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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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도주자사 배규 소환에게 드리며[暮秋枉裴道州手札率爾遣興寄遞呈蘇渙侍御]


暮秋枉裴道州 주001)
도주(道州)
중국의 고대에 있던 주(州). 중심지는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도현(道縣)이다. 당나라 정관(貞觀) 8년(634) 남영주(南營州)를 고쳐 도주(道州)라 했고, 치소(治所)는 영도현(營道縣, 지금의 호남성 도현 서쪽)이다. 17년(643) 없어져 영주(永州)로 들어갔다. 상원(上元) 2년(675) 다시 도주가 설치되었다. 천보(天寶) 원년(742) 강화군(江華郡)으로 바뀌었다가 건원(乾元) 원년(758) 다시 도주가 되었는데 치소는 홍도현(弘道縣, 원래의 영도현)이다. 관할한 지역은 지금의 호남성 신전현(新田縣), 영원현(寧遠縣), 도현(道縣), 강영현(江永縣), 강화요족자치현(江華瑶族自治縣) 등지다. 북송(北宋) 때는 옮겨 지금의 도현을 다스렸고, 형호남로(荆湖南路)에 속했다. 철과 주석 등의 산지로 유명했다. 원나라 때는 도주로(道州路)로 불렸고, 명나라 홍무(洪武) 원년(1368) 도주부(道州府)로 바뀌었다가 9년(1376) 다시 도주가 되어 영주부(永州府)에 속했다.
手札率爾遣興寄遞呈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0ㄱ

蘇渙 주002)
소환(蘇渙)
?~775. 당나라 때 사람. 본래 재야(在野)의 영웅이다. 젊었을 때 백노(白弩)를 잘 다루고 노략질을 즐겨 파촉(巴蜀) 상인들을 괴롭혔다. 그래서 도척(盜跖)과 비교해 백척(白跖)이라 했다. 나중에 마음을 바꾸어 학문에 전념해 광덕(廣德) 2년(764) 진사가 되었다가 시어사(侍御史)로 옮겼다. 나중에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 최관(崔瓘)을 보좌해 종사(從事)가 되었다. 최관이 살해당하자 교(交)와 광(廣)으로 달아나 가서황(哥舒晃)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대력(大曆) 10년(775) 11월 패하여 살해당했다. 작품은 대부분 흩어지고 『전당시(全唐詩)』에 시 4수가 실려 있다.
侍御
주003)
모추왕배도주수찰솔이견흥기체정소환시어(暮秋枉裴道州手札率爾遣興寄遞呈蘇渙侍御)
이 작품은 대력(大曆) 4년(769) 가을, 두보 58세 때에 지어졌다. 이때에 두보는 장사(長沙)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때 도주자사로 있던 배규가 두보에게 편지를 보내자 이 시를 보내고, 아울러 당시 담주(潭州, 지금의 장사)에 있던 소환(蘇渙)에게도 올렸다. 이 시에서 시인은 배규와 소환 두 사람에 대한 존경과 당시 시국(時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어 그들이 임금을 요순(堯舜)으로 만드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를 희망하였다. 이 시에서 우리는 두보의 당당하고 적극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은 비록 늙고 병들어 있지만, 임금을 돕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노력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두보의 마지막 즈음에 지은 시에 해당한다.

모추왕배도주수찰솔이견흥기체정소환시어
(늦가을, 도주자사 주004)
## 자사(刺史)
관직 이름. 전한(前漢) 무제(武帝) 원봉(元封) 5년(기원전 106) 전국을 13부(部)로 나누고 부마다 중앙에서 파견한 자사 1인을 두었다. 자사는 관할 부를 순행하면서 호족이나 군(郡)의 태수를 감찰했다. 성제(成帝) 대 자사를 주목(州牧)으로 개칭했고, 후한(後漢) 초 다시 자사로, 후한 영제(靈帝) 때 또다시 주목으로 바꾸었다. 초기에는 지위가 군수(郡守) 아래였지만 이후 군수보다 한 단계 높았으며, 군정(軍政) 대권을 맡기도 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각 주에 자사를 설치하여 도독(都督)을 겸임토록 했다. 이 대 장군이란 칭호가 붙여졌으며, 권한도 한층 높았다. 수대 이후 주의 자사는 군의 태수와 같은 직급이거나 태수의 별칭으로 쓰였으며, 권력도 점차 낮아졌다. 송 이후 중앙에서 자사를 파견했지만 실제로 부임하지 않았으며, 습관상 태수를 자사라고 불렀다. 청(淸)대 역시 주 지사(知事)의 별칭으로 쓰였다.
배규 주005)
## 배규(裴虬)
?~?. 도주자사(道州刺史)를 지낸 것 외에 생애와 활동 사항은 알려진 것이 없다.
의 편지를 받고 갑자기 흥이 일어 시어사 주006)
## 시어사(侍御使)
관직 이름. 진한(秦漢) 시대에 설치하여 어사대부 아래에 두었다. 전중(殿中)의 일을 처리하고 범법자에 대한 탄핵권을 가지며, 군현(郡縣)을 감찰하는 권한을 지녔다. 후한 때는 서시어사(書侍御史)를 따로 설치했으며, 위․진 때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등의 관직도 있었다. 당대에 치서어사(治書御使)를 어사중승(御使中丞)으로 개칭하면서 시어사와 전중시어사, 감찰시어사(監察侍御史) 등을 어사대(御史臺) 아래에 두었다. 명청시대 때에는 감찰어사만이 존재했다.
소환에게 드리며)

久客多枉友朋書 素書 주007)
소서(素書)
①편지. 옛사람들은 편지를 흰 비단에 썼음. ②한(漢)나라 때 황석공(黃石公)이 지었다 하지만, 현전하는 것은 후대 사람이 지은 것으로 저자는 분명치 않은 책. 송(宋)나라의 장상영(張商英)이 주를 붙이는 형식으로 황석공에 위탁한 것으로, 도덕인의례(道德仁義禮)를 일체로 삼아 유(柔)로 강(剛)을 제어하고, 퇴(退)로 진(進)을 꾀하는 이치를 풀어놓았다. 1권.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一月凡一束【素 絹이니 古人이 주008)
견(絹)이니 고인(古人)이
비단이니 고인이. 絹+이+니 古人+이. 원래의 ‘絹也ㅣ니 人이’에서 교정된 것이다.
爲書호 多書於絹니라】

오래 나그내 외요매 주009)
외요매
됨에. 외-+오+ㅁ+애.
벋뷔 주010)
벋뷔
벗들. 벋+뷔. ‘벋’은 현대어의 ‘벗’이나 ‘뷔’는 정체를 알 수 없다. 원문의 ‘友朋’의 번역으로 쓰였다. ‘벋뷔’는 〈중간본〉에 ‘벋’로 되어 있으며 『소학언해』나 『번역노걸대』에 ‘벋븨’로 표기되어 있다. ¶벋븨 : 橫渠先生이 샤 이제 벋븨 그 아당 잘 이로 여  서르 여허야 엇게 티며 매 잡아  긔운이 合홈을 삼고  말이나 合디 아니커든 怒 긔운을 서르 더니 벋븨 이예 그 서르 디믈 게을이 아니코쟈 디라 그러모로 벋븨 이예 그 공경을 읃듬 삼 이 날로 서르 親야 여허야 효험 어이 장 니라 〈소언 5:77ㄱ-78ㄱ〉. 벋븨의 갓 븟그리게 말라〈번노 하:46ㄱ-47ㄴ〉.
글워를 주011)
글워를
글을. 글월을. 글+월+을. ¶두 글워 어울워 釋譜詳節을 라 일우고〈월석 1:월인석보 서:12ㄴ〉. 여흐레 고기 낫글 저긘 글워를 䟽히 고(釣瀨䟽墳籍)「夔府書懷四十韻」〈두시 3:6ㄱ〉.
주012)
많이. 하-[多]+이.
오게 호니 주013)
호니
하니. -[爲]+오+니.
주014)
흰. -[白]+ㄴ. 15세기에는 ‘다’와 ‘희다’가 쌍형어로 쓰였다. ¶- : 補陁 혀근  고지라 논 마리니〈석상 6:43ㄴ〉.  소리  몰애예 놋다(江聲走白沙)「憶昔二首」〈두시 6:26ㄱ〉. 희- : 남의  희오 므겁고 녀이  검고 가븨여우니라〈은중 2ㄴ〉.
글워리 주015)
글워리
편지가. 글월이. 글#월+이.
래 주016)
래
달에. [月]+애.
大凡 디 주017)
대범(大凡) 디
무릇. 大凡#-+ㄴ +이.
무시로다 주018)
무시로다
뭇이도다. 뭇+이+도+다. ‘뭇’은 국어 사전에 ‘짚, 장작, 채소 따위의 작은 묶음을 세는 단위’로 되어 있다. 편지 한 묶음을 말한다.

【한자음】 구객다왕우붕서 소서일월범일속【 ‘소(素)’는 비단이니, 옛사람들이 글을 쓸 때 주로 비단에 적었다.】
【언해역】 오래 나그네 됨에 벗들 편지를 많이 오게 하니, 흰 편지가 한 달에 무릇 한 뭇이도다!
*시 구절 해석 : “오래 나그네 됨에 친구의 편지를 자주 오게 하니, 흰 비단에 쓴 편지가 한 달에 대개 한 묶음이네.”라는 뜻으로, 장기간 떠돌다 보니 친구들에게 오는 편지가 한 달이면 한 묶음이나 되었다는 말이다.

虛名但蒙寒暄問 泛愛不救溝壑辱【言朋友ㅣ 汎愛 주019)
범애(汎愛)
①두루 사랑함. ②붕우(朋友, 친구)를 대신하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야 但問寒暄이오 不救窮困也ㅣ라】

주020)
빈. 뷔-[空]+ㄴ. ¶根源性이 맨 뷔여 虛空이 니〈석상 23:15ㄱ〉. 예 죠고맛 훤 房이 뷔옛도다(舟虛小洞房)「遣悶」〈두시 3:11ㄴ〉.
일후메 주021)
일후메
이름에. 일후-[名]+ㅁ+에.
오직 주022)
오직
단지. 다만. 오직.
치위 주023)
치위
추위. 칩-[寒]+이. 정음 초기 문헌의 표기는 ‘치’이다. 참조; 치. 치. 치위. 치. 치움. ¶다가 有情이 오시 업서 모 벌에며 더 치로 셜다가〈석상 9:9ㄴ〉.
더위 주024)
더위
더위. 덥-[署]+이. 정음 초기 문헌의 표기는 ‘더’이다.
무루믈 니부니 주025)
무루믈 니부니
물음을 받으니. 물음을 입으니. 묻-[聞]+우+ㅁ+을 닙-[被]+으니. 원문의 ‘蒙~問’에 대한 번역이다. ‘蒙’은 고전중국어에서도 피동의 문법 표지로 발달하지 못하고 피동의 뜻을 가진 타동사로 기능하였으며, 이를 언해문에서는 ‘닙다’로 번역하였다.
너비 주026)
너비
널리. 넙-[廣]+이(부사화파생접미사). ‘넙-’은 ‘넓-’으로 형태 변화가 일어났다. ‘넓-’은 18세기에 등장한다. ¶귿 키고 至人의 듣을 널펴 一己의 欲을 오로디 아니며〈여사서 3:79ㄱ〉.
논 주027)
논
사랑하는. #-++오+ㄴ. 15세기의 ‘다’는 ‘사랑하다’와 ‘생각하다’의 뜻이 있다. 〈중간본〉에는 ‘랑논’으로 되어 있다. ¶다(생각하다) : 먼 드르흘 咫尺 만가 노라(曠野懷咫尺)「白水···三十韻」〈두시 7:23ㄱ〉. 다(사랑하다) : 虛 미라 오직 내 조 놋다(虛懷只愛才)「李監宅二首」〈두시 7:34ㄱ〉.
디라 주028)
디라
-지라. 것이다. +이+다.
굴에 주029)
굴에
구렁에. 굴헝[壑]+에. 〈중간본〉에는 ‘굴헝에’로 되어 있다.
잇 辱 救恤디 아니다 주030)
아니다
아니한다. 안 한다. 아니#-++다.

【한자음】 허명단몽한훤문 범애불구구학욕【친구들이 두루 사랑하지만 다만 날씨의 춥고 더움만 물을 뿐 곤궁에서 구하려 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언해역】 빈 이름에 단지 추위 더위 물음을 받으니, 널리 사랑하는지라 구렁에 있는 욕(辱)을 구휼(救恤)하지 아니하네.
*시 구절 해석 : “헛된 이름에 오직 추위 더위 물음만 받으니, 널리 사랑하는지라 구렁에 빠진 치욕을 구휼해 주지 않네.”라는 뜻으로, 친구들이 자신의 고통을 염려하는 편지를 보내지만 날씨 이야기일 분 정작 곤궁한 처지에서 구해주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齒落未是無心人 舌存恥作窮途哭張儀 주031)
장의(張儀)
?~기원전 310. 전국시대 위(魏)나라 사람. 소진(蘇秦)과 함께 귀곡자(鬼谷子)를 사사하면서 종횡술(縱橫術)을 배웠다. 한 때 화씨지벽(和氏之璧)을 훔친 도둑으로 몰려 초죽음이 되기도 했다. 진(秦)나라 혜문왕 9년 진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 연횡책(連橫策)을 써서 진나라가 하서(河西)와 상군(上郡), 하동(河東) 등지를 차지하게 했다. 혜왕 경원 2년 제(齊)나라, 초(楚)나라의 대신들과 교상(嚙桑)에서 만났다. 다음 해 위나라 또한 연횡을 실행해 혜시(惠施)를 쫓아내고 그를 재상으로 맞았다. 3년 뒤 위나라가 합종(合縱)을 써서 공손연(公孫衍)을 재상으로 임용하자 진나라로 돌아왔다. 진나라는 연횡책으로 인해 영토도 넓어졌고 강대국이 되었다. 이 공으로 무신군(武信君)에 봉해졌다. 진무왕(秦武王) 때 진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지만 얼마 뒤 죽었다.
ㅣ 謂妻曰視吾舌라 尙在不아 妻曰在다 儀曰足矣라고 入秦야 說恵王 주032)
혜왕(惠王)
진혜문군(秦惠文君, 기원전 356~기원전 311). 진혜왕(秦惠王). 진혜문왕(秦惠文王)이라고도 부른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국군(國君). 이름은 사(駟)고, 진효공(秦孝公)의 아들이다. 즉위한 초에 종실과 원한이 많았던 상앙(商鞅)을 주살(誅殺)했다. 5년 공손연(公孫衍)이 대량조(大良造)가 되어 집정했다. 10년 장의(張儀)를 재상으로 삼아 연횡책(連橫策)을 시행했다. 여러 차례 군대를 동원해 위(魏)나라를 공격하여 하서(河西) 지역을 수복했으며, 위나라가 상군(上郡) 15개 현(縣)을 헌납했다. 13년 스스로 왕이라 부르고, 다음 해에 개원(改元)했다. 후원(後元) 7년 한(韓)나라와 조(趙)나라, 위나라, 연(燕)나라. 제(齊)나라 등이 연합해 진나라를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다. 9년 촉(蜀)을 멸망시키고, 다음 해 의거(義渠) 25개 성을 탈취했으며, 13년 초(楚)나라 한중(漢中) 땅 6백 리를 취했다. 27년 동안 재위했고, 시호는 혜문(惠文)이다.
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0ㄴ

爲客𡖖니라】

주033)
이[齒]. 이빨.
디나 주034)
디나
빠지나. 디-+나. ‘디다’는 피동의 의미이며, ‘다/혀다’는 타동의 의미로 쓰였다. ¶디- : 다차힌 므레 디여 橫死 씨오〈석상 9:37ㄱ〉. 니 디거 일후미 어딘 사 擧薦 中에 더러욜 고 어느 알리오(豈知牙齒落 名玷薦賢中)「春日江村五首」〈중간두시 10:14ㄱ〉. - : 天帝釋이 그 사  忉利天에 가아 塔 일어 供養더라〈석상 3:14ㄱ〉. 혀- : 다가 바지왼 소니 아니면 뉘 能히 부들 혀 實에 맛게 베퍼 펴리오〈금삼 서:13ㄱ〉. 나 늘구믈 러 리고 갈 혀나 盜賊을 버히고져 니라(揚鑣驚主辱 拔劒撥年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ㄴ〉.
이  업슨 사미 주035)
이  업슨 사미
이 마음 없는 사람이. 〈중간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아니로니 주036)
아니로니
아니니. 아니+이+니.
주037)
혀. 혀-[引]+ㅣ. 정음 초기 문헌에는 ‘-’로 표기된다. ¶혀- : 謝氏無適莫註 中에 經엣 이 句 혀아  미치며〈금삼 2:64ㄴ〉. 혀 여 하  막노니(結舌防讒柄)「秋日···三十韻」〈두시 3:9ㄱ〉. - : 太子ㅣ 화 시니 화리 것거디거늘〈석상 3:13ㄴ〉.
이시니 주038)
이시니
있으니. 이시-[有]+니.
窮困 길헤셔 주039)
길헤셔
길에서. 길ㅎ+에+셔.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우룸 주040)
우룸
울음. 울-[泣]+우+ㅁ.
요 주041)
요
함을. 여기서는 선행하는 ‘우룸’과 함께 ‘울다’는 뜻으로 쓰였다. 〈중간본〉에는 ‘요믈’로 되어 있다.
붓그리노라 주042)
붓그리노라
부끄러워하노라. 붓그리-[愧]++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참조; 붓그려-, 붓그럽-, 붓그러워-.

【한자음】 치락미시무심인 설존치작궁도곡【장의(張儀)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내 혀를 보라 아직 있느냐? 없느냐?” 하니, 아내가 있다고 대답했다. 장의가 말하기를, “그러면 됐다.”라고 하고, 진나라에 들어가서 혜왕(恵王)을 만나 유세해 객경(客𡖖)이 되었다.】
【언해역】 이가 빠지나 이 마음 없는 사람이 아니니, 혀 있으니 곤궁(窮困)한 길에서 울음 욺을 부끄러워하노라
*시 구절 해석 : “이가 빠졌으나 (벼슬에) 마음 없는 사람이 아니니, 혀가 있는데 곤궁한 처지에서 울음 욺을 부끄러워한다.”라는 뜻으로, 처지는 어렵지만 좌절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다.

道州手札適復至 紙長要自三過讀【札은 木簡 주043)
목간(木簡)
독(牘, 편지). 옛날에 문자를 쓸 때 사용하던 좁고 긴 목편(木片)을 일컫는 말.
薄小 주044)
박소(薄少)
희소(稀少)함. 작고 엷음.
者ㅣ라】

道州ㅅ 주045)
도주(道州)ㅅ
도주(道州)의. 도주자사(道州刺史)의.
소로 주046)
소로
손으로. 손[手]+로.
주047)
쓴. 스-[書]+우+ㄴ. 15세기에 ‘-’는 ‘사용하다[用]. (맛이) 쓰다[苦]’, ‘쓰-’는 ‘(글을) 쓰다[書], (갓을) 쓰다[冠]’로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두시언해』는 각사병서 표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쓰-’는 ‘스-’로 표기되었다.
글워리 주048)
글워리
편지가. 글월이. 글월+이.
마초아 주049)
마초아
마침. 맞-+호+아. ¶마초아 바지 舍衛國으로 가리 잇더니〈석상 6:15ㄱ〉. 이제 내 草堂애 오니 成都애 마초아 시르미 업도다(今我來草堂 成都適無虞)「草堂」〈두시 6:37ㄴ〉.
 오니 죠 주050)
죠
종이. ¶죠 爲紙〈훈해 56〉. 늘근 겨지븐 죠 그려 긔파 어(老妻畵紙爲碁局)「江村」〈두시 7:4ㄱ〉.
기러 주051)
기러
길어. 길-[長]+어. 15세기 국어 ‘길-’은 형용사 ‘길다’와 함께 동사 ‘자라다’의 뜻이 있다.
스싀로 주052)
스싀로
스스로. 스싀+로. 원래는 ‘스싀’가 ‘자기(自己)’를 뜻하는 재귀대명사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스싀로’는 ‘스싀’에 구격조사 ‘-로’가 연결된 것이다.
세 번 디내 주053)
디내
지나. 디내-+∅. ¶디내- : 제 목숨 사라 受苦 아니 디내리라〈석상 9:35ㄴ〉. 님금 목수믄 一萬 보믈 디내샤미 맛시니라(聖壽宜過一萬春)「承聞···十二首」〈두시 5:23ㄱ〉.
닐구믈 주054)
닐구믈
읽음을. 닑-[讀]+우+ㅁ+을.
조로이 주055)
조로이
중요하게. 조-[要]+이. 〈중간본〉에는 ‘조로이’로 되어 있다.
호라 주056)
호라
했다. -+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한자음】 도주수찰적부지 지장요자삼과독【‘찰(札)’은 목간 가운데 엷고 작은 것이다.】
【언해역】 도주(道州)의 손으로 쓴 편지가 마침 또 오니, 종이 길어 스스로 세 번 지내 읽음을 중요하게 했네!
*시 구절 해석 : “도주 손으로 쓴 편지가 마침 또 오니, 종이가 길어 스스로 세 번 거듭 읽음을 중요하게 여긴다.”라는 뜻으로, 배도가 보내준 편지가 자주 오는데 내용이 길어 세 번이나 거듭 읽게 된다는 말이다.

盈把那須滄海珠 入懷本倚崐山玉【言得手札호미 如得海珠 주057)
해주(海珠)
바다 깊이 있는 보주(寶珠). 얻기 어려운 일을 비유한다.
崐玊 주058)
곤옥(崐玊)
①곤륜산(昆侖山)이 미옥(美玉). 대개 의취(意趣)가 고결(高潔)하거나 문장이 정미(精美)한 것, 재주가 걸출(傑出)한 것 등을 비유한다. ②다른 사람의 형제(兄弟)를 아름답게 부르는 명칭.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也ㅣ라】

주메 주059)
주메
줌에. 줌[把]+에.
닌 주060)
닌
가득한 것은. #-+ㄴ#이+ㄴ.
엇뎨 주061)
엇뎨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는 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엇디’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모로매 주062)
모로매
모름지기. ¶모로매 : 必 모로매 논 디라〈훈언 13ㄱ〉. 모로매 殿에 려 롤 디라(須爲下殿走)「收京三首」〈두시 5:7ㄱ〉.
바랫 주063)
바랫
바다의. 바[海]+애+ㅅ. 15세기에는 ‘바’과 ‘바다ㅎ’가 쌍형어로 쓰였지만 『두시언해』에는 ‘바’만 쓰였다. ‘바’도 나타난다. ¶바 : 뫼히며 수프리며 미며 바리며〈석상 19:13ㄴ〉. 黃河ㅅ 北녁 두듥과 바 西ㅅ녁 軍의(黃河北岸海西軍)「黃河二首」〈두시 4:26ㄴ〉. 바다ㅎ : 海 바다 〈신증 상:6ㄴ〉. 海 바다 〈훈몽 상:2ㄴ〉. 海 바다  〈광주판천자문 3ㄴ〉. 바다  海〈백련 14ㄴ〉.
구슬 니리오 주064)
니리오
뿐이리오? +이+리+오. 수사의문문에 쓰이는 ‘-리오’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하는 설명의문어미이다.
푸메 주065)
푸메
품에. 품+에.
드니 주066)
드니
든 것을. 들-[入]+ㄴ#이+.
本來 崐山앳 玉이론 고 주067)
옥(玉)이론 고
옥인 줄을. 옥+이+도+ㄴ 곧+. ‘곧’은 15세기 한글 문헌에서 ‘장소[處]’를 뜻하는 구체명사로도 쓰고, 여기처럼 ‘것[所]’을 뜻하는 추상명사로도 쓰인다. ¶處 : 어듸 一切智옛 사미 잇거뇨 곧고대 무로 疑心을 決斷티 몯다〈월석 11:3ㄴ〉. 머리 어느 고대 가 두려웟고(悠悠何處圓)「江邊星月二首」〈두시 12:9ㄴ〉. 所 : 衆生 부텻 知見에 드리고져 시논 젼론 고디라〈석상 13:55ㄴ〉. 해셔 우 즈믄 지브란 사호매 주근 고 듣노니(野哭千家聞戰伐)「閣夜」〈두시 14:19ㄴ〉.
믿노라 주068)
믿노라
믿노라. 믿는구나. 믿-[信]++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한자음】 영파나수창해주 입회본의곤산옥【편지를 받는 것이 진주나 곤륜산의 옥돌을 얻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언해역】 줌에 가득한 것은 어찌 모름지기 바다의 구슬뿐이리오, 품에 든 것을 본래 곤륜산의 옥인 줄을 믿노라.
*시 구절 해석 : “가득 쥐니 어찌 바다의 구슬만 소중하리오, 품에 들이니 본래 곤산의 옥이라 여겨 기댄다.”라는 뜻으로, 보내준 편지가 귀하고 고마워 바다 진주나 곤륜산의 옥처럼 소중하다는 말이다.

