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 불정심다라니경언해

  • 역주 불정심다라니경언해
인쇄 의견 제시
역주 불정심다라니경언해
역주 불정심다라니경언해

조선조 성종(成宗) 16년(成化 21, 1485 A.D.) 을사(乙巳) 2월에, 당시의 고승(高僧)이었던 학조(學祖)가 인수왕대비(仁粹王大妃)의 뜻에 의하여 간행한 불경 언해서이다. 다른 불교 언해서와는 다르게 구결문 없이 변상도(變相圖)와 경(經)의 원문을 권의 앞쪽에 편집하고 언해문을 따로 뒤쪽에 배치한 특징이 있다. 변상도가 있는 앞부분은 목판본으로 뒷부분은 을해자 활자본으로 간행

김무봉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석사·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논문〉

「중세국어의 동명사 연구」(1987)
「고어사전 미수록 어휘에 대하여」(1992)
「금강경 언해의 서지 및 어학적 고찰」(1993)
「반야심경 언해의 국어학적 연구 (문법)」(1995)
「중세국어의 선어말어미 -ㅅ-에 대한 연구」(1996)
「상원사어첩 및 중창권선문의 국어사적 고찰」(1996)
「고행록의 문법」(1998)
「15세기 국어사 자료 연구」(1999)
「장수경 언해 (동국대 도서관 소장본) 연구」(2001)
「조선시대 간경도감 간행의 한글 경전 연구」(2004)
「훈민정음 원본의 출판 문화재적 가치」(2006) 외.

〈저·역서〉

「염불보권문의 국어학적 연구」(공저, 1996)
「아미타경 언해의 국어학적 연구」(공저, 1997)
「세종문화사 대계」(공저, 1998)
「한산이씨 고행록의 어문학적 연구」(공저, 1999)
「몽산화상 법어약록 언해」(2002)
「법화경 언해 권5」(2002)
「원각경 언해 권6」(2005)
「불교문학 연구의 모색과 전망」(공저, 2005)
「육조법보단경언해 상」(2006)
「육조법보단경언해 하」(2007) 외.

역주위원

  • 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 : 김무봉

  • 교열·윤문·색인위원

  • 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 : 박종국 홍현보
  • 편집위원

  • 위원장 : 박종국
  • 위원 : 강병식 김구진 김석득
  • 나일성 노원복 박병천
  • 오명준 이창림 이해철
  • 전상운 정태섭 차재경
  • 최기호 최홍식 한무희
  • 홍민표

역주 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내면서

우리 회가 추진하는 한글 고전역주사업은 1990년에 착수, 1991년부터 그 성과물을 내고 있는 사업으로, 그동안 역주하여 간행한 문헌과 책수는 ≪석보상절≫ 2책, ≪월인석보≫ 6책, ≪능엄경언해≫ 5책, ≪법화경언해≫ 7책, ≪원각경언해≫ 9책, ≪남명집언해≫ 2책,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 1책, ≪구급방언해≫ 2책, ≪금강경삼가해≫ 5책, ≪선종영가집언해≫ 2책, ≪육조법보단경언해≫ 3책. ≪구급간이방언해≫ 1책 등 모두 45책이다.

우리 회는 세종성왕 탄신 611돌인 올해를 맞아 한글고전역주사업으로 ≪원각경언해≫ 1책을 펴내어 권10을 완간하고, ≪구급간이방언해≫ 3책과, ≪월인석보≫ 2책을 이어 펴내며, 새롭게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언해≫ 1책과 ≪불설아미타경언해,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묶어 1책으로 펴내어 모두 8책을 역주해 펴내기로 하였는데, 이번에 불설아미타경과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묶어 ≪역주 불설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 1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아미타경언해〉는 중국 요진(姚秦) 홍시(弘始) 4년(402 A.D.)에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문으로 번역한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에다가, 수(隋)나라의 천태대사(天台大師) 지의(智顗)(A.D. 538~597)가 주석을 붙여 펴낸 한문본 〈불설아미타경〉을 저본으로 하여, 조선조 세조 10년(1464)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목판본의 불경언해서이다. 세조가 직접 구결을 달고 번역을 해서 1권 1책으로 간행한 것으로서, 즉 권두서명처럼 언해본의 갖은 이름은 〈불설아미타경〉이다.

〈아미타경〉은 정토교의 근본 경전 중 하나로 ‘무량수경(無量壽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과 더불어 정토(淨土) 3부경(三部經)이라고 불린다. ‘무량수경’을 ‘대경(大經)’이라고 하는데 대해서 ‘아미타경’을 ‘소경(小經)’, 또는 ‘미타경’이라 하기도 하고, 경 가운데 나오는 구절을 따서 ‘일체제불소호념경(一切諸佛所護念經)’ 또는 이를 줄여서 ‘호념경(護念經)’이라고도 한다.

이 불경 언해에서는 같은 해에 간행된 〈선종영가집언해〉(1월), 〈금강경언해〉(4월), 〈반야심경언해〉(4월)에 비해 앞선 시기의 표기법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월인석보〉나 활자본 〈아미타경언해〉(?1461)의 영향을 입었기 때문이다.

목판본 〈아미타경언해〉는 같은 해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는 쓰이지 않던 ‘ㅸ’과 ‘ㆆ’이 나타나고 협주의 시작과 끝에 흑어미 표지를 두지 않으며, 방점 표기에서 어말의 거성(去聲)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활자본의 영향을 입은 표기가 보인다. 그러나 구결문의 정음 구결에 방점을 찍지 않고, 언해문의 협주에 한글 소활자(小活字)를 사용하는 등 전반적인 체재는 간경도감본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이번에 우리 회에서 역주하여 출판하는 〈역주 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원간본의 복각본 〈아미타경언해〉와 원간본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영인의 저본으로 하였다.

이 책의 해제와 역주를 담당한 동국대학교 김무봉 교수님과 본 역주 사업을 위하여 지원해 준 교육과학기술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이 책의 발간에 여러모로 수고하여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08년 12월 20일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회장 박종국

일러두기

1. 역주 목적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히 전개되어 우리 말글로 기록된 다수의 언해류 고전과 한글 관계 문헌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말이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어서 15, 16세기의 우리말을 연구하는 전문학자가 아닌 다른 분야 학자나 일반인들은 이를 읽고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대어로 풀이와 주석을 곁들여 도움을 줌으로써 이 방면의 지식을 쌓으려는 일반인들에게 필독서가 되게 함은 물론이고, 우리 겨레의 얼이 스며 있는 옛 문헌의 접근을 꺼려하는 젊은 학도들에게 중세국어 국어국문학 연구 및 우리말 발달사 연구 등에 더욱 관심을 두게 하며, 나아가 주체성 있는 겨레 문화를 이어가는 데 이바지하고자 함에 역주의 목적이 있다.

2. 편찬 방침

(1) 이 〈아미타경언해·불정심다라니경언해〉 역주의 저본은 원간본의 복각본 〈아미타경언해〉와 원간본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기본으로 하고 다른 여러 이본들을 비교하였다.

(2) 이 책의 편집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 ‘① 한자 원문·② 언해문(방점은 없애고, 띄어쓰기함)·③ 현대어 풀이·④ 옛말과 불교용어 주해’의 차례로 조판하였으며, 또 원전과 비교하여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각 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원문의 장(張)·앞[ㄱ]·뒤[ㄴ] 쪽 표시를 아래와 같이 나타냈다.

〈보기〉

제2장 앞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2ㄱ後ㅅ  묻옴…

제2장 뒤쪽이 시작되는 글자 앞에 : …期限 2ㄴ이시리라…

(3) 두 언해본의 원문 형식이 각기 달라서, 〈아미타경언해〉는 경 본문 뒤에 언해문이 이어지는데,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앞(1쪽~23쪽)에 경 원문을 그림과 함께 새기고, 25쪽부터 언해문을 새겼다. 그래서 역주자의 의도에 따라 〈아미타경언해〉와 같이 〈불정심다라니경언해〉도 경 본문을 쪼개어서 언해문과 나란히 이어 붙이고, 그에 따른 현대문과 주석을 달았다. 단,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경 본문 부분을 좀더 굵은 네모틀로 편집하여 쪽수가 다르게 이어짐을 분명히 하였다.

(4) 각 언해문 뒤에 바로 현대역과 주해를 붙였는데, 현대역은 옛글과 ‘문법적으로 같은 값어치’의 글이 되도록 직역을 위주로 하였으며, 언해문 가운데 탈각과 분명히 오각(誤刻)으로 보이는 것은 [ ]안에 수정한 글자를 써넣었고, 협주(夾註)는 〈아미타경언해〉의 원문에는 없지만【 】 표시로 구분하였다.

(5) 현대어 풀이에서, 옛글 구문(構文)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보충한 말은 〈 〉 안에 넣었고, 언해문과 음은 다르지만 문맥 의미가 같다고 판단되는 것은 (= ) 안에 넣었다.

(6) 주해 풀이에서 자료 예시문은 ¶으로 시작하고,형태소 분석의 ‘#’은 어절 사이를 나타내며, ‘Ø’는 무형의 형태소를 나타낸다. 단, 주해 올림말의 한자음 표기는 오늘날의 한자음을 기준으로 하였다.

(7) 찾아보기 배열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성 : ㄱ ㄲ ㄴ ㄷ ㄸ ㄹ ㅁ ᄝ ㅂ ㅃ    ᄢ ᄣ ᄩ  ㅅ ㅆ     ㅇ ᅇ  ᅙ ㅈ ㅉ ㅊ ㅋ ㅌ ㅍ ㅎ 

② 중성 : ㅏㅐㅑㅒㅓㅔㅕㅖㅗㅘㅙㅚㅛㆉㅜㅝㅞㅟㅠㆌㅡㅢㅣ·ㆎ

③ 종성 : ㄱ ㄴ  ㄵ ㄶ ㄷ ㄹ     ㄽ ㅬ ㄾ ㄿ ㅀ ㅭ ㅀ ㅁ   ㅰ ㅂ ㅄ ㅅ ㅺ ㅼ ㅿ ㆁ ㅈ ㅊ ㅋ ㅌ ㅍ ㅎ

불정심다라니경언해 해제

김무봉(동국대 교수)

Ⅰ. 머리말

1.1.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조선조 성종(成宗) 16년(成化 21, 1485 A.D.) 을사(乙巳) 2월에, 당시의 고승(高僧)이었던 학조(學祖)가 간행한 불경언해서이다. 3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각 권의 권명(卷名)은 서로 조금씩 다르다. 각 권에 실려 있는 내용을 반영하여 명칭을 달리 붙인 때문일 것이다. 언해 경위 및 편찬자 등에 대해서는, 원문과 언해문 사이[24장 앞뒤]에 장철(張綴)되어 있는 학조의 발문(跋文)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주001)

책의 간행 경위 등에 대해서는, 원문 뒤에 첨부되어 있는 학조(學祖)의 발문에 의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역주의 뒤에 한문으로 된 학조의 발문(跋文)을 우리말로 옮겨 놓았다. 번역에 도움을 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김갑기 교수와 불교학과 해주(海住) 스님께 특히 적어서 고마운 뜻을 표한다.
발문(跋文)을 쓴 학조가 바로 책의 편찬·간행자이고, 인수왕대비(仁粹王大妃)의 뜻에 의하여 간행한 책임을 밝히고 있다.

이보다 앞서 간경도감(刊經都監) 등에서 간행된 책들이 주로 대승경전류(大乘經典類)의 언해본이거나 선(禪) 수행(修行) 지침서들의 언해본인데 비해, 다라니경(陀羅尼經)의 언해서인 이 책 주002)

이하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필요에 따라 ‘이 책’, 또는 ‘이 경전’이라 부를 것이다.
은 다른 언해본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우선 언해 체제와 판식 등에서 큰 차이가 난다. 다른 언해서들은 대체로 경(經)의 원문(原文)이나 경소(經疏)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한 대문(大文)씩 단락(段落)을 짓고, 이어서 원문에 구결을 단 구결문(口訣文)을 둔 후, 구결문을 바탕으로 하여 번역을 했다. 이른바 언해(諺解)를 행한 것이다. 언해의 방법은 대역(對譯)의 형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구결문이 없다. 앞쪽[1장ㄱ~22장ㄴ] 주003)
장차(張次) 다음의 ‘ㄱ’은 장(張)의 앞면을 가리키고, ‘ㄴ’은 뒷면을 가리킨다. 이하 같다.
에 구결문 없이 변상도(變相圖)와 경(經)의 원문을 두고, 뒤쪽에 언해문을 별도로 두었다. 다만, 우리가 연구의 원전으로 삼고 있는 서울대 중앙도서관 소장의 이희승선생 구장본에는 이 책을 이용했던 이가 현토(懸吐)한 것으로 보이는 한자 약체자(略體字)로 된 자토(字吐) 구결이 있다. 그러나 이는 언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작성하는 구결문과는 성격이 다르다. 나중에 누군가가 기입(記入)해 넣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간(印刊) 양식도 달라서, 경(經)의 원문(原文)과 변상도가 있는 앞부분은 목판본(木版本)인데 비해, 언해문(諺解文)이 있는 뒷부분은 을해자(乙亥字)로 된 활자본이라는 점이다. 앞부분이 목판본인 이유는 각 면마다 상단(上段)에 하단(下段)에 있는 경(經) 원문(原文)의 내용을 형상화(形象化)한 그림[변상도(變相圖)]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든 출판 양식이 달라서 그러했겠지만 판식 등의 언해 체제는 말할 것도 없고, 번역 양상도 종전의 언해서들과는 사뭇 다르다. 원문 부분과 언해문 부분을 각기 따로 만들어서 합편(合編)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차이가 난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인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분리하면 별책(別冊)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실제로 숙종(肅宗) 37년(康熙 50년, 1711 A.D.)에 전라도 순창군(淳昌郡) 회문산(廻門山) 신광사(新光寺)에서 간행된 책(동국대학교 도서관 소장, D213.19 불73ㅅ)은 언해문 없이, 이 책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앞부분인 원문 부분과 동일한 판식의 복각(覆刻)으로 보이는 원문만으로 장책(粧冊)되어 있다. 그 책의 형태는 이 〈불정심다라니경언해〉에서 뒤쪽에 있는 언해문 부분을 삭제하고, 원문 부분만을 따로 떼어내 복각 인출(印出)한 후, 장정(裝幀)을 새롭게 한 분책의 모습이다. 원간본과 비교하면 판심(版心)에 변개(變改)가 있어서 판심(版心) 서명(書名)이 새로이 들어가는 등 다소의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복각본 판각 당시의 변형 정도로 보인다.

