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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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시주께[寄裴施州]


寄裴施州 주001)
기배시주(寄裴施州)
이 작품은 대력(大曆) 2년(767) 겨울, 두보 56세 때 지어졌다. 두보는 766년(大曆 元年) 늦은 봄에 기주(夔州, 사천 봉절)에 도착했는데, 이 시를 지을 당시에는 거처를 동둔(東屯)으로 옮겨 지내던 중이었다. 시에는 지난날 배 시주를 만났다가 근래 다시 만난 사정을 서술하면서 서로 맺은 깊은 우의가 드러나 있다. 배 시주의 이름은 미상이다. 시주는 기주 남쪽 500리에 있었는데, 검중도(黔中道)에 속했다.
주002)
시주(施州)
중국 고대의 행정구역. 북주(北周) 건덕(建德) 3년(574)에 설치했고, 처음에는 사거현(沙渠縣), 수[隋]나라 때는 청강현(清江縣)으로 고쳤고, 지금의 호북성 은시[恩施]시이다. 당나라 때는 지금의 호북성 건시(建始)와 오봉(五峰) 등 현(縣)의 서쪽 지역을 관할했다. 송(宋)나라 때는 기주로(夔州路)에 속했다. 명(明)나라 태조 홍무(洪武) 초에 없앴다. 홍무 14년(1381) 다시 회복시켰고, 시주위(施州衛)에 속했다. 23년 없애고 시주위에 포함시켰다. 청(淸)나라 세종(世宗) 옹정(雍正) 6년(1728) 시주위를 고쳐 은시현(恩施縣)으로 바꾸었다.

기배시주
(배 시주께)

廊廟 주003)
낭묘(廊廟)
①조정의 정사를 논의하는 건물을 뜻하는 말. 조선시대에는 의정부(議政府)를 가리킨다. =묘당(廟堂). ②국가의 정령(政令)을 집행하는 묘당(廟堂)의 별칭.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之具裴施州 宿昔一逢無此流

廊廟앳 주004)
묘당(廊廟)앳
묘당의. 묘당+애+ㅅ. ‘묘당(廊廟)’은 위의 ‘낭묘(廊廟)’ 주석 참조.
器具 주005)
기구(器具)
기구인. 기구+이+ㄴ. ‘기구(器具)’는 「표준」에 「1」 세간, 도구, 기계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2」 예법에 필요한 것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는 형세. 「3」 어떤 일을 해결하는 데 수단이 되는 세력. 등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3」의 뜻으로 쓰였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6ㄱ

裴施州ㅣ여 주006)
배 시주(裴施州)ㅣ여
배 시주여! 배 시주+이+여. ‘여’는 감탄 어미로 석독구결의 ‘’나 ‘’에 소급된다. 그런데 석독구결의 ‘, ’는 명사에 직접 결합할 수 있었으나, 15세기의 ‘-여’는 계사 ‘이-’에 붙어 쓰였다. ¶사람명사 : 便安히 잇가 高詹事ㅣ여 사호매 오래 흐러 사노라(安穩高詹事 兵戈久索居)「寄高三十五詹事」〈두시 21:12ㄱ〉. 病을 아냇 江天엣 머리 셴 郞이여 뷘 묏 樓閣애 暮春ㅅ 비치로다(抱病江天白首郞 空山樓閣暮春光)「承聞···十二首」〈두시 5:23ㄱ〉. 사물명사 : 녜 崆峒애 님금믈 뫼와 니던 나리여 灩澦예 正히 사 로다(扈聖崆峒日 端居灩澦時)「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킈 뎌고 져근 精微외며 모딘 資質이여 구즈기 센 도긔 기로다(短小精悍資 屹然强寇敵)「贈司空王公思禮」〈두시 24:11ㄴ〉.
주007)
옛날.
 번 주008)
 번
한 번. ¶ 번 다 地位예 난 後ㅣ면〈석상 6:36ㄱ〉. 내 엇디  번 슬 리리오(吾寧捨一哀)「自京···五百字」〈두시 2:37ㄱ〉.
맛보니 주009)
맛보니
만나니. 맛-[迎]+보-[見]+니. ‘맛보-[逢,遇]’는 원시의 ‘逢’에 해당된다. 『두시언해』에서 ‘奉’은 ‘맛나-, 맛보-, 맛닐-, 마조 보-’로 언해되는데 원시가 ‘逢迎’일 경우에는 언해에도 ‘逢迎다’로 언해되는 경우도 있다. ¶맛나-[逢] : 이  누 對야셔 아라히 서르 니 손 보내요매 보 맛나거니 可히 自由리아(此時對雪遙相憶 送客逢春可自由)「和裴迪 登蜀州東亭야 送客다가 逢早梅야 相憶見寄노라」〈두시 18:4ㄴ〉. 맛보-[逢] : 正히 이 江南애 風景이 됴니 곳 디 時節에  너 맛보과라(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江南逢李龜年」〈두시 16:52ㄴ〉. 맛닐-[逢] : 䟽拙야 林泉에 머므러 쇼 닙고 一生애 술와 그릐 欺弄호 맛니럿노라(拙被林泉滯 生逢酒賦欺)「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ㄱ〉. 마조 보- : 서르 마조 보아 바 자 일우니(相逢成夜宿)「宿贊公房」〈두시 9:24ㄱ〉. 逢迎다[逢迎] : 逢迎호 머러  迷失노라(逢迎遠復迷)「水宿···群公」〈두시 3:19ㄱ〉. 맞다[逢迎] : 뷘 館 여리 賢士 마니라(虛館開逢迎)「贈司空王公思禮」〈두시 24:21ㄴ〉. 마지다[逢迎] : 錦里예셔 마지 主人은 잇도다(錦里逢迎有主人)「將赴···五首」〈두시 21:3ㄴ〉.
이런 무리 주010)
무리
무리가. 무리+∅ 또는 물+이. 15세기에 ‘무리’를 뜻하는 낱말은 ‘믈, 물, 므리, 무리’ 등 여러 가지 이표기가 있었다.
업도다

【한자음】 낭묘지구배시주 숙석일봉무차류
【언해역】 낭묘(廊廟)의 기구(器具)인 배 시주(裴 施州)여! 옛날 한 번 만났는데 이런 무리가 없도다!
*시 구절 해석 : “국가의 정령(政令)을 집행하는 낭묘에서도 기구(器具)인 배 시주여, 예전에 한 번 만났더니 이런 부류의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라는 뜻으로, 조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배 시주(裵施州)는 세상에 다시없을 만큼 훌륭한 사람임을 말했다.

金鍾大鏞 주011)
대용(大鏞)
큰 종을 가리키는 말.
東序 주012)
동서(東序)
①정침 동쪽의 서(序). ‘서’는 정당(正堂)의 동쪽과 서쪽에 있어 내외를 구분하는 담을 일컫는 말. ②동쪽 방. ③대학(大學)을 일컫는 이름으로, 왕궁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冰壺 주013)
빙호(冰壺)
얼음이 가득 찬 옥항아리[玉壺]. 보통 품덕(品德)이 밝고 깨끗하며 염결(廉潔)한 것을 비유한다.
玉衡 주014)
옥형(玉衡)
①북두칠성의 다섯째 별. 또는 북두칠성(北斗七星). ②성한(成漢) 시대에 쓰였던 연호. 연대는 311-334. ③고대 천문관측기. ④수레채 끝에 댄 횡목(橫木)의 미칭.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懸清秋【大鍾曰鏞이라 上句 言和氣고 下句 言襟懷 주015)
금회(襟懷)
마음에 품은 회포(懷抱).
清徹다】

金鍾과 大鏞괘 주016)
금종(金鍾)과 대용(大鏞)괘
금종과 큰 종이. 金鐘+과 大鏞+과+이.
東序에 잇고 冰壺와 玉衡이 주017)
빙호(冰壺)와 옥형(玉衡)이
빙호와 옥형이. 15세기에 ‘-와/과’로 나열되는 명사구의 경우 뒤에 나열되는 명사에도 ‘-와/과’가 오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뒤에 나열되는 명사구 ‘옥형(玉衡)’에 ‘-와/과’가 연결되지 않았다. 바로 앞의 ‘금종(金鍾)과 대용(大鏞)괘’에는 뒤에 나열되는 명사에 ‘-와/과’가 연결된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 주018)

맑은. -[淸]+.
 주019)

가을에. ㅎ+.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중간본〉에는 ‘’로 되어 있다.
랏 주020)
랏
달려 있는. -[懸]+아#잇-+느+ㄴ. ‘-’은 자타동 양용동사인데, 여기서는 ‘달리다’의 뜻이므로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도다 주021)
도다
듯하도다. +-+도+다. ‘’의 받침 ‘ㅅ’과 ‘도’ 사이에서 ‘-’가 생략된 표기이다.

【한자음】 금종대용재동서 빙호옥형현청추【큰 종을 ‘용(鏞)’이라 한다. 위 시구는 화해로운 기운을 말하고, 아래 시구는 마음가짐이 맑고 환한 것을 말한다.】
【언해역】 금종(金鍾)과 대용(大鏞)이 동서(東序)에 있고, 빙호(冰壺)와 옥형(玉衡)이 맑은 가을에 달려 있는 듯하도다.
*시 구절 해석 : “금종(金鍾)과 대용(大鏞)은 대학(大學)에 있고(?), 빙호(冰壺)와 옥형(玉衡)은 맑은 가을에 걸려 있네.”라는 뜻으로, 화해(和諧)로운 기운이 가득 차 있고, 소환의 마음가짐이 가을 하늘처럼 맑고 깨끗하다는 말이다.