撥棄潭州 주069)
담주(潭州)
수(隋)나라 때 설치한 주(州). 일찍이 1급 행정단위가 되었는데, 대부분 지역이 호남(湖南) 지역이고 부분적으로 호북(湖北) 지역이 포함되었다. 또 2급 행정단위가 되기도 했는데, 지금의 장사(長沙)와 상담(湘潭), 주주(株洲), 악양남(岳陽南), 익양(益陽), 누저(婁底) 등지를 포함했다.
주070)
곡(斛)
분량의 단위. 열 말[十斗]. 휘, 괵(斛)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중국에서 곡식을 계량할 때 쓰는 용기였는데, 후에 단위로 쓰이게 되었다. 송(宋)나라 때 와서 10말을 1석(石, 섬)이라는 단위명으로 고쳐져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홉[合]과 되[升], 말, 석이 있어 곡이라는 단위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하던 고려 정종 당시 한 때 양곡의 양을 측정하는 단위로 사용된 적이 있다.
蕪沒 주071)
무몰(蕪沒)
무성한 잡초에 덮여 숨겨짐. 잡초가 우거짐.
瀟岸千株菊【言得手札야 懷思而讀之야 不暇飲酒泛菊也ㅣ라】

潭州옛 주072)
담주(潭州)옛
담주의. 潭州+예+ㅅ.
온  수를 주073)
온  수를
백 섬의 술을. 온 셤+ㅅ 술+을. ‘온’은 ‘백(百)’, ‘’은 ‘섬’에 속격조사 ‘-의’가 연결된 형태이다. ¶셤 : 金剛 모 아 舍利 시니 여듧 셤 너 마리러시니〈석상 23:51ㄱ〉. 一萬 셤 싣  오  順놋다(萬斛之舟行若風)「夔州歌十絕句」〈두시 13:45ㄱ〉.
혀 주074)
혀
빼어. -+히+어. 『두시언해』에서는 ‘-’는 ‘-’로도 쓰였다. ¶히- : 이제 니르러 이젯 님그미 오히려 亂 혀 려(至今今上猶撥亂)「憶昔二首」〈두시 3:60ㄴ〉. 혀- : 일홈난 臣下 우희 아라히 혀 나니(迥出名臣上)「過郭代公故宅」〈두시 3:66ㄱ〉.
료니 주075)
료니
버리니. 리-+오+니.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瀟湘 두들겟 주076)
두들겟
두듥의. 두듥[岸]+에+ㅅ.
즈믄 주077)
즈믄
천(千).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1ㄱ

株ㅅ 菊花ㅣ 거츠럿도다 주078)
거츠럿도다
거칠어졌도다. 거츨-+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한자음】 발기담주백곡주 무몰소안천주국【편지를 받아 생각하며 읽어서 술을 마시는데 국화를 띄울 짬도 없었다는 말이다.】
【언해역】 담주(潭州)의 백 섬 술을 빼어 버리니, 소상(瀟湘) 두듥의 천 주(株)의 국화가 거칠어져 있도다!
*시 구절 해석 : “담주에서 백 곡 술을 빼어 버리니, 소상강 강가 천 그루 국화가 거칠어져 버렸다.”라는 뜻으로, 편지를 주의 깊게 읽느라고 술잔에 국화를 띄우지도 못했다는 말이다. 즉 너무 기쁜 나머지 술을 마시거나 국화를 볼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使我晝立煩兒孫 令我夜坐費燈燭【言得手札而讀之 不輟晝夜ㅣ라】

날로 여 주079)
날로 여
나로 하여금. 나+ㄹ+로 -+여. ‘ㄹ’은 특별한 기능이 없이 삽입된 요소이다.
나 주080)
나
낮에. 낮[晝]+.
셔셔 주081)
셔셔
서서. 셔-[立]+어+셔.
兒孫 어즈러이 주082)
어즈러이
어지럽게. 어즐-+업+이. 〈능엄경언해〉(1461) 이전에는 ‘어즈러’로 쓰였다. ¶어즈러 : 鹿母夫人이 샤 나라해 어즈러 졋어미 블리디 마쇼셔〈석상 11:33ㄱ〉. 어즈러이 : 다가 三業이 憍奢면 妄心이 어즈러이 뮈리어니〈영가 상:4ㄴ〉. 어즈러이 人寰이 오히려 安定티 아니니(洶洶人寰猶不定)「承聞···十二首」〈두시 5:21ㄴ〉.
侍立게 주083)
시립(侍立)게
시립하게. 侍立(+-)+게.
주084)
하고. -+고.
날로 여 바 주085)
바
밤에. 밤+.
안자셔 주086)
안자셔
앉-+아+셔.
브를 주087)
브를
불을. 불-+을. 15세기의 ‘믈, 블, 플, ’은 초성 자음의 영향으로 ‘ㅡ’가 ‘ㅜ’로 변화하여 각각 ‘물, 불, 풀, ’로 변화한다.
虛費케 주088)
허비(虛費)케
허비하게. 虛憊#-+게.
다 주089)
다
한다. -++다.

【한자음】 사아주립번아손 영아야좌비등촉【편지를 받아 읽기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읽었다는 말이다.】
【언해역】 나로 하여금 낮에 서서 아이들을 어지러이 시립(侍立)하게 하고, 나로 하여금 밤에 안자서 불을 허비하게 하네.
*시 구절 해석 : “나로 하여금 낮에 일어나 손자들을 번거롭게 했고, 나로 하여금 밤에 앉아 등불을 낭비하게 했지.”라는 뜻으로, 반가운 편지가 와서 밤낮 가리지 않고 읽어 아이들을 귀찮게 하고 등불을 많이 썼다는 말이다.

憶子初 주090)
위(尉)
교위(校尉). 한나라 때 설치된 관직 이름으로, 군대의 부장(副將)에 해당한다. 직무에 따라 무기교위(戊己校尉), 중루교위(中壘校尉), 등의 명칭이 붙여졌다. 한나라 이후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장관을 일컫는 칭호로 쓰이기도 했다. 당나라 이후 지위가 점점 약해졌다.
永嘉 주091)
영가(永嘉)
①영가현(永嘉縣). 절강성(浙江省) 온주시(温州市) 일대를 관할하던 현. ②영가군(永嘉郡). 동진(東晋) 때 설치된 군으로 나중에는 온주시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紅顏 주092)
홍안(紅顏)
붉고 윤이 나는 얼굴. 미인의 아름다운 얼굴.
白面 주093)
백면(白面)
①희고 밝은 얼굴. ②백면서생(白面書生)을 줄인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花映肉

그듸 주094)
그듸
그대. 15세기에 ‘그듸, 그디, 그’가 쓰였는데 점차 ‘그’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처 주095)
처
처음에. 처+. ‘처’[初]은 ‘첫/’에 접미사 ‘엄’이 결합한 파생명사. ‘처엄’(번소9:43)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처음’(마경 상:6ㄴ)으로 바뀌어 감. ‘처엄〉처음’은 유추적 변화이다. ¶처 : 初發聲은 처 펴아 나 소리라〈훈언 3ㄴ〉. 天子ㅣ 처믜 시름왼 들 시고(天子初愁思)「洛陽」〈두시 5:18ㄱ〉. 처엄 : 믈읫 이거시 그 처엄의 어디디 아니홈이 업서〈소언 사:1ㄱ〉.
永嘉애 尉 외야 주096)
외야
되어. 외-+야.
저글 주097)
저글
적을. 적[時]+을.
호니 주098)
호니
생각하니. #-+오+니. 15세기의 ‘사-’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우세하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중간본〉에는 ‘랑니’로 되어 있다. ¶다(생각하다) : 老人 다 나래 호(老人他日愛)「佐還山後寄二首」〈두시 7:39ㄴ〉. 다(사랑하다) : 너비 호매 내 衰朽 어엿비 너기놋다(汎愛惜衰朽)「奉贈李八丈判官」〈두시 8:4ㄴ〉.
紅顔애 주099)
흰. -[白]+ㄴ. 15세기에는 ‘다’와 ‘희다’가 모두 쓰였다. ¶- : 내 百姓 어엿비 너기샤 長湍 건너 제  므지게 예 니다〈용가 50〉. 듕에   주겨 피 마셔 盟誓니(中霄斬白馬)「草堂」〈두시 6:38ㄱ〉. 희- : 諸法 中에 희믜 能히 호 〈법화 3:22ㄴ〉.
 주100)

낯에. [面/顔]+. ¶ : 十一 面은 열 치니 열  觀自在菩薩ㅅ 相 라〈석상 6:44ㄱ〉. 都邑ㅅ 사 여희  슬허니라(都人慘別顏)「洛陽」〈두시 5:18ㄱ〉.
고지 주101)
고지
꽃이. 곶+이.
해 주102)
해
ㅎ+애.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비취엿더니라 주103)
비취엿더니라
비치어 있더라. 비취-+어#잇-+더+니+라.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한자음】 억자초위영가거 홍안백면화영육
【언해역】 그대 처음에 영가(永嘉)에 위(尉) 되어 갈 적을 생각하니, 홍안(紅顔)에 흰 낯에 꽃이 살에 비취어 있더라.
*시 구절 해석 : “그대 처음에 영가의 위가 되어 갈 때를 생각하니, 홍안의 흰 낯에 꽃이 살에 비치었다.”라는 뜻으로, 처음 영가의 위로 갈 때에는 붉고 흰 기운이 얼굴에 감돌아 생기가 넘쳤다는 말이다.

軍符侯印取豈遲 紫燕綠耳行甚速軍符 주104)
군부(軍符)
병부(兵符). 옛날에 군대를 파견할 때 증빙으로 주었던 부절(符節).
 節度符節이오 侯印 주105)
후인(侯印)
후작(侯爵)에게 주던 인신(印信). 후작은 고대의 작위(爵位) 이름. 주(周)나라 이래로 한(漢)나라와 북위(北魏) 명(明)나라 등 몇 개 왕조를 제외하고 대개 모두 5등급의 작위가 있었는데, 그 중 제2등에 해당했다.
은 諸侯印章이라 紫燕 주106)
자연(紫燕)
고대 명마(名馬)의 이름.
緑耳 주107)
녹이(綠耳)
준마의 이름. 주목왕(周穆王)의 팔준마(八駿馬)의 하나.
 良馬名이니 比道州ㅅ 超逸之才다】

將軍ㅅ 符節 주108)
부절(符節)
돌이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부신(符信). 주로 사신이 가지고 다니던 물건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신표로 사용했다. 부계(符契).
와 諸侯의 印을 어두미 주109)
어두미
얻음이. 얻+우+ㅁ+이.
엇뎨 주110)
엇뎨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더듸리오 주111)
더듸리오
더디리오? 더디겠는가? 더듸-+리+오. ‘-오’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한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紫燕과 綠耳왜 녀가미 주112)
녀가미
감이. 녀-+어#가-+ㅁ+이. 거성인 ‘·가(거성)’가 명사형 어미 ‘옴’을 만나면 상성인 ‘:감(상성)’이 된다. 이와 같이 15세기에는 /ㅏ, ㅓ, ㅗ, ㅜ/ 뒤에 ‘-오/우-’가 결합되면, ‘-오/우-’는 나타나지 않고 성조가 바뀐다.
甚히  주113)

빠른. -[迅]+ㄴ. ¶- : 點 더우믄 가지로 니라〈훈언 14ㄴ〉. 블근 桂樹엔 과 서리왜 고(丹桂風霜急)「有感五首」〈두시 5:15ㄱ〉.
도다 주114)
도다
듯하도다. ++도+다. 15세기 국어에서는 폐쇄음 받침과 양순파열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사이에서 ‘’가 생략된다.

【한자음】 군부후인취기지 자연록이행심속【 ‘군부(軍符)’는 절도사의 부절이고, ‘후인(侯印)’은 제후의 인장이다. ‘자연녹이(紫燕緑耳)’는 명마(名馬)의 이름이니, 도주(道州)자사의 아주 뛰어난 자질을 비유했다.】
【언해역】 장군(將軍)의 부절(符節)과 제후의 인(印)을 얻음이 어찌 더디리오? 자연(紫燕)과 녹이(綠耳)가 감이 심히 빠른 듯하도다!
*시 구절 해석 : “장군의 부절과 제후의 인장 얻음이 어찌 더디겠는가, 자연과 녹이가 달림에 몹시도 빠르다.”라는 뜻으로, 머지않아 승진하여 절도사와 후작으로 발탁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말이다.

聖朝尙飛戰闘塵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1ㄴ

濟世宜引英俊人

聖朝애 오히려 주115)
오히려
오히려. 오히+려. ‘-려’는 ‘새려’의 ‘-려’와 같은 부사화접미사이다. 『두시언해』에서 ‘오히려’는 주로 ‘尙, 猶’ 등의 번역으로 쓰인다. ‘猶’의 번역으로 쓰인 ‘’는 ‘아직’, ‘지금도 역시’의 의미로 어떤 일이나 상태가 끝나지 아니하고 지속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오히려 : 오히려 太白山ㅅ 누늘 보노니(猶瞻太白雪)「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사호맷 주116)
사호맷
싸움의. 사호+오+ㅁ+애+ㅅ. ‘사호-’는 원래 ‘싸호-’로 『두시언해』는 각자병서 표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드트리 주117)
드트리
드틀이. 띠끌이.
니 주118)
니
나니. -[飛]++니.
時世 거느리츄멘 주119)
거느리츄멘
구제함에. 거느리-+치+우+ㅁ+에+ㄴ. ‘거느리치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거느리치- : 엇뎨 時節 거느리츌 謀策이 업스리오마(豈無濟時策)「遣興五首」〈두시 3:58ㄱ〉. 世 거느리츄멘 그듸내 맛니(濟世宜公等)「寄彭···三十韻」〈두시 20:38ㄴ〉.
英俊 사 주120)
사
사람을. 사+.
주121)
끌어. 영입하여. 혀-[引]+∅.
미 주122)
미
씀이. -[用]+우+ㅁ+이. 『두시언해』는 병서 표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스-’로 표기되었다. 15세기의 ‘-’는 ‘사용하다, 맛이 쓰다’ 등의 의미로 쓰이고, ‘쓰-’는 ‘글을 쓰다, 모자를 쓰다’의 의미로 쓰였다.
맛니라 주123)
맛니라
마땅하다. 맛#-+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중간본〉에는 ‘맛당니라’로 되어 있다.

【한자음】 성조상비전투진 제세의인영준인
【언해역】 성조(聖朝)에 오히려 싸움의 티끌이 나니, 시세(時世)를 구제함엔 영준(英俊)한 사람을 당겨 씀이 마땅하다.
*시 구절 해석 : “성조에 오히려 싸움의 먼지가 날리니, 세상을 구제함에 마땅히 영준한 사람을 쓸 것이다.”라는 뜻으로, 태평한 시대라지만 아직 전란이 끊이지 않으니,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인재를 등용할 때 반드시 쓰이리라는 말이다.

黎元 주124)
여원(黎元)
여현(黎玄). 여민(黎民). 일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
愁痛會蘇息 주125)
소식(蘇息)
휴양(休養)하며 편히 쉼. 〈표준〉에는 ‘막혔던 숨통이 트이면서 숨을 돌려 쉼’으로 되어 있다.
夷狄 주126)
이적(夷狄)
옛날에 동방에 살던 부족을 이(夷)라 하고, 북방에 살던 부족을 적(狄)이라 했다. 보통 화하족(華夏族, 중국 민족) 이외의 부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跋扈 주127)
발호(跋扈)
①세력이 강대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 신하로서 권세를 농락하여 군주(君主)를 범하는 일. 호(扈)는 물 속에 넣어서 고기를 잡는 대나무로 만든 광주리로 큰 고기는 그것을 뛰어 넘어 도망을 치는 데서 유래한 말. ②용맹하고 씩씩함. ③날아오름.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逡廵 주128)
준순(逡巡)
①준순(蹲循). 뒷걸음질 침. 공손히 순종하는 모양. ②사양함. 피함. ③여유 있는 모양. ④조심하고 삼가는 모양. ⑤배회함. 머뭇거림. ⑥질질 끎. 미룸. ⑦망설임. 주저함. ⑧잠깐. 경각(頃刻). 여기서는 ⑤의 뜻으로 쓰였다.
【跋扈 強梁也ㅣ라 言用英俊則民安而冦盜平也ㅣ라】

百姓의 주129)
백성(百姓)의
백성이. 百姓+의. ‘百姓의’는 ‘셜워호미’가 이끄는 내포문의 주어이므로 속격 ‘-의’가 쓰였다.
시름야 주130)
시름야
걱정하여. 근심하여. 시름#+-+야.
셜워호미 주131)
셜워호미
고통스러워함이. 괴로워함이. 서러워함이. 셟-+어#-+오+ㅁ+이. 15세기 국어의 ‘셟다’는 ‘서럽다’의 의미도 있으나 주로 그보다 강한 의미인 ‘고통스럽다, 괴롭다’의 의미로 쓰였다. ¶셟- :  브레 데며 더운 므레 데어 셟거든〈구급방 하:10ㄴ〉. 그 소리 슬허 셟고 이베 피 흘리니(其聲哀痛口流血)「杜鵑行」〈두시 17:5ㄱ〉. 셜워- : 地獄에 모다 苦痛야 種種 셜워 소리와〈법화 6:37ㄴ〉. 忽然히 드로니 슬허 셜워시 詔書ㅣ 聖明朝애  리도다(忽聞哀痛詔 又下聖明朝)「收京三首」〈두시 5:7ㄴ〉.
모로매 주132)
모로매
모름지기.
蘇息리로소니 주133)
소식(蘇息)리로소니
소식(蘇息)할 것이니. 편히 쉴 것이니. 蘇息#-+리+도+소+니.
夷狄의 주134)
이적(夷狄)의
이적의. 오랑캐의. 夷狄+의.
외요 주135)
외요
발호함은. 대적함은. -+이+오+ㅁ+. ‘외다’는 ‘다’의 사동사이다. 그런데 『능엄경언해』에는 ‘다’가 동사로 쓰인 예도 있다. ¶- : 善財 이 因야 普賢 諸願行海 자 普賢과 오며 諸佛와 오니라〈법화 7:190ㄱ〉. 智慧왼 匠도 엇게 디 몯리로다(哲匠不比肩)「陳拾遺故宅」〈두시 3:64ㄴ〉. - : 이런로 세 비 잇니 나히 열헤 호 브터 열히 百애 며 百이 千에 야 千二百이 이니 六根이 各各 니라〈능엄 4:95ㄴ-96ㄱ〉. 외- : 다 나라히 와 보차거나 도기 외어나 야도〈석상 9:24ㄴ〉. 되 세  드러 외더니(胡虜三年入)「玉腕騮」〈두시 17:34ㄴ〉.
갓 주136)
갓
헛되이. 한갓. ¶(거저) : 香 갓 옷곳 것 분 아니라〈석상 13:39ㄱ〉. 엇뎨 갓 高祖ㅅ 聖德 니리오(豈惟高祖聖)「述古三首」〈두시 3:56ㄴ〉. (헛되이) : 갓 受苦ㅣ 더으고 간대옛 머즌 이  미리라〈석상 20:12ㄴ〉. 챗 玉  바 넉시 갓 도라오놋다(環佩空歸月夜魂)「詠懷古跡三首」〈두시 3:68ㄴ〉.
머므럿도다 주137)
머므럿도다
머물러 있도다. 머믈-[停]+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한자음】 여원수통회소식 이적발호도준순【 ‘발호(跋扈)’는 강량(強梁)함이다. 영준한 사람이 쓰이면 백성이 안정되고 도적떼들이 평정되리라는 말이다.】
【언해역】 백성이 염려하고 고통스러워함이 모름지기 소식(蘇息)할 것이니, 이적(夷狄)의 발호함은 헛되이 머물러 있도다!
*시 구절 해석 : “백성들이 시름하여 고통 받을 때 편안히 쉬게 될 것이고, 오랑캐가 발호하려다가 한갓 머뭇거릴 것이다.”라는 뜻으로, 그가 나옴으로써 백성들의 고통도 사라지고 오랑캐의 침입도 멈춰질 것이라는 말이다.

授鉞築壇聞意旨 頹綱漏網期彌綸 주138)
미륜(彌綸)
두루 망라한다는 뜻. 『주역』 계사전상(繫辭傳上)에서 “역(易)은 천지와 똑같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를 망라[彌綸]한다.”라고 했다.
【髙祖ㅣ 築壇고 拜韓信 주139)
한신(韓信)
?~기원전 196. 전한 초기 회음(淮陰) 사람. 진이세(秦二世) 2년(기원전 208) 항량(項梁)과 항우(項羽)를 따라 낭중(郞中)이 되었지만 중용되지 못했다. 한왕(漢王) 유방(劉邦)에게 망명하여 연오(連敖)와 치속도위(治粟都尉)에 임명되었다. 소하(蕭何)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추천으로 대장군에 올랐다. 유방에게 동쪽으로 향해 천하를 도모할 것을 건의하고, 군대를 이끌고 위(魏)와 대(代)를 격파한 뒤 연(燕)을 함락시키고 제(齊)를 취했다. 한나라 4년(기원전 203) 상국(相國)에 임명되고, 다음 해 제왕(齊王)이 되었다. 이어 유방과 함께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포위해 죽였다. 전한이 성립되자 초왕(楚王)이 되고, 하비(下邳)에 도읍을 정했다. 그러나 한(漢) 제국의 권력이 확립되자 차차 밀려나, 누군가 그가 모반을 꾀한다고 고발하니 한고조(유방)가 운몽(雲夢)으로 외유를 나온 것처럼 꾸며 체포하고 6년(기원전 201) 회음후(淮陰侯)로 강등되었다. 고조 10년(기원전 197) 진희(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몰래 내통하여 호응하려고 했는데 사인(舍人)이 그가 병사를 일으켜 여후(呂后)와 태자(太子)를 습격하려 한다고 고발해 버렸다. 여후와 상국 소하의 계략에 걸려 장락궁(長樂宮)으로 유인당한 뒤 살해당했다.
爲大將니 此 言將命道州將帥之事也ㅣ라 彌 徧이오 綸은 理也ㅣ라】

節鉞 주140)
절월(節鉞)
①부절(符節)과 부월(斧鉞). 옛날 중국에서 임금이 부임하는 절도사나 정도(征途)에 오르는 장군에게 징표로 주던 물건. ②조선시대 관찰사나 유수(留守), 병사(兵使), 수사(水使), 통제사(統制使), 대장(大將) 등이 부임할 때 임금이 내어 주던 부절과 부월. 절(節)은 수기(手旗)와 같은 신표이고, 월(鉞)은 도끼처럼 만든 것으로 생살권(生殺權)을 상징했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맛디며 주141)
맛디며
맡기며. -+이+며. ‘맛디-’는 ‘-’의 피동사이다. ¶- : 麗運이 衰거든 나라 맛시릴 東海ㅅ  져재 니〈용가 6〉. 宗臣 기틴 詔命 맛도 切當히 니라(宗臣切受遺)「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ㄱ〉. 맛디- : 자내 지믈 어마님 맛디시고 부러 디여 여슷 里 가시니〈석상 3:37ㄴ〉. 鐵鉞을 맛뎌 親賢이 가고 집을 갑게 라 시논 詔書 머리 시놋다(受鉞親賢往 卑宮制詔遙)〈두시 5:15ㄱ〉「有感五首」 / 그 일훔난 王 자바 도라와 목 야 轅門의 맛듀라(虜其名王歸 繫頸授轅門)「前出塞九首」〈두시 5:29ㄱ〉.
壇塲 실 주142)
실
쌓으실. -[築]+시+ㄹ. 『두시언해』는 각자병서로 표기되던 어휘를 평음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가 아닌 ‘-’로 표기된 것이다. ¶-/- : 여러 담 리와 손 도으리 블러다가 담 라〈번박 10ㄱ〉. 城 사 白帝예 븓고(築城依白帝)「西山三首」〈두시 5:10ㄱ〉.
들 주143)
들
뜻을. +을.
듣노니 주144)
듣노니
들으니. 듣-[聞]+++오+니. ‘’은 ‘ㄷ’이나 ‘ㅈ’ 받침의 뒤에서 ‘’으로 쓰이고, 모음 등의 유성음 뒤에서는 ‘’으로 쓰이며, 나머지 경우에는 ‘’으로 쓰인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 : 天神이 바블 받거늘 아니 좌실〈석상 3:38ㄱ〉. 圖로 님금 받곡(圖以奉至尊)「鳳凰臺」〈두시 17:2ㄱ〉 /予는 내 시논 디시니라〈훈언 2ㄴ〉. 구틔여 玄圃애 뫼디 몯나(不必陪玄圃)「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 곳비 비흐며 香 퓌우고 길 잡거니 미조거니 야 려오더라〈석상 11:13ㄱ〉. 時節이 危難 저긔 님 恩私 갑고져 야 늘거도 能히 마디 몯노라(時危思報主 衰謝不能休)「江上」〈두시 3:39ㄴ〉.
믈어딘 주145)
믈어딘
무너진. 믈어디-+ㅣ+ㄴ. ¶믈어디- : 그 뫼히  것도 업시 믈어디거늘〈석상 6:31ㄴ〉. 늘구메 正히  믈어디유라(衰颯正摧顏)「秦州雜詩十七首」〈두시 13:38ㄱ〉.
網紀와 싀여디 주146)
싀여디
새는. 새어지는. 벌어진. 싀-[漏]+어#디-+. ‘싀다’와 ‘다’는 ‘새다’의 뜻인데, ‘싀-’에 ‘-어디다’가 붙은 ‘싀어디-’도 ‘새다’의 의미로 쓰였다. ‘-’의 용례는 15세기 문헌에 보이지만 ‘싀-’의 용례는 15세기 문헌에는 보이지 않으며 16세기 이후 문헌에 보인다. ‘싀여디-’의 용례는 15세기 문헌 중에서는 『두시언해』에만 보인다. ¶싀- : 偸 가져 禪 닷고 싀 잔 욤 求홈 고〈선가 35ㄴ〉. 漏 믈 싈 루〈신유 하:24ㄴ〉. - : 바 믈  굼긔 드러 이셔〈석상 13:10ㄴ〉. 臥床마다 지비 여  히 업스니(床床屋漏無乾處)「茅屋···破歌」〈두시 6:42ㄴ〉. 싀여디- : 비츨 싀여딜 거슨 버듯가지 잇도다(漏洩春光有柳條)「臘日」〈두시 11:36ㄴ〉. 바횟 굼긔 마나 므리 싀여디놋다(嵌竇潛洩瀨)「萬丈潭」〈두시 13:17ㄴ〉. 온 묏고 믌겨리 싀여디놋다(百容漏波濤)「臨邑舍弟書ㅣ~用寬其意노라」〈두시 13:28ㄱ〉. 그므레 싀여뎌 殊異 恩惠 辱외에 호라(漏網辱殊恩)「建都十二韻」〈두시 13:33ㄴ〉.
그므를 다 다료 期望노라 주147)
기망(期望)노라
기망(期望)하노라. 바라노라. ‘기망(期望)하다’는 국어사전에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람’이라 하였다.

