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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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장군들에게, 5수[諸將五首]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44ㄱ

諸將五首 주001)
제장 오수(諸將五首)
이 시는 대력(大曆) 원년(766) 가을에 지어졌다. 이때 두보는 기주(夔州)에 머물러 있었다. 다섯 수의 작품에서 두보는 당시 장군들의 실책에 대해 일침을 가하면서 풍자하고, 그가 변방의 우환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 대처하겠다는, 조국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도 제기하고 있다.
【此詩ㅣ 前四首 皆責望諸將之詞ㅣ라】

제장 오수
(여러 장군들에게, 5수)
【이 시의 앞 4수는 모두 여러 장군들을 책망한 내용이다.】

〈첫째 수〉

漢朝陵墓 주001)
한조능묘(漢朝陵墓)
당나라 때 여러 제왕들의 능묘를 가리킨다.
南山 주002)
남산(南山)
종남산(終南山)을 가리킨다.
胡虜 주003)
호로(胡虜)
진한(秦漢) 시대 때 흉노(匈奴)를 가리키는 말. 후세에 중국에 적대적인 북방의 부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여기서는 토번을 말한다.
千秋尙入 주004)
관(關)
소관(蕭關). 지금의 영하 고원(固原) 동남쪽을 가리키는 말.
주005)
한조능묘대남산 호로천추상입관(漢朝陵墓對南山 胡虜千秋尙入關)
“한나라의 능묘가 종남산에 있었는데, 오랑캐가 천추 세월 동안 중원으로 들어와 도굴했다.”는 말로, 한나라 때 일이 지금 안녹산에 의해 다시 저질러졌음을 뜻한다.
【此 言天子之陵과 大臣之墓ㅣ 相對終南山 주006)
종남산(終南山)
섬서성 장안(長安)의 남쪽에 있는 산. 주남산(周南山) 또는 남산, 진령(秦嶺)이라고도 부른다. 높이는 1,200m이며, 진령산맥(秦嶺山脈) 산봉에 속한다. 주봉의 해발고도는 2,604m이다. 옛 이름은 태일산(太一山), 중남산(中南山), 주남산(周南山) 또는 남산(南山) 등이었다. 중국을 화북(華北)과 화남(華南)으로 나누는 진령산계(秦嶺山系)의 동쪽 끝 근처에 있다. 5-6세기 이래 화엄종의 법림(法淋)과 종밀(宗密), 계율종남산파의 개조(開祖) 도선(道宣), 정토종의 대성자(大成者)인 선도(善導), 도교 전진도(全眞道)의 개조 왕중양(王重陽), 북오조(北五祖) 중의 중리권(鐘離權), 여동빈(呂洞賓), 유해섬(劉海蟾) 등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야 謂有千秋之固ㅣ러니 及胡虜ㅣ 入關애 不免發掘故로 玉魚金盌이 已出人閒而不能保也ㅣ니 借漢야 言祿山之亂니라】

漢朝ㅅ 陵과 墓왜 南山 對얫니 주007)
남산(南山) 대(對)얫니
종남산을 대하고 있으니. 對#+야#잇-++니.
되히 주008)
되히
오랑캐들이. 되+ㅎ+이.
千秋에 오히려 주009)
오히려
오히려. 오히+려. ‘려’는 부사화 접미사이다. (참조)새려. 기저형을 ‘오힐+어’로 보는 견해도 있다.
關中에 드니라 주010)
드니라
들어오니라. 들어온다. 들[入]-+니+라.

【한자음】 한조능묘대남산 호로천추상입관【이것은 천자의 능과 대신의 무덤이 종남산(終南山)을 마주보며 있어, 천추의 세월 동안 견고하리라 하였는데, 오랑캐가 입관함에 도굴되는 것을 면하지 못했다. 때문에 옥 물고기 금 주발이 이미 인간 세상으로 나와 지킬 수 없었으니, 한나라를 빌려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한나라 조정의 능(陵)과 묘(墓)가 종남산을 대하여 있으니, 오랑캐들이 천추(千秋)에 오히려 관중(關中)에 드네!

昨日 주011)
작일(昨日)
어제. 지난날. 옛날.
玉魚 주012)
옥어(玉魚)
옥에 물고기 모양을 새긴 진귀한 노리개다. 전설에 따르면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 때 초왕(楚王) 무태자(戊太子)가 마침 경사(京師)에 조알하러 갔다가, 미처 앉기도 전에 장안(長安)에서 죽으니, 천자가 옥어(玉魚) 한 쌍을 무덤에 넣어주었다고 한다. 즉 부장품(副葬品)을 가리킨다.
蒙葬地 早時金盌 주013)
금완(金盌)
금으로 만든 주발. 간보(干寶)의 『수신기(搜神記)』 권16에 실린 이야기에 따르면, 범양(范陽)의 노충(盧充)이 최소부(崔少府)의 딸과 혼인하였다. 사별하고 4년 뒤 3월 3일 노충은 물가에서 송아지 두 마리가 끄는 수레를 보았는데, 죽은 최씨와 3살짜리 사내아이가 같이 타고 있었다. 최씨가 품은 아이를 노충에게 돌려주면서 금 주발을 함께 주고 증시(贈詩)를 남겼다 한다. 즉 금완을 순장(殉葬)하는 기물(器物)의 뜻으로 쓰였다.
出人閒
주014)
작일옥어몽장지 조시금완출인간(昨日玉魚蒙葬地 早時金盌出人間)
“옛날에 옥으로 만든 물고기를 무덤에 묻어 두었는데, 이른 시간에 금으로 만든 주발이 세상 밖으로 나왔네.”라는 말로, 무덤이 도굴을 당해 보물이 흩어졌다는 뜻이다. 무장(武將)이 외적을 멸하지 못해, 당나라 때 제왕의 능묘가 토번에 의해 도굴되기에 이른 것을 말한다. 옥어(玉魚)와 금완(金盌)은 모두 제왕의 순장품이다.
【玉魚金盌 皆斂葬 주015)
염장(斂葬)
염습(斂襲)하여 안장(安葬)함. 염(斂)은 염(殮)과 통한다.
之物이라】

【언해역】 어젯날 주016)
어젯날
어제. 옛날. 어제+ㅅ+날. 원문의 ‘작일(昨日)’의 번역이다.
玉魚ㅣ 무든 해 주017)
무든 해
묻은 땅에. 묻[埋]-+은 ㅎ+에.
두펫더니 주018)
두펫더니
덮혀 있더니. 둪[盖]-+어#잇-+더+니. ¶특 구루미 기 펴 三千 大千 世界 다 두퍼  티 브 그 저주미 너비 흐웍면〈법화 3:10ㄱ〉.
일즉 주019)
일즉
일찍. 원시의 ‘早時’에 대한 번역으로, 『두시언해』에서는 ‘조(早)’에 대해서는 ‘일’, ‘증(曾)’에 대해서는 ‘일즉’으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으나 여기에는 ‘조(早)’가 쓰였는데도 불구하고 ‘일즉’으로 번역되어 있다. ¶早(일) :  요 녜 震澤 브터 노니 미 平니 일 參星 보리로다(舟泊常依震 湖平早見參)〈두시 3:14ㄱ〉 / 曾(일즉) : 일즉 椽吏 외야 三輔애 가 뇨니 潼關애 이셔 詩興이 하던 이 思憶노라(曾爲椽吏趨三輔 憶在潼關詩興多)〈두시 3:37ㄴ〉.
金盌이 人閒애 주020)
인간(人閒)애
사람 사이에. 인간 세상에.
냇도다 주021)
냇도다
나와 있도다. 나[出]-+아#잇-+도+다.

【한자음】 작일옥어몽장지 조시금완출인간【옥어(玉魚)와 금완(金盌)은 모두 무덤에 넣는 물건이다.】
【언해역】 지난날 옥어(玉魚)가 묻은 땅에 덮혀 있더니, 일찍 금완(金盌)이 사람 사이에 나와 있구나!

見愁汗馬西戎逼 주022)
서융핍(西戎逼)
서융(西戎)이 쳐들어오다. 765년 9월 토번이 회흘과 연합해 쳐들어왔을 때, 군병들이 봉천(奉天)에 이르자 경사(京師)가 두려움에 떨었던 일을 말한 것이다.
曾閃朱旗北斗閑
주023)
현수한마서융핍 증섬주기북두한(見愁汗馬西戎逼 曽閃朱旗北斗閑)
“오랑캐가 말을 타고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근심하니, 장안에서 한가롭게 지내던 장군들은 무엇을 했는가.”란 말로, 전란이 닥쳤는데 이를 대비하지 못한 당시 장수들을 질책하는 뜻이다.
【長安城 號北斗城이라 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44ㄴ

言愁見吐蕃之逼亂노니 汝諸將이 昔曾閃動旌旗於北斗城中而享安閑之富貴니 今何不謹備乎오】

주024)
땀.
나게 타 西ㅅ녁 되 주025)
서(西)ㅅ녁 되
서쪽 오랑캐. 즉 토번(吐藩)을 말한다.
逼近야 오 보아 시름노니 주026)
시름노니
근심하니. 시름[愁]#-++오+니. 화자주어 호응의 ‘오’는 종결어미에 실현되는데, 연결어미 중에서는 ‘-니’에 실현된다. ‘-니’는 연결어미로 분류되지만 종결어미가 보이는 여러 가지 특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어미이다.
일즉 주027)
일즉
일찍. 일찍이. 원시의 ‘曾’에 대한 번역이다.
朱旗 北斗城에셔 뮈워 주028)
뮈워
움직여. 흔들어. 뮈[動]-+우+어. ¶뮈우다 : 無明體예  念 처 뮈유미 일후미 行이니 行 뮐 씨라 흐리워 뮈우면 精을 일허 아로미 나니 그럴 智 두르 일후믈 識이라 니 識 알 씨라〈월석 2:21ㄱ〉 / 庾信이 平生애 안직 蕭瑟니 늘근 나해 詩賦ㅣ 江關엣 들 뮈우니라(庾信平生最蕭瑟 暮年詩賦動江關)〈두시 3:67ㄱ〉.
安閑더니라 주029)
안한(安閑)더니라
안한(安閑)하였었다. 편안하고 한가하였었다. 安閑#-+더+니+라.

【한자음】 현수한마서융핍 증섬주기북두한【장안성(長安城)을 북두성(北斗城)이라 부른다. 이것은 두보가 근심스럽게 토번의 난이 가까운 것을 보노니, ‘너희 여러 장군들이 지난날에는 일찍이 북두성 안에 정기(旌旗)를 번쩍이며 흔들며 편안하고 한가한 부귀를 누리더니, 지금은 어찌 삼가고 준비하지 않는가’라고 한 것이다.】
【언해역】 말이 땀 나게 타고 서쪽 오랑캐가 쳐들어옴을 근심하니, 일찍이 붉은 깃발을 북두성(北斗星)에서 흔들며 한가로웠었네!

多少材官 주030)
재관(材官)
진한(秦漢) 때 처음 설치한, 일종의 지방(地方) 예비병(預備兵). 무장(武將).
涇渭 주031)
경위(涇渭)
경수(涇水)와 위수(渭水). 둘 다 중국 섬서성에 있다. 경수는 탁류(濁流)고, 위수는 청류(淸流)인 데서, 사물의 구별이 확실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시경』 패풍(邶風) 곡풍(谷風)에 “경수(涇水) 때문에 위수(渭水)가 흐려진다 해도, 파랗게 맑아질 때가 있네.(涇以渭濁 湜湜其沚)”란 구절이 나온다. 소식(蘇軾) 시에도 흉중경위분(胸中涇渭分)이란 글귀가 있다. 모두 경기(京畿) 안에 있었다. 곽자의가 경양(涇陽, 지금의 장안 북쪽)에 병력을 주둔시켰고, 이충신(李忠臣)은 동위교(東渭橋, 지금의 장안 동북쪽)에 주둔시켰으며, 이광진(李光進)은 운양(雲陽, 지금의 섬서 涇陽縣 북쪽)에 주둔시켰고, 마린(馬璘)과 학정옥(郝庭玉)은 편교(便橋, 지금의 섬서 咸陽 서남쪽)에 주둔시켰으며, 이포옥(李抱玉)은 봉상(鳳翔)에 주둔시켰고, 이일월(李日越)은 주질(盩厔)에 주둔시켜 토번을 방어했다. 장안 부근에 대병력이 운집하니 군대의 사기가 긴장에 빠졌다.
將軍且莫破愁顏
주032)
다소재관수경위 장군차막파수안(多少材官守涇渭 將軍且莫破愁顏)
“몇몇 무신들이 강가에서 지키지만, 장군들은 이를 믿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경비가 있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라는 뜻이다. 당시 장군들의 안이한 태도를 질책하는 말이다.
【多少 不定數也ㅣ라 材官 武臣이니 言今材官이 屯守涇渭니 諸將 當念防寇而莫破愁顔以爲樂也ㅣ라】

하며 져근 주033)
하며 져근
많으며 적은. 하[多]-+며 젹-+은. 여기서는 수가 ‘몇몇’임을 말한 것이다.
材官이 涇渭예 屯守얫니 주034)
둔수(屯守)얫니
둔수하고 있으니. 지키고 있으니. 屯守#-+야#잇-++니.
將軍 시름도왼 주035)
시름도왼
근심된. 시름[愁]+도외-+ㄴ. ‘도외다’는 ‘외다’와 쌍형어로 쓰였다. ¶도외다 :  勝福 어드릴 暫持 功德이 도외니〈법화 6:3ㄱ〉 / 病야 누워 오래 나그내 도외요니 恩惠 닙와 일 션 서리예 섯거뇨라(卧疾淹爲客 蒙恩早側儒)〈두시 2:10ㄱ〉 / 외다 : ㅇ 입시울쏘리 아래 니 쓰면 입시울가야소리 외니라〈훈언 12ㄱ〉 / 다  蜀郡에 나그내 외오   梓州ㅣ 사로라(五載客蜀郡 一年居梓州)〈두시 2:1ㄱ〉.
 주036)

낯을. 얼굴을. +. ¶ : 衒賣色 겨지븨  어 빋게 야  씨라〈석상 21:61ㄴ〉 / 衰老  스스로 운노니 효 官吏히 안직 서르 업시우다(衰顏聊自哂 小吏最相䡖)〈두시 2:27ㄱ〉.
허러 주037)
허러
일그러뜨려. 허물어. 헐[破]-+어.
리디 말라 주038)
리디 말라
버리지 말라. 리[棄]-+지 말-+라.

【한자음】 다소재관수경위 장군차막파수안【‘다소(多少)’는 수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재관(材官)’은 무신이니, 지금 무신들이 경위 지역에 주둔해 지키니, 여러 장군은 마땅히 외구를 방어해, 누구든 근심스런 얼굴을 깨쳐, 안락으로 삼아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언해역】 많고 적은 재관(材官)이 경수(涇水)와 위수(渭水)를 지키고 있으니, 장군들은 근심스런 얼굴을 없애 버리지 말라.

