서 기주를 떠나고 싶은 심정과 설거와 함께함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설거(薛據) : ?~?. 당나라 하중(河中) 보정(寶鼎, 지금의 산서(山西) 만영현(萬榮縣) 서남쪽) 사람. 일찍이 형남(荊南, 지금의 호북(湖北) 강릉) 지방을 떠돌기도 했다. 개원 19년(731) 진사가 되고, 영락현(永樂縣) 주부(主簿)를 지냈다. 천보 6년(747) 이후 섭현령(涉縣令)과 사의랑(司議郞) 등의 벼슬을 지냈다. 상서수부낭중(尙書水部郞中)을 끝으로 은퇴하여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했다. 『전당시(全唐詩)』에 시 12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5언시다. 대체로 경치를 빌어 감정을 서술한 작품과 인생을 한탄한 내용의 작품들이 많다.

기설삼랑중거
(삼랑 설중거께)

人生無賢愚 飄颻若埃塵 주003)
애진(埃塵)
진토(塵土). 진세(塵世). 흙먼지가 일어나는 땅이라는 말이다.

人生애 어디니 주004)
어디니
어진 이. 현명한 이. 어딜-+ㄴ#이. 원문의 ‘현(賢)’의 번역이다.
어리니 주005)
어리니
어리석은 이. 어리-[愚]+ㄴ#이.
업시 飄颻히 주006)
표요(飄颻)히
어지러이. 표요-+이(부사화파생접미사). ‘표요(飄颻)’는 ①바람이 부는 모양. ②표탕(飄蕩)함. 날아오르며 흩날림. ③휩쓸리며 일어나거나 기복(起伏)이 심한 모양.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뇨미 주007)
뇨미
다님이. 니-[行]+오+ㅁ+이. 〈중간본〉에는 ‘뇨미’로 되어 있다.
드틀 주008)
드틀
티끌. 『두시언해』는 ‘드틀’만 쓰였지만 15세기에는 ‘듣글’과 ‘드틀’(석13:38)도 공존하였다. 16세기에도 두 어형이 공존하다가 17세기에 ‘틔글, 틧글’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도다 주009)
도다
같도다. -+도+다. ‘’의 받침 ‘ㄷ’과 ‘도’의 어두 ‘ㄷ’ 사이에서 ‘’가 생략된 표기이다.

【한자음】 인생무현우 표요약애진
【언해역】 인생에 현명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없이, 표요(飄颻)히 다님이 띠끌 같도다!
*시 구절 해석 : “인생에 어진 이 어리석은 이 없이, 어지러이 다님이 먼지 이는 것과 같다.”라는 뜻으로, 사람은 태어나 능력이나 기질에 관계없이 모두 떠돌며 살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

自非得神仙 誰免危其身

스싀로 주010)
스싀로
스스로. 고려시대 석독구결로는 ‘自’로 표기되는데 ‘스싀+로’로 분석될 가능성이 있다.
神仙의 이 주011)
신선(神仙)의 이
신선이 되는 일. 신선이 되어 하는 일.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12)
신선(神仙)의 이
신선의 일을. 즉, 신선의 경지를.
얻디 주013)
얻디
얻지. 얻-[得]+디. 〈중간본〉에는 ‘엇디’로 되어 있다.
몯면 그 몸 주014)
그 몸
자기의 몸.
바라오 주015)
바라오
위험함을. 바랍-[危]+오+ㅁ+. 참조; 바랍-. ¶바랍- : 天下ㅣ 便安며 바라오 百姓의  셜워며 즐겨호매 잇니다〈내훈 2:111ㄱ〉. 西蜀ㅅ 地形이 天下애 險阻니 바라오믈 便安히 홀뎬 모로매 게 特出 材質을 倚仗야 리라(西蜀地形天下險 安危須仗出群材)「諸將五首」〈두시 5:47ㄴ〉. 바랍- : 亂 定며 바라오 더위자바〈금삼 5:49ㄴ〉. 時節이 바라온 제 鈇銊을 受티 몯니(時危未受鉞)「寄贈王十將軍承俊」〈두시 5:36ㄴ〉.
免리오
주016)
뉘~면(免)리오
누가~면하겠는가? 즉 ‘면할 수 없다’는 뜻의 수사의문문. ‘뉘’는 ‘누+ㅣ’로 분석되는데, 이때 ‘누’는 의문대명사이며, ‘ㅣ’는 주격조사이다. ‘免리오’는 ‘免++리+오’로 분석되는데, 큰 틀에서는 수사의문문으로 쓰였지만, ‘-오’는 설명의문어미로서 문두의 의문사 ‘뉘’와 호응한다. ¶-리오 : 甫ㅣ 言死於賊中이면 人誰知之리오「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주거 가더든 누를 브터 알외리오(死去憑誰報)「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엇뎨 갓 簫韶를 드를 미리오(豈獨聽簫韶)「有感五首」〈두시 5:15ㄱ-ㄴ〉.

【한자음】 자비득신선 수면위기신
【언해역】 스스로 신선(神仙)의 일을 얻지 못하면, 누가 그 몸 위험함을 면하겠는가?
*시 구절 해석 : “스스로 신선의 경지를 얻지 못하면, 누가 자신의 몸에 닥치는 액운을 면하겠는가?”란 뜻으로, 신선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모두 자신에게 떨어진 액운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다. 원문의 ‘신선(神仙)’을 ‘神仙의 이’로 번역하고 있다.

與子俱白頭 役役 주017)
역역(役役)
①심력(心力)을 기울이는 모양. ②경박하고 간사한 모양. 몸과 마음을 애태우며 허둥거리기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常苦辛

그듸와 다 주018)
그듸와 다
그대와 함께. 그대와 더불어. 그듸+와 다. 원문의 ‘與子’에 대한 번역으로 ‘그듸’는 상대방을 약간 대우하는 2인칭 대명사이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다’은 ‘함께’의 뜻으로 ‘-와’를 지배하여 항상 ‘-와 다’의 형식으로 쓰였다. 15세기 국어에서 ‘다’은 『내훈』과 『두시언해』에서만 쓰였으며, 특히 ‘-와/과 다’은 『내훈』의 몇몇 용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용례가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석독구결에서도 ‘與(ㅅ)’의 형태로 쓰였는데 주로 ‘-(을) 與(ㅅ)’의 형태로 쓰였으며 ‘-(과) 與(ㅅ)’의 용례가 있기는 하나 이 용례는 자토석독구결에서 ‘唯佛與佛(유불유불)’이라는 특별한 구문에서만 1회 사용되었다. ¶-(을) 與(ㅅ) : {於}一切 世界 中 衆生 與 同住 曾 過咎 無(一切 世界의 中에 있어 衆生과 더불어 함께 머무나 조금도 허물 없으며) / 唯 佛 與 佛 乃 {斯} 事 知(오직 부처님과 더불어 부처님이시라야 이 일을 아실 수 있다). ‘-와/과 다’ : 사과 다 디 마롤디니라〈내훈 1:55ㄱ〉. 兵戈와 다 사 이레(兵戈與人事 무기와 더불어 사람의 일에)「遣愁」〈두시 3:36ㄴ〉. 다 :  제 술 차반 準備야 서르 다 혀 醉야 블오 날 우 며〈내훈 1:62ㄱ〉. 널로 여 글 지고 다  놀려뇨(令渠述作與同遊 너로 하여금 글 짓게 하고 더불어 함께 놀겠는가?)「江上···短述」〈두시 3:31ㄴ〉.
다 머리 셰니 주019)
다 머리 셰니
다 머리 세니. 원문의 ‘俱白頭’에 대한 번역이다. 원문은 ‘둘 다 모두 흰 머리이다’라는 계사문으로 되어 있으나 언해에서는 오히려 ‘머리가 세다’라는 동사문으로 되어 있다.
役役히 주020)
역역(役役)히
힘껏. 힘 들여. ‘역역(役役)’에 대해서는 앞의 주 참조.
녀셔 주021)
녀셔
다녀서. -+니-+셔. ‘니-’는 ‘니-’의 선행 음절 ‘’의 ‘ㄷ’이 후행하는 ‘니’의 ‘ㄴ’의 영향으로 비음화된 것이다. ¶니- : 五百 靑衣 야 졋어미 조차 니며〈석상 3:4ㄴ〉. 後에 난 사미 아디 몯야 오히려 키 니놋다(後生未識猶駿奔 후에 태어난 사람이 알지 못하여 오히려 크게 다니는구나!)「石笋行」〈두시 3:70ㄴ〉. 니- : 後身 後ㅅ 모미니 前生애 니다가 後生애 다시 난 모미 後身이라〈월석 1:45ㄴ〉. 녜 崆峒애 님금믈 뫼와 니던 나리여(扈聖崆峒日)「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長常 주022)
장상(長常)
항상. ¶부텨는 三界 밧긔 버서나샤 長常 便安거시〈석상 3:20ㄴ〉. 蹉跎히 長常  우고(蹉跎長汎鷁)「水宿···群公」〈두시 3:20ㄴ〉.
苦辛요라 주023)
고신(苦辛)요라
고통스럽구나. 신고(辛苦)-+오+라. ‘-라’는 화자 호응의 선어말어미 ‘-오-’ 뒤에 오는 평서형 어말어미 ‘-다’의 이형태이다. 15세기에는 ‘辛苦-’ 이외에 ‘辛苦-, 辛苦롭-, 辛苦로이, 辛苦히’가 쓰였는데 ‘辛苦-’를 제외한 모든 용례가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辛苦- : 아모 城中에 날 리고 逃亡야 가 뷔듣녀 辛苦호미 쉬나 러니〈월석 13:29ㄴ〉. 形容 精神이 괴외야셔 辛苦호 히 너기놋다(形神寂寞甘辛苦)「寄栢學士林居」〈두시 7:29ㄱ〉. 辛苦- : 큰 軍士ㅣ 辛苦외니(大軍載草草)「壯遊」〈두시 2:43ㄴ〉. 辛苦왼 세 城에셔 屯戌호미여 기리 萬里ㅅ 셔 防禦놋다(辛苦三城戍 長防萬里秋)「西山三首」〈두시 5:10ㄴ〉. 辛苦왼 세 城에셔 屯戌호미여(辛苦三城戍)「西山三首」〈두시 5:10ㄴ〉. 受苦로이 : 受苦로이 蜀門으로 가노라(辛苦赴蜀門)「木皮嶺」〈두시 1:27ㄱ〉. 그듸 엇뎨 辛苦로이 江湖 건나 가리오(君肯辛苦越江湖)「惜別···判官」〈두시 17:32ㄴ〉. 辛苦히 : 辛苦히 盜賊의 서리로셔 오라(辛苦賊中來)「喜達···三首」〈두시 5:5ㄴ〉.

【한자음】 여자구백두 역역상고신
【언해역】 그대와 함께 다 머리가 세니, 힘써 다녀서 항상 고통스럽구나!
*시 구절 해석 : “그대와 나는 모두 다 머리가 세었으니, 힘껏 떠돌아다녔어도 항상 고통스러웠다.”라는 뜻으로, 오랜 세월 힘써 다녔어도 우리 두 사람은 머리만 세어 버렸다는 말이다. 백두(白頭)를 ‘머리 셰니’로 번역하였다.

雖爲尙書郞 주024)
상서랑(尙書郞)
관직 이름. 위진남북조시대에 설치되었다. 서경에 속한 관원은 처음에 낭중(郞中)이 되었다가 1년이 지나면 상서랑(尙書郞)이 되었다. 이후 2년이 지나면 시랑(侍郞)이 되었다.
不及村野人ㅣ 言今雖爲工部 주025)
공부(工部)
옛날의 관서(官署) 이름. 한(漢)나라 때는 민조(民曹)가 있었고, 위진(魏晉) 때는 좌민(左民)과 기부(起部)가 있었는데, 수당(隋唐) 때 북주(北周)의 공부(工部) 명칭에 따라 설치해 육부(六部)의 하나가 되었다. 각종 공정(工程), 공장(工匠), 둔전(屯田), 수리(水利), 교통(交通) 등에 관한 정령(政令)을 관할했다. 장관(長官)은 공부상서(工部尙書)이다. 이후 대대로 이어지다가 청(淸)나라 말에 농공상부(農工商部)로 바뀌었다.
貟外郞 주026)
원외랑(員外郞)
관직(官職) 이름. 원외(員外)는 본래 정원(正員) 이외의 낭관(郞官)을 말한다. 진무제(晉武帝) 때 처음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와 원외산기시랑(員外散騎侍郞)을 두었는데, 간략하게 줄여 원외랑(員外郞)이라 불렀다. 수(隋)나라 개황(開皇時) 때 상서성(尙書省) 24사(司)에 각각 원외랑 1인을 두고, 각사(各司)의 차관(次官) 역할을 하게 했다. 당나라 이후 명청(明淸) 때까지 각부(各部)에는 모두 원외랑을 두어 낭중(郞中)의 다음 지위를 맡도록 했다.
이나 不及少日大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30ㄴ

平之時예 村野人之樂也ㅣ라】

비록 尙書郞이 외야시나 주027)
외야시나
되어 있으나. 외-+∅#시-+나. 15세기 국어의 ‘시-’는 ‘이시-’와 함께 ‘있다[有,在]의 뜻이다. ¶-어시-/-아시-/-야시- : 太子ㅣ 므슷 罪 겨시관 이리 외어시뇨 고 절야 보내며〈석상 24:51ㄴ〉. 龍이 누어시며  이던 이리 매 누른 기 외얫도소니 사 일와 音信ㅅ 글월왜 쇽졀업시 괴외도다(臥龍躍馬終黃土 人事音書漫寂寥)「閣夜」〈두시 14:19ㄴ〉.
村野앳 주028)
촌야(村野)앳
촌야의. 시골의. 촌야+애+ㅅ.
사 주029)
사
사는. 살-[居]+.
사 주030)
사
사람을. 사+.
밋디 주031)
밋디
미치지. 및-[及]+디. ¶ 및- : 無量 不思議 劫 디나다 니샤 이 智體 그오미 비르솜 업서 情塵數量애 밋디 몯  기시니라〈월석 14:7ㄴ〉.  내 所行이  밋디 몯 고 아노니 甚히 귀머구믈 슬허노라(亦知行不逮 苦恨耳多聾)「獨坐二首」〈두시 3:42ㄴ〉.
몯리로다 주032)
몯리로다
못할 것이도다. 몯-+리+도+다. ¶이런 微妙 智慧로 無上道理 求논 도 보리로다〈석상 13:23ㄴ〉. 太庭 時節티 매 淳朴호매 도라가리니 京觀애 〈두시 3:7ㄱ〉  주거믈 업티리로다(太庭終返朴 京觀且僵尸)「夔府書懷四十韻」〈두시 3:6ㄴ-7ㄱ〉.

【한자음】 수위상서랑 불급촌야인두보는, 지금은 비록 공부원외랑이 되어 있지만, 평소 태평 시절의 시골 마을 사람의 즐거움에 미치지 못한다는 말이다.】
【언해역】 비록 상서랑(尙書郞)이 되어 있으나, 촌야(村野)에 사는 사람을 미치지 못할 것이도다!
*시 구절 해석 : “비록 상서랑이 되어 있지만, 촌야(村野)에 사는 사람에게는 미치지 못한다.”라는 뜻으로, 난세에 벼슬을 하는 것보다는 태평할 때 평범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다.

憶昔村野人 其樂難具陳

주033)
옛날에.
村野애 사던 주034)
사던
살던. 살-[居]+더+ㄴ.
사 호니 주035)
호니
생각하니. +-+오+니. ‘오’는 화자호응의 선어말어미이다. 15세기의 ‘사-’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는데 전자의 의미로 훨씬 광범위하게 쓰였다. 〈중간본〉에는 ‘랑호니’로 되어 있다.
그 즐거우믈 주036)
그 즐거우믈
그 즐거움을. 그 즐겁-+우+ㅁ+을.
닐오미 주037)
닐오미
이름이. 이르기가. 니-[說]+오+ㅁ+이.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 불규칙활용 중 소위 ‘ㄹ·ㅇ’형이다.
어렵도다 주038)
어렵도다
어렵도다. 어렵-[難]+도+다. 15세기 국어의 ‘어렵다’는 명사형 어미 ‘ㅁ’+주격조사 ‘이’나 ‘-디’를 지배하였다. ¶-미 어렵- :  듣미 어렵거늘〈월석 10:33ㄱ〉. 廟堂앳 혜아료 노파 測量호미 어렵거니와 하 시르믄 眞實로 이긔 겨시니라(廟算高難測 天憂實在茲)「夔府書懷四十韻」〈두시 3:4ㄴ〉. -디 어렵- : 히 멀면 乞食디 어렵고〈석상 6:23ㄴ〉. 하 든 노파 묻디 어렵거니와 사 든 늘그니 쉬이 슬프도다(天意高難問 人情老易悲)「暮春江陵에셔~追赴闕下노라」〈두시 23:9ㄴ〉.

【한자음】 억석촌야인 기락난구진
【언해역】 옛날 촌야(村野)에 살던 사람을 생각하니, 그 즐거움을 다 이르기 어렵도다!
*시 구절 해석 : “옛날 촌야(村野)에 살던 사람을 생각하니, 그 즐거움을 다 이르기 어렵도다.”라는 뜻으로, 촌야에 사는 즐거움을 묘사하려니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다는 말이다.

藹藹桑麻交 公侯爲等倫藹藹 주039)
애애(藹藹)
①무성(茂盛)한 모양. ②풍성하고 많은 모양. ③향기가 짙은 모양. ④온화(溫和)한 모양. 화기(和氣)가 넘치는 모양.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 盛貌ㅣ라 言野人이 富於桑麻 주040)
상마(桑麻)
뽕나무와 삼[麻].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먹여서 비단을 짜고, 마를 심어 삼베를 얻었다. 이것은 옛날 농경시대에 의복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경제활동이었다.
야 可比公侯 주041)
공후(公侯)
봉작(封爵)의 하나.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 등의 다섯 등급의 작위 가운데 그 첫째 등급인 공작(公爵)과 둘째 등급인 후작(侯爵)을 일컫는 말. 봉작(封爵).
之貴니라】

藹藹 과 주042)
과
뽕과. 뽕나무와.
삼괘 주043)
삼괘
삼과가. 삼베가. 삼+과+ㅣ.
섯거 주044)
섯거
섞이어. -[錯]+어. ¶그 말미 工巧코 微妙야 오로 섯근 거시 업서 淸白고 梵行앳 相이 더시니〈석상 13:28ㄴ〉. 나 도랏 羹애 라기도 섯디 아니야도 便安히 너기노니 너희 구스리 보 외요미 貴 도다(吾安藜不糝 汝貴玉爲琛)「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5ㄴ〉.
잇거든 주045)
잇거든
있는데. 잇-[有]+거든. 15세기 국어의 ‘-거든’은 ‘-거든’은 ‘배경’과 ‘가정’의 용법이 있는데 15세기에서는 ‘배경’의 용법이 훨씬 우세하다. 여기서도 ‘배경’의 용법으로 쓰였다. ¶粉과 燕脂와 瓔珞과 옷과 花鬘과 곳과 쇠로 몟거든 사오나 사미 몰라 소가 貪  내니〈석상 3:26ㄱ〉. 내 비록 諫諍 資質ㅣ 업스나 내 나니거든 님그미 그르실 이리 겨실가 젓노라(雖乏諫諍姿 恐君有遺失)「北征」〈중간두시 1:1ㄴ-2ㄱ〉.
公侯와 야 주046)
공후(公侯)와 야
공후와 함께. 공후+와 -+야. 15세기 국어의 ‘-와 야’는 ‘A와 함께 B’로 쓰이는 경우와 ‘A와 함께 V’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와 야 : 太子와 야 그위예 決라 가려 더니〈석상 6:24ㄴ〉. 嚴武와 야 意氣 死生애 親시라[聯翮匍匐禮 意氣死生親]「奉贈蕭二十使君」〈두시 20:39ㄴ〉. 怨讐와 야 토맷  두어〈월석 2:63ㄴ〉. 쉬 나래 時節 조차 술 먹노소니 오 옌 내 킈와 야 다 길리로다(假日從時飲 明年共我長)「又示宗武」〈두시 8:50ㄱ〉.
더니라 주047)
더니라
나란히 하였다. 대적하였다. -[竝]+더+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功이 마 부텻긔 건마 오직 뎌 法藏 護持호 願〈월석 15:34ㄱ〉. 잇 죄 騷雅 니니 智慧왼 匠도 엇게 디 몯리로다(有才繼騷雅 哲匠不比肩)「陳拾遺故宅」〈두시 3:64ㄴ〉.