自從相遇减多病 三歲 주022)
삼세(三歲)
삼 년.
爲客寬邊愁

서르 주023)
서르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쌍방, 역사적으로 ‘서르〉서로’의 변화는 ‘일로, 새로, 젼로’ 와 같이 ‘-로’로 끝나는 부사에 이끌려 생겨난 일종의 유추 현상의 결과이다. ¶서르 : 文字와로 서르 디 아니〈훈언 1ㄴ〉. 使者ㅣ 나날 서르 라놋다(使者日相望)「有感五首」〈두시 5:14ㄱ〉.
맛나로브터 주024)
맛나로브터
만남으로부터. 맛나-[逢]+ㅁ/옴+로#븥-+어. ‘맛나-’는 ‘맞-’[敵]. ‘나-’[出]의 합성어이다.
한 病이 주025)
한 병(病)이
많은 병이. 하-[多]+ㄴ 病+이.
더니 주026)
더니
더니. 주니. 적어지니. 덜-[除]+니. ‘덜-’의 ‘ㄹ’이 자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니’를 만나 ‘ㄹ’이 탈락하였다.
세  주027)
세 
세 해를. 삼 년을.
나그내 주028)
나그내
나그네. ‘나그내’는 두시에서 두보 자신을 표현하는 낱말로 자주 등장한다.
외여슈메 주029)
외여슈메
되어 있음에. 외-[爲]+어#시-+움+에.
 주030)

가에. 변경에. [邊]+. 〈중간본〉에는 ‘’로 되어 있다.
왓 주031)
왓
와 있는. 오-[來]+아#잇-++ㄴ.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시르미 주032)
시르미
시름이. 걱정이. 시름+이.
훤도다 주033)
훤도다
훤하도다. 훤#-+도+다. 원래의 ‘어위도다’에서 교정된 것이다.

【한자음】 자종상우감다병 삼세위객관변수
【언해역】 서로 만남으로부터 많던 병(病)이 주니 세 해를 나그네 되어 있음에 변방에 와 있는 시름이 환해지도다!
*〈중간본〉에는 ‘三歲爲客寬邉愁’로 되어 있다.
*시 구절 해석 : “서로 만난 후로부터는 그렇게 많던 병도 차도가 있고, 3년을 나그네로 돌아다녔지만 변방에 있으면서 생긴 시름이 훤히 걷어졌다.”라는 뜻으로, 서로 상종하면서부터 마음이 편해져 병마저 줄었고, 긴 떠돌이 생활로부터 쌓였던 근심도 풀어졌다는 말이다.

堯有四岳 주034)
사악(四岳)
요(堯)임금 시대의 사방 제후(諸侯)의 관명(官名). 일설에는 사악의 일을 맡아보던 희화(羲和)의 네 아들, 희중(羲仲), 희숙(羲叔), 화중(和仲), 화숙(和叔)이라 한다. 공공(共工)의 후예로 전해지는데 우(禹)임금의 치수(治水)를 도운 공으로 강(姜)씨 성을 받아 여(呂) 땅에 봉해졌으며 아울러 제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일설(一說)에 의하면 사악(四岳)은 요(堯)의 신하인 희(羲)와 화(和)의 네 아들로서, 사방(四方)을 맡은 제후라고 한다. 여기서는 사방 제후의 의미를 확장하여 사방(四方) 또는 천하(天下)의 뜻으로 쓰였다.
明至理 漢二千石 주035)
이천석(二千石)
한(漢)나라의 제도. 관리의 등급을 나누는데 그 봉록의 다과를 가지고 표준으로 삼았다. 낭장(郞將)으로부터 군수위(郡守尉)까지의 사람은 이들의 녹봉이 2천 석인 데서 나왔다. 2천 석의 봉록은 군수에 해당했다.
眞分憂【美施州다】

堯ㅅ 주036)
요(堯)ㅅ
요임금의.
저긔 주037)
저긔
때에. ‘적+의’.
잇 四岳이 至極이 주038)
지극(至極)이
지극히. 지극+이(부사화접미사).
다료 주039)
다료
다스림을. 다ᄉᆞ리-[理]+옴+.
기며 주040)
기며
밝히며. -+기(사동접미사)+며. ‘기-’는 16세기에 들어 ‘키-’와 ‘키-’가 쓰이기 시작한다. ‘-’에 사동접미사 ‘-이-’가 결합되다가 16세기에 들어 ‘-히-’가 결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5세기 문헌에는 ‘-’에 사동접사 ‘-이-’가 결합한 ‘기-’형만 나타나지만, 16세기에 들면 ‘키-’와 ‘키-’형이 공존한다. ¶기- : 種種 因緣과 그지 업슨 알외요로 부텻 法을 기샤 衆生 알에 시며〈석상 13:17ㄴ〉. 榮華외며 貴호 티 너규 足히 기리로다(榮貴如糞土)「貽阮隱居」〈두시 9:9ㄴ〉. 키- : 이 너비 利샤  일우샨 德을 키시니〈법화 6:88ㄴ〉. 몬져 定과 慧와 키시고 後에 無心 나토시니라〈법집 86ㄴ〉. 키- : 그 道 반드시 人倫에 믿 불휘 예셔 物理 키고〈번소 9:13ㄴ〉.
漢ㅅ 二千 石이 주041)
이천 석(二千石)이
이천 석의 봉록을 받는 관리가. ‘이천 석(二千石)’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 참조. ‘석(石)’은 ‘섬’이다. 한 섬은 열 말이다.
眞實로 님 시르믈 주042)
시르믈
시름을. 시름+을.
홧 주043)
홧
나누어 있는. 호-+아#잇-++ㄴ.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도다 주044)
도다
듯하도다. ++도+다. ‘-’는 ‘’의 ‘ㅅ’과 ‘도’ 사이에서 생략되었음.

【한자음】 요유사악명지리 한이천석진분우【시주(施州)를 찬미한 것이다.】
【언해역】 요(堯)임금 적에 있는 사악(四岳)이 지극(至極)히 다스림을 밝히며, 한(漢)나라의 이천 석(二千石)이 진실로 임금의 시름을 나누어 있는 듯하도다.
*시 구절 해석 : “요임금 때에는 사악(四岳)이 있어 지극히 다스림을 밝혔고, 한나라 때는 이천석(二千石)이 있어 진실로 임금의 시름을 나눈 것과 같도다.”라는 뜻으로, 요임금 때의 사악이나 한나라 때의 이천석처럼 훌륭한 관리가 될 것이라는 말이다.

幾度寄書白鹽北 苦寒贈我靑羔裘 주045)
고구(羔裘)
자줏빛 새끼 양의 가죽으로 만든 가죽옷. 옛날 제후(諸侯)나 경대부(卿大夫)의 조복(朝服)이었다.
【白鹽山은 在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6ㄴ

주046)
기주(夔州)
당나라 때 설치된 주(州). 무덕(武德) 2년(618) 신주(信州)로 이름을 고쳤고, 치소(治所)는 인복현(人復縣)이며, 정관(貞觀) 중에 봉절현(奉節縣)으로 고쳤다. 천보(天寶) 원년(742) 운안군(雲安郡)으로 고쳤다가, 건원(乾元) 원년(758) 다시 기주가 되었다. 관할 지역은 지금의 중경시(重慶市) 봉절(奉節), 운양(雲陽), 무산(巫山), 무계(巫溪) 등이였다. 송(宋)나라 때는 기주로(夔州路)에 속했다. 개보(開寶) 중에 운양현을 나눠 운안군(雲安縣)을 두어 지역이 축소되었다. 원(元)나라 지원 15년(1278) 기주로(夔州路)로 승격되었다. 명(明)나라 홍무 4년(1371) 기주부로 고쳤다. 기주는 장강(長江) 상류에 있으며, 대대로 사천(泗川) 지역의 요로(要路)였다. 수상 교통이 아주 발달해 항상 상선(商船)들이 왕래했다.
니 ㅣ 在夔州니라】