〈둘째 수〉

韓公 주001)
한공(韓公)
장인원(張仁願)을 가리키는 말.
本意築三城 주002)
삼성(三城)
세 개의 수항성(受降城)을 가리키는 말. 신룡(神龍) 3년(707) 장인원이 일찍이 내몽골 경내에 세 개의 수항성을 쌓아 돌궐(突厥)에 저항하였다.
擬絕天驕拔漢旌 주003)
발한정(拔漢旌)
한가(漢家)의 기치를 뽑아버림. 이것은 당나라 영토에 침입한 것을 가리킨다.
豈謂 주004)
기위(豈謂)
당나라가 삭방군(朔方軍)을 설치했는데, 원래 돌궐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돌궐이 쇠망하자, 회흘이 굴기하였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숙종(肅宗)은 영무(靈武, 지금의 寧夏 영무)에서 즉위하자, 삭방병의 병력이 부족하여 오히려 회흘에게 구원해 양경(兩京)을 수복하기를 청했다. 두보는 장수가 무능하다고 여겨, 이것을 풍자하였다. 삭방병은 삭방군으로 곽자의가 통솔한 부대를 가리킨다.
盡煩回紇馬 翻然遠救朔方兵
주005)
한공본의축삼성 의절천교발한정 기위진번회흘마 번연원구삭방병(韓公本意築三城 擬絕天驕拔漢旌 豈謂盡煩回紇馬 翻然遠救朔方兵)
“장인원이 세 성 쌓은 본래 의도는, 흉노가 한나라의 영토를 함락시키리라 염려해서였는데, 어찌 회흘의 말들을 다 어지럽게 달려오게 해서, 도로 멀리 삭방(朔方)의 군대를 구하리라 여기겠는가?”란 말로, 스스로 방비를 견고하게 해서 외적을 막아야지, 안이하게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此 言韓國公張仁愿 주006)
# 장인원(張仁願)
?-714. 당나라 화주(華州) 하규(下邽) 사람. 본명은 인단(仁亶)이다. 무주(武周) 만세통천(萬歲通天) 2년(697) 손승경(孫承景)의 황상을 기망한 죄를 주청했고, 숙정대중승(肅政臺中丞)과 검교유주도독(檢校幽州都督)에 발탁되었다. 중종(中宗) 신룡(神龍) 중에 낙주장사(洛州長史)에 오르고, 삭방총관(朔方總管)을 대신해 출병했다가 돌궐(突厥)을 대패시켰다. 다시 황하(黃河) 북안에 동서중(東西中) 세 지역에 수항성(受降城)을 쌓아, 변경 방어를 공고히 했다. 경룡(景龍) 3년(709)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과 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에 오르고, 한국공(韓國公)에 봉해졌다.
이 築河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45ㄱ

北三受降城 本欲備蕃虜 侵陵이러니 豈知反賴回紇兵야 以平河北之亂이리오】

韓公이 세 城 주007)
쌓은. 샇[築]-+오+ㄴ. ¶샇다 : 다가 먼 드릇 가온  사하 佛廟 빌우거나〈개법 1:75ㄴ〉 / 돌 사하 믈어딘 두들글 막고 수프를 여러 먼 뫼 나게 노라(帖石防隤岸 開林出遠山)〈두시 10:15ㄴ〉.
本來ㅅ 든 天驕子 주008)
천교자(天驕子)
천교(天驕)는 하늘이 그 교만을 허락한 아이라는 뜻으로, 흉노(匈奴)와 돌궐을 일컫는 말이다.
 漢ㅅ 旌旗 혀믈 주009)
혀믈
뽑힘을. [拔]-+혀+ㅁ+을. ¶다가 바지왼 소니 아니면 뉘 能히 부들 혀 實에 맛게 베퍼 펴리오〈금삼 서:13ㄱ〉 / 서늘호믈 卑濕 해 가져오고 소 洞庭엣 므를 혀 도다(爽携卑濕地 聲拔洞庭湖)〈두시 2:23ㄱ〉.
그츄리라 주010)
그츄리라
그치리라. 긏[斷]-+우+리+라. ¶그추다 : 내 命 그추미 므더니 너기가니와〈월석 10:4ㄴ〉 / 漸漸 사괴야 노 사미 그추믈 깃노니 幽隱히 사로매 일후믈 디 아니노라(漸喜交遊絕 幽居不用名)〈두시 3:26ㄱ〉.
너기더니 주011)
너기더니
여기더니. 너기[謂]-+더+니. 원시의 ‘의(擬)’의 번역으로 쓰였다.
엇뎨 주012)
엇뎨
어찌.
回紇의  다 어즈러이 주013)
어즈러이
어지럽게. 어즐+업+이. ¶어즈러이 : 智慧ㅅ  光明을 펴 五陰 믈 타 本來ㅅ 空 性을 비취여 그 中에 거츠리 제 어즈러이 뮈유 처 아니〈능엄 1:107ㄴ〉 / 조  기피셔 우 납 인 로 올마가고 虛  어즈러이 沐浴 올히 조차 가노라(窄轉深啼狖 虛隨亂浴鳧)〈두시 2:6ㄴ〉.
야 주014)
야
하여야. -+야+. 〈중간본〉은 ‘여아’이다. 일반적을 〈초간본〉이 ‘-’를 중간본이 ‘-’를 쓰는 경향이 있으나 여기서는 오히려 반대로 되어 있다.
도혀 주015)
도혀
도로. 돌[回]-++히+어. ‘도다’는 ‘돌다’의 사동사이다 ‘도혀’는 『석보상절』이나 『월인석보』 등에서는 ‘도’로 표기되었다. ¶도 : 慈悲 衆生 便安케 시 거시어늘 이제 도  어 아 여희에 시니〈석상 6:5ㄴ〉 / 도혀 : 네 너의 듣논 性이  한 소리 잇  도혀 듣다 닐오〈목우자 19ㄱ〉 / 모 도혀 프른  보니 슬퍼 거츤 못 도다(回身視綠野 慘澹如荒澤)〈두시 8:21ㄱ〉 / 엇디 關塞ㅣ 阻隔야 도혀 瀟湘애 노로 짓거니오(如何關塞阻 轉作瀟湘遊)〈두시 2:1ㄱ〉 / 도다 : 셔 피로 심고 셔 피로  시울 도고 금로 갸품욘 안좌오〈번박 28ㄱ〉 / 노 興心이 荊衡로 激發니 知音리 爲야 머리 도라(高興激荊衡 知音爲回首)〈두시 8:5ㄱ〉.
朔方兵을 머리 救리라 너기리오 주016)
머리 구(救)리라 너기리오
멀리 구할 것이라 생각하겠는가? ‘너기다’는 원시의 ‘번(翻)’의 번역으로 쓰였다.

【한자음】 한공본의축삼성 의절천교발한정 기위진번회흘마 번연원구삭방병【이것은 한국공(韓國公) 장인원(張仁愿)이 하북에 수항성(受降城) 세 개를 쌓은 것은 본래 토번(吐蕃) 오랑캐가 능침을 방비하려는 것이었는데, 어찌 거꾸로 회흘의 군대를 믿어, 하북의 난리를 평정하게 되리라고 알았는가를 말한 것이다.】
【언해역】 한공(韓公)이 세 성 쌓은 본래 뜻은, 천교자(天驕子)가 한나라의 정기(旌旗) 뽑음을 끊으리라 여기었더니, 어찌 회흘의 말을 다 어지럽게 하여야, 도로 삭방(朔方)의 군대를 멀리 구하리라 여기겠는가?

胡來 주017)
호래(胡來)
오랑캐가 쳐들어오다. 호인(胡人) 안녹산이 동관(潼關)을 격파하고, 장안을 함락한 일을 가리킨다. 동관은 본래 험난해서 공격하기 어려운데 안녹산은 곧바로 밀고 들어와서, 동관이 그 험난함을 잃고 말았다. 즉 동관을 지킨 장수 가서한이 나약하고 무능한 것을 풍자하고 있다.
不覺潼關隘 龍起 주018)
용기(龍起)
용이 일어나다.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이 태원(太原)에서 거병한 일을, 광평왕(廣平王, 나중의 代宗)이 양경(兩京)을 수복한 일에 빗댄 것이다. 그해 고조 이연이 진양(晋陽)에서 거병했을 때 진수(晋水)의 물 빛깔이 맑아졌다. 광평왕이 지덕(至德) 2년(757) 9월 서경(西京)을 수복했는데, 같은 해 7월 남주(嵐州)가 관하(關河)와 합쳐져 30리가 맑아지니, 그래서 “오히려 진수가 맑아졌다는 것을 들었다.(猶聞晋水淸)”고 말하였다.
猶聞晉水清
주019)
호래불각동관애 용기유문진수청(胡來不覺潼關隘 龍起猶聞晉水清)
“좁은 동관의 요지를 지키지 못하고 장안이 함락되자, 숙종이 용맹하게 가서 이를 평정했다.”는 말로 가서한의 실책을 꾸짖은 것이다.
【晉 河北之地라 上句 言哥舒翰이 失守潼關險隘而祿山이 陷長安고 下句 言肅宗이 龍飛而河北이 復平也ㅣ라】

되 오매 潼關 주020)
동관(潼關)
동관(潼關)의. 후행하는 ‘조보’이 명사형이기 때문에 속격조사가 쓰인 것이다.
조보 주021)
조보
좁음을. 좁[隘]-+오+ㅁ+. ¶좁다 : 비록 이러나 지비 진실로 조브니 자디 몯리라〈번노 상:49ㄱ〉 / 杜陵ㅅ 野客을 사미  웃니 니분 누비 뎌르며 좁고 귀믿터리 실 호라(杜陵野客人更嗤 被褐短窄鬢如絲)〈두시 15:37ㄱ〉.
아디 몯리로소니 주022)
몯리로소니
못할 것이니. 몯#-+리+도+소+니.
龍이 니러나매 주023)
니러나매
일어남에. 닐[起]-+어#나-+ㅁ+애.
晉水ㅣ 고 주024)
고
맑음을. [淡]-+오+ㅁ+. ¶다 : 다가 知見의 見이 업스면 智性이 眞淨야 微妙히 고매 도라가  精리니 일후미 無明滅이니〈월석 2:22ㄴ〉 / 神龍 後에 謀策 一定니 宮中이 모다 가 훤니라(定策神龍後 宮中翕清廓)〈두시 3:65ㄴ〉.
오히려 주025)
오히려
오히려. 오히+려. ‘려’는 부사화접미사이다.
드르리로다 주026)
드르리로다
들을 것이도다. 듣[聞]-+으리+도+다.

【한자음】 호래불각동관애 용기유문진수청【진은 하북의 땅이다. 위 시구는 가서한(哥舒翰)이 동관(潼關)의 험하고 좁은 이점을 갖고 지키지 못해, 안녹산(安祿山)이 장안을 함락시켰다는 말이고, 아래 시구는 숙종이 용처럼 날아 하북이 다시 평정되었음을 말한다.】
【언해역】 오랑캐가 쳐들어옴에 동관(潼關)의 좁음을 알지 못하였으니, 용이 일어남에 진수(晉水)가 맑음을 오히려 들을 것이로다!

獨使至尊 주027)
지존(至尊)
대종(代宗) 이예(李豫)를 가리키는 말.
憂社稷 諸君何以荅升平 주028)
승평(升平)
승평(昇平). 태평(太平)하여 아무런 변고(變故)도 없음.
주029)
독사지존우사직 제군하이답승평(獨使至尊憂社稷 諸君何以答升平)
“임금 혼자 나라의 안위를 근심하게 했으니, 장군과 병졸들은 무엇으로써 태평한 세상에 대해 보답하겠는가?”란 말로, 장군과 병사들이 더욱 분투해서, 나라의 은혜를 갚으라는 뜻이다.

올로 주030)
올로
홀로. ¶올로 : 金몰애 디나샤 金山 가시니 이 길헤 올로 녀시니〈월석 22:7ㄱ〉 / 考功의 等第에 거슯저디여 올로 京尹의 堂애 가 下直호롸(忤下考功第 獨辭京尹堂)〈두시 2:40ㄱ〉.
至尊로 여 주031)
지존(至尊)로 여
지존(至尊)으로 하여금. 왕으로 하여금. 〈중간본〉은 ‘야지’이다.
社稷을 시름케 니 주032)
시름케 니
근심하게 하니.
諸君 므스그로  주033)
므스그로
무엇으로써. 므슥+으로#-+어.
升平호 주034)
승평(升平)호
승평(升平)함을. ‘승평하다’는 ‘나라가 태평하다’라는 뜻이다.
報荅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45ㄴ

고
주035)
보답(報荅)고
보답할 것인가? ‘-고’는 설명의문어미로서 선행하는 ‘므스그로’와 호응한다.

【한자음】 독사지존우사직 제군하이답승평
【언해역】 홀로 지존(至尊)으로 하여금 사직(社稷)을 시름하게 하니, 여러 장졸들은 무엇으로써 승평(昇平)함을 보답하겠는가?

〈셋째 수〉

洛陽 주001)
낙양(洛陽)
낙양이 두 차례 병화(兵火)로 훼손된 것을 회고했는데, 일차는 천보(天寶) 14년(755) 안녹산에게 훼손되고, 또 한 차례는 건원(乾元) 2년(759) 사조의(史朝義)에게 훼손되었다.
宮殿化爲烽 休道秦關 주002)
진관(秦關)
동관(潼關)을 가리키는 말.
百二重 주003)
백이중(百二重)
성지(城池)가 험난하고 견고하는 것을 강조하는 말. ‘백이’는 관중(關中)의 병력 2만 명이면 백만 명의 적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004)
낙양궁전화위봉 휴도진관백이중(洛陽宮殿化爲烽 休道秦關百二重)
“낙양의 궁궐이 불타 봉화불이 되었으니, 변방의 방비가 튼튼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안녹산에 의해 낙양이 함락된 상황에서 요새가 견고한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百二 秦地險固야 二萬人이 足當諸侯의 百萬人이니 此 言洛陽이 旣爲祿山의 所破고 長安이 繼陷니 秦關險固도 亦不足論也ㅣ라】

洛陽ㅅ 宮殿이 烽火ㅣ 외옛니 주005)
외옛니
되어 있으니. 외[爲]-+어#잇-++니.
秦關 百二重이라 니디 주006)
니디
이르지. 말하지. ¶니다 : 王이 놀라샤 讚嘆야 니샤 내 아리 天神 中에  尊니 일후믈 天中天이라 라〈석상 3:4ㄱ〉 / 늘근 브으완 히믈 스스로 놀라노니 棟梁  材質ㅣ라 니디 몯리로다(自驚衰謝力 不道棟梁材)〈두시 2:24ㄴ〉.
마롤 디로다 주007)
마롤 디로다
말 것이다. 말[止]-+오+ㄹ +이+도+다.

【한자음】 낙양궁전화위봉 휴도진관백이중【‘백이(百二)’는, 진(秦) 땅이 험하고 견고해서 2만 명이 족히 제후의 백만 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나, 이것은 낙양이 이미 안녹산(安祿山)에 의해 함락되고 장안이 이어 무너졌으니, 진관(秦關)의 험난하고 견고함도 또한 논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언해역】 낙양의 궁전이 봉화가 되었으니, 진관(秦關)이 백 두 겹이라 이르지 말 것이도다!

滄海 주008)
창해(滄海)
당나라 하북(河北)과 하남(河南) 두 지역의 동부 지구를 가리키는데, 지금의 하북과 산동(山東) 동부다.
未全歸禹貢 주009)
우공(禹貢)
『서경(書經)』의 편명. 우(禹) 임금이 구주(九州)와 직공(職貢) 제도를 정한 일을 서술하였다. 중국 구주(九州)의 지리와 물산에 대해 기술한 고대 지리서다. 나중에 ‘우공’하면 국경(國境)의 대칭으로 쓰였다.
薊門何處覔堯封 주010)
요봉(堯封)
①요(堯) 임금이 화봉(華封)을 순시하니, 화봉 사람이 성인에게 수(壽)와 부(富)와 남자 아기가 많기를 축원했다는 고사. ②중국의 강토. 요(堯)임금이 순시하면서 12주(州)를 나누고, 12곳의 산에 제단을 만든 데서 나왔다.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011)
창해미전귀우공 계문하처멱요봉(滄海未全歸禹貢 薊門何處覔堯封)
“산동 지역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고, 하북 지역마저 함락되었다.”는 말로, 국토의 상당 부분이 적에게 함락됨을 알려 위기감을 강조한 것이다.
【滄海 指山東니 言不修貢賦 주012)
공부(貢賦)
①공물(貢物)과 부세(賦稅). 공(貢)은 바치는 것이고, 부(賦)는 거두는 것이다. ②지방의 토산물을 나라에 바치던 세제(稅制). ③국가에서 각 군현 단위에 부과한 현물세.
也ㅣ라 薊門 주013)
계문(薊門)
하북(河北) 북부 노룡(盧龍) 등지를 가리키는 말.
 指河北니 言爲盜賊의 所陷也ㅣ라】

滄海ㅣ 다 禹貢애 가디 몯노소니 주014)
몯노소니
못하니. ‘몯도소니’의 잘못으로 보인다. 몯#-+도+소+니.
薊門ㅅ 어듸 주015)
어듸
어디. ¶어듸 : 王이 좌시고 病이 됴샤 이 말 드르시고 놀라 臣下려 무르샤 太子ㅣ 이제 어듸 잇뇨〈석상 11:21ㄱ〉 / 내 衰老 모 쟝 어듸 브트려뇨 살며 주구메 다시곰 슬허 노라(吾衰將焉託 存歿再嗚呼)〈두시 2:47ㄴ〉.
가 堯ㅅ 封疆 어드리오 주016)
어드리오
얻겠는가? 얻[得]-+으리+오.

【한자음】 창해미전귀우공 계문하처멱요봉【‘창해(滄海)’는 산동 지역을 가리키니, 공물과 세금을 거둘 수 없다는 말이다. ‘계문(薊門)’은 하북 지역을 가리키니, 도적에 의해 함락되었다는 말이다.】
【언해역】 창해(蒼海)가 다 우공(禹貢)에 돌아가지 못하니, 계문(薊門)의 어디에 가서 요임금의 봉토를 얻겠는가?