1.2. 저본(底本)인 한문본의 편찬자와 간행자 등에 관련된 정보는 별로 없다. 국내에서 한문 원문만으로 유통되는 경전 중 현전하는 간본이 다수 있기는 하지만, 언해된 책의 저본이 어떠한 책인지에 대해서는 따로 기록이 없고, 이 책의 어디에서도 단서가 될 만한 근거가 없다. 다만 학조의 발문에 의해 한문본이 당(唐)나라에서 편찬되었던 당나라본[唐本]임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주004)

‘爰 命工人 効唐本詳密 而圖之 楷正而寫之 鏤而刊之’[이에 공인(工人)에게 명하여 당(唐)나라본 책을 본받아 자세하고 세밀하게, 그리고 자획을 바르게 베껴서 활자로 간행하였다.] 〈학조의 발문 중에서 발췌〉.

그런데 이 경전의 한문본에 실려 있는 것과 같은 내용의 경(經)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좀 오래된 듯하다. 고려 시대인 13세기 초에 당대(當代)의 권세가(權勢家)였던 최충헌(崔忠獻)과 그의 아들인 우(瑀), 향(珦) 삼부자(三父子)의 호신(護身)을 위해 간행한 책인 휴대용[수진본(袖珍本)] 첩장(帖裝) 소자본(小字本)『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佛頂心觀世音菩薩大陀羅經)』(이원기님소장, 보물 691호) 3권(卷) 1첩(帖) 주005)

이 첩장본(帖裝本)의 도판(圖版) 등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천혜봉(1990:190) 참조.
의 내용이 이 책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한문 원문 부분과 일치한다. 이로 미루어 한문본이 우리나라에 유통된 시기와 한문본의 이름이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으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이보다 조금 뒤에 같은 이름의 책이 간행된 기록도 있어서 이를 뒷받침한다. 주006)
이보다 조금 뒤에도 같은 이름의 책이 간행된 기록이 있다. 고려 충렬왕 22년(丙申, 1296 A.D.)의 일이다. 김두종(1973:103) 참조.

그런가 하면 〈불정심다라니경언해〉 원간본의 소장자였던 이희승선생의 해제(1958)에 의하면, 표지에 「관음경(觀音經)」이라는 서외제(書外題)가 있었다고 한다. 주007)

이에 대해 이희승은 영인본의 해제(1958)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 영인본의 저본인 필자 소장본의 표지에는 「觀音經」이라 묵서(墨書)하였으니, 이 불정심경은 관음경의 일부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런데 관음경은 요진(姚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역한 「법화경」중에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보문품(普門品)만을 분리하여 한 경(經)으로 한 것이니,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제난(諸難)을 잘 구하여 소원을 이루어 주며, 또 33신(身)으로 양상과 자태를 달리하여 나타나서, 구호의 대상이 되는 수난자(受難者)에 적응(適應)한 법을 설하는 것이 상례라 한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저본으로 한 영인본의 서명이 「언해 관음경(諺解 觀音經)」으로 되어 있지만 『관음경』과는 별개의 책이다. 또한 조선 후기에 간행된 한문본 책의 서명 중에는 <서명>「다라니경(陀羅尼經)」 주008)
<정의>‘다라니경(陁羅尼經)’은 다라니를 문자로 옮겨 놓은 경전(經典)이다. ‘다라니(陁羅尼)’는 범문(梵文)을 번역하지 않고 음(音) 그대로 읽거나 외우는 것을 이른다. 총지(摠持) 또는 능지(能持)라고도 한다. 곧, 모든 악법(惡法)을 막거나 버리고 선법(善法)을 지킨다는 뜻이다. 번역을 하지 않는 이유는 원문 전체의 뜻이 한정(限定)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과 밀어(密語)라고 하여 다른 이에게는 비밀히 한다는 뜻이 있다. 흔히 짧은 구절을 ‘진언(眞言)’이나 ‘주(呪)’라 하고, 긴 구절로 된 것을 ‘다라니(陁羅尼)’, 또는 ‘대주(大呪)’라고 한다.
이라고 된 책도 보인다. 이 한문본 『다라니경(陀羅尼經)』은 책의 내용 때문인지 우리나라에 널리 유통되었던 듯하다. 주009)
마음을 오롯이 하여 읽고 지니면 재액(災厄)을 막거나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경전이기 때문이다.
많은 책들이 이름을 달리하여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어떻든 한문본인 〈불정심다라니경〉은 오늘날 동국대 도서관 등에 여러 책이 현전한다.

1.3. 또한 다른 언해본들에서처럼 이 책 역시 어디에서도 ‘언해’라는 표현은 찾을 수 없다. ‘언해(諺解)’라는 용어가 실록(實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세기 초반 무렵(1514년 4월 丁未條, ‘諺解醫書’)이다. 기록상으로는 「노박집람 범례(老朴集覽凡例)」(1510년대 초반, ‘兩書諺解’), 「사성통해서(四聲通解 序)」(1517년간, ‘諺解音義’), 「이륜행실도 서(二倫行實圖序)」(1518년간, ‘曰諺解正俗 諺解呂氏鄕約’) 등에 보이는 ‘언해(諺解)’라는 표현이다. 책명에 직접 언해가 쓰인 것은 16세기 후반의 〈소학언해(小學諺解)〉(1588년간)가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에서는 한문본과 한글본의 책이 같이 전해질 경우, 대체로 갑오경장(甲午更張) 이전에 간행된 정음(正音) 문헌 중 한글로 번역의 과정을 거친 책에 대해서는 한문본 책명 다음에 ‘언해’라는 용어를 써서 한문본과 구분하여 왔다. 주010)

‘언해(諺解)’의 개념 및 언해 경위, 언해본의 성격 등에 대해서는 김영배·김무봉(1998:307~415) 참조.
〈불정심다라니경언해〉도 마찬가지다. 언해된 부분이 원문과 별도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문 원문 부분과 동일(同一)한 제명(題名)을 언해문에 그대로 쓰고 있다.

1.4.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저 앞에서 밝힌 대로 조선조 성종(成宗) 16년(成化 21, 1485 A.D.) 2월에, 학조(學祖)에 의해 원간본이 간행된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간(重刊)되었다. 초간(初刊)이 왕실의 원력(願力)에 의해 조성된 것인데 비해, 이후에 중간된 책들은 대부분 지방의 사찰에서 간행된 이른바 사찰판본(寺刹板本)이다. 이러한 중간본들은 거의가 원간을 판밑으로 한 복각본(覆刻本)들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동국대 중앙도서관 등에 수종이 현전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경의 일부만을 음역(音譯)한 책도 있다. 19세기 말(高宗 13년, 1876 A.D.)에 간행된 양주(楊州) 천마산(天摩山) 보정사(寶晶寺) 간행의 책은 상권의 처음부터 두 번째 단락이라고 할 수 있는 모다라니(姥陀羅尼)까지만 음역을 했다. 또한 1569년 무등산 안심사(安心寺)에서 간행된 책은 모다라니만 음역이 되어 있다. 그 밖의 부분은 원문에 구두점만을 두었다. 독송(讀誦)의 중요성이 강조된 때문으로 판단한다. 이 중 널리 이용되는 판본은 고 이희승선생 구장본(舊藏本)이다. 1958년 정양사에서 이희승 선생의 해제를 붙여 영인된 후, 1974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재차 영인하여 일반에 널리 알려진 바 있다.

1.5.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표기법은 같은 해(1485년 A.D.)에 간행된 국역불서 〈영험약초언해(靈驗略抄諺解)〉 주011)

〈영험약초언해〉 역시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편찬·간행자인 당대(當代)의 고승(高僧) 학조(學祖)에 의해 을해자(乙亥字)로 간행되었다. ‘대비심다라니(大悲心陀羅尼), 수구즉득다라니(隨求卽得陀羅尼), 대불정다라니(大佛頂陀羅尼), 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陀羅尼)’ 등 네 가지 다라니의 영험담(靈驗談)을 모아서 번역한 책이다.
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두 책 모두 15세기 후반의 언어 사실이 반영되어 있다. 우리말 표기에서 ‘ㅸ’과 ‘ㆆ’은 쓰이지 않고, ‘ㅿ’과 ‘ㆁ’은 나타난다. 각자병서로는 드물게도 ‘ㅆ, ㅉ’이 쓰였다. 사이글자는 ‘ㅅ’으로 통일되었다. 그런가 하면 용언 어간 ‘-’가 무성자음 /ㄱ, ㄷ/ 등으로 시작되는 어미 ‘-거나, -거든, -고져, -더니, -게, -디’와 만날 경우, 대부분 격음화된 형태인 축약형으로 표기되었다. 두 책의 한자에는 동국정운(東國正韻) 한자음이 주음(注音)되어 있는데, 이 책들은 동국정운 한자음(漢字音)이 주음된 15세기 마지막 문헌이 될 것이다. 비록 일부에서의 예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정음표기의 특징 중 하나는, 한자어인 경우 이를 한자로 적지 않고 정음(正音)으로 쓴 예가 몇몇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한자어라는 인식이 이때 벌써 엷어졌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판단한다,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문장 구성은 상권의 앞부분과 하권의 예화(例話) 부분은 석존(釋尊)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고, 그 외에는 주로 경전의 편찬자인 설화자(說話者)가 〈불정심다라니경〉의 수지(受持)와 독송(讀誦)을 권(勸)하는, 이른바 설득하는 내용의 문장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 다라니경을 몸에 지니고 정성을 다해 읽으면 갖가지 재앙(災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설(勸說)하는 내용으로 된 문장들이다.

1.6. 이 책은 15세기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간(重刊)되었다. 왕실(王室)에서 인간(印刊)을 주도했던 초간본(初刊本)과는 달리, 불자(佛者)들이 널리 독송(讀誦)·수지(受持)하면서, 나중에는 지방의 사찰을 중심으로 유포(流布)의 범위(範圍)를 넓혀 간 듯하다. 언해본은 물론, 한문본도 여러 책이 현전한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불교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주012)

〈불정심다라니경〉은 밀교(密敎)의 경전인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경전을 온 마음으로 읽고 지니면 재액(災厄)을 막고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널리 유통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에 대해서는 학조(學祖)의 발문에서도 밝히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은 15세기 후반의 한국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책 중에 하나이다. 이 책과 같은 해에 간행된 〈영험약초언해〉 주013)
〈영험약초언해〉(1485년 간행)에 대해서는 김영배·김무봉(1998)참조.
등의 책을 통해 우리는 당시 한국어의 실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중세국어 시기의 매우 소중한 국어사자료 중 하나가 된다. 논의를 통해 어느 정도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제Ⅱ장에서는 이 책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형태서지(形態書誌)와 각 판본의 현황, 그리고 경(經)의 성격과 내용 등을 살필 것이고, 제Ⅲ장에서는 표기법 등 언어적 특성을 살펴서 이 책의 전반적인 특성과 국어사 자료로서의 가치를 밝힐 것이다.

Ⅱ. 형태서지 및 경(經)의 성격

2.1.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초간(初刊)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간(重刊)되었다. 대부분 초간본을 판밑으로 한 복각본(覆刻本)들이다. 현전하는 판본만도 상당수에 이른다. 여기서는 이 책의 형태서지(形態書誌)와 간본(刊本)의 현황, 그리고 경(經)의 성격 및 내용 등을 살피려고 한다. 우선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간단한 서지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간본은 현재 두 본(本)이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나는 보물 1108호로 지정되어 있는 호림(湖林)박물관 소장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희승선생 구장본(舊藏本)이었으나, 지금은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의 귀중본실에 소장되어 있는 책(일석貴 294.333 B872)이다. 이 논의는 주로 일반에 공개된 바 있는 서울대 중앙도서관 소장의 책 주014)

이 책은 원 소장자였던 이희승 선생의 해제를 붙여 1958년 정양사에서 〈아미타경언해〉 고성 운흥사본(1702년 A.D.간행)과 함께 영인이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74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재차 영인하였다. 그런데 앞의 주 7)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이 책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영인한 영인본에는 서명(書名)이 ‘언해(諺解) 관음경(觀音經)’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이희승 선생은 해제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의 표지에 관음경(觀音經)##‘이라는 묵서(墨書)가 있어서 그렇게 붙였다는 설명을 두었다. 그러나 이 책은 관음경과는 별개의 것이다.
을 대상으로 할 것이다. 따라서 서지사항은 주로 원간본인 그 책을 중심으로 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2.2. 이 책은 3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은 불정심다라니경(佛頂心陀羅尼經), 중권은 불정심요병구산방(佛頂心療病救産方), 하권은 불정심구난신험경(佛頂心救難神驗經)이다. 주015)

이 언해서의 책권이 3권 1책이라고 해도 초간 당시부터 분책(分冊)을 염두에 둔 장책(粧冊)은 아니었던 듯하다. 각 권의 내용이 그리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차도 권에 따라 나눠지지 않고 일련장차(一連張次)로 되어 있어서, 분권(分卷)이 장(張)의 중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판심에도 권차 표시는 없다. 각권의 내용이 서로 조금씩 달라서 내용이 달라지는 부분을 경계로 하여 분권(分卷)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의 지적대로 오히려 원문인 한문 부분과 언해문 부분을 합편(合編)한 형식으로 보인다.
각 권의 내용을 반영하여 권명(卷名)이 서로 조금씩 다르게 되어 있다. 저 앞에서의 지적대로 이 책의 언해 체제는 독특하다. 여타의 언해서들이 구결문을 앞쪽에 두고, 바로 이어서 그 구결문을 정음(正音)으로 옮긴 대역(對譯)의 형식을 취한데 비해, 이 책은 구결문 없이 언해문만을 책의 뒤쪽에 별도로 두었다. 그것도 원문과 언해문을 완전히 분리하여 앞쪽에는 변상도(變相圖)와 한문 원문만을 두고, 뒤쪽에 언해문을 별도로 배치했다.