【한자음】 애애상마교 공후위등륜【 ‘애애(藹藹)’는 풍성한 모양이다. 시골 사람에게 뽕나무와 삼베가 많아 공후의 부귀함에 견줄 수 있다는 말이다.】
【언해역】 풍성한 뽕나무와 삼이 섞여 있으니 공후(公侯)와 함께 비교하더라!
*시 구절 해석 : “풍성하게 뽕나무와 삼이 섞여 자라거든, 공후와 대적할 만하였지.”라는 뜻으로, 비록 농사를 짓더라도 수확물이 풍성해서 만족스럽기는 공후와 같은 고관대작과도 견줄 수 있다는 말이다.

天未厭戎馬 주048)
융마(戎馬)
①옛날에 병거(兵車)를 매던 말. ②군마(軍馬). 전마(戰馬). ③군대(軍隊)를 대신 일컫던 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我軰本常貧

하히 주049)
하히
하늘이. 하ㅎ+ㅣ. ‘하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사호맷 주050)
사호맷
싸움의. 사호-[鬪]+오+ㅁ+애+ㅅ. 15세기 문헌의 일반적인 표기는 ‘싸호-’이나 『두시언해』는 경음 표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사호-’로 표기되었다. 15세기 문헌 중에서 ‘사호-’가 쓰인 문헌은 『내훈』을 제외하면 모두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싸호- : 婆稚 얽다 혼 마리니 싸호 즐겨 제 軍 알 가다가 帝釋손 니라〈석상 13:9ㄴ〉. 사호- : 두 구든 거시  사호면 모로매 나히 것니〈내훈 3:37ㄱ〉. 盜賊의 城池 白翟에 니고 사호맷 디새 丹墀예 디놋다(賊壕連白翟 戰瓦落丹墀)「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ㄱ〉.
 주051)

말을. +.
아쳗디 주052)
아쳗디
싫어하지. 아쳗-[厭]+디. 15세기 국어의 ‘아쳗-’은 ‘싫어하다’의 뜻으로 ‘-어-’에 의한 파생동사 ‘아쳐러-’와 ‘-브-’에 의한 파생형용사 ‘아쳗브-’도 있다. 『두시언해』에는 ‘아쳐러-’ 외에 ‘아쳐라-’의 용례도 있다. ¶아쳗- : 몬져 三界 觀호리니 아쳐러 여희욤 내논 젼라〈영가 상:15ㄴ〉. 覇業엣 샹녯 體니 宗臣의 아쳐러 기미 災害니라(霸業尋常體 宗臣忌諱災)「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0ㄱ-ㄴ〉. 아쳐러- : 처 發心호매 몬져 欲濁 아쳐러며〈능엄 6:89ㄱ〉. 늘구메 人世 슬코 두루 이녀셔 甲兵을 아쳐러노라(衰老悲人世 驅馳厭甲兵)「奉送二···郴州」〈두시 8:63ㄱ〉. 아쳐라- : 州府에 드러가 티 아니호 사미 내 眞淳호 아쳐라가 저헤니라(不愛入州府 畏人嫌我眞)「暇日小園에~兼書觸目노라」〈두시 16:69ㄴ〉. 아쳗브- : 生老病死ㅣ 實로 아쳗버 시름 受苦로 흘러올 모미 긋디 아니니〈월석 25:134ㄴ〉.
아니니 우리 무른 주053)
무른
무리는. 물[群]+은. ‘물’은 ‘무리’의 뜻으로 15세기에서는 ‘물, 믈, 무리, 므리’의 형태로 쓰였다. ‘믈, 므리, 물, 무리’에 대해서는「贈鄭十八賁」의 ‘靈 芝草ㅣ 뭀 곳다온 거긔 위두 니(靈芝冠衆芳)’〈두시 19:41ㄱ〉 구절의 ‘뭀’ 항목 참조.
本來 長常 주054)
장상(長常)
항상.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석상 3:22ㄱ〉. 님 디 長常 眷顧샤미 겨시건마(聖情常有眷)「贈特···二十韻」〈두시 8:8ㄱ〉.
가난요라 주055)
가난요라
가난하다. 가난-+오+라. ‘오’는 화자호응의 선어말어미로 이 문장의 주어는‘우리’이다. ‘가난’은 한자어로 원래의 한자는 ‘艱難’임은 주지의 사실인데 ‘간난(艱難)>가난[貧]’의 변화를 보인다. 『석보상절』 『월인석보』나 『능엄경언해』 『선종영가집』 등의 간경도감 불경언해 등에서는 ‘艱難’으로 표기되지만, 『내훈』 『두시언해』 『남명집언해』 등에서는 ‘가난’과 ‘艱難’이 모두 표기되었다. ¶艱難 : 艱難며 어엿븐 사 쥐주어 거리칠〈석상 6:13ㄱ〉. 世人이 다 鹵莽니 내 道ㅣ 艱難호매 브텟도다(世人共鹵莽 吾道屬艱難)「空囊」〈두시 3:24ㄴ〉. 가난 : 가난닌 가난호 便安히 너기고 가며닌 가며로 警戒홀디니〈내훈 1:27ㄱ〉. 가난 士 嗟嘆요 아니고 모 사 우 受호 므던히 너기노라(休爲貧士嘆 任受衆人咍)「秋日···三十韻」〈두시 3:9ㄴ〉.

【한자음】 천미염융마 아배본상빈
【언해역】 하늘이 싸움의 말을 싫어하지 아니하니, 우리 무리는 본래 항상 가난하였네.
*시 구절 해석 : “황제가 싸움하는 말을 싫어하지 않으니, 우리 무리들은 본래 항상 가난하다.”라는 뜻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아 항상 사람들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다는 말이다.

子尙客荊州 주056)
형주(荊州)
옛날 구주(九州)의 하나. 형산(荊山)과 형산(衡山) 사이에 있었다. 한(漢)나라 때 13자사부(刺史部)의 하나가 되었다. 관할했던 지역은 대략 지금의 상악(湘鄂) 2성(省)과 예주(豫州), 계주(桂州), 검주(黔州), 월주(粵州) 등 네 주(州)의 일부분이었다. 한나라 말 이후 관할 지역이 점차 줄어들었다. 예계검월(豫桂黔粵)은 예주(豫州), 계주(桂州), 검주(黔州), 월주(粵州)이다.
我亦滯江濵【江濵은 指夔州다】

그듸 주057)
그듸
그대.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오히려 荊州ㅣ 주058)
형주(荊州)ㅣ
형주에. ‘州’에 붙은 ‘ㅣ’는 일반적으로 주격 또는 서술격 조사로 쓰이지만 ‘속격’이나 ‘처격’ 심지어는 의미 없이 붙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을 ‘州’ 다음의 ‘ㅣ’가 속격이나 처격의 기능도 있다고 보기보다는 한자 ‘州’에 아무런 기능 없이 붙는 표기법적인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주격 : 눈 비예 松州ㅣ 다티옛도다(雨雪閉松州)「西山三首」〈두시 5:10ㄴ〉. 夔州ㅣ 幽僻 셔 그르메와 弔問고(弔影夔州僻)「秋日···一百韻」〈두시 20:4ㄱ〉. 서술격 : 夔子國은 卽夔州ㅣ라[君不見夔子之國杜陵翁]「復陰」〈두시 12:24ㄱ〉. 기타 :   梓州ㅣ 사로라(一年居梓州)「去蜀」〈중간두시 2:1ㄱ〉. 네 荊州ㅣ 오로브터(自汝到荊府)「續得觀의~定出三峽호리라」〈두시 8:43ㄴ〉. 荊州ㅣ로셔 나가리로다(騎馬發荊州)「更題」〈두시 12:28ㄴ〉.
와 나그내 외얏니 주059)
외얏니
되어 있으니. 외-[爲]+아#잇-++니.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나도   주060)

강의. [江]+ㅅ.
 주061)

가에. +. 〈중간본〉에는 ‘’로 되어 있다.
머므럿노라 주062)
머므럿노라
머물고 있노라. 머믈-[滯]+어#잇-++오+라. 주어가 ‘나(두보 자신)’이기 때문에 화자호응의 선어말어미 ‘오’가 사용되었다.

【한자음】 자상객형주 아역체강빈【‘강빈(江濵)’은 기주(夔州)를 가리킨다.】
【언해역】 그대가 오히려 형주(荊州)에 와 나그네 되어 있으니, 나도 또 강가에 머물러 있노라.
*시 구절 해석 : “그대 오히려 형주에 나그네 되었나니, 나도 또한 강가에 머물렀노라”라는 뜻으로, 설거가 형주에 있을 때 두보 자신은 기주에 있었다는 말이다.

峽中 주063)
협중(峽中)
두메. 골짜기. 산과 산 사이의 골.
一卧病 31ㄱP瘧癘 주064)
학려(瘧癘)
해로운 유행병의 하나인 학질(虐疾)을 일컫는 말. 학질(瘧疾). 학역(瘧疫).
終冬春

峽中에 주065)
협중(峽中)에
협중에. 협중+에. ‘협중(峽中)’은 ‘기주(夔州)’를 말한다.
번 주066)
번
한번. ¶ 번 許諾호 엇뎨 驕慢이며 쟈이리오(一諾豈驕矜)「贈特進汝陽王二十韻」〈두시 8:9ㄱ〉.
病야 주067)
병(病)야
병들어. 병(病)-+야. 현대국어의 ‘병들다’는 15세기에서 ‘病다’로 쓰였다.
누우니 고 病으로 주068)
고 病으로
학질병으로. 고봄+ㅅ 病+으로. 〈중간본〉에는 ‘고’로 되어 있다.
겨와 주069)
겨와
겨울과. 겨ㅎ+와. ‘겨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중간본〉에는 ‘겨와’로 되어 있다.
보 주070)
보
봄을. 봄[春]+.
초라 주071)
초라
마쳤다. -[終]+오+라. ‘오’는 화자호응의 선어말어미로 주어가 ‘두보’임을 알 수 있다. 시제 표지는 따로 없으나 부정시제로 볼 수 있으므로 과거시제로 보아야 한다.

【한자음】 협중일와병 학려종동춘
【언해역】 협중(峽中)에서 한번 병들어 누우니, 학질로 겨울과 봄을 마쳤네.
*시 구절 해석 : “협중에서 한 번 병들어 누우니, 괴로운 병으로 겨울과 봄철을 마쳤다.”라는 뜻으로, 두메산골에서 병이 들어 겨울과 봄철에 꼼짝 못 하고 지냈다는 말이다.

春復加肺氣 此病盖有因 早歲與蘇鄭 痛飲情相親蘇源明 주072)
소원명(蘇源明)
?~764. 당나라 경조(京兆) 무공(武功) 사람. 처음 이름은 예(預)이고, 자는 약부(弱夫)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연간에 진사(進士)가 되고, 동평태수(東平太守)와 국자사업(國子司業) 등을 역임했다. 안녹산(安祿山)이 장안(長安)을 함락시키고 등용하려 하자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숙종(肅宗)이 양경(兩京)을 수복한 뒤 고공낭중지제고(考功郞中知制誥)에 발탁되어 벼슬이 비서소감(秘書少監)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 글을 올려 시정득실(時政得失)에 대해 논했다. 두보(杜甫), 정건(鄭虔), 원결(元結) 등과 교유관계를 맺었으며 시문을 잘 지었다. 원래 문집 30권이 있었지만 전해오지 않는다. 『전당시(全唐詩)』에 시 2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응수시(應酬詩)이다. 『전당문(全唐文)』에는 문장 5편이 실려 있다.
鄭虔 주073)
정건(鄭虔)
705~764. 당나라 정주(鄭州) 형양(滎陽) 사람. 자는 약재(弱齋)다. 현종(玄宗) 천보 초에 협율랑(協律郞)을 거쳐 광문관박사(廣文館博士)를 지냈다. 이백, 두보 등과 사귀었다. 관리 생활을 하면서도 검약해서 종이가 늘 부족했는데, 자은사(慈恩寺)에 감나무 잎이 많이 저장되어 있어 날마다 이것으로 종이를 만들었다. 지리학에도 정통해 『천보군방록(天寶軍防錄)』을 지었는데, 언어가 전아하고 전고(典故)가 꼼꼼했다. 유자(儒者)들이 그의 저서를 보고는 감복하여 ‘정광문(鄭廣文)’이라 불렀다. 안녹산이 장안을 함락했을 때 잡혀 수부낭중(水部郞中) 벼슬을 받았는데, 난이 평정된 뒤 대주사호참군(臺州司戶參軍)으로 폄적되고, 얼마 뒤 죽었다. 관리 생활을 하면서 거듭 폄적(貶謫)을 당하는 등 풍파가 많았다. 시를 잘 지었고, 산수화를 잘 그렸으며, 글씨 쓰기를 좋아했다. 직접 지은 시에 그림을 곁들인 「창주도(滄州圖)」를 바치자 현종이 감탄해서 직접 ‘정건삼절(鄭虔三絶)’이라고 써 주었다. 수묵화법의 발전에 공헌했고, 작품에 「준령계교도(峻嶺溪橋圖)」와 「장인도(杖引圖)」가 있다.
이라】

보 주074)
보
봄에. 보-[見]+오+ㅁ+.
肺氣ㅅ 病이 주075)
폐기(肺氣)ㅅ 병(病)이
폐병이. 肺氣+ㅅ#病+이.
더으니 주076)
더으니
더하니. 더으-[加]+니. ‘더으-’가 ‘더-’로 바뀌어 쓰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 동사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유추 작용이다. ‘다다’[盡]가 ‘다다’로 바뀐 것도 같은 경우이다. ¶다가 이 微妙 覺과 本來 微妙 覺明이 如來ㅅ 과로 더으디 아니며 더디 아니커늘〈능엄 4:33ㄱ〉. 願 兵事ㅣ 블 요믈 警戒샤 恩惠 四海예 더으샤 기피 쇼셔(願戒兵猶火 恩加四海深)「提封」〈두시 5:19ㄴ〉.
이 病 젼 주077)
젼
까닭이. 원인이. 젼+ㅣ. ‘젼’는 18세기까지 폭넓게 쓰이다가 점차 사용이 축소된다. 참조; 앛(금삼 3:38ㄱ), 닥(한중록 566). ¶젼 :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훈언 2ㄱ〉. 그듸의 苦왼 디 글 짓논 젼로 여위욘 고 아노니(知君苦思緣詩瘦)「暮登···十迪」〈두시 9:39ㄱ〉. 앛 :  어루 시러 다디 몯리니 이 기푼 아치니라〈금삼 서:4ㄴ〉. 닥 : 大統領이 國會에 與 敎書에 宣言 닥으로〈조선독립협회회보〉.
잇니라 주078)
잇니라
잇느니라. 잇-[有]++니+라.
져믄 주079)
져믄
젊은. 졈-[少]+은.
주080)
때에. 제[際]+∅.
蘇鄭로 다야 주081)
소정(蘇鄭)로 다야
소원명(蘇源明)과 정건(鄭虔)과 함께 하여. ‘다’은 ‘함께’의 뜻으로 ‘다-’는 ‘부사어+-’로 구성된 동사로 볼 수 있는데, ‘-로’를 지배하고 있다. 현대어의 ‘-과 함께 하-’와 대비된다.
 주082)

매우. 많이. ‘가장’의 선대형이나 현대국어의 ‘가장’이 최상급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서 15세기 국어의 ‘’은 최상급으로 쓰이지 않았다. 〈중간본〉에는 ‘장’으로 되어 있다.
머거셔 주083)
머거셔
먹어서. 먹-[食]+어+셔.
들 주084)
들
뜻을. +을.
서르 주085)
서르
서로.
親요라 주086)
친(親)요라
친하였다. 親-+오+라.

【한자음】 춘부가폐기 차병개유인 조세여소정 통음정상친【소원명(蘇源明)과 정건(鄭虔)이다.】
【언해역】 봄에 또 폐병이 더하니 이 병(病)은 까닭 있네. 젊을 때 소원명과 정건과 함께 많이 술 먹어서 정(情)이 서로 친하였네.
*시 구절 해석 : “봄에 또 폐병이 더해졌으니, 이 병은 대개 까닭이 있느니라. 일찍이 소원명, 정건과 더불어, 술을 많이 마셔서 정이 서로 가까웠었지.”라는 뜻으로, 폐병이 도진 데는 까닭이 있으니, 이전에 소원명 등과 술을 많이 마셔 우정은 두터워졌지만, 이 때문에 몸에 무리가 왔다는 말이다. 꼭 인과 관계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4구로 된 연면구이다.

二公化爲土 嗜酒不失眞

두 사 주087)
두 사
두 사람은. 즉, 소원명과 정건을 말한다.
變化야 기 주088)
기
흙이. [壤]+이. ‘’은 16세기까지는 아주 우세하게, 17세기에는 비슷하게, 18세기에는 세력이 아주 축소된다. 한편 ‘흙’은 16세기에 보이다가 17세기부터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간다. ¶ :  싸하 佛廟 일우거나〈법화 1:217ㄴ〉. 나 이니 내 모매 콰 가족과 왜니라〈칠대 2ㄱ〉. 고온 사미 누른 기 외니(美人爲黃土)「玉華宮」〈두시 6:1ㄴ〉. 흙 : 흘그로 근 사〈소언 6:122ㄱ〉.
외니 술 즐규믈 주089)
즐규믈
즐김을. 즐기-[樂]+우+ㅁ+을.
眞性 주090)
진성(眞性)
①천성(天性). 본성(本性). ②불교용어(佛敎用語).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망령(妄靈)되지 않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를 말한다. ③영혼(靈魂)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일티 주091)
일티
잃지. 잃-[失]+디.
아니니라 주092)
아니니라
아니하니라. 않았다. 않았네. 아니-+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한자음】 이공화위토 기주불실진
【언해역】 두 사람은 변(變)하여 흙이 되니, 술 즐김을 진성(眞性)을 잃지 않았네.
*시 구절 해석 : “두 사람은 변화하여 흙이 되었으니, 술을 즐김에 진성을 잃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이미 소원명과 정건 두 사람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술을 즐겨 마셨던 본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이다.