朝廷袞職 주017)
곤직(袞職)
①임금의 옷이란 뜻으로, 임금을 일컫는 말. ②임금을 보좌하는 삼공(三公)의 직책으로, 삼공(三公)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당시 조정의 대신은 대개 군사적인 중임을 겸하고 있었는데, 절도사(節度使)들은 중서령(中書令)이나 평장사(平章事) 등 고위 내직(內職)이 더해져서, 장상(將相)이 구분되지 않았다.
誰爭補 天下軍儲 주018)
군저(軍儲)
군량과 말먹이 등 군수물자(軍需物資)를 가리키는 말.
不自供
주019)
조정곤직수쟁보 천하군저불자공(朝廷袞職誰爭補 天下軍儲不自供)
“조정에 제대로 된 신하가 없어 보필하지 못하니, 천하를 지키는 군대가 있어도, 스스로 이바지하지 못한다.”는 말로, 조정에 임금을 보필하는 신하가 없어, 임금이 공부(세금)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此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46ㄱ

言朝廷에 乏補袞 주020)
보곤(補袞)
①임금의 잘못을 보충한다는 뜻으로 재상(宰相)이나 재상이 될만한 자질(資質)을 일컫는 말. 보곤자(補袞資). 삼공(三公). ②중국 당(唐)나라 보궐관(補闕官)의 다른 이름. ③관복(官服)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之臣이오 君國이 不供貢賦也ㅣ라】

朝廷에셔 袞職 주021)
누가. 성조는 ‘·뒤(거성)’이다.
토와 주022)
토와
다투어. 토+오+아. ¶토오다 : 乘은 이 行 디오 이베 토오매 잇디 아니니〈육조中83b-4〉 /  어름은 토와 다 미렷고 구루메  서르 져기 놋다(寒氷爭倚薄 雲月遞微明)〈두시 2:20ㄴ〉 / 토다 : 耶輸ㅣ  듣디 아니시고 大愛道 샤 내 지븨 이 저긔 여듧 나랏 王이 난겻기로 토거늘〈석상 6:7ㄱ〉 / 그러긔 삿기 水馬 토아 먹고 져비 짐대예 가마괼 조차 니다(鴈兒爭水馬 燕子逐檣烏)〈두시 2:8ㄴ〉.
기오리오 주023)
기오리오
기우리오? 보충하리오? 보충하겠는가? 깁[補]-+오+리+오. ‘오’는 설명의문어미로 선행하는 ‘뉘’와 호응한다. ¶깁다 : 世尊하 내 이  唯心識을 아론 젼로 識性이 無量如來 흘려 내니 이제 授記 得와 버거 부텻 고 깁오다〈능엄 5:82ㄱ〉 / 져근  고 쇽졀업시 늘거 가노니 聖明신 朝 깁올 줄 업도다(扁舟空老去 無補聖明朝)〈두시 2:21ㄴ〉.
天下 주024)
천하(天下)
당나라 초기에 부병제(府兵制)를 시행했는데, 사병은 영전(營田)을 개간해 군량을 자급하게 했다. 안사(安史)의 난 이후 부병제가 폐지되어, 군량은 모두 농민들이 공급하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군저불자공’이라 한 것이다.
ㅣ 軍 이바돌 주025)
이바돌
이바지할. 모실. 이받[供]-+오+ㄹ. ‘이받다’는 ‘모시다, 잔치하다’의 뜻이 있으며 파생명사는 ‘이바디’가 있다. ¶이받다 : 太子 請 이받려 노닛가 大臣 請야 이바도려 노닛가〈석상 6:16ㄱ〉 / 黃河ㅅ 西ㅅ 녁 두들근 이 우리 蜀이니 軍士 이바도믈 기들워도 지븨 조히 업도다(黃河西岸是吾蜀 欲須供給家無粟)〈두시 4:27ㄱ〉 / 이바디 : 宴 이바디 연〈훈몽 하:5ㄴ〉 / 주샤 沐浴닌 다 長纓 사ㅣ오 이바디 參預닌 뎌른 옷 니브니 아니로다(賜浴皆長纓 與宴非短褐)〈두시 2:35ㄱ〉.
거 제 上供디 아니놋다 주026)
아니놋다
아니하는구나. 아니#-++오+ㅅ+다.

【한자음】 조정곤직수쟁보 천하군저불자공【이것은 조정에 보고하는 신하가 없고 나라에 공물과 세금을 바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언해역】 조정에서 곤직(袞職)을 누가 다투어 보충하겠는가? 천하가 군대 맞이할 것을 스스로 상공(上供)하지 않는구나!

稍喜臨邊王相國 주027)
왕상국(王相國)
왕진(王縉)을 가리키는 말. 광덕(廣德) 2년(764) 왕진은 동평장사(同平章事)로 하남(河南)과 회서(淮西) 등지의 절도행영(節度行營)의 일을 통솔했고, 겸하여 동경유수(東京留守)를 맡았는데, 나중에 하남부원수(河南副元帥)로 옮겨 하북의 여러 항장(降將)들이 다시 반란을 하는 것을 막았다.
肯銷金甲事春農 주028)
사춘농(事春農)
봄 농사를 짓게 하다. 둔전제(屯田制)를 시행한 것을 가리키는 말. 왕진은 사졸 양성을 중단하고, 그들을 농경에 종사하게 하여, 군비(軍費)를 줄이게 했다. 두보는 여기서 여러 장군들이 왕진의 방법을 쓰라고 권하고 있다.
주029)
초희림변왕상국 긍소금갑사춘농(稍喜臨邊王相國 肯銷金甲事春農)
상국 왕진(왕유의 동생)이 있어 변방을 지켜 무기를 녹여 농장기를 만들어 농사에 전념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相國 河南副元帥王縉 주030)
왕진(王縉)
700-781. 당나라 하동(河東) 사람. 조적(祖籍)은 태원(太原) 기현(祁縣)이다. 자는 하경(夏卿)이고, 왕유(王維)의 동생이다. 연이어 초택(草澤)과 문사청려과(文辭淸麗科)에 합격했다. 어릴 때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해서, 형 왕유와 함께 문명(文名)을 떨쳤다. 시어사(侍御史)와 무부원외랑(武部員外郞)을 지냈다. 안사(安史)의 난 때 태원소윤(太原少尹)에 임명되고, 이광필(李光弼)을 도와 태원을 지켰으며, 그 공으로 헌부시랑(憲部侍郞)에 올랐다가 병부(兵部)로 옮겼다. 대종(代宗) 광덕(廣德) 2년(764) 황문시랑(黃門侍郞)과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를 거쳐, 하남부원수(河南副元帥)가 되었다.
이라】

【언해역】 邊方애 監臨얫 주031)
감임(監臨)얫
임하여 감독하고 있는. 監臨#-+야#잇-++ㄴ.
王相國의 金甲 즐겨 주032)
즐겨
즐겨. 즐기[樂]-+어. ¶즐기다 : 太子 즐기시게 더시니〈석상 3:6ㄴ〉 / 예 드러 도혀 즐기디 아니고   주를 글러 오아 기리 嗟嘆노라(入舟翻不樂 觧纜獨長吁)〈두시 2:6ㄴ〉.
오 주033)
오
사르고. [銷]-+고. ‘오’는 ‘ㄹ’에 후행하는 ‘고’의 ‘ㄱ’이 약화된 표기이다.
 녀름지 주034)
 녀름지
봄 농사를. 봄+ㅅ 녀름[農]#짓-+이+. ‘녀름지’는 ‘농사(農事)’에 대한 고유어이다. 〈중간본〉은 ‘ 녀름디이’이다. ¶녀름지 : 므슷 이리  爲頭뇨  大臣 닐오 녀름지 니 업스니다〈월석 22:30ㄴ〉 / 煩冗 마란 各各 제 業에 도라가게 야 해 브터 사라셔 도로 녀름지이를 힘케 홀디니라(冗官各復業 土著還力農)〈두시 4:23ㄱ〉.
일 사마 주035)
일 사마
일을 삼아. 삼[爲]-+아. 원시의 ‘事’에 대한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는 동사로 쓰인 ‘事’에 대해 ‘일 삼다’로 번역하고 있다.
호 져기 주036)
져기
적이. 젹[小]-+이. ‘젹다, 쟉다, 혁다, 횩다’는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
깃노라 주037)
깃노라
기뻐하노라. 기뻐한다. [喜]-++오+라. ¶다 : 太子 보고 各各 이든 우루믈 울며 뎌 수프레 잇 벌에 토 다 깃거 太子 오며〈석상 3:33ㄱ〉 / 生理 일웟논 이 내 깃거 곳 픤 時節에 핫옷 니부믈 히 너기노라(自喜遂生理 花時甘縕袍)〈두시 2:62ㄱ〉 / 깃거다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 머므디 몯놋다 시고 도라 드르샤  깃거시더라〈석상 3:21ㄱ〉 / 天皇寺ㅣ 갓가와 오 깃거노니 몬져 녯 그리 펴 보리라(喜近天皇寺 先披古畫圖)〈두시 2:10ㄴ〉.

【한자음】 초희림변왕상국 긍소금갑사춘농【‘상국(相國)’은 하남부원수(河南副元帥) 왕진(王縉)을 말한다.】
【언해역】 변방에 감임(監臨)하고 있는 왕상국(王相國)의, 금갑(金甲)을 즐겨 사르고 봄 농사를 일 삼아 함을 적이 기뻐하노라.

〈넷째 수〉

回首扶桑 주001)
부상(扶桑)
해 뜨는 곳. 하늘 동쪽 맨 끝에 큰 뽕나무가 있고, 그 가지 위에 금빛의 수탉이 앉아 있는데, 하룻밤을 지내고 해가 뜨려고 하면, 이 닭이 운다고 한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닭들이 따라서 울고, 해가 뽕나무 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銅柱 주002)
동주(銅柱)
후한의 마원(馬援)이 교지(交趾, 지금의 베트남 북부)를 정벌할 때 세웠는데, 한나라 최남단 경계를 표시한 것이다.
冥冥 주003)
명명(冥冥)
①어두운 모양. ②어두운 밤. 저녁. ③아득한 모양. ④높고 먼 모양. 고원(高遠)한 모양. ⑤저승. ⑤무지(無知)한 모양. ⑥깊이 생각하며 정성을 다하는 모양. ⑦그윽하고 깊숙한 모양. 여기서는 ③의 뜻이다.
氛祲 주004)
분침(氛祲)
①바다 위에 낀 짙은 안개. 해미. ②요악(妖惡)한 기운. 요사스런 기운.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여기서는 전란을 말한다. 당시 남조(南詔)는 토번과 함께 소요를 일으켜 남쪽 국경이 불안했다.
未全銷
주005)
회수부상동주표 명명분침미전소(回首扶桑銅柱標 冥冥氛祲未全銷)
부상과 동주에 새겨진 표지를 보니, 어두운 요사스런 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말로, 전쟁의 암울한 기운이 완전히 가셔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馬援 주006)
마원(馬援)
기원전 14-기원후 49. 후한 섬서성 흥평현(興平縣) 북동지방의 우부풍(右扶風) 무릉(茂陵) 사람. 자는 문연(文淵)이다.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어 처음에 군독우(郡督郵)가 되었다. 녹림(綠林)과 적미(赤眉)가 반란을 일으킨 뒤 왕망(王莽)의 부름을 받고 신성대윤(新城大尹)과 한중랑태수(漢中郞太守)가 되었다. 왕망이 망한 뒤 양주(凉州)로 달아났다가, 외효(隗囂) 밑에서 벼슬하여 수덕장군(綏德將軍)이 되었다. 다시 광무제(光武帝)에게 귀순하여 외효를 격파했다.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이어 건무(建武) 11년(35) 농서태수(隴西太守)가 되어 군대를 이끌고, 선령강(先零羌)를 격파했다. 주민들에게 경목(耕牧)을 권장해 서변(西邊)을 안정시켰다. 17년(41) 이후에는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어, 교지(交阯, 북베트남) 지방에서 봉기한 징칙(徵側)과 징이(徵貳) 자매의 반란을 토벌하고, 하노이 부근의 낭박(浪泊)까지 진출하여 그곳을 평정했다. 일찍이 마혁과시(馬革裹屍)로 맹세하여, 흉노(匈奴)와 오환(烏桓)에 출정했다. 19년(43) 신식후(新息侯)에 봉해졌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남방의 무릉만(武陵蠻)을 토벌하러 출정했지만, 열병환자가 속출하여 고전하다가, 진중에서 병들어 죽었다. 장제(章帝) 건초(建初) 초에 충성(忠成)에 추시(追諡)되었다. 저서에 『동마상법(銅馬相法)』이 있다.
이 征交趾 주007)
교지(交趾)
지금의 베트남 북부 통킹, 하노이 지방을 포함한 손코이강 유역의 옛 명칭.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남월(南越)을 정복하고, 그 지역에 설치한 군(郡) 이름으로, 후에 교주(交州)로 개칭(改稱)되었다.
고 立銅柱야 爲漢之界니라】

扶桑과 銅柱標 머리 도라보니 주008)
머리 도라보니
머리를 돌려보니. 돌[回]-++아#보-+니. ‘돌다’는 ‘돌다’의 사동사이다. ¶도라보다 : 블 救 道 기피 니 몸과 손과 힘 이슈믈 믿고 져믄 아 도라보아〈월석 12:24ㄱ〉 / 알 듣던 란 陶牧 오 도라보아 宜都 텨 가노라(前聞辨陶牧 轉眄拂宜都)〈두시 2:9ㄱ〉 / 돌다 : 뫼해  盜賊의 營壘ㅣ로소니 머리 도라 라고 시러곰 시름이 업스리아(漫山賊營壘 廻首得無憂)〈두시 5:10ㄴ〉.
어득 주009)
어득
아득한. 어득#+ㄴ. (참조)어득어득다. ¶어득다 : 죽사릿 險 길헤 드러 受苦ㅣ 니 긋디 몯야 五欲애 기피 貪着야 어득야 보디 몯야 부텨와 受苦 그 法을 求티 아니고 邪曲 보매 기피 드러 이실〈석상 13:57ㄱ〉 / 나조 向야 디  어득고 첫 어으르매 큰 불무 부 도다(向晚霾殘日 初宵鼓大鑪)〈두시 2:23ㄱ〉 / (참조)어득어득다 : 봄비 어득어득니 峽中에 마갯니 언제 오 楚王ㅅ 宮을 브트니오(春雨暗暗塞峽中 早晚來自楚王宮)〈두시 12:25ㄴ〉.
妖恠왼 주010)
요괴(妖恠)왼
요괴로운. 요괴다운. 妖怪++ㄴ.
氣運이 다 디 주011)
디
살라지지. [燒]-+다. ¶다(자동사) : 天人이 大慈 行니 브리 디 몯며 므리 디 몯며 毒이 害티 몯며〈월석 10:70ㄱ〉 /   幕府에 우므렛 머귀 서늘니  城에 오 자니 미레 현 브리 라 가놋다(清秋幕府井梧寒 獨宿江城蠟炬殘)〈두시 6:15ㄴ〉 / 다(타동사) : 반되브 울 아래 프 디 몯고  갈공이 집 가온 바 거로미 어렵도다〈백련 4ㄱ〉 / 녯 風俗이 蛟龍 라 놀래여 雷雨를 닐위니라(舊俗燒蛟龍 驚惶致雷雨)〈두시 25:12ㄱ〉.
몯얫도다 주012)
몯얫도다
못하고 있도다. 몯#-+야#잇-+도+다.

【한자음】 회수부상동주표 명명분침미전소【마원(馬援)이 교지(交趾)를 정복하고, 구리 기둥을 세워 한나라의 경계를 삼았다.】
【언해역】 부상(扶桑)과 동주(銅柱) 표지(標識)에 머리를 돌려보니, 아득한 요괴스런 기운이 다 살라지지 못하여 있도다!

越裳 주013)
월상(越裳)
남방의 옛 나라 이름. 당나라 때는 월상현(越裳縣)이었는데, 지역은 대략 베트남의 남쪽 경계에 있었다.
翡翠 주014)
비취(翡翠)
보석의 한 가지. 공품(貢品)을 가리키는 말.
無消息 南海 주015)
남해(南海)
남방 변경에 있는 군(郡). 광덕(廣德) 원년(763) 환관 시박사(市舶使) 여태일(呂太一)이 광남절도사(廣南節度使) 장휴(張休)를 내쫓고 병사들을 이용해 야료를 부렸다. 현지에서는 환관들의 살육과 약탈 때문에 공부(貢賦)를 거절할 수 없었다.
明珠久寂寥
주016)
월상비취무소식 남해명주구적요(越裳翡翠無消息 南海明珠久寂寥)
“교지에서 나는 비취도 오지 않고, 남해에서 생산되는 진주도 없다.”는 말로, 오랑캐가 바치는 공물이 오랫동안 끊겼음을 말했다.
【周成王 주017)
성왕(成王)
?-?. 서주(西周)의 국군(國君). 성은 희(姬)씨고, 이름은 송(誦)이다. 무왕(武王)의 아들이다. 어릴 때 즉위하여 숙부 주공단(周公旦)이 섭정했다. 이때 은(殷)나라의 왕족 무경녹보(武庚祿父)와 무왕의 동생 관숙(管叔), 채숙(蔡叔) 형제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다시 동이(東夷)로 원정했다고 한다. 귀환한 뒤 하남(河南)의 낙읍(洛邑)에 새로 동도(東都)를 정하고, 동방제국 지배의 중심으로 주공을 그곳에 있게 했다. 미자계(微子啓)를 송나라에, 강숙(康叔)을 위(衛)나라에 봉하는 등 국가의 기초를 다지고, 주공단과 소공석(召公奭)의 보좌를 받아 치세에 힘써 강왕(康王) 시대에 이르는 주나라의 태평성대를 실현했다.
時예 越裳氏 주018)
월상씨(越裳氏)
교지(交趾) 남방에 있던 나라. 오늘날의 월남(越南) 남부. 중국에 백치(白雉)를 바쳤다.
ㅣ 獻白雉니 此 言東南애 妖氛이 未息故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46ㄴ

로 外夷ㅣ 久絶貢獻也ㅣ라】

【언해역】 越裳ㅅ 翡翠ㅣ 消息이 업스니 南海옛 明珠도 오래 괴외도다 주019)
괴외도다
고요하도다. 괴외[寂]#-+도+다. ¶괴외다 : 그  舍利弗이  나모 미틔 안자 入定야 諸根이 괴외야 너교 오 모댓 한 사미 邪曲 道理 환 디 오라 아 제 노포라 야 衆生 프귀만 너기니〈석상 6:28ㄴ〉 / 文園이 내애 괴외고 漢閣애 제 열우며 므드니라(文園終寂寞 漢閣自磷緇)〈두시 3:2ㄱ〉.