대부분의 불전언해서들은 경(經)이나 경소(經疏)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단락을 짓고, 구결을 현토(懸吐)하여 구결문을 만든 뒤에 비로소 언해를 했다. 곧, 대역(對譯)의 형식인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은 형식이 다르다. 원문에 대당(對當)되는 언해문이 원문의 뒤쪽에 별도로 있다. 구결문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번역된 내용까지 당시 번역의 일반적인 상궤(常軌)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언해된 글의 문체(文體) 주016)

번역을 문체의 문제로 접근한 논의로는 김완진(1983)이 있다.
는 대체로 구결문에 견인되어 직역투(直譯套)의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비록 구결문이 없다고 해도 이 책 역시 직역투 번역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은 아니다. 구결문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번역의 한 과정으로서 구결문을 전제(前提)한 채 언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한다. 다음의 문장이 이를 보여주는 한 예가 될 것이다,

(1) 爾時觀世音菩薩而白釋迦牟尼佛言是我前身不可思議福德因緣欲令利益一切衆生起大悲心能斷一切繫縛能滅一切怖畏一切衆生蒙此威神悉能離苦解脫〈원문:1ㄱ,ㄴ〉

그 觀世音菩薩이 釋迦牟尼佛 오샤 “이 내 前身이 思議 몯홀 福德 因緣으로 一切 衆生을 利益게 코져 야 大悲心을 니르와다 一切 얼쿄 그츠며 一切 저포 업게 호니 一切 衆生이 이 威神을 니버 다 苦 여희여 버스리다”〈언해문:25ㄱ〉

이 부분은 경(經)의 서분(序分) 부분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께 고(告)하는 내용인데, 직접 인용의 문장형식으로 번역을 했다. 이러한 번역 양상은 당시에 간행되었던 대부분의 대역(對譯) 언해불서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구결문이 없는 이 언해서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다. 앞에서의 설명대로 비록 구결문을 따로 두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번역의 단계에서 구결문이 전제가 된 때문이다.

2.3. 책의 각 장(張)은 좀 독특한 체제로 되어 있다. 반엽(半葉)의 매면(每面)마다 주017)

이 책은 선장본(線裝本)으로 판심(版心)이 접혀 있어서 반엽(半葉) 단위로 변상도가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엽(全葉) 그림인 것이다.
윗 단(段)에는 아래쪽에 있는 내용을 형상화(形象化)한 그림이 목판화로 새겨져 있다. 이른바 변상도(變相圖)이다. 변상도의 적당한 곳에 네모 테두리를 하고 아래쪽에 있는 경(經)의 내용 중 핵심에 해당하는 어휘나 구절을 써 두었다. 원문과 변상도가 있는 앞쪽은 목판본이고, 언해문이 있는 뒤쪽은 〈두시언해〉와 같은 을해자(乙亥字)의 활자본이다. 변상도는 맨 앞장의 앞면과 뒷면의 세로로 절반에 걸쳐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이 전면화(全面畵)로 판각(板刻)되어 있고, 뒷면의 세로로 절반 정도에 패기(牌記)가 있다. 경(經)의 원문이 있는 부분은 전엽(全葉) 반면화(半面畵)이다. 우리가 보는 부분은 나빗간을 중심으로 접혀 있어서 반엽화(半葉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전엽화(全葉畵)이다. 원문의 맨 뒷면에는 다시 신장(神將)인 위타천(韋駄天)을 새긴 위타천상도(韋駄天像圖)가 전면화로 판각되어 있다. 그 뒤에 학조(學祖)의 발문이 있어서 간행과 관련된 시기나 경위(經緯)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으나, 간기(刊記)는 없다. 발문 뒤에 언해문이 장철되어 있다.

원간본의 책 편차(編次)는 다음과 같다.

변상도(變相圖 : 觀世音菩薩像)와 패기(牌記)

불정심다라니경 권 상 원문 1장 앞면 1행~9장 뒷면 4행

불정심요병구산방 권 중 원문 9장 뒷면 5행~13장 뒷면 끝

불정심구난신험경 권 하 원문 14장 앞면 1행~22장 뒷면 6행

일자정륜왕다라니 22장 뒷면 7행~8행

자재왕치온독다라니 23장 앞면 1행~2행

변상도(韋駄天像圖 : 童眞菩薩像) 23장 뒷면

학조(學祖)의 발문(跋文) 24장 앞면 1행~뒷면 8행

〈이상 원문 부분 : 목판본〉

불정심다라니경 권 상 언해문 25장 앞면 1행~30장 앞면 12행

불정심요병구산방 권 중 언해문 30장 앞면 13행~32장 뒷면 9행

불정심구난신험경 권 하 언해문 32장 뒷면 10행~37장 뒷면 끝행

〈이상 언해문 부분 : 활자본〉

원간본의 서지(書誌) 사항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판식(板式)은 원문과 변상도가 있는 목판본(木版本)의 앞부분과 언해문이 있는 활자본(活字本)의 뒷부분이 서로 다르다. 상단(上段)에 변상도가 판각(板刻)된 때문에 원문이 있는 앞부분을 목판본으로 조성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판식(板式)이나 행관(行款) 등이 다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책크기 : 30.8㎝ × 18.3㎝

권수제 : 佛頂心陀羅尼經

권말제 : 佛頂心經

판심제 : 원문 부분 - 없음

언해문 부분 - 佛頂

판심 : 원문 부분 - 흑구(黑口)없이 상(上) 하향(下向) 흑어미

언해문 부분 - 대흑구(大黑口) 상하(上下)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

판식 : 원문 부분 - 4주 쌍변(雙邊)

언해문 부분 - 4주 단변(單邊)

반곽 : 21㎝ × 14.7㎝

행관 : 원문 ; 상단 - 변상도(變相圖), 하단 - 유계(有界) 8행 9자

언해문 ; 유계(有界) 14행 17자

주(註) 표시 : 흑어미(黑魚尾) 주018)

이 책에서는 불교 용어나 한자어 등 설명이 필요한 곳에는 주(注)를 달았는데, 주를 다는 방식은 언해문과 동일한 크기의 활자를 한 줄로 쓰되, 주의 위쪽과 아래쪽에 【흑어미】 표시를 두어 구분했다.

종이 : 저지(楮紙)

위의 편차와 서지 사항의 일별(一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원문과 언해문을 서로 분리해서 편찬하였기 때문에 판식에서도 차이가 난다. 목판본인 원문 부분의 위쪽에 있는 변상도는 매우 우아하면서도 정치(精緻)한 느낌을 주고, 주019)

이에 대해 천혜봉(1990:172)은 “교(巧)를 극(極)한 섬세·우아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판화 미술의 백미라 일컬어 추호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라고 판화 미술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한문 원문은 격조 있는 해서체(楷書體)로 단아(端雅)하면서도 힘이 있어 보인다. 변상도의 아래쪽과 경계를 이루는 한문 원문 부분의 상단(上端)에 하향(下向) 흑어미를 두고, 판심 서명은 따로 두지 않았다. 흑어미에서 조금 내려 온 위치에 장차(張次)를 두었다. 아래쪽에는 흑어미가 없다. 언해문 부분은 을해자(乙亥字)의 미려(美麗)한 활자로 되어 있다. 언해문의 활자는 작은 글자인데, 한자와 한글의 글자 크기는 같다. 한자에는 같은 크기의 활자로 동국정운 한자음이 주음되어 있고, 한글과 한자의 음역(音譯)에만 방점이 점획(點劃)으로 찍혀 있다. 판심 서명은 상하내향흑어미의 위쪽 흑어미 바로 아래에 한자로 ‘불정(佛頂)’이라고 쓰였다.

2.4. 이 책은 조선조 성종(成宗) 16년(成化 21, 1485 A.D.) 을사(乙巳) 2월에 인수왕대비(仁粹王大妃) 한씨(韓氏)의 뜻에 따라 당시의 고승인 학조(學祖)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원문과 언해문 사이에 있는 학조의 발문에 기록되어 있다. 곧, 이 책은 성종의 연수(延壽)와 마원(魔怨)의 소진(消殄)을 위하고, 창생(蒼生)을 시름과 궁핍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한 의도에서, 그리고 자녀들로 하여금 생산(生産)의 어려움에서 회복케 하려는 데 뜻을 두고 간행된 책이다. 아래 학조의 발문을 보면 그러한 의도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주020)

역주의 뒤에 학조의 발문(跋文) 전문(全文)과 그 내용을 우리말로 옮겨 놓았다.

(2) 我仁粹王大妃殿下, 爲主上殿下, 睿算靈長, 消殄魔怨 爰 命工人 効唐本詳密 而圖之楷正而寫之 鏤而刊之, 而壽其傳, 蓋益自利他. 使人人而樂誦, 推己及人, 令箇箇而知歸, 拯蒼生於憂逼之際, 復子女於生産之難. 〈학조의 발문(跋文)에서 발췌〉

우리 인수왕대비전하께서 주상전하를 위하여 영장(靈長)의 뛰어난 헤아림으로 마원(魔怨)을 다 없애고자, 이에 공인(工人)에게 명하여 당(唐)나라본 주021)

이때 인수왕대비가 보았던 당본(唐本)이 명(明)나라 헌종(憲宗) 13년(成化, 1477년 A.D.)에 조성된 책인 이른바 ‘성화판(成化板)’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2006년 10월 원주시 치악산 명주사 소재 고판화박물관의 ‘2006 중국 고판화 특별전-판화의 원류를 찾아’ 전시회 도록을 통해서다. 성화판(成化板) 〈불정심다라니경〉 중 한 책이 이 고판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소장본(所藏本) 책을 전시하면서 소개한 내용이다. 이 책은 현재 강원도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경전은 밀교(密敎) 경전인데 중국에서는 당대(唐代) 이후에 밀교가 점점 쇠퇴하여 이 경전을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학조(學祖)의 발문에도 일부 언급되어 있다.
책을 본받아 자세하고 세밀하게, 그리고 자획을 바르게 베껴서 활자로 간행하였다. ....〈중략〉.... 창생(蒼生)을 시름과 궁핍한 지경에서 구제하고, 자녀를 생산(生産)의 어려움에서 회복케 하려고 함이다. 〈학조(學祖)의 발문 중에서〉

저 앞에서 논의한 대로 이 책의 원간본은 현재 두 책이 전한다. 하나는 이희승선생 구장본으로 지금은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고, 다른 하나는 호림(湖林)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이다. 호림박물관 소장의 책은 현재 보물 11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간(初刊)이 왕실의 원력(願力)에 의해 조성된 것인데 비해, 이후에 중간된 책들은 대부분 지방의 사찰에서 간행된 이른바 사찰판본(寺刹板본)이다. 이러한 중간본들은 거의가 원간을 판밑으로 한 복각본(覆刻本)들이다.

현전하는 원간 및 중간(重刊)의 판본들은 다음과 같다. 주022)

〈불정심다라니경언해〉와 한문본 〈불정심다라니경〉의 현전 상황 등 판본과 관련된 내용은 주로 김영배ㆍ김무봉(1998)과 각 도서관의 도서목록을 찾아서 확인했다.
한문본 중에는 언해본 중 원문이 있는 앞부분만을 분책하여 별책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는 복각 판본도 있고[순창 신광사판], 경의 일부 내용을 한글로 음역(音譯)한 책도 있어서 참고로 제시한다.

[1] 원간본 : 서울대 중앙도서관 (일석貴 294.333 B872) 소장.

 호림박물관(湖林博物館) 소장(보물 1108호).

[2] 중간본(복각본)

1). 평안도 대청산 해탈암(解脫庵)판, 명종(明宗) 16년(1561 A.D.) 간행.

간기 : 嘉靖四十年辛酉六月日平安道祥原地大靑山解脫菴開板

국립중앙도서관(古 1741-21) 소장. 고 이겸로님(산기 3-335) 소장.

2). 경북 상주 봉불암(奉佛庵)판, 인조(仁祖) 9년(1631 A.D.) 간행.

간기 : 崇禎四年辛未四月日刊留于慶尙道尙州牧地奉佛庵

 *뒤에 〈佛說高王觀世音經〉 첨부

서울대 규장각 가람문고(가람古 294.333-B872g) 소장.

서울대 규장각 (古1730-12) 소장.

국립중앙도서관(古 1745-26) 소장.

3). 경남 동래 범어사(梵魚寺)판, 인조(仁祖) 22년(1644 A.D.) 간행.

국립중앙도서관 (한 21-197) 소장.

[3] 한문본

1). 무등산 안심사(安心寺)판, 선조(宣祖) 2년(1569 A.D.) 간행.

간기 : 隆慶三年己巳仲夏全羅道同卜無等山安心寺重刊

*모다라니(姥陀羅尼) 부분만 한글로 음역(音譯)하고, 그 밖의 부분은 원문에 중권점(中圈點)과 우권점(右圈點) 등 구두점(句讀點)만을 두었다. 주023)

한문본의 일부에 음역(音譯)이 있거나 구두점만 있는 것은 독송(讀誦)의 중요성이 강조된 때문일 것이다.

서울대 규장각 (古1730-59 소장). 서울대 규장각 (古1730-59A) 소장.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D213.19제79ㅇ3) 소장.

*안심사본은 제진언집(諸眞言集)과 합편되어 있어서 서명이 ‘제진언집’인 책도 있다. 주024)

안심사(安心寺) 판본의 책을 언해본으로 다룬 논의가 있으나,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언해본이 아니고 한문본이다. 다만,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모다라니(姥陀羅尼) 부분이 한글로 음역(音譯)이 되어 있고, 그 외의 부분은 구두점만 있을 뿐이다.

2) 전라도 순창군 회문산 신광사(新光寺)판, 숙종(肅宗) 37년(1711 A.D.) 간행.

간기 : 康熙五年辛卯九月日淳昌郡回門山新光寺開板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D213.19 불73ㅅ) 소장.

3) 경기도 양주 천마산(天摩山) 보정사(寶晶寺)판, 고종(高宗) 13년(1876 A.D.) 간행.

* 상권의 처음부터 두 번째 단락인 모다라니(姥陀羅尼)까지만 음역(音譯),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D213.19 불73ㅂ) 소장.

이상의 여러 판본 중 서울대 중앙도서관 소장의 원간본은 원 소장자였던 이희승선생이 또 다른 소장(所藏) 고서(古書)였던 고성 운흥사(雲興寺)본 〈아미타경언해〉(1702년 간행)와 합편으로 영인·간행(1958년)한 바 있다. 그 영인본에 이희승선생이 간단한 해제(解題)를 붙였는데, 이후 이 책에 대한 논의는 주로 그 해제에 기대어 진행되었다. 그러나 해제의 내용이 너무 소략(疏略)하여 전모를 알기 어려운 아쉬움이 있다. 단편적으로 이 책을 소개한 것으로는 안병희(1979)와 김영배·김무봉(1998)이 있다.