【한자음】 수월축단문의지 퇴강루망기미륜【고조가 단을 쌓고 한신을 대장에 임명했으니, 이것은 장차 배규가 도주를 다스리는 장수의 일을 명령받으리라는 말이다. ‘미(彌)’는 두루라는 뜻이고, ‘윤(綸)’은 다스리는 것이다.】
【언해역】 부절(符節)과 부월(斧鉞)을 맡기며 단장(壇塲) 쌓으실 뜻을 들으니, 무너진 기강[網紀]과 벌어진 그물을 다 다스림을 바라노라.
*시 구절 해석 : “절월(節鉞)을 받으며 단장(壇場) 쌓을 뜻을 듣으니, 무너진 기강과 새는 그물을 다스림을 기약한다.”라는 뜻으로, 장군의 징표를 받을 뜻이 이뤄지면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을 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말이다.

郭欽上書見大計 劉毅荅詔驚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2ㄱ

【晉ㅅ 郭欽 주148)
곽흠(郭欽)
?~?. 진(晉)나라 무제(武帝) 때 사람. 시어사(侍御史)를 지냈다. 일찍이 황제에게 글을 올려 천하를 다스릴 계책을 전달했다.
이 上䟽武帝야 言夷狄의 雜居中國之患다 劉毅 주149)
유의(劉毅)
?~285. 서진(西晉) 동래(東萊) 액현(掖縣) 사람. 자는 중웅(仲雄)이다. 젊어서는 청절을 기르는 데 힘썼다. 처음에는 군공조(郡功曹)에 올랐다. 진 무제 때 거듭 승진하여 상서랑과 사예교위를 역임했다. 호강(豪强)한 무리들을 단속하니 경사(京師)가 조용해졌다. 성격이 강직해서 일찍이 무제에게 매관(賣官)하는 일을 충간했고, 또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를 폐지할 것을 건의하면서 “상품에는 한문이 없고, 하품에는 세족이 없습니다(上品無寒門 下品無勢族)”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핵해 폄축(貶逐)할 이를 자신의 친족에서부터 시작했다.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치사(致仕)하고 죽었다.
ㅣ 對晉武帝 주150)
진무제(晋武帝)
236-290. 사마염(司馬炎). 진나라의 황제(재위, 266-290). 하내(河內) 온현(溫縣) 사람으로, 자는 안세(安世)다. 사마소(司馬昭)의 아들이다. 처음에 위(魏)나라에서 벼슬해 북평정후(北平亭侯)에 봉해졌다. 급사중(給事中)을 지냈다. 위원제(魏元帝) 함희 2년(265) 아버지를 이어 상국(相國)과 진왕(晉王)이 되었다. 오래지 않아 위나라를 대신해 즉위하고 진왕조를 건립했다. 함녕 6년(280) 오(吳)나라를 멸하고 전국을 통일했다. 종실(宗室) 사람들을 두루 제후에 봉하고 사족(士族) 문벌제도를 강화시키는 한편 새로 만든 율령(律令)을 반포하고 제도를 제정하면서 관품(官品)의 등급과 점전(占田) 수량 등을 정했다. 만년에는 일락(佚樂)에 빠져 멍청한 아들 사마충(司馬衷)을 태자로 삼는 등 죽은 뒤에 벌어질 화근을 양성했다. 묘호는 세조(世祖)다.
桓靈 주151)
환령(桓靈)
후한 말의 환제(桓帝)와 영제(靈帝)를 함께 부르는 말. 환제(132~167)는 유지(劉志)를 가리킨다. 장제(章帝)의 증손이고, 여오후(蠡吾侯) 유익(劉翼)의 아들이다. 처음에는 양태후(梁太后)가 임조(臨朝)하여 양기(梁冀)가 정권을 잡았다. 연희 2년(159) 환관 단초 등이 양기를 죽이자 단초 등 5사람을 열후(列侯)에 봉했다. 그러자 환관들이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9년(166) 세가대족(世家大族)들이 태학생들과 연합하여 환관 정치를 반대하자 이응 등 2백여 명을 체포했다. 이것이 당고지화(黨錮之禍)다. 21년 동안 재위했다. 영제(156~189)는 유홍(劉弘)이다. 장제(章帝)의 현손이다. 환관 조절 등을 중용하고 이응 등 백여 명을 포살(捕殺)하는 등 당고(黨錮)의 재앙이 다시 일어났다. 공개적으로 관직에 가격을 매겨 팔고 토지세를 늘리는 등 재원을 모아 궁실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환관들이 횡행했다. 중평(中平) 원년(184) 황건적(黃巾賊)의 반란이 일어났다. 22년 동안 재위했다.
은 賣官錢入公府 주152)
공부(公府)
①군주(君主)의 창고. ②삼공(三公)의 창고. ③관부(官府). ④저택에 대한 존칭.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고 陛下 주153)
폐하(陛下)
①제왕(帝王)의 궁전에 있는 계단 아래를 가리키는 말. ②제왕에 대한 존칭.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 賣官錢入私門시니 殆不如桓靈이니라 此 勉道州의 如二人之輔道天子也ㅣ라】

郭欽이 上書야 큰 혜아료 주154)
혜아료
헤아림을. 혜아리-[數]+오+ㅁ+.
나토고 주155)
나토고
나타내고. 낟-+호+고. ‘나토다’는 ‘낱다’의 사동사이다. ‘낱-[顯]’이 ‘낟-’으로 쓰이는 것은 8종성법의 제약에 따라 제1음절 말음 ‘ㅌ’을 동일한 서열인 설음의 전청자 ‘ㄷ’이 쓰인 것이다. ¶낱-/낟- : 體ㅣ 名을 因야 낟고 名이 體 브터 이니〈영가 하:93ㄴ〉. 달혀 플 라 그즌 활씨우를 니 奇異호미 절로 나다나니라(煎膠續弦奇自見)「病後···贈歌」〈두시 3:49ㄴ〉. 나토- : 그저 더러 거긔셔 微妙 法을 나토며〈석상 13:33ㄴ〉. 더위 자바셔 셴 머리 나토라(執熱露白頭)「毒熱寄簡崔評事十六弟」〈중간두시 10:21ㄴ〉.
劉毅 詔書 주156)
조서(詔書)
임금의 선포문이나 명령을 관료나 일반 백성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 조(詔).
 對荅야 群臣 놀래이니라 주157)
놀래이니라
놀라게 함이다. 놀래킴이다. 놀라-[驚]+ㅣ+니+라. 동사 어간에 연결어미 ‘-아’가 결합된 형태에 다시 계사가 결합된 형태로 『두시언해』에서는 이러한 형태가 더러 쓰였다.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놀라- : 王이 놀라샤 讚嘆야 니샤〈석상 3:4ㄱ〉. 親 밧 사미 늙고 여위요믈 놀라니(所親驚老瘦)「喜達行在所三首」〈두시 5:3ㄱ〉. 놀래- : 哀駘 風을 고 惡으로 天下 놀래다 니〈법화 2:28ㄱ〉. 옷기슬글 여 魏ㅅ 님그믈 놀래니(牽裾驚魏帝)「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5ㄱ〉.

【한자음】 곽흠상서견대계 유의답조경군신【진나라 사람 곽흠(郭欽)이 무제(武帝)에게 상소하여 오랑캐가 중국에 섞여 사는 걱정거리를 말했다. 유의(劉毅)가 진 무제(晉武帝)의 물음에 대답하여, “환공(桓公)과 영공(靈公)은 관직을 팔아 그 돈을 공부에 넣었고, 폐하는 관직을 팔아 그 돈을 사사롭게 넣었으니, 아마도 환공(桓公)이나 영공(靈公)에 미치지 못하는 듯합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도주자사가 두 사람처럼 천자를 보좌하는 데 힘쓰라는 말이다.】
【언해역】 곽흠이 상서(上書)하여 큰 헤아림을 나타내고, 유의가 조서(詔書)를 대답하여 군신을 놀라게 하네!
*〈중간본〉에는 ‘晉ㅅ 郭欽이’가 ‘晉人郭欽이’로 되어 있다.
*시 구절 해석 : “곽흠(郭欽)이 글을 올려 큰 계획을 보이고, 유의(劉毅)가 조서에 대답하여 신하들을 놀라게 했네.”라는 뜻으로, 이 두 사람처럼 임금을 잘 섬겨 성군(聖君)이 되게 하라는 당부의 말이다.

他日更僕語不淺 明公 주158)
명공(明公)
옛날에 높은 지위에 있는 신하에 대한 존칭.
論兵氣益振【僕은 大僕 주159)
태복(太僕/大僕)
주(周)나라 때의 관직(官職) 이름. 왕명(王命)을 전달하거나 출입할 때 시종(侍從)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이니 君이 燕朝 주160)
연조(燕朝)
옛날에 천자(天子)나 제후(諸侯)가 노문(路門) 안의 노침(路寢)에서 신하들을 만나는 것. 또 천자나 제후가 정치를 한 뒤 휴식하는 장소를 말하기도 한다.
則正立야 掌𢷤(擯)相 주161)
빈상(擯相)
빈객(賓客)을 안내하며 주인을 돕는 책임을 맡은 사람.
니 爲乆將倦故로 使人更代也ㅣ니 言他日道州ㅣ 入覲 주162)
입근(入覲)
①제후(諸侯)가 가을에 입조(入朝)하여 천자(天子)를 만나는 일. ②지방관원(地方官員)이 입조하여 제왕(帝王)을 만나는 일.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敷奏 주163)
부주(敷奏)
진주(陳奏). 임금에게 일의 경과나 결과에 대해 보고(報告)하는 일.
也ㅣ니라】

다 주164)
다
다른. 다-[異]+ㄴ. ‘다-’는 ‘불규칙용언’ 중 이른바 ‘ㄹ‧ㅇ’ 활용을 한다.
나래 주165)
나래
날에. 날[日]+애.
太僕 서르 라셔 주166)
서르 라셔
서로 갈아서. -[替]+아+셔. ¶- : 류 잘  伎女 五百 야 서르 라 뫼게 시니〈석상 3:5ㄱ〉. 부러  들구를 두어 라 예 드노라(故著浮槎替入舟)「江上···短述」〈두시 3:31ㄴ〉.
말호 주167)
말호
말씀함을. 말#-+오+ㅁ+. 〈원각경언해〉(1465)부터는 각자병서의 폐지로, 고유어의 경우 ‘각자병서’가 ‘평음’ 표기로 바뀌기 때문에 ‘말’은 ‘말’으로 표기된다. ¶말 : 詰難 말 서르 힐훠 겻굴 씨라〈석상 3:34ㄱ〉. 말 : 말 士  便安케  謀策이오(辯士安邊策)「西山三首」〈두시 5:11ㄱ〉.
녇게 주168)
녇게
옅게. 녙-[淺]+게. 15세기 문헌에 ‘냩-’은 보이지 않으며 16세기에 ‘옅-’, 17세기에 ‘옅-’과 ‘얕-’이 쓰였다. 〈중간본〉에는 ‘엳게’로 되어 있다. ¶녙- : 功德을 너비 나토샤 功 녀트며 기푸믈 조차 暫持며〈석상 19:8ㄱ〉. 나 漏刻 傳傳로 브르 소리 녀트니(晝刻傳呼淺)「晩出左掖」〈두시 6:15ㄱ〉. 여트- : 기픠 여틔 기니 댜니 되디 몯리라〈번박 67ㄴ〉. 얕- : 독긔 야며 기푸믈 변기 오로 이 예 인니라〈두창 상:23ㄴ〉.
아니리니 주169)
아니리니
아니하리니. 아니할 것이니. 아니-+리+니. ‘녇게 아니리니’는 ‘-게 -’ 구성의 ‘아니’ 부정과 같은 형식을 띠고 있지만 여기서는 ‘녇게’가 동사의 연결형이라기보다는 부사처럼 쓰이고 있다. 모든 ‘-게 -’ 구성이 사동으로 볼 수 없는 좋은 예가 된다.
明公 주170)
명공(明公)
명공이. 明公+. 후행하는 ‘氣運’을 수식하는 내포절의 주어이므로 주격이 아닌 속격을 취하였다.
兵事 議論 氣運이 더욱 주171)
더욱
더욱. 『두시언해』에서는 ‘더옥’도 쓰인다. 〈중간본〉에는 ‘더옥’으로 되어 있다. ¶더욱 : 도라 드르샤 더욱 시름야 더시다〈석상 3:19ㄴ〉. 主將이 벼스리 더욱 노니(主將位益崇)「後出塞五首」〈두시 5:32ㄴ〉. 더옥 : 시러곰 믈을 머기디 말고 더옥 쉴 곧 갓가와셔 금긔 홀 디니라〈마경 상:42ㄱ〉. 閑散 해 더옥 벼개 노피 벼요니(散地逾高枕)「大歲日」〈두시 11:2ㄱ〉.
니르왇놋다 주172)
니르왇놋다
일어나는구나. 닐-[起]+왇++옷+다. ‘니르-’는 ‘닐-’에 사동접미사 ‘-으-’가 결합된 사동사이다. ‘-왇-’은 〈능엄경언해〉(1461) 이전 문헌에는 대개 ‘--’으로 표기된다. ¶니르- : 觀音은 소릿 드트를 조차 妄量로 知見 니르도 아니실〈석상 21:2ㄱ〉. 니르왇- : 저희 가 티고 四兵을 니르왇디 아니〈석상 11:36ㄱ〉. 뭀 小人이 다  니르와니라(群小起異圖)「草堂」〈두시 6:37ㄴ〉.

【한자음】 타일경복어불천 명공론병기익진【 ‘복(僕)’은 대복(大僕)이니 임금이 연조(燕朝)하면 바르게 서서 빈상(擯相)을 관장했으니, 오래 하면 피곤해지려고 하기 때문에 사람을 시켜 대신하게 했다. 도주(道州)자사가 입근(入覲)하여 부주하는 것을 말한다.】
【언해역】 다른 날에 태복(太僕)을 서로 갈아서 말씀함을 옅게 아니하리니, 명공(明公)이 병사(兵事)를 의논하는 기운이 더욱 일어나는구나!
*시 구절 해석 : “다른 날에 태복(大僕)이 되어도 말하는 것이 엷지 아니하리니, 명공(明公)이 병사를 논의하는 기운이 더욱 떨치리라.”라는 뜻으로, 나중에 궁궐에 들어가 구실을 맡았을 때면 말이 당당할 것이고 신하들과 함께 군사 일을 논의할 때면 그 기세가 더욱 떨치라는 말이다.

傾壺簫管 주173)
소관(簫管)
퉁소와 대관(큰 관악기)을 배열하는 일. 일반적으로 관악기(管樂器)를 가리킨다.
黑白髮 儛劔 주174)
무검(儛劍)
칼을 들고 추는 춤을 가리키는 말.
霜雪吹靑春【儛ㅣ 與舞同다 此 指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2ㄴ

言道州다】

酒壺 주175)
주호(酒壺)
술이 가득 찬 단지[壺].
기우리고 주176)
기우리고
기울이고. 기울-[仄]+이+고. ¶기울- : 긷 불휘 석고 보히며 리 기울어늘〈월석 12:21ㄴ〉. 횟도로 힐훠  盖ㅣ 기울오(回回偃飛盖)「揚旗」〈두시 5:48ㄱ〉. 기우리- : 귀 기우리면 곧 드르며〈금삼 3:20ㄴ〉. 번 보매 能히 財産을 기우리니(一見能傾産)「李監宅二首」〈두시 7:34ㄱ〉.
주177)
저. ‘뎌〉져〉저’의 변화 과정을 겪는다. ‘이, 그, 뎌’는 화자, 청자, 대상 사이의 심리적 거리에 의해 결정되어 쓰인다. ¶뎌 : 뎌 수프레 잇 벌에 토 다 깃거〈석상 3:33ㄱ〉. 뎌 軍이 우리게 쵸미 외도다(彼軍爲我奔)「前出塞九首」〈두시 5:29ㄱ〉. 다가  라치 져 부쳐을 아니 렴면〈권념 7ㄴ〉. 져 극낙셰계를 가고져 발원을 아니고〈염불보권문 5ㄴ〉.
피리 부로매 주178)
부로매
붊에. 불-[吹]+오+ㅁ+애.
주179)
센. 셰-[白]+ㄴ.
머리 도로 검니 주180)
검니
검어지니. 검-[黑]++니. ‘검다’는 형용사이지만 여기서는 ‘검어지다’의 뜻인 동사로 쓰였으며, 여기에 현재 지각의 ‘--’가 연결되었다.
주181)
칼. 15세기의 ‘갈ㅎ’은 ‘ㅎ말음체언’이다.
가지고 춤 추멘 주182)
추멘
춤엔. 츠-[舞]+우+ㅁ+ㄴ. ¶그 後에 놀애 브르며 춤 츠며 담야 남진 어르기 며〈월석 1:44ㄴ〉. 意氣로 곧 大闕에 가 춤 츠고(意氣卽歸雙闕舞)「承聞···口號絕句十二首」〈두시 5:25ㄱ〉.
서리와 눈괘 주183)
서리와 눈괘
서리와 눈이. 서리+와 눈+과+ㅣ. ‘서리와 눈’은 ‘백발’을 가리킨다. 중세국어에서는 체언을 나열할 때 그 뒤에 공동격조사 ‘와/과’로 마지막 체언까지 연결한 다음에 다시 적절한 격조사를 연결한다.
靑春에 불이 주184)
불이
불리는. 불-[吹]+이+. ‘불이-’는 ‘불-’의 사동사이다. ¶불이- :  깃거 류오 붑 티며 쥬라 불이고 가더니〈석상 23:57ㄱ〉. 맷 箏은 玉 기애셔 불이고(風箏吹玉柱)「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두시 6:28ㄱ〉.
도다 주185)
도다
듯하도다. #-+도+다.

【한자음】 경호소관흑백발 무검상설취청춘【무(儛)는 무(舞)와 통한다. 이것은 도주(道州)자사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언해역】 술독을 기울이고 저 피리 붊에 센 머리 도로 검으니, 칼 가지고 춤 춤엔 서리와 눈이 청춘에 불리는 듯하도다.
*〈중간본〉에는 ‘儛釼霜雪吹靑春’으로 되어 있다.
*시 구절 해석 : “술독을 기울이고 피리 불자 백발이 도로 검어지고, 칼 가지고 춤을 춤에 서리와 눈이 청춘에 부는 듯하다.”라는 뜻으로, 술 마시는 자리의 흥취가 높아져 늙은이가 젊어지고 칼춤을 출 때면 하얀 머리카락마저 청춘이 된다는 말이다.

宴筵曾語蘇季子 後來傑出雲孫比【蘇季子 주186)
계자(季子)
전국시대(戰國時代) 낙양(洛陽) 사람 소진(蘇秦)을 가리키는 말. 소진이 일찍이 외출해서 유세(遊說)했는데, 황금이 다 떨어지자 곤궁해져 귀가하니 집안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었다. 나중에 육국(六國)의 상인(相印)을 차고 낙양을 지나게 되자 형제와 형수들이 부끄러워 감히 우러러보지 못했다. 소진이 형수에게 묻기를 “전에는 거만하더니 오늘은 왜 이리 공손하시오?” 하니, 형수가 “보니 계자의 지위가 높고 황금이 많기 때문이죠(見季子位高金多也)”라고 대답했다. 일설에는 서진의 자가 계자(季子)라기도 하고, 또는 형수가 ‘작은 아저씨[小叔]’를 일러 계자라 여겼다고 한다.
蘇秦 주187)
소진(蘇秦)
?~기원전 284. 전국시대 중엽 동주(東周) 낙양(洛陽) 사람. 자는 계자(季子)다. 장의(張儀)와 함께 귀곡자(鬼谷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소계자(蘇季子)’라고 불렀다.
이니 言蘇渙이 爲季子의 雲孫 주188)
운손(雲孫)
멀어진 자손이란 뜻으로, 8대 뒤의 후손을 일컫는 말이다.
也ㅣ라】

이바디던 주189)
이바디던
연회하던. 잔치하던. 이바디[宴]+-+더+ㄴ. ¶이바디 : 간 고대 禮貌 업더니 盖天英氣실 이바디예 머리 좃니〈용가 95〉. 며  이바디 초 得놋다(况得終淸宴)「石硯」〈두시 16:53ㄴ〉. 이바디- : 貴 飮啖과 盛 차바  머그며 사과 다 이바디며 즐겨 호미 可티 아니니〈내훈 1:63ㄴ〉. 그기  말만 수를 사아 매 이바디호 諧和히 다(密沽斗酒諧終宴)「病後···贈歌」〈두시 3:51ㄱ〉.
돗긔셔 주190)
돗긔셔
자리에서. [座]+의+셔.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 : 보라 돗 겨펴 오〈월석 12:30ㄱ〉. 처 돗긔 안조매 슬픈 실와 큰 댓 소리 뮈놋다(初筵哀絲動豪竹)「醉爲···相看」〈두시 3:52ㄴ〉.
蘇季子 일즉 주191)
일즉
일찍이. 참조; 일. ¶일즉 : 알 비록 이쇼매 리디 아니나 일즉 업디 아니홈 아니오〈반야 53ㄱ〉. 일즉 椽吏 외야 三輔애 가 뇨니(曾爲椽吏趨三輔)「峽中覽物」〈두시 3:37ㄱ〉. 일 : 그 어버 졈고 식 업시 일 홀어미 도 주를 에엿비 녀겨〈번소 9:56ㄴ〉. 天山앤 일 화 거렛도다(天山早掛弓)「投贈···二十韻」〈두시 5:41ㄴ〉.
니더니 주192)
니더니
이르더니. 니-[說]+더+니. ‘니-’는 모음어미 앞에서 ‘닐ㅇ-’으로 활용하는 소위 ‘ㄹ·ㅇ’형 불규칙활용 동사이다.
後來예 주193)
후래(後來)예
나중에. 後來+예.
雲孫 等比옛 주194)
등비(等比)옛
견줄만한. 等比+예+ㅅ.
사미 傑出도다

【한자음】 연연증어소계자 후래걸출운손비【소계자(蘇季子)는 소진(蘇秦)이니, 소환(蘇渙)이 소진의 운손(雲孫)이라는 말이다.】
【언해역】 연회하던 자리에서 소계자(蘇季子)를 일찍이 이르더니, 후래(後來)에 운손(雲孫) 견줄 만한 사람이 걸출하도다!
*시 구절 해석 : “연회 자리에서 일찍이 소계자에게 말했나니, 후세에 걸출한 견줄 만한 후손이 나왔다.”라는 뜻으로, 소진의 후손인 소환(蘇渙)이 조상만한 역량을 지녔다는 말이다.