주047)
몇.
디위 주048)
디위
번을.
白鹽山ㅅ 北 녀긔 주049)
북(北) 녀긔
북녘에. 北#녁+긔. ‘東, 西, 南, 北’ 중에서 ‘西’만 ‘西ㅅ녁’과 같이 사이시옷이 쓰인다. 〈중간본〉에는 ‘北 녀킈’로 되어 있다.
주050)
백염산(白鹽山)ㅅ 북(北) 녀긔
백염산의 북 쪽에. ‘녀긔’는 ‘녘+의’로 분석됨. 백염산(白鹽山)은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동쪽에 있는 산(山). ¶녁 : 右는 올 녀기라〈훈언 13ㄱ〉. 나랏 臣下ㅣ 太子ㅅ 녀글 들면 須達 願을 몯 일울까 야〈석상 6:25ㄱ〉. 岷嶺 南蠻ㅅ 北녀기오 徐關 東海ㅅ 西ㅅ 녀기로다(岷嶺南蠻北 徐關東海西)「送舍···三首」〈두시 8:37ㄱ〉. 東녁 집 전 나귀 날 빌이건마 기 믯그러워 구틔여 타 朝天디 몯호라(東家蹇驢許借我 泥滑不敢騎朝天)「偪側行」〈두시 25:41ㄱ〉.
글와 주051)
글와
편지를. 글을. ¶글왈 : 婆羅門이 글왈야 須達손 보내야〈석상 6:15ㄴ〉. 내 아자비 符節 혀 가져 갯 히 갓가오니 封 여로니 보내욘 글와리 빗나도다(諸舅剖符近 開緘書劄光)「入衡州」〈중간두시 1:56ㄴ〉.
브티니오 주052)
브티니오
부치는가? 브티-[寄]++니+고. 『두시언해』에서 복합어에 쓰인 것을 제외한 ‘브티-’에 대응하는 한자는 ‘付, 自, 寄, 焚, 泊, 爨, 託, 憑, 燒, 火, 發, 焦’ 등이 있다. ‘-고’는 의문사 ‘몃’에 호응하는 설명의문문어미. 중세국어의 의문어미는 크게 판정의문문어미와 의문사에 호응하는 설명의문문어미가 있다. ¶-고 : 太子ㅣ 글 호기 始作샤 明珠書案애 牛頭栴檀香 七寶書板 노시고 金 붇 자샤 글 쓰시며 무르샤 므슴 그를 쵸려 시고〈석상 3:8ㄴ〉. 묏가온  새 지븨 뉘  戶牖에 브턴고(山中漏茅屋 誰復依戶牖)「述懷」〈중간두시 2:31ㄱ〉.
심 치위예 주053)
치위예
추위에. 치위+예. ‘치위’는 ‘칩다’의 파생명사이다. 참조; 치. 치. 치위. 치. 치움. ¶치 : 다가 有情이 오시 업서 모 벌에며 더 치로 셜다가〈석상 9:9ㄴ〉. 치 :  오시 치 몯 리오 세 오 리다 니라〈월석 25:15ㄴ〉. 치 : 法忍이  두 가지니 나 치과 더과〈월석 7:53ㄴ〉. 치위 :  열 설 머거셔 甚 치위와 더위와〈내훈 3:15ㄱ〉. 치움 : 치움과 더움괘 올마 흘러 漸漸 이 니르로다〈능엄 2:6ㄴ〉. 치위 : 세 히록 고 病 알호 뉘 可히 리오 치위와 더위왜 온 나 서르 섯거 사호다(瘧癘三秋孰可忍 寒熱百日相交戰)「病後···贈歌」〈두시 3:50ㄱ〉. 치움 : 여러 묏고래 치움 나미 이르니 긴 수프레 안개 거두미 도다(衆壑生寒早 長林卷霧齊)「課小豎야~移床호라 三首」〈두시 15:17ㄱ〉.
나 주054)
나
나에게. 나를. ‘주-’의 여격 논항에 해당하므로 현대국어로는 ‘나에게’로 해석되지만 15세기 국어에서는 여격 논항이 주로 대격표지를 취하였다. 현대국어 3항 동사 ‘주-’의 논항구조는 ‘NP1이 NP2에게 NP3를 주-’가 일반적이지만 15세기 국어에서 ‘주-’의 논항구조는 수혜자 의미역 명사구에 여격 또는 처격이 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격이나 격표지가 없는 무표지가 오는 경우도 흔하였다. 『두시언해』에서는 수혜자 논항에 대격이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NP이 NP NP 주-) : 고 곳 것고 걋 밥 더러내야 比丘 주시니〈석상 11:41ㄴ〉. (NP이 NP NP의게 주-) : 如來ㅣ (大慈悲 잇고 여러 가짓 앗교미 업스며  저호미 업서) 能히 衆生의게 부텻 智慧과 如來ㅅ 智慧과 自然 智慧 주니〈법화 6:122ㄴ〉. (NP이 NP NP애 주-) : 太子ㅣ (象) 怨讎ㅅ 나라해 주시니〈월석 20:66ㄱ〉. (NP이 NP NP의 주-) : 德宗이 (드르시고 兵部尙書 贈시고) 돈 三百萬 제 지븨 주시고〈삼강런던忠17〉 (NP이 NP NP 주-) : (太子ㅣ) 寶冠 瓔珞 車匿일 주시며〈월천 20ㄴ〉. 茱萸 朝士 주시건마  가지 어더 오미 어렵도다(茱萸賜朝士 難得一枝來)「九日五首」〈두시 11:29ㄱ〉. (NP이 NP NP-∅ 주-) : 太子ㅣ 寶冠 瓔珞 車匿이 주시고〈석상 3:30ㄴ〉. 내  眞宰 罪 주고져 노니 덴 疊嶂 갓가 리고져 노라(吾將罪眞宰 意欲鏟疊嶂)「劒門」〈중간두시 1:35ㄴ〉.
프른 주055)
프른
푸른. 프르-[靑]+ㄴ.
염의 주056)
염의
염소의. 염[羔]+고. 현대국어의 ‘염소’는 ‘염+소’로 분석된다.
갓오 주057)
갓오
가죽옷을. 갓+옷+. ‘갓’은 ‘가죽’과 ‘피부’의 의미가 있었다. 참조; 갓옷. 자음 조사와 휴지 앞에서 ‘갗→갓’ 표기는 8종성법의 제약 때문이다. ‘가족’은 16세기 문헌부터 나타남. ¶(가죽) : 亡母ㅣ 餓鬼 中에 냇거늘 보니 飮食을 몯 보고 갓과 왜 니 솃거늘〈월석 23:92ㄱ〉.  아랫 文에 갓과 고기와 힘과 와 다 해 감 니라〈원각 상:1-2:137ㄱ〉. 세  奔走야 뇨매 갓 갓과 왜로소니 진실로 人閒애 니 길히 어려우미 잇도다(三年奔走空皮骨 信有人間行路難)「將赴成都草堂途中有作 先寄嚴鄭公五首」〈두시 21:5ㄱ-ㄴ〉. 智者ㅣ 보 오직 머리터리와 톱과 니와 열운 갓과 두터운 갓과 콰 피와 과 믈와 곳믈와 춤과 고롬과 기름과 힘과 脈과 頭腦와 과 누른 痰과  痰과 肝과 膽과 와 骨髓와 肺와 脾와 腎과 胃와 과 膏와 膀胱과 大腸과 小腸과 生藏과 熟藏과 과 오좀과 더러운 곧 이러틋 거시 낫나치 사 아뇨 보니〈영가 상:35ㄴ〉. 中原에 音書ㅣ 업서 도라가 得디 몯호니 손바리 어러 고 갓과 쾌 주게라(中原無書歸不得 手腳凍皴皮肉死)「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두시 25:26ㄴ〉. 갓옷 : 값 업슨 寶衣로 鹿皮 갓옷 밧고아 니부니 樹神이 모 現야 소내 僧伽梨 자바 날려 닐오〈월석 25:36ㄱ〉. 헌 갓옷 니븐 蘇季子ㅣ여 나라 디나 녀셔 도라가 아디 몯놋다(弊裘蘇季子 歷國未知還)「遠遊」〈중간두시 2:27ㄴ〉. 나 이니 내 모매 콰 가족과 왜니라〈칠대 2ㄱ〉. 나 안잣거든 나 봅노 거셔〈번박 42ㄱ〉.
주다 주058)
주다
준다. 주-[與]++다.

【한자음】 기도기서백염북 고한증아청고구【백염산(白鹽山)은 기주(夔州)에 있으니 두보가 기주에 있었다.】
【언해역】 몇 번을 백염산(白鹽山)의 북녘에 편지를 부쳤는가? 심한 추위에 나를 푸른 염소 가죽옷을 주네.
*시 구절 해석 : “몇 번이나 백염산 북녘으로 편지를 보내셨는가? 심한 추위에 나에게 푸른 염소 가죽옷을 주었네.”라는 뜻으로, 자신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위로했을 뿐만 아니라 추울 때면 가죽옷을 보내 배려했다는 말이다.

霜雪迴光避錦袖 蛟龍動篋蟠銀鉤 주059)
은구(銀鉤)
①발을 거는 은제(銀製) 고리. ②은으로 만든 열쇠. ③잘 쓴 글씨를 말함. 구(鉤)는 필획(筆劃). 진(晉)나라 색정(索靖)이 초서를 잘 썼는데 사람들이 그 글씨를 “은 갈고리 말의 꼬리”라 칭찬했다. ④은으로 만든 띠의 마물 단추. ⑤은빛이 나거나 은으로 만든 여자들의 장신구. ⑥초승달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索靖 주060)
색정(索靖)
239~303. 서진(西晉) 돈황(敦煌, 감숙성) 사람. 자는 유안(幼安)이다. 고향 사람 범충(氾衷)과 함께 낙양(洛陽) 태학(太學)에 들어가 ‘돈황오룡(敦煌吳龍)’이라 불렸다. 고을에 불려가 별가(別駕)가 되고, 군(郡)에서 현량방정(賢良方正)으로 천거되었다. 진무제(晉武帝) 때 상서랑에 올랐다. 상서대(尙書臺)에 여러 해 있다가 안문태수(雁門太守)를 거쳐 노상(魯相)으로 옮기고, 다시 주천태수(酒泉太守)가 되었다. 혜제(惠帝)가 즉위하자 관내후(關內侯)에 봉작되었다.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을 미리 알고 낙양 궁성의 문에 있는 동타(銅駝)를 가리키며 “네가 풀 더미 속에 있는 것을 보겠구나(會見汝在荊棘中耳).”라고 말했다. 조왕륜(趙王倫)이 반란을 일으키자 좌위장군(左衛將軍)으로 손수(孫秀)를 토벌해 공을 세워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올랐다. 팔왕(八王)의 난 때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의 반군을 진압하던 중 상처를 입고 전사했다. 위탄(韋誕)에게 글씨를 배워 특히 초서와 팔분(八分)에 뛰어났고 준험한 맛이 있었다. 남북 서파(書派) 가운데 북파로 분류된다. 위관(衛瓘)과 함께 초서(草書)로 이름을 떨쳐 이묘(二妙)로 불린다. 작품에 「인소원법첩(隣蔬圓法帖)」, 「월의첩(月儀帖)」, 「희홍당법첩(戱鴻堂法帖)」, 「출사표(出師表)」 등이 있고, 「무구흥비(毋丘興碑)」의 글씨가 그의 것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저서에 『초서장(草書狀)』 등이 있다.
의 草書ㅣ 狀如銀鉤니라 上句 言裘之温고 下句 言寄書之妙다】

