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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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의 노래를 재미 삼아 지어[戲作花卿歌]


戲作花卿歌 주001)
희작화경가(戲作花卿歌)
이 시는 상원(上元) 2년(761) 두보 50세 때 성도(成都)의 초당(草堂)에서 지어졌다. 화경(花卿)은 이름이 화경정(花敬定)이다. 상원 2년(761) 4월 재주자사(梓州刺史) 단자장(段子璋)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양왕(梁王)이라 칭하였다. 5월 성도윤(成都尹) 최광원(崔光遠)의 아장(牙將)이었던 화경정이 반란 평정에 참가하여, 단자장의 목을 베었다. 화경정은 자신이 세운 공을 믿고, 동촉(東蜀)을 크게 노략질했다. 이 때문에 성도윤이던 최광원은 화경정의 잔악무도한 행위를 막지 못한 일로 파면되었으며, 이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끝내 죽었다. 이 작품은 화경정의 뛰어난 용맹을 높이 사면서도, 잔악무도한 일을 자행하고 있으므로, 그를 반군의 수괴가 있는 동도 낙양으로 보내라고 주문하고 있다.
【名 敬定이라】

희작화경가
(화경의 노래를 재미 삼아 지어)
【이름은 경정이다.】

成都猛將有花卿 주002)
화경(花卿)
화경정(花敬定). ?-?. 화경정(花驚定)으로도 쓴다. 당나라 때 사람. 이른 시기에는 성도윤(成都尹) 최광원(崔光遠)의 부장(部將)을 지냈다. 숙종(肅宗) 상원(上元) 2년(761) 재주자사(梓州剌使) 단자장(段子璋)이 촉(蜀)에서 반란을 일으켜, 면주(綿州)에서 왕족이었던 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 이환(李奂)을 습격하고, 스스로 양왕(梁王)이라 불렀다. 이 해 5월 16일 성도윤 최광원의 부하였던 그는 면주를 공격해 수복하고, 단자장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세운 공에 자만해서 불법을 자행하고 군대를 풀어 약탈을 일삼았는데, 심지어 부인(婦人)의 수족을 잘라 금팔찌를 빼앗기도 하였다고 한다. 단자장의 잔당이 달아나 단릉(丹棱) 죽림사(竹林寺) 철통산(鐵桶山, 지금의 사천 丹陵縣 경내)에 숨으니, 그가 그대로 추격했지만 병사들이 피곤에 지쳐, 성공하지 못했다. 나중에 거꾸로 반란군에게 참살(斬殺)되었다. 그에 대한 두보(杜甫)의 시로는 이 시 이외에도 『두시언해』 권16에 「증화경(贈花卿)」이 더 있다. 경(卿)은 관료나 남성에 대한 존칭어이다.
學語小兒知姓名
주003)
성도맹장유화경 학어소아지성명(成都猛將有花卿 學語小兒知姓名)
『남사(南史)⋅환강전(桓康傳)』에, 제(齊)나라 환강이 무제(武帝)를 따라 거병하여 상대를 꺾고 군진을 무너뜨리면서 용맹함이 남달랐는데, 지나가는 촌락마다 살육을 자행해 강남(江南) 사람들이 두려워해서 그 이름만 들어도 어린아이들이 벌벌 떨었다. 화경정(花敬定)이 난을 평정하는 기간에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죽였지만, 최광원이 이를 금지하지 못했다.

成都 주004)
성도(成都)
전국시대부터 있어 온 도시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촉(蜀)의 수도였고, 진(秦)과 전한(前漢) 때는 촉군(蜀郡)이 관할하는 성도현(成都縣)이 설치되었으며, 후한(後漢) 때에는 익주(益州)의 통치도 겸하게 했다. 삼국시대 때 유비(劉備)가 촉한을 통일하고 이곳에다 수도를 건립했다. 삼국시대에는 촉한(蜀漢)의 중심지로서 번영했으며, 당나라의 현종(玄宗)은 안사(安史)의 난 때에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수당(隋唐)시대 때는 장안(長安), 양주(揚州), 돈황(敦煌)과 함께 4대 도시였다. 옛날부터 방직업이 발달되었고, 1928년에 사천성의 성도(省都)가 설치되었다.
애 勇猛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40ㄱ

將軍이 花卿이 잇니 주005)
장군(將軍)이 화경(花卿)이 잇니
장군이 화경이 있으니. ‘잇다’를 서술어로 가지는 이중주어문으로 원시의 ‘成都猛將有花卿’를 옮긴 것이다.
호 주006)
호
배우는. 호[習]-+.
효 주007)
효
작은. 15세기 국어에서 유사한 의미로 ‘쟉다, 젹다, 횩다’ 등이 있다. ¶쟉다 : 槐花  업거든 깁오 쟉게 비븨여 바늘티 야〈구급방 하:82ㄱ〉 / 젹다 : 모미 크긔 외야 虛空애 야 잇다가  젹긔 외며〈석상 6:34ㄱ〉 / 오직 새 져믄 사 맛나고 親 넷 벋 맛나미 젹도다(但遇新少年 少逢親舊友)〈두시 2:48ㄴ〉 / 횩다 : 파 열네 줄기 불휘 조쳐 횩게 사로니 그르세 담고〈구간 3:104ㄴ〉 / 횩뎍다 : 위여 水族이 버렛니 횩뎌근 거슨 足히 일훔디 몯리로다〈두시 22:18ㄴ〉 / 욼과 밧긔 여러 곳다온 거시 할 횩뎌근 거슬 야 中堂애 올오라(籬邊野外多衆芳 采擷細瑣升中堂)〈두시 18:1ㄴ〉.
아 니르리 주008)
아 니르리
아이에까지. 아이에 이르기까지. ‘니르리’는 원시의 대응하는 한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번역을 위해서 쓰인 것이다.
姓과 일후믈 아다

【한자음】 성도맹장유화경 학어소아지성명
【언해역】 성도(成都)에 용맹한 장군 화경(花卿)이 있으니, 말 배우는 작은 아이에 이르기까지 성(姓)과 이름을 아네!