予今委修短 주093)
수단(脩短)
①길고 짧음. 물건의 길이를 가리킨다. ②길고 짧음. 사람 목숨을 가리킨다. ③장점과 단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豈得恨命屯

나 이제 목숨 길며 뎔우믈 주094)
뎔우믈
짧음을. 뎌르-[短]+우+ㅁ+을.
므던히 주095)
므던히
가볍게. 소홀하게. 무던히. 므던-+이. 15세기 국어의 ‘므던히’는 ‘소홀하게’의 뜻이다. ¶므던히 : 네 뎌 나라 므던히 너겨 사오나 너 들 내디 말라〈석상 20:36ㄴ〉. 가난 士 嗟嘆요 아니고 모 사 우 受호 므던히 너기노라(休爲貧士嘆 任受衆人咍)「秋日···三十韻」〈두시 3:9ㄴ〉. 百年 內예 萬事 므던히 너기간마 녜 사던  매 耿耿야 니조미 어렵도다(百年從萬事 故國耿難忘)「遣悶」〈두시 3:13ㄱ〉. 되 겨지븐 烽燧 므던히 너기고 되 아 駱駝 질드리놋다(羌女輕烽燧 胡兒制駱駝)「寓目」〈두시 3:23ㄴ〉.
너겨 리노니 주096)
너겨 리노니
여겨. 너기-[謂]+어#리-++오+니. ‘오’는 화자호응의 선어말어미로 주어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어 리-’는 현대국어의 ‘-어 버리-’와 동일한 의미이다. 『두시언해』에서 ‘너기-’는 ‘-고져’나 ‘-오’이 이끄는 내포문이나 부사를 지배한다. 〈중간본〉엔는 ‘너기거나’로 되어 있다. ¶太子ㅣ 너기샤 여윈 모로 菩提樹에 가면〈석상 3:39ㄴ〉. 兄 富貴 가져  구룸과 가지로 너기거(兄將富貴等浮雲)「狂歌行贈四兄」〈두시 8:27ㄱ〉.
엇뎨 주097)
엇뎨
어찌. ‘豈’의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이와 관련된 낱말로 ‘엇디’로 『두시언해』에서 보인다.
시러곰 주098)
시러곰
능히. ‘득(得)’의 번역이다.
命의 주099)
명(命)의
운명의.
屯蹇 주100)
둔건(屯蹇)
어려움과 고난이 심해 불리하고 순조롭지 못한 것.
호 슬흐리오 주101)
슬흐리오
슬퍼하겠는가? 슳-+으리+오.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오’는 설명의문문 ‘고’의 ‘ㄱ’이 ‘ㅣ’ 모음 뒤에서 약화된 것이다. ‘오’는 선행하는 의문사 ‘엇뎨’와 호응한다.

【한자음】 여금위수단 기득한명둔
【언해역】 나는 이제 목숨이 길며 짧음을 무던히 여겨 버리니, 어찌 능히 명(命)의 둔건(屯蹇)함을 슬퍼하겠는가?
*시 구절 해석 : “나는 이제 목숨 길고 짧음을 가벼이 여겨 버리니, 어찌 운명이 나아가기가 어려운 것을 슬퍼하겠는가.”라는 뜻으로, 오래 살고 요절하는 일도 아랑곳 않게 되었는데 고통스런 운명에 어찌 마음이 상하겠냐는 말이다.

聞子心甚壯 所過信席珍 주102)
석진(席珍)
①진귀한 것을 베풂. 옛날 성인이 바르고 착한 도리를 펼침. ②자리 위에 놓인 보배란 뜻으로, 유자(儒者)의 학덕을 비유한다고도 한다. 석상진(席上珍).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子 指薛𤩁다】

그듸 주103)
그듸
그대는. 그듸+. ‘그듸’는 ‘子’에 대한 번역으로, 주석에는 ‘설거(薛璩)’를 가리킨다고 되어 있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미 주104)
미
마음이. [心]+이. 〈중간본〉에는 ‘미’로 되어 있다.
甚히 健壯호 주105)
건장(健壯)호
건장함을. 健壯+-+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31ㄴ

듣노니 주106)
듣노니
들으니. 듣-[聞]++오+니. ‘오’는 화자 주어에 호응하는 것으로 듣는 주체가 ‘두보’임을 가리킨다.
디나가논 바애 주107)
디나가논 바애
지나가는 바에. 지나가는 것에. 디나-+아#가-++오+ㄴ 바+애.
真實로 주108)
진실(真實)로
진실로. ‘신(信)’의 번역이다.
돗긔 주109)
돗긔
자리에. [席]+의. ¶席은 돗기라〈능엄 1:35ㄴ〉. 처 돗 로매 軍裝 보니(初筵閱軍裝)「揚旗」〈두시 5:48ㄱ〉.
안잣 주110)
안잣
앉아있는. 앉-+아#잇-+.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珍寶ㅣ로다 주111)
진보(珍寶)ㅣ로다
진보이도다. 진보+이+도+다.

【한자음】 문자심심장 소과신석진【‘자(子)’는 설거(薛璩)를 가리킨다.】
【언해역】 그대는 마음이 심히 건장함을 들으니, 지나가는 것에 진실로 자리에 앉아 있는 진기한 보배이도다.
*시 구절 해석 : “그대는 마음이 심히 건장하다 들었는데, 지나가는 바가 참으로 자리 위의 보배다.”라는 뜻으로, 그대(설거)는 심지가 굳고 단단해서 하는 일이 모두 선비로서 보배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上馬不用扶 每扶必怒嗔【此下十句 皆言𤩁다】

 주112)

말을. [馬]+.
토 주113)
토
타되. 타는데. -[騎]+오. 15세기 국어의 ‘다’는 ‘받다, 오르다, 탈 것을 타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다(받다) : 므욤  사 보면 미 便安며〈월석 2:59ㄱ〉. 도게 뎌실 젯 시름을 도로혀 랑고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翻思在賊愁 甘受雜亂聒)「北征」〈중간두시 1:7ㄱ〉. 다(오르다) : 내 分身 百億釋迦佛을 조쳐 뫼호아 各各 樓觀 고 戒壇所애 오게 라〈월석 25:49ㄴ〉. 다(탈 것에 타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아자바긔도 가샤〈석상 3:6ㄴ〉. 져근  고 쇽졀업시 늘거 가노니 聖明신 朝 깁올 줄 업도다(扁舟空老去 無補聖明朝)「野望」〈중간두시 2:21ㄴ〉. 다(불에 타다) :  더운 性이 업서 간도 디 아니며〈능엄 9:108ㄴ〉.
사 주114)
사
사람의. 사람이. 사+. ‘-’는 후행하는 ‘扶持호’의 의미상 주어를 표지하는 관형격이다.
扶持호 디 주115)
디
쓰지. -[用]+디. 15세기에 ‘-’는 ‘사용하다[用]. (맛이) 쓰다[苦]’, ‘쓰-’는 ‘(글을) 쓰다[書], (갓을) 쓰다[冠]’로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아니코 주116)
아니코
않고. 아니#-+고.
每常 주117)
매상(每常)
매양.
扶持거든 주118)
부지(扶持)거든
부지하면. 부축하면. 扶持#-+거든. 15세기 국어의 ‘-거든’은 ‘-거든’은 ‘배경’과 ‘가정’의 용법이 있는데 15세기에서는 ‘배경’의 용법이 훨씬 우세하다.
반기 주119)
반기
반드시. 15세기 국어에는 ‘반기’ 이외에도 ‘반시’〈두시 24:32〉, ‘반개’〈두시 25:2〉 등이 사용되었다. 이 중 ‘반개’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반기’는 ‘반드시 (~ 해야 한다)’의 뜻과 ‘(모양이) 반듯하게’의 뜻이 있다. ¶반기 : 善根이 기프면 彈指ㅅ 예 반기 가리니〈월석 8:1ㄴ〉.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群公」〈두시 3:21ㄴ〉. (모양이) 반듯하게 : 밠바 그미 해 반기 바키시며〈월석 2:57ㄱ〉. 반시 :  세 번 머그면 돌히 반시 나리니 돌히 다 나거든 말라〈구간 3:113ㄱ〉. 流傳야 가 반시 等倫에 그츠리로다(流傳必絶倫)「寄李十二白二十韻」〈두시 16:5ㄱ-ㄴ〉. 반개 : 속 뷘 대로 반개 지여 요리라(當仗若虛竹)「課伐木幷序」〈두시 25:2ㄴ〉.
므여놋다 주120)
므여놋다
미워하는구나. 믜-[憎]+어#-++오+ㅅ+다. 『두시언해』에서 ‘믜여-’와 ‘므여-’가 같이 쓰였다. ‘믜-’가 ‘므-’로 표기되는 것은 하향이중모음이 탈락한 음을 표기하는 『두시언해』의 전형적인 표기법에 속한다. ‘므여-’는 『두시언해』 가운데에서도 권19의 용례가 유일하다. ¶믜- : 앗기며 貪며  믜며 새오로 됴티 몯 根源을 일울〈석상 13:56ㄴ〉. 일의노 아 아니 환히 누워 안 와 믜여 리다(嬌兒惡臥踏裏裂)「茅屋···破歌」〈두시 6:42ㄴ〉. 믜여- : 네 아리 목이 믜여거〈삼강동경 열:7ㄱ〉. 官吏의 怒야 믜여호 잇비 아니호리라(不勞吏怒嗔)「前出塞九首」〈두시 5:27ㄴ〉. 믭- : 믜 사 일훔 쓰며〈석상 9:17ㄱ〉.

【한자음】 상마불용부 매부필노진【여기서부터 아래 열 개의 구절은 모두 설거에 대해 말한 것이다.】
【언해역】 말을 타되 사람의 부축함을 쓰지 아니하고, 매양 부축하면 반드시 노여워하는구나!
*시 구절 해석 : “말을 타되 사람이 돕는 것을 쓰지 않았고, 항상 도우면 반드시 노여워했다.”라는 뜻으로, 말을 탈 때 도움 없이 당당하게 대처했다는 말이다.

賦詩賔客閒 揮灑 주121)
휘쇄(揮灑)
글씨를 쓰는 것이 맑고 시원함.
八垠 주122)
팔은(八垠)
팔해(八垓). 팔방(八方).
【八垠 猶八方이라】

賔客 주123)
빈객(賓客)
빈객. 즉 초빙되어 온 여러 손님들을 말한다.
예셔 주124)
예셔
사이에서. +예+셔. 〈중간본〉에는 ‘이예셔’로 되어 있다.
그를 지니 주125)
지니
지으니. 짓-[作]+으니. ‘짓다’는 다의어로서 ‘집을 짓다, 글을 짓다, 행위를 하다, 농사 짓다, 물건을 만들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중간본〉에는 ‘지으니’로 되어 있다.
주126)
쓴. 스-[書]+우+ㄴ. ‘스-’는 ‘쓰-’로 병서 표기를 하지 않는 『두시언해』의 특징이 반영된 표기이다. 〈중간본〉에는 ‘슨’로 되어 있다.
거시 주127)
거시
것이. 것+이.
八垠에 주128)
팔은(八垠)에
팔방(八方)에. 八垠+에. 〈중간본〉에는 ‘八垠에’로 되어 있다.
뮈옛도다 주129)
뮈옛도다
움직이고 있도다. 뮈-[動]+어#잇-+도+다. 15세기 국어의 ‘뮈다’는 ‘움직이다’의 뜻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한자음】 부시빈객한 휘쇄동팔은【‘팔은(八垠)’은 팔방과 같은 말이다.】
【언해역】 빈객(賓客) 사이에서 글을 지으니, 글 쓴 것이 팔방(八方)에 움직이고 있도다!
*시 구절 해석 : “손님들 사이에서 시를 지으니, 글 쓴 것이 팔은을 움직였네.”라는 뜻으로, 설거의 필치가 뛰어나 모든 사람들이 감동했다는 말이다.

乃知蓋代手 才力老益神

一代 주130)
일대(一代)
한 세대를. 一代+.
두펏 주131)
두펏
덮고 있는. 둪-+어#잇-+. ‘둪-’과 ‘-어 잇-’이 결합된 것으로, 현대국어의 ‘-고 있-’ 구문에 대응되는 15세기의 ‘-어 잇-’ 구문의 보기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는데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이 쓰였다. ¶-어 잇- : 다 이 經에 現히 닐어 잇니라〈석상 19:43ㄱ〉. 기튼 치위예 곳과 플왜 디어 잇니(餘寒折花卉)「送大~遂停니라」〈두시 8:70ㄱ-ㄴ〉. -앳/엣- : 이제 내 너와 곧 다디 아니케 외앳니〈법화 2:218ㄴ〉. 戎事 惣執니 다 侍中의 貂 고잿도다(惣戎皆插侍中貂)「諸將五首」〈두시 5:44ㄱ〉. -앗/엇- : 諾디 아니야 손애 일을 잡앗거든〈소학 2:15ㄴ〉. 노 臺  부 믌  구벗도다(曾臺俯風渚)「雨三首」〈두시 12:13ㄴ〉.
소 주132)
소
손은. 손[手]+.
才力 주133)
재력(才力)
재주에 대한 능력.
늘거 주134)
늘거
늙어야. 늙-+어+. 15세기 국어의 ‘’는 현대국어의 ‘-야’에 대응하는 것으로 강세첨사의 기능을 가진다. 통합형 ‘-아’는 ‘계기성’과 ‘강조’의 뜻을 가지며, 보통 “…한 뒤에야 (비로소)” 정도로 풀이된다. ‘盡’의 뜻으로는 ‘다-’가 대부분이지만, ‘다-’형이 새롭게 등장한다. 〈중간본〉에는 ‘늘거아’로 되어 있다.
더옥 주135)
더옥
더욱. 『두시언해』에는 ‘더욱’과 ‘더옥’이 같이 쓰였다. ¶더옥 : 閑散 해 더옥 벼개 〈두시 11:2ㄱ〉 노피 벼요니(散地逾高枕)「大歲日」〈두시 11:1ㄴ〉. 主將이 驕慢 더욱 데 시름노니(將驕益愁思)「後出塞五首」〈두시 5:32ㄴ〉. 더욱 : 도라 드르샤 더욱 시름야 더시다〈석상 3:19ㄴ〉. 主將이 벼스리 더욱 노니(主將位益崇)「後出塞五首」〈두시 5:32ㄴ〉.
神奇외요 주136)
신기(神奇)외요
신기로움을. 神奇#+오+ㅁ+. ¶孟子ㅣ 닐오 너비 화 仔細히 닐오  두르 조외요 닐오례니라〈법화 1:123ㄱ〉.  두르힐후며 머리 여룸 로미 神奇외요미 잇도다(長年三老遙憐汝 捩柁開頭捷有神)「撥悶」〈두시 3:32ㄴ〉.
알와라 주137)
알와라
알겠네. 알-[知]+오+아+라. ¶-와라 : 이제 와  生死受苦애 내와라()〈월석 7:19ㄱ〉. 여희요매 사미 뉘 잇니오 디나가 늘거 내 말와라(別離人誰在 經過老自休)「懷灞上遊」〈두시 3:39ㄱ〉.

【한자음】 내지개대수 재력로익신
【언해역】 일대(一代)를 덮고 있는 손은 재력(才力)이 늙어서야 더욱 신기로움을 알겠네.
*시 구절 해석 : “이에 시대를 덮는 손은, 늙어서야 재능이 더욱 신기로워짐을 알겠다.”라는 뜻으로, 정치를 하는 수완은 나이가 들어서야 재주와 능력이 더욱 신기로워진다는 말이다.

靑草 주138)
청초(靑草)
호수(湖水) 이름. 옛날 오호(五湖)의 하나. 파구호(巴丘湖)라고도 한다.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악양시(嶽陽市) 서남쪽에 있는데, 동정호(洞庭湖)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청초산(靑草山)이 있어 이렇게 불린다. 일설에 따르면 호수 안에 청초가 많아 겨울과 봄철에 물이 마르면 청초가 더욱 잘 보여 이렇게 불린다고 한다. 당송(唐宋) 시기 때는 호수 둘레는 265리(里)였는데, 북쪽으로 사주(沙洲, 모래톱)가 있어 동정호와는 끊겼다가 물이 불어나면 동정호와 이어졌다. 시문(詩文)에서는 주로 동정호와 병칭(幷稱)된다.
洞庭湖 주139)
동정호(洞庭湖)
호남성 북부에 있는 중국 제2의 담수호. 면적은 계절에 따라 3,100~5,100㎢로 차이가 커지는데, 현재는 3,915㎢로 거의 고정되었다. 태고에 운몽대택(雲夢大澤)이라고 불린 큰 호수가 일대를 덮고 있었는데, 여러 하천의 퇴적작용에 의해 광대한 호광(湖廣) 평야와 크고 작은 무수한 소택군이 형성되었고, 동정호도 그 중 하나로 생겨났다. 상강(湘江), 자수(資水), 원강(沅江), 풍하(澧河) 등의 물을 모아, 악양(岳陽) 북동쪽의 성릉기(城陵磯)를 거쳐 당강으로 배수한다. 호수 안에는 섬이 많아, 일찍이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하나로 꼽힌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하고, 악양루(岳陽樓) 앞에 있는 높이 128m의 군산(君山, 湘山)에는 순제(舜帝)의 죽음을 비탄하여 물에 몸을 던진 아황(娥皇)와 여영(女英) 두 비를 모시는 묘우(廟宇)가 있다.
東浮滄海漘【青草 湖名이라】

靑草와 주140)
청초(靑草)와
청초호와. ‘청초호’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 참조.
洞庭ㅅ 湖애 주141)
동정(洞庭)ㅅ 호(湖)애
동정호에. ‘동정호’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 참조.
東녀그로 주142)
동(東)녀그로
동쪽으로. 東#녘+으로. ‘東, 西, 南, 北’ 중에서 ‘西’만 ‘西ㅅ녁’과 같이 사이시옷이 쓰인다. 〈중간본〉에는 ‘東녀크로’로 되어 있다.
바 주143)
바
바다의. 바+ㅅ. 15세기 국어에서 현대국어의 ‘바다’는 ‘바’과 ‘바다ㅎ’가 쓰였다. ¶바다ㅎ : 海 바다 〈광주판천자문 3ㄴ〉. 바 : 福 모도미 바 티 그지 업스니〈석상 21:16ㄴ〉. 하과 과 믈 밀연 바래 어득얏고 비와 이슬와  거츤 프를 신놋다(乾坤霾漲海 雨露洗春蕪)〈중간두시 2:8ㄱ〉.
로 주144)
로
가로. +로. 〈중간본〉에는 ‘로’로 되어 있다.
주145)
배[船]. ¶내 몬져 됴 차바로 브르긔 고 法味로 乃終에 便安코 즐겁긔 호리라〈석상 9:9ㄱ〉. 벼개예 굽스러셔 지즈로 리 오니 죠고맛 로 가며 오며 호  조초 노라(伏枕因超忽 扁舟任往來)「秋日···三十韻」〈두시 3:8ㄱ〉. 참조; (腹) : 太子ㅣ 妃子ㅅ  치시며 니샤〈석상 3:22ㄱ〉. 아 울며  우루믈 내 아디 아니고 몸 우흰 오 求고  브르게  니로다(男啼女哭莫我知 身上須繒腹中實)「狂歌行贈四兄」〈두시 8:27ㄴ〉. 참조; (梨) : 곶 爲梨花〈훈해 42〉. 다시 오매  니피 블그니 녜 브터 댓수프리 프르도다(重來梨葉赤 依舊竹林靑)「客舊館」〈두시 3:36ㄱ〉.
워 주146)
워
띄워. -[浮]+이+우+어. ‘이’와 ‘우’는 모두 사동접미사이다. 현대국어의 ‘씌우다, 키우다’ 등도 모두 사동접미사 ‘이’와 ‘우’가 쓰인 사동사들이다. ¶-이우- : 戒香 퓌워 닷 사 命終 저긔〈월석 8:57ㄱ〉. 香 퓌우고 玉女ㅣ 렛고 안갯 소개 仙人이 오놋다(焚香玉女跪 霧裏仙人來)「冬到···學堂」〈두시 3:63ㄴ〉.
가놋다 주147)
가놋다
가는구나. 가-[行]++오+ㅅ+다.