【한자음】 월상비취무소식 남해명주구적요【주나라 성왕 때 월상씨가 흰 까치를 바쳤는데, 여기서는 동남쪽에 요사스런 기운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 오랑캐가 오랫동안 공물 바침을 끊었다는 말이다.】
【언해역】 월상(越裳)의 비취가 소식이 없으니, 남해(南海)의 명주(明珠)도 오래 고요하도다!

殊錫 주020)
수석(殊錫)
특별(特別)한 봉사(封賜, 봉호나 하사).
曾爲大司馬 주021)
대사마(大司馬)
관직 이름. 군대를 다스리는 직책을 맡았다.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처음 설치. 후한(後漢) 초에는 삼공(三公)의 하나에 속했으며, 태위(太尉)로 고쳐 불렀다. 후한 말기 태위와 별도로 대사마를 설치했다. 위진(魏晉) 때는 서열이 삼공의 위였으며, 이후 시대에 따라 여러 번 존폐를 겪었다. 명청(明淸) 대에는 병부상서의 별칭으로 쓰였다.
惣戎 주022)
# 총융(總戎)
총병(總兵), 즉 원수(元帥)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병사를 통솔하는 장령(將領)을 가리킨다.
皆插侍中 주023)
시중(侍中)
관직 이름. 진(秦)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다. 황제를 직접 모시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잡무를 맡다가 점차 임무가 막중해졌다. 남조(南朝)의 송대에는 기밀 사항을 관장했다. 양진(梁陳) 때는 재상의 일을 행했고, 북위(北魏) 때는 소재상(小宰相)으로 불렸다. 수대에 납언(納言)으로 개칭되었다가 당나라 때 환원되었으며, 이후 실권이 떨어졌다. 북송 때 명목만 존재하다, 남송 때 폐지되었다. 『한관의(漢官儀)』에 보면, 시중은 매미[蟬]나 담비[貂] 꼬리로 관(冠)을 장식했다고 하였다.
주024)
수석증위대사마 총융개삽시중초(殊錫曽爲大司馬 惣戎皆揷侍中貂)
“일찍이 높은 벼슬을 내려주었는데, 조정의 신하는 관직만 좋아할 뿐 본분은 다하지 않는다.”는 말로, 신하들이 부귀영화만 누릴 뿐 충성을 다할 생각은 하지 않음을 질책한 것이다.
【漢ㅅ 侍中冠 貂尾로 爲飾니라 此 責諸將이 徒享高爵고 不思輸忠也ㅣ라】

두곤 주025)
두곤
남보다. ᄂᆞᆷ+두곤. 비교격조사 ‘-두곤’은 『두시언해』에서는 여기서만 쓰였다. ¶-두곤 : 주구미 태산두곤 므거우니 이시며 터럭두곤 가야온니 잇니〈삼강동경 충:25ㄴ〉 / 문구의 겨집 목이 두 아 듯 몬졋 겨지븐 네 아 듯니 문뒤 죽거늘 네 아리 목이 믜여거 목이 더옥 위곡히 야 옷 바 제 아두곤 히 더니〈삼강동경 열:7ㄱ〉.
달이 주026)
달이
달리. 다르게. ¶달이 : 제 허므를 뉘으처 鹿母夫人 셤교 어버티 야 기르논 太子 나흔 게셔 달이 아니터라〈석상 11:35ㄴ〉 / 宮中에 드나로미 올로 非時예 더니 禮數를 群臣 봄과 달이 더시니라(出入獨非時 禮異見群臣)〈두시 24:23ㄱ〉.
주샤 일즉 주027)
일즉
일찍. 일찍이. 원시의 ‘증(曾)’의 번역이다.
大司馬ㅣ 외여 이시며 주028)
외여 이시며
되어 있으며. 외[爲]-+어 이시-+며. 『두시언해』의 일반적인 표기라면 ‘외야시며’이었을 것이다. 즉 ‘외여 이시다’로 표기되는 것은 『두시언해』는 물론 15세기 문헌에서 유일한 예이다. ‘어 이시다’ 구문에서 ‘이시다’가 분리되어 또렷하게 표기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이때 ‘-어’는 선행어간의 모음 조건에 따라 ‘-어, -아, -여, -야’ 등으로 표기된다. 『두시언해』에는 ‘-여/야 이시다’만 용례가 확인된다. ¶-어 이시다 : 내사 우이 되어 이시니 이러뎌러 어 먹고 어히 업세라〈순천 70:6〉 / -아 이시다 : 내 멀니 귀향 갈 거시니 필연이 여 갈 사의게 더러 이미 되리니 살아 이시미 죽음만 디 못니라〈속삼(중) 열:13ㄱ〉 / -여 이시다 : 엇뎨 어루 言敎애 브텨 究竟 사마 名數中에 디여 이시리오〈금삼 5:24ㄴ〉 / 赤驥ㅣ 긴 노 눌러 여 이시나 萬里 갈 姿質이 업순 디 아니니라(赤驥頓長纓 非無萬里姿)〈두시 3:55ㄱ〉 / -야 이시다 : 王이 닐오 너희가 셰욜 야로 올히 야 이시라〈석상 24:25ㄱ〉 / 가나모 門이 사 對얫니 이 너와 다야 물야 이시리로다(荊扉對麋鹿 應共爾爲群)〈두시 11:51ㄱ〉.
戎事 惣執니 다 侍中의 貂 고잿도다 주029)
고잿도다
꽂고 있도다. 곶[串]-+아#잇-+도+다. ¶곶다 : 일 아 머리 비서 오 빈혀 고자 섬 아래 가 절고〈번소 9:29ㄴ〉 / 뎘 門이 洞庭ㅅ 해 노피 여렛니 殿ㅅ 바 赤沙湖애 고자 드렛도다(寺門高開洞庭野 殿腳插入赤沙湖)〈두시 9:29ㄴ〉.

【한자음】 수석증위대사마 총융개삽시중초【한나라 때 시중의 모자는 담비 꼬리로 장식했다. 이것은 여러 장군들이 다만 높은 작위만 즐길 뿐 충성을 다할 것은 생각하지 않는 것을 질책한 것이다.】
【언해역】 남보다 다르게 주시어 일찍 대사마(大司馬)가 되어 있으며, 군사일을 감독하니, 다 시중(侍中)의 담비 꼬리를 꽂고 있도다!

炎風朔雪 주030)
염풍삭설(炎風朔雪)
최남단과 최북단 지역을 가리키는 말.
天王地 只在忠良 주031)
충량(忠良)
제장(諸將)들을 가리키는 말.
주032)
익(翊)
보좌(補佐)하는 일.
聖朝
주033)
염풍삭설천왕지 지재충량익성조(炎風朔雪天王地 只在忠良翊聖朝)
“어떤 기후에 놓인 지역이든, 모두 임금의 영토니, 충성과 선량함으로 신하는 왕조의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신하라면 충성과 정성으로 천자를 보좌해야 함을 뜻한다.
【此 言率土ㅣ 莫非王臣이니 忠良之臣이 翊賛天子야 以圖收復면 必來職貢 주034)
직공(職貢)
고대에 번속(藩屬)이나 외국에서 조정(朝廷)에 바치는 공납(貢納)을 일컫는 말.
이니라】

더운 주035)
더운
뜨거운. 덥[炎]-+ㄴ. 15세기 국어의 ‘덥다’는 ‘덥다’의 의미보다는 ‘뜨겁다, 따뜻하다’의 의미로 많이 쓰였다. ¶덥다(덥다) : 나리 하 더우니 모다 가 잇다가 아니 뉘웃븐 이실가 분별뇌〈순천 138:3〉 / 더운 비예  저즌 긔운이 머므렛고 맷  나죗 서늘호 빌이놋다(暑雨留蒸濕 江風借夕涼)〈두시 3:12ㄱ〉 / 덥다(뜨겁다) : 온 블와 더운 쇠로도 가비디 몯리니〈영가 상:34ㄱ〉 / 樓 우희 더운 하해 어름과 눈괘 나 니 노피  져비새 새로 지슈믈 慶賀다(樓上炎天冰雪生 高飛燕雀賀新成)〈두시 14:11ㄱ〉 / 덥다(따뜻하다) :  杏仁  斤을 더운 므레 마 것 밧기고 지즐워 기름 내야 라〈구급방 상:6ㄴ〉 / 도랏막대 디퍼 나죗 굴을 고 어릴 노라 다맷 더운 비츨 갓가이 호라(杖藜尋晚巷 炙背近牆暄)〈두시 11:42ㄱ〉.
 부 콰 주036)
콰
땅과. ㅎ+과.
北녁 눈 오  님 히니 주037)
님 히니
임금의 땅이니. 즉 임금이 계신 곳이니.
오직 주038)
오직
오직. 원시의 ‘只’에 대한 번역이다.
忠良 臣下ㅣ 聖祖 도오매 주039)
도오매
도움에. 돕는 것에. 돕[祐]-+오+ㅁ+애. 15세기의 명사형어미 ‘-옴/움’에 후행하는 처격조사 ‘-에/애/의/’의 결합은 흔히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지만 여기서의 ‘도오매’는 그런 의미가 없이 순수한 ‘명사형+처격조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잇니라

【한자음】 염풍삭설천왕지 지재충량익성조【이것은, 모든 땅에 왕의 신하 아닌 이가 없으니, 충성스럽고 선량한 신하가 천자를 보좌하여 수복을 도모하면 반드시 공물을 바치러 올 것이라는 말이다.】
【언해역】 더운 바람 부는 땅과 북쪽 눈 오는 데가 임금의 땅이니, 오직 충성스럽고 선량한 신하가 성스런 왕조를 돕는 것에 있느니라.

〈다섯째 수〉

錦江 주001)
금강(錦江)
민강(岷江) 지류의 하나. 사천(四川) 성도(成都) 평원(平原)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촉(蜀) 땅 사람이 비단을 짜서 이 강물에 빨면, 비단 빛깔이 선명하고 고와지는데, 다른 강물에 빨면 어두워지는지라,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여기서는 성도를 가리킨다.
春色逐人來 巫峽 주002)
무협(巫峽)
기주(夔州)를 가리키는 말. 기주가 무협 인근에 있어서 이렇게 불린다.
清秋萬壑哀
주003)
금강춘색축인래 무협청추만학애(錦江春色逐人來 巫峽清秋萬壑哀)
“금강의 따뜻한 봄빛이 사람을 따라오고, 맑은 가을이 온 무협은 슬프다.”는 말로, 엄무를 찬미한 것이다. 두보가 성도에서 무협에 닿을 무렵 봄날을 맞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此篇 專美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47ㄱ

주004)
엄무(嚴武)
726-765. 당나라 화주(華州) 화음(華陰, 지금의 섬서에 속함) 사람. 자는 계응(季鷹)이고, 엄정지(嚴挺之)의 아들이다. 처음에 음보로 태원부(太原府) 참군(參軍)을 지내다가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역임했다. 숙종(肅宗) 지덕(至德) 연간에 경조소윤(京兆少尹)에 올랐다. 나중에 두 차례에 걸쳐 촉(蜀)을 진압하고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와 성도부윤(成都府尹)을 지냈다. 광덕(廣德) 2년(764) 토번(土蕃)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검교이부상서(檢校吏部尙書)가 되었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촉 땅에 여러 해 있으면서 법령을 엄격하게 시행해 위세가 일대에 떨쳤다. 이 때문에 토번이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전 재상 방관(房琯)이 그를 천거하고 이끌어준 은혜가 있었는데도, 교만하고 거만해져 방관을 보고도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두보(杜甫)와 매우 가깝게 지내 두보가 성도를 떠돌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전당시(全唐詩)』에 시 6수가 남아 있다.
니라 ㅣ 自成都로 至巫峽야 初見春故로 云逐人來라】

錦江ㅅ 비치 주005)
금강(錦江)ㅅ 비치
금강(錦江)의 봄빛이. 즉 성도(成都)의 봄빛이.
사 조차 오니 주006)
사 조차 오니
사람을 좇아 오니. 두보가 성도(成都)에서 민강을 따라 장강으로 내려와서 처음 맞는 봄이기 때문에 봄이 사람을 쫓아 왔다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巫峽ㅅ   주007)
 
맑은 가을에. [淡]-+ ㅎ+. 〈중간본〉은 ‘’이다. ¶다 : 이 衆生이 禪定  믌겨레 고 愛欲 흐린 믌겨 그치니라〈영가 서:5ㄴ〉 / 노  湘水ㅅ 돐 서리예 거스리 녀가 수플 서리예 섯고롸(崷崒清湘石 逆行雜林藪)〈두시 2:49ㄴ〉.
萬壑이 슬프도다

【언해역】 금강춘색축인래 무협청추만학애【이 작품은 오로지 엄무(嚴武)를 찬미한 것이다. 두보가 성도에서 무협에 이르러 처음 봄날을 봤기 때문에 사람을 좇아왔다고 말한 것이다.】
【언해역】 금강(錦江)의 봄빛이 사람을 좇아 오니, 무협(巫峽)의 맑은 가을에 골짜기마다 슬프도다!

正憶往時嚴僕射 주008)
엄복야(嚴僕射)
엄무(嚴武)를 가리키는 말. 엄무는 죽은 뒤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되었다.
共迎中使望鄉臺
주009)
정억왕시엄복야 공영중사망향대(正憶往時嚴僕射 共迎中使望鄉䑓)
“지난날 엄무와 함께 사신을 맞았던 때를 생각한다.”는 말로, 촉 땅에 있으면서 두보가 엄무와 함께 했던 일을 추억한 것이다.
望鄕䑓 在니 ㅣ 追思隨嚴武야 登此䑓而迎中使也ㅣ라】

니건  주010)
니건 
지나간 때. 닉[熟]-+거+ㄴ ᄢᅴ[時]. ‘니건’은 『두시언해』에 자주 쓰였는데 주로 ‘날, 달, , 계절’ 등과 연결되어 쓰인다. 현대국어의 ‘지난’과 유사하다. ¶니건 : 올히 바 가난타 호 香嚴이 니샤 니건  가난호 가난티 아니더니 옰 가난이 實로 가난토다〈남명 상:8ㄴ〉 / 萬物ㅅ 비치 生長 디 兼야 잇도소니 凄凉호 니건  노라(物色兼生意 凄凉憶去年)〈두시 3:29ㄴ〉.
僕射 주011)
복야(僕射)
관직 이름. 진(秦)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다. 시중(侍中), 서경, 박사(博士), 알자(謁者) 등의 관직에 모두 복야가 있었다. 후한(後漢) 때는 상서복야(尙書僕射)가 설치되어 상서령을 보좌했다가, 권한이 점점 커져 좌․우 복야로 나뉘었다. 위진(魏晉) 이후 상서령(尙書令)과 동격으로서 재상이 되었다. 당나라 초에는 우복야가 상서성 장관이 되어 중서령(中書令), 시중과 동급의 위치에 있었다. 남송(南宋) 이후 폐지되었다.
와 다 中使 주012)
중사(中使)
황제의 주변에서 일을 보는 사람. 환관과 같은 사람을 말한다.
望鄕臺 주013)
망향대(望鄕臺)
성도(成都) 북쪽에 있는 누대. 두보는 엄무의 막료로 있을 때 일찍이 엄무와 함께 망향대에서 중사를 영접한 적이 있다.
예 迎逢던 이 正히 노라 주014)
노라
생각하노라. 추억하노라. 원문의 ‘억(憶)’에 대한 번역이다.