茅齋 주195)
모재(茅齋)
묘재(茆齋). 띠로 지붕을 이은 집. 재(齋)는 보통 서방(書房)이나 학사(學舍)를 말한다.
定王城郭門 藥物楚老漁商市【定王城이 在潭州니 渙의 所居ㅣ라 漁商市 亦在潭州니 甫의 所居ㅣ라】

새지븐 주196)
새지븐
띠집은. 모옥(茅屋)은. 새#집+은. ‘새집’은 『두시언해』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이다. ¶새집 : 하 비 蕭蕭히 새지븨 오래 오니(天雨蕭蕭滯茅屋)「久雨···不至」〈두시 5:35ㄴ〉. 巳公 새집 아래여 어루 곰 새 그롤 지리로다(巳公茅屋下 可以賦新詩)「巳上人茅齋」〈두시 9:25ㄱ〉.
定王 주197)
정왕(定王)
정왕의. 즉, 소환(蘇渙)의.
城郭ㅅ 門에 잇고 藥物은 주198)
약물(藥物)은
약은. 藥物+은. 즉 두보가 담주에 있을 무렵 약을 시장에서 구했음을 알 수 있다.
楚ㅅ 늘근 사 주199)
초(楚)ㅅ 늘근 사
초의 늙은 사람의. 楚+ㅅ 늙-[老]+은 사+. ‘초의 늙은 사람’은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고기 자바 주200)
자바
잡아. 잡-[捕]+아.
 주201)

흥정하는. #-+. 〈중간본〉에는 ‘흥졍’으로 되어 있다. ¶- : 그긔  하아 쇼로 쳔사마 니라〈월석 1:24ㄴ〉.   一萬  로다(淸秋萬估船)「白塩山」〈두시 13:5ㄱ〉.
져제로다 주202)
져제로다
저자이도다. 시장이도다. 져제#이+도+다. ‘로’는 ‘도’가 계사 ‘이’에 후행할 때의 이형태이다.

【한자음】 모재정왕성곽문 약물초로어상시【정왕성(定王城)은 담주(潭州)에 있으니, 소환(蘇渙)이 살던 곳이다. 어상시(漁商市)도 역시 담주에 있으니, 두보가 살던 곳이다.】
【언해역】 띠집은 정왕(定王)의 성곽의 문에 있고, 약물(藥物)은 초(楚)의 늙은 사람의 고기 잡아 흥정하는 저자이도다!
*시 구절 해석 : “띠집은 정왕(定王)의 성곽 문에 있고, 약물은 초 땅 늙은이가 고기 잡아 흥정하는 저자에 있도다.”라는 뜻으로 소환(蘇渙)이 사는 정왕성도 담주(潭州)에 있고, 두보가 약물을 구하던 어상시도 역시 담주에 있다는 말이다.

市北肩輿 주203)
견여(肩輿)
두 사람이 앞뒤에서 메는 가마. 교자(轎子)라고도 한다. 대방상(大方牀)을 쓰는 행상(行喪)에서 좁은 길을 건널 때 잠시 쓰는 간단한 상여(喪輿)를 지칭하기도 한다.
每聯袂 郭南抱甕亦隱几 주204)
은궤(隱几)
궤안(几案)에 기대어 있음. 그리하여 은거(隱居)하는 삶을 말한다.
【漢隂丈人이 抱甕而灌園니라 抱瓮隱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3ㄱ

几 ㅣ 自謂다】

져젯 주205)
져젯
저자의. 시장의. 져제+에+ㅅ. ¶져제 : 艱難커 져제 섭나모 다니〈육조 상:19ㄴ-5〉. 스싀로 닐오 머리 존 거슬 버혀 져제 가 라 杯酒 몃구라(自陳剪髻鬟 鬻市充杯酒)「送重···南海」〈두시 8:55ㄱ〉.
北 녀긔셔 주206)
북(北) 녀긔셔
북녘에서. 북쪽에서. 北 녘+의+셔. ‘東西南北’ 중 ‘西’만 ‘西ㅅ녁’으로 사이시옷을 쓰고 나머지는 쓰지 않는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중간본〉에는 ‘北 녀킈셔’로 되어 있다.
肩輿 타 와 주207)
타 와
타고 와. -[乘]+아 오[來]-+아. ‘-’는 ‘①받다, ②타고 나다, ③영향을 받다, ④나무를 타다, ⑤차를 타다, ⑥가야금을 타다, ⑦불에 타다’ 등의 뜻이 있다. 참고. 오-, 블-, 더위-, 붓그림-, 숨-, 치위-.
每常 매 주208)
매
소매를. 매[袂]+.
니 주209)
니
이어. 닛-[連]+어. ‘이’는 ‘어’의 잘못이다. 〈중간본〉에는 ‘ 니이’로 되어 있다. ¶닛- : 아 나하 나랏 位 닛긔 코져 더시니〈석상 11:30ㄴ〉. 대 니 荊州ㅅ 예(連檣荊州船)「雨三首」〈두시 12:14ㄴ〉.
니 주210)
니
앉으니. 앉-[坐]++니.
城郭ㅅ 南 녀긔셔 주211)
남(南) 녀긔셔
남녘에서. 남쪽에서. 南 녘+의+셔.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중간본〉에는 ‘南 녀킈셔’로 되어 있다.
도 주212)
도
독을. 물동이를. 독[甕]+. ¶독 : 도기 잇거든 고〈순천 113:3〉. 酒盃ㅣ 니 도기 곧 뷔도다(杯乾甕即空)「遣悶奉呈嚴公二十韻」〈두시 19:9ㄴ〉.
아며 주213)
아며
안으며. 안-[抱]+며.
 几 비기노라 주214)
비기노라
의지하노라. 기대노라. 비기-[倚]++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비기- : 이 根과 塵과 識괘 가비건댄 뭇군  서르 브터 비기야〈능엄 5:8ㄱ〉. 七寶几 자샤 紫金山 도샤 다시 와 비기샤 너비 大衆과 阿難려 니샤〈능엄9:41ㄱ〉. 햇 남글 기웃야 도로 비기고(野樹欹還倚)「九日五首」〈두시 11:29ㄴ〉. 햇 남글 기웃야 도로 비기고  핫소리 야 도로 드로라(野樹歌還倚 秋砧醒却聞)「九日五首」〈두시 11:29ㄴ〉.

【한자음】 시북견여매련몌 곽남포옹역은궤【한음장인(漢隂丈人)이 물동이를 안고 정원에 물을 대었다. 물동이를 안고 궤에 숨었다는 것은 두보가 자신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저자의 북쪽에서 견여 타고 와 매양 소매를 이어 앉으니 성곽의 넘쪽에서 물동이를 안으며 또 궤(几)에 기대노라.
*시 구절 해석 : “시장 북녘에서 견여(肩輿)를 타고 와 항상 소매를 이어 앉으니, 성곽 남녘에서 독을 안으며 안석(案席)에 숨었네.”라는 뜻으로, 소환이 은거했을 때의 생활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無數將軍西第成 早作丞相 주215)
승상(丞相)
옛날에 군주를 보좌했던 최고위 행정 장관. 전국시대 진도무왕(秦悼武王) 2년에 처음으로 좌우승상(左右丞相)이 설치되었다. 진나라 이후 각 왕조에서 때로는 존립하기도 했고, 때로는 없애기도 했다. 명나라 홍무 13년(1380) 중서성을 없애고 권한을 육부(六部)에 귀속시켰는데, 이로부터 승상의 제도는 없어졌다.
東山起馬融 주216)
마융(馬融)
79~166. 후한 부풍(扶風) 무릉(茂陵) 사람. 자는 계장(季長)이고, 마엄(馬嚴)의 아들이다. 스승을 정성으로 섬겼고, 경서와 서적에 박통(博通)했다. 처음에 등즐사인(鄧騭舍人)이 되었다. 안제(安帝) 영초(永初) 4년(119) 교서랑(校書郞)이 되어 동관(東觀)의 비서(秘書)를 교정했다. 「광성송(廣成頌)」을 올린 것이 등태후(鄧太后)의 심기를 거슬러 10년 동안 승진하지 못했다가 금고(禁錮)를 당했다. 태후가 죽은 뒤 의랑(議郞)으로 부름을 받아 환제(桓帝) 때 무도(武都)와 남군(南郡)의 태수를 지냈다. 대장군 양기(梁冀)에게 죄를 져 삭방(朔方)으로 쫓겨났다. 사면을 받고 돌아와 의랑에 복직하고, 다시 동관에서 저술에 전념했다. 이런 일로 권세가들에게 감히 거역을 못 하게 되어 양기가 이고(李固)를 탄핵할 때 글의 초안을 잡았고, 또 「서제송(西第頌)」을 지어 찬양하여 뜻 있는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나중에 병으로 사직했다. 재주가 높고 지식이 풍부했으며, 통유(通儒)로 제자만 천여 명에 이르렀다. 노식(盧植)과 정현(鄭玄) 등을 가르쳤다. 『춘추삼전이동설(春秋三傳異同說)』을 짓고, 『효경』과 『논어』, 『시경』, 『주역』, 『삼례(三禮)』, 『상서』, 『열녀전(列女傳)』, 『노자』, 『회남자』, 『이소(離騷)』를 주석했다. 문집 21편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단편만 남아 있다.
이 爲大將軍西第頌니 此 言諸將이 平安史亂이어 賜第扵京師 주217)
경사(京師)
①한 나라의 도읍(都邑)을 가리키는 말. ②천자가 거느린 군대를 가리키는 말. ③조정(朝廷)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也ㅣ라 謝安 주218)
사안(謝安)
320~385. 동진(東晉) 중기 진군(陳郡) 양하(陽夏) 사람. 자는 안석(安石)이다. 젊어서부터 명망이 높았고, 행서(行書)를 잘 썼다. 처음에는 세상에 뜻이 없어 발탁을 받고도 나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회계(會稽)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왕희지(王羲之)와 허순(許詢), 지둔(支遁) 등과 교유하면서 자연의 풍류를 즐기다가 마흔이 넘은 중년에 비로소 중앙정계에 투신했다. 처음에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의 휘하에서 사마(司馬)로 활약했다. 효무제(孝武帝) 때 중서감(中書監)과 녹상서사(錄尙書事)를 지냈다.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진급했고, 제위를 찬탈하려는 환온의 야망을 저지했다. 환온이 죽은 뒤 재상이 되었다. 당시 전진(前秦)이 강성해져 진나라 군대가 연달아 패했다. 태원(太元) 8년(383) 전진왕(前秦王) 부견(苻堅)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비수(淝水)에 주둔했는데, 위세로 강동 일대가 진동했다.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이 되어 동생 사석(謝石), 조카 사현(謝玄)과 함께 이들을 강력하게 방어하여 작전을 지휘했는데, 결국 대승을 거두었다. 건창현공(建昌縣公)에 봉해졌다. 이어 사석 등에게 북정(北征)을 지시해 낙양(洛陽)과 청주(靑州), 연주(兗州) 등을 수복하고, 양주(揚州)와 강주(江州), 형주(荊州) 등 15주(州)의 군사(軍事)를 맡았다. 당시 회계왕(會稽王) 사마도자(司馬道子)가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배척을 당해 외직으로 나가 광릉(廣陵)을 지켰다. 얼마 뒤 병사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이 起扵東山니 亦言當時之相다】

수업시 주219)
수업시
수없이. 수[數]#없-+이. 원문의 ‘無數’에 대한 번역으로 『두시언해』에서 ‘無數’는 ① ‘數 업-’ ② ‘數ㅣ 업-’ 등으로 ‘數’가 한자로 표기되나 여기에서는 한글로 표기되었다. ¶쳡을 수 업시 호믄 사믈 어즈러우믈 츄미니〈번소 7:31ㄴ〉. 數 업슨 자리 기 오리거(無數蜻蜓齊上下)「卜居」〈두시 7:2ㄱ〉. 畵師ㅣ  數ㅣ 업스나(畵師亦無數)「奉先劉···障歌」〈두시 16:29ㄴ〉.
將軍의 西ㅅ녁 지비 주220)
지비
집이. 집+이.
일며 주221)
일며
이루어지며. 일-[成]+며. ‘일-’의 사동사는 ‘일우-’이다. ¶일- :  氣韻이 流야 三世 일오〈석상 19:12ㄱ〉. 녯 사 일며 敗호매 네 엇뎨리오(古人成敗子如何)「寄栢學士林居」〈두시 7:28ㄴ〉. 일우- : 成佛은 부텻 道理 일우실 씨라〈석상 3:1ㄱ〉. 됴 비 오미 일우메 잇디 아니니라(甘澤不在早)「遣興三首」〈두시 5:34ㄴ〉.
주222)
일찍. 원문의 ‘早’에 대한 번역이다. 참조; 일즉. ¶그 어버 졈고 식 업시 일 홀어미 도 주를 에엿비 녀겨〈飜小9:56ㄴ〉. 돌 우희 믈 잇 로 일 녀고(早行石上水)「彭衙行」〈두시 1:12ㄴ〉.
丞相이 외야 주223)
외야
되어. 외-[爲]+야. 정음 초기 문헌에는 ‘야’로 표기된다. ¶- : 山 草木이 軍馬ㅣ 니다〈용가 98〉. 외- : 郞 외야쇼매 머리 셰요 므던히 너기노니(爲郞從白首)「歷歷」〈두시 5:17ㄴ〉.
山東애셔 주224)
산동(山東)애셔
산동에서. 山東+애+셔. 〈중간본〉에는 ‘東山애셔’로 되어 있다.
니러나놋다 주225)
니러나놋다
일어나는구나. 닐-[起]+어#나-++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한자음】 무수장군서제성 조작승상동산기【마융(馬融)이 ‘대장군 서제송(大將軍西第頌)’을 지었으니, 이것은 여러 장수들이 안사의 난을 평정하자 경사(京師)에 제택이 하사된 것을 말한다. 사안(謝安)이 동산에서 일어났으니, 역시 당시의 정상(情狀)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수없이 장군의 서녘 집이 지어지며, 일찍 승상이 되어 동산에서 일어나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수없이 장군들의 서녘 집이 이뤄졌으며, 일찍이 승상이 되어 동산에서 일어났다.”라는 뜻으로, 소환이 큰 공을 세워 도성에 저택을 하사받고 또 승상이 되어 천자를 보필하리라는 것을 말한다.

鳥雀 주226)
조작(鳥雀)
보통 작은 새를 가리키는 말. 비유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능력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苦肥秋粟菽 蛟龍 주227)
교룡(蛟龍)
고대 전설상에 나오는 물속에 사는 동물. 전설에 따르면 교(蛟)는 능히 홍수를 일으키고 용(龍)은 능히 비구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欲蟄寒沙水【此 喻小人 주228)
소인(小人)
간사하고 국량(局量)이 좁은 사람. 또는 재주가 덕보다 나은 사람.
이 食祿 而君子 주229)
군자(君子)
덕(德)과 학식이 높은 사람. 또는 덕이 재주보다 나은 사람.
ㅣ 退藏也ㅣ라】

새 주230)
새
새들은. 새[鳥]+ㅎ+. 원문의 ‘鳥雀’을 번역한 말이다.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甚히  주231)

가을의. [秋]+ㅅ. 〈중간본〉에는 ‘’로 되어 있다.
조콰 주232)
조콰
조와. 조ㅎ[粟]+과. ‘조ㅎ’는 ‘ㅎ말음체언’으로 ‘ㄱ’이나 ‘ㄷ’으로 시작하는 조사를 만나면 ‘둘콰, 나토’ 등으로 쓰인다.
 주233)

콩에. [豆]+. 〈중간본〉에는 ‘콩’로 되어 있다.
지거늘 주234)
지거늘
살지거늘. #지-+거늘. ‘-거늘’은 기원적으로 ‘거+느+ㄹ’로 분석될 가능성이 있다. ¶큰  지고 壯코 힘 하며〈법화 2:140ㄱ〉. 五陵에셔 옷과 왜 제 가야오며 지도다(五陵衣馬自輕肥)「秋興三首」〈중간두시 10:35ㄱ〉.
蛟龍 치운 주235)
치운
추운. 칩-[寒]+우+ㄴ. 참조; 치. 치. 치위. 치. 치움. ¶百姓이 치워 커 닐오 내 칩게 호라 니〈내훈 2:94ㄴ〉. 몰앳 나조 鶺鴒이 칩도다(沙晚鶺鴒寒)「第五弟豐이~寄此二首노라」〈두시 8:45ㄱ〉.
몰앳 주236)
몰앳
모래의. 몰애[沙]+ㅅ. ¶몰애 : 더 몰애 모매 븓 苦왜라〈석상 13:8ㄱ〉. 平 몰애예 一萬 帳幕이 버렛니(平沙列萬幕)「後出塞五首」〈두시 5:30ㄴ〉.
므레 주237)
므레
물에. 믈[水]+에.
蟄藏코져 주238)
칩장(蟄藏)코져
칩장하고자. 蟄藏#-+고#지-+어. ‘칩장하다’는 국어사전에 ‘땅속이나 굴속에 죽치고 있음’로 되어 있다.
놋다 주239)
놋다
하는구나. -++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한자음】 조작고비추속숙 교룡욕칩한사수【이것은 소인배가 녹봉을 받아먹고 군자는 물러나 숨어사는 것을 비유했다.】
【언해역】 새들은 심히 가을의 조와 콩에 살지거늘, 교룡(蛟龍)은 추운 모래물에 칩장(蟄藏)하고자 하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새들은 가을 조와 콩을 먹어 몹시 살지고, 교룡은 추운 모래 물에 칩거하려고 한다.”라는 뜻으로, 그릇된 시대 상황 때문에 소인배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뛰어난 인재들은 실망하여 은거하는 모순을 말한다.

天下鼓角 주240)
고각(鼓角)
전고(戰鼓)와 호각(號角) 두 악기를 가리키는 말. 군대에서도 상황을 알리거나 군중에게 경계를 시키기 호령(號令)을 발표할 때 사용했다.
何時休 陣前部曲 주241)
부곡(部曲)
본래 군의 편제 단위였지만 육조(六朝)시대 이후 지방의 호족이 부리는 사병(私兵)을 뜻했다. 지주의 노예 또는 소작인, 속객 가운데 선발되었으며, 노예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다. 노예처럼 매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지주의 예속 하에 자유를 누릴 수 없었고, 관리로 나아갈 길도 차단되었다.
終日死【傷時干戈 주242)
간과(干戈)
방패와 창. 그리하여 전쟁(戰爭)에 쓰는 병기(兵器)의 총칭. 전쟁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간과지변(干戈之變).
ㅣ 未息也ㅣ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3ㄴ

天下애 주243)
천하(天下)애
천하에. 세상에. 天下+애.
鼓角 소리 어느  주244)
어느 
어느 때에. 어느 [時]+의.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15세기 국어의 ‘어느’는 ‘어느, 어떤’의 뜻과 함께 ‘어찌’의 뜻도 있다. 여기서는 전자의 용법으로 쓰였다. 〈중간본〉에는 ‘어느 ’로 되어 있다. ¶어느(어느) : 어느 나래아 軍卒 練習호믈 말려뇨(幾日休練卒)「北征」〈두시 1:7ㄱ〉. 어느(어찌) : 부텻 法이 精微야 져믄 아 어느 듣리고〈석상 6:11ㄱ〉. 사롬 사리아 어느 시러곰 니리오(生理焉能說)「北征」〈두시 1:7ㄱ〉. 내 큰 스니미 마 涅槃 시니 어느 로 바 머그료〈석상 23:41ㄴ〉.  : 밤 낫 여슷 로 뎌 藥師瑠璃光如來 저 供養고〈석상 9:32ㄱ〉. 之子 로 서르 보니(之子時相見)「題張氏隱居二首」〈두시 9:12ㄴ〉.
말리어니오 주245)
말리어니오
말겠는가? 말 것인가? 말-+리+거+니+오. ‘오’는 선행하는 ‘어느’와 호응하는 설명의문어미이다.
兵陣ㅅ 알 주246)
알
앞에. 앒[前]+. ‘앒〉앞’과 같은 변화는 〈소학 언해〉(1586)에 처음 보인다. ¶앞 : 뵈야호로 그 져머신 제 父母ㅣ 왼녁 겯로 잡고 올녁 겯로 들며 아프로 옷기슬 긔고 뒤후로 옷기 글잇그러〈소언 5:70ㄴ〉.
部曲 나리 주247)
나리
날이. 날[日]+이.
록 주248)
록
마치도록. -[終]+록. ‘-’은 자타동 양용동사인데 사동사는 ‘마치-’이다. ¶- : 矣 말  입겨지라〈훈언 2ㄴ〉. 기픈  禁闕에 朝會 고 도라오  몯호라(窈窕淸禁闕 罷朝歸不同)「奉答岑···見贈」〈두시 21:14ㄴ〉. 마치- : 請 드른 다대와 노니샤 바 아니 마치시면 어비 아리 사시리가〈용가 52〉.
주249)
-록
내  劫이며  劫이 남록 닐어도 몯 다 니르리어니와〈석상 9:10ㄴ〉. 나리 록 비 아아 오니(竟日雨冥冥)「獨坐二首」〈두시 3:41ㄴ〉.
죽놋다 주250)
죽놋다
죽는구나. 죽-[死]++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한자음】 천하고각하시휴 진전부곡종일사【당시 전쟁이 그치지 않는 것에 상심한 것이다.】
【언해역】 천하에 고각(鼓角) 소리는 어느 때 그칠 것인가? 병진(兵陣)의 앞에 부곡(部曲)은 날이 마치도록 죽는구나!
*시 구절 해석 : “천하에 고각 소리는 언제나 끝나려나, 군진 앞에 부곡은 하루 종일 죽는다.”라는 뜻으로, 전쟁이 끝나지 않아 마을 백성들이 매일 죽어나간다는 말이다.