주009)
용(用)
행동. 움직임.
如快 주010)
골(鶻)
맹금(猛禽)의 일종으로 송골매를 가리킨다.
風火生 주011)
풍화생(風火生)
바람과 불이 일어나다. 즉 대단히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것을 비유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남조 양나라 때 사람인 조경종(曹景宗, 457-508)이 사냥에 빠진 일을 경계하면서, “귀 뒤에서 바람이 일고 코끝에서 불이 일어나야 깨달으니, 이 즐거움은 사람에게 죽음도 잊게 만든다.(覺耳後風生 鼻頭火出 此樂使人忘死)”고 하였다.
見賊唯多身始輕
주012)
용여쾌골풍화생 견적유다신시경(用如快鶻風火生 見賊唯多身始輕)
화경정(花敬定)의 빠른 행동과 두둑한 배짱을 노래하고 있다.

미 주013)
미
씀이. [用]-+우+ㅁ+이.
난 주014)
난
날랜. +나+ㄴ. ¶나다 : 夜叉 나고 모디다 혼 디니〈월석 1:14ㄴ〉 / 軍卒ㅣ 마 輯睦니 여러 녀매 나며 勇猛니 뵈아갓놋다(士卒既輯睦 啓行促精悍)〈두시 2:52ㄱ〉.
매 고 주015)
매 고
매 같고. [同]-+고. ¶다 : 디 아니 形으로 서르 로미 다 올며〈능엄 7:84ㄱ〉 / 큰 城은 구두미 쇠도 디 몯고 져근 城은 기릐 一萬 丈이 남도다(大城鐵不如 小城萬丈餘)〈두시 4:6ㄴ〉 / 다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 머므디 몯놋다〈석상 3:17ㄱ〉 / 내 얼구른 본로 과 나모 토니  타  므레 왓노라(形骸元土木 舟楫復江湖)〈두시 2:15ㄴ〉.
매 블 나 니 주016)
블 나 니
불 나는 듯하니. ‘니’도 원시에 대응하는 한자는 없지만 선행어인 ‘如快鶻’에 ‘如’가 있기 때문에 이를 미루어 번역된 것이다.
盜賊의 오직 하 주017)
하
많음을. 하[多]-+ㅁ+.
보고 주018)
보고
보고서야. 보[見]-+고+. 〈중간본〉은 ‘보고아’이다.
모미 비르수 주019)
비르수
비로소. ¶비르수 : 旄頭ㅣ 처엄 비르수 어즈러우니 鶉首ㅣ 즌  버므러디도다(旄頭初俶擾 鶉首麗泥塗)〈두시 2:11ㄱ〉 / 비로수 : 賢 主人이 이 주어 시르믈 보내예 호 비로수 알와라(始知賢主人 贈此遣愁寂)〈두시(중) 7:23ㄴ〉 / 비로소 : 史記 에  권이며 반 권 이을 닐거 비로소 효를 볼 거시니〈번소 8:35ㄱ〉 / 丈人 비로소 니서 드르라 賤子ㅣ 請 다 베퍼 닐오리라(丈人試靜聽 賤子請具陳)〈두시 19:1ㄴ〉 / 비루수 : 비루수 이 乾坤애 王室이 正도소니 도혀 江漢앳 客의 넉스로 여 에 다(始是乾坤王室正 却敎江漢客魂銷)〈두시(중) 5:22ㄴ〉.
가얍니라 주020)
가얍니라
가벼우니라. 가볍다. 가얍[輕]-++니+라. ¶가얍다 : 輕은 가야 씨라〈훈언 12ㄱ〉 / 부드러운 치 가야온 며기 밧기로소니 슬픈 들 머거셔 네 어디로 아노라(柔櫓軽鷗外 含悽覺汝賢)〈두시 2:6ㄱ〉.

【한자음】 용여쾌골풍화생 견적유다신시경
【언해역】 씀이 날랜 매 같고 바람에 불 일어나는 듯하니, 오직 도적의 많음을 보고서야 몸이 비로소 가볍네!

緜州副使 주021)
면주부사(緜州副使)
반란을 일으켰던 단자장(段子璋)을 가리킨다. 면주는 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가 주둔하는 땅으로, 당시 이환(李奐)이 동천절도사이었는데, 단자장은 부사(副使) 겸 재주자사(梓州剌使)에 올랐다. 단자장이 반란을 일으켜 면주를 습격하자, 이환은 성도(成都)로 도망갔다. 단자장은 면주를 거점으로 황제라 칭하면서, 면주를 황룡부(黃龍府)로 삼아 백관을 임명했다. ‘재주(梓州)’의 오기라는 설도 있으나, 여기서는 단자장이 면주부사와 재주자사를 겸임했다는 설을 따른다.
着柘黃 주022)
착자황(着柘黃)
적황색 옷을 입다. 적황색은 제왕의 복색이므로, 단자장(段子璋)이 반란을 도모하였음을 뜻한다. 자황(柘黃)은 산뽕나무 즙으로 염색한 적황색(赤黃色) 염료로 수당(隋唐) 이래로 제왕의 복색이 되었다. 자(柘)가 자(赭)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我卿掃除即日平
주023)
면주부사착자황 아경소제즉일평(緜州副使着柘黃 我卿掃除即日平)
“면주부사로 있던 단자장이 반란을 일으키자, 화경 장군이 일거에 섬멸해 나라를 평안하게 했다.”는 말이다.
【柘黃 天子ㅅ 服色이니 言緜州副使段子璋 주024)
단자장(段子璋)
?-761. 당나라 때 사람. 용맹했으며 전투를 잘 했다. 현종(玄宗)이 촉(蜀)으로 달아났을 때 어가(御駕)를 모셔 공을 세웠다. 숙종(肅宗) 상원(上元) 연간에 재주자사(梓州刺史)가 되었다. 상원 2년(761)에 병사를 일으켜, 면주(綿州)에서 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 이환(李奐)을 습격하자, 이환이 패하여 성도(成都)로 달아났다. 그는 양왕(梁王)이라 자칭하여, 황룡(黃龍)으로 개원(改元)하고, 면주를 용안부(龍安府)로 고친 뒤 여러 백관을 두었다. 또 검주(劍州)를 공격해 함락시키도 하였다. 얼마 뒤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 최광원(崔光遠)이 토벌해 평정할 때 단자장에 의해 피살당했다.
이 叛而僣天子之服也ㅣ라】