【한자음】 정억왕시엄복야 공영중사망향대【망향대는 촉 땅에 있으니, 두보가 엄무를 좇은 일을 돌이켜 생각해 이 누대에 올라 중사를 맞은 것이다.】
【언해역】 지나간 때 엄복야(嚴僕射)와 함께 중사(中使)를 망향대(望鄕臺)에서 맞이하던 일을 뚜렷이 생각하노라.

主恩 주015)
주은(主恩)
황은(皇恩). 엄무는 일찍이 황은을 입어 중용되었다.
前後持節 주016)
지절(持節)
관직(官職) 이름. 위진(魏晉) 이후 우사지절(有使持節)·지절(持節)·가절(假節)·가사절(假使節) 등이 있었다. 그 권한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자사(刺史)가 되어 군융(軍戎)을 총괄했다. 당(唐)나라 초기에는 제주(諸州)의 자사에 지절이란 이름을 더했고, 이후 절도사(節度使)가 있어 마침내 지절이란 말은 없어졌다.
주017)
삼지절(三持節)
엄무가 세 차례 지절을 들고, 촉(蜀) 지역에 진주한 것을 가리킨다. 엄무는 처음에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면주자사(綿州刺史)가 되었고, 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로 옮겼다. 다시 성도윤(成都尹)이 되고, 나중에 다시 황문시랑(黃門侍郞)으로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에 올랐다. 그래서 ‘삼지절’이라 말한 것이다.
軍令分明數舉盃
주018)
주은전후삼지절 군령분명수거배(主恩前後三持節 軍令分明數舉盃)
“임금의 은혜로 여러 차례 지절을 지내고, 군중에서 군율을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술을 마셨다.”는 말로, 군정(軍政)이 명확하고 정숙해 별다른 일이 없는 까닭에 술잔의 즐거움이 있음을 말했다.
ㅣ 兩鎭蜀고 一刺綿 주019)
# 자사(刺史)
관직 이름. 전한(前漢) 무제(武帝) 원봉(元封) 5년(기원전 106) 전국을 13부(部)로 나누고 부마다 중앙에서 파견한 자사 1인을 두었다. 자사는 관할 부를 순행하면서, 호족이나 군(郡)의 태수를 감찰했다. 성제(成帝) 대 자사를 주목(州牧)으로 개칭했고, 후한(後漢) 초 다시 자사로, 후한 영제(靈帝) 때 또다시 주목으로 바꾸었다. 초기에는 지위가 군수(郡守) 아래였지만 이후 군수보다 한 단계 높았으며, 군정(軍政) 대권을 맡기도 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각 주에 자사를 설치하여 도독(都督)을 겸임토록 했다. 이대 장군이란 칭호가 붙여졌으며, 권한도 한층 높았다. 수대 이후 주의 자사는 군의 태수와 같은 직급이거나 태수의 별칭으로 쓰였으며, 권력도 점차 낮아졌다. 송 이후 중앙에서 자사를 파견했지만, 실제로 부임하지 않았으며, 습관상 태수를 자사라고 불렀다. 청(淸)나라 역시 주 지사(知事)의 별칭으로 쓰였다.
州故로 云三也ㅣ라 數舉盃 言軍政이 明肅而府中이 無事故로 有盃酒之樂이니라】

님 恩惠로 몬져 주020)
몬져
먼저.
와 後에 세 번 鈇節을 가지니 주021)
가지니
가지니. 가지[持]-+니.
軍中엣 法令이 分明야 조 주022)
조
자주. [數]-+오. ‘오’는 부사화접미사이다.
숤 盞 드더니라 주023)
드더니라
들더라. 들었다. 들[入]-+더+니+라.

【한자음】 주은전후삼지절 군령분명수거배엄무가 두 번 에 진주하고, 한 번 면주에서 자사(刺史)를 지냈기 때문에 삼(三)이라 말한 것이다. 여러 번 술잔을 드는 것은 군정이 명확하고 정숙하여, 부중에 일이 없는 까닭에 술잔의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언해역】 임금 은혜로 먼저와 후에 세 번 철절(鈇節)을 가지니, 군중(軍中)의 법령이 분명하여 자주 술잔을 들었네!