附書與裴因示蘇 此生已愧須人扶【謂老病야 媿人의 扶持也ㅣ라】

글워 주251)
글워
편지를. 글#월+. ¶두 글워 어울워 釋譜詳節을 라 일우고〈월석 1:월인석보 서12ㄴ〉. 간 燕ㅅ 將軍의게 글워 여 보내시니라(聊飛燕將書)〈두시 5:7ㄱ〉.
브텨 주252)
브텨
부쳐. 븥-[送]+이+어.
裴道州 주고 주253)
배 도주(裴道州) 주고
배 도주에게 주고. ‘주-’가 지배하는 격표지 ‘-’은 현대국어라면 ‘-에게’이다.
지즈로 주254)
지즈로
인하여. ‘지즈로’는 ‘짖(?)+으로’의 구성일 것으로 보이는데, ‘인하여’의 뜻으로 쓰이는 부사인데 『두시언해』에만 쓰였다. 『두시언해』에는 ‘지즈루’로도 쓰였다. ¶지즈로 : 벼개예 굽스러셔 지즈로 리 오니(伏枕因超忽)「秋日···三十韻」〈두시 3:8ㄱ〉. 公孫이 지즈로 險호 믿니(公孫仍恃險)「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8ㄱ〉/ 지즈루 : 廉頗ㅣ 지즈루 彼敵  며(廉頗仍走敵)「投贈···二十韻」〈두시 5:41ㄴ〉. 여러  지즈루 머리 여희여쇼니(積年仍遠別)「遠懷舍弟穎觀等」〈두시 8:42ㄴ〉.
蘇渙 뵈노니 주255)
소환(蘇渙) 뵈노니
소환에게 보이니. 보-+이++오+니.
이 生애 마 주256)
마
이미. 벌써. 15세기의 ‘마’는 ‘장차(將次)’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마 : 나 늘거 마 無想天으로 가리니〈석상 3:2ㄱ〉. 너희 비들 마가 줄 靑錢 마 일워 뒷노니(已辦靑錢防雇直)「撥悶」〈두시 3:32ㄴ〉.
사미 더위자보 주257)
더위자보
붙잡음을. 부축함을. 더위#잡-+오+ㅁ+. ¶一刹那ㅅ 예 믄득 더위자바 잇거든〈월석 11:52ㄴ〉. 蒼生 어느 다시 더위자리오(蒼生豈重攀)「有歎」〈두시 3:44ㄱ〉.
기들우믈 주258)
기들우믈
기다림을. 기들우-[待]+우+ㅁ+을. 이 낱말은 ‘기들오다, 기들우다, 기들이다, 기드리다, 기오다, 기우다, 기리다, 기도르다, 기두르다’ 등 여러 가지 형태로 표기되었다. 『두시언해』에서는 주로 ‘기들우-, 기들오-, 기드리-, 기오-(중간)’가 쓰였다. ‘기’로 시작하는 형태들은 빨라도 16세기 문헌에 등장하여 주로 근대국어 문헌에서 보이며 ‘기도/두’로 시작하는 형태들도 근대국어에 등장하는 표기들이다. ¶기들우- : 明哲 기들우노니 왼 란 正오라〈영가 서:16ㄴ〉. 翠華ㅅ 보 기들우니라(寒待翠華春)「王命」〈두시 5:14ㄴ〉. 기들오- : 모 夫人이 다 怪異히 너겨 오 빗어 뫼와셔 오 기들오더니〈내훈 2:119ㄱ〉. 南嶽앳 鳳 우루믈 기들오노니(佇鳴南嶽鳳)「贈虞十五司馬」〈두시 8:25ㄱ〉. 기드리- : 人生 즐거 디 업고 주구믈 기드리노니〈석상 6:5ㄱ〉. 블근 門 다도 잇비 아니야셔  河漢 마 가 스싀로 기드리노라(不勞朱戶閉 自待白河沈)「送嚴侍郞야~宴得心字호라」〈두시 14:15ㄴ〉. 기오- : 騘馬 타 發行다 니거 듣고 沙邉에셔 이제 니르도록 기오라(聞道乘騘發 沙邉待至今)「渝州候嚴六侍御不到先下峽」〈중간두시 2:4ㄴ〉.
붓그리노라 주259)
붓그리노라
부끄러워하노라. 붓그리-[愧]++오+라. 이 낱말은 한국어 동사 가운데 ‘동사, 동사+-, 동사+업-, 동사+업+-’로 파생되는 전형적인 유형의 동사이다. 이런 유형의 동사인 경우 『두시언해』에서는 ‘동사+업-’ 파생형용사나 ‘동사+업-+어 -’ 동사는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노’에 들어있는 ‘오’로 인해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알 수 있다. ¶붓그리- : 란 아니 닷고 오로 오 이 붓그리다니〈월천 44ㄱ〉. 大闕을 思戀야 肝肺 잇브게 노니 材質을 議論호매 杞柟 붓그리노라(戀闕勞肝肺 論材愧杞柟)「樓上」〈두시 3:49ㄱ〉. 붓그려- : 黃石은 스 외요 붓그려다(黃石愧師長)「故著···公虔」〈두시 24:36ㄴ〉. 붓그럽- : 이 사 질쌈야 뵈  옷 라 붓그러  가리오니다〈월석 22:26ㄱ〉. 애 붓그러온 주리 업스랴〈번소 9:52ㄱ〉. 붓그러워- : 도 붓그러워노라〈순천 83:11〉.

【한자음】 부서여배인시소 차생이괴수인부【늙고 병들어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는 말이다.】
【언해역】 편지를 부쳐 배 도주(裴道州)를 주고 인하여 소환(蘇渙)에게 보이니, 이 생에 이미 사람이 붙잡음을 기다림을 부끄러워하노라.
*〈중간본〉에는 ‘愧人의’으로 되어 있다.
*시 구절 해석 : “글월을 지어 도주자사 배도에게 주고 이어 소환에게 보이니, 이 삶이 이미 남의 도움 받는 것이 부끄럽다.”라는 뜻으로, 배도와 소환에게 도움을 청하니 남에게 의지하는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다는 말이다.