서리와 눈괘 주061)
서리와 눈괘
서리[霜]. 눈[雪]이.
주062)
눈괘
눈이. 눈+과+이. 〈중간본〉에는 ‘눈쾌’로 되어 있다.
비츨 주063)
비츨
빛을. 볕을. 15세기의 ‘빛’은 ‘밝기’를 나타낼 때와 온도를 나타낼 때가 있는데, 이 경우는 ‘서리’와 ‘눈’은 차가움의 대상이어서 피해야 하므로 ‘온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횟도로 혀 주064)
횟도로 혀
도로 돌려 끌어당겨져. 횟+돌-[廻]+오 혀-+∅. ‘횟’은 접두사로 ‘도로’의 뜻이며, ‘돌-’은 ‘가는 방향을 돌리다’의 뜻이며, ‘-오’는 부사화접미사의 하나이다. ‘혀’는 ‘끌다’의 뜻인 ‘혀-’와 어미 ‘-어’가 결합된 형태이다. 여기서 ‘혀-’는 ‘끌다’라는 타동사가 아니라 ‘끌리다’라는 자동사 즉 피동의 의미로 쓰였다. 즉 ‘혀-’는 자타동 양용동사이며,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서리’와 ‘눈’은 찬 물질인데 이것들이 소매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방향을 돌려 끌어당겨진다는 뜻이다.
주065)
금(錦)
비단.
매 주066)
매
소매를. 매+.
避고 蛟龍이 주067)
교룡(蛟龍)이
교룡이. 蛟龍+이. ‘교룡(蛟龍)’은 실제하는 동물이 아니라 한시에서 많이 쓰였으며, 『두시언해』에도 많은 용례가 나온다. ¶교룡(蛟龍) : 蛟龍이 一定 굼기 업고 黃鵠 프른 하 라 가놋다(蛟龍無定窟 黃鵠摩蒼天)「寄題江外草堂」〈두시 6:36ㄴ〉. 蛟龍 기피셔 거슯주믈 짓고 豺虎 어즈러이 모디로 雄壯히 놋다(蛟螭深作橫 豺虎亂雄猜)「秋日···三十韻」〈두시 3:8ㄴ〉.
篋에셔 주068)
협(篋)에셔
서안(書案)에서. 서안으로부터. 협+예+셔.
뮈니 주069)
뮈니
움직이니. 뮈-[動]+니. 15세기 국어에서 ‘움직이다’의 뜻은 ‘음즈기다’와 ‘뮈다’가 있다. ¶움즈기- : 群動 한 움즈기 衆生이라〈월석 18:82ㄴ〉. 그러운 돌히 기우럿니 뉘 돗던고  리 움즈기니 서르 괴욋도다(滑石欹誰鑿 浮梁裊相柱)「龍門閣」〈중간두시 1:32ㄱ〉. 뮈- : 聲聞 辟支佛 히 모미 뮈  몰라 니러 추믈 츠니〈석상 11:15ㄱ〉. 니은 笮 뮈여 움즈기니 길녀 사 오시 매 부리놋다(連笮動嫋娜 征衣颯飄颻)「桔柏渡」〈중간두시 1:34ㄱ〉. 뮈우- : 翳 눈과 어울면 조 누늘 뮈우니 業識이  그러니라〈월석 11:75ㄴ〉. 靑雲ㅣ 내의 노 興을 뮈우니 幽事도  즐겸즉도다(靑雲動高興 幽事亦可悅)〈중간두시 1:3ㄱ〉.
銀鉤ㅣ 주070)
은구(銀鉤)ㅣ
은구가. ‘은구(銀鉤)’에 대해서는 위의 주를 참조.
서롓 주071)
서롓
서려 있는. 서리-+어#잇-++ㄴ. 원시의 ‘蟠’에 대응하는 말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도다 주072)
도다
듯하도다. +-+도+다. ‘도다’는 ‘’가 생략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도다’로 표기된다.

【한자음】 상설회광피금수 교룡동협반은구【색정(索靖)의 초서가 모양이 은 갈고리와 같았다. 위 시구는 가죽옷의 따뜻함을 말하고, 아래 시구는 보낸 편지의 오묘함을 말한다.】
【언해역】 서리와 눈이 빛을 도로 끌어당겨 비단 소매를 피하고, 교룡이 서안(書案)에서 움직이니 은 갈고리가 서려 있는 듯하도다.
*시 구절 해석 : “서리와 눈빛이 돌아 비춰 비단 소매를 피했고, 교룡이 서안(書案)에서 움직이니 은구(銀鉤)가 서렸다.”라는 뜻으로, 보내준 가죽옷이 따뜻하며 편지의 글씨체가 오묘하다는 말이다.

紫衣 주073)
자의(紫衣)
①자색(紫色) 의복(衣服). ②옛날의 공복(公服). 춘추전국시대 국군(國君)의 의복은 자색(紫色)을 썼다. 남북조(南北朝) 시대 이후 자의(紫衣)는 귀관(貴官)의 공복(公服)이 되었기 때문에 주자(朱紫)·금자(金紫)의 명칭이 나왔다. ③귀관(貴官)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使者辭復命 주074)
복명(復命)
명령을 받은 일에 대하여 그 처리한 결과를 보고하는 일.
再拜故人 주075)
고인(故人)
오래 사귄 사람. 노우(老友). 여기서는 두보 자신을 가리킨 것이다.
謝佳 주076)
사배(謝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을 함.

블근 옷 니븐 使者ㅣ 주077)
블근 옷 니븐 사자(使者)ㅣ
붉은 옷 입은 사자(使者)가. 원문의 ‘紫衣使者’를 언해한 말이다. ‘자의(紫衣)’에 대해서는 위의 주를 참조.
하딕고 주078)
하딕고
하직하고. 하딕#-+고. 한자어 ‘하직(下直)하-’가 한글로 표기되었다. 『두시언해』 중에서도 유일례이다.
命을 주079)
명(命)을
명령을.
도로 가져 가니 주080)
도로 가져 가니
도로 가져 가니. 원문의 ‘복명(復命)’에 대한 언해이다. 받은 명령을 도로 보고하였다는 뜻이다.
故人 주081)
고인(故人)
오래된 친구를. 즉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두시언해』에서 두보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인 것은 ‘나그네, 노옹(老翁), 천자(賤子)’ 등이 있다.
두 번 절야셔 주082)
두 번 절야셔
두 번 절하여서. 존경의 뜻으로 거듭 절한 것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아다온 주083)
아다온
아름다운. 아답-+오+ㄴ.
政治 주084)
정치(政治)
정치를. 여기서는 배 시주가 황제로부터 명령을 받고 이를 처리하여 보고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謝拜노라 주085)
사배(謝拜)노라
감사한다. 사배-++오+라. ‘오’는 1인칭 주어에 호응하는 선어말어미로 이 동사의 주어가 두보 자신 즉 1인칭임을 알 수 있다.

【한자음】 자의사자사부명 재배고인사가정
【언해역】 붉은 옷 입은 사자(使者)가 하직하고 명(命)을 도로 가져가니, 고인(故人)을 두 번 절해서 아름다운 정치(政治)를 사배(謝拜)하노라.
*시 구절 해석 : “붉은 옷을 입은 사자가 하직하고 명(命)을 도로 보고하니, 고인을 두 번 절하여서 아름다운 정치를 사례한다.”라는 뜻으로, 배 시주가 명령을 받아 일을 처리하고 보고하는데, 그 깨끗한 정치에 두보 자신이 기뻐 사례한다는 말이다.