【한자음】 청초동정호 동부창해순【‘청초(青草)’는 호수 이름이다.】
【언해역】 청초호(靑草湖)와 동정호(洞庭湖)에서 동쪽으로 바닷가로 배를 띠워 가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청초호와 동정호에, 동녘으로 바닷가까지 배를 띄워 갔었다.”라는 뜻으로, 청초호와 동정호에 배를 띄워 놀았는데 흥이 오르면 동쪽으로 배를 저어 해변까지 나갔다는 말이다.

君山 주148)
군산(君山)
산(山) 이름. 호남(湖南) 동정호(洞庭湖) 어귀에 있다. 상산(湘山)이라고도 부른다. 좋은 경치에 보이차로 알려진 군산은침(君山銀針)의 재배지로 유명하다. 상비묘(湘妃廟)가 있다.
可避暑 况足采白蘋 주149)
백빈(白蘋)
백평(白萍). 물위에 떠다니는 부평초(浮平草)를 말한다.
【君山이 在洞庭湖心다】

君山앤 주150)
군산(君山)앤
군산에는. 君山+애+ㄴ.
어루 주151)
어루
가히. ‘가(可)’의 번역으로 쓰인다. 15세기 문헌에 양이 적기는 하지만 ‘어로’형도 사용되었다. ¶어루 :  노다가 라면 어루 法을 호리이다〈석상 6:11ㄴ〉. 이믜셔 큰 지븨 기우롬과 다니 어루  남로 괴오리라(旣殊大廈傾 可以一木支)「水檻」〈두시 6:43ㄴ〉. 어로 : 다가 能히 매 서르 體信면 어로 맛나 어더 어려미 업스리어늘〈월석 13:32ㄱ〉. 집 아래 어로 온 사미 들리로소니(下可容百人)「題衡···陸宰」〈두시 6:22ㄱ〉.
더위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32ㄱ

주152)
더위
더위를. 덥-[暑]+이. ‘이’는 명사파생접미사이다. 〈중간본〉에는 ‘더위ㅣ’로 되어 있다.
避 히니 주153)
히니
곳이니. ㅎ[土]+이+니.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며 주154)
며
하물며. ‘況’의 번역으로 쓰인다. ¶모맷 고기라도 비 사 주리어니 며 녀나 쳔랴녀〈석상 9:13ㄱ〉. 며 길히 기루메 엇뎌 리오(何况道路長)「遣興二首」〈두시 8:29ㄱ〉.
足히 주155)
흰. -[白]+ㄴ. ‘희다[白]’의 뜻으로는 15세기 국어에서 ‘-’와 ‘희-’가 쓰였다. ¶- : 象과 왜  삿기 나며〈월석 2:45ㄱ〉. 雪嶺은 하 야 오(雪嶺界天白)「懷錦水居止二首」〈두시 7:10ㄱ〉.
말왐 야 주156)
야
캐야. -[採]+아. ‘야’는 ‘ㅣ’ 모음 뒤에서 ‘아’가 바뀐 것이다. ¶- : 釋迦菩薩이 藥 라 가 보시고 깃며 信며 恭敬샤〈월석 1:52ㄱ〉. 위 안햇  金玉 아나 가도 곰 요 디 몯리로다(園蔬抱金玉 無以供採掇)「七月~曹長노라」〈중간두시 10:25ㄴ〉.
머그리로다 주157)
머그리로다
먹을 것이도다. 먹-[食]+으리+도+다. ‘로’는 ‘으리’ 뒤에서 ‘도’가 바뀐 것이다.

【한자음】 군산가피서 황족채백빈【‘군산(君山)’이 동정호의 중심에 있다.】
【언해역】 군산(君山)은 가히 더위를 피(避)할 땅이니, 하물며 족(足)히 흰 마름을 캐어 먹을 것이도다!
*시 구절 해석 : “군산(君山)에서는 더위를 피할 수 있으니, 하물며 족히 흰 마름를 딸 수 있으리로다.”라는 뜻으로, 동정호에서 가까운 군산에서는 배를 대고 부평초를 딸 수도 있다는 말이다.

子豈無扁舟 往復江漢 주158)
강한(江漢)
①장강(長江)과 한수(漢水). ②장강과 한수 일대와 그 주변의 지역. 옛날의 형초(荊楚) 지역으로,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경내(境內)에 속한다. ③장강과 한수 일대와 그 주변의 지역. 옛날의 파촉(巴蜀) 지역으로,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동부 지역에 해당한다. ④장강과 한수 일대와 그 주변의 지역.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및 그 일대 지역이 속한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言薛𤩁ㅣ 乗舟逰賞也ㅣ라】

그듸 주159)
그듸
그대는. 그듸+. ‘그듸’는 ‘설거(薛璩)’를 가리킨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엇뎨 주160)
엇뎨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져근  주161)
져근 
작은 배. 젹-[小, 少]+은 . 15세기의 ‘’는 현대국어의 ‘배’와 같이 ‘[船]. [腹], [梨]’의 뜻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의 ‘東浮滄海漘(동부창해순)’ 구절 참조.
江과 漢괏 주162)
강(江)과 한(漢)괏
장강(長江)과 한수(漢水)의. 江+과 漢+과+ㅅ.
 주163)

나루의. 나루터의. [津]+. ‘’는 ‘[粉], [宗]’ 등과 같이 모음조사를 만나면 2음절의 ‘ㆍ’가 탈락하고 ‘ㄹ’은 첫 음절의 받침으로 쓰인다. ¶ : 渡頭  걷나  니니라〈금삼 4:5ㄱ〉. 綿州ㅅ  믌 東녁  魴魚ㅣ 노니 비치 銀이라와 더으도다(緜州江水之東津 魴魚鱍鱍色勝銀)「觀打魚歌」〈두시 16:62ㄱ〉.  :  ㅅ  석 과 고 솝  되 거플 앗고 봇그니와  디허〈구간 2:20ㄱ〉.
오락가락 주164)
오락가락
오락가락할. 오-[來]+라+ㄱ#가-[去]+라+ㄱ#-+ㄹ.
거시 업스리오 주165)
업스리오
없겠는가? 없-[無]+으리+오. ‘오’는 설명의문어미 ‘고’가 ‘ㅣ’ 모음 뒤에서 ‘ㄱ’이 약화된 형태이다.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한다. ¶-리오 :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綠林寧小患)「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ㄱ〉.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穴蟻欲何逃)「喜聞···二十韻」〈두시 5:2ㄱ〉. 엇뎨 갓  흐르 믈와  니리오(豈徒比清流)「鳳凰臺」〈두시 17:1ㄴ〉.

【한자음】 자기무편주 왕부강한진【설거(薛璩)가 배를 타고 놀며 경치를 감상했다는 말이다.】
【언해역】 그대는 어찌 작은 배로 강(江)과 한(漢)의 나루에 오락가락할 것이 없겠는가?
*시 구절 해석 : “그대는 어찌 작은 배를 타고 장강과 한수 사이의 나루터를 왕복하지 하겠는가.”라는 뜻으로, 설거(薛璩)가 배를 타고 강변을 오가면서 경치를 감상했다는 말이다.

我未下瞿塘 주166)
구당(瞿塘)
중국 삼협(三峽)의 하나로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동남쪽 양자강(揚子江) 상류에 있는 협곡(峽谷)이다. 양쪽 절벽 사이 급류가 흐르는 곳에 관문(關門)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를 기문(夔門)이라 한다.
空念 주167)
우(禹)
?~?. 중국 전설상의 하(夏)왕조의 시조. 성은 사(姒)씨고, 이름은 문명(文命)이다. 『사기(史記)』 하본기(夏本記)에 따르면, 전욱(顓頊)의 손자이며, 곤(鯀)의 아들이다. 요(堯)임금의 치세에 대홍수가 발생하여 섭정인 순(舜)이 그에게 치수(治水)를 명령했다. 13년 동안 노심초사한 끝에 치수 사업에 성공해 천하를 9주(州)로 나누고 공부(貢賦)를 정했다. 순이 죽자 인망(人望)을 모은 그가 제위를 계승했는데, 나라 이름을 하(夏)로 고치고 안읍(安邑)에 도읍했다. 치세 10년 만에 회계(會稽)에서 죽자 제후(諸侯)의 추대로 아들 계(啓)가 천자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천자 자리를 세습화하여 하왕조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소흥(紹興)에 무덤이 있다. 그의 전설은 한민족(漢民族)의 홍수 전설과 관련이 있으며, 신화학(神話學)과 고대 역사학상 중요한 자료가 된다.
功勤ㅣ 留滯峽中야 未得乗舟而下야 徒思禹의 䟽鑿之勤也ㅣ라】

나 주168)
나
나는. 나+. ‘두보’를 가리킨다. 후행하는 ‘몯호니’와 ‘노라’의 ‘-오-’와 호응한다.
瞿塘로 주169)
구당(瞿塘)로
구당협(瞿塘峽)으로. ‘구당협’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을 참조할 것.
려가디 주170)
려가디
내려가지. 리-[下]+어#가-+디. ‘-디’는 부정사에 선행하는 보조적 연결어미로 현대국어의 ‘-지’에 해당한다. ¶려가- : 내 이제 려가면 아니 오라아 涅槃호리다〈석상 11:12ㄴ〉.  타 가 술 醉홈 어두 어렵디 아니 이리니 峽로 려가면 시름 스러듀믄 一定야 몃 버닐고(乘舟取醉非難事 下峽消愁定幾巡)「撥悶」〈두시 3:32ㄱ〉. 리- : 셜흔 두 가짓 祥瑞 리며〈석상 6:17ㄱ〉. 노 매 나못니피 리니 긴 바 貂裘 자보라(高風下木葉 永夜攬貂裘)「江上」〈두시 3:39ㄴ〉.
몯호니 주171)
몯호니
못하니. 몯-#-+오+니. ‘오’는 화자 주어를 가리키는 선어말어미로 선행하는 주어 ‘나’과 호응한다.
갓 주172)
갓
한갓. 헛되이. ¶妙音이 釋迦란 보시고 多寶 몯 보시다 니 갓 疑心을  미라〈석상 20:44ㄴ〉. 엇뎨 갓 高祖ㅅ 聖德 니리오 功이 蕭何 曹參의 도오로브터 오니라(豈惟高祖聖 功自蕭曹來)「述古三首」〈두시 3:56ㄴ〉.
禹ㅅ 功 주173)
우(禹)ㅅ 공(功)
우왕(禹王)의 공적(功績)이. 禹+ㅅ#功+. ‘-’는 후행하는 ‘브즈런호’과 호응하는 의미상 주어이다.
브즈런호 주174)
브즈런호
부지런함을. 브즈런-+오+. ¶두번 頂 니샤 브즈런호 뵈시니라〈월석 18:16ㄱ〉. 가멸며 貴호 반기 브즈런며 辛苦호 브터 얻니 男兒ㅣ 모로매 다 술윗 글워 닐굴디니라(富貴必從勤苦得 男兒須讀五車書)「栢學士茅屋」〈두시 7:31ㄴ〉.
노라 주175)
노라
생각한다. #-++오+라. ‘오’는 화자 주어를 가리키는 선어말어미로 앞의 ‘나’과 호응한다. 『두시언해』에서는 형용사파생접미사 ‘-ㅂ-’에 의한 파생형용사인 ‘사-’도 쓰였다. 〈중간본〉에는 ‘랑노라’로 되어 있다. ¶다(생각하다) :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琴臺」〈두시 3:73ㄱ〉. 다(사랑하다) : 凄凉호 니건  노라(凄凉憶去年)「倚杖」〈두시 3:29ㄴ〉. 사- : 기피 블그니도 可히 오며 녀티 블그니도 도다(可愛深紅愛淺紅)「江畔···絕句」〈두시 18:7ㄴ〉.

【한자음】 아미하구당 공념우공근두보가 협중에 머물러 있으면서 배를 타고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다만 우임금이 땅을 파서 물줄기를 연 부지런함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언해역】 나는 구당협(瞿塘峽)으로 내려가지 못하니, 한갓되이 우왕(禹王)의 공(功)의 부지런함을 생각하네!
*시 구절 해석 : “나는 구당협으로 내려가지 못하니, 한갓되이 우임금의 공로가 부지런했음을 생각한다.”라는 뜻으로, 협중에서 설거가 있는 곳까지 가고 싶지만 물길이 닿지 않아 옛날 우임금이 물길을 뚫어 배를 오가게 한 노력을 생각한다는 말이다.

聽說松門 주176)
송문(松門)
송문협(松門峽)을 가리키는 말. 기주(夔州)에 있다.
峽 吐藥攬衣巾 주177)
의건(衣巾)
①의복(衣服)과 패복(佩巾). ②의복(衣服)과 두건(頭巾).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聞松門之好고 不暇飲藥야 即欲徃觀也ㅣ라】

松門峽 이 주178)
송문협(松門峽) 이
송문협의 일을. 즉 송문협의 아름다움을.
니거늘 듣고 주179)
니거늘 듣고
이르거늘 듣고. 말하니 그것을 듣고. 니-+거+늘 듣-+고.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 불규칙활용 중 소위 ‘ㄹ·ㅇ’형이다.
藥 먹다가 비왇고 주180)
비왇고
뱉고. 비왇-[吐]+고. ¶法界예 周徧야 十虛 머구므며 비왇거니 엇뎨 方所ㅣ 이시리오〈능엄 3:107ㄱ〉. 이 거믄 龍이  구스를 비왇니 馮夷ㅣ 부플 티고 뭀 龍이 놋다(此時驪龍亦吐珠 馮夷擊鼓群龍趨)「渼陂行」〈두시 13:13ㄱ〉.
衣巾을 자바 니러셔라 주181)
니러셔라
일어섰다. 닐-[起]+어#서-+어+라. ¶董卓이 갈  둘어셔라 고 닐오〈삼강런던 열:9〉. 浮生앳 功名 마 말며 마로리니 게으른 혜아료 〈중간두시 2:10ㄴ〉 도혀 져기 이셔라(浮名尋已已 嬾計𨚫區區)「大曆~十韻이라」〈중간두시 2:10ㄱ-ㄴ〉.

【한자음】 청설송문협 토약람의건【송문(松門)의 아름다운 경치를 듣고 약을 먹을 시간도 없이 바로 가서 보고 싶다는 것이다.】
【언해역】 송문협(松門峽) 일을 말하거늘 듣고는, 약(藥) 먹다가 뱉고 의건(衣巾)을 잡아 일어섰네.
*시 구절 해석 : “송문협의 아름다움을 들었으니, 약을 토하고 의복을 걷어 올리고 갔다.”라는 뜻으로, 송문협이 너무 아름답다는 말을 들어 모든 급한 일을 제쳐두고 달려가 보고 싶었다는 말이다.

高秋 주182)
고추(高秋)
하늘은 높고 공기가 상쾌(爽快)한 가을 하늘.
束帶 주183)
속대(束帶)
의복(衣服)을 잘 가다듬어 입어 단장(端莊)함을 표시하는 것.
鼓柂視靑旻 주184)
청민(靑旻)
푸른 하늘. 청천(靑天). 주로 가을 하늘을 말한다.
【秋天이 曰旻天이라 言秋當徃也ㅣ라】

노 주185)
노
높은. 높-[高]+.
 주186)

가을에. ㅎ[秋]+에.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중간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도로 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32ㄴ

주187)
옥
띠고. -[帶]+고+ㄱ. 〈중간본〉에는 ‘옥’으로 되어 있다. 〈초간본〉에서 ‘’자가 잘 보이지 않으나 〈중간본〉에서와 같이 ‘’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원문의 ‘束帶’에 대한 번역인데 『두시언해』에서 ‘束帶’는 ‘ -’로 번역된다. ¶束帶 :  요니 가 쥰 (束帶負芒刺)「毒熱···六弟」〈중간두시 10:21ㄴ〉.  요니 미츄미 나  우르고져 식브니(束帶發狂欲大叫)「早秋···相仍」〈중간두시 10:28ㄴ〉.
 주188)

노를. [楫]+. 성도로부터 상강(湘江)에 이르기까지 정착하여 살 때를 제외하면 두보는 배로 여행을 하였으므로 『두시언해』에는 ‘, , , 대’ 등 배와 관련된 어휘가 많다. ¶ : 靑楓浦애 와  그츄니 두 싯남기 녜 마 것드럿도다(輟棹靑楓浦 雙楓舊已摧)「雙楓浦」〈중간두시 2:24ㄴ〉. (船) : 대 수헤  겨래 笋ㅣ 나며  모새 可히  워 올리로다(密竹復冬笋 清池可方舟)〈중간두시 1:14ㄴ〉.  : 일 녀매 흘 사미 게으르고 돗 로매 ㅣ 아니완히 부놋다(早行篙師怠 席掛風不正)〈중간두시 1:49ㄴ〉. 九江 봄픐 밧기오 三峽 나죗 돗 알피로다(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중간두시 2:2ㄴ〉. 九江 봄픐 밧기오 三峽 나죗 돗 알피로다(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중간두시 2:2ㄴ〉. 대 : 우 눈믌 그제 조 妖恠히 너기디 말라 노 대 가마괼 좃다(莫恠啼痕數 危檣逐夜烏)「過南···庭湖」〈중간두시 2:20ㄱ〉. 구슬로 혼 발와 繡혼 기앤 누른 鶴으로 둘엣고 錦으로 혼 줄와 엄  대예  며기 니더니라(珠簾繡柱圍黃鶴 錦纜牙檣起白鷗)「秋興五首」〈두시 6:9ㄴ〉.
두드려 가 주189)
가
감을. 가+ㅁ+. ‘가’의 성조는 상성이다.
 주190)

맑은. -[淸]+.
 주191)

가을의. ㅎ[秋]+ㅅ.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하 주192)
하
하늘을. 하ㅎ+.
보리라 주193)
보리라
볼 것이다. 보-[見]+리+라.

