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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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47ㄱ

夫釋迦佛之八萬敎海 汪洋浩渺 廣大無邊 故有望源迷派者 有見派迷源者 頗多矣 此觀音菩薩之六字神呪 功迢曠劫 德勝河沙 故或念一知十者 或誦百證千者 甚衆也 然此法門板本 於東國未曾有也 湖南後人遁世堂 中華內出本文 偶然而得之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47ㄴ

欲壽於榟 流傳於世 積有年矣 關西平原府韓金裵公等 同心戮力 發大誓願 盡捨三家之財寶 傍募四境之皂白 請工鋟榟 印出行世 此三公等 眞可謂善繼觀音佛之本願 洞開東國人之心目者矣 且事始於嘉靖之庚申 刀落於庚申之孟夏 韓等因請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48ㄱ

後跋於余 余因辭曰 學問不如遠安 文章不牟李杜 況此密敎密意 藏於虛空骨中 故師不傳於弟 弟不受於師 余何弄筆於其間 獲罪於後世者也 但記施功年月 不忘公等之名目云爾
書寫 주001)
서사(書寫):
이 발문에서는 간행의 연월일은 물론, 발문을 쓴 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간기의 마지막에 간행 사찰을 명기하지 않고, 사찰 이름을 빈 칸으로 둔 것과 같은 맥락으로 간기를 쓸 때까지 간행 사찰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발문 작성자도 밝히지 않고 있다. 서사는 단지 베껴 쓰는 일에 불과해서 영리(營吏)인 김은정이 옮겨 쓰기만 했을 뿐 작성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肅川居營吏金殷鼎
Ⓒ 글씨 | 김은정 / 2000년 9월 일

석가모니불의 팔만장경에 담긴 가르침은 넓고도 아득하여 광대하기가 끝이 없다. 때문에 근원을 바라보다 지류를 놓치는 자며 지류를 쳐다보다 근원을 놓치는 자들이 파다하다. 이 관음보살의 육자신주(六字神呪)는 그 공이 억겁의 세월을 넘어서고 그 덕이 갠지스강의 모래알보다도 많다. 하여 혹 하나를 생각하여 열을 아는 자, 혹 백을 외워 천을 깨닫는 자들이 줄을 잇는다.
그러나 이 법문(法門)의 판본은 우리 동국에 일찍이 없었다. 호남의 후인(後人) 둔세당(遁世堂) 주002)
호남의 후인(後人) 둔세당(遁世堂):
이 발문에서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의 저본이거나 참고로 했던 책을 중국에서 구해 온 이로 되어 있을 뿐, 그에 대한 기록으로 전해지는 내용이 없어서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이 중국에서 나온 본문을 우연히 얻어 목판에 길이 새겨 세상에 전하고자 한 것이 몇 해가 되었다. 관서
(關西; 평안도)
평원부(平原府)의 한천손(韓千孫), 주003)
한천손(韓千孫):
시주질에 알선(斡善) 한천손(韓千孫) 양주(兩主)라는 소개가 있다. 이 책의 간행을 위해 정재(淨財)를 보시하는 등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물로 보인다.
김억근(金億斤), 주004)
김억근(金億斤):
시주질에도 나오는 이름이다. 이 책의 간행을 위해 정재를 보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로 보인다.
배만돌(裴萬乭) 주005)
배만돌(裴萬乭):
시주질에도 나오는 이름이다. 이 책의 간행을 위해 정재를 보시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로 보인다.
공 등이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 큰 서원(誓願)을 일으켜 세 집안의 재화와 보물을 남김없이 내놓고, 사방의 승려와 속인을 널리 불러 모아 각수(刻手)에게 판각을 맡겼다. 그리하여 이 책을 찍어내 세상에 유통시키니, 이 세 공이야말로 참으로 관음보살이 지닌 본래의 서원을 훌륭하게 잇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환히 열어준 분이라고 하겠다.
이 불사는 가정(嘉靖) 경신년(1560)에 시작하여 같은 해 초여름에 마무리를 지었다. 이에 한 공 등이 나에게 뒤에 붙일 발문을 부탁하였으나 나는 이렇게 사양하였다.
“학문은 원안(遠安) 주006)
원안(遠安):
학덕이 높아 우러를 만한 업적이 있는 학자일 것으로 짐작될 뿐, 대상을 특정하기가 어렵다.
만 못하고, 문장은 이백·두보 주007)
이두(李杜):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와 나란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이 밀교(密敎)의 은미한 뜻은 허공의 뼈 속에 감추어져 있어 스승이라도 제자에게 전할 수 없고 제자도 스승으로부터 받을 수 없거늘, 내가 어찌 그 가운데 함부로 붓을 놀려 후세에 죄를 짓겠습니까? 다만 일을 이룬 해와 달을 기록하여 공들의 이름이 잊히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글씨 : 숙천(肅川) 주008)
숙천(肅川):
조선 때, 평안도의 지명. 진국(鎭國) 또는 평원(平原), 숙주(肅州)라고도 불렀다. 숙천도호부가 있었다.
영리(營吏) 주009)
영리 (營吏):
조선 때, 감영이나 군영, 수영에 딸려 있던 아전.
주010)
이 발문(跋文) 등의 한글 번역은 동국대 국어국문학부의 양승목 박사가 해 주었다. 특별히 적어서 감사의 뜻을 새긴다.
김은정(金殷鼎). 주011)
김은정(金殷鼎):
숙천부의 영리(營吏)로 이 발문의 글씨를 쓴 사람이다. 발문의 원고 작성자는 아니다.
Ⓒ 역자 | 김영배 / 2000년 9월 일