將老已失子孫憂 後來况接才華 주086)
재화(才華)
아름다운 재주가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 주로 문재(文才)를 가리킨다.
ㅣ 言我老而免憂子孫 無他ㅣ라 子孫이 後來예 得接裴君才華之

분류두공부시언해 권19:27ㄱ

盛也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將次ㅅ 주087)
장차(將次)ㅅ
장차. 명사에 소유격 조사가 연결된 것이 아니라 부사어이다. 이때의 ‘ㅅ’은 부사화접미사이다. 원문의 ‘將’에 대한 번역으로 쓰이는데, 『두시언해』에서는 ‘마’로 번역될 경우도 있다.
늘구메 주088)
늘구메
늙음에. 늙-+우+ㅁ+에.
마 주089)
마
이미. 벌써. 16세기 후반이면 ‘이믜〈소언 5:43ㄴ〉․이믯〈소언 5:43ㄴ〉’과 동의관계이다. 때로는 “장차, 이제 곧”을 뜻하기도 한다. 『두시언해』에서 ‘마’는 주로 원문의 ‘已’나 ‘旣’의 번역이다. ‘旣’의 번역으로는 ‘이믜셔’도 쓰였다. ¶마 : 太子 羅睺羅ㅣ 나히 마 아호빌(太子羅睺 年已九歲)〈석상 6:3ㄱ〉. 세 關 마 차  삸미티 虛空애 머니(三關을 已透야 一鏃이 遼空니)〈금삼 5:43ㄴ〉. 나 延引야 마 어둡거늘 블혀 여러 門 열오(延客已曛黑 張燈啟重門)「彭衙行」〈중간두시 1:13ㄱ〉. 너희 비들 마가 줄 靑錢 마 일워 뒷노니 반기 됴 마로 여 내 이베 들에 라(已辦靑錢防雇直 當令美味入吾脣)「撥悶」〈두시 3:32ㄴ〉. 이믜셔 : 兵革ㅣ 이믜셔 긋디 몯니 나히 다 東 녀크로 征伐 가니라(兵革既未息 兒童盡東征)「羌村三首」〈중간두시 2:67ㄴ〉. 사호  처 錦을 주시니 춤 츠 리 이믜셔 牀애 오니라(鬪雞初賜錦 舞馬既登床)「鬪雞」〈두시 6:13ㄱ〉.
子孫 시름홀 주090)
시름홀
시름 할. 걱정할. 시름#-+오+ㄹ.
이 주091)
이
일을.
일후니 주092)
일후니
잃으니. 잃-+우+니.
後來예 주093)
후래(後來)예
나중에. 뒷날에.
며 주094)
며
하물며. ¶며 : 모맷 고기라도 비 사 주리어니 며 녀나 쳔랴녀〈석상 9:13ㄱ〉.  貪 無量有情이 쳔랴 모도아 두고 제 도 오히려 아니거니 며 어버 내야 주며 가시며 子息이며 죠 주며 와 비 사 주리여〈석상 9:12ㄱ〉. 干戈애 며  드트리 누네 좃니 귀믿터리 도로 이 누니 머리예  거니라(幹戈況復塵隨眼 鬢發還應雪滿頭)「寄杜位」〈두시 21:33ㄱ〉. 더워 草木ㅣ 누르러디디 몯니 며 山水의 幽深호믈 드로미녀(草木未黃落 况聞山水幽)「發秦州」〈중간두시 1:14ㄴ〉.
才華 盛大호 주095)
성대(盛大)호
성대함을. 성대-+오+ㅁ.
相接리로다 주096)
상접(相接)리로다
서로 맞을 것이도다. 상접-+리+도+다. ‘로’는 ‘리’의 ‘ㅣ’ 모음의 영향으로 ‘도’가 바뀐 형태이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장로이실자손우 후래황접재화성【두보가, 나는 늙었지만 자손에 대해 근심하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손이 후대에 배 시주의 재화의 풍성함에 덕을 볼 것이라는 말이다.】
【언해역】 장차 늙음에 이미 자손 걱정할 일을 잃으니, 나중에 하물며 문재(文才)의 성대함을 서로 맞을 것이도다.
*시 구절 해석 : “장차 늙어 감에 자손 걱정할 일을 잃으니, 하물며 후세에 재화가 성대함을 서로 맞이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두보 자신은 늙어 힘이 없어져도 자손의 뒷날을 걱정하지 않는데, 그 까닭은 배 시주가 자신의 후손을 도울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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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기배시주(寄裴施州) : 이 작품은 대력(大曆) 2년(767) 겨울, 두보 56세 때 지어졌다. 두보는 766년(大曆 元年) 늦은 봄에 기주(夔州, 사천 봉절)에 도착했는데, 이 시를 지을 당시에는 거처를 동둔(東屯)으로 옮겨 지내던 중이었다. 시에는 지난날 배 시주를 만났다가 근래 다시 만난 사정을 서술하면서 서로 맺은 깊은 우의가 드러나 있다. 배 시주의 이름은 미상이다. 시주는 기주 남쪽 500리에 있었는데, 검중도(黔中道)에 속했다.
주002)
시주(施州) : 중국 고대의 행정구역. 북주(北周) 건덕(建德) 3년(574)에 설치했고, 처음에는 사거현(沙渠縣), 수[隋]나라 때는 청강현(清江縣)으로 고쳤고, 지금의 호북성 은시[恩施]시이다. 당나라 때는 지금의 호북성 건시(建始)와 오봉(五峰) 등 현(縣)의 서쪽 지역을 관할했다. 송(宋)나라 때는 기주로(夔州路)에 속했다. 명(明)나라 태조 홍무(洪武) 초에 없앴다. 홍무 14년(1381) 다시 회복시켰고, 시주위(施州衛)에 속했다. 23년 없애고 시주위에 포함시켰다. 청(淸)나라 세종(世宗) 옹정(雍正) 6년(1728) 시주위를 고쳐 은시현(恩施縣)으로 바꾸었다.
주003)
낭묘(廊廟) : ①조정의 정사를 논의하는 건물을 뜻하는 말. 조선시대에는 의정부(議政府)를 가리킨다. =묘당(廟堂). ②국가의 정령(政令)을 집행하는 묘당(廟堂)의 별칭.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04)
묘당(廊廟)앳 : 묘당의. 묘당+애+ㅅ. ‘묘당(廊廟)’은 위의 ‘낭묘(廊廟)’ 주석 참조.
주005)
기구(器具) : 기구인. 기구+이+ㄴ. ‘기구(器具)’는 「표준」에 「1」 세간, 도구, 기계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2」 예법에 필요한 것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는 형세. 「3」 어떤 일을 해결하는 데 수단이 되는 세력. 등 세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3」의 뜻으로 쓰였다.
주006)
배 시주(裴施州)ㅣ여 : 배 시주여! 배 시주+이+여. ‘여’는 감탄 어미로 석독구결의 ‘’나 ‘’에 소급된다. 그런데 석독구결의 ‘, ’는 명사에 직접 결합할 수 있었으나, 15세기의 ‘-여’는 계사 ‘이-’에 붙어 쓰였다. ¶사람명사 : 便安히 잇가 高詹事ㅣ여 사호매 오래 흐러 사노라(安穩高詹事 兵戈久索居)「寄高三十五詹事」〈두시 21:12ㄱ〉. 病을 아냇 江天엣 머리 셴 郞이여 뷘 묏 樓閣애 暮春ㅅ 비치로다(抱病江天白首郞 空山樓閣暮春光)「承聞···十二首」〈두시 5:23ㄱ〉. 사물명사 : 녜 崆峒애 님금믈 뫼와 니던 나리여 灩澦예 正히 사 로다(扈聖崆峒日 端居灩澦時)「夔府書懷四十韻」〈두시 3:1ㄱ〉. 킈 뎌고 져근 精微외며 모딘 資質이여 구즈기 센 도긔 기로다(短小精悍資 屹然强寇敵)「贈司空王公思禮」〈두시 24:11ㄴ〉.
주007)
녜 : 옛날.
주008)
 번 : 한 번. ¶ 번 다 地位예 난 後ㅣ면〈석상 6:36ㄱ〉. 내 엇디  번 슬 리리오(吾寧捨一哀)「自京···五百字」〈두시 2:37ㄱ〉.
주009)
맛보니 : 만나니. 맛-[迎]+보-[見]+니. ‘맛보-[逢,遇]’는 원시의 ‘逢’에 해당된다. 『두시언해』에서 ‘奉’은 ‘맛나-, 맛보-, 맛닐-, 마조 보-’로 언해되는데 원시가 ‘逢迎’일 경우에는 언해에도 ‘逢迎다’로 언해되는 경우도 있다. ¶맛나-[逢] : 이  누 對야셔 아라히 서르 니 손 보내요매 보 맛나거니 可히 自由리아(此時對雪遙相憶 送客逢春可自由)「和裴迪 登蜀州東亭야 送客다가 逢早梅야 相憶見寄노라」〈두시 18:4ㄴ〉. 맛보-[逢] : 正히 이 江南애 風景이 됴니 곳 디 時節에  너 맛보과라(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江南逢李龜年」〈두시 16:52ㄴ〉. 맛닐-[逢] : 䟽拙야 林泉에 머므러 쇼 닙고 一生애 술와 그릐 欺弄호 맛니럿노라(拙被林泉滯 生逢酒賦欺)「夔府書懷四十韻」〈두시 3:2ㄱ〉. 마조 보- : 서르 마조 보아 바 자 일우니(相逢成夜宿)「宿贊公房」〈두시 9:24ㄱ〉. 逢迎다[逢迎] : 逢迎호 머러  迷失노라(逢迎遠復迷)「水宿···群公」〈두시 3:19ㄱ〉. 맞다[逢迎] : 뷘 館 여리 賢士 마니라(虛館開逢迎)「贈司空王公思禮」〈두시 24:21ㄴ〉. 마지다[逢迎] : 錦里예셔 마지 主人은 잇도다(錦里逢迎有主人)「將赴···五首」〈두시 21:3ㄴ〉.