【한자음】 고추각속대 고이시청민【가을 하늘을 일러 민천(旻天)이라 한다. 가을이 되면 당연히 가겠다는 말이다.】
【언해역】 높은 가을이 도로 띠를 띠고, 노를 두드려 감을 맑은 가을 하늘을 보리라.
*시 구절 해석 : “높은 가을이 되면 문득 허리띠를 매고, 노를 두드리면서 푸른 가을하늘을 보리라.”라는 뜻으로, 지금은 가지 못해도 가을이 되면 빨리 가서 그 아름다움을 즐기겠다는 말이다.

鳳池 주194)
봉지(鳳池)
①대궐 안에 있는 연못. 곁에 중서성(中書省)이 있었던 데서 중서성 또는 재상(宰相)의 직위를 뜻한다. ②연못물을 아름답게 부르는 이름.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澄碧 주195)
징벽(澄碧)
맑고 푸름. 호수물이 맑고 푸른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濟濟 주196)
제제(濟濟)
①많은 모양. ②위의(威儀)가 있는 모양. ③가지런하고 아름다운 모양. ④곤란한 일.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多士新【謂朝廷이 清平而賢士ㅣ 見用也ㅣ라】

鳳凰ㅅ 모시 주197)
봉황(鳳凰)ㅅ 모시
봉황의 연못이. ‘봉지(鳳池)’의 번역이다.
나날 주198)
나날
나날이. 날+날. ¶太子ㅣ 門 밧긔 가 보신 後로 世間 슬흔 미 나날 더으거시〈석상 3:22ㄱ〉. 죄 업고 나날 늘고니  머믈워셔 千門을 라노라(無才日衰老 駐馬望千門)「至德~往事노라」〈두시 3:23ㄱ〉.
가 주199)
가
맑아. -[淡]+아.
퍼러니 주200)
퍼러니
파라니. 프르-+어#-+니. ‘퍼러-’는 ‘프르-’에 ‘-어 -’가 붙어 파생된 형용사이다. 15세기에는 ‘퍼러다’ 이외에 ‘파라다’도 보인다. ¶퍼러- : 그 얼구리 해 이셔 곧 蒼然히 퍼러니〈금삼 2:29ㄴ〉. 돐 門읜 서리와 이슬왜 오 玉殿엔 이시 퍼러도다(石門霜露白 玉殿莓苔靑)「橋陵···諸官」〈두시 6:17ㄴ〉. 파라- : 妙有實相 버들 파라며 곳 벌거 디라〈남명 상:7ㄴ〉. 돌히 더운  고사릿 어미 븕고 믌 내왇  우미 파라도다(石暄蕨芽紫 渚秀蘆笋綠)「客堂」〈두시 6:51ㄴ〉. 참조; 프르- : 楚國 越國엣 象 다 프르고 오직 西天나라해  象이 하니라〈월석 2:31ㄴ〉. 다시 오매  니피 블그니 녜 브터 댓수프리 프르도다(重來梨葉赤 依舊竹林靑)「客舊館」〈두시 3:36ㄱ〉.
濟濟 주201)
많은. 하-[多]+ㄴ. ‘ㆍ’(아래아)가 음소로서 변별적 기능을 소실한 18세기 중엽 이전까지는 ‘ㅏ’와 엄격히 구분되었다. ‘나’[一]. 관형사이며, ‘-’[爲]의 관형사형인 ‘’과는 의미가 분명히 변별되었다.
士ㅣ 새롭도다

【한자음】 봉지일징벽 제제다사신【조정이 맑고 평화로워 어진 선비가 등용되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봉황(鳳凰)의 연못이 나날이 맑아 파라니, 제제(濟濟)한 많은 선비가 새롭도다!
*시 구절 해석 : “봉황 연못이 나날이 맑고 푸르니, 제제한 많은 선비가 새롭다.”라는 뜻으로, 궁궐 안의 기상이 맑고 푸르니, 뛰어난 선비들이 많이 모여들어 궁궐이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말이다.

余病不能起 健者勿逡廵 주202)
준순(逡巡)
①준순(蹲循). 뒷걸음질 침. 공손히 순종하는 모양. ②사양함. 피함. ③여유 있는 모양. ④조심하고 삼가는 모양. ⑤배회함. 머뭇거림. 여기서는 ⑤의 뜻으로 쓰였다.
【健者 指𤩁다】

나 주203)
나
나는. 즉 ‘두보’를 가리킨다.
病야 주204)
병(病)야
병들어. 病#-+야.
能히 니디 주205)
니디
일어나지. 닐-[起]+디. ¶닐- : 이런로 行이 解 브터 일오〈법화 6:119ㄱ〉. 슬픈 미 닐에 디 마롤 디어다(慟哭起悲風)「收京」〈두시 5:9ㄱ〉.
몯노니 주206)
몯노니
못하니. 몯#-++오+니. ‘오’는 선행하는 주어 ‘나’과 호응한다.
健壯 너는 주207)
건장(健壯) 너는
건장한 너는. 즉 ‘설거(薛璩)’를 가리킨다.
머므디 주208)
머므디
머물지. 머뭇거리지. 머믈-[留]+디.
말라

【한자음】 여병불능기 건자물준순【‘건자(健者)’는 설거(薛璩)를 가리킨다.】
【언해역】 나는 병들어 능히 일어나지 못하지만, 건장한 너는 머물지 말라.
*시 구절 해석 : “나는 병들어 일어날 수 없는데, 건강한 사람은 머무르지 말라.”라는 뜻으로, 자신은 몸이 불편해 일어나지 못하지만, 건강한 설거가 이곳으로 오는 일을 주저하지 말라는 말이다.