緜州ㅅ 副使ㅣ 주025)
면주(緜州)ㅅ 부사(副使)ㅣ
면주(緜州) 부사가. 즉 반란을 일으켰던 단자장(段子璋)을 말한다. ‘부사’는 절도사(節度使)나 삼사사(三司使) 등을 보좌하는 부직(副職)을 말한다.
누른 오 주026)
누른 오
누런 옷을. 즉 황제의 옷을 말한다.
니버늘 주027)
니버늘
입거늘.
우리 주028)
우리
우리. 1인칭 복수대명사.
花卿이 러 려 주029)
러 려
쓸어 버려. [掃]-+어 리-+어. ¶다 : 掃  씨오 箒 뷔라〈능엄 5:45ㄴ〉 / 즈믄 지비 오직  오 門 닫고 사 이 말오 잇도다(千室但掃地 閉關人事休)〈두시 10:21ㄱ〉.
即日에 平오니라 주030)
평(平)오니라
평온하게 한다. 平#+이+오+니+라.

【한자음】 면주부사착자황 아경소제즉일평【‘자황(柘黃)’은 천자의 옷 색깔이니, 면주자사(緜州刺使) 단자장(段子璋)이 반란을 일으켜 천자의 옷을 함부로 입은 것을 말한다.】
【언해역】 면주(緜州)부사가 누른 옷을 입거늘, 우리 화경(花卿)이 쓸어 버려, 그 날에 평안하게 하였네!

子璋 주031)
자장(子璋)
장(璋)이 장(章)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髑髏 주032)
촉루(髑髏)
해골.
模糊 주033)
모호(模糊)
분명하지 않은 모양. 즉 단자장(段子璋)의 해골이 필에 젖은 모양이다.
手提擲還 주034)
수제척환(手提擲還)
손애 들고 던져준다. 즉 공을 주장인 최광원에게 돌린 것을 말한다.
崔大夫 주035)
최대부(崔大夫)
성도윤(成都尹) 최광원(崔光遠).
주036)
자장촉루혈모호 수제척환최대부(子璋髑髏血模糊 手提擲還崔大夫)
반란군의 수괴 단자장(段子璋)을 참수하여, 난을 평정한 것을 서술하고 있다.
【髑髏 頭骨이라 子璋이 叛커 劒南節度使崔光遠 주037)
최광원(崔光遠)
?-761. 당나라 박릉(博陵) 사람. 현종(玄宗) 개원(開元) 말에 당안령(唐安令)이 되고, 거듭 승진하여 경조소윤(京兆少尹)이 되었다. 현종이 촉(蜀)으로 달아나자 황명으로 그를 경조윤(京兆尹)으로 남게 했다. 안녹산(安祿山)이 입경(入京)하자, 그에게 원래의 관직을 내렸다. 나중에 영무(靈武)로 가니, 숙종(肅宗)이 어사대부(御史大夫)로 발탁했다. 난이 평정된 뒤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오르고, 업국공(鄴國公)에 봉해졌다. 거듭 승진하여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에 올랐다. 단자장(段子璋)을 토평(討平)할 때 병사들의 약탈을 금지시키지 못해 논죄되었으며, 이로 인해 근심 속에 죽었다.
이 使花卿로 討殺之니라】

子璋 머리에 주038)
머리에
머리뼈에. 머리++에. ¶ : 를 그처 骨髓 내오 두  우의여 내니〈석상 11:21ㄱ〉 / 萬古애 주거  외요미 가지어 이옷 지븨셔 서 놀애 브르리도 이시며 울리도 잇도다(萬古一骸骨 隣家遞歌哭)〈두시 2:58ㄴ〉.
무드닐 주039)
무드닐
묻은 이를. 묻은 것을. 묻[埋]-+은#이+ㄹ.
주040)
子璋 머리에 피 무드닐
단자장(段子璋)의 머리뼈에 피가 무든 것을. 즉 피가 묻은 단자장(段子璋)의 머리뼈를. ‘[[[子璋 머리에 피 묻-]은] 이]를’과 같이 분석된다.
소로 주041)
소로
손으로. 손+로.
자바 주042)
자바
잡아. 잡[執]-+아.
崔大夫의 알 주043)
최대부(崔大夫)의 알
최 대부의 앞에.
더디니라 주044)
더디니라
던지니라. 던진다. 더디[投]-+니+라. ¶더디다 :  婇女ㅣ 末利花鬘 가져 드러 太子ㅅ 모  太子ㅣ 도 아니야 보신대 그 각시 도로 글어 밧긔 내야 더디니라〈석상 3:24ㄴ〉 / 막다히 더디고 門으로 나가니   가 사미 爲야 고 싀히 너기다(投杖出門去 同行爲辛酸)〈두시 4:9ㄱ〉.

【한자음】 자장촉루혈모호 수제척환최대부【‘촉루(髑髏)’는 머리뼈다. 단자장(段子璋)이 반란을 일으키니, 검남절도사(劒南節度使) 최광원(崔光遠)이 화경정(花敬定)으로 하여금 토벌해 죽이게 하였다.】
【언해역】 단자장(段子璋)의 머리뼈에 피 묻은 것을, 손으로 잡아 최 대부(崔大夫)의 앞에 던지니라.