西蜀地形天下險 安危須仗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47ㄴ

出群材
주024)
서촉지형천하험 안위수장출군재(西蜀地形天下險 安危須仗出群材)
“서촉 지역이 험준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를 편안히 지키려면 특출한 능력의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엄무(嚴武)와 같은 사람을 얻어, 진주시켜야 안정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此 言蜀地險而易危니 須得如武者야 鎭之라 可以安也ㅣ리라】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西蜀 주025)
서촉(西蜀)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옛날에는 촉(蜀) 땅이었는데, 위치가 서방에 있어 ‘서촉’으로 불렸다.
ㅅ 地形이 天下애 險阻니 바라오 주026)
바라오
위험함을. 바랍[危]-+오+ㅁ+. ¶바랍다 : 그 지비 오라 고  허러 堂舍ㅣ 노파 바라오며 긷 불휘 것거 서그며 보 리 기울며 基陛ㅣ 믈어디며 담과 괘 허러 디며  론 거시 허러 드르며 두푼 애 어즈러이 드르며 셰 츼여 디며 휫두루 막고 고  雜 더러운 거시 거늘〈법화 2:103ㄴ〉 / 슬프다 나 매 들 일허 쟝 늘구매 艱難야 바라오 맛낫노라(嗟余竟轗軻 將老逢艱危)〈두시 2:54ㄱ〉.
便安히 홀뎬 주027)
편안(便安)히 홀뎬
편안히 하면. -+ㄹ뎬. ‘-ㄹ뎬’은 조건의 의미로 쓰였다. ¶-ㄹ뎬 : 몬졋 法을 體호려 뎬 모로매 두 行이 兼야 妙로셔 普샤 始作이 이시며 미 이신 후에 圓備릴〈석상 21:20ㄴ〉 / 화 혈뎬 반기 세니 혀며 사 뎬 반기 기니 며(挽弓當挽強 用箭當用長)〈두시 5:28ㄱ〉.
모로매 주028)
모로매
모름지기. 모[不知]-+오+ㅁ+애.
게 特出 材質을 倚仗야 리라 주029)
의장(倚仗)야 리라
의장(倚仗)해야 하리라. 의지해야 할 것이다. ‘-’는 ‘-야’에 해당하는 강세첨사이다. 〈중간본〉은 ‘倚仗야아’이다. ¶- :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훈언13ㄱ〉 / 죄 업서 名位 늣거 호니 省郞 더듸 호 敢히 츠기 너겨리아(不才名位晚 敢恨省郞遲)〈두시 3:1ㄱ〉.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서촉지형천하험 안위수장출군재【이것은 촉 땅이 험하지만 위험하기도 쉬우니 모름지기 엄무(嚴武)와 같은 사람을 얻어 진주시켜야 안정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언해역】 서촉(西蜀)의 지형이 천하에 험준하니, 위험함을 편안히 하면, 모름지기 남에게 특출한 재능을 기대야 하리라.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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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제장 오수(諸將五首) : 이 시는 대력(大曆) 원년(766) 가을에 지어졌다. 이때 두보는 기주(夔州)에 머물러 있었다. 다섯 수의 작품에서 두보는 당시 장군들의 실책에 대해 일침을 가하면서 풍자하고, 그가 변방의 우환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 대처하겠다는, 조국에 대한 절절한 감정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도 제기하고 있다.
주001)
한조능묘(漢朝陵墓) : 당나라 때 여러 제왕들의 능묘를 가리킨다.
주002)
남산(南山) : 종남산(終南山)을 가리킨다.
주003)
호로(胡虜) : 진한(秦漢) 시대 때 흉노(匈奴)를 가리키는 말. 후세에 중국에 적대적인 북방의 부족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여기서는 토번을 말한다.
주004)
관(關) : 소관(蕭關). 지금의 영하 고원(固原) 동남쪽을 가리키는 말.
주005)
한조능묘대남산 호로천추상입관(漢朝陵墓對南山 胡虜千秋尙入關) : “한나라의 능묘가 종남산에 있었는데, 오랑캐가 천추 세월 동안 중원으로 들어와 도굴했다.”는 말로, 한나라 때 일이 지금 안녹산에 의해 다시 저질러졌음을 뜻한다.
주006)
종남산(終南山) : 섬서성 장안(長安)의 남쪽에 있는 산. 주남산(周南山) 또는 남산, 진령(秦嶺)이라고도 부른다. 높이는 1,200m이며, 진령산맥(秦嶺山脈) 산봉에 속한다. 주봉의 해발고도는 2,604m이다. 옛 이름은 태일산(太一山), 중남산(中南山), 주남산(周南山) 또는 남산(南山) 등이었다. 중국을 화북(華北)과 화남(華南)으로 나누는 진령산계(秦嶺山系)의 동쪽 끝 근처에 있다. 5-6세기 이래 화엄종의 법림(法淋)과 종밀(宗密), 계율종남산파의 개조(開祖) 도선(道宣), 정토종의 대성자(大成者)인 선도(善導), 도교 전진도(全眞道)의 개조 왕중양(王重陽), 북오조(北五祖) 중의 중리권(鐘離權), 여동빈(呂洞賓), 유해섬(劉海蟾) 등의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주007)
남산(南山) 대(對)얫니 : 종남산을 대하고 있으니. 對#+야#잇-++니.
주008)
되히 : 오랑캐들이. 되+ㅎ+이.
주009)
오히려 : 오히려. 오히+려. ‘려’는 부사화 접미사이다. (참조)새려. 기저형을 ‘오힐+어’로 보는 견해도 있다.
주010)
드니라 : 들어오니라. 들어온다. 들[入]-+니+라.
주011)
작일(昨日) : 어제. 지난날. 옛날.
주012)
옥어(玉魚) : 옥에 물고기 모양을 새긴 진귀한 노리개다. 전설에 따르면 오초칠국(吳楚七國)의 난 때 초왕(楚王) 무태자(戊太子)가 마침 경사(京師)에 조알하러 갔다가, 미처 앉기도 전에 장안(長安)에서 죽으니, 천자가 옥어(玉魚) 한 쌍을 무덤에 넣어주었다고 한다. 즉 부장품(副葬品)을 가리킨다.
주013)
금완(金盌) : 금으로 만든 주발. 간보(干寶)의 『수신기(搜神記)』 권16에 실린 이야기에 따르면, 범양(范陽)의 노충(盧充)이 최소부(崔少府)의 딸과 혼인하였다. 사별하고 4년 뒤 3월 3일 노충은 물가에서 송아지 두 마리가 끄는 수레를 보았는데, 죽은 최씨와 3살짜리 사내아이가 같이 타고 있었다. 최씨가 품은 아이를 노충에게 돌려주면서 금 주발을 함께 주고 증시(贈詩)를 남겼다 한다. 즉 금완을 순장(殉葬)하는 기물(器物)의 뜻으로 쓰였다.
주014)
작일옥어몽장지 조시금완출인간(昨日玉魚蒙葬地 早時金盌出人間) : “옛날에 옥으로 만든 물고기를 무덤에 묻어 두었는데, 이른 시간에 금으로 만든 주발이 세상 밖으로 나왔네.”라는 말로, 무덤이 도굴을 당해 보물이 흩어졌다는 뜻이다. 무장(武將)이 외적을 멸하지 못해, 당나라 때 제왕의 능묘가 토번에 의해 도굴되기에 이른 것을 말한다. 옥어(玉魚)와 금완(金盌)은 모두 제왕의 순장품이다.
주015)
염장(斂葬) : 염습(斂襲)하여 안장(安葬)함. 염(斂)은 염(殮)과 통한다.
주016)
어젯날 : 어제. 옛날. 어제+ㅅ+날. 원문의 ‘작일(昨日)’의 번역이다.
주017)
무든 해 : 묻은 땅에. 묻[埋]-+은 ㅎ+에.
주018)
두펫더니 : 덮혀 있더니. 둪[盖]-+어#잇-+더+니. ¶특 구루미 기 펴 三千 大千 世界 다 두퍼  티 브 그 저주미 너비 흐웍면〈법화 3:10ㄱ〉.
주019)
일즉 : 일찍. 원시의 ‘早時’에 대한 번역으로, 『두시언해』에서는 ‘조(早)’에 대해서는 ‘일’, ‘증(曾)’에 대해서는 ‘일즉’으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으나 여기에는 ‘조(早)’가 쓰였는데도 불구하고 ‘일즉’으로 번역되어 있다. ¶早(일) :  요 녜 震澤 브터 노니 미 平니 일 參星 보리로다(舟泊常依震 湖平早見參)〈두시 3:14ㄱ〉 / 曾(일즉) : 일즉 椽吏 외야 三輔애 가 뇨니 潼關애 이셔 詩興이 하던 이 思憶노라(曾爲椽吏趨三輔 憶在潼關詩興多)〈두시 3:37ㄴ〉.
주020)
인간(人閒)애 : 사람 사이에. 인간 세상에.
주021)
냇도다 : 나와 있도다. 나[出]-+아#잇-+도+다.
주022)
서융핍(西戎逼) : 서융(西戎)이 쳐들어오다. 765년 9월 토번이 회흘과 연합해 쳐들어왔을 때, 군병들이 봉천(奉天)에 이르자 경사(京師)가 두려움에 떨었던 일을 말한 것이다.
주023)
현수한마서융핍 증섬주기북두한(見愁汗馬西戎逼 曽閃朱旗北斗閑) : “오랑캐가 말을 타고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근심하니, 장안에서 한가롭게 지내던 장군들은 무엇을 했는가.”란 말로, 전란이 닥쳤는데 이를 대비하지 못한 당시 장수들을 질책하는 뜻이다.
주024)
 : 땀.
주025)
서(西)ㅅ녁 되 : 서쪽 오랑캐. 즉 토번(吐藩)을 말한다.
주026)
시름노니 : 근심하니. 시름[愁]#-++오+니. 화자주어 호응의 ‘오’는 종결어미에 실현되는데, 연결어미 중에서는 ‘-니’에 실현된다. ‘-니’는 연결어미로 분류되지만 종결어미가 보이는 여러 가지 특성을 보이는 대표적인 어미이다.
주027)
일즉 : 일찍. 일찍이. 원시의 ‘曾’에 대한 번역이다.
주028)
뮈워 : 움직여. 흔들어. 뮈[動]-+우+어. ¶뮈우다 : 無明體예  念 처 뮈유미 일후미 行이니 行 뮐 씨라 흐리워 뮈우면 精을 일허 아로미 나니 그럴 智 두르 일후믈 識이라 니 識 알 씨라〈월석 2:21ㄱ〉 / 庾信이 平生애 안직 蕭瑟니 늘근 나해 詩賦ㅣ 江關엣 들 뮈우니라(庾信平生最蕭瑟 暮年詩賦動江關)〈두시 3:67ㄱ〉.
주029)
안한(安閑)더니라 : 안한(安閑)하였었다. 편안하고 한가하였었다. 安閑#-+더+니+라.
주030)
재관(材官) : 진한(秦漢) 때 처음 설치한, 일종의 지방(地方) 예비병(預備兵). 무장(武將).
주031)
경위(涇渭) : 경수(涇水)와 위수(渭水). 둘 다 중국 섬서성에 있다. 경수는 탁류(濁流)고, 위수는 청류(淸流)인 데서, 사물의 구별이 확실한 것을 일컫는 말이다. 『시경』 패풍(邶風) 곡풍(谷風)에 “경수(涇水) 때문에 위수(渭水)가 흐려진다 해도, 파랗게 맑아질 때가 있네.(涇以渭濁 湜湜其沚)”란 구절이 나온다. 소식(蘇軾) 시에도 흉중경위분(胸中涇渭分)이란 글귀가 있다. 모두 경기(京畿) 안에 있었다. 곽자의가 경양(涇陽, 지금의 장안 북쪽)에 병력을 주둔시켰고, 이충신(李忠臣)은 동위교(東渭橋, 지금의 장안 동북쪽)에 주둔시켰으며, 이광진(李光進)은 운양(雲陽, 지금의 섬서 涇陽縣 북쪽)에 주둔시켰고, 마린(馬璘)과 학정옥(郝庭玉)은 편교(便橋, 지금의 섬서 咸陽 서남쪽)에 주둔시켰으며, 이포옥(李抱玉)은 봉상(鳳翔)에 주둔시켰고, 이일월(李日越)은 주질(盩厔)에 주둔시켜 토번을 방어했다. 장안 부근에 대병력이 운집하니 군대의 사기가 긴장에 빠졌다.
주032)
다소재관수경위 장군차막파수안(多少材官守涇渭 將軍且莫破愁顏) : “몇몇 무신들이 강가에서 지키지만, 장군들은 이를 믿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경비가 있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라는 뜻이다. 당시 장군들의 안이한 태도를 질책하는 말이다.
주033)
하며 져근 : 많으며 적은. 하[多]-+며 젹-+은. 여기서는 수가 ‘몇몇’임을 말한 것이다.
주034)
둔수(屯守)얫니 : 둔수하고 있으니. 지키고 있으니. 屯守#-+야#잇-++니.
주035)
시름도왼 : 근심된. 시름[愁]+도외-+ㄴ. ‘도외다’는 ‘외다’와 쌍형어로 쓰였다. ¶도외다 :  勝福 어드릴 暫持 功德이 도외니〈법화 6:3ㄱ〉 / 病야 누워 오래 나그내 도외요니 恩惠 닙와 일 션 서리예 섯거뇨라(卧疾淹爲客 蒙恩早側儒)〈두시 2:10ㄱ〉 / 외다 : ㅇ 입시울쏘리 아래 니 쓰면 입시울가야소리 외니라〈훈언 12ㄱ〉 / 다  蜀郡에 나그내 외오   梓州ㅣ 사로라(五載客蜀郡 一年居梓州)〈두시 2:1ㄱ〉.
주036)
 : 낯을. 얼굴을. +. ¶ : 衒賣色 겨지븨  어 빋게 야  씨라〈석상 21:61ㄴ〉 / 衰老  스스로 운노니 효 官吏히 안직 서르 업시우다(衰顏聊自哂 小吏最相䡖)〈두시 2:27ㄱ〉.
주037)
허러 : 일그러뜨려. 허물어. 헐[破]-+어.
주038)
리디 말라 : 버리지 말라. 리[棄]-+지 말-+라.
주001)
한공(韓公) : 장인원(張仁願)을 가리키는 말.
주002)
삼성(三城) : 세 개의 수항성(受降城)을 가리키는 말. 신룡(神龍) 3년(707) 장인원이 일찍이 내몽골 경내에 세 개의 수항성을 쌓아 돌궐(突厥)에 저항하였다.
주003)
발한정(拔漢旌) : 한가(漢家)의 기치를 뽑아버림. 이것은 당나라 영토에 침입한 것을 가리킨다.
주004)
기위(豈謂) : 당나라가 삭방군(朔方軍)을 설치했는데, 원래 돌궐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후 돌궐이 쇠망하자, 회흘이 굴기하였다.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숙종(肅宗)은 영무(靈武, 지금의 寧夏 영무)에서 즉위하자, 삭방병의 병력이 부족하여 오히려 회흘에게 구원해 양경(兩京)을 수복하기를 청했다. 두보는 장수가 무능하다고 여겨, 이것을 풍자하였다. 삭방병은 삭방군으로 곽자의가 통솔한 부대를 가리킨다.
주005)
한공본의축삼성 의절천교발한정 기위진번회흘마 번연원구삭방병(韓公本意築三城 擬絕天驕拔漢旌 豈謂盡煩回紇馬 翻然遠救朔方兵) : “장인원이 세 성 쌓은 본래 의도는, 흉노가 한나라의 영토를 함락시키리라 염려해서였는데, 어찌 회흘의 말들을 다 어지럽게 달려오게 해서, 도로 멀리 삭방(朔方)의 군대를 구하리라 여기겠는가?”란 말로, 스스로 방비를 견고하게 해서 외적을 막아야지, 안이하게 요행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주006)
# 장인원(張仁願) : ?-714. 당나라 화주(華州) 하규(下邽) 사람. 본명은 인단(仁亶)이다. 무주(武周) 만세통천(萬歲通天) 2년(697) 손승경(孫承景)의 황상을 기망한 죄를 주청했고, 숙정대중승(肅政臺中丞)과 검교유주도독(檢校幽州都督)에 발탁되었다. 중종(中宗) 신룡(神龍) 중에 낙주장사(洛州長史)에 오르고, 삭방총관(朔方總管)을 대신해 출병했다가 돌궐(突厥)을 대패시켰다. 다시 황하(黃河) 북안에 동서중(東西中) 세 지역에 수항성(受降城)을 쌓아, 변경 방어를 공고히 했다. 경룡(景龍) 3년(709)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과 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에 오르고, 한국공(韓國公)에 봉해졌다.
주007)
손 : 쌓은. 샇[築]-+오+ㄴ. ¶샇다 : 다가 먼 드릇 가온  사하 佛廟 빌우거나〈개법 1:75ㄴ〉 / 돌 사하 믈어딘 두들글 막고 수프를 여러 먼 뫼 나게 노라(帖石防隤岸 開林出遠山)〈두시 10:15ㄴ〉.
주008)
천교자(天驕子) : 천교(天驕)는 하늘이 그 교만을 허락한 아이라는 뜻으로, 흉노(匈奴)와 돌궐을 일컫는 말이다.
주009)
혀믈 : 뽑힘을. [拔]-+혀+ㅁ+을. ¶다가 바지왼 소니 아니면 뉘 能히 부들 혀 實에 맛게 베퍼 펴리오〈금삼 서:13ㄱ〉 / 서늘호믈 卑濕 해 가져오고 소 洞庭엣 므를 혀 도다(爽携卑濕地 聲拔洞庭湖)〈두시 2:23ㄱ〉.
주010)
그츄리라 : 그치리라. 긏[斷]-+우+리+라. ¶그추다 : 내 命 그추미 므더니 너기가니와〈월석 10:4ㄴ〉 / 漸漸 사괴야 노 사미 그추믈 깃노니 幽隱히 사로매 일후믈 디 아니노라(漸喜交遊絕 幽居不用名)〈두시 3:26ㄱ〉.
주011)
너기더니 : 여기더니. 너기[謂]-+더+니. 원시의 ‘의(擬)’의 번역으로 쓰였다.
주012)
엇뎨 : 어찌.
주013)
어즈러이 : 어지럽게. 어즐+업+이. ¶어즈러이 : 智慧ㅅ  光明을 펴 五陰 믈 타 本來ㅅ 空 性을 비취여 그 中에 거츠리 제 어즈러이 뮈유 처 아니〈능엄 1:107ㄴ〉 / 조  기피셔 우 납 인 로 올마가고 虛  어즈러이 沐浴 올히 조차 가노라(窄轉深啼狖 虛隨亂浴鳧)〈두시 2:6ㄴ〉.
주014)
야 : 하여야. -+야+. 〈중간본〉은 ‘여아’이다. 일반적을 〈초간본〉이 ‘-’를 중간본이 ‘-’를 쓰는 경향이 있으나 여기서는 오히려 반대로 되어 있다.
주015)
도혀 : 도로. 돌[回]-++히+어. ‘도다’는 ‘돌다’의 사동사이다 ‘도혀’는 『석보상절』이나 『월인석보』 등에서는 ‘도’로 표기되었다. ¶도 : 慈悲 衆生 便安케 시 거시어늘 이제 도  어 아 여희에 시니〈석상 6:5ㄴ〉 / 도혀 : 네 너의 듣논 性이  한 소리 잇  도혀 듣다 닐오〈목우자 19ㄱ〉 / 모 도혀 프른  보니 슬퍼 거츤 못 도다(回身視綠野 慘澹如荒澤)〈두시 8:21ㄱ〉 / 엇디 關塞ㅣ 阻隔야 도혀 瀟湘애 노로 짓거니오(如何關塞阻 轉作瀟湘遊)〈두시 2:1ㄱ〉 / 도다 : 셔 피로 심고 셔 피로  시울 도고 금로 갸품욘 안좌오〈번박 28ㄱ〉 / 노 興心이 荊衡로 激發니 知音리 爲야 머리 도라(高興激荊衡 知音爲回首)〈두시 8:5ㄱ〉.
주016)
머리 구(救)리라 너기리오 : 멀리 구할 것이라 생각하겠는가? ‘너기다’는 원시의 ‘번(翻)’의 번역으로 쓰였다.
주017)
호래(胡來) : 오랑캐가 쳐들어오다. 호인(胡人) 안녹산이 동관(潼關)을 격파하고, 장안을 함락한 일을 가리킨다. 동관은 본래 험난해서 공격하기 어려운데 안녹산은 곧바로 밀고 들어와서, 동관이 그 험난함을 잃고 말았다. 즉 동관을 지킨 장수 가서한이 나약하고 무능한 것을 풍자하고 있다.
주018)