2.5. 앞에서 밝힌 대로 〈불정심다라니경〉은 ‘다라니(陁羅尼)’를 적은 경전의 하나이다. ‘다라니(陁羅尼)’는 밀교(密敎)의 경전이다. 이 경전은 온 마음을 기울여서 읽고 지니면 재액(災厄)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널리 유통되었다고 한다. ‘불정(佛頂)’은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 정수리의 공덕을 인격화(人格化)하여 숭배하는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따라서 모든 불상(佛像) 중에 가장 소중히 여기는 대상이다. ‘심(心)’은 의식(意識) 작용(作用)의 본체(本體)이며, 일반상(一般相)을 인지(認知)하는 정신작용이다. ‘다라니(陁羅尼)’는 범문(梵文)을 번역하지 않고 음(音) 그대로 읽거나 외우는 것을 이른다. 총지(摠持) 또는 능지(能持)라고도 한다. 진언(眞言)을 외워서 모든 법을 가진다는 뜻이다. 곧, 모든 악법(惡法)을 막거나 버리고 선법(善法)을 지킨다는 뜻이다. 번역을 하지 않는 이유는 원문 전체의 뜻이 한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과 밀어(密語)라고 하여 다른 이에게 비밀히 한다는 뜻이 있다. 글자 하나하나가 무한한 의미와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흔히 짧은 구절로 된 것은 ‘진언(眞言)’이나 ‘주(呪)’라 하고, 긴 구절로 된 것은 ‘다라니(陁羅尼)’, 또는 ‘대주(大呪)’라고 한다. ‘다라니경(陁羅尼經)’은 ‘다라니’를 문자로 옮겨 놓은 경전(經典)이다. 따라서 ‘불정심다라니경(佛頂心陁羅尼經)’은 부처의 으뜸이 되고 핵심이 되는 경전인 것이다.

2.6. 〈불정심다라니경언해〉 상·중·하 3권의 내용은 서로 조금씩 다르다. 이렇게 조금씩 다른 각 권의 내용을 반영하여 권명(卷名)도 차이가 있다. 상권(上卷)은 불정심다라니경(佛頂心陀羅尼經), 중권(中卷)은 불정심요병구산방(佛頂心療病救産方), 하권(下卷)은 불정심구난신험경(佛頂心救難神驗經)이다.

상권(上卷)에서는 이 책 ‘불정심다라니경’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려주고, 중생이 번뇌(煩惱)의 고통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락(安樂)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설(說)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 방법으로 앞부분에는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석존(釋尊)께 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는 관세음보살로 하여금 중생들을 안락(安樂)하게 하고, 번뇌를 막게 하기 위하여 모다라니(姥陀羅尼)를 독송(讀誦)하게 하는 형식이다. 이후에는 이 책의 원고를 썼거나 편찬한 이에 해당하는 설화자가 이 다라니의 내용을 독자인 중생에게 설명하고, 중생이 번뇌를 피하거나 막기 위하여 이 ‘다라니’를 송지(誦持)하라고 권설(勸說)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경전에서 독자인 중생은 선남자(善男子)와 선여인(善女人)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경전은 관세음보살이 중생들의 고통(苦痛), 중죄(重罪), 악업(惡業)을 없애고 이익과 안락을 주기 위하여 이 다라니를 설(說)한다는 배경 설명으로, 이 경전의 가치를 말하고, 독송(讀誦)하는 형식으로 모다라니(姥陀羅尼)를 소개했다. ‘모다라니’는 관세음보살이 말세(末世)의 중생을 위하여 설한 진언(眞言)이라고 한다.

경전의 앞부분을 보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께 고(告)하는 형식을 빌려 이 경전의 편찬 목적 및 가치를 밝히고 있는데, 그 일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3) “....일체(一切)의 중생(衆生)에게 이익(利益)이 되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대비심(大悲心)을 일으켜서 모든 얽매임을 끊으며, 모든 두려움을 없게 하니, 일체(一切) 중생이 이러한 위신(威神)을 입고 다 고통(苦痛)을 여의어 벗어날 것입니다.”

(중략)

“...고통(苦痛) 받는 중생(衆生)을 위(爲)하여 액(厄)을 덜어주며, 난(難)을 당해 고통받는 중생(衆生)을 구(救)하는 무애자재심왕지인(無碍自在心王智印) 주025)

무애자재심왕지인(無碍自在心王智印):
<정의>‘무애자재(無碍自在)’는 장애(障碍)가 없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고, ‘심왕(心王)’은 의식(意識) 작용(作用)의 본체(本體)를 이른다. ‘지인(智印)’은 사람이 ‘인(印)’이 있으면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과 같이, 반야(般若)의 지(智)로써 인(印)을 삼는다면 실상(實相)의 이(理)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여 ‘지인(智印)’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다라니법(大陁羅尼法)을 말하겠습니다. 일체(一切)의 고통 받는 중생(衆生)을 구(救)하여 (고통에서) 빼어내되, 모든 병(病)을 덜어주며 악업(惡業)이 중(重)한 죄(罪)를 없게 하겠습니다. 일체(一切)의 여러 선지(善智)를 이루며, 모든 마음의 원(願)을 빨리 채워서 일체(一切) 중생(衆生)에게 이익(利益)이 되게 하고, 안락(安樂)하게 하여 번뇌(煩惱)를 막게 하고 싶습니다.” 〈상권:25ㄱ~25ㄴ〉

서분(序分)에 해당하는 이 부분의 내용을 보면 〈불정심다라니경〉의 성격과 경전의 가치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경전의 핵심을 밝히고 있다. 그 아래의 내용은 이러한 가치를 가진 ‘다라니’이므로 송지(誦持)하라고 권설(勸說)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리하면 여러 불·보살의 가피(加被)를 입어 모든 재액(災厄)을 물리치고 안락(安樂)을 누리며,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중권(中卷)에는 경전의 독자인 선남자, 선여인을 대상으로 임산부가 해산(解産)할 때 이 다라니를 외우면 무사히 출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온갖 심신(心身)의 병마(病魔)와 고통의 예를 들고, 그 해소 방법으로서의 이 다라니의 역할과 효험(效驗)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심신의 병마를 극복하거나 치료를 위한 처방을 제시한 것이다. 말 그대로 요병(療病)과 구산(救産)을 위한 처방문(處方文)으로서 ‘다라니경’의 효험이다. 경전에서는 그 내용을 이렇게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다.

(4) “만약 사람이 선지식(善知識)을 만나 짐짓 달래어 권(勸)해서 이 다라니경(陁羅尼經) 상·중·하(上·中·下) 삼권(三卷)을 쓰면, 대장경(大藏經)에 맞춰서 이 공덕(功德)을 갖추어 이를 것이다. 사람이 열두 장(藏) 대존경(大尊經)을 만들고 자마황금(紫磨黃金)으로 불상(佛像)을 주성(鑄成)하여 이루는 것과 같으니, 이 다라니경(陁羅尼經)을 공양(供養)한 위신력(威神力)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중권:32ㄱ~32ㄴ〉

하권(下卷)에서는 이 다라니를 지니면 어떠한 위험이 와도 극복할 수 있는 신통력을 가지거나 영험(靈驗)을 보게 된다는 사실을 몇 가지 예화(例話)를 들어서 소개하고 있다. 곧, 다라니의 효험에 대한 설명이다. 권명(卷名) 그대로 이 다라니를 송지(誦持)한 덕분에 얻은 구난(救難)과 신험(神驗)의 기록이다.

(5) “만약 선남자(善男子), 선여인(善女人)이 능(能)히 이 경전(經典) 세 권(三卷)을 써서 부처의 집에 오색(五色) 재전(裁剪:자투리)으로 주머니를 기워 넣으며, 혹 몸을 좇아 공양(供養)하는 이는, 이 사람이 만약 머무르거나 눕거나 위험한 곳에 있으면, 언제나 신장(神將)인 백천(百千)의 나라연(那羅延) 주026)

<정의>‘나라연(那羅延)’은 ‘견고(堅固)하다’는 뜻이다. 또는 힘이 아주 뛰어난 천상(天上)의 역사(力士)를 이르기도 한다.
금강밀적(金剛密跡) 주027)
<정의>‘금강밀적(金剛密跡)’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큰 위엄을 나타내어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천신(天神)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밀적(密迹)’은 항상 부처를 모시고 부처의 비밀한 사적을 기억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곧, 금강역사(金剛力士)를 이른다.
과 대력(大力) 무변(無邊)의 아타발구라신(阿吨鈸拘羅神) 주028)
아타발구라신(阿吨鈸拘羅神):
<정의>‘아타발구라신(阿吒鈸拘神)’은 밀교(密敎)의 16 대야차대장(大夜叉大將)의 하나인 광신귀신대장(曠神鬼神大將)을 이른다. 곧, 대원수명왕(大元帥明王)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다라니를 외우는 이는 온갖 어려움에서 자기의 원(願)대로 벗어난다고 한다.
이 몸에 검륜(劒輪)을 가지고 밤낮을 좇아 호위(護衛)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난(難)을 덜지 아니한 이가 없으며, 재액(災厄)을 구(救)하지 아니한 이가 없으며, 사(邪)를 끊지 아니한 이가 없으리라.”〈하권:36 ㄱ~36ㄴ〉

마지막에는 이러한 예화를 통해 느낀 바가 큰 중생들에게, 이 경전의 수지(受持)와 독송(讀誦)의 봉행(奉行)을 권하는 내용으로 결론을 삼는다.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5') “그러므로 알라. 이 경(經)의 공덕(功德)이 끝이 없으니, 기뻐하여 신수(信受)하고 머리에 얹어서 봉행(奉行)할지니라.”〈하권:37ㄴ〉

Ⅲ. 어학적 고찰

3.1. 개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구결문 없이 언해문만 있는 책이다. 언해문은 작은 활자로 되어 있다. 정음과 한자가 모두 같은 크기의 소활자(小活字)이다. 한자음 역시 한자와 같은 크기의 소활자(小活字)로 되어 있다. 한자에는 동국정운 한자음이 주음되어 있다. 한자음과 정음에는 점획(點劃)으로 방점이 찍혀 있다. 어려운 한자어나 불교 용어에는 주(注)를 달아서 이해를 도왔다. ‘주(注)’의 위와 아래에는 흑어미(黑魚尾) 표시를 하여 일반 문장과 구분했다.

이 책의 원고를 썼거나 책을 편찬한 이인 설화자는 상권의 앞부분에서 관세음보살과 석존이 대화하는 형식을 빌려 경전의 성격을 밝히고 있다. 이 부분 대화를 비롯한 문장의 구성은 비록 구결문이 없다고 하더라도 축자역(逐字譯), 곧 직역(直譯)의 형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저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구결문이 겉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구결문을 전제한 번역의 글이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 판단한다.

어떻든 이 책에는 ‘다라니’를 ‘송지(誦持)’하면 거기에 따르는 과보(果報)가 있을 것이라고 믿음을 주는 내용이 많다. 이러한 ‘다라니’ 경전의 특성으로 인해 종결형식은 추측법의 평서형 종결어미 ‘-리라’의 출현이 빈번한 편이다.

이 책은 15세기 후반인 1485년에 간행된 책이다. 언어 사실에서는 같은 해에 같은 체제로 간행된 책인 〈영험약초언해〉와 더불어 당시 표기법의 특성을 보인다. ‘ㅸ’이나 ‘ㆆ’이 쓰이지 않고, ‘ㅿ’이나 ‘ㆁ’이 쓰이는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 한편으로 〈월인천강지곡〉(1447년 간행〉에서처럼 유성자음 다음에서 분철한 예가 일부 있는가 하면, 〈원각경언해〉(1465년 A.D.) 이후 보이지 않던 ‘ㅆ’과 ‘ㅉ’이 쓰이기도 했다. 사이글자는 ‘ㅅ’으로 통일되었다. 용언 어간 ‘-’가 무성자음 /ㄱ, ㄷ/ 등으로 시작되는 어미 ‘-거나, -거든, -고져, -더니, -게, -디’와 만날 경우, 대부분 격음화된 형태인 축약형으로 표기하였다.

일부에서의 예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정음표기의 특징 중 하나는, 한자어인 경우 이를 한자로 적지 않고 정음(正音)으로 쓴 예가 몇몇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자어라는 인식이 이때 벌써 엷어졌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판단한다.

여기서는 같은 시기에 간행된 다른 불경 언해서들과 비교하면서 이 책의 어학적 특성, 특히 표기법 등을 살피려고 한다.

3.2. 각 권별 화법의 특성

이 책은 한문본 ‘다라니경’을 우리말로 옮긴 언해본이다. 3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각 권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권별(卷別) 내용에 따라 권명(卷名)을 달리 했고, 각 권의 구성도 약간씩 다르다. 각 권별로 화법(話法)의 특성을 살피면 아래와 같다.

(6) ㄱ. “됴타 됴타 善男子 善女人이여 내 나라해 나도다” 시고 護持호 눈 티 샤 어엿비 너기샤 마디 아니시리라 이 陁羅尼 功德이 그지업스니 며 사미 보거나 듣거나 스거나 디니거나 供養커나 면 그 福 닐어 혜아리디 몯리라〈상권:28ㄱ〉

 ㄴ. 다가 善男子 善女人이 과글이 가알피 어더 니도 몯 사  朱砂로 이 陁羅尼와 秘字印을 써 靑木香과 됴 茱萸로 글횬 므레 섯거 면 一切 病患이 됴티 아니니 업스리라〈중권:31ㄱ~31ㄴ〉

 ㄷ. 녜 罽賓陁國에 病이 流行야  나라해 니 病 어든 사미  이틀 디내디 아니야 다 죽더니 (후략)〈하권:32ㄴ〉

상권은 경의 내용에 대한 설화자(說話者)의 설명으로 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이 중생들의 온갖 번뇌를 없애고 이익과 안락을 주기 위하여 이 다라니를 설(說)한다는 내용으로 이 경전의 가치를 말한 후, (6ㄱ)에서처럼 이와 같은 복덕(福德)이 있을 것이니, 중생들에게 이 ‘다라니’를 송지(誦持)하라고 권설(勸說)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중권은 (6ㄴ)의 예처럼 요병(療病)과 구산(救産)을 위한 처방문(處方文)으로서 ‘다라니경’의 효험(效驗)에 대한 설명이다. 대화 없이 설화자가 주로 청자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책에서 설화자의 상대인 청자, 또는 독자로 설정된 사람은 선남자, 선여인이다.