분류두공부시언해 권5:40ㄴ

주045)
이후(李侯)
이환(李奐)을 가리킨다.
重有此節度 人道我卿絕世無 주046)
절세무(絶世無)
세상에 견줄 자가 없이 가장 뛰어나다. ‘세(世)’는 ‘대(代)’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47)
이후중유차절도 인도아경절세무(李侯重有此節度 人道我卿絕世無)
“이환이 다시 절도사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화경정 같은 이는 다시 없을 것이라 말했다.”는 뜻으로, 화경정의 뛰어남을 칭송한 말이다.
【東川節度使李奐 주048)
이환(李奐)
?-?. 당나라 종실의 후예. 현종(玄宗) 천보(天寶) 중에 구주(衢州)와 황주(黃州)의 자사(刺史)를 지냈고, 방어사(防禦使)를 겸하면서 제북군왕(濟北郡王)을 이어받았다. 천보 14년(755)에 하간군(河間郡)을 지켰는데, 사사명(史思明)의 군대에 함락되자 포로로 잡혀 동경(東京)으로 압송되었다. 숙종(肅宗) 건원(乾元) 원년(758)에 상주자사(商州刺史)와 흥평절도사(興平節度使)에 올랐다. 다음 해 예주(豫州)와 허주(許州), 여주(汝州)의 절도사를 지냈다. 검남동천(劍南東川)으로 진을 옮겼다. 상원(上元) 2년(761) 단자장(段子璋)이 반란을 일으켜 동천을 습격했는데, 패하여 성도(成都)로 달아나, 난이 평정된 뒤에야 복직했다.
이 見敗於子障이러니 及花卿이 誅子璋야 得還本鎭니라】

李侯ㅣ 이 節度 다시 두니 주049)
다시 두니
다시 가지니. 두[有]-+니. 원시의 ‘유(有)’의 번역이다. ‘유(有)’는 대체로 ‘잇다’로 번역되지만 ‘두다’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다. 고려시대의 석독구결에서도 ‘잇다’에 해당하는 ‘有’과 ‘두다’에 해당하는 ‘有’가 있다. 『두시언해』에서는 ‘잇다’는 주로 ‘有, 在’의 번역으로 쓰이고, ‘두다’는 주로 ‘置, 存’의 번역으로 쓰였다. ¶잇다[有, 在] : 녀 비츤 서르 수므락 나락 니 사 짒  時로 이시락 업스락 놋다(行色遞隱見 人煙時有無)〈두시 2:4ㄴ〉 / 危乱 便安케  大臣ㅣ 인니 나 엇디 구틔여 므를 기리 흘리리오(安危大臣在 何必淚長流)〈두시 2:1ㄴ〉 / 두다(置,存,在) : 驛 둔 밧긔 소 因아 술  짓 壚 爲야 얻노라(因聲置驛外 爲覔酒家壚)〈두시 2:18ㄴ〉 / 惣戎 큰 體 두워고 降服 將軍  마 미놋다(惣戎存大體 降將飾卑詞)〈두시 3:3ㄴ〉.
사미 닐오 우리 花卿이 世예 그처 업다 다 주050)
우리 화경(花卿)이 세(世)예 그처 업다 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없다. 우리 장군 세상에 다시 없다. 즉 그 공적이 전무후무하다는 뜻이다.

【한자음】 이후중유차절도 인도아경절세무【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 이환(李奐)이 단자장(段子璋)에게 패하였으나, 화경정(花敬定)이 단자장을 주살(誅殺)하여, 본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언해역】 이후(李侯)가 이 절도사를 다시 두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리 화경(花卿)이 당세(當世)에 끊어져 없다 한다.

稱絕世無 주051)
칭절세무(稱絕世無)
앞 구에서 사람들이 화경정을 ‘대대로 끊임이 없다(絕世無)’라 말한다는 구절이 있었다.
天子 何不喚取京都 주052)
경도(京都)
낙양(洛陽). 이때 낙양은 사사명(史思明)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다.
주053)
수경도(守京都)
경도 즉 낙양을 지키게 하다. 원문의 ‘수(守)’는 ‘지키게 하다’라는 뜻을 사동사이다. 언해에서도 ‘守이디’로 되어 있다. ‘경(京)’은 ‘동(東)’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54)
기칭절세무천자 하불환취수경도(既稱絕世無天子 何不喚取守京都)
이미 촉의 난리를 평정하였으니, 계속 남아서 노략질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마 주055)
마
이미.
世예 그처 업다 주056)
세(世)예 그처 업다
세상에 끊어져 없다. 원시의 ‘절세무(絶世無)’를 번역한 것으로 이 구절은 바로 앞 구절에서도 쓰인 표현이다.
니거시니 주057)
니거시니
말하니. 니[謂]-+거+시+니. ¶니다 : 王이 大愛道려 니샤 太子 뫼셔 天神 祭  절리라〈석상 3:3ㄴ〉 / 河陽애 요이 사홈 乘勝호믈 니거 듣노니 司徒ㅣ 리 爲야 幽燕 헤티리로다(聞道河陽近乘勝 司徒急爲破幽燕)〈두시 2:2ㄱ〉.
天子 엇뎨 주058)
엇뎨
어찌.
블러다가 주059)
블러다가
불러다가. 브르[招]-+어+다+가. ‘-다가’는 ‘중단’을 의미하는 연결어미로 기능이 현대국어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브르다 : 太子ㅣ 車匿이 브르샤〈석상 3:29ㄴ〉 / 죵 대수흘 들워가 말거 져믄 아 구룸   드러가셔 브르놋다(僕夫穿竹語 稚子入雲呼)〈두시 2:4ㄴ〉 / -다가 : 仙人히 이여다가 王 받대〈석상 3:6ㄱ〉 / 여다홉  데 훤히 노다가 西ㅅ 녀크로 도라가 咸陽애 니르로라(快意八九年 西歸到咸陽)〈두시 2:41ㄱ〉.
京都 주060)
경도(京都)
수도를. 즉 장안(長安)을.
守이디 주061)
수(守)이디
지키게 하지. 守#+ㅣ+이+디. ‘ㅣ’와 ‘이’는 모두 사동접미사이다. ‘한자어 어근#-’ 동사에 사동접미사 두 개가 붙은 표현은 『두시언해』에도 한 예가 더 있으며 15세기의 다른 문헌에도 간간이 보인다. ¶이 : 마 世예 그처 업다 니거시니 天子 엇뎨 블러다가 京都 守이디 아니시뇨(既稱絕世無天子 何不喚取守京都)〈두시 5:40ㄴ〉 / 대  받오샤 아 벼슬이시고〈삼강동경 충:34ㄴ〉.
아니시뇨 주062)
아니시뇨
아니하시는가? 아니#-+시++니+오.
Ⓒ 편찬 | 유윤겸, 유휴복, 조위, 의침 등 / 1481년(성종 12)