주010)
무리 : 무리가. 무리+∅ 또는 물+이. 15세기에 ‘무리’를 뜻하는 낱말은 ‘믈, 물, 므리, 무리’ 등 여러 가지 이표기가 있었다.
주011)
대용(大鏞) : 큰 종을 가리키는 말.
주012)
동서(東序) : ①정침 동쪽의 서(序). ‘서’는 정당(正堂)의 동쪽과 서쪽에 있어 내외를 구분하는 담을 일컫는 말. ②동쪽 방. ③대학(大學)을 일컫는 이름으로, 왕궁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주013)
빙호(冰壺) : 얼음이 가득 찬 옥항아리[玉壺]. 보통 품덕(品德)이 밝고 깨끗하며 염결(廉潔)한 것을 비유한다.
주014)
옥형(玉衡) : ①북두칠성의 다섯째 별. 또는 북두칠성(北斗七星). ②성한(成漢) 시대에 쓰였던 연호. 연대는 311-334. ③고대 천문관측기. ④수레채 끝에 댄 횡목(橫木)의 미칭.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주015)
금회(襟懷) : 마음에 품은 회포(懷抱).
주016)
금종(金鍾)과 대용(大鏞)괘 : 금종과 큰 종이. 金鐘+과 大鏞+과+이.
주017)
빙호(冰壺)와 옥형(玉衡)이 : 빙호와 옥형이. 15세기에 ‘-와/과’로 나열되는 명사구의 경우 뒤에 나열되는 명사에도 ‘-와/과’가 오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뒤에 나열되는 명사구 ‘옥형(玉衡)’에 ‘-와/과’가 연결되지 않았다. 바로 앞의 ‘금종(金鍾)과 대용(大鏞)괘’에는 뒤에 나열되는 명사에 ‘-와/과’가 연결된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주018)
 : 맑은. -[淸]+.
주019)
 : 가을에. ㅎ+. ‘ㅎ’은 ‘ㅎ말음체언’이다. 〈중간본〉에는 ‘’로 되어 있다.
주020)
랏 : 달려 있는. -[懸]+아#잇-+느+ㄴ. ‘-’은 자타동 양용동사인데, 여기서는 ‘달리다’의 뜻이므로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021)
도다 : 듯하도다. +-+도+다. ‘’의 받침 ‘ㅅ’과 ‘도’ 사이에서 ‘-’가 생략된 표기이다.
주022)
삼세(三歲) : 삼 년.
주023)
서르 :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 쌍방, 역사적으로 ‘서르〉서로’의 변화는 ‘일로, 새로, 젼로’ 와 같이 ‘-로’로 끝나는 부사에 이끌려 생겨난 일종의 유추 현상의 결과이다. ¶서르 : 文字와로 서르 디 아니〈훈언 1ㄴ〉. 使者ㅣ 나날 서르 라놋다(使者日相望)「有感五首」〈두시 5:14ㄱ〉.
주024)
맛나로브터 : 만남으로부터. 맛나-[逢]+ㅁ/옴+로#븥-+어. ‘맛나-’는 ‘맞-’[敵]. ‘나-’[出]의 합성어이다.
주025)
한 병(病)이 : 많은 병이. 하-[多]+ㄴ 病+이.
주026)
더니 : 더니. 주니. 적어지니. 덜-[除]+니. ‘덜-’의 ‘ㄹ’이 자음으로 시작하는 어미 ‘-니’를 만나 ‘ㄹ’이 탈락하였다.
주027)
세  : 세 해를. 삼 년을.
주028)
나그내 : 나그네. ‘나그내’는 두시에서 두보 자신을 표현하는 낱말로 자주 등장한다.
주029)
외여슈메 : 되어 있음에. 외-[爲]+어#시-+움+에.
주030)
 : 가에. 변경에. [邊]+. 〈중간본〉에는 ‘’로 되어 있다.
주031)
왓 : 와 있는. 오-[來]+아#잇-++ㄴ.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032)
시르미 : 시름이. 걱정이. 시름+이.
주033)
훤도다 : 훤하도다. 훤#-+도+다. 원래의 ‘어위도다’에서 교정된 것이다.
주034)
사악(四岳) : 요(堯)임금 시대의 사방 제후(諸侯)의 관명(官名). 일설에는 사악의 일을 맡아보던 희화(羲和)의 네 아들, 희중(羲仲), 희숙(羲叔), 화중(和仲), 화숙(和叔)이라 한다. 공공(共工)의 후예로 전해지는데 우(禹)임금의 치수(治水)를 도운 공으로 강(姜)씨 성을 받아 여(呂) 땅에 봉해졌으며 아울러 제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일설(一說)에 의하면 사악(四岳)은 요(堯)의 신하인 희(羲)와 화(和)의 네 아들로서, 사방(四方)을 맡은 제후라고 한다. 여기서는 사방 제후의 의미를 확장하여 사방(四方) 또는 천하(天下)의 뜻으로 쓰였다.
주035)
이천석(二千石) : 한(漢)나라의 제도. 관리의 등급을 나누는데 그 봉록의 다과를 가지고 표준으로 삼았다. 낭장(郞將)으로부터 군수위(郡守尉)까지의 사람은 이들의 녹봉이 2천 석인 데서 나왔다. 2천 석의 봉록은 군수에 해당했다.
주036)
요(堯)ㅅ : 요임금의.
주037)
저긔 : 때에. ‘적+의’.
주038)
지극(至極)이 : 지극히. 지극+이(부사화접미사).
주039)
다료 : 다스림을. 다ᄉᆞ리-[理]+옴+.
주040)
기며 : 밝히며. -+기(사동접미사)+며. ‘기-’는 16세기에 들어 ‘키-’와 ‘키-’가 쓰이기 시작한다. ‘-’에 사동접미사 ‘-이-’가 결합되다가 16세기에 들어 ‘-히-’가 결합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5세기 문헌에는 ‘-’에 사동접사 ‘-이-’가 결합한 ‘기-’형만 나타나지만, 16세기에 들면 ‘키-’와 ‘키-’형이 공존한다. ¶기- : 種種 因緣과 그지 업슨 알외요로 부텻 法을 기샤 衆生 알에 시며〈석상 13:17ㄴ〉. 榮華외며 貴호 티 너규 足히 기리로다(榮貴如糞土)「貽阮隱居」〈두시 9:9ㄴ〉. 키- : 이 너비 利샤  일우샨 德을 키시니〈법화 6:88ㄴ〉. 몬져 定과 慧와 키시고 後에 無心 나토시니라〈법집 86ㄴ〉. 키- : 그 道 반드시 人倫에 믿 불휘 예셔 物理 키고〈번소 9:13ㄴ〉.
주041)
이천 석(二千石)이 : 이천 석의 봉록을 받는 관리가. ‘이천 석(二千石)’에 대해서는 위의 주석 참조. ‘석(石)’은 ‘섬’이다. 한 섬은 열 말이다.
주042)
시르믈 : 시름을. 시름+을.
주043)
홧 : 나누어 있는. 호-+아#잇-++ㄴ.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044)
도다 : 듯하도다. ++도+다. ‘-’는 ‘’의 ‘ㅅ’과 ‘도’ 사이에서 생략되었음.
주045)
고구(羔裘) : 자줏빛 새끼 양의 가죽으로 만든 가죽옷. 옛날 제후(諸侯)나 경대부(卿大夫)의 조복(朝服)이었다.
주046)
기주(夔州) : 당나라 때 설치된 주(州). 무덕(武德) 2년(618) 신주(信州)로 이름을 고쳤고, 치소(治所)는 인복현(人復縣)이며, 정관(貞觀) 중에 봉절현(奉節縣)으로 고쳤다. 천보(天寶) 원년(742) 운안군(雲安郡)으로 고쳤다가, 건원(乾元) 원년(758) 다시 기주가 되었다. 관할 지역은 지금의 중경시(重慶市) 봉절(奉節), 운양(雲陽), 무산(巫山), 무계(巫溪) 등이였다. 송(宋)나라 때는 기주로(夔州路)에 속했다. 개보(開寶) 중에 운양현을 나눠 운안군(雲安縣)을 두어 지역이 축소되었다. 원(元)나라 지원 15년(1278) 기주로(夔州路)로 승격되었다. 명(明)나라 홍무 4년(1371) 기주부로 고쳤다. 기주는 장강(長江) 상류에 있으며, 대대로 사천(泗川) 지역의 요로(要路)였다. 수상 교통이 아주 발달해 항상 상선(商船)들이 왕래했다.
주047)
몃 : 몇.
주048)
디위 : 번을.