주석
주001)
서사(書寫):이 발문에서는 간행의 연월일은 물론, 발문을 쓴 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그것은 간기의 마지막에 간행 사찰을 명기하지 않고, 사찰 이름을 빈 칸으로 둔 것과 같은 맥락으로 간기를 쓸 때까지 간행 사찰이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발문 작성자도 밝히지 않고 있다. 서사는 단지 베껴 쓰는 일에 불과해서 영리(營吏)인 김은정이 옮겨 쓰기만 했을 뿐 작성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주002)
호남의 후인(後人) 둔세당(遁世堂):이 발문에서 ‘성관자재구수육자선정’의 저본이거나 참고로 했던 책을 중국에서 구해 온 이로 되어 있을 뿐, 그에 대한 기록으로 전해지는 내용이 없어서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없다.
주003)
한천손(韓千孫):시주질에 알선(斡善) 한천손(韓千孫) 양주(兩主)라는 소개가 있다. 이 책의 간행을 위해 정재(淨財)를 보시하는 등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물로 보인다.
주004)
김억근(金億斤):시주질에도 나오는 이름이다. 이 책의 간행을 위해 정재를 보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로 보인다.
주005)
배만돌(裴萬乭):시주질에도 나오는 이름이다. 이 책의 간행을 위해 정재를 보시를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로 보인다.
주006)
원안(遠安):학덕이 높아 우러를 만한 업적이 있는 학자일 것으로 짐작될 뿐, 대상을 특정하기가 어렵다.
주007)
이두(李杜):이백(李白)과 두보(杜甫)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주008)
숙천(肅川):조선 때, 평안도의 지명. 진국(鎭國) 또는 평원(平原), 숙주(肅州)라고도 불렀다. 숙천도호부가 있었다.
주009)
영리 (營吏):조선 때, 감영이나 군영, 수영에 딸려 있던 아전.
주010)
:이 발문(跋文) 등의 한글 번역은 동국대 국어국문학부의 양승목 박사가 해 주었다. 특별히 적어서 감사의 뜻을 새긴다.
주011)
김은정(金殷鼎):숙천부의 영리(營吏)로 이 발문의 글씨를 쓴 사람이다. 발문의 원고 작성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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