하권에서는 (6ㄷ)과 같이 이 다라니를 송지(誦持)한 덕분에 얻은 구난(救難)과 신험(神驗)의 예화를 들고, 그런 신험이 있으므로 중생들에게 이 경전을 수지(受持)·독송(讀誦)하여 봉행(奉行)하라고 권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 설화자가 일방적(一方的)으로 설명하는 형식을 띠고 있는데, 하권의 예화(例話) 부분은 삽화(揷話)의 성격상 대화체가 많다.

3.3. 문장 종결 형식

이 책은 ‘다라니’의 언해인데, 다라니경전의 특성은 중생들이 ‘다라니’의 영험(靈驗)을 믿고 송지(誦持)하면 재액(災厄)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음 주는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까닭으로 이 책의 종결형식은 추측법의 평서형 종결어미 ‘-리라’의 출현이 빈번한 편이다. 이 경전의 분량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종결 형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장은 추측법으로 끝맺음을 한다.

(7) ㄱ. 이 陁羅尼經을  닐굽 遍을 외오면 願이 이디 몯니 업스며  一切 사  得야 一切 惡趣예 러디디 아니리라 〈상:29ㄴ〉

ㄴ. 그  이웃 나라햇 長者ㅣ 지븨 와 무러 닐오 “長者 엇디 樂디 아니뇨”〈하:33ㄱ~ㄴ〉

ㄷ. 리 朱砂로 이 頂輪王秘字印을 써 香水예 면 곧 주근 아기 미러 리오리니 리 므레 리라〈중:30ㄴ~31ㄱ〉

ㄹ. (전략) 授記시고 니샤 “됴타 됴타 善男子 善女人이여 내 나라해 나도다” 시고〈상:28ㄱ〉

ㅁ. “(전략) 一切 衆生을 利益 安樂야 煩惱 막게 야지다 願온 慈悲로 어엿비 너기샤 드르쇼셔”〈상:25ㄴ〉

(7ㄱ)은 추측법의 평서형종결어미 ‘-리라’에 의해 완성된 문장이다. 이 경의 편찬자인 설화자가 청자인 선남자, 선여인에게 이르는 말이다. 경전을 암송(暗誦)하면 악취(惡趣)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책은 대부분 이러한 종결형식으로 되어 있다. (7ㄴ)은 이웃 나라의 장자(長者)와 대화하는 내용이다. 대화 가운데 묻고 대답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묻는 말인 경우, 이처럼 의문형 종결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화(例話)로 구성된 하권에 몇몇 예가 보인다. 대체로 1,3인칭 설명의문형이다. (7ㄷ)은 ‘-라’체의 명령형 종결형식이다. 이 책에 예가 드문 편인데, 요병(療病)과 구산(救産)의 비법(秘法)을 전하는 중권을 비롯한 몇몇 곳에 이러한 문장이 보인다. (7ㄹ)은 설화자의 설명에 나오는 부분인데, 이 ‘다라니’경을 외우고 염(念)하면 불·보살들이 수기(授記)한 후에 이를 것이라는 말의 내용이다. 이 책에 다른 예로는 ‘-리로다’형 구성이 두엇 주029)

그 예는 아래와 같다. ‘그럴 써 供養호미 어루 다 니디 몯 알리로다’〈하:33ㄴ〉 / ‘加被논 功德은 다 니디 몯리로다’〈하:37ㄴ〉
정도 더 있는 감탄형 종결형식이다. (7ㅁ)은 역시 이 책에 그 예가 드문 ‘쇼셔’체의 소망을 나타내는 평서형 종결형식이다. 주030)
종결어미 ‘-지다’는 앞에 ‘-거/어-, -아/어-’ 등의 선행을 요구하는데, 이를 ‘쇼셔’체 ‘청원의 명령법’으로 본 견해(안병희, 이광호, 1990:247~248)와 ‘소망 평서형’으로 보는 견해(고영근, 1997:333~334)가 있다.
마지막 문장은 ‘쇼셔’체의 명령형 종결형식이다.

3.4. ㅸ

‘ㅸ’은 훈민정음의 초성 17자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의」 및 「해례 제자해」에서 순경음으로 규정된 후 〈용비어천가〉(1447년간), 〈석보상절〉(1447년 간행〉, 〈월인천강지곡〉(1447년간행), 〈몽산법어언해〉(?1459년 간행), 〈월인석보〉(1459년 간행) 등의 정음 초기 문헌에 쓰인 바 있다. 간경도감 간행의 언해서 중에는 〈능엄경언해〉(1462년간), 〈아미타경언해〉(1464년간), 주031)

아미타경언해:
〈아미타경언해〉(1464년 간행)에는 ‘ㅸ’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모두 이 음운이 실현되었다. 이는 〈아미타경언해〉의 내용이 이보다 앞서서 간행된 〈월인석보〉(1459년 간행) 권7에 실려 있고, 지금은 전하지 않는 〈석보상절〉(1447년 간행) 권7에도 실려 있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그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본다. 또, 이보다 3년쯤 전에 간행된 것으로 짐작되는 활자본 〈아미타경언해〉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목우자수심결언해〉(1467년간) 등에 몇몇 예가 보인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용언 활용형과 겸양법 선어말어미 등에서 예외 없이 ‘오, 우’로 바뀌었다.

(8) ㄱ. 오샤〈25ㄱ〉, 苦로왼〈27ㄱ〉, 요괴왼〈29ㄱ〉/智慧왼〈30ㄴ〉, 셜워〈30ㄴ〉, 두리운〈31ㄴ〉, 法다오〈34ㄴ〉, 가온〈35ㄴ〉, 어려운〈36ㄱ〉, 외니라〈36ㄱ〉, 어드운〈37ㄱ〉

 ㄴ. -온〈25ㄴ〉, 보와〈31ㄴ〉, 닙와〈35ㄴ〉, 저와〈37ㄴ〉, 연와〈37ㄴ〉

 ㄷ. 글왈 〈32ㄴ〉

이 책에서 ‘ㅸ’은 쓰이지 않았다. (8ㄱ)의 예에서처럼 용언 활용형은 말할 것도 없고, (8ㄴ)의 겸양법 선어말어미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 ‘오, 우’로 바뀌었다. ‘ㅸ〉ㅇ’ 형태는 이 문헌에 해당하는 어휘가 없다. ‘연와’는 ‘엱와’의 연철표기이다. (8ㄷ)은 ‘*글’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초기 문헌부터 ‘ㅸ’이 실현되지 않았다.

3.5. ㆆ

‘ㆆ’은 정음 초기 문헌에서 주로 동국정운 한자음의 영모자(影母字) 표기와 종성 ‘ㄹ’ 다음에 와서 입성 표시 글자로 쓰였다. 고유어 표기에서는 사이글자나 동명사어미 ‘-ㄹ’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ㅭ’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 주032)

동명사어미 ‘-ㄹ’과 ‘-ㅭ’의 교체에 대해서는 김무봉(1993:10~12), 김무봉(1997:67~68) 참조.
그러나 이 문헌에서 사이글자 표기는 ‘ㅅ’으로 통일되었고, 동명사어미는 모두 ‘-ㄹ’로만 실현되어 ‘ㆆ’이 쓰이지 않았다.

(9) ㄱ. 懺悔홀 고디〈27ㄱ〉, 미둘 〈29ㄱ〉, 나 시졀에〈30ㄴ〉, 命終 제〈31ㄴ〉

 ㄴ. 홀딘댄〈29ㄱ〉, 아롤디니라〈34ㄱ〉, 奉行홀디니라〈37ㄴ〉

 ㄷ. 아니홀 야〈36ㄴ〉

 ㄹ. 그럴〈33ㄱ, 34ㄱ, 37ㄴ〉, 올〈 35ㄴ〉

 ㅁ. 因 〈25ㄱ〉, 佛 〈25ㄱ〉

위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책에서 동명사어미는 대부분 ‘-ㄹ+전청자형’ 등으로 실현되어 ‘ㆆ’의 쓰임이 없다. (9ㄱ)은 ‘-ㄹ’의 후행요소가 무성자음인 경우이고, (9ㄴ)은 ‘-ㄹ’이 후행의 ‘디-(〈+이-)’와 통합된 형태이다. 주033)

〈석보상절〉(1447년 간행) 등에 나타나던 동명사어미 ‘ㅭ디-’형이 ‘-ㄹ디’형으로 교체된 시기는 주로 〈능엄경언해〉(1462년 간행) 이후가 된다.
(9ㄷ)은 동명사어미 ‘-ㄹ’ 뒤에 합용병서가 온 경우이다. (9ㄹ)은 동명사어미 ‘-ㄹ’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인데, 정음 초기 문헌에는 ‘-ㄹ/ ㄹ씨’로 나타났었다. 주034)
동명사어미 ‘-ㅭ’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 중 ‘-ㅭ’은 〈능엄경언해〉 등에서 더러 보이나, ‘ㅭ’나 ‘ㅭ시’는 정음 초기 문헌부터 쓰이지 않은 듯 문증(文證)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문헌에는 이 형태 ‘-ㄹ’만이 쓰였을 뿐이다. (9ㅁ)은 동국정운 한자음의 용례이다.

3.6. ㅿ

유성마찰음 ‘ㅿ’은 훈민정음 초성체계에서는 불청불탁(不淸不濁)의 반치음이다. 일모(日母)에 해당된다. 정음 초기 문헌부터 쓰이기 시작하여 15세기 문헌에 두루 나타나며 16세기 중반까지 쓰였다. 이 책에서는 ‘ㅿ’이 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모두 실현되었다. 다만, 간경도감 간행의 책에 보이는 종성에서의 예는 이 책에 없다. 이런 현상은 같은 해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서도 마찬가지다. 8종성 표기에 충실한 때문으로 본다. 이 책에서 ‘ㅿ’의 목록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모두 모음간에서(‘V-V’)의 용례이다.

(10) ㄱ. 미〈27ㄴ〉, 아〈31ㄴ〉, 마〈31ㄴ〉, 예〈31ㄴ〉, 눈〈28ㄱ〉, 믌〈35ㄱ〉

 ㄴ. 지〈27ㄱ〉, 〈29ㄴ〉,

 ㄷ. 오〈29ㄴ〉, 그기〈32ㄱ〉

 ㄹ. 供養오니〈26ㄴ〉, 보오〈27ㄴ〉, 向와〈27ㄴ〉, 저와〈 37S〉

 ㅁ. 업슨〈27ㄱ〉/ 업슬〈금강경언해 145ㄴ〉 cf. 믌

(10ㄱ)은 체언 어간 내부 모음 간에 나타난 ‘ㅿ’의 용례와, 체언과 조사 통합형에 나타난 ‘ㅿ’의 용례이다. (10ㄴ)은 용언 활용형과 명사형어미 통합형에서의 용례이고, (10ㄷ)은 부사의 내부에 쓰인 용례이다. (10ㄹ)은 겸양법 선어말어미 ‘--’ 통합형에서의 용례이다. 이 문헌 당시에는 ‘ㅸ’이 쓰이지 않아서 ‘-오-’의 형태로 나타난다. ‘저오-’는 /ㅿ/ 앞에서 /ㄹ/ 이 탈락된 형태이다. (10ㅁ)은 이보다 앞선 문헌인 〈금강경언해〉(1464년 간행) 등에서는 ‘-’으로 표기되었고, 이 책에서도 조사 통합형인 경우에 ‘믌〈35ㄱ〉’로 실현된 점에 비추어 볼 때 ‘없-’은 8종성 규정에 충실한 표기의 예로 보인다.

3.7. 사이글자

사이글자는 체언이 결합할 때 음성 환경에 따라 체언 사이에 끼어드는 자음글자이다. 〈용비어천가〉(1447년간)에는 ‘ㄱ, ㄷ, ㅂ, ㅅ, ㅿ, ㆆ’의 6자가 쓰였고, 「훈민정음 언해」(1459년 이전 간행)에는 ‘ㄱ, ㄷ, ㅂ, ㅸ, ㅅ, ㆆ’의 6자가 쓰였다. 〈석보상절〉에 이르러 ‘ㅅ’으로 통일을 이룬 듯하나 ‘ㄱ, ㄷ’이 쓰인 예도 있다. 뒤에 간행된 〈월인석보〉(1459년간)에는 ‘ㅅ’ 외에 ‘ㄱ, ㄷ, ㅂ, ㆆ’이 쓰였고,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459년간)에는 ‘ㅅ’ 외에 ‘ㄷ, ㆆ’이 쓰였으나, 〈아미타경언해〉(1464년간)와 같은 해에 간행된 〈선종영가집언해〉, 〈금강경언해〉, 〈반야심경언해〉 등에서는 ‘ㅅ’으로 통일되었다. 다만 〈반야심경언해〉에는 ‘ㄹ’ 다음에 ‘ㆆ’이 쓰인 예가 있다. 주035)

〈반야심경언해〉에서 ‘ㄹ’ 다음에 사잇글자로 ‘ㆆ’이 쓰인 것으로는 ‘ 사교미라〈11ㄴ〉,  사교〈19ㄱ〉’ 등이 있다.

이 책에서는 사이글자와 구 구성의 속격에서 모두 ‘ㅅ’으로 통일되었다.

(11) ㄱ. 우 조〈31ㄴ〉, 父母ㅅ 기픈〈27ㄴ〉, 부텻 알〈28ㄴ〉, 부텻 三昧〈30ㄱ〉, 뎘 님자히〈36ㄴ〉, 아 因緣을〈33ㄴ〉, 轉輪王ㅅ 福〈29ㄴ〉

 ㄴ. 바〈27ㄱ〉, 西ㅅ녁〈32ㄴ〉, 간도〈32ㄴ〉, 믌〈35ㄱ〉, 믈〈35ㄴ〉, 뎘돈〈36ㄴ〉

(11ㄱ)은 구 구성의 속격에서 ‘ㅅ’이 실현된 예이고, (11ㄴ)은 합성어 사이에 사이글자로 ‘ㅅ’이 온 예이다. 두 경우 모두에서 ‘ㅅ’ 외의 어떤 표기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책에는 속격의 ‘ㅅ’이 출현할 만한 환경이 많다. 고유어와 고유어 사이, 한자어와 한자어 사이, 고유어와 한자어 사이에서 모두 볼 수 있다.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불경언해 중 〈반야심경언해〉(1464년 간행)를 제외한 다른 문헌에서는 ‘ㅅ’ 이외의 사이글자 표기 용례가 없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간경도감 간행 문헌에 이르러 사이글자가 ‘ㅅ’으로 통일되었고, 간경도감 이후에 간행된 책인 이 문헌 역시 예외가 아니다.