주049)
북(北) 녀긔 : 북녘에. 北#녁+긔. ‘東, 西, 南, 北’ 중에서 ‘西’만 ‘西ㅅ녁’과 같이 사이시옷이 쓰인다. 〈중간본〉에는 ‘北 녀킈’로 되어 있다.
주050)
백염산(白鹽山)ㅅ 북(北) 녀긔 : 백염산의 북 쪽에. ‘녀긔’는 ‘녘+의’로 분석됨. 백염산(白鹽山)은 사천성(四川省) 봉절현(奉節縣) 동쪽에 있는 산(山). ¶녁 : 右는 올 녀기라〈훈언 13ㄱ〉. 나랏 臣下ㅣ 太子ㅅ 녀글 들면 須達 願을 몯 일울까 야〈석상 6:25ㄱ〉. 岷嶺 南蠻ㅅ 北녀기오 徐關 東海ㅅ 西ㅅ 녀기로다(岷嶺南蠻北 徐關東海西)「送舍···三首」〈두시 8:37ㄱ〉. 東녁 집 전 나귀 날 빌이건마 기 믯그러워 구틔여 타 朝天디 몯호라(東家蹇驢許借我 泥滑不敢騎朝天)「偪側行」〈두시 25:41ㄱ〉.
주051)
글와 : 편지를. 글을. ¶글왈 : 婆羅門이 글왈야 須達손 보내야〈석상 6:15ㄴ〉. 내 아자비 符節 혀 가져 갯 히 갓가오니 封 여로니 보내욘 글와리 빗나도다(諸舅剖符近 開緘書劄光)「入衡州」〈중간두시 1:56ㄴ〉.
주052)
브티니오 : 부치는가? 브티-[寄]++니+고. 『두시언해』에서 복합어에 쓰인 것을 제외한 ‘브티-’에 대응하는 한자는 ‘付, 自, 寄, 焚, 泊, 爨, 託, 憑, 燒, 火, 發, 焦’ 등이 있다. ‘-고’는 의문사 ‘몃’에 호응하는 설명의문문어미. 중세국어의 의문어미는 크게 판정의문문어미와 의문사에 호응하는 설명의문문어미가 있다. ¶-고 : 太子ㅣ 글 호기 始作샤 明珠書案애 牛頭栴檀香 七寶書板 노시고 金 붇 자샤 글 쓰시며 무르샤 므슴 그를 쵸려 시고〈석상 3:8ㄴ〉. 묏가온  새 지븨 뉘  戶牖에 브턴고(山中漏茅屋 誰復依戶牖)「述懷」〈중간두시 2:31ㄱ〉.
주053)
치위예 : 추위에. 치위+예. ‘치위’는 ‘칩다’의 파생명사이다. 참조; 치. 치. 치위. 치. 치움. ¶치 : 다가 有情이 오시 업서 모 벌에며 더 치로 셜다가〈석상 9:9ㄴ〉. 치 :  오시 치 몯 리오 세 오 리다 니라〈월석 25:15ㄴ〉. 치 : 法忍이  두 가지니 나 치과 더과〈월석 7:53ㄴ〉. 치위 :  열 설 머거셔 甚 치위와 더위와〈내훈 3:15ㄱ〉. 치움 : 치움과 더움괘 올마 흘러 漸漸 이 니르로다〈능엄 2:6ㄴ〉. 치위 : 세 히록 고 病 알호 뉘 可히 리오 치위와 더위왜 온 나 서르 섯거 사호다(瘧癘三秋孰可忍 寒熱百日相交戰)「病後···贈歌」〈두시 3:50ㄱ〉. 치움 : 여러 묏고래 치움 나미 이르니 긴 수프레 안개 거두미 도다(衆壑生寒早 長林卷霧齊)「課小豎야~移床호라 三首」〈두시 15:17ㄱ〉.
주054)
나 : 나에게. 나를. ‘주-’의 여격 논항에 해당하므로 현대국어로는 ‘나에게’로 해석되지만 15세기 국어에서는 여격 논항이 주로 대격표지를 취하였다. 현대국어 3항 동사 ‘주-’의 논항구조는 ‘NP1이 NP2에게 NP3를 주-’가 일반적이지만 15세기 국어에서 ‘주-’의 논항구조는 수혜자 의미역 명사구에 여격 또는 처격이 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대격이나 격표지가 없는 무표지가 오는 경우도 흔하였다. 『두시언해』에서는 수혜자 논항에 대격이 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NP이 NP NP 주-) : 고 곳 것고 걋 밥 더러내야 比丘 주시니〈석상 11:41ㄴ〉. (NP이 NP NP의게 주-) : 如來ㅣ (大慈悲 잇고 여러 가짓 앗교미 업스며  저호미 업서) 能히 衆生의게 부텻 智慧과 如來ㅅ 智慧과 自然 智慧 주니〈법화 6:122ㄴ〉. (NP이 NP NP애 주-) : 太子ㅣ (象) 怨讎ㅅ 나라해 주시니〈월석 20:66ㄱ〉. (NP이 NP NP의 주-) : 德宗이 (드르시고 兵部尙書 贈시고) 돈 三百萬 제 지븨 주시고〈삼강런던忠17〉 (NP이 NP NP 주-) : (太子ㅣ) 寶冠 瓔珞 車匿일 주시며〈월천 20ㄴ〉. 茱萸 朝士 주시건마  가지 어더 오미 어렵도다(茱萸賜朝士 難得一枝來)「九日五首」〈두시 11:29ㄱ〉. (NP이 NP NP-∅ 주-) : 太子ㅣ 寶冠 瓔珞 車匿이 주시고〈석상 3:30ㄴ〉. 내  眞宰 罪 주고져 노니 덴 疊嶂 갓가 리고져 노라(吾將罪眞宰 意欲鏟疊嶂)「劒門」〈중간두시 1:35ㄴ〉.
주055)
프른 : 푸른. 프르-[靑]+ㄴ.
주056)
염의 : 염소의. 염[羔]+고. 현대국어의 ‘염소’는 ‘염+소’로 분석된다.
주057)
갓오 : 가죽옷을. 갓+옷+. ‘갓’은 ‘가죽’과 ‘피부’의 의미가 있었다. 참조; 갓옷. 자음 조사와 휴지 앞에서 ‘갗→갓’ 표기는 8종성법의 제약 때문이다. ‘가족’은 16세기 문헌부터 나타남. ¶(가죽) : 亡母ㅣ 餓鬼 中에 냇거늘 보니 飮食을 몯 보고 갓과 왜 니 솃거늘〈월석 23:92ㄱ〉.  아랫 文에 갓과 고기와 힘과 와 다 해 감 니라〈원각 상:1-2:137ㄱ〉. 세  奔走야 뇨매 갓 갓과 왜로소니 진실로 人閒애 니 길히 어려우미 잇도다(三年奔走空皮骨 信有人間行路難)「將赴成都草堂途中有作 先寄嚴鄭公五首」〈두시 21:5ㄱ-ㄴ〉. 智者ㅣ 보 오직 머리터리와 톱과 니와 열운 갓과 두터운 갓과 콰 피와 과 믈와 곳믈와 춤과 고롬과 기름과 힘과 脈과 頭腦와 과 누른 痰과  痰과 肝과 膽과 와 骨髓와 肺와 脾와 腎과 胃와 과 膏와 膀胱과 大腸과 小腸과 生藏과 熟藏과 과 오좀과 더러운 곧 이러틋 거시 낫나치 사 아뇨 보니〈영가 상:35ㄴ〉. 中原에 音書ㅣ 업서 도라가 得디 몯호니 손바리 어러 고 갓과 쾌 주게라(中原無書歸不得 手腳凍皴皮肉死)「乾元中寓居同谷縣作歌七首」〈두시 25:26ㄴ〉. 갓옷 : 값 업슨 寶衣로 鹿皮 갓옷 밧고아 니부니 樹神이 모 現야 소내 僧伽梨 자바 날려 닐오〈월석 25:36ㄱ〉. 헌 갓옷 니븐 蘇季子ㅣ여 나라 디나 녀셔 도라가 아디 몯놋다(弊裘蘇季子 歷國未知還)「遠遊」〈중간두시 2:27ㄴ〉. 나 이니 내 모매 콰 가족과 왜니라〈칠대 2ㄱ〉. 나 안잣거든 나 봅노 거셔〈번박 42ㄱ〉.
주058)
주다 : 준다. 주-[與]++다.
주059)
은구(銀鉤) : ①발을 거는 은제(銀製) 고리. ②은으로 만든 열쇠. ③잘 쓴 글씨를 말함. 구(鉤)는 필획(筆劃). 진(晉)나라 색정(索靖)이 초서를 잘 썼는데 사람들이 그 글씨를 “은 갈고리 말의 꼬리”라 칭찬했다. ④은으로 만든 띠의 마물 단추. ⑤은빛이 나거나 은으로 만든 여자들의 장신구. ⑥초승달을 비유하는 말. 여기서는 ③의 뜻으로 쓰였다.
주060)
색정(索靖) : 239~303. 서진(西晉) 돈황(敦煌, 감숙성) 사람. 자는 유안(幼安)이다. 고향 사람 범충(氾衷)과 함께 낙양(洛陽) 태학(太學)에 들어가 ‘돈황오룡(敦煌吳龍)’이라 불렸다. 고을에 불려가 별가(別駕)가 되고, 군(郡)에서 현량방정(賢良方正)으로 천거되었다. 진무제(晉武帝) 때 상서랑에 올랐다. 상서대(尙書臺)에 여러 해 있다가 안문태수(雁門太守)를 거쳐 노상(魯相)으로 옮기고, 다시 주천태수(酒泉太守)가 되었다. 혜제(惠帝)가 즉위하자 관내후(關內侯)에 봉작되었다.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을 미리 알고 낙양 궁성의 문에 있는 동타(銅駝)를 가리키며 “네가 풀 더미 속에 있는 것을 보겠구나(會見汝在荊棘中耳).”라고 말했다. 조왕륜(趙王倫)이 반란을 일으키자 좌위장군(左衛將軍)으로 손수(孫秀)를 토벌해 공을 세워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올랐다. 팔왕(八王)의 난 때 하간왕(河間王) 사마옹(司馬顒)의 반군을 진압하던 중 상처를 입고 전사했다. 위탄(韋誕)에게 글씨를 배워 특히 초서와 팔분(八分)에 뛰어났고 준험한 맛이 있었다. 남북 서파(書派) 가운데 북파로 분류된다. 위관(衛瓘)과 함께 초서(草書)로 이름을 떨쳐 이묘(二妙)로 불린다. 작품에 「인소원법첩(隣蔬圓法帖)」, 「월의첩(月儀帖)」, 「희홍당법첩(戱鴻堂法帖)」, 「출사표(出師表)」 등이 있고, 「무구흥비(毋丘興碑)」의 글씨가 그의 것이라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저서에 『초서장(草書狀)』 등이 있다.