致君堯舜付公等 早據要路 주260)
요로(要路)
빛나고 중요한 지위(地位).
捐軀 주261)
연구(捐軀)
나라를 위하거나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님그믈 주262)
님그믈
임금을. 님금+을.
堯舜에 닐위우므란 주263)
닐위우므란
이르게 함은. 닐위-+우+ㅁ+으란. ‘닐위-[致]’는 ‘니-/니르-’의 사동사이다.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 불규칙활용 중 소위 ‘ㄹ·ㅇ’형이다. ¶닐위- : 二乘이 道理 닐위디 몯야 갓 담 議論앳 法 민  알리로다〈월석 12:28ㄱ〉. 나 爲야 됴 차바 힘 닐위다(爲我力致美肴膳)「病後···贈歌」〈두시 3:50ㄴ〉. 으란 : 그 瓔珞 바샤 두 分에 호아  分으란 釋迦牟尼佛 받시고  分으란 多寶佛塔애 받시니라〈석상 21:18ㄱ〉. 盤石에 命圭 오란 해 고(盤石圭多剪)「秋日···三十韻」〈두시 3:11ㄱ〉.
그듸내게 주264)
그듸내게
그대들에게. 그듸+내+애게. 15세기에 ‘그듸, 그디, 그’가 쓰였는데 점차 ‘그’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두시언해』에서 ‘그듸’는 ‘그’로도 쓰였다. 15세기 국어에는 ‘-에게, -애게, -의게, -게, -ㅅ게’가 있으므로 이들은 속격조사와 ‘게’로 분석된다. ‘게’는 다시 명사성을 가지는 요소와 처격조사의 결합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그듸내 : 金輪王 아리 出家라 가니 그듸내 各各  아옴 내야 내 孫子 조차가게 라〈석상 6:9ㄴ〉. 구디 안자셔 그듸내 기우려 머구믈 보노라(老人因酒病)「季秋蘇五弟纓~韋少府姪호라 三首」〈두시 15:52ㄴ〉. -애게 : / 오직 네게 거리디 아니호미 이시리로다(只有不關渠)「戲作俳諧體遣悶二首」〈두시 3:46ㄴ〉/ -ㅣ게 : 내게 이셔 어느 줄로 블리오(在於甫也何由羨)「病後···贈歌」〈두시 3:49ㄴ〉. -의게 : 간 燕ㅅ 將軍의게 글워 여 보내시니라(聊飛燕將書)「收京三首」〈두시 5:7ㄱ〉. -게 : 扶持호미 두 사게 잇도다(扶持在數公)「收京」〈두시 5:9ㄱ〉. -ㅅ게 : 이 곧 無學ㅅ게 호 小聲聞 미라〈법화 4:46ㄴ〉.
브티노니 주265)
브티노니
의지하니. 븥-+ㅣ++오+니. ‘브티-’는 ‘븥-’의 사동사로, 15세기 국어의 ‘븥-’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진 다의어 동사이다. 『두시언해』에 쓰인 복합어에 쓰인 것을 제외한 ‘브티-’에 대응하는 한자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 ‘付, 自, 寄, 焚, 泊, 爨, 託, 憑, 燒, 火, 發, 焦’ 등이 있는데, ‘불을 붙이다’의 뜻이 가장 많이 쓰였다. ¶(寄) : 즐거운 일 닐우믈 긴 바 브티노라(語樂寄夜永)「西枝···土室二首」〈두시 9:14ㄴ〉. (焚) : 宮殿을 브티니 브리 새록 챗도다(焚宮火徹明)「奉送···度使三十韻」〈두시 23:3ㄱ〉. (付) : 精神로 사괴요 아  브티노라(神交付冥漠)「過郭代公故宅」〈두시 3:66ㄴ〉.
주266)
일찍. 원문의 ‘早’에 대한 번역이다. 참조; 일즉. ¶그 어버 졈고 식 업시 일 홀어미 도 주를 에엿비 녀겨〈飜小9:56ㄴ〉. 돗 라 劉郞浦애셔 일 나니(掛帆早發劉郞浦)「發劉郞浦」〈두시 1:44ㄱ〉.
조왼 주267)
조왼
중요한. 조-[要]+ㄴ. 『두시언해』에는 ‘조-’의 활용이 ‘조외-’와 함께 ‘조로외-’도 쓰였다. 정음 초기 문헌에서는 ‘ㅸ’이 쓰였는데 『두시언해』에서는 ‘조외-’와 ‘조로외-’가 같이 쓰였다. ¶조- : 조 고로 니건댄〈석상 19:42ㄴ〉. 조외- : 조왼 길헤 어느 나래 긴 戈戟을 말꼬(要路何日罷長戟)「秋風二首」〈중간두시 10:27ㄴ〉. 조로외- : 조로왼 길히  놉고 깁도다(要路亦高深)「西閣二首」〈두시 14:20ㄴ〉.
길헤 주268)
길헤
길에. 길ㅎ+에. 15세기 국어의 ‘길ㅎ’은 ‘ㅎ’ 말음체언이다.
브터셔 주269)
브터셔
의지해서. 븥-[據]+어+셔. 15세기 국어의 ‘븥-’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진 다의어 동사이다. 『두시언해』에서는 주로 ‘仗, 著, 憑, 依, 傍, 火, 燃, 着’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룔 주270)
룔
버릴. 리-+오+ㄹ.
이 라 주271)
라
생각했다. -+라. 15세기의 ‘다’는 ‘사랑하다’와 ‘생각하다’의 뜻이 있다. 〈중간본〉에는 ‘랑라’로 되어 있다. 참조; 다. ¶사-(생각하다) : 오 기픈 道理 더시니〈석상 3:19ㄴ〉. 羽翼란 商山ㅅ 늘그닐 고(羽翼懷商老)「收京三首」〈두시 5:7ㄴ〉. 사-(사랑하다) : 各別히 야 아례나  며느리 어두리라 야〈석상 6:13ㄴ〉. 수를 對야셔 새 올히 랑노라(對酒愛新鵝)「舟前小鵝兒」〈두시 17:22ㄱ〉.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치군요순부공등 조거요로사연구
【언해역】 임금을 요순에 이르게 함은 그대들에게 의지하니, 일찍 중요한 길에 의지해서 몸 버릴 일을 생각했네!
*〈중간본〉에는 ‘早㨿要路思捐軀’로 되어 있다.
*시 구절 해석 : “임금을 요순으로 이끌기를 그대들에게 맡기노니, 일찍이 중요한 지위에 기대어 몸 버림을 이룰 것을 생각하라.”라는 뜻으로, 임금이 성군이 되는 것은 그대들의 임무이니 고위직에 올라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라는 말이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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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도주(道州) : 중국의 고대에 있던 주(州). 중심지는 지금의 호남성(湖南省) 도현(道縣)이다. 당나라 정관(貞觀) 8년(634) 남영주(南營州)를 고쳐 도주(道州)라 했고, 치소(治所)는 영도현(營道縣, 지금의 호남성 도현 서쪽)이다. 17년(643) 없어져 영주(永州)로 들어갔다. 상원(上元) 2년(675) 다시 도주가 설치되었다. 천보(天寶) 원년(742) 강화군(江華郡)으로 바뀌었다가 건원(乾元) 원년(758) 다시 도주가 되었는데 치소는 홍도현(弘道縣, 원래의 영도현)이다. 관할한 지역은 지금의 호남성 신전현(新田縣), 영원현(寧遠縣), 도현(道縣), 강영현(江永縣), 강화요족자치현(江華瑶族自治縣) 등지다. 북송(北宋) 때는 옮겨 지금의 도현을 다스렸고, 형호남로(荆湖南路)에 속했다. 철과 주석 등의 산지로 유명했다. 원나라 때는 도주로(道州路)로 불렸고, 명나라 홍무(洪武) 원년(1368) 도주부(道州府)로 바뀌었다가 9년(1376) 다시 도주가 되어 영주부(永州府)에 속했다.
주002)
소환(蘇渙) : ?~775. 당나라 때 사람. 본래 재야(在野)의 영웅이다. 젊었을 때 백노(白弩)를 잘 다루고 노략질을 즐겨 파촉(巴蜀) 상인들을 괴롭혔다. 그래서 도척(盜跖)과 비교해 백척(白跖)이라 했다. 나중에 마음을 바꾸어 학문에 전념해 광덕(廣德) 2년(764) 진사가 되었다가 시어사(侍御史)로 옮겼다. 나중에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 최관(崔瓘)을 보좌해 종사(從事)가 되었다. 최관이 살해당하자 교(交)와 광(廣)으로 달아나 가서황(哥舒晃)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대력(大曆) 10년(775) 11월 패하여 살해당했다. 작품은 대부분 흩어지고 『전당시(全唐詩)』에 시 4수가 실려 있다.
주003)
모추왕배도주수찰솔이견흥기체정소환시어(暮秋枉裴道州手札率爾遣興寄遞呈蘇渙侍御) : 이 작품은 대력(大曆) 4년(769) 가을, 두보 58세 때에 지어졌다. 이때에 두보는 장사(長沙)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때 도주자사로 있던 배규가 두보에게 편지를 보내자 이 시를 보내고, 아울러 당시 담주(潭州, 지금의 장사)에 있던 소환(蘇渙)에게도 올렸다. 이 시에서 시인은 배규와 소환 두 사람에 대한 존경과 당시 시국(時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어 그들이 임금을 요순(堯舜)으로 만드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를 희망하였다. 이 시에서 우리는 두보의 당당하고 적극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은 비록 늙고 병들어 있지만, 임금을 돕고 백성을 안정시키는 노력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두보의 마지막 즈음에 지은 시에 해당한다.
주004)
## 자사(刺史) : 관직 이름. 전한(前漢) 무제(武帝) 원봉(元封) 5년(기원전 106) 전국을 13부(部)로 나누고 부마다 중앙에서 파견한 자사 1인을 두었다. 자사는 관할 부를 순행하면서 호족이나 군(郡)의 태수를 감찰했다. 성제(成帝) 대 자사를 주목(州牧)으로 개칭했고, 후한(後漢) 초 다시 자사로, 후한 영제(靈帝) 때 또다시 주목으로 바꾸었다. 초기에는 지위가 군수(郡守) 아래였지만 이후 군수보다 한 단계 높았으며, 군정(軍政) 대권을 맡기도 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각 주에 자사를 설치하여 도독(都督)을 겸임토록 했다. 이 대 장군이란 칭호가 붙여졌으며, 권한도 한층 높았다. 수대 이후 주의 자사는 군의 태수와 같은 직급이거나 태수의 별칭으로 쓰였으며, 권력도 점차 낮아졌다. 송 이후 중앙에서 자사를 파견했지만 실제로 부임하지 않았으며, 습관상 태수를 자사라고 불렀다. 청(淸)대 역시 주 지사(知事)의 별칭으로 쓰였다.
주005)
## 배규(裴虬) : ?~?. 도주자사(道州刺史)를 지낸 것 외에 생애와 활동 사항은 알려진 것이 없다.
주006)
## 시어사(侍御使) : 관직 이름. 진한(秦漢) 시대에 설치하여 어사대부 아래에 두었다. 전중(殿中)의 일을 처리하고 범법자에 대한 탄핵권을 가지며, 군현(郡縣)을 감찰하는 권한을 지녔다. 후한 때는 서시어사(書侍御史)를 따로 설치했으며, 위․진 때는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등의 관직도 있었다. 당대에 치서어사(治書御使)를 어사중승(御使中丞)으로 개칭하면서 시어사와 전중시어사, 감찰시어사(監察侍御史) 등을 어사대(御史臺) 아래에 두었다. 명청시대 때에는 감찰어사만이 존재했다.
주007)
소서(素書) : ①편지. 옛사람들은 편지를 흰 비단에 썼음. ②한(漢)나라 때 황석공(黃石公)이 지었다 하지만, 현전하는 것은 후대 사람이 지은 것으로 저자는 분명치 않은 책. 송(宋)나라의 장상영(張商英)이 주를 붙이는 형식으로 황석공에 위탁한 것으로, 도덕인의례(道德仁義禮)를 일체로 삼아 유(柔)로 강(剛)을 제어하고, 퇴(退)로 진(進)을 꾀하는 이치를 풀어놓았다. 1권.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08)
견(絹)이니 고인(古人)이 : 비단이니 고인이. 絹+이+니 古人+이. 원래의 ‘絹也ㅣ니 人이’에서 교정된 것이다.
주009)
외요매 : 됨에. 외-+오+ㅁ+애.
주010)
벋뷔 : 벗들. 벋+뷔. ‘벋’은 현대어의 ‘벗’이나 ‘뷔’는 정체를 알 수 없다. 원문의 ‘友朋’의 번역으로 쓰였다. ‘벋뷔’는 〈중간본〉에 ‘벋’로 되어 있으며 『소학언해』나 『번역노걸대』에 ‘벋븨’로 표기되어 있다. ¶벋븨 : 橫渠先生이 샤 이제 벋븨 그 아당 잘 이로 여  서르 여허야 엇게 티며 매 잡아  긔운이 合홈을 삼고  말이나 合디 아니커든 怒 긔운을 서르 더니 벋븨 이예 그 서르 디믈 게을이 아니코쟈 디라 그러모로 벋븨 이예 그 공경을 읃듬 삼 이 날로 서르 親야 여허야 효험 어이 장 니라 〈소언 5:77ㄱ-78ㄱ〉. 벋븨의 갓 븟그리게 말라〈번노 하:46ㄱ-47ㄴ〉.
주011)
글워를 : 글을. 글월을. 글+월+을. ¶두 글워 어울워 釋譜詳節을 라 일우고〈월석 1:월인석보 서:12ㄴ〉. 여흐레 고기 낫글 저긘 글워를 䟽히 고(釣瀨䟽墳籍)「夔府書懷四十韻」〈두시 3:6ㄱ〉.
주012)
해 : 많이. 하-[多]+이.
주013)
호니 : 하니. -[爲]+오+니.
주014)
 : 흰. -[白]+ㄴ. 15세기에는 ‘다’와 ‘희다’가 쌍형어로 쓰였다. ¶- : 補陁 혀근  고지라 논 마리니〈석상 6:43ㄴ〉.  소리  몰애예 놋다(江聲走白沙)「憶昔二首」〈두시 6:26ㄱ〉. 희- : 남의  희오 므겁고 녀이  검고 가븨여우니라〈은중 2ㄴ〉.
주015)
글워리 : 편지가. 글월이. 글#월+이.
주016)
래 : 달에. [月]+애.
주017)
대범(大凡) 디 : 무릇. 大凡#-+ㄴ +이.
주018)
무시로다 : 뭇이도다. 뭇+이+도+다. ‘뭇’은 국어 사전에 ‘짚, 장작, 채소 따위의 작은 묶음을 세는 단위’로 되어 있다. 편지 한 묶음을 말한다.
주019)
범애(汎愛) : ①두루 사랑함. ②붕우(朋友, 친구)를 대신하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20)
뷘 : 빈. 뷔-[空]+ㄴ. ¶根源性이 맨 뷔여 虛空이 니〈석상 23:15ㄱ〉. 예 죠고맛 훤 房이 뷔옛도다(舟虛小洞房)「遣悶」〈두시 3:11ㄴ〉.
주021)
일후메 : 이름에. 일후-[名]+ㅁ+에.
주022)
오직 : 단지. 다만. 오직.
주023)
치위 : 추위. 칩-[寒]+이. 정음 초기 문헌의 표기는 ‘치’이다. 참조; 치. 치. 치위. 치. 치움. ¶다가 有情이 오시 업서 모 벌에며 더 치로 셜다가〈석상 9:9ㄴ〉.
주024)
더위 : 더위. 덥-[署]+이. 정음 초기 문헌의 표기는 ‘더’이다.
주025)
무루믈 니부니 : 물음을 받으니. 물음을 입으니. 묻-[聞]+우+ㅁ+을 닙-[被]+으니. 원문의 ‘蒙~問’에 대한 번역이다. ‘蒙’은 고전중국어에서도 피동의 문법 표지로 발달하지 못하고 피동의 뜻을 가진 타동사로 기능하였으며, 이를 언해문에서는 ‘닙다’로 번역하였다.
주026)
너비 : 널리. 넙-[廣]+이(부사화파생접미사). ‘넙-’은 ‘넓-’으로 형태 변화가 일어났다. ‘넓-’은 18세기에 등장한다. ¶귿 키고 至人의 듣을 널펴 一己의 欲을 오로디 아니며〈여사서 3:79ㄱ〉.
주027)
논 : 사랑하는. #-++오+ㄴ. 15세기의 ‘다’는 ‘사랑하다’와 ‘생각하다’의 뜻이 있다. 〈중간본〉에는 ‘랑논’으로 되어 있다. ¶다(생각하다) : 먼 드르흘 咫尺 만가 노라(曠野懷咫尺)「白水···三十韻」〈두시 7:23ㄱ〉. 다(사랑하다) : 虛 미라 오직 내 조 놋다(虛懷只愛才)「李監宅二首」〈두시 7:34ㄱ〉.
주028)
디라 : -지라. 것이다. +이+다.
주029)
굴에 : 구렁에. 굴헝[壑]+에. 〈중간본〉에는 ‘굴헝에’로 되어 있다.
주030)
아니다 : 아니한다. 안 한다. 아니#-++다.
주031)
장의(張儀) : ?~기원전 310. 전국시대 위(魏)나라 사람. 소진(蘇秦)과 함께 귀곡자(鬼谷子)를 사사하면서 종횡술(縱橫術)을 배웠다. 한 때 화씨지벽(和氏之璧)을 훔친 도둑으로 몰려 초죽음이 되기도 했다. 진(秦)나라 혜문왕 9년 진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 연횡책(連橫策)을 써서 진나라가 하서(河西)와 상군(上郡), 하동(河東) 등지를 차지하게 했다. 혜왕 경원 2년 제(齊)나라, 초(楚)나라의 대신들과 교상(嚙桑)에서 만났다. 다음 해 위나라 또한 연횡을 실행해 혜시(惠施)를 쫓아내고 그를 재상으로 맞았다. 3년 뒤 위나라가 합종(合縱)을 써서 공손연(公孫衍)을 재상으로 임용하자 진나라로 돌아왔다. 진나라는 연횡책으로 인해 영토도 넓어졌고 강대국이 되었다. 이 공으로 무신군(武信君)에 봉해졌다. 진무왕(秦武王) 때 진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가서 재상이 되었지만 얼마 뒤 죽었다.
주032)
혜왕(惠王) : 진혜문군(秦惠文君, 기원전 356~기원전 311). 진혜왕(秦惠王). 진혜문왕(秦惠文王)이라고도 부른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국군(國君). 이름은 사(駟)고, 진효공(秦孝公)의 아들이다. 즉위한 초에 종실과 원한이 많았던 상앙(商鞅)을 주살(誅殺)했다. 5년 공손연(公孫衍)이 대량조(大良造)가 되어 집정했다. 10년 장의(張儀)를 재상으로 삼아 연횡책(連橫策)을 시행했다. 여러 차례 군대를 동원해 위(魏)나라를 공격하여 하서(河西) 지역을 수복했으며, 위나라가 상군(上郡) 15개 현(縣)을 헌납했다. 13년 스스로 왕이라 부르고, 다음 해에 개원(改元)했다. 후원(後元) 7년 한(韓)나라와 조(趙)나라, 위나라, 연(燕)나라. 제(齊)나라 등이 연합해 진나라를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하고 물러갔다. 9년 촉(蜀)을 멸망시키고, 다음 해 의거(義渠) 25개 성을 탈취했으며, 13년 초(楚)나라 한중(漢中) 땅 6백 리를 취했다. 27년 동안 재위했고, 시호는 혜문(惠文)이다.
주033)
니 : 이[齒]. 이빨.
주034)
디나 : 빠지나. 디-+나. ‘디다’는 피동의 의미이며, ‘다/혀다’는 타동의 의미로 쓰였다. ¶디- : 다차힌 므레 디여 橫死 씨오〈석상 9:37ㄱ〉. 니 디거 일후미 어딘 사 擧薦 中에 더러욜 고 어느 알리오(豈知牙齒落 名玷薦賢中)「春日江村五首」〈중간두시 10:14ㄱ〉. - : 天帝釋이 그 사  忉利天에 가아 塔 일어 供養더라〈석상 3:14ㄱ〉. 혀- : 다가 바지왼 소니 아니면 뉘 能히 부들 혀 實에 맛게 베퍼 펴리오〈금삼 서:13ㄱ〉. 나 늘구믈 러 리고 갈 혀나 盜賊을 버히고져 니라(揚鑣驚主辱 拔劒撥年衰)「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ㄴ〉.
주035)
이  업슨 사미 : 이 마음 없는 사람이. 〈중간본〉에는 ‘’으로 되어 있다.
주036)
아니로니 : 아니니. 아니+이+니.
주037)
혜 : 혀. 혀-[引]+ㅣ. 정음 초기 문헌에는 ‘-’로 표기된다. ¶혀- : 謝氏無適莫註 中에 經엣 이 句 혀아  미치며〈금삼 2:64ㄴ〉. 혀 여 하  막노니(結舌防讒柄)「秋日···三十韻」〈두시 3:9ㄱ〉. - : 太子ㅣ 화 시니 화리 것거디거늘〈석상 3:13ㄴ〉.
주038)
이시니 : 있으니. 이시-[有]+니.
주039)
길헤셔 : 길에서. 길ㅎ+에+셔. ‘길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040)
우룸 : 울음. 울-[泣]+우+ㅁ.
주041)
요 : 함을. 여기서는 선행하는 ‘우룸’과 함께 ‘울다’는 뜻으로 쓰였다. 〈중간본〉에는 ‘요믈’로 되어 있다.
주042)
붓그리노라 : 부끄러워하노라. 붓그리-[愧]++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참조; 붓그려-, 붓그럽-, 붓그러워-.
주043)
목간(木簡) : 독(牘, 편지). 옛날에 문자를 쓸 때 사용하던 좁고 긴 목편(木片)을 일컫는 말.
주044)
박소(薄少) : 희소(稀少)함. 작고 엷음.
주045)
도주(道州)ㅅ : 도주(道州)의. 도주자사(道州刺史)의.
주046)
소로 : 손으로. 손[手]+로.
주047)
순 : 쓴. 스-[書]+우+ㄴ. 15세기에 ‘-’는 ‘사용하다[用]. (맛이) 쓰다[苦]’, ‘쓰-’는 ‘(글을) 쓰다[書], (갓을) 쓰다[冠]’로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두시언해』는 각사병서 표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쓰-’는 ‘스-’로 표기되었다.
주048)
글워리 : 편지가. 글월이. 글월+이.
주049)
마초아 : 마침. 맞-+호+아. ¶마초아 바지 舍衛國으로 가리 잇더니〈석상 6:15ㄱ〉. 이제 내 草堂애 오니 成都애 마초아 시르미 업도다(今我來草堂 成都適無虞)「草堂」〈두시 6:37ㄴ〉.
주050)
죠 : 종이. ¶죠 爲紙〈훈해 56〉. 늘근 겨지븐 죠 그려 긔파 어(老妻畵紙爲碁局)「江村」〈두시 7:4ㄱ〉.
주051)
기러 : 길어. 길-[長]+어. 15세기 국어 ‘길-’은 형용사 ‘길다’와 함께 동사 ‘자라다’의 뜻이 있다.
주052)
스싀로 : 스스로. 스싀+로. 원래는 ‘스싀’가 ‘자기(自己)’를 뜻하는 재귀대명사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스싀로’는 ‘스싀’에 구격조사 ‘-로’가 연결된 것이다.
주053)
디내 : 지나. 디내-+∅. ¶디내- : 제 목숨 사라 受苦 아니 디내리라〈석상 9:35ㄴ〉. 님금 목수믄 一萬 보믈 디내샤미 맛시니라(聖壽宜過一萬春)「承聞···十二首」〈두시 5:23ㄱ〉.
주054)
닐구믈 : 읽음을. 닑-[讀]+우+ㅁ+을.
주055)
조로이 : 중요하게. 조-[要]+이. 〈중간본〉에는 ‘조로이’로 되어 있다.
주056)
호라 : 했다. -+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057)
해주(海珠) : 바다 깊이 있는 보주(寶珠). 얻기 어려운 일을 비유한다.
주058)
곤옥(崐玊) : ①곤륜산(昆侖山)이 미옥(美玉). 대개 의취(意趣)가 고결(高潔)하거나 문장이 정미(精美)한 것, 재주가 걸출(傑出)한 것 등을 비유한다. ②다른 사람의 형제(兄弟)를 아름답게 부르는 명칭.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59)
주메 : 줌에. 줌[把]+에.
주060)
닌 : 가득한 것은. #-+ㄴ#이+ㄴ.
주061)
엇뎨 :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는 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엇디’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주062)
모로매 : 모름지기. ¶모로매 : 必 모로매 논 디라〈훈언 13ㄱ〉. 모로매 殿에 려 롤 디라(須爲下殿走)「收京三首」〈두시 5:7ㄱ〉.
주063)
바랫 : 바다의. 바[海]+애+ㅅ. 15세기에는 ‘바’과 ‘바다ㅎ’가 쌍형어로 쓰였지만 『두시언해』에는 ‘바’만 쓰였다. ‘바’도 나타난다. ¶바 : 뫼히며 수프리며 미며 바리며〈석상 19:13ㄴ〉. 黃河ㅅ 北녁 두듥과 바 西ㅅ녁 軍의(黃河北岸海西軍)「黃河二首」〈두시 4:26ㄴ〉. 바다ㅎ : 海 바다 〈신증 상:6ㄴ〉. 海 바다 〈훈몽 상:2ㄴ〉. 海 바다  〈광주판천자문 3ㄴ〉. 바다  海〈백련 14ㄴ〉.
주064)
니리오 : 뿐이리오? +이+리+오. 수사의문문에 쓰이는 ‘-리오’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하는 설명의문어미이다.
주065)
푸메 : 품에. 품+에.
주066)
드니 : 든 것을. 들-[入]+ㄴ#이+.
주067)
옥(玉)이론 고 : 옥인 줄을. 옥+이+도+ㄴ 곧+. ‘곧’은 15세기 한글 문헌에서 ‘장소[處]’를 뜻하는 구체명사로도 쓰고, 여기처럼 ‘것[所]’을 뜻하는 추상명사로도 쓰인다. ¶處 : 어듸 一切智옛 사미 잇거뇨 곧고대 무로 疑心을 決斷티 몯다〈월석 11:3ㄴ〉. 머리 어느 고대 가 두려웟고(悠悠何處圓)「江邊星月二首」〈두시 12:9ㄴ〉. 所 : 衆生 부텻 知見에 드리고져 시논 젼론 고디라〈석상 13:55ㄴ〉. 해셔 우 즈믄 지브란 사호매 주근 고 듣노니(野哭千家聞戰伐)「閣夜」〈두시 14:19ㄴ〉.
주068)
믿노라 : 믿노라. 믿는구나. 믿-[信]++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069)
담주(潭州) : 수(隋)나라 때 설치한 주(州). 일찍이 1급 행정단위가 되었는데, 대부분 지역이 호남(湖南) 지역이고 부분적으로 호북(湖北) 지역이 포함되었다. 또 2급 행정단위가 되기도 했는데, 지금의 장사(長沙)와 상담(湘潭), 주주(株洲), 악양남(岳陽南), 익양(益陽), 누저(婁底) 등지를 포함했다.
주070)
곡(斛) : 분량의 단위. 열 말[十斗]. 휘, 괵(斛)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중국에서 곡식을 계량할 때 쓰는 용기였는데, 후에 단위로 쓰이게 되었다. 송(宋)나라 때 와서 10말을 1석(石, 섬)이라는 단위명으로 고쳐져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홉[合]과 되[升], 말, 석이 있어 곡이라는 단위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하던 고려 정종 당시 한 때 양곡의 양을 측정하는 단위로 사용된 적이 있다.
주071)
무몰(蕪沒) : 무성한 잡초에 덮여 숨겨짐. 잡초가 우거짐.
주072)
담주(潭州)옛 : 담주의. 潭州+예+ㅅ.
주073)
온  수를 : 백 섬의 술을. 온 셤+ㅅ 술+을. ‘온’은 ‘백(百)’, ‘’은 ‘섬’에 속격조사 ‘-의’가 연결된 형태이다. ¶셤 : 金剛 모 아 舍利 시니 여듧 셤 너 마리러시니〈석상 23:51ㄱ〉. 一萬 셤 싣  오  順놋다(萬斛之舟行若風)「夔州歌十絕句」〈두시 13:45ㄱ〉.
주074)
혀 : 빼어. -+히+어. 『두시언해』에서는 ‘-’는 ‘-’로도 쓰였다. ¶히- : 이제 니르러 이젯 님그미 오히려 亂 혀 려(至今今上猶撥亂)「憶昔二首」〈두시 3:60ㄴ〉. 혀- : 일홈난 臣下 우희 아라히 혀 나니(迥出名臣上)「過郭代公故宅」〈두시 3:66ㄱ〉.
주075)
료니 : 버리니. 리-+오+니.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076)
두들겟 : 두듥의. 두듥[岸]+에+ㅅ.
주077)
즈믄 : 천(千).
주078)
거츠럿도다 : 거칠어졌도다. 거츨-+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079)
날로 여 : 나로 하여금. 나+ㄹ+로 -+여. ‘ㄹ’은 특별한 기능이 없이 삽입된 요소이다.
주080)
나 : 낮에. 낮[晝]+.
주081)
셔셔 : 서서. 셔-[立]+어+셔.
주082)
어즈러이 : 어지럽게. 어즐-+업+이. 〈능엄경언해〉(1461) 이전에는 ‘어즈러’로 쓰였다. ¶어즈러 : 鹿母夫人이 샤 나라해 어즈러 졋어미 블리디 마쇼셔〈석상 11:33ㄱ〉. 어즈러이 : 다가 三業이 憍奢면 妄心이 어즈러이 뮈리어니〈영가 상:4ㄴ〉. 어즈러이 人寰이 오히려 安定티 아니니(洶洶人寰猶不定)「承聞···十二首」〈두시 5:21ㄴ〉.
주083)
시립(侍立)게 : 시립하게. 侍立(+-)+게.
주084)
코 : 하고. -+고.
주085)
바 : 밤에. 밤+.
주086)
안자셔 : 앉-+아+셔.
주087)