용기(龍起) : 용이 일어나다.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이 태원(太原)에서 거병한 일을, 광평왕(廣平王, 나중의 代宗)이 양경(兩京)을 수복한 일에 빗댄 것이다. 그해 고조 이연이 진양(晋陽)에서 거병했을 때 진수(晋水)의 물 빛깔이 맑아졌다. 광평왕이 지덕(至德) 2년(757) 9월 서경(西京)을 수복했는데, 같은 해 7월 남주(嵐州)가 관하(關河)와 합쳐져 30리가 맑아지니, 그래서 “오히려 진수가 맑아졌다는 것을 들었다.(猶聞晋水淸)”고 말하였다.
주019)
호래불각동관애 용기유문진수청(胡來不覺潼關隘 龍起猶聞晉水清) : “좁은 동관의 요지를 지키지 못하고 장안이 함락되자, 숙종이 용맹하게 가서 이를 평정했다.”는 말로 가서한의 실책을 꾸짖은 것이다.
주020)
동관(潼關) : 동관(潼關)의. 후행하는 ‘조보’이 명사형이기 때문에 속격조사가 쓰인 것이다.
주021)
조보 : 좁음을. 좁[隘]-+오+ㅁ+. ¶좁다 : 비록 이러나 지비 진실로 조브니 자디 몯리라〈번노 상:49ㄱ〉 / 杜陵ㅅ 野客을 사미  웃니 니분 누비 뎌르며 좁고 귀믿터리 실 호라(杜陵野客人更嗤 被褐短窄鬢如絲)〈두시 15:37ㄱ〉.
주022)
몯리로소니 : 못할 것이니. 몯#-+리+도+소+니.
주023)
니러나매 : 일어남에. 닐[起]-+어#나-+ㅁ+애.
주024)
고 : 맑음을. [淡]-+오+ㅁ+. ¶다 : 다가 知見의 見이 업스면 智性이 眞淨야 微妙히 고매 도라가  精리니 일후미 無明滅이니〈월석 2:22ㄴ〉 / 神龍 後에 謀策 一定니 宮中이 모다 가 훤니라(定策神龍後 宮中翕清廓)〈두시 3:65ㄴ〉.
주025)
오히려 : 오히려. 오히+려. ‘려’는 부사화접미사이다.
주026)
드르리로다 : 들을 것이도다. 듣[聞]-+으리+도+다.
주027)
지존(至尊) : 대종(代宗) 이예(李豫)를 가리키는 말.
주028)
승평(升平) : 승평(昇平). 태평(太平)하여 아무런 변고(變故)도 없음.
주029)
독사지존우사직 제군하이답승평(獨使至尊憂社稷 諸君何以答升平) : “임금 혼자 나라의 안위를 근심하게 했으니, 장군과 병졸들은 무엇으로써 태평한 세상에 대해 보답하겠는가?”란 말로, 장군과 병사들이 더욱 분투해서, 나라의 은혜를 갚으라는 뜻이다.
주030)
올로 : 홀로. ¶올로 : 金몰애 디나샤 金山 가시니 이 길헤 올로 녀시니〈월석 22:7ㄱ〉 / 考功의 等第에 거슯저디여 올로 京尹의 堂애 가 下直호롸(忤下考功第 獨辭京尹堂)〈두시 2:40ㄱ〉.
주031)
지존(至尊)로 여 : 지존(至尊)으로 하여금. 왕으로 하여금. 〈중간본〉은 ‘야지’이다.
주032)
시름케 니 : 근심하게 하니.
주033)
므스그로 : 무엇으로써. 므슥+으로#-+어.
주034)
승평(升平)호 : 승평(升平)함을. ‘승평하다’는 ‘나라가 태평하다’라는 뜻이다.
주035)
보답(報荅)고 : 보답할 것인가? ‘-고’는 설명의문어미로서 선행하는 ‘므스그로’와 호응한다.
주001)
낙양(洛陽) : 낙양이 두 차례 병화(兵火)로 훼손된 것을 회고했는데, 일차는 천보(天寶) 14년(755) 안녹산에게 훼손되고, 또 한 차례는 건원(乾元) 2년(759) 사조의(史朝義)에게 훼손되었다.
주002)
진관(秦關) : 동관(潼關)을 가리키는 말.
주003)
백이중(百二重) : 성지(城池)가 험난하고 견고하는 것을 강조하는 말. ‘백이’는 관중(關中)의 병력 2만 명이면 백만 명의 적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이다.
주004)
낙양궁전화위봉 휴도진관백이중(洛陽宮殿化爲烽 休道秦關百二重) : “낙양의 궁궐이 불타 봉화불이 되었으니, 변방의 방비가 튼튼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안녹산에 의해 낙양이 함락된 상황에서 요새가 견고한 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주005)
외옛니 : 되어 있으니. 외[爲]-+어#잇-++니.
주006)
니디 : 이르지. 말하지. ¶니다 : 王이 놀라샤 讚嘆야 니샤 내 아리 天神 中에  尊니 일후믈 天中天이라 라〈석상 3:4ㄱ〉 / 늘근 브으완 히믈 스스로 놀라노니 棟梁  材質ㅣ라 니디 몯리로다(自驚衰謝力 不道棟梁材)〈두시 2:24ㄴ〉.
주007)
마롤 디로다 : 말 것이다. 말[止]-+오+ㄹ +이+도+다.
주008)
창해(滄海) : 당나라 하북(河北)과 하남(河南) 두 지역의 동부 지구를 가리키는데, 지금의 하북과 산동(山東) 동부다.
주009)
우공(禹貢) : 『서경(書經)』의 편명. 우(禹) 임금이 구주(九州)와 직공(職貢) 제도를 정한 일을 서술하였다. 중국 구주(九州)의 지리와 물산에 대해 기술한 고대 지리서다. 나중에 ‘우공’하면 국경(國境)의 대칭으로 쓰였다.
주010)
요봉(堯封) : ①요(堯) 임금이 화봉(華封)을 순시하니, 화봉 사람이 성인에게 수(壽)와 부(富)와 남자 아기가 많기를 축원했다는 고사. ②중국의 강토. 요(堯)임금이 순시하면서 12주(州)를 나누고, 12곳의 산에 제단을 만든 데서 나왔다.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주011)
창해미전귀우공 계문하처멱요봉(滄海未全歸禹貢 薊門何處覔堯封) : “산동 지역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고, 하북 지역마저 함락되었다.”는 말로, 국토의 상당 부분이 적에게 함락됨을 알려 위기감을 강조한 것이다.
주012)
공부(貢賦) : ①공물(貢物)과 부세(賦稅). 공(貢)은 바치는 것이고, 부(賦)는 거두는 것이다. ②지방의 토산물을 나라에 바치던 세제(稅制). ③국가에서 각 군현 단위에 부과한 현물세.
주013)
계문(薊門) : 하북(河北) 북부 노룡(盧龍) 등지를 가리키는 말.
주014)
몯노소니 : 못하니. ‘몯도소니’의 잘못으로 보인다. 몯#-+도+소+니.
주015)
어듸 : 어디. ¶어듸 : 王이 좌시고 病이 됴샤 이 말 드르시고 놀라 臣下려 무르샤 太子ㅣ 이제 어듸 잇뇨〈석상 11:21ㄱ〉 / 내 衰老 모 쟝 어듸 브트려뇨 살며 주구메 다시곰 슬허 노라(吾衰將焉託 存歿再嗚呼)〈두시 2:47ㄴ〉.
주016)
어드리오 : 얻겠는가? 얻[得]-+으리+오.
주017)
곤직(袞職) : ①임금의 옷이란 뜻으로, 임금을 일컫는 말. ②임금을 보좌하는 삼공(三公)의 직책으로, 삼공(三公)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당시 조정의 대신은 대개 군사적인 중임을 겸하고 있었는데, 절도사(節度使)들은 중서령(中書令)이나 평장사(平章事) 등 고위 내직(內職)이 더해져서, 장상(將相)이 구분되지 않았다.
주018)
군저(軍儲) : 군량과 말먹이 등 군수물자(軍需物資)를 가리키는 말.
주019)
조정곤직수쟁보 천하군저불자공(朝廷袞職誰爭補 天下軍儲不自供) : “조정에 제대로 된 신하가 없어 보필하지 못하니, 천하를 지키는 군대가 있어도, 스스로 이바지하지 못한다.”는 말로, 조정에 임금을 보필하는 신하가 없어, 임금이 공부(세금)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주020)
보곤(補袞) : ①임금의 잘못을 보충한다는 뜻으로 재상(宰相)이나 재상이 될만한 자질(資質)을 일컫는 말. 보곤자(補袞資). 삼공(三公). ②중국 당(唐)나라 보궐관(補闕官)의 다른 이름. ③관복(官服)을 일컫는 말. 여기서는 ①의 뜻이다.
주021)
뉘 : 누가. 성조는 ‘·뒤(거성)’이다.
주022)
토와 : 다투어. 토+오+아. ¶토오다 : 乘은 이 行 디오 이베 토오매 잇디 아니니〈육조中83b-4〉 /  어름은 토와 다 미렷고 구루메  서르 져기 놋다(寒氷爭倚薄 雲月遞微明)〈두시 2:20ㄴ〉 / 토다 : 耶輸ㅣ  듣디 아니시고 大愛道 샤 내 지븨 이 저긔 여듧 나랏 王이 난겻기로 토거늘〈석상 6:7ㄱ〉 / 그러긔 삿기 水馬 토아 먹고 져비 짐대예 가마괼 조차 니다(鴈兒爭水馬 燕子逐檣烏)〈두시 2:8ㄴ〉.
주023)
기오리오 : 기우리오? 보충하리오? 보충하겠는가? 깁[補]-+오+리+오. ‘오’는 설명의문어미로 선행하는 ‘뉘’와 호응한다. ¶깁다 : 世尊하 내 이  唯心識을 아론 젼로 識性이 無量如來 흘려 내니 이제 授記 得와 버거 부텻 고 깁오다〈능엄 5:82ㄱ〉 / 져근  고 쇽졀업시 늘거 가노니 聖明신 朝 깁올 줄 업도다(扁舟空老去 無補聖明朝)〈두시 2:21ㄴ〉.
주024)
천하(天下) : 당나라 초기에 부병제(府兵制)를 시행했는데, 사병은 영전(營田)을 개간해 군량을 자급하게 했다. 안사(安史)의 난 이후 부병제가 폐지되어, 군량은 모두 농민들이 공급하게 되었는데, 이를 두고 ‘군저불자공’이라 한 것이다.
주025)
이바돌 : 이바지할. 모실. 이받[供]-+오+ㄹ. ‘이받다’는 ‘모시다, 잔치하다’의 뜻이 있으며 파생명사는 ‘이바디’가 있다. ¶이받다 : 太子 請 이받려 노닛가 大臣 請야 이바도려 노닛가〈석상 6:16ㄱ〉 / 黃河ㅅ 西ㅅ 녁 두들근 이 우리 蜀이니 軍士 이바도믈 기들워도 지븨 조히 업도다(黃河西岸是吾蜀 欲須供給家無粟)〈두시 4:27ㄱ〉 / 이바디 : 宴 이바디 연〈훈몽 하:5ㄴ〉 / 주샤 沐浴닌 다 長纓 사ㅣ오 이바디 參預닌 뎌른 옷 니브니 아니로다(賜浴皆長纓 與宴非短褐)〈두시 2:35ㄱ〉.
주026)
아니놋다 : 아니하는구나. 아니#-++오+ㅅ+다.
주027)
왕상국(王相國) : 왕진(王縉)을 가리키는 말. 광덕(廣德) 2년(764) 왕진은 동평장사(同平章事)로 하남(河南)과 회서(淮西) 등지의 절도행영(節度行營)의 일을 통솔했고, 겸하여 동경유수(東京留守)를 맡았는데, 나중에 하남부원수(河南副元帥)로 옮겨 하북의 여러 항장(降將)들이 다시 반란을 하는 것을 막았다.
주028)
사춘농(事春農) : 봄 농사를 짓게 하다. 둔전제(屯田制)를 시행한 것을 가리키는 말. 왕진은 사졸 양성을 중단하고, 그들을 농경에 종사하게 하여, 군비(軍費)를 줄이게 했다. 두보는 여기서 여러 장군들이 왕진의 방법을 쓰라고 권하고 있다.
주029)
초희림변왕상국 긍소금갑사춘농(稍喜臨邊王相國 肯銷金甲事春農) : 상국 왕진(왕유의 동생)이 있어 변방을 지켜 무기를 녹여 농장기를 만들어 농사에 전념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주030)
왕진(王縉) : 700-781. 당나라 하동(河東) 사람. 조적(祖籍)은 태원(太原) 기현(祁縣)이다. 자는 하경(夏卿)이고, 왕유(王維)의 동생이다. 연이어 초택(草澤)과 문사청려과(文辭淸麗科)에 합격했다. 어릴 때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해서, 형 왕유와 함께 문명(文名)을 떨쳤다. 시어사(侍御史)와 무부원외랑(武部員外郞)을 지냈다. 안사(安史)의 난 때 태원소윤(太原少尹)에 임명되고, 이광필(李光弼)을 도와 태원을 지켰으며, 그 공으로 헌부시랑(憲部侍郞)에 올랐다가 병부(兵部)로 옮겼다. 대종(代宗) 광덕(廣德) 2년(764) 황문시랑(黃門侍郞)과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를 거쳐, 하남부원수(河南副元帥)가 되었다.
주031)
감임(監臨)얫 : 임하여 감독하고 있는. 監臨#-+야#잇-++ㄴ.
주032)
즐겨 : 즐겨. 즐기[樂]-+어. ¶즐기다 : 太子 즐기시게 더시니〈석상 3:6ㄴ〉 / 예 드러 도혀 즐기디 아니고   주를 글러 오아 기리 嗟嘆노라(入舟翻不樂 觧纜獨長吁)〈두시 2:6ㄴ〉.
주033)
오 : 사르고. [銷]-+고. ‘오’는 ‘ㄹ’에 후행하는 ‘고’의 ‘ㄱ’이 약화된 표기이다.
주034)
 녀름지 : 봄 농사를. 봄+ㅅ 녀름[農]#짓-+이+. ‘녀름지’는 ‘농사(農事)’에 대한 고유어이다. 〈중간본〉은 ‘ 녀름디이’이다. ¶녀름지 : 므슷 이리  爲頭뇨  大臣 닐오 녀름지 니 업스니다〈월석 22:30ㄴ〉 / 煩冗 마란 各各 제 業에 도라가게 야 해 브터 사라셔 도로 녀름지이를 힘케 홀디니라(冗官各復業 土著還力農)〈두시 4:23ㄱ〉.
주035)
일 사마 : 일을 삼아. 삼[爲]-+아. 원시의 ‘事’에 대한 번역이다. 『두시언해』에서는 동사로 쓰인 ‘事’에 대해 ‘일 삼다’로 번역하고 있다.
주036)
져기 : 적이. 젹[小]-+이. ‘젹다, 쟉다, 혁다, 횩다’는 유사한 의미로 쓰였다.
주037)
깃노라 : 기뻐하노라. 기뻐한다. [喜]-++오+라. ¶다 : 太子 보고 各各 이든 우루믈 울며 뎌 수프레 잇 벌에 토 다 깃거 太子 오며〈석상 3:33ㄱ〉 / 生理 일웟논 이 내 깃거 곳 픤 時節에 핫옷 니부믈 히 너기노라(自喜遂生理 花時甘縕袍)〈두시 2:62ㄱ〉 / 깃거다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 머므디 몯놋다 시고 도라 드르샤  깃거시더라〈석상 3:21ㄱ〉 / 天皇寺ㅣ 갓가와 오 깃거노니 몬져 녯 그리 펴 보리라(喜近天皇寺 先披古畫圖)〈두시 2:10ㄴ〉.
주001)
부상(扶桑) : 해 뜨는 곳. 하늘 동쪽 맨 끝에 큰 뽕나무가 있고, 그 가지 위에 금빛의 수탉이 앉아 있는데, 하룻밤을 지내고 해가 뜨려고 하면, 이 닭이 운다고 한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닭들이 따라서 울고, 해가 뽕나무 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주002)
동주(銅柱) : 후한의 마원(馬援)이 교지(交趾, 지금의 베트남 북부)를 정벌할 때 세웠는데, 한나라 최남단 경계를 표시한 것이다.
주003)
명명(冥冥) : ①어두운 모양. ②어두운 밤. 저녁. ③아득한 모양. ④높고 먼 모양. 고원(高遠)한 모양. ⑤저승. ⑤무지(無知)한 모양. ⑥깊이 생각하며 정성을 다하는 모양. ⑦그윽하고 깊숙한 모양. 여기서는 ③의 뜻이다.
주004)
분침(氛祲) : ①바다 위에 낀 짙은 안개. 해미. ②요악(妖惡)한 기운. 요사스런 기운. 여기서는 ②의 뜻이다. 여기서는 전란을 말한다. 당시 남조(南詔)는 토번과 함께 소요를 일으켜 남쪽 국경이 불안했다.
주005)
회수부상동주표 명명분침미전소(回首扶桑銅柱標 冥冥氛祲未全銷) : 부상과 동주에 새겨진 표지를 보니, 어두운 요사스런 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말로, 전쟁의 암울한 기운이 완전히 가셔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주006)
마원(馬援) : 기원전 14-기원후 49. 후한 섬서성 흥평현(興平縣) 북동지방의 우부풍(右扶風) 무릉(茂陵) 사람. 자는 문연(文淵)이다. 어릴 때부터 큰 뜻을 품어 처음에 군독우(郡督郵)가 되었다. 녹림(綠林)과 적미(赤眉)가 반란을 일으킨 뒤 왕망(王莽)의 부름을 받고 신성대윤(新城大尹)과 한중랑태수(漢中郞太守)가 되었다. 왕망이 망한 뒤 양주(凉州)로 달아났다가, 외효(隗囂) 밑에서 벼슬하여 수덕장군(綏德將軍)이 되었다. 다시 광무제(光武帝)에게 귀순하여 외효를 격파했다.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이어 건무(建武) 11년(35) 농서태수(隴西太守)가 되어 군대를 이끌고, 선령강(先零羌)를 격파했다. 주민들에게 경목(耕牧)을 권장해 서변(西邊)을 안정시켰다. 17년(41) 이후에는 복파장군(伏波將軍)에 임명되어, 교지(交阯, 북베트남) 지방에서 봉기한 징칙(徵側)과 징이(徵貳) 자매의 반란을 토벌하고, 하노이 부근의 낭박(浪泊)까지 진출하여 그곳을 평정했다. 일찍이 마혁과시(馬革裹屍)로 맹세하여, 흉노(匈奴)와 오환(烏桓)에 출정했다. 19년(43) 신식후(新息侯)에 봉해졌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남방의 무릉만(武陵蠻)을 토벌하러 출정했지만, 열병환자가 속출하여 고전하다가, 진중에서 병들어 죽었다. 장제(章帝) 건초(建初) 초에 충성(忠成)에 추시(追諡)되었다. 저서에 『동마상법(銅馬相法)』이 있다.
주007)
교지(交趾) : 지금의 베트남 북부 통킹, 하노이 지방을 포함한 손코이강 유역의 옛 명칭. 중국 한(漢)나라 무제 때 남월(南越)을 정복하고, 그 지역에 설치한 군(郡) 이름으로, 후에 교주(交州)로 개칭(改稱)되었다.
주008)
머리 도라보니 : 머리를 돌려보니. 돌[回]-++아#보-+니. ‘돌다’는 ‘돌다’의 사동사이다. ¶도라보다 : 블 救 道 기피 니 몸과 손과 힘 이슈믈 믿고 져믄 아 도라보아〈월석 12:24ㄱ〉 / 알 듣던 란 陶牧 오 도라보아 宜都 텨 가노라(前聞辨陶牧 轉眄拂宜都)〈두시 2:9ㄱ〉 / 돌다 : 뫼해  盜賊의 營壘ㅣ로소니 머리 도라 라고 시러곰 시름이 업스리아(漫山賊營壘 廻首得無憂)〈두시 5:10ㄴ〉.
주009)
어득 : 아득한. 어득#+ㄴ. (참조)어득어득다. ¶어득다 : 죽사릿 險 길헤 드러 受苦ㅣ 니 긋디 몯야 五欲애 기피 貪着야 어득야 보디 몯야 부텨와 受苦 그 法을 求티 아니고 邪曲 보매 기피 드러 이실〈석상 13:57ㄱ〉 / 나조 向야 디  어득고 첫 어으르매 큰 불무 부 도다(向晚霾殘日 初宵鼓大鑪)〈두시 2:23ㄱ〉 / (참조)어득어득다 : 봄비 어득어득니 峽中에 마갯니 언제 오 楚王ㅅ 宮을 브트니오(春雨暗暗塞峽中 早晚來自楚王宮)〈두시 12:25ㄴ〉.
주010)
요괴(妖恠)왼 : 요괴로운. 요괴다운. 妖怪++ㄴ.
주011)
디 : 살라지지. [燒]-+다. ¶다(자동사) : 天人이 大慈 行니 브리 디 몯며 므리 디 몯며 毒이 害티 몯며〈월석 10:70ㄱ〉 /   幕府에 우므렛 머귀 서늘니  城에 오 자니 미레 현 브리 라 가놋다(清秋幕府井梧寒 獨宿江城蠟炬殘)〈두시 6:15ㄴ〉 / 다(타동사) : 반되브 울 아래 프 디 몯고  갈공이 집 가온 바 거로미 어렵도다〈백련 4ㄱ〉 / 녯 風俗이 蛟龍 라 놀래여 雷雨를 닐위니라(舊俗燒蛟龍 驚惶致雷雨)〈두시 25:12ㄱ〉.
