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것이 저절로 흐린 것이라, 맑음으로 인하여 흐린 것이 아니며, 맑은 것이 저절로 맑은 것이라, 흐림으로 인하여 맑은 것이 아니다. 【흐린 것은 번뇌이고, 맑은 것은 보리이니, 보리는 맑고 깨끗한 마음이고, 번뇌는 어지럽고 흐린 마음이다. 마음이 본래 깨끗하고 자늑자늑하여 망령(妄靈)된 흐린 것이 흐리게 할 수 없건마는, 적정(寂靜)한 곳에 만상(萬象)이 비치면, 맨 처음 한 생각이 문득 나는 줄을 몰라 생각마다 비치는 것을 좇고, 본래 깨끗하고 고요한 줄은 몰라, 매양 흐린 어지러운 것이 되어 세간(世間)에 나고 드는 마음이 있으므로, 둘인가 여길 만하건마는, 깨끗하고 적정(寂靜)한 것이 본래 없으니 어지럽고 흐린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면 맑은 것도 본래 맑은 것이고 흐린 것도 본래 흐린 것이라 일체의 만법(萬法)이 서로 섞일 이치가 없으니, 서로 섞이어 있는가 하는 마음은 중생의 미혹(迷惑)한 망령된 생각이다. 언제나 불이 켜 있으면 눈에 병을 가진 사람은 오색 원광(圓光)이 나타나 보이거니와,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이야 불의 깨끗함만 보느니, 중생의 망령된 생각으로 마음이 흐리며 맑은가 두 가지로 여기는 것이 이와 같다.】 생기고 없어지고 하는 미친 뜻이 진여(眞如)로 인하여 어둡지 아니하며, 【진여(眞如)는 보리(菩提)와 한가지의 것이지만, 까닭이 다르다. 보리는 마음이 깨끗하고 적정(寂靜)한 모습이고, 진여(眞如)는 진실로 깨끗하고 적정한 것이 일체 세간의 동전(動轉)이 없는 까닭이다. 또 그 까닭이 동전(動轉)이 없되 너무 깨끗하여 일체 만법(萬法)에 비치되, 가며 오며 생기며 없어지며 또 있음도 없어서 헤아림 못하는 것을 이른바 묘각(妙覺)이라 하지마는, 이 세 가지의 것이 까닭은 달라도 모습은 한가지이다.】 진여(眞如)와 묘각(妙覺)이 생기며 없어지며 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깨끗하지 아니한 것이라, 법(法)마다 위(位)에 있으며 【위(位)는 제 자리이다.】 낱낱이 의거(依據)가 없어 【법(法)마다 위(位)에 있다는 말은 마음이 본래 없고 마음 가운데 비친 것이 본래 적정하여, 꽃이 누르며 대나무가 푸르며 산이 높으며 물이 깊은 것이 오로지 마음이 원명(圓明)함으로 그러할 뿐이다. 내가 누르다 내가 푸르다 내가 높다 내가 깊다고 하는 것이 없으며, 내가 누르것다 푸르것다 높것다 깊것다 하는 것도 없다. 마음과 경(境)이 다 함께 없[空]고 적정하면 오직 맑은 한 가지 맛이 깨끗하여, 생각지도 못하며 말하지도 못하며 남에게 보이지도 못할 것이므로, 각각 위(位)에 있으며 의거(依據)가 없다고 한 것이다.】 서로 마주 서며 기다림이 끊어지며 근원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보리(菩提) 번뇌(煩惱) 자성(自性)이 다 공(空)하며, 살며 죽으며 열반(涅槃)의 진실한 근원이 본래 적정하므로, 성인(聖人)이 세간에 나시어 비록 세간의 진로(塵勞)에 섞여 계시나, 진실의 기(機)는 멀리 세간과 다르시니라.