브를 : 불을. 불-+을. 15세기의 ‘믈, 블, 플, ’은 초성 자음의 영향으로 ‘ㅡ’가 ‘ㅜ’로 변화하여 각각 ‘물, 불, 풀, ’로 변화한다.
주088)
허비(虛費)케 : 허비하게. 虛憊#-+게.
주089)
다 : 한다. -++다.
주090)
위(尉) : 교위(校尉). 한나라 때 설치된 관직 이름으로, 군대의 부장(副將)에 해당한다. 직무에 따라 무기교위(戊己校尉), 중루교위(中壘校尉), 등의 명칭이 붙여졌다. 한나라 이후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장관을 일컫는 칭호로 쓰이기도 했다. 당나라 이후 지위가 점점 약해졌다.
주091)
영가(永嘉) : ①영가현(永嘉縣). 절강성(浙江省) 온주시(温州市) 일대를 관할하던 현. ②영가군(永嘉郡). 동진(東晋) 때 설치된 군으로 나중에는 온주시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92)
홍안(紅顏) : 붉고 윤이 나는 얼굴. 미인의 아름다운 얼굴.
주093)
백면(白面) : ①희고 밝은 얼굴. ②백면서생(白面書生)을 줄인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094)
그듸 : 그대. 15세기에 ‘그듸, 그디, 그’가 쓰였는데 점차 ‘그’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주095)
처 : 처음에. 처+. ‘처’[初]은 ‘첫/’에 접미사 ‘엄’이 결합한 파생명사. ‘처엄’(번소9:43)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처음’(마경 상:6ㄴ)으로 바뀌어 감. ‘처엄〉처음’은 유추적 변화이다. ¶처 : 初發聲은 처 펴아 나 소리라〈훈언 3ㄴ〉. 天子ㅣ 처믜 시름왼 들 시고(天子初愁思)「洛陽」〈두시 5:18ㄱ〉. 처엄 : 믈읫 이거시 그 처엄의 어디디 아니홈이 업서〈소언 사:1ㄱ〉.
주096)
외야 : 되어. 외-+야.
주097)
저글 : 적을. 적[時]+을.
주098)
호니 : 생각하니. #-+오+니. 15세기의 ‘사-’는 ‘생각하다’와 ‘사랑하다’의 뜻이 있는데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우세하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중간본〉에는 ‘랑니’로 되어 있다. ¶다(생각하다) : 老人 다 나래 호(老人他日愛)「佐還山後寄二首」〈두시 7:39ㄴ〉. 다(사랑하다) : 너비 호매 내 衰朽 어엿비 너기놋다(汎愛惜衰朽)「奉贈李八丈判官」〈두시 8:4ㄴ〉.
주099)
 : 흰. -[白]+ㄴ. 15세기에는 ‘다’와 ‘희다’가 모두 쓰였다. ¶- : 내 百姓 어엿비 너기샤 長湍 건너 제  므지게 예 니다〈용가 50〉. 듕에   주겨 피 마셔 盟誓니(中霄斬白馬)「草堂」〈두시 6:38ㄱ〉. 희- : 諸法 中에 희믜 能히 호 〈법화 3:22ㄴ〉.
주100)
 : 낯에. [面/顔]+. ¶ : 十一 面은 열 치니 열  觀自在菩薩ㅅ 相 라〈석상 6:44ㄱ〉. 都邑ㅅ 사 여희  슬허니라(都人慘別顏)「洛陽」〈두시 5:18ㄱ〉.
주101)
고지 : 꽃이. 곶+이.
주102)
해 : ㅎ+애.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03)
비취엿더니라 : 비치어 있더라. 비취-+어#잇-+더+니+라.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주104)
군부(軍符) : 병부(兵符). 옛날에 군대를 파견할 때 증빙으로 주었던 부절(符節).
주105)
후인(侯印) : 후작(侯爵)에게 주던 인신(印信). 후작은 고대의 작위(爵位) 이름. 주(周)나라 이래로 한(漢)나라와 북위(北魏) 명(明)나라 등 몇 개 왕조를 제외하고 대개 모두 5등급의 작위가 있었는데, 그 중 제2등에 해당했다.
주106)
자연(紫燕) : 고대 명마(名馬)의 이름.
주107)
녹이(綠耳) : 준마의 이름. 주목왕(周穆王)의 팔준마(八駿馬)의 하나.
주108)
부절(符節) : 돌이나 대나무 옥 따위로 만든 부신(符信). 주로 사신이 가지고 다니던 물건으로, 둘로 갈라 하나는 조정에 보관하고 하나는 본인이 가지고 신표로 사용했다. 부계(符契).
주109)
어두미 : 얻음이. 얻+우+ㅁ+이.
주110)
엇뎨 : 어찌. 『두시언해』에서 ‘엇뎨’와 비슷한 의문사로 ‘엇디’도 쓰였는데 전자는 ‘何, 豈, 寧, 焉, 曷, 安, 胡’ 등의 번역으로 쓰였고 후자는 주로 ‘那, 豈, 奈何’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주111)
더듸리오 : 더디리오? 더디겠는가? 더듸-+리+오. ‘-오’는 선행하는 ‘엇뎨’와 호응한다. 『두시언해』에서 ‘-리오’는 주로 수사의문문에 쓰인다.
주112)
녀가미 : 감이. 녀-+어#가-+ㅁ+이. 거성인 ‘·가(거성)’가 명사형 어미 ‘옴’을 만나면 상성인 ‘:감(상성)’이 된다. 이와 같이 15세기에는 /ㅏ, ㅓ, ㅗ, ㅜ/ 뒤에 ‘-오/우-’가 결합되면, ‘-오/우-’는 나타나지 않고 성조가 바뀐다.
주113)
 : 빠른. -[迅]+ㄴ. ¶- : 點 더우믄 가지로 니라〈훈언 14ㄴ〉. 블근 桂樹엔 과 서리왜 고(丹桂風霜急)「有感五首」〈두시 5:15ㄱ〉.
주114)
도다 : 듯하도다. ++도+다. 15세기 국어에서는 폐쇄음 받침과 양순파열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사이에서 ‘’가 생략된다.
주115)
오히려 : 오히려. 오히+려. ‘-려’는 ‘새려’의 ‘-려’와 같은 부사화접미사이다. 『두시언해』에서 ‘오히려’는 주로 ‘尙, 猶’ 등의 번역으로 쓰인다. ‘猶’의 번역으로 쓰인 ‘’는 ‘아직’, ‘지금도 역시’의 의미로 어떤 일이나 상태가 끝나지 아니하고 지속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오히려 : 오히려 太白山ㅅ 누늘 보노니(猶瞻太白雪)「喜達行在所三首」〈두시 5:6ㄱ〉.
주116)
사호맷 : 싸움의. 사호+오+ㅁ+애+ㅅ. ‘사호-’는 원래 ‘싸호-’로 『두시언해』는 각자병서 표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주117)
드트리 : 드틀이. 띠끌이.
주118)
니 : 나니. -[飛]++니.
주119)
거느리츄멘 : 구제함에. 거느리-+치+우+ㅁ+에+ㄴ. ‘거느리치다’는 『두시언해』에서만 쓰였다. ¶거느리치- : 엇뎨 時節 거느리츌 謀策이 업스리오마(豈無濟時策)「遣興五首」〈두시 3:58ㄱ〉. 世 거느리츄멘 그듸내 맛니(濟世宜公等)「寄彭···三十韻」〈두시 20:38ㄴ〉.
주120)
사 : 사람을. 사+.
주121)
혀 : 끌어. 영입하여. 혀-[引]+∅.
주122)
미 : 씀이. -[用]+우+ㅁ+이. 『두시언해』는 병서 표기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스-’로 표기되었다. 15세기의 ‘-’는 ‘사용하다, 맛이 쓰다’ 등의 의미로 쓰이고, ‘쓰-’는 ‘글을 쓰다, 모자를 쓰다’의 의미로 쓰였다.
주123)
맛니라 : 마땅하다. 맛#-+니+라.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중간본〉에는 ‘맛당니라’로 되어 있다.
주124)
여원(黎元) : 여현(黎玄). 여민(黎民). 일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
주125)
소식(蘇息) : 휴양(休養)하며 편히 쉼. 〈표준〉에는 ‘막혔던 숨통이 트이면서 숨을 돌려 쉼’으로 되어 있다.
주126)
이적(夷狄) : 옛날에 동방에 살던 부족을 이(夷)라 하고, 북방에 살던 부족을 적(狄)이라 했다. 보통 화하족(華夏族, 중국 민족) 이외의 부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주127)
발호(跋扈) : ①세력이 강대하여 제멋대로 행동하는 일. 신하로서 권세를 농락하여 군주(君主)를 범하는 일. 호(扈)는 물 속에 넣어서 고기를 잡는 대나무로 만든 광주리로 큰 고기는 그것을 뛰어 넘어 도망을 치는 데서 유래한 말. ②용맹하고 씩씩함. ③날아오름.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28)
준순(逡巡) : ①준순(蹲循). 뒷걸음질 침. 공손히 순종하는 모양. ②사양함. 피함. ③여유 있는 모양. ④조심하고 삼가는 모양. ⑤배회함. 머뭇거림. ⑥질질 끎. 미룸. ⑦망설임. 주저함. ⑧잠깐. 경각(頃刻). 여기서는 ⑤의 뜻으로 쓰였다.
주129)
백성(百姓)의 : 백성이. 百姓+의. ‘百姓의’는 ‘셜워호미’가 이끄는 내포문의 주어이므로 속격 ‘-의’가 쓰였다.
주130)
시름야 : 걱정하여. 근심하여. 시름#+-+야.
주131)
셜워호미 : 고통스러워함이. 괴로워함이. 서러워함이. 셟-+어#-+오+ㅁ+이. 15세기 국어의 ‘셟다’는 ‘서럽다’의 의미도 있으나 주로 그보다 강한 의미인 ‘고통스럽다, 괴롭다’의 의미로 쓰였다. ¶셟- :  브레 데며 더운 므레 데어 셟거든〈구급방 하:10ㄴ〉. 그 소리 슬허 셟고 이베 피 흘리니(其聲哀痛口流血)「杜鵑行」〈두시 17:5ㄱ〉. 셜워- : 地獄에 모다 苦痛야 種種 셜워 소리와〈법화 6:37ㄴ〉. 忽然히 드로니 슬허 셜워시 詔書ㅣ 聖明朝애  리도다(忽聞哀痛詔 又下聖明朝)「收京三首」〈두시 5:7ㄴ〉.
주132)
모로매 : 모름지기.
주133)
소식(蘇息)리로소니 : 소식(蘇息)할 것이니. 편히 쉴 것이니. 蘇息#-+리+도+소+니.
주134)
이적(夷狄)의 : 이적의. 오랑캐의. 夷狄+의.
주135)
외요 : 발호함은. 대적함은. -+이+오+ㅁ+. ‘외다’는 ‘다’의 사동사이다. 그런데 『능엄경언해』에는 ‘다’가 동사로 쓰인 예도 있다. ¶- : 善財 이 因야 普賢 諸願行海 자 普賢과 오며 諸佛와 오니라〈법화 7:190ㄱ〉. 智慧왼 匠도 엇게 디 몯리로다(哲匠不比肩)「陳拾遺故宅」〈두시 3:64ㄴ〉. - : 이런로 세 비 잇니 나히 열헤 호 브터 열히 百애 며 百이 千에 야 千二百이 이니 六根이 各各 니라〈능엄 4:95ㄴ-96ㄱ〉. 외- : 다 나라히 와 보차거나 도기 외어나 야도〈석상 9:24ㄴ〉. 되 세  드러 외더니(胡虜三年入)「玉腕騮」〈두시 17:34ㄴ〉.
주136)
갓 : 헛되이. 한갓. ¶(거저) : 香 갓 옷곳 것 분 아니라〈석상 13:39ㄱ〉. 엇뎨 갓 高祖ㅅ 聖德 니리오(豈惟高祖聖)「述古三首」〈두시 3:56ㄴ〉. (헛되이) : 갓 受苦ㅣ 더으고 간대옛 머즌 이  미리라〈석상 20:12ㄴ〉. 챗 玉  바 넉시 갓 도라오놋다(環佩空歸月夜魂)「詠懷古跡三首」〈두시 3:68ㄴ〉.
주137)
머므럿도다 : 머물러 있도다. 머믈-[停]+어#잇-+도+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138)
미륜(彌綸) : 두루 망라한다는 뜻. 『주역』 계사전상(繫辭傳上)에서 “역(易)은 천지와 똑같다. 그러므로 천지의 도를 망라[彌綸]한다.”라고 했다.
주139)
한신(韓信) : ?~기원전 196. 전한 초기 회음(淮陰) 사람. 진이세(秦二世) 2년(기원전 208) 항량(項梁)과 항우(項羽)를 따라 낭중(郞中)이 되었지만 중용되지 못했다. 한왕(漢王) 유방(劉邦)에게 망명하여 연오(連敖)와 치속도위(治粟都尉)에 임명되었다. 소하(蕭何)에게 인정을 받아 그의 추천으로 대장군에 올랐다. 유방에게 동쪽으로 향해 천하를 도모할 것을 건의하고, 군대를 이끌고 위(魏)와 대(代)를 격파한 뒤 연(燕)을 함락시키고 제(齊)를 취했다. 한나라 4년(기원전 203) 상국(相國)에 임명되고, 다음 해 제왕(齊王)이 되었다. 이어 유방과 함께 해하(垓下)에서 항우를 포위해 죽였다. 전한이 성립되자 초왕(楚王)이 되고, 하비(下邳)에 도읍을 정했다. 그러나 한(漢) 제국의 권력이 확립되자 차차 밀려나, 누군가 그가 모반을 꾀한다고 고발하니 한고조(유방)가 운몽(雲夢)으로 외유를 나온 것처럼 꾸며 체포하고 6년(기원전 201) 회음후(淮陰侯)로 강등되었다. 고조 10년(기원전 197) 진희(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몰래 내통하여 호응하려고 했는데 사인(舍人)이 그가 병사를 일으켜 여후(呂后)와 태자(太子)를 습격하려 한다고 고발해 버렸다. 여후와 상국 소하의 계략에 걸려 장락궁(長樂宮)으로 유인당한 뒤 살해당했다.
주140)
절월(節鉞) : ①부절(符節)과 부월(斧鉞). 옛날 중국에서 임금이 부임하는 절도사나 정도(征途)에 오르는 장군에게 징표로 주던 물건. ②조선시대 관찰사나 유수(留守), 병사(兵使), 수사(水使), 통제사(統制使), 대장(大將) 등이 부임할 때 임금이 내어 주던 부절과 부월. 절(節)은 수기(手旗)와 같은 신표이고, 월(鉞)은 도끼처럼 만든 것으로 생살권(生殺權)을 상징했다.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41)
맛디며 : 맡기며. -+이+며. ‘맛디-’는 ‘-’의 피동사이다. ¶- : 麗運이 衰거든 나라 맛시릴 東海ㅅ  져재 니〈용가 6〉. 宗臣 기틴 詔命 맛도 切當히 니라(宗臣切受遺)「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ㄱ〉. 맛디- : 자내 지믈 어마님 맛디시고 부러 디여 여슷 里 가시니〈석상 3:37ㄴ〉. 鐵鉞을 맛뎌 親賢이 가고 집을 갑게 라 시논 詔書 머리 시놋다(受鉞親賢往 卑宮制詔遙)〈두시 5:15ㄱ〉「有感五首」 / 그 일훔난 王 자바 도라와 목 야 轅門의 맛듀라(虜其名王歸 繫頸授轅門)「前出塞九首」〈두시 5:29ㄱ〉.
주142)
실 : 쌓으실. -[築]+시+ㄹ. 『두시언해』는 각자병서로 표기되던 어휘를 평음으로 표기하기 때문에 ‘-’가 아닌 ‘-’로 표기된 것이다. ¶-/- : 여러 담 리와 손 도으리 블러다가 담 라〈번박 10ㄱ〉. 城 사 白帝예 븓고(築城依白帝)「西山三首」〈두시 5:10ㄱ〉.
주143)
들 : 뜻을. +을.
주144)
듣노니 : 들으니. 듣-[聞]+++오+니. ‘’은 ‘ㄷ’이나 ‘ㅈ’ 받침의 뒤에서 ‘’으로 쓰이고, 모음 등의 유성음 뒤에서는 ‘’으로 쓰이며, 나머지 경우에는 ‘’으로 쓰인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 : 天神이 바블 받거늘 아니 좌실〈석상 3:38ㄱ〉. 圖로 님금 받곡(圖以奉至尊)「鳳凰臺」〈두시 17:2ㄱ〉 /予는 내 시논 디시니라〈훈언 2ㄴ〉. 구틔여 玄圃애 뫼디 몯나(不必陪玄圃)「夔府書懷四十韻」〈두시 3:3ㄴ〉. 곳비 비흐며 香 퓌우고 길 잡거니 미조거니 야 려오더라〈석상 11:13ㄱ〉. 時節이 危難 저긔 님 恩私 갑고져 야 늘거도 能히 마디 몯노라(時危思報主 衰謝不能休)「江上」〈두시 3:39ㄴ〉.
주145)
믈어딘 : 무너진. 믈어디-+ㅣ+ㄴ. ¶믈어디- : 그 뫼히  것도 업시 믈어디거늘〈석상 6:31ㄴ〉. 늘구메 正히  믈어디유라(衰颯正摧顏)「秦州雜詩十七首」〈두시 13:38ㄱ〉.
주146)
싀여디 : 새는. 새어지는. 벌어진. 싀-[漏]+어#디-+. ‘싀다’와 ‘다’는 ‘새다’의 뜻인데, ‘싀-’에 ‘-어디다’가 붙은 ‘싀어디-’도 ‘새다’의 의미로 쓰였다. ‘-’의 용례는 15세기 문헌에 보이지만 ‘싀-’의 용례는 15세기 문헌에는 보이지 않으며 16세기 이후 문헌에 보인다. ‘싀여디-’의 용례는 15세기 문헌 중에서는 『두시언해』에만 보인다. ¶싀- : 偸 가져 禪 닷고 싀 잔 욤 求홈 고〈선가 35ㄴ〉. 漏 믈 싈 루〈신유 하:24ㄴ〉. - : 바 믈  굼긔 드러 이셔〈석상 13:10ㄴ〉. 臥床마다 지비 여  히 업스니(床床屋漏無乾處)「茅屋···破歌」〈두시 6:42ㄴ〉. 싀여디- : 비츨 싀여딜 거슨 버듯가지 잇도다(漏洩春光有柳條)「臘日」〈두시 11:36ㄴ〉. 바횟 굼긔 마나 므리 싀여디놋다(嵌竇潛洩瀨)「萬丈潭」〈두시 13:17ㄴ〉. 온 묏고 믌겨리 싀여디놋다(百容漏波濤)「臨邑舍弟書ㅣ~用寬其意노라」〈두시 13:28ㄱ〉. 그므레 싀여뎌 殊異 恩惠 辱외에 호라(漏網辱殊恩)「建都十二韻」〈두시 13:33ㄴ〉.
주147)
기망(期望)노라 : 기망(期望)하노라. 바라노라. ‘기망(期望)하다’는 국어사전에 ‘어떠한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람’이라 하였다.
주148)
곽흠(郭欽) : ?~?. 진(晉)나라 무제(武帝) 때 사람. 시어사(侍御史)를 지냈다. 일찍이 황제에게 글을 올려 천하를 다스릴 계책을 전달했다.
주149)
유의(劉毅) : ?~285. 서진(西晉) 동래(東萊) 액현(掖縣) 사람. 자는 중웅(仲雄)이다. 젊어서는 청절을 기르는 데 힘썼다. 처음에는 군공조(郡功曹)에 올랐다. 진 무제 때 거듭 승진하여 상서랑과 사예교위를 역임했다. 호강(豪强)한 무리들을 단속하니 경사(京師)가 조용해졌다. 성격이 강직해서 일찍이 무제에게 매관(賣官)하는 일을 충간했고, 또 구품중정제(九品中正制)를 폐지할 것을 건의하면서 “상품에는 한문이 없고, 하품에는 세족이 없습니다(上品無寒門 下品無勢族)”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핵해 폄축(貶逐)할 이를 자신의 친족에서부터 시작했다. 광록대부(光祿大夫)로 치사(致仕)하고 죽었다.
주150)
진무제(晋武帝) : 236-290. 사마염(司馬炎). 진나라의 황제(재위, 266-290). 하내(河內) 온현(溫縣) 사람으로, 자는 안세(安世)다. 사마소(司馬昭)의 아들이다. 처음에 위(魏)나라에서 벼슬해 북평정후(北平亭侯)에 봉해졌다. 급사중(給事中)을 지냈다. 위원제(魏元帝) 함희 2년(265) 아버지를 이어 상국(相國)과 진왕(晉王)이 되었다. 오래지 않아 위나라를 대신해 즉위하고 진왕조를 건립했다. 함녕 6년(280) 오(吳)나라를 멸하고 전국을 통일했다. 종실(宗室) 사람들을 두루 제후에 봉하고 사족(士族) 문벌제도를 강화시키는 한편 새로 만든 율령(律令)을 반포하고 제도를 제정하면서 관품(官品)의 등급과 점전(占田) 수량 등을 정했다. 만년에는 일락(佚樂)에 빠져 멍청한 아들 사마충(司馬衷)을 태자로 삼는 등 죽은 뒤에 벌어질 화근을 양성했다. 묘호는 세조(世祖)다.
주151)
환령(桓靈) : 후한 말의 환제(桓帝)와 영제(靈帝)를 함께 부르는 말. 환제(132~167)는 유지(劉志)를 가리킨다. 장제(章帝)의 증손이고, 여오후(蠡吾侯) 유익(劉翼)의 아들이다. 처음에는 양태후(梁太后)가 임조(臨朝)하여 양기(梁冀)가 정권을 잡았다. 연희 2년(159) 환관 단초 등이 양기를 죽이자 단초 등 5사람을 열후(列侯)에 봉했다. 그러자 환관들이 조정을 좌지우지했다. 9년(166) 세가대족(世家大族)들이 태학생들과 연합하여 환관 정치를 반대하자 이응 등 2백여 명을 체포했다. 이것이 당고지화(黨錮之禍)다. 21년 동안 재위했다. 영제(156~189)는 유홍(劉弘)이다. 장제(章帝)의 현손이다. 환관 조절 등을 중용하고 이응 등 백여 명을 포살(捕殺)하는 등 당고(黨錮)의 재앙이 다시 일어났다. 공개적으로 관직에 가격을 매겨 팔고 토지세를 늘리는 등 재원을 모아 궁실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환관들이 횡행했다. 중평(中平) 원년(184) 황건적(黃巾賊)의 반란이 일어났다. 22년 동안 재위했다.
주152)
공부(公府) : ①군주(君主)의 창고. ②삼공(三公)의 창고. ③관부(官府). ④저택에 대한 존칭.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153)
폐하(陛下) : ①제왕(帝王)의 궁전에 있는 계단 아래를 가리키는 말. ②제왕에 대한 존칭.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154)
혜아료 : 헤아림을. 혜아리-[數]+오+ㅁ+.
주155)
나토고 : 나타내고. 낟-+호+고. ‘나토다’는 ‘낱다’의 사동사이다. ‘낱-[顯]’이 ‘낟-’으로 쓰이는 것은 8종성법의 제약에 따라 제1음절 말음 ‘ㅌ’을 동일한 서열인 설음의 전청자 ‘ㄷ’이 쓰인 것이다. ¶낱-/낟- : 體ㅣ 名을 因야 낟고 名이 體 브터 이니〈영가 하:93ㄴ〉. 달혀 플 라 그즌 활씨우를 니 奇異호미 절로 나다나니라(煎膠續弦奇自見)「病後···贈歌」〈두시 3:49ㄴ〉. 나토- : 그저 더러 거긔셔 微妙 法을 나토며〈석상 13:33ㄴ〉. 더위 자바셔 셴 머리 나토라(執熱露白頭)「毒熱寄簡崔評事十六弟」〈중간두시 10:21ㄴ〉.
주156)
조서(詔書) : 임금의 선포문이나 명령을 관료나 일반 백성에게 전달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 조(詔).
주157)
놀래이니라 : 놀라게 함이다. 놀래킴이다. 놀라-[驚]+ㅣ+니+라. 동사 어간에 연결어미 ‘-아’가 결합된 형태에 다시 계사가 결합된 형태로 『두시언해』에서는 이러한 형태가 더러 쓰였다. ‘-니라’는 화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진술할 때 쓰는 종결어미이다. ¶놀라- : 王이 놀라샤 讚嘆야 니샤〈석상 3:4ㄱ〉. 親 밧 사미 늙고 여위요믈 놀라니(所親驚老瘦)「喜達行在所三首」〈두시 5:3ㄱ〉. 놀래- : 哀駘 風을 고 惡으로 天下 놀래다 니〈법화 2:28ㄱ〉. 옷기슬글 여 魏ㅅ 님그믈 놀래니(牽裾驚魏帝)「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5ㄱ〉.
주158)
명공(明公) : 옛날에 높은 지위에 있는 신하에 대한 존칭.
주159)
태복(太僕/大僕) : 주(周)나라 때의 관직(官職) 이름. 왕명(王命)을 전달하거나 출입할 때 시종(侍從)하는 등의 일을 맡았다.
주160)
연조(燕朝) : 옛날에 천자(天子)나 제후(諸侯)가 노문(路門) 안의 노침(路寢)에서 신하들을 만나는 것. 또 천자나 제후가 정치를 한 뒤 휴식하는 장소를 말하기도 한다.
주161)
빈상(擯相) : 빈객(賓客)을 안내하며 주인을 돕는 책임을 맡은 사람.
주162)
입근(入覲) : ①제후(諸侯)가 가을에 입조(入朝)하여 천자(天子)를 만나는 일. ②지방관원(地方官員)이 입조하여 제왕(帝王)을 만나는 일.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163)
부주(敷奏) : 진주(陳奏). 임금에게 일의 경과나 결과에 대해 보고(報告)하는 일.
주164)
다 : 다른. 다-[異]+ㄴ. ‘다-’는 ‘불규칙용언’ 중 이른바 ‘ㄹ‧ㅇ’ 활용을 한다.
주165)
나래 : 날에. 날[日]+애.
주166)
서르 라셔 : 서로 갈아서. -[替]+아+셔. ¶- : 류 잘  伎女 五百 야 서르 라 뫼게 시니〈석상 3:5ㄱ〉. 부러  들구를 두어 라 예 드노라(故著浮槎替入舟)「江上···短述」〈두시 3:31ㄴ〉.
주167)
말호 : 말씀함을. 말#-+오+ㅁ+. 〈원각경언해〉(1465)부터는 각자병서의 폐지로, 고유어의 경우 ‘각자병서’가 ‘평음’ 표기로 바뀌기 때문에 ‘말’은 ‘말’으로 표기된다. ¶말 : 詰難 말 서르 힐훠 겻굴 씨라〈석상 3:34ㄱ〉. 말 : 말 士  便安케  謀策이오(辯士安邊策)「西山三首」〈두시 5:11ㄱ〉.
주168)
녇게 : 옅게. 녙-[淺]+게. 15세기 문헌에 ‘냩-’은 보이지 않으며 16세기에 ‘옅-’, 17세기에 ‘옅-’과 ‘얕-’이 쓰였다. 〈중간본〉에는 ‘엳게’로 되어 있다. ¶녙- : 功德을 너비 나토샤 功 녀트며 기푸믈 조차 暫持며〈석상 19:8ㄱ〉. 나 漏刻 傳傳로 브르 소리 녀트니(晝刻傳呼淺)「晩出左掖」〈두시 6:15ㄱ〉. 여트- : 기픠 여틔 기니 댜니 되디 몯리라〈번박 67ㄴ〉. 얕- : 독긔 야며 기푸믈 변기 오로 이 예 인니라〈두창 상:23ㄴ〉.
주169)
아니리니 : 아니하리니. 아니할 것이니. 아니-+리+니. ‘녇게 아니리니’는 ‘-게 -’ 구성의 ‘아니’ 부정과 같은 형식을 띠고 있지만 여기서는 ‘녇게’가 동사의 연결형이라기보다는 부사처럼 쓰이고 있다. 모든 ‘-게 -’ 구성이 사동으로 볼 수 없는 좋은 예가 된다.
주170)
명공(明公) : 명공이. 明公+. 후행하는 ‘氣運’을 수식하는 내포절의 주어이므로 주격이 아닌 속격을 취하였다.
주171)
더욱 : 더욱. 『두시언해』에서는 ‘더옥’도 쓰인다. 〈중간본〉에는 ‘더옥’으로 되어 있다. ¶더욱 : 도라 드르샤 더욱 시름야 더시다〈석상 3:19ㄴ〉. 主將이 벼스리 더욱 노니(主將位益崇)「後出塞五首」〈두시 5:32ㄴ〉. 더옥 : 시러곰 믈을 머기디 말고 더옥 쉴 곧 갓가와셔 금긔 홀 디니라〈마경 상:42ㄱ〉. 閑散 해 더옥 벼개 노피 벼요니(散地逾高枕)「大歲日」〈두시 11:2ㄱ〉.
주172)
니르왇놋다 : 일어나는구나. 닐-[起]+왇++옷+다. ‘니르-’는 ‘닐-’에 사동접미사 ‘-으-’가 결합된 사동사이다. ‘-왇-’은 〈능엄경언해〉(1461) 이전 문헌에는 대개 ‘--’으로 표기된다. ¶니르- : 觀音은 소릿 드트를 조차 妄量로 知見 니르도 아니실〈석상 21:2ㄱ〉. 니르왇- : 저희 가 티고 四兵을 니르왇디 아니〈석상 11:36ㄱ〉. 뭀 小人이 다  니르와니라(群小起異圖)「草堂」〈두시 6:37ㄴ〉.
주173)
소관(簫管) : 퉁소와 대관(큰 관악기)을 배열하는 일. 일반적으로 관악기(管樂器)를 가리킨다.
주174)
무검(儛劍) : 칼을 들고 추는 춤을 가리키는 말.
주175)
주호(酒壺) : 술이 가득 찬 단지[壺].
주176)
기우리고 : 기울이고. 기울-[仄]+이+고. ¶기울- : 긷 불휘 석고 보히며 리 기울어늘〈월석 12:21ㄴ〉. 횟도로 힐훠  盖ㅣ 기울오(回回偃飛盖)「揚旗」〈두시 5:48ㄱ〉. 기우리- : 귀 기우리면 곧 드르며〈금삼 3:20ㄴ〉. 번 보매 能히 財産을 기우리니(一見能傾産)「李監宅二首」〈두시 7:34ㄱ〉.
주177)
뎌 : 저. ‘뎌〉져〉저’의 변화 과정을 겪는다. ‘이, 그, 뎌’는 화자, 청자, 대상 사이의 심리적 거리에 의해 결정되어 쓰인다. ¶뎌 : 뎌 수프레 잇 벌에 토 다 깃거〈석상 3:33ㄱ〉. 뎌 軍이 우리게 쵸미 외도다(彼軍爲我奔)「前出塞九首」〈두시 5:29ㄱ〉. 다가  라치 져 부쳐을 아니 렴면〈권념 7ㄴ〉. 져 극낙셰계를 가고져 발원을 아니고〈염불보권문 5ㄴ〉.
주178)
부로매 : 붊에. 불-[吹]+오+ㅁ+애.
주179)
셴 : 센. 셰-[白]+ㄴ.
주180)
검니 : 검어지니. 검-[黑]++니. ‘검다’는 형용사이지만 여기서는 ‘검어지다’의 뜻인 동사로 쓰였으며, 여기에 현재 지각의 ‘--’가 연결되었다.
주181)
갈 : 칼. 15세기의 ‘갈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182)
추멘 : 춤엔. 츠-[舞]+우+ㅁ+ㄴ. ¶그 後에 놀애 브르며 춤 츠며 담야 남진 어르기 며〈월석 1:44ㄴ〉. 意氣로 곧 大闕에 가 춤 츠고(意氣卽歸雙闕舞)「承聞···口號絕句十二首」〈두시 5:25ㄱ〉.
주183)
서리와 눈괘 : 서리와 눈이. 서리+와 눈+과+ㅣ. ‘서리와 눈’은 ‘백발’을 가리킨다. 중세국어에서는 체언을 나열할 때 그 뒤에 공동격조사 ‘와/과’로 마지막 체언까지 연결한 다음에 다시 적절한 격조사를 연결한다.
주184)