주061)
서리와 눈괘 : 서리[霜]. 눈[雪]이.
주062)
눈괘 : 눈이. 눈+과+이. 〈중간본〉에는 ‘눈쾌’로 되어 있다.
주063)
비츨 : 빛을. 볕을. 15세기의 ‘빛’은 ‘밝기’를 나타낼 때와 온도를 나타낼 때가 있는데, 이 경우는 ‘서리’와 ‘눈’은 차가움의 대상이어서 피해야 하므로 ‘온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주064)
횟도로 혀 : 도로 돌려 끌어당겨져. 횟+돌-[廻]+오 혀-+∅. ‘횟’은 접두사로 ‘도로’의 뜻이며, ‘돌-’은 ‘가는 방향을 돌리다’의 뜻이며, ‘-오’는 부사화접미사의 하나이다. ‘혀’는 ‘끌다’의 뜻인 ‘혀-’와 어미 ‘-어’가 결합된 형태이다. 여기서 ‘혀-’는 ‘끌다’라는 타동사가 아니라 ‘끌리다’라는 자동사 즉 피동의 의미로 쓰였다. 즉 ‘혀-’는 자타동 양용동사이며, 여기서는 자동사 용법으로 쓰였다. ‘서리’와 ‘눈’은 찬 물질인데 이것들이 소매 속으로 스며들지 않고 방향을 돌려 끌어당겨진다는 뜻이다.
주065)
금(錦) : 비단.
주066)
매 : 소매를. 매+.
주067)
교룡(蛟龍)이 : 교룡이. 蛟龍+이. ‘교룡(蛟龍)’은 실제하는 동물이 아니라 한시에서 많이 쓰였으며, 『두시언해』에도 많은 용례가 나온다. ¶교룡(蛟龍) : 蛟龍이 一定 굼기 업고 黃鵠 프른 하 라 가놋다(蛟龍無定窟 黃鵠摩蒼天)「寄題江外草堂」〈두시 6:36ㄴ〉. 蛟龍 기피셔 거슯주믈 짓고 豺虎 어즈러이 모디로 雄壯히 놋다(蛟螭深作橫 豺虎亂雄猜)「秋日···三十韻」〈두시 3:8ㄴ〉.
주068)
협(篋)에셔 : 서안(書案)에서. 서안으로부터. 협+예+셔.
주069)
뮈니 : 움직이니. 뮈-[動]+니. 15세기 국어에서 ‘움직이다’의 뜻은 ‘음즈기다’와 ‘뮈다’가 있다. ¶움즈기- : 群動 한 움즈기 衆生이라〈월석 18:82ㄴ〉. 그러운 돌히 기우럿니 뉘 돗던고  리 움즈기니 서르 괴욋도다(滑石欹誰鑿 浮梁裊相柱)「龍門閣」〈중간두시 1:32ㄱ〉. 뮈- : 聲聞 辟支佛 히 모미 뮈  몰라 니러 추믈 츠니〈석상 11:15ㄱ〉. 니은 笮 뮈여 움즈기니 길녀 사 오시 매 부리놋다(連笮動嫋娜 征衣颯飄颻)「桔柏渡」〈중간두시 1:34ㄱ〉. 뮈우- : 翳 눈과 어울면 조 누늘 뮈우니 業識이  그러니라〈월석 11:75ㄴ〉. 靑雲ㅣ 내의 노 興을 뮈우니 幽事도  즐겸즉도다(靑雲動高興 幽事亦可悅)〈중간두시 1:3ㄱ〉.
주070)
은구(銀鉤)ㅣ : 은구가. ‘은구(銀鉤)’에 대해서는 위의 주를 참조.
주071)
서롓 : 서려 있는. 서리-+어#잇-++ㄴ. 원시의 ‘蟠’에 대응하는 말이다. 15세기의 ‘-어 잇-’은 ‘-아/어#잇-’형, ‘-앳/엣-’형, ‘-앗/엇-’형이 공존했다.
주072)
도다 : 듯하도다. +-+도+다. ‘도다’는 ‘’가 생략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도다’로 표기된다.
주073)
자의(紫衣) : ①자색(紫色) 의복(衣服). ②옛날의 공복(公服). 춘추전국시대 국군(國君)의 의복은 자색(紫色)을 썼다. 남북조(南北朝) 시대 이후 자의(紫衣)는 귀관(貴官)의 공복(公服)이 되었기 때문에 주자(朱紫)·금자(金紫)의 명칭이 나왔다. ③귀관(貴官)을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②의 뜻으로 쓰였다.
주074)
복명(復命) : 명령을 받은 일에 대하여 그 처리한 결과를 보고하는 일.
주075)
고인(故人) : 오래 사귄 사람. 노우(老友). 여기서는 두보 자신을 가리킨 것이다.
주076)
사배(謝拜) : 감사하는 마음으로 절을 함.
주077)
블근 옷 니븐 사자(使者)ㅣ : 붉은 옷 입은 사자(使者)가. 원문의 ‘紫衣使者’를 언해한 말이다. ‘자의(紫衣)’에 대해서는 위의 주를 참조.
주078)
하딕고 : 하직하고. 하딕#-+고. 한자어 ‘하직(下直)하-’가 한글로 표기되었다. 『두시언해』 중에서도 유일례이다.
주079)
명(命)을 : 명령을.
주080)
도로 가져 가니 : 도로 가져 가니. 원문의 ‘복명(復命)’에 대한 언해이다. 받은 명령을 도로 보고하였다는 뜻이다.
주081)
고인(故人) : 오래된 친구를. 즉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두시언해』에서 두보 자신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쓰인 것은 ‘나그네, 노옹(老翁), 천자(賤子)’ 등이 있다.
주082)
두 번 절야셔 : 두 번 절하여서. 존경의 뜻으로 거듭 절한 것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주083)
아다온 : 아름다운. 아답-+오+ㄴ.
주084)
정치(政治) : 정치를. 여기서는 배 시주가 황제로부터 명령을 받고 이를 처리하여 보고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주085)
사배(謝拜)노라 : 감사한다. 사배-++오+라. ‘오’는 1인칭 주어에 호응하는 선어말어미로 이 동사의 주어가 두보 자신 즉 1인칭임을 알 수 있다.
주086)
재화(才華) : 아름다운 재주가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 주로 문재(文才)를 가리킨다.
주087)
장차(將次)ㅅ : 장차. 명사에 소유격 조사가 연결된 것이 아니라 부사어이다. 이때의 ‘ㅅ’은 부사화접미사이다. 원문의 ‘將’에 대한 번역으로 쓰이는데, 『두시언해』에서는 ‘마’로 번역될 경우도 있다.
주088)
늘구메 : 늙음에. 늙-+우+ㅁ+에.
주089)
마 : 이미. 벌써. 16세기 후반이면 ‘이믜〈소언 5:43ㄴ〉․이믯〈소언 5:43ㄴ〉’과 동의관계이다. 때로는 “장차, 이제 곧”을 뜻하기도 한다. 『두시언해』에서 ‘마’는 주로 원문의 ‘已’나 ‘旣’의 번역이다. ‘旣’의 번역으로는 ‘이믜셔’도 쓰였다. ¶마 : 太子 羅睺羅ㅣ 나히 마 아호빌(太子羅睺 年已九歲)〈석상 6:3ㄱ〉. 세 關 마 차  삸미티 虛空애 머니(三關을 已透야 一鏃이 遼空니)〈금삼 5:43ㄴ〉. 나 延引야 마 어둡거늘 블혀 여러 門 열오(延客已曛黑 張燈啟重門)「彭衙行」〈중간두시 1:13ㄱ〉. 너희 비들 마가 줄 靑錢 마 일워 뒷노니 반기 됴 마로 여 내 이베 들에 라(已辦靑錢防雇直 當令美味入吾脣)「撥悶」〈두시 3:32ㄴ〉. 이믜셔 : 兵革ㅣ 이믜셔 긋디 몯니 나히 다 東 녀크로 征伐 가니라(兵革既未息 兒童盡東征)「羌村三首」〈중간두시 2:67ㄴ〉. 사호  처 錦을 주시니 춤 츠 리 이믜셔 牀애 오니라(鬪雞初賜錦 舞馬既登床)「鬪雞」〈두시 6:13ㄱ〉.
주090)
시름홀 : 시름 할. 걱정할. 시름#-+오+ㄹ.
주091)
이 : 일을.
주092)
일후니 : 잃으니. 잃-+우+니.
주093)
후래(後來)예 : 나중에. 뒷날에.
주094)
며 : 하물며. ¶며 : 모맷 고기라도 비 사 주리어니 며 녀나 쳔랴녀〈석상 9:13ㄱ〉.  貪 無量有情이 쳔랴 모도아 두고 제 도 오히려 아니거니 며 어버 내야 주며 가시며 子息이며 죠 주며 와 비 사 주리여〈석상 9:12ㄱ〉. 干戈애 며  드트리 누네 좃니 귀믿터리 도로 이 누니 머리예  거니라(幹戈況復塵隨眼 鬢發還應雪滿頭)「寄杜位」〈두시 21:33ㄱ〉. 더워 草木ㅣ 누르러디디 몯니 며 山水의 幽深호믈 드로미녀(草木未黃落 况聞山水幽)「發秦州」〈중간두시 1:14ㄴ〉.
주095)
성대(盛大)호 : 성대함을. 성대-+오+ㅁ.
주096)
상접(相接)리로다 : 서로 맞을 것이도다. 상접-+리+도+다. ‘로’는 ‘리’의 ‘ㅣ’ 모음의 영향으로 ‘도’가 바뀐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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