3.8. 초성병서 표기

3.8.1. 각자병서 표기는 〈원각경언해〉(1465년 간행) 이래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예외적으로 훈민정음 창제 초기의 문헌에 보이는 각자병서 8자(ㄲ, ㄸ, ㅃ, ㅉ, ㅆ, ㆅ, ㆀ, ㅥ)가운데 ‘ㅉ, ㅆ’의 용례가 보인다.

(12) ㄱ. 써〈27ㄴ, 30ㄴ, 34ㄱ, 36ㄱ〉, 쓰면〈32ㄱ〉, 쑤믈〈33ㄴ〉, 쓰게〈34ㄱ〉 cf. 스거나〈28ㄱ, 28ㄴ〉

 ㄴ. 눈〈28ㄱ〉, 연와〈37ㄴ〉

(12)의 예와 같이 이 문헌에서 각자 병서는 주로 동사 어간 ‘쓰-[書]’의 활용형에서 볼 수 있다. 그 외에는 명사나 동사에서 각자병서가 쓰인 두 어휘의 예를 더 볼 수 있다. (12ㄱ)의 ‘쓰-’는 같은 책에서 ‘스-[書]’로 나타나기도 한다. (12ㄴ)의 ‘눈[眼睛]’는 〈능엄경언해〉(1462년 간행) 등에 나오는 어휘인데 주로 이렇게 표기되었다. 〈영험약초언해〉(1485년 간행)에도 같은 표기가 나온다. ‘연와[戴]’는 ‘엱와’의 연철 표기이다.

3.8.2. 이 책에는 합용 병서의 용례도 몇몇 눈에 띈다. 훈민정음 초기 문헌에 보이던 ‘ㅺ, ㅼ, ㅽ, ㅻ ; ㅳ, ㅄ, ㅶ, ㅷ ; ㅴ, ㅵ’ 중 ‘ㅅ’계열의 ‘ㅺ, ㅼ ㅽ,’ ‘ㅂ’계열의 ‘ㅳ, ㅄ’, ‘ㅄ’계열의 ‘ㅴ’ 등이 보인다.

(13) ㄱ. (ㅺ) : 釋迦牟尼佛〈25ㄱ〉/부텻긔〈30ㄱ〉, 디〈27ㄱ〉, 미〈29ㄱ〉, 삼면〈30ㄴ〉, 〈33ㄱ〉, 야〈36ㄴ〉

  (ㅼ): 히〈27ㄱ〉, 〈30ㄴ〉, 〈30ㄴ, 32ㄱ〉, 리〈35ㄱ〉

  (ㅽ) : 리〈25ㄴ, 30ㄴ, 31ㄴ, 33ㄱ〉, 혀〈25ㄴ〉

 ㄴ. (ㅳ): 술위〈27ㄴ〉, 나디〈28ㄴ, 34ㄱ〉, 러디디〈29ㄴ〉, 뎃〈30ㄱ〉

  (ㅄ) : 려〈36ㄴ〉

  (ㅶ) : 긔〈 31ㄴ〉

 ㄷ. (ㅴ): 그〈25ㄱ, 25ㄴ, 26ㄴ, 33ㄱ〉, 〈35ㄱ〉, 어〈36ㄴ〉,  〈36ㄴ〉, 이고〈36ㄴ〉

(13ㄱ) ‘부텻긔’의 ‘ㅅ긔’은 ‘ㅅ’이 존대자질을 가진 체언 다음에 오는 관형격조사인데, 여기에 여격조사 ‘-긔’가 통합된 형태이다. 이 형태는 초기 문헌에서부터 존대자질을 가진 체언 다음에 와서 여격조사로 기능했다. 현대국어 높임의 여격조사 ‘-께’의 직접적 소급 형태이다. 당시에는 이 예에서처럼 고유의 다음에서는 분철한 형태인 ‘-ㅅ긔’가 쓰였고, 한자어 다음에서는 ‘-’의 형태로 나타난다.

‘’도 ‘’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여기의 ‘ㅅ’은 관형격조사이고, ‘’은 ‘끝’의 의미를 가진 명사인데, 두 형태가 통합된 ‘’은 문법화하여 현대국어의 접미사 ‘-껏’의 기능을 가진다. 이 형태는 〈석보상절〉(1447년 간행) 이래 16세기에도 널리 쓰였다. ‘ㅻ, ㅷ, ㅴ’은 이 문헌에 해당하는 어휘가 없다. ‘ㅻ’은 〈석보상절〉 등 초기의 문헌에만 주로 나타난다.

3.9. 종성표기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종성 표기는 『훈민정음』해례의 종성 규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8종성 외에 다른 표기는 보이지 않는다. 〈용비어천가〉(1447년 간행) 이래 간경도감 간행의 언해 문헌에 종종 보이던 ‘ 없-’ 등도 이 문헌에서는 모두 ‘ 없-’으로 표기되었다. 곧, 유성후두마찰음 ‘ㅇ[ɦ]’ 앞에서 ‘ㅅ’과 수의적으로 교체되던 ‘ㅿ’이 이 문헌에서는 실현되지 않았다.

(14) ㄱ. 갑-(〈갚-) : 이제 와 원슈를 갑고져 다니〈35ㄴ〉

 ㄴ. -(〈-) : 請야 쑤믈 디 아니야셔〈33ㄴ〉

  긋-(〈긏-) : 邪 긋디 아니니 업스리라〈36ㄴ〉

  (〈) : 五色 젼으로  기워 녀흐며〈36ㄱ〉

 ㄷ. 업-(〈없) : 미둘 업거든〈29ㄱ〉 cf. 반기 겨지븨 모 옮겨〈28ㄴ〉 주036)

중세국어 당시에 종성에 합용병서가 올 경우, 자음으로 시작되는 음절 앞이나 휴지 앞에서는 종성에 대표음 하나만 실현되거나 겹받침일 경우는 8종성에 해당하는 자음으로 바뀌어 표기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옮-’은 이 예의 경우처럼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당시의 겹받침이 유성자음이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두시언해〉(1481년 간행)에 ‘옴도다 (권20:26ㄴ)’가 쓰이기도 했다.

 ㄹ. -(〈앉-) : 寶蓮花애 거든〈28ㄴ〉

 ㅁ. 앏(〈앒) : 간도 앏뒤헤 나디 아니야〈34ㄱ〉

 ㅂ.  없-(〈 없-) : 觀世音菩薩이  업슨 大神力과〈29ㄱ〉

(14ㄱ)은 기저형에서 음절 말음으로 ‘ㅍ’을 가지는 어휘가 자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이나 휴지 앞의 환경에서 대표음 ‘ㅂ’으로의 교체를 반영한 표기인 것이다. (14ㄴ)은 ‘ㅊ’, (14ㄷ)은 ‘ㅄ’, (14ㄹ)은 ‘ㄵ’, (15ㅁ)은 ‘ㄿ’이 자음으로 시작되는 음절이나 휴지 앞에서 모두 대표음으로 교체되었다. 중화(中和)를 반영한 표기이다. 이 문헌에서 여덟 종성 외에 다른 종성은 쓰이지 않았다. (14ㅂ)은 앞의 설명대로 8종성 표기의 예외 중 하나였는데, 여기서는 해례의 규정에 충실한 것으로 본다.

3.10. 주격과 서술격표기

〈불정심다라니경언해〉에서 주격과 서술격은 선행 체언 말음의 음운론적 조건에 따라 그 기저형인 ‘-이’와 ‘이-’의 교체형이 대체로 동일(同一)한 양상으로 실현되었다. 주격조사는 ‘이, ㅣ, ∅’로 실현되었고, 서술격조사는 ‘이-, ㅣ-’로 실현되었다. 서술격조사에서 ‘∅’는 해당하는 어휘가 없어서 빈칸이다. 구결문이 있는 문헌 중에는 구결문과 언해문의 주격과 서술격 표기 양상이 조금씩 다른 경우도 있는데, 구결문이 없는 이 책의 주격 및 서술격 표기 양상은 다른 15세기 문헌들과 대체로 일치한다. 하지만 고유어와 한자어에서 부분적으로 다른 예가 있다.

3.10.1. 주격조사의 표기는 ‘이,ㅣ, ø’로 실현되었다. 다만, 한자로 적힌 경우 선행 체언의 말음이 ‘이,ㅣ’인데도 주격조사에 ‘-ㅣ’가 실현된 경우가 많다.

(15) ㄱ. 이 : 한자어 一切 衆生이 이 威神을 니버〈25ㄱ〉

  고유어 미 散亂티 아니야〈27ㄴ〉/ 쳔이 그지 업수〈33ㄱ〉

 ㄴ. ㅣ : 한자어 녜 波羅奈國에  長者ㅣ 이쇼〈33ㄱ〉

  고유어 :네 큰 慈悲로 리 니라〈25ㄴ〉

 ㄷ. ø : 고유어 어미 보고 문득 목 노하  우러〈35ㄱ〉 / 아 어미로 죽거나〈30ㄴ〉

 ㄹ. ∅⟶ㅣ: 한자어 이 陀羅尼ㅣ 十惡 五逆과〈26ㄴ〉, 그지 업슨 俱胝ㅣ〈29ㄴ〉, 沙彌ㅣ〈37ㄴ〉 / 百千萬罪ㅣ 다 업스리라,〈26ㄴ〉, 闡提ㅣ 法 아닌 法 니며〈 26ㄴ〉, 胎ㅣ 야디여〈30ㄴ〉

위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격조사는 대체로 ‘이,ㅣ, ø’로 실현되었다. 그러나 체언이 한자로 적힌 경우에는 부분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15ㄱ)에는 종성이 있는 고유어 ‘’과 ‘쳔’에 주격조사 ‘-이’가 통합된 예가 있는데, ‘쳔(〈錢糧)’은 분철했다. 주037)

여기서 체언 ‘쳔’과 조사 ‘이’를 분철한 것은 이 어휘의 어원이 한자 ‘천량(錢糧)’에서 왔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錢糧’은 살림살이에 드는 돈과 양식, 또는 재물을 이른다.
(15ㄹ)은 한자어인 경우인데, 체언의 음절 말음이 / i , j/ 인데도 주격조사에 ‘ㅣ’가 실현된 예이다. 이는 한자 표기에서 주격조사 표시가 없으면 주어와 다른 문장 성분과의 구분이 모호해서 야기될 수 있는 혼란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보인다. 이 문헌에 구결문이 실려 있지 않지만 구결문이 있었다면 그 구결문에도 이런 표기가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한다. 이 무렵에 간행된 책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주038)
이런 양상은 간경도감본 중 〈금강경언해〉(1464년 간행)의 구결문에 이미 나타나고, 이보다 나중에 간행된 〈육조법보단경언해〉(1496년 간행)에는 구결문과 언해문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금강경언해’의 예에 대해서는 김무봉(1993:18~21)참조, ‘육조법보단경언해’의 예에 대해서는 김무봉(2006:31~32) 참조.

주격조사 통합에서 성조의 변동이 수반되는 경우가 있다. 체언이 평성이면 (15ㄴ)의 고유어 예처럼 주격조사 ‘-ㅣ’와의 통합으로 성조(聲調)가 상성(上聲)으로 바뀌지만, 거성(去聲)이거나 상성이면 아무런 변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독으로 쓰일 경우, 1인칭 대명사 ‘나[我]’는 거성이고, 2인칭 대명사 ‘너[汝]’는 평성이다.

(15') ㄱ. :네(〈너+·ㅣ)〈25ㄴ〉 ; 주격(상성)/ 네(〈너+ㅣ)〈13ㄱ〉 ; 속격(평성)

 ㄴ. ·내(〈·나+ㅣ)〈25ㄱ〉 ; 주격(거성)/ 내(〈·나+ㅣ)〈25ㄱ〉 ; 속격(평성)

(15'ㄱ)의 ‘네’는 2인칭 대명사 ‘너[汝]’에 주격조사와 속격조사 ‘-ㅣ’가 통합된 형태이다. 주격조사와 통합될 때는 상성으로 성조가 바뀌나, 속격조사와 통합시에는 성조에 아무런 변동도 일어나지 않는다. (15'ㄴ)의 ‘·나[我]’는 단독형이 거성(去聲)이었으므로 주격조사와의 통합에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3.10.2. 서술격조사도 음운론적 조건에 따른 교체가 주격조사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문헌에는 서술격조사의 용례는 매우 적은 편이다. 고유어 ‘∅-’와 한자어 ‘ㅣ-, ∅-’는 해당하는 어휘 용례가 없어서 빈칸이다.

(16) ㄱ. 이 : 한자어 엇던 모딘 因緣이어뇨〈35ㄱ〉

  고유어 이제 마 열다시니〈33ㄴ〉

 ㄴ. ㅣ : 고유어 선어 얌에라〈31ㄱ〉

의존명사 ‘, ’는 서술격조사와 통합할 때 체언의 ‘ᆞ’가 탈락되는데, 이 문헌에 몇몇 예가 보인다. 이런 현상은 다른 불경언해서에서도 마찬가지다.

(16') ㄱ. 아롤디니라〈34ㄱ〉, 奉行홀디니라〈37ㄴ〉

 ㄴ. 그칠시라〈27ㄱ〉

3.11. 분철표기

15세기에 간행된 정음문헌들의 곡용형과 활용형 표기 방식은 대부분 연철이었다. 다만 〈월인천강지곡〉(1447년 간행)에서는 체언의 말음이 ‘ㄴ, ㄹ, ㅁ, ㅿ’ 등 유성자음일 때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와 통합하면 분철 표기를 했다. 용언의 경우에는 어간 말음 ‘ㄴ, ㅁ’이 어미 ‘-아’와 만나면 분철 표기를 했다. 이는 〈월인천강지곡〉의 편찬자인 세종의 형태소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표기일 것이다. 이후에 간행된 책들에서도 이러한 환경에서 분철 표기한 예가 더러 보인다. 이 책 〈불정심다라니경언해〉 서는 체언의 경우 조사와의 통합에서 분철한 예가 있는데, 일부는 어원이 한자어인 경우이다. 비록 정음으로 적었다고 하더라도 한자어와 국어를 혼용할 경우 분철했던 습관이 반영된 것으로 판단한다. 이 책에서의 분철 조건 역시 〈월인천강지곡〉의 경우와 상사하다. 선행체언의 말음이 ‘ㄴ, ㄹ, ㆁ’일 경우에 분철 표기했다.