上有明哲 주209)
명철(明哲)
①명지(明智). 사리(事理)를 통찰함. ②밝고 총명하며 지혜로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君 下有行化臣【言𤩁ㅣ 歸朝則當見用也ㅣ니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우흰 주210)
우흰
위에는. 우ㅎ+의+ㄴ. ‘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明哲신 님금이 주211)
님금이
임금이. ‘님금’의 이전 형태로 신라시대에는 ‘이사금(尼師今)’이 쓰였다.
겨시고 주212)
겨시고
계시고. 겨-+시+고.
아랜 주213)
아랜
아래는. 아래+ㄴ. ‘아래’와 ‘ㄴ’의 사이에 처격조사가 생략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敎化 行 臣下ㅣ 잇니라 주214)
잇니라
있느니라. 잇-[有]++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상유명철군 하유행화신【설거가 조정으로 돌아가면 당연히 등용되리라는 말이다.】
【언해역】 위에는 명철(明哲)하신 임금이 계시고, 아래는 교화(敎化) 행(行)하는 신하가 있느니라.
*시 구절 해석 : “위로는 명철하신 임금이 계시고, 아래로는 교화를 행하는 신하가 있다.”라는 뜻으로, 훌륭한 임금과 뛰어난 신하가 있어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들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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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낭중(郞中) : 벼슬 이름. 전국(戰國)시대 근시(近侍)의 통칭. 진(秦)나라 때에는 낭중령(郞中令)에 속했다. 한(漢)나라 때에는 상서랑(尙書郞)을 이르고 수당(隋唐)시대 이후 육부(六部) 각사(各司)의 장(長)을 이르다가 청말(淸末)에 폐지되었다.
주002)
기설삼랑중거(寄薛三郞中璩) : 이 작품은 두보 56세 때인 대력(大曆) 2년(767) 봄, 두보가 기주(夔州)에 있을 때 지어졌다. 당시 두보의 오랜 친구 설거(薛璩)는 형주(荊州)에서 지내다가 막 북쪽으로 경사(京師)에 갈 참이었는데, 두보가 이 소식을 듣고 이 시를 지었다. 시에는 서로가 영락(零落)해 떠도는 상황과 늙고 지친 처지를 서술하면서 설거의 재능이 남다르다는 사실을 진실한 마음으로 노래했고, 시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형주를 생각하면서 기주를 떠나고 싶은 심정과 설거와 함께함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설거(薛據) : ?~?. 당나라 하중(河中) 보정(寶鼎, 지금의 산서(山西) 만영현(萬榮縣) 서남쪽) 사람. 일찍이 형남(荊南, 지금의 호북(湖北) 강릉) 지방을 떠돌기도 했다. 개원 19년(731) 진사가 되고, 영락현(永樂縣) 주부(主簿)를 지냈다. 천보 6년(747) 이후 섭현령(涉縣令)과 사의랑(司議郞) 등의 벼슬을 지냈다. 상서수부낭중(尙書水部郞中)을 끝으로 은퇴하여 종남산(終南山)에 은거했다. 『전당시(全唐詩)』에 시 12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대부분 5언시다. 대체로 경치를 빌어 감정을 서술한 작품과 인생을 한탄한 내용의 작품들이 많다.
주003)
애진(埃塵) : 진토(塵土). 진세(塵世). 흙먼지가 일어나는 땅이라는 말이다.
주004)
어디니 : 어진 이. 현명한 이. 어딜-+ㄴ#이. 원문의 ‘현(賢)’의 번역이다.
주005)
어리니 : 어리석은 이. 어리-[愚]+ㄴ#이.
주006)
표요(飄颻)히 : 어지러이. 표요-+이(부사화파생접미사). ‘표요(飄颻)’는 ①바람이 부는 모양. ②표탕(飄蕩)함. 날아오르며 흩날림. ③휩쓸리며 일어나거나 기복(起伏)이 심한 모양.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주007)
뇨미 : 다님이. 니-[行]+오+ㅁ+이. 〈중간본〉에는 ‘뇨미’로 되어 있다.
주008)
드틀 : 티끌. 『두시언해』는 ‘드틀’만 쓰였지만 15세기에는 ‘듣글’과 ‘드틀’(석13:38)도 공존하였다. 16세기에도 두 어형이 공존하다가 17세기에 ‘틔글, 틧글’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주009)
도다 : 같도다. -+도+다. ‘’의 받침 ‘ㄷ’과 ‘도’의 어두 ‘ㄷ’ 사이에서 ‘’가 생략된 표기이다.
주010)
스싀로 : 스스로. 고려시대 석독구결로는 ‘自’로 표기되는데 ‘스싀+로’로 분석될 가능성이 있다.
주011)
신선(神仙)의 이 : 신선이 되는 일. 신선이 되어 하는 일.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12)
신선(神仙)의 이 : 신선의 일을. 즉, 신선의 경지를.
주013)
얻디 : 얻지. 얻-[得]+디. 〈중간본〉에는 ‘엇디’로 되어 있다.
주014)
그 몸 : 자기의 몸.
주015)
바라오 : 위험함을. 바랍-[危]+오+ㅁ+. 참조; 바랍-. ¶바랍- : 天下ㅣ 便安며 바라오 百姓의  셜워며 즐겨호매 잇니다〈내훈 2:111ㄱ〉. 西蜀ㅅ 地形이 天下애 險阻니 바라오믈 便安히 홀뎬 모로매 게 特出 材質을 倚仗야 리라(西蜀地形天下險 安危須仗出群材)「諸將五首」〈두시 5:47ㄴ〉. 바랍- : 亂 定며 바라오 더위자바〈금삼 5:49ㄴ〉. 時節이 바라온 제 鈇銊을 受티 몯니(時危未受鉞)「寄贈王十將軍承俊」〈두시 5:36ㄴ〉.
주016)
뉘~면(免)리오 : 누가~면하겠는가? 즉 ‘면할 수 없다’는 뜻의 수사의문문. ‘뉘’는 ‘누+ㅣ’로 분석되는데, 이때 ‘누’는 의문대명사이며, ‘ㅣ’는 주격조사이다. ‘免리오’는 ‘免++리+오’로 분석되는데, 큰 틀에서는 수사의문문으로 쓰였지만, ‘-오’는 설명의문어미로서 문두의 의문사 ‘뉘’와 호응한다. ¶-리오 : 甫ㅣ 言死於賊中이면 人誰知之리오「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주거 가더든 누를 브터 알외리오(死去憑誰報)「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엇뎨 갓 簫韶를 드를 미리오(豈獨聽簫韶)「有感五首」〈두시 5:15ㄱ-ㄴ〉.
주017)
역역(役役) : ①심력(心力)을 기울이는 모양. ②경박하고 간사한 모양. 몸과 마음을 애태우며 허둥거리기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18)
그듸와 다 : 그대와 함께. 그대와 더불어. 그듸+와 다. 원문의 ‘與子’에 대한 번역으로 ‘그듸’는 상대방을 약간 대우하는 2인칭 대명사이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다’은 ‘함께’의 뜻으로 ‘-와’를 지배하여 항상 ‘-와 다’의 형식으로 쓰였다. 15세기 국어에서 ‘다’은 『내훈』과 『두시언해』에서만 쓰였으며, 특히 ‘-와/과 다’은 『내훈』의 몇몇 용례를 제외한 거의 모든 용례가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석독구결에서도 ‘與(ㅅ)’의 형태로 쓰였는데 주로 ‘-(을) 與(ㅅ)’의 형태로 쓰였으며 ‘-(과) 與(ㅅ)’의 용례가 있기는 하나 이 용례는 자토석독구결에서 ‘唯佛與佛(유불유불)’이라는 특별한 구문에서만 1회 사용되었다. ¶-(을) 與(ㅅ) : {於}一切 世界 中 衆生 與 同住 曾 過咎 無(一切 世界의 中에 있어 衆生과 더불어 함께 머무나 조금도 허물 없으며) / 唯 佛 與 佛 乃 {斯} 事 知(오직 부처님과 더불어 부처님이시라야 이 일을 아실 수 있다). ‘-와/과 다’ : 사과 다 디 마롤디니라〈내훈 1:55ㄱ〉. 兵戈와 다 사 이레(兵戈與人事 무기와 더불어 사람의 일에)「遣愁」〈두시 3:36ㄴ〉. 다 :  제 술 차반 準備야 서르 다 혀 醉야 블오 날 우 며〈내훈 1:62ㄱ〉. 널로 여 글 지고 다  놀려뇨(令渠述作與同遊 너로 하여금 글 짓게 하고 더불어 함께 놀겠는가?)「江上···短述」〈두시 3:31ㄴ〉.
주019)
다 머리 셰니 : 다 머리 세니. 원문의 ‘俱白頭’에 대한 번역이다. 원문은 ‘둘 다 모두 흰 머리이다’라는 계사문으로 되어 있으나 언해에서는 오히려 ‘머리가 세다’라는 동사문으로 되어 있다.
주020)
역역(役役)히 : 힘껏. 힘 들여. ‘역역(役役)’에 대해서는 앞의 주 참조.
주021)
녀셔 : 다녀서. -+니-+셔. ‘니-’는 ‘니-’의 선행 음절 ‘’의 ‘ㄷ’이 후행하는 ‘니’의 ‘ㄴ’의 영향으로 비음화된 것이다. ¶니- : 五百 靑衣 야 졋어미 조차 니며〈석상 3:4ㄴ〉. 後에 난 사미 아디 몯야 오히려 키 니놋다(後生未識猶駿奔 후에 태어난 사람이 알지 못하여 오히려 크게 다니는구나!)「石笋行」〈두시 3:70ㄴ〉. 니- : 後身 後ㅅ 모미니 前生애 니다가 後生애 다시 난 모미 後身이라〈월석 1:45ㄴ〉. 녜 崆峒애 님금믈 뫼와 니던 나리여(扈聖崆峒日)「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주022)
장상(長常) : 항상. ¶부텨는 三界 밧긔 버서나샤 長常 便安거시〈석상 3:20ㄴ〉. 蹉跎히 長常  우고(蹉跎長汎鷁)「水宿···群公」〈두시 3:20ㄴ〉.
주023)
고신(苦辛)요라 : 고통스럽구나. 신고(辛苦)-+오+라. ‘-라’는 화자 호응의 선어말어미 ‘-오-’ 뒤에 오는 평서형 어말어미 ‘-다’의 이형태이다. 15세기에는 ‘辛苦-’ 이외에 ‘辛苦-, 辛苦롭-, 辛苦로이, 辛苦히’가 쓰였는데 ‘辛苦-’를 제외한 모든 용례가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辛苦- : 아모 城中에 날 리고 逃亡야 가 뷔듣녀 辛苦호미 쉬나 러니〈월석 13:29ㄴ〉. 形容 精神이 괴외야셔 辛苦호 히 너기놋다(形神寂寞甘辛苦)「寄栢學士林居」〈두시 7:29ㄱ〉. 辛苦- : 큰 軍士ㅣ 辛苦외니(大軍載草草)「壯遊」〈두시 2:43ㄴ〉. 辛苦왼 세 城에셔 屯戌호미여 기리 萬里ㅅ 셔 防禦놋다(辛苦三城戍 長防萬里秋)「西山三首」〈두시 5:10ㄴ〉. 辛苦왼 세 城에셔 屯戌호미여(辛苦三城戍)「西山三首」〈두시 5:10ㄴ〉. 受苦로이 : 受苦로이 蜀門으로 가노라(辛苦赴蜀門)「木皮嶺」〈두시 1:27ㄱ〉. 그듸 엇뎨 辛苦로이 江湖 건나 가리오(君肯辛苦越江湖)「惜別···判官」〈두시 17:32ㄴ〉. 辛苦히 : 辛苦히 盜賊의 서리로셔 오라(辛苦賊中來)「喜達···三首」〈두시 5:5ㄴ〉.
주024)
상서랑(尙書郞) : 관직 이름. 위진남북조시대에 설치되었다. 서경에 속한 관원은 처음에 낭중(郞中)이 되었다가 1년이 지나면 상서랑(尙書郞)이 되었다. 이후 2년이 지나면 시랑(侍郞)이 되었다.
주025)
공부(工部) : 옛날의 관서(官署) 이름. 한(漢)나라 때는 민조(民曹)가 있었고, 위진(魏晉) 때는 좌민(左民)과 기부(起部)가 있었는데, 수당(隋唐) 때 북주(北周)의 공부(工部) 명칭에 따라 설치해 육부(六部)의 하나가 되었다. 각종 공정(工程), 공장(工匠), 둔전(屯田), 수리(水利), 교통(交通) 등에 관한 정령(政令)을 관할했다. 장관(長官)은 공부상서(工部尙書)이다. 이후 대대로 이어지다가 청(淸)나라 말에 농공상부(農工商部)로 바뀌었다.
주026)
원외랑(員外郞) : 관직(官職) 이름. 원외(員外)는 본래 정원(正員) 이외의 낭관(郞官)을 말한다. 진무제(晉武帝) 때 처음 원외산기상시(員外散騎常侍)와 원외산기시랑(員外散騎侍郞)을 두었는데, 간략하게 줄여 원외랑(員外郞)이라 불렀다. 수(隋)나라 개황(開皇時) 때 상서성(尙書省) 24사(司)에 각각 원외랑 1인을 두고, 각사(各司)의 차관(次官) 역할을 하게 했다. 당나라 이후 명청(明淸) 때까지 각부(各部)에는 모두 원외랑을 두어 낭중(郞中)의 다음 지위를 맡도록 했다.
주027)
외야시나 : 되어 있으나. 외-+∅#시-+나. 15세기 국어의 ‘시-’는 ‘이시-’와 함께 ‘있다[有,在]의 뜻이다. ¶-어시-/-아시-/-야시- : 太子ㅣ 므슷 罪 겨시관 이리 외어시뇨 고 절야 보내며〈석상 24:51ㄴ〉. 龍이 누어시며  이던 이리 매 누른 기 외얫도소니 사 일와 音信ㅅ 글월왜 쇽졀업시 괴외도다(臥龍躍馬終黃土 人事音書漫寂寥)「閣夜」〈두시 14:19ㄴ〉.
주028)
촌야(村野)앳 : 촌야의. 시골의. 촌야+애+ㅅ.
주029)
사 : 사는. 살-[居]+.
주030)
사 : 사람을. 사+.
주031)
밋디 : 미치지. 및-[及]+디. ¶ 및- : 無量 不思議 劫 디나다 니샤 이 智體 그오미 비르솜 업서 情塵數量애 밋디 몯  기시니라〈월석 14:7ㄴ〉.  내 所行이  밋디 몯 고 아노니 甚히 귀머구믈 슬허노라(亦知行不逮 苦恨耳多聾)「獨坐二首」〈두시 3:42ㄴ〉.
주032)
몯리로다 : 못할 것이도다. 몯-+리+도+다. ¶이런 微妙 智慧로 無上道理 求논 도 보리로다〈석상 13:23ㄴ〉. 太庭 時節티 매 淳朴호매 도라가리니 京觀애 〈두시 3:7ㄱ〉  주거믈 업티리로다(太庭終返朴 京觀且僵尸)「夔府書懷四十韻」〈두시 3:6ㄴ-7ㄱ〉.
주033)
녜 : 옛날에.
주034)
사던 : 살던. 살-[居]+더+ㄴ.
주035)
호니 : 생각하니. +-+오+니. ‘오’는 화자호응의 선어말어미이다. 15세기의 ‘사-’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는데 전자의 의미로 훨씬 광범위하게 쓰였다. 〈중간본〉에는 ‘랑호니’로 되어 있다.
주036)
그 즐거우믈 : 그 즐거움을. 그 즐겁-+우+ㅁ+을.
주037)
닐오미 : 이름이. 이르기가. 니-[說]+오+ㅁ+이.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 불규칙활용 중 소위 ‘ㄹ·ㅇ’형이다.
주038)
어렵도다 : 어렵도다. 어렵-[難]+도+다. 15세기 국어의 ‘어렵다’는 명사형 어미 ‘ㅁ’+주격조사 ‘이’나 ‘-디’를 지배하였다. ¶-미 어렵- :  듣미 어렵거늘〈월석 10:33ㄱ〉. 廟堂앳 혜아료 노파 測量호미 어렵거니와 하 시르믄 眞實로 이긔 겨시니라(廟算高難測 天憂實在茲)「夔府書懷四十韻」〈두시 3:4ㄴ〉. -디 어렵- : 히 멀면 乞食디 어렵고〈석상 6:23ㄴ〉. 하 든 노파 묻디 어렵거니와 사 든 늘그니 쉬이 슬프도다(天意高難問 人情老易悲)「暮春江陵에셔~追赴闕下노라」〈두시 23:9ㄴ〉.
주039)
애애(藹藹) : ①무성(茂盛)한 모양. ②풍성하고 많은 모양. ③향기가 짙은 모양. ④온화(溫和)한 모양. 화기(和氣)가 넘치는 모양.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40)
상마(桑麻) : 뽕나무와 삼[麻].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먹여서 비단을 짜고, 마를 심어 삼베를 얻었다. 이것은 옛날 농경시대에 의복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경제활동이었다.
주041)
공후(公侯) : 봉작(封爵)의 하나. 공(公), 후(侯), 백(伯), 자(子), 남(男) 등의 다섯 등급의 작위 가운데 그 첫째 등급인 공작(公爵)과 둘째 등급인 후작(侯爵)을 일컫는 말. 봉작(封爵).
주042)
과 : 뽕과. 뽕나무와.
주043)
삼괘 : 삼과가. 삼베가. 삼+과+ㅣ.
주044)
섯거 : 섞이어. -[錯]+어. ¶그 말미 工巧코 微妙야 오로 섯근 거시 업서 淸白고 梵行앳 相이 더시니〈석상 13:28ㄴ〉. 나 도랏 羹애 라기도 섯디 아니야도 便安히 너기노니 너희 구스리 보 외요미 貴 도다(吾安藜不糝 汝貴玉爲琛)「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5ㄴ〉.
주045)
잇거든 : 있는데. 잇-[有]+거든. 15세기 국어의 ‘-거든’은 ‘-거든’은 ‘배경’과 ‘가정’의 용법이 있는데 15세기에서는 ‘배경’의 용법이 훨씬 우세하다. 여기서도 ‘배경’의 용법으로 쓰였다. ¶粉과 燕脂와 瓔珞과 옷과 花鬘과 곳과 쇠로 몟거든 사오나 사미 몰라 소가 貪  내니〈석상 3:26ㄱ〉. 내 비록 諫諍 資質ㅣ 업스나 내 나니거든 님그미 그르실 이리 겨실가 젓노라(雖乏諫諍姿 恐君有遺失)「北征」〈중간두시 1:1ㄴ-2ㄱ〉.
주046)
공후(公侯)와 야 : 공후와 함께. 공후+와 -+야. 15세기 국어의 ‘-와 야’는 ‘A와 함께 B’로 쓰이는 경우와 ‘A와 함께 V’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와 야 : 太子와 야 그위예 決라 가려 더니〈석상 6:24ㄴ〉. 嚴武와 야 意氣 死生애 親시라[聯翮匍匐禮 意氣死生親]「奉贈蕭二十使君」〈두시 20:39ㄴ〉. 怨讐와 야 토맷  두어〈월석 2:63ㄴ〉. 쉬 나래 時節 조차 술 먹노소니 오 옌 내 킈와 야 다 길리로다(假日從時飲 明年共我長)「又示宗武」〈두시 8:50ㄱ〉.
주047)
더니라 : 나란히 하였다. 대적하였다. -[竝]+더+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功이 마 부텻긔 건마 오직 뎌 法藏 護持호 願〈월석 15:34ㄱ〉. 잇 죄 騷雅 니니 智慧왼 匠도 엇게 디 몯리로다(有才繼騷雅 哲匠不比肩)「陳拾遺故宅」〈두시 3:64ㄴ〉.
주048)
융마(戎馬) : ①옛날에 병거(兵車)를 매던 말. ②군마(軍馬). 전마(戰馬). ③군대(軍隊)를 대신 일컫던 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49)
하히 : 하늘이. 하ㅎ+ㅣ. ‘하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50)
사호맷 : 싸움의. 사호-[鬪]+오+ㅁ+애+ㅅ. 15세기 문헌의 일반적인 표기는 ‘싸호-’이나 『두시언해』는 경음 표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사호-’로 표기되었다. 15세기 문헌 중에서 ‘사호-’가 쓰인 문헌은 『내훈』을 제외하면 모두 『두시언해』에서만 보인다. ¶싸호- : 婆稚 얽다 혼 마리니 싸호 즐겨 제 軍 알 가다가 帝釋손 니라〈석상 13:9ㄴ〉. 사호- : 두 구든 거시  사호면 모로매 나히 것니〈내훈 3:37ㄱ〉. 盜賊의 城池 白翟에 니고 사호맷 디새 丹墀예 디놋다(賊壕連白翟 戰瓦落丹墀)「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ㄱ〉.
주051)
 : 말을. +.
주052)
아쳗디 : 싫어하지. 아쳗-[厭]+디. 15세기 국어의 ‘아쳗-’은 ‘싫어하다’의 뜻으로 ‘-어-’에 의한 파생동사 ‘아쳐러-’와 ‘-브-’에 의한 파생형용사 ‘아쳗브-’도 있다. 『두시언해』에는 ‘아쳐러-’ 외에 ‘아쳐라-’의 용례도 있다. ¶아쳗- : 몬져 三界 觀호리니 아쳐러 여희욤 내논 젼라〈영가 상:15ㄴ〉. 覇業엣 샹녯 體니 宗臣의 아쳐러 기미 災害니라(霸業尋常體 宗臣忌諱災)「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0ㄱ-ㄴ〉. 아쳐러- : 처 發心호매 몬져 欲濁 아쳐러며〈능엄 6:89ㄱ〉. 늘구메 人世 슬코 두루 이녀셔 甲兵을 아쳐러노라(衰老悲人世 驅馳厭甲兵)「奉送二···郴州」〈두시 8:63ㄱ〉. 아쳐라- : 州府에 드러가 티 아니호 사미 내 眞淳호 아쳐라가 저헤니라(不愛入州府 畏人嫌我眞)「暇日小園에~兼書觸目노라」〈두시 16:69ㄴ〉. 아쳗브- : 生老病死ㅣ 實로 아쳗버 시름 受苦로 흘러올 모미 긋디 아니니〈월석 25:134ㄴ〉.
주053)
무른 : 무리는. 물[群]+은. ‘물’은 ‘무리’의 뜻으로 15세기에서는 ‘물, 믈, 무리, 므리’의 형태로 쓰였다. ‘믈, 므리, 물, 무리’에 대해서는「贈鄭十八賁」의 ‘靈 芝草ㅣ 뭀 곳다온 거긔 위두 니(靈芝冠衆芳)’〈두시 19:41ㄱ〉 구절의 ‘뭀’ 항목 참조.
주054)
장상(長常) : 항상. ¶太子ㅣ 나가가 疑心샤 長常 겨틔 디디 아니터시다〈석상 3:22ㄱ〉. 님 디 長常 眷顧샤미 겨시건마(聖情常有眷)「贈特···二十韻」〈두시 8:8ㄱ〉.