주012)
몯얫도다 : 못하고 있도다. 몯#-+야#잇-+도+다.
주013)
월상(越裳) : 남방의 옛 나라 이름. 당나라 때는 월상현(越裳縣)이었는데, 지역은 대략 베트남의 남쪽 경계에 있었다.
주014)
비취(翡翠) : 보석의 한 가지. 공품(貢品)을 가리키는 말.
주015)
남해(南海) : 남방 변경에 있는 군(郡). 광덕(廣德) 원년(763) 환관 시박사(市舶使) 여태일(呂太一)이 광남절도사(廣南節度使) 장휴(張休)를 내쫓고 병사들을 이용해 야료를 부렸다. 현지에서는 환관들의 살육과 약탈 때문에 공부(貢賦)를 거절할 수 없었다.
주016)
월상비취무소식 남해명주구적요(越裳翡翠無消息 南海明珠久寂寥) : “교지에서 나는 비취도 오지 않고, 남해에서 생산되는 진주도 없다.”는 말로, 오랑캐가 바치는 공물이 오랫동안 끊겼음을 말했다.
주017)
성왕(成王) : ?-?. 서주(西周)의 국군(國君). 성은 희(姬)씨고, 이름은 송(誦)이다. 무왕(武王)의 아들이다. 어릴 때 즉위하여 숙부 주공단(周公旦)이 섭정했다. 이때 은(殷)나라의 왕족 무경녹보(武庚祿父)와 무왕의 동생 관숙(管叔), 채숙(蔡叔) 형제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고, 다시 동이(東夷)로 원정했다고 한다. 귀환한 뒤 하남(河南)의 낙읍(洛邑)에 새로 동도(東都)를 정하고, 동방제국 지배의 중심으로 주공을 그곳에 있게 했다. 미자계(微子啓)를 송나라에, 강숙(康叔)을 위(衛)나라에 봉하는 등 국가의 기초를 다지고, 주공단과 소공석(召公奭)의 보좌를 받아 치세에 힘써 강왕(康王) 시대에 이르는 주나라의 태평성대를 실현했다.
주018)
월상씨(越裳氏) : 교지(交趾) 남방에 있던 나라. 오늘날의 월남(越南) 남부. 중국에 백치(白雉)를 바쳤다.
주019)
괴외도다 : 고요하도다. 괴외[寂]#-+도+다. ¶괴외다 : 그  舍利弗이  나모 미틔 안자 入定야 諸根이 괴외야 너교 오 모댓 한 사미 邪曲 道理 환 디 오라 아 제 노포라 야 衆生 프귀만 너기니〈석상 6:28ㄴ〉 / 文園이 내애 괴외고 漢閣애 제 열우며 므드니라(文園終寂寞 漢閣自磷緇)〈두시 3:2ㄱ〉.
주020)
수석(殊錫) : 특별(特別)한 봉사(封賜, 봉호나 하사).
주021)
대사마(大司馬) : 관직 이름. 군대를 다스리는 직책을 맡았다.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처음 설치. 후한(後漢) 초에는 삼공(三公)의 하나에 속했으며, 태위(太尉)로 고쳐 불렀다. 후한 말기 태위와 별도로 대사마를 설치했다. 위진(魏晉) 때는 서열이 삼공의 위였으며, 이후 시대에 따라 여러 번 존폐를 겪었다. 명청(明淸) 대에는 병부상서의 별칭으로 쓰였다.
주022)
# 총융(總戎) : 총병(總兵), 즉 원수(元帥)를 가리키는 말. 여기서는 병사를 통솔하는 장령(將領)을 가리킨다.
주023)
시중(侍中) : 관직 이름. 진(秦)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다. 황제를 직접 모시는 역할을 했다. 처음에는 잡무를 맡다가 점차 임무가 막중해졌다. 남조(南朝)의 송대에는 기밀 사항을 관장했다. 양진(梁陳) 때는 재상의 일을 행했고, 북위(北魏) 때는 소재상(小宰相)으로 불렸다. 수대에 납언(納言)으로 개칭되었다가 당나라 때 환원되었으며, 이후 실권이 떨어졌다. 북송 때 명목만 존재하다, 남송 때 폐지되었다. 『한관의(漢官儀)』에 보면, 시중은 매미[蟬]나 담비[貂] 꼬리로 관(冠)을 장식했다고 하였다.
주024)
수석증위대사마 총융개삽시중초(殊錫曽爲大司馬 惣戎皆揷侍中貂) : “일찍이 높은 벼슬을 내려주었는데, 조정의 신하는 관직만 좋아할 뿐 본분은 다하지 않는다.”는 말로, 신하들이 부귀영화만 누릴 뿐 충성을 다할 생각은 하지 않음을 질책한 것이다.
주025)
두곤 : 남보다. ᄂᆞᆷ+두곤. 비교격조사 ‘-두곤’은 『두시언해』에서는 여기서만 쓰였다. ¶-두곤 : 주구미 태산두곤 므거우니 이시며 터럭두곤 가야온니 잇니〈삼강동경 충:25ㄴ〉 / 문구의 겨집 목이 두 아 듯 몬졋 겨지븐 네 아 듯니 문뒤 죽거늘 네 아리 목이 믜여거 목이 더옥 위곡히 야 옷 바 제 아두곤 히 더니〈삼강동경 열:7ㄱ〉.
주026)
달이 : 달리. 다르게. ¶달이 : 제 허므를 뉘으처 鹿母夫人 셤교 어버티 야 기르논 太子 나흔 게셔 달이 아니터라〈석상 11:35ㄴ〉 / 宮中에 드나로미 올로 非時예 더니 禮數를 群臣 봄과 달이 더시니라(出入獨非時 禮異見群臣)〈두시 24:23ㄱ〉.
주027)
일즉 : 일찍. 일찍이. 원시의 ‘증(曾)’의 번역이다.
주028)
외여 이시며 : 되어 있으며. 외[爲]-+어 이시-+며. 『두시언해』의 일반적인 표기라면 ‘외야시며’이었을 것이다. 즉 ‘외여 이시다’로 표기되는 것은 『두시언해』는 물론 15세기 문헌에서 유일한 예이다. ‘어 이시다’ 구문에서 ‘이시다’가 분리되어 또렷하게 표기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이때 ‘-어’는 선행어간의 모음 조건에 따라 ‘-어, -아, -여, -야’ 등으로 표기된다. 『두시언해』에는 ‘-여/야 이시다’만 용례가 확인된다. ¶-어 이시다 : 내사 우이 되어 이시니 이러뎌러 어 먹고 어히 업세라〈순천 70:6〉 / -아 이시다 : 내 멀니 귀향 갈 거시니 필연이 여 갈 사의게 더러 이미 되리니 살아 이시미 죽음만 디 못니라〈속삼(중) 열:13ㄱ〉 / -여 이시다 : 엇뎨 어루 言敎애 브텨 究竟 사마 名數中에 디여 이시리오〈금삼 5:24ㄴ〉 / 赤驥ㅣ 긴 노 눌러 여 이시나 萬里 갈 姿質이 업순 디 아니니라(赤驥頓長纓 非無萬里姿)〈두시 3:55ㄱ〉 / -야 이시다 : 王이 닐오 너희가 셰욜 야로 올히 야 이시라〈석상 24:25ㄱ〉 / 가나모 門이 사 對얫니 이 너와 다야 물야 이시리로다(荊扉對麋鹿 應共爾爲群)〈두시 11:51ㄱ〉.
주029)
고잿도다 : 꽂고 있도다. 곶[串]-+아#잇-+도+다. ¶곶다 : 일 아 머리 비서 오 빈혀 고자 섬 아래 가 절고〈번소 9:29ㄴ〉 / 뎘 門이 洞庭ㅅ 해 노피 여렛니 殿ㅅ 바 赤沙湖애 고자 드렛도다(寺門高開洞庭野 殿腳插入赤沙湖)〈두시 9:29ㄴ〉.
주030)
염풍삭설(炎風朔雪) : 최남단과 최북단 지역을 가리키는 말.
주031)
충량(忠良) : 제장(諸將)들을 가리키는 말.
주032)
익(翊) : 보좌(補佐)하는 일.
주033)
염풍삭설천왕지 지재충량익성조(炎風朔雪天王地 只在忠良翊聖朝) : “어떤 기후에 놓인 지역이든, 모두 임금의 영토니, 충성과 선량함으로 신하는 왕조의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말로, 신하라면 충성과 정성으로 천자를 보좌해야 함을 뜻한다.
주034)
직공(職貢) : 고대에 번속(藩屬)이나 외국에서 조정(朝廷)에 바치는 공납(貢納)을 일컫는 말.
주035)
더운 : 뜨거운. 덥[炎]-+ㄴ. 15세기 국어의 ‘덥다’는 ‘덥다’의 의미보다는 ‘뜨겁다, 따뜻하다’의 의미로 많이 쓰였다. ¶덥다(덥다) : 나리 하 더우니 모다 가 잇다가 아니 뉘웃븐 이실가 분별뇌〈순천 138:3〉 / 더운 비예  저즌 긔운이 머므렛고 맷  나죗 서늘호 빌이놋다(暑雨留蒸濕 江風借夕涼)〈두시 3:12ㄱ〉 / 덥다(뜨겁다) : 온 블와 더운 쇠로도 가비디 몯리니〈영가 상:34ㄱ〉 / 樓 우희 더운 하해 어름과 눈괘 나 니 노피  져비새 새로 지슈믈 慶賀다(樓上炎天冰雪生 高飛燕雀賀新成)〈두시 14:11ㄱ〉 / 덥다(따뜻하다) :  杏仁  斤을 더운 므레 마 것 밧기고 지즐워 기름 내야 라〈구급방 상:6ㄴ〉 / 도랏막대 디퍼 나죗 굴을 고 어릴 노라 다맷 더운 비츨 갓가이 호라(杖藜尋晚巷 炙背近牆暄)〈두시 11:42ㄱ〉.
주036)
콰 : 땅과. ㅎ+과.
주037)
님 히니 : 임금의 땅이니. 즉 임금이 계신 곳이니.
주038)
오직 : 오직. 원시의 ‘只’에 대한 번역이다.
주039)
도오매 : 도움에. 돕는 것에. 돕[祐]-+오+ㅁ+애. 15세기의 명사형어미 ‘-옴/움’에 후행하는 처격조사 ‘-에/애/의/’의 결합은 흔히 원인이나 이유를 나타내지만 여기서의 ‘도오매’는 그런 의미가 없이 순수한 ‘명사형+처격조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001)
금강(錦江) : 민강(岷江) 지류의 하나. 사천(四川) 성도(成都) 평원(平原)에 있다. 전설에 따르면, 촉(蜀) 땅 사람이 비단을 짜서 이 강물에 빨면, 비단 빛깔이 선명하고 고와지는데, 다른 강물에 빨면 어두워지는지라,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여기서는 성도를 가리킨다.
주002)
무협(巫峽) : 기주(夔州)를 가리키는 말. 기주가 무협 인근에 있어서 이렇게 불린다.
주003)
금강춘색축인래 무협청추만학애(錦江春色逐人來 巫峽清秋萬壑哀) : “금강의 따뜻한 봄빛이 사람을 따라오고, 맑은 가을이 온 무협은 슬프다.”는 말로, 엄무를 찬미한 것이다. 두보가 성도에서 무협에 닿을 무렵 봄날을 맞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주004)
엄무(嚴武) : 726-765. 당나라 화주(華州) 화음(華陰, 지금의 섬서에 속함) 사람. 자는 계응(季鷹)이고, 엄정지(嚴挺之)의 아들이다. 처음에 음보로 태원부(太原府) 참군(參軍)을 지내다가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역임했다. 숙종(肅宗) 지덕(至德) 연간에 경조소윤(京兆少尹)에 올랐다. 나중에 두 차례에 걸쳐 촉(蜀)을 진압하고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와 성도부윤(成都府尹)을 지냈다. 광덕(廣德) 2년(764) 토번(土蕃)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검교이부상서(檢校吏部尙書)가 되었고,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졌다. 촉 땅에 여러 해 있으면서 법령을 엄격하게 시행해 위세가 일대에 떨쳤다. 이 때문에 토번이 감히 침범하지 못했다. 전 재상 방관(房琯)이 그를 천거하고 이끌어준 은혜가 있었는데도, 교만하고 거만해져 방관을 보고도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두보(杜甫)와 매우 가깝게 지내 두보가 성도를 떠돌 때 도움을 많이 받았다. 『전당시(全唐詩)』에 시 6수가 남아 있다.
주005)
금강(錦江)ㅅ 비치 : 금강(錦江)의 봄빛이. 즉 성도(成都)의 봄빛이.
주006)
사 조차 오니 : 사람을 좇아 오니. 두보가 성도(成都)에서 민강을 따라 장강으로 내려와서 처음 맞는 봄이기 때문에 봄이 사람을 쫓아 왔다라는 표현을 한 것이다.
주007)
  : 맑은 가을에. [淡]-+ ㅎ+. 〈중간본〉은 ‘’이다. ¶다 : 이 衆生이 禪定  믌겨레 고 愛欲 흐린 믌겨 그치니라〈영가 서:5ㄴ〉 / 노  湘水ㅅ 돐 서리예 거스리 녀가 수플 서리예 섯고롸(崷崒清湘石 逆行雜林藪)〈두시 2:49ㄴ〉.
주008)
엄복야(嚴僕射) : 엄무(嚴武)를 가리키는 말. 엄무는 죽은 뒤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되었다.
주009)
정억왕시엄복야 공영중사망향대(正憶往時嚴僕射 共迎中使望鄉䑓) : “지난날 엄무와 함께 사신을 맞았던 때를 생각한다.”는 말로, 촉 땅에 있으면서 두보가 엄무와 함께 했던 일을 추억한 것이다.
주010)
니건  : 지나간 때. 닉[熟]-+거+ㄴ ᄢᅴ[時]. ‘니건’은 『두시언해』에 자주 쓰였는데 주로 ‘날, 달, , 계절’ 등과 연결되어 쓰인다. 현대국어의 ‘지난’과 유사하다. ¶니건 : 올히 바 가난타 호 香嚴이 니샤 니건  가난호 가난티 아니더니 옰 가난이 實로 가난토다〈남명 상:8ㄴ〉 / 萬物ㅅ 비치 生長 디 兼야 잇도소니 凄凉호 니건  노라(物色兼生意 凄凉憶去年)〈두시 3:29ㄴ〉.
주011)
복야(僕射) : 관직 이름. 진(秦)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다. 시중(侍中), 서경, 박사(博士), 알자(謁者) 등의 관직에 모두 복야가 있었다. 후한(後漢) 때는 상서복야(尙書僕射)가 설치되어 상서령을 보좌했다가, 권한이 점점 커져 좌․우 복야로 나뉘었다. 위진(魏晉) 이후 상서령(尙書令)과 동격으로서 재상이 되었다. 당나라 초에는 우복야가 상서성 장관이 되어 중서령(中書令), 시중과 동급의 위치에 있었다. 남송(南宋) 이후 폐지되었다.
주012)
중사(中使) : 황제의 주변에서 일을 보는 사람. 환관과 같은 사람을 말한다.
주013)
망향대(望鄕臺) : 성도(成都) 북쪽에 있는 누대. 두보는 엄무의 막료로 있을 때 일찍이 엄무와 함께 망향대에서 중사를 영접한 적이 있다.
주014)
노라 : 생각하노라. 추억하노라. 원문의 ‘억(憶)’에 대한 번역이다.
주015)
주은(主恩) : 황은(皇恩). 엄무는 일찍이 황은을 입어 중용되었다.
주016)
지절(持節) : 관직(官職) 이름. 위진(魏晉) 이후 우사지절(有使持節)·지절(持節)·가절(假節)·가사절(假使節) 등이 있었다. 그 권한은 크고 작은 차이가 있었지만, 모두 자사(刺史)가 되어 군융(軍戎)을 총괄했다. 당(唐)나라 초기에는 제주(諸州)의 자사에 지절이란 이름을 더했고, 이후 절도사(節度使)가 있어 마침내 지절이란 말은 없어졌다.
주017)
삼지절(三持節) : 엄무가 세 차례 지절을 들고, 촉(蜀) 지역에 진주한 것을 가리킨다. 엄무는 처음에 어사중승(御史中丞)으로 면주자사(綿州刺史)가 되었고, 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로 옮겼다. 다시 성도윤(成都尹)이 되고, 나중에 다시 황문시랑(黃門侍郞)으로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에 올랐다. 그래서 ‘삼지절’이라 말한 것이다.
주018)
주은전후삼지절 군령분명수거배(主恩前後三持節 軍令分明數舉盃) : “임금의 은혜로 여러 차례 지절을 지내고, 군중에서 군율을 엄격하게 적용하면서 술을 마셨다.”는 말로, 군정(軍政)이 명확하고 정숙해 별다른 일이 없는 까닭에 술잔의 즐거움이 있음을 말했다.
주019)
# 자사(刺史) : 관직 이름. 전한(前漢) 무제(武帝) 원봉(元封) 5년(기원전 106) 전국을 13부(部)로 나누고 부마다 중앙에서 파견한 자사 1인을 두었다. 자사는 관할 부를 순행하면서, 호족이나 군(郡)의 태수를 감찰했다. 성제(成帝) 대 자사를 주목(州牧)으로 개칭했고, 후한(後漢) 초 다시 자사로, 후한 영제(靈帝) 때 또다시 주목으로 바꾸었다. 초기에는 지위가 군수(郡守) 아래였지만 이후 군수보다 한 단계 높았으며, 군정(軍政) 대권을 맡기도 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각 주에 자사를 설치하여 도독(都督)을 겸임토록 했다. 이대 장군이란 칭호가 붙여졌으며, 권한도 한층 높았다. 수대 이후 주의 자사는 군의 태수와 같은 직급이거나 태수의 별칭으로 쓰였으며, 권력도 점차 낮아졌다. 송 이후 중앙에서 자사를 파견했지만, 실제로 부임하지 않았으며, 습관상 태수를 자사라고 불렀다. 청(淸)나라 역시 주 지사(知事)의 별칭으로 쓰였다.
주020)
몬져 : 먼저.
주021)
가지니 : 가지니. 가지[持]-+니.
주022)
조 : 자주. [數]-+오. ‘오’는 부사화접미사이다.
주023)
드더니라 : 들더라. 들었다. 들[入]-+더+니+라.
주024)
서촉지형천하험 안위수장출군재(西蜀地形天下險 安危須仗出群材) : “서촉 지역이 험준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를 편안히 지키려면 특출한 능력의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엄무(嚴武)와 같은 사람을 얻어, 진주시켜야 안정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주025)
서촉(西蜀) :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옛날에는 촉(蜀) 땅이었는데, 위치가 서방에 있어 ‘서촉’으로 불렸다.
주026)
바라오 : 위험함을. 바랍[危]-+오+ㅁ+. ¶바랍다 : 그 지비 오라 고  허러 堂舍ㅣ 노파 바라오며 긷 불휘 것거 서그며 보 리 기울며 基陛ㅣ 믈어디며 담과 괘 허러 디며  론 거시 허러 드르며 두푼 애 어즈러이 드르며 셰 츼여 디며 휫두루 막고 고  雜 더러운 거시 거늘〈법화 2:103ㄴ〉 / 슬프다 나 매 들 일허 쟝 늘구매 艱難야 바라오 맛낫노라(嗟余竟轗軻 將老逢艱危)〈두시 2:54ㄱ〉.
주027)
편안(便安)히 홀뎬 : 편안히 하면. -+ㄹ뎬. ‘-ㄹ뎬’은 조건의 의미로 쓰였다. ¶-ㄹ뎬 : 몬졋 法을 體호려 뎬 모로매 두 行이 兼야 妙로셔 普샤 始作이 이시며 미 이신 후에 圓備릴〈석상 21:20ㄴ〉 / 화 혈뎬 반기 세니 혀며 사 뎬 반기 기니 며(挽弓當挽強 用箭當用長)〈두시 5:28ㄱ〉.
주028)
모로매 : 모름지기. 모[不知]-+오+ㅁ+애.
주029)
의장(倚仗)야 리라 : 의장(倚仗)해야 하리라. 의지해야 할 것이다. ‘-’는 ‘-야’에 해당하는 강세첨사이다. 〈중간본〉은 ‘倚仗야아’이다. ¶- : 믈읫 字ㅣ 모로매 어우러 소리 이니〈훈언13ㄱ〉 / 죄 업서 名位 늣거 호니 省郞 더듸 호 敢히 츠기 너겨리아(不才名位晚 敢恨省郞遲)〈두시 3:1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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