【한자음】 기칭절세무천자 하불환취수경도
【언해역】 이미 당세(當世)에 끊어져 없다 이르시니, 천자는 어찌 불러다가 경도(京都)를 지키게 하지 않으시는가?
Ⓒ 역자 | 김영배, 김성주 / 2017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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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주001)
희작화경가(戲作花卿歌) : 이 시는 상원(上元) 2년(761) 두보 50세 때 성도(成都)의 초당(草堂)에서 지어졌다. 화경(花卿)은 이름이 화경정(花敬定)이다. 상원 2년(761) 4월 재주자사(梓州刺史) 단자장(段子璋)이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양왕(梁王)이라 칭하였다. 5월 성도윤(成都尹) 최광원(崔光遠)의 아장(牙將)이었던 화경정이 반란 평정에 참가하여, 단자장의 목을 베었다. 화경정은 자신이 세운 공을 믿고, 동촉(東蜀)을 크게 노략질했다. 이 때문에 성도윤이던 최광원은 화경정의 잔악무도한 행위를 막지 못한 일로 파면되었으며, 이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끝내 죽었다. 이 작품은 화경정의 뛰어난 용맹을 높이 사면서도, 잔악무도한 일을 자행하고 있으므로, 그를 반군의 수괴가 있는 동도 낙양으로 보내라고 주문하고 있다.
주002)
화경(花卿) : 화경정(花敬定). ?-?. 화경정(花驚定)으로도 쓴다. 당나라 때 사람. 이른 시기에는 성도윤(成都尹) 최광원(崔光遠)의 부장(部將)을 지냈다. 숙종(肅宗) 상원(上元) 2년(761) 재주자사(梓州剌使) 단자장(段子璋)이 촉(蜀)에서 반란을 일으켜, 면주(綿州)에서 왕족이었던 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 이환(李奂)을 습격하고, 스스로 양왕(梁王)이라 불렀다. 이 해 5월 16일 성도윤 최광원의 부하였던 그는 면주를 공격해 수복하고, 단자장을 처형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세운 공에 자만해서 불법을 자행하고 군대를 풀어 약탈을 일삼았는데, 심지어 부인(婦人)의 수족을 잘라 금팔찌를 빼앗기도 하였다고 한다. 단자장의 잔당이 달아나 단릉(丹棱) 죽림사(竹林寺) 철통산(鐵桶山, 지금의 사천 丹陵縣 경내)에 숨으니, 그가 그대로 추격했지만 병사들이 피곤에 지쳐, 성공하지 못했다. 나중에 거꾸로 반란군에게 참살(斬殺)되었다. 그에 대한 두보(杜甫)의 시로는 이 시 이외에도 『두시언해』 권16에 「증화경(贈花卿)」이 더 있다. 경(卿)은 관료나 남성에 대한 존칭어이다.
주003)
성도맹장유화경 학어소아지성명(成都猛將有花卿 學語小兒知姓名) : 『남사(南史)⋅환강전(桓康傳)』에, 제(齊)나라 환강이 무제(武帝)를 따라 거병하여 상대를 꺾고 군진을 무너뜨리면서 용맹함이 남달랐는데, 지나가는 촌락마다 살육을 자행해 강남(江南) 사람들이 두려워해서 그 이름만 들어도 어린아이들이 벌벌 떨었다. 화경정(花敬定)이 난을 평정하는 기간에 백성들을 마구잡이로 죽였지만, 최광원이 이를 금지하지 못했다.
주004)
성도(成都) : 전국시대부터 있어 온 도시로 춘추전국시대에는 촉(蜀)의 수도였고, 진(秦)과 전한(前漢) 때는 촉군(蜀郡)이 관할하는 성도현(成都縣)이 설치되었으며, 후한(後漢) 때에는 익주(益州)의 통치도 겸하게 했다. 삼국시대 때 유비(劉備)가 촉한을 통일하고 이곳에다 수도를 건립했다. 삼국시대에는 촉한(蜀漢)의 중심지로서 번영했으며, 당나라의 현종(玄宗)은 안사(安史)의 난 때에 이곳으로 피신하였다. 수당(隋唐)시대 때는 장안(長安), 양주(揚州), 돈황(敦煌)과 함께 4대 도시였다. 옛날부터 방직업이 발달되었고, 1928년에 사천성의 성도(省都)가 설치되었다.
주005)
장군(將軍)이 화경(花卿)이 잇니 : 장군이 화경이 있으니. ‘잇다’를 서술어로 가지는 이중주어문으로 원시의 ‘成都猛將有花卿’를 옮긴 것이다.
주006)
호 : 배우는. 호[習]-+.
주007)