 ㄱ. 돈을〈36ㄴ, 37ㄴ〉, 젼으로〈36ㄱ〉, 두 번이러니〈 34ㄴ〉, 세 번을〈35ㄱ〉

 ㄴ. 시졀에〈34ㄴ〉

 ㄷ. 이〈35ㄱ〉 쳔이〈33ㄱ〉

(17ㄱ)은 체언의 말음이 ‘ㄴ’일 경우 조사와의 통합에서 분철한 예이다. ‘재전’은 한자어 ‘裁剪’에서 온 말로 짐작되고, ‘번/番’ 역시 한자어이므로 두 예는 한자어와 고유어의 혼용(混用)일 때 분철하던 관행이 반영된 것으로 본다. (17ㄴ)의 ‘시졀/時節’과 (17ㄷ)의 ‘쳔/錢糧’도 마찬가지다.

3.12. 음운 축약 표기

이 책에는 용언 어간 ‘-’가 무성자음 /ㄱ, ㄷ/ 등으로 시작되는 어미 ‘-거나, -거든, -고져, -더니, -게, -디’ 등과 통합될 때, 대부분 격음화 된 형태인 축약형으로 표기하였다.

(18) ㄱ. 아니커나〈29ㄱ〉, 住커나〈36ㄱ〉,

ㄴ. 죽거나 커든〈30ㄴ〉, 아니커든〈31ㄱ〉

ㄷ. 利益게 코져〈25ㄱ〉, 코져〈29ㄱ〉

ㄹ. 몯야 터니〈35ㄱ〉,

ㅁ. 케 며〈30ㄴ〉, 供養케 시니〈33ㄱ〉

ㅂ. 편안티〈29ㄱ〉, 害티〈32ㄴ〉, 闕티〈34ㄱ〉, 救티〈36ㄱ〉, 損티〈37ㄱ〉

(18)의 예문은 이 문헌만의 특별한 현상이다. 이러한 음운 현상의 반영이 부분적으로 다른 문헌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유독 용례가 많다. 독송(讀誦)을 중시하는 ‘다라니경’의 특성이 반영된 때문으로 본다.

3.13. 한자어의 정음 표기

앞에서 밝힌 대로 〈불정심다라니경언해〉에는 한자어를 정음으로 적은 어휘들이 몇몇 보인다. 이 어휘들은 〈석보상절〉(1447년 간행〉을 비롯한 정음 초기 문헌에서부터 이미 정음으로 적혔던 어휘도 있고, 이 문헌 이전에는 한자로 적혔던 어휘였는데, 이 문헌에서 처음으로 정음 표기된 어휘도 있다. 그 목록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19)ㄱ. 녜(〈常例)〈29ㄱㄴ〉, 시졀(〈時節)〈34ㄴ〉, (〈樣姿/樣子)〈30ㄴ〉, 편안(〈便安)〈29ㄱ〉, 원슈(〈怨讐)〈35ㄴ〉, 요괴(〈妖怪/饒怪)〈29ㄱ〉, (〈思量)〈30ㄴ, 32ㄱ, 34ㄴ〉, 쳔(〈錢糧)〈32ㄱ, 33ㄱ〉, 침로(〈侵勞)〈32ㄴ〉

ㄴ. 젼(〈裁剪)〈36ㄱ〉

예문 (19ㄱ)에 나오는 어휘들은 정음 초기 문헌부터 한자와 정음으로 병기(倂記)되던 말들이다. ‘녜’는 한자어 ‘상례(常例)’에서 온 말인데, 정음 초기 문헌부터 자음동화가 반영된 표기인 ‘녜’로 나타난다. 일찍이 우리말화 하여 한자어라는 인식이 엷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외의 어휘들도 마찬가지다. (19ㄴ)의 ‘젼(〈裁剪)’은 ‘옷감의 자투리’를 이르는 한자말인데, 이 문헌의 한자 원문에는 ‘젼[雜綵]’으로 적혔다. 여기에 처음 보이고 이후에는 더러 쓰였다.

3.12. 어휘

이 문헌에는 15세기에 간행된 다른 문헌에 잘 쓰이지 않던 어휘가 몇몇 보인다. 일부 어휘는 이 책 이후에 널리 쓰이기도 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 ㄱ. 大悲心을 니르와다 一切 얼쿄 그츠며 一切 저포 업게 호니〈25ㄱ〉

ㄴ. 鱓魚 얌에라〈31ㄱ〉

ㄷ. 西方앳  우 조  리 가져다가〈31ㄴ〉

ㄹ. 이 사 긔 노코 니벳 옷외로 두프면〈31ㄴ〉

ㅁ. 그 長者의 夫妻 깃거 봄뇌요미 그지업서〈34ㄱ〉

ㅂ. 오로브터 永永히 너와 원슈디 아니호리라〈35ㄴ〉

ㅅ. 이 經 三卷을 써 부텻 지븨 五色 젼으로  기워 녀흐며〈36ㄱ〉

ㅇ. 그 뎘 님자히 이고〈36ㄴ〉

(20ㄱ)은 ‘얼키-[繫縛]’의 활용형인데, 그 용례가 드물다. (20ㄴ)의 ‘얌어’는 ‘뱀장어’와 비슷하게 생긴 ‘드렁허릿과’의 민물고기이다. (20ㄷ)의 ‘우훔’은 ‘움큼’을 이른다. (20ㄹ)의 ‘’은 ‘심장(心臟)’을 이르는데, ‘[心]#[臟]’으로 분석된다. (20ㅁ)의 ‘봄뇌-[踊躍]’는 ‘뛰어놀-’의 의미이다. (20ㅂ)의 ‘永永히’는 이후 문헌에서 정음 표기로 바뀌어 ‘영영, 영원히’의 의미로 널리 쓰였다. (20ㅅ)의 ‘젼’은 한자어 ‘재전(裁剪)’에서 온 말인데, 이 경전의 원문에는 ‘젼[雜綵]’으로 적혔다. 당시 문헌에 용례(用例)가 드물다. (20ㅇ) ‘이고’는 ‘꾸어주-’의 의미이다. ‘-[使借]’에 사동접미사 ‘이’가 통합된 형태이다.

Ⅳ. 맺음말

지금까지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형태서지(形態書誌)와 각 판본의 현황, 그리고 경(經)의 성격과 내용, 언어적 특성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 책의 전반적인 성격과 국어사 자료로서의 가치를 밝혔다. 이 책은 조선조 성종(成宗) 16년(成化 21, 1485 A.D.) 을사(乙巳) 2월에, 고승(高僧) 학조(學祖)가 간행한 불경언해서이다. 3권 1책으로 되어 있는데, 각 권에 실려 있는 내용을 반영하여 명칭을 붙인 때문에 각 권의 권명(卷名)은 서로 조금씩 다르다. 언해 경위 및 편찬자 등에 대해서는, 원문과 언해문 사이에 장철(張綴)되어 있는 학조의 발문(跋文)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의 고찰을 통해서 그 전반적인 현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이 책은 15세기에 간행된 다른 언해서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다른 언해서들은 대체로 경(經)의 원문(原文)이나 경소(經疏)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서 한 대문(大文)씩 단락(段落)을 짓고, 이어서 원문에 구결을 단 구결문(口訣文)을 둔 후, 구결문을 바탕으로 번역을 했다. 언해의 방법은 대역(對譯)의 형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 책에는 구결문이 없다. 앞쪽에 구결문 없이 변상도(變相圖)와 경(經)의 원문을 두고, 뒤쪽에 언해문을 별도로 두었다. 또한 인간(印刊) 양식도 달라서, 경(經)의 원문(原文)과 변상도가 있는 앞부분은 목판본(木版本)인데 비해, 언해문(諺解文)이 있는 뒷부분은 을해자(乙亥字)로 된 활자본이다. 앞부분이 목판본인 이유는 각 면마다 상단(上段)에는 하단(下段)에 있는 경(經) 원문의 내용을 형상화(形象化)한 그림, 곧, 변상도(變相圖)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2) 저본(底本)인 한문본에 대해서는 학조의 발문에 의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당(唐)나라에서 편찬되었던 당본(唐本)이다. 그런데 이 경전의 원문에 실려 있는 것과 같은 내용의 경(經)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좀 오래인 듯하다. 고려 시대인 13세기 초에 최충헌(崔忠獻)과 그의 아들 등 삼부자(三父子)의 호신(護身)을 위해 간행한 책인 수진본(袖珍本)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佛頂心觀世音菩薩大陀羅尼經)』 3권(卷) 1첩(帖)의 내용이 이 책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한문 원문 부분과 일치한다. 이로 미루어 한문본이 우리나라에 유통된 시기와 한문본의 이름이 「불정심관세음보살대다라니경」으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이 책 간행 당시에 인수왕대비가 보았던 당본(唐本)이 명(明)나라 헌종(憲宗) 13년(成化, 1477년 A.D.)에 조성된 책인 이른바 ‘성화판(成化板)’이라는 주장이 원주시의 고판화박물관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이 경전은 밀교(密敎) 경전인데 중국에서는 당대(唐代) 이후에 밀교가 점점 쇠퇴하여 이 경전을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학조(學祖)의 발문에도 일부 언급되어 있다.

3)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성종(成宗) 16년(1485 A.D.)에 초간(初刊) 간행된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간(重刊)되었다. 초간(初刊)이 왕실의 원력(願力)에 의해 조성된 것인데 비해, 이후에 중간된 책들은 대부분 지방의 사찰에서 간행된 이른바 사찰판본(寺刹板本)이다. 이러한 중간본들은 거의가 원간을 판밑으로 한 복각본(覆刻本)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 중앙도서관, 호림박물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동국대 중앙도서관 등에 수종이 현전한다. 이 중 널리 이용되는 판본은 역시 원간본인 고 이희승선생 구장본(舊藏本)이다. 지금은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4) 앞에서 언급한 대로 〈불정심다라니경언해〉는 구결문 없이 언해문만 있는 책이다. 언해문은 작은 활자로 되어 있다. 정음과 한자가 모두 같은 크기의 소활자(小活字)이다. 한자음 역시 한자와 같은 크기의 소활자(小活字)로 되어 있다. 한자에는 동국정운 한자음이 주음(注音)되어 있다. 이 책은 동국정운 한자음(漢字音)이 주음된 15세기 마지막 문헌이 될 것이다. 한자음과 정음에는 점획(點劃)으로 방점이 찍혀 있다. 어려운 한자어나 불교 용어에는 주(注)를 달아서 이해를 도왔다. ‘주(註)’의 위와 아래에는 흑어미(黑魚尾) 표시를 하여 일반 문장과 구분했다.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문장 구성은 상권의 앞부분과 하권의 예화(例話) 부분은 석존(釋尊)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고, 그 외에는 주로 설화자(說話者)가 〈불정심다라니경〉의 수지(受持)와 독송(讀誦)을 권(勸)하는, 이른바 설득하는 내용의 문장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 다라니경을 몸에 지니고 정성을 다해 읽으면 갖가지 재앙(災殃)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권설(勸說)하는 내용으로 된 문장들이다.

이 책의 원고를 썼거나 책을 편찬한 사람인 설화자는 상권의 앞부분에서 관세음보살과 석존이 대화하는 형식을 빌려 경전의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 대화를 비롯한 문장의 구성은 비록 구결문이 없다고 하더라도 축자역(逐字譯), 곧 직역(直譯)의 형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구결문이 겉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구결문을 전제한 번역의 글이어서 그렇게 된 것으로 판단한다.

이 책에는 ‘다라니’ 경전의 특성으로 인해 종결형식은 추측법의 평서형 종결어미 ‘-리라’의 출현이 빈번한 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문장 종결 형식은 추측법의 평서형이다.

이 책은 15세기 후반인 1485년에 간행된 책이다. 언어 사실에서는 같은 해에 같은 체제로 간행된 책인 〈영험약초언해〉와 더불어 당시 표기법의 특성을 보인다. ‘ㅸ’이나 ‘ㆆ’이 쓰이지 않고, ‘ㅿ’이나 ‘ㆁ’이 쓰이는 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한편으로 〈월인천강지곡〉(1447년 간행〉에서처럼 유성자음 다음에서 분철한 예가 일부 있는가 하면, 〈원각경언해〉(1465년 A.D.) 이후 보이지 않던 ‘ㅆ’과 ‘ㅉ’이 쓰이기도 했다. 사이글자는 ‘ㅅ’으로 통일되었다. 용언 어간 ‘-’가 무성자음 /ㄱ, ㄷ/ 등으로 시작되는 어미 ‘-거나, -거든, -고져, -더니, -게, -디’ 등과 만날 경우, 대부분 격음화 된 형태인 축약형으로 표기하였다.

일부에서의 예이기는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정음표기의 특징 중 하나는, 한자어인 경우 이를 한자로 적지 않고 정음(正音)으로 쓴 예가 몇몇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자어라는 인식이 이때 벌써 엷어졌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15세기에 간행된 다른 불경언해서들과 비교하면서 이 책의 어학적 특성, 특히 문장 구성 및 표기법 등을 살펴서 이 책의 국어사 자료로서의 가치를 살폈다.

이 책은 15세기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간(重刊)되었다. 언해본은 물론, 한문본도 여러 책이 현전한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불교문화의 한 면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 책은 15세기 후반의 한국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책 중에 하나이다. 이 책과 같은 해에 간행된 〈영험약초언해〉 등의 책을 통해 우리는 당시 한국어의 실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중세국어 시기의 매우 소중한 국어사자료 중 하나가 된다. 논의를 통해 어느 정도 그 윤곽이 드러났다고 본다.

〈참고문헌〉

고영근(1997), 개정판 〈표준 중세국어문법론〉, 탑출판사.