불이 : 불리는. 불-[吹]+이+. ‘불이-’는 ‘불-’의 사동사이다. ¶불이- :  깃거 류오 붑 티며 쥬라 불이고 가더니〈석상 23:57ㄱ〉. 맷 箏은 玉 기애셔 불이고(風箏吹玉柱)「冬日洛城北謁玄元皇帝廟」〈두시 6:28ㄱ〉.
주185)
도다 : 듯하도다. #-+도+다.
주186)
계자(季子) : 전국시대(戰國時代) 낙양(洛陽) 사람 소진(蘇秦)을 가리키는 말. 소진이 일찍이 외출해서 유세(遊說)했는데, 황금이 다 떨어지자 곤궁해져 귀가하니 집안사람들이 모두 그를 비웃었다. 나중에 육국(六國)의 상인(相印)을 차고 낙양을 지나게 되자 형제와 형수들이 부끄러워 감히 우러러보지 못했다. 소진이 형수에게 묻기를 “전에는 거만하더니 오늘은 왜 이리 공손하시오?” 하니, 형수가 “보니 계자의 지위가 높고 황금이 많기 때문이죠(見季子位高金多也)”라고 대답했다. 일설에는 서진의 자가 계자(季子)라기도 하고, 또는 형수가 ‘작은 아저씨[小叔]’를 일러 계자라 여겼다고 한다.
주187)
소진(蘇秦) : ?~기원전 284. 전국시대 중엽 동주(東周) 낙양(洛陽) 사람. 자는 계자(季子)다. 장의(張儀)와 함께 귀곡자(鬼谷子)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소계자(蘇季子)’라고 불렀다.
주188)
운손(雲孫) : 멀어진 자손이란 뜻으로, 8대 뒤의 후손을 일컫는 말이다.
주189)
이바디던 : 연회하던. 잔치하던. 이바디[宴]+-+더+ㄴ. ¶이바디 : 간 고대 禮貌 업더니 盖天英氣실 이바디예 머리 좃니〈용가 95〉. 며  이바디 초 得놋다(况得終淸宴)「石硯」〈두시 16:53ㄴ〉. 이바디- : 貴 飮啖과 盛 차바  머그며 사과 다 이바디며 즐겨 호미 可티 아니니〈내훈 1:63ㄴ〉. 그기  말만 수를 사아 매 이바디호 諧和히 다(密沽斗酒諧終宴)「病後···贈歌」〈두시 3:51ㄱ〉.
주190)
돗긔셔 : 자리에서. [座]+의+셔.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 : 보라 돗 겨펴 오〈월석 12:30ㄱ〉. 처 돗긔 안조매 슬픈 실와 큰 댓 소리 뮈놋다(初筵哀絲動豪竹)「醉爲···相看」〈두시 3:52ㄴ〉.
주191)
일즉 : 일찍이. 참조; 일. ¶일즉 : 알 비록 이쇼매 리디 아니나 일즉 업디 아니홈 아니오〈반야 53ㄱ〉. 일즉 椽吏 외야 三輔애 가 뇨니(曾爲椽吏趨三輔)「峽中覽物」〈두시 3:37ㄱ〉. 일 : 그 어버 졈고 식 업시 일 홀어미 도 주를 에엿비 녀겨〈번소 9:56ㄴ〉. 天山앤 일 화 거렛도다(天山早掛弓)「投贈···二十韻」〈두시 5:41ㄴ〉.
주192)
니더니 : 이르더니. 니-[說]+더+니. ‘니-’는 모음어미 앞에서 ‘닐ㅇ-’으로 활용하는 소위 ‘ㄹ·ㅇ’형 불규칙활용 동사이다.
주193)
후래(後來)예 : 나중에. 後來+예.
주194)
등비(等比)옛 : 견줄만한. 等比+예+ㅅ.
주195)
모재(茅齋) : 묘재(茆齋). 띠로 지붕을 이은 집. 재(齋)는 보통 서방(書房)이나 학사(學舍)를 말한다.
주196)
새지븐 : 띠집은. 모옥(茅屋)은. 새#집+은. ‘새집’은 『두시언해』에서만 볼 수 있는 단어이다. ¶새집 : 하 비 蕭蕭히 새지븨 오래 오니(天雨蕭蕭滯茅屋)「久雨···不至」〈두시 5:35ㄴ〉. 巳公 새집 아래여 어루 곰 새 그롤 지리로다(巳公茅屋下 可以賦新詩)「巳上人茅齋」〈두시 9:25ㄱ〉.
주197)
정왕(定王) : 정왕의. 즉, 소환(蘇渙)의.
주198)
약물(藥物)은 : 약은. 藥物+은. 즉 두보가 담주에 있을 무렵 약을 시장에서 구했음을 알 수 있다.
주199)
초(楚)ㅅ 늘근 사 : 초의 늙은 사람의. 楚+ㅅ 늙-[老]+은 사+. ‘초의 늙은 사람’은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주200)
자바 : 잡아. 잡-[捕]+아.
주201)
 : 흥정하는. #-+. 〈중간본〉에는 ‘흥졍’으로 되어 있다. ¶- : 그긔  하아 쇼로 쳔사마 니라〈월석 1:24ㄴ〉.   一萬  로다(淸秋萬估船)「白塩山」〈두시 13:5ㄱ〉.
주202)
져제로다 : 저자이도다. 시장이도다. 져제#이+도+다. ‘로’는 ‘도’가 계사 ‘이’에 후행할 때의 이형태이다.
주203)
견여(肩輿) : 두 사람이 앞뒤에서 메는 가마. 교자(轎子)라고도 한다. 대방상(大方牀)을 쓰는 행상(行喪)에서 좁은 길을 건널 때 잠시 쓰는 간단한 상여(喪輿)를 지칭하기도 한다.
주204)
은궤(隱几) : 궤안(几案)에 기대어 있음. 그리하여 은거(隱居)하는 삶을 말한다.
주205)
져젯 : 저자의. 시장의. 져제+에+ㅅ. ¶져제 : 艱難커 져제 섭나모 다니〈육조 상:19ㄴ-5〉. 스싀로 닐오 머리 존 거슬 버혀 져제 가 라 杯酒 몃구라(自陳剪髻鬟 鬻市充杯酒)「送重···南海」〈두시 8:55ㄱ〉.
주206)
북(北) 녀긔셔 : 북녘에서. 북쪽에서. 北 녘+의+셔. ‘東西南北’ 중 ‘西’만 ‘西ㅅ녁’으로 사이시옷을 쓰고 나머지는 쓰지 않는다.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중간본〉에는 ‘北 녀킈셔’로 되어 있다.
주207)
타 와 : 타고 와. -[乘]+아 오[來]-+아. ‘-’는 ‘①받다, ②타고 나다, ③영향을 받다, ④나무를 타다, ⑤차를 타다, ⑥가야금을 타다, ⑦불에 타다’ 등의 뜻이 있다. 참고. 오-, 블-, 더위-, 붓그림-, 숨-, 치위-.
주208)
매 : 소매를. 매[袂]+.
주209)
니 : 이어. 닛-[連]+어. ‘이’는 ‘어’의 잘못이다. 〈중간본〉에는 ‘ 니이’로 되어 있다. ¶닛- : 아 나하 나랏 位 닛긔 코져 더시니〈석상 11:30ㄴ〉. 대 니 荊州ㅅ 예(連檣荊州船)「雨三首」〈두시 12:14ㄴ〉.
주210)
니 : 앉으니. 앉-[坐]++니.
주211)
남(南) 녀긔셔 : 남녘에서. 남쪽에서. 南 녘+의+셔.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중간본〉에는 ‘南 녀킈셔’로 되어 있다.
주212)
도 : 독을. 물동이를. 독[甕]+. ¶독 : 도기 잇거든 고〈순천 113:3〉. 酒盃ㅣ 니 도기 곧 뷔도다(杯乾甕即空)「遣悶奉呈嚴公二十韻」〈두시 19:9ㄴ〉.
주213)
아며 : 안으며. 안-[抱]+며.
주214)
비기노라 : 의지하노라. 기대노라. 비기-[倚]++오+라.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비기- : 이 根과 塵과 識괘 가비건댄 뭇군  서르 브터 비기야〈능엄 5:8ㄱ〉. 七寶几 자샤 紫金山 도샤 다시 와 비기샤 너비 大衆과 阿難려 니샤〈능엄9:41ㄱ〉. 햇 남글 기웃야 도로 비기고(野樹欹還倚)「九日五首」〈두시 11:29ㄴ〉. 햇 남글 기웃야 도로 비기고  핫소리 야 도로 드로라(野樹歌還倚 秋砧醒却聞)「九日五首」〈두시 11:29ㄴ〉.
주215)
승상(丞相) : 옛날에 군주를 보좌했던 최고위 행정 장관. 전국시대 진도무왕(秦悼武王) 2년에 처음으로 좌우승상(左右丞相)이 설치되었다. 진나라 이후 각 왕조에서 때로는 존립하기도 했고, 때로는 없애기도 했다. 명나라 홍무 13년(1380) 중서성을 없애고 권한을 육부(六部)에 귀속시켰는데, 이로부터 승상의 제도는 없어졌다.
주216)
마융(馬融) : 79~166. 후한 부풍(扶風) 무릉(茂陵) 사람. 자는 계장(季長)이고, 마엄(馬嚴)의 아들이다. 스승을 정성으로 섬겼고, 경서와 서적에 박통(博通)했다. 처음에 등즐사인(鄧騭舍人)이 되었다. 안제(安帝) 영초(永初) 4년(119) 교서랑(校書郞)이 되어 동관(東觀)의 비서(秘書)를 교정했다. 「광성송(廣成頌)」을 올린 것이 등태후(鄧太后)의 심기를 거슬러 10년 동안 승진하지 못했다가 금고(禁錮)를 당했다. 태후가 죽은 뒤 의랑(議郞)으로 부름을 받아 환제(桓帝) 때 무도(武都)와 남군(南郡)의 태수를 지냈다. 대장군 양기(梁冀)에게 죄를 져 삭방(朔方)으로 쫓겨났다. 사면을 받고 돌아와 의랑에 복직하고, 다시 동관에서 저술에 전념했다. 이런 일로 권세가들에게 감히 거역을 못 하게 되어 양기가 이고(李固)를 탄핵할 때 글의 초안을 잡았고, 또 「서제송(西第頌)」을 지어 찬양하여 뜻 있는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나중에 병으로 사직했다. 재주가 높고 지식이 풍부했으며, 통유(通儒)로 제자만 천여 명에 이르렀다. 노식(盧植)과 정현(鄭玄) 등을 가르쳤다. 『춘추삼전이동설(春秋三傳異同說)』을 짓고, 『효경』과 『논어』, 『시경』, 『주역』, 『삼례(三禮)』, 『상서』, 『열녀전(列女傳)』, 『노자』, 『회남자』, 『이소(離騷)』를 주석했다. 문집 21편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 단편만 남아 있다.
주217)
경사(京師) : ①한 나라의 도읍(都邑)을 가리키는 말. ②천자가 거느린 군대를 가리키는 말. ③조정(朝廷)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으로 쓰였다.
주218)
사안(謝安) : 320~385. 동진(東晉) 중기 진군(陳郡) 양하(陽夏) 사람. 자는 안석(安石)이다. 젊어서부터 명망이 높았고, 행서(行書)를 잘 썼다. 처음에는 세상에 뜻이 없어 발탁을 받고도 나가지 않았다. 오랫동안 회계(會稽)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왕희지(王羲之)와 허순(許詢), 지둔(支遁) 등과 교유하면서 자연의 풍류를 즐기다가 마흔이 넘은 중년에 비로소 중앙정계에 투신했다. 처음에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의 휘하에서 사마(司馬)로 활약했다. 효무제(孝武帝) 때 중서감(中書監)과 녹상서사(錄尙書事)를 지냈다. 이부상서(吏部尙書)로 진급했고, 제위를 찬탈하려는 환온의 야망을 저지했다. 환온이 죽은 뒤 재상이 되었다. 당시 전진(前秦)이 강성해져 진나라 군대가 연달아 패했다. 태원(太元) 8년(383) 전진왕(前秦王) 부견(苻堅)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비수(淝水)에 주둔했는데, 위세로 강동 일대가 진동했다. 정토대도독(征討大都督)이 되어 동생 사석(謝石), 조카 사현(謝玄)과 함께 이들을 강력하게 방어하여 작전을 지휘했는데, 결국 대승을 거두었다. 건창현공(建昌縣公)에 봉해졌다. 이어 사석 등에게 북정(北征)을 지시해 낙양(洛陽)과 청주(靑州), 연주(兗州) 등을 수복하고, 양주(揚州)와 강주(江州), 형주(荊州) 등 15주(州)의 군사(軍事)를 맡았다. 당시 회계왕(會稽王) 사마도자(司馬道子)가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배척을 당해 외직으로 나가 광릉(廣陵)을 지켰다. 얼마 뒤 병사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주219)
수업시 : 수없이. 수[數]#없-+이. 원문의 ‘無數’에 대한 번역으로 『두시언해』에서 ‘無數’는 ① ‘數 업-’ ② ‘數ㅣ 업-’ 등으로 ‘數’가 한자로 표기되나 여기에서는 한글로 표기되었다. ¶쳡을 수 업시 호믄 사믈 어즈러우믈 츄미니〈번소 7:31ㄴ〉. 數 업슨 자리 기 오리거(無數蜻蜓齊上下)「卜居」〈두시 7:2ㄱ〉. 畵師ㅣ  數ㅣ 업스나(畵師亦無數)「奉先劉···障歌」〈두시 16:29ㄴ〉.
주220)
지비 : 집이. 집+이.
주221)
일며 : 이루어지며. 일-[成]+며. ‘일-’의 사동사는 ‘일우-’이다. ¶일- :  氣韻이 流야 三世 일오〈석상 19:12ㄱ〉. 녯 사 일며 敗호매 네 엇뎨리오(古人成敗子如何)「寄栢學士林居」〈두시 7:28ㄴ〉. 일우- : 成佛은 부텻 道理 일우실 씨라〈석상 3:1ㄱ〉. 됴 비 오미 일우메 잇디 아니니라(甘澤不在早)「遣興三首」〈두시 5:34ㄴ〉.
주222)
일 : 일찍. 원문의 ‘早’에 대한 번역이다. 참조; 일즉. ¶그 어버 졈고 식 업시 일 홀어미 도 주를 에엿비 녀겨〈飜小9:56ㄴ〉. 돌 우희 믈 잇 로 일 녀고(早行石上水)「彭衙行」〈두시 1:12ㄴ〉.
주223)
외야 : 되어. 외-[爲]+야. 정음 초기 문헌에는 ‘야’로 표기된다. ¶- : 山 草木이 軍馬ㅣ 니다〈용가 98〉. 외- : 郞 외야쇼매 머리 셰요 므던히 너기노니(爲郞從白首)「歷歷」〈두시 5:17ㄴ〉.
주224)
산동(山東)애셔 : 산동에서. 山東+애+셔. 〈중간본〉에는 ‘東山애셔’로 되어 있다.
주225)
니러나놋다 : 일어나는구나. 닐-[起]+어#나-++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226)
조작(鳥雀) : 보통 작은 새를 가리키는 말. 비유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능력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주227)
교룡(蛟龍) : 고대 전설상에 나오는 물속에 사는 동물. 전설에 따르면 교(蛟)는 능히 홍수를 일으키고 용(龍)은 능히 비구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주228)
소인(小人) : 간사하고 국량(局量)이 좁은 사람. 또는 재주가 덕보다 나은 사람.
주229)
군자(君子) : 덕(德)과 학식이 높은 사람. 또는 덕이 재주보다 나은 사람.
주230)
새 : 새들은. 새[鳥]+ㅎ+. 원문의 ‘鳥雀’을 번역한 말이다.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주231)
 : 가을의. [秋]+ㅅ. 〈중간본〉에는 ‘’로 되어 있다.
주232)
조콰 : 조와. 조ㅎ[粟]+과. ‘조ㅎ’는 ‘ㅎ말음체언’으로 ‘ㄱ’이나 ‘ㄷ’으로 시작하는 조사를 만나면 ‘둘콰, 나토’ 등으로 쓰인다.
주233)
 : 콩에. [豆]+. 〈중간본〉에는 ‘콩’로 되어 있다.
주234)
지거늘 : 살지거늘. #지-+거늘. ‘-거늘’은 기원적으로 ‘거+느+ㄹ’로 분석될 가능성이 있다. ¶큰  지고 壯코 힘 하며〈법화 2:140ㄱ〉. 五陵에셔 옷과 왜 제 가야오며 지도다(五陵衣馬自輕肥)「秋興三首」〈중간두시 10:35ㄱ〉.
주235)
치운 : 추운. 칩-[寒]+우+ㄴ. 참조; 치. 치. 치위. 치. 치움. ¶百姓이 치워 커 닐오 내 칩게 호라 니〈내훈 2:94ㄴ〉. 몰앳 나조 鶺鴒이 칩도다(沙晚鶺鴒寒)「第五弟豐이~寄此二首노라」〈두시 8:45ㄱ〉.
주236)
몰앳 : 모래의. 몰애[沙]+ㅅ. ¶몰애 : 더 몰애 모매 븓 苦왜라〈석상 13:8ㄱ〉. 平 몰애예 一萬 帳幕이 버렛니(平沙列萬幕)「後出塞五首」〈두시 5:30ㄴ〉.
주237)
므레 : 물에. 믈[水]+에.
주238)
칩장(蟄藏)코져 : 칩장하고자. 蟄藏#-+고#지-+어. ‘칩장하다’는 국어사전에 ‘땅속이나 굴속에 죽치고 있음’로 되어 있다.
주239)
놋다 : 하는구나. -++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240)
고각(鼓角) : 전고(戰鼓)와 호각(號角) 두 악기를 가리키는 말. 군대에서도 상황을 알리거나 군중에게 경계를 시키기 호령(號令)을 발표할 때 사용했다.
주241)
부곡(部曲) : 본래 군의 편제 단위였지만 육조(六朝)시대 이후 지방의 호족이 부리는 사병(私兵)을 뜻했다. 지주의 노예 또는 소작인, 속객 가운데 선발되었으며, 노예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다. 노예처럼 매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지주의 예속 하에 자유를 누릴 수 없었고, 관리로 나아갈 길도 차단되었다.
주242)
간과(干戈) : 방패와 창. 그리하여 전쟁(戰爭)에 쓰는 병기(兵器)의 총칭. 전쟁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간과지변(干戈之變).
주243)
천하(天下)애 : 천하에. 세상에. 天下+애.
주244)
어느  : 어느 때에. 어느 [時]+의. 15세기 국어의 처격조사는 일반적으로 ‘-에, -애, -예’이나 ‘신체, 방위, 지리, 천문, 식물, 가옥, 가구’ 등을 지칭하는 100여 개 이상의 체언은 ‘/의’를 처격조사로 취하였는데, 낮, 밤, , 나조ㅎ, 새박[曉] 등은 ‘-’를 취하였고 집, , 우ㅎ, 녁, 밑, 곁,  등은 ‘-의’를 취하였다. 15세기 국어의 ‘어느’는 ‘어느, 어떤’의 뜻과 함께 ‘어찌’의 뜻도 있다. 여기서는 전자의 용법으로 쓰였다. 〈중간본〉에는 ‘어느 ’로 되어 있다. ¶어느(어느) : 어느 나래아 軍卒 練習호믈 말려뇨(幾日休練卒)「北征」〈두시 1:7ㄱ〉. 어느(어찌) : 부텻 法이 精微야 져믄 아 어느 듣리고〈석상 6:11ㄱ〉. 사롬 사리아 어느 시러곰 니리오(生理焉能說)「北征」〈두시 1:7ㄱ〉. 내 큰 스니미 마 涅槃 시니 어느 로 바 머그료〈석상 23:41ㄴ〉.  : 밤 낫 여슷 로 뎌 藥師瑠璃光如來 저 供養고〈석상 9:32ㄱ〉. 之子 로 서르 보니(之子時相見)「題張氏隱居二首」〈두시 9:12ㄴ〉.
주245)
말리어니오 : 말겠는가? 말 것인가? 말-+리+거+니+오. ‘오’는 선행하는 ‘어느’와 호응하는 설명의문어미이다.
주246)
알 : 앞에. 앒[前]+. ‘앒〉앞’과 같은 변화는 〈소학 언해〉(1586)에 처음 보인다. ¶앞 : 뵈야호로 그 져머신 제 父母ㅣ 왼녁 겯로 잡고 올녁 겯로 들며 아프로 옷기슬 긔고 뒤후로 옷기 글잇그러〈소언 5:70ㄴ〉.
주247)
나리 : 날이. 날[日]+이.
주248)
록 : 마치도록. -[終]+록. ‘-’은 자타동 양용동사인데 사동사는 ‘마치-’이다. ¶- : 矣 말  입겨지라〈훈언 2ㄴ〉. 기픈  禁闕에 朝會 고 도라오  몯호라(窈窕淸禁闕 罷朝歸不同)「奉答岑···見贈」〈두시 21:14ㄴ〉. 마치- : 請 드른 다대와 노니샤 바 아니 마치시면 어비 아리 사시리가〈용가 52〉.
주249)
-록 : 내  劫이며  劫이 남록 닐어도 몯 다 니르리어니와〈석상 9:10ㄴ〉. 나리 록 비 아아 오니(竟日雨冥冥)「獨坐二首」〈두시 3:41ㄴ〉.
주250)
죽놋다 : 죽는구나. 죽-[死]++오+ㅅ+다. ‘오’는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말해 준다.
주251)
글워 : 편지를. 글#월+. ¶두 글워 어울워 釋譜詳節을 라 일우고〈월석 1:월인석보 서12ㄴ〉. 간 燕ㅅ 將軍의게 글워 여 보내시니라(聊飛燕將書)〈두시 5:7ㄱ〉.
주252)
브텨 : 부쳐. 븥-[送]+이+어.
주253)
배 도주(裴道州) 주고 : 배 도주에게 주고. ‘주-’가 지배하는 격표지 ‘-’은 현대국어라면 ‘-에게’이다.
주254)
지즈로 : 인하여. ‘지즈로’는 ‘짖(?)+으로’의 구성일 것으로 보이는데, ‘인하여’의 뜻으로 쓰이는 부사인데 『두시언해』에만 쓰였다. 『두시언해』에는 ‘지즈루’로도 쓰였다. ¶지즈로 : 벼개예 굽스러셔 지즈로 리 오니(伏枕因超忽)「秋日···三十韻」〈두시 3:8ㄱ〉. 公孫이 지즈로 險호 믿니(公孫仍恃險)「風疾이어~三十六韻이라」〈두시 3:18ㄱ〉/ 지즈루 : 廉頗ㅣ 지즈루 彼敵  며(廉頗仍走敵)「投贈···二十韻」〈두시 5:41ㄴ〉. 여러  지즈루 머리 여희여쇼니(積年仍遠別)「遠懷舍弟穎觀等」〈두시 8:42ㄴ〉.
주255)
소환(蘇渙) 뵈노니 : 소환에게 보이니. 보-+이++오+니.
주256)
마 : 이미. 벌써. 15세기의 ‘마’는 ‘장차(將次)’의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마 : 나 늘거 마 無想天으로 가리니〈석상 3:2ㄱ〉. 너희 비들 마가 줄 靑錢 마 일워 뒷노니(已辦靑錢防雇直)「撥悶」〈두시 3:32ㄴ〉.
주257)
더위자보 : 붙잡음을. 부축함을. 더위#잡-+오+ㅁ+. ¶一刹那ㅅ 예 믄득 더위자바 잇거든〈월석 11:52ㄴ〉. 蒼生 어느 다시 더위자리오(蒼生豈重攀)「有歎」〈두시 3:44ㄱ〉.
주258)
기들우믈 : 기다림을. 기들우-[待]+우+ㅁ+을. 이 낱말은 ‘기들오다, 기들우다, 기들이다, 기드리다, 기오다, 기우다, 기리다, 기도르다, 기두르다’ 등 여러 가지 형태로 표기되었다. 『두시언해』에서는 주로 ‘기들우-, 기들오-, 기드리-, 기오-(중간)’가 쓰였다. ‘기’로 시작하는 형태들은 빨라도 16세기 문헌에 등장하여 주로 근대국어 문헌에서 보이며 ‘기도/두’로 시작하는 형태들도 근대국어에 등장하는 표기들이다. ¶기들우- : 明哲 기들우노니 왼 란 正오라〈영가 서:16ㄴ〉. 翠華ㅅ 보 기들우니라(寒待翠華春)「王命」〈두시 5:14ㄴ〉. 기들오- : 모 夫人이 다 怪異히 너겨 오 빗어 뫼와셔 오 기들오더니〈내훈 2:119ㄱ〉. 南嶽앳 鳳 우루믈 기들오노니(佇鳴南嶽鳳)「贈虞十五司馬」〈두시 8:25ㄱ〉. 기드리- : 人生 즐거 디 업고 주구믈 기드리노니〈석상 6:5ㄱ〉. 블근 門 다도 잇비 아니야셔  河漢 마 가 스싀로 기드리노라(不勞朱戶閉 自待白河沈)「送嚴侍郞야~宴得心字호라」〈두시 14:15ㄴ〉. 기오- : 騘馬 타 發行다 니거 듣고 沙邉에셔 이제 니르도록 기오라(聞道乘騘發 沙邉待至今)「渝州候嚴六侍御不到先下峽」〈중간두시 2:4ㄴ〉.
주259)
붓그리노라 : 부끄러워하노라. 붓그리-[愧]++오+라. 이 낱말은 한국어 동사 가운데 ‘동사, 동사+-, 동사+업-, 동사+업+-’로 파생되는 전형적인 유형의 동사이다. 이런 유형의 동사인 경우 『두시언해』에서는 ‘동사+업-’ 파생형용사나 ‘동사+업-+어 -’ 동사는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노’에 들어있는 ‘오’로 인해 이 문장의 화자가 ‘두보’임을 알 수 있다. ¶붓그리- : 란 아니 닷고 오로 오 이 붓그리다니〈월천 44ㄱ〉. 大闕을 思戀야 肝肺 잇브게 노니 材質을 議論호매 杞柟 붓그리노라(戀闕勞肝肺 論材愧杞柟)「樓上」〈두시 3:49ㄱ〉. 붓그려- : 黃石은 스 외요 붓그려다(黃石愧師長)「故著···公虔」〈두시 24:36ㄴ〉. 붓그럽- : 이 사 질쌈야 뵈  옷 라 붓그러  가리오니다〈월석 22:26ㄱ〉. 애 붓그러온 주리 업스랴〈번소 9:52ㄱ〉. 붓그러워- : 도 붓그러워노라〈순천 83:11〉.
주260)
요로(要路) : 빛나고 중요한 지위(地位).
주261)
연구(捐軀) : 나라를 위하거나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
주262)
님그믈 : 임금을. 님금+을.
주263)
닐위우므란 : 이르게 함은. 닐위-+우+ㅁ+으란. ‘닐위-[致]’는 ‘니-/니르-’의 사동사이다. ‘니-’는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 앞에서 불규칙활용을 하여 어간이 ‘닐-’로 교체된다. 불규칙활용 중 소위 ‘ㄹ·ㅇ’형이다. ¶닐위- : 二乘이 道理 닐위디 몯야 갓 담 議論앳 法 민  알리로다〈월석 12:28ㄱ〉. 나 爲야 됴 차바 힘 닐위다(爲我力致美肴膳)「病後···贈歌」〈두시 3:50ㄴ〉. 으란 : 그 瓔珞 바샤 두 分에 호아  分으란 釋迦牟尼佛 받시고  分으란 多寶佛塔애 받시니라〈석상 21:18ㄱ〉. 盤石에 命圭 오란 해 고(盤石圭多剪)「秋日···三十韻」〈두시 3:11ㄱ〉.
주264)
그듸내게 : 그대들에게. 그듸+내+애게. 15세기에 ‘그듸, 그디, 그’가 쓰였는데 점차 ‘그’로 통일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두시언해』에서 ‘그듸’는 ‘그’로도 쓰였다. 15세기 국어에는 ‘-에게, -애게, -의게, -게, -ㅅ게’가 있으므로 이들은 속격조사와 ‘게’로 분석된다. ‘게’는 다시 명사성을 가지는 요소와 처격조사의 결합으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두시언해』에서 ‘그듸’와 ‘그’는 같이 쓰였다. ¶그듸내 : 金輪王 아리 出家라 가니 그듸내 各各  아옴 내야 내 孫子 조차가게 라〈석상 6:9ㄴ〉. 구디 안자셔 그듸내 기우려 머구믈 보노라(老人因酒病)「季秋蘇五弟纓~韋少府姪호라 三首」〈두시 15:52ㄴ〉. -애게 : / 오직 네게 거리디 아니호미 이시리로다(只有不關渠)「戲作俳諧體遣悶二首」〈두시 3:46ㄴ〉/ -ㅣ게 : 내게 이셔 어느 줄로 블리오(在於甫也何由羨)「病後···贈歌」〈두시 3:49ㄴ〉. -의게 : 간 燕ㅅ 將軍의게 글워 여 보내시니라(聊飛燕將書)「收京三首」〈두시 5:7ㄱ〉. -게 : 扶持호미 두 사게 잇도다(扶持在數公)「收京」〈두시 5:9ㄱ〉. -ㅅ게 : 이 곧 無學ㅅ게 호 小聲聞 미라〈법화 4:46ㄴ〉.
주265)
브티노니 : 의지하니. 븥-+ㅣ++오+니. ‘브티-’는 ‘븥-’의 사동사로, 15세기 국어의 ‘븥-’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진 다의어 동사이다. 『두시언해』에 쓰인 복합어에 쓰인 것을 제외한 ‘브티-’에 대응하는 한자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 ‘付, 自, 寄, 焚, 泊, 爨, 託, 憑, 燒, 火, 發, 焦’ 등이 있는데, ‘불을 붙이다’의 뜻이 가장 많이 쓰였다. ¶(寄) : 즐거운 일 닐우믈 긴 바 브티노라(語樂寄夜永)「西枝···土室二首」〈두시 9:14ㄴ〉. (焚) : 宮殿을 브티니 브리 새록 챗도다(焚宮火徹明)「奉送···度使三十韻」〈두시 23:3ㄱ〉. (付) : 精神로 사괴요 아  브티노라(神交付冥漠)「過郭代公故宅」〈두시 3:66ㄴ〉.
주266)
일 : 일찍. 원문의 ‘早’에 대한 번역이다. 참조; 일즉. ¶그 어버 졈고 식 업시 일 홀어미 도 주를 에엿비 녀겨〈飜小9:56ㄴ〉. 돗 라 劉郞浦애셔 일 나니(掛帆早發劉郞浦)「發劉郞浦」〈두시 1:44ㄱ〉.
주267)
조왼 : 중요한. 조-[要]+ㄴ. 『두시언해』에는 ‘조-’의 활용이 ‘조외-’와 함께 ‘조로외-’도 쓰였다. 정음 초기 문헌에서는 ‘ㅸ’이 쓰였는데 『두시언해』에서는 ‘조외-’와 ‘조로외-’가 같이 쓰였다. ¶조- : 조 고로 니건댄〈석상 19:42ㄴ〉. 조외- : 조왼 길헤 어느 나래 긴 戈戟을 말꼬(要路何日罷長戟)「秋風二首」〈중간두시 10:27ㄴ〉. 조로외- : 조로왼 길히  놉고 깁도다(要路亦高深)「西閣二首」〈두시 14:20ㄴ〉.
주268)
길헤 : 길에. 길ㅎ+에. 15세기 국어의 ‘길ㅎ’은 ‘ㅎ’ 말음체언이다.
주269)
브터셔 : 의지해서. 븥-[據]+어+셔. 15세기 국어의 ‘븥-’은 여러 가지 뜻을 가진 다의어 동사이다. 『두시언해』에서는 주로 ‘仗, 著, 憑, 依, 傍, 火, 燃, 着’ 등의 번역으로 쓰였다.
주270)
룔 : 버릴. 리-+오+ㄹ.
주271)
라 : 생각했다. -+라. 15세기의 ‘다’는 ‘사랑하다’와 ‘생각하다’의 뜻이 있다. 〈중간본〉에는 ‘랑라’로 되어 있다. 참조; 다. ¶사-(생각하다) : 오 기픈 道理 더시니〈석상 3:19ㄴ〉. 羽翼란 商山ㅅ 늘그닐 고(羽翼懷商老)「收京三首」〈두시 5:7ㄴ〉. 사-(사랑하다) : 各別히 야 아례나  며느리 어두리라 야〈석상 6:13ㄴ〉. 수를 對야셔 새 올히 랑노라(對酒愛新鵝)「舟前小鵝兒」〈두시 17:22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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