효 : 작은. 15세기 국어에서 유사한 의미로 ‘쟉다, 젹다, 횩다’ 등이 있다. ¶쟉다 : 槐花  업거든 깁오 쟉게 비븨여 바늘티 야〈구급방 하:82ㄱ〉 / 젹다 : 모미 크긔 외야 虛空애 야 잇다가  젹긔 외며〈석상 6:34ㄱ〉 / 오직 새 져믄 사 맛나고 親 넷 벋 맛나미 젹도다(但遇新少年 少逢親舊友)〈두시 2:48ㄴ〉 / 횩다 : 파 열네 줄기 불휘 조쳐 횩게 사로니 그르세 담고〈구간 3:104ㄴ〉 / 횩뎍다 : 위여 水族이 버렛니 횩뎌근 거슨 足히 일훔디 몯리로다〈두시 22:18ㄴ〉 / 욼과 밧긔 여러 곳다온 거시 할 횩뎌근 거슬 야 中堂애 올오라(籬邊野外多衆芳 采擷細瑣升中堂)〈두시 18:1ㄴ〉.
주008)
아 니르리 : 아이에까지. 아이에 이르기까지. ‘니르리’는 원시의 대응하는 한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번역을 위해서 쓰인 것이다.
주009)
용(用) : 행동. 움직임.
주010)
골(鶻) : 맹금(猛禽)의 일종으로 송골매를 가리킨다.
주011)
풍화생(風火生) : 바람과 불이 일어나다. 즉 대단히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것을 비유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남조 양나라 때 사람인 조경종(曹景宗, 457-508)이 사냥에 빠진 일을 경계하면서, “귀 뒤에서 바람이 일고 코끝에서 불이 일어나야 깨달으니, 이 즐거움은 사람에게 죽음도 잊게 만든다.(覺耳後風生 鼻頭火出 此樂使人忘死)”고 하였다.
주012)
용여쾌골풍화생 견적유다신시경(用如快鶻風火生 見賊唯多身始輕) : 화경정(花敬定)의 빠른 행동과 두둑한 배짱을 노래하고 있다.
주013)
미 : 씀이. [用]-+우+ㅁ+이.
주014)
난 : 날랜. +나+ㄴ. ¶나다 : 夜叉 나고 모디다 혼 디니〈월석 1:14ㄴ〉 / 軍卒ㅣ 마 輯睦니 여러 녀매 나며 勇猛니 뵈아갓놋다(士卒既輯睦 啓行促精悍)〈두시 2:52ㄱ〉.
주015)
매 고 : 매 같고. [同]-+고. ¶다 : 디 아니 形으로 서르 로미 다 올며〈능엄 7:84ㄱ〉 / 큰 城은 구두미 쇠도 디 몯고 져근 城은 기릐 一萬 丈이 남도다(大城鐵不如 小城萬丈餘)〈두시 4:6ㄴ〉 / 다 : 太子ㅣ 니샤 사 목수미 흐를 믈 야 머므디 몯놋다〈석상 3:17ㄱ〉 / 내 얼구른 본로 과 나모 토니  타  므레 왓노라(形骸元土木 舟楫復江湖)〈두시 2:15ㄴ〉.
주016)
블 나 니 : 불 나는 듯하니. ‘니’도 원시에 대응하는 한자는 없지만 선행어인 ‘如快鶻’에 ‘如’가 있기 때문에 이를 미루어 번역된 것이다.
주017)
하 : 많음을. 하[多]-+ㅁ+.
주018)
보고 : 보고서야. 보[見]-+고+. 〈중간본〉은 ‘보고아’이다.
주019)
비르수 : 비로소. ¶비르수 : 旄頭ㅣ 처엄 비르수 어즈러우니 鶉首ㅣ 즌  버므러디도다(旄頭初俶擾 鶉首麗泥塗)〈두시 2:11ㄱ〉 / 비로수 : 賢 主人이 이 주어 시르믈 보내예 호 비로수 알와라(始知賢主人 贈此遣愁寂)〈두시(중) 7:23ㄴ〉 / 비로소 : 史記 에  권이며 반 권 이을 닐거 비로소 효를 볼 거시니〈번소 8:35ㄱ〉 / 丈人 비로소 니서 드르라 賤子ㅣ 請 다 베퍼 닐오리라(丈人試靜聽 賤子請具陳)〈두시 19:1ㄴ〉 / 비루수 : 비루수 이 乾坤애 王室이 正도소니 도혀 江漢앳 客의 넉스로 여 에 다(始是乾坤王室正 却敎江漢客魂銷)〈두시(중) 5:22ㄴ〉.
주020)
가얍니라 : 가벼우니라. 가볍다. 가얍[輕]-++니+라. ¶가얍다 : 輕은 가야 씨라〈훈언 12ㄱ〉 / 부드러운 치 가야온 며기 밧기로소니 슬픈 들 머거셔 네 어디로 아노라(柔櫓軽鷗外 含悽覺汝賢)〈두시 2:6ㄱ〉.
주021)
면주부사(緜州副使) : 반란을 일으켰던 단자장(段子璋)을 가리킨다. 면주는 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가 주둔하는 땅으로, 당시 이환(李奐)이 동천절도사이었는데, 단자장은 부사(副使) 겸 재주자사(梓州剌使)에 올랐다. 단자장이 반란을 일으켜 면주를 습격하자, 이환은 성도(成都)로 도망갔다. 단자장은 면주를 거점으로 황제라 칭하면서, 면주를 황룡부(黃龍府)로 삼아 백관을 임명했다. ‘재주(梓州)’의 오기라는 설도 있으나, 여기서는 단자장이 면주부사와 재주자사를 겸임했다는 설을 따른다.
주022)
착자황(着柘黃) : 적황색 옷을 입다. 적황색은 제왕의 복색이므로, 단자장(段子璋)이 반란을 도모하였음을 뜻한다. 자황(柘黃)은 산뽕나무 즙으로 염색한 적황색(赤黃色) 염료로 수당(隋唐) 이래로 제왕의 복색이 되었다. 자(柘)가 자(赭)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23)
면주부사착자황 아경소제즉일평(緜州副使着柘黃 我卿掃除即日平) : “면주부사로 있던 단자장이 반란을 일으키자, 화경 장군이 일거에 섬멸해 나라를 평안하게 했다.”는 말이다.