김두종(1973), 〈한국고인쇄기술사〉. 탐구당.

김무봉(1993),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의 국어사적 고찰」, 〈동악어문론집〉28집, 동악어문학회.

김무봉(1993), 「금강경언해 해제」, 〈금강경언해주해〉, 동악어문학회.

김무봉(1996), 「조선전기의 불경언해사업」, 〈불교어문논집〉 창간호, 한국불교문학사 연구회.

김무봉(1997), 「아미타경언해의 표기법」, 〈아미타경언해의 국어학적 연구〉, 법보신문사.

김무봉(2006), 「육조법보단경언해연구」, 〈불교학연구〉 제14호, 불교학연구회.

김영배(1996), 「염불보권문 해제」, 〈염불보권문의 국어학적 연구〉, 동악어문학회.

김영배(1997), 「아미타경언해 해제」, 〈아미타경언해의 국어학적 연구〉, 법보신문사.

김영배 외(1997), 〈아미타경언해의 국어학적 연구〉, 법보신문사.

김영배·김무봉(1998), 「세종시대의 언해」, 〈세종문화사대계Ⅰ〉,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김영배(2000), 〈국어사자료연구〉, 월인.

김완진(1983), 「한국어 문체의 발달」, 〈한국어문의 제문제〉, 일지사.

안병희(1979), 「중세어의 한글 자료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 〈규장각〉3, 서울대 도서관.

안병희(1992), 〈國語史資料硏究〉, 문학과지성사.

안병희·이광호(1990), 〈중세국어문법론〉, 학연사.

운허용하(1961), 〈불교사전〉, 동국역경원.

이희승(1958), 「解題 觀音經·아미타경」, 〈諺解 觀音經·阿彌陀經〉(영인본), 정양사.

천혜봉(1990), 〈한국전적인쇄사〉, 범우사.

최현배(1960), 〈한글갈〉, 정음사.

홍윤표(1994), 〈근대국어연구(1)〉, 태학사.

주001)
:책의 간행 경위 등에 대해서는, 원문 뒤에 첨부되어 있는 학조(學祖)의 발문에 의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역주의 뒤에 한문으로 된 학조의 발문(跋文)을 우리말로 옮겨 놓았다. 번역에 도움을 준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김갑기 교수와 불교학과 해주(海住) 스님께 특히 적어서 고마운 뜻을 표한다.
주002)
:이하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필요에 따라 ‘이 책’, 또는 ‘이 경전’이라 부를 것이다.
주003)
:장차(張次) 다음의 ‘ㄱ’은 장(張)의 앞면을 가리키고, ‘ㄴ’은 뒷면을 가리킨다. 이하 같다.
주004)
:‘爰 命工人 効唐本詳密 而圖之 楷正而寫之 鏤而刊之’[이에 공인(工人)에게 명하여 당(唐)나라본 책을 본받아 자세하고 세밀하게, 그리고 자획을 바르게 베껴서 활자로 간행하였다.] 〈학조의 발문 중에서 발췌〉.
주005)
:이 첩장본(帖裝本)의 도판(圖版) 등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천혜봉(1990:190) 참조.
주006)
:이보다 조금 뒤에도 같은 이름의 책이 간행된 기록이 있다. 고려 충렬왕 22년(丙申, 1296 A.D.)의 일이다. 김두종(1973:103) 참조.
주007)
:이에 대해 이희승은 영인본의 해제(1958)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이 영인본의 저본인 필자 소장본의 표지에는 「觀音經」이라 묵서(墨書)하였으니, 이 불정심경은 관음경의 일부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런데 관음경은 요진(姚秦)의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역한 「법화경」중에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보문품(普門品)만을 분리하여 한 경(經)으로 한 것이니,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제난(諸難)을 잘 구하여 소원을 이루어 주며, 또 33신(身)으로 양상과 자태를 달리하여 나타나서, 구호의 대상이 되는 수난자(受難者)에 적응(適應)한 법을 설하는 것이 상례라 한다.”
주008)
:<정의>‘다라니경(陁羅尼經)’은 다라니를 문자로 옮겨 놓은 경전(經典)이다. ‘다라니(陁羅尼)’는 범문(梵文)을 번역하지 않고 음(音) 그대로 읽거나 외우는 것을 이른다. 총지(摠持) 또는 능지(能持)라고도 한다. 곧, 모든 악법(惡法)을 막거나 버리고 선법(善法)을 지킨다는 뜻이다. 번역을 하지 않는 이유는 원문 전체의 뜻이 한정(限定)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과 밀어(密語)라고 하여 다른 이에게는 비밀히 한다는 뜻이 있다. 흔히 짧은 구절을 ‘진언(眞言)’이나 ‘주(呪)’라 하고, 긴 구절로 된 것을 ‘다라니(陁羅尼)’, 또는 ‘대주(大呪)’라고 한다.
주009)
:마음을 오롯이 하여 읽고 지니면 재액(災厄)을 막거나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경전이기 때문이다.
주010)
:‘언해(諺解)’의 개념 및 언해 경위, 언해본의 성격 등에 대해서는 김영배·김무봉(1998:307~415) 참조.
주011)
:〈영험약초언해〉 역시 〈불정심다라니경언해〉의 편찬·간행자인 당대(當代)의 고승(高僧) 학조(學祖)에 의해 을해자(乙亥字)로 간행되었다. ‘대비심다라니(大悲心陀羅尼), 수구즉득다라니(隨求卽得陀羅尼), 대불정다라니(大佛頂陀羅尼), 불정존승다라니(佛頂尊勝陀羅尼)’ 등 네 가지 다라니의 영험담(靈驗談)을 모아서 번역한 책이다.
주012)
:〈불정심다라니경〉은 밀교(密敎)의 경전인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경전을 온 마음으로 읽고 지니면 재액(災厄)을 막고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에 널리 유통되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에 대해서는 학조(學祖)의 발문에서도 밝히고 있다.
주013)
:〈영험약초언해〉(1485년 간행)에 대해서는 김영배·김무봉(1998)참조.
주014)
:이 책은 원 소장자였던 이희승 선생의 해제를 붙여 1958년 정양사에서 〈아미타경언해〉 고성 운흥사본(1702년 A.D.간행)과 함께 영인이 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74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재차 영인하였다. 그런데 앞의 주 7)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이 책 〈불정심다라니경언해〉를 영인한 영인본에는 서명(書名)이 ‘언해(諺解) 관음경(觀音經)’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이희승 선생은 해제에서 소장하고 있는 책의 표지에 관음경(觀音經)##‘이라는 묵서(墨書)가 있어서 그렇게 붙였다는 설명을 두었다. 그러나 이 책은 관음경과는 별개의 것이다.
주015)
:이 언해서의 책권이 3권 1책이라고 해도 초간 당시부터 분책(分冊)을 염두에 둔 장책(粧冊)은 아니었던 듯하다. 각 권의 내용이 그리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장차도 권에 따라 나눠지지 않고 일련장차(一連張次)로 되어 있어서, 분권(分卷)이 장(張)의 중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판심에도 권차 표시는 없다. 각권의 내용이 서로 조금씩 달라서 내용이 달라지는 부분을 경계로 하여 분권(分卷)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의 지적대로 오히려 원문인 한문 부분과 언해문 부분을 합편(合編)한 형식으로 보인다.
주016)
:번역을 문체의 문제로 접근한 논의로는 김완진(1983)이 있다.
주017)
:이 책은 선장본(線裝本)으로 판심(版心)이 접혀 있어서 반엽(半葉) 단위로 변상도가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엽(全葉) 그림인 것이다.
주018)
:이 책에서는 불교 용어나 한자어 등 설명이 필요한 곳에는 주(注)를 달았는데, 주를 다는 방식은 언해문과 동일한 크기의 활자를 한 줄로 쓰되, 주의 위쪽과 아래쪽에 【흑어미】 표시를 두어 구분했다.
주019)
:이에 대해 천혜봉(1990:172)은 “교(巧)를 극(極)한 섬세·우아성을 보여주고 있어서 판화 미술의 백미라 일컬어 추호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라고 판화 미술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주020)
:역주의 뒤에 학조의 발문(跋文) 전문(全文)과 그 내용을 우리말로 옮겨 놓았다.
주021)
:이때 인수왕대비가 보았던 당본(唐本)이 명(明)나라 헌종(憲宗) 13년(成化, 1477년 A.D.)에 조성된 책인 이른바 ‘성화판(成化板)’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2006년 10월 원주시 치악산 명주사 소재 고판화박물관의 ‘2006 중국 고판화 특별전-판화의 원류를 찾아’ 전시회 도록을 통해서다. 성화판(成化板) 〈불정심다라니경〉 중 한 책이 이 고판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소장본(所藏本) 책을 전시하면서 소개한 내용이다. 이 책은 현재 강원도의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 경전은 밀교(密敎) 경전인데 중국에서는 당대(唐代) 이후에 밀교가 점점 쇠퇴하여 이 경전을 구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학조(學祖)의 발문에도 일부 언급되어 있다.
주022)
:〈불정심다라니경언해〉와 한문본 〈불정심다라니경〉의 현전 상황 등 판본과 관련된 내용은 주로 김영배ㆍ김무봉(1998)과 각 도서관의 도서목록을 찾아서 확인했다.
주023)
:한문본의 일부에 음역(音譯)이 있거나 구두점만 있는 것은 독송(讀誦)의 중요성이 강조된 때문일 것이다.
주024)
:안심사(安心寺) 판본의 책을 언해본으로 다룬 논의가 있으나, 필자가 살펴본 바로는 언해본이 아니고 한문본이다. 다만,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모다라니(姥陀羅尼) 부분이 한글로 음역(音譯)이 되어 있고, 그 외의 부분은 구두점만 있을 뿐이다.
주025)
무애자재심왕지인(無碍自在心王智印):<정의>‘무애자재(無碍自在)’는 장애(障碍)가 없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고, ‘심왕(心王)’은 의식(意識) 작용(作用)의 본체(本體)를 이른다. ‘지인(智印)’은 사람이 ‘인(印)’이 있으면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과 같이, 반야(般若)의 지(智)로써 인(印)을 삼는다면 실상(實相)의 이(理)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여 ‘지인(智印)’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026)
:<정의>‘나라연(那羅延)’은 ‘견고(堅固)하다’는 뜻이다. 또는 힘이 아주 뛰어난 천상(天上)의 역사(力士)를 이르기도 한다.
주027)
:<정의>‘금강밀적(金剛密跡)’은 손에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큰 위엄을 나타내어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천신(天神)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밀적(密迹)’은 항상 부처를 모시고 부처의 비밀한 사적을 기억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곧, 금강역사(金剛力士)를 이른다.
주028)
아타발구라신(阿吨鈸拘羅神):<정의>‘아타발구라신(阿吒鈸拘神)’은 밀교(密敎)의 16 대야차대장(大夜叉大將)의 하나인 광신귀신대장(曠神鬼神大將)을 이른다. 곧, 대원수명왕(大元帥明王)을 말한다. 그가 말하는 다라니를 외우는 이는 온갖 어려움에서 자기의 원(願)대로 벗어난다고 한다.
주029)
:그 예는 아래와 같다. ‘그럴 써 供養호미 어루 다 니디 몯 알리로다’〈하:33ㄴ〉 / ‘加被논 功德은 다 니디 몯리로다’〈하:37ㄴ〉
주030)
:종결어미 ‘-지다’는 앞에 ‘-거/어-, -아/어-’ 등의 선행을 요구하는데, 이를 ‘쇼셔’체 ‘청원의 명령법’으로 본 견해(안병희, 이광호, 1990:247~248)와 ‘소망 평서형’으로 보는 견해(고영근, 1997:333~334)가 있다.
주031)
아미타경언해:〈아미타경언해〉(1464년 간행)에는 ‘ㅸ’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모두 이 음운이 실현되었다. 이는 〈아미타경언해〉의 내용이 이보다 앞서서 간행된 〈월인석보〉(1459년 간행) 권7에 실려 있고, 지금은 전하지 않는 〈석보상절〉(1447년 간행) 권7에도 실려 있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그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본다. 또, 이보다 3년쯤 전에 간행된 것으로 짐작되는 활자본 〈아미타경언해〉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주032)
:동명사어미 ‘-ㄹ’과 ‘-ㅭ’의 교체에 대해서는 김무봉(1993:10~12), 김무봉(1997:67~68) 참조.
주033)
:〈석보상절〉(1447년 간행) 등에 나타나던 동명사어미 ‘ㅭ디-’형이 ‘-ㄹ디’형으로 교체된 시기는 주로 〈능엄경언해〉(1462년 간행) 이후가 된다.
주034)
:동명사어미 ‘-ㅭ’과 의존명사 ‘’의 통합형 중 ‘-ㅭ’은 〈능엄경언해〉 등에서 더러 보이나, ‘ㅭ’나 ‘ㅭ시’는 정음 초기 문헌부터 쓰이지 않은 듯 문증(文證)되지 않는다.
주035)
:〈반야심경언해〉에서 ‘ㄹ’ 다음에 사잇글자로 ‘ㆆ’이 쓰인 것으로는 ‘ 사교미라〈11ㄴ〉,  사교〈19ㄱ〉’ 등이 있다.
주036)
:중세국어 당시에 종성에 합용병서가 올 경우, 자음으로 시작되는 음절 앞이나 휴지 앞에서는 종성에 대표음 하나만 실현되거나 겹받침일 경우는 8종성에 해당하는 자음으로 바뀌어 표기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옮-’은 이 예의 경우처럼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당시의 겹받침이 유성자음이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두시언해〉(1481년 간행)에 ‘옴도다 (권20:26ㄴ)’가 쓰이기도 했다.
주037)
:여기서 체언 ‘쳔’과 조사 ‘이’를 분철한 것은 이 어휘의 어원이 한자 ‘천량(錢糧)’에서 왔기 때문일 것이다. <정의>‘錢糧’은 살림살이에 드는 돈과 양식, 또는 재물을 이른다.
주038)
:이런 양상은 간경도감본 중 〈금강경언해〉(1464년 간행)의 구결문에 이미 나타나고, 이보다 나중에 간행된 〈육조법보단경언해〉(1496년 간행)에는 구결문과 언해문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금강경언해’의 예에 대해서는 김무봉(1993:18~21)참조, ‘육조법보단경언해’의 예에 대해서는 김무봉(2006:31~32) 참조.
이전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