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한 맛이 사사로운 정(情)이 없으시나, 오로지 근기(根機)가 같지 않으므로, 부처께서 굽은 낚시를 차가운 못에 드리우시며 【굽은 낚시라고 하는 말은, 불법(佛法)은 본래 바른 것인데, 중생의 근기(根機)가 다르므로, 모습이 모습(이 모습 저 모습)으로 제도하시느라 말씀이 여러 가지이므로, 굽은 낚시라고 한 것이다. 찬 못은, 비록 중생의 근기(根機)야 여러 가지이지만, 자신의 본성은 본래 깨끗하여 한 물결도 일어나지 않으므로 차가운 못이라 한 것이다.】 나약한 몸을 보리수에 나타내시어, 사제(四諦)와 12인연(因緣)과 육도(六度)로 코끼리와 말과 토끼를 건너게 하셨다. 【사제(四諦)는, 하나는 고제(苦諦)이니, 고(苦)는 수고(受苦)하는 것이다. 수고가 세 가지이니, 괴로워 수고와 무너져 수고와 서로 즐거우며 어려움이 엎치락뒤치락하느라 수고이니, 천도(天道)로부터 인세계(人世界)에 갖추 있는 것이다. 둘은 집제(集諦)이니, 앞의 고제로부터 선악(善惡) 두 법을 이루는 것이다. 셋은 멸제(滅諦)이니, 그런 어려운 일을 없게 하고 진실의 법(法)을 나타내는 것이다. 넷은 도제(道諦)이니, 정도(正道)에서 닦아 벗어나는 것이다. 이는 성문(聲聞)의 재주이다. 12인연은 하나는 무명(無明)이니, 과거에 지혜 없어 밝지 않은 것이다. 둘은 행(行)이니, 밝지 않으므로 일체의 좋고 궂은 업(業)을 짓는 것이다. 셋은 식(識)이니, 일체의 업(業)을 지어 어버이의 배에 드는 것이다. 넷은 명색(明色)이니, 마음과 숨이 있어 어버이의 배에 들어 형상(形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섯은 육입(六入)이니, 눈과 귀로부터 마음까지 이루어져 제경(諸境)을 들이는 것이다. 여섯은 촉(觸)이니, 배에서 나와 육진(六塵)에 마음을 닿게 하는 것이다. 일곱은 수(受)이니, 보는 경(境)에 좋으며 궂음을 받는 것이다. 여덟은 애(愛)이니, 고운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아홉은 취(取)이니, 고운 것을 가지고자 하는 것이다. 열은 유(有)이니, 예전의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예전의 일[因緣]로 이 몸이 되어 와서 또 후(後)의 일로 예전의 모습이 그저 있는 것이다. 열하나는 생(生)이니, 이제 이런 나약한 인연(因緣)을 만들므로 나중에도 이런 몸이 되어 생겨나는 것이다. 열둘은 노사(老死)이니, 나면 반드시 늙어 죽는 것이다. 이 매우 괴로운 일이 서로 이어 있으므로 12인연이라 한다. 이 첫 무명(無明)이 끊어지면 열둘이 다 없어질 것이므로, 연각(緣覺)이 이것을 없게 하려고 혼자 산에 가서 수행하는 것이다. 육도(六度)는, 하나는 단도(檀度)이니 보시(布施)이다. 그지없는 재보(財寶)를 내는 것과 처자식과 몸을 남에게 주는 것과 마음 버림이야말로 큰 보시이다. 둘은 지계(持戒)이니, 짐승 죽이는 것과 도적질과 색을 탐하는 것과 거짓말과 불량한 말과 악한 말과 쓸데없는 수다와 탐(貪)하는 마음과 성내는 마음과 미혹한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셋은 인욕(忍辱)이니, 남이 나를 욕되게 하여도 참는 것이다. 넷은 부지런히 불법(佛法)을 행하는 것이다. 다섯은 선정(禪定)이니, 날숨 들숨과 몸과 마음을 가만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섯은 지혜이니, 지혜로운 마음으로 앞의 다섯 가지 일을 자세히 행하는 것이다. 성문(聲聞)은 수고를 싫게 여겨 열반(涅槃)에 들어가려 하므로 불법(佛法)에 옅고, 연각(緣覺)은 무명(無明)인 마음을 끊어 열반에 들어가려 하므로 불법에 중간쯤 된다. 보살(菩薩)은 먼저 자비(慈悲)로 중생(衆生)을 가엾게 여겨 지혜(智慧)로 보시(布施)하며 지계(持戒)하며 인욕(忍辱)하며 정진(精進)하며 참선(參禪)하여 위로는 부처의 큰마음을 받들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濟渡)하므로 불법(佛法)에 깊으니, 한 가지의 불법에 셋의 근기(根機)가 다른 것이, 한 가지의 깊은 물에 토끼는 위로 헤엄쳐 나오고 말은 가운데서만 헤치고 코끼리는 물속을 다 밟아 건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말에는 차례가 있으나 법(法)은 옅고 깊음이 없는 것이다. 가장 많이 불린 금으로 병과 쟁반과 비녀와 팔찌를 만들어 저울로 자세히 달고, 또 그것을 녹여 한 덩어리의 금을 만들면 조금도 (양이) 줄지 않을 것이다. 한가지의 평등한 법을 세 가지의 사람에게 차례로 이르시나, 그 평등한 법이 높으며 낮음이 없는 것과 같으므로 금언(金言)이라 한다. 이런 금언을 한갓 지금의 부처만 이르시는 것이 아니라, 시방(十方) 삼세(三世) 일체 제불(諸佛)이 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한가지의 소리를 펴시며 마찬가지로 이런 법을 이르시어 찰(刹)도 이르시며 진(塵)도 이르시는 것이 【찰(刹)은 티끌 담은 것이고, 티끌은 찰(刹) 속에 든 것이니, 세계가 찰(刹)이고 중생이 진(塵)이다.】 다함이 없으시니, 어찌 그러한가? 그지없는 찰경(刹境)의 나와 남이 털끝만큼도 서로 가리지(떨어져 있지) 아니하고, 열 세계의 예와 지금과 처음과 나중이 당념(當念)에 벗어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열 세계는 현재로부터 과거 미래가 되고,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가 되고, 미래로부터 현재 과거가 되고, 거기에서 다니지 않는 세(世)가 모여 10세(世)가 된다. 옛날에 한 중이 태백산(太白山)의 미리암(弥理嵓)에서 화엄경을 보고 있었는데, 한 큰 돼지가 지나가거늘, 부처께 절하고 여쭙되 “어찌 이러합니까?” 부처께서 이르시되 “그 돼지는 너의 예전의 몸이고, 나는 너의 미래의 부처이다.”라고 하시거늘, 즉시 그 중이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