주055)
가난요라 : 가난하다. 가난-+오+라. ‘오’는 화자호응의 선어말어미로 이 문장의 주어는‘우리’이다. ‘가난’은 한자어로 원래의 한자는 ‘艱難’임은 주지의 사실인데 ‘간난(艱難)>가난[貧]’의 변화를 보인다. 『석보상절』 『월인석보』나 『능엄경언해』 『선종영가집』 등의 간경도감 불경언해 등에서는 ‘艱難’으로 표기되지만, 『내훈』 『두시언해』 『남명집언해』 등에서는 ‘가난’과 ‘艱難’이 모두 표기되었다. ¶艱難 : 艱難며 어엿븐 사 쥐주어 거리칠〈석상 6:13ㄱ〉. 世人이 다 鹵莽니 내 道ㅣ 艱難호매 브텟도다(世人共鹵莽 吾道屬艱難)「空囊」〈두시 3:24ㄴ〉. 가난 : 가난닌 가난호 便安히 너기고 가며닌 가며로 警戒홀디니〈내훈 1:27ㄱ〉. 가난 士 嗟嘆요 아니고 모 사 우 受호 므던히 너기노라(休爲貧士嘆 任受衆人咍)「秋日···三十韻」〈두시 3:9ㄴ〉.
주056)
형주(荊州) : 옛날 구주(九州)의 하나. 형산(荊山)과 형산(衡山) 사이에 있었다. 한(漢)나라 때 13자사부(刺史部)의 하나가 되었다. 관할했던 지역은 대략 지금의 상악(湘鄂) 2성(省)과 예주(豫州), 계주(桂州), 검주(黔州), 월주(粵州) 등 네 주(州)의 일부분이었다. 한나라 말 이후 관할 지역이 점차 줄어들었다. 예계검월(豫桂黔粵)은 예주(豫州), 계주(桂州), 검주(黔州), 월주(粵州)이다.
주057)
그듸 : 그대.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주058)
형주(荊州)ㅣ : 형주에. ‘州’에 붙은 ‘ㅣ’는 일반적으로 주격 또는 서술격 조사로 쓰이지만 ‘속격’이나 ‘처격’ 심지어는 의미 없이 붙는 경우가 있다. 이런 현상을 ‘州’ 다음의 ‘ㅣ’가 속격이나 처격의 기능도 있다고 보기보다는 한자 ‘州’에 아무런 기능 없이 붙는 표기법적인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주격 : 눈 비예 松州ㅣ 다티옛도다(雨雪閉松州)「西山三首」〈두시 5:10ㄴ〉. 夔州ㅣ 幽僻 셔 그르메와 弔問고(弔影夔州僻)「秋日···一百韻」〈두시 20:4ㄱ〉. 서술격 : 夔子國은 卽夔州ㅣ라[君不見夔子之國杜陵翁]「復陰」〈두시 12:24ㄱ〉. 기타 :   梓州ㅣ 사로라(一年居梓州)「去蜀」〈중간두시 2:1ㄱ〉. 네 荊州ㅣ 오로브터(自汝到荊府)「續得觀의~定出三峽호리라」〈두시 8:43ㄴ〉. 荊州ㅣ로셔 나가리로다(騎馬發荊州)「更題」〈두시 12:28ㄴ〉.
주059)
외얏니 : 되어 있으니. 외-[爲]+아#잇-++니.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060)
 : 강의. [江]+ㅅ.
주061)
 : 가에. +. 〈중간본〉에는 ‘’로 되어 있다.
주062)
머므럿노라 : 머물고 있노라. 머믈-[滯]+어#잇-++오+라. 주어가 ‘나(두보 자신)’이기 때문에 화자호응의 선어말어미 ‘오’가 사용되었다.
주063)
협중(峽中) : 두메. 골짜기. 산과 산 사이의 골.
주064)
학려(瘧癘) : 해로운 유행병의 하나인 학질(虐疾)을 일컫는 말. 학질(瘧疾). 학역(瘧疫).
주065)
협중(峽中)에 : 협중에. 협중+에. ‘협중(峽中)’은 ‘기주(夔州)’를 말한다.
주066)
번 : 한번. ¶ 번 許諾호 엇뎨 驕慢이며 쟈이리오(一諾豈驕矜)「贈特進汝陽王二十韻」〈두시 8:9ㄱ〉.
주067)
병(病)야 : 병들어. 병(病)-+야. 현대국어의 ‘병들다’는 15세기에서 ‘病다’로 쓰였다.
주068)
고 病으로 : 학질병으로. 고봄+ㅅ 病+으로. 〈중간본〉에는 ‘고’로 되어 있다.
주069)
겨와 : 겨울과. 겨ㅎ+와. ‘겨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중간본〉에는 ‘겨와’로 되어 있다.
주070)
보 : 봄을. 봄[春]+.
주071)
초라 : 마쳤다. -[終]+오+라. ‘오’는 화자호응의 선어말어미로 주어가 ‘두보’임을 알 수 있다. 시제 표지는 따로 없으나 부정시제로 볼 수 있으므로 과거시제로 보아야 한다.
주072)
소원명(蘇源明) : ?~764. 당나라 경조(京兆) 무공(武功) 사람. 처음 이름은 예(預)이고, 자는 약부(弱夫)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연간에 진사(進士)가 되고, 동평태수(東平太守)와 국자사업(國子司業) 등을 역임했다. 안녹산(安祿山)이 장안(長安)을 함락시키고 등용하려 하자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숙종(肅宗)이 양경(兩京)을 수복한 뒤 고공낭중지제고(考功郞中知制誥)에 발탁되어 벼슬이 비서소감(秘書少監)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 글을 올려 시정득실(時政得失)에 대해 논했다. 두보(杜甫), 정건(鄭虔), 원결(元結) 등과 교유관계를 맺었으며 시문을 잘 지었다. 원래 문집 30권이 있었지만 전해오지 않는다. 『전당시(全唐詩)』에 시 2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모두 응수시(應酬詩)이다. 『전당문(全唐文)』에는 문장 5편이 실려 있다.
주073)
정건(鄭虔) : 705~764. 당나라 정주(鄭州) 형양(滎陽) 사람. 자는 약재(弱齋)다. 현종(玄宗) 천보 초에 협율랑(協律郞)을 거쳐 광문관박사(廣文館博士)를 지냈다. 이백, 두보 등과 사귀었다. 관리 생활을 하면서도 검약해서 종이가 늘 부족했는데, 자은사(慈恩寺)에 감나무 잎이 많이 저장되어 있어 날마다 이것으로 종이를 만들었다. 지리학에도 정통해 『천보군방록(天寶軍防錄)』을 지었는데, 언어가 전아하고 전고(典故)가 꼼꼼했다. 유자(儒者)들이 그의 저서를 보고는 감복하여 ‘정광문(鄭廣文)’이라 불렀다. 안녹산이 장안을 함락했을 때 잡혀 수부낭중(水部郞中) 벼슬을 받았는데, 난이 평정된 뒤 대주사호참군(臺州司戶參軍)으로 폄적되고, 얼마 뒤 죽었다. 관리 생활을 하면서 거듭 폄적(貶謫)을 당하는 등 풍파가 많았다. 시를 잘 지었고, 산수화를 잘 그렸으며, 글씨 쓰기를 좋아했다. 직접 지은 시에 그림을 곁들인 「창주도(滄州圖)」를 바치자 현종이 감탄해서 직접 ‘정건삼절(鄭虔三絶)’이라고 써 주었다. 수묵화법의 발전에 공헌했고, 작품에 「준령계교도(峻嶺溪橋圖)」와 「장인도(杖引圖)」가 있다.
주074)
보 : 봄에. 보-[見]+오+ㅁ+.
주075)
폐기(肺氣)ㅅ 병(病)이 : 폐병이. 肺氣+ㅅ#病+이.
주076)
더으니 : 더하니. 더으-[加]+니. ‘더으-’가 ‘더-’로 바뀌어 쓰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 동사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유추 작용이다. ‘다다’[盡]가 ‘다다’로 바뀐 것도 같은 경우이다. ¶다가 이 微妙 覺과 本來 微妙 覺明이 如來ㅅ 과로 더으디 아니며 더디 아니커늘〈능엄 4:33ㄱ〉. 願 兵事ㅣ 블 요믈 警戒샤 恩惠 四海예 더으샤 기피 쇼셔(願戒兵猶火 恩加四海深)「提封」〈두시 5:19ㄴ〉.
주077)
젼 : 까닭이. 원인이. 젼+ㅣ. ‘젼’는 18세기까지 폭넓게 쓰이다가 점차 사용이 축소된다. 참조; 앛(금삼 3:38ㄱ), 닥(한중록 566). ¶젼 :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 배 이셔도〈훈언 2ㄱ〉. 그듸의 苦왼 디 글 짓논 젼로 여위욘 고 아노니(知君苦思緣詩瘦)「暮登···十迪」〈두시 9:39ㄱ〉. 앛 :  어루 시러 다디 몯리니 이 기푼 아치니라〈금삼 서:4ㄴ〉. 닥 : 大統領이 國會에 與 敎書에 宣言 닥으로〈조선독립협회회보〉.
주078)
잇니라 : 잇느니라. 잇-[有]++니+라.
주079)
져믄 : 젊은. 졈-[少]+은.
주080)
제 : 때에. 제[際]+∅.
주081)
소정(蘇鄭)로 다야 : 소원명(蘇源明)과 정건(鄭虔)과 함께 하여. ‘다’은 ‘함께’의 뜻으로 ‘다-’는 ‘부사어+-’로 구성된 동사로 볼 수 있는데, ‘-로’를 지배하고 있다. 현대어의 ‘-과 함께 하-’와 대비된다.
주082)
 : 매우. 많이. ‘가장’의 선대형이나 현대국어의 ‘가장’이 최상급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서 15세기 국어의 ‘’은 최상급으로 쓰이지 않았다. 〈중간본〉에는 ‘장’으로 되어 있다.
주083)
머거셔 : 먹어서. 먹-[食]+어+셔.
주084)
들 : 뜻을. +을.
주085)
서르 : 서로.
주086)
친(親)요라 : 친하였다. 親-+오+라.
주087)
두 사 : 두 사람은. 즉, 소원명과 정건을 말한다.
주088)
기 : 흙이. [壤]+이. ‘’은 16세기까지는 아주 우세하게, 17세기에는 비슷하게, 18세기에는 세력이 아주 축소된다. 한편 ‘흙’은 16세기에 보이다가 17세기부터 점차 세력을 확장해 간다. ¶ :  싸하 佛廟 일우거나〈법화 1:217ㄴ〉. 나 이니 내 모매 콰 가족과 왜니라〈칠대 2ㄱ〉. 고온 사미 누른 기 외니(美人爲黃土)「玉華宮」〈두시 6:1ㄴ〉. 흙 : 흘그로 근 사〈소언 6:122ㄱ〉.
주089)
즐규믈 : 즐김을. 즐기-[樂]+우+ㅁ+을.
주090)
진성(眞性) : ①천성(天性). 본성(本性). ②불교용어(佛敎用語).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망령(妄靈)되지 않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체를 말한다. ③영혼(靈魂)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91)
일티 : 잃지. 잃-[失]+디.
주092)
아니니라 : 아니하니라. 않았다. 않았네. 아니-+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주093)
수단(脩短) : ①길고 짧음. 물건의 길이를 가리킨다. ②길고 짧음. 사람 목숨을 가리킨다. ③장점과 단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94)
뎔우믈 : 짧음을. 뎌르-[短]+우+ㅁ+을.
주095)
므던히 : 가볍게. 소홀하게. 무던히. 므던-+이. 15세기 국어의 ‘므던히’는 ‘소홀하게’의 뜻이다. ¶므던히 : 네 뎌 나라 므던히 너겨 사오나 너 들 내디 말라〈석상 20:36ㄴ〉. 가난 士 嗟嘆요 아니고 모 사 우 受호 므던히 너기노라(休爲貧士嘆 任受衆人咍)「秋日···三十韻」〈두시 3:9ㄴ〉. 百年 內예 萬事 므던히 너기간마 녜 사던  매 耿耿야 니조미 어렵도다(百年從萬事 故國耿難忘)「遣悶」〈두시 3:13ㄱ〉. 되 겨지븐 烽燧 므던히 너기고 되 아 駱駝 질드리놋다(羌女輕烽燧 胡兒制駱駝)「寓目」〈두시 3:23ㄴ〉.
주096)
너겨 리노니 : 여겨. 너기-[謂]+어#리-++오+니. ‘오’는 화자호응의 선어말어미로 주어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어 리-’는 현대국어의 ‘-어 버리-’와 동일한 의미이다. 『두시언해』에서 ‘너기-’는 ‘-고져’나 ‘-오’이 이끄는 내포문이나 부사를 지배한다. 〈중간본〉엔는 ‘너기거나’로 되어 있다. ¶太子ㅣ 너기샤 여윈 모로 菩提樹에 가면〈석상 3:39ㄴ〉. 兄 富貴 가져  구룸과 가지로 너기거(兄將富貴等浮雲)「狂歌行贈四兄」〈두시 8:27ㄱ〉.
주097)
엇뎨 : 어찌. ‘豈’의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이와 관련된 낱말로 ‘엇디’로 『두시언해』에서 보인다.
주098)
시러곰 : 능히. ‘득(得)’의 번역이다.
주099)
명(命)의 : 운명의.
주100)
둔건(屯蹇) : 어려움과 고난이 심해 불리하고 순조롭지 못한 것.
주101)
슬흐리오 : 슬퍼하겠는가? 슳-+으리+오. ‘슳-’은 ‘슬허-, 슬프-, 슬퍼-’의 파생형을 가지는 동사이다. ‘오’는 설명의문문 ‘고’의 ‘ㄱ’이 ‘ㅣ’ 모음 뒤에서 약화된 것이다. ‘오’는 선행하는 의문사 ‘엇뎨’와 호응한다.
주102)
석진(席珍) : ①진귀한 것을 베풂. 옛날 성인이 바르고 착한 도리를 펼침. ②자리 위에 놓인 보배란 뜻으로, 유자(儒者)의 학덕을 비유한다고도 한다. 석상진(席上珍).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103)
그듸 : 그대는. 그듸+. ‘그듸’는 ‘子’에 대한 번역으로, 주석에는 ‘설거(薛璩)’를 가리킨다고 되어 있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주104)
미 : 마음이. [心]+이. 〈중간본〉에는 ‘미’로 되어 있다.
주105)
건장(健壯)호 : 건장함을. 健壯+-+오+.
주106)
듣노니 : 들으니. 듣-[聞]++오+니. ‘오’는 화자 주어에 호응하는 것으로 듣는 주체가 ‘두보’임을 가리킨다.
주107)
디나가논 바애 : 지나가는 바에. 지나가는 것에. 디나-+아#가-++오+ㄴ 바+애.
주108)
진실(真實)로 : 진실로. ‘신(信)’의 번역이다.
주109)
돗긔 : 자리에. [席]+의. ¶席은 돗기라〈능엄 1:35ㄴ〉. 처 돗 로매 軍裝 보니(初筵閱軍裝)「揚旗」〈두시 5:48ㄱ〉.
주110)
안잣 : 앉아있는. 앉-+아#잇-+.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111)
진보(珍寶)ㅣ로다 : 진보이도다. 진보+이+도+다.
주112)
 : 말을. [馬]+.
주113)
토 : 타되. 타는데. -[騎]+오. 15세기 국어의 ‘다’는 ‘받다, 오르다, 탈 것을 타다, 불에 타다’ 등의 의미가 있다. ¶다(받다) : 므욤  사 보면 미 便安며〈월석 2:59ㄱ〉. 도게 뎌실 젯 시름을 도로혀 랑고 아 들에요 히 니겨 노라(翻思在賊愁 甘受雜亂聒)「北征」〈중간두시 1:7ㄱ〉. 다(오르다) : 내 分身 百億釋迦佛을 조쳐 뫼호아 各各 樓觀 고 戒壇所애 오게 라〈월석 25:49ㄴ〉. 다(탈 것에 타다) : 太子ㅣ 羊 술위 시고 東山애도 가시며 아자바긔도 가샤〈석상 3:6ㄴ〉. 져근  고 쇽졀업시 늘거 가노니 聖明신 朝 깁올 줄 업도다(扁舟空老去 無補聖明朝)「野望」〈중간두시 2:21ㄴ〉. 다(불에 타다) :  더운 性이 업서 간도 디 아니며〈능엄 9:108ㄴ〉.
주114)
사 : 사람의. 사람이. 사+. ‘-’는 후행하는 ‘扶持호’의 의미상 주어를 표지하는 관형격이다.
주115)
디 : 쓰지. -[用]+디. 15세기에 ‘-’는 ‘사용하다[用]. (맛이) 쓰다[苦]’, ‘쓰-’는 ‘(글을) 쓰다[書], (갓을) 쓰다[冠]’로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주116)
아니코 : 않고. 아니#-+고.
주117)
매상(每常) : 매양.
주118)
부지(扶持)거든 : 부지하면. 부축하면. 扶持#-+거든. 15세기 국어의 ‘-거든’은 ‘-거든’은 ‘배경’과 ‘가정’의 용법이 있는데 15세기에서는 ‘배경’의 용법이 훨씬 우세하다.
주119)
반기 : 반드시. 15세기 국어에는 ‘반기’ 이외에도 ‘반시’〈두시 24:32〉, ‘반개’〈두시 25:2〉 등이 사용되었다. 이 중 ‘반개’는 『두시언해』에서만 용례가 확인된다. ‘반기’는 ‘반드시 (~ 해야 한다)’의 뜻과 ‘(모양이) 반듯하게’의 뜻이 있다. ¶반기 : 善根이 기프면 彈指ㅅ 예 반기 가리니〈월석 8:1ㄴ〉. 조 주매 囷을 나 치리니 리예 올아 기애 반기 스다라(贈粟囷應指 登橋柱必題)「水宿···群公」〈두시 3:21ㄴ〉. (모양이) 반듯하게 : 밠바 그미 해 반기 바키시며〈월석 2:57ㄱ〉. 반시 :  세 번 머그면 돌히 반시 나리니 돌히 다 나거든 말라〈구간 3:113ㄱ〉. 流傳야 가 반시 等倫에 그츠리로다(流傳必絶倫)「寄李十二白二十韻」〈두시 16:5ㄱ-ㄴ〉. 반개 : 속 뷘 대로 반개 지여 요리라(當仗若虛竹)「課伐木幷序」〈두시 25:2ㄴ〉.
주120)
므여놋다 : 미워하는구나. 믜-[憎]+어#-++오+ㅅ+다. 『두시언해』에서 ‘믜여-’와 ‘므여-’가 같이 쓰였다. ‘믜-’가 ‘므-’로 표기되는 것은 하향이중모음이 탈락한 음을 표기하는 『두시언해』의 전형적인 표기법에 속한다. ‘므여-’는 『두시언해』 가운데에서도 권19의 용례가 유일하다. ¶믜- : 앗기며 貪며  믜며 새오로 됴티 몯 根源을 일울〈석상 13:56ㄴ〉. 일의노 아 아니 환히 누워 안 와 믜여 리다(嬌兒惡臥踏裏裂)「茅屋···破歌」〈두시 6:42ㄴ〉. 믜여- : 네 아리 목이 믜여거〈삼강동경 열:7ㄱ〉. 官吏의 怒야 믜여호 잇비 아니호리라(不勞吏怒嗔)「前出塞九首」〈두시 5:27ㄴ〉. 믭- : 믜 사 일훔 쓰며〈석상 9:17ㄱ〉.
주121)
휘쇄(揮灑) : 글씨를 쓰는 것이 맑고 시원함.
주122)
팔은(八垠) : 팔해(八垓). 팔방(八方).
주123)
빈객(賓客) : 빈객. 즉 초빙되어 온 여러 손님들을 말한다.
주124)
예셔 : 사이에서. +예+셔. 〈중간본〉에는 ‘이예셔’로 되어 있다.
주125)
지니 : 지으니. 짓-[作]+으니. ‘짓다’는 다의어로서 ‘집을 짓다, 글을 짓다, 행위를 하다, 농사 짓다, 물건을 만들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중간본〉에는 ‘지으니’로 되어 있다.
주126)
순 : 쓴. 스-[書]+우+ㄴ. ‘스-’는 ‘쓰-’로 병서 표기를 하지 않는 『두시언해』의 특징이 반영된 표기이다. 〈중간본〉에는 ‘슨’로 되어 있다.
주127)
거시 : 것이. 것+이.
주128)
팔은(八垠)에 : 팔방(八方)에. 八垠+에. 〈중간본〉에는 ‘八垠에’로 되어 있다.
주129)
뮈옛도다 : 움직이고 있도다. 뮈-[動]+어#잇-+도+다. 15세기 국어의 ‘뮈다’는 ‘움직이다’의 뜻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130)
일대(一代) : 한 세대를. 一代+.
주131)
두펏 : 덮고 있는. 둪-+어#잇-+. ‘둪-’과 ‘-어 잇-’이 결합된 것으로, 현대국어의 ‘-고 있-’ 구문에 대응되는 15세기의 ‘-어 잇-’ 구문의 보기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는데 여기서는 세 번째 유형이 쓰였다. ¶-어 잇- : 다 이 經에 現히 닐어 잇니라〈석상 19:43ㄱ〉. 기튼 치위예 곳과 플왜 디어 잇니(餘寒折花卉)「送大~遂停니라」〈두시 8:70ㄱ-ㄴ〉. -앳/엣- : 이제 내 너와 곧 다디 아니케 외앳니〈법화 2:218ㄴ〉. 戎事 惣執니 다 侍中의 貂 고잿도다(惣戎皆插侍中貂)「諸將五首」〈두시 5:44ㄱ〉. -앗/엇- : 諾디 아니야 손애 일을 잡앗거든〈소학 2:15ㄴ〉. 노 臺  부 믌  구벗도다(曾臺俯風渚)「雨三首」〈두시 12:13ㄴ〉.
주132)
소 : 손은. 손[手]+.
주133)
재력(才力) : 재주에 대한 능력.
주134)
늘거 : 늙어야. 늙-+어+. 15세기 국어의 ‘’는 현대국어의 ‘-야’에 대응하는 것으로 강세첨사의 기능을 가진다. 통합형 ‘-아’는 ‘계기성’과 ‘강조’의 뜻을 가지며, 보통 “…한 뒤에야 (비로소)” 정도로 풀이된다. ‘盡’의 뜻으로는 ‘다-’가 대부분이지만, ‘다-’형이 새롭게 등장한다. 〈중간본〉에는 ‘늘거아’로 되어 있다.
주135)
더옥 : 더욱. 『두시언해』에는 ‘더욱’과 ‘더옥’이 같이 쓰였다. ¶더옥 : 閑散 해 더옥 벼개 〈두시 11:2ㄱ〉 노피 벼요니(散地逾高枕)「大歲日」〈두시 11:1ㄴ〉. 主將이 驕慢 더욱 데 시름노니(將驕益愁思)「後出塞五首」〈두시 5:32ㄴ〉. 더욱 : 도라 드르샤 더욱 시름야 더시다〈석상 3:19ㄴ〉. 主將이 벼스리 더욱 노니(主將位益崇)「後出塞五首」〈두시 5:32ㄴ〉.
주136)
신기(神奇)외요 : 신기로움을. 神奇#+오+ㅁ+. ¶孟子ㅣ 닐오 너비 화 仔細히 닐오  두르 조외요 닐오례니라〈법화 1:123ㄱ〉.  두르힐후며 머리 여룸 로미 神奇외요미 잇도다(長年三老遙憐汝 捩柁開頭捷有神)「撥悶」〈두시 3:32ㄴ〉.
주137)
알와라 : 알겠네. 알-[知]+오+아+라. ¶-와라 : 이제 와  生死受苦애 내와라()〈월석 7:19ㄱ〉. 여희요매 사미 뉘 잇니오 디나가 늘거 내 말와라(別離人誰在 經過老自休)「懷灞上遊」〈두시 3:39ㄱ〉.