주024)
단자장(段子璋) : ?-761. 당나라 때 사람. 용맹했으며 전투를 잘 했다. 현종(玄宗)이 촉(蜀)으로 달아났을 때 어가(御駕)를 모셔 공을 세웠다. 숙종(肅宗) 상원(上元) 연간에 재주자사(梓州刺史)가 되었다. 상원 2년(761)에 병사를 일으켜, 면주(綿州)에서 동천절도사(東川節度使) 이환(李奐)을 습격하자, 이환이 패하여 성도(成都)로 달아났다. 그는 양왕(梁王)이라 자칭하여, 황룡(黃龍)으로 개원(改元)하고, 면주를 용안부(龍安府)로 고친 뒤 여러 백관을 두었다. 또 검주(劍州)를 공격해 함락시키도 하였다. 얼마 뒤 서천절도사(西川節度使) 최광원(崔光遠)이 토벌해 평정할 때 단자장에 의해 피살당했다.
주025)
면주(緜州)ㅅ 부사(副使)ㅣ : 면주(緜州) 부사가. 즉 반란을 일으켰던 단자장(段子璋)을 말한다. ‘부사’는 절도사(節度使)나 삼사사(三司使) 등을 보좌하는 부직(副職)을 말한다.
주026)
누른 오 : 누런 옷을. 즉 황제의 옷을 말한다.
주027)
니버늘 : 입거늘.
주028)
우리 : 우리. 1인칭 복수대명사.
주029)
러 려 : 쓸어 버려. [掃]-+어 리-+어. ¶다 : 掃  씨오 箒 뷔라〈능엄 5:45ㄴ〉 / 즈믄 지비 오직  오 門 닫고 사 이 말오 잇도다(千室但掃地 閉關人事休)〈두시 10:21ㄱ〉.
주030)
평(平)오니라 : 평온하게 한다. 平#+이+오+니+라.
주031)
자장(子璋) : 장(璋)이 장(章)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32)
촉루(髑髏) : 해골.
주033)
모호(模糊) : 분명하지 않은 모양. 즉 단자장(段子璋)의 해골이 필에 젖은 모양이다.
주034)
수제척환(手提擲還) : 손애 들고 던져준다. 즉 공을 주장인 최광원에게 돌린 것을 말한다.
주035)
최대부(崔大夫) : 성도윤(成都尹) 최광원(崔光遠).
주036)
자장촉루혈모호 수제척환최대부(子璋髑髏血模糊 手提擲還崔大夫) : 반란군의 수괴 단자장(段子璋)을 참수하여, 난을 평정한 것을 서술하고 있다.
주037)
최광원(崔光遠) : ?-761. 당나라 박릉(博陵) 사람. 현종(玄宗) 개원(開元) 말에 당안령(唐安令)이 되고, 거듭 승진하여 경조소윤(京兆少尹)이 되었다. 현종이 촉(蜀)으로 달아나자 황명으로 그를 경조윤(京兆尹)으로 남게 했다. 안녹산(安祿山)이 입경(入京)하자, 그에게 원래의 관직을 내렸다. 나중에 영무(靈武)로 가니, 숙종(肅宗)이 어사대부(御史大夫)로 발탁했다. 난이 평정된 뒤 예부상서(禮部尙書)에 오르고, 업국공(鄴國公)에 봉해졌다. 거듭 승진하여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에 올랐다. 단자장(段子璋)을 토평(討平)할 때 병사들의 약탈을 금지시키지 못해 논죄되었으며, 이로 인해 근심 속에 죽었다.
주038)
머리에 : 머리뼈에. 머리++에. ¶ : 를 그처 骨髓 내오 두  우의여 내니〈석상 11:21ㄱ〉 / 萬古애 주거  외요미 가지어 이옷 지븨셔 서 놀애 브르리도 이시며 울리도 잇도다(萬古一骸骨 隣家遞歌哭)〈두시 2:58ㄴ〉.
주039)
무드닐 : 묻은 이를. 묻은 것을. 묻[埋]-+은#이+ㄹ.
주040)
子璋 머리에 피 무드닐 : 단자장(段子璋)의 머리뼈에 피가 무든 것을. 즉 피가 묻은 단자장(段子璋)의 머리뼈를. ‘[[[子璋 머리에 피 묻-]은] 이]를’과 같이 분석된다.
주041)
소로 : 손으로. 손+로.
주042)
자바 : 잡아. 잡[執]-+아.
주043)
최대부(崔大夫)의 알 : 최 대부의 앞에.
주044)
더디니라 : 던지니라. 던진다. 더디[投]-+니+라. ¶더디다 :  婇女ㅣ 末利花鬘 가져 드러 太子ㅅ 모  太子ㅣ 도 아니야 보신대 그 각시 도로 글어 밧긔 내야 더디니라〈석상 3:24ㄴ〉 / 막다히 더디고 門으로 나가니   가 사미 爲야 고 싀히 너기다(投杖出門去 同行爲辛酸)〈두시 4:9ㄱ〉.
주045)
이후(李侯) : 이환(李奐)을 가리킨다.
주046)
절세무(絶世無) : 세상에 견줄 자가 없이 가장 뛰어나다. ‘세(世)’는 ‘대(代)’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47)
이후중유차절도 인도아경절세무(李侯重有此節度 人道我卿絕世無) : “이환이 다시 절도사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화경정 같은 이는 다시 없을 것이라 말했다.”는 뜻으로, 화경정의 뛰어남을 칭송한 말이다.