주138)
청초(靑草) : 호수(湖水) 이름. 옛날 오호(五湖)의 하나. 파구호(巴丘湖)라고도 한다.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악양시(嶽陽市) 서남쪽에 있는데, 동정호(洞庭湖)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청초산(靑草山)이 있어 이렇게 불린다. 일설에 따르면 호수 안에 청초가 많아 겨울과 봄철에 물이 마르면 청초가 더욱 잘 보여 이렇게 불린다고 한다. 당송(唐宋) 시기 때는 호수 둘레는 265리(里)였는데, 북쪽으로 사주(沙洲, 모래톱)가 있어 동정호와는 끊겼다가 물이 불어나면 동정호와 이어졌다. 시문(詩文)에서는 주로 동정호와 병칭(幷稱)된다.
주139)
동정호(洞庭湖) : 호남성 북부에 있는 중국 제2의 담수호. 면적은 계절에 따라 3,100~5,100㎢로 차이가 커지는데, 현재는 3,915㎢로 거의 고정되었다. 태고에 운몽대택(雲夢大澤)이라고 불린 큰 호수가 일대를 덮고 있었는데, 여러 하천의 퇴적작용에 의해 광대한 호광(湖廣) 평야와 크고 작은 무수한 소택군이 형성되었고, 동정호도 그 중 하나로 생겨났다. 상강(湘江), 자수(資水), 원강(沅江), 풍하(澧河) 등의 물을 모아, 악양(岳陽) 북동쪽의 성릉기(城陵磯)를 거쳐 당강으로 배수한다. 호수 안에는 섬이 많아, 일찍이 소상팔경(瀟湘八景)의 하나로 꼽힌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하고, 악양루(岳陽樓) 앞에 있는 높이 128m의 군산(君山, 湘山)에는 순제(舜帝)의 죽음을 비탄하여 물에 몸을 던진 아황(娥皇)와 여영(女英) 두 비를 모시는 묘우(廟宇)가 있다.
주140)
청초(靑草)와 : 청초호와. ‘청초호’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 참조.
주141)
동정(洞庭)ㅅ 호(湖)애 : 동정호에. ‘동정호’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 참조.
주142)
동(東)녀그로 : 동쪽으로. 東#녘+으로. ‘東, 西, 南, 北’ 중에서 ‘西’만 ‘西ㅅ녁’과 같이 사이시옷이 쓰인다. 〈중간본〉에는 ‘東녀크로’로 되어 있다.
주143)
바 : 바다의. 바+ㅅ. 15세기 국어에서 현대국어의 ‘바다’는 ‘바’과 ‘바다ㅎ’가 쓰였다. ¶바다ㅎ : 海 바다 〈광주판천자문 3ㄴ〉. 바 : 福 모도미 바 티 그지 업스니〈석상 21:16ㄴ〉. 하과 과 믈 밀연 바래 어득얏고 비와 이슬와  거츤 프를 신놋다(乾坤霾漲海 雨露洗春蕪)〈중간두시 2:8ㄱ〉.
주144)
로 : 가로. +로. 〈중간본〉에는 ‘로’로 되어 있다.
주145)
 : 배[船]. ¶내 몬져 됴 차바로 브르긔 고 法味로 乃終에 便安코 즐겁긔 호리라〈석상 9:9ㄱ〉. 벼개예 굽스러셔 지즈로 리 오니 죠고맛 로 가며 오며 호  조초 노라(伏枕因超忽 扁舟任往來)「秋日···三十韻」〈두시 3:8ㄱ〉. 참조; (腹) : 太子ㅣ 妃子ㅅ  치시며 니샤〈석상 3:22ㄱ〉. 아 울며  우루믈 내 아디 아니고 몸 우흰 오 求고  브르게  니로다(男啼女哭莫我知 身上須繒腹中實)「狂歌行贈四兄」〈두시 8:27ㄴ〉. 참조; (梨) : 곶 爲梨花〈훈해 42〉. 다시 오매  니피 블그니 녜 브터 댓수프리 프르도다(重來梨葉赤 依舊竹林靑)「客舊館」〈두시 3:36ㄱ〉.
주146)
워 : 띄워. -[浮]+이+우+어. ‘이’와 ‘우’는 모두 사동접미사이다. 현대국어의 ‘씌우다, 키우다’ 등도 모두 사동접미사 ‘이’와 ‘우’가 쓰인 사동사들이다. ¶-이우- : 戒香 퓌워 닷 사 命終 저긔〈월석 8:57ㄱ〉. 香 퓌우고 玉女ㅣ 렛고 안갯 소개 仙人이 오놋다(焚香玉女跪 霧裏仙人來)「冬到···學堂」〈두시 3:63ㄴ〉.
주147)
가놋다 : 가는구나. 가-[行]++오+ㅅ+다.
주148)
군산(君山) : 산(山) 이름. 호남(湖南) 동정호(洞庭湖) 어귀에 있다. 상산(湘山)이라고도 부른다. 좋은 경치에 보이차로 알려진 군산은침(君山銀針)의 재배지로 유명하다. 상비묘(湘妃廟)가 있다.
주149)
백빈(白蘋) : 백평(白萍). 물위에 떠다니는 부평초(浮平草)를 말한다.
주150)
군산(君山)앤 : 군산에는. 君山+애+ㄴ.
주151)
어루 : 가히. ‘가(可)’의 번역으로 쓰인다. 15세기 문헌에 양이 적기는 하지만 ‘어로’형도 사용되었다. ¶어루 :  노다가 라면 어루 法을 호리이다〈석상 6:11ㄴ〉. 이믜셔 큰 지븨 기우롬과 다니 어루  남로 괴오리라(旣殊大廈傾 可以一木支)「水檻」〈두시 6:43ㄴ〉. 어로 : 다가 能히 매 서르 體信면 어로 맛나 어더 어려미 업스리어늘〈월석 13:32ㄱ〉. 집 아래 어로 온 사미 들리로소니(下可容百人)「題衡···陸宰」〈두시 6:22ㄱ〉.
주152)
더위 : 더위를. 덥-[暑]+이. ‘이’는 명사파생접미사이다. 〈중간본〉에는 ‘더위ㅣ’로 되어 있다.
주153)
히니 : 곳이니. ㅎ[土]+이+니.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54)
며 : 하물며. ‘況’의 번역으로 쓰인다. ¶모맷 고기라도 비 사 주리어니 며 녀나 쳔랴녀〈석상 9:13ㄱ〉. 며 길히 기루메 엇뎌 리오(何况道路長)「遣興二首」〈두시 8:29ㄱ〉.
주155)
 : 흰. -[白]+ㄴ. ‘희다[白]’의 뜻으로는 15세기 국어에서 ‘-’와 ‘희-’가 쓰였다. ¶- : 象과 왜  삿기 나며〈월석 2:45ㄱ〉. 雪嶺은 하 야 오(雪嶺界天白)「懷錦水居止二首」〈두시 7:10ㄱ〉.
주156)
야 : 캐야. -[採]+아. ‘야’는 ‘ㅣ’ 모음 뒤에서 ‘아’가 바뀐 것이다. ¶- : 釋迦菩薩이 藥 라 가 보시고 깃며 信며 恭敬샤〈월석 1:52ㄱ〉. 위 안햇  金玉 아나 가도 곰 요 디 몯리로다(園蔬抱金玉 無以供採掇)「七月~曹長노라」〈중간두시 10:25ㄴ〉.
주157)
머그리로다 : 먹을 것이도다. 먹-[食]+으리+도+다. ‘로’는 ‘으리’ 뒤에서 ‘도’가 바뀐 것이다.
주158)
강한(江漢) : ①장강(長江)과 한수(漢水). ②장강과 한수 일대와 그 주변의 지역. 옛날의 형초(荊楚) 지역으로,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경내(境內)에 속한다. ③장강과 한수 일대와 그 주변의 지역. 옛날의 파촉(巴蜀) 지역으로,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동부 지역에 해당한다. ④장강과 한수 일대와 그 주변의 지역.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및 그 일대 지역이 속한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59)
그듸 : 그대는. 그듸+. ‘그듸’는 ‘설거(薛璩)’를 가리킨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주160)
엇뎨 :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주161)
져근  : 작은 배. 젹-[小, 少]+은 . 15세기의 ‘’는 현대국어의 ‘배’와 같이 ‘[船]. [腹], [梨]’의 뜻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의 ‘東浮滄海漘(동부창해순)’ 구절 참조.
주162)
강(江)과 한(漢)괏 : 장강(長江)과 한수(漢水)의. 江+과 漢+과+ㅅ.
주163)
 : 나루의. 나루터의. [津]+. ‘’는 ‘[粉], [宗]’ 등과 같이 모음조사를 만나면 2음절의 ‘ㆍ’가 탈락하고 ‘ㄹ’은 첫 음절의 받침으로 쓰인다. ¶ : 渡頭  걷나  니니라〈금삼 4:5ㄱ〉. 綿州ㅅ  믌 東녁  魴魚ㅣ 노니 비치 銀이라와 더으도다(緜州江水之東津 魴魚鱍鱍色勝銀)「觀打魚歌」〈두시 16:62ㄱ〉.  :  ㅅ  석 과 고 솝  되 거플 앗고 봇그니와  디허〈구간 2:20ㄱ〉.
주164)
오락가락 : 오락가락할. 오-[來]+라+ㄱ#가-[去]+라+ㄱ#-+ㄹ.
주165)
업스리오 : 없겠는가? 없-[無]+으리+오. ‘오’는 설명의문어미 ‘고’가 ‘ㅣ’ 모음 뒤에서 ‘ㄱ’이 약화된 형태이다.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한다. ¶-리오 : 綠林 엇뎨 죠고맛 患難이리오(綠林寧小患)「夔府書懷四十韻」〈두시 3:5ㄱ〉. 굼긧 가야미 어드러 亡코져 리오(穴蟻欲何逃)「喜聞···二十韻」〈두시 5:2ㄱ〉. 엇뎨 갓  흐르 믈와  니리오(豈徒比清流)「鳳凰臺」〈두시 17:1ㄴ〉.
주166)
구당(瞿塘) : 중국 삼협(三峽)의 하나로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동남쪽 양자강(揚子江) 상류에 있는 협곡(峽谷)이다. 양쪽 절벽 사이 급류가 흐르는 곳에 관문(關門)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를 기문(夔門)이라 한다.
주167)
우(禹) : ?~?. 중국 전설상의 하(夏)왕조의 시조. 성은 사(姒)씨고, 이름은 문명(文命)이다. 『사기(史記)』 하본기(夏本記)에 따르면, 전욱(顓頊)의 손자이며, 곤(鯀)의 아들이다. 요(堯)임금의 치세에 대홍수가 발생하여 섭정인 순(舜)이 그에게 치수(治水)를 명령했다. 13년 동안 노심초사한 끝에 치수 사업에 성공해 천하를 9주(州)로 나누고 공부(貢賦)를 정했다. 순이 죽자 인망(人望)을 모은 그가 제위를 계승했는데, 나라 이름을 하(夏)로 고치고 안읍(安邑)에 도읍했다. 치세 10년 만에 회계(會稽)에서 죽자 제후(諸侯)의 추대로 아들 계(啓)가 천자가 되었는데, 이때부터 천자 자리를 세습화하여 하왕조가 시작되었다. 지금의 소흥(紹興)에 무덤이 있다. 그의 전설은 한민족(漢民族)의 홍수 전설과 관련이 있으며, 신화학(神話學)과 고대 역사학상 중요한 자료가 된다.
주168)
나 : 나는. 나+. ‘두보’를 가리킨다. 후행하는 ‘몯호니’와 ‘노라’의 ‘-오-’와 호응한다.
주169)
구당(瞿塘)로 : 구당협(瞿塘峽)으로. ‘구당협’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을 참조할 것.
주170)
려가디 : 내려가지. 리-[下]+어#가-+디. ‘-디’는 부정사에 선행하는 보조적 연결어미로 현대국어의 ‘-지’에 해당한다. ¶려가- : 내 이제 려가면 아니 오라아 涅槃호리다〈석상 11:12ㄴ〉.  타 가 술 醉홈 어두 어렵디 아니 이리니 峽로 려가면 시름 스러듀믄 一定야 몃 버닐고(乘舟取醉非難事 下峽消愁定幾巡)「撥悶」〈두시 3:32ㄱ〉. 리- : 셜흔 두 가짓 祥瑞 리며〈석상 6:17ㄱ〉. 노 매 나못니피 리니 긴 바 貂裘 자보라(高風下木葉 永夜攬貂裘)「江上」〈두시 3:39ㄴ〉.
주171)
몯호니 : 못하니. 몯-#-+오+니. ‘오’는 화자 주어를 가리키는 선어말어미로 선행하는 주어 ‘나’과 호응한다.
주172)
갓 : 한갓. 헛되이. ¶妙音이 釋迦란 보시고 多寶 몯 보시다 니 갓 疑心을  미라〈석상 20:44ㄴ〉. 엇뎨 갓 高祖ㅅ 聖德 니리오 功이 蕭何 曹參의 도오로브터 오니라(豈惟高祖聖 功自蕭曹來)「述古三首」〈두시 3:56ㄴ〉.
주173)
우(禹)ㅅ 공(功) : 우왕(禹王)의 공적(功績)이. 禹+ㅅ#功+. ‘-’는 후행하는 ‘브즈런호’과 호응하는 의미상 주어이다.
주174)
브즈런호 : 부지런함을. 브즈런-+오+. ¶두번 頂 니샤 브즈런호 뵈시니라〈월석 18:16ㄱ〉. 가멸며 貴호 반기 브즈런며 辛苦호 브터 얻니 男兒ㅣ 모로매 다 술윗 글워 닐굴디니라(富貴必從勤苦得 男兒須讀五車書)「栢學士茅屋」〈두시 7:31ㄴ〉.
주175)
노라 : 생각한다. #-++오+라. ‘오’는 화자 주어를 가리키는 선어말어미로 앞의 ‘나’과 호응한다. 『두시언해』에서는 형용사파생접미사 ‘-ㅂ-’에 의한 파생형용사인 ‘사-’도 쓰였다. 〈중간본〉에는 ‘랑노라’로 되어 있다. ¶다(생각하다) : 오히려 卓文君 랑니라(尙愛卓文君)「琴臺」〈두시 3:73ㄱ〉. 다(사랑하다) : 凄凉호 니건  노라(凄凉憶去年)「倚杖」〈두시 3:29ㄴ〉. 사- : 기피 블그니도 可히 오며 녀티 블그니도 도다(可愛深紅愛淺紅)「江畔···絕句」〈두시 18:7ㄴ〉.
주176)
송문(松門) : 송문협(松門峽)을 가리키는 말. 기주(夔州)에 있다.
주177)
의건(衣巾) : ①의복(衣服)과 패복(佩巾). ②의복(衣服)과 두건(頭巾).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178)
송문협(松門峽) 이 : 송문협의 일을. 즉 송문협의 아름다움을.
주179)
니거늘 듣고 : 이르거늘 듣고. 말하니 그것을 듣고. 니-+거+늘 듣-+고.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 불규칙활용 중 소위 ‘ㄹ·ㅇ’형이다.
주180)
비왇고 : 뱉고. 비왇-[吐]+고. ¶法界예 周徧야 十虛 머구므며 비왇거니 엇뎨 方所ㅣ 이시리오〈능엄 3:107ㄱ〉. 이 거믄 龍이  구스를 비왇니 馮夷ㅣ 부플 티고 뭀 龍이 놋다(此時驪龍亦吐珠 馮夷擊鼓群龍趨)「渼陂行」〈두시 13:13ㄱ〉.
주181)
니러셔라 : 일어섰다. 닐-[起]+어#서-+어+라. ¶董卓이 갈  둘어셔라 고 닐오〈삼강런던 열:9〉. 浮生앳 功名 마 말며 마로리니 게으른 혜아료 〈중간두시 2:10ㄴ〉 도혀 져기 이셔라(浮名尋已已 嬾計𨚫區區)「大曆~十韻이라」〈중간두시 2:10ㄱ-ㄴ〉.
주182)
고추(高秋) : 하늘은 높고 공기가 상쾌(爽快)한 가을 하늘.
주183)
속대(束帶) : 의복(衣服)을 잘 가다듬어 입어 단장(端莊)함을 표시하는 것.
주184)
청민(靑旻) : 푸른 하늘. 청천(靑天). 주로 가을 하늘을 말한다.
주185)
노 : 높은. 높-[高]+.
주186)
 : 가을에. ㅎ[秋]+에.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중간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주187)
옥 : 띠고. -[帶]+고+ㄱ. 〈중간본〉에는 ‘옥’으로 되어 있다. 〈초간본〉에서 ‘’자가 잘 보이지 않으나 〈중간본〉에서와 같이 ‘’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원문의 ‘束帶’에 대한 번역인데 『두시언해』에서 ‘束帶’는 ‘ -’로 번역된다. ¶束帶 :  요니 가 쥰 (束帶負芒刺)「毒熱···六弟」〈중간두시 10:21ㄴ〉.  요니 미츄미 나  우르고져 식브니(束帶發狂欲大叫)「早秋···相仍」〈중간두시 10:28ㄴ〉.
주188)
 : 노를. [楫]+. 성도로부터 상강(湘江)에 이르기까지 정착하여 살 때를 제외하면 두보는 배로 여행을 하였으므로 『두시언해』에는 ‘, , , 대’ 등 배와 관련된 어휘가 많다. ¶ : 靑楓浦애 와  그츄니 두 싯남기 녜 마 것드럿도다(輟棹靑楓浦 雙楓舊已摧)「雙楓浦」〈중간두시 2:24ㄴ〉. (船) : 대 수헤  겨래 笋ㅣ 나며  모새 可히  워 올리로다(密竹復冬笋 清池可方舟)〈중간두시 1:14ㄴ〉.  : 일 녀매 흘 사미 게으르고 돗 로매 ㅣ 아니완히 부놋다(早行篙師怠 席掛風不正)〈중간두시 1:49ㄴ〉. 九江 봄픐 밧기오 三峽 나죗 돗 알피로다(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중간두시 2:2ㄴ〉. 九江 봄픐 밧기오 三峽 나죗 돗 알피로다(九江春草外 三峽暮帆前)〈중간두시 2:2ㄴ〉. 대 : 우 눈믌 그제 조 妖恠히 너기디 말라 노 대 가마괼 좃다(莫恠啼痕數 危檣逐夜烏)「過南···庭湖」〈중간두시 2:20ㄱ〉. 구슬로 혼 발와 繡혼 기앤 누른 鶴으로 둘엣고 錦으로 혼 줄와 엄  대예  며기 니더니라(珠簾繡柱圍黃鶴 錦纜牙檣起白鷗)「秋興五首」〈두시 6:9ㄴ〉.
주189)
가 : 감을. 가+ㅁ+. ‘가’의 성조는 상성이다.
주190)
 : 맑은. -[淸]+.
주191)
 : 가을의. ㅎ[秋]+ㅅ.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92)
하 : 하늘을. 하ㅎ+.
주193)
보리라 : 볼 것이다. 보-[見]+리+라.
주194)
봉지(鳳池) : ①대궐 안에 있는 연못. 곁에 중서성(中書省)이 있었던 데서 중서성 또는 재상(宰相)의 직위를 뜻한다. ②연못물을 아름답게 부르는 이름.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95)
징벽(澄碧) : 맑고 푸름. 호수물이 맑고 푸른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주196)
제제(濟濟) : ①많은 모양. ②위의(威儀)가 있는 모양. ③가지런하고 아름다운 모양. ④곤란한 일.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97)
봉황(鳳凰)ㅅ 모시 : 봉황의 연못이. ‘봉지(鳳池)’의 번역이다.
주198)
나날 : 나날이. 날+날. ¶太子ㅣ 門 밧긔 가 보신 後로 世間 슬흔 미 나날 더으거시〈석상 3:22ㄱ〉. 죄 업고 나날 늘고니  머믈워셔 千門을 라노라(無才日衰老 駐馬望千門)「至德~往事노라」〈두시 3:23ㄱ〉.
주199)
가 : 맑아. -[淡]+아.
주200)
퍼러니 : 파라니. 프르-+어#-+니. ‘퍼러-’는 ‘프르-’에 ‘-어 -’가 붙어 파생된 형용사이다. 15세기에는 ‘퍼러다’ 이외에 ‘파라다’도 보인다. ¶퍼러- : 그 얼구리 해 이셔 곧 蒼然히 퍼러니〈금삼 2:29ㄴ〉. 돐 門읜 서리와 이슬왜 오 玉殿엔 이시 퍼러도다(石門霜露白 玉殿莓苔靑)「橋陵···諸官」〈두시 6:17ㄴ〉. 파라- : 妙有實相 버들 파라며 곳 벌거 디라〈남명 상:7ㄴ〉. 돌히 더운  고사릿 어미 븕고 믌 내왇  우미 파라도다(石暄蕨芽紫 渚秀蘆笋綠)「客堂」〈두시 6:51ㄴ〉. 참조; 프르- : 楚國 越國엣 象 다 프르고 오직 西天나라해  象이 하니라〈월석 2:31ㄴ〉. 다시 오매  니피 블그니 녜 브터 댓수프리 프르도다(重來梨葉赤 依舊竹林靑)「客舊館」〈두시 3:36ㄱ〉.
주201)
한 : 많은. 하-[多]+ㄴ. ‘ㆍ’(아래아)가 음소로서 변별적 기능을 소실한 18세기 중엽 이전까지는 ‘ㅏ’와 엄격히 구분되었다. ‘나’[一]. 관형사이며, ‘-’[爲]의 관형사형인 ‘’과는 의미가 분명히 변별되었다.
주202)
준순(逡巡) : ①준순(蹲循). 뒷걸음질 침. 공손히 순종하는 모양. ②사양함. 피함. ③여유 있는 모양. ④조심하고 삼가는 모양. ⑤배회함. 머뭇거림. 여기서는 ⑤의 뜻으로 쓰였다.
주203)
나 : 나는. 즉 ‘두보’를 가리킨다.
주204)
병(病)야 : 병들어. 病#-+야.
주205)
니디 : 일어나지. 닐-[起]+디. ¶닐- : 이런로 行이 解 브터 일오〈법화 6:119ㄱ〉. 슬픈 미 닐에 디 마롤 디어다(慟哭起悲風)「收京」〈두시 5:9ㄱ〉.
주206)
몯노니 : 못하니. 몯#-++오+니. ‘오’는 선행하는 주어 ‘나’과 호응한다.
주207)
건장(健壯) 너는 : 건장한 너는. 즉 ‘설거(薛璩)’를 가리킨다.
주208)
머므디 : 머물지. 머뭇거리지. 머믈-[留]+디.
주209)
명철(明哲) : ①명지(明智). 사리(事理)를 통찰함. ②밝고 총명하며 지혜로운 사람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210)
우흰 : 위에는. 우ㅎ+의+ㄴ. ‘우ㅎ’은 ‘ㅎ말음체언’이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주211)
님금이 : 임금이. ‘님금’의 이전 형태로 신라시대에는 ‘이사금(尼師今)’이 쓰였다.
주212)
겨시고 : 계시고. 겨-+시+고.
주213)
아랜 : 아래는. 아래+ㄴ. ‘아래’와 ‘ㄴ’의 사이에 처격조사가 생략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주214)
잇니라 : 있느니라. 잇-[有]++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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