주048)
이환(李奐) : ?-?. 당나라 종실의 후예. 현종(玄宗) 천보(天寶) 중에 구주(衢州)와 황주(黃州)의 자사(刺史)를 지냈고, 방어사(防禦使)를 겸하면서 제북군왕(濟北郡王)을 이어받았다. 천보 14년(755)에 하간군(河間郡)을 지켰는데, 사사명(史思明)의 군대에 함락되자 포로로 잡혀 동경(東京)으로 압송되었다. 숙종(肅宗) 건원(乾元) 원년(758)에 상주자사(商州刺史)와 흥평절도사(興平節度使)에 올랐다. 다음 해 예주(豫州)와 허주(許州), 여주(汝州)의 절도사를 지냈다. 검남동천(劍南東川)으로 진을 옮겼다. 상원(上元) 2년(761) 단자장(段子璋)이 반란을 일으켜 동천을 습격했는데, 패하여 성도(成都)로 달아나, 난이 평정된 뒤에야 복직했다.
주049)
다시 두니 : 다시 가지니. 두[有]-+니. 원시의 ‘유(有)’의 번역이다. ‘유(有)’는 대체로 ‘잇다’로 번역되지만 ‘두다’로 번역되는 경우도 있다. 고려시대의 석독구결에서도 ‘잇다’에 해당하는 ‘有’과 ‘두다’에 해당하는 ‘有’가 있다. 『두시언해』에서는 ‘잇다’는 주로 ‘有, 在’의 번역으로 쓰이고, ‘두다’는 주로 ‘置, 存’의 번역으로 쓰였다. ¶잇다[有, 在] : 녀 비츤 서르 수므락 나락 니 사 짒  時로 이시락 업스락 놋다(行色遞隱見 人煙時有無)〈두시 2:4ㄴ〉 / 危乱 便安케  大臣ㅣ 인니 나 엇디 구틔여 므를 기리 흘리리오(安危大臣在 何必淚長流)〈두시 2:1ㄴ〉 / 두다(置,存,在) : 驛 둔 밧긔 소 因아 술  짓 壚 爲야 얻노라(因聲置驛外 爲覔酒家壚)〈두시 2:18ㄴ〉 / 惣戎 큰 體 두워고 降服 將軍  마 미놋다(惣戎存大體 降將飾卑詞)〈두시 3:3ㄴ〉.
주050)
우리 화경(花卿)이 세(世)예 그처 업다 다 : 세상이 끝날 때까지 없다. 우리 장군 세상에 다시 없다. 즉 그 공적이 전무후무하다는 뜻이다.
주051)
칭절세무(稱絕世無) : 앞 구에서 사람들이 화경정을 ‘대대로 끊임이 없다(絕世無)’라 말한다는 구절이 있었다.
주052)
경도(京都) : 낙양(洛陽). 이때 낙양은 사사명(史思明)에 의해 점령되어 있었다.
주053)
수경도(守京都) : 경도 즉 낙양을 지키게 하다. 원문의 ‘수(守)’는 ‘지키게 하다’라는 뜻을 사동사이다. 언해에서도 ‘守이디’로 되어 있다. ‘경(京)’은 ‘동(東)’으로 되어 있는 판본도 있다.
주054)
기칭절세무천자 하불환취수경도(既稱絕世無天子 何不喚取守京都) : 이미 촉의 난리를 평정하였으니, 계속 남아서 노략질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주055)
마 : 이미.
주056)
세(世)예 그처 업다 : 세상에 끊어져 없다. 원시의 ‘절세무(絶世無)’를 번역한 것으로 이 구절은 바로 앞 구절에서도 쓰인 표현이다.
주057)
니거시니 : 말하니. 니[謂]-+거+시+니. ¶니다 : 王이 大愛道려 니샤 太子 뫼셔 天神 祭  절리라〈석상 3:3ㄴ〉 / 河陽애 요이 사홈 乘勝호믈 니거 듣노니 司徒ㅣ 리 爲야 幽燕 헤티리로다(聞道河陽近乘勝 司徒急爲破幽燕)〈두시 2:2ㄱ〉.
주058)
엇뎨 : 어찌.
주059)
블러다가 : 불러다가. 브르[招]-+어+다+가. ‘-다가’는 ‘중단’을 의미하는 연결어미로 기능이 현대국어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브르다 : 太子ㅣ 車匿이 브르샤〈석상 3:29ㄴ〉 / 죵 대수흘 들워가 말거 져믄 아 구룸   드러가셔 브르놋다(僕夫穿竹語 稚子入雲呼)〈두시 2:4ㄴ〉 / -다가 : 仙人히 이여다가 王 받대〈석상 3:6ㄱ〉 / 여다홉  데 훤히 노다가 西ㅅ 녀크로 도라가 咸陽애 니르로라(快意八九年 西歸到咸陽)〈두시 2:41ㄱ〉.
주060)
경도(京都) : 수도를. 즉 장안(長安)을.
주061)
수(守)이디 : 지키게 하지. 守#+ㅣ+이+디. ‘ㅣ’와 ‘이’는 모두 사동접미사이다. ‘한자어 어근#-’ 동사에 사동접미사 두 개가 붙은 표현은 『두시언해』에도 한 예가 더 있으며 15세기의 다른 문헌에도 간간이 보인다. ¶이 : 마 世예 그처 업다 니거시니 天子 엇뎨 블러다가 京都 守이디 아니시뇨(既稱絕世無天子 何不喚取守京都)〈두시 5:40ㄴ〉 / 대  받오샤 아 벼슬이시고〈삼강동경 충:34ㄴ〉.
주062)
아니시뇨 : 아니하시는가? 아니